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성교육과 오티스의 Sex Education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몬 드 보부상


드라마 소개


이 대담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에피소드 5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드라마의 원제는 Sex Education으로, 주인공 오티스는 성 상담사인 어머니를 통해 어깨 너머로 성 지식을 배운다. 그가 이를 바탕으로 학교 친구들에게 다양한 내용의 상담을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를 구성한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낙태 등 여러 주제가 등장하며 5회는 사진 유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대담과 관련된 장면들은 아래에 장면 번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의 성을 다루는 이번 특집과 함께, 대담에서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성에 대한 생각과, 이와 한국 성교육이 연결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Sex Education


당근: 저는 처음에는 sex education이 원제인지 몰랐는데요, 이 대담을 준비하며 원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청소년 성장이라는 주된 주제 안에 sex라는 것이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메이브는 임신을 경험하고, 도움 받을 사람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절을 하며 상처받고 성장하기도 하고, 상처를 꽁꽁 감추고 연애를 하지 않다가, 연애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해요. 오티스의 경우 자위를 혐오하는 등 어느 정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도를 하는지 보여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 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요. 또 친구 에릭은 스스로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가족 친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죠.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sex education이 아닌가 싶네요. 만약 제가 교사라면 학생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아요.


#1. 평범한 아침, 모든 학생들에게 여자 성기 사진이 문자로 온다. 내일 조회 시간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너의 얼굴을 밝히겠다는 협박 문자. 학생들은 그 사진을 보고 품평을 하고, 누구의 사진일지 추측하며 떠든다. 사진의 주인인 루비가 오티스를 찾아와서 이를 자신의 사진이라고 밝히며 유포자를 찾아달라고 요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 루비와 메이브는 원래 원수, 천적 관계이다. 루비는 메이브의 자유로운 성 생활을 비난했고, 때문에 메이브도 루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이브가 루비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부탁을 받아들이고 루비를 돕기 시작한다.


#3. 루비는 얼굴과 성기 사진을 찍어서 남자애 한 명에게 보냈었다. 유포자로 예상가는 사람을 말하고 오티스와 메이브가 후보를 찾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밤통이: 루비가 사진을 보낸 한 사람은 톰인데 걔가 카일에게 공유했어요.


당근: 공공연하게 애인의 사진을 공유한다는 게 드러나는 거죠.

 

 

루비, 그리고 메이브


#4. 루비는 원래 동급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보다 인기 없는 애들을 하녀처럼 부렸다. 루비가 친구들에게 못되게 구는 장면. 스타일이 구리다, 살쪘다, 등을 지적한다.

 

당근: 근데 저는 꼭 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어요. 네가 적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 소위 여왕벌이라는 것처럼 굴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스테레오 타입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더라고요.


#5. 메이브가 왜 루비를 도와주는 지를 이야기하는 장면. 자신에게 있었던 성적인 비하와 소문들, 그리고 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겪어야 했는지 설명한다. 키스를 거절했더니 상대가 거짓 소문을 냈던 것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오명은 벗을 수 없었고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래서 메이브는 자신이 싫어하는 루비일지라도 그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되기에 자신은 루비를 돕는다고 말한다.

 

메이브: 시작이 뭔지 알아? 클레이의 14살 생일 파티에서 사이먼이 키스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그랬더니 고추 빨다가 깨물었다고 소문내더라. 그 후로 쭉이야. 오명은 지워지지 않아. 아픈 일이고 루비라도 이런 일을 당해선 안 돼.

 

당근: 이 부분이 엄청 마음이 아팠어요. 메이브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차가워 보이지만 실은 그게 자신의 고통과 상처 때문이고 그 상처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거죠.

 

 

성기와 엄지발가락

 

#6. 성기라는 것도 엄지발가락처럼 모두 있는 신체부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오티스

 

오티스: 누구나 몸이 있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난 발가락 하나가 웃기게 생겼어. 엄지처럼 생겼지. 어쨌든 요점은, 널 망신주려고 한 짓이지만 네가 부끄럽지 않으면 다 헛일이야.

 

밤통이: 의도는 알겠는데, 피해자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조롱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근: 이걸 보고 노브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떠올랐어요. 노브라 운동을 하는 사람들, 페미니스트들은 가슴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가슴을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니까요. 사실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는지, 대상화된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7. 메이브가 문자의 범인이 여자일 것이라고 추리한다. 핸드폰 비밀 번호를 알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올리비아가 범인임이 밝혀진다.


#8. 다음날 조회시간. 루비는 올리비아를 피한다.

 

당근: 저는 이 장면에서 항상 옆자리에 앉던 올리비아와 루비가 서로 피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하룻밤 사이에 있었던 관계의 변화를 자리에 앉는 것으로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른들은 ‘그냥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제가 청소년일 때는 어디에 앉고 누구랑 앉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어떤 친구들이 눈을 맞추고 누가 피하고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잘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My Vagina

 

#9. 교장선생님이 사진 유포에 대해 경고한다. 이때 한 남학생이 그건 루비의 사진이라고 조롱한다. 그때 올리비아가 일어나 자신의 사진이라고 말한다. 메이브도 일어나서 자신의 성기 사진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여학생도 일어나 자신에게 질이 있다고 말한다.

 

#10. 모든 여자아이들이 다 일어나서 그건 자신의 성기라고 주장하며, 마지막에 루비도 그건 자신이 성기라고 말한다.

 

루비: 제 성기입니다.

 

당근: 이 장면 정말 명장면 아닐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성폭력 특히 불법 유출 사건에 대해서, 주류 사회의 폭력적 시선은 영상이 유출되면 누구의 것인지 찾아보고 아니면 얼굴이 없으면 누군지 궁금해 하잖아요. 그런 폭력적 시선에 대해, 그것은 모든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라는 연대의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동시에 성기는 모든 여성에게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인 것 같아요.

 

밤통이: 우선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것이라고 밝히는 여성 연대라는 것에서 많이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드라마니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나 실상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재는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현실성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

 

보부상: 저는 보면서 올리비아가 개인적인 죄책감으로 루비 대신 나서서 말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두 친구가 화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개인적인 해결이나 수습을 넘어서 연대의 의미로 나아갔던 게 인상 깊었어요.

 

 

성폭력, 그리고 Sex Education

 

당근: 불법 촬영이나 사이버 성폭력이 심각한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렇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이것은일종의 성폭력 사건이잖아요. 이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제 3자가 개입해서 누군가를 처벌 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치유되기보다는 훨씬 많이 상처받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그 이외의 선택지가 없고 보상받거나 치유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죠. 이건 드라마이기도 하고 작은 고등학교 공동체이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친구들이 자신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야기하고, 모두가 자신이 그 사진의 주인이라고 대신 밝히는 그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성교육에서 다뤄 져야 하는 것도 이런 과정의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통이: 형사처벌은 범인 색출에서 끝날 테니까요. 그럼 피해자는 어떻게 치유 받는가? 라는 질문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가 한국에서는 오티스 비밀 상담소라는 제목으로 바뀌잖아요. 성을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게 보이는 거죠.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유포자가 여자 친구로 나오지만 실제 현실에서 대다수는 남성이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저 조롱과 가쉽으로 소비한다는 것도 있고요. 사실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현실이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는 거고요.

 

보부상: 요즘 문제의 원인만 규정해서 이를 없애면 모두 해피엔딩!이라는 병리적 접근을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어요. 문제의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에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힘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이 사건 자체를 그가 겪은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로 바라보고 범인 색출에 끝내면 안된다는 거예요. 드라마에서는 감동적인 결말을 주기 위해 올리비아가 유포한 것으로 나왔지만 현실이라면 톰이나 카일이 범인일 확률이 훨씬 높을 거예요. 실제로 그렇다하더라도 톰 죽일놈 카일 나쁜 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여성 연대를 통해 극복해나가고, 루비는 연약한 피해자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my vagina’라 고 말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근: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와,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라는 제목이 만나는 지점이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이 성에 대해 알고 이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문제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 내내 오티스의 상담소에 문제를 가져오고 상담하고 해결하면서 성에 대한 지식, 역량, 태도를 학습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청소년끼리 집단 내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성교육이라는 것을 딱딱하게 지침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주고 문제가 생겨도 최악의 상황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이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경향신문 기사에서 본 바로는 또래 선생님을 뽑고 3개월 정도 연수를 받아서 다른 선생님 없이 이들이 성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청소년이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대담을 마치며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5회에서도 루비뿐 아니라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이들 모두 다양한 시각과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대담에서는 이야기 흐름상 다루지 못했던 에릭의 이야기를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오티스의 친구인 에릭은 트랜스젠더로 5회에서 루비 다음으로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는 오티스와 헤드윅 연극을 보기 위해 드랙(1) 을 하고 외출했으나 오티스의 사정으로 혼자 돌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한다.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이전까지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던 에릭이 위축되어 무채색 옷만 입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루비의 사진에 많은 이들이 보인 무자비한 궁금증과 같이, 에릭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이고도 폭력적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주류 집단과 다를 때 쉽게 배척당하고, 이는 그들이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숨기게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5회의 에피소드는 개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폭력적 시선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역시 우리의 성교육이 고려해야할 지점일 것이다.

 

원제 Sex Education을 듣고 오티스가 선생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배움을 얻는 구도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일방적 배움이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친구와, 혹은 원수와 관계를 맺고 배움을 만들어간다. 어머니의 지식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상담을 시작하게 되는 오티스조차 자의 성찰을 통해, 친구들과의 경험을 통해 이를 마음으로 느끼고 새롭게 규정해간다. 부끄럽지만 굉장히 최근까지도 ‘청소년 성교육’이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지식을 가르치고 어떤 건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 선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티스가 보여주는 성교육은 잘 선별된 지식을 베푸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 앞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오티스와 메이브가 작지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때 이들 모두는 더 의미 있는 배움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성교육 역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발판을 제공할 수 있기를,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줄평

 

밤통이: 섹스란 몸으로 하는 대화 행위이자 일상적인 행위일 뿐,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당근: 상처가 흉터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보듬는 드라마. ‘

 

보부상: 드디어 소리 내어 말하는 비밀 이야기.


(1) 드랙(Drag)이란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즉 성별, 지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유철웅,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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