-대한민국의 수능장-

 

시험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국어 시험지를 펼친다.

총 45문제, 주어진 시간은 80분이다.

학생들은 여러 문학 지문과 비문학 지문을 읽으며 5지선다로 구성된 문제의 정답을 고른다.

 

20분의 휴식 후, 2교시 수학 시험이 시작된다.

5지선다형 21문제와 단답형 9문제, 총 30문제를 100분 동안 풀이한다.

단답형의 답은 0에서 999 사이에서만 나올 수 있다.

 

50분간 점심을 먹은 후, 영어 시험이 시작된다.

영어 시험은 45문제로 구성되며 이 중 듣기평가 문항이 17개 존재한다.

학생들은 25분 이내의 듣기평가 시간을 포함하여 70분 동안 문제를 풀이한다.

 

쉬는 시간 후 4교시, 한국사와 사회탐구 또는 과학탐구 시험이 진행된다.

먼저 20문제의 한국사를 30분 동안 풀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2개의 탐구과목 시험을 본다.

이 또한 20문제를 30분 동안 풀이한다.

각 과목 사이에는 약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제2외국어를 선택한 학생들은 시험을 응시하고,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귀가하게 된다.

 

아침부터 이른 저녁까지 학생들은 대여섯 개의 시험을 치른다.

 

물리학 I 수능 모의평가 시험지(왼쪽)[각주:1], 물리학 II 수능 모의평가 시험지(오른쪽)[각주:2]
 

-어느 국제학교의 시험장-

 

학생 A가 선택한 시험과목은 Language A Literature SL, Language B SL, Mathematics: Analysis and approaches SL, Economics HL, Biology HL, Psychology HL로 총 여섯 과목이다.[각주:3] 이 학생은 중급 과목(SL)에서 문학, 중국어(외국어), 수학 AA를 고급 과목(HL)에서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5월 4일 수요일, A는 오전 동안 문학 표준수준 1차 시험지를 풀이한다.

1차 시험에서는 제시된 방향에 따른 텍스트를 분석하는 능력을 평가하며 1시간 1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5월 5일 목요일, A는 오전 동안 문학 표준수준 2차 시험을 본다.

2차 시험에서는 비교 에세이를 작성하며 1시간 4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5월 6일 금요일, A는 오후 동안 표준수준 수학AA 1차 시험을 응시한다.

1차 시험 때는 계산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학생은 90분 동안 총 10문제를 풀이하게 된다.

이 중 7문제는 풀이가 짧고 하나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3문제는 풀이가 길고 하나 이상의 주제를 다룬다.

 

5월 9일 월요일, 오전 동안은 표준수준 수학AA 2차 시험을, 오후 동안은 경제학 HL 1차 시험을 치른다.

수학AA 2차 시험에서는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1차 시험과 마찬가지로 90분 동안 총 10문제를 풀이한다. 문제 구성도 동일하다.

경제학 시험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이 또한 서술형 시험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A는

5일 10일 화요일 오전 동안 경제학 HL 2, 3차 시험을, 오후 동안 외국어 SL 1, 2차 시험을 본다. 외국어 SL 2차 시험 때에는 읽기 부분을 평가한다.

5월 11일에는 오전 동안 외국어 SL 2차 시험에서의 듣기 영역을 응시하며, 오후에는 생물학 HL 1, 2차 시험을 치른다. 과학 과목의 경우 유일하게 객관식 평가 또한 존재한다.

 

한 주가 지난, 5월 17일 오후에 심리학 HL 1차 시험을 보고

다음날인 5월 18일 오전에 심리학 HL 2차 시험을 보며 A는 시험을 마무리한다.

IB Physics HL 1차 시험지

 

[각주:4]">
IB Physics HL 2차 시험지[각주:5]
 

 

들어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시험장의 모습을 보고 왔다. 우리는 첫 번째 시험장을 더 익숙하다고 느끼며 두 번째 시험장을 색다르게 느낄 것이다. 두 번째 시험장에서 이루어진 시험은 ‘IB 시험’인데 수능과는 다르게 서술형 평가가 주를 이룬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수능은 하루에 여러 과목의 시험을 보며 객관식 문제들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IB는 하루에 1~2과목의 시험을 여러 날 동안 보며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문제를 풀이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IB를 공교육에 도입하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필자는 IB 시험을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하였는데 그 당시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IB 시험은 매우 새로웠으며, 한창 줄 세우기식 교육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필자가 그 시험방식에 대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필자는 고등학생 때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치열하게 경쟁시키고 학생들이 성적으로 인해 자신의 꿈에 좌절을 겪게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교육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IB를 접하였을 때는 암기식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IB의 시험 방식이 진정한 학습을 이끌 수 있으며 막연하게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러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다시 본 IB는 조금 달랐다. 이제는 필자에게 IB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국내에 IB를 도입한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IB를 국내에 도입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필자에게 혼란을 주었다. 하지만 IB 및 서술형 평가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항 중 하나이기에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제도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교수와 IB를 수학한 국제학교 학생의 인터뷰를 통해 IB의 긍정적인 면과 우려되는 면,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IB의 특징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시험이 더 좋다기보다는 기존과는 다른 시험의 방식을 보며 우리 시험의 문제점을 다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IB란 무엇인가

 

  그럼 IB는 무엇일까? IB는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줄임말로, 여러 나라의 외교관 자녀들이 국제학교에서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국제 비영리 기구인 IBO에서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자 대입 시험 체계이다. IB DP[각주:6]는 학생들의 주도적인 토론과 탐구를 지향하고 지역 사회 봉사 등의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중요시하며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고자 한다. 또한 IB DP는 준거참고 절대평가이며 주관식 문항들로 평가한다.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은 여러 교사들이 교차 채점을 하며 샘플용 답안지에 대한 채점 결과의 차이가 크거나 다른 교사와의 채점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나면 재채점이 진행된다. 최근에는 IB DP의 장점을 강조하며 이를 국내에 도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구광역시교육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경우 2019년에 IB 교육과정을 도입하였으며, 다른 지역의 교육청들도 IB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기에 이에 따른 새로운 수능체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며 2028년 대입 개편안으로는 서·논술형 수능체계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IB 교육을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교육과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들여오면서도 우리나라 교육의 장점 또한 살릴 필요가 있다.

 

 

챕터1. 심화학습이 가능한 IB

 

  IB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차이 중 하나는 학문의 깊이와 범위에 있다. 교육과정의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학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내용 요소를 축소하고 실생활 관련 주제들을 늘리고 있으며, IB는 관심 분야에 대한 심화적인 학습을 위해 내용 이해를 돕는 개념들을 교육과정에 추가하고 있다. 예시로 물리학 과목을 살펴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물리학 I과 물리학 II의 변화를 알아보자. 물리학 I에서는 난도가 있는 내용들이 물리학 II로 이동하였으며 정량적 계산이 필요한 내용들이 축소되고 실생활과 관련지어 물리적 원리를 정성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이 많아졌다. 물리학 II에서는 위치벡터, 로렌츠 힘 등 많은 개념들이 삭제되었으며, 다루는 내용도 축소되었다. 전체적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리 교과의 지식 내용은 내용 요소의 감축이 두드러진다.[각주:7] 이번에는 2014년에 개정된 IB DP의 물리학 지도서를 살펴보자. 2014 개정 IB DP 물리학 지도서에 따른 물리 지식 내용은 삭제보다는 추가된 경우가 많았다. 그 예로는 전기회로의 이해를 돕기 위한 ‘키르히호프 법칙’ 추가, 주제의 완성된 통합을 위한 ‘탄성에너지’의 정량적 계산 추가 등이 있다. IBO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시대적 상황에 맞는 학문의 완전한 이해와 학문적 기본 충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각주:8]

 

  또한, 우리나라는 물리학 I과 물리학 II를 통해 점차적으로 심화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 반면, IBO는 표준수준과 상위수준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먼저 우리나라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리학 I은 정성적인 내용을, 물리학 II는 정량적인 내용을 주로 다룬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물리학 II를 수강해야만 정량적 표현과 더 복잡한 현상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반면 IB DP는 SL, HL의 선택에 따라 접하는 주제가 달라지는데 Core 주제의 경우는 선택과 관계없이 정량적이고 심화적인 내용까지 배우게 된다. 예를 들면, 물리학 I에서는 ‘등가속도 운동’과 ‘전기장’에 대한 정성적인 일부 내용을 학습하고 물리학 II에서 ‘포물선 운동’과 ‘전기력선’ 등의 정량적 내용을 학습하게 된다. 반면 IB DP에서는 ‘등가속도 운동’과 ‘전기장’이 Core 주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정량적이고 심화적인 내용까지 모두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IB DP에서는 SL, HL 등의 선택에 따라 몇몇 주제들은 아예 접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학 영역의 여러 과목 중 한 과목만 선택해서 배울 수 있기에 그 과목을 깊게 배울 수는 있으나 다른 학문을 접하는 기회는 적어지기도 한다.[각주:9]

 

 

챕터2. 사고력 확장과 자기주도학습을 이끄는 IB

 

IB DP를 이수하기 위해서는 지식론(TOK)을 학습하고, 소논문(EE)을 작성하며, 창의체험활동(CAS)에 참여해야 한다.

 

  지식론[각주:10](TOK)은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는데, 이 과목에서는 ‘지식의 본질’과 ‘안다는 것’의 개념을 탐구한다.[각주:11] 지식을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인자동차가 사고 시 운전자를 보호하도록 프로그램되어야 하는지”와 관련해 “윤리적 판단은 다른 종류의 판단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라는 지식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각주:12] TOK는 또한 실생활과의 연계를 중요시하는데,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실생활 사례로부터 지식 질문[각주:13]을 도출하며 거꾸로 사고력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속 깊은 곳에서 얻은 생수가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생수는 병원균에 취약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뉴스 화면을 실생활 사례로 보여주면 학생들은 “생수를 마시는 것은 건강에 좋을까?”라는 1차적인 지식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어떻게 결정하는가?”와 같은 2차적 지식 질문을 도출할 수 있다. 이로부터 더 나아가 논의와 성찰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은 “과학적 설명을 설득력 있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처럼 보다 개념화된 최종적인 지식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론 수업을 거쳐 TOK 에세이를 쓸 때는 질문 문장의 주요 용어들을 분석하여 개념을 정립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 및 이에 관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 근거는 실생활 사례로 제시해야 하고, 다양한 앎의 방법과 지식 영역을 고려하며 지식 프레임워크를 분석한 다음 이에 대한 평가와 함의점도 포함해야 한다.

 

  TOK의 평가는 에세이 외부평가 20점과 전시회 내부평가 10점으로 구성된다. TOK 에세이(외부평가)의 경우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초에 6개의 질문이 제시되며, 학생들이 6개월 동안 1600단어 분량(영어 기준)의 에세이를 작성하면 중앙에서 채점이 이루어진다. TOK 전시회(내부평가)는 35개의 IA[각주:14] 주제질문이 IB에서 제공되며, 학생들은 주제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과 관련되는 3개의 오브제(Object)를 전시해야 한다. 오브제는 매우 다양한 유형일 수 있으나 실세계 맥락의 구체적 오브제여야 한다. 즉, 인터넷의 일반적인 오브제의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논의할 특정 오브제를 찾아내야 한다. 예로써 남동생에 대한 논의 및 사진 오브제는 특정 실세계 맥락이 있지만, “아기”라는 인터넷 이미지 검색으로 얻는 이미지는 일반적이고 실세계 맥락이 있지 않다. 학생들은 세 오브제에 대해 950 단어(영어 기준) 이내의 설명을 작성하며, 이는 교사에 의해 먼저 채점되고 일부 샘플들은 IB 본부에서 조정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TOK 과목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관점과 해석을 정교화시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국제학교에서 IB를 수학한 학생 A는 TOK를 통해 어떤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며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접하면서 사고의 유연성이 늘어났다고 이야기하였다.

 

 

  IB DP의 소논문[각주:15](EE)은 학생들이 하나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주제를 정해 연구를 수행하고 4,000 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쓰는 활동이다. EE의 목표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각주:16]

 

1. 학생이 지적인 주도성과 엄밀성을 바탕으로 독립된 연구에 참여하게 한다.

2. 학생이 연구, 사고, 자기 관리, 의사소통 기능을 개발하게 한다.

3. 학생이 연구와 글쓰기 과정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EE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EE는 보통 두 학기에 걸쳐 진행되며, DP Coordinator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EE를 소개하면 학생들은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 교과목을 계획서 형태로 제출한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학생의 연구 수행과 소논문 작성에 대한 안내를 해줄 지도교사를 배정하고, 학생과 지도교사는 공식적으로 세 차례의 면담을 진행한다. EE에 대한 평가는 IBO에 의해 외부에서 진행되며, 논술형 평가의 채점 신뢰성을 위해 몇 가지 조취를 취한다. IB의 평가는 절대평가 또는 준거참조평가로 이루어지며, EE에 대한 평가는 다섯 가지 평가준거에의 분석적 채점과 최적화 모델에 따른 총체적 채점으로 진행된다. 또한 한 채점관이 채점을 한 후 다른 채점관이 교차채점을 진행하기에 채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IB DP의 창의체험활동[각주:17](CAS)는 창의성(Creativity), 활동(Activity), 봉사(Service)의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창의성은 예술 및 창의적 사고와 관련이 있는 다른 경험들을 의미하며, 활동에는 건강한 생활방식에 도움이 되는 신체적 노력 또는 학업적인 일을 보완하는 것이 있다. 봉사는 학생들에게 배움이 있는 보수가 없고 자발적인 교환활동을 이야기하며, 이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 존엄성,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 세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서 학생들은 CAS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은 주도성과 끈기를 보여주어야 하며 협동력, 문제해결력, 의사결정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CAS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배우며 개인적 측면과 대인관계적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CAS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기회를 제공하면서 성취감과 그들의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또한 이 활동은 DP에서의 학업 부담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챕터3. IB의 우려되는 부분

 

  하지만, 국제학교에서 IB를 수학한 학생 A는 지식론이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듣는 것에 도움은 되었지만 본인은 지식론 ‘수업’이 시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지루하였다고 표현하였다. 또한 소논문 EE의 경우, 연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활동과정 중에 지도교사와의 교류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학생 A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감기한에 다다라서 소논문을 작성한다고 한다. 이렇게 IB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는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교육과정만의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교육과정을 우리나라에 도입함에 있어서도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교육과정의 발전을 위해, 특히 입시 위주의 하나의 정답 고르기 시험을 개선하기 위해 IB 교육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는 IB를 도입하고자 할 때 발생 가능한 문제점 및 논의들을 다뤄보겠다.

 

 

챕터4. IB 도입 시 고려해야 할 부분

 

  먼저, 교사당 담당 학생 수가 많은 것이 서·논술형 평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에서 교사들은 “서·논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가 선다형 지필평가에 비해서 문항의 제작, 채점 및 평가 결과에 대해서 피드백을 제공하는데 물리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든다”[각주:18]라고 응답하며 문제 유형을 교사의 신념대로만 결정하기 어려움을 표하였다. 우리나라의 교사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부담은 적지 않다. 2009년과 2019년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비교해본 결과를 살펴보자. 초등학교는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2.5명에서 16.6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중학교는 19.9명에서 13.0명으로, 고등학교는 16.7명에서 11.4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교사 1인당 학생 수의 OECD 평균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각각 14.5명, 13.1명, 13.0명으로, 우리나라는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OECD 평균보다 그 수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가 23.0명, 중학교가 26.1명으로 각각 OECD 평균보다 약 1.9명, 2.8명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각주:19] 또한, 고등학교도 2021년 기준 학급당 학생 수가 약 23명에 달한다.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4개의 학급만 담당해도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서·논술형 평가를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개별 피드백을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IB DP가 정착된 학교에서는 교사 1인당 담당하는 학생 수가 30명이 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비하면 현재 100여 명의 학생들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서·논술형 평가 또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IB DP에서는 학생들이 한 선생님과 2년 동안 함께 하게 되는데, 국제학교 졸업학생 A는 ‘같은 선생님께서 2년 동안 수업을 해주시니 선생님과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IB DP의 이러한 측면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부분 등을 통해 선생님들께서 학생의 학교생활을 기술하신다. 이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개별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이 하는 활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담당 학생이 많은 현실 여건 속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 수의 조정은 꼭 IB의 도입이 아니더라도 개선되어야 하는 우리 교육과정의 과제이다.

 

  두 번째로, IB를 도입하면 학업량이 늘어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IB DP에서 Physics SL과 HL의 이수 시간은 각각 150시간, 240시간인데, 2015 교육과정에서의 물리학 I, II의 수업 시수는 각각 85시간(5단위 기준[각주:20])이다.[각주:21] IB DP에서는 더욱 자세하고 심화적인 학습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만큼 이수 시간 또한 많이 필요한 것이다. IB DP 교육과정에서 학업 스트레스는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2015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과거에 문제로 지적되었던 과중한 학업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기에 IB에서 배우는 것만큼의 지식을 담는 것은 교육과정 흐름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지식을 넓게 접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깊게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할지를 고민하고 학습량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수학 교과의 경우, 어떤 내용이 삭제되었다 추가되었다 하는 경우가 많이 반복되었는데[각주:22] 학생들의 학업 부담량을 줄이려고 할 때 어떤 내용을 줄여야 할지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필자가 경험한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기하’ 과목이 필수가 아니었는데, 대학교수님들 중에는 벡터를 고등학교 때 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학교 선생님들께서도 대학에 들어가면 많이 다루게 되는 행렬을 안 배운다는 것에 놀라시고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전 교육과정들의 문제점인 학업 부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학생들이 일정 수준의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시험 방식의 차이에서 문제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능 시험을 하루 동안만 치르기에 긴 시간 동안 여러 과목을 응시해야 하는 반면, IB 시험은 하루에 최대 2개 과목의 시험이 이뤄지고 여러 날에 걸쳐 시험이 진행되며 학생들은 서술형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우선 수능은 우리나라에서 약 30년 동안 이뤄졌기 때문에 시험 방식이 IB처럼 바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고정관념처럼 존재하는 수능의 시험 방식을 색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과목을 응시할 때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서술형으로 시험을 보기에 학생들이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국제학교 졸업학생 A는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다 해외로 나가면서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A에게 서술형으로 답안을 쓰는 것에 부담이나 어려움이 없었는지 물어보았을 때 A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IB DP 외에도 초등학생, 중학생이 대상인 PYP, MYP 프로그램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교육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서술형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초등학교 급부터 이러한 교육방식을 적용하여 학생들이 점차적으로 심화된 서술형 평가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A는 서술형으로 답안을 작성하다 보니 시험 시간 내내 펜으로 계속해서 글씨를 써 내려가야 하는데 한 과목에 부여되는 시험 시간도 길다보니 하루에 두 과목을 보는 날에는 글씨를 쓰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더 이상 생각이 안 나는데 생각을 해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고도 이야기하였다. 주관식으로 문제가 구성되다 보니 기출을 보아도 시험을 대비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점도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IB의 채점 방식을 한국에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IB에서는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4가지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방식은 아래와 같다.[각주:23]

 

1. 채점자는 해당 과목에 전문 지식과 IB 관련 경력을 가진 교사들 중 신청을 받아 선발된다. 현직 교사이기 때문에 채점자들이 채점 본부에 모여 있지 않고 온라인으로 답안지를 받는다. 채점자로 선발되는 절차도 까다로워서, 일정한 훈련을 거쳐야 하고 채점 기준에 대한 상세한 지침 사항들을 숙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2. 전체 답안지 중 몇 개를 뽑아 미리 채점하고, 이를 토대로 샘플용 답안지를 만든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 채점자들과는 따로 선발된, 채점자 겸 감독관들이다. 일반 채점자들에게 보내지는 답안지에는 열 개당 하나씩 이 샘플용 답안지가 껴 있는데, 일반 채점자는 어떤 것이 샘플용 답안지인지 알 수 없다. 샘플용 답안지에 대한 채점 결과가 미리 이루어진 채점 결과와 3점[각주:24] 이상 차이 나면 감독관이 개입해 재채점에 들어가고 채점자는 재교육을 받는다.

3. 모든 답안지는 교차 채점을 한다. 1차 채점은 일반 채점자 두 명이 하고, 2차 채점은 그들의 감독관이 한다. 교차 채점에서 3점 이상 차이가 나면 역시 재채점에 들어가고 채점자는 재교육을 받는다.

4. 학생이나 교사는 채점 결과에 불만이 있을 경우 재채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재채점은 다른 채점자가 하게 되는데, 이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오히려 점수가 낮아질 수도 있다. 재채점 내용은 학생과 교사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채점 방식에서 우리는 크게 교사의 업무, 채점의 주관성 측면에서 여러 논의를 벌일 수 있다. 먼저 IB 시험은 대부분[각주:25] 서술형이기 때문에 교사가 채점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채점이 이뤄져야 하며 이 경우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교내의 선생님들만이 아니라 교외에 계신 선생님들의 채점도 필요할 것이다.[각주:26] 이렇게 되면 채점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교사들이 업무량을 감당하기 버거워질 수 있다. IB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 학교들의 경우 선생님들이 처리해야 하는 공문의 수가 1년에 3~4건 정도로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서술형 문제의 채점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

 

  또한, 서술형 답안을 채점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채점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에 따라서 채점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국제학교 졸업학생 A는 수학 같은 과목의 경우에는 서술형이 되더라도 풀이과정이 명확하기 때문에 공정성이 잘 보장될 수 있지만 TOK와 EE 같이 생각을 물어보는 과목에서는 채점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어 보인다고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A의 친구 중에는 재채점을 요구하여 점수가 오른 경우도 있었고, A는 이것을 보면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과목의 경우에는 어떻게 채점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형 문제의 채점에 대해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의 B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서술형은 객관식처럼 정답, 오답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어떤 답안에 몇 점을 주어야 할지에 대한 합의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기 위해 채점관들이 국가 수준에서 모여서 합의하고 따로 채점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루브릭[각주:27]을 만들게 됩니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평가를 할 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몇 점인지 선생님들끼리 상의를 합니다. 이것을 본격적으로 국가 수준에서 연구해서 연습을 많이 하면 차츰차츰 학교에서도 이러한 구조를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학교 내신평가도 자연스럽게 주관식 위주, 절대평가 위주로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위 학교에서 절대평가와 주관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국가 수준의 평가에서 먼저 도입하여 각 학교가 조금씩 순차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서술형 문제의 채점에 대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미 학교에서 서술형 평가를 할 때에도 점수의 기준이 나누어져 있었으며 이와 같은 맥락에서 IB 시험과 같은 서술형 방식이 적용되어도 문제 수가 많아질 뿐 점수의 기준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국가적인 시험에서는 모든 답안에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기에 물론 기준을 여러 사람의 논의를 거쳐 잘 세워야겠지만 차츰 해결해갈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서술형 평가와 동시에 절대평가가 진행된다면, 절대평가의 점수를 어떻게 세분화해서 등급을 나누는지에 따라 절대평가도 절대 만만하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평가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각주:28]

 

 

끝맺으며

 

  지금까지 IB 시험에 대해 알아보고 IB만의 장점과 IB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때 생각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았다. 국제학교 졸업학생 A와 물리교육과 교수님 B를 인터뷰하면서 학생과 교수자의 입장에서 모두 “객관식+주관식”, "수능+IB"를 원하는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의 시험 방식에서는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정답 하나와 절대로 맞을 가능성이 없는 오답 4개로 선지를 구성하는데 실생활에서 이러한 종류의 탐구는 없으며 어떤 학문을 공부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명확하게 구별이 되는 정답과 오답 세트들로만 이루어진 문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평가는 더 깊은 자신만의 사고력이나 비판적인 생각에 걸림돌이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고력을 막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가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 A의 경우에도 서술형 문항도 중요하지만 객관식 문항으로 자신이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IB를 통해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서술형으로만 채점하기에는 주관성 문제도 있기에 객관식 문항이 추가되면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체계 속에서 공부 방향을 살피며 자신만의 공부방식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견이다. 객관식은 객관식 나름의 장점이 있고, 이는 서술형과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 아니며 두 방식은 서로 상호보완의 관계를 가질 수 있기에 앞으로의 교육은 서로의 문제를 보완하며 “객관식+주관식” 형태로 진행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 이렇게 변화하는 데 우리는 IB의 형태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

 

 

  1. KICE, 2021학년도 9월 수능 모의평가, 물리학 I [본문으로]
  2. KICE, 2021학년도 9월 수능 모의평가, 물리학 II [본문으로]
  3. 이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국어, 외국어,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 예술 영역에서 자신이 배울 과목을 하나씩 선택하여 총 6개의 과목을 학습한다. 각 과목에는 SL 과정과 HL 과정이 존재하는데 SL은 표준수준(Standard Level)의 줄임말이고, HL은 상위수준(Higher Level)의 줄임말이다. 학생들은 3개 이상의 과목을 HL 과정으로 이수해야 한다. [본문으로]
  4. IBO, Physics Higher level Paper 1(left), Paper 2(right) TZ2 May 2019 [본문으로]
  5. IBO, Physics Higher level Paper 1(left), Paper 2(right) TZ2 May 2019 [본문으로]
  6. IB 교육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PYP,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MYP가 있으며 DPCP의 경우 만 16~19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이 중에서 본 글에서 다루는 IB 프로그램은 DP이며, 본문에서는 IB, IB DP 등으로 혼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7. 김효준, 송진웅, 김이슬, & 한채린. (2021). 역량중심 교육과정에서의 물리 교과 지식의 방향성-2015 개정 교육과정과 IB 의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새물리, 71(1), 60-77. [본문으로]
  8. https://ibpublishing.ibo.org/server2/rest/app/tsm.xql?doc=d_4_physi_tsm_1408_1_e&part=9&chapter=1 [본문으로]
  9.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경우 통합과학과목을 통해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전반에 대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과학 과목을 선택할 때도 4과목 중 2과목 이상을 선택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진로 탐색의 시간이 1~2년 정도 주어진 후 과목들을 선택하기에 넓게 접하는 것보다 깊게 공부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0. Theory of Knowledge [본문으로]
  11. 이혜정, 대한민국의 시험, 서울: 다산북스, 2017. [본문으로]
  12. 송진웅, <미래형 교육체제 전환에 따른 서·논술형 기반 평가 및 대학입시 개선방안 연구>, 대구광역시교육청, 2022. [본문으로]
  13. 지식에 대한 질문 [본문으로]
  14. Internal Assessment의 약자로 내부평가를 의미함. [본문으로]
  15. Extended Essay [본문으로]
  16. IBODiploma Programme Theory of Knowledge Guide를 바탕으로 작성됨. [본문으로]
  17. Creativity, Action, Service [본문으로]
  18. 송진웅, <미래형 교육체제 전환에 따른 서·논술형 기반 평가 및 대학입시 개선방안 연구>, 대구광역시교육청, 2022. [본문으로]
  19. https://minnei.tistory.com/42 [본문으로]
  20.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리학 I2단위를 증감할 수 있고, 물리학 II3단위를 증감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물리학에 배정하는 단위가 5단위 이하이므로 수업 시수는 85시간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21. 김효준, 송진웅, 김이슬, & 한채린. (2021). 역량중심 교육과정에서의 물리 교과 지식의 방향성-2015 개정 교육과정과 IB 의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새물리, 71(1), 60-77. [본문으로]
  22. https://namu.wiki/w/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 [본문으로]
  23. 이혜정, 대한민국의 시험, 서울: 다산북스, 2017. (ALT 41398 99) [본문으로]
  24. IB 시험은 과목당 7점 만점이기에, 3점 이상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본문으로]
  25. IB 시험에서는 과학 교과를 제외하고는 모두 객관식 문항이 없다. 과학 교과에서도 객관식 문항이 있는 시험지뿐만 아니라 서술형 문항이 있는 시험지도 풀이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26. 원래 IB 시험은 국외에서 채점이 되지만, 이를 국내에서의 채점으로만 한정시킨다 해도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교차 채점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본문으로]
  27. 학습자가 과제를 수행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평가하는 기준의 집합 [본문으로]
  28. 우리나라에서 현재 절대평가는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많이 운영되기에 절대평가를 하면 대부분의 학생이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평가도 그 기준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취도를 분별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본문으로]

PART 1.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고등학교 2학년 희란은 담임 선생님의 퀭한 눈을 보며 말을 건넸다. 6월, 1학기 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하연 선생님은 현재 생기부에 기재될 교과세부특기사항을 작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 열흘 전에 왔을 때도 쓰고 계셨던 것 같은데, 저거 대체 언제 끝나지? 희란은 하연쌤을 좋아하는 많은 학생들 중 하나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생님이 계신 학년 연구실에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최근의 하연쌤은….

 

  희란은 잠시 하연의 업무량을 가늠해보다가 그만 아득해졌다. 희란이 다니는 학교의 2학년 학생은 200명이 넘었다. 2학년에서 국어 수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두 분인데, 모든 학생 생기부에 세특을 써야 하니까, 지금 우리 쌤이 –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온 – 써야 하는 글 이 대체 몇 개인 거야? 난 독후감 쓰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하지만 희란이 간과한 것이 있 었으니, 하연은 희란의 담임이었다는 점이다. 담임 선생님들은 교과세부특기사항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맡은 반 학생들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란을 작성해야 했다. 그것도 32개를 – 혼자서! 매일매일 수업도 하시는데 말이야. 희란은 멍하니 거기까지 떠올리고서는, 시선을 낮추어 하연의 안색을 다시 살폈다.

 

*

 

  하연은 하루종일 모니터 화면을 보느라 침침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의자에 기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연은 평소와 같이 아침 8시에 학교로 출근해서 다섯 반까지 수업을 한 후, 보충 시간에는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생기부에 기재할 내역을 작성했다. 그러고는 지금, 야자 감독을 할 시간을 빌어 여직 - 겨우 다 써가는 - 생기부를 붙들고 있는 터였다.

 

 “하연쌤. 논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조금 전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학년 부장인 호영이 하연을 호출했다. 하연은 네, 짧게 대답한 뒤 학년 연구실 책상에 힘없이 앉았고, 멍한 머리로 약 한 시간 동안 학생 상담 주간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하다가, 그냥 다 그만두면 안 되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본인 반의 27번 학생의 행동특성란을 작성하던 하연은 몇 번이고 하던 생각을 떠올렸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연은 학기 초에는 신학기 업무를 하고, 학기 말이면 기한에 맞춰 생기부 내용을 작성했다. 평소에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 몇 번이고 반복해가며 수업하고, 몰려오는 행정 업무 처리하고. 아이들이랑은 농담 이상의 대화를 할 시간이 없고, 그러니까 아이들과 관계 맺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 여가 시간을 포기해야만 – 대체 학교는 상담 시간도 제도적으로 마련하지 않고 뭘 하는 거야? - 가능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나?

 

  멀리서 울려퍼지는 야자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하연은 의자에 기대 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 교무실에서는 크게 한숨을 내쉴 수도 없어 – 다른 선생님들도 힘드실 텐데 괜히 한숨 쉬어서 힘 뺄 필요는 없지 - 속으로 삼켰다.

 

 똑똑.

 

  경쾌한 노크 소리에 하연은 후다닥 자세를 바로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대답했다. 들어 와-. 드르륵 열리는 문 쪽을 바라보니, 가방을 다 싸고 손에 갈아신을 신발을 쥔 희란이 빼꼼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선생님! 왜 퇴근 안 하세요!” 하연은 당연하다는 듯 쫄래쫄래 제 자리로 다가오는 희란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가려고 했지, 쌤도.”

 

  “헐~ 쌤. 책상에 서류 완전 많음. 이게 다 뭐람….”

 

 희란은 멈칫거리다 슬쩍 말을 이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조심스레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저보다 열 살은 어린 소녀의 물음에 교사는 조금 목이 멨다.

 

 “응 희란아. 선생님은 괜찮지.”

 

 사실 하연은 제법 평소와 같은 모양으로 괜찮지 않았다.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1층 내려갈까?”

 

  “너무 좋아요!”

 

  눈치를 보다 꺄르르 눈꼬리를 접으며 대답하는 희란을 보며 하연은 문득, 사범대를 다니던 대학생 시절 막연히 꿈꾸던 –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보다 자유롭고,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 교직 생활을 떠올렸다.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하연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

 

  희란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었던 두 사람과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된 후, 그는 슬슬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었던 하연과,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시 교양 수업의 교수님의 영향으로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직이수를 하는 중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오늘 희란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 좋은 – 선생님 두 분을 뵙는 것이었고, 식당에 들어서며 들뜬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호영과 하연, 두 사람은 여전히 삼 년 전의 희란이 닮고 싶어하던 어른들이어서, 희란은 어쩐지 벅찬 기분이 들었다. 오늘 어쩌면,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말이야. 자기네 이익만 챙겨.”

 

  식사를 얼추 마치고 대화를 나누다가 희란이 고3이었을 적 담임 교사였던 호영이 불만스레 말했다. 그는 코로나 상황에서 학생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성토하다가, ‘요즘 교사’들이 자기 생활만 챙기고 학생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이야기로 주제를 옮긴 참이었다. 웬일로 저렇게 공격적인 어조를 쓰신담? 맨날 허허로이 웃는 우리 쌤이. 희란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호영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었다.

 

 “가르친다는 게 어? 그렇게 딱딱 나눠 떨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야. 아니 매일같이 연가를 쓰고, 시간만 되면 바로 퇴근하는 선생들 보면, 그걸 다 쓰는 게 자기네들 ‘의무’라고 얘기해. 근데 그런 논리면, 방학에도 출근해야 하거든. 요새 금요일 오후 3시에 보면 학년실에 쌤들이 3분의 1밖에 없어. ”

 

  교사는 무릇 ‘옳은 교육’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 그리고 실제로 노력하는 - 선생님의 가치관을 알고 있던 희란은, 나이 든 이가 젊은이를 훈계하는 듯한 어조에 풋 웃음이 나왔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다 아는데 우리 선생님, 동학년 선생님들한테 되게 꼰대처럼 보이겠다.

 

  “그렇게 원칙대로 하자고 하면, 그게 교육이냐? 사법이지.”

 

  사장님께서 단골이니 에이드 한 잔을 더 드리겠다는 말에 감사 인사를 전하던 희란의 귀가 번쩍 열렸다. 교육, 사법.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그리 일상적인 어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희란은 당장에 말을 얹고 싶은 것을 참고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요새 이삼십대 교사들은 다 자기 생활 영역 지키는 것만 중요한가 봐.”

 

  그러니까 호영이 말하는 교육의 사법화는 이런 것이었다. 개인화되는 사회, 그저 안정성이 보장된 직업으로 전락한 교사, 이에 따라 시키는 것만 수행하는 – 그리하여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진 – 매뉴얼화된 교육. 하지만 어떤 게 ‘진정한’ 교육인데? 교사를 갈아넣는 기존의 교육은, 지속될 수 없을 텐데도? 희란은 호영에게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선생님은, 교사가 늘 소명의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옆에 있는 하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건 아니지.”

 

  그렇지만 요새는 분명 교사 개인의 삶 또한 여느 직업들처럼 생활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거고, 그런데 그러려면 교사 개개인이 희생하던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건 힘이 드니까. 선생님께서는 올해도 부장 교사를 맡으시고 계시잖아? 그러니까 다른 선생님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으신 거야. 하연은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하연이 말을 잇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 호영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희란아. 지금은 다원화된 가치가 부딪히고 있는 거다. 옛날에는 교사가, 네가 말한대로 소명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했고. 그래서 나 같이 늙은 사람은 – 여기서 호영은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 , 그래도 교육은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게 중요한 사람들도 있는 거고.”

 

희란은 어쩐지 호영의 얼굴이 지쳐보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제가 사실은 요새 고민이 좀 있거든요.”

 

 어떻게 말을 할지, 말을 꺼내도 될지 고민하던 희란은 마음을 다잡았다. 스물두살은 갈팡질팡, 인생 선배의 조언이 필요할 만한 나이였다. 희란은 민망한 마음을 딛고 주춤거리며 조심스레 생각을 내보였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교직이수를 하고 있잖아요. 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익을 좇는’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내 삶만 중요한 교사 말이에요. 음,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보 같을지라도 히어로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고, 자유로운 교육을 하고 싶고.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까, 교사가 된다고 해도 그렇게 못할 것 같더라고요.”

 

희란은 여기까지 말한 후 목을 축였다.

 

 “왜냐하면, 저는 국가에서 짠 커리큘럼에 맞추어 제 수업을 짜야 할 테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학부모나 학생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거잖아요. 애초에 마음대로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에는 당장 앞에 쌓인 일도 너무 많을 거고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사법화란 이런 거예요. 교육이 행정에 귀속됨에 따라 교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이 위축되는 거죠. 괜히 욕심 부렸다가 학부모한테 민원이 들어오길 바라는 교사는 없을 테니까요. 희란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전자에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채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로서의 교권이 침해된다면, 후자는 교사의 인권 문제와 연결되고요. 싸움을 피하려면 매뉴얼대로 교육하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전인’적인 교육과 자율적인 학습은 없어질 수밖에 없고, 위에서부터 – 예컨대 교육청이라든가 – 지시받은 커리큘럼과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서만 교육이 이뤄지겠죠. 교육의 ‘사법화’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하연과 호영은 숨을 토하듯 길게 이어지는 희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음. 저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으면 교사의 자율성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너무 납작한 말이지만, 의사가 처방을 내릴 때는 환자가 하나하나 다 참견하지 않잖아요. 맞겠거니-, 생각하고 알아서 하게 냅두지. 그건 결국 의사가 전문직이기 때문이고요.”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하고 싶은 교육을 할 수 있게 될까요. 지금처럼 업무 과중에 시달리며 틀에 박힌 입시교육만 하는 거 말고요. 희란은 한숨을 내뱉듯 말을 마쳤다.

 

  두 어른은 그들이 가르쳤던 어린 소녀가, 어느덧 그들과 같은 선 – 어른이라는 – 위에 서서 무거운 숨을 내쉬는 것을 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건 가볍게 조언하지 않음으로써 희란에 대해 존중을 내보이는 것이기도 했고, 그들도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테이블 위로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연은 공기가 무거워지기 전,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희란아. 네가 말한 대로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 행정업무도 해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상담도 해야 하고…. 그런데 선생님이 느끼기에는 그렇더라. 누구든 수업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너희가 보기에 대충 때우는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들도, 다 학생들에게 수업 잘한다는 말 듣고 싶어 하고. 그런데 일이 너무너무 많으니까, 늘 맨 마지막으로 밀리는 건 항상 자기 수업 연구야. 교사가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희란은 하연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제 앞에 놓여지는 말들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일 때에는 들을 수 없던 솔직한 사정이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고민의 몫을 맡은 사람들이, 서로 같은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에는 어떠한 마음이, 말이 열린다. 그러므로 하연은 이 제 마냥 어린 학생이 아닌 희란에게 어떠한 말들을 할 수 있었다. 예컨대, ‘선생님은 괜찮지’ 가 아닌, ‘사실 괜찮지 않다’와 같은 말들을.

 

 “수업을 잘하고 싶더라도,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싶더라도 교재 연구를 할 시간이 없어. 잠을 줄여가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학교에 있는 상황에서 그건… 어려운 일이지. 정말 자기 삶과 건강을 다 버리는 거니까.”

 

  하연이 하는 말들은 ‘선생님’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오전 여덟 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열 시에 퇴근하는 삶. 고등학생이 아님에도 고등학생과 같은 생활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방학에도 보충 수업을 하러 학교에 와야 하는 교사들. 교사가 무슨 최고의 신붓감이라고. 낡은 – 그리고 ‘구린’ – 통념을 떠올리며 하연은 속으로 조소했다. 가정을 꾸리기에 최악의 상대라고 생각하며. 웃음의 모양새는 자조에 가까웠다. 교사를 그만둔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연은 연인과의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이나 업무를 봐야 하는 평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과 다름없었고, 주말이나 되어야 온전히 쉴 수 있었다. 하연이 느끼기에 교사라는 직종은 가장 사적인 시간, 그러니까 ‘나’의 삶이라는 걸 지킬 방안이 전무한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건 학생들에게 갖는 애정으로 해결할 -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 문제가 아니었다.

 

  하연의 말을 듣던 희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 제도 속에서는 교사의 ‘숙련’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는 없겠구나. 당장 희란은 내년에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 사범대생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 교직 이수를 하고 있는 학생을 위한 숙련의 기회는 딱히 마련된 것이 없었다. 이론 수업 몇 개를 듣고 현장에 내던져지는 기분…. 그런데 현장에서도 딱히 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니. 숙련과 전문성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지?

 

 “교사 공동체 같은 건…, 대안이 될 수 없을까요.”

 

  희란이 중얼거렸다. 같이 모여서 열정을 가지고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 지도 방안을 고민한다면 교사 개개인이 져야 할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혁신학교 같은 곳에서 그런 걸 시도하는 편이지.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맥락에서 크게 상황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구나. 거기도 개인생활이 우선인 사람이 있고, 혁신학교이니만큼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의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가 않아. 조율하는 과정에서 진이 다 빠져서… 정작 품을 들여야 하는 과정까지 가는 게 어렵지.”

 

  요새 교사들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보다도 그냥 방학이 있고, 안정적이라고 하니 들어온 공부쟁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부정적인 호영의 말에 희란은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호영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실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의 말을 가볍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어느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내가 고등학교 때 봐왔던 대로, 가르치라는 거 가르치고, 대충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교사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업무에 시달리면서-.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아닌데.

 

희란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오후 10시. 하연은 적막이 내려앉은 집에 들어섰다. 식사를 마치고 희란을 차에 태워 집에 내려준 뒤 이제야 도착한 참이었다. 후-. 한숨을 내쉰 하연은 식탁 의자에 가디건을 걸쳐두고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아꼈던 학생과 존경했던 선배 교사를 보고 오는 건 흡족한 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동시에 그는 어떤 상실을 느꼈다. 희란이는 언제 저렇게 커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걸까. 어떤 고민들은 세대를 거쳐 끄트머리와 끄트머리가 연결되고, 사람을 타고 묶이는 걸까. 반복되는 고민에 하연은 어렴풋이 죄악감을 느꼈다. 내가 끝내지 못한 고민을, 네가.

 

  4년 전, 하연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중에 쓰러졌다. 연이은 과로로 인한 피로의 누적이 원인이었지만, 단순히 피로라는 말로 설명하기에 그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당시 하연은 놓듯이 교직을 그만두었고, 약 일 년간의 휴식 끝에 지금은 교습소를 하고 있었다. 원래도 하연의 수업 실력은 알아주었으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초등학생들과 수업하는 지금이 훨씬 즐거웠다. 당연히 말은 머리가 좀 더 큰 고등학생들과 잘 통했지만,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늘 어딘가 무기력과 슬픔에 젖어있었고,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생기의 잔재가 하연을 더 서럽게 만들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학교는 무얼까, 하는 생각이 그녀를 얼마나 슬프게 했던가.

 

  하연은 짙어지는 어둠 속에 스며 자신이 끊어내지 못한 굴레, 자신이 도망쳐버린 고민을 떠올렸다. 휴식을 취하고 즐겁게 일하는 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그런데 오늘 희란을 보고 있자니…. 자신을 닮았던 학생이 자신을 보고 그 길을 가고, 그 길 위에서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적막의 한가운데에서 하연은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

 

*

 

뚜르르-

 

뚜르르-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삐---.

 

...선생님.

괜찮으세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건너편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누군가 지쳐 떠나간 자리에는, 매뉴얼에 따라 녹음된 음성만이 공허하게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다.

 

 

 

PART 2. CONTINUE?

▶ YES   NO

 

음. 빳빳하군.

 

  희란은 정장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생각했다. 교생 실습을 나갈 때는 다들 정장을 입는다. 정말 쓸데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수’와 ‘관례’라는 것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지라. 희란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군말 없이 단정한 정장을 샀고, 구김이 가지 않게 보관했다가, 지금 꼼꼼히 재킷 소매의 단추를 잠그는 중이다. 이거 되게 교복 마이 같네. 마이? 마이… 음. 정장 재킷도 마이라고 하나? 그는 갑갑한 재킷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희란은 올해 스물셋이 되었다. 4학년이라니. 졸업학기가 가까워진 희란은 교생 실습을 하게 되었다. 3학년 2학기, 희란은 시기를 고민하다 4학년이 되자마자 곧장 실습을 나가기로 결정했었다. 사범대에 아는 사람도 없는 희란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조교 선생님뿐이었다. 경험에 기반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희란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게, 더 늦어지기 전에 실습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 ‘일단 하고 보자’라는 그의 신조가 결단을 내리는 데에 한몫했다.- ‘어차피 배우려고 실습하는 거니까!’ 희란이 생각하기에, 세상은 때로는 강제로라도 낙관적이어야만 한다. 걱정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므로.

 

 “안녕하세요 희란쌤! 일찍 왔네요?”

 

  출근 – 내가 출근이라니! - 을 하자마자 교무실에 간 희란에게 교생 담당 교사인 재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희란은 웃으며 인사를 마주 건넨 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언뜻 보이는 양양남대천. 그는 강원도에 있는 양양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오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희란은 강원도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그의 대학은 서울에 있고, 본가는 부산이다). 이 사실을 아는 희란의 친구들은, 지난 학기 희란이 강원도에 있는 학교로 실습을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에 모두 물음표를 띄웠다.

 

거길 니가 왜 가냐?

 

  여기에는 제법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선배 교사 – 아직 학부생에 불과한 희란은 뻔뻔하게도 속으로 재현 선생님을 선배 교사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희란이 스무살 때 우연히 참가했던 글쓰기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에는 어딘가 내밀한 구석이 있어서, 희란은 재현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십년 후를 상상하고는 했다. 희란이 생각하기에 재현은, 희란이 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희란의 삶의 결은 사랑이라는 조각칼로 다듬어지고는 했는데, 재현의 삶 역시 그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란이 재현이 근무하는 학교에 교생 실습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에 대한 인격적인 호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재현은 곧잘 인스타그램에 학교에 대해 쓴 글을 올리고는 했다. 그의 글 속에서 발견하는 학교는, 희란이 느끼기에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다른 학교와 별다를 것이 없을 공립 일반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와 학습자가 교류하고 또 교감하며 같이 만들어나가는 살아있는 학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만드는 삶들 의 모습이 궁금해. 이와 같은 호기심은 사변적인 고민을 끝내고자 했던 희란의 열망과도 맞닿아있었다. 작년, 희란은 하연과 호영과의 대화 이후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게 맞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 것도 문제지만, 힘을 들인다 해서 학교가 바뀔 수 있을까? 정해진 관습,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학교가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그러한 고민 위를 맴돌던 희란은, 교생 실습 학교 신청 공문을 전달받은 후 곧바로 양양고등학교에 연락을 넣었다. 어떠한 미래를 목도하기 위해서였다. 대학 동기들이 인턴을 하거나, 교환 학기를 가는 것을 보며 정체 모를 불안을 느끼던 희란에게 있어 이것은 일종의 분기였다. 어떠한 선택을 위한. 애를 쓰던 그는 여러 행정적인 문제를 딛고 이곳에 착륙하는 것에 성공했고, 주어진 탐색 기간은, 약 한 달이었다.

 

*

 

  준경이는 참 귀여운 학생이구만. 희란은 멀거니 생각했다. 지금은 6교시가 한창인 시간. 양양고의 6교시는 ‘체인지메이커’라는 활동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희란은 와글와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교실에서 살짝 귀를 막았지만 – 티가 안 나게 -, 여느 고등학교와는 조금 다른 모습에 두근거려 하고 있었다(준경은 그중에서도 제법 집중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신난다. 희란은 조금 아득해진,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책상 사이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이 집중하는 모양새를 살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체인지메이커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주변, 그리고 사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찾아 직접 문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는 활동이었다(희란은 며칠 전 1층의 경사로가 작년 수업에서 한 팀이 벌인 배리어프리 사업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수업이 시작된 계기는, 재현이 연수를 받고 오면서부터였다. 희란은 처음 수업에 참관했을 때, 수업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걸 하지? 늘 무기력함에 찌들어있는 고등학생들이 왜, 이런…. (희란은 적절한 수식어를 찾지 못해 속으로도 말을 멈추었다. 이제껏 희란의 경험을 되돌아봤을 때 건강하고 건전한 활동은 흔히들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나, 제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율적인 활동을? 체인지메이커 교육의 총괄을 맡고 있는 재현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총 세 가지의 논리로 설득당했는데-, 가치재미, 이익이 그것이었다.

 

 “쌤! 좀 들어보세요!”

 

  모르긴 몰라도 확실히 재미는 있어보이네. 옹골차게 이야기하던 준경이 교탁 앞에 서있던 재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희란은 생각했다. 모두가 활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분명 이 활동의 매력을 반감시켰을 텐데. 적어도 지금, 조마다 시끌시끌하게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 활동을 꺼리는 기색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니까 아마 첫 시간에 이루어졌다던 ‘설득의 시간’이 영향을 줬겠지. 며칠 전 학생들이 참여하는 원동력을 묻던 희란에게, 재현은 첫 체인지메이커 시간에 학생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며 그들을 ‘설득’했다고 대답했다. 사회의 여러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또 학생 스스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초반에는 재미가 없을지라도 점점 활동에 애착을 갖게 될수록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하며 즐거워질 것이라는 점 – 재현은 이것을 말하며 전략적으로 작년에 활동했던 선배들의 영상을 보여줬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 마지막으로 대입,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를 위한 역량의 차원에서도 이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 내용이었다.

 

  청년은 대답을 들으며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삼십대가 되어서도 저렇게 눈에다가 별을 빛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재현이 이야기한 ‘재미’라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는 것이었다. 희란이 생각하기에 한국의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을 무너뜨리는 곳이었고(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것은 틀림없이 여물어가는 과정에 있는 이들의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백일 동안, 학생들은 내적 동기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평가 – 그게 정량적인 기준이든 정성적인 기준이든 – 에 자신을 욱여넣어야 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을 외부에 이양하고, 그 기준에 스스로의 생각과 생활을 맞추고,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고 조정하게 만드는 것이, 학교라는 공간이 지니는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이라는 존재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감각과 한 발 내딛어볼 용기를 쉬이 박탈당했다. 따라서 다시 말하건대, 희란이 생각하기에 이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은 ‘재미’에 있었다. 누구나 뭐든 시도해볼 수 있고, - 그것도 혼자서, 불안해하지 않고 – 평가 없이, 친구들과 함께 부딪히고 떠들고 만들어나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애들이 다 마이를 안 입고 있네. 희란은 사소한 차이점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새삼스러움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랬었다면….

 

  소란스러운 교실의 한가운데에서 희란은 적막한 얼굴로 생각했다. 존경했던 어떤 이를 떠올리며, 그리고 저와 친구들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빳빳한 옷에 휘감긴 채 상념을 뭉게뭉게 피워올리는 희란의 뒷모습은, 어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

 

  교생 실습 삼 주차 목요일. 희란은 스리슬쩍 재현의 그림자처럼 교무회의에 따라 들어갔다. 내가 이런 데를 언제 또 들어와 보겠냐. 교생의 열정을 명분 삼아 허락을 받고 어렵사리 들어온 자리였다. 교생 실습이면 학교 행정 처리 과정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지, 참. 속으로 투덜거리던 희란은 아직 회의가 시작되지 않은 회의실의 앞쪽에 교장과 교감, 사회자 선생님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왜인지 앞쪽 자리들이 대부분 비워진 것과 달리, 뒤쪽 좌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원래 저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희란에게 옆에 있던 여자 선생님이 웃으며 소근거렸다. 희란은 마주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앞쪽 자리에 앉는 재현의 옆자리에 의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앉았다.

 

  희란은 발표 자료를 정돈하는 재현을 흘끔거렸다. 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하던 재현은 어쩐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하신 걸까? 희란이 알기로, 그는 오늘 12명으로 구성된 모임에서 논의해온 사항을 보고해야 했다. 동료 교사들끼리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래 재현이 결성한 ‘전문적학습공동체’라는 모임은, 지난 이 주간 서로의 수업을 공개함으로써 각자의 수업에 참관하고, 피드백을 하고, 본인의 수업을 더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거나, 열정이 대단하지 않다면 동료 교사에게 자기 수업을 공개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함께 참관하며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아온 희란은, 수업 공개를 진행한 재현을 비롯 12명의 교사에게 일종의 존경심을 느꼈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일구어내 는 이들. 이 학교에는 어떻게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만 모인 걸까? 희란은 어쩐지 부러움과 질투를 – 훗날 자신이 교사가 되었을 때 이런 동료 교사들이 있을까, 의문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조금 처지는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희란은 재현의 발표를 기다리며 나중에 선생님 되면 이런 거 해야 하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떠올렸다. 희란은 어쩐지 침울해졌지만, 곧 재현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에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삐익-.

 

  마이크 소리와 함께 재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재현입니다…. 희란은 인사말에 이어지는 공개수업에 대한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재현은 공개수업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그 내용을 귀담아 듣던 희란은, 앞 자리에 앉아있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미소 띤 얼굴로 재현의 발표를 듣는 모습을 보고 턱을 괴었다. 되게… 뭐랄까, 좋아하시는 얼굴…. 아니, 흐뭇해하시는 것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관리자들은 본인이 있는 학교가 발전하면 좋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던 희란은 자신이 너무 냉소적임을 깨닫고 퍼뜩 자세를 고쳐앉았다.

 

 “…보고드릴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부분이 있는데, 제가 어제 보내드렸던 체인지메이커 참고자료 다들 확인하셨을까요?”

 

  하아…. 선명한 한숨 소리에 회의실 내부의 공기가 미묘하게 얼어붙었다. 희란은 소리가 들려온 대각선 자리를 돌아봤다. 뭐야? 웬 한숨을…. 희란은 한숨을 쉰 중년의 여성이 3학년 교무실에서 보았던 수영임을 인지했다. 동시에 재현의 표정이 굳은 것을 함께 알아차렸다. 희란은 수영이 수학 교과 담당이자 3학년 2반의 담임인 것을 알고 있었고, 일전에 교무실에서 ‘당장 대입에 필요한 건 성적이지 활동이 아니’라며 불만을 성토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럼 아까 발표하기 전에 굳어계시던 게 긴장하셔서가 아니라, 이럴까 봐….

 

  희란은 본인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경력이 그리 길지 않던 하연이 – 그래도 하연은 당시 9년차의 교사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대개 50대였어서 그렇지 - 업무 분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던 상황을 떠올렸다. 하연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시 새로운 학교 행사의 기획을 떠맡다시피 했던 하연은 한동안 안색이 파리한 채로 수업에 들어왔었고, 희란을 비롯한 2학년 학생들은 늘 사정을 궁금해했다. 후에 호영을 통해 알게 된 전말은, 강압적인 데가 있던 당시의 교장선생님이 하연을 따로 교장실로 불러 일을 잘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행사의 대표격을 맡았던 다른 선생님은 나이가 많았던지라 하연에게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위임했었고, 희란이 고2였던 그 해, 하연은…. 삐---

 

  희란이 기억하기로는, 행사는 제법 성대하고 성공적이었다. 스물셋의 대학생은 문득 열여덟의 여름을 떠올렸다. 즐겁게 공연을 준비하던 친구들, 행사 당일에 방문했던 외부 초청 공연자, 바쁜 와중에도 슬그머니 와서 구경하던 삼학년들. 모두가 즐거웠지만-. 그렇지만, 그걸 모두 이끈 사람이 그 판을 떠나게 됐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에 희란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물론 방금 목격한 상황은 위계에 따른 강압이라기보다는, 초등교사인 희란의 어머니가 늘 투덜거리던, ‘괜히 일을 벌여서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한 불만 표출에 가깝기는 했다. 그러나 교사 집단 내부의 미묘한 갈등은, 희란에게 유사한 압박감을 연상시키는 데에 모자람이 없었다.

 

  보고는 그 내용의 훌륭함과는 무관하게, 모두가 괜찮음을 가장하는 미묘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 그러나 어느 쪽일지 모를 이의 눈치를 보며. 사회를 맡은 선생님은 적당한 멘트와 함께 회의를 정리했다.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이들이 하나둘씩,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희란은 재현이 자리를 정리하는 것을 기다렸다.

 

 “선생님.”

 

  뚜벅뚜벅 걸어 온 수영이 희란을 흘낏 본 후 재현을 불렀다. 어제 보내주신 자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수영은 최근 상담 시즌 때문에 진이 다 빠져서 힘이 들다는 말들을 건네며, 따로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적당히 그냥, 다들 하던 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그 편이 안정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재현쌤이 근래 하는 것들이 고3들한테는….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재현은 쏟아지는 말을 경청하다가 피로한 – 그러나 어쩐지 미묘하게 미안함… 혹은 죄책감이 담긴 표정으로 – 낯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그러면, 제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배포해드릴게요. 선생님들 따로 정보 파악하시느라 시간 걸리실 텐데, 제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드리는 설명 영상,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만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스물셋의 꿈꾸는 자는 벽을 앞에 두고 속에서 무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다수와 관례.

 

 다수와 관례.

 

청년은 입고 있는 자켓의 소매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되뇌었다. 뜨거운 것을 삼키며.

 

*

 

  노을이 지는 운동장에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눈꺼풀에 내려앉은 볕뉘와, 보드라운 잔머리를 간지럽히는 바람. 벤치에 앉은 희란은 생각에 잠겼다. 여름이 섞여든 봄내음이 가득한 공기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희란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분명 어딘가 달랐다. 그러나 분명 또, 상당 부분 여전했다. 보통의 일반고에서 교사끼리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희란은, 이곳의 공동체가 놀라울 정도의 응집력과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업을 공유하고,따 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고민점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미래를 그려보기에 적절한 세상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 당연히 - 고질적인 문제는 존재했다.

 

 ~P와 P. 어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비산하는 생각의 파편들이 청년을 파고들었다. 희란은 제 몸 곳곳에 난 상처에 피가 맺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누구든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시간과 애정을 쏟고 싶어한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막 개교한 학교나 혁신학교가 아닌 이상, 학교라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책무를 지는 이들의 집단, 즉 교사들의 욕구는 대개 뒤섞여있다. 신규 교원, 혹은 애초에 적극적인 연구를 수행하려는 교사들의 열정과, 자신의 삶을 적절히 지키려는 교사들의 희망은 자주 맞부딪힌다(두 가지 욕구는 한 사람 안에서도 부딪힐 수 있었다. 누구라도 적절한 쉼이 보장된 환경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건드는 것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꺾는 게 쉬웠다 –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부도덕함이나 잔혹성 때문이 아니었다 -. 희란은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어깃장을 놓던 수영을 비난할 수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3학년 담임의 업무 과중을 고려할 때 수영이 하는 말들은 적절한 문제 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참여를 강제할 수도 없어 답답한 상황, 동시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들어 답답한 상황에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을 방안은 대체 뭐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는 반드시 흉터를 동반한다. 희란은 문득, 제가 입고 있는 재킷이 숨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란쌤.”

 

  아, 선생님. 뒤쪽을 돌아본 희란은 종이컵 두 개를 손에 쥔 채 다가오는 재현에게 알은체를 했다. 희란은 교무실 창문에서 저가 앉은 벤치가 보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옆에 앉은 이가 건넨 잔에 든 것은 김이 적당히 올라오는 유자차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희란에게, 재현은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선생님.”

 

  재현을 부른 채로 할 말을 찾지 못한 희란은, 그냥 제 앞에 놓인 하늘을 바라봤다. 뉘엿뉘엿지는 해의 색채가 눈시울처럼 뜨거웠다. 선생님은…, 이제 내년에 학교 옮기시잖아요. 지금 하시는 거, 옮겨가신 곳에서도 또 하실 자신이 있으세요? 힘없는 목소리에 어떠한 책임감을 느낀 재현은, 진지함을 더한 목소리로 답했다.

 

 “음…. 하겠죠. 할 것 같아요. 힘이 들어도 좋으니까요. 사실 제가 안식년을 가게 된다거나 하면 만들어둔 것들이 다 사라질까, 뭐 그런 생각도 들지만요…. 저야 이게 충분히 재밌고 애정이 간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제 자리를 채워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라는 사람의 자리가 손쉽게 대체될 수 있어야지만 보편화할 수 있는 일이 되는데, 이게 제가 그만둬서 바로 무너지는 일이라면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재현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부담스러울 수준의 일들은 안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희란은 속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선생님, 말이 안 맞잖아요. 희란은 아까 수영에게 본인이 일을 다 맡겠노라 이야기하던 재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 몇 주간 봐왔던 재현의 엄청난 노동량과 함께. 분명히 지칠 수밖에 없을 텐데, 아이들의 밝은 낯과 응원으로 언제까지 그게 회복될 수 있을까. 희란은 한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수명과 노동을 맞바꿔야 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록, 재현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힘들지만, 그래도 함께 해주는 선생님들이 있으니까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희란은 재현을 따라다니며 자주 보았던 다른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일을 나누어 들고, 서로를 격려하던 ‘동료’ 교사의 밝은 면면들을. 희란은 생각에 잠겼다. 어렵다 해서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먼저 과중한 노동량부터 해결해야겠지. 부담이 줄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 테고, 그들이 서로의 곁에 있어준다면-.

 

 “그렇네요.”

 

  희란은 유자차를 마신 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더워지는 기분에 자켓을 벗은 희란은, 청명한 봄바람이 제 가슴께를 간질이고 지나는 것을 느꼈다. 운동장이 어느덧 일과를 마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정민

  지난 3월 초, 교직과정 이수를 신청했다. 필자는 비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교직 이수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필자에게 아주 오랜 꿈이어서, ‘내가 되지 않더라도 나만큼 간절한 사람에게 기회가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직과정 이수를 신청하고 한 달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교 커뮤니티에 접속해 정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알아낸 정보라고는 면접을 본다는 사실과 (대부분) 성적으로 교직 이수자가 결정되는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준비해야 할 서류가 있는지는 고사하고 면접을 언제 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뭐지, 면접을 보는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4월 중순에 문자 하나가 왔다. 당장 다음 달에 면접을 보겠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면접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대망의 5월 11일이 되었고, 12동으로 향했다. 410호에 모인 순서대로 면접 번호를 받았고, 필자는 1번을 받았다. 안내를 받아 면접실 앞에 착석해 7분 동안 면접을 준비했다. ‘그릿(GRIT)’에 대한 제시문이 주어졌고, 그와 관련된 세 가지 질문을 7분 동안 답변했다. 말이 아주 빠른 편인 필자는 답변을 (너무) 잽싸게 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꼬리 질문을 받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만 같았다. 답변하는 내내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싸움 같아 헛웃음이 났지만, 입꼬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필 면접을 마쳐갈 즈음 말문이 막혀버려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면접이 끝났다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보다 반가울 수 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면접까지 마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이것이 과연 적절한 교직 이수 대상자 선발 과정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제시문 면접은 애초에 지원자가 교직과정에 열의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교직 이수 도전기는 별다른 지원서도, 심층 면접도 없이 싱겁게 끝을 맺게 되었다.

 

하나의 목표, 서로 다른 길

 

  우리나라의 중등교사 양성은 개방형 체제로 사범대학을 졸업하거나, 일반대학의 교직과정을 통하거나, 교육대학원의 양성과정을 통해 중등학교 정교사(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전공과목과 교직과목의 필수학점을 이수하면 졸업과 동시에 중등교사 자격증이 발급되는 무시험검정 시스템 하에서 한 해에 만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직 이수를 하고 있다.[각주:1]

 

  일반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직과정 제도는 1955년, 당시 급격한 교육인구의 팽창에 따라 확대된 교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설치된 보완적, 임시적 교사양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교직과정 제도는 부족한 교원을 확보하고 사범대학에서 배출하지 못하는 교과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이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교직과정 제도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장 속 이야기

 

  필자는 교직 이수를 마친 서울대학교 사회대학 소속 학부생 A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A씨는 2018년부터 교직과정을 이수한 상태였다. A씨는 본래 기자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대학을 다니며 사람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고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A씨는 2학년 1학기에 사범대학교에서 진행한 사회교육론 관련 수업을 듣고, 교직과정을 이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직과정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묻자, A씨는 사회학 전공을 살리면서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답했다. 사범대에서는 주로 학문적 지식과 교육적 지식을 결합하여 고민하지만, 비사범대에서는 학문 자체를 탐구하기에 다른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범대 학생들보다 창의적이거나 유연하게 사고할 때도 있어 교직 과정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도 느낀다고 답했다. 어떤 면에서는 본 전공이 있고 교육학적 지식을 더한 사람이 교사로서 창의적인 면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며, 이것은 결국 다양한 교사를 양성하는, 교사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교직과정을 밟는 동안 A씨는 교직 이수가 사각지대처럼 느껴져 답답했다고 한다. A씨는 교직 적성 및 인성검사를 받을 때 딱 한 번 교직 이수 과목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교원양성센터를 방문하지 않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범대생들과 다르게 교직 이수자들 간의 네트워크가 학과 차원의 교직 이수 알림 카카오톡 채팅방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황이기에, 정보 접근이 굉장히 어렵다고 언급했다. 덧붙여 A씨는 임용고시 준비도 잠시 한 경험이 있는데, 정보를 교류할 사람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들려 주었다. 또한, 같은 정교사 2급 비사범대 출신과 사범대 출신 교사들의 호봉이 다른 것을 언급하며, 전문성을 덜 인정받는 것 같았다고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앞으로 기간제 교사나 대안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번에는 올해 교직 과정 면접에 지원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소속 학부생 B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B씨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음악 교사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직 이수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B씨는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에게 교직 이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교직 이수로 늘어날 학업 부담량을 고려해보았을 때 어느 정도 성적이 반영되는 것은 동의하지만, 성적의 비중이 교직 이수 대상자 선발 과정에서 너무 크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그는 교직 적성 면접의 비중이 더 늘면 좋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B씨가 면접 때 마주한 질문은 평소 교육에 뜻이 있어야 좋은 답변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그 잠깐의 면접만으로 교사의 자질 유무나 교직에 대한 진정성을 판별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금의 교직 이수 제도가 교사를 꿈꾸는 학생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보다는 높은 성적을 보여준 학생에게 하나의 자격증을 얻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평행선: 교직과정과 사범대

 

  한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소속 학부생 C씨와 D씨는 교직과정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C씨는 교직 과정 이수 제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범대학에서 진행했던 교육 관련 강의들에서 교수법을 고민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사범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학생들이 가지게 될지도 모를 오개념을 특정해보거나, 다양한 교육방식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일반학과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C씨는 진로 탐색의 일환으로서 교직 이수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보이기도 했으나, 이미 정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당하므로 교직 제도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D씨는 사범대학 입학 이후 교직 이수제를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교직 이수를 일반학과에서 교원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기회이자 통로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물론 교사가 정말로 되고 싶다면 사범대로 진학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우리나라 입시 제도를 생각해봤을 때 교사가 꿈인 학생들이 전부 사범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직과정과 사범대학의 관계는 미묘하다. 분명 교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그 과정만 놓고 보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의 이미지와 가깝다. 교직과정과 사범대학 사이의 논쟁은 질적으로 우수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이론적·전문적 논의라기보다는 사범대학과 일반대학 사이의 주도권 다툼, 졸업생의 진로확보를 위한 싸움, 그리고 감정적 대 립 등 상당히 비생산적인 논쟁의 측면이 강하였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배경과 풍토 속에서 우리나라 사범대학과 일반대학 교직과정은 교사양성 체제로서 나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둘 사이의 관계 역시 모호한 상태에서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 사범대학과 교직과정 모두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각주:2]

 

  교직과정과 사범대학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비슷하지만 그 교육 방향의 차이점이 상당히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직과정의 경우, 전공과목과 교직과목으로 나누어 이수해야 한다. 교직과목은 사범대와 비사범대 출신 교직 이수자들이 모두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교직 이수제의 전공과목은 다시 기본이수과목과 교과교육영역 과목으로 나뉘는 데, 교과교육영역(3과목)만이 사범대학의 강의이다. 즉, 기본이수과목(7과목)은 전부 일반학과의 과목이라는 것이다. C씨의 우려처럼, 비사범대의 교직 이수자들은 상대적으로 전공 과목을 교육과 연관지어 고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또한, 이미 1970년대 말부터 교원의 이직율이 줄고, 사범대학의 확대 및 사범대학 졸업생 수의 증가 등으로 인해 교사 공급 과잉 상태가 나타났고, 그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 상태이다. 즉 교직과정 제도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였던 부족한 교원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교직과정 제도 유지의 타당성이 많이 상실된 상태이다. 더욱이 교직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교사들의 전공 교과 역시 대부분은 기존 사범대학에서 배출하는 교사들의 전공 교과와 거의 일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범대학에서 배출하지 못하는 교과의 교사를 양성한다는 취지도 퇴색된 상태이다.[각주:3]

 

관련 정책은

 

  그렇다면 현재 교직 이수제 관련 정책은 어떻게 될까? 우선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21년 2월에 발표한 ‘2020년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결과에 따르면, 사범대 및 일반대 교육과 130여 명, 일반대 교직과정 1800여 명, 교육대학원 1200여 명 등 총 3200여 명의 교원 정원감축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교원정원 감축을 22년부터 바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일반대 교직과정의 경우 신입생이 교직과정에 진입하는 시기를 고려해 2023년에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각주:4]

 

  21년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초·중등 교원양성 체제 발전방안’에 따르면, 국·영·수 등 공통 과목은 사범대 출신이, 나머지 교과는 비사범대 출신이 맡게 된다. 중고등학교 교원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점진적으로 그 수를 줄인다. 실제로, 2020년 중등교원 자격증 취득 인원은 모집 인원보다 4.4배나 많았다. 대신, 매년 일정 규모의 교원이 필요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원은 사범대와 사범계 학과(교육과)를 통해서만 양성한다. 고교학점제, 산업구조 변화 등에 따라 수요가 확대되는 전문교과, 제2외국어, 신설·신규분야 등 관련 교원은 일반학과 교직 이수 과정과 교육대학원을 중심으로 양성한다. 신설·신규분야 과정은 현재 교원 자격이나 정규 교과목에 반영되지 않은 AI, 드론 같은 분야를 말한다. 이런 분야 의 교직과정을 만들 수 있는 비율은 입학정원의 10%에서 30%로 늘렸다. 첨단·신규분야의 경우 일반·전문 대학원에서 별도의 교직과정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교육대학원의 경우, 교사 양성 과정을 점차 줄이고 현직 교사에 대한 재교육 중심으로 재편된다.[각주:5]

 

Back to Basic

 

  필자 본인의 경험, 그리고 위 인터뷰와 선행 연구를 통해 교직과정의 문제를 파악해볼 수 있었다. 가장 표면적인 문제는 교직 이수 대상자 선발 과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교직과정은 학과 인원의 5% 내외를 선발하기 때문에 교직에 뜻이 있더라도 학점이 좋지 않아 선발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교직에 큰 뜻이 없더라도 성적이 높아 교직과정을 밟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사범대 학생들에게 있어 교직과정이 교사 준비 과정으로서의 인식이 약하다는 선행 연구가 있었다. 이들의 교직 이수 동기는 아주 다양했으며, 교사가 되고자 하는 동기에서 교직을 이수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각주:6] 다시 말해,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 이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 정도로 생각하고 교직과정을 택한다 해도,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작금의 교직 선발 과정으로는 그것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확인하지 않으려 하는 현재의 선발 방식일 것이다. 적어도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의 열의를 확인하는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A씨의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사범대생에 비해 비사범대 생들에게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로 들 수 있겠다. 실제 연구에서도 비사범계열인 경우 선배로부터 교육계 진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면담 과정에서도 사범계열보다는 비사범계열 교직이수자들이 임용고시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임용고시 정보에 기반해 진로를 준비해야 하는데 비사범계열의 경우 임용고시에 합격한 선배들도 많지 않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반 취업으로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에 임용정보를 개인적으로 찾다 보니 정보의 양과 질이 사범계열 학생들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다.[각주:7]

 

  그렇다면 교직과정 그 자체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교직과정 설치 기관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사범대학뿐 아니라 전국의 4년제 대학 및 일부 전문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중등교사가 양성되고 있으나,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과잉공급과 함께 낮은 질의 양성 교육 문제 (교육의 부적합성, 비전문성, 양성기관의 비효율적 운영 등)가 제기되고 있다.[각주:8] 일반대학 학 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직과정은 교사 준비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교육과정 미흡, 이론 중심의 교직과목, 교수진의 전문성 부족, 안내나 지원 부족 등의 구조적 요인과 교직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의 낮은 교직 동기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교사 준비 과정으로서 적합성이 떨어지는 교육과정 과 교직에 대한 동기가 약한 학생들, 전문성이 부족한 교수진 등으로 인해 교직과정은 교사 준비 과정이 아니라 교양과정 정도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각주:9]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는 교직 이수 제도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교직과정 제도는 부족한 교원을 확보하고 사범대학에서 배출하지 못하는 교과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인데, 앞에서 언급했듯 이미 1970년대 말부터 교원의 이직률이 줄고, 사범대학의 확대 및 사범대학 졸업생 수의 증가 등으로 인해 교사 공급과잉 상태가 나타났고, 그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 상태이다. 즉 교직과정 제도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였던 부족한 교원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교직과정 제도 유지의 타당성이 많이 상실된 상태이다. 더욱이 교직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교사들의 전공 교과 역시 대부분 기존 사범대학에서 배출하는 교사들의 전공 교과와 거의 일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범대학에서 배출 하지 못하는 교과의 교사를 양성한다는 취지도 퇴색된 상태이다. 이처럼 현행 교직과정 제도는 본래의 설치 이유나 목적이 이미 상당 부분 상실된 상태인 것이다.[각주:10]

 

그럼에도,

 

  필자는 인터뷰와 여러 연구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교직 이수 제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사범대를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하게 된 (필자와 같은) 학생들이 있을 테지만, 근본적으로 교직 이수 제도가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대신 조금은 조심스러운 주장이 될 수 있겠으나, 사범대학의 개방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현재 사범대생 상당수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나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등 교사의 길을 접고 있지만, 비사범대생들의 교원자격증 취득은 사범대라는 견고한 울타리에 막혀 있는 것이다. 교원양성전문 4년제 국립대인 한국교원대를 제외한 전국 45개 종합대학 사범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조건 없이 사범대 복수전공이 가능한 학교는 인천대, 강남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등 5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 대학에서 사범대 복수전공을 해도 교원자격증이 부여되지 않는다. 나머지 40곳은 복수전공이 제한적이거나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고려대, 상명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국외대, 인하대, 안동대, 강원대 등 8개 대학 사범대는 원천 봉쇄돼 있다. 사범대 학과를 주전공이나 복수전공 등 형태로 졸업하지 않아도 별도 선발을 거쳐 교직과정을 이수하거나 석사과정인 교육대학원을 졸업하면 교원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게 해당 대학 사범대들의 논리다. 하지만 일선 교수들조차 이 같은 폐쇄성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고려대 사범대 한 교수는 "사범대만 졸업해도 교사에 임용되던 과거에는 타과생의 복수전공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교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려 있다"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러 대학 사범대가 이 같은 폐쇄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각주:11]

 

  또한, 이미 교직 이수제 관련 정책이 나온 만큼 당장은 교직 이수제를 무작정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여러 가지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교직 이수자를 선발할 때 교직 진출 희망 의사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으며, 진로 계획에 대한 심층 면담이 필요하다. 물론 진로 탐색의 목적으로 교직 이수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상당수의 비사범계 대학생들에게 교직 이수제는 일종의 보험, 자격증 확보 차원인 경우가 훨씬 많으므로, 개별 학과에서 5% 내외의 소수 인원을 선정할 때 학점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둘째, 교직과목 담당 교수진의 교직 수업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비사범계 교직이수 학생들은 교직과 임용시험에 대해 실질적인 정보를 개별 학과에서 얻기 어렵기에 이를 교직과정에서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내실 있는 교직과정 운영, 교직 수업 교수진 간 상호작용 등을 통해 중등 예비 교사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교직 현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교직 이수를 하는 비사범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진로지도 및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직 이수 대학생들의 애로사항 등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12[각주:12]

 

  마지막으로 비사범대 출신임에도 교사를 하려는 나와 같은 학생들에게 작은 응원을 전하고 싶다. 또, 우리는 ‘교직 이수’라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는 게 아니라, 교직 이수제 자체가 표류하는 뗏목이라고. 그러니 지금 혼란스럽고 막막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이다. 이상으로 필자의 경험담으로 시작한 길고 긴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당근주스

  1. 정주영, <교직이수를 하는 비사범계 대학생들의 교직진출 결정에 관한 연구>, 《교사교육연구》 57권 1호, 부산대학교 과학교육연구소, 2018, 95면. [본문으로]
  2. 김병찬, <일반대학 학생들의 교직과정 이수 동기 및 과정에 관한 질적 사례 연구>, 《한국교원교육연구》 20권 2호, 한국교원교육학회, 2003, 24면. [본문으로]
  3. Ibid. , 45-46면. [본문으로]
  4. 배태웅, <‘함량미달’ 교원양성기관 정원 3200명 줄인다>, 《한국경제》, 2021.02.22. [본문으로]
  5. 김진주, <다가오는 고교학점제 ... 인공지능·드론 등 미래 산업 지도 교사 더 늘린다>, 《한국일보》, 2021.12.10. [본문으로]
  6. 김병찬, op.cit., 49-50면. [본문으로]
  7. 안재희, 이숙정, <교직이수 학생들의 진로결정에 대한 인식 분석>, 《열린교육연구》 20권 2호, 한국 열린교육학회, 2012, 42면. [본문으로]
  8. 정주영, op.cit., 97면. [본문으로]
  9. 김병찬, op.cit., 45면. [본문으로]
  10. bid. , 45-46면. [본문으로]
  11. 정석우 외, <"나는 되고 남은 안된다" 사범대의 '내로남불' 복수전공>, 《매일경제》, 2019.04.23. [본문으로]
  12. 정주영, op.cit., 106면. [본문으로]

들어가며 – 음악 강국 대한민국, 음악 교육은?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속칭 “음악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는 각각 2021, 2022 포브스코리아 선정 파워 셀러브리티 40에서 1,2위에 선정되기도 하며[각주:1], 대중음악 장르에서 K-POP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클래식 장르에서는 세계 3대 콩쿨 중 하나인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가들이 한국의 높은 음악 수준을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음악 열풍을 주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는데, 과연 이 성과들은 공교육을 통한 성과라 할 수 있는가? 공교육이 음악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는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No’에 가깝다. 공교육에서는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자질, 높은 수준의 피아노 연주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즉, 대한민국이 음악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교육이라 일컬을 수 있는 공교육에서 벗어난 교육이 필요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기획사에서의 연습생 시절, 보컬과 댄스 레슨이 필요했을 것이고, 조성진과 임윤찬은 개인 피아노 레슨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음악 교과목의 목표가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 교육부에서는 “음악 교과는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음악성과 창의성을 계발하며, 음악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안목을 키움으로써 음악을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교과이다.”[각주:2]라고 음악 교과목의 지향점을 밝히고 있다. 즉, 공교육에서 음악 교과목의 역할은 학생들을 음악을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더 떠오른다. 과연 음악 과목은 학생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학창시절 음악 시간을 떠올려보았으면 한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이 현재 자신이 듣는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가? 물론 그러한 예도 있겠지만, 대부분 음악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과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있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임을 온전히 음악 선생님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무엇인가 제도적 차원의 문제, 그리고 제도와 실제 수업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리가 음악 수업에서 느꼈던 괴리감을 음악 교육 제도의 차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음악 교육 제도는 우리가 음악 수업을 통해 어떤 역량을 지니길 원하는지, 우리가 느낀 괴리감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제언해보고자 한다.

 

챕터 1. 현 음악 교육의 제도적 배경 - 우리가 뭘 배워야 하는데?

 

“오늘 음악시간에 교가 가창시험이 있겠습니다.”

“음악 수행평가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듣고 감상문을 써오세요”

 

  실제 필자가 음악 시간에 들었던 말이다. 꼭 위의 음악이 아니더라도, 다른 음악으로 가창시험을 치르거나, 감상문을 작성해 본 기억은 누구나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평가 방식은 학생들이 왜 이런 시험을 봐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음악을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한다. 소극적인 학생이나, 노래를 많이 불러보지 않은 친구에게는 가창시험이 부담될 수 있다. 혹은, 음악에 관한 기본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은 감상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음악 시간과 학생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이 위와 같은 평가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제도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현 교육과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살펴볼 교육과정은 일반고등학교 음악과 교육과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할 것이다. 

 

  음악 교과는 미술 교과와 함께 예술 교과군으로 분류되어, 도합 10단위를 필수 이수 단위로 배당되어있다. 그 단위 내에서 음악 과목은 크게 3개의 선택 과목으로 나눠진다. 일반 선택과목인 ‘음악’, 그리고 진로 선택 과목인 ‘음악 연주’와 ‘음악 감상과 비평’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이 3과목이 ‘보통 교과’라고 하여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학습하게 되는 과목이다. 하지만 꼭 이 3가지의 과목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에서는 “학교는 교육과정을 보통 교과 중심으로 편성하되, 필요에 따라 전문 교과의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각주:3]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학교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주로 예술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전문 교과 과목(음악 이론, 시창 청음, 합창, 합주 등등)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등학교의 특성상 위의 과목을 개설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에 위에서 밝힌 3개의 과목이 음악 과목의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3과목 각각을 상세하게 살펴보겠다.

 

음악

 

  음악 과목은 고등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필수적으로 수강하게 되는 과목이다. 그렇기에 고등학교 수준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음악적 역량을 학습할 수 있는 과목이다. 아래는 교육부에서 밝힌 음악 과목의 목표를 발췌한 것이다.

 

가. 음악의 구성 및 표현 방법을 이해하고 다양한 음악 활동과 경험을 한다.

나. 음악의 사회적·문화적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고 다양한 음악을 비평한다.

다. 음악적 활용과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고, 음악 애호가로서의 자질을 함양한다.

 

  특히, ’다’에서 “음악 애호가“라는 말이 인상적인데, 요약하자면 음악 과목의 목표는 다양한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음악 애호가의 양성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목표에 따라 내용 체계도 표현, 감상, 생활화의 세 영역으로 나눠진다. 이름만 들어도 얼추 예상할 수 있듯, 표현 영역에서는 음악의 구성에 대한 이해와 이의 표현하는 역량을, 감상 영역에서는 음악을 듣고, 음악 요소와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역량을, 생활화 영역에서는 음악을 삶에 녹여내고, 음악을 즐기는 역량을 기른다.

 

  목표와 내용 체계만 보면 학생들이 음악을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학생들이 음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수업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제도들이 실제 수업에 적용되면서 불만족스러운 점이 생겨나게 될텐데,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까?

 

  첫 번째로 음악 수업이 학생들이 음악 애호가가 되기에는 부족한 음악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 경험을 해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음악 수업을 생각해보면 다양한 음악을 접하기 쉽지 않다. 물론 음악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 수업의 수업 시수는 굉장히 부족하다. 대개의 학교에서는 음악을 1주일에 1시간 배운다. 이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이 음악적 지식을 공부하고, 음악을 감상하고, 그 음악의 배경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다음에 나올 문제점과 연관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진부한 수업 내용과 평가방식이다. 앞서 말했듯, 음악 수업의 시수는 부족하다. 그에 따라 음악 선생님들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수 없고, 제한된 평가방식을 수업에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가창시험이나, 주입식 이론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특히 가창시험의 경우 음악 과목의 내용 체계 중 ’표현‘ 영역을 가장 편하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방식이다. 하지만, 학생마다 타고난 음감, 박자감이 다르고, 외향적인 학생도 있는 반면, 내향적인 학생도 있기에 학생들에겐 그다지 편한 평가방식은 아닌 것 같다. 실제 필자의 친구 중 한 명은 노래에 자신이 없는데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가창시험을 치르다 보니 자신이 음악에 재능이 없고,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과연 이런 수업과 평가들이 학생들을 진정으로 음악 애호가로 만드는지 의문이 든다.

 

 

음악 연주

 

  ’음악 연주‘ 과목은 다양한 음악 활동 중 연주 활동에 초점을 두고 실제로 연주해보는 수업이 진행된다. 이 과목에서는 노래를 부를 경우 올바른 발성법을, 악기를 연주할 경우 올바른 주법을 익힌 후 악곡의 특성에 맞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타인의 연주를 듣고 음악 연주를 통해 상호 소통하며 음악을 즐기는 태도를 기르는 것에도 목표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른 내용 체계는 연주와 비평 영역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음악 연주 수업에서는 ”연가를 코드에 맞게 기타로 연주하고, 다른 학생의 연주를 비평하기”,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노래를 아 카펠라로 부르기“와 같은 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각주:4]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음악을 연주해보는 경험은 음악과 친해지고, 음악 시간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목을 수업할 때에도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로 음악 연주에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는 필자가 지방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몸소 실감할 수 있었던 문제점이다. 성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에는 학생들이 모두 연주할 수 있을 만큼의 악기가 필요하다. 한 수업에 최소 10명 이상이 듣는다고 가정하면, 최소 10개의 악기가 필요하다.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기에 충분한 수의 악기를 구매하는 것은 학교 예산 차원에서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배울 수 있는 악기의 종류도 제한된다. 소리를 내는 것 조차 힘든 악기는 배울 수 없고, 소리를 내기 쉽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기타, 우쿨렐레와 같은 악기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양한 악기의 세계를 생각해보면 꽤나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째로 교수적 차원에서 문제점이 있다. 연주를 가르치려면 교수자가 먼저 연주에 능숙해야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교사의 역량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아무래도 성악, 기악을 전공한 음악 선생님들이 더욱 편하게,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은 직접 악기를 배우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생님의 전공에 따라, 선생님의 역량에 따라 수업의 질과 수업 준비의 부담에서 차이가 난다.

 

  세 번째로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과한 부담이 된다. 악기를 배우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악기 연주에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게다가 악기 연주를 위해서는 악보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각 악기별 주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에 더욱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 연주 과목은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제도가 추구했던 이상적이고, 다양한 음악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업이 이뤄지기 어렵고, 단순히 노래만 주구장창 불러보는 수업이 될지도 모른다.

 

음악 감상과 비평

 

  음악 감상과 비평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고, 비평해보는 과정에서 음악이 지니는 가치를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자 한다. 아래는 음악 감상과 비평 과목의 목표를 발췌한 것이다.

 

가. 다양한 음악 감상을 통하여 음악미를 체험하고 음악적 정서를 함양한다.

나. 다양한 시대, 지역 및 종류의 음악을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감상한다.

다. 음악 현상에 대한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여 음악에 대한 비평적 안목을 기른다.

라. 다양한 음악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갖는다.

 

  이 과목의 목표를 보면 단순히 감상하고 비평하는 것이 목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악을 역사적·문화적 측면과 결합하여 음악을 더욱 심도있게 이해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에 목표가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음악과 다른 교과목을 연계해서 학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과목이기도 하다. 아래는 음악 감상과 비평 과목에서 실시할 수 있는 평가 방식의 예시이다. 아래의 평가 문항 예시는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것을 넘어,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림 1- 음악 감상과 비평 평가 문항 예시

  위의 평가 문항은 ”외국 노래를 원어로 불러야 하는가?“하는 논제에 대하여 음악적, 문화적 근거를 들어 토론해보는 활동이다. 이처럼 음악에 관한 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음악을 비평해보고, 더 나아가 음악을 다양한 측면과 함께 이해해보는 활동은 음악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수업이 제도가 추구하는 이상에 따라 잘 진행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음악 감상, 비평과 같은 활동이 절대 쉬운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처럼 음악에서도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이 있다. 즉, 학생들이 비평할 수준의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그만큼 음악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의 비평은 단순히 음악이 좋다, 나쁘다와 같은 수준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비평을 위한 음악적 지식을 가르치기에는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다른 과목에서도 학생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문제점을 강조했지만, 특히 음악 감상과 비평 과목에서 그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두 번째 문제점은 주객전도의 위험성이다. 앞서 충분히 말했듯, 이 과목에서는 음악을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활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음악에 관한 내용보다 역사, 사회에 관한 내용을 많이 학습하다보면 음악 수업이 아니라 타 과목 수업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주입식 이론 교육이 행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챕터 2. 현 음악 교육의 실제 – 현장의 이야기

 

  지금까지 현 음악 교육 제도와 제도가 수업으로 실현되며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제도를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쓰고자 했지만, 필자는 학생이었기에 학생의 입장에서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는 학생이 아닌 선생님의 입장에서 음악 교육을 살펴보기 위해 실제 교육 현장에 계시는 음악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터뷰를 진행해주시는 선생님께서는 지방의 일반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신다.

 

 먼저, 선생님께서 각 음악 과목에서 어떤 수업을 추구하시는지 질문해보았다.

 

Q. 선생님께서 각 음악 과목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즉, 각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역량을 지니길 바라십니까?

 

A. ‘음악’ 과목에서는 다양한 음악장르를 즐길 수 있는 애호가 만들기를 목표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보통 대중음악만을 접해오고 있기에 클래식이나 재즈같은 장르를 접하기 어렵습니다. 접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그러한 장르들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편향된 음악취향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것을 통해 고른 음악 취향을 가진 애호가로 성장케 하고 싶습니다.

‘음악 감상과 비평’ 과목에서는 음악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음악, 넓게 보면 문화라는 것은 그 문화가 속해있는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음악작품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면 음악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듯, 반대로 음악작품을 통해 그 작품이 속한 사회 또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과 수업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통해 1832년에 발생한 민중봉기를 이해할 수 있으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통해 197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음악연주’ 과목의 경우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전인적 인간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우쿨렐레, 기타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악기로 음악이라는 ‘평생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3학년 수업이다보니 이 과목은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위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목표는 앞서 살펴보았던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거의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음악교과가 추구하는 다양한 방향성 중, 2015 음악과 교육과정 ‘성격’ 부분에서 ‘음악을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교과이다’라는 측면과는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직접 말씀해주셨기에, 교육과정이 실제 선생님들이 수업하고자 하는 점을 잘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수업이 원활히 잘 이뤄진다면, 교육과정에도 충실한, 이상적인 수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교육 제도로 인해 수업의 제약을 받으셨다.

 

Q. 음악 수업에 있어 교육 제도로 인한 제약으로 수업에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습니까?

 

A. 교육 제도로 인한 제약 중 가장 큰 것은 수업시수입니다. 고등학교의 편제상 음악과목은 보통 일주일에 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수업시수로 인해 하나의 주제로 수업할 때 연계성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블록타임제 등, 다양한 보완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선생님께서는 음악 교육 제도의 문제점으로 ‘수업 시수 부족’을 지적해주셨다. 수업 시수의 제약으로 인해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어렵고,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선생님께서도 음악 전공자를 수업에 초청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능기부자 매칭 제도’와 같은 유용한 제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도움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 또한 현 음악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음악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계신 듯했다.

 

Q.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현 음악 교육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현실과의 괴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미술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나오는 산물이기에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클래식과 같은 언어적 의미로서 ‘고전’의 위치에 있는 음악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음악들은 시대의 흐름이 따라 빠르게 변화하며 다르게 해석이 되고 있는데 음악 교육 제도는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문제점들 중 하나는 엘리트 음악으로서의 ‘예술고등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음악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는 제도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수업하는 교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음악교사가 음악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예술고등학교와 일반고등학교의 차이은 모든 음악교사들이 같이 고민해봐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앞으로의 음악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에 따른 음악 교육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음악교육은 사람의 인격형성 및 휴머니즘을 실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교육이 심적 단련을 위해 음악을 활용했듯, 점점 각박해져가고 인성이 말살되고 다양한 인격적 만남이 단절되는 사회 속에서 음악이, 그리고 음악교육이 더욱더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하고 어려워 합니다. 무엇인가가 공허한 사람들의 마음에 음악이라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위로해주고 치료해주는 것이 음악의 가치이자 우리 음악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교육과 그 제도의 문제점은 비단 학생들만 느끼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들 또한 알고 있고, 느끼고 있었다. 위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현 음악 교육 제도의 문제점으로 현실과의 괴리감과 음악 교육 수준의 차이를 말씀해주셨다. 이 두 문제점의 원인은 아마 ‘제도의 한계’일 것이다. 제도라는 것은 바쁘게 변하는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다. 현실이 변하고 수년이 지나야 제도로서 바뀐 현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절차를 거쳐 만들어지는 제도라는 것의 근본적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예술고와 일반고의 음악 교육 수준 차이 또한, 제도적 차원에서 음악 교육의 목표가 다르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음악 교육의 수준을 하나로 통일하여 상향 혹은 하향 평준화한다면, 아마 어쩌면 더 많은 불만들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선생님께서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해결책보다는 선생님의 역량을 더욱 강조하신 것 같다. 제도라는 틀 안에서 선생님께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적극 활용하여, 각 학교와 학급에 걸맞는 최선의 수업을 추구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처럼 선생님들이 제도와 현실 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도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챕터 3. 개선방안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도 살펴보았다. 음악 교육, 그리고 그 제도의 문제점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익히 인지하고 계셨다. 각 선생님들마다 자신만의 해결방안을 찾고 계시겠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생각한 개선방안을 적어보겠다.

 

  첫 번째로 제도적 방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도를 통해 해결하라는 말이 모순된 것 같지만, 교육 제도에는 이 괴리감을 줄여줄 다양한 방안들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앞서 인터뷰했던 선생님께서도 말씀해주신 ’재능기부자 매칭 제도‘와 같은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면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음악 연주 수업에서 우쿨렐레를 전문적으로 연주하시는 전문가 선생님을 초빙하면 학생들에게 더욱 체계적으로 악기 연주를 가르쳐주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도 있다. 실제 교육부에서는 “체육, 음악, 미술 등의 과정을 개설하는 학교의 경우, 필요에 따라 지역 내 중점 학교 및 지역사회 학습장을 활용할 수 있다.”[각주:5]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꼭 학교 내부가 아니라 학교 외부와 협력해 음악 수업을 계획한다면 학생들에게 더 다채로운 학습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학생들이 음악에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며 진정한 ’음악 애호가‘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교과 간 융합수업을 실행하는 것이다. 앞서 음악 감상과 비평 과목이 주객전도의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주객의 차이를 없애면 된다. 음악과 다른 과목 간의 융합수업을 진행하면 된다. 실제로 음악은 그 사회,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회와 역사 또한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처럼 음악과 다른 과목을 함께 학습하는 것은 학생들이 내용을 더욱 심도있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앞서 음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레 미제라블‘과 같은 예시도 융합 수업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예시로 음악에서 ’낭만주의‘가 태동하게 된 것과 산업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인간 소외 현상이 역으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게 했다는 내용을 함께 학습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다른 학습과 함께 음악을 공부한다면, 학생들이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지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초·중·고에 이르는 음악에서의 나선형 교육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무리 음악 선생님이 의미있고, 재밌는 음악 수업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학생들이 악보를 보지 못하거나, 음악에 전혀 흥미가 없는 상황이라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음악 과목에서도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기본 배경 지식을 요구하기에 그런 내용들을 학급이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심화된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이 더욱 명확해졌으면 한다.

 

 

끝맺으며 – 앞으로의 음악 수업은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들었던 음악 수업의 제도적 배경과 실제, 그리고 문제점과 해결 방안들을 살펴보았다. 학생과 선생님이 음악 수업에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 상황은 앞으로 음악 교육이 나아갈 길이 많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필자가 글에서 중심적으로 다뤘던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넘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 중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맞춤형 교육으로 ’고교 학점제‘ 시행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매체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교육에도 디지털 매체를 적극 도입하고자 한다. 교육과정이 변함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고교 학점제와 디지털 매체의 도입은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수업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수업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음악을 들어볼 수 있고, 악기 연주의 경우 인터넷 강의 같은 방식과 실제 수업을 병행한다면 학생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악 수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의성이 더욱 강조되는 앞으로의 상황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음악 교육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충실히 따라가며 대한민국이 진정한 음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청명

  1. 박지현·김민수·신윤애, “2021 포브스코리아 선정 파워 셀럽 40“, 포브스 코리아, 2021.04.23.(기사 작성) 2022.09.09. (기사 인용) 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33975

    김영문·신윤애, “[2022 포브스코리아 선정 파워 셀러브리티 40] 2022년 파워 셀럽은 누구?“, 포브스 코리아, 2021.04.23.(기사 작성), 2022.09.09.(기사 인용) 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35939 [본문으로]

  2.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12], “음악과 교육과정”, 교육부, p.23 [본문으로]
  3.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교육부, p.25. [본문으로]
  4. 더 자세한 수업 내용과 평가 문항은 다음을 참고하시오. 교육부, “2015 개정 교육과정 평가기준 -고등학교 음악과-”, 2018, pp. 86-103. [본문으로]
  5.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교육부, p.26. [본문으로]

  우리는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학교에 간다. 학창 시절 공부가 하기 싫어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하곤 했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홈스쿨링 등 일부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기도 하지만, 아직은 학교에 가는 것이 더 보편적이다.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학교를 국가가 차지하기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공교육이 자리 잡기까지

 

(1) 공교육의 역사

 

  근대 초기에 교육은 국가가 담당하지 않았다. 주로 가족 내에서 어른들이 자제들을 교육하는 방식이거나 스승이 소수 제자를 두고 교육하는 형태였다. 스승은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비밀리에 제자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소수에게만 교육이 이루어진 이유는 신분제 때문이었다. 안다는 것이 권력이었고 교육을 통해 신분 세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높은 신분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공교육은 서구에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자리 잡았다. 산업화로 절대 왕정과 절대 계급이 붕괴하고, 자본을 가진 시민계급이 들어섰다. 자본을 가진 시민이 계급제에 반발하고 시민계급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해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했다.[각주:1]  자연스레 일부 귀족만 받을 수 있던 교육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가야 한다며 공교육이 등장했다. 대한민국도 개화기에 이 영향을 받아 일부 개화파가 공교육을 제도로 시행하려 했는데,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면서 강제적으로 공교육이 시작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다른 나라들이 그러했듯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해 향교를 없애고 국가 교육기관인 보통학교, 중학교, 경성대학을 만들었다. 학교의 목적을 “충량한 황국 국민을 양성한다”라고 세울 정도로 교육기관의 목적은 오로지 조선의 식민지화였다.[각주:2]이 당시 주로 내세우던 교육령에는 항상 “일본어 습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배우는 과목 역시 일본어, 일본 역사, 일본 지리 교과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각주:3]

 

  해방 이후에도 일제 강점기와 비슷하게 공교육은 국가를 위한 제도였다. 해방 이후 교육의 목표가 홍익인간 양성으로 바뀌었지만, 홍익인간을 양성하기보다는 반공에 관련된 내용이나, 경제성장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내용을 더 많이 가르쳤다.[각주:4] 일제 강점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국가가 교육을 주도하고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는 국가주의교육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2) 공교육의 문제점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정 이념을 주입하는 교육 내용은 점차 사라졌지만, 국가가 모든 학생을 교육하는 공교육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이런 공교육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아직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공교육제도는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악용되기도 하였지만, 모든 사람의 평등성을 보장하기 위해 나온 체제로, 현재에는 보편성, 평등성, 의무성, 무상성, 전문성 등의 원칙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각주:5] 하지만, 공교육이 그 원칙을 잘 담을 수 있는 최선의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에는 신분제도가 없어도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는 제약이 따르고, 직업에 따른 사회적 지위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는 교육을 통해 소득과 지위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공교육을 통해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대학 진학률이 73.7%일 정도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져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하기 어려운데다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만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나 소득을 가질 확률이 큰 명문대에 진학하기 어렵다.[각주:6]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은 계급상승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하기도 한다. 사회가 출세의 기회를 공평하게 모두에게 주었는데도 개인의 실력이 모자라 그것을 활용 못 했다고 판단하게 하기 때문이다.[각주:7]

 

  위처럼 공교육의 본래 목적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공교육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공교육 체제로는 평등성과 같은 본래의 공교육 원칙들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고, 이를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의 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 잘 살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 ‘잘’산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마다 ‘잘’의 기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나는 ‘잘’에 ‘기본’의 의미를 두고 싶다. 사람으로 잘 살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어떤 기본적인 것들이 필요할까? 학교에서는 이 기본적인 것들을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크게 교과, 사회, 학습자 이 세 가지의 관점으로 논의해왔다.[각주:8] 먼저 오래전부터, 학교에서는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이 있었다. 여기서 교과는 인간이 배워야 하는 불변의 진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당시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적 지식이나 인류의 문화유산, 인문학적 교과 등이 해당한다. 오로지 교과를 가르치고 신분을 세습하는 것이 중요해 지식의 습득만을 강조했으며, 학습자의 요구나 심리를 무시하고, 교과의 논리적인 체계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후 브루너의 “교과의 구조” 개념이 도입되면서 교과가 아니라 학문으로 관심이 이동한다. 교과보다는 교과에 담긴 학문적인 핵심 개념이나 원리 등이 중요하며, 학문을 대표하는 지식의 구조나 지식을 창출해내는 탐구 과정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9] 이는 잘못된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주입식 교육이 교과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지도 않았다는 문제가 생겼다.

 

  사회를 중심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도 있었다. 주로 공리주의자이거나 극단의 사회적 효용 주의자들에 의한 관점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은 교육을 사회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준비로 보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학생들이 생활할 때 필요한 것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극단적 사회적 효용 주의자들은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교육은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는 제국주의에서 잘못된 교육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교육 내용을 학습자의 입장으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진보주의 교육 운동과 심리학의 발달로 인해 죤 듀이를 중심으로 아동의 마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 영향으로 아동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가르칠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타났으며, 국가의 필요나 지식의 전달보다는 아동이 흥미를 보이는 내용만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학습이 일어날 때 아동의 생각 변화나, 아동의 개별적인 학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세 가지의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봐야 하며, 교과와 사회, 학습자 모두 고려해 교육적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학문적인 의미도 있으면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것을 가르쳐야 하며, 아동의 흥미도 고려해 가르치는 내용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기본 과목으로 두고 가르치고 있다. 국가가 선정한 이 기본 과목들은 위의 세 가지의 요소를 모두 만족하는 과목이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각각의 과목이 학문적인 의미도 있고, 사회의 요구도 담고, 아동의 흥미도 유발하는 과목인지 살펴보려 한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1) 학문

 

  학문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지식의 구조가 잘 짜여 있다는 것이다. 지식의 구조는 지식의 체계를 말하며, 지식의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식을 말한다. 지식의 구조는 인류의 공통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만들어 사회를 보는 안목을 길러준다.[각주:10] 현재 교육과정에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식 체계가 깊어지는 것이 지식의 구조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와 수학은 지식의 구조가 잘 짜여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우는 내용이 깊어지고, 전 내용을 학습해야 다음에 배우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영어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지식의 구조가 잡혔는지 아닌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현 교육과정에서 영어 과목은 국어처럼 어법이나,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을 깊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단을 독해하고 듣고 쓰는 등의 단순한 활동만 있다. 배우는 내용이 깊어지기보다는 반복 위주의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영어는 지식의 구조가 잘 짜여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것을 영어 과목의 목표로 두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단어와 표현을 배우기 때문에 점차 배우는 내용이 깊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국어와 수학, 영어 과목 속 지식의 구조가 잘 짜여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국어와 영어 수학일까? 다른 과목을 지식의 구조를 잘 잡아서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국어와 영어, 수학이 지식의 구조를 배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의 구조는 학문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진다. 학문은 ‘정당화될 수 있는 지식의 체계’ 또는 ‘진리를, 혹은 정당화될 수 있는 지식을 찾는 탐구 활동’을 말한다.[각주:11] 정당화될 수 있는 지식이려면 꽤 오랜 시간 어떤 근거를 기반으로 탐구가 이루어진 지식이어야 하며, 대부분의 곳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이어야 한다. 학문은 언어로 전달, 축적되기 때문에 학문과 지식의 구조를 배우기 위해선 국어 학습이 필수적이며, 수학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탐구해오던 과목이기 때문에 지식의 구조를 만들 만큼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꼭 지식의 구조가 잘 만들어진 과목을 배워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국어와 영어, 수학이라는 학문을 지식의 구조를 기반으로 배우면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 향상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현대에는 굉장히 빠르게 지식이 변하기 때문에 심화한 내용을 배우기보다는 기본이 되는 내용을 다양하게 배우는 것이 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2) 사회의요구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은 사회의 요구에 적합한 과목인지 살펴보기 위해선 사회의 요구가 어디까지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사회의 요구를 생활로 본다면, 국어, 영어, 수학 과목보다는 가정이나 기술 같은 실제 생활에서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물론 국어, 영어, 수학 과목도 일상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지만, 사람이 단순히 생존만 하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때 배우는 고등 개념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회의 요구를 사회에 적응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인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직업인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운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학문을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학문을 배우기 위해선 국어 능력과 수학 능력, 영어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꼭 대학에서 학문을 배워야만 직업을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에서 전공대로 취업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대학에 가지 않고도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또한,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이 세 가지 과목만 기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직업이 있고, 필요로 하는 기본역량이 직업마다 다르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꼭 국어, 영어, 수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3) 학습자

 

  가르치는 내용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려면 배우는 내용이 실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등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같은 과목에 흥미를 갖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 있는 내용만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이 실제로 학습하는 양이 매우 적어져 배우는 내용이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사실상 학생들의 흥미 유발은 가르치는 내용보다는 가르치는 방식이 더 상관있으며, 가르치는 내용은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은 오히려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과목이다. 현 교육과정에서 국어, 영어, 수학은 배우는 내용이 정말 많고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과목에 흥미를 느끼려면 개념을 이해하는 게 우선인데, 내용이 어렵다 보니 수업에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고, 개념을 이해하더라도 이해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이들의 인지 수준보다 배우는 내용이 많아 과목에 흥미를 느끼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국어와 영어, 수학이 사람이 잘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움을 주긴 하지만, 국어와 영어, 수학 과목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국어와 영어, 수학 과목이 학문을 공부하기에 비교적 적절한 과목이고, 일부는 사회로 적응도 도와주는 부분이 있어 학교에서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이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도 많이 달라졌고, 학생들의 요구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지금처럼 국어, 영어, 수학만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나가며

 

  공교육은 모든 사람의 평등이라는 이상에서 출발했다. 중간에 제국주의 국가가 악용하는 등 공교육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이 사람으로 잘 살기 위해서 공교육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가 중요해진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기본으로 가르치고 배우는데 이 과목들이 다른 과목들보다 비교적 오래되었고, 대학에서 배울 다른 지식에 기반이 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를 가르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국어, 영어, 수학만 배워서 잘 살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사회에 적응해서 도태되지 않고 잘 생존하는 게 사람으로 잘 사는 것인지,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배우는 것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제일 나은 방법인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일육

  1. 양재진;, 정형선;, 김혜원;, 이종태, 사회정책의 제3의 길- 한국형 사회 투자 정책의 모색, 백산 서당, 2008. [본문으로]
  2. 오창순,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2012, Vol.23, 181-203. [본문으로]
  3. 김경자;, 김민경;, 김인전;, 이경진;, 김유진;, The journal of Elementary Education, 2004, Vol 17, No 1, pp.293-325. [본문으로]
  4. 전성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 메디치, 2011. [본문으로]
  5. 나병헌, 아시아 교육연구, 2001, 2권 2호, pp.139-159. [본문으로]
  6. 이영규, 올해 고교 대학 진학률 73.7%, 10년 만에 최대치 기록, 조선에듀, 2021.12.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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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runer, J. S., Califonia Department of Education, 19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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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영기, 동서사상 연구소 논문집, 2009. 동서사상 제7집, pp 8. [본문으로]

 

  마음이 가볍고도 즐겁습니다. 편집위원들과 온라인으로만 만나며 어색한 거리에 부담만 쌓아가던 시기도 지났고, 심지어 같이 소소하게나마 여행도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우리의 생각이 겹치는 부분도 많아졌고, 서로를 더 넓게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교육저널 40호 <한국 교육제도 노선도>는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조금씩 비슷한 글 일곱 편을 모았습니다. “[특집] 공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는 왜 우리가 이러한 교육제도 속에서 교육받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고, 지금 우리 제도가 겪는 문제를 진단하고, 앞으로 어떤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점쳐봅니다. “[기획] 환승: 새로운 노선으로”에서는 공교육을 벗어난 더 넓은 범위의 교육을 생각해봅니다. 서로 비슷한 면을 찾아서 일곱 편의 글을 나열해보았으니,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덧 교육저널에서 지낸 지 4학기가 흘렀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오래있 을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러 이유가 있어서 여태까지 떠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교육저널 문을 닫고 나올까 전전긍긍하기도 했고, 이 글쓰기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지 종잡을 수 없어 무기력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저를 비롯한 편집위원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번듯한 이야기로 만들어 내보낸 것들을 보면 매번 뿌듯해지는 것 같아요. 부디 40호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러분들께도 닿을 수 있길 바라요!

 

 

 

월영

'40호 - 한국 교육제도 노선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후기  (0) 2022.11.04

#월영

 

  이렇게 우당탕탕 한 학기가 지나가네요! 관악에 (학부생으로) 있을 시간도 교육저널에 있을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니 시원섭섭합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는 한참 시도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행에 옮겨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딘가 정리 안 되고 미숙한 생각이라도 세상에 내보내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일육

 

  이번 학기 여러 일들을 저질러놓고 엄청난 후회를 했는데, 어찌어찌 잘 마무리해서 다행입니다. 하하아무튼 뭔가 자발적으로 글을 쓴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많이 부족하지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에 저를 칭찬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마감 기한 못 지키고 시간 관계상 함께하지 못한 활동이 많았는데 이해해 주신 부원분들께 무한한 감사를사랑해요 여러분!

 

#윤슬 

 

  제대로 참여해본 첫 동아리였는데,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사실 교육에 대해 특별한 관심도 없고 잘 알지 못했는데, 교육 저널을 계기로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글 쓸 때 막막한 부분도 많았는데, 다른 부원 분들께서 많은 도움과 피드백을 주셔서 다행히 잘 마무리한 듯 합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응향 

 

  교육저널 마지막 학기로 생각하고지낸 학기였는데,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살짝 기력이 딸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남아서 활동하실 분들께서 앞으로 교육저널 잘 운영해 나가시길 바라요!

 

#당근주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에요. 정말 쉽지 않았지만 다른 분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덕분에 귀중한 경험을 해보게 되었네요.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는 제가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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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를 펴내며  (0) 2022.04.20

“Carpe Diem”

이 문구가 유행처럼 친구들 사이에서 번지던 때가 기억난다. 물론 이 문구를 좌우명 삼았던 필자의 고등학교 친구 중 누구도 온전히 현재를 즐기진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사실 그것은 진짜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보다, 소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주인공들과 같이 “카르페 디엠”을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그 주문은 빡빡한 중고등학교 생활에서 잠시 일탈을 시도할 때 훌륭한 변명거리가 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던 학창시절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유행의 시발점, <죽은 시인의 사회>는 어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 무엇이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을 망치는지 질문한다. 오래된 영화임에도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여전히 명작인 이유는 영화 속 학생들의 삶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삶이 여전히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저널 편집위원 당근주스와 윤슬, 월영은 여전히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가 끝난 후 짧은 감상, 아쉬움들

 

월영: 감상을 이야기해볼까? 일단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반감 같은 게 있었거든. 굉장히 좋은 스승이 학생들을 계몽시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었어. 근데 영화 보니까 선생님이 하는 건 별로 없어보이는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을 하는,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인 것 같더라고. 판에 박힌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네. 다들 이 영화 본 적 있어?

당근주스: 책을 봤는데, 윤슬 말대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 특징적인 것 같아. 토드가 주인공인가 싶다가도, 오히려 닐이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고. 캐릭터별로 서사가 길었는데 영화에서는 좀 짧게 나온다는 점이 아쉽네. 하지만 감동 그 자체라서. 너무 좋았어..

윤슬: 나는 영화가 짧은 느낌인 것 같아.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막상 토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없고 닐이 죽었을 때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감동적이긴 했는데. 주제는 명확한데 내용은 조금 부실하지 않았나 생각해.

월영: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법한 게, 학생들이 갑자기 모임을 결성하는데 그 이전의 유대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이 안 나와 있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 인물이 잘 안 외워진다고 영화 보면서도 계속 그랬잖아.

당근주스: 나는 눈에 광기로 구분했어. 찰리는 눈에 은은한 광기가 있거든. 그치만 캐릭터는 너무 구분 안 되게 닮긴 했어.

월영: 눈에 익기도 전에 이미 모임이 결성되고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는 느낌.

윤슬: 모임에 대한 이야기와, 키팅 선생님의 영향력이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수업을 특이하게 한다 이런 점만 잘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키팅 선생님의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

월영: 한편으로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너무 대상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했어. 남자 학생들은 그래도 성장이란 걸 하는데 여자 캐릭터들은 왜 등장하는지, 왜 저런 감정변화가 생겼는지도 종잡을 수가 없어서.

윤슬: 그리고 인종 문제도 생각해볼만한 것 같아. 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지워진 것 같은데, 유색인종은 한 명도 등장하질 않았잖아. 뭐, 시대적인 한계라면 한계겠지만.

 

#2. 키팅 선생님이 가르친 것

 

당근주스: 키팅 선생님이 토드에게 소리 지르게 시킨 거 말이야. 그거 나도 해본 적 있어. 수업시간에도 시키고, 면접 준비할 때도 시켰는데. 내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만하셨는데.

윤슬: 대학 강의에서 그런 거 시키면 바로 드랍할 거야. 강의평에는 절대 듣지 마세요 이러고.

당근주스: 이어지는 씬이 너무 인상깊지 않았어? 시를 읊는 장면. 토드가 형 그늘에 위축되어 살아온 친구였잖아. 그런데 그 재능을 일깨워주는 게 너무 멋있었던 것 같아. 게다가 토드는 숨어서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키팅 선생님이 그걸 정확히 꿰뚫고 “난 너가 발표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어” 이러는 것도 굉장하고.

윤슬: 너무 소름돋잖아. 교수님이 그런 말 하면...

당근주스: (웃음) 발표를 자꾸 시키려고 합니다. 드랍하세요.

윤슬: 눈 마주치면 안 됨.

당근주스: 왼쪽 첫 번째 자리 앉으면 안 됨.

윤슬: 자리가 없으면 결석하세요.(웃음)

월영: 그런데 영화 보면서 키팅 선생님이 대체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싶었어. 다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나 행동 말해줄 수 있어?

당근주스, 윤슬: “카르페 디엠”

윤슬: 그 말이 입에 잘 붙는 것 같아.

당근주스: 나는 삶을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책임 있는 삶. 사릴 땐 사릴 줄 알아야하고, 나설 땐 나설 줄 알아야 하고. 주인공들이 힘 쓸 필요 없는 곳에도 힘을 쓰는데 나서서 말리고.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줬던 것 같아.

윤슬: 오히려 모르던 걸 가르쳤다기보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데... 시를 창작하는 것도, 발표하는 것도 부끄러워했잖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부끄러워하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걸 인식을 전환시킨 것 같아. 학생들도 마음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을 것 같아.

월영: 영화 초반에 학교 교훈을 네 단어로 읊는데,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그 교훈을 비웃듯이 비슷하게 자신들만의 신조를 읊잖아.

당근주스: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익살, 공포, 타락, 배설”로. 그것도 참… 전통과 규율이라면 학교 선생님들이 굉장히 강조했던 점 같은데, 그러면서 애들 사춘기라고, 발랄함을 억제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하잖아. 통제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월영: 나는 처음 닐이 등장했을 때 아빠와 졸업앨범 편집하는 걸 두고 싸운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이후에 인상깊었던 게, 아버지가 했던 말을 닐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래, 그건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거였어”라고 말한단 말이야.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생각으로 포장해왔던 거잖아. 키팅 선생님이 그런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미래의 은행원, 미래의 의사 등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거 아닌가 싶네.

 

#3. 닐과 키팅 선생님, 토드

 

월영: 키팅 선생님이 모임에 대해서 전부 잊어버리고 불태워버리랬잖아. 그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윤슬: 그 모임의 결말이 닐의 자살이라고 한다면, 키팅 선생님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 있지 않을까?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였지만 안 좋은 결말을 맺었고, 그걸 알아서 학생들한테 권장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당근주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인 것 같았거든.

윤슬: 모임을 했을 때 안 좋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 수업을 그렇게 진행했던 것 같기도 해. 비밀리에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 공적으로, 대놓고 하려고 했을 수 있을 수도.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게 안전하니까.

당근주스: 그리고 키팅 선생님이 닐 자리에 가서 시집을 꺼내서 우는 장면 있잖아. 나는 그때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사실 키팅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미 닐의 자리에서 울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윤슬: 죄책감 많이 느꼈을 것 같아.

당근주스: 또 의문이 드는 게, 닐이 거짓말하는 거 많이 티 나지 않았어? 아버지한테 연극 허락 받았다는 말 말이야. 키팅 선생님 눈 계속 피하면서 거짓말 하는 거 정말 티 많이 났던 것 같은데.

윤슬: 나는 진짜 잘 된 줄 알고. 아빠가 닐의 뒤통수를 친 건줄 알았어.

당근주스: 키팅 선생님도 닐의 표정에 의아해하다가 웃고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닐이 제일 성장을 많이 하면서도 부모님과 부딪히지 못한 게 참... 자신을 찾아 떠나긴 했지만 반대를 무릅쓰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어.

월영: 근데, 키팅 선생님이 토드에게서 시를 끌어내는 장면 있잖아. 그게 영화 후반부에 눈밭에서 울부짖는 장면과도 이어지는 것 같지 않아?

윤슬: 나는 그 울분을 표해내는 장면에서, 닐이랑 토드가 그렇게 친했나 싶었어.

당근주스: 이것도 영화의 한계일 수 있지. 사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모르겠잖아. 토드가 작년에도 선물 받은 필기구를 받았을 때 닐이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긴 했지만.

윤슬: 닐은 주변 친구들과 더 친했는데... 토드가 제일 울분을 토하고... 룸메여서 그런가.

월영: 대사에 약간의 실마리가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아버지가 닐을 죽였다고 하잖아.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이해해보면 안정적인 길을 강요하는 사람들일 수 있었겠다 싶고, 이 모든 학교와 기성세대가 닐을 죽였다는 폭로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고.

윤슬: 갑자기 생각난 건데, 토드가 울분을 토했던 게, 닐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아버지를 들먹였잖아.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한 번이라도 편을 들어줬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당근주스: 그러게, 옆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버지한테 허락은 받았어? 너 그거 위조라도 할 셈이야? 이렇게 떠들어대고.

윤슬: 내심 마음에 걸렸을 것 같아. 토드도 허탈하고, 미안하고...

당근주스: 맞네 맞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일 선물로 작년과 똑같은 필기구 세트를 받아서 아쉬운데, 그 옆에서 시원하게 던져버리라고 말해줬던 것도 닐이었잖아. 닐이 모든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해.

월영: 닐이 죽고 키팅 선생님이 잘리고 하는 일 다음에 토드가 각성한 것 같았어. 아무도 말 안 하는데 툭 튀어나와서 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윤슬: 토드가 커서 키팅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당근주스: 지금 영화만 봐서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지만, 토드가 또 다른 키팅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지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4. 닐의 죽음과 아버지, 그리고 책임

 

월영: 닐이 죽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 의식 같기도 한 행위를 하는데, 그 순간에 닐이 요정이 된 것 같았어.

당근주스: <한여름 밤의 꿈>의 한 장면 같지 않았어? 마지막 순간에 연극 하고 떠난 듯하기도 하고.

윤슬: 아빠와 이야기하는 장면도 마음 아팠는데. 아빠가 “너가 하고 싶은 일이 뭔데!”라고 윽박지르니까 힘이 삭 풀리고 눈에 초점이 풀린 것처럼 자리에 앉잖아. 그 표정이 굉장히 묘했어. 꼭 웃는 것 같지 않았어?

당근주스, 월영: 맞아, 웃었어!

윤슬: 그게 소름끼치는 거야. 체념을 넘어서 폭발한 느낌, 자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괜한 짓을 했고, 이래선 안 됐다, 이런 느낌이었어. 분노를 표하는 것보다 더 여운이 남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월영: 나는 닐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 단계 성장했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미소를 띠었다는 생각을 했어.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당근주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키팅 선생님이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라면서 하고 싶은 걸 하랬잖아. 찾는 건 성공했는데 결론이 좋지 않은. 말 안 해버릇 하면 말을 못하더라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 같아.

월영: 결국 닐이 죽은 후에 그 책임을 두고 갈등이 발생하는데, 그 책임은 다들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을까?

당근주스: 아버지 100%.

윤슬: 카메론이 그랬잖아. 키팅 선생님이 그 모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면 닐은 의사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인정했을 거라고.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한 거야. 모임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것 자체를 몰랐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어차피 닐이 선택한 것이니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런 가정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지만.

당근주스: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 같은 거 아니었을까? 미해결된 문제가 남아서 의사가 되어서 터졌을 수도 있고. 닐의 선택이라고 해도 가혹하긴 하다.

윤슬: 키팅 선생님 말대로 아빠한테 말을 했어야하는 거 아닌가.

당근주스: 하지만 닐 입장도 이해가 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이야기를 안 들어주는 아버지와 항상 같이 지냈을 텐데.

윤슬: 그 상황에 어떤 생각이었을까?

당근주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월영: 닐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 키팅 선생님이 “의학과 법학이 삶의 필수 조건이면 시는 삶의 이유다” 이렇게 말하는 장면 있잖아. 그 삶의 이유란 게 닐의 연극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 삶의 이유가 잃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닐이 나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 선언해버린 게 아닐까 싶어.

윤슬: 키팅 선생님은 아버지께 터놓고 말하라고 했는데 닐은 더 쉬운 방법이 없겠냐고 되묻잖아. 닐은 그 방법을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방법은 없고, 그 방법을 시도할 수 없었던 자신도 초라했을 것 같아.

 

#5. 영화 속 문학 이야기

 

당근주스: 연극 끝날 때, 로빈의 독백이 꼭 아버지에게 하는 대사 같잖아. 그게 너무 안타깝긴 했어. 닐의 인생 같기도 하고.

월영: 처음 <한여름 밤의 꿈> 희곡 읽었을 때 묘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멍해지는 느낌이 었어.

당근주스: 딱 꿈 꾸는 느낌이었어.

월영: 극 내용을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면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잖아.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이 사람을 싫어한다, 이런 거. 그런데 숲이라는 공간에서 그것이 모두 허물어지는 거야.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사랑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싫어하는 거지. 나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허무한 느낌이었는데.

윤슬: 닐의 마지막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었다면 그 멘트가 자신감 넘친다고 들릴 수도 있었을 것 같아. 하지만 닐의 입장도 굉장히 위축되어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닐이 연극을 하지 않고 의사의 길을 걸어갔으면 행복했을까?

당근주스: 잘 모르겠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터졌을 것 같아.

월영: <한여름 밤의 꿈>이랑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이 극은 꼭 나중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잖아. 그런 것처럼 연극을 택했든 의사를 택했든 갈등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닐은 강제로 끊어진 것에 가까운 것 같지만.

당근주스: 시나리오 쓴 사람 천재인 것 같아. 영화 속 요소들이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월영: 문학을 중심에 놓아서 그런지 해석의 여지가 더 많아진 것 같아. 혹시 영화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키팅 선생님이 시를 배우는 이유를 설명할 때 “시가 아름다워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서 시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당근주스: 나는 개인적으로 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사실 소설이 읽기는 더 편한 것 같거든. 근데도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생각할 여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 공백을 내가 스스로 해석하고 채워넣을 수 있는 게 시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어.

윤슬: 시라는 게 인간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잖아. 시를 배우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된 것 같기도 해. 비중은 작았지만, 녹스가 크리스한테 고백을 한 것도 시로 고백을 했잖아. 감정 표현에 키팅 선생님의 수업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 아닐까.

당근주스: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면 또 다시 그런 시도를 하는 원동력이 된단 말이야. 한편으로는 키팅 선생님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아.

 

  미술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관람자’가 중요해지면서,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필자는 학과 특성상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나,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이 전공자, 미술관에 꾸준히 관심 있는 일부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미술관에 자주 찾아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교육 혜택 역시도 일반적인 교육에 비해서는 장벽이 높다.

 

  그리하여 필자는 역사를 좋아하는 중학생 사촌 동생 두 명이랑 미술관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다. 이들은 미술사와 미술관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미술관 관람을 자주 해보지는 않은 학생이었다.

 

월영: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HY: 내 생각에는, 미술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어떤 정보잖아. 그런데 그 정보는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대화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음에 비슷한 무언가를 봤을 때 먼저 아는 체 하면서 이야기 꺼낼 수도 있고.

휘영청: 미술관에서는 예술가 고유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으면서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필자는 사촌 동생들과 전시를 보고 난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필자 입장에서는 이 대화는 관람자의 학습 경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근래에 들어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 연구에 관람자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관람자를 “더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존재”[각주:1]로 위치시키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때의 관람자는 어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필자는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사촌 동생들이 미술관에서 학습하는 경험을 살펴보면서, 미술관과 관람자,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미술관 관람 경험과 맺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마도 이 인터뷰로 미술관 학습법에 대한 번듯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획을 통해서 추상적으로만 그려지던 ‘미술관 관람자’가 미술관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얻어가는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2022.01.14.(금) 경남도립미술관, HY와 월영은 <각인> 전을 보러 갔다.

 

  <각인> 전시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판화’를 주제로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근현대 판화 작품을 아카이빙한 전시이다.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은 ‘국토’와 ‘인물’로 나누어서 전시되어있었고, 아카이빙 관은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HY와 필자(월영)는 미리 전시를 둘러보고, 오후 2시에 현대 판화 작가를 위주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들었다. 도슨트 해설을 듣기 전 전시를 훑어보면서 각 작품에 대해 소소하게 감상평을 나눌 수 있었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월영: 여기 구석에 조그맣게 사람 있는 거 보여?

HY: 어 진짜네! (작품을 보다가) 나 이 작품 좋다.

월영: 어, 왜?

HY: 여기 그려진 사람 시선으로 그림을 보게 되는데, 풍경이 꽤 좋은 것 같아.

 

  전시 캡션이 충분히 달려 있지 않아서,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작품에 사용된 재료나 주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나 HY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도슨트의 질문에도 쭈뼛대면서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도슨트 해설에 상당히 만족했다. 그러나 해설만 들었을 때 몇몇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 점, 그림을 보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웠다.

 

  전시 해설을 다 듣고 난 후, 미술관 옆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① 일상의 작은 파동: 미술관

 

  판화라는 장르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전시를 보면서 이전까지 HY와 필자는 판화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을 ‘작품’ 혹은 ‘예술’로도 인지하고 있지 않았단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특히 아카이빙 전시관을 둘러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HY: (몽실언니를 가리키며) 나 이 책 읽어본 적 있어! 이 표지가 판화였구나.

 

  전시관을 나와서도 우리 주변에 판화가 어디에 있었을지도 한번 떠올려보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바는 없었다. 필자와 HY는 판화를 아예 보지 못했다기보다는 일상 속의 판화를 판화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 전시를 본 후 휘영청과 갔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도 미술관 안에서는 특별한 것이 되는 듯했다.

 

  미술관 안에서 특별함을 얻는 것, 이 현상을 보며 미술관이라는 기관을 전시한 작품과 작가가 권력을 얻도록 돕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굳이 미술관의 권력을 인식하지 않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안에서 어떤 이미지를 새삼스럽게 보는 것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필자와 HY는 <각인> 전을 통해서 판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영: 나는 판화라는 장르를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판을 깎아서 찍는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명 들어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

HY: 그림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폭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아.

월영: 제일 판화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었어?

HY: 2층 ‘인물’ 테마의 관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본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 불교 수인을 취하고 있는 게 판화 같지 않았어.

월영: 그렇지, 판을 찍어놓은 게 아니라 판을 직접 전시해놓은 것 같았지!

 

  이번 <각인> 전시에서 특징적이었던 부분은, 판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이었다. 판화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들, 예컨대 원본 판이 있다면 끊임없이 복제 가능하다는 등의 특성들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판화 작품 자체가 다양하니까, HY와 필자는 그 과정에서 서로의 미감이 완전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HY는 만화를 이어붙인 듯한 <갈라파고스>(윤여걸 작가)라는 작품과 강렬한 빨간색이 특징적인 정비파 작가의 판화를 좋아했고, 필자는 김준권 작가의 <산의 노래> 작품을 좋아했다.

 

HY: <갈라파고스>, 그 작품은 예뻤던 것 같아.

월영: 진짜?

HY: 그 작가님 작품이 두 점 더 있었잖아. 나머지 하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어.

월영: 나는 그걸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HY: 색깔 때문인 것 같아. 하지만 내용은 예뻐 보이지 않고, 도슨트 분은 그 판화를 원초적인 성격인 것으로 설명하셨는데 딱 그래 보이긴 했어.

월영: 그 작품은 판화로 만화를 그리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거였지. 내용은 원초적인 성격이었지만 판화의 색채는 다채로웠던 기억이 나. 나는 그 작품은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나는 1관에서 봤던 산이 중첩되어있던 산수화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거든.

HY: 그림 볼 때 당시에는 난폭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예쁜 거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그게 생각났어.

월영: 사람마다 이렇게 미감이 다르구나.

 

  판화라는 장르도, 그 작품들도 많이 생소했던 만큼 HY와 월영은 이 전시를 통해서 다양한 표현방식, 판화로부터 표현될 수 있는 이미지와 그에 대한 각자의 취향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HY가 기대했던 대로, 전시를 보면서 일상에서는 쉽사리 찾기 힘들었던 새로운 대화 거리를 얻은 듯했다. 이후 HY와 필자는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에서 18-19세기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판화를 보고, 그 판화의 표현 기법을 분석하면서 <각인> 전시에서 판화를 봤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② 자발적 학습의 장으로서 미술관 교육

 

  박물관교육학자 후퍼그린힐(Hooper-Greenhill)은 유물에 대한 감각적 해석 및 체험이 유물을 지적으로 깊이 있게 알게 하는 기초가 되고, 박물관을 통한 교육, 학습이 교과과정의 이해와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박물관 교육이 학교와 사회에 유용하다고 생각했고, 박물관 교육이 교육적 환경 구성에서 통합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각주:2] 그렇다면 정규교육과정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을 때, 사회에서 그 주제가 논의되는 깊이를 포용하지 못할 때는 미술관에서 더 어떤 논의가 가능할까?

 

  <각인> 전시의 ‘국토’를 주제로 한 부분에서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하나의 국토를 회복하고픈 열망, 분단된 국토에 항시 도사리는 위험을 표현한 작품이 많이 있었다. 필자는 HY에게 그 작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월영: 독수리 있던 그림 있잖아. 그 그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어?

HY: 그 그림은 설명 듣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어. 설명 듣기 전에는 독수리만 보였는데, 그 아래 백두산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니까 백두산도 중요한 주제로 보이더라고.

월영: 그 그림은 도슨트 설명에 따르면 통일에 대한 거였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HY: 나는 통일보다는 종전했으면 좋겠어.

 

필자가 중등교육을 받을 때에도 통일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 비슷하게 교육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월영: 요새 통일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

HY: 도덕에서 배웠어. 시험에서도 겨레말 큰사전, 언어 비교, 한국 말이랑 북한 말이랑 비교하는 것도 배우고.

월영: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

HY: 해야 한다는 쪽이 더 강조되었던 것 같아. 어떤 이유에서 통일은 필요하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

 

  통일은 필자가 배우던 것과 HY가 배우던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육과정도 박물관 교육도 통일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번 <각인> 전시를 통해서도 풍부하게 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월영: 종전이 필요하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우선 해소했으면 좋겠는 게 있지.

HY: 맞아. 그리고 통일이 갑자기 되면 많은 게 복잡해질 것 같아.

월영: 그렇지.

HY: 그러다 전쟁도 또 나면 어떡해.

 

  <각인> 전시에서 본 작품은 한반도를 통일된 형태로 보고 있었다. 도슨트의 해설 역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HY와 필자가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을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겠지만, 도슨트의 해설은 작품을 해석하는 데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개별 관람자의 작품 해석은 도슨트의 설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HY와 필자는 박물관 바깥에서 다시 전시를 되짚어 보면서 작품의 주제의식에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즉, 전시와 작품을 관람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미술관 도슨트를 듣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기 힘들 수 있다. HY와 필자는 이 이야기를 끝내며 작품의 주제의식이 지금의 한반도에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한편, 미술관의 전시, 도슨트 해설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전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시험을 치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필자와 HY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통일 교육의 취지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설사 <각인> 전에서 전하려고 했던 내용과는 다를지라도) 이번 미술관 교육이 자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미술관이 학교에서 접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거나, 공교육의 정형화된 지식을 접하기 전 가볍게 본인의 관점을 형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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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있었다. 필자도 한 전시를 주제로 이렇게 길게 이야기 나누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곧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마구 던졌음에도 열심히 답해준 HY에게도 고마웠다.

 

  이런 인터뷰를 하고 보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관람객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은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그만큼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어렵다. 기껏해야 전시를 본 후 감상을 짧게 나누거나 SNS를 통해서 후기를 남기는 것에 그치는데, 이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각 전시에 대한 비평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의 필자처럼 글을 쓴다는 인위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고 이야기할 기회, 분위기가 더욱 필요하다.

 

 

2. 2022.01.17.(월) 한화 갤러리아 포레, 휘영청과 월영은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보러 갔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는 한화 갤러리아 포레에서 현대 팝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을 단독으로 다룬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포스터를 사랑과 눈물, 붓자국, 거장에 대한 오마주, 기업과 협업한 사례 등 각기 다른 주제로 나누어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필자와 휘영청은 미리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전시장 한 면에 크게 쓰인 문구가 필자와 휘영청의 시선을 끌었다.

 

월영: “나는 항상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싶어했다.” 이 말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휘영청: 나도 이게 항상 의문이었어. 현대미술 보면 선 하나 그어놓고 작품이라는 것들 있잖아. 그렇게 치면 나도 예술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름의 의문을 품은 채로 월영과 휘영청은 전시장을 더 둘러보았다. 리히텐슈타인이 중국의 수묵산수화를 그의 특징적인 기법인 밴데이 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에 이르렀을 때 도슨트 시작 시간인 2시가 되었고, 휘영청과 월영은 서둘러 전시장 입구로 돌아갔다. 도슨트를 다 듣고난 후 다시 전시를 되짚어가며 꼼꼼히 못 본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① 학교 미술 교육이 채우지 못한 것

 

  리히텐슈타인 전 도슨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자는 “자유롭고 편하게 관람하라”라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던 문구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전시는 쉽고 재미있는 예술을 지향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필자와 휘영청 역시 그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전시를 보게 되었다.

 

월영: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였어?

휘영청: 샴페인이었나, 와인이었나? 하여튼 리히텐슈타인이 디자인했던 그 술병이 기억나.

월영: 아 맞아, 그 병은 다른 작품과 달리 실생활에 쓰였던 거니까.

휘영청: 다른 거는 다 그림인데, 그건 물건이니까 훨씬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

월영: 전시장 벽면에서 봤던 질문 있잖아. 예술은 어디까지 예술이고, 예술이 아니면 어디까지 예술이 아닌지. 방금 전 너가 언급한 게 그런 질문과 연결될 수 있겠다.

휘영청: 길거리 벽에 그리는 그림도 하고, 모래에 그리는 그림도 그림이니까.

 

  이 소재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휘영청과 현대미술에서 어떤 것이 중요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보았다. 필자와 휘영청은 전시가 던진 질문, “어디까지가 예술인가”를 생각해보며 현대미술이 어떻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것은 휘영청의 입장에서는 생소했던 아이디어였다. 휘영청이 받아왔던 미술 수업에서는 소묘, 수채화 같은 실기만 해왔고, 휘영청의 미술 선생님 취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여서 시험도 그 시기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월영: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일반적인 만화랑 다르지 않을 수 있잖아.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고, 대단한 화가로 추앙받을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뭐라고 생각해?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모작이 쉬울 것 같은데, 먼저 이걸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 큰 것 같아.

월영: 자기 아이디어를 회화로 구성해서 내놨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지? 다른 현대미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설명인 것 같아.

 

  휘영청은 이런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듯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HY의 경우에는 미술 시간에 근현대 미술의 다양한 유파들의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빨간색을 그림에 많이 사용하면 높은 점수를 주는 독특한 미술 선생님이 계셔서 한창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미술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서 교육의 내용이 한정된다는 사실이 휘영청과 이야기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어떤 내용을 배우든 그 방식이 미술 실기여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필자와 휘영청, HY 모두 미술 시간에는 자신의 실기 작품을 만드느라 바빴고, 이론 공부는 특정 내용을 암기하라며 쪽지를 나눠준 후 형식적으로 필기 시험을 치는 데 그쳤다. 물론 실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할 수 있고, 이론으로 배운 내용을 실제로 표현하면서 미술 이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에 대한 논의 없이 오로지 실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 수업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기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실기에 대한 평가는 학생 개인이 이미지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다시 말해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측정하는 정도에만 그치기 쉽다. 사전 인터뷰에서 휘영청은 미술 실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이론을 배우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어쩌면 예술가라고 볼 수 없는 시민은 필자와 휘영청처럼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예술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이론을 더 자주 다루고, 이론과 작품을 두고 논쟁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다음으로 필자와 휘영청은 리히텐슈타인 이전에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리히텐슈타인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이 재해석한 작품의 원작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도슨트가 알려줬잖아. 그렇게 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이 작품에서 따온 건지 저 작품에서 따온 건지.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월영: 너가 말한 원작을 밝히지 않는다는 부분이 흥미롭긴 하다. 누구 작품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잖아. 그렇다면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 왜 리히텐슈타인은 작품의 원작을 밝히지 않았을까? 뻔히 보이는 게 있는데도.

휘영청: 자기 작품만을 바라봐 주길 원한 건 아닐까? 원작을 밝히면 그것과 비교하게 되잖아.

월영: 이것도 본인의 작품이라는 것 자체를 봐 주길 바랬다. 그것도 재밌는 해석인 것 같네! 아까 전시장에서 네가 작품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있는 것도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했잖아. 그것과도 통하는 면일 수 있겠고.

휘영청: 이름 자체로 포스터를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이전에 있었던 이미지를 재해석한 것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휘영청에게 현대미술을 학교 수업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물어봤을 때 다시 화제가 되었다.

 

월영: 이런 미술이 있을 수 있단 걸 알았는데, 그렇다면 학교 미술 시간에 오늘 봤던 미술을다룬다면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접근하기 쉬우니까, 따라 그리기도 쉽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월영: 오, 그렇지.

휘영청: 모나리자를 완벽하게 따라 그릴 수는 또 없잖아. 완벽하게 그릴 수 없겠지만 유사하게 그릴 수는 있지 않을까. 리히텐슈타인은 그리기 좀 쉬워 보였어. 아까 봤던 미국 국기는 선 그리고 원 그리면 되니까.

월영: 예전에 팝아트 할아버지 초상화 그려준다고 그런 식으로 그려본 적 있는데, 팝아트의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해보는 것도 팝아트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해석해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이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듯이 나도 있던 그림을 내 방식대로 따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필자는 휘영청이 이 주제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 미술 교육 역시 학생에 맞춰서 다변화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학교 교육의 연장선에서 더 활발해진다면 미술관 학습 경험이 학교 미술 수업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휘영청과 HY는 수학여행을 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간 적 있지만 관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 영향인지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떠는 데 썼다고 한다. 미술 수업 시간을 통해서든 미술관 관람을 통해서든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이들의 수다는 미술관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② 서로 다른 지식들이 모이는 순간

 

  처음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 필자는 전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을 한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 교과에서는 미술이 문화사의 일부로만 의의를 갖고, 미술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다루기는 하지만 결국 실기가 위주가 된다. 필자는 전시를 본격적으로 보기에 앞서 이런 한계로 전시에 대해 충분히 대화할 수 없을까 걱정했으나,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그런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앞서 HY와 <각인> 전시를 보면서는 통일에 대해서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휘영청과 함께 보면서는 다양한 배경 지식을 전시를 통해 종합해 볼 수 있었다.

 

  휘영청은 전시 전에도 리히텐슈타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국어 교과의 지문 중 팝아트 거장들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눈물 흘리는 여자 이미지와 리히텐슈타인을 기억하고 있었고, 전시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도 그런 종류의 이미지에 익숙한 편이었다. 휘영청은 미술 중에서도 이론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이번 전시에서 화가가 보인 기법과 자신이 알고 있던 미술 이론을 비교해보았다.

 

월영: 오늘 도슨트 따라다니면서 들은 리히텐슈타인의 기법들 기억나?

휘영청: 점 찍는 거!

월영: 그렇지, 밴데이 기법! 아까 너가 점 크기나 모양 살펴봤던 거 있잖아. 이전에 유사한 것을 본 적이 있어?

휘영청: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봤던 것 같아.

월영: 오, 점묘화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지. 점묘화를 볼 때와 이 그림들을 볼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어?

휘영청: 점묘화는 정리되어있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리히텐슈타인은 정리되어있는 느낌이었어. 점을 모아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이미 있는 이미지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월영: 그치그치. 일정한 간격으로 줄세워져있는 게 리히텐슈타인 이미지의 차이인 것 같아.

 

  이러한 비교는 도슨트를 들을 때도, 전시 흐름만 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필자는 휘영청의 대답을 들으며 아비 바르부르크(Aby Moritz Warburg)의 므네모시네(Mnemosyne)를 떠올렸다. 므네모시네는 서로 다른 시대에 나타나는 유사한 이미지를 모아놓은 패널이다. 이미지를 모아놓은 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보고, 그 원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므네모시네는 아비 바르부르크 사후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 아이디어의 특성상 므네모시네는 무한히 갱신될 수 있다.

 

  필자와 휘영청이 나눈 대화 역시 므네모시네의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미술 사조, 지역,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이미 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다. 예컨대 이 전시 이후 HY와 필자가 함께 관람했던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는 ‘빛’이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사조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 누군가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비평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상 깊은 작품을 골라보라고 했을 때 고른 작품들 역시 그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과 연관된 작품이었다.

 

휘영청: 88올림픽 포스터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랑 관련된 거니까, 아무래도. 아까 도슨트도 거기서 사진 제일 많이 찍어가는 곳이라고 했고, 내가 찍기도 했고.

월영: 어떤 느낌이었어? 멀리 있는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랑 관련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고.

휘영청: 88년도는 이미 한글이 많이 쓰이고 있을 때였을 텐데 왜 한자를 썼지? 하는 생각.

월영: 그렇지.

휘영청: 우리만의 언어가 있는데 왜 거기다 한자를 써놨는가.

월영: 그 사람들이 아시아면 다 같은 아시아라고 생각했던 거지.

휘영청: 인식을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HY와 <각인> 전시를 보았을 때 통일 문제를 다루었던 것처럼, 휘영청 역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을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휘영청이 국어나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미술관이 관람자의 자발성, 자율성을 어느 정도는 보장하는 공간이라 작품을 본 휘영청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그만의 문제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어쩌면 나중에 휘영청이 탈식민주의 이론을 접한다면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 나가며

 

  지금까지 사촌 두 명과 전시를 보고 이야기하며 필자가 느낀 것을 정리해보았다. 사촌들이 필자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어 필자 역시 재밌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사촌들에게도 이 경험이 썩 재밌었기를 바란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짚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학교에서의 미술 교육이 실기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미술에 흥미를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휘영청은 실기 수업을 썩 내켜 하지 않았고, HY 역시 본인의 실기 점수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전시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실기에서 성취감을 못 느끼는 것은 실기 창작물 평가가 학생 개인의 손재주를 가늠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 평가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실기 평가 위주로만 진행되는 학교 미술 교육은 일상에서 미술을 누리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미술 이론과 작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도록 함으로써 실기 중심 교육의 난점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는 미술관에서의 자발적인 학습이 한 사람이 가진 관점과 다양한 지식을 한데 이끌어내고 융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고, 작품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필자와 사촌들이 도슨트를 듣고 각자 감상문을 썼다면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촌들은 그 시선을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은 미술관에서의 교육이 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이해하기는 했으나 사촌들은 그 위에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동원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전시장 바깥에서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미술관에서의 학습이 더욱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미술관 관람 이후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마련할 수도, 전시를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보람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미술관 교육의 나름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영

  1. 국성하, 박물관/미술관 체험활동의 새로운 시도: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2기 자료집 p. 117  [본문으로]
  2. 국성하, 박물관/미술관 체험활동의 새로운 시도: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2기 자료집 pp.112-113  [본문으로]

1. 서론

 

  인간의 정신 활동과 그 결과물을 탐구하는 역사학으로서 ‘사상사(思想史)’는 20세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기존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 서술, 역사 연구의 전문화ㆍ분업화 경향, 역사학의 과학화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사상사는 로빈슨(James Harvey Robinson, 1863-1936), 러브조이(Arthur O. Lovejoy, 1873-1962)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선양 발전되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사상사(思想史)’라고 하는 단어가 영어로 무엇인가 하는 일이다. 서구 학계에서 먼저 만들어진 단어임에도 이 단어는 오랫동안 통일된 명칭을 지니지 못하였고, ‘history of thought,’ ‘history of theory,’ ‘history of ideas,’ ‘intellectual history’ 등의 단어가 혼용되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history of thought’라는 표현을 선호하여 논지를 전개하고자 하는데, 이 단어는 사상사가 가진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역사’라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유교 사상,’ ‘불교 사상’ 또는 ‘계몽사상’과 같은 어휘로 이 단어를 접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에서 ‘사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들 사상을 다루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사에 대하여 수정주의적 방법론을 제기한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는 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과거의 생각들(past thoughts)’라는 간단명료한 그러나 광범위한 대답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생각들’을 연구하는 사상사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각주:1]

 

(1) 과거의 위대한 종교와 철학에 대한 연구

(2) 하늘과 땅, 과거와 미래, 형이상학과 과학에 대한 ‘보통 사람’의 믿음

(3) 젊음과 늙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기타 잡다한 것들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태도

(4)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입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존경을 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인들의 선입견

(5) 건강과 질병, 선(good)과 악(evil), 도덕과 정치, 탄생ㆍ성관계ㆍ죽음에 대한 억측

 

  즉 사상사란 인간의 정신 활동의 총화이며 인간 삶의 전체, 그리고 사회의 총체를 한데 얽어 매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분야이다. 사상사는 단지 ‘공자의 사상,’ ‘맹자의 사상’이나 ‘플라톤의 사상,’ ‘칸트의 사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넘어 ‘보통 사람들’의 사상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사상사의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저술가들(grands écrivains)뿐만 아니라 2류ㆍ3류 저술가들(écrivains de second, de troisième ordre)에 주목하며, 궁극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믿음을 연구한다.[각주:2] 필자가 사상사라는 학문의 번역어로서 ‘history of thought’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하는 사상사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본고는 먼저 사상사의 특징과 의의를 철학사와 비교하여 살펴보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논해 보고자 한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사상사는 ‘한국사’ 한 과목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각주:3]물론 사상사는 역사학의 한 분야로서 시작한 학문 분야이지만 사상사를 연구할 수 있는 학문은 역사학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 종교학, 철학뿐만 아니라 고고학, 미술사학, 음악사학 역시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사상사는 사회의 특정 부분을 조각 내어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역사학의 지나친 분업화와 전문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서서 사상으로써 사회 전체를 조망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분야가 다 사상사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견지하며 사상사를 교육에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철학사와 사상사

 

1) 철학사의 한계점

 

  사상사란(정확히 말해 오늘날의 사상사란) 결국 한마디로 정의하여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 세계의 역사”[각주:4]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상사를 정리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중국사상사(中國思想史)』를 저술한 거자오광(葛兆光, 1950-)은 과거의 엘리트와 경전 위주의 서술을 비판하며 보편 대중의 사상사를 서술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가 보기에 철학사 중심 ‘사상사’[각주:5] 서술은 두 가지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첫째, 사상사는 엘리트 사상가와 경전으로 구성되며 그들의 사상이 전체 사상계의 정수이다. 둘째, 사상사는 사상가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며, 사상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한다.[각주:6]

  그러나 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전문 철학자들 내지 1류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은 매우 다르다. 철학자의 사상이 일상 세게에서 반드시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일상 세계는 늘 그들과 동떨어져 있다.[각주:7] 우리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BTS의 성공 요인이나 최근 대선에서 뽑아야 하는 사람, 촌각에 지나가는 젊음의 아쉬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심심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효(孝) 의무의 도덕적 근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공리주의자에게 사랑과 우정이란 것이 가능할지를 토론한다고 가정해 보라! 즉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은 지극히 다른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도덕 철학자들이 의무론과 공리주의, 덕 윤리 중 어느 한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매우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을 때, 의무론과 공리주의, 덕 윤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나름대로 퍽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가 아무리 공리주의를 옹호하고 채식주의를 옹호하여도, 일반 민중은 이에 그다지 관심을 비추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유교ㆍ불교ㆍ도교를 동양의 ‘삼교(三敎)’라고 부르면서 이들이 어떻게 대립하였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조선조 유학자들의 불교 비판이나 몇몇 불승들의 유ㆍ불 회통(儒佛會通) 시도는 오늘날의 철학자들에게 ‘조화 정신’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로서 연구된다. 그러나 사실 당대의 일반 민중들에게 이들 세 윤리 사상은 서로 배타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고위 엘리트 철학자들끼리 유교ㆍ불교ㆍ도교의 위치와 이론에 대하여 이리저리 다투고 있을 동안, 일반 민중은 그러한 공허한 철학 담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그러한 종교를 ‘선택적으로’ 믿었다. 어제는 절에 가서 스님을 뵙고 시주하면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오늘은 학교에 나아가 유교 경전을 탐독하며 내일은 도사를 찾아가 부적을 받아 태운 물을 마시는 일은 매우 일상적이었다. 이러한 점은 다음 그림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각주:8] 즉 엘리트들은 각자 자신의 종교만 옹호하고 타 종교에 적대적이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고 머릿속에 삼교가 모두 공존할 수 있다.

 

<그림 1> 엘리트들과 일반인들의 머릿속에서 삼교

 

  둘째, 철학자들의 저술은 때때로 “소급의 필요성”이나 “가치의 추인(追認)”, “의미의 강조” 등에 의하여 사후에 숭앙받는다.[각주:9]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예시는 북송대(北宋) 도학(道學)의 계보 조작이리라 생각된다. 오랫동안 도학 즉 성리학의 계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저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에서 시작하여 정호(程顥, 1032-1085)ㆍ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거쳐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1130-1200)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생각되었으며, 오늘날 성리학에 관련된 대부분의 철학 저술도 이러한 계보 위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는 주희에 의해 조작된 계보이다. 주희는 도학을 집대성하면서 정호ㆍ정이 형제를 높이 받들었고, 그들의 전좌(前座) 역할로 주돈이를 배치하였다. 주희가 생각하기에 주돈이는 이정(二程) 형제(정호, 정이)의 최대 스승이었다. 주돈이가 이렇게 높이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긴 짧은 글인 『태극도설(太極圖說)』이 주희가 생각하는 우주의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도식과 해설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책은 맹자가 세상을 떠난 후 1,400년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주의 진리를 다시금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었다. 이 탓에 도리어 주돈이 사상의 대부분이 담겨 있는 『통서(通書)』는 『태극도설』에 비해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주돈이는 이정 형제를 그다지 오래 가르치지도 않았으며, 실제 주돈이의 사상이 이정 형제에게 미친 영향 또한 그다지 길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고지마 쓰요시(小島毅, 1962-)가 잘 설명하고 있다.[각주:10]

 

2) 철학사를 넘어 사상사로

 

  철학사를 넘어 사상사로 간다는 것은 이제 엘리트 사상가들의 사상을 넘어 일반 대중들의 생각에 접근한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케케묵은 논쟁거리 하나를 꺼내 보자. 불교는 종교인가? 부처는 신(神)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승려를 포함한 여러 불교학자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고, 그중 하나가 ‘불교는 종교이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다. 그러나 과연 불교를 믿는 일반인들에게도 정녕 그러했는가? 루이스(Mark Edward Lewis, 1954-)는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의 불교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비문(碑文)들은 인식이나 실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수도의 평범한 도시민들에게 불교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즉 불교는 고통에 빠진 빠진 중생을 구제하고 축복받은 구원의 영역[피안(彼岸)]으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신(meciful god)에 대한 경건한 믿음이었다. 대부분의 비문은 왕조릉 위한 형식적인 기도이지만, 주된 관심은 부모가 구원받고 극락(paradise)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중략)… 간단히 말해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에게 부처는 한대(漢代) 무덤 예술에서 서왕모(西王母)가 했던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자애로운 신(loving god)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던 것이다.[각주:11]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민중에게 부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러하다. 중국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민중은 죽은 부모가 염라대왕을 포함한 10명의 재판관, 즉 시왕(十王)에게 무사히 재판을 받고 극락에 태어나고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이런 재판에서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해 주는 역할로서 등장한다. 과연 석가모니 부처는 신이 아닌가?

  부처가 신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여러 경전에서 숱하게 발견되며, 석가모니 자신 또한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엘리트 불교 철학자들은 이를 지켜 석가모니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일반 민중의 눈에 석가모니는 그저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자애로운 신”의 모습일 뿐이었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동진(東晋) 조정에서 환현(桓玄, 369-404)과 혜원(慧遠, 334-417)이 ‘승려는 왕에게 절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언쟁을 벌이고 제(齊)ㆍ양(梁) 시기에 혜원의 제자들과 범진(范縝, 450-515)이 신멸(神滅)과 신불멸(神不滅)에 관한 논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민중들의 머릿속에서는 유교ㆍ불교ㆍ도교의 삼교가 한데 뒤섞여 공존하고 있었다. 다원주의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적어도 엘리트 사상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 이들 종교는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결국 사상사라는 학문은 몇몇 특정 인물들의 생각을 집중 조명하는 것을 넘어, 당시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 과연 무슨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필자가 본고에서 지나치게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을 유리하여 바라본 것에 대하여 일종의 성찰적 차원에서 한 가지 검토를 해봄으로써 해당 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즉 철학자들의 생각은 일반 대중의 생각과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어서, 철학자들의 철학이 일정한 형태로 변주되어 대중의 생각에 안치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피터 레일톤(Peter Railton, 1950-)이나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철학은 우리의 머릿속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우리는 나름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하는 대로 법률이 지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그르다고 생각하며, 반대로 많은 쾌락을 산출하는 행위는 가치 있다고 여긴다. 철학적 사유는 나름대로 초보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대중의 생각에 담긴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민족주의의 여러 복잡한 관념을 머릿속에 그저 헝클어놓은 채 “북한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라든지 “조선족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분명 어떠한 민족주의적 철학 사상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 형태가 세련되지(sophiscated) 못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는 엘리트 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민중에게로 전파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 독립 혁명 이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슨 일들이 벌어졌길래, 그들은 민중의 혁명을 이루어 냈는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파리의 아녀자들과 빈민들에게 전달되었는가?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생각은 고상한 철학자들과 혁명가들의 생각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함께 혁명에 참여했으리라. 서양에 대해 무지한 필자의 능력 부족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동양으로 돌려보면, 우리는 거기서 엘리트 철학자들의 사상이 일반 민중에게 전래되는 경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 철학은 오늘날에도 종종 열리는 법회(法會)에서 스님들의 강연을 통해 평범한 불교 신자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러한 법회에서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변문(變文)’이다. 변문은 강연 내용, 강연 대상, 강연 지역에 따라 다양한 향태로 변주되었으며 불교 경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때로는 과감한 비약과 생략, 변주를 통해 ― 때로는 불교 교리에 반대되는 내용일지라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추가하여 ― 불교 문헌을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이런 변문을 통해 우리는 ‘불교의 중국화’를 살펴볼 수 있다. 불교 경전을 쉽게 설명하고자 중국의 민속 신앙과 전통 풍습을 상당 부분 강연 내용에 포함하였던 것이다.[각주:12]

 

3. 사상사 교육의 의미: 사상사를 왜 교육해야 하는가?

 

  인민 대중의 생각이 진리인가? 여기에 긍정의 대답을 취하면 대중이 곧 진리라는 어색한 입장으로 귀결된다. 당연히 대중의 생각이 곧바로 진리일 수는 없으며, 실제로 대중의 생각이 곧 진리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를 중국과 한국, 일본의 민중이 제아무리 신으로 숭배하였다고 한들 그것은 석가모니 본연의 입장이 아니며 석가모니는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즉 동아시아의 대중은 석가모니의 사상을 완전히 곡해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틀린’ 사상을 왜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사상사 교육은 우리의 삶과 사상을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윤리와 사상』 교과서애서 학생들이 만나는 유교, 불교, 도가 사상은 따분하고 지루하며 복잡한 용어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천리(天理)니 인욕(人欲)이니 정혜(定慧)니 일심(一心)이니 하는 용어들을 들여보고 있노라면, 교과를 배우는 학습자의 흥미는 자연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교 신자라고 할지라도 불교 윤리를 공부하다 보면 오히려 복잡한 교리 탓에 불교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마치 자신의 삶과 유리된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현실에서 마주하는 윤리 사상들은 대체로 철학사보다는 사상사에 가깝다. 우리는 언제나 절에 가서 기와를 사서 소원을 적으며, 연등회(燃燈會)가 있는 날이면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청계천에 나아가 연등을 구경하고 소원을 빈다. 도교나 민간 신앙의 경우 어떠한가? 때때로 사주를 보러 점집에 들르는 친구의 모습은 연초마다 쉽게 볼 수 있으며, 무당을 찾아가 소원을 빌고 한 해의 운세, 자녀의 학운을 묻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굿과 부적은 아직도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지만 막상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사상사 교육은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생활 밀착형 교육이다.

  둘째, 사상사 교육은 사상을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와의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사상과 다른 분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이기론ㆍ심성론 같은 ‘철학사로서 유교’이 아니라 ‘사상사로서 유교’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유교와 여타 분야의 관계를 깊이 조망할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하였는가? 복잡한 예법 논쟁으로서 현종조 예송 논쟁(禮訟論爭)이 지니는 정치적 의의는 무엇인가? 예송 논쟁은 단지 공리공담이 아니라 인조로부터 비롯한 효종(r. 1649-1659)ㆍ현종(r. 1659-1674)의 정통성 문제와 왕-사대부의 관계에 관한 매우 정치적인 문제였다. 조금 뒤 시기의 호락 논쟁은 어떠한가? 그것 또한 병자호란 이후 청(淸)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태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꼭 정치 분야가 아니더라도 사상사 교육은 다른 분야와 접목할 수 있다. 중세기 중국에서 불교가 경제적ㆍ사회적으로 지닌 지위는 무엇인가? 수많은 귀족과 황족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재산을 절에 바쳤는데, 과연 그들이 투철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인가? 한편으로 중국 불교의 수용은 문화사적인 부분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불상 조각과 불교 회화 같은 불교 미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산스크리트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접한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언어에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중국어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에 수많은 운서(韻書)들이 탄생하였으며, 이는 마침내 정형시의 일종으로서 근체시(近體詩)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사상사 교육은 사상을 다른 분야와의 연결성 속에서 파악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다.

 

4. 사상사 교육의 근변

 

  그렇다면 이제 사상사라는 학문, 그리고 사상사 교육은 어떤 것을 재료로 삼을 수 있는지, 사상사의 이웃에는 누가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상사는 이들의 연구 성과를 적절히 사용하여 연구를 진척할 수 있을 것이고, 사상사 교육 또한 이들 주변 교과와 협력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명 이상의 교사가 서로 협력하여 수업할 수 있겠으며,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내용을 두 번 이상 다른 관점으로 배움으로써 학생은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사상사와 그 근변의 학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지 주된 내용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사상사와 철학(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본고에서 꾸준히 사상사와 대비하여 제시하였던 철학(사)이다. 고등학교 교과로 표현한다면 윤리 교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 철학사와 사상사는 그렇게까지 대립하는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필자는 사상사 교육이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철학사 교육이 그렇지 않은 듯이 표현하였지만, 철학사 교육 또한 그 자체로도 훌륭한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수 있다. 사실 교육이 생화과 밀착하냐 유리되냐는 교사가 어떻게 ‘교과의 심리화(psychologization of subject-matter)’를 잘 일으킬 수 있는지 그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논리적ㆍ윤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으며, 거기서도 나름의 실생활 적용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리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한 다음, 나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고 원조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며, 사랑과 우정이 공리주의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철학사 역시 얼마든지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잠재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상사 교육과 철학사 교육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엘리트 철학자들의 철학 또한 그들의 ‘생각’이고, 어떤 경로로든 간에 일반 대중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므로 사상사는 엘리트 철학자들의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서 서술될 수 없다. 동아시아의 민중이 불교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연구하는 학자가 불교 철학의 주요 개념에 무지하다면 단 한 발자국도 연구를 진척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철학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사상사는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각 시대마다 논의되었던 중요한 주제들이 다음 세대에서 일반 민중에게 전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서 주희가 성리학의 계보를 조작했다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자. 설령 주희가 중국 도학의 계보를 조작하였다고 한들, 20세기가 되기까지 이루어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그러한 계보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그것을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사상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늘 철학사와 사상사를 함께 두고 비교해 가면서 연구를 진척해야 한다. 우리가 철학사로부터 어떤 오해를 얻는지 그리고 진실은 무엇인지를 함께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오해가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몇백 년을 지속해 온 오해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오해라는 점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각주:13] 사상사와 철학사가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본고의 앞부분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하므로 이만 지면을 줄인다.

 

2) 사상사와 고고학

 

  사상사는 반드시 문자 자료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고고학이 제공해 주는 방대한 양의 출토 자료가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방대한 출토 문헌들을 역사 교과서에서 종종 마주하곤 하지만 그것이 지니는 깊은 사상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사상사는 그런 유물들이 도대체 과거 사람들의 어떤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림 2>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石獸) <그림 3> 희평 원년 진숙경(陳叔敬) 진묘도병(鎭墓陶甁)

 

  <그림 2>[각주:14]는 우리나라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석수(石獸)이고, <그림 3>[각주:15]은 중국 시안(西安)에서 출토된 희평(熹平) 원년(172)에 사망한 진숙경(陳叔敬)의 묘에서 발견된 진묘도병(鎭墓陶甁)이다. 비록 생김새와 특징은 다르지만 두 유물은 모두 동일한 기능을 위하여 제작되었는데, 바로 ‘진묘(鎭墓)’이다. ‘무덤을 진압한다’는 뜻을 지닌 이 작업은 지하의 신들에게 사망자를 착오 없이 저승으로 이장할 것을 명령함과 동시에 형벌로 가득 찬 저승에서 사망자가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을 것, 그래서 무덤 밖으로 도망쳐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 죽은 이와 산 사람의 경계가 뚜렷하게 잘 단속할 것 등을 부탁하는 것이다.[각주:16] 위생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집안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때 소위 ‘줄초상’이 나는 경우가 다소 있었는데, 고대 중국인들은 이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즉 사람은 죽은 후에 지옥(地獄)에서 형벌을 받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 노동하는 이 비탄한 사후 세계의 현실에서 위안을 받고자 산 사람을 사후 세계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앙화(殃禍)’ 또는 간단히 말해 ‘앙(殃)’이라고 불렀는데, 진묘 작업은 이 앙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는 지하의 신들에게 망자를 단단히 단속하여 지하의 지옥으로 안내하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때로는 돌에 문서로 새겼으며, 때로는 질그릇 병[陶甁]에 글로 쓰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무령왕릉처럼 짐승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진묘 작업을 위해 병이나 돌에 새긴 글을 진묘문(鎭墓文)이라고 한다. 고고학 증거는 이렇게 2-6세기 동아시아의 보통 사람들이 믿었던 ‘생사관’을 ― 단순히 윤리 교과서에서 살펴보는 지리한 유교ㆍ불교ㆍ도가의 생사관이 아니라 ― 즉 보다 실질적인 생사관을 보여줄 수 있다.

 

  앞서 필자는 사상사 교육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영역과 연계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진묘문은 도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바로 이 도교의 중요한 특징인 ‘문서 행정’이 진묘문에서도 드러난다. 고대 중국은 전근대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체계적인 관료제를 형성한 국가였고, 이러한 면모는 도교의 상장(上章) 의례 같은 곳에 반영되었다. 즉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玉皇上帝) 이하 여러 신하들에게 올리는 문서를, 마치 오늘날 우리가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서를 작성하듯이 체계적으로 양식을 갖추어 작성한 후 하늘에 올려보낸 것이다. 진묘문에서는 그 대상이 하늘이 아니라 지신(地神)들이라고 하겠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도 관료 기구에 속해 있는 신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망자의 ‘부동산 매매’[각주:17], ‘전입 신고’[각주:18], ‘노역 부과’ 등을 주관한다. 즉 고대 중국의 정치ㆍ사회적 면모인 ‘문서 행정’이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관념에 반영된 것이다. 관료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다른 지역의 생사관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3) 사상사와 미술사

 

  이번에는 미술사와 사상사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철학 문헌, 역사 문헌, 출토 문헌뿐만 아니라 다양한 회화 자료를 통해서도 사상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한 사상사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학습자의 흥미는 더욱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근대 일본에서 ‘미술(美術)’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사상사와의 연관 속에서 몇 가지 미술 작품들과 함께 살펴볼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미술’ 개념은 일본의 미술가들을 자극하였고, 1877년 제1회 내국 권업 박람회(內國勸業博覽會)에서는 공부미술학교 학생들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양화(洋畫) 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은 화가가 바로 고세다 요시마쓰(五姓田義松, 1855-1915)이다. 그는 고메이 천황(孝明天皇, r. 1846-1867)의 초상을 수묵화 기법이 아니라 수채화로 그렸으며,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r. 1867-1912)의 호쿠리쿠(北陸)ㆍ도카이도(東海道) 순행에 따라가 41점을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 4>는 그가 그린 「고메이 천황초상(孝明天皇肖像)」이고, <그림 5>는 메이지 천황의 순행을 담은 그림인 「메이지 11년 호쿠리쿠ㆍ도카이도 순행도」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王政復古)’를 단행한 신정부는 이제 근대 국민 국가(nation state)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일본인들의 머릿속에서 ‘○○번(藩) 사람’이라는 의식을 지우고 ‘대일본제국 신민(국민)’이라는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신정부의 각료들은 막부 시대에는 숨겨진 존재였던 천황을 시각화하겠다는 발상에 다다랐다. 그 방법은 천황의 순행과 초상화였다. 천황은 자신을 민중의 시선 앞에 드러냈고, 민중과 국토는 천황의 시선 앞에 놓였다.[각주:19] 고세다 요시마쓰는 천황을 제작함으로써 천황과 황실을 민중 앞에 가시적인 존재로 만들었으며, 메이지 천황의 순행에 동행하여 그림을 그렸다. 독특한 점은 41점 중 1점만이 풍경을 둘러보는 메이지 천황의 모습이고 나머지 40점은 모두 메이지 천황이 ‘둘러본’ 주변 풍경을 그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천황이 직접 가지 못한 순행지 근처 명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고세다의 시선은 천황의 시선을 대리하였으며, 그는 서양 화법 ― 특히 원근법 ― 에 기초하여 이전의 일본 산수화와 달리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천황의 시선이 닿은 민중과 국토를 질서정연하게 객체로서 표현하였다.[각주:20]

<그림 4> 五姓田義松, 「孝明天皇肖像」, 1878, 종이에 수채, 103.4×67.5cm, 궁내성 소장 <그림 5> 五姓田義松, 「明治十一年北陸東海道巡行圖」, 1878, 합판에 유채, 31.6×45cm, 궁내성 소장

 

  이렇듯 얼핏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미술 작품에도 사상사는 담겨 있다. 그것을 그린 이도 어쨌든 한 명의 일반 사람이고 그의 생각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상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국 시기 일본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소학교에서 불이 나 학생과 교사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대피하였는데, 갑자기 교사 한 명이 천황의 어진(御眞)을 화재로부터 구해야 한다며 불타는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가 사망했다는 일화이다. 우리는 여기서 근대 일본 ‘신민’이 지녔던 사상, 그 때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위와 같은 미술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응향

 

  1. Quentin Skinner, “What is Intellectual History?,” In: What is History Today?, ed. Juliet Gardiner, Basingstoke; Macmillan Education, 1988, pp. 109-110. [본문으로]
  2. 차라순, 「사상사란 무엇인가」, 『韓國思想史學』 52, 2016, p. 13. [본문으로]
  3. ‘동아시아사’ 교과에서도 몇몇 부분에서 사상사의 서술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비중이 한국사보다 크지 않으며, 몇몇 철학자들과 종교가들의 이름을 암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본문으로]
  4. 葛兆光, 이등연 외 옮김, 『중국사상사 1: 7세기 이전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 서울: 도서출판 일빛, 2013, p. 29. [본문으로]
  5. ‘사상사’라고 따옴표를 치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듯이 그리고 거자오광이 주장하듯이 사상사는 단지 철학사를 가리키는 용어가 이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까지는 ‘사상사’라는 이름을 달고서 철학사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다. [본문으로]
  6. 상게서, p. 30. [본문으로]
  7. 상게서, pp. 31-32. [본문으로]
  8. 이 그림은 본래 동양사학과 조성우 교수님께서 수업에서 사용하신 그림이다. [본문으로]
  9. 상게서, p. 32. [본문으로]
  10. 小島毅, 『宋学の形成と展開』, 東京: 株式会社, 倉文社, 1999의 제3장 「道」 참조. 주돈이 외에 장재(張載) 역시 마찬가지의 사후 현창 과정을 거쳤다. [본문으로]
  11. Mark Edward Lewis, China Between Empires: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pp. 209-210. [본문으로]
  12. 정병윤, 「변문을 통해 본 불교경전의 문화적 변용과 해석」, 『中國學報』 70,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2017, p. 152. [본문으로]
  13. 가령 명ㆍ청대 신사(紳士) 계층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주희의 계보 조작이 엄연한 사실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겠으나 동시에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인 명ㆍ청대에는 주희가 제시한 도학의 계보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로서 당대인들에게 수용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다소 비근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고대에 세상이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 있는 것과 같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연구함과 동시에 지구는 사실 둥글다는 사실을 까먹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본문으로]
  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국보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1620000&pageNo=1_1_2_0 (2022.02.22. 검색) [본문으로]

  15. 尹在碩, 「중국 고대 『死者의 書』와 漢代人의 來世觀 ― 鎭墓文을 중심으로」, 『中國史硏究』 90, 중국사학회, 2014, p. 53. [본문으로]
  16. 趙晟佑, 「後漢魏晋 鎭墓文의 종교적 특징과 道敎 ― 五石을 중심으로」, 『東洋史學硏究』 117, 동양사학회, 2011, p. 51. [본문으로]
  17. 죽은 자를 위해 무덤을 쓸 때 형식적으로 지전(紙錢)을 태우고 매지권(買地卷)을 사용하여 저승의 관리로부터 이 땅을 무덤을 위해 쓰기로 샀다는 의식을 치른다. 이 작업 자체는 진묘와는 큰 상관이 없다. 여하튼 무령왕릉에서도 해당 유물이 발견되었다. [본문으로]
  18. 아무개가 모월 모일 모시에 죽어 이제 명계(冥界)에 들어간다는 것을 필자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본문으로]
  19. 오윤정, 「메이지미술과 일본의 ‘근대’ ― 메이지미술회를 중심으로」, 『일본비평』 19,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p. 135. [본문으로]
  20. 상게 논문, p. 1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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