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

 

  이렇게 우당탕탕 한 학기가 지나가네요! 관악에 (학부생으로) 있을 시간도 교육저널에 있을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니 시원섭섭합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는 한참 시도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행에 옮겨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딘가 정리 안 되고 미숙한 생각이라도 세상에 내보내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일육

 

  이번 학기 여러 일들을 저질러놓고 엄청난 후회를 했는데, 어찌어찌 잘 마무리해서 다행입니다. 하하아무튼 뭔가 자발적으로 글을 쓴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많이 부족하지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에 저를 칭찬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마감 기한 못 지키고 시간 관계상 함께하지 못한 활동이 많았는데 이해해 주신 부원분들께 무한한 감사를사랑해요 여러분!

 

#윤슬 

 

  제대로 참여해본 첫 동아리였는데,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사실 교육에 대해 특별한 관심도 없고 잘 알지 못했는데, 교육 저널을 계기로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글 쓸 때 막막한 부분도 많았는데, 다른 부원 분들께서 많은 도움과 피드백을 주셔서 다행히 잘 마무리한 듯 합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응향 

 

  교육저널 마지막 학기로 생각하고지낸 학기였는데,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살짝 기력이 딸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남아서 활동하실 분들께서 앞으로 교육저널 잘 운영해 나가시길 바라요!

 

#당근주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에요. 정말 쉽지 않았지만 다른 분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덕분에 귀중한 경험을 해보게 되었네요.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는 제가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39호 - 출발선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호를 펴내며  (0) 2022.04.20

“Carpe Diem”

이 문구가 유행처럼 친구들 사이에서 번지던 때가 기억난다. 물론 이 문구를 좌우명 삼았던 필자의 고등학교 친구 중 누구도 온전히 현재를 즐기진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사실 그것은 진짜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보다, 소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주인공들과 같이 “카르페 디엠”을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그 주문은 빡빡한 중고등학교 생활에서 잠시 일탈을 시도할 때 훌륭한 변명거리가 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던 학창시절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유행의 시발점, <죽은 시인의 사회>는 어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 무엇이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을 망치는지 질문한다. 오래된 영화임에도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여전히 명작인 이유는 영화 속 학생들의 삶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삶이 여전히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저널 편집위원 당근주스와 윤슬, 월영은 여전히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가 끝난 후 짧은 감상, 아쉬움들

 

월영: 감상을 이야기해볼까? 일단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반감 같은 게 있었거든. 굉장히 좋은 스승이 학생들을 계몽시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었어. 근데 영화 보니까 선생님이 하는 건 별로 없어보이는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을 하는,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인 것 같더라고. 판에 박힌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네. 다들 이 영화 본 적 있어?

당근주스: 책을 봤는데, 윤슬 말대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 특징적인 것 같아. 토드가 주인공인가 싶다가도, 오히려 닐이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고. 캐릭터별로 서사가 길었는데 영화에서는 좀 짧게 나온다는 점이 아쉽네. 하지만 감동 그 자체라서. 너무 좋았어..

윤슬: 나는 영화가 짧은 느낌인 것 같아.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막상 토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없고 닐이 죽었을 때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감동적이긴 했는데. 주제는 명확한데 내용은 조금 부실하지 않았나 생각해.

월영: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법한 게, 학생들이 갑자기 모임을 결성하는데 그 이전의 유대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이 안 나와 있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 인물이 잘 안 외워진다고 영화 보면서도 계속 그랬잖아.

당근주스: 나는 눈에 광기로 구분했어. 찰리는 눈에 은은한 광기가 있거든. 그치만 캐릭터는 너무 구분 안 되게 닮긴 했어.

월영: 눈에 익기도 전에 이미 모임이 결성되고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는 느낌.

윤슬: 모임에 대한 이야기와, 키팅 선생님의 영향력이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수업을 특이하게 한다 이런 점만 잘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키팅 선생님의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

월영: 한편으로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너무 대상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했어. 남자 학생들은 그래도 성장이란 걸 하는데 여자 캐릭터들은 왜 등장하는지, 왜 저런 감정변화가 생겼는지도 종잡을 수가 없어서.

윤슬: 그리고 인종 문제도 생각해볼만한 것 같아. 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지워진 것 같은데, 유색인종은 한 명도 등장하질 않았잖아. 뭐, 시대적인 한계라면 한계겠지만.

 

#2. 키팅 선생님이 가르친 것

 

당근주스: 키팅 선생님이 토드에게 소리 지르게 시킨 거 말이야. 그거 나도 해본 적 있어. 수업시간에도 시키고, 면접 준비할 때도 시켰는데. 내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만하셨는데.

윤슬: 대학 강의에서 그런 거 시키면 바로 드랍할 거야. 강의평에는 절대 듣지 마세요 이러고.

당근주스: 이어지는 씬이 너무 인상깊지 않았어? 시를 읊는 장면. 토드가 형 그늘에 위축되어 살아온 친구였잖아. 그런데 그 재능을 일깨워주는 게 너무 멋있었던 것 같아. 게다가 토드는 숨어서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키팅 선생님이 그걸 정확히 꿰뚫고 “난 너가 발표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어” 이러는 것도 굉장하고.

윤슬: 너무 소름돋잖아. 교수님이 그런 말 하면...

당근주스: (웃음) 발표를 자꾸 시키려고 합니다. 드랍하세요.

윤슬: 눈 마주치면 안 됨.

당근주스: 왼쪽 첫 번째 자리 앉으면 안 됨.

윤슬: 자리가 없으면 결석하세요.(웃음)

월영: 그런데 영화 보면서 키팅 선생님이 대체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싶었어. 다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나 행동 말해줄 수 있어?

당근주스, 윤슬: “카르페 디엠”

윤슬: 그 말이 입에 잘 붙는 것 같아.

당근주스: 나는 삶을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책임 있는 삶. 사릴 땐 사릴 줄 알아야하고, 나설 땐 나설 줄 알아야 하고. 주인공들이 힘 쓸 필요 없는 곳에도 힘을 쓰는데 나서서 말리고.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줬던 것 같아.

윤슬: 오히려 모르던 걸 가르쳤다기보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데... 시를 창작하는 것도, 발표하는 것도 부끄러워했잖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부끄러워하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걸 인식을 전환시킨 것 같아. 학생들도 마음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을 것 같아.

월영: 영화 초반에 학교 교훈을 네 단어로 읊는데,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그 교훈을 비웃듯이 비슷하게 자신들만의 신조를 읊잖아.

당근주스: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익살, 공포, 타락, 배설”로. 그것도 참… 전통과 규율이라면 학교 선생님들이 굉장히 강조했던 점 같은데, 그러면서 애들 사춘기라고, 발랄함을 억제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하잖아. 통제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월영: 나는 처음 닐이 등장했을 때 아빠와 졸업앨범 편집하는 걸 두고 싸운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이후에 인상깊었던 게, 아버지가 했던 말을 닐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래, 그건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거였어”라고 말한단 말이야.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생각으로 포장해왔던 거잖아. 키팅 선생님이 그런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미래의 은행원, 미래의 의사 등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거 아닌가 싶네.

 

#3. 닐과 키팅 선생님, 토드

 

월영: 키팅 선생님이 모임에 대해서 전부 잊어버리고 불태워버리랬잖아. 그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윤슬: 그 모임의 결말이 닐의 자살이라고 한다면, 키팅 선생님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 있지 않을까?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였지만 안 좋은 결말을 맺었고, 그걸 알아서 학생들한테 권장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당근주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인 것 같았거든.

윤슬: 모임을 했을 때 안 좋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 수업을 그렇게 진행했던 것 같기도 해. 비밀리에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 공적으로, 대놓고 하려고 했을 수 있을 수도.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게 안전하니까.

당근주스: 그리고 키팅 선생님이 닐 자리에 가서 시집을 꺼내서 우는 장면 있잖아. 나는 그때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사실 키팅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미 닐의 자리에서 울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윤슬: 죄책감 많이 느꼈을 것 같아.

당근주스: 또 의문이 드는 게, 닐이 거짓말하는 거 많이 티 나지 않았어? 아버지한테 연극 허락 받았다는 말 말이야. 키팅 선생님 눈 계속 피하면서 거짓말 하는 거 정말 티 많이 났던 것 같은데.

윤슬: 나는 진짜 잘 된 줄 알고. 아빠가 닐의 뒤통수를 친 건줄 알았어.

당근주스: 키팅 선생님도 닐의 표정에 의아해하다가 웃고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닐이 제일 성장을 많이 하면서도 부모님과 부딪히지 못한 게 참... 자신을 찾아 떠나긴 했지만 반대를 무릅쓰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어.

월영: 근데, 키팅 선생님이 토드에게서 시를 끌어내는 장면 있잖아. 그게 영화 후반부에 눈밭에서 울부짖는 장면과도 이어지는 것 같지 않아?

윤슬: 나는 그 울분을 표해내는 장면에서, 닐이랑 토드가 그렇게 친했나 싶었어.

당근주스: 이것도 영화의 한계일 수 있지. 사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모르겠잖아. 토드가 작년에도 선물 받은 필기구를 받았을 때 닐이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긴 했지만.

윤슬: 닐은 주변 친구들과 더 친했는데... 토드가 제일 울분을 토하고... 룸메여서 그런가.

월영: 대사에 약간의 실마리가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아버지가 닐을 죽였다고 하잖아.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이해해보면 안정적인 길을 강요하는 사람들일 수 있었겠다 싶고, 이 모든 학교와 기성세대가 닐을 죽였다는 폭로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고.

윤슬: 갑자기 생각난 건데, 토드가 울분을 토했던 게, 닐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아버지를 들먹였잖아.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한 번이라도 편을 들어줬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당근주스: 그러게, 옆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버지한테 허락은 받았어? 너 그거 위조라도 할 셈이야? 이렇게 떠들어대고.

윤슬: 내심 마음에 걸렸을 것 같아. 토드도 허탈하고, 미안하고...

당근주스: 맞네 맞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일 선물로 작년과 똑같은 필기구 세트를 받아서 아쉬운데, 그 옆에서 시원하게 던져버리라고 말해줬던 것도 닐이었잖아. 닐이 모든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해.

월영: 닐이 죽고 키팅 선생님이 잘리고 하는 일 다음에 토드가 각성한 것 같았어. 아무도 말 안 하는데 툭 튀어나와서 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윤슬: 토드가 커서 키팅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당근주스: 지금 영화만 봐서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지만, 토드가 또 다른 키팅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지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4. 닐의 죽음과 아버지, 그리고 책임

 

월영: 닐이 죽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 의식 같기도 한 행위를 하는데, 그 순간에 닐이 요정이 된 것 같았어.

당근주스: <한여름 밤의 꿈>의 한 장면 같지 않았어? 마지막 순간에 연극 하고 떠난 듯하기도 하고.

윤슬: 아빠와 이야기하는 장면도 마음 아팠는데. 아빠가 “너가 하고 싶은 일이 뭔데!”라고 윽박지르니까 힘이 삭 풀리고 눈에 초점이 풀린 것처럼 자리에 앉잖아. 그 표정이 굉장히 묘했어. 꼭 웃는 것 같지 않았어?

당근주스, 월영: 맞아, 웃었어!

윤슬: 그게 소름끼치는 거야. 체념을 넘어서 폭발한 느낌, 자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괜한 짓을 했고, 이래선 안 됐다, 이런 느낌이었어. 분노를 표하는 것보다 더 여운이 남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월영: 나는 닐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 단계 성장했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미소를 띠었다는 생각을 했어.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당근주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키팅 선생님이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라면서 하고 싶은 걸 하랬잖아. 찾는 건 성공했는데 결론이 좋지 않은. 말 안 해버릇 하면 말을 못하더라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 같아.

월영: 결국 닐이 죽은 후에 그 책임을 두고 갈등이 발생하는데, 그 책임은 다들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을까?

당근주스: 아버지 100%.

윤슬: 카메론이 그랬잖아. 키팅 선생님이 그 모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면 닐은 의사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인정했을 거라고.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한 거야. 모임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것 자체를 몰랐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어차피 닐이 선택한 것이니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런 가정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지만.

당근주스: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 같은 거 아니었을까? 미해결된 문제가 남아서 의사가 되어서 터졌을 수도 있고. 닐의 선택이라고 해도 가혹하긴 하다.

윤슬: 키팅 선생님 말대로 아빠한테 말을 했어야하는 거 아닌가.

당근주스: 하지만 닐 입장도 이해가 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이야기를 안 들어주는 아버지와 항상 같이 지냈을 텐데.

윤슬: 그 상황에 어떤 생각이었을까?

당근주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월영: 닐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 키팅 선생님이 “의학과 법학이 삶의 필수 조건이면 시는 삶의 이유다” 이렇게 말하는 장면 있잖아. 그 삶의 이유란 게 닐의 연극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 삶의 이유가 잃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닐이 나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 선언해버린 게 아닐까 싶어.

윤슬: 키팅 선생님은 아버지께 터놓고 말하라고 했는데 닐은 더 쉬운 방법이 없겠냐고 되묻잖아. 닐은 그 방법을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방법은 없고, 그 방법을 시도할 수 없었던 자신도 초라했을 것 같아.

 

#5. 영화 속 문학 이야기

 

당근주스: 연극 끝날 때, 로빈의 독백이 꼭 아버지에게 하는 대사 같잖아. 그게 너무 안타깝긴 했어. 닐의 인생 같기도 하고.

월영: 처음 <한여름 밤의 꿈> 희곡 읽었을 때 묘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멍해지는 느낌이 었어.

당근주스: 딱 꿈 꾸는 느낌이었어.

월영: 극 내용을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면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잖아.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이 사람을 싫어한다, 이런 거. 그런데 숲이라는 공간에서 그것이 모두 허물어지는 거야.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사랑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싫어하는 거지. 나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허무한 느낌이었는데.

윤슬: 닐의 마지막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었다면 그 멘트가 자신감 넘친다고 들릴 수도 있었을 것 같아. 하지만 닐의 입장도 굉장히 위축되어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닐이 연극을 하지 않고 의사의 길을 걸어갔으면 행복했을까?

당근주스: 잘 모르겠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터졌을 것 같아.

월영: <한여름 밤의 꿈>이랑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이 극은 꼭 나중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잖아. 그런 것처럼 연극을 택했든 의사를 택했든 갈등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닐은 강제로 끊어진 것에 가까운 것 같지만.

당근주스: 시나리오 쓴 사람 천재인 것 같아. 영화 속 요소들이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월영: 문학을 중심에 놓아서 그런지 해석의 여지가 더 많아진 것 같아. 혹시 영화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키팅 선생님이 시를 배우는 이유를 설명할 때 “시가 아름다워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서 시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당근주스: 나는 개인적으로 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사실 소설이 읽기는 더 편한 것 같거든. 근데도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생각할 여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 공백을 내가 스스로 해석하고 채워넣을 수 있는 게 시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어.

윤슬: 시라는 게 인간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잖아. 시를 배우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된 것 같기도 해. 비중은 작았지만, 녹스가 크리스한테 고백을 한 것도 시로 고백을 했잖아. 감정 표현에 키팅 선생님의 수업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 아닐까.

당근주스: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면 또 다시 그런 시도를 하는 원동력이 된단 말이야. 한편으로는 키팅 선생님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아.

 

  미술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관람자’가 중요해지면서,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필자는 학과 특성상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나,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이 전공자, 미술관에 꾸준히 관심 있는 일부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미술관에 자주 찾아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교육 혜택 역시도 일반적인 교육에 비해서는 장벽이 높다.

 

  그리하여 필자는 역사를 좋아하는 중학생 사촌 동생 두 명이랑 미술관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다. 이들은 미술사와 미술관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미술관 관람을 자주 해보지는 않은 학생이었다.

 

월영: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HY: 내 생각에는, 미술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어떤 정보잖아. 그런데 그 정보는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대화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음에 비슷한 무언가를 봤을 때 먼저 아는 체 하면서 이야기 꺼낼 수도 있고.

휘영청: 미술관에서는 예술가 고유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으면서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필자는 사촌 동생들과 전시를 보고 난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필자 입장에서는 이 대화는 관람자의 학습 경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근래에 들어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 연구에 관람자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관람자를 “더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존재”[각주:1]로 위치시키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때의 관람자는 어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필자는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사촌 동생들이 미술관에서 학습하는 경험을 살펴보면서, 미술관과 관람자,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미술관 관람 경험과 맺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마도 이 인터뷰로 미술관 학습법에 대한 번듯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획을 통해서 추상적으로만 그려지던 ‘미술관 관람자’가 미술관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얻어가는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2022.01.14.(금) 경남도립미술관, HY와 월영은 <각인> 전을 보러 갔다.

 

  <각인> 전시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판화’를 주제로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근현대 판화 작품을 아카이빙한 전시이다.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은 ‘국토’와 ‘인물’로 나누어서 전시되어있었고, 아카이빙 관은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HY와 필자(월영)는 미리 전시를 둘러보고, 오후 2시에 현대 판화 작가를 위주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들었다. 도슨트 해설을 듣기 전 전시를 훑어보면서 각 작품에 대해 소소하게 감상평을 나눌 수 있었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월영: 여기 구석에 조그맣게 사람 있는 거 보여?

HY: 어 진짜네! (작품을 보다가) 나 이 작품 좋다.

월영: 어, 왜?

HY: 여기 그려진 사람 시선으로 그림을 보게 되는데, 풍경이 꽤 좋은 것 같아.

 

  전시 캡션이 충분히 달려 있지 않아서,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작품에 사용된 재료나 주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나 HY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도슨트의 질문에도 쭈뼛대면서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도슨트 해설에 상당히 만족했다. 그러나 해설만 들었을 때 몇몇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 점, 그림을 보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웠다.

 

  전시 해설을 다 듣고 난 후, 미술관 옆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① 일상의 작은 파동: 미술관

 

  판화라는 장르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전시를 보면서 이전까지 HY와 필자는 판화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을 ‘작품’ 혹은 ‘예술’로도 인지하고 있지 않았단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특히 아카이빙 전시관을 둘러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HY: (몽실언니를 가리키며) 나 이 책 읽어본 적 있어! 이 표지가 판화였구나.

 

  전시관을 나와서도 우리 주변에 판화가 어디에 있었을지도 한번 떠올려보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바는 없었다. 필자와 HY는 판화를 아예 보지 못했다기보다는 일상 속의 판화를 판화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 전시를 본 후 휘영청과 갔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도 미술관 안에서는 특별한 것이 되는 듯했다.

 

  미술관 안에서 특별함을 얻는 것, 이 현상을 보며 미술관이라는 기관을 전시한 작품과 작가가 권력을 얻도록 돕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굳이 미술관의 권력을 인식하지 않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안에서 어떤 이미지를 새삼스럽게 보는 것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필자와 HY는 <각인> 전을 통해서 판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영: 나는 판화라는 장르를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판을 깎아서 찍는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명 들어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

HY: 그림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폭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아.

월영: 제일 판화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었어?

HY: 2층 ‘인물’ 테마의 관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본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 불교 수인을 취하고 있는 게 판화 같지 않았어.

월영: 그렇지, 판을 찍어놓은 게 아니라 판을 직접 전시해놓은 것 같았지!

 

  이번 <각인> 전시에서 특징적이었던 부분은, 판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이었다. 판화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들, 예컨대 원본 판이 있다면 끊임없이 복제 가능하다는 등의 특성들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판화 작품 자체가 다양하니까, HY와 필자는 그 과정에서 서로의 미감이 완전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HY는 만화를 이어붙인 듯한 <갈라파고스>(윤여걸 작가)라는 작품과 강렬한 빨간색이 특징적인 정비파 작가의 판화를 좋아했고, 필자는 김준권 작가의 <산의 노래> 작품을 좋아했다.

 

HY: <갈라파고스>, 그 작품은 예뻤던 것 같아.

월영: 진짜?

HY: 그 작가님 작품이 두 점 더 있었잖아. 나머지 하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어.

월영: 나는 그걸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HY: 색깔 때문인 것 같아. 하지만 내용은 예뻐 보이지 않고, 도슨트 분은 그 판화를 원초적인 성격인 것으로 설명하셨는데 딱 그래 보이긴 했어.

월영: 그 작품은 판화로 만화를 그리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거였지. 내용은 원초적인 성격이었지만 판화의 색채는 다채로웠던 기억이 나. 나는 그 작품은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나는 1관에서 봤던 산이 중첩되어있던 산수화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거든.

HY: 그림 볼 때 당시에는 난폭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예쁜 거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그게 생각났어.

월영: 사람마다 이렇게 미감이 다르구나.

 

  판화라는 장르도, 그 작품들도 많이 생소했던 만큼 HY와 월영은 이 전시를 통해서 다양한 표현방식, 판화로부터 표현될 수 있는 이미지와 그에 대한 각자의 취향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HY가 기대했던 대로, 전시를 보면서 일상에서는 쉽사리 찾기 힘들었던 새로운 대화 거리를 얻은 듯했다. 이후 HY와 필자는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에서 18-19세기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판화를 보고, 그 판화의 표현 기법을 분석하면서 <각인> 전시에서 판화를 봤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② 자발적 학습의 장으로서 미술관 교육

 

  박물관교육학자 후퍼그린힐(Hooper-Greenhill)은 유물에 대한 감각적 해석 및 체험이 유물을 지적으로 깊이 있게 알게 하는 기초가 되고, 박물관을 통한 교육, 학습이 교과과정의 이해와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박물관 교육이 학교와 사회에 유용하다고 생각했고, 박물관 교육이 교육적 환경 구성에서 통합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각주:2] 그렇다면 정규교육과정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을 때, 사회에서 그 주제가 논의되는 깊이를 포용하지 못할 때는 미술관에서 더 어떤 논의가 가능할까?

 

  <각인> 전시의 ‘국토’를 주제로 한 부분에서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하나의 국토를 회복하고픈 열망, 분단된 국토에 항시 도사리는 위험을 표현한 작품이 많이 있었다. 필자는 HY에게 그 작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월영: 독수리 있던 그림 있잖아. 그 그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어?

HY: 그 그림은 설명 듣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어. 설명 듣기 전에는 독수리만 보였는데, 그 아래 백두산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니까 백두산도 중요한 주제로 보이더라고.

월영: 그 그림은 도슨트 설명에 따르면 통일에 대한 거였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HY: 나는 통일보다는 종전했으면 좋겠어.

 

필자가 중등교육을 받을 때에도 통일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 비슷하게 교육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월영: 요새 통일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

HY: 도덕에서 배웠어. 시험에서도 겨레말 큰사전, 언어 비교, 한국 말이랑 북한 말이랑 비교하는 것도 배우고.

월영: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

HY: 해야 한다는 쪽이 더 강조되었던 것 같아. 어떤 이유에서 통일은 필요하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

 

  통일은 필자가 배우던 것과 HY가 배우던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육과정도 박물관 교육도 통일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번 <각인> 전시를 통해서도 풍부하게 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월영: 종전이 필요하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우선 해소했으면 좋겠는 게 있지.

HY: 맞아. 그리고 통일이 갑자기 되면 많은 게 복잡해질 것 같아.

월영: 그렇지.

HY: 그러다 전쟁도 또 나면 어떡해.

 

  <각인> 전시에서 본 작품은 한반도를 통일된 형태로 보고 있었다. 도슨트의 해설 역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HY와 필자가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을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겠지만, 도슨트의 해설은 작품을 해석하는 데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개별 관람자의 작품 해석은 도슨트의 설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HY와 필자는 박물관 바깥에서 다시 전시를 되짚어 보면서 작품의 주제의식에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즉, 전시와 작품을 관람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미술관 도슨트를 듣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기 힘들 수 있다. HY와 필자는 이 이야기를 끝내며 작품의 주제의식이 지금의 한반도에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한편, 미술관의 전시, 도슨트 해설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전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시험을 치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필자와 HY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통일 교육의 취지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설사 <각인> 전에서 전하려고 했던 내용과는 다를지라도) 이번 미술관 교육이 자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미술관이 학교에서 접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거나, 공교육의 정형화된 지식을 접하기 전 가볍게 본인의 관점을 형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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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있었다. 필자도 한 전시를 주제로 이렇게 길게 이야기 나누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곧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마구 던졌음에도 열심히 답해준 HY에게도 고마웠다.

 

  이런 인터뷰를 하고 보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관람객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은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그만큼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어렵다. 기껏해야 전시를 본 후 감상을 짧게 나누거나 SNS를 통해서 후기를 남기는 것에 그치는데, 이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각 전시에 대한 비평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의 필자처럼 글을 쓴다는 인위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고 이야기할 기회, 분위기가 더욱 필요하다.

 

 

2. 2022.01.17.(월) 한화 갤러리아 포레, 휘영청과 월영은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보러 갔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는 한화 갤러리아 포레에서 현대 팝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을 단독으로 다룬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포스터를 사랑과 눈물, 붓자국, 거장에 대한 오마주, 기업과 협업한 사례 등 각기 다른 주제로 나누어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필자와 휘영청은 미리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전시장 한 면에 크게 쓰인 문구가 필자와 휘영청의 시선을 끌었다.

 

월영: “나는 항상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싶어했다.” 이 말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휘영청: 나도 이게 항상 의문이었어. 현대미술 보면 선 하나 그어놓고 작품이라는 것들 있잖아. 그렇게 치면 나도 예술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름의 의문을 품은 채로 월영과 휘영청은 전시장을 더 둘러보았다. 리히텐슈타인이 중국의 수묵산수화를 그의 특징적인 기법인 밴데이 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에 이르렀을 때 도슨트 시작 시간인 2시가 되었고, 휘영청과 월영은 서둘러 전시장 입구로 돌아갔다. 도슨트를 다 듣고난 후 다시 전시를 되짚어가며 꼼꼼히 못 본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① 학교 미술 교육이 채우지 못한 것

 

  리히텐슈타인 전 도슨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자는 “자유롭고 편하게 관람하라”라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던 문구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전시는 쉽고 재미있는 예술을 지향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필자와 휘영청 역시 그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전시를 보게 되었다.

 

월영: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였어?

휘영청: 샴페인이었나, 와인이었나? 하여튼 리히텐슈타인이 디자인했던 그 술병이 기억나.

월영: 아 맞아, 그 병은 다른 작품과 달리 실생활에 쓰였던 거니까.

휘영청: 다른 거는 다 그림인데, 그건 물건이니까 훨씬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

월영: 전시장 벽면에서 봤던 질문 있잖아. 예술은 어디까지 예술이고, 예술이 아니면 어디까지 예술이 아닌지. 방금 전 너가 언급한 게 그런 질문과 연결될 수 있겠다.

휘영청: 길거리 벽에 그리는 그림도 하고, 모래에 그리는 그림도 그림이니까.

 

  이 소재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휘영청과 현대미술에서 어떤 것이 중요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보았다. 필자와 휘영청은 전시가 던진 질문, “어디까지가 예술인가”를 생각해보며 현대미술이 어떻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것은 휘영청의 입장에서는 생소했던 아이디어였다. 휘영청이 받아왔던 미술 수업에서는 소묘, 수채화 같은 실기만 해왔고, 휘영청의 미술 선생님 취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여서 시험도 그 시기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월영: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일반적인 만화랑 다르지 않을 수 있잖아.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고, 대단한 화가로 추앙받을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뭐라고 생각해?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모작이 쉬울 것 같은데, 먼저 이걸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 큰 것 같아.

월영: 자기 아이디어를 회화로 구성해서 내놨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지? 다른 현대미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설명인 것 같아.

 

  휘영청은 이런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듯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HY의 경우에는 미술 시간에 근현대 미술의 다양한 유파들의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빨간색을 그림에 많이 사용하면 높은 점수를 주는 독특한 미술 선생님이 계셔서 한창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미술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서 교육의 내용이 한정된다는 사실이 휘영청과 이야기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어떤 내용을 배우든 그 방식이 미술 실기여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필자와 휘영청, HY 모두 미술 시간에는 자신의 실기 작품을 만드느라 바빴고, 이론 공부는 특정 내용을 암기하라며 쪽지를 나눠준 후 형식적으로 필기 시험을 치는 데 그쳤다. 물론 실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할 수 있고, 이론으로 배운 내용을 실제로 표현하면서 미술 이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에 대한 논의 없이 오로지 실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 수업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기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실기에 대한 평가는 학생 개인이 이미지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다시 말해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측정하는 정도에만 그치기 쉽다. 사전 인터뷰에서 휘영청은 미술 실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이론을 배우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어쩌면 예술가라고 볼 수 없는 시민은 필자와 휘영청처럼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예술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이론을 더 자주 다루고, 이론과 작품을 두고 논쟁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다음으로 필자와 휘영청은 리히텐슈타인 이전에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리히텐슈타인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이 재해석한 작품의 원작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도슨트가 알려줬잖아. 그렇게 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이 작품에서 따온 건지 저 작품에서 따온 건지.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월영: 너가 말한 원작을 밝히지 않는다는 부분이 흥미롭긴 하다. 누구 작품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잖아. 그렇다면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 왜 리히텐슈타인은 작품의 원작을 밝히지 않았을까? 뻔히 보이는 게 있는데도.

휘영청: 자기 작품만을 바라봐 주길 원한 건 아닐까? 원작을 밝히면 그것과 비교하게 되잖아.

월영: 이것도 본인의 작품이라는 것 자체를 봐 주길 바랬다. 그것도 재밌는 해석인 것 같네! 아까 전시장에서 네가 작품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있는 것도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했잖아. 그것과도 통하는 면일 수 있겠고.

휘영청: 이름 자체로 포스터를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이전에 있었던 이미지를 재해석한 것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휘영청에게 현대미술을 학교 수업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물어봤을 때 다시 화제가 되었다.

 

월영: 이런 미술이 있을 수 있단 걸 알았는데, 그렇다면 학교 미술 시간에 오늘 봤던 미술을다룬다면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접근하기 쉬우니까, 따라 그리기도 쉽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월영: 오, 그렇지.

휘영청: 모나리자를 완벽하게 따라 그릴 수는 또 없잖아. 완벽하게 그릴 수 없겠지만 유사하게 그릴 수는 있지 않을까. 리히텐슈타인은 그리기 좀 쉬워 보였어. 아까 봤던 미국 국기는 선 그리고 원 그리면 되니까.

월영: 예전에 팝아트 할아버지 초상화 그려준다고 그런 식으로 그려본 적 있는데, 팝아트의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해보는 것도 팝아트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해석해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이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듯이 나도 있던 그림을 내 방식대로 따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필자는 휘영청이 이 주제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 미술 교육 역시 학생에 맞춰서 다변화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학교 교육의 연장선에서 더 활발해진다면 미술관 학습 경험이 학교 미술 수업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휘영청과 HY는 수학여행을 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간 적 있지만 관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 영향인지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떠는 데 썼다고 한다. 미술 수업 시간을 통해서든 미술관 관람을 통해서든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이들의 수다는 미술관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② 서로 다른 지식들이 모이는 순간

 

  처음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 필자는 전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을 한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 교과에서는 미술이 문화사의 일부로만 의의를 갖고, 미술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다루기는 하지만 결국 실기가 위주가 된다. 필자는 전시를 본격적으로 보기에 앞서 이런 한계로 전시에 대해 충분히 대화할 수 없을까 걱정했으나,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그런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앞서 HY와 <각인> 전시를 보면서는 통일에 대해서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휘영청과 함께 보면서는 다양한 배경 지식을 전시를 통해 종합해 볼 수 있었다.

 

  휘영청은 전시 전에도 리히텐슈타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국어 교과의 지문 중 팝아트 거장들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눈물 흘리는 여자 이미지와 리히텐슈타인을 기억하고 있었고, 전시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도 그런 종류의 이미지에 익숙한 편이었다. 휘영청은 미술 중에서도 이론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이번 전시에서 화가가 보인 기법과 자신이 알고 있던 미술 이론을 비교해보았다.

 

월영: 오늘 도슨트 따라다니면서 들은 리히텐슈타인의 기법들 기억나?

휘영청: 점 찍는 거!

월영: 그렇지, 밴데이 기법! 아까 너가 점 크기나 모양 살펴봤던 거 있잖아. 이전에 유사한 것을 본 적이 있어?

휘영청: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봤던 것 같아.

월영: 오, 점묘화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지. 점묘화를 볼 때와 이 그림들을 볼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어?

휘영청: 점묘화는 정리되어있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리히텐슈타인은 정리되어있는 느낌이었어. 점을 모아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이미 있는 이미지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월영: 그치그치. 일정한 간격으로 줄세워져있는 게 리히텐슈타인 이미지의 차이인 것 같아.

 

  이러한 비교는 도슨트를 들을 때도, 전시 흐름만 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필자는 휘영청의 대답을 들으며 아비 바르부르크(Aby Moritz Warburg)의 므네모시네(Mnemosyne)를 떠올렸다. 므네모시네는 서로 다른 시대에 나타나는 유사한 이미지를 모아놓은 패널이다. 이미지를 모아놓은 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보고, 그 원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므네모시네는 아비 바르부르크 사후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 아이디어의 특성상 므네모시네는 무한히 갱신될 수 있다.

 

  필자와 휘영청이 나눈 대화 역시 므네모시네의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미술 사조, 지역,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이미 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다. 예컨대 이 전시 이후 HY와 필자가 함께 관람했던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는 ‘빛’이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사조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 누군가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비평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상 깊은 작품을 골라보라고 했을 때 고른 작품들 역시 그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과 연관된 작품이었다.

 

휘영청: 88올림픽 포스터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랑 관련된 거니까, 아무래도. 아까 도슨트도 거기서 사진 제일 많이 찍어가는 곳이라고 했고, 내가 찍기도 했고.

월영: 어떤 느낌이었어? 멀리 있는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랑 관련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고.

휘영청: 88년도는 이미 한글이 많이 쓰이고 있을 때였을 텐데 왜 한자를 썼지? 하는 생각.

월영: 그렇지.

휘영청: 우리만의 언어가 있는데 왜 거기다 한자를 써놨는가.

월영: 그 사람들이 아시아면 다 같은 아시아라고 생각했던 거지.

휘영청: 인식을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HY와 <각인> 전시를 보았을 때 통일 문제를 다루었던 것처럼, 휘영청 역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을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휘영청이 국어나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미술관이 관람자의 자발성, 자율성을 어느 정도는 보장하는 공간이라 작품을 본 휘영청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그만의 문제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어쩌면 나중에 휘영청이 탈식민주의 이론을 접한다면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 나가며

 

  지금까지 사촌 두 명과 전시를 보고 이야기하며 필자가 느낀 것을 정리해보았다. 사촌들이 필자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어 필자 역시 재밌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사촌들에게도 이 경험이 썩 재밌었기를 바란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짚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학교에서의 미술 교육이 실기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미술에 흥미를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휘영청은 실기 수업을 썩 내켜 하지 않았고, HY 역시 본인의 실기 점수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전시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실기에서 성취감을 못 느끼는 것은 실기 창작물 평가가 학생 개인의 손재주를 가늠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 평가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실기 평가 위주로만 진행되는 학교 미술 교육은 일상에서 미술을 누리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미술 이론과 작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도록 함으로써 실기 중심 교육의 난점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는 미술관에서의 자발적인 학습이 한 사람이 가진 관점과 다양한 지식을 한데 이끌어내고 융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고, 작품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필자와 사촌들이 도슨트를 듣고 각자 감상문을 썼다면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촌들은 그 시선을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은 미술관에서의 교육이 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이해하기는 했으나 사촌들은 그 위에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동원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전시장 바깥에서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미술관에서의 학습이 더욱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미술관 관람 이후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마련할 수도, 전시를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보람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미술관 교육의 나름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영

  1. 국성하, 박물관/미술관 체험활동의 새로운 시도: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2기 자료집 p. 117  [본문으로]
  2. 국성하, 박물관/미술관 체험활동의 새로운 시도: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2기 자료집 pp.112-113  [본문으로]

1. 서론

 

  인간의 정신 활동과 그 결과물을 탐구하는 역사학으로서 ‘사상사(思想史)’는 20세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기존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 서술, 역사 연구의 전문화ㆍ분업화 경향, 역사학의 과학화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사상사는 로빈슨(James Harvey Robinson, 1863-1936), 러브조이(Arthur O. Lovejoy, 1873-1962)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선양 발전되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사상사(思想史)’라고 하는 단어가 영어로 무엇인가 하는 일이다. 서구 학계에서 먼저 만들어진 단어임에도 이 단어는 오랫동안 통일된 명칭을 지니지 못하였고, ‘history of thought,’ ‘history of theory,’ ‘history of ideas,’ ‘intellectual history’ 등의 단어가 혼용되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history of thought’라는 표현을 선호하여 논지를 전개하고자 하는데, 이 단어는 사상사가 가진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역사’라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유교 사상,’ ‘불교 사상’ 또는 ‘계몽사상’과 같은 어휘로 이 단어를 접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에서 ‘사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들 사상을 다루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사에 대하여 수정주의적 방법론을 제기한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는 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과거의 생각들(past thoughts)’라는 간단명료한 그러나 광범위한 대답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생각들’을 연구하는 사상사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각주:1]

 

(1) 과거의 위대한 종교와 철학에 대한 연구

(2) 하늘과 땅, 과거와 미래, 형이상학과 과학에 대한 ‘보통 사람’의 믿음

(3) 젊음과 늙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기타 잡다한 것들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태도

(4)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입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존경을 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인들의 선입견

(5) 건강과 질병, 선(good)과 악(evil), 도덕과 정치, 탄생ㆍ성관계ㆍ죽음에 대한 억측

 

  즉 사상사란 인간의 정신 활동의 총화이며 인간 삶의 전체, 그리고 사회의 총체를 한데 얽어 매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분야이다. 사상사는 단지 ‘공자의 사상,’ ‘맹자의 사상’이나 ‘플라톤의 사상,’ ‘칸트의 사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넘어 ‘보통 사람들’의 사상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사상사의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저술가들(grands écrivains)뿐만 아니라 2류ㆍ3류 저술가들(écrivains de second, de troisième ordre)에 주목하며, 궁극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믿음을 연구한다.[각주:2] 필자가 사상사라는 학문의 번역어로서 ‘history of thought’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하는 사상사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본고는 먼저 사상사의 특징과 의의를 철학사와 비교하여 살펴보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논해 보고자 한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사상사는 ‘한국사’ 한 과목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각주:3]물론 사상사는 역사학의 한 분야로서 시작한 학문 분야이지만 사상사를 연구할 수 있는 학문은 역사학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 종교학, 철학뿐만 아니라 고고학, 미술사학, 음악사학 역시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사상사는 사회의 특정 부분을 조각 내어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역사학의 지나친 분업화와 전문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서서 사상으로써 사회 전체를 조망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분야가 다 사상사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견지하며 사상사를 교육에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철학사와 사상사

 

1) 철학사의 한계점

 

  사상사란(정확히 말해 오늘날의 사상사란) 결국 한마디로 정의하여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 세계의 역사”[각주:4]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상사를 정리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중국사상사(中國思想史)』를 저술한 거자오광(葛兆光, 1950-)은 과거의 엘리트와 경전 위주의 서술을 비판하며 보편 대중의 사상사를 서술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가 보기에 철학사 중심 ‘사상사’[각주:5] 서술은 두 가지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첫째, 사상사는 엘리트 사상가와 경전으로 구성되며 그들의 사상이 전체 사상계의 정수이다. 둘째, 사상사는 사상가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며, 사상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한다.[각주:6]

  그러나 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전문 철학자들 내지 1류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은 매우 다르다. 철학자의 사상이 일상 세게에서 반드시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일상 세계는 늘 그들과 동떨어져 있다.[각주:7] 우리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BTS의 성공 요인이나 최근 대선에서 뽑아야 하는 사람, 촌각에 지나가는 젊음의 아쉬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심심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효(孝) 의무의 도덕적 근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공리주의자에게 사랑과 우정이란 것이 가능할지를 토론한다고 가정해 보라! 즉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은 지극히 다른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도덕 철학자들이 의무론과 공리주의, 덕 윤리 중 어느 한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매우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을 때, 의무론과 공리주의, 덕 윤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나름대로 퍽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가 아무리 공리주의를 옹호하고 채식주의를 옹호하여도, 일반 민중은 이에 그다지 관심을 비추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유교ㆍ불교ㆍ도교를 동양의 ‘삼교(三敎)’라고 부르면서 이들이 어떻게 대립하였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조선조 유학자들의 불교 비판이나 몇몇 불승들의 유ㆍ불 회통(儒佛會通) 시도는 오늘날의 철학자들에게 ‘조화 정신’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로서 연구된다. 그러나 사실 당대의 일반 민중들에게 이들 세 윤리 사상은 서로 배타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고위 엘리트 철학자들끼리 유교ㆍ불교ㆍ도교의 위치와 이론에 대하여 이리저리 다투고 있을 동안, 일반 민중은 그러한 공허한 철학 담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그러한 종교를 ‘선택적으로’ 믿었다. 어제는 절에 가서 스님을 뵙고 시주하면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오늘은 학교에 나아가 유교 경전을 탐독하며 내일은 도사를 찾아가 부적을 받아 태운 물을 마시는 일은 매우 일상적이었다. 이러한 점은 다음 그림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각주:8] 즉 엘리트들은 각자 자신의 종교만 옹호하고 타 종교에 적대적이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고 머릿속에 삼교가 모두 공존할 수 있다.

 

<그림 1> 엘리트들과 일반인들의 머릿속에서 삼교

 

  둘째, 철학자들의 저술은 때때로 “소급의 필요성”이나 “가치의 추인(追認)”, “의미의 강조” 등에 의하여 사후에 숭앙받는다.[각주:9]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예시는 북송대(北宋) 도학(道學)의 계보 조작이리라 생각된다. 오랫동안 도학 즉 성리학의 계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저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에서 시작하여 정호(程顥, 1032-1085)ㆍ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거쳐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1130-1200)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생각되었으며, 오늘날 성리학에 관련된 대부분의 철학 저술도 이러한 계보 위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는 주희에 의해 조작된 계보이다. 주희는 도학을 집대성하면서 정호ㆍ정이 형제를 높이 받들었고, 그들의 전좌(前座) 역할로 주돈이를 배치하였다. 주희가 생각하기에 주돈이는 이정(二程) 형제(정호, 정이)의 최대 스승이었다. 주돈이가 이렇게 높이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긴 짧은 글인 『태극도설(太極圖說)』이 주희가 생각하는 우주의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도식과 해설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책은 맹자가 세상을 떠난 후 1,400년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주의 진리를 다시금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었다. 이 탓에 도리어 주돈이 사상의 대부분이 담겨 있는 『통서(通書)』는 『태극도설』에 비해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주돈이는 이정 형제를 그다지 오래 가르치지도 않았으며, 실제 주돈이의 사상이 이정 형제에게 미친 영향 또한 그다지 길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고지마 쓰요시(小島毅, 1962-)가 잘 설명하고 있다.[각주:10]

 

2) 철학사를 넘어 사상사로

 

  철학사를 넘어 사상사로 간다는 것은 이제 엘리트 사상가들의 사상을 넘어 일반 대중들의 생각에 접근한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케케묵은 논쟁거리 하나를 꺼내 보자. 불교는 종교인가? 부처는 신(神)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승려를 포함한 여러 불교학자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고, 그중 하나가 ‘불교는 종교이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다. 그러나 과연 불교를 믿는 일반인들에게도 정녕 그러했는가? 루이스(Mark Edward Lewis, 1954-)는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의 불교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비문(碑文)들은 인식이나 실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수도의 평범한 도시민들에게 불교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즉 불교는 고통에 빠진 빠진 중생을 구제하고 축복받은 구원의 영역[피안(彼岸)]으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신(meciful god)에 대한 경건한 믿음이었다. 대부분의 비문은 왕조릉 위한 형식적인 기도이지만, 주된 관심은 부모가 구원받고 극락(paradise)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중략)… 간단히 말해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에게 부처는 한대(漢代) 무덤 예술에서 서왕모(西王母)가 했던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자애로운 신(loving god)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던 것이다.[각주:11]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민중에게 부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러하다. 중국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민중은 죽은 부모가 염라대왕을 포함한 10명의 재판관, 즉 시왕(十王)에게 무사히 재판을 받고 극락에 태어나고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이런 재판에서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해 주는 역할로서 등장한다. 과연 석가모니 부처는 신이 아닌가?

  부처가 신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여러 경전에서 숱하게 발견되며, 석가모니 자신 또한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엘리트 불교 철학자들은 이를 지켜 석가모니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일반 민중의 눈에 석가모니는 그저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자애로운 신”의 모습일 뿐이었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동진(東晋) 조정에서 환현(桓玄, 369-404)과 혜원(慧遠, 334-417)이 ‘승려는 왕에게 절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언쟁을 벌이고 제(齊)ㆍ양(梁) 시기에 혜원의 제자들과 범진(范縝, 450-515)이 신멸(神滅)과 신불멸(神不滅)에 관한 논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민중들의 머릿속에서는 유교ㆍ불교ㆍ도교의 삼교가 한데 뒤섞여 공존하고 있었다. 다원주의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적어도 엘리트 사상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 이들 종교는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결국 사상사라는 학문은 몇몇 특정 인물들의 생각을 집중 조명하는 것을 넘어, 당시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 과연 무슨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필자가 본고에서 지나치게 철학자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을 유리하여 바라본 것에 대하여 일종의 성찰적 차원에서 한 가지 검토를 해봄으로써 해당 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즉 철학자들의 생각은 일반 대중의 생각과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어서, 철학자들의 철학이 일정한 형태로 변주되어 대중의 생각에 안치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피터 레일톤(Peter Railton, 1950-)이나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철학은 우리의 머릿속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우리는 나름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하는 대로 법률이 지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그르다고 생각하며, 반대로 많은 쾌락을 산출하는 행위는 가치 있다고 여긴다. 철학적 사유는 나름대로 초보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대중의 생각에 담긴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민족주의의 여러 복잡한 관념을 머릿속에 그저 헝클어놓은 채 “북한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라든지 “조선족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분명 어떠한 민족주의적 철학 사상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 형태가 세련되지(sophiscated) 못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는 엘리트 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민중에게로 전파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 독립 혁명 이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슨 일들이 벌어졌길래, 그들은 민중의 혁명을 이루어 냈는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파리의 아녀자들과 빈민들에게 전달되었는가?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생각은 고상한 철학자들과 혁명가들의 생각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함께 혁명에 참여했으리라. 서양에 대해 무지한 필자의 능력 부족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동양으로 돌려보면, 우리는 거기서 엘리트 철학자들의 사상이 일반 민중에게 전래되는 경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 철학은 오늘날에도 종종 열리는 법회(法會)에서 스님들의 강연을 통해 평범한 불교 신자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러한 법회에서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변문(變文)’이다. 변문은 강연 내용, 강연 대상, 강연 지역에 따라 다양한 향태로 변주되었으며 불교 경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때로는 과감한 비약과 생략, 변주를 통해 ― 때로는 불교 교리에 반대되는 내용일지라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추가하여 ― 불교 문헌을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이런 변문을 통해 우리는 ‘불교의 중국화’를 살펴볼 수 있다. 불교 경전을 쉽게 설명하고자 중국의 민속 신앙과 전통 풍습을 상당 부분 강연 내용에 포함하였던 것이다.[각주:12]

 

3. 사상사 교육의 의미: 사상사를 왜 교육해야 하는가?

 

  인민 대중의 생각이 진리인가? 여기에 긍정의 대답을 취하면 대중이 곧 진리라는 어색한 입장으로 귀결된다. 당연히 대중의 생각이 곧바로 진리일 수는 없으며, 실제로 대중의 생각이 곧 진리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를 중국과 한국, 일본의 민중이 제아무리 신으로 숭배하였다고 한들 그것은 석가모니 본연의 입장이 아니며 석가모니는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즉 동아시아의 대중은 석가모니의 사상을 완전히 곡해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틀린’ 사상을 왜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사상사 교육은 우리의 삶과 사상을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윤리와 사상』 교과서애서 학생들이 만나는 유교, 불교, 도가 사상은 따분하고 지루하며 복잡한 용어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천리(天理)니 인욕(人欲)이니 정혜(定慧)니 일심(一心)이니 하는 용어들을 들여보고 있노라면, 교과를 배우는 학습자의 흥미는 자연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교 신자라고 할지라도 불교 윤리를 공부하다 보면 오히려 복잡한 교리 탓에 불교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마치 자신의 삶과 유리된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현실에서 마주하는 윤리 사상들은 대체로 철학사보다는 사상사에 가깝다. 우리는 언제나 절에 가서 기와를 사서 소원을 적으며, 연등회(燃燈會)가 있는 날이면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청계천에 나아가 연등을 구경하고 소원을 빈다. 도교나 민간 신앙의 경우 어떠한가? 때때로 사주를 보러 점집에 들르는 친구의 모습은 연초마다 쉽게 볼 수 있으며, 무당을 찾아가 소원을 빌고 한 해의 운세, 자녀의 학운을 묻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굿과 부적은 아직도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지만 막상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사상사 교육은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생활 밀착형 교육이다.

  둘째, 사상사 교육은 사상을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와의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사상과 다른 분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이기론ㆍ심성론 같은 ‘철학사로서 유교’이 아니라 ‘사상사로서 유교’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유교와 여타 분야의 관계를 깊이 조망할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하였는가? 복잡한 예법 논쟁으로서 현종조 예송 논쟁(禮訟論爭)이 지니는 정치적 의의는 무엇인가? 예송 논쟁은 단지 공리공담이 아니라 인조로부터 비롯한 효종(r. 1649-1659)ㆍ현종(r. 1659-1674)의 정통성 문제와 왕-사대부의 관계에 관한 매우 정치적인 문제였다. 조금 뒤 시기의 호락 논쟁은 어떠한가? 그것 또한 병자호란 이후 청(淸)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태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꼭 정치 분야가 아니더라도 사상사 교육은 다른 분야와 접목할 수 있다. 중세기 중국에서 불교가 경제적ㆍ사회적으로 지닌 지위는 무엇인가? 수많은 귀족과 황족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재산을 절에 바쳤는데, 과연 그들이 투철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인가? 한편으로 중국 불교의 수용은 문화사적인 부분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불상 조각과 불교 회화 같은 불교 미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산스크리트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접한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언어에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중국어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에 수많은 운서(韻書)들이 탄생하였으며, 이는 마침내 정형시의 일종으로서 근체시(近體詩)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사상사 교육은 사상을 다른 분야와의 연결성 속에서 파악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다.

 

4. 사상사 교육의 근변

 

  그렇다면 이제 사상사라는 학문, 그리고 사상사 교육은 어떤 것을 재료로 삼을 수 있는지, 사상사의 이웃에는 누가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상사는 이들의 연구 성과를 적절히 사용하여 연구를 진척할 수 있을 것이고, 사상사 교육 또한 이들 주변 교과와 협력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명 이상의 교사가 서로 협력하여 수업할 수 있겠으며,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내용을 두 번 이상 다른 관점으로 배움으로써 학생은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사상사와 그 근변의 학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지 주된 내용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사상사와 철학(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본고에서 꾸준히 사상사와 대비하여 제시하였던 철학(사)이다. 고등학교 교과로 표현한다면 윤리 교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 철학사와 사상사는 그렇게까지 대립하는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필자는 사상사 교육이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철학사 교육이 그렇지 않은 듯이 표현하였지만, 철학사 교육 또한 그 자체로도 훌륭한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수 있다. 사실 교육이 생화과 밀착하냐 유리되냐는 교사가 어떻게 ‘교과의 심리화(psychologization of subject-matter)’를 잘 일으킬 수 있는지 그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논리적ㆍ윤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으며, 거기서도 나름의 실생활 적용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리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한 다음, 나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고 원조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며, 사랑과 우정이 공리주의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철학사 역시 얼마든지 생활 밀착형 교육이 될 잠재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상사 교육과 철학사 교육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엘리트 철학자들의 철학 또한 그들의 ‘생각’이고, 어떤 경로로든 간에 일반 대중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므로 사상사는 엘리트 철학자들의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서 서술될 수 없다. 동아시아의 민중이 불교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연구하는 학자가 불교 철학의 주요 개념에 무지하다면 단 한 발자국도 연구를 진척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철학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사상사는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각 시대마다 논의되었던 중요한 주제들이 다음 세대에서 일반 민중에게 전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서 주희가 성리학의 계보를 조작했다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자. 설령 주희가 중국 도학의 계보를 조작하였다고 한들, 20세기가 되기까지 이루어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그러한 계보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그것을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사상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늘 철학사와 사상사를 함께 두고 비교해 가면서 연구를 진척해야 한다. 우리가 철학사로부터 어떤 오해를 얻는지 그리고 진실은 무엇인지를 함께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오해가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몇백 년을 지속해 온 오해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오해라는 점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각주:13] 사상사와 철학사가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본고의 앞부분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하므로 이만 지면을 줄인다.

 

2) 사상사와 고고학

 

  사상사는 반드시 문자 자료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고고학이 제공해 주는 방대한 양의 출토 자료가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방대한 출토 문헌들을 역사 교과서에서 종종 마주하곤 하지만 그것이 지니는 깊은 사상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사상사는 그런 유물들이 도대체 과거 사람들의 어떤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림 2>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石獸) <그림 3> 희평 원년 진숙경(陳叔敬) 진묘도병(鎭墓陶甁)

 

  <그림 2>[각주:14]는 우리나라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석수(石獸)이고, <그림 3>[각주:15]은 중국 시안(西安)에서 출토된 희평(熹平) 원년(172)에 사망한 진숙경(陳叔敬)의 묘에서 발견된 진묘도병(鎭墓陶甁)이다. 비록 생김새와 특징은 다르지만 두 유물은 모두 동일한 기능을 위하여 제작되었는데, 바로 ‘진묘(鎭墓)’이다. ‘무덤을 진압한다’는 뜻을 지닌 이 작업은 지하의 신들에게 사망자를 착오 없이 저승으로 이장할 것을 명령함과 동시에 형벌로 가득 찬 저승에서 사망자가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을 것, 그래서 무덤 밖으로 도망쳐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 죽은 이와 산 사람의 경계가 뚜렷하게 잘 단속할 것 등을 부탁하는 것이다.[각주:16] 위생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집안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때 소위 ‘줄초상’이 나는 경우가 다소 있었는데, 고대 중국인들은 이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즉 사람은 죽은 후에 지옥(地獄)에서 형벌을 받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 노동하는 이 비탄한 사후 세계의 현실에서 위안을 받고자 산 사람을 사후 세계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앙화(殃禍)’ 또는 간단히 말해 ‘앙(殃)’이라고 불렀는데, 진묘 작업은 이 앙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는 지하의 신들에게 망자를 단단히 단속하여 지하의 지옥으로 안내하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때로는 돌에 문서로 새겼으며, 때로는 질그릇 병[陶甁]에 글로 쓰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무령왕릉처럼 짐승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진묘 작업을 위해 병이나 돌에 새긴 글을 진묘문(鎭墓文)이라고 한다. 고고학 증거는 이렇게 2-6세기 동아시아의 보통 사람들이 믿었던 ‘생사관’을 ― 단순히 윤리 교과서에서 살펴보는 지리한 유교ㆍ불교ㆍ도가의 생사관이 아니라 ― 즉 보다 실질적인 생사관을 보여줄 수 있다.

 

  앞서 필자는 사상사 교육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영역과 연계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진묘문은 도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바로 이 도교의 중요한 특징인 ‘문서 행정’이 진묘문에서도 드러난다. 고대 중국은 전근대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체계적인 관료제를 형성한 국가였고, 이러한 면모는 도교의 상장(上章) 의례 같은 곳에 반영되었다. 즉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玉皇上帝) 이하 여러 신하들에게 올리는 문서를, 마치 오늘날 우리가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서를 작성하듯이 체계적으로 양식을 갖추어 작성한 후 하늘에 올려보낸 것이다. 진묘문에서는 그 대상이 하늘이 아니라 지신(地神)들이라고 하겠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도 관료 기구에 속해 있는 신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망자의 ‘부동산 매매’[각주:17], ‘전입 신고’[각주:18], ‘노역 부과’ 등을 주관한다. 즉 고대 중국의 정치ㆍ사회적 면모인 ‘문서 행정’이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관념에 반영된 것이다. 관료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다른 지역의 생사관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3) 사상사와 미술사

 

  이번에는 미술사와 사상사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철학 문헌, 역사 문헌, 출토 문헌뿐만 아니라 다양한 회화 자료를 통해서도 사상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한 사상사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학습자의 흥미는 더욱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근대 일본에서 ‘미술(美術)’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사상사와의 연관 속에서 몇 가지 미술 작품들과 함께 살펴볼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미술’ 개념은 일본의 미술가들을 자극하였고, 1877년 제1회 내국 권업 박람회(內國勸業博覽會)에서는 공부미술학교 학생들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양화(洋畫) 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은 화가가 바로 고세다 요시마쓰(五姓田義松, 1855-1915)이다. 그는 고메이 천황(孝明天皇, r. 1846-1867)의 초상을 수묵화 기법이 아니라 수채화로 그렸으며,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r. 1867-1912)의 호쿠리쿠(北陸)ㆍ도카이도(東海道) 순행에 따라가 41점을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 4>는 그가 그린 「고메이 천황초상(孝明天皇肖像)」이고, <그림 5>는 메이지 천황의 순행을 담은 그림인 「메이지 11년 호쿠리쿠ㆍ도카이도 순행도」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王政復古)’를 단행한 신정부는 이제 근대 국민 국가(nation state)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일본인들의 머릿속에서 ‘○○번(藩) 사람’이라는 의식을 지우고 ‘대일본제국 신민(국민)’이라는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신정부의 각료들은 막부 시대에는 숨겨진 존재였던 천황을 시각화하겠다는 발상에 다다랐다. 그 방법은 천황의 순행과 초상화였다. 천황은 자신을 민중의 시선 앞에 드러냈고, 민중과 국토는 천황의 시선 앞에 놓였다.[각주:19] 고세다 요시마쓰는 천황을 제작함으로써 천황과 황실을 민중 앞에 가시적인 존재로 만들었으며, 메이지 천황의 순행에 동행하여 그림을 그렸다. 독특한 점은 41점 중 1점만이 풍경을 둘러보는 메이지 천황의 모습이고 나머지 40점은 모두 메이지 천황이 ‘둘러본’ 주변 풍경을 그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천황이 직접 가지 못한 순행지 근처 명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고세다의 시선은 천황의 시선을 대리하였으며, 그는 서양 화법 ― 특히 원근법 ― 에 기초하여 이전의 일본 산수화와 달리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천황의 시선이 닿은 민중과 국토를 질서정연하게 객체로서 표현하였다.[각주:20]

<그림 4> 五姓田義松, 「孝明天皇肖像」, 1878, 종이에 수채, 103.4×67.5cm, 궁내성 소장 <그림 5> 五姓田義松, 「明治十一年北陸東海道巡行圖」, 1878, 합판에 유채, 31.6×45cm, 궁내성 소장

 

  이렇듯 얼핏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미술 작품에도 사상사는 담겨 있다. 그것을 그린 이도 어쨌든 한 명의 일반 사람이고 그의 생각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상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국 시기 일본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소학교에서 불이 나 학생과 교사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대피하였는데, 갑자기 교사 한 명이 천황의 어진(御眞)을 화재로부터 구해야 한다며 불타는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가 사망했다는 일화이다. 우리는 여기서 근대 일본 ‘신민’이 지녔던 사상, 그 때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위와 같은 미술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응향

 

  1. Quentin Skinner, “What is Intellectual History?,” In: What is History Today?, ed. Juliet Gardiner, Basingstoke; Macmillan Education, 1988, pp. 109-110. [본문으로]
  2. 차라순, 「사상사란 무엇인가」, 『韓國思想史學』 52, 2016, p. 13. [본문으로]
  3. ‘동아시아사’ 교과에서도 몇몇 부분에서 사상사의 서술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비중이 한국사보다 크지 않으며, 몇몇 철학자들과 종교가들의 이름을 암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본문으로]
  4. 葛兆光, 이등연 외 옮김, 『중국사상사 1: 7세기 이전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 서울: 도서출판 일빛, 2013, p. 29. [본문으로]
  5. ‘사상사’라고 따옴표를 치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듯이 그리고 거자오광이 주장하듯이 사상사는 단지 철학사를 가리키는 용어가 이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까지는 ‘사상사’라는 이름을 달고서 철학사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다. [본문으로]
  6. 상게서, p. 30. [본문으로]
  7. 상게서, pp. 31-32. [본문으로]
  8. 이 그림은 본래 동양사학과 조성우 교수님께서 수업에서 사용하신 그림이다. [본문으로]
  9. 상게서, p. 32. [본문으로]
  10. 小島毅, 『宋学の形成と展開』, 東京: 株式会社, 倉文社, 1999의 제3장 「道」 참조. 주돈이 외에 장재(張載) 역시 마찬가지의 사후 현창 과정을 거쳤다. [본문으로]
  11. Mark Edward Lewis, China Between Empires: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pp. 209-210. [본문으로]
  12. 정병윤, 「변문을 통해 본 불교경전의 문화적 변용과 해석」, 『中國學報』 70,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2017, p. 152. [본문으로]
  13. 가령 명ㆍ청대 신사(紳士) 계층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주희의 계보 조작이 엄연한 사실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겠으나 동시에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인 명ㆍ청대에는 주희가 제시한 도학의 계보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로서 당대인들에게 수용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다소 비근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고대에 세상이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 있는 것과 같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연구함과 동시에 지구는 사실 둥글다는 사실을 까먹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본문으로]
  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국보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1620000&pageNo=1_1_2_0 (2022.02.22. 검색) [본문으로]

  15. 尹在碩, 「중국 고대 『死者의 書』와 漢代人의 來世觀 ― 鎭墓文을 중심으로」, 『中國史硏究』 90, 중국사학회, 2014, p. 53. [본문으로]
  16. 趙晟佑, 「後漢魏晋 鎭墓文의 종교적 특징과 道敎 ― 五石을 중심으로」, 『東洋史學硏究』 117, 동양사학회, 2011, p. 51. [본문으로]
  17. 죽은 자를 위해 무덤을 쓸 때 형식적으로 지전(紙錢)을 태우고 매지권(買地卷)을 사용하여 저승의 관리로부터 이 땅을 무덤을 위해 쓰기로 샀다는 의식을 치른다. 이 작업 자체는 진묘와는 큰 상관이 없다. 여하튼 무령왕릉에서도 해당 유물이 발견되었다. [본문으로]
  18. 아무개가 모월 모일 모시에 죽어 이제 명계(冥界)에 들어간다는 것을 필자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본문으로]
  19. 오윤정, 「메이지미술과 일본의 ‘근대’ ― 메이지미술회를 중심으로」, 『일본비평』 19,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p. 135. [본문으로]
  20. 상게 논문, p. 136. [본문으로]

미래형 교육과정


  올해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미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개정 교육과정은 앞으로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하며, 이를 길러주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껏 학교는 학문적 지식만을 알려주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앞으로의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곳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부터 본격적으로 미래를 위한 교육을 강조했지만, 필자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본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문과 이과가 통합되고 선택과목이 다양해졌는데, 이것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한 교육을 실행시키기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아래의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일부를 보며 선택과목의 증가와 미래형 교육과정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교육은 삶의 맥락에 교육적 내용을 적용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당면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모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각주:1]


  이 문장에는 두 가지 교육의 목표가 담겨있다. 첫 번째는 교육적 내용을 삶과 연결해 사회적 변화에 스스로 대응하는 것, 두 번째는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다. 이 두 가지의 목표와 개정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증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우선 이상적으로는 선택과목이 증가하면, 두 번째 목표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 목표인 교육적 내용을 삶과 연결하고 대응하는 것은 선택과목의 증가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선택과목은 학생들의 시야를 제한해 다양한 지식을 배울 기회를 막을 수도 있다. 선택과목은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배웠던 과목을 선택적으로 배우도록 만들어 여태껏 학생들이 배웠던 과목 일부만 배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택과목의 증가는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의 목표와는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선택과목의 다양성에 감춰져 주목받지 못하는 공통 과목에서 선택과목의 증가와 2022 개정 교육과정 첫 번째 목표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과목이 다양해지고 난 후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워야 할 과목들이 생겼다. 공통 과목은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배우는 기초 과목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모든 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을 담아놓은 과목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경우에는 모든 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을 과학적 소양이라 부른다. 과학적 소양을 기르면 학생들이 삶과 과학을 연결해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소양


  과학적 소양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 역량이 다르고, 시대적 배경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각주:2] 교육부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적 소양이라고 정의했다.[각주:3]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과학적 소양은 무엇일까? 나는 모든 사람이 방대한 정보 속에서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초기 유럽에 바이러스가 전파를 통해 퍼진다는 낭설이 있었다.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소리임을 알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진짜라고 생각해 기지국을 폭발시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이전에도 많은 정보를 스스로 판단하고 걸러내는 능력은 이미 필요하긴 했다. 예전과는 달리 과도하게 많은 정보를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커뮤니티로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이 중 정확한 정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 과학 교육에서의 핵심이자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하며, 통합과학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 과학의 본성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은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것이다.[각주:4]  과학의 본성은 과학에 대한 인식론으로서 과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 공통적인 견해를 말한다.[각주:5] 과학의 본성은 과학의 어떤 측면을 바라볼지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과학의 본성을 김영선(2013)이 제시한 NOSAT를 참고하여 정리한 표를 가져왔다.[각주:6]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위의 표 중 이론, 관찰 추론, 사회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각주:7] 이론은 과학적인 지식 그 자체이고, 관찰 추론은 자연을 탐구하고 원리를 생각하는 것이며 사회문화는 과학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속이 기반이어야 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표의 과학의 본성 중 과학적 방법과 검증 가능성을 주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 과학적 방법은 새로운 원리나 기존의 지식을 실험이나 경험과 같은 증거를 가지고 탐구하는 방법이며, 검증 가능성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소양이다. 어떤 가설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할 때 들어가는 전제 조건들은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사실이어야 하고 누구나 같은 실험을 했을 때, 모든 가설의 단계에서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며, 이를 검증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정보를 올바르게 선별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므로 어떤 정보를 검증 가능성을 기반으로 이해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스스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과학의 본성 영역 중 몇 가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골고루 가르치는 것이 좋다. 균형 있게 가르쳐야 올바른 과학적 인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법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법을 크게 전달 매체와 교육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달 매체는 교사의 수업과 교과서 등이 해당하며, 교육 방식은 탈맥락적 접근과 맥락적 접근, 암시적 접근과 명시적 접근이 있다.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식 중 맥락적 접근은 과학의 교과적인 내용을 가르칠 때 과학의 본성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고, 탈맥락적 접근은 가르치는 내용과 관계없이 과학사나 과학철학 등 과학의 본성을 다루는 새로운 과목을 도입해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모형을 가르칠 때, 맥락적인 방법으로 과학의 본성 중 잠정성을 함께 가르친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된다. 

 

그림1. 천재교육 중2 1단원 물질의 구성 중 일부 (19p)


  위 사진에서 보면 단순히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돌턴이 원자설을 제안했지만, 그 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원자모형이 구체화 됨을 함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는 교과서에 맥락적으로 과학의 잠정성을 넣어 가르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접근 방식 중 암시적 접근과 명시적 접근에 관해 보면, 암시적 접근은 과학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암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하며, 명시적 접근은 과학의 본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아래는 특정 교과서에서 과학의 본성 중 사회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그림2. 천재교육 중3 2단원 기권과 날씨 중 일부 (86p)


  위 그림에서 잠정성이 드러난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다. 단순히 수은 기둥 76cm의 압력에 해당하는 대기의 압력이 1기압이라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고, 토리첼리가 압력을 1기압으로 정의했다고 기압의 정의를 내린 주체자를 서술함으로써 과학의 본성 중 사회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명확하고 맥락이 있는 말을 더 이해 잘하듯이 명시적이고 맥락적인 방식이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데 더 효과적이다.[각주:8] 그래서 모든 학생이 배우는 통합과학에서는 과학의 본성을 명시적이고 맥락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통합과학에서 드러난 과학적 소양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된 통합과학의 교과서 중 1단원을 살펴보며, 과학의 본성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 있는지 찾아보았다. 1단원은 단원 자체가 빅뱅우주론이라는 이론과 빅뱅우주론이 성립되기까지의 논쟁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과학의 본성이 드러나는 서술이 꽤 있었다. 직접 다른 단원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정명현의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논문을 보고 통합과학 교과서에서 과학의 본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연구 결과 통합과학에서 전체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명시적인 방식보다는 암시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과학의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 서술도 많았다고 한다.[각주:9]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의 1단원 우주 초기의 원소 중 우주론에 대한 논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을 분석해보았다.

 

그림 3.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14p)


  과학의 본성 중 잠정성과 이론을 교과서에 넣었으므로 맥락적이며, 역사적인 흐름과 함께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 명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단원의 다른 부분에서는 암시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아래 내용은 우주의 원소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스펙트럼에 대한 내용이다.

 

그림 4.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20p)


  마지막 문장에서 스펙트럼으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를 알아낼 수 있고 이것이 우주를 연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학의 본성 중 검증 가능성을 전제로 한 서술이며, 과학의 본성을 암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교과서 별로 같은 내용을 서술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했다. 임의로 교과서 2개를 지정해 주기율표를 도입하는 부분을 비교해보았다.

 

그림 5.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28p)

 

그림 6. 천재교육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결합 중 일부 (33p)


  첫 번째 교과서에서는 “주기율표는 (...) 원소 분류표이다”라는 서술로 주기율표의 정의를 단순하게 서술했지만, 두 번째 교과서에서는 과학자들이 주기율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아울러 두 번째 교과서 마지막 문장에, “그는 (...) 주기율표로 나타내었다”라고 함으로써 과학의 본성 중 관찰 추론과 사회적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를 주로 분석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 방식에 따라서도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식과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탐구 실험의 도입


  과학 탐구 실험은 과학 실험을 하는 과목으로, 과학의 본성 중 관찰 추론이나 과학적 방법을 맥락적으로 도입한 과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론, 사회 합의, 관찰 추론에 치우쳐 있는 과학의 본성을 균형적으로 가르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2018년 발행된 한국 과학 교육 학회지에서 한 학교의 과학 교사를 인터뷰하며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 번째로는 동료 교사와 분업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여러 명이 과학 탐구 실험을 함께 담당하기가 어려워 혼자서 책임지는데, 이 때문에 협업을 통한 과목의 개발이 어렵다고 했다. 두 번째로 통합과학과 연계에 대한 문제점도 이야기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한 과학 탐구 실험 연수에서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이 다루는 내용이 같으니 연계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했는데, 또 다른 연수에서는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독립적으로 진행하라 말했다고 한다.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로 평가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과목 특성상 수행평가 형식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데, 객관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정 비율 지필평가를 진행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이는 탐구 위주라는 과학 탐구 실험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별 실험실과 도구들이 천차만별이라는 문제점도 있었다. 과학 탐구 실험은 실험 위주의 과목인데, 이제까지 과학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 학교가 많았기 때문에 실험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학 탐구 실험으로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선 위의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각주:10]

 

앞으로는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은 문과 이과 통합 체제에서 중요하게 떠오른 과목이지만, 과학의 본성을 균형 있게 도입하지 못했고, 과학의 본성에 명시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도 부족한 부분을 보였다. 과학적 소양은 아이들이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 요소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하며,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적어도 교과서는 암시적인 방식보다는 명시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드러내야 하며, 과학의 본성 중 몇 가지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소양은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한 것이므로 수업에서도 과학적 본성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과학을 본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육

  1. 교육부 (2022), 교육과정정책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본문으로]
  2. Kyunghee Choi; Hyunju Lee; Namsoo Shin; Sung-Won Kim & Joseph Krajcik (2011), Re-Conceptualization of Scientific Literacy in South Korea for the 21st Century, JOURNAL OF RESEARCH IN SCIENCE TEACHING, VOL. 48, NO. 6, 670–697. [본문으로]
  3. 교육부(2015), 과학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9]. [본문으로]
  4. 이영희(2014). 한국과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과학의 본성 비교 분석. 한국 과학교육학회지, 34(3), 207-212. [본문으로]
  5. Lederman, N.G. (1999). Teacher`s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science and classroom practice: Factors that facilitate or impede the relationship. Journal of Research in Science Teaching 36(8) 916-929. [본문으로]
  6.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11. [본문으로]
  7.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15-16. [본문으로]
  8. 강석진, 김영희, 노태희 (2004). 과학사를 이용한 소집단 토론 수업이 학생들의 과학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4(5), 996-1007. [본문으로]
  9.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33-34. [본문으로]
  10. 신소연; 박철규; 이창윤; 홍훈기 (2018),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과학탐구실험’ 실행에 대한 사례연구 -문화역사적 활동이론(CHAT) 측면에서의 이해,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Science Education, 38(6), 885∼899.S [본문으로]

들어가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 이후, 우리는 두 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주했다. 이 시험들의 총평에는 전례 없이 ‘코로나 격차’나 ‘교육 격차’ 같은 말이 따라다녔다. 작년 수능 출제 브리핑에서도 코로나 19 확산이 ‘교육 격차’ 심화에 미친 영향도 고려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위수민 출제 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한 교육 격차 우려 제기는 인정하지만 두 차례 모의평가를 통해 학력 양극화 현상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았으며, 2022 수능은 두 차례 시행된 모의평가 출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제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체 ‘교육 격차’를 왜 사람들은 주목하고 또 우려하는가? 이것은 코로나 19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교육 격차가 뭐길래

 

교육 격차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성, 지역, 계층) 간에 나타나는 교육결과의 차이와 그러한 교육결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사실 코로나 19 때문에 교육 격차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원래 존재하던 교육 격차가 더 심화되어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코로나 19 확산 탓에 공교육은 ‘원격 수업’이라는 새로운 학교 운영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해 학생들의 학습격차가 커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26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교원 1만8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중등 원격 교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올해 1학기 원격 수업으로 학생 간 학습 수준 차이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학습 수준 차이가 매우 심화했다는 응답은 9.9%였고, 그렇다는 응답은 44.6%였다. 원격 수업을 통한 학업 성취도가 기존 등교 수업과 유사한지를 묻는 질문에 교원들은 매우 아니다 15.9%, 아니다 48.7%, 보통이다 23.0% 등 총 64.6%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학교급별로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의 학업 성취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5점 척도로 환산했을 때에도 초등학교(2.23점)와 중학교(2.44점), 고등학교(2.35점) 모두 부정적 평가가 높았다. 5점에 가까울수록 두 수업의 차이가 없고 0에 가까울수록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원격 수업이 학습 격차 확대를 야기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응답자의 75.7%는 원격 수업 이후 상위 10%의 학생들 성적은 유지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중위권 학생들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응답은 60.9%, 하위 10% 학생들의 성취도가 떨어졌다는 의견은 77.9%에 달했다. 교원들은 교육 격차가 코로나 19 발발 초기인 2020년과 올해를 비교해도 더 커졌다고 우려했다. 등교 수업과 원격 수업이 병행될 때 가장 염려되는 부분 역시 학생 간 학습 격차(39.4%)였다.[각주:2]

 

실제 교육 현장 속에서는

 

과연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지금의 교육 격차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직 고등학교 교사 1명과 2022년 고교 졸업생 2명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교육 격차의 배경: 당연함이 퇴색되는 순간

 

이주양 서울 백암고 교사는 코로나 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공부가 잘 안 된다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일이 매우 빈번해졌다”며,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득 필자는 본인이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던 2020학년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두가 처음 마주한 상황에 우왕좌왕했고, 결국 등교마저 미뤄지게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길어진 자습 시간을 이유로 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필자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차라리 학교라도 가면 다른 모든 것도 선명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개학한 후에도 한참 동안 온라인 클래스에 들락날락해야 했었다. 날마다 하는 자가 진단에 권태를 느낄 5월 중순 무렵, 대면 등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학교에 가도 별반 다를 것 없이 계속 이어지는 자습 시간과, 정리되지 않은 부산한 학교 시스템에 다들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에도 학교에 대해 불평하곤 했지만, 이미 비대면의 자유(?)를 맛본 이들이 말하는 투정들에는 이전과 다른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항간에는 ‘누구는 학교를 빼고 한의원에 다닌다더라’, ‘누구는 아프다고 하고 스터디 카페에 간다던데…’와 같은 소문도 돌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코로나 19가 시작된 무렵부터 공교육의 권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갔던 학교에서, 필자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기분이 종종 들었다.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에 가야지!’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었다.

 

펜데믹 이후, 선생님들은 종종 ‘(공부)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는 게 더 심해졌다’라고 말씀하시며 탄식하셨다. 온라인 클래스의 강제력이 현저히 떨어졌던 탓에 학생들의 생활 습관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아침마다 모닝 콜을 돌리면서까지 학생들이 온라인 출석 체크에 늦지 않도록 독려하셨지만, 대면 수업만큼의 강제성을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필자 역시도 출석 체크만 하고 다시 잠들어버리는 일상을 반복하곤 했다. 수업도 집중이 잘 안 되어 종종 틀어놓기만 하고 다른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실제 성적상의 차이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다른 학우들의 성적을 따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고를 준비하며 선생님께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교육 격차가 발생했냐”는 질문을 하였고, 선생님은 “2021학년도에는 처음부터 격주 등교가 실시 되었음에도 원격 수업 시 발생하는 ‘물리적인 현장감’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 의욕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극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했다. 정말로 이러한 환경 변화가 성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필자는 본인과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다른 학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했다. 필자는 이미 고등학교를 떠난 지 1년이나 지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2022학년도 목동고 졸업생 A양과 진명여고 졸업생 B양)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의 교육 격차를 조망해보려 했다. 사진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의 백암고등학교 3학년 8반 교실.

교육 격차의 배경: 희미해진 학교

 

필자는 본인과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다른 학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했다. 필자는 이미 고등학교를 떠난지 1년이나 지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2022학년도 목동고 졸업생 A양과 진명여고 졸업생 B양)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의 교육 격차를 조망해보려 했다. 사진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의 백암고등학교 3학년 8반 교실.

 

A양은 코로나 19 확산 이전에 비해 비교과 활동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2년 전만 해도 토론 대회, 과학 캠프, 수학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회조차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친구들 혹은 선후배들과 협업 능력을 기를 수 없게 되면서,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2년 동안 받았던 수업의 질은 어땠냐는 질문에, “전반적인 공교육 수업의 질이 낮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예 수업하지 않고 학습 자료로만 수업을 대체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서 펜데믹 이후 사교육의 영향력이 더 커졌냐는 질문에 A양은 “더 커졌다”며, “격주 등교나 단축 수업 등으로 공교육 시간이 줄어든 만큼, 학원에서 학생들을 불러서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심한 경우 온라인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에서 학생들을 불러 학교 수업에 접속만 한 후 학원 수업을 듣게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야간 자율 학습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 이를 독서실이나 학원에 가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대답했다. 한편, B양 역시 사교육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특히 학원보다도 시공간의 제약이 적은 인터넷 강의 사이트의 영향력이 커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한, 학교 수업에 나가지 않고 학원에 가본 적 있냐는 질문에 B양은 “논술 준비하는 문과 친구들이 그러는 경우를 봤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A양은 온라인 클래스가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는 것은 알지만, 많이 미흡했다고 느꼈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A양의 학교는 EBS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을 이용했는데, 코로나 19 확산 초반인 2020년에는 실시간 강의가 아닌 정해진 기간 내에 수강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강의를 틀어놓기만 하고 듣지 않는 등 전반적인 학생들의 생활 습관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대부분 실시간 강의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단점들이 어느 정도 보완되었지만, 그럼에도 A양은 대면 수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양의 경우, “비대면이다 보니 어린 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집에서 종종 목격한다”며, “아무리 좋은 수업이어도 수업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B양도 역시 대면 수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악순환

 

이번에는 코로나 19 이후의 교육 격차가 이전의 교육 격차와 다른 특징이 있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에 대해 이 선생님은, “특별히 다른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빈부 차이가 아주 심화됐다”며, 가정에서 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선생님은 이런 경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보통 공교육의 주요한 역할이 학습 지도라고 생각하겠지만, 코로나 19 이후 돌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력 붕괴는 모든 선생님이 말하는 부분”이, 현재 성적 분포에 “중간이 없다”며 교육 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심화된 교육 격차가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 즉 빈부격차가 고착화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0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50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는 9만9000원으로 5.1배 차이가 났다. 사교육 받는 학생들만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월 소득 800만원 이상의 사교육 참여율은 80.1%였지만, 200만원 미만은 39.9%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각주:3] 지난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난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4010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원격 수업 진행으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학습 격차 심화(61.8%·복수 응답)’였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가정 환경의 차이(72.3%)’였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부모의 소득에 따라 원격 수업 환경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가정의 학생 22.6%는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학습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가정의 학생은 6.2%만이 같은 취지로 응답해 둘 간의 차이는 3배 이상 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10~12월 한국리서치를 통해 지원아동 5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수업에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나만의 학습공간이 없어서 집중하기 어렵다(32.9%·복수응답)’ ‘컴퓨터·노트북·태블릿PC 등이 부족하거나 사양이 낮다(33.1%)’고 대답했다.[각주:4]

 

실제로 이 선생님은 디지털 기기로 인해 교육 격차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노트북이나 고급 태블릿을 쓰는 학생과 핸드폰 하나 있는 학생은 같은 수업을 들어도 흡수할 수 있는 학습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지원을 나서서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보편적인 디지털 기기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공교육이 서 있는 곳

 

그렇다면 현재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22년 1월 13일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연 제3차 교육회복지원위원회 회의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역별로, 또 전국 단위로 교육 격차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우선 지역별로 겨울 방학에도 중단 없는 교육결손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온라인 또는 방역 수칙을 준수한 소규모 대면 방식 등으로 교과 보충,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예로, 제주도의 찾아가는 문해력 캠프를 들 수 있다. 나아가 전국적인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초‧중‧고 학생 131만 명(전체 초·중·고 학생의 25.7%)에게 교과 보충을 지원하고, 일반계고 1‧2학년 학생 37,800명에게 학습‧진로 등을 컨설팅하였다. 아울러 초‧중‧고 학생 263만 명(전체 초·중·고 학생의 51.3%)에게 교우 관계 형성 등을 위한 사회성 함양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정신 건강 위기 학생을 대상으로 2,763개교의 방문 의료서비스를 포함하여 37,643명에게 치료비, 정신건강검사 등을 지원하였다. 그밖에도 과밀 학급을 해소하는 과정에 있으며,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주요한 계획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학습결손 회복 총력 지원을 위해 현장 교원(강사 포함)을 통한 교과보충을 특별교부금 3200억 원을 통해 확대하고, 기초학력 3단계 안전망(협력수업 선도학교, 두드림학교, 학습종합클리닉센터)도 강화하려고 한다. 두 번째, 교‧사대생 등을 중심으로 1,050억 원을 들여 ‘대학생 튜터링’ 사업을 신설하여 희망하는 모든 초‧중‧고 학생에게 학습 보충과 상담을 지원하고자 한다. 셋째, 특별교부금 205억 원을 들여 교우 관계 형성, 사회성 함양, 신체 활동 등을 집중지원하는 학교 단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212억 원을 들여 심리지원을 위한 상담, 치료비, 방문 의료서비스 등도 지원한다. 네 번째로, 이와 함께 유아‧직업계고‧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 교육여건 개선 등 교육 회복 종합방안 기본계획 과제들을 지속‧확대 지원하여 교육 회복 추진에 총력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모든 학생의 교육 회복과 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 등에 올해 9조 4,152억 원(국고 1,094억 원 포함)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려 한다.[각주:5]

 

이상과 현실

 

다만 이 모든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나아가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시·도 교육청 예산 중 ‘코로나발 교육결손 회복’에 직접 활용되는 예산은 '교과 보충 등 학습 지원'과 '학생·교원 심리 정서 지원'에 지원하는 1조 1913억 원 정도에 그친다. 교실 내 거리 두기를 위한 과밀학급 해소 예산을 합해도 1조 795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교육부가 국고에서 지원하는 학습 결손 회복 지원 예산 1050억 원을 합하면 1조9000억 원이다. 이는 17개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가 교육 회복과 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9조 4152억 원의 20.2%에 불과하다. 교육청이 학습 지원에 투입하는 8855억 원에도 교육부가 특별교부금으로 시·도 교육청에 지원하는 '교과 보충 지도' 프로그램 예산 3200억 원이 포함돼 있어 실제 교육청 부담은 5600억 원가량이다.

 

나머지 예산은 사실상 코로나 19 상황이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지원하는 예산이다. 맞춤형 지원 예산 중 가장 많은 '유아 교육 공공성 강화' 예산은 대부분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금이 차지한다. '취약 계층 맞춤형 복지 지원' 예산도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교육비와 교육 급여가 중심이다. '교육 과정 운영 및 특별 활동 지원' 예산은 각종 비교과 활동과 체험 활동, 진로 교육, 독서, 예술·체육 활동 등을 지원하는 예산이다. '유·초등 돌봄 지원' 예산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돌봄 교실 운영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방역 인력과 물품 지원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학교 방역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긴 하지만 이를 교육 회복 예산에 포함시킨 것은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계고 지원'도 이미 현장 실습과 취업 지원, 기자재 구입 등에 활용하는 예산이다.[각주:6]

 

또 다른 문제는 늘어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2학기 교육회복 관련 예산이 각급 학교에 내려온 시점은 9~10월이다. 교사들은 방학까지 3개월 남은 시점에 예산을 집행할 항목 및 대상을 정해야 했다.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의 인터뷰에서, 중등교사 B는 당시 교육회복 지원사업비 운용을 두고 “예산을 집행할 기간 자체가 짧아 일선 학교에 혼란이 적잖았다”며 “교사와 학생의 코로나19 확진이 잦아 원활한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가 당장 교육회복이라는 목적에 맞는 용처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기초 학력 사업 수요가 없음에도 예산을 배당받거나, 책을 구입해 비치할 공간이 없는 소규모 학교에 도서 구매비가 많이 교부돼 골치를 썩이는 등 교육 현장 수요와 괴리된 지원이 적잖았다고 한다.

 

또, ‘교육 회복 종합 방안’에서 핵심인 ‘학습 도움닫기 프로그램’ 운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학부모가 자녀의 교내 추가 학습 참여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등교사 B는 “학부모가 자녀 추가 학습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부진아로 낙인찍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라면서 “학업을 돕는 취지라고 설명해도 차라리 학원에 보내겠다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적잖다”고 설명했다.[각주:7]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세 가지 해결 방안을 내려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에 맞는 예산 편성이 절실하다. 우선 지금 실시하고 있는 사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방면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학교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교원들과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이상의 ‘주먹구구식’ 예산 운영은 삼가야 한다. ‘보여주기식’ 예산 편성뿐만 아니라, 그저 당장의 실적을 내기 위한 단기적인 사업 운영도 지양해야 한다.

 

둘째, 맞춤형 학습 처방 지원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이전의 수업 형태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비대면 수업 환경에 맞는 교육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노력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학생 개개인에 맞는 학습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플랫폼의 구축을 제안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개별 학생의 학습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학습 처방을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특히 민간의 우수 교육 서비스가 학교 현장에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경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각주:8] 현재 온라인 학습 플랫폼이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앞으로는 이를 잘 활용하여 학생 개개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가 흐려진 지금, 주변 환경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집에 혼자 남아있는 취약 계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행정적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주양 서울 백암고 교사는 인터뷰에서 “특히 어린이는 더더욱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아가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한 전자기기 지원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선생님은 “외국은 컴퓨터나 태블릿 PC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가며

 

사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당장 드러나는 수치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이 언젠가 모이고 쌓여 나타날, 좁혀질 수 없는 계층 간의 격차를 진정으로 경계해야 한다. 코로나 19로 가속화되는 교육 격차를 지금 막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후회할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당근주스

  1. 김양분 외, 학력격차의 변화 추이 및 해소 방안, 서울: 한국교육개발원, 2010. [본문으로]
  2. 정필재, <코로나 2년의 그늘원격수업 탓 더 벌어진 학력격차>, 세계일보, 2021. 12. 26. [본문으로]
  3. 신하영, <50.4만원 vs 9.9만원초중고 교육격차 사교육서도 5배 차이(종합)>, 이데일리, 2021. 3. 10. [본문으로]
  4. 김미란, <[코로나19와 교육 사각지대] 원격수업 17개월과 방치된 아이들>, 더스쿠프, 2021. 6. 30. [본문으로]
  5. 교육부, <3차 교육회복지원위원회 회의 개최>, 교육부, 2022. 1. 13., <https://blog.naver.com/moeblog/222620832584>, 2022. 3. 8. [본문으로]
  6. 권형진, <‘코로나발 교육결손 회복9조 투입부풀리기지적도>, news 1, 2022. 1. 13. [본문으로]
  7. 김우정, <준비 부족 드러낸 교육부의 코로나 학력 격차 해소 정책>, 주간동아, 2022. 1. 19. [본문으로]
  8. 정성민, <[소통광장-학습격차] 코로나교육불평등 해법 찾기 제언>, 뉴스포스트, 2021. 4. 7. [본문으로]

선거 연령 하향의 배경: 청소년도 ‘시민’이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다. 이러한 선거권 연령 하향 배경에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있었으며,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 관련 정책을 활발하게 마련하고, 이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거 연령하향은 광복 이래 3번째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만 21세에서 만 20세로, 2005년에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그리고 2019년이 되어서야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되었다.[각주:1]그러므로 만 18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는 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만 18세가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청소년’, ‘고등학생’, ‘미성년자’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청소년도 ‘시민’이라는 외침이 등장했으며, 이는 청소년 참정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운동뿐만 아니라 선거연령의 세계적인 흐름도 선거권 연령 하향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인 국가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흔히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들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기준 또한 선거권 연령 하향에 한몫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온전한 청소년 선거권 행사를 위하여

 

  선거연령 하향에 대한 공직선거법 개정 이전,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다. 선거연령하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았기에 만 18세로 선거 연령이 하향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이 되어서야 선거연령하향이 청소년 정책 활성화와 그들을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발판이라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현재까지도 청소년이 선거권을 향유 하는데 많은 걱정이 있다. 아직 청소년들은 정치 가치관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고,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선동당하기 쉽다고 여겨지기에, ‘선거권을 제대로,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기보다는,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잘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선거권에 대한 염려와 걱정의 시발점은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라는 인식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교육’이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어, 고3 때 국회의원 투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선거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터라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개념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투표용지를 두 장이나 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투표를 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선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투표권이 있어도 선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정치적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정치관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 혹은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선거에 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필자와 주변인들의 경험을 통해 청소년 정치교육이 시급함을 느꼈다. 최근에 만 16세로 선거연령하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2021년부터 고등교육이 무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고등교육의 의무교육을 기대할 수 대목이다. 그러므로 공교육 차원에서의 정치교육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교육의 기능

 

  정치교육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되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묵자 등이 다양한 정치교육론을 발표하며 정치교육을 강조했다. 정치교육의 내용과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치교육은 기본적으로 ‘정치체제의 유지와 안정 및 위기 시의 생존과 변화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정치교육에 관한 이론이나 연구에서 정치교육 중요성과 그 기능의 기본적인 전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각주:2]

 

   ① 정치체계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그 변혁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성향 내지 정치적 행위양식과 크게 관련을 갖는다.

 

   ② 국민들이 갖는 정치적 성향과 태도는 정치제계의 운영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③ 정치현상은 국민의 정치적 의식성향과 행위양식에 의하여 결정되며, 따라서 정치현상을 기구나 제도, 그리고 그 운영양식에 의해서 보다 국민의 정치의식 성향과 행위양식에 의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게 된다.

 

   ④ 국민은 나라에 따라 정치지도자, 정치체제 및 구조 등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인식, 감정, 태도를 갖게 되며, 정치에의 참여 양상도 달라지게 된다.

 

   ⑤ 정치에 대한 신념, 태도 등의 정치적 성향과 의식 그리고 행위양식은 학습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변화한다.

 

   ⑥ 아동기 내지 소년기의 정치적 학습은 오래 지속되며 성년기의 정치성향과 정치행위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정치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선거 연령 하향으로 인해 공교육에서의 정치교육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음을 깨달아야 하는 시기이다.

 

한국 정치 교육의 문제점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정치교육이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는가? 아마 정치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연령하향에 많은 반대와 염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단락에서는 한국 정치교육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살펴보았다.

 

  한국 정치 교육의 첫 번째 문제점은 정치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등 교육과정의 경우, 고1 때 ‘통합사회’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통합사회는 일반사회, 지리부터 윤리, 역사 등 여러 가지 사회영역이 통합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일반사회와 지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치’에 대한 내용은 아주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고2,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이 탐구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정치와 법’ 과목을 선택한다면 정치에 대해서 비교적 깊게 배울 수 있지만,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남은 고등교육과정 내에서는 사실상 정치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을 쌓기 어렵다. 그리고 선택과목의 수강인원이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치와 법’ 수업이 개설되지 않은 학교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된 시점에서 학생들이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개념 및 이론을 배울 수 있는 배경이 튼튼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활발한 상호작용의 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선거권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비해 ‘학생 참여형’ 수업이 많이 발달했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기회보다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고등학교의 교육 목적이 ‘좋은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성숙한 성인’, ‘성숙한 시민’으로 학생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고등교육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개방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간개발지수 순위는 18위인데 반해, 교실 내 토론의 개방성 수준은 42위에 머무르고 있다.[각주:3] 한국 교육이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주체적인 시민의 발판이 되는 토론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등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만의 견해를 정립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우선적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토론이 학교 내에서 가능해져야, 학교가 성숙한 시민 양성의 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정치체제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정치교육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수시로 변동한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정치교육 변동을 살펴보면, 김영삼 정부는 시장 중심의 시민을 위한 교육개혁을 실천하고, 국사를 사회 교과에 통합시켰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정치교육에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사회과 교육을 공통교과로 지정했으며, 노무현 정부는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민주주의를 꾀하는 공교육을 강화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원리에서 법치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정치교육 영역이 전체적으로 감소했고 지리와 경제영역의 교육이 확대되었다.[각주:4]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가 정치교육을 수단화시켰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각 정부는 각자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치교육을 이끌어갔고,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그 방향이 또 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형태가 다양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빈번한 교육개정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가중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정치교육과 한국의 정치교육

 

  제 2차 세계대전과 국가사회주의의 독재를 겪은 독일은 일찍이 정치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강화를 강조하였다. 독일의 정치교육은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며, 공식적인 기관과 비공식적인 기관이 그 주체가 되어 다양한 정치교육을 진행한다. 정치교육을 특정 시기에 배워야 할 일시적인 교육이라기보다 평생교육으로 여기며, 교육의 대상이 굉장히 폭넓다. 국가의 제도화와 지원으로 정치교육에 시민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인프라 또한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있다. 이러한 독일 정치교육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독일 정치교육을 대략적으로 살펴본 후 한국 정치교육에 필요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독일의 정치교육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세 가지 원칙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첫 번째는 ‘강압 금지’이며, 이 원칙은 주입식 교육 금지 원칙이라고도 해석된다. 두 번째는 ‘논쟁성 유지’ 원칙으로, 학문과 정치에서 활발한 논쟁은 수업에서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감한 논쟁의 사안이라고 해서 수업 중에 숨기고 회피하면, 오히려 특정 방향으로 의견이 굳어진다는 것이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세 번째 원칙은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 원칙이다.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따라 정치적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라는 체계적인 합의 아래에서 정치교육을 시행해 왔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경우, 정치교육의 정형화된 원칙도 없을뿐더러 앞서 확인한 역대 정부의 정치교육과정을 보면 통일된 합의가 부족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정부의 입맛대로 부리는 느낌이 강하다. 정치교육의 특성상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통일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어 학생들의 혼란을 줄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교육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중 ‘논쟁성 유지’ 원칙이 한국 정치교육에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강압금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고,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 원칙은 선거 연령 하향, 청소년 운동 등으로 과거에 비해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참여가 폭넓어졌으며,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히 커졌다. 하지만 ‘논쟁성 유지’의 경우, 학생들이 수업 중에 논쟁을 적극적으로 펼칠 기회도 많이 없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공교육의 장에서 꺼내는 것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교육자가 개인적인 의견이 가득 담긴 발언을 하는 것은 ‘강압 금지’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교육자가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논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에 그친다면, 오히려 학생들이 해당 논쟁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호작용의 장이 마련된다면, 세 번째 원칙인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의 원칙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논쟁성 유지의 원칙은 청소년이 시민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한 중요한 자양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정치 교육은 기본 원칙뿐만 아니라 그 체계 또한 주목해서 볼 가치가 있다. 독일 정치교육은 정치재단, 교회, 노조, 시민단체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독일은 일찍이 민주시민교육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다양한 교육 대상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공급하고 학교 안과 밖 모두에서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 심지어는 독일 거주 외국인들까지 모두가 정치교육의 대상이 된다. 또한 국가는 다양한 정치교육 주체들을 지원하되, 교육내용에 일체 간섭하지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단체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미처 마련되지 못한 시기에도 순발력 있게 강연회, 대화 써클 등을 통해 정치교육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독일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교육은 주로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그조차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앞서 말했듯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고1 과정의 ‘통합사회’ 과목에서 도덕, 지리, 법, 경제 등의 다양한 사회 영역과 뭉쳐서 배우기 때문에 정치 교육의 깊이가 깊지 못하고, 고2, 3학년이 되면 정치영역이 선택과목으로 편성되어 정치교육을 접할 기회가 학생 모두에게 고르지 못하다. 또한 한국 사회단체들이 다양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들의 중추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이 성숙한 시민 양성을 위한 정치교육에 머무르기보다는 각 단체들의 목적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정치교육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며, 그 혼란은 그대로 학생을 포함한 국민들의 몫이다.

 

한국형 정치 교육을 위하여

 

  앞서 살펴본 한국 정치교육의 문제점과 독일의 사례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 정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첫 번째는 정치적 논쟁의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연령하향으로 인해 고등학생도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치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충분히 정치적 논쟁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견을 정립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학교-학원-독서실을 오가는 고등학생들의 현실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정치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정치적 미성숙’에 대한 염려를 해소하려면, 이론적인 정치공부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접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교육자의 도움으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학생들이 각자 의견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학생들이 선거권을 적절히 행사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교육의 독립성 보장과 국가의 개입 배제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정치교육 총괄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을 둔다. 연방하원에서 각 정당 의석 비율에 따라 연방정치교육원에 감독관을 파견하지만, 국가는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교육에 반영되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마다 추구하는 정치교육이 달랐으며, 교육개정을 통해 각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담아왔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정치교육의 일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교육자와 학생 모두에게 혼란을 줄 위험이 있다. 오롯이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이 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각 공교육이나 단체들의 민주시민교육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에, 정치교육을 다루는 독자적인 제 3의 기구를 설립하거나 비정부기구의 정치교육활동을 유도하여 학생들이 정치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정치교육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단기적인 목표에 맞춤화된 특정 선택과목 편향은 공교육에서 정치영역 입지를 축소시켰다. 선택과목체제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법’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선거권을 행사하는데 충분한 지식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정치 과목을 공통 교과목으로 편성하지 않아도, 학교차원에서의 특강, 토론대회,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정치를 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정치교육이 오로지 학생에게만 필요하다는 인식을 걷어내고, 정치적 행위를 행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정치적 행위가 기대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함을 인지해야 한다. 성인들에게도 정치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주관하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게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고 다양한 콘텐츠,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나가며

 

  ‘교육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이러한 복잡성은 결국 ‘학생을 위한’ 교육의 본질을 잃게 만든다. 정치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선거권을 바람직하게 행사할 수 있고 성숙한 정치관을 가지려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교육이 학생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선거연령하향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이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라는 선입견을 없애고, 주체적인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교육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슬

 

  1. 공현, <18세 선거권,그리고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의미와 과제>, 월간 복지동향No. 258,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2020, 30p. [본문으로]
  2. 김미경, <한국과 독일의 정치교육 비교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문화연구Vol. 15 No. 1,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2009, 36p. [본문으로]
  3. 남미자, <청소년 정치참여의 의미와 학교교육의 방향>, 교육정치연구Vol. 27 No. 1, 2020, 53p. [본문으로]
  4. 김순이, <한국 정치체제 변화에 따른 정치교육의 변화 양상: 초ㆍ중ㆍ고 정치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19, 6p. [본문으로]

  비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편리하지만 피곤한 일입니다. 교육저널 38호 제목이 ‘혼란기(記)’였던 까닭도 비대면의 피로함과 우울함이 누적된 결과였던 것만 같습니다. 줌 회의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끊어질 것 같은 인간관계를 붙들기 위해서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서일까요? 학교에서 편집위원들을 대면으로 만났을 때 왠지 훨씬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건 겁이 났지만요.

 

  이번 호 ‘출발선에서’는 기나긴 코로나 시국을 마무리 짓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2년간 정말 많은 것을 무력화했고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지만, 교육저널은 그 와중에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딛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글들을 담아보았습니다.

 

  ‘몸풀기’에서는 선거 연령 하향, 코로나 시국 비대면 교육 등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었던 편집위원들이 이런 변화와 함께 무엇을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글로 풀어냈습니다. 당근주스와 윤슬의 글에서 편집위원들이 변화를 마주하며 느꼈던 진솔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숨 고르기’에서는 각기 다른 학과에 속한 편집위원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교과목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일육, 응향, 월영 각자의 전공 이야기인 만큼 아끼는 (혹은 애증의)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번 교육저널 영화제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습니다. 빔프로젝터를 벽에 쏘아 영화를 보는 게 꽤 낭만적이었는데, 이 글로도 그 분위기가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교육저널도, 교육저널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모두 안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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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0)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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