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유튜브만 믿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지는 10년이 조금 넘었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의 SNS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지는 더 짧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극적인 정보를 판단할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휩쓸린 사람들은 그것에 적응할 새 없이 중독되어버렸다.
애초에 사람들의 판단력이 미성숙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물론 옳은 설명일 수 있으나, 과거의 미디어와 지금의 미디어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새로운 미디어는 사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사용자를 파악하고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할 만한 콘텐츠를 내놓는다. 우리는 신문사나 방송사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고 언론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판단할 수 있으나, 새로운 미디어에서는 역으로 미디어가 사용자를 판단한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게, 맞춤으로. 예전에는 보고 싶지 않은 소식들도 강제로 들어야 했다면, 이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본인이 애써 노력(?)해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미흡하여 꼴 보기도 싫은 콘텐츠를 소개해줄 수도 있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 연결되는 것, 그것은 적당한 공통의 기반과 소통을 통해 가능하다. 공통의 기반을 발견하고 소통을 이어나가는 것은 쌍방이 노력을 해야 하고, 다들 알다시피 매우 어려운 일이다. SNS,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관계 맺음에 빠른 속도와 편리함을 주었지만, 관계 맺음의 내용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 SNS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은 광고이고, SNS를 운영하는 기업은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있다. 사용자가 광고를 많이 보게 하는 것, SNS를 길게 사용하게 만드는 것만이 SNS가 잘 되는 길이므로 정보 제공도, 친구 추천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SNS상에서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다른 영역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넉 달 전, 4월 24일 고(故) 손정민 군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 A 씨와 술을 마시고 잠든 뒤 실종되었다. 며칠 후 그가 시신으로 나타나자 손정민 군의 아버지는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용의자로 A 씨를 지목했다. 그러나 A 씨의 혐의점은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고, A 씨는 입장문을 밝힌 후 가짜뉴스와 악플에 대한 고소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 사건에 조사할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A 씨에 대한 의혹을 집요하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미리 말하지만 필자는 손정민 군의 사망은 안타까운 사고 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판단으론, 고(故) 손정민 군의 사망을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면 그 이름은 사망 그 자체에 붙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망 이후 몇몇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가 만들어낸 마녀사냥, 악의적인 증거 날조, 선동에 붙어야 하는 이름이다. 아주 단순한 사고가 어마어마하게 몸집을 불려 대한민국의 여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상황이야말로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주목을 받아야 할 억울한 죽음들이 잊혔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슈를 판단하는 능력이 고작 이 정도였기 때문에, 언론과 미디어는 떠오르는 이슈에 목 빼고 동조하기 바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유튜브가 진실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일개 사용자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부터 미디어 사용자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 '틀딱'과 '문맹'은 기술이 결정한다.
필자와 필자의 외할아버지는 평소에 교류가 많고, 집도 가까워 5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산다. 한번은 필자가 할아버지께 전화했는데, 두 통, 세 통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했던 일이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필자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필자가 전화한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셨다. 그래서 "전화를 왜 안 받으셨냐" 여쭤보니, 전화음이 무음이 되어있어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데 더 놀란 것은 무엇이었냐면, 그렇게 된 지 이틀이 지났는데 무음 해제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셨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의 할아버지는, 단순한 폴더폰을 계속 사용하시다가 비교적 최근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셨다. 작동법도 낯설고 외양이 훨씬 단순해진 스마트폰을 마주한 할아버지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도 하나하나 배워서 알아야 했지만, 어디에서도 그것을 일일이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할아버지와 거의 비슷한 상황인 경우가 많았고, 가족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지 한참 되어 할아버지의 불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휴대폰 없이 다니셨고, 요새는 조금 익숙해지셔서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서 검색까지 하실 줄 알게 되었다.
정용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정보연구실 데이터사이언스그룹장이 발표한 '호모 스마트포니쿠스(Homo Smartphonicus), 세대별 진화 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3년 3.6%에서 2018년 37.8%로 매우 증가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률과는 별개로, 스마트폰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모바일 뱅킹 이용률은 5.5%에 불과하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가입한 65세 이상 가입자 비중은 2019년 1월 기준 1%를 넘지 않았다. 2 이러한 불편함의 원인으로 스마트폰 사용환경이 고령자의 신체적/인지적 특징에 맞추어지지 않았단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스마트폰 특성상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조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들의 경우 움직임이 둔해지고 지문이 닳아 조작이 힘들다. 여기에 노안으로 휴대폰의 글씨를 키우면 화면 안의 정보량이 적어지고, 한 번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온라인으로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지는데 노인들은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 아울러 '데이터', '와이파이' 같은 신조어는 영어에 기반을 두고 있어,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한다. 3
복잡한 은행 업무를 비롯해 거의 모든 일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도구에 대한 이해와 사용 능력이 부족한 탓에, 노인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판단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하지 않아 특정 앱, 미디어에의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전체 8.5%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떠돌아다니는 가짜뉴스를 공유한 데 비해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11%가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데 참여했다. 4
상황이 이러한데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비방은 줄어들지 않는다. "집에서 편리하게 은행 업무를 다 할 수 있는데 왜 어르신들은 굳이 오프라인 은행을 찾아가냐"는 조소 섞인 비난, 나이 많은 극우 유튜버들을 보면서 틀딱이라고 비웃는 사람들. 이런 말들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폄하하고 배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답답함 없이 기기를 쓰고 싶지 않을까? 기기가 이미 사용자를 다양하게 규정하지 않는데, 약자 개개인에게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더 배울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수많은 틀딱과 디지털 문맹을 만들어낸 것은 미디어의 진보와 발전에서 약자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미디어의 진보와 발전에 약자의 목소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3. 그리고 가짜뉴스는 공격하기 쉬운 대상을 찾아낸다.
앞에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사실 확증편향은 노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신체적/인지적 특성과 미디어 사용 환경이 잘 맞지 않아 그럴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지, SNS는 이미 그 자체로 사용자가 확증편향을 가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자. SNS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SNS 운영 수익은 어디에서 나올까? 누구나 아는 답이지만, SNS의 수익은 광고에서 나온다. SNS는 필연적으로 사용자가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붙잡아놓아야 하고, 사용자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여 맞춤 정보, 맞춤 광고를 적절하게 띄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식의 농담은, 다시 생각해보면 유튜브가 당신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계속 붙잡아뒀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는 사이에 당신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지 않은 이상 광고 한두 편을 더 볼 것이고, 또 다른 추천 영상에 이끌릴 것이고, 다시 광고를 보고... SNS는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5
SNS는, 특히 유튜브의 경우 사용자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서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추천하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던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의 공동연구에서도, 극성 트럼프 지지자(=힐러리 극성 반대자)일 경우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빈도가 더 높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극우파 유튜브 발 가짜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코로나 양성 확진자를 보건 당국이 허위로 양성하고 있다"라거나, "(코로나 확진자를 격리해놓는 것이) 정치적 탄압이 아니냐"라는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서두에 다루었던 고 손정민 군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발언들은 마치 사실인 양 포장되어 여기저기 퍼지고, 미디어를 편향적으로 접하는 사용자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확증편향은 더 폭력적으로 사회의 어떤 면을 재생산한다. 6
어떤 가짜뉴스는 이런 확증편향을 자극하여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 뿌리 깊은 폭력성을 답습한다. 필자는 최근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퍼뜨린 가짜뉴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기사 제목에서 사실인 것이 무엇일까? 사실인 것은 '3호선에서 여자 승객이 쓰러졌다'는 내용뿐이다. 이 여자 승객이 쓰러진 후 최초로 119에 신고한 신고자는 쓰러진 여자 승객이 핫팬츠 차림도 아니었고, 쓰러진 여자 승객을 도운 사람 중에는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을 여러 시민이 도왔던 단순한 해프닝인데 언론은 성범죄 무고죄를 겨냥하면서 이것으로 성별 간 싸움을 붙인 것이다. 7
이 가짜뉴스는 '보배드림' 커뮤니티 내 목격자의 글을 주류 언론사가 가져다 쓰면서 유포되었다. 여성과 남성을 대치시키고, 여성의 복장이 '핫팬츠'였다는 걸 꼭 언급하는 정성스러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사 제목은 반(反)페미 남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기사의 댓글난은 가짜뉴스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여자들 자업자득이다', '도와줬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 바엔 (...) 사회가 이렇게 된 건 남자들 탓이 아니라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자' 등과 같이 여성을 향한 비난과 매도로 가득 찼다. 8
이 기사와 댓글에 성폭력 무고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 역시 확증편향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7월 19일 공개된 '검찰 사건 처리 통계로 본 성폭력 무고 사건 현황'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죄로 고소된 사건 중 84.1%는 불기소되고,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556명으로, 성폭력 사건으로 기소된 피의자 수의 0.78%에 불과하다. 위의 '3호선 핫팬츠녀' 기사는 성폭력 무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겨냥하여 조회수를 뽑아냈고, 어떤 여성은 해명할 기회도 제때 얻지 못해 또다시 '핫팬츠녀'로 대상화되었다. 9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언론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양 작성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미처 몰랐던 일, 알기 어려웠던 사실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즉시 구별해낼 수 있는가? 이 사건은 가짜뉴스가 올라온 다음 정황을 파악하고 오마이뉴스에서 팩트 체크 기사가 올라오기 전까지 날개 돋친 듯 퍼지고 있었다. 개인은 관심법을 사용하는 궁예가 아닌 이상 뉴스 한 편을 보고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뉴스를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4. 그래서, 미디어 교육은?
필자는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싶지 않았다. 스마트폰, 언론, 미디어는 자본만을 좇을 경우 편향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 편향된 사람들을 자극하여 돈을 번다. 이런 언론과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몇몇 사건들을 주목하여 드러내지만, 그 상세한 내용 - 누구와 누구를 잇는지, 이 사건을 발굴하는 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 은 쉽게 간과한다. 일개 사용자인 우리는 어그로 끌려서 조회수에 기여하는 독자였다가, 기사 내용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펼칠 수 있는 비판적인 독자이기를 어쩔 수 없이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얻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개인의 역량 강화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에 대한 교육과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언론의 구조에 항의할 수 있도록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도구 사용을 교육하는 동시에 도구 역시 바뀌어야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함과 동시에 미디어와 언론을 시정해야한다.
#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도록.
디지털 기기와 그 속의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내가 살던 세계 많이 다른 세계'일 것이다. 사람들의 확증 편향은 이 세계를 '다양하게' 접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 방법은 여태껏 혼자서 익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심각해져만 갔다.
필자는 도구에 대한 교육과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교육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구와 미디어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구 사용 방법을 배우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본인의 확증편향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도구와 미디어를 배우는 것은 특히 앞서 언급했던 노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교육 방향을 추상적으로 늘어놓았는데, 독일의 '뮌스터 벤노하우스'를 예시로 들면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뮌스터 벤노하우스는 노인들을 위한 시민 미디어센터이다. 이 기관에서는 노인층과 청년층이 함께하는 영상 프로젝트, 뉴미디어 시민TV 공동 제작 등 미디어의 생산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노인층과 같이 소외된 이들을 디지털 기기의 세계와 공론장에 동시에 끌어들이고, 시민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있다면 노인은 더이상 가짜뉴스를 퍼나르고 선동하는 이들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10
# 거대한 흐름에 작은 것들이 압도되지 않도록.
위에서 필자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한 교육안을 제시했지만, 이 교육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의지 있는 개인들이 쉽게 교육받을 수 있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의지 없는 개인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 생각엔, 사회가 가짜뉴스로부터 개인들을 지키는 안전망이 되려면 사람들과 소통하고 본인의 의사를 정치적으로 표현할 역량을 갖춘 시민들이 필요하다.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법안은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징벌적 손해배상제), 가짜뉴스로 추정되는 뉴스를 노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열람차단 청구권). 그러나 이 법안의 위험성과 효용성을 고민해보면 여러 의문점이 생긴다. 우선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고, 언론의 권력 고발 기능을 제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법안은 유튜브, 페이스북 발 가짜뉴스는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필자의 글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언급했는데, 유튜브발 가짜뉴스가 활개를 쳐 혼란을 일으켰던 최근의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이 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와 그로부터 비롯된 혼란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으로는 막을 수 없고,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결국, 나날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와 언론, 가짜뉴스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불명확하고 불완전하지만 이미 발빠르게 형성되어있는 무언가, 시민 사회의 비판적인 판단 능력이다. 더불어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 예컨대 노인들이 디지털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 언론과 미디어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 역시 시민 사회의 정치적 역량에 달린 것이다. 11
이렇게 시민 사회가 미디어와 언론을 판단하고, 미디어와 언론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정치교육이라 일컬은 것은 특별한 무언가는 아닐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꼭 학교 교육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다. 정부 기관에서는 문제 제기 통로를 더 열어놓고, 자료 공개를 더 적극적으로 하고,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를 이야기할 공간, 공론장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정치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조회수와 광고 재생 횟수로 전락하지 않고 시민으로서 미디어를 대해보자.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도구와 미디어를 구성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민 말이다.
월영
- 노경조, '[손정민 사건 3개월] 사망원인 대신 방송·유튜버 고소만 남아', 아주경제, 2021.07.28.(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 심윤지, '고령층 스마트폰 보유율 늘지만… 실제 활용까진 높은 '문턱'', 경향신문, 2019.09.13.(기사작성), 2021.08.18.(인용) [본문으로]
- 금준경,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미디어 오늘, 2019.05.12.(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 James Devitt and B. Rose Kelly, 'Fake News Shared by Very Few, But Those Over 65 More Likely to Pass on Such Stories, New Study Finds', 2019.01.07.(기사입력), 2021.8.18.(인용) [본문으로]
- 제프 올로우스키,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202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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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연,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 승객, 남성들도 도왔다"', 오마이뉴스, 2021.07.07.(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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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성폭력 범죄 통계 범주 세분화 작업 필요"', 법률신문 뉴스, 2019.07.19.(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 백진호, '노년층 미디어교육,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100NEWS, 2020.10.27.(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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