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학점이 받고 싶지만 자퇴는 하고 싶어
- 학사관리엄정화와 대학의 평가
이물
먼 훗날 우리는 우리의 대학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동아리, 학생회, 대외활동처럼 ‘의미 있는’ 경험 속에 대학의 낭만을 투사할 테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를 무시하지는 못할 거 같다. 신입생 때 들었던 글쓰기 교양에서 받은 낮은 성적이 실없는 농담거리로 활용되긴 해도, 숱한 강의를 들어가며 쌓아온 학점을 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A를 받았을 때 남몰래 느꼈던 만족감과 왠지 모를 으쓱함, B와 C로 범벅된 성적표가 나의 부족함과 불성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은 머쓱함이 그것이다. 학점에 신경 쓰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작아지고, 졸업 후의 막연한 미래에 시달리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평가 받기를 계속해 왔다. 벚꽃 피는 계절과 낙엽 지는 계절에는 항상 시험이 뒤따라왔다. 어쩌면 ‘학생다움’은 공부하는 행위보다 평가받는 처지에 묶여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취업 과정에서, 현장에서 끊임없이 평가를 요구받는 모든 이들이 평생 ‘학생’인 것인지도. 우린 이미 바람직한 평생교육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평가는 ‘학점’, 더 광범위하게는 졸업요건, 수강신청조건 등을 포함하는 ‘학사관리’라는 말로 압축된다. 수학능력에 대한 평가를 넘어, 졸업이라는 인증(평가)를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규칙이 규정된다. 강의실 안팎에서 겪는 우리의 경험은 수치화되고 관리된다. 입학에서 졸업까지, 성적 장학금에서 학사 경고까지 길이와 높이를 갖고 유동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 그렇지만 성적이 좋으면 선택권이 늘어난다는 말은 참 익숙하다. 그래서 평가는 좋다는 걸까, 나쁘다는 걸까? 무슨 말을 들어도 미심쩍은 상황에서 졸업과 취업은 다가온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므로, 열심히 평가받을 수밖에.
학사관리는 무엇인가?
학사는 말 그대로 ‘대학의 일’이겠지만, 주로 대학의 교육과 관련된 업무 일체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서울대학교 학사과 담당업무를 보면, ‘학적관리, 수업 및 성적관리, 수강신청 관리, 증명발급, 학력조회, 졸업 및 학위수여 관리’가 있다. 대학은 행정을 통한 학생 관리, 학생들은 이 조건에 맞는 자기-관리를 수행해야 한다.
대학의 학사관리는 사실상 광의의 평가/인증제 역할이다. 학생의 의무와 조건을 규정하고, 평가를 거쳐서, 졸업이라는 인증을 향해 가는 과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 방식은 다양하다. 학사경고, 학생징계와 퇴학은 배제의 논리로, 학점 취득 기준과 전공 의무 규정은 승인의 논리로, 성적 평가와 차등적 복지는 능력주의의 논리로 학생을 관리한다.
이 중에서도 ‘성적 평가’는 핵심적이다. 대학은 매 강의의 성취도를 구분된 등급으로 평가받고, 그에 따른 차등적 기회 (장학, 교환학생, 취업, 대학원/유학 등)를 부여한다. 성적 평가는 다른 학사관리와 달리 매 강의, 매 학기마다 이루어지기에 상시적 주의와 노력을 요한다. 또한 학교 기능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교육’에 대한 학생의 자격을 평가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학사관리의 기능은 대학 교육의 기능에 대응한다. 대학은 교육/지식기관으로서 지식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장이다. 때문에 학사관리는 명목상 학생이 대학을 거치며 학문을 성공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행위를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 대학은 노동시장의 인력 수급 역할도 하는데, 이 경우 학사관리는 학생 구분과 변별을 담당한다.
대학의 보편화와 기업화 과정을 거치며, 현대 사회의 대학에서는 인력 수급의 기능이 지배적 자리를 차지하고 지식의 공유화 학습은 예외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즉, 전자가 구조적이라면 후자는 학생이나 교수자의 의지에 의해 규정되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학사관리(평가)의 기능 역시 학생을 변별하고 노동시장에 인증하는 것이 지배적이며, 예외적/의지적으로 학습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 변별으로서의 평가는 학생의 역량을 파악하여 사회의 각 부문에 적절히 배치하고, 정해진 자원을 차등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정당화된다. 그리고 경쟁과 공정성이 강조된다.
지식의 습득을 자극하는 평가와 노동시장 변별의 평가는 분리되는가? 때론 그렇지만 때론 그렇지 않다.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요구와 학문 기관인 대학에서의 역량 강화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든 우연적으로든 일치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지식의 공유화 학습은 대학 본연의 선한 기능이고, 노동시장 인력 수급의 기능은 변질된 나쁜 기능이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지식은 그것의 실천방식, 노동과정과 꾸준히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과 대학의 평가 기능이 갖는 문제를 말하자면, 첫째로 두 분야의 균형을 잃고 지식의 공유/학습에서의 기능을 사실상 완전히 소멸해가고 있으며, 둘째로 인력 수급 기능이 현실 노동시장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자본의 경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진리의 상아탑을 건설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노동의 균형적 상호관계를 확립해 나갈 수 있는 대학과 대학의 평가를 상상해야 한다.
학사관리엄정화의 역사와 배경
학사관리엄정화는 말 그대로 학사관리를 엄정하게, 더 까다롭게 한다는 의미다. 명분상 학생들의 학업 태도를 갖추고 성취를 늘리기 위해서, 혹은 평가에서의 엄밀성과 공정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주장된다. 그 결과 학생들은 더 많은 의무, 경쟁에 노출된다.
신군부 정권에서 도입된 ‘졸업정원제’는 신입생을 졸업정원보다 30퍼센트 더 뽑는 제도였다. 그러나 교육의 양적, 질적 향상을 위한 국가 지원이 결여된 정원제는 학생의 단순 팽창만을 의미했고, 학생 간 경쟁의 과열과 수많은 낙오자(중도수료자)를 낳았다. 한편 군사정권 기간 동안 학사관리 엄정화는 학원 안정화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노태우 정부 하 대교협이 1991년 9월 6일 발표한 학원 안정화 대책에는 ‘학사제적제 부활, 학사유급제 부활, 학생회 등의 건전화를 위한 학칙 제정’이 학사 관리 엄정의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과장을 덧붙여 말하면, 데모 대신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다. 국가는 학생들을 경쟁과 엄정한 학칙 속으로 몰아넣고, 그들을 저항의 주체가 아닌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후 5.31 교육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 속에서 학사관리 엄정화는 대학 간 경쟁을 떠받치는 한 축이자, 취업을 위해 경쟁하는 학생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었다. 1994년부터 대학종합평가인정제가 시행되고, 이것이 국가의 선택적 대학재정지원과 연계되었다. 평가 항목 중 핵심을 차지하는 ‘교육’의 가치는 수월성, 효율성 등이었다.
결국 학생들이 ‘수월한’ 성과를 내세우는 것이 대학 간 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된 것이다. 이에 더해, 대학이 본격적으로 기업화, 시장화되고 대학 간 경쟁과 기업의 지원이 절실해진 이후로는 취업률이 대학 평가 지표의 핵심이 되었다. 이에 대학들은 수월성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더 까다롭고 경쟁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해 나갔고, 기업의 요구와 인재상에 따라 교과과정과 교육 내용을 혁신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제 학사관리는 힘들더라도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자 덕목이 되었다. 심해지는 취업난, 대학 교육의 상품화 속에 대학 교육은 개인의 취업을 위한 투자로 이해된다. 국가, 기업의 재정지원을 바라는 대학이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할 뿐 아니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서서 해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높은 졸업 요건, 학사경고/유급제 강화, 학점 경쟁과 차등적 복지지원, 출결 시스템 강화, 학생회 약화와 담임교수제, 각종 취업과 인턴십 프로그램의 남발 등이 놓여있다. 이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흐름도 존재했다. 상대평가를 비롯한 여러 학사관리 엄정화 정책을 철폐하라는 요구가 산발적으로 일어나 때로는 성공했다. 가깝게는 일방적 학과제 전환 대응(2012년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생총회 요구안)으로 기존의 반 체제를 유지한 사례 역시 일방적 학사관리와 공동체 파괴에 대한 저항으로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일련의 노력은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학사관리와 평가의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평가의 ‘구성’과 구성 권력
앞에서 언급했듯, 역사 속의 학사관리 엄정화는 학생들을 피교육자에 정박시키고, 한편으로는 산업시장이 요구하는 역할로 길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평가’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 평가를 ‘구성’한 대학, 혹은 대학 교육에 영향을 주는 대학-자본-국가의 산물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평가의 구성방식이 적절한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지금의 평가 방식은 노동시장 인력 수급이라는 목적을 위해, 학생들을 선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평가 방식의 결정권이 독점되고 있다. 직접적 결정권은 교수자에게 있고, 실질적 결정권은 대학 교육의 흐름을 주도하는 대학, 자본, 국가에 있다.
1) 공정성 신화와 순응적 객체 생성
첫째로 학사관리, 혹은 평가는 절대로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다. 오히려 앞에서 살펴보았듯 모든 평가는 명확한 의도 아래 만들어진다. 평가 기준은 넓게는 국가의 학원 안정화와 자본의 인력 수급, 대학의 생존 경쟁 속에서 형성되며, 작게는 강의실 내 교수의 판단과 관점에 따라 정해진다. 곧 평가는 목적에 맞게 구성되는 것이고, 우리는 평가 기준 자체, 다시 말해 평가 목적의 타당성,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의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전공강의의 학점을 잘 받은 학생은 해당 전공의 이해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해당 강의가 전공과 관련해 추구하는 목적, 요구하는 능력을 더욱 잘 수행한 것이다. 더 넓게는 대학이 조성한 경쟁적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이 맥락을 누락한다.
평가 방식을 독점한 결정권자들, 학사관리를 엄정화 하려는 이들은 이러한 누락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평가 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평가의 결과가 곧 정당하고 공정한 우열을 의미해야 평가(학원 안정화, 학생 간 변별)의 목적이 잘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평가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순응적 객체가 되어간다. 이에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 우리는 ‘평가의 기준을 평가’해야 한다.
2) 교육 의미의 제한, 역량과 평가 지표의 괴리
둘째로 학사관리가 노동시장 인력 수급의 기능에 국한되면서, 교육의 의미가 경쟁의 우위에 서는 것으로 제한된다. 기실 대다수 대학생의 수강 이유는 높은(혹은 적절한) 학점을 얻고 졸업해서 취업의 경로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혹은 적어도 그 경로에서 낙오되지는 않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학사관리가 학생을 적극적으로 취업을 위한 경쟁의 영역으로 내몰기도 하고 (상대 평가 강화, 취업 교육 강제 등), 학생이 이를 체화해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을 도외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강의실의 교육은 쪼그라드는데, 강의 내용보다 학점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때 평가는 피드백을 통해 재학습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종료와 인증의 기능만 수행한다. 나아가 그렇게 받은 점수가 곧 자신의 성취 지표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교육 내용에 집중할 수 없고, 재학습을 자극하지 않는 평가구조는 개인의 실제 역량과 평가 지표가 괴리될 우려를 낳으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쉽다. 애초 학점을 받기 어려워 보이는 수업은 기피하여 교육 기회를 사전에 차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3) 노동시장의 불평등 재생산
셋째로 학사관리 엄정화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적극 재생산, 강화한다. 사회의 일자리나 학습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으며, 차별과 불평등이 산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 속에서 소수에게만 양질의 일자리를 허용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주장에 자주 직면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정당화하는 제1원리가 교육이다. 각자의 교육과정 속에서 우수한 능력을 인증 받은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학사관리가 엄정해질수록, ‘승리자’를 차등적으로 승인할 근거는 강력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애초 그 평가 기준이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원리(와 조응하는 대학서열체제, 대학/학과 선별적 재정지원, 기업친화적 학습 내용, 경쟁적 학습문화)하에 구성되었다는 것, 그조차도 역량과 지표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 괴리가 해소되더라도 각 평가지표들이 개인 역량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무시된다. 나아가서는 노동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 능력도 상실하기 쉽다. 우리는 언제나 평가받는 대상일 따름이며, 평가받는 학생은 평가자의 오류를 지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이라는 기관을 매개로 교육의 기능을 통제하는 것이라면, 학사관리는 이와 조응해 대학 내 구성원의 삶과 가치관을 매개로 통제를 수행하고 있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13명이 수능 당일 대학잆기거부를 선언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무의미한 경쟁을 멈추자고 외쳤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적절히 구성된 평가 상상하기
1) 평가의 목적지향 –교육의 시작점이 되는 평가
애초에 학사관리를 단순히 엄정화하는 방식이 학생의 성취를 높여준다는 주장은 이상해 보인다. 처음 한 게임에서 엄청난 실력자를 만나,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거듭해서 지면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학습에 있어서도 경쟁적으로 부담을 늘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성취 과제와 자신의 역량 성장에 대한 효용이 필요할 것이다. 레포트는 마감 기한 직전에 가장 잘 써진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말은 마감 직전의 극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학습에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현상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은 자기 성장만을 위한 것도, 취업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교육은 지식 습득을 통해 한 개인이 자아실현과 노동 수행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을 도모한다. 사회를 이해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성장시키고, 그것의 실천방식인 노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평가가 교육의 도구라면, 어디까지나 이러한 교육의 목적을 자극해야 한다. 때문에 성취지표를 넘어, 학습 과정에서의 변화와 성취를 구체적으로 피드백 받고 재학습할 수 있도록 독려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성장) 한편으로 현실 노동과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을 동일한 잣대가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제안해줄 수 있어야 한다. (노동과의 연계)
무엇보다, 평가는 교육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지식의 습득, 노동 역량의 계발을 위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방식만 개선된다면 밑 빠진 독이 될 수밖에 없다. 평가는 교육을 위한 충분한 조건이 갖춰진 위에서, 또 다른 교육의 길을 가리키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평가의 구성 주체와 방식 - 평가 구성의 민주화
평가의 가치지향만큼 중요한 것은, 평가를 ‘누가’, ‘어떻게’ 구성하는지다. 평가의 목적과 그것이 낳는 효과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적해야한다.
애당초 왜 차등적 학점을 부여하는가? 교육적 목적으로만 놓고 보면 해당 강의를 수강한 학생 각각에게 장문의 평가서를 첨부하면 될 것이다. 물론 성취의 지표화 자체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학습 내용과 성취를 다른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평가지표는 소통을 위한 언어 이상이다. 일률적이고, 차등적인 지표들은 취업시장의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 강의평가 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학업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좋은 일일 것이다. 때문에 이를 지나친 차등적 평가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읽어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절대평가 전환과 관련한 총장의 인터뷰를 보면, 취업 경쟁에서 이미 학점이 변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내리는 결정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나쁘게 말하면 이제 취업 경쟁을 위해서는 학점만으로는 부족하고, 훨씬 많은 평가지표에서의 우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그 사람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종합적 평가가 될지, 전방위적인 생존 경쟁을 요청하는 평가가 될지는 교육을 조건 짓는 사회적 배경, 이와 조응하는 평가 구성의 목적과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 누가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결정했는가? 취업 경쟁을 고려한 대학 본부와 총장이다. 때문에 이는 취업 시장의 상황이 바뀐다면 학생들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언제든 갈아치워질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평가를 시장에서의 경쟁적 자원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요청된다. 불안정하고 위계적인 노동시장,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 취업 중심의 기업화된 대학이 변화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평가’의 범위를 넘어선다. 대신 이 글은 평가의 범위 내에서 평가 구성의 민주화를 요청한다.
평가 구성의 민주화는, 가장 기본적으로 평가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교육과정에 관여하는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평가 내용, 평가 방식과 기준 등을 교수와 학생이 함께 토론하여 결정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물론 교수자 고유의 권한인 평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가의 ‘구성’은 함께 하되, 평가의 ‘부여’는 교수의 권한으로 남겨놓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의 구성 과정에서, 평가의 일방적 부여 역시 자기비평 등의 방식으로 보완, 대체 하자는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교수자와 학습자가 함께 학습의 목표와 경로를 설정하고, 교수자는 충실하게 수업을 준비/관리하고, 학습자는 평가 결과에 따라 다음 학습을 준비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넓게는 대학의 학사관리 규칙 전반을 대학 구성원이 함께 결정하는 것, 작게는 각 단과대학의 구성원이 졸업요건과 학과별 학사관리를 함께 결정하는 것, 더 작게는 학과별 강의 평가 기준을 구성하는 정기적 공론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그 실천태가 될 수 있다.
3) 저항 가능성 – 교육 공동체와 교육 주체의 형성
평가 구성의 민주화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물론 그것이 실현된다고 해도, 완전히 자율적으로 평가 구성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취업이 필수적인 사회에서, 노동시장이나 기업이 원하는 능력이 아닌 영역을 무작정 평가에 포함시킨다면 구성원의 직접적인 피해와 고립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평가 구성이 민주화된다면 적어도 기존의 시장 중심적 평가를 그대로 재생산, 강화하지 않고 ‘긴장관계’를 형성할 여지가 있다.
긴장관계의 공동체와 주체의 형성에서 온다. 평가 구성에 구성원이 함께 개입할 수 있다면, 평가를 구성하는 권력은 대학 본부나 소수 교수가 아니라 대학/학과 공동체가 된다. 그동안 평가 권력은 대학이 시장과 산업의 수요, 정부의 대학재정지원, 위계적 교수 집단에 종속된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을 강화하는 일종의 도구였다. 그러나 교육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직접 평가를 구성하겠다고 나설 때에, 교육 공동체의 역할을 스스로 되묻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동시에, 학생이 평가를 받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 호명될 수 있게 된다. 좋은 평가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맞춰나가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아가 시장의 경쟁적 자원을 얻고 우위에 서는 데에만 익숙했던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교육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평가의 대상으로 타자화하지 않고, 더 나은 학습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교육 공동체와 교육 주체가 형성된다면, 대학이라는 교육 공동체가 사회와 구축할 수 있는 긴장관계는 무엇이며, 바람직한 평가와 교육은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말이다.
결론
대학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갖는 평가의 상상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멈춰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그 시험이 얼마나 공정했는지, 시험 문제 자체에 오류는 없었는지 따지는 것을 자주 본다. 그리고 표준점수와 등급을 따지듯 학점을 비교해가며 (진심이든 농담이든) 주요 이야깃거리고 활용하고는 한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나, 우리가 평가를 받아야하는 상황 자체가 적절했는지, 그 평가는 교육을 자극하고 돕는지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 현행의 평가제도가 학업 성취를 어느 정도 적절히 평가하고 있다는 의심쩍은 미련도 남을 것이다. 빈둥대는 학생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분명히 다르고, 학점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대개는 그 평가의 구성주체가 시키는 대로 잘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성 주체가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기준에 따라 (교수자를 매개로, 혹은 정말 스스로, 대안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다양한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의 노동역량을 계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학사관리는 ‘학사자주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불안정노동과 취업 경쟁의 시대, 학점을 차등적으로 매기고 스펙을 쌓고 졸업장을 따야하는 이 굴레를 쉬이 벗어날 수는 없다. 창의적 평가방식이랍시고 하는 결정들도 결국에 어떤 방식으로든 경쟁 속에 편입되는 것을, 우리는 대학 입시 제도의 무수한 변화 속에서 이미 보아 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형식을 벗어나 형식을 결정하는 권력과 사회적 배경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학점이 나왔을 때, 나의 게으름을 탓하거나, 교수자의 잘못된 결정에 컴플레인을 넣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 누가 나에게 학점을 주게 했는지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누군가 일방적으로 부여한 옆 친구의 학점을 우연히 전해 듣고 묘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기보다, 그 사람이 보여준 삶의 맥락을 파악하고 더 나은 노력을 자극하는 조언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교육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