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성교육과 오티스의 Sex Education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몬 드 보부상


드라마 소개


이 대담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에피소드 5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드라마의 원제는 Sex Education으로, 주인공 오티스는 성 상담사인 어머니를 통해 어깨 너머로 성 지식을 배운다. 그가 이를 바탕으로 학교 친구들에게 다양한 내용의 상담을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를 구성한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낙태 등 여러 주제가 등장하며 5회는 사진 유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대담과 관련된 장면들은 아래에 장면 번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의 성을 다루는 이번 특집과 함께, 대담에서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성에 대한 생각과, 이와 한국 성교육이 연결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Sex Education


당근: 저는 처음에는 sex education이 원제인지 몰랐는데요, 이 대담을 준비하며 원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청소년 성장이라는 주된 주제 안에 sex라는 것이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메이브는 임신을 경험하고, 도움 받을 사람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절을 하며 상처받고 성장하기도 하고, 상처를 꽁꽁 감추고 연애를 하지 않다가, 연애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해요. 오티스의 경우 자위를 혐오하는 등 어느 정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도를 하는지 보여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 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요. 또 친구 에릭은 스스로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가족 친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죠.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sex education이 아닌가 싶네요. 만약 제가 교사라면 학생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아요.


#1. 평범한 아침, 모든 학생들에게 여자 성기 사진이 문자로 온다. 내일 조회 시간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너의 얼굴을 밝히겠다는 협박 문자. 학생들은 그 사진을 보고 품평을 하고, 누구의 사진일지 추측하며 떠든다. 사진의 주인인 루비가 오티스를 찾아와서 이를 자신의 사진이라고 밝히며 유포자를 찾아달라고 요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 루비와 메이브는 원래 원수, 천적 관계이다. 루비는 메이브의 자유로운 성 생활을 비난했고, 때문에 메이브도 루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이브가 루비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부탁을 받아들이고 루비를 돕기 시작한다.


#3. 루비는 얼굴과 성기 사진을 찍어서 남자애 한 명에게 보냈었다. 유포자로 예상가는 사람을 말하고 오티스와 메이브가 후보를 찾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밤통이: 루비가 사진을 보낸 한 사람은 톰인데 걔가 카일에게 공유했어요.


당근: 공공연하게 애인의 사진을 공유한다는 게 드러나는 거죠.

 

 

루비, 그리고 메이브


#4. 루비는 원래 동급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보다 인기 없는 애들을 하녀처럼 부렸다. 루비가 친구들에게 못되게 구는 장면. 스타일이 구리다, 살쪘다, 등을 지적한다.

 

당근: 근데 저는 꼭 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어요. 네가 적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 소위 여왕벌이라는 것처럼 굴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스테레오 타입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더라고요.


#5. 메이브가 왜 루비를 도와주는 지를 이야기하는 장면. 자신에게 있었던 성적인 비하와 소문들, 그리고 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겪어야 했는지 설명한다. 키스를 거절했더니 상대가 거짓 소문을 냈던 것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오명은 벗을 수 없었고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래서 메이브는 자신이 싫어하는 루비일지라도 그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되기에 자신은 루비를 돕는다고 말한다.

 

메이브: 시작이 뭔지 알아? 클레이의 14살 생일 파티에서 사이먼이 키스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그랬더니 고추 빨다가 깨물었다고 소문내더라. 그 후로 쭉이야. 오명은 지워지지 않아. 아픈 일이고 루비라도 이런 일을 당해선 안 돼.

 

당근: 이 부분이 엄청 마음이 아팠어요. 메이브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차가워 보이지만 실은 그게 자신의 고통과 상처 때문이고 그 상처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거죠.

 

 

성기와 엄지발가락

 

#6. 성기라는 것도 엄지발가락처럼 모두 있는 신체부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오티스

 

오티스: 누구나 몸이 있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난 발가락 하나가 웃기게 생겼어. 엄지처럼 생겼지. 어쨌든 요점은, 널 망신주려고 한 짓이지만 네가 부끄럽지 않으면 다 헛일이야.

 

밤통이: 의도는 알겠는데, 피해자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조롱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근: 이걸 보고 노브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떠올랐어요. 노브라 운동을 하는 사람들, 페미니스트들은 가슴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가슴을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니까요. 사실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는지, 대상화된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7. 메이브가 문자의 범인이 여자일 것이라고 추리한다. 핸드폰 비밀 번호를 알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올리비아가 범인임이 밝혀진다.


#8. 다음날 조회시간. 루비는 올리비아를 피한다.

 

당근: 저는 이 장면에서 항상 옆자리에 앉던 올리비아와 루비가 서로 피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하룻밤 사이에 있었던 관계의 변화를 자리에 앉는 것으로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른들은 ‘그냥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제가 청소년일 때는 어디에 앉고 누구랑 앉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어떤 친구들이 눈을 맞추고 누가 피하고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잘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My Vagina

 

#9. 교장선생님이 사진 유포에 대해 경고한다. 이때 한 남학생이 그건 루비의 사진이라고 조롱한다. 그때 올리비아가 일어나 자신의 사진이라고 말한다. 메이브도 일어나서 자신의 성기 사진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여학생도 일어나 자신에게 질이 있다고 말한다.

 

#10. 모든 여자아이들이 다 일어나서 그건 자신의 성기라고 주장하며, 마지막에 루비도 그건 자신이 성기라고 말한다.

 

루비: 제 성기입니다.

 

당근: 이 장면 정말 명장면 아닐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성폭력 특히 불법 유출 사건에 대해서, 주류 사회의 폭력적 시선은 영상이 유출되면 누구의 것인지 찾아보고 아니면 얼굴이 없으면 누군지 궁금해 하잖아요. 그런 폭력적 시선에 대해, 그것은 모든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라는 연대의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동시에 성기는 모든 여성에게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인 것 같아요.

 

밤통이: 우선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것이라고 밝히는 여성 연대라는 것에서 많이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드라마니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나 실상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재는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현실성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

 

보부상: 저는 보면서 올리비아가 개인적인 죄책감으로 루비 대신 나서서 말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두 친구가 화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개인적인 해결이나 수습을 넘어서 연대의 의미로 나아갔던 게 인상 깊었어요.

 

 

성폭력, 그리고 Sex Education

 

당근: 불법 촬영이나 사이버 성폭력이 심각한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렇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이것은일종의 성폭력 사건이잖아요. 이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제 3자가 개입해서 누군가를 처벌 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치유되기보다는 훨씬 많이 상처받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그 이외의 선택지가 없고 보상받거나 치유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죠. 이건 드라마이기도 하고 작은 고등학교 공동체이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친구들이 자신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야기하고, 모두가 자신이 그 사진의 주인이라고 대신 밝히는 그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성교육에서 다뤄 져야 하는 것도 이런 과정의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통이: 형사처벌은 범인 색출에서 끝날 테니까요. 그럼 피해자는 어떻게 치유 받는가? 라는 질문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가 한국에서는 오티스 비밀 상담소라는 제목으로 바뀌잖아요. 성을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게 보이는 거죠.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유포자가 여자 친구로 나오지만 실제 현실에서 대다수는 남성이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저 조롱과 가쉽으로 소비한다는 것도 있고요. 사실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현실이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는 거고요.

 

보부상: 요즘 문제의 원인만 규정해서 이를 없애면 모두 해피엔딩!이라는 병리적 접근을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어요. 문제의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에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힘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이 사건 자체를 그가 겪은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로 바라보고 범인 색출에 끝내면 안된다는 거예요. 드라마에서는 감동적인 결말을 주기 위해 올리비아가 유포한 것으로 나왔지만 현실이라면 톰이나 카일이 범인일 확률이 훨씬 높을 거예요. 실제로 그렇다하더라도 톰 죽일놈 카일 나쁜 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여성 연대를 통해 극복해나가고, 루비는 연약한 피해자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my vagina’라 고 말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근: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와,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라는 제목이 만나는 지점이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이 성에 대해 알고 이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문제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 내내 오티스의 상담소에 문제를 가져오고 상담하고 해결하면서 성에 대한 지식, 역량, 태도를 학습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청소년끼리 집단 내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성교육이라는 것을 딱딱하게 지침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주고 문제가 생겨도 최악의 상황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이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경향신문 기사에서 본 바로는 또래 선생님을 뽑고 3개월 정도 연수를 받아서 다른 선생님 없이 이들이 성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청소년이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대담을 마치며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5회에서도 루비뿐 아니라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이들 모두 다양한 시각과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대담에서는 이야기 흐름상 다루지 못했던 에릭의 이야기를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오티스의 친구인 에릭은 트랜스젠더로 5회에서 루비 다음으로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는 오티스와 헤드윅 연극을 보기 위해 드랙(1) 을 하고 외출했으나 오티스의 사정으로 혼자 돌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한다.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이전까지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던 에릭이 위축되어 무채색 옷만 입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루비의 사진에 많은 이들이 보인 무자비한 궁금증과 같이, 에릭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이고도 폭력적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주류 집단과 다를 때 쉽게 배척당하고, 이는 그들이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숨기게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5회의 에피소드는 개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폭력적 시선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역시 우리의 성교육이 고려해야할 지점일 것이다.

 

원제 Sex Education을 듣고 오티스가 선생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배움을 얻는 구도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일방적 배움이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친구와, 혹은 원수와 관계를 맺고 배움을 만들어간다. 어머니의 지식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상담을 시작하게 되는 오티스조차 자의 성찰을 통해, 친구들과의 경험을 통해 이를 마음으로 느끼고 새롭게 규정해간다. 부끄럽지만 굉장히 최근까지도 ‘청소년 성교육’이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지식을 가르치고 어떤 건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 선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티스가 보여주는 성교육은 잘 선별된 지식을 베푸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 앞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오티스와 메이브가 작지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때 이들 모두는 더 의미 있는 배움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성교육 역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발판을 제공할 수 있기를,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줄평

 

밤통이: 섹스란 몸으로 하는 대화 행위이자 일상적인 행위일 뿐,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당근: 상처가 흉터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보듬는 드라마. ‘

 

보부상: 드디어 소리 내어 말하는 비밀 이야기.


(1) 드랙(Drag)이란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즉 성별, 지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유철웅,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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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2019년 하반기에는 더 나은 성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인 위티에서는 청소년과 섹스를 주제로 강연을 열고, 콘돔과 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한 선입견을 다루는 행사와 전시를 기획했다. 경향신문에서는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라는 제목으로 독일, 멕시코, 스웨덴, 아이슬란드, 미국, 한국의 성교육을 소개하는 연재기사가 기획되었다. 그리고 초등젠더교육 연구회인 아웃박스에서도 초등학교에서 할 수 있고, 꼭 필요한 성교육을 고민하며 성교육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9년 11월 1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성교육, 전체이용가> 페스티벌에서 이미 반 발짝 앞서 좋은 성교육을 실행하고 고민하시는 분들을 통해 더 나은 성교육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켜볼 수 있었다.


#부스1 '딱따구리는 편견을 뚫지!' - 우따따

(우따따 부스의 그림책 큐레이션 및 워크북) 
우따따는 가정에서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성평등한 그림책을 고르고, 함께 할 수 있는 교육자료를 제공하는 그림책 정기구독 서비스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묘사, 대사가 성차별적인지, 또 성별고정관념을 반영하지는 않는지, 여성 주인공은 충분히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남성주인공은 단순한 묘사나 설정만을 하지 않는지, 또 성평등 이외에 다루는 내용이 흥미로운지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큐레이션 도서를 선정한다.(1) 

 

이날 부스에서는 여러 교과목별 한 성평등 퀴즈를 진행하고, 아웃박스와 함께 제작한 교과별 그림책 연계 활동안을 나눠주었다. 나는 도덕을 풀었는데, 퀴즈를 풀며 선의와 올바른 행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특히 나이권력이 존재하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칭찬이 학생들을 평가하고 옥죄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교과 연계 그림책 활용지는 성교육/성평등/성별고정관념에 관해 읽을 수 있는 책과 독후활동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한 내용이었다. 국어부터 체육, 미술까지 다양한 교과에서 다양한 주제로 젠더/성교육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고, 나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활동,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기대와 편견을 고민하는 활동, 새로운 지식을 재미있게 정리하는 활동, 주어진 자료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활동까지 많은 영역의 성장을 다루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성교육/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우따따와 아웃박스가 함께 만든 활용안의 일부로,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출처 : 우따따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woodpecker_official/221707710000)

#부스2 '또래 성폭력 속 교사의 역할' - 고양파주여성민우회
고양파주여성민우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생태 사회와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단체다. 여성주의로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여성주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활동 및 피해자 지원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2)

이날 부스에서는 또래 성폭력, 즉 교실에서 아동 간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교사는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내 학급의 학생이 점심시간에 성기모양에 대한 성희롱을 했을 때’라는 상황을 가정하여 교사로서의 개입을 고민하게 되었다. 일단 당황했는데, 정신없을 점심시간 교실 속 그 대화를 들었다면 단번에 그 언행이 성희롱인지 판단하고, 어떤 대응을 할지 결정해서 개입하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발언을 한 학생, 또 그 말을 들은 학생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교실 전체에 공유해야겠다고 일단 답했던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 단호하게 그 발언이 잘못인지 알려줘야 하는지, 따로 만나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또 학생이 자신의 발언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어떤 일이 발생한 이후에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일보다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작 시점에서 성교육을 하고, 우리 학급 공동체의 규칙을 마련해가는 작업이 꼭 필요하겠다 싶었다.


정리하자면 이 부스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여성주의의 성폭력 대응 기조 혹은 반성폭력운동의 기조가 교실 공간에서도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스쿨 미투 이후에도 학교의 성폭력 및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프로세스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공동체에서 여성주의를 기조로 성폭력 교육과 성폭력 해결의 기준을 마련하고 제공하는 일이 시급해보였다. 더불어 성폭력을 다루는 교육을 강간(성폭력의 가장 협소한 규정인)과 낯선 타인 중심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점도 지금 당장에 가장 필요한 교육으로 보였다. 그리고 부스에서의 경험처럼, 교사가 되기 전에 구체적인 사례들로 생각하고, 당황해보고, 대응을 연습할 기회가 주어질 필요를 많이 느꼈다.

 


#부스3 ‘선생님 성이 뭐에요?’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 아웃박스
아웃박스는 학생들의 젠더감수성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을 연구하는 초등교사연구회로, 2017년 고정관념을 깬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 여러 가지 성교육을 포함하여, 여러 교과와 수학여행 등의 학교 상황과 연계한, 수업자료를 연구하고 제작, 공유하고 있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 연수를 실시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3)


부스에서는 아이들이 성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답할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앞선 부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리 어떤 질문이 던져질지 당황하는 경험이 매우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지침이나 자료만큼이나, 성교육과 성평등에 관한 교육적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교사 공동체의 존재가 소중하다고 느꼈다.

 

 

각각 <집안일은 누구의 일일까요?> <노래 속 성차별> <월경을 월경이라 말하지 못하고>를 주제로 하는 수업지도  안이다. 출처 : <성교육, 전체이용가> 아웃박스 부스

 


재밌었던 것은 젠더와 성평등을 다루는 수업 지도안 예시였는데, 일상생활과 세상을 돌아보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질문하는 수업들이었다. 집안일을 누가 하는지 등 일상을 돌아보고, 캐릭터의 성역할에 대해 다루는 등 대중매체 속 세상에 질문하는 내용의 수업들은 비판적 접근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성인지적 감각을 다루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생활세계와 수업을 연결한며 삶과 교육을 연결 짓는 방법도 무척 흥미로웠다.

 


#인터뷰1 - 탁틴내일 활동가 강덕임님

 

■ 탁틴내일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소개해주세요.


‘사단법인 탁틴내일’이라는 단체에 청소년 성문화센터가 위탁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탁틴내일은 설립된 지 20년이 넘은 민간단체로, 주로 아동, 청소년, 여성의 인권에 관한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활동을 하면서, 성에 관한 부분들이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느껴, 성과 관련된 내용, 예를 들어 성폭력, 성 인권, 성교육, 성 착취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탁틴내일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동형 성교육은 무엇인가요?


성교육이라고 하면 보통 교실이나 정해진 장소에 강사가 찾아가서 하는 형태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동형 성교육, 버스형 성교육에서는 45인승 대형버스가 학교나 지정된 장소에 찾아가는 교육입니다. 버스는 개조되어서 의자를 다 걷어내고 성과 관련한 컨텐츠로 내부가 꾸며져 있고, 아동·청소년들이 그 버스에 탑승하여 교육을 받는 식입니다.

(이동형 성교육 버스 내부 사진, 출처 : 탁틴내일 홈페이지 http://www.tacteen.net

■ 이동형 성교육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보니, 도시에 있는 아동·청소년은 성교육 기회가 많은데, 그에 비해 지방이나 도서·산간 같은 곳은 성교육이 너무 취약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더라고요. 그래서 후원을 받고 버스를 지원받기도 해서,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현재 2대 운영하고 있고, 경기지역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도 버스에 강사가 탑승하여 학생들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에 직접 찾아가서 교육을 하는 형태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취약한 지역의 학생들에게도 널리 교육을 하고자 하는 취지인 것이지요.

(움직이는 성문화센터 사업 소개, 출처 : 탁틴내일 홈페이지 http://www.tacteen.net)

■ 이동형 성교육을 하시면서 내용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거나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중에 기회가 있어서 탑승해보시면 알겠지만, 서로 어울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전달이 아니고, 함께, 더불어 살기 때문에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육 마지막에 '별보기 체험'이라는 체험하는 코너가 있는데요, 천장에서 별이 나오는 코너인데,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빛나기도 하고 빛나지 않을 수도 있고 모양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서로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고, 서로 모두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런 메시지를 주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2 - 아웃박스 소속 교사분들


■ ‘성교육, 전체이용가’를 기획하게 된 고민이나 계기는 무엇일까요?


성교육이 항상 학교 현장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나가면 학생들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다양한 질문을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가 쉽지 않아서 곤란함을 겪는 경우도 많고, 중요한 문제인데 어디서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미리 교대생들이 해보면 좋겠다 싶어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 현장교사들이 학생들의 질문을 접할 때 무엇을 먼저 고려하면 도움이 될까요?


아무래도 학생들의 특성이겠죠. 저희는 교실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고, 어떤 학년은 이렇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학생들 개개인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매년, 모든 반 학생들이 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자기반 학생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보입니다.

 

■ 현재 학교에서 성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현재 교사들이 성교육을 할 때 따라야 할 성교육 표준안이 잠정 폐기된 수준인데, 제대로 다시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사들도 성교육을 할 때 어떤 지침을 기준으로, 어디까지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큽니다. 교육부가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지침을 만들어주면, 교육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어렵습니다. 교육대학교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성교육 표준안에 대해 논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교육, 전체 이용가’에서 다양한 내용의 부스를 돌아보며, 성교육을 당장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호기심에 답하는 것부터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교육공동체를 더 성평등하고 안전한 곳으로 꾸려가는 것까지 다양한 면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성교육은 일부 교과나 특수한 시간으로 한정짓지 않고, 일상과 지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교과에서 성평등과 인권이 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실시할 수 있는 생활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교육은 일상과 지식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는 교육이기에, 성교육을 고민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당장,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넘어, 일상과 배움을 통합하는 교육, 지식이 삶의 언어가 되고 삶이 지식의 맥락이 되는 교육은 분명 성교육으로부터도 출발할 수 있다.

 

 

 

취재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우따따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woodpecker_official

(2) 고양파주여성민우회 홈페이지 http://goyang.womenlink.or.kr/2013/ 

(3) 아웃박스 공식 블로그, blog.naver.com/gdgamsung 

섹스는 알지만 하면 안 되는 청소년?!

로운맘



페미니스트 ‘선생님’보다 페미니스트 ‘동료’가 필요합니다.


2년 전 여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는 수많은 민원이 쇄도하고, 그 교사를 향한 악의적 공격이 퍼부어졌다. 이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운동 진영에서는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는 <우리는 페미니스트 동료가 필요합니다>라는 논평을 작성하면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이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로 귀결되는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 선생님’만으로 학생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인권침해와 폭력이 해결될 수 있을까? ... (학생은) 교사에게 구원받는 대상이자 교육을 통해 바뀌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을 넘어 학생이 페미니즘 교육을 요구하는 주체로 인식될 수 없는 걸까?”


이들은 일방적인 가르침을 전달하는 페미니스트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넘어서서 평등하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페미니스트 ‘동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 ‘교사’와 ‘동료’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청소년들은 ‘교사’가 아니라 ‘동료’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일까?

 


청소년의 섹스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 내부의 입장 차이


페미니스트 ‘교사’와 ‘동료’의 차이의 핵심은 권력 관계에 있는 듯하다. 더 정확히는 나이에서 생기는 권력과 위계이다. ‘교사’는 ‘동료’보다 학생들에게 더 권위적인 존재이며 평등한 관계에 서기 힘든 존재다. 바로 이것이 청소년들이 학교현장에 페미니스트 교육을 도입하자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식은 페미니스트 ‘교사’보다는 ‘동료’로서 청소년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학생들 역시 페미니즘 교육의 주체로 함께 설 수 있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를 허물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며, 학교 내의 다양한 권력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지 않는 이상 페미니즘 교육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발화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교육에 있어서 청소년들이 성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읽을 수 있다.

 

페미니즘 교육과 결을 같이 하는 성교육에 있어서도 청소년과 성인 사이에 이와 비슷한 긴장이 나타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현재의 성 편향적이고 왜곡된 성인식을 담고 있는 성교육을 비판하며 대안적 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는 지금까지의 성교육이 청소년의 성을 터부시하고, 보호라는 이름 아래 청소년들의 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새로운 성교육 강연을 주최했다. 강연에서는 섹스는 ‘음란한 것’,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통념을 부수고, 포르노적 통념도, 어른들만의 전유물도 아닌 섹스에 대한 이야기, 성적 존재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강연을 주최하자 위티는 몇몇 보수단체들에 의한 악의적인 민원과 비난에 시달렸다. 해당 강연이 ‘음란’함을 조장한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연사를 모욕하는 등 테러에 가까운 무분별한 비난에 대해 위티는 엄격하게 대응하겠다며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보수단체들만이 위티의 강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SNS의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위티의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 강연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섹스를 ‘하는’ 청소년이 아니라 섹스를 ‘아는’ 청소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인 즉슨 섹스를 하기 전에 섹스가 무엇인지, 섹스를 ‘함’에 있어서 뒤따라오는 여러 위험성과 문제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말에는 ‘청소년은 당연히 섹스해도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지만 이러한 말만으로 청소년의 섹스에 대한 여러 문제가 간편화될 수 없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청소년의 무분별한 섹스를 허용하고 방임하게 되면 임신에 대한 위험 부담의 증가, 각종 낙인, 성병 등 여성에게 편향적으로 부과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청소년의 섹스는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말로 청소년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성인들의 비윤리성까지 덮어버릴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의 섹스를 무조건적으로 허용하기보다 섹스와 관련된 전반적인 지식과 실질적 문제들을 모두 아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 주변의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성인 여성들에게 “청소년의 섹스를 허용해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소년은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섹스를 허용한다면 성병, 임신 부담, 낙인 등에 대한 여러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고 고려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숙박업소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학교에는 섹스에 대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성교육이 부재한 상황이며 청소년 콘돔 구입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이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청소년이 안전하고 건강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어 청소년의 섹스를 허용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도 생각해보면 여성 청소년은 나이가 많은 성인 남성과 섹스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사이에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젠더 권력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나이 권력도 작용한다. 두 가지 중첩된 권력 관계 속에서 사실상 청소년은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신체적 성숙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기에 섹스를 하면 그 위험성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섹스를 자주 하면 질염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지며 이는 자칫 골반염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청소년은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신체적 위험성 때문에 청소년의 섹스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해볼 때 청소년이 안전하고 건강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며, 따라서 청소년의 섹스를 금지하는 것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차선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인 여성이라고 해서 현재 안전하고 건강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여성도 똑같이 성병, 임신 가능성, 여러 질병의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 중 대부분 역시 학교에서 기존의 성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섹스와 관련된 전반적인 성 지식을 모두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19살까지의 여성은 섹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지만 1년이 지난 후에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며, 20살이 된 여성은 안전하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성인 여성들도 남성과의 섹스에서 불평등한 젠더 권력이 작용하며 각종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신체적 성숙이 이루어지기 전의 섹스가 신체적으로 위험하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찾기 힘들뿐더러, 신체적 성숙 정도도 개인차가 크며, 일괄적으로 나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왜 청소년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이런 차이가 ‘나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러한 긴장은 나이주의적인 현상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나이 차에 따라서 각각 다른 사회적 규범 및 역할을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주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라는 임의적인 요소가 불합리한 차별의 근거가 되는 데에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청소년의 섹스에 대한 두 입장 차이에서 나이주의적인 긴장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지, 청소년들의 섹스를 바라보는 성인들에게 청소년은 비청소년보다 사고방식이나 믿음, 행동이 미성숙할 것이라는 의식이 한 편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섹스에 신체적, 생물학적 위험성의 문제가 바로 원천 금지로 이어져서도 안 되며 실질적으로 금지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청소년과 더불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이 섹스를 하는 존재,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자율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이주의를 극복하고 청소년의 성을 이해하기


청소년 성범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언론은 계속해서 ‘어리고 잘 모르는 순진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 ‘무력한 피해자’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문구를 본 사람들의 거센 항의는 남성중심적이고 폭력적, 자극적인 ‘포르노적 섹스’를 떠올렸기 때문이 크다. 많은 사람이 섹스에 대한 성 편향적이고 왜곡된 의식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은 ‘그런’ 섹스를 하기엔 너무나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관계는 이미 중학생 나이대부터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2018년 청소년 6만 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4차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였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7%였다. 이미 우리 일상 속에서 섹스하는 청소년의 존재는 당연하고 명백하다. 무턱대고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청소년의 섹스를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것은 오히려 현존하는 섹스하는 청소년들이 처한 어려움을 가리게 된다. 대안이 항상 현실을 고려하여 상황과 맥락에 맞게 제시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섹스를 하기 전에 먼저 알라는 말 대신,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제들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대안적 성교육을 논할 때도 앞서 섹스를 ‘하는’ 청소년이 대신 섹스를 ‘아는’ 청소년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기존의 성교육 역시 ‘아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가? 남성의 신체,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생겼고, 2차 성징은 무엇이며, 아이는 어떻게 생겨난다는 식의 성교육은 이미 너무 많이 해왔으며 무용하다. 이제는 성적인 존재인 청소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때이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안적 성교육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의 성에 대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욕망과 감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주체로 서는 청소년을 꿈꿔야 한다. 섹스에 대한 통념을 바꾸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성적 주체로 서서 스스로 원하는 바와 원하지 않는 바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게 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청소년의 성과 성교육 : ‘누구의 성인가?

 

BDUCK

 

# 들어가며 - 청소년에게 이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는 제외되었습니다. 19세 이상의 사용자는 성인인증을 통해 모든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청소년과 성을 주제로 교육저널에서 세미나를 준비할 때의 일이었다. 당시 필자는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 18세였는데, 세미나 준비를 위해 성과 관련된 단어를 구글에 검색하기만 해도 위의 유해 차단 문구가 떠 몇 번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필자는 호기심에 콘돔’, ‘성교육등 성과 관련된 단어를 포함해 온갖 검색어를 입력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성과 관련된 단어는 물론, ‘미인’, ‘코 교정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표제어까지 유해 검색결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원천차단이었다. 구글뿐 아니라 네이버와 다음 등 다른 메이저 포털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털 사이트는 성과 관련된 표제어를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라고 지정하고, 모든 검색 결과를 보려면 성인인증을 할 것을 요구한다. 성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면 성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며, 청소년들의 접근은 원천차단된다. 이 문구가 이번 논의의 시작점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해 검색결과 차단 문구에서 우리는 청소년에게 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 을 어떤 이미지로 그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단한 삼단 논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청소년은 유해한 결과를 접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성은 유해하다. 때문에 청소년은 성을 접해서는 안된다.

 

구글의 청소년 유해 검색어 차단 문구

 

 

# 유해한 성, 소외되는 청소년

청소년들은 명백히 성에서 소외된다. 도입부에서 제기한 청소년 유해 검색 결과 차단 문구 외에도 우리 사회의 청소년의 성 소외를 보여주는 예시는 수없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은 금기의 존재로 간주되고 특히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더욱 숨겨야 할 것이 되기 때문이다.

 

1. 청소년 구입 금지 물품 : , 담배, 그리고 콘돔’?

우리나라는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ㆍ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청소년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1) 때문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매체물이나 약물을 청소년이 접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한다. 대표적인 것이 술과 담배로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면 판매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청소년이 살 수 없는, ‘유해한 품목은 술과 담배 말고도 더 있다. 바로 콘돔이다.

 

지난 65일 청주의 한 편의점에 종이 두 장이 붙었다. "19세 청소년에게는 절대 술, 담배, 콘돔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경고문과 바로 옆에 "청소년 여러분 당당하게 콘돔을 구입하세요!"라고 반박하는 내용의 대자보다.(2)콘돔은 현행법상 성인용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청소년의 구입을 제한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러나 법리적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콘돔 구입에는 장애물과 장벽이 꽤 많다.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지 않는다는 대자보와 이를 반박하는 대자보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2018년 청소년 60,0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4(2018)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7%(3422)였다.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로 조사됐다.그러나 청소년 성관계 경험자의 피임 실천율은 6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3) 청소년들의 이른 성관계 연령과 피임 실천율이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절대 청소년이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은 안전하게 성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이 안전하게 성을 추구할 수 없는 것에는 콘돔에의 접근성 제한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성년자가 책임질 수단을 막아버림으로써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콘돔을 살 수 있어도 특수형 콘돔은 살 수 없다는 것 역시 넌센스이다. 몇몇 판매자들은 구입을 제한하지만, 법리적으로 청소년이 일반형 콘돔을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요철식 특수콘돔과 약물주입 콘돔(사정지연 콘돔)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하고 팔지 못하게 했다. , 청소년은 콘돔을 살 수는 있어도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지 않고, 팔더라도 특수형 콘돔을 팔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무성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는 증거이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섹스는 하게 해줄게. 대신 즐겁게섹스하는 건 안돼!”

 

2. sex toy = ‘성인용품?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성인용품이라는 용어도 이상하지 않은가? 성인용품인가?

자위행위를 포함한 성행위와 관련된 도구를 영어로는 sex toy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용품이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하면, 콘돔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위기구와 러브젤 등의 성인용품은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다. 때문에 성인용품이라는 단어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성인용품은 청소년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혹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단정지어지는 것이다.

학교의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저 수동적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맥락에 한정되어 있다. 정작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섹스를 하고 즐길 결정권은 부여하지 않는다. 성행위를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성인들의 특권이고 성인용품은 성인들의 전유물이다. 또 중요한 것은 아무도 성인용품의 용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인용품이란 용어는 청소년들이 성적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의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나아가 이런 의식을 재생산한다.

 

3.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문구를 본 보통 사람들의 1차적 반응은 무엇일까? 혹시 얼굴을 찌뿌리거나 불쾌해하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올해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추진하고 홍보했다. 이는 포르노음란함으로만 소비되어온 성 담론을 비판하고, 삶과 관계 맺으며 연속적으로 변모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을 만들어가고자 기획한 강연이다. 그런데 이 강연을 두고 위티 대표 개인 연락처로 개인 및 단체의 수없이 많은 항의 전화와 문자가 이어졌다.

 

출처 : 위티 홈페이지

항의 문자가 가장 문제 삼는 것은 강연의 제목이다. ‘섹스하는 청소년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청소년은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존재이다. 청소년이 섹스를 하는 것은 청소년을 망치는길이며, 이를 가르치는 어른 역시 개념 없는어른이다. 이 항의 반응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또 성을 얼마나 보수적으로 규정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이다. 항의 문자를 보낸 자들은 제목을 이렇게 바꾸길 원하지 않을까? ‘나는 섹스하면 안 되는, 청소년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격한 반응들 때문에 이 강연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정당화될 수 있다. ‘나는 섹스합니다라는 강연 제목부터 강연의 내용까지, 모든 것이 기존의 성담론과 청소년 담론에 정면적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티의 강연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인 항의 문자까지 포함하여 기존의 청소년 성 담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 잘못된 성교육, 소외되는 청소년

청소년들의 성의 이미지를 규정하는 주체는 기득권 사회이고, 청소년들의 성교육을 담당하는 주체 역시 보수적인 우리 사회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에서 소외되면 필연적으로 성교육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1.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인 성교육

사회에서 성교육을 비밀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시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이다.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는 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오티스에게 학우들이 성에 관한 상담을 하는 내용의 드라마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적 내용을 담고 있어 성교육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라는 한글 제목이다. 원제는 ‘sex education’으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성교육이다. 왜 성교육이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는가? 알고 나면 너무도 이상한 이 제목은, 우리 사회가 성과 성교육을 비밀로 여긴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기존의 성교육이 성을 비밀스러운 것으로 접근하고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이는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와도 맞닿아있다. ‘성교육에서 지겨울 정도로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난자와 정자 이야기, 임신과 출산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육부는 2015년 배포한 학교성교육표준안은 기성세대가 청소년의 성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큰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여성의 성기를 내부기관만 설명해 성기를 생식기능에 한정하여 설명하고,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관계는 옳지 않은 것처럼 서술하는(4) 것이다. 성관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생식뿐만이 아닌 쾌락 추구이지만 학교의 성교육은 이를 숨긴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수정과정 등 지나치게 생식에 치중한 설명은 진부하고 실용적이지도 않다. 그나마 최근에는 콘돔의 실제 사용법 등 실용적인 성교육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미비하다.

또한 생식에 관한 성교육을 한다 해도 진짜 필요한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다. 예컨대 임신을 하고 나서 여성의 몸이 겪는 변화, 출산 과정과 주의해야 할 점은 임신을 대비해 꼭 알아야 할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치지 않는다. 진정 생산적인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이런 내용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는 하기할 두 번째 문제점, 즉 여성 등 소수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성교육이 부재하다는 점과도 맞닿아있다.

 

2. 소수자를 배제하는 성교육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인 성교육과 연관지어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성교육 자체가 특정 집단 편향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교육의 내용상 문제점으로 경시되어 왔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기존의 성교육에서 규정하는 ,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편향적인 시선으로 소수자를 배제한다. 이러한 성교육이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청소년이 소수자 당사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계속 지적했지만, 우리가 성교육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임신과 출산, 성관계이다. 그리고 이는 전통적인 성교육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왜 , ‘성교육은 이런 내용만을 말해야 할까? 이는 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포르노와 섹스를 연상한다. 무언가 정열적이고 부끄러운, 또 때론 폭력적인, 성행위와 관련된 것만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는 의 전부가 아니다. 아니, ‘일부일 뿐이다. 남성, 그 중에서도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편향적인 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인 성교육이 나타나는 이유가 이것이다.

현행 성교육은 명백히 소수자를 배제한다. 먼저 배제되는 소수자는 여성이다. 여성은 청소년만큼이나 성에 있어 수동적인 존재이다. 기존 남성 중심의 성은 폭력적인 포르노와 섹스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진정 필요한 성교육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앞서 지적한 임신 과정의 여성의 몸의 변화나 출산 과정이 성교육의 내용에 없는 이유도 이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내용일지라도 여성의 관점이 아닌 태아의 관점의 서술이 주였다. 여성에게 출산을 둘러싼 삶의 변화나 성병 등의 정보가 중요함에도 어떤 성교육도 이를 강조하지 않는다. 예컨대 성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궁경부암의 경우 예방접종과 질병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어디서도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젠더 교육과 성차별적 관계에 대한 문제 또한 성교육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성은 생물학적 성(sex)과 성관계뿐만 아니라 gender도 포함한다. 하지만 올바른 젠더관념과 페미니즘 교육, 인권 교육은 기존의 성교육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다른 성교육에서 배제되는 소수자는 퀴어이다. 현행 성교육 내용은 철저히 ‘(시스젠더) 이성애자중심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성교육에서 말하는 임신과 출산, 성관계 등 모든 내용의 전반은 철저히 퀴어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퀴어들의 입장에서 본 의 이야기는 기존의 성교육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교과서는 여성과 남성과 두 가지 성만 다루며 이것이 영원히 바뀌지 않고 고정된 것처럼 서술한다. 이분법의 유일하고 항구적인 성만 나올 뿐 동성애자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젠더와 성애를 가지는 존재들은 무시된다. 하지만 퀴어의 성 역시 존중받아야 할 성이며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멸시가 아닌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현행 성교육이 바로 이러한 가장 무서운 성교육이다.

결국 성교육의 내용이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이라는 문제와 소수자를 배제한다는 문제 두 가지는 연결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성편향적인 성교육은 여성과 퀴어를 소외시키며, 때문에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인 성교육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집단 편향적인 성교육이 나타날수록 여성 청소년과 퀴어 청소년 등 소수자인 청소년만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다.

 

3. 성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청소년

한편으로 청소년의 성교육에는 내용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교육이 이루어지는 방식 역시 지적할 점이 있다. 바로 청소년은 성교육에 있어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성교육에서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전무하다. 그렇게 중요한 입시도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인데, 입시에 필요도 없는 성교육이라면 어떠할까. 성교육 방식의 양상은 너무나도 뻔하다. 실제로 대다수의 학교의 성교육은 보건 시간에 끼어서 몇 시간만 하거나, 자율학습 시간에 강연으로 한 시간 때우는 식으로 진행된다. 성교육 전문 외부 강사를 초청한다고 해도 강의식 성교육이 주가 된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성을 이야기할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교육을 주장할 수도 없는 구조이다.

 

 

# 왜 청소년들은 소외되는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성교육에서 소외시킨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과 성교육을 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청소년들은 소외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도입부에서 이야기한 삼단 논법의 두 전제이다. 첫 번째 전제는 청소년은 유해한 결과를 접해서는 안된다이고, 두 번째 전제는 성은 유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전제 모두 틀렸다.

 

1. 보호담론

청소년은 유해한 결과를 접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 보호담론과 연결된다. 앞서 살펴본 위티에 대한 항의 문자에서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위티의 항의 문자는 극단적인 보수 세력의 의견 표출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년자라는 청소년의 정의가 과연 보수집단만의 논리일까?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본다. 물론 청소년이 성인에 비해 어느 정도 미성숙해 보호가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보호라는 좋은 포장지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은 통제이다. 청소년의 성 소외의 기저에도 역시 이러한 비청소년 중심 사회가 행하는 보호라는 이름 하의 통제의 문제가 깔려있다. 청소년은 그들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성에서 소외된다.

비청소년 중심의 기득권 사회는 청소년을 보호한답시고 그들을 사회의 일부분에서 격리시킨다. 노키즈존을 만들고, 청소년은 밤에 게임을 할 수 없게 하는 셧다운제를 시행하며, 유해한 검색 결과에서 차단시킨다. 이제껏 말해왔던 성교육에서의 수많은 소외의 예시들 역시 이 보호담론에서 비롯된다. ‘보호는 아주 그럴듯한 명분이 된다.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고,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보호라는 말 속에는 결국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보호자가 규정한 유해환경에서 피보호자를 원천차단, 격리함으로써 통제와 억압, 지배를 행하는 것이다.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동등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면 이는 명백한 보호가 아닌 박탈이다. 또한 권리가 박탈된 채 성인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성을 추구할 권리는 성인들의 전유물이자 특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청소년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소년들은 보호를 받더라도 객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은 지배 관계 속에 종속된,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는 존재여서는 안된다. 청소년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청소년과 성인이 다름에도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결국 사회가 청소년들을 위해 결국 해야할 것은 단순한 보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보호가 필요 없도록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고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을 안전한 사회 속에 두고 싶다면 안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성교육을 포함해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선택할 기회들마저 박탈해서는 안된다. 청소년은 제대로 교육받고, 제대로 생각하며 또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2. 왜 성에서 보호되어야 하는가?

성은 유해하다는 두 번째 전제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왜 성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가? 보호담론 뿐 아닌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국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가진 이미지는 곧 섹스이다. 성은 섹스와 동치된다. 그리고 이 섹스는 전통적 남성중심적 시각의 폭력적인 섹스의 이미지이다. 섹스와 성을 남성중심적인 자극적인 포르노와 혼동하다보니 성은 자연히 숨겨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성인 남성 이성애자시각으로 바라본 은 사회 구성원이 성을 수동적이고 낯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이 결국 성교육의 내용 상의 문제의 원인이 된다. 비실용적이고 비밀스러운 성교육이 나오는 이유이자, 소수자를 배제하는 성교육이 나오는 이유이다.

보호의 논리는 성이 가진 전통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한다. 명시적인 성차별적 내용의 성교육, 비실용적인 성교육을 넘어 소수자를 배제하고 특정 집단 편향적인 사고방식을 사회에 주입한다. 보호의 논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청소년과 여성 등의 소수자를 객체로 만들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사회를 공고화한다. 성을 금기시할수록 여전히 성의 주도권을 쥐는 계층은 기존의 기득권 계층인 이성애자 남성 계층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성은 유해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의 전통적 인식이자 이를 재생산함으로써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을 다르게 보고, 성교육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성은 유해하기만 한 것이 아닌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 보호의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어쩌면 sex보다 더 중요한 gender와 성 소수자의 성은 기존의 성 담론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회의 젠더 인식과 젠더 갈등, 성소수자의 삶과 기존의 전통적인 성 담론에 대한 비판 역시 포괄적 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새로운 방식의 성교육을 포괄적 성교육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포괄적인 성교육에서는 젠더교육인권교육의 측면이 강조된다. 학생들은 스쿨미투 운동과 사회의 성 혐오범죄,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등 젠더교육과 인권교육으로까지 확대된 성교육을 접해야 한다. 결국 소수자를 포용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은 이러한 체계적인 젠더교육과 인권교육의 성교육이 될 것이다.

 

 

# 나가며

보호 논리 하의 청소년의 성과 성교육을 통해 우리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단순히 청소년에게 성을 금기시하고 성교육이 비실용적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청소년 성 소외 문제의 핵심은 사회의 전통적인 권력계층이 누구인지, 이들이 어떻게 성과 성교육에서까지 약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하는지와 연결되어 있다.

성인 이성애자 남성중심적 시각의 성 속에서는 성 소외가 일어난다. 일련의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인 남성 이성애자 중심으로 바라본 이미지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의 고정은 비밀스럽고 비실용적인 성교육을 만든다. 시각의 한정은 보호라는 이름의 청소년 혐오와 소수자 배제를 덧씌운다. 결국 성에서 소외되고 피해를 보는 핵심 계층은 성인 이성애자 남성을 제외한 청소년들이 된다. 소수자를 배제하는 태도는 곧 청소년을 배제하는 태도이다. 청소년도 퀴어이며 여성일 수 있다는 청소년의 소수자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행 성교육과 성을 바라보는 체제 하에서 가장 소외받는 것은 소수자 청소년들, 특히 퀴어인 여성 청소년이 될 수밖에 없다.

유해함으로부터의 보호는 사회가 행해야 할 당위적 기능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힘이 약한 소수자인 청소년일수록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소외시키는 것에 있다. 더 이상 전통적인 성과 성교육을 답습하며 이성애자 성인 남성 중심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회의 핵심 권력 계층이 누구인지, 이들의 논리가 어떻게 성을 통제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판적인 성 담론을 수면 위로 이끌어내야 한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성과 성교육을 꿈꾸어야 한다.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성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젠더와 소수자들의 성 역시 성이라는 것이 주목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대안적 성교육으로서 기존 성교육에 대한 비판적 논의까지 포함한 젠더교육과 인권교육을 하는 사회를 꿈꾼다. 이 과정에서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기를, 청소년과 소수자가 성과 성교육의 주체로 설 수 있기를 꿈꾼다.

더 나은 성과 성교육 담론이 뒷받침된 사회는 어떠할까. 적어도 콘돔을 구입하지 못하는 청소년,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청소년,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성소수자 청소년은 현저히 적어질 것이다. 대신 여성과 성소수자의 성을 말하고, 데이트 폭력과 스쿨미투를 토론하는 청소년이 위치할 것이다.

 

 


(1) 청소년 보호법 제1장 제1조 목적

(2)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46455

(3) https://www.asiae.co.kr/article/2019030411380045071

(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8&aid=0004120681

속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중앙도서관 CU에서 위 콘돔을 샀을 때, 2001년 미만 출생자에게는 판매금지 품목이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러한 기계음이 우리 고민의 시작점입니다. 청소년의 성은 위계관계 속에서 '계류중'입니다. 청소년은 그저 교육의 대상이자 객체에 머물러있으며, 성의 의미를 통제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이상 젠더와 나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성을 답습하며 계류중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청소년의 성(sexuality)과 성교육이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대안적인 성교육을 꿈꿔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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