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비대면 교육, 어떠셨나요? (1) 을 보려면? ⇒ edujournal2018.tistory.com/89

 


# 비대면 교육이기에 가능한 것이 있다면?


우정: 지금까지 너무 비대면 욕만 한 것 같아서(웃음), 남은 시간 동안은 비대면의 장점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펭로시: CG를 잘 활용하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중학교 때 들었던 인강에서 선생님이 CG를 쓰셨는데 해풍, 육풍 관련한 내용을 설명하셨어요. 선생님이 실제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시면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머리카락이 날리는 CG를 넣으며 수업하셨어요. 비대면이니까 이런 CG를 수업에 녹이면 학생들이 재밌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정: 두 가지 사례가 생각나요. 하나는 영어 연극 수업을 제가 들었었는데 CG 얘기하니까 생각이 난 게, 제가 수녀 역할을 맡아서 뒷 배경을 성당의 고해성사실로 설정하고 목폴라에다가 검정색 반팔 뒤집어 쓰고 연기를 했었거든요! 그게 대면이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일단 배경화면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옷도 그렇게 하면 다 티가 났을 거예요. 비대면이었기에 창의력을 발휘해서 연극을 진행한 것이 생각이 났고요. 

 

두 번째는 비대면이 되면서 1:1 맞춤 상담이 훨씬 자유롭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영어 수업 들었던 것 중 또 하나가 학술작문 수업이었는데, 그게 개별로 글을 쓰면 교수님이 계속 피드백을 주셔야 하는 수업이에요. 그런데 그게 만일 대면이었다면 한 명씩 앞에 나가서 피드백 받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고 이런 식으로 했을 것 같은데 비대면이었기에 소회의실을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시고, 소회의실 내에서는 각자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하고, 그동안 교수님이 피드백을 해줄 사람만 본 세션에 남아서 피드백이 이루어졌어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 같아요! 또 비대면이었기 때문에 구글 클래스 룸을 이용해서 수업을 하다 보니 동영상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이런 것도 자유자재로 가능했던 것 같아서. 수업 시간에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은 교수님이 실시간 스트리밍 동영상을 녹화하셔서 구글 클래스룸에 올려주시고 댓글로도 피드백을 달아주시고 이런 식으로 했었거든요. 뭔가 1:1로 피드백을 받고 교수님과 소통하는 것은 오히려 비대면에서 좋아진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월영: 저같은 경우에는, 음, 이건 학과 특성이긴 한데 그림 같은 것을 많이 보거든요 슬라이드에 그림이 있고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게 수업의 주된 형식인데 사실 오프라인에서 들으면 PPT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은 저게 대체 뭐지 하면서 흐린 눈 하고 보거나 아니면 화질이 안 좋아서 전달이 어려운 상황이 있었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하니까 PPT가 바로 나한테 뜨잖아요. 심지어 그림을 자기 마음대로 확대해서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부분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그런 점은 좋았던 것 같아요. 


러셀: 저는 미디어 활용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기술활용능력 이런게 굉장히 능통해진 것 같은게 교수님들도 그렇지만 저희들도 동영상 촬영도 직접 해봐야 하고 좀 더 이용해봐야 하고...... 이런 기회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 것 같고 요즘 초등학생들이 코딩 수업을 듣잖아요. 제 생각에는 만약 이렇게 비대면 수업의 장점이 부각되면 초등학생들이 나중에 학교에서는 줌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줌으로 발표를 잘하는 방법 손들기 기능! 이런 거에 대해서도 배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고슴도치뇽: 사실 저는 마음 깊은 곳에 기술의 발전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요. 기술 발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고 물론 일정 정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기술 발전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경우 누군가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기술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윤 추구를 위해 기술이 발전하잖아요. 또 기술이 발달했을 때 그 기술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삶의 질이 올라가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럼에도 비대면이 되어 좋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좋은 강의들을 특정 공간이 아닌 공간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서울대에서도 연구발표회나 토론회가 많이 열리는데 이제 해외에 있는 분을 초청할 수도 있고 그것을 신청하면 멀리서도 들을 수 있잖아요. 여러 활동 단체들에서 마련하는 좋은 프로그램도 이전에는 서울에서 많이 진행되다 보니까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주로 참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온라인이니까 지역을 넘어서 참여할 수 있어서 그 점은 좋은 것 같아요.


우정: 저도 생각이 났는데 채팅 기능도 온라인 교육의 특징인 것 같아요. 소심한 사람은 평소에 대면 수업할 때도 손을 들고 말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비대면 교육에서도 마이크를 켜고 말하기 힘든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성격적으로. 그런데 채팅 기능이 있다 보니까 비밀채팅으로 교수자님께 질문을 드릴 수도 있고 교수자님께서 뭘 물어보셨을 때 채팅을 이용해서 활발하고 간단하게 답변을 쳐서 올릴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좀 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오히려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좋은 수단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 것 같아요. 


고슴도치뇽: 그거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월영: 비대면 교육의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이랑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아까 고슴도치뇽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할아버지 생각이 되게 많이 났거든요. 할아버지 가게에 가끔씩 요금표나 이런저런 안내 문구같은 게 인쇄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런 작업을 항상 저에게 맡기셨단 말이에요. 심지어 할아버지께서 가끔씩 핸드폰을 들고 오셔서 이거 대체 뭐냐하고 물어보시면 제가 다 알려줘야 하는 거예요. 저는 한창 제 일이 바쁘다고 느껴질 때는 살짝 귀찮기도 했는데 사실 그런 식으로 기술 자체에 적응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너무 빠르게 변하니까. 할아버지 옆에는 제가 있으니까 제가 할아버지께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것처럼 기술의 발전을 숭상하지만 말고 그것을 대체 어떻게 적용할지,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웃음), 아니면 어떻게 사람들이 배우게 할지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정: 진짜 이 시간에 우리가 좋다고 이야기했던 것들을 나중에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물론 막연한 생각이긴 하지만!

 


# 비대면 교육, 어디로 가야하나?


러셀: 하나고에서는 온라인 교육의 가장 큰 원칙을 ‘소외된 학생이 없어야한다’라는 점을 정했어요. 또 이와 관련해서 단순히 스마트 기기나 학습기구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발언권과 참정권이 동등하게 제공될 수 있는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을 중요시 해서 구글닥스를 이용한다든지 혹은 온라인 플랫폼같은 것을 두어서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을 진행해서 어떻게 하면 원활히 비대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견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또 다음 슬라이드에선 줌 회의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고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활용해서 온라인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임? 같은 것을 수업에 도입하여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학교 생활 관리도 온라인으로 진행하여서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하지 않고 교사가 개입하여 도움을 줄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하나고에서만 있었던 일이고 이러한 과정을 과연 모든 학교에서 실행할 수 있을지 혹은 이러한 방향이 또 오직 맞는 방향만은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비대면 수업 과정에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행복한 교육> vol.460, 교육부, 2020년 11월(사진을 클릭하면 링크로 연결)

우정: 이 자료는 교육부 자료집이에요.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에 교육부에서 만든 자료집인데 원격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서 대학과 정부에서 이런 차원의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되어있던 표인데요. 이걸 제가 가져온 이유는 여기 보시면, ‘질 관리체제 구축’, ‘대학의 노력’ 부분에 원격수업관리위원회 운영 학생참여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학생이 참여해서 원격수업의 질 혹은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기구라는 것이겠죠? 우리가 이전에 코로나19 상황에서 등록금 이야기만 나오고 수업의 질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문제제기했었던 것이 기억나서 가져와 봤어요. 학생참여위원회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 부분은 “공간혁신이 필요하다”인데요, 앞으로 원격 수업이 확대된다면 대학의 건물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사범대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1층 라운지 쪽에 스마트 교육센터 같은 공간을 만든다고 이름 공모하고 그랬었거든요. 그게 아직 안 만들어진 것 같긴 한데 그런 식으로 온라인 교육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고요.

 

출처: <행복한 교육> vol.460, 교육부, 2020년 11월(사진을 클릭하면 링크로 연결)

우정: 자료집의 마지막 부분에는 코로나 이후 미래교육전환을 위한 10대 과제를 제시하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만 몇 개 가져왔는데 과제 2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교원제도 논의추진이라고 해서 교사 1인당 감당하는 학생 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과제 7부분에서 고등직업교육 내실화 이 부분에서는 마지막에 VR이나 AR 콘텐츠 등을 활용해서 비대면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부분이 인상깊어서 가져왔어요. 비대면에서 새롭게 직업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 같아서 가져와 봤습니다.

출처: '"비대면 수업, 홀로그램·가상현실 이용" - 포스트 코로나, 비대면 온라인 교육 한계 극복해야', 김은영, The Science Times, 2020.09.01. (사진을 클릭하면 링크로 연결)

펭로시: 저는 교육공학적인 기술과 원격수업이 접목된 사례를 가져와 봤는데 한양대학교에서 텔레프레전스라고 킹스맨에서 나왔듯이 홀로그램을 활용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원격수업을 할 때 실제 교수님의 키와 모습을 재현해서 저와 교수님이 한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밝히고 있었어요. 한양대에서는 텔레프레전스 기술을 통해서 원격수업을 진행하려고 했고 또 연세대학교에서는 원격조교를 도입하여 우리가 비대면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합니다.

출처: '[트랜D]비대면시대는 새로운 교육의 출발점', 중앙일보, 2021.03.26(수정) (사진을 클릭하면 링크로 연결)

우정: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직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기사 또한 가지고 와봤습니다. 자, 그럼 비대면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러셀: 저는 우선 우정님이 마지막에 가져온 ‘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직 문화’ 그 부분이 굉장히 인상깊었던 게 코로나가 점점 완화되면서 대면 교육을 하게 되었는데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오늘도 의논을 했지만 비대면 교육을 직접 경험하면서 다양한 장점들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당연한 듯이 비대면을 하지 않고 코로나가 완화되면 무조건 대면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인 것 같아서. 혼합을 한다든지 아니면 비대면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서 저도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기술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려나 사고같은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펭로시: 저도 말씀을 드리자면, 확실히 러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대면 교육은 마이너스(-)이고 따라서 우리는 코로나 시국을 극복해서 플러스(+)인 대면 상황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논의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아까도 같이 논의해보았듯이 비대면 교육에서도 확실히 장점들이 많고 더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요. CG도 그렇고 아까 고슴도치뇽님께서도 말씀해주셨듯이 지역을 넘나들 수 있는?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수업 시간에 일본 학교랑 교류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일본 학교 학생들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고 같이 토론을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서 이런 부분들을 함께 수업에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까 강원도 기숙학교 다니는 친구 인터뷰했던 것도 보면 ‘풀면학, 풀자습’만 시키고 공부할 시간이 너무 많아지고 그런 부분들이 왜 생기나 하고 봤더니 제 생각엔 우리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대면교육을 할 때에도 수업에 대한 고찰이나 학습에 대한 고찰이 많이 없었다고 생각을 해요. 학교 내에서 성적을 최우선적으로 여긴다든지, 내신을 따는 것을 중요시한다든지 학생과 선생님들이 내신, 혹은 생기부를 작성하는데 목매거나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비대면 교육이 더 과감하고 더 획기적인 시도로 이루어지려면 우리가 엄청 많은 시도를 해봐야하고 비대면 교육에서 다양한 기술이나 아니면 체험이나 이런 것을 도입을 해야 할 텐데 결국 학교의 시선이 내신, 성적, 학생들의 진학같은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비대면 교육은 정체될 수밖에 없어요. 국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이너스(-)인 비대면 교육이고 플러스(+)인 대면 교육으로 어떻게 가야할까, 그런데 이것은 또 대면 교육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런 고민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냥 또다시 성적 산출이고 또 다시 줄세우기이고 약간 이런 식으로 간다고 생각을 했어요. 많은 학생들이 비대면 학교 수업을 소위 인터넷 강의? 수능을 위한 정보전달식의 수업? 정도로만 여기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대면 교육이 어디로 가야하나를 논의하려면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많이 고민하고 성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 대담을 통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월영: 저는 하나고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적용하려면 얼마 정도의 시간과 재화가 투자되어야 할까 하는(웃음), 엄청 암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힘들 것 같은 거예요. 저희 학교에서 2018년에 미투 사건이 있었는데 사실 그 전에 어떤 상황이었냐면 취약한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어야 했어요. 이거에 관련해서 교육청에서 지원금이 나오기로 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미투가 발생한 이후에 지원금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학교에까지 지원금을 주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작동한 것 같기도 하고 이 학교는 좋지 않은 학교다? 이런 사고가 작동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실망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이 자료 보면서 저는 기술이 발전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어요. 어차피 지원금이 나오고 안나오고... 이런 것이 다른 것에 달려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암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고슴도치뇽: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면 저도 앞으로 비대면 상황에서 있었던 장점들을 살리는 것은 필요한 것 같아요. 지역을 넘어서 좋은 학습프로그램을 공유한다든가 아니면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시각자료들을 활용한다든가 이런 것들은 앞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제가 학교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수업에 대해서 규칙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생각이 나는 건 마이크랑 화면 켜는 것 등 관련해서! 수업마다 규칙이 다 다르고 학생들도 생각이 다 다르잖아요. 사실 이것에 대해서 친구랑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들었던 수업에서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화면도 끄고 마이크도 끄고 있었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우리 수업은 아무래도 방대한 범위의 지식 전달이 필요해서 교수자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긴 하지만 강의가 교수자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능하다면 화면과 마이크를 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꺼진 화면을 보는 것이 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일상적인 소음 정도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거의 매 수업 시간마다 호소를 하셨어요. 근데 저는 교수님의 마음이 되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교수님이 저렇게 호소를 하시고 학생도 수업을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니까 학생들이 조금 더 적극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제 친구는 다르게 생각하더라고요. 수업에 참여한다는 책임감에 대해서 각자 생각하는 범위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어요. 친구 말에도 공감이 되더라고요. 수업의 질을 위해서 그리고 수업이 단순히 교수자 한 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더 많은 수업 참여자들이 마이크와 화면을 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수업을 구성해나가는 일원으로서 책임감의 범위라든지 화면으로 나의 사적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라든지 그런 것들도 걸려있어서 항상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수업에서 어디까지 협의를 할 것인지 조정을 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정님이 보여주신 자료 관련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교육부의 공간혁신이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그 말을 경계해서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캠퍼스의 공간과 시설의 내부 구조를 원격교육에 적합하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노란 줄이 쳐져 있는데, 물론 저도 이게 어떻게 바뀐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교육을 들을 수 있고 비대면 실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유로 원격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동아리방이나 학생자치공간이나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디지털 센터로 대체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해서요. 이 자료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이런 맥락으로 공간 혁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앞으로 우리 캠퍼스의 시설이 바뀔 때 그게 조금 어떻게 바뀌는지 더 예민하고 자세하게 고민을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캠퍼스 공간과 시설이 원격교육에 적합하게 재구성될 때 오히려 학생들이 더 개인화되고 점점 공동체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캠퍼스가 재구성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원격교육에 맞는 대학이라는 이유로 앞으로 캠퍼스 없는 대학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도 조금 들고요. 그래서 대학뿐만 아니라 모든 시설이 기술혁신과 접목될 때 그게 어떻게 접목되는지 자세히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답은 못 내리겠지만 대학이 원격교육에 맞는 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톺아보아야 할 것 같아요.


우정: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그런 것이 되려면 학생비대면교육위원회 이런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학생들의 의견도 반영이 되겠죠!


월영: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작년 1월에 처음 코로나 터졌을 때는 학생회나 아니면 학생자치활동 이런 것들을 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긴 하더라고요. 다양한 기술들을 이용하면. 그런데 그 와중에도 대면으로밖에 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비판들도 절충해나가면서 나름 잘했다고 보는 편이지만 여전히 20학번 분들이랑은 유대관계를 거의 쌓지 못한 채로... 기술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열린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을 많이 해야겠지만 무조건 무턱대고 받아들이자는 소리는 아니고 고민을 많이 하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을 하면서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대담을 마무리하며


우정: 이렇게 소중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나눠보았는데, 오늘 대담이 어땠는지 각자 소감을 나눠볼게요. 우선 저는 저번 세미나에서 대학 등록금 반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 질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비대면 교육을 대담 주제로 건의하게 되었는데, 해결책이 없는 문제인 만큼 명확한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고민할 때 꺼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고슴도치뇽: 저도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난 1년을 잘 정리한 것 같아요!


펭로시: 저 혼자만 생각했을 때에는 막연했는데, 대담을 통해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리된 것 같아요. 또, 제가 교사가 돼서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직접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월영: 저는 마지막쯤 기술발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어요. 최근에 '지민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어요. 이 책에서는 기술의 다양한 활용방안과 지식의 가치 중립성의 허상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과학이나 기술이 진입장벽을 더 높게 쌓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지식을 알기 쉽게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저도 많이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조금 막막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깊게 고민할 수 있어 좋았어요!


러쉘: 저도 미래의 교사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오늘 회의가 다양한 생각할 지점을 던져주는 것 같아 너무 소중하고 유익했습니다!

 

우정, 러셀, 펭로시, 고슴도치뇽, 월영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2020학년도 2학기도 대부분 비대면 수업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지난 호 <특집-코로나19와 교육>의 고민 지점을 이어, 비대면 교육의 한계와 앞으로의 교육 방향을 고민하는 대담을 나누어보았습니다.


# 당신이 경험한 비대면 교육, 어떠셨나요?


우정: 처음에는 간단하게 여러분이 경험한 비대면 교육이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시다. 웃겼던 점, 힘들었던 점, 좋았던 점 등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 비대면 교육에서 있었던 ‘웃긴썰’


우정: 우선 저는 이번에 영어 연극 수업을 비대면으로 들었어요. 원래는 대면으로 2인 1팀으로 무대에서 연극을 해야 했었죠.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장면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물을 뿌리는 장면을 Zoom에서 연기해야 했는데, 여자 역할의 분은 자신의 노트북 카메라에 물을 뿌리고 남자 역할의 분은 동시에 스스로 얼굴에 물을 뿌리셔서 리얼하게 해당 장면을 구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러셀: 저도 Zoom 사용에 서툴러서 있었던 웃긴 경험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개별적으로 Zoom 모임을 하면서 사용자 이름을 ‘고구마 먹는 000’ 이런 식으로 바꿔두었는데, 다음 날 그대로 교양 수업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어요. 엄청 민망했어요.
펭로시: 저는 Zoom으로 발표를 하던 중에 서버에 튕겨서 조원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와이파이 문제가 해결되고 곧바로 다시 들어가자, 교수님은 저를 애타게 찾고 있었고 저희 조 다른 분이 저 대신 발표를 하겠다고 말하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죄송했던 기억이 나네요.


고슴도치뇽: 너무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저도 작년 1학기 때 서버가 튕겼어요. 사실 저는 수업할 때 교수님의 모든 말을 다 들으려 하는 편인데, 수업을 아예 1시간 넘게 통으로 못 들어서 화가 나더라고요.


월영: 저는 일부러 실수할까봐 줌 채팅 대신 카톡을 쓰는 등 조심했어요. 그런데 딱 한 번 헤드셋으로 수업을 듣는데 벗어두어서, 수업이 시작한 줄 몰랐던 경험이 있어요. 10분 정도 수업에 늦어 섬뜩했던 기억이 있네요.

 

<한 고등학생의 비대면 교육 경험 내용 인터뷰>

펭로시: 이 자료는 제가 저번 학기에 교육 경영 수업을 들을 때 사촌 동생을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원래 학교는 학사 일정이 정해져 있고 이에 따라 운영이 되는데, 코로나 이후에 정책이 계속 바뀌면서 일정이 누락되고 갑자기 바뀐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실제로 사촌 동생 학교에서는 코로나 19로 지정된 날짜에 체육대회를 하는 것이 불가하니까, 갑자기 문화제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고 이후에 또 다시 코로나가 심해지니까 점심시간에만 축소해서 진행한다고 번복하여 학생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대면 수업 때는 선생님이 교실에 와서 출석체크를 하고 학생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지만, 원격 수업 때는 그렇지 못했다고 해요. 수업을 다 듣고 문제를 푸는 형식으로 출석체크를 대신했는데, 문제 난이도가 너무 쉬워 대부분이 학생들이 수업을 안듣고 문제만 풀어서 제출했다고 해요. 수업에 있어서도, 판서가 안 보이는 등 진행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학생들이 마이크를 켜고 말하기 주저해 바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처럼 원격 수업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정: 저는 자료의 마지막 말에 공감했어요. 기술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원격 수업을 코로나 시대의 임시방편으로만 여기는 분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임시방편이든 아니든 현재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를 꺼려하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교사들이 기술을 수용하려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펭로시: 저는 자료에서 비대면 수업 때 마이크를 켜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 공감했어요. 마이크를 켜는 것이 마치 대면 수업 때 강의실 한가운데에 가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말하는 것 같았어요. 


고슴도치뇽: 대부분 수업에서 작은 생활 소음이 나도 ‘00님 마이크 꺼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해가 되면서도, 온라인 강의가 되면서 모든 생활 소음이 차단되고 교수님 말만 들려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이런 방식이 그동안 듣던 인강과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아요.


월영: 이 점이 아직 온라인 기술의 한계인 것 같아요. ZOOM에서는 동시적으로 소통할 수 없고 조금 뒤에 말이 도달해요. 예를 들어, 언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말을 따라 해보라고 하면 각자의 말이 씹히고 중첩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요. 소통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한계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는 오직 대면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고슴도치뇽: 혹시 교수님이 조금 천천히 말할 수는 없나요?


월영: 각자 소리가 도달하는 시간이 달라서 계산하기 힘들 것 같아요. 


고슴도치뇽: 아. 저도 그러한 점은 한계라고 생각해요. 근데 지난 학기에 수업 시연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학생들에게 학습 목표를 읽게 하자 모두 마이크를 켜고 각자의 목소리와 속도로 따라 읽는 게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펭로시: ZOOM에서도 음성 중첩이 되도록 한다든지, 대면 수업처럼 각자의 목소리가 적당한 크기로 동시에 들릴 수 있도록 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월영: 이와 관련해서 조매력 유튜버가 떠올랐어요. 싱크룸을 활용해서 합주를 하는데, 줌과 다르게 완전 동시적으로 다양한 소리가 나는 게 가능했어요. 


우정: ZOOM도 점점 발전하니까 마이크 중첩을 해결해달라고 건의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 봅시다. 

 

 

# 비대면 교육, 실컷 욕해봅시다!


우정: 이미 앞에서 조금 이야기가 나온 것 같은데, 비대면 교육의 한계점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 비대면 교육 상황에서 심화된 불평등


러셀: 저는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학습 불평등과 관련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프레시안 기사[각주:1]에 따르면 비대면 교육으로 학습 격차가 커진 이유는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차이, 학부모의 학습 보조 여부, 학생과 교사 간 소통의 한계, 학생의 사교육 수강 여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 중 대부분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학습 불평등 외에도 비대면 교육으로 급식을 먹지 않게 되면서 식습관 격차가 커지는 등 학습 외 불평등도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우정: 비대면 교육으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남는 시간에 경제적 여건이 되는 경우 학원이나 더 좋은 교육 기관에 갈 수 있으니까 학습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것 같아요. 또, 학교의 역할을 모두 가족 내에서 부담하게 되면서, 돌봄이 가능한 가정이냐 아니냐에 따라 급식처럼 학습 외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막연히 가족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어려운 것 같네요. 


고슴도치뇽: 저는 공공기관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 사회인지에 따라, 학습 불평등과 학습 외 불평등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시설이 부족하잖아요. 소수의 관리자가 많은 사람을 담당하고 돌보는 경우가 많아서 더 밀집시설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사회에서 공공시설의 중요성이 똑같지 않잖아요. 어떤 사회에서는 수많은 기업이나 가게들이 문을 닫더라도 공공시설만큼은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하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공시설이 그 어느 시설보다 더 빨리 운영이 중단되는 것 같아요. 이런 공공시설이 사람들이 밥을 먹고, 관계를 맺고,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 상황에서도 많은 인력과 자원을 지원해서 혹은 어느 시설보다 빨리 칸막이를 설치해서 급식 배식이 되도록 하고 전자기기와 공간을 마련하여 집에서 학습을 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겠죠. 결국은 공공시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불평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정: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공공시설을 확대한다고 해서, 코로나 때문에 단체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어떻게 돌봄을 위탁할 수 있을까요?


고슴도치뇽: 직접적으로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어렵겠지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여러 장치를 마련할 수 있겠죠. 제 친구 중 노인 복지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몸이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외로움과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고민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이 오지 않는 복지관이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영상을 제작하고 전화로 어르신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여쭙기도 하고요. 급식의 경우도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은 안 되겠지만, 시간을 나눠 방역수칙을 지킨다면 청소년들이 공공시설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고민과 체계적인 운영, 금액 지원이 있다면요. 결국은 우리 사회가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코로나 사태를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공공기관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문을 닫아버리는 쉬운 선택을 하기보다, 다른 곳들은 다 문을 닫아도 공공시설만큼은 필수로 운영되는 시설로 지정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회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월영: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모여야 한다는 사실과 공공기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뉴스에서 실행 방침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을 모이지 않게 하는 것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게 느껴져요. 어쩔 수 없이 모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대책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잖아요. 


펭로시: 고슴도치뇽님과 월영님 의견에 정말 동의를 합니다. 공공기관은 일단 문을 닫고 나서, 고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호에서 비행인 님이 쓴 글[각주:2] 중 코로나로 도서관이 문을 닫았는데, 학교에서는 책읽기 수업이 많아 비상이 걸렸다는 내용이 떠올랐어요.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는 플랫폼처럼 다른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기관은 일단 문을 닫는 것 같아요. 문을 닫는 게 필수불가결할 지라도 적어도 문을 닫음으로써 발생하는 영향력에 대해서 계속 숙고하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 방침은 일단 문을 닫고 모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비대면 교육 상황에서 의사결정 방식의 문제점


월영: 저는 펭로시님이 조사해오신 인터뷰에서 ‘교육청에서 지침이 내려오고 학교에서 하면 학생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라는 부분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서로 의사소통을 하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직선으로 의견이 하달되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정: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많은 게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당연히 전염병 상황에선 서로 떨어져야 하고, 머리를 맞댈 수 없고, 하달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얼마든지 대안적인 방안들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줌으로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소통이 잘되는 학급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지 행정명령이 내려왔으니까 따라야지 정도에서 멈추고, 더 이상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것 같아요. 


펭로시: 맞아요. 이와 관련해서, 지난 호에서 비행인님이 쓴 인터뷰 중 어떤 학생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해서 수행평가를 보지 못했는데 점수를 아예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떠올랐어요. 학교 지침을 찾아보니 이와 관련된 부분은 아예 가이드라인이 없었어요. 지침이 추상적이라서, 맥락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하나도 적용할 수 없었어요. 아까 계속 하달식 전달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달식 전달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정책일 뿐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대안으로서,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플랫폼에서, 학생 교사 그리고 다양한 일반인들이 자기의 경험을 공유하여 가이드라인을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다면, 하달식이 아니라 수혜자와 공식기관이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슴도치뇽: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학교가 너무 별로네요. 코로나 검사를 받아서 수행평가를 못 봤더라도 충분히 대체과제를 마련해서 학습 내용을 평가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을 못 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하지 않았다는 게 학생의 입장에서는 정말 부당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우정: 방역을 지키기 위해 받은 불이익이 하나씩 쌓이면 과연 코로나 검사를 받을 사람이 있을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코로나 방역을 위해서도 한 명 한 명의 일상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비대면 교육 상황에도 여전한 학교폭력 문제와 해결방법


우정: 이는 비대면 교육으로 학생들 간의 소통이 어렵고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으니까 애초에 갈등할 상황이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올해 학교 폭력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이버 폭력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오프라인 학교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은 비교적 교사가 상황을 파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의 경우 카톡, SNS 등으로 따돌림이 이루어지면, 교사가 어떻게 중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이런 경우에 교사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출처: '온라인으로 옮긴 학폭 '비대면 교육의 그늘', 이성희, 경향신문, 2021.01.21.(기사입력) (사진을 클릭하면 링크로 연결)

고슴도치뇽: 너무 어려운 문제예요. 저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기사도 봤어요. 코로나 상황에서 여러 폭력이 특수하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그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계속 내재해왔던 문화, 생활양식과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폭력 관련해서는, 올해 다들 일 년 동안 정신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교과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하기 바빠서 반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거나 규칙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실제로 교사 브이로그를 보면 학생들 결석하면 전화하고,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또다시 전화하는 등 일상이 전화더라고요. 올해부터라도 개인화된 사람들이 각자 파편화된 공간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반이라는 공동체를 결속하기 위한 방법이나 서로를 온라인상에서도 존중하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러셀: 고슴도치뇽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보통 대면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이 있고 친구들과 소통할 시간이 존재하는 데, 비대면 수업에는 쉬는 시간이 없었어요. 학생들끼리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학급 회의를 줌으로 하는 등 학생들끼리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비대면에서도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정: 비대면 상황에서 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선 담임 선생님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담임 선생님이 소회의실을 열어주는 등 다양한 기회를 마련되기 위해선 교사의 의지와 열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월영: 저는 처음에 이 자료를 읽었을 때, 학교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이러한 제 생각에 스스로 조금 실망했어요. 비대면 상황 속 폭력도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공간이 온라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건드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다시 생각했어요. 학교는 계속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정: 서로 소통이 어려워지는 만큼 보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구글 폼 링크를 주고 어려움을 묻거나, 조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소회의실을 열어두고 학생들끼리의 시간을 마련하고 각 소회의실에 방문하여 분위기를 살피는 등의 노력이 사이버 폭력 문제를 조금은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슴도치뇽: 저는 학교마다 상담 교사가 있고, 대학에서도 상담 기관이 존재하고 이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꼭 학교 폭력이 아니더라도, 비대면 상황에서 어떻게 상담이 가능하고,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공적인 정보로 알린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정: 일단 여기서 마무리 짓고, 대면만이 할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이 있다면 비대면 교육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봐도 좋을 것 같아요. 

 


# 대면 교육에서만 가능한 것이 있을까?


- 학교 공동체에 대한 신뢰


우정: 저는 아까 인터뷰 자료 중에서 “풀면학, 풀자습. 그래서 스트레스가 엄청 쌓여있다”라는 부분이 너무 안쓰럽고 공감이 되었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수학여행도 있고 당연히 모든 고등학교에 있겠지만(웃음) 동아리 발표회도 있고 큰 행사들이 몇 개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다 취소되면서 지금 고등학생 친구들은 그것을 하나도 즐기지 못한 상태로 2년 내내 그냥 풀면학, 풀자습인 거예요. 그런 후배들이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대나무숲에 학교가 우리를 신경쓰기는 하는 거냐 하며 시끄러웠던 적이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행사들이 노는 것이라고 생각을 보통 하지만 결국은 이게 하나하나 모여서 학교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만드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학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공부할 의지도 생기고 그러는데 그런 게 없어지는 것 같아서 학교와 학생들이 파편화되는 느낌이에요. 

 


- 일상 속에서의 배움


고슴도치뇽: 확실히 비대면 교육으로 대체될 수 없는 만남 속에서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특히나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젓가락질하는 법이라든지, 아니면 친구랑 싸웠을 때 갈등을 해결하는 법이라든지... 이런 건 대면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하는 공간에서, 일상 속에서 배움이 가능한데 그런 것들이 확실히 비대면에서 조금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간 슬픈데, 사실 저는 앞으로 원격소통방식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 방식이 될 것 같아요. 일단 우리 일상에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물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말은 우리 시간을 틈틈이 쪼개면서 할 일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가령 대면이었을 때는 학교 끝나고 하나의 일정만 잡을 수 있었는데, 비대면이 되니까 일정이 끝도 없이 늘어나더라고요! 이전에는 오후 7시~10시 정도 하나의 활동을 하고 뒷풀이를 갔다면 이제는 6시~8시 책모임, 8시~10시 세미나, 10시~12시 회의 이런 느낌이요... 시간을 틈틈이 쪼개가면서 하는게 우리를 더 피로하게 만들겠지만 그게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더 갈아 넣게 만들고 많은 회사에서도 주된 사용방식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제가 말했듯이 더 잡담할 새가 없어지니까 회의가 빡빡하게 진행되고 원격소통 속에서 회사는 더 이상 이 사람이 업무할 공간과 자재들을 제공해줄 필요가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이 알아서 공간을 마련하고 회의 자료를 복사해야 되겠죠. 하지만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뿐만 아니라 많은 공간에서도 대면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성장에서 필수적인 것들 혹은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이 저는 대면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비대면으로 대체될 때 앞으로 더 그런 것들이 더 희미해져갈 것 같아요.

 


- 일상적인 여유


펭로시: 저 고슴도치뇽님의 말씀을 듣고 갑자기 생각난 건데 비대면 되면서 많이 슬펐던 게 저희가 대면일 때는 예컨대 사범대에서 수업을 듣고 2시간 붕 뜨면 제가 칵테일 만드는 동아리에 들어가 있었는데 ‘아! 칵테일 만들면서 시간 보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거닐던 기억이 가끔씩 나는 거예요. 그 당시엔 이동시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그 비었던 두 시간 동안 내가 걸어 다닌 것이나 아니면 걸어 다니면서 봤던 가로등 하나가 엄청 예뻐서 거기에서 사진 찍고 동아리 들어가서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칵테일 마시고 수업 시간 다 되었을 때 다시 일어나서 다른 동으로 향하는 그 순간들이 엄청 소중했었는데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2시간 동안 텀이 비면 일단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켜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핸드폰을 보다가 시간이 되면 ‘수업 들어야겠다!’ 하면서 다시 일어나서 제 방의 컴퓨터 앞에 앉는데 그러면 제가 대면 수업 때 느꼈던, 학교를 거닐면서 느꼈던 것을 하나도 안 느껴지고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대면 수업이 되면서 대면 수업 때 느꼈던 감동이나 여유가 없어진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저는 좀 많이 슬펐어요. 

 


- 행정 절차의 명료성


월영: 저 같은 경우에는 반에서 학생회장 투표를 해야 했거든요. 학생회칙에 명시된 투표 방식을 따라야 하는데, 오프라인으로 하면 아주 쉬워질 일들이 온라인으로 하니까 너무 어려웠어요. 결국 어째서든 하기는 했는데 비대면으로 하게 된다면 자원이나 혹은 충분한 서비스 제공, 능력?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에겐 진짜 치명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담] 비대면 교육, 어떠셨나요? (2) 에서 계속... edujournal2018.tistory.com/90

 

우정, 러셀, 펭로시, 고슴도치뇽, 월영

 

  1. 이상구, <코로나19, 교육 불평등의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다>, <<프레시안>>, 2020.10.05., 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0511524581920#0DKU 2021.02.19. [본문으로]
  2. 비행인, <코로나로 비춰본 교정 2020–교육 당사자 인터뷰>, 2020.09.07., edujournal2018.tistory.com/61?category=801777 [본문으로]


<숏 텀 12 (2013)> 

 

줄거리: 그레이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메이슨은 문제 청소년을 단기 위탁하는 청소년 보호기관 ‘숏 텀 12’의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그레이스는 상당수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는 숏 텀 12의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용기를 주려고 노력한다. 일터에서는 무한한 애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그레이스지만, 퇴근 후에는 그녀 자신도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숏 텀 12에 매우 까다롭고 공격적인 소 소녀 제이든이 들어오고, 그레이스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제이든을 구출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레이스는 드디어 자신의 내면과 직면할 용기를 얻고, 두 사람은 눈부신 도약을 시작한다.[각주:1]

 


 

  교육저널에서 ‘청소년’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이다. 우리는 기사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더욱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고 느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이번 교육저널 영화제에서는 청소년 보호기관에 위탁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숏 텀 12’를 함께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진영: 영화 잘 보셨죠?


일동: 네!

 


# 각자 인상 깊었던 장면


우정 : 가정폭력 상황에 놓인 제이든의 고충이 나오는 장면에서 ‘가정폭력을 어떻게 하면 근절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의 필요성을 좀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최근 정인이 사건 등도 그렇고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리 : 저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나요. 하나는 그레이스가 제이든과 같이 제이든 아빠 집에 가서 차로 부시는 장면이 생각났어요. 처음에 그레이스가 제이든 아빠 집에 가는 거 보고 '저길 왜 가지? 지나치게 제이든의 상황에 몰입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둘 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있는 건 똑같은데, 제이든이 집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그레이스가 무기를 들고 들어갔잖아요. 그럼 이건 제이든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이든 아빠에게 자기 아빠를 투영해서 보복하겠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제이든을 찾기보다 아빠 앞에서 서 있었잖아요. 아이를 구한다기보다 자기한테 깊이 투영한 나머지 보복하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제이든이 나왔어요. 제이든이 나와서 둘 다 이전에 위탁소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 때처럼 같이 야구 방망이로 제이든 아빠 대신 제이든 아빠가 타는 차를 부시는 걸로 신나게 마무리가 되어서, 제이든이 그레이스를 만난 게 제이든에게도 잘 된 일이지만 그레이스에게도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건져주는 사이. 그게 첫 번째로 인상 깊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 바로 직전에 위탁소장인 잭과 위탁소 직원 그레이스가 말다툼하는 장면이었어요. 잭이 '나는 너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 봤는데 성범죄자 부모를 고발하지 못 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애를 데려간 게 맞는 일이냐 하면, 화가 나는 동시에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는 법이 있고 규칙이 있는데 피해 당사자인 아이가 나는 피해를 봤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못 데려가는 게 법이면 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흘러갔던 것 같아요. 분노가 분노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장의 상황에도 화나지만 그런 규칙과 법의 존재에 대한 분노도 생겼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2차 피해도 많이 일어나고, 하, 화납니다. 분노로 끝났어요.


현도 : 그레이스가 자기 아버지가 출소한다는 걸 들은 이후 감정의 혼란을 겪었잖아요. 제이든 아빠 앞에서 야구 방망이 들고 선 장면에서 ‘정말 죽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정민 : 한국영화였으면 '아악, 치지 마. 너도 감옥 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서 공감돼요. 잭이 그렇게 얘기한 다음에, 그레이스가 화나서 조명을 뽑아가요. 그러더니 밖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바닥에 던지는데, 놀랐어요. 처음엔 어른이라서 그런 건가 해서 생각했는데, 그 건물이라는 게, 그레이스가 엄청나게 애정을 붓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니까 밖으로 나가서 공간을 해치지 않게 조명을 던지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제이든의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데, 배경 음악이 위태롭지 않고 너무 멋져요. 너무 단단해 보이고. 싸울 때는 금방 무너질 것처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아요.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다가 금방 풀리고 다시 단단해지는 장면의 연속이죠. 앞의 장면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표현했다면 그 장면에서는 보호자 어른 선생님인 그레이스를 그렇게 연출해서 좋았어요. 마치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어요.


현도 : 정말 공감해요. 그레이스가 자전거를 타거나 잡고 서 있을 때 굉장히 굳세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엄청나게 튼튼한 사람 같고, 히어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걸 의도한 건가 싶었고요. 정민님이 이 부분을 말씀해주셔서 공감되네요.


진영 : 너무 신기한 게, 어떻게 하나의 영화를 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이렇게 다르죠? 한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다른 게 정말 신기해요.


저는 제이든이 그레이스한테 '니나 동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 장면이 그레이스에 대한 신뢰가 쌓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결국,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 장면은 제이든이 그레이스한테 그렇게 신뢰를 줄 수 있었던 이유와 관련 있는데, 그레이스가 잭한테 가서 “왜 아빠에게 학대받고 있는 제이든을 부모네 집으로 보내?”하면서 화내죠. 그때 말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잭이 “동화 얘기를 들려줬다고 그러는 거야?”라고 하니까 “아이는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라고 말해요. 그레이스가 제이든의 시선에서 이해해주려고 계속 노력했기 때문에 제이든이 신뢰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


우정님이 아까 가정폭력 근절 얘기를 했지만, 가정 폭력 상황을 파악하는 데서 피해자가 모든 사실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게 피해로 인정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그 장면에서 잭의 말 중에 생각이 나는 건 “그런 건 상담사가 하는 거다. 너는 시설 관리 직원일 뿐이다.” 이 부분이에요. 상담사와 시설 관리직의 업무가 구분되는 건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시설관리직 직원들이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인데, 업무를 구분 지음과 동시에 시설 관리직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되는 것 같아서 되게 생각이 나요.


정민 : 2학기 말쯤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게 '대상화'예요. 우리가 이걸 말할 때 좋은 어조로 말하지 않죠. 말 그대로 타자를 내 인식 세계에 들여오기 위해서는 대상화가 필수적인데 이걸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진영의 말을 들으며 '마주 봄'과 '같이 봄'이 떠올랐어요. 대상화는 보통 일상에서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밥 먹고 얘기하는 사람은 대상화를 하지 않아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레이스와 같이 마주 보고 있는데, 그래서 갈등이 깊어지는 게 연출이 되다가도 화해하는 장면이 인상 깊어요. 연인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행동이긴 한데, 화해하는 장면에서 힐끔 보고, 담요 벌려주고, 쏙 들어가요.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눕죠. 


우정 : 잭과 그레이스가 말다툼하는 장면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현실에서 아이들을 잘 알고 공감해주는 사람은 그레이스였는데, 사실 잭도 그만큼의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을 테고 그 결과가 규칙을 따르는 것이었을 거예요. 잭에게도 잭의 맥락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으로는 그레이스를 응원하지만 ‘뭐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교사가 되어서도 비슷한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두운 길을 혼자 걷는 학생이 있을 때 교사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요? 직접 발로 뛰면서 쫓아가는 게 맞을까, 교사의 바운더리 안에서 편안하면서도 지킬 건 지키는 삶이 맞을까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교사로서 마주칠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아리 : 정민님 말씀처럼 연출과 관련해서,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핸드헬드가 두드러졌어요. 자연스러우면서도 흔들리면서 현장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어요. 이 영화의 전반적인 것과 같이 흘러가요. 화면이 조금씩 흔들리는데 이 영화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물들이 없죠. 그런데 인물들이 다 흔들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도움이 되어 주고 위안이 되어 주면서 희망을 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요. 연출도 이런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 상태와도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위탁소에서 탈주하는 새미를 잡으려고 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많이 흔들리죠. 그게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여기까지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흔들리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일상을 잘 영위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위탁소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오면 또 혼란도 있고 하겠지만 결국에는 잘 풀리고 다들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진영 : 잭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는 말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관료제적인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저는 만일 그 상황이었다면 좀 더 그레이스의 입장일 것 같아요. 관계라는 것은 어느 순간에 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시설관리직원'은 현장에서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느끼는 감각이나 생각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들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시설의 장인 잭도 충분히 대안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같이 얘기를 해보거나 위탁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등 충분히 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법에 순응하고 직원의 태도에 공감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저는 조금 아쉬웠어요. 그레이스와 같은 위치에 있을 때 나를 위해서도, 나와 함께하는 이 공간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가 소진되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을 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을 제한하거나 힘이 풀리게 하는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위탁소라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현도 : 위탁소라는 공간을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보면서 진짜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을 전부 열어 두어야 하고 가위 등의 물품들도 모두 가져서는 안 되고. 뒷장면이 되게 처음 장면과 같은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이렇게 희망적으로 연출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마커스가 메이슨 옆에 앉아서 랩 하는 장면 있잖아요. 거기서 메이슨이 여기에 대해서 더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반응할 때 혼란스러웠어요. ‘결국,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고, 여기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어요. 위탁소라는 공간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정민 : 현도님이 언급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는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현도님과 엄청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위탁소 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깨끗해 보이지 않는 느낌의 벽. 교널 동방 느낌의 벽. 그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그래도 괜찮지 않나?’ 하고 들었던 생각이, 시설은 좀 그럴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 있는 그들만의 유대 관계가 있고 그게 너무 좋아요. 처음에 울고불고 난리 치죠. 마커스가 색종이를 들고 와서 다 같이 편지 쓰고 그림을 그려서 주는 데 그것을 순순히 따르고 너의 친구 00이가, 행복한 하루 되길 바라 이런 식으로 하는 애정들이 너무 좋았어요. 위탁소라는 공간 자체가 엄청 긍정적인 공간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볼만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영 : 저도 정민님과 비슷해요. 처음 몇 십분 동안은 되게 무섭고, 별로고, 문제가 많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도님이 말한 것처럼 칼 같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다 뺏기죠. 가장 싫었던 건, 문을 잠글 수 없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문을 잠그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맥이 일치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는 공간이고, 더 나은 일상을 위해서 이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드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공간을 완전히 문제없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게 위탁소라는 공간을 낭만화하고 다가가기 어렵게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자유를 박탈당하고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것 역시 공동체이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가 만들어졌고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관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자기가 만든 노래나 동화를 들려주고 생일 파티도 하고 편지도 쓰는 그런 것들이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내가 공동체 안에 속해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 위탁소에서 그런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아리 : 정민님과 진영님이 얘기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이 공간이 그리 좋은 공간이 아닐지라도 마커스가 생일을 축하해주고, 생일이라고 컵케이크를 만들어서 나눠주고, 촛불을 부는 등 소소한 행복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중간에 어떤 친구의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그 아이는 위탁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아이가 문을 딱 여는데 밖이 너무 환했고 햇빛이 들어왔어요. 여기에서는 다들 음침한 분위기에서 TV 보고 있고, 멍 때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부모님과 나갈 때 빛이 들어오는 게 대비되어서 햇빛 있는 밖과 격리되어서 우리끼리 고립되어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뒷장면에서 메이슨도 사실은 엄청 대규모 입양 가정의 일원이었고 메이슨의 양부모는 많은 수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또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메이슨은 양부모가 계시고 양자식들이 있어서 하나의 진짜 가족이라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되었고, 그게 위탁소에서 똑같이 적용되어서 그레이스와 메이슨이라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메이슨네 가족과 비슷한 끈끈한 유대 관계로 이어진 가족이 형성되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또 하나는 메이슨이 여기서는 아빠지만 사실은 양아들이었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데, 사실 메이슨도 양아들이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형태였고 그레이스도 학대를 겪은 사람이었죠. 메이슨네 가족이 어딘가 조금 결핍이 있지만 그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이 된 것처럼,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보듬어주는 진짜 연대를 이루는 것이 행복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가족이라는 게 장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위탁소는 가족이 머무르는 곳일 뿐이지 하나의 엄청 나쁜 곳이라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현도 : 맨 마지막 장면에서 햇살이 비치는데 그게 아리님께서 말씀하신 ‘빛’이 들어와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루이스는 어떤 사람일까


정민 : 저는 좀 궁금했던 게 루이스의 에피소드가 나올 것 같았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매일 오해받고, 싸우고. 그 친구를 어떤 포지션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리 : 루이스가 진짜로 위탁소에 있는 가장 평범한 애가 아닐까 싶어요. 현실적으로 아이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다 알지 못하는데, 당사자가 스스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아이가 보인 정황만으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죠. 지금 우리가 루이스에 대해서 하고 있는 게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위탁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얘도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 얘가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 꽤 현실적인 것 같아요.


현도 : 아리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루이스는 매번 침대에 있잖아요. 그레이스가 물총 쏘면서 깨울 때 물총 못 쏜다고 놀리거나, 마커스가 자기 방 앞에서 자해를 했는데도 모르잖아요. 아리님이 말하신 전형성에 맞는 친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자기 세상에 틀어박혀서 지내고자 하는 그런 친구 같아요. 



# 새로운 직원, 네이트는 어떤 사람일까


우정 : 복잡한 인물,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자 왔지만 아이들을 타자화하고 아이들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 같아요. 도우려고 하지만 여전히 넘지 못하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위탁소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나는 아마 네이트와 같은 인물이었을 것 같아요. 네이트가 복잡하면서도 안쓰럽고 그러네요. 


아리 : 저는 네이트가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불우한 아이들과'라고 말한 것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어요.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우정님의 생각처럼 이곳에 일을 하러 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겠죠. 그런데 네이트가 하는 일은 수동적인 행동이었어요. 그러나 후반부에서 청소기로 소파를 청소하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새미에게 인형을 주는 것이었어요. 이걸 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 걸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을 불우한 소년들 정도로 바라보고 시혜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들을 이해하고 한 명의 인격체로 보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고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가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진영이 이야기해준 그레이스와 제이든의 관계에서처럼 아이들의 소통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정민 : ‘불우’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우리는 매번 동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혹은 결핍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잖아요. 동등한 위치에 있는 타자의 집에 가서 갑자기 도와드리겠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정말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이 돼요. 교과서적으로 말해보자면 나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텐데. 그런데 여기에서 고민을 그만두어도 될지는 의문이에요.


현도 : 네이트가 처음에 되게 자기 말이 많은 사람 같았어요. 본인에게 묻는 질문이 아닌데도 본인이 답을 할 만큼 자기 입장/생각을 상황에 관계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형을 전해주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마음이 찡했어요. ‘이 사람도 되게 많이 변했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그레이스가 제이든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알았던 것처럼. 


제가 사실 장애를 가졌던 적이 있어요.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를 탔어요. 그때 진짜 싫었던 것이 휠체어 끌어주겠다는 사람이었어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각주:2] 도와준답시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싫었거든요. 



# 기타


현도 :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았어요. 그레이스의 인생에서 아버지는 다신 대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그냥 없어도 되는 사람이었죠. 그런 맥락이라면 영화에서 잘 넘겼다고 생각했어요.


아리 : 만약 한국 영화였으면 카페 같은 곳에서 아버지랑 만나는 등 클리셰 같은 장면이 등장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깔끔하게 아버지가 끔찍한 사람이지만 더 이상 그레이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끝난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위탁소라는 장소에 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제가 학생 인권 연구 프로젝트할 때 탈가정 청소년에 대해서 연구했어요. 쉼터에서 머무는 청소년들과 연구를 조금 진행했는데, 위탁소나 쉼터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고 각자의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는 불량하고 허용되지 않은 것들을 마음대로 하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 같이 생각나기도 했었어요. 세상에는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 마무리


진영 : 저는 사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위탁소라는 공간이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져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어떤 문제를 접하면 ‘완벽한’ 해답을 내리고 싶어 하는 좋지 못한 습관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했는데 이 위탁소라는 공간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 안에서는 자유를 박탈하고, 그 안의 직원들의 약간의 폭력적인 모습(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모습 등)도 보면서, 처음에는 ‘아, 역시 그런 게 문제야. 뭔가 [불량] 청소년에 대한 소외적인 시선과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비청소년, 사회의 주류적인 시선과 문화가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그 점에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위탁소라는 공간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여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고, 일방적으로 청소년들이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혹은 내가 사랑 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게 필요하고 그런 관계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현도 : 저는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가 제가 못 보거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게 많이 짚는 다는 것이에요. 이런 시간도 너무 재미있었고 이걸로 이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리 : 저는 진영이 얘기했던 거에 공감하면서 시작할게요. 저도 약간 처음에 인상 깊은 장면 말할 때 조금 분노가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교육저널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더 깊고 다양한 시각에서 위탁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영화제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또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민 : 아리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셨던 게 좋았어요. 영화제 계속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너무 많은 얘기가 압축적으로 나와요. 중간에 그레이스가 상담하는 부분도 몇 초 나오죠. 그렇게 짧게짧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왔던 것이, 처음 볼 땐 그런 게 너무 많이 나오니까 ‘영화로서는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까 아리님이 루이스가 위탁소에 사는 아이들의 전형이지 않을까 하는 말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 너무 많은 장면들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영화는 같이 봐야 한다는 게 맞는 듯해요.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이게 이런 걸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 게 좋아서 너무 즐거웠어요.


우정 : 저도 영화를 보면서 하나의 장면에 대해서도 깊이 얘기하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좋았어요. 위탁소라는 공간은 양육과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우리 동아리에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추후 기사를 쓰면서 꺼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진영, 아리, 지윤, 채미, 현도, 우정, 정민

  1. 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0390#none. [본문으로]
  2. 발언자 요청으로 수정됨. (2021.04.04.)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