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현장실습생 이야기>를 읽고
당근
들어가며
열여덟은 한국에서 어떤 나이로 그려질까. 고등학교를 다니고, 교복을 입고, 방과후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먹고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열여덟은 꼭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지난호의 학교 밖 청소년들처럼 학교 제도를 거부하거나 탈출하여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꾸리는 이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일터를 갖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 바로 산업체 현장실습을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이 책은 아직 뭘 모르고, 별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나이가 아닌 이들, 열여덟, 많은 고민과 기대를 안고 현장실습을 통해 처음으로 일터에 나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2017년 이후 발생한 현장실습에서의 사고와 죽음들이 공론화되고, 그에 대해 ‘안전한 환경’이라는 요구가 등장한지 한참 지난 작년 말 발행되었다. 몇 년 전, 안전에 대한 문제제기가 빗발치고, 이토록 위험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실습 폐지론이 등장함에 따라 교육부는 이듬해 현장실습을 학습을 중심으로 개편한다. 일을 하면 위험하니까, 주변에서 지켜보고 학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과 학교가 반발에 나섰다. 현장실습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특성화고라는 교육기관의 취지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안전하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진로를 꿈꿀 수 있는 현장실습의 부활을 요구했다. 이 모습은 현장실습에 안전이라는 산업 현장의 문제와
특성화고의 역할과 핵심적으로 연관된 교육의 문제가 동시에 작용함을 보여준다. 즉, 안전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축소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 책은, 현장실습과 이후의 삶에서 목숨을 잃은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이 ‘평범한’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과 얼마나 가깝고 동시에 다른지를 보여준다. 무기력한 학생들,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 열심히 살아왔건만 차별과 배제 앞에서 다시 대학을 꿈꾸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는 현장실습의 문제를 산업안전을 개선하는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간편한’ 인식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사고를 겪은 학생들과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을 연결 짓는 것은,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일상적인 측면을 연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장실습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실습 중인 산업체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나타난 문제이기는 하지만, 결국 특성화 고등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의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안전’만의 문제?
책은 2017년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은주의 이야기, 그리고 일하던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려 지금까지 재활을 하고 있는 영수의 이야기로 화두를 꺼낸다. 이 경우도 ‘사고’로 나타나긴 했지만, 기존에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제기되는 ‘안전한 환경이면 된다.’라는 인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다. 책은 이렇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고의 원인, 혹은 책임이 어디에 있을지를 두고 출발한다.
은주의 경우, 정확히 어떤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은주가 높은 노동 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해 왔음은 알 수 있다.
은주는 배구선수로 활동하다 특성화고에 진학했고, 특성화고에서는 애견동물과를 전공했다. 여러 반려동물에 대해 다양한 분야를 3년간 배웠다. 그러나 현장실습으로 나간 곳은 통신사 콜센터였다. 은주가 일했던 콜센터에는 매일, 매 시간 채워야 하는 콜수가 있다. 이를 다 채우지 못할 경우 점심시간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을 늦춰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개인별 능력과 연차에 따라 세분화된 목표량이 주어진다. 수시로 개인이 낸 성과에 따라 목표량이 조절된다. 성과는 실시간 순위로 모두에게 공유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은주는 회사 안의 압박 뿐 아니라, 고객의 불만과 압박도 받아내야 하는 세이브 부서, ‘해지 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이 부서의 경우, 고객을 설득해서 해지를 막아내는 비율, 즉 방어율을 기준으로 실적이 계산되고, 이에 따라 월급이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두 번째로 나간 현장실습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린 영수의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책임을 묻는, 학생-학교-기업의 관계에서 현장실습의 동상이몽이 드러난다.
업체는 기술자로 키울 학생을 원했다고 한다. 신입사원과 동일한 월급을 주고, 야간 작업이나 잔업을 시키지 않는 등 나름대로의 배려도 했다. 화학공업 계열을 공부하고 나름의 사전 지식이 있는 학생을 찾았고, 일과 사회생활 모두 나름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학생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책에서는 선임이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을 지도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학생이 예상만큼 업체에 잘 적응하지 못 할 때, 또 직무에서뿐 아니라 태도, 인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를 경험할 때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그에 잘 대응할 만큼의 준비가 대부분의 기업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기업이 ‘그런 것까지’ 뒤치다꺼리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할까? 현장실습생을 오래 함께 할 사람으로 보고, 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배려를 해주는 것은 다른 현장실습 환경과 비교하면 괜찮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은 일에서 초보이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일 뿐 아니라, 사회생활, 태도, 가치관 등에서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로도 동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냐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현장실습 업체에서 ‘태도’문제로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학생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담임교사와 학생은 계속하여 현장실습에 관해 소통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 학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책은 영수의 학교가 취업률이 상당히 높은 학교였다고 지적한다. 취업률이 좋다는 것은 언뜻,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배운 것들이 진로와 연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학교가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있다. 평가에 따라 신입생 모집 및 예산지원, 교사 일자리 등에 영향을 받기에 학교는 평가지표인 취업률에 사활을 걸고, 일단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되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현장실습에서 어떤 교육활동이 일어나는지, 학생들은 그 가운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는 담임교사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은주와 영수의 사례는 ‘안전’이 포괄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한 것 같다. 은주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곳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는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왜 계속 버텨야 했는지, 은주의 학교는 현장실습을 진행하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영수는 두 산업체에서 왜 적응하기 힘들어했는지, 영수의 어머니는 왜 현장실습을 다시 나가기를 원했는지 등.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현장실습과 그 전후의 관계와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책은 현장실습을 경험했거나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문제를 확장된 차원에서 고민하고자 한다.
‘평범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
‘별 문제 없이’ 학교를 다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환경, 진학 이유, 미래 계획은 참 다양하다. 학생들은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서, 똑같은 공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학업경쟁에서 낙오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아서 특성화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기대로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학생들은 많이 실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로나 직무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실용적인 배움은 거의 없었고, 진도를 나가거나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전자기기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면서, 납땜만 시키는 학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수한 학업성적과 좋은 가정환경’을 가진, 특성화고 학생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학생들도 대학 입시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교육환경이 좋은 학교에서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를 하고, 적극적으로 직업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가는 등 특성화고 취지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책은 여러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특성화고를 다닌다는 것이 ‘공부 못 해서 직업계에 진학했고, 기술을 배우고 졸업해서 취직한다.’라는 하나의 서사로 수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성화고의 학생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동기로 학교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교육경험을 마주한다. 이런 다양성은, 학생들의 교육경험, 혹은 넓게는 학업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나 전략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다양한,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과 현장실습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삶을 규정하는 서열
이 책은 ‘서열화’로 그 다양성을 설명한다. 고등학교 서열화를 놓고는 주로 특목고, 일반고와 특성화고의 종류가 논의된다. 하지만 서열화는 학교의 종류 이상으로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학교 내에서도 취업률이나 진학률에 따라 학교별로 서열이 매겨진다. 명문학교, 안정적인 학교,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 등. 또 학교 내에서도 특별반의 존재를 통해서, 교실 내에서도 등수나 그에 따라 주어지는 차등적인 기회 등을 통해서 등급이 나뉜다. 이렇듯 교육에서의 서열은 개개인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열어주는 교육공간의 운영원리가 되어왔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성은 제법 간결하게 설명된다. 학업성취를 기준으로 서열화된 환경 속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학생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특성화고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고 시범 사업을 운영하는 더 좋은 학교에 다닐 수도 있고, 그에 수반되는 인턴이나 어학연수 기회, 혹은 대학 진학기회 같은 더 좋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가정환경이나 정보력, 학업 성취에서 주변화된 학생들은 자신을 받아주는 유일한 학교로 진학하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기회를 따라 살아가게 된다. 서열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통제하고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펼치며 진로를 전략적으로 그려나가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자 리가 하나라도 있기를 바란다. 서열체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현장실습의 기회도 자연스레 이러한 서열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산업체도 서열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혹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순으로. 책의 표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이동한다. 대기업과 그 하청 기업인 1차 밴드, 2차 밴드, 3차 밴드 순으로 현장실습의 선택지에는 위계가 있고, ‘명문학교’, ‘전교 1등’부터 우선적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간다.
여기서 일찍이 탈락하고 낙오된 학생들은 아마도 더 열악한 환경의 산업체에 놓을 확률이 높다. 안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인력 부족으로 감독할 사람이나 교육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말이다. 이렇듯 서열화 된 교육체제와 산업구조의 만남이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교육경험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위계 속에서 배제되는 학생들이 있고, 낙오되는 삶이 존재하는 배경은 현장실습을 ‘안전’에서 ‘서열’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교육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바라보기
그런데 이 책은 서열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 말미의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공교육과정으로서의 현장실습’을 고민하고, ‘학교의 직업교육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살펴’보자고 말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만 확보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도 밝힌다. 그러니까 현장실습은 어떤 교육인가? 무엇을 위한, 무엇을 하는 교육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다. 현장실습이 교육이라면, 지금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점검될 필요가 생긴다. 교육은 기능과 역량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할지를 넘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더 발전된 고민을 할 수 있을
지, 더 좋은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도 고려하고, 학생들이 문제 상황에 대응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현장실습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특성화고의 교육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경엽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단순한 훈련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장 기업에 투입될 수 있는 쉬운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여러 일에 적용되는 기본을 쌓아가도록 할 때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을 직업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이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라는 화두를 던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과제가 중요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공교육으로서 직업교육의 기능과 역할을 점검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 분의 인터뷰는 특성화고 학생에만 관심을 둔 ‘문제없는’ 현장실습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인 ‘좋은 공교육’을 하는 것으로 문제의 초점을 옮길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쁜 현장실습은 나쁜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에서 일어난 사고를 좁게 본다면 해당 산업체가 문제를 개선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서열화된 학교가 있고,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할 역량 대신 취업률에만 집중한 교육이 있다. 현장실습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문제없는 것도 아니다. 사고 없이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디는 성실한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경험하는 교육이 달라질 때, 학교와 교육이 포괄하는 실습과 취업과 같은 더 많은 문제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가며
어떤 문제를 접하면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을 지목하고 싶어진다.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문제일수록 결정적 원인을 하나로 꼽는 일은 편리한 인식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측면, 구조적인 배경, 우연히 개입된 상황,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그래서 복잡하지만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비로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터뷰들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단지 좋은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서열화 된 학교, 위계화 된 산업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특성화고의 교육과 현장실습이 크게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열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나쁜 교육에 대한 편리한 변명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취업률을 학교 평가 기준에서 삭제함으로써, 글쓰기 교육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인권 교육을 도입하고 특성화고 졸업생 노조나 권리연합회 등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달라질 수 있는 문제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한편으로 산업안전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지만, 안전의 문제조차도 산업구조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특성화고와 현장실습의 문제에서는 산업안전, 위계화 된 산업구조, 서열화 된 학교, 나쁜 교육의 문제가 다층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안전과 권리가 보장되는 산업 현장을 만들고, 근본적으로 위계화, 서열화 된 산업과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더 나은 공교육을 작동시킴으로써 반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조건을 탓하지 않는 교육, 고단하게 살아가는 동안에 쓸 근육을 길러주는 교육, 세상과 나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육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35호 - 계류중 > 연속보도 - 특성화고 현장실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속보도 - 특성화고 현장실습 ①]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돌아보다 (0) | 2020.04.08 |
---|---|
연속보도 - 특성화고 현장실습 소개글 (0) | 202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