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그리고 청소년 혐오
고슴도치뇽, BDUCK, 취한다
흔히 청소년 참정권과 소년법은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청소년 참정권 논의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소년법 논의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일까, 혹은 별개의 문제일까? 청소년은 과연 둘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존재일까? 교육저널 역시 이번 호를 발간하기 위한 세미나 과정에서 같은 의문점에 부딪혔다. 때문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활동가 난다님이 쓰신 글 1을 읽고 교육저널의 시선으로 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정리하는 대담을 나누어보았다.
'미성년자'는 처벌을 안 받는다?
“'요즘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 처벌은 받지 않는다'라는 게 사회의 인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을까?”
“사건에서 피의자가 14세 이상 19세 미만일 경우, '소년법'의 절차가 적용되는지 일반 형사 절차가 적용되는지는 검찰, 법원 등 수사 및 재판 기관이 판단한다. 실제로 2018년 6월 일어나 주목을 받았던 '관악산 집단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도 일반 형사 절차를 적용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보호 관찰 처분이나 보호 시설 감호의 경우에도 보호 관찰소에 출석해야 하거나 교육 등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 또는 거주의 자유나 생활에 통제를 받는단 점에서 강제성을 띠고 있다. (⋯) 10세 이상이면 역시 '소년법'상 보호 처분 등 징벌적 성격의 처벌을 받는다.”
“어떤 언론 기사에서도 '무서운 40대', '점점 흉포해지는 40대 범죄'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청소년 중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마치 청소년 집단 전체의 속성인 것처럼 환원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 범죄를 더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 청소년의 범죄/일탈 행위가 특히 문제시되는 까닭은 "청소년은 순수/순진해야 하는데, 청소년은 어떠어떠해야 하는데" 같은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처럼 왜곡된 인식은, "애들이라고 봐주고 있다,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라며 청소년 집단을 혐오하는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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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뇽 : 우리가 이번에 청소년의 정치참여에 관한 글을 썼는데, 대담으로는 소년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으면 해. 요새 청소년의 범죄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얘기가 나오고,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고 있잖아. 이 글을 보면 미성년자가 결코 처벌을 안 받는 게 아니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 실제로 청소년들의 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일반 형사 절차를 적용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등장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소년원이나 보호관찰처분이 주어지는 것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약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신체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법적 형식적 절차가 다른 것이며, 더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 또 청소년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보도들이 일종의 청소년 혐오, 낙인찍기를 반영한다는 내용이 있어. 사실 연령대별 범죄율을 살펴봤을 때 범죄율이 가장 높은 것이 10대가 아님에도 언론에서는 강력범죄를 많이 하는 청소년이라고 보도를 하잖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BDUCK : 난 이 마지막 문단에 너무 공감하는 게, 결국 사회든 언론이든 소년법 논의를 이끌어가면서 ‘청소년들은 이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처벌도 안 받는다~’ 이런 식으로 말하잖아. 사실 이런 말의 기저에는 청소년 혐오가 깔려 있는데 마지막 문단에서 이를 잘 지적하고 있어서 좋았어. ‘청소년 혐오’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때 ‘혐오’는 ‘여성혐오’의 ‘혐오’처럼 단순히 hate의 개념이 아니잖아. 청소년을 ‘급식충’이라고 비하하는 것뿐 아니라 청소년을 순수하고 순진한,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런 청소년의 이미지를 숭배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청소년은 어린애답지 않고 문란하다고 낙인찍는 것 등등 이런 게 다 청소년 혐오거든. 그러니까 언론에서 ‘감히 어떻게’, ‘어린애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느냐’는 식으로 보도하는 이유도 결국 그 기저에 깔린 청소년 혐오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래서 소년법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갈 때 사회 기저에 깔린 청소년 혐오에 대한 관점을 지우지 않으면 결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없고,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한 논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취한다 : 이 글에서 청소년에 범죄에 대해서 ‘잔인한 십대’, ‘무서운 십대’라는 말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를 우리 사회에 ‘청소년은 순진해야 한다.’와 같은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어. ‘소름끼치는 십대의 잔혹함’ 등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기사의 제목에서 우리 사회에서 십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이해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는 계기였어.
BDUCK : 생각의 전환이라고 했는데, 진짜 맞아. 진짜 소년법에 대해서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가야 하는,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조차도 기저에 깔린 청소년은 순진하고, 미성숙하다는 사고방식이 투영되어 있거든. 유튜브 같은 데서 소년법 토론 영상을 보거나 소년법을 다룬 글만 봐도 그게 보여. 예를 들어 처벌수위에 관련해서 소년법 폐지 반대를 말하는 쪽은 요즘 애들이 아직 미성숙해서 그렇지 폐지하면 안 된다고 하는 반면, 소년법 폐지를 찬성하는 쪽은 소년범죄 사례들을 말하면서 이것은 ‘성인의 행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잔인한 범죄라고 주장하잖아. 그런데 양쪽의 주장 모두 결국엔 청소년 혐오가 깔려 있는 거지.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논의에도 사회의 청소년 혐오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소년법 논의는 결국 청소년이 소외되는 거지. 누구보다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야 할 문제에서 막상 청소년이 배제되어 있는 거야.
고슴도치뇽 :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영상은 많이 보이는데 정작 청소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없었던 것 같아. 이런 점이 전문가들이 ‘어떻게 청소년들이 범죄에 연루되지 않게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데에 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청소년 논의에 한정되는 부분과 범죄라는 넓은 부분의 논의가 있을 텐데, 애초에 ‘범죄가 왜 발생했을까’에 대한 고민도 부족한 것 같아. 꼭 청소년에 한정된 얘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범죄적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범죄의 책임을 청소년 개인에게 돌리고 단순히 청소년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방식의 논의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대부분의 기존 영상에서 ‘청소년의 흉악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혹은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아직 교화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의만 진행되고 있잖아. 이런 이분법적 논의 기저에 깔린 것이 청소년들은 순수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흉악한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교화를 받아야 되는데 그것이 강한 처벌로 가능할 것이냐 체계적인 교육으로 가능할 것이냐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지, 청소년 혐오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고.
BDUCK : 맞아. 성인들을 수감하는 교도소를 포함해서 모든 교도소는 결국 교화의 기능을 갖고 있는데, 유독 청소년만 교화를 엄청나게 강조하잖아. 결국,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지.
참정권을 바라면 소년법 폐지하라고?
“이는 마치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했더니 '그럴 거면 여자도 군대 가라'라고 하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참정권 등 인권이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타당하지 않다. (⋯)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그러므로 일단 의무를 다하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인권을 억압하는 논리로 활용되어 왔다. (⋯) 청소년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며, 청소년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러 사회 문제 및 정책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로서, 이 사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핵심이다.“
“한편 '소년법' 등을 비롯하여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응 문제는 어떻게 사회 전체의 범죄를 줄이고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것인가 하는 논의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소년법'에 대한 논의를 할 때에는 소년범을 어떻게 대하고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범죄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 대가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 아니다 하는 식의 이야기로 접근할 일은 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려면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
BDUCK : 두 번째, ‘참정권을 바라면 소년법 폐지하라고?’ 이 문단에서는 크게 말하면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 이 글의 도입부에서 청소년 인권을 주장하면 소년법도 폐지하라는 주장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잖아. 여기서 이 주장이 왜 말이 안 되는지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참정권은 권리, 인권의 영역이고, 소년법은 범죄에 대한 대응 논리인데, 이 둘을 연관 짓는 것은 ‘여성의 인권보장을 요구했더니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방식의 논리랑 비슷하다고 얘기하고 있어. 참정권은 어떤 행동을 해야지만 획득하는 권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천부인권인데, 소년법을 폐지해야지 참정권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마치 인권이 책임과 의무의 대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게 문제라는 거지. 글쓴이는 이때 참정권과 소년법은 별개의 논의라고 주장하고 있어. 참정권은 결국 천부인권의 영역이고, 소년법은 사회 전체의 범죄를 예방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인권문제와 결부될 게 아니라는 거지. 별개의 논의인 참정권과 소년법 두 개를 엮으면서, 그리고 기저에 청소년 혐오가 존재하면서 ‘참정권을 얻었으면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논의로 이어지는 것이 얼마나 문제인지 얘기하는 거지.
취한다 : 나도 이번에 ‘촉법소년’이라는 개념도 처음 들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참정권 연령이 낮아지면서 분명히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맥락에서 중학교 때 경험한 것이 생각나는데, 교복 규정이나 머리 규정으로 선생님이랑 학생들 간의 마찰이 엄청 심했는데 그때 어떤 부장 선생님이 ‘권리에는 의무가 항상 따른다. 너희들이 권리를 말하려면 학생으로서 의무를 먼저 잘 지켜야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어. 그 때는 ‘그런가?’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인권으로서 주어지는 권리들에도 의무가 따라와야 한다는 것은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아직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어. 참정권을 얘기했더니 소년법 얘기가 따라오면서 사실 소년법 논의에서 중요한 것들을 오히려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고슴도치뇽 : 나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이면 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모두 있다고 생각해. 참정권은 비단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고. 왜냐하면 참정권이 자신의 의견을 사회에 피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그것이 반영되고 그런 정치적인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잖아. 그거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그 권한을 타인에게 위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의 권리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고민하고,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지 않는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개인들의 의무라는 생각도 들어.
그리고 이런 권리와 의무를 누가 규정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몇 달 전에 인국공 정규직화 논란이 있었잖아. 그거 보면서 든 생각인데, 우리는 기나긴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 입시를 거쳐서 더 높은 대학에 가고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일하기 위해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잖아. 그 노력의 방식과 정도를 결코 청소년들이 규정한 것이 아닌데. 경쟁에서 이기고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 이제 더 이상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없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이제까지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청소년들이 어떠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우리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를 논의할 자리가 적었고, 그러한 목소리들이 잘 반영이 안 됐던 것 같아. 단순히 비청소년의 시선에서 청소년의 권리와 의무를 재단해버리고.
‘청소년 참정권 보장되니까 소년법 폐지하라’는 주장이 있잖아. 그런데 솔직히 나는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 거라고 생각을 안 해ㅎㅎ 원래 만19세 이상만 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만18세로 내려간 건 맞는데. 그 과정에서 물론 청소년의 주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논의가 진행된 것도 있지만 성인 중에서 아직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성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낮춰진 것도 있잖아. 사실 여전히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청소년에 대한 혐오가 존재하고. 투표권만 일부 청소년에게 보장이 된 것이지, 청소년이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선거 운동을 하는 것, 후보에 나가는 것 등 제도정치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막혀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정치 말고도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청소년이 정치할 권리는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통제당하거나 입시 때문에 교과 과정 외에 다른 부분에 관심을 쏟을 기회가 적다거나. 그래서 18세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소년법 폐지 논의를 끌고 가는 게 너무 한계적이고.
한편으로는 소년법 폐지라는 게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이냐에 따라서 무게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로 청소년들이 비청소년들과 차이 없이 제도정치에 개입할 수 있고, 일상의 순간들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변화를 만들 수 있고, 비청소년과 동등한 주체로서 대우받는다면 소년법이 있을 이유가 크게 없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물론 아직 그 사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렵지만ㅎㅎ 지금은 청소년 혐오도 심하고 청소년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겨우 18세 투표권을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청소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에 있어서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취한다 : 맞아. 나도 너 말을 들으니까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너가 말해준 부분뿐만 아니라 이번에 참정권 연령을 낮출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OECD 국가 중에 우리나라가 참정권 제한연령이 가장 높고,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이 또한 선진국의 성인 연령의 기준을 따라간 것이잖아. 그리고 소년법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보아도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없도록 억압하고 있는 부분이 엄청 많잖아. 예를 들어, 정말 많은 시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내고 있고, 머리도 옷도 자기가 선택을 하지 못하는데, 청소년들이 악의적이든 우발적이든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 청소년의 책임을 어느 정도로 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질문이 소년법의 필요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사실 이런 부분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잖아. 이번 참정권 연령 하향이 청소년의 권한을 어마무시하게 확대한 것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논의가 넘어가는 게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BDUCK : ‘참정권 얻을 거면 소년법 폐지하라’고? 근데 이 말을 가만 살펴보면 웃긴 게, 그렇게 말할 거면 이 말을 뒤집어서 '소년법 폐지하려면 청소년 인권 보장부터 해라'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 여기서는 참정권으로 대표되지만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청소년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는지를 진정으로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지 정말 궁금해. 참정권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이 많은 부분에서 권리가 제약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 그런 것들을 해결하고 청소년 문제를 담론하면서 청소년 혐오가 해체된 사회에서나 소년법 폐지를 진정으로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소년법', 문제는 있지만
만약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면, 주목받지 않는 현행 '소년법'의 다른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소년법'에서는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자가 되는 '우범소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이 있는 자,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자 등".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형사적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 청소년조차도 '보호 처분'이란 이름으로 사실상의 처벌을 받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다양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권리를 누리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인식까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데 거기다 인권 보장까지 요구하는 '특권층 청소년'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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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다 : 이제 드디어 마지막 문단이야. 마지막에는 소년법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이 참정권을 이야기하다가 소년법으로 온다는 것이 실제로 소년법에서 개정이 필요한 부분들, 중요한 논의들을 보이지 않게 하고, 소년법 논의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오히려 소년법에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실제로 소년법에 보호처분이 효과가 있는지, 재범방지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있고 또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조항들도 있는 게 그런 조항에 대한 폐지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 그런 부분으로 예를 들어 우범소년과 관련된 조항이 있는데 이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아도 집단적으로 몰려다녀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한 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야.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
고슴도치뇽 : 이 글을 읽으면서 조항이 너무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어.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느낌.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한다는 것이 예를 들어 그 집에서 사는 청소년이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방식의 폭력에 노출되고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법적으로 봤을 때 양육자가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출이 정당한 이유로 취급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우범소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잖아. 조항이 너무 모호해. 그리고 이런 조항의 뒷면에는 청소년의 삶의 맥락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청소년 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를 다룰 때에 있어서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맥락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예로 청소년 사이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기저에는 청소년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학교에서는 어떤 성폭력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왜 발생하는지, 청소년들이 유튜브를 많이 본다면 그 유튜브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는지 등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그것과 함께 소년법 문제가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다시 정리하면 소년법에 대한 개정이 물론 필요하고. 학교 안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고려와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야.
취한다 : 음.. 조금 확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청소년들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 교육환경 자체가 이미 폭력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서열화, 경쟁 등이 학교교육의 주를 이루고 있잖아.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문화를 형성하는 환경 자체가 폭력적이고, 서열화 되어 있고, 경쟁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폭력이 등장한다면 이것을 반드시 청소년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 청소년을 교화하면 그러면 문제가 해소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교육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청소년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청소년 범죄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들이 자라고 있는 환경을 본질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고슴도치뇽 : 기사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나누어봤는데 추가적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이나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BDUCK : 권리와 의무의 관계 부분에서, 글쓴이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가 얘기할 때 결국에는 참정권이라는 인권의 문제와 소년법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쪽이고, 소년법은 그래도 청소년을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니까 둘은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둘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가 궁금해.
취한다 : 약간 대응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청소년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범죄에 있어서도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대응되지는 않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비슷한 방향으로 두 가지가 변화하고 역행하고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예를 들어 교육에서만 ‘학생’으로서 구분되고, 다른 사회적 조건에서는 비 청소년과의 구분이 없다면 범죄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도 비청소년과 구분될 것이 없고, 정치적 권리에서도 비 청소년과 구분될 것이 없어지지 않을까.
BDUCK : 실제로 두 개가 별개의 문제인지, 아니면 엮인 문제인가는 잘 모르겠는데, 두 개를 꿰뚫는 것은 결국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전제라고 생각해. 참정권 논의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정치할 능력이 안 된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소년법 논의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때 비청소년과 동일하게 처벌할 수는 없고, 교화에 더 힘을 쏟고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 결국 두 가지의 전제는 청소년의 미성숙함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면 참정권과 소년법 두 논의가 연결된다면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한데, 아직 명확한 해답은 못 내리겠어. 그런데 확실한 건 청소년이 미성숙하다고 단정 짓고 이를 전제로 까는 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
고슴도치뇽 : 나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 하나는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 청소년의 주체성과 보호를 말할 때 있어서, 청소년이 왜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소년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만약 우리 사회가 청소년 혐오가 심하지 않고, 청소년과 비청소년에게 동등한 권리와 책임이 주어진다면 소년법이 지금과 같은 무게를 같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소년법뿐만 아니라 n번방 사건 이후에 의제강간연령 상향하면서도 뭔가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그 때 의제강간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과 그것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간의 입장이 둘 다 이해가 되었거든. 왜냐하면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얘기했던 비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이것이 보호의 테두리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결국, 청소년들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나이로 인한 차별과 강간문화가 심각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환경에 놓이는 것이잖아. 비슷한 맥락으로 청소년 참정권 얘기가 나올 때마다 청소년에게 정치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는데, 나는 그 말도 잘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게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정치교육이 필요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억압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정치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고, 권리를 더 잘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교육이 일부 필요하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정치교육을 함에 있어서 일상의 정치화가 동반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 사회에서 청소년 보호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이미 너무 강한 청소년 혐오가 존재하고 청소년들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없어서 라는 생각이 들었어.
두 번째는 ‘보호’라는 것을 청소년에만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우리 모두는 주체적인 존재이지만 사회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생각난 것 중에 하나가 예전에 어느 수업에서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학생이 ‘자신의 동생이 특성화고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 이유로는 실습에서 노동환경이 안전하지 않고,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에 공감이 되면서도 그 문제가 비단 특성화고 실습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어떤 노동자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심한 노동 강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론은 청소년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잘 보호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거야. 우리 모두가 주체성을 가진 존재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 만큼 주체성과 보호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후기를 나눠볼까?
고슴도치뇽 : 사실 나 지금 계속 말을 하면서도 긴가민가하면서 말을 했는데 이렇게라도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가 된 것 같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주체성과 소년법 문제를 다룰 때에 있어서 좀 더 넓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BDUCK : 나도 비슷한 의견인데, 내가 이번 대담을 준비하고 자료조사 하면서 청소년의 ‘주체성’ 관점이 들어간 소년법 논의 자체가 별로 없어서 힘들었거든. 대담하면서도 계속 말했지만, 이렇게 자료가 부재한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와 청소년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아직 비청소년과 청소년이 똑같은 권리를 가진 사회가 오지는 않았잖아. 그래서 그 사회가 오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이 비청소년과 동등한 지위에 서는 쪽으로 사회의 방향이 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소년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야.
취한다 : 나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와 처벌 방법에 있어서 처벌은 정확하고 정당하게 받아야 하지만, 또 중요한 것이 무기징역이 아닌 이상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된 사람들은 다시 사회에 돌아와서 사회에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이 처벌의 전체 과정에 꼭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청소년만이 처벌에 있어서 교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최근에 뉴스에서 잔혹한 청소년 범죄 사건들이 터졌을 때 나도 이거는 마땅하게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그런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촉법소년 연령 때문에 범죄 형량이 약화될 수 있다’여서 그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오해가 풀릴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오해들이 청소년권리에 대한 논의들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궁극적 문제 해결 등을 왜곡시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러모로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고 많은 부분에서 인식의 전환을 얻게 해준 기사였던 것 같아.
이상 청소년 참정권과 소년법의 관계와 둘의 한계, 그 기저에 깔린 사회의 청소년 혐오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교육저널의 시선으로 대담을 나누어봤다. 입시 위주 교육의 한계, 분절적 나이 설정의 한계, 청소년 개개인의 맥락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 등, 소년법도 청소년 참정권도 모두 불완전하고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자체의 한계도 있지만, 더욱이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청소년 혐오가 존재하고 이것이 청소년 참정권과 소년법 논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기저에 깔린 청소년 혐오와 나이주의 권력으로 인해 청소년 관련 논의들은 그 본질이 흐려지고, 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논의 역시 방향이 한정되게 흘러왔다. 이제 청소년 혐오의 한계를 넘어선 담론이 필요하다. 청소년 또한 분명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청소년들과 함께 새로운 방향으로 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청소년이 비청소년과 동등한 지위로 서는 때엔 소년법과 청소년 참정권 논의가 전혀 다른 방향과 관계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한 날이 오길 바라며 이번 대담을 마친다.
-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활동가, <청소년이라 '처벌 안 받는다'는 오해>, 프레시안, 2019.02.1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28837?no=228837&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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