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전체이용가> 방문기
넓고 다채로운 성교육 고민하기

 

당근

 

2019년 하반기에는 더 나은 성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인 위티에서는 청소년과 섹스를 주제로 강연을 열고, 콘돔과 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한 선입견을 다루는 행사와 전시를 기획했다. 경향신문에서는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라는 제목으로 독일, 멕시코, 스웨덴, 아이슬란드, 미국, 한국의 성교육을 소개하는 연재기사가 기획되었다. 그리고 초등젠더교육 연구회인 아웃박스에서도 초등학교에서 할 수 있고, 꼭 필요한 성교육을 고민하며 성교육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9년 11월 1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성교육, 전체이용가> 페스티벌에서 이미 반 발짝 앞서 좋은 성교육을 실행하고 고민하시는 분들을 통해 더 나은 성교육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켜볼 수 있었다.


#부스1 '딱따구리는 편견을 뚫지!' - 우따따

(우따따 부스의 그림책 큐레이션 및 워크북) 
우따따는 가정에서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성평등한 그림책을 고르고, 함께 할 수 있는 교육자료를 제공하는 그림책 정기구독 서비스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묘사, 대사가 성차별적인지, 또 성별고정관념을 반영하지는 않는지, 여성 주인공은 충분히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남성주인공은 단순한 묘사나 설정만을 하지 않는지, 또 성평등 이외에 다루는 내용이 흥미로운지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큐레이션 도서를 선정한다.(1) 

 

이날 부스에서는 여러 교과목별 한 성평등 퀴즈를 진행하고, 아웃박스와 함께 제작한 교과별 그림책 연계 활동안을 나눠주었다. 나는 도덕을 풀었는데, 퀴즈를 풀며 선의와 올바른 행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특히 나이권력이 존재하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칭찬이 학생들을 평가하고 옥죄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교과 연계 그림책 활용지는 성교육/성평등/성별고정관념에 관해 읽을 수 있는 책과 독후활동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한 내용이었다. 국어부터 체육, 미술까지 다양한 교과에서 다양한 주제로 젠더/성교육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고, 나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활동,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기대와 편견을 고민하는 활동, 새로운 지식을 재미있게 정리하는 활동, 주어진 자료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활동까지 많은 영역의 성장을 다루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성교육/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우따따와 아웃박스가 함께 만든 활용안의 일부로,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출처 : 우따따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woodpecker_official/221707710000)

#부스2 '또래 성폭력 속 교사의 역할' - 고양파주여성민우회
고양파주여성민우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생태 사회와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단체다. 여성주의로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여성주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활동 및 피해자 지원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2)

이날 부스에서는 또래 성폭력, 즉 교실에서 아동 간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교사는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내 학급의 학생이 점심시간에 성기모양에 대한 성희롱을 했을 때’라는 상황을 가정하여 교사로서의 개입을 고민하게 되었다. 일단 당황했는데, 정신없을 점심시간 교실 속 그 대화를 들었다면 단번에 그 언행이 성희롱인지 판단하고, 어떤 대응을 할지 결정해서 개입하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발언을 한 학생, 또 그 말을 들은 학생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교실 전체에 공유해야겠다고 일단 답했던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 단호하게 그 발언이 잘못인지 알려줘야 하는지, 따로 만나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또 학생이 자신의 발언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어떤 일이 발생한 이후에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일보다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작 시점에서 성교육을 하고, 우리 학급 공동체의 규칙을 마련해가는 작업이 꼭 필요하겠다 싶었다.


정리하자면 이 부스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여성주의의 성폭력 대응 기조 혹은 반성폭력운동의 기조가 교실 공간에서도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스쿨 미투 이후에도 학교의 성폭력 및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프로세스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공동체에서 여성주의를 기조로 성폭력 교육과 성폭력 해결의 기준을 마련하고 제공하는 일이 시급해보였다. 더불어 성폭력을 다루는 교육을 강간(성폭력의 가장 협소한 규정인)과 낯선 타인 중심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점도 지금 당장에 가장 필요한 교육으로 보였다. 그리고 부스에서의 경험처럼, 교사가 되기 전에 구체적인 사례들로 생각하고, 당황해보고, 대응을 연습할 기회가 주어질 필요를 많이 느꼈다.

 


#부스3 ‘선생님 성이 뭐에요?’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 아웃박스
아웃박스는 학생들의 젠더감수성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을 연구하는 초등교사연구회로, 2017년 고정관념을 깬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 여러 가지 성교육을 포함하여, 여러 교과와 수학여행 등의 학교 상황과 연계한, 수업자료를 연구하고 제작, 공유하고 있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 연수를 실시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3)


부스에서는 아이들이 성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답할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앞선 부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리 어떤 질문이 던져질지 당황하는 경험이 매우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지침이나 자료만큼이나, 성교육과 성평등에 관한 교육적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교사 공동체의 존재가 소중하다고 느꼈다.

 

 

각각 <집안일은 누구의 일일까요?> <노래 속 성차별> <월경을 월경이라 말하지 못하고>를 주제로 하는 수업지도  안이다. 출처 : <성교육, 전체이용가> 아웃박스 부스

 


재밌었던 것은 젠더와 성평등을 다루는 수업 지도안 예시였는데, 일상생활과 세상을 돌아보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질문하는 수업들이었다. 집안일을 누가 하는지 등 일상을 돌아보고, 캐릭터의 성역할에 대해 다루는 등 대중매체 속 세상에 질문하는 내용의 수업들은 비판적 접근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성인지적 감각을 다루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생활세계와 수업을 연결한며 삶과 교육을 연결 짓는 방법도 무척 흥미로웠다.

 


#인터뷰1 - 탁틴내일 활동가 강덕임님

 

■ 탁틴내일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소개해주세요.


‘사단법인 탁틴내일’이라는 단체에 청소년 성문화센터가 위탁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탁틴내일은 설립된 지 20년이 넘은 민간단체로, 주로 아동, 청소년, 여성의 인권에 관한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활동을 하면서, 성에 관한 부분들이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느껴, 성과 관련된 내용, 예를 들어 성폭력, 성 인권, 성교육, 성 착취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탁틴내일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동형 성교육은 무엇인가요?


성교육이라고 하면 보통 교실이나 정해진 장소에 강사가 찾아가서 하는 형태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동형 성교육, 버스형 성교육에서는 45인승 대형버스가 학교나 지정된 장소에 찾아가는 교육입니다. 버스는 개조되어서 의자를 다 걷어내고 성과 관련한 컨텐츠로 내부가 꾸며져 있고, 아동·청소년들이 그 버스에 탑승하여 교육을 받는 식입니다.

(이동형 성교육 버스 내부 사진, 출처 : 탁틴내일 홈페이지 http://www.tacteen.net

■ 이동형 성교육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보니, 도시에 있는 아동·청소년은 성교육 기회가 많은데, 그에 비해 지방이나 도서·산간 같은 곳은 성교육이 너무 취약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더라고요. 그래서 후원을 받고 버스를 지원받기도 해서,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현재 2대 운영하고 있고, 경기지역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도 버스에 강사가 탑승하여 학생들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에 직접 찾아가서 교육을 하는 형태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취약한 지역의 학생들에게도 널리 교육을 하고자 하는 취지인 것이지요.

(움직이는 성문화센터 사업 소개, 출처 : 탁틴내일 홈페이지 http://www.tacteen.net)

■ 이동형 성교육을 하시면서 내용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거나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중에 기회가 있어서 탑승해보시면 알겠지만, 서로 어울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전달이 아니고, 함께, 더불어 살기 때문에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육 마지막에 '별보기 체험'이라는 체험하는 코너가 있는데요, 천장에서 별이 나오는 코너인데,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빛나기도 하고 빛나지 않을 수도 있고 모양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서로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고, 서로 모두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런 메시지를 주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2 - 아웃박스 소속 교사분들


■ ‘성교육, 전체이용가’를 기획하게 된 고민이나 계기는 무엇일까요?


성교육이 항상 학교 현장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나가면 학생들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다양한 질문을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가 쉽지 않아서 곤란함을 겪는 경우도 많고, 중요한 문제인데 어디서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미리 교대생들이 해보면 좋겠다 싶어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 현장교사들이 학생들의 질문을 접할 때 무엇을 먼저 고려하면 도움이 될까요?


아무래도 학생들의 특성이겠죠. 저희는 교실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고, 어떤 학년은 이렇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학생들 개개인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매년, 모든 반 학생들이 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자기반 학생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보입니다.

 

■ 현재 학교에서 성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현재 교사들이 성교육을 할 때 따라야 할 성교육 표준안이 잠정 폐기된 수준인데, 제대로 다시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사들도 성교육을 할 때 어떤 지침을 기준으로, 어디까지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큽니다. 교육부가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지침을 만들어주면, 교육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어렵습니다. 교육대학교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성교육 표준안에 대해 논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교육, 전체 이용가’에서 다양한 내용의 부스를 돌아보며, 성교육을 당장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호기심에 답하는 것부터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교육공동체를 더 성평등하고 안전한 곳으로 꾸려가는 것까지 다양한 면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성교육은 일부 교과나 특수한 시간으로 한정짓지 않고, 일상과 지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교과에서 성평등과 인권이 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실시할 수 있는 생활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교육은 일상과 지식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는 교육이기에, 성교육을 고민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당장,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넘어, 일상과 배움을 통합하는 교육, 지식이 삶의 언어가 되고 삶이 지식의 맥락이 되는 교육은 분명 성교육으로부터도 출발할 수 있다.

 

 

 

취재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우따따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woodpecker_official

(2) 고양파주여성민우회 홈페이지 http://goyang.womenlink.or.kr/2013/ 

(3) 아웃박스 공식 블로그, blog.naver.com/gdgamsu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