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그 이후를 꿈꾸다

 

고슴도치뇽

 

20191227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되었다. ‘18세 선거권도입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전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선거연령 하향은 200519세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 15년 만의 변화다. 이 글에서는 ‘18세 선거권이 어떻게 도입될 수 있었는지, ‘18세 선거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18세 선거권을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하여 ‘18세 선거권이후 남아있는 과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나가려 한다.

 

청소년들의 꾸준한 외침이 얻어낸 결실

 

18세 선거권은 그냥 도입된 것이 아니다. 도입 마련까지 청소년들이 스스로 참정권을 요구해온 역사가 있었다. 2002, 청소년모임 낮추자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며 모의투표 캠페인을 진행했다. 명동 거리에서 시작했으나, 이는 곧 전국 단위로 확대되었으며 여러 교육·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했다. 이러한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정치권에서도 선거연령을 하향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치개혁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선거법 개정안에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과 관련한 내용이 있었고, 민주노동당에서는 ‘18세 정치적 성년선포식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연령을 내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만 20세 이상의 국민만 투표권을 부여받았다. 이후 선거연령을 19세로 하향할 것이냐, 18세로 하향할 것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청소년들은 만 19세 이상만 투표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는 19세 이상의 국민만 성숙한 시민이며 성숙한 시민만이 투표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공고히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18세 선거권을 지지하면서도 청소년의 참정권을 몇 살부터 선거권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한정지어서는 안 될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2005년에 선거연령은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하향되었다.

청소년들은 그 이후에도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운동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청소년의 참정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청소년이 교육의 주체임을 강조했다. 2012,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소년들은 학생들이 대상이 되는 사안에서조차 의사표시가 불가능했다. 2012년 제정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가 있었을 때도 청소년들은 서명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청소년의 제한된 권리를 문제제기할 때에도 장벽이 있었다. 헌법 소원을 청구할 때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권리 주장은 지속되었으나,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나도 재판과정에는 진전이 없었다. 청소년들은 2012년 총선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13, 국가인권위원회가 선거권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2014, 헌법재판소가 선거 연령과 관련된 법률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리며 18세 선거권은 또 한 번 좌절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현실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충분히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각주:1]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와 청소년에 순종을 요구하는 교육에 대한 청소년들의 불신은 더욱 커져갔다. 청소년들은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등을 꾸려 지방선거 청소년 모의투표를 진행하며 꾸준히 청소년의 참정권을 외쳤다. 2016,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연령을 낮추는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청소년의 참정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청소년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다. 여러 청소년 운동 단체들은 모여서 <청소년 참정권 집중 활동 기획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2017촛불시국에는 청소년들이 광장에 나와 18세 선거권을 외쳤다. 청소년 역시 정치 사안에 개입할 주체이며, 더욱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위하여 18세 선거권을 비롯한 청소년의 정치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 선거권 그 이상을 논하다 :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 등의 국회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청소년 참정권 확보를 목표로 하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설립했다. 2018년에는 18세 선거권을 위한 국회 앞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의 지난한 외침 끝에, 2019년 비로소 18세 선거권이 현실화되었다.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외침에 사회가 응답한 것이다. 이후 여러 청소년단체들은 <18세 선거권, 끝이 아닌 시작이다! - 보다 완전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여러 과제들이 남아있고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 낼 것을 약속했다.

 

18세 선거권으로 투표할 수 있게 된 이들의 목소리

 

청소년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 “투표를 하기에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 청소년의 참정권 획득에 발목을 잡는 주장들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이 정말 사실일지, 이런 주장에 대해 청소년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기 위해서 선거연령 하향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청소년 두 명을 만나보았다.

 

현예준 님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는 투표하기 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하기 위하여 후보들의 공약집을 읽고 유세 현장에도 들러봤다. 투표를 처음 해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투표가 정말 체계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나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철저히 관리 감독이 진행된 점을 언급했다. 사람들 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제 한 표 한 표로 인해서 후보자가 당선되고 낙선된다는 것 자체가 저 개인이나 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는 제 투표가 부족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정치에 대한 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에서 법과 정치라는 사회 과목 이외에 정치 선거나 투표 절차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18세 선거권 이후, 청소년의 참정권을 위하여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국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법안들이 의결되고 있고,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는지, 어떤 행정 명령을 하려고 하며 그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현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학교에 부여가 된다면 학생 개인의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고쳐지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라고 답했다.

 

변현준 님 역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그는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선거와 관련된 기사를 보았지만, 후보자들의 공약집을 읽지 않았다. 지역구 선거에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체적으로 정치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올해 정당에 들어갔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선거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드디어 내가 정치적 주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반면, 투표 행위에서는 비교적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참정권에 대해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삶의 주체가 아니라 유예된 존재로 간주된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합니다. 지금 내가 내 삶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나중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지금 당장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많이 박탈당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 삶의 권리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에 참정권이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18세 선거권 이후 남아있는 과제에 대해서는 선거연령 하향, 정당 가입 연령 제한 폐지 등이 더 필요하며, 뿐만 아니라 참정권이 결코 좁은 의미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에만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고, 청소년들의 삶 자체가 경쟁의 강박에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그를 위한 교육들이 병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두 명의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모든 청소년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청소년 역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고, 정치적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청소년들은 저마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했다. 그러한 방안들은 투표를 했을 때 느꼈던 감정, 일상을 보내는 학교에서의 경험, 청소년의 참정권에 대한 생각 등을 통하여 도출되었다. 청소년 역시 비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사고하는 시민임을 보여준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투표 X, 선거운동 X, 정당 활동 X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18세 이상 청소년에게 보장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계적이다. 그렇다면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투표권을 보장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여전히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인가? 선거연령이 하향되면서 선거운동 연령도 하향되었다. 하지만 가능한 선거운동의 범위는 매우 좁으며, 여전히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올해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연령 확대로 인한 학교의 정치화와 교육 현장이 우려된다며 국회에 입법 보완을 요구했다. 현재 학교에서 가능한 선거운동의 범위는 학생 사이의 단순한 의견 교환, sns 활용 선거운동, 정당 가입, 정치자금 기부 등이다. 선거운동 목적의 모임이나 집회 개최, 단체 차원의지지 선언, 후보자 등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진행하는 것 등이 금지된다. 이는 학교의 정치화를 최소화하려는 법 조항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알리는 것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 사람을 지지하고 말고는 다른 학우들의 몫이다. 오히려 선거와 관련한 여러 집회가 열리는 것은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정치할 권리를 성실히 실현시킨다는 증거일 것이다. 토론회를 진행하기 위해 친구들과 모여 후보자의 공약을 알아보고 공약의 의미, 효과, 한계 등에 대해 질의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다름 아닌 시민교육에 참여하는 하나의 형태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여전히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최근, 정당 비례대표 선거운동에 청소년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당의 위원장이 검찰에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이에 대한 탄원서를 작성하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정치 활동을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했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청소년 활동가는 자신의 선거운동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비청소년에 의한 강요나 강압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청소년과 청소년의 권력 관계를 해소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청소년의 정치적 자유를 금지하는 형태로 대응이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정당 활동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한다. 정당법 제22조 제1항 본문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는 공무원 그 밖에 그 신분을 이유로 정당가입이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 불구하고 누구든지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선거권이 없는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정당가입 및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1, 정의당에서는 위 조항이 위헌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에서 심상정 대표는 스웨덴·독일·프랑스·영국 등 민주주의와 복지가 잘 실현된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정당가입 연령을 국가가 금지하지 않고 정당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적극 보장하고 있다핀란드의 경우는 만 13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의회를 법적기구로 두고 있다. 독일의 고등학교는 직접 자신이 원하는 정당의 강령을 만드는 교육과정도 있다고 말했다. [각주:2]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청소년의 정치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육적 차원에서도 정치란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그러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말하는 정치 X, 청소년이 말하는 정치 O

 

청소년은 선거운동, 정당가입 및 활동의 자유를 넘어 적극적으로 제도정치에 개입할 권리를 부정 당한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25세 이상의 국민만이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자체장에 출마할 수 있다. [각주:3]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금지되어있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 인권에 대하여 발화하는 정치인은 극히 일부다. 발화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비청소년의 시선에서 한계적으로만 발화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청소년 혐오[각주:4] 를 담고 있거나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청소년 혐오를 강화시킨다. 혹은 다른 중요한 사안들이 우선되어야하기 때문에 청소년 인권에 관련한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청소년들은 청소년을 말하는 정치가 아니라, 청소년이 말하는 정치를 원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인권을 발화하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 말이다. 사회에서 청소년을 수동적인 객체로 상정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서 정치사회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 말이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청소년 인권침해 사안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입시교육에 대한 대안과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청소년이 대상이 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말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몫이다. 그렇기에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발화해왔다.

21대 총선을 맞아, 특성화고생 권리 연합회는 주요정당 10곳에 정책협약 제안서를 보냈다. 고졸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고졸청년특별법, 고졸학력을 이유로 임금과 진급 차별을 금지하는 고졸차별금지법, 특성화고 학생이 참여하는 직업교육정책 개혁 추진 기구를 만드는데 노력할 것을 10개 정당에 제안했다. 그러한 협약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각 정당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목소리에 대한 대답을 주어야 했다. 시민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개의 메일에 대해서 단지 3개 정당에서만 답이 왔다. 특성화고생들의 권리를 책임지라는 청소년들의 꾸준한 외침에 대해서는 교육청도, 노동부도, 정치권도 저마다의 이유를 말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작년 조국 사태 이후에는 공정성이라는 키워드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당시 기회의 차별을 문제 삼으며 공정하게 경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일부 청년들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청소년들이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교육이 왜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까의문을 제기했다. 청소년들은 교사, 학부모 단체와 함께 공정한 입시제도란 가능한가? 우리는 교육에서 차별과 경쟁이 사라지길 바란다!’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언론에서 공정성을 요구하는 일부 대학생들의 모습만을 보도하고, 기존 교육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학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외침은 주목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청년들의 외침에 응답이라도 하듯, ‘서울 16개 대학 정시 비율 40% 이상을 권고했다. 많은 청소년들의 요구를 왜곡시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청소년 역시 단일한 존재가 아니며, 각자 삶의 맥락과 위치에 따라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부의 이러한 권고안은 교육부를 비롯한 정치권과 기존 언론이 청소년 중에서도 일부 명망 있는청년들의 외침에만 주목하고, 다른 청소년들의 외침을 소외시키고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n번방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이 성착취 사건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무부는 의제강간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 법안은 16세 이하의 미성년자와 성인이 성관계를 했을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성인을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동·청소년이 계속해서 성착취 사건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무부의 고민, 관련 부처들과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 있었겠지만,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비청소년과 청소년의 성적 관계를 일괄적으로 차단하는 법 개정이 오히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고, 재판 과정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 있는 재판부를 배당하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확실히 아쉬웠던 점은, n번방 이후의 과제를 이야기하는 많은 토론회가 있었지만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의견을 발화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없었다는 점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청소년이 말하는 정치가 꼭 모든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정치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짚어둘 점은 이제까지 청소년들의 현실은 비청소년의 입장에서 해석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권리와 자유를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청소년들이 더 자유로이 의견을 말하고, 정치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사회로 향해야 한다.

 

미성숙한 청소년

 

청소년들의 정치할 권리를 억압하는 사고방식 아래에는 뿌리 깊은 나이주의가 깔려있다. 나이가 어리면 미성숙하다는 편견 말이다. 애초에 몇 살부터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왜 중요한 것인가. 이러한 논의 자체가 청소년이 정치적 주체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논의이다. 비청소년에 의해 정치적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에 청소년의 참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일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 직접적으로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서 받기도 하고, 대중매체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 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 타인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어떠한 긍정적인 작동이 가능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것은 청소년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활성화할 때, 나이로 인한 차별을 무너뜨릴 때 가능하다.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 논의가 있을 때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정치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국가는 어떻게 운영되고, 우리의 의견은 어떤 통로를 통하여 반영되고, 매일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 논의에서 나오는 정치교육의 맥락은 결국 정치교육을 통해 정치를 잘 아는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선거권 획득이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정치교육이 필요하다고 논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 역시 비청소년과 같은 정치적 주체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정치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상에서 경험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탕으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대안을 상상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몇 살부터 선거권을 부여해야 하는가논의는 미성숙함과 성숙함을 구분 지으면서 성숙한 사람만이 권리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능력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권리가 개인적인 노력을 통하여 획득되어야 하는 것인가. 정치를 모르는 이들은 투표조차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정치를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투표권을 얻을 수 있는 성숙함의 정도는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권리는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숙함과 노력의 정도를 정하고 그것에 알맞은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이 권리를 어떻게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숙하다는 것은 어른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함의 사전적 의미 역시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되다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미성숙하다고 규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결국 우리 모두는 성숙해져야 한다는 편견을 반영한다. 성숙함과 어른스러움이 같은 의미인 사회에서, 비청소년은 성숙함과 미성숙함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최종 목표인 성숙함을 위하여 여러 방식으로 청소년을 통제한다. 규칙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성숙함이란 철이 드는 것이다. 철이 드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간의 부당함이나 자신의 권리 침해에 아무 말 하지 말고, 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 성숙해지기 위해서.

 

청소년의 정치 참여, 그리고 공부

 

청소년 참정권을 억압하는 요인인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관련하여 조금 더 언급해보려 한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해버리는 편견 이외에도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공부와 연관시킨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학생으로 한정되며,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공부와 연관 지어 설명된다.

 

학생이 공부해야지 왜 집회를 나오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일까. 공부라면 그 공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교과 교육을 성실히 이수하여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 그 공부에서 나의 삶을 고민하고 사회에 의견을 피력할 권리는 사라진다. 청소년은 의견을 낼 수 없다. 의견은 성인이 되어서도 낼 수 있으니,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 청소년은 유예된 존재일 뿐이다. 지금 당장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지금의 권리를 박탈당해야 한다.

또한, 교육은 일상에서의 정치적 경험과 분리된다. 교육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것은 교육이 고정된 교과서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포한다. 하지만 정치교육이라는 것이 별건가. 일상에서 나의 현실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것에 의견을 내고,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일상에서 정치교육을 실현하는 것이다. 오히려 집회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너는 공부도 잘하는 애가 왜 그런 걸 하니?” vs “너는 공부도 못하면서 왜 그런 걸 하니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면 그저 참여하는 것인데, 그것을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와 연결 짓는다. 그리고 그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부를 얼마만큼 잘하느냐에 따라 맞는 이유를 붙여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비판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공부를 못 하는 아이도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공부에 집중해야 하고, 공부를 못 하면 대학이라도 가기 위하여 공부를 해야 한다. 정치활동은 공부에 걸림돌이 되는, 쓸모없는 일이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다!!!”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옹호하는 여러 언론이 있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시각에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상정하기도 한다. 페미니즘, 노동, 환경 등 여러 의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다른 비청소년들의 집회와 달리, 청소년들의 집회를 더욱 강조하며 공부해야 하는데 사회에 참여하는 대견하고 기특한 존재로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사고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입시에 관련된 문제에만 목소리를 낸다.”

 

입시와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는 청소년들을 이기적이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또한 입시를 넘어서 더 폭넓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훈수를 놓는 어른들이 있다. 하지만 입시에 관심을 갖는 게 뭐 어때서? 우리 사회에서 입시는 청소년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입시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민주시민교육의 기본 목표가 아닌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사람 말이다. 또한 입시와 관련하여 청소년들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작년 조국 사태 이후 더 나은 교육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외침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고작 서울 몇 개 대학에 대하여 정시 비중 확대를 권고하는 수준에서 많은 청소년들의 외침을 무마시켰다. 이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입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의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년에는 청소년들의 기후위기행동이 있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행동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교육방식을 창조해내는 하나의 실천이다. 이들은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인이 되는 공장식 축산업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후 변화를 막고 비인간동물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채식을 실천했다.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일상 속에서 실천할 때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동아리,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들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 청소년 페미니스트 모임 어린보라에서는 [을들의 당나귀 귀: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등 여러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썼고,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작년 콘돔 전시회를 열며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관계 속에서 여러 의제들에 대해 고민했다. 교사의 개입 없이도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어리숙하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표상되고, 보호는 그들을 통제하며 이루어졌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부수고, 스스로 행동하고 참여하는 배움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용기를, 상상을, 실천을 배워야 한다.

 

한 표를 보장받는 것의 의미는? 그것이 참정권을 보장받는 것인가?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 정치 자체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제도 정치는 국민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나의 의견이 후보자를 통하여 피력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 중 나의 의견과 그나마 일치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가 투표한 후보자가 나의 모든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 어떤 의제에 대해서 동의해도, 어떤 의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후보자들이 너무 최악이기 때문에 차악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내가 이 후보자를 완전히 지지하든, 후보자의 일부 정책만 지지하든, 후보자를 지지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투표를 했든, 모두 후보자에 대한 한 표로만 나타난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독점 속에서 그들이 대변하지 못하는 자들의 의견은 모두 소외될 뿐이다. 거대 양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소수는 투표권을 부여받았다고 해도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후보자의 공약을 지지하여 투표했는데,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문재인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ILO 핵심협약 비준이 공약이었으나, 취임 이후에는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통해 비준하겠다고 교묘하게 말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이유로, 경영계와 합의하기 위한 얼마나 많은 악법들이 통과되겠는가. 탄력근로제 확대를 비롯하여 ILO 핵심협약 비준을 무력화시키는 수많은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 화제가 되었던 공약 - 2020 최저임금 1만원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었으며, 내년에는 최저임금 130원 인상이라는 역대 최저 인상률이 확정되었다.

제도 정치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제도 정치로는 우리의 의견을 완벽히 개진할 수 없다. 그것을 넘어서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18세 선거권, 그 이후를 꿈꾸다

 

참정권의 의미 확장이 필요하다. 단순히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서 제도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 사회에 의견을 피력하고 일상 속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부터 정치 참여는 소외된다. 청소년들은 학교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 일상에서 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입시 하에서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학생들이 내 삶의 불편함을 말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토론할 수 있는 학급회의, 대의원회의, 운영위원회 등이 운영되지만, 그것의 의미와 필요성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 채우기 용으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며, 다루는 의제들도 제한적이다. 마지막으로 18세 선거권 이후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고민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은 청소년들의 꾸준한 외침을 통하여 진행되어왔다. 청소년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지금의 권리를 주장한 그들이야말로 일상에서 교육을 실현하는 모습과 청소년의 정치적 주체성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은 18세 선거권 너머를 요구한다. 한계적인 투표권 보장을 넘어서, 청소년의 정치적 주체성 실현을 위하여 교실의 정치화, 일상의 정치화를 요구한다. 교실의 정치화를 시작으로,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확대해나가자. 학급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일상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시간을 갖자.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자.

학교 내에서는 학생회가 실용적 업무를 하는 기관을 넘어 정치조직으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운영, 재정 운용, 교육 과정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회장만이 형식적으로 참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사회 내의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학급회의가 잘 진행된다면 그것이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겠다.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서 두발규제, 교육권 침해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과정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 교육을 넘어서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교육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은 더욱 정치적이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추상적인 말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져야 할지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단순히 교과 시간을 통해서 교육될 수 없다. 일상 속에서 정치가 가능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정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강의실 안에서 구조화된 지식을 접했을 때가 아니라, 일상 속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배움을 느꼈다. 사회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공부할 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서로의 질문에 답해줄 때,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할 때, 나의 의견을 사회에 피력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을 때, 공부했던 내용들이 나에게로 가깝게 다가왔다. 일상의 정치화를 긍정한다. 일상에서, 나의 삶에서, 내가 속한 공간에서 나의 권리와 의무를 실천할 때, 교사는 권리와 의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는 고민하고 경험함으로써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느꼈기 때문이다. 교사의 옳은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교과서에 나오는 멋진 말들을 나 스스로 의미화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긍정한다. 더 많은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부여받고,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후보로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교육에 개입할 수 있는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가령, 수업 일수, 교육 내용, 교육 방식, 방학 기간 등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내 삶의 주체로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하여 청소년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동등한 주체로서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학교를 넘어서는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통제당하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부정당하고, 경쟁을 통해 평가받는다. 학습 시간은 수면 시간을 줄일 정도로 과도하고, 학생들의 쉴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하기 위해 외적, 내적 가꿈을 포기해야 하며,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이러한 통제와 억압, 경쟁과 차별은 교육의 의미를 희미하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배움과 가르침이 존재하는데, 교육의 결과를 통해 인간의 자격을 나누고 그 자격 조건 안에 들게 하기 위해 인간다운 대접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의 목적을 전도시킬 뿐만 아니라, 청소년 혐오를 강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각주:5] 학생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고,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 말이다.

이는 비단 교육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논리이기도 하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동하지만, 어떤 노동을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자격을 나눈다. 인간답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기고 누군가를 차별하며 인간다움을 포기해야 한다. 청소년 참정권 논의는 입시교육, 대학서열화와 대학이 당연한 사회,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 지가 곧 개인의 등급이 되는 사회, 모두가 노력하지만 성공한 사람의 노력만이 인정되는 사회, 아무런 승자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인간의 자격을 구분하며 권리를 부정하는 사회가 아닌, 권리가 모든 이에게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그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인정해야 한다. 교실의 정치화, 일상의 정치화는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부터 의견을 피력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 또한, 일상의 정치화를 통해서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권력 관계를 해소시킬 수 있다. 청소년을 유예된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비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시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성인 중에 투표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에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도록 18세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담론을 넘어서,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18세 선거권, 그 이후를 꿈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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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페이스북 페이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특성화고 권리 연합회 페이스북 페이지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페이스북 페이지

어린보라: 대구 청소년 페미니스트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위티 WeTee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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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청소년 혐오란 청소년을 비하, 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를 말한다. 청소년 혐오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며, 거대 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강화된다. 급식충, 등골브레이커, 2병 등 청소년 혐오어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는 유독 나이를 강조한다. 필자는 청소년 혐오를 포괄적으로 해석했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순수한 존재로 상정하는 것 역시 청소년 혐오에 해당된다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미디어스, 2016.07.02.,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093. [본문으로]
  5. 조영선, [학생인권의 눈으로 본 학교의 풍경], 교육공동체벗, 2020, 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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