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언어와 매체’ 교과 분석
혹자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국어 교과의 ‘언어와 매체’ 과목의 존재이다. 이 과목은 이름에 ‘매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매우 밀접해 보이며, 실제로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 이 과목은 크게 두 가지를 교육하는 것이 목적인데, 하나는 ‘언어’, 즉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한 문법 교육이고 나머지 하나는 ‘매체’, 즉 올바른 매체 활용을 위한 매체 교육(미디어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언어와 매체’ 교과는 4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대단원 ‘언어와 매체’에서는 언어의 세 가지 종류인 음성 언어, 문자 언어, 매체 언어의 본질과 특성을 다룬다. 둘째 대단원은 ‘국어의 탐구와 활용’으로 음운ㆍ단어ㆍ문장ㆍ담화와 같은 국어의 구조와 시대ㆍ사회ㆍ갈래에 따라 달라지는 국어 자료의 특성을 살핀다. 셋째 대단원은 매체에 관한 단원으로, 다양한 매체의 특성과 매체 자료의 수용ㆍ생산ㆍ표현, 매체 언어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마지막 대단원은 ‘언어와 매체에 관한 태도’로 언어와 매체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어와 매체’ 교육과정에서 ‘매체’ 관련 주요 학습 요소와 성취 기준만을 선별하면 다음과 같다.
앞서 제시한 강진숙 외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6가지를 기준으로 실제 ‘언어와 매체’ 교과서를 분석해 보자. 교과서는 천재교육 출판사에서 민현식을 대표 저자로 하여 출판한 것을 대상으로 삼았다.
첫째, ‘지식’ 역량에 대하여 언어와 매체 교과서는 단지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 휴대 전화, 인터넷 등 매체 유형에 관한 개별 사실을 피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뉴 미디어의 특징으로 실시간 상호 작용 가능, 상호 능동적 정보 교환, 멀티미디어적 성격, 복합 양식성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부족하다. 앞서 이석영이 제시한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확증편향 등 뉴 미디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추가하는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가짜 뉴스의 양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저 지녀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체의 정보 구성 방식에 대해서도 상식 수준에서만 설명하고 있는데, 앞서 이희심이 제시한 텔레비전 뉴스의 보도 순서, 앵글 구도 따위가 정보 전달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내용을 추가적으로 삽입하여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필요성이 보인다. 1
둘째, 비평 부문에서 교과서는 ‘인공 지능’으로 검색하여 나온 기사들이 어떤 관점과 가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을지 추측하기, 두 개의 기사문을 읽고 다양한 관점과 가치 고려하여 비평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능동적인 역할이 주어져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를테면 학생이 스스로 ‘주제어 선정 ― 주제어 검색 ― 기사 분석 ― 내용 요약 ― 기사의 관점 분석 ― 자신의 입장 정리’라는 과정을 거쳐 능동적으로 비평 역량을 증진할 수 있게 학습 활동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보인다.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라는 ‘리터러시’의 의미 그 자체를 생각했을 때도, 학생이 스스로 자료를 검색하여 한 편의 글을 완성하게 하는 학습활동이 적어도 하나는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셋째, 의사소통 역량에서는 언어 문화와 매체 문화의 발전을 위해 건전하고 건강한 매체 자료를 생산하는 문화, 매체 자료를 주체적ㆍ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문화를 기르자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습활동 내용이 대체로 자아성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질적인 효용성이 의문시된다. 의사소통 역량은 말 그대로 ‘소통’인 만큼 나와 남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넷째, 접근/활용 역량을 기르기 위해 교과서는 따로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이는 아마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 때때로는 ‘언어와 매체’ 교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보다도 ― 매체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만약 교과서가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위한 평생교육 차원에서 새로 제작된다면, 그때는 이러한 내용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다섯째, 구성/제작 측면에서 교과서는 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성, 대구와 비유 등을 활용한 매체 언어의 창의적 표현을 제시하고 찾아보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매체 창작을 교육하고 있다. 아울러 학습 활동에서 직접 창의적 표현을 이용해 매체를 제작하게 하고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기 보다는 그저 말장난, 난센스를 만드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4
여섯째, 참여 측면에서 교과서는 여론의 폭발, 가짜 뉴스의 선동, 차별ㆍ혐오 표현, 언어폭력 등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고 바람직한 언어 사용 태도를 기르자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학습활동으로 ‘제시된 매체 언어의 부적절성 파악’, ‘자신의 언어 습관 성찰 보고서 작성’ 등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어서 실제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된다. 5
‘언어와 매체’를 넘어서
이상에서 살펴본 문제들에 비하여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와 ‘매체’를 결합한 교과 그 자체의 문제점이다. 이 교과서는 대다수의 고등학교에서 3학년 국어과 선택과목으로 학생들에게 제시되며,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를 위하여 매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교과의 문제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이 과목이 물론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과 선택과목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식 습득이 주(主)가 되는 ‘언어’ 공부에 밀려 태도 함양이 주가 되는 ‘매체’ 영역은 학교 현장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교과서에서 언어 영역과 매체 영역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공평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차라리 언어 영역과 매체 영역을 분리하여 독립적인 교과로 만드는 편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언어 영역 교과서는 문법 지식 습득과 활용 위주로, 매체 영역 교과서는 과감하게 활동 중심으로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있어 효과적일 것이다. 6
‘언어’와 ‘매체’가 왜 하나의 교과목 속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도 근원적인 문제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물론 인간의 언어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미디어 리터러시가 매체에서의 정확한 어문규범 사용 능력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와 매체에서 언어 영역은 ‘언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국어학’의 내용, 특히 그중에서도 국어 문법 지식에 관한 것인데 과연 ‘미디어 리터러시’가 특정 국가의 국어에 종속되는 개념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를 국어과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교과로 독립시킬 필요성이 엿보인다.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담지자는 이제 국어 교사가 아니라 사서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서는 문헌정보학과 도서관학의 담당자로서, 전통적으로 미디어를 수집하고 목록을 만든 후, 미디어를 조직하여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통해 대중들이 미디어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디지털화의 추세 속에서 사서들은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거나 가상 도서관 학습 공간을 활용하고, 온라인 정보 이용 교육을 담당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디지털 미디어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돕고 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미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가짜 뉴스’ 확인 방법 또한 미국 도서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7
캐나다의 MediaSmarts는 사서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사서에게 미디어 교육 전문가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주 정부는 학교 사서들이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였다. 일본의 학교 도서관법과 사서 교사 강습 규정 또한 사서 교사를 미디어 및 정보 리터러시 교육에 배속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사서를 디지털 시민성, 인터넷 안전 및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해 당사자이며 이와 관련된 자문 위원회에 참여해야 하는 필수 직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의 사례들은 사서의 역할이 학생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8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사서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일은 도서부 학생의 동아리 활동이나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을 대할 때뿐이다. 때때로 도서관 이용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고 도서관 활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독자적인 수업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사서 교사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당하게 되면 기존의 국어, 윤리와 연결 짓는 추상적이고 비실제적인 형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문헌정보학 지식을 활용하여 보다 실제적인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학교 도서관이 비단 학생들의 교육 기관으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중심 교육 기관으로 기능한다면, 사서 교사들은 지역의 소외된 정보화 계층을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가 학교 현장에서 잘 적응한다면, 그 성과를 가지고 또한 평생 교육 체제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외국의 사례를 본받아 학교 도서관 및 지역 공공 도서관의 사서들이 각 지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지하는 평생 학습 기관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될 것이며, 주민들은 이전보다 더 폭넓고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문헌 자료를 이용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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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맘 팽현숙
- 민현식ㆍ신명선ㆍ오현아ㆍ이지은ㆍ안장호ㆍ조진수ㆍ박진희, 『고등학교 언어와 매체』, 서울: 천재교육, 2018, pp.32-33; pp.38-39. [본문으로]
- ibid, pp.190-191. [본문으로]
- ibid, p.243. [본문으로]
- 위의 글, pp.88-93. [본문으로]
- 위의 글, p.135; pp.140-141. [본문으로]
- 서보영ㆍ박진희,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언어와 매체 교과서 비교 연구: 매체 언어의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187, 국어국문학회, 2019, p.258. [본문으로]
- 박주현ㆍ강봉숙, 앞의 글, p.225. [본문으로]
- 위의 글, pp.231-2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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