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텀 12 (2013)>
줄거리: 그레이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메이슨은 문제 청소년을 단기 위탁하는 청소년 보호기관 ‘숏 텀 12’의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그레이스는 상당수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는 숏 텀 12의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용기를 주려고 노력한다. 일터에서는 무한한 애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그레이스지만, 퇴근 후에는 그녀 자신도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숏 텀 12에 매우 까다롭고 공격적인 소 소녀 제이든이 들어오고, 그레이스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제이든을 구출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레이스는 드디어 자신의 내면과 직면할 용기를 얻고, 두 사람은 눈부신 도약을 시작한다. 1
교육저널에서 ‘청소년’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이다. 우리는 기사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더욱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고 느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이번 교육저널 영화제에서는 청소년 보호기관에 위탁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숏 텀 12’를 함께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진영: 영화 잘 보셨죠?
일동: 네!
# 각자 인상 깊었던 장면
우정 : 가정폭력 상황에 놓인 제이든의 고충이 나오는 장면에서 ‘가정폭력을 어떻게 하면 근절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의 필요성을 좀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최근 정인이 사건 등도 그렇고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리 : 저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나요. 하나는 그레이스가 제이든과 같이 제이든 아빠 집에 가서 차로 부시는 장면이 생각났어요. 처음에 그레이스가 제이든 아빠 집에 가는 거 보고 '저길 왜 가지? 지나치게 제이든의 상황에 몰입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둘 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있는 건 똑같은데, 제이든이 집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그레이스가 무기를 들고 들어갔잖아요. 그럼 이건 제이든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이든 아빠에게 자기 아빠를 투영해서 보복하겠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제이든을 찾기보다 아빠 앞에서 서 있었잖아요. 아이를 구한다기보다 자기한테 깊이 투영한 나머지 보복하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제이든이 나왔어요. 제이든이 나와서 둘 다 이전에 위탁소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 때처럼 같이 야구 방망이로 제이든 아빠 대신 제이든 아빠가 타는 차를 부시는 걸로 신나게 마무리가 되어서, 제이든이 그레이스를 만난 게 제이든에게도 잘 된 일이지만 그레이스에게도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건져주는 사이. 그게 첫 번째로 인상 깊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 바로 직전에 위탁소장인 잭과 위탁소 직원 그레이스가 말다툼하는 장면이었어요. 잭이 '나는 너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 봤는데 성범죄자 부모를 고발하지 못 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애를 데려간 게 맞는 일이냐 하면, 화가 나는 동시에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는 법이 있고 규칙이 있는데 피해 당사자인 아이가 나는 피해를 봤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못 데려가는 게 법이면 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흘러갔던 것 같아요. 분노가 분노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장의 상황에도 화나지만 그런 규칙과 법의 존재에 대한 분노도 생겼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2차 피해도 많이 일어나고, 하, 화납니다. 분노로 끝났어요.
현도 : 그레이스가 자기 아버지가 출소한다는 걸 들은 이후 감정의 혼란을 겪었잖아요. 제이든 아빠 앞에서 야구 방망이 들고 선 장면에서 ‘정말 죽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정민 : 한국영화였으면 '아악, 치지 마. 너도 감옥 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서 공감돼요. 잭이 그렇게 얘기한 다음에, 그레이스가 화나서 조명을 뽑아가요. 그러더니 밖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바닥에 던지는데, 놀랐어요. 처음엔 어른이라서 그런 건가 해서 생각했는데, 그 건물이라는 게, 그레이스가 엄청나게 애정을 붓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니까 밖으로 나가서 공간을 해치지 않게 조명을 던지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제이든의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데, 배경 음악이 위태롭지 않고 너무 멋져요. 너무 단단해 보이고. 싸울 때는 금방 무너질 것처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아요.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다가 금방 풀리고 다시 단단해지는 장면의 연속이죠. 앞의 장면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표현했다면 그 장면에서는 보호자 어른 선생님인 그레이스를 그렇게 연출해서 좋았어요. 마치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어요.
현도 : 정말 공감해요. 그레이스가 자전거를 타거나 잡고 서 있을 때 굉장히 굳세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엄청나게 튼튼한 사람 같고, 히어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걸 의도한 건가 싶었고요. 정민님이 이 부분을 말씀해주셔서 공감되네요.
진영 : 너무 신기한 게, 어떻게 하나의 영화를 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이렇게 다르죠? 한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다른 게 정말 신기해요.
저는 제이든이 그레이스한테 '니나 동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 장면이 그레이스에 대한 신뢰가 쌓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결국,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 장면은 제이든이 그레이스한테 그렇게 신뢰를 줄 수 있었던 이유와 관련 있는데, 그레이스가 잭한테 가서 “왜 아빠에게 학대받고 있는 제이든을 부모네 집으로 보내?”하면서 화내죠. 그때 말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잭이 “동화 얘기를 들려줬다고 그러는 거야?”라고 하니까 “아이는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라고 말해요. 그레이스가 제이든의 시선에서 이해해주려고 계속 노력했기 때문에 제이든이 신뢰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
우정님이 아까 가정폭력 근절 얘기를 했지만, 가정 폭력 상황을 파악하는 데서 피해자가 모든 사실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게 피해로 인정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그 장면에서 잭의 말 중에 생각이 나는 건 “그런 건 상담사가 하는 거다. 너는 시설 관리 직원일 뿐이다.” 이 부분이에요. 상담사와 시설 관리직의 업무가 구분되는 건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시설관리직 직원들이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인데, 업무를 구분 지음과 동시에 시설 관리직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되는 것 같아서 되게 생각이 나요.
정민 : 2학기 말쯤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게 '대상화'예요. 우리가 이걸 말할 때 좋은 어조로 말하지 않죠. 말 그대로 타자를 내 인식 세계에 들여오기 위해서는 대상화가 필수적인데 이걸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진영의 말을 들으며 '마주 봄'과 '같이 봄'이 떠올랐어요. 대상화는 보통 일상에서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밥 먹고 얘기하는 사람은 대상화를 하지 않아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레이스와 같이 마주 보고 있는데, 그래서 갈등이 깊어지는 게 연출이 되다가도 화해하는 장면이 인상 깊어요. 연인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행동이긴 한데, 화해하는 장면에서 힐끔 보고, 담요 벌려주고, 쏙 들어가요.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눕죠.
우정 : 잭과 그레이스가 말다툼하는 장면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현실에서 아이들을 잘 알고 공감해주는 사람은 그레이스였는데, 사실 잭도 그만큼의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을 테고 그 결과가 규칙을 따르는 것이었을 거예요. 잭에게도 잭의 맥락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으로는 그레이스를 응원하지만 ‘뭐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교사가 되어서도 비슷한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두운 길을 혼자 걷는 학생이 있을 때 교사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요? 직접 발로 뛰면서 쫓아가는 게 맞을까, 교사의 바운더리 안에서 편안하면서도 지킬 건 지키는 삶이 맞을까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교사로서 마주칠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아리 : 정민님 말씀처럼 연출과 관련해서,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핸드헬드가 두드러졌어요. 자연스러우면서도 흔들리면서 현장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어요. 이 영화의 전반적인 것과 같이 흘러가요. 화면이 조금씩 흔들리는데 이 영화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물들이 없죠. 그런데 인물들이 다 흔들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도움이 되어 주고 위안이 되어 주면서 희망을 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요. 연출도 이런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 상태와도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위탁소에서 탈주하는 새미를 잡으려고 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많이 흔들리죠. 그게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여기까지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흔들리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일상을 잘 영위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위탁소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오면 또 혼란도 있고 하겠지만 결국에는 잘 풀리고 다들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진영 : 잭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는 말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관료제적인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저는 만일 그 상황이었다면 좀 더 그레이스의 입장일 것 같아요. 관계라는 것은 어느 순간에 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시설관리직원'은 현장에서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느끼는 감각이나 생각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들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시설의 장인 잭도 충분히 대안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같이 얘기를 해보거나 위탁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등 충분히 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법에 순응하고 직원의 태도에 공감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저는 조금 아쉬웠어요. 그레이스와 같은 위치에 있을 때 나를 위해서도, 나와 함께하는 이 공간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가 소진되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을 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을 제한하거나 힘이 풀리게 하는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위탁소라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현도 : 위탁소라는 공간을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보면서 진짜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을 전부 열어 두어야 하고 가위 등의 물품들도 모두 가져서는 안 되고. 뒷장면이 되게 처음 장면과 같은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이렇게 희망적으로 연출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마커스가 메이슨 옆에 앉아서 랩 하는 장면 있잖아요. 거기서 메이슨이 여기에 대해서 더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반응할 때 혼란스러웠어요. ‘결국,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고, 여기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어요. 위탁소라는 공간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정민 : 현도님이 언급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는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현도님과 엄청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위탁소 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깨끗해 보이지 않는 느낌의 벽. 교널 동방 느낌의 벽. 그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그래도 괜찮지 않나?’ 하고 들었던 생각이, 시설은 좀 그럴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 있는 그들만의 유대 관계가 있고 그게 너무 좋아요. 처음에 울고불고 난리 치죠. 마커스가 색종이를 들고 와서 다 같이 편지 쓰고 그림을 그려서 주는 데 그것을 순순히 따르고 너의 친구 00이가, 행복한 하루 되길 바라 이런 식으로 하는 애정들이 너무 좋았어요. 위탁소라는 공간 자체가 엄청 긍정적인 공간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볼만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영 : 저도 정민님과 비슷해요. 처음 몇 십분 동안은 되게 무섭고, 별로고, 문제가 많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도님이 말한 것처럼 칼 같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다 뺏기죠. 가장 싫었던 건, 문을 잠글 수 없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문을 잠그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맥이 일치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는 공간이고, 더 나은 일상을 위해서 이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드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공간을 완전히 문제없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게 위탁소라는 공간을 낭만화하고 다가가기 어렵게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자유를 박탈당하고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것 역시 공동체이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가 만들어졌고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관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자기가 만든 노래나 동화를 들려주고 생일 파티도 하고 편지도 쓰는 그런 것들이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내가 공동체 안에 속해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 위탁소에서 그런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아리 : 정민님과 진영님이 얘기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이 공간이 그리 좋은 공간이 아닐지라도 마커스가 생일을 축하해주고, 생일이라고 컵케이크를 만들어서 나눠주고, 촛불을 부는 등 소소한 행복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중간에 어떤 친구의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그 아이는 위탁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아이가 문을 딱 여는데 밖이 너무 환했고 햇빛이 들어왔어요. 여기에서는 다들 음침한 분위기에서 TV 보고 있고, 멍 때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부모님과 나갈 때 빛이 들어오는 게 대비되어서 햇빛 있는 밖과 격리되어서 우리끼리 고립되어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뒷장면에서 메이슨도 사실은 엄청 대규모 입양 가정의 일원이었고 메이슨의 양부모는 많은 수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또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메이슨은 양부모가 계시고 양자식들이 있어서 하나의 진짜 가족이라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되었고, 그게 위탁소에서 똑같이 적용되어서 그레이스와 메이슨이라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메이슨네 가족과 비슷한 끈끈한 유대 관계로 이어진 가족이 형성되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또 하나는 메이슨이 여기서는 아빠지만 사실은 양아들이었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데, 사실 메이슨도 양아들이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형태였고 그레이스도 학대를 겪은 사람이었죠. 메이슨네 가족이 어딘가 조금 결핍이 있지만 그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이 된 것처럼,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보듬어주는 진짜 연대를 이루는 것이 행복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가족이라는 게 장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위탁소는 가족이 머무르는 곳일 뿐이지 하나의 엄청 나쁜 곳이라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현도 : 맨 마지막 장면에서 햇살이 비치는데 그게 아리님께서 말씀하신 ‘빛’이 들어와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루이스는 어떤 사람일까
정민 : 저는 좀 궁금했던 게 루이스의 에피소드가 나올 것 같았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매일 오해받고, 싸우고. 그 친구를 어떤 포지션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리 : 루이스가 진짜로 위탁소에 있는 가장 평범한 애가 아닐까 싶어요. 현실적으로 아이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다 알지 못하는데, 당사자가 스스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아이가 보인 정황만으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죠. 지금 우리가 루이스에 대해서 하고 있는 게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위탁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얘도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 얘가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 꽤 현실적인 것 같아요.
현도 : 아리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루이스는 매번 침대에 있잖아요. 그레이스가 물총 쏘면서 깨울 때 물총 못 쏜다고 놀리거나, 마커스가 자기 방 앞에서 자해를 했는데도 모르잖아요. 아리님이 말하신 전형성에 맞는 친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자기 세상에 틀어박혀서 지내고자 하는 그런 친구 같아요.
# 새로운 직원, 네이트는 어떤 사람일까
우정 : 복잡한 인물,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자 왔지만 아이들을 타자화하고 아이들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 같아요. 도우려고 하지만 여전히 넘지 못하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위탁소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나는 아마 네이트와 같은 인물이었을 것 같아요. 네이트가 복잡하면서도 안쓰럽고 그러네요.
아리 : 저는 네이트가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불우한 아이들과'라고 말한 것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어요.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우정님의 생각처럼 이곳에 일을 하러 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겠죠. 그런데 네이트가 하는 일은 수동적인 행동이었어요. 그러나 후반부에서 청소기로 소파를 청소하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새미에게 인형을 주는 것이었어요. 이걸 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 걸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을 불우한 소년들 정도로 바라보고 시혜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들을 이해하고 한 명의 인격체로 보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고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가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진영이 이야기해준 그레이스와 제이든의 관계에서처럼 아이들의 소통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정민 : ‘불우’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우리는 매번 동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혹은 결핍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잖아요. 동등한 위치에 있는 타자의 집에 가서 갑자기 도와드리겠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정말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이 돼요. 교과서적으로 말해보자면 나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텐데. 그런데 여기에서 고민을 그만두어도 될지는 의문이에요.
현도 : 네이트가 처음에 되게 자기 말이 많은 사람 같았어요. 본인에게 묻는 질문이 아닌데도 본인이 답을 할 만큼 자기 입장/생각을 상황에 관계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형을 전해주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마음이 찡했어요. ‘이 사람도 되게 많이 변했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그레이스가 제이든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알았던 것처럼.
제가 사실 장애를 가졌던 적이 있어요.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를 탔어요. 그때 진짜 싫었던 것이 휠체어 끌어주겠다는 사람이었어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도와준답시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싫었거든요. 2
# 기타
현도 :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았어요. 그레이스의 인생에서 아버지는 다신 대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그냥 없어도 되는 사람이었죠. 그런 맥락이라면 영화에서 잘 넘겼다고 생각했어요.
아리 : 만약 한국 영화였으면 카페 같은 곳에서 아버지랑 만나는 등 클리셰 같은 장면이 등장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깔끔하게 아버지가 끔찍한 사람이지만 더 이상 그레이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끝난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위탁소라는 장소에 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제가 학생 인권 연구 프로젝트할 때 탈가정 청소년에 대해서 연구했어요. 쉼터에서 머무는 청소년들과 연구를 조금 진행했는데, 위탁소나 쉼터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고 각자의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는 불량하고 허용되지 않은 것들을 마음대로 하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 같이 생각나기도 했었어요. 세상에는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 마무리
진영 : 저는 사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위탁소라는 공간이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져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어떤 문제를 접하면 ‘완벽한’ 해답을 내리고 싶어 하는 좋지 못한 습관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했는데 이 위탁소라는 공간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 안에서는 자유를 박탈하고, 그 안의 직원들의 약간의 폭력적인 모습(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모습 등)도 보면서, 처음에는 ‘아, 역시 그런 게 문제야. 뭔가 [불량] 청소년에 대한 소외적인 시선과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비청소년, 사회의 주류적인 시선과 문화가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그 점에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위탁소라는 공간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여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고, 일방적으로 청소년들이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혹은 내가 사랑 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게 필요하고 그런 관계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현도 : 저는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가 제가 못 보거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되게 많이 짚는 다는 것이에요. 이런 시간도 너무 재미있었고 이걸로 이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리 : 저는 진영이 얘기했던 거에 공감하면서 시작할게요. 저도 약간 처음에 인상 깊은 장면 말할 때 조금 분노가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교육저널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더 깊고 다양한 시각에서 위탁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영화제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또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민 : 아리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셨던 게 좋았어요. 영화제 계속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너무 많은 얘기가 압축적으로 나와요. 중간에 그레이스가 상담하는 부분도 몇 초 나오죠. 그렇게 짧게짧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왔던 것이, 처음 볼 땐 그런 게 너무 많이 나오니까 ‘영화로서는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까 아리님이 루이스가 위탁소에 사는 아이들의 전형이지 않을까 하는 말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 너무 많은 장면들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영화는 같이 봐야 한다는 게 맞는 듯해요.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이게 이런 걸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 게 좋아서 너무 즐거웠어요.
우정 : 저도 영화를 보면서 하나의 장면에 대해서도 깊이 얘기하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좋았어요. 위탁소라는 공간은 양육과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우리 동아리에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추후 기사를 쓰면서 꺼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진영, 아리, 지윤, 채미, 현도, 우정, 정민
- 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0390#none. [본문으로]
- 발언자 요청으로 수정됨. (2021.04.0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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