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의 평가

- 대학구조개혁평가

노누

 

우리 학교를 규탄합니다.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올해 여름방학의 끝을 맞이하면서 아쉬움뿐만 아니라 놀라움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 등 여느 대학생들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방학의 끄트머리인 8월에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역량강화학교'[각주:1]로 선정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었고, 자신들도 모르는 불이익이 있지는 않은지, 등록금이 비싸지지 않을지 걱정한다. 믿고 등록한 학교에서는 눈앞에 떨어진 불똥에 총장이 사퇴하고 부랴부랴 예산을 줄이겠다고 방안을 내놓았지만, 학생들의 불안감과 불안정한 미래는 여전할 것이다.

이는 서울덕성여자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율개선등급을 탈락한 학교를 규탄하는 의미로 학생들은 개강일 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후 수업을 수강했다. 이는 대학의 수준에 대해서 규탄하고 학교의 현재까지의 건실하지 못한 행정처리와 학교의 수준에 대해서 창피하다는 학생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연대를 굳힌 의미다. 그러나 대학의 입장에서는 왜 자신들이 이러한 등급을 받은 건지 분명히 알 수 없다며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학교와 교육부의 입장이 어떻든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인근 지역 경제로 향한다. 작년에 최하 등급을 받은 한중대학교는 유령 캠퍼스로 강원도 동해에 그대로 버려진 상태다. 인근 상가와 부동산 등 지역경제의 사면초가 분위기도 말할 것 없다.[각주:2] 대학도 교육부도 학생과 시민들까지 고통스러운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일까.

 


대학구조조정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칠판 한쪽에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 대학의 등급들을 정리해 둔 커다란 표가 붙여져 있었다. 원서를 쓸 때 참고하라고 붙여놓은 자료이겠지만 친구들은 웃으면서 제일 밑에 있는 것이 네가 갈 대학이다.”, “제일 밑에 있는 대학에 원서 넣어야지. 여기는붙겠지.”, “입학하자마자 대학교가 사라지면 어쩌지..”라며 농담을 했었다.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들이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것임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개혁이라는 말이 거창하고 현재 대학의 존립에 큰 영향을 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을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든다.

대학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대한민국의 온갖 분야에 구조조정 바람이 일었던 1998, 김대중 정부까지 그 연원이 올라가지만, 이는 조직의 인력 규모의 축소에 목표를 둔 정책이었다. 현재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학구조개혁 평가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기업에서 효율과 최대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기계적으로 시행하는 구조조정은 비용만 줄일 수 있다면 그게 대학이든 어디든 자행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고교졸업자 수는 2011년에 65만 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올해인 2018년에는 입학정원이 56만 명 이하일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다. 만약 정원이 그대로 유지가 된 상태라면 올해는 고교졸업자와 입학정원이 거의 비슷해지기는 시기로 학자들은 예측한다. 차후에는 계속 고교졸업자 수가 줄어들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게 될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정부는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정책을 시행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대학교육의 질적 하락을 예방하기 위한다는 명목 아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시행되었다.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지원, 교육 성과, 중장기 발전계획, 교육과정, 특성화와 관련된 항목들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전문대학은 일괄 평가로 진행을 한다. 이 평가에 따라 A~E까지 등급을 나누고 낙제점인 DE를 받은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서 제외가 된다. 학자금대출이나 국가장학금에서도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는 학생들에게로 떠넘겨졌고 누구도 책임지지않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일정 수준에 들어가지 못하면 정원 감축에 정부 재정지원도 끊기는 듯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에 현재 교육부는 대학 살생부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살생. 그야말로 죽으라는 뜻인지 특히나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갈수록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타격을 받는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2015년에서 2017년에 1주기, 2018년에서 2020년까지 2주기, 2021년에서 20233주기로 나누어 입학정원을 약 16만명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의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추진 방향을 설정했지만 이에 무색하게도 1주기 구조조정 기간에 작년까지는 지방에서 전체 정원의 75% 감축이 이루어졌다.[각주:3] 지방대의 몰락을 막겠다면서 오히려 더 빠르게 몰락을 당겨온 것이다.

 

대학구조조정 현재는?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이러한 평가는 1주기의 대학구조개혁방안이 전체 대학을 서열화하고 지역의 경제나 재정지원 등과 관련된 고려가 적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교육 개선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2주기인 올해부터는 대학 기본역량진단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입학정원을 줄일 방법을 모색했다. 구체적으로는 평가 결과 상위 60% 대학은 자율개선대학’, 하위 40% 대학은 다시 2단계 평가를 통해서 역량강화대학재정지원대학으로 나뉜다. 자율개선대학은 정원 감축 권고도 하지 않고 일반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지원까지 해주지만 나머지 역량강화대학과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이 되면 향후 3년간 2만 명의 정원 감축을 권고하며 재정지원, 국가장학금, 학자금대출 등이 제한된다. 어느 정도의 완화는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정책 이면에는 국가의 돈 안되는대학은 줄이고 지원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꼼수, ‘생산적이지 않은모든 것들을 줄이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작년에는 류장수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대학여량진단 정책 발표 후 “2만 명대에는 우리가 정부 정책에서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시장에 맡기자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각주:4]

내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조선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등 일반대학 67, 전문대학 49곳 등 116개의 대학에서 총 1만명의 정원 감축을 명했고 이 중에서도 일반대학 37, 전문학대 13, 50곳에 재정적인 지원을 제한한 상태다.

 

대학 구조조정의 형태 변화 (출처 : 이연희, '대학 기본 역량 진단' 확정 ... 자율개선대학 60% 내외' "한국대학신문" 2017.11.30)



1단계 정량지표로서 전임교원확보율, 교사확보율, 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유지취업률 등을 평가하고 이를 충족시키 못하는 대학은 전공 교양 교육과정, 지역사회 협력 및 기여 대학운영 건전성 등 2단계 지표를 통해 한 번 더 걸러지게 된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각 이념과 가치들을 가진 대학들을 평가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재정 감축이라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방식에서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평가에 맞춰 도태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이제는 대학에서 인재 양성이나 어떠한 소명과 진리의 추구 등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하면, 너나 잘 해보라는 식이거나 혹은 현실을 알기에 안타까움이 담긴 눈빛을 받게 될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시각.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되었다.

 

 

대학과 경쟁, 자본주의?

 

대학구조조정은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비리나 부정이 판을 치는 부분을 찾아내어 근절해야 하며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대한 대학의 대처 또한 불가피하다. 별 의미 없이 몸짓만 불려나가면서 부실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은 맞다. 그리고 일 처리가 정상적이지 않는 기관을 가려내고 평가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 자체도 부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에 대한 대응방법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마치 스포츠 경기와도 같이 대학의 순위를 측정하여 신나게 떠들어댄다. 무슨 노래 한 구절인 마냥 익숙한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는 한 번이라도 못 들어본 사람이 없고 사실상 절대적인 순위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과 같이 출신 대학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 정책 등이 도입되기도 하지만, 집단 내에서 대학에 따른 편 가르기를 하거나 개인을 대할 때 그 대학의 누구가 되는 식으로 평가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력주의는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마치 출신대학이 신분인 마냥 사람에 대한 중요한 정체성으로서 여겨지고 대학의 순위가 세워지는 모습은 신분의 순위가 정해지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결국 대학의 순위를 정해 놓고 밑에 가라 앉을 수록 도태되는 대학평가는 대학의 카스트제로 보인다.

대학의 순위를 따지는 것이 이전에는 수군수군하거나 카더라식으로 공식적인 자료나 정보로서 존재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예 드러내놓고 그 범위는 전국 단위 대부분의 학교로 넓혀서 측정되는 것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신문사나 저널에서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서 이를 시행하고 활용하고자 한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소비하는 대학의 순위가 국가에서 정한 일정한 기준에 따른 평가 결과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수도권 대학보다 순위가 낮아졌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수준도 이에 따라 달라졌다. 과연 이러한 결과가 우연인지 아니면 구조적으로 살아남는 대학만 지속적으로 살아남게 되는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 지배적인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필 기준으로 입시 시즌인 현재 많은 수험생들이 수능을 끝내고 또 끝나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면접과 실기 준비로 바쁜 학생들 혹은 눈물을 머금고 재수 학원을 알아보러 가는 학생들 등 사실상 누구보다 해방감을 맛보며 기쁠 시기에 오히려 누구보다 절망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얼마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수험생이다. 그들은 그러한 고통을 참으면서 찬란한 캠퍼스 라이프를 꿈꾼다. 한편 대학을 가도 취업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현실을 일찍 받아들인 학생들은 바로 공무원 시험의 길로 가기도 한다.

뭐가 됐든 비교적 더 보장된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한정된 자리를 두고 싸움을 했다. 대학 중에서는 최대한 순위권 높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되든 안되든, 일단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 길에 목을 매달고, 그러다 보니 포기할 수 없게 되고 지금까지 버텨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간절하게 경쟁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점점 더 상위권의 대학으로 몰리고, 경쟁에서 도태된 학생들은 남은 대학으로 발길을 향한다. 정부에서는 앞에서는 수능의 절대평가 등을 이야기하며 사교육을 줄이고 줄 세우는 교육을 지양하겠다는 입장을 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와 반하는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학들은 점차 대학끼리의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순위권의 밑바닥을 차지하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순위권에 국가는 더욱더 박차를 가해서 밑으로 떨어진 대학은 제거하고자 한다. 문제는 없어진 대학 위에 있던 대학들은 제거된 대학 다음으로 제거 대상이 된다. 결국 반복되는 이 대학의 살생에서 승자는 누구일지, 진정한 승자라는 것이 있을지, 과연 대학의 줄 세우기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 답답한 물음만 떠오른다.

이러한 악순환과 끊임없는 경쟁은 대학의 가지치기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함은 당연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대학의 순위가 매겨지고 이 순위에 따라 사람들이 배치되는 사회 이면에는 사람을 줄 세워 평가하는 사회가 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밀어내기와 방어하기로 개인은 사회의 흐름에 복속될 수 밖에 없고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대학 평가라는 일차원적인 방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대학이 각 이념에 맞는 방법으로 사회에 적응력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하고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어야 한다. “파이프에서 새는 물이 파이프를 고칠 수는 없다.”

 

끝나지 않는 경쟁

 

학력주의,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서울대학교는 과연 이 대학의 카스트제도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올라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현재 미래가 보장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있는지 혹은 여전히 아등바등 불안에 떨며 성실함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가. 한국외대에서는 평가지표를 반영해 성적평가 기준을 소급 적용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대학구성원들의 원성을 샀다. 학생들은 점거 농성을 벌였고 본부를 상대로 성적평가제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경희대학교도 성적 평가를 앞두고 강좌당 학점 평균이 3.0 이하가 되도록 조정하게 명했으나 학생들의 반발에 철회했다.[각주:5] 서울대학교에서도 9월 초 성적처리규정 개정안을 두고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다. 수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 학생들에게 학업 부담까지 부과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구성원 중 누가 환영할지 알 수 없다. ‘명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또 다른 경쟁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1. 대학 기본역량 평가 결과 60%에 들지 못한 대학. 자세한 내용은 뒤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철퇴' 피해 고스란히 학생 몫으로…대학평가 후폭풍, JTBC 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NqiNd3dWYN0 [본문으로]
  3.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47696.html [본문으로]
  4. 임은희, 〈대학 기본역량 진단 전망과 시사점〉, 《대교연 보고서 통권 11호》, 2018, p. 4. [본문으로]
  5. 서어리, 〈대학 구조조정, 학생이 무슨 죄?〉, 《프레시안》, 2015.01.0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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