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학교를 바꾸는 사람들
울트라 바이올렛, 말차라떼
1. 학생들이 이해하는 페미니즘
1.1. 교육현장에서 성차별 실태, 청소년의 여성 혐오 실태
학교는 청소년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우고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생들은 가치관을 형성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시점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학교현장에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성차별적 언행, 젠더폭력, 특정 성 혐오는 초‧중‧고등학교 학교 급을 가리지 않고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일상어가 되어버린 욕설과 성적 표현은 학교의 쉬는 시간만 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는 ‘김치녀’, ‘꼴페미’ 등의 여성 비하 표현, ‘니 애미’ 등의 패드립(부모님을 욕하는 등의 패륜적 놀림말), ‘네 얼굴 실화냐’, ‘저게 여자애 허벅지냐’ 등의 외모 비하 표현, ‘앙 기모띠’, ‘야마떼’ 등의 일본어가 대표적이다. ‘기모띠(이이)’는 ‘기분(좋아)’, ‘야마떼’는 ‘그만’이라는 평범한 뜻을 가진 일본어이지만, 단어의 발원지가 일본 포르노라는 점 때문에 성적 맥락으로 통용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미친놈’은 친구끼리 정겨운 대상에게 쓰는 친근함의 표현, ‘미친년’은 매우 싫어하는 상대에게 하는 경멸의 말로 통하는데, 이는 특정 성에 대한 혐오가 담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표현에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요소가 짙게 베여있다. 인터넷을 통해 BJ와 같은 어른들이 쓰는 여성혐오 표현과 성적 표현을 배운 학생들은 이러한 단어들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습관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학교는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꼴이 되었다.
한편 여교사를 상대로 하는 젠더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지난해 7월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학교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듣거나 접해보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혐오 표현을 한 사람(복수응답)으로는 남교사(194명·48.5%)가 가장 많이 꼽혔으며, 남학생(180명‧45.0%)은 그 뒤를 이었다. 그 내용으로는 외모나 몸매에 대한 품평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 또는 전해들은 경우, 음담패설과 성적욕설·농담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 또는 전해들은 경우, 회식 때 술을 따르거나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받은 경우, 포옹·손잡기 등 신체접촉을 억지로 당한 경우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에서의 성차별과 젠더폭력 피해 범위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에게까지 확대된다. 가해의 범위도 성인인 동료 교사뿐만 아니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로 확대됨을 알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 청소년들의 여성혐오가 확산되고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한 것에는 문화적 요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학생들은 이전보다 더 쉽게 인터넷에서 정제되지 않은 부적절한 표현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의 인터넷 방송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여성 혐오, 성적 표현, 욕설 등을 사용하곤 한다. 또한, 이러한 인터넷 상의 유해 콘텐츠는 감시나 통제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다름 아닌 ‘학교’에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 인식과 감수성이 정립될 청소년기에 은연 중 흡수하는 성차별 경험은 여성혐오로 자랄지 모를 씨앗이 될 수 있다. 학교에서의 성평등 교육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1.2. 학생들 인터뷰
앞서 우리 청소년들이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페미니즘(feminism)’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생생한 답변을 얻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A군과 인천에 사는 B양을 인터뷰해보았다.
우선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무엇으로 알고 있는지 물었다. A군은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고 답했다. B양도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그를 위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인식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로는 두 명 모두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꼽았다. 특히 A군은 인터넷으로 엠마 왓슨의 연설에 대한 뉴스를 보고 페미니즘에 대한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A군이 언급한 엠마 왓슨의 연설은 현재 UN Goodwill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엠마 왓슨이 UN 양성평등 캠페인 “HeForShe”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한 연설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직접 겪는, 혹은 목격하는 성차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B양은 당연하게 여성 또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사상들이 있다며, “여자는 혹은 남자는 이래야 한다.”로 시작하는 모든 문장들에서 성차별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또한 교사로부터 받는 성차별의 예시로 과도한 복장규제를 언급했다. 아직도 일부학교에서는 야하다는 이유로 교복 안에 입는 티셔츠 색깔에 관여하거나 머리 묶는 모양에까지 관여해 지적하곤 하는데, 이는 옛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A군은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은 딱히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앞서 살펴본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한 학교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답변이다.
다음으로, 각자 재학 중인 학교에 페미니즘 동아리나 페미니즘 관련 활동이 있는지 물었다. 두 학생 모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그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지 물은 질문에도 딱히 활동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은 공통적이었다. 그 이유로는 다른 일로도 충분히 바쁘다는 점과, 그런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또래 사이에서 일반적이 않다는 점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평소에 성차별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는지 물었다. 여기서도 두 학생은 공통된 답변을 했다.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 등에서 관련된 내용을 볼 때가 아니면 딱히 생각할 기회는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이 짧은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성평등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과,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다루어 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적음과 더불어,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확대 필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덧붙여,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하여, 젠더에는 남성, 여성의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성’라는 표현 사용을 지양하고 ‘성평등’으로 부르자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데 두 학생 모두 이러한 논의는 접해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현장에서 성고정관념과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해볼 기회를 보다 더 확대하고, 학교에서 페미니즘 이념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은연중에 가하고 있는 폭력을 마주해 인식하고 멈출 수 있을 것이다.
2.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
청소년들은 여성혐오에 노출되어 있으며 청소년 스스로도 여성혐오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페미니즘은 전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성차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잘못되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인식은 페미니즘 운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는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으로 ‘스쿨미투’운동과 교내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2.1. 스쿨미투운동
미투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학교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스쿨미투가 진행되고 있다. 스쿨미투란 초·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고발 운동이다. 주로 SNS를 통해 이루어지며, 현재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 교사들의 폭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관악구 소재 사립 중학교인 M 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10년, 34살 유부남이었던 생물 교사 A 씨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피해자 이 씨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 자신의 차 조수석에 태워 몸을 더듬거나 자취방으로 불러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고, 카톡으로 ‘알몸 사진을 보내달라’, ‘어디까지 허락해 줄 거냐’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졸업생들에 따르면 그는 학생들에게 ‘처녀는 흰색 속옷을 입어야 첫날밤이 황홀하다’거나 생물 수업 중 ‘생리 중 관계를 맺으면 임신을 하지 않으니 해도 된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A 씨는 체벌로도 악명이 높았다. M 중학교로 오게 된 이유도 전에 재직 중이던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폭행해 머리가 찢어져 전근한 것이었다.
이후 이 씨는 2018년 3월 A 교사에게 당시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것에 대해 공개사과와 자수를 요구했다. A 교사가 자수하지 않자 이 씨는 본인 사진과 함께 실명으로 페이스북에 해당 사실을 폭로했다.
A 교사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현재 출근정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A 교사에 대한 고발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트위터에는 ‘M 중학교 성폭행 공론화’라는 계정이 생겨 추가 피해자들의 진술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교육청은 3월 12일 M 중학교에 대해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에 나섰고, 가해 교사의 직위해제를 요청했다. 교사의 직위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교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교사는 사직서를 쓴 상태지만, M 중학교는 학교 홈페이지 한 구석에 사과문 한 장만 올려놓았을 뿐 A 교사의 직위해제는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피해자의 고소, 고발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고소장을 쓰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아주 침착하게 써야 하는 상황인데 학교가 또 피해자 탓을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4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정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했지만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검찰이 기소했지만 가해자는 아직 교편을 잡고 있는 건 물론이고 한 학급의 담임까지 맡고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
서울시 노원구 소재의 Y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재학시절 남교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를 알게 된 재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포스트잇을 이어 ‘#ME TOO’ ‘#WITH YOU’, ‘We can do anything’ 등의 문구를 만들어 학교 창문에 붙여 화제가 됐다. 재학생들은 교내 곳곳에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해방 00’, ‘NEVER FORGET’ 등 교사의 성폭력 행위에 대한 분노와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 붙였다. 재학생들의 이 같은 행동에 학교 측은 교내 방송을 통해 “포스트잇을 떼라”고 지시하는 등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일부 교사는 학생들에게 “밥 같이 먹는 한 가족끼리 왜 그러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학생들은 SNS를 통해 “지금껏 교사들의 성추행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가 항의하고 신고해도 학교 측이 은폐하고 모른 척 해왔다”면서 “학교 측은 어떻게든 덮으려고만 하고, 피해를 본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지장이 갈까봐 결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올해 3월 서울시 양천구 소재 J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기간제 교사는 남교사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이 알려지자 문제의 K 교사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자체 파악한 재학생 피해자만 50여명에 이르렀다. 8년 전에도 교사와 학생들이 K 교사에게 비슷한 일을 당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징계는 없었다. 현재 학교 측은 해당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했고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8년 전에는 묵인됐던 일이 학생들의 고발이 잇달아 나오고 공론화가 되자 이제야 조치가 취해지기 시작했다.
S 고등학교에서도 교감 및 교사들이 학생들을 성희롱하고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미투 폭로가 나왔다. 2018년 3월 24일 SNS에 고발이 잇따라 올라왔고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들도 미투운동에 가세해 학교와 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섰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페이스북에는 ‘스쿨미투’라는 페이지가 개설되어 여러 학생과 교사들의 고발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 2월에 개설되었지만 벌써 30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고 90여개의 글들이 게시되었다. 교육부 성폭력신고센터에는 접수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물밀듯이 폭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익명의 소리이다.
스쿨미투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학교의 상황은 쉽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가해 교사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의 신속한 대응과 교사 대상 성교육, 성폭력 예방책 등의 대책 마련을 확실하게 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질서가 분명한 상황에서 애초에 학생과 교사는 평등하지 못하다. 때문에 학생들은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교육부 홈페이지 성폭력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2015년 2건, 지난해에는 단 7건에 불과하다. 많은 교사들은 애초에 학생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들을 폭언을 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고, 성폭력을 가하고, 이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도 무의식중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교사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자보를 쓰거나 공론화 시키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매우 수직적이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며, 교사는 학생들의 대학 입시와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 교사에게 잘못보이면 수행평가 점수를 잘 못 받는다거나,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다거나,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학생들은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뚜렷하기에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더욱 일어나기 쉽고, 학생들은 교사에게 문제제기하거나 대항하는데 망설임을 느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Y 고등학교의 교사들의 학생들의 미투 운동을 방해하고 방임하는 행동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들 듯이 말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스쿨미투’가 필요하다. 교사 성폭력 문제를 학생 개인에게 떠맡길 수는 없다. 피해 학생들을 혼자 고립되게 놔두어서는 안 되며 다수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Y 고등학교 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계속되어온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 학교를 다닐, 계속 다닐 친구들과 후배들을 위해 미투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학생들의 스쿨미투 운동은 억압된 상황에서 잊혀진 피해자를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고,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고 있다. 많은 학생들의 목소리와 관심과 연대가 학교 성폭력 사건을 주목하게 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가능성을 만든다.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안전하지 못한 학교이기 때문에 스쿨미투는 계속해서 확산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교사와 학생 간의 성폭력은 일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교사와 학생간의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동등하게 만들고, 위계적인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개선하고, 학생 인권을 되찾아 학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제대로 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2.2 청소년 페미니즘 동아리
청소년들은 또한 자율적으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평택여자고등학교의 ‘MeForYou’, 충주예성여자중학교의 ‘외침’, 고양외국어고등학교의 ‘다움’ 등이 그것이다.
<MeForYou> 평택여고의 페미니즘 자율동아리인 “MeForYou”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과 함께 실천적 활동을 목표로 한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행동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페미니즘 활동뿐만 아니라 청소년 인권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MeForYou’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라는 전국의 청소년·인권·교육·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연대체에 함께하여 청소년 참정권 보장,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평택 청소년 연합축제 청룡제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국회톡톡’에 학생 인권법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1. 학생들의 개성을 표현할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해주세요. 2. 사립학교 내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신고자를 보호하고 신속히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주세요.” 이외에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 에코백과 엽서’ 텀블벅 프로젝트와 세월호 뱃지 프로젝트, SNS를 통한 성차별, 페미니즘 이슈 공유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외침> 충주예성여자중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외침’은 작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동아리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부원들과 지도교사 Y 선생님으로 이루어져있다. 여성인권에 대한 포스터 그리기, 여성혐오 단어 목록 만들기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한다. ‘외침’이라는 동아리 이름은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자, 약자들의 외침을 듣고, 같이 외쳐주겠다는 의미이다. 부원들 모두가 감명 깊게 보았던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의 OST ‘외침’의 영향도 있다.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진행할 페미니즘 활동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침’이 개설된 후 초반에는 할 활동이 없어서 헤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부원들끼리라도 실천할 작은 운동을 떠올리다가 자신들의 학교 이름인 ‘예성여자중학교’를 ‘예성중학교’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교 이름에는 보통 여학교에만 ‘여자’라는 말이 붙는다. 부원들 사이에서는 ‘왜 여학생들만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걸까?’, ‘왜 남자학교라는 이름의 학교는 없을까?’, ‘모두가 같은 학생인데 성별이 중요할까?’, ‘성별에 관계없이 학교 이름을 지을 수는 없을까?’, ‘여학생은 평범한 학생이 아니기에 따로 분류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들이 오갔다. ‘외침’의 부원들은 자신들부터 학교 이름을 예성중학교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소수의 작은 노력이 학교 전체에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외침’의 부원들은 바라고 있다.
‘외침’은 또한 방학 때마다 나눠주는 책 추천 유인물에 페미니즘 도서를 추가하고, ‘외침’ 전용 SNS 계정을 만들어 부원들과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토론한 결과나 교내에 부착할 포스터들을 게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침’의 부장인 충주예성중학교 3학년 이다은 학생은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건강한 언론, 월간 밥매거진』에서 진행한 자문자답 인터뷰를 했는데, 그에 의하면 이다은 학생이 동아리를 만들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여학생들만 있는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남성이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선생님들이 ‘외침’ 부원들을 싫어하거나 활동하는 모습을 좋지 않게 볼까봐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그런 시선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생긴 변화로는 주변 환경에 더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다들 웃고 넘어가는 성차별적인 유머에 함께 웃지 못하고, 남동생과 다른 대우를 받을 때마다 부당함을 표시하게 되었다. 남들이 그를 바라볼 때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한다. 성별을 떠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길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다은 학생은 ‘외침’이 모두에게 하고픈 말을 전했다. “아직도 사람들이 모르는 일상 속 여성 혐오들은 수없이 많다. ‘여성스럽지 않다’, ‘여자애가 그러고도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옷을 잘못 입어서 성폭력을 당한 것 아니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의 흔히 쓰고 듣는 이 말들이 성차별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런 말의 사용을 줄이고, 가치관과 생각에 변화를 가져와야한다. 한마디의 변화가 특정 단체와 집단에 언젠가 큰 파급력을 줄 것이라 우리는 믿는다. 그 전 시간들이 그랬듯이 쉽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동아리 이름답게 우리는 꾸준히 외칠 것이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 그 날까지.”
<다움> 마지막으로 소개할 고양외고 동아리 ‘다움’에 대해서는 “청소년 신문 요즘것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참고하였다. ‘나다운 너다운 페미니즘’을 하고 싶다는 고양외고 페미니즘 동아리 ‘다움’은 현재는 졸업한 3학년 학생이 페미니즘 관련 주제로 강연을 한 것에 감명을 받은 현 부장에 의해 2016년 8월에 개설되었다. ‘다움’은 청소년인 페미니스트는 혼자서 목소리 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학교에 흩어져있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연대하여 페미니즘을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교내의 다른 친구들에게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서, 페미니즘 인식 개선을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으로는 각자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의견 나누기, 페이스북에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려서 동아리 홍보하기, ‘초심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의 강연회와 부스 활동 등이 있었다.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에 대한 주변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던 친구가 ‘다움’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 같이 스태프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른 학우들이 감명을 받았다며 말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감을 가진 부류 역시 있었다. 예를 들어 포스터를 붙이고 있으면 근처에서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면서 웃고, “페미니스트들 예민하지 않나”하고 들리게끔 말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분들이 더 많아서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한다.
‘다움’이 학교 동아리이기 때문에 좋은 점으로는 학교라는 장소의 특성상 학생들과 만나기가 쉽다는 점을 들었다. 감독하는 교사들의 눈을 피해서 점심시간이나 야간 자율시간에 짬을 내서 만날 수 있고, 친구들 간의 친분으로 페미니즘을 몰랐던 친구에게도 홍보가 용이하다고 한다. 반면에 학교 동아리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나 제약 또한 존재한다. ‘다움’ 동아리는 학교 소속이다 보니 학교의 규정과 틀에 얽매여있을 때가 많았다. 동아리 모임을 가지려고 할 때 학교 행사에 따라서 날짜가 불확실하게 바뀔 때가 있다. 또한 남학생들의 단톡방에서 ‘다움’에 대한 험담이 오고 간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안 좋은 소문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소문은 교내에서 매우 빨리 퍼지기 때문에 곤란함을 겪었다.
‘다움’의 부원인 이서은 학생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어린 네가 뭘 안다고 그런 걸 해?’, ‘너희는 아직 학생이니까 페미니즘을 하더라도 이런 건 건드리면 안 돼’와 같은 직접적인 말이나 그런 뉘앙스가 담긴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교사들이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청소년(학생)의 입장에서 교사의 그런 발언에 대해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입시나 진학문제에 있어서 교사의 영향력이 크므로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은 어른들이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안 그래도 ‘어린’ 취급을 받는 청소년의 위치에 있는데,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의 위치에 있기까지 하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건 안 된다’, ‘저건 위험하다’는 식으로 제한 받는 것이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의 페미니즘 활동은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페미니즘이 단지 특정 세대의 것만이 아니며, 청소년 역시 페미니즘 담론을 형성하고, 자신들만의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어내는 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이 무지하고, 미숙하고, 비성숙한 존재로서 간주되는 것은 굉장히 단편적인 시각이며 단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멋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아닌, 연대의 대상, 함께해야 할 존재이다.
3. 교사들의 페미니즘 운동
앞서 살펴본 것은 스쿨미투운동과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학교의 또 다른 주체인 교사들의 입장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교사들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서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활동과 실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고 계시는 최승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3.1.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의 어떤 집단적인 페미니즘 운동은 아직 그다지 세력이 넓지 않다. 따라서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이 분야의 좋은 선례라고 할 수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지난 2016년 5월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단체이다. 사건 직후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 현상에 관한 논쟁이 활발해졌고, 초등학생들의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가운데 학교교육에서는 오히려 이를 확대‧재생산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에 서한솔 선생님 등 10여명의 초등교사는 그해 6월 ‘초등성평등연구회’를 결성하였고 현재까지 정기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는 성별 이분법과 성차별을 강화하는 학교의 다양한 관행과 제도를 비판한다. 연구회에서는 남학생은 출석번호 1번, 여학생은 출석번호 51번부터 시작하는 학교의 관행이나, 줄을 설 때 남녀가 한 줄로 각각 나누어 서는 관행, 학교에서 준비물이나 기념품을 제공할 때 남학생은 파란색, 여학생은 분홍색 물품을 주는 경우 등에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학생 등굣길 안전을 위한 봉사활동이 ‘녹색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보호자 연락이 필요할 때 어머니에게만 연락하는 것도 마치 양육과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다는 듯이 여기게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의 삽화에서는 국회의원, 기업가, 농부 등은 남성으로, 미용사, 계산원, 가정주부 등은 여성으로 묘사함으로써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고, 존경할만한 위인들 중 여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외에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지문과 삽화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이 바라본 학교의 현행 성평등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초등 4학년 2학기 사회 2단원 ‘사회 변화와 우리 생활 단원’에서 성평등을 다루고 있으나 양적, 질적으로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성차별의 구조적인 차원을 다루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 양성 및 연수 과정에 성평등 교육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로 제시되었다. 교육대학교 교육과정에 성평등 교육, 여성학 관련 강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회의 교사들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에서는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였다. 정해진 학습목표에 맞춰 보조 교재로 성인지적 관점을 담은 글 등의 활용방안을 고민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보조 교재에는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여러 여성 위인들이 등장한다. 이밖에도 교사들은 국어 과목의 ‘주장하는 글쓰기’ 시간에는 ‘뽀롱 뽀롱 뽀로로’ 등의 캐릭터 소개를 분석해 학생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의 성차별을 인식하도록 했다. 또 경제를 배운 고학년을 대상으로 ‘고용 게임’을 만들어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험해보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우리말 고운말’ 단원에서는 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며 많이 쓰는 여성 멸시적 욕설의 의미를 배우고 유튜브 영상 댓글에 달린 욕설들을 신고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선생님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교실 분위기도 차차 바뀌고 있다. “여자가 이걸 어떻게 해요”라며 한 발 물러서던 여학생들도 체육시간에 남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발야구 게임을 한다. ‘체육은 여학생이 당연히 남학생보다 못한다’, ‘여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앉아서 쉰다’ 등 체육수업에 반영되는 성편견에 대해 공부해보고 계속 발야구 연습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결과이다. 남학생들은 여성 혐오적 욕설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는, 자고로’ 등의 성편견을 담은 언어 사용이 많이 줄어든 것은 물론, 유튜브 혐오 댓글 신고하기를 배운 한 학생은 ‘(온라인에서)욕을 하고 싶었지만 누가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았다’는 내용의 일기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연구활동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을 개선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3.2. 페미니스트 교사로 사는 것
교사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페미니즘 교육, 젠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강릉시 명륜고등학교에 재직 중이신 최승범 선생님이 있다. 최승범 선생님은 스스로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앨라이(지지자·협력자)라고 표현한다. 최 선생님에게는 고등학생 때 마초 문화에 젖어 경쟁적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했던 전력이 있었다. 20대에 소속 학과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 교수가 파면당하고, 여성주의 학회에서 열렬히 활동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고, 중학생 때부터 페미니즘 영화평론가의 팬이었던 후배와 친해지는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다. 최 선생님은 자신처럼 특수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도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교사가 되고,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작년부터 남학생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학급문고 한 칸을 페미니즘 책으로 채웠다. 《이기적 섹스》(은하선),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변혜정 엮음,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김성애), 《악어 프로젝트》(맹슬기 옮김, 권김현영·이렌 자이링거·안-샤를로트 위송·길거리 성폭력 중단 단체·로랑 플륌 해제) 등의 책들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들이다. 특히 마지막 책은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 성폭력과 그에 따른 불쾌감, 공포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여성신문>을 교실에 비치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여성신문을 읽고 학생들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학기에 한두 시간 정도는 교과서에서 소재를 찾아 성평등 수업을 진행하신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 생원의 과거 회상 장면을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 <춘향전>의 변사또를 어떤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을 가지기도 했고, <사씨남정기>에서 가부장제가 사 씨와 교 씨의 삶에 미친 영향을 적어보는 글쓰기수업을 했다. ‘독서와 문법’에서는 여성, 청소년, 노인,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를 혐오하는 표현을 찾는 수업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
최 선생님은 체육대회, 소풍, 현장체험 학습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고 다니신다. 낯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고,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터부시 될수록 공공연한 발화가 어려울수록 ‘비가시화된 존재들의 가시화’는 요원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선생님이 이런 것들을 시도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생각이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 유의미한 변화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한 반에 많아야 두세 명 정도다.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학생들의 의식을 점령했고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선생님은 학생들과 각을 세워 논쟁을 하려하거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훈계를 하거나, 권위를 발휘해 특정 입장을 비호하거나 비판한다면 강한 거부감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 선생님에 의하면, 학생들이 성차별적인 주장이나 견해를 접했을 때 한 번 멈칫할 수 있을 정도, 즉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기존의 생각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까지가 교사의 몫인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독서 감상문을 올린 학생이 10명 넘게 있었는데, 책을 읽은 후 자신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꽤 많았다고 한다. 또한 처음 페미니즘 교육을 했을 때 ‘이게 뭐야’하는 분위기와 달리 다섯 달이 지나고 페미니즘 관련 글을 보여주었더니 다들 재미있게 읽으면서 남자들 욕도 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최 선생님 교육 방식에 대해 반발도 존재한다. 어떤 학생은 최 선생님에 대해 교원평가에서 ‘여자편 많이 들어 기분 나쁨’이라고 기재했다. 또한 동료 교사들은 그를 ‘되바라지고 제멋대로이며,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최 선생님에 대해 강원도교육청·강릉교육지원청에는 ‘지위를 남용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사상을 강요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 최 선생님은 작년 강원도교육청에 제출한 소명서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하기 어려운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먼저 살다 간 조상들, 다른 인종·장애인·성소수자·비인간 동물의 삶 또한 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관용과 다양성을 갖춘 너그럽고 자애로운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수업에 페미니즘 이슈를 종종 녹여내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최 선생님은 세상이 바뀌려면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성별 권력 구도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쪽은 남성이다.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더 내려놓아야 한다. 10대는 성인에 비해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편견이 적으며, 정의감이 강하다. 변화 가능성이 큰 만큼 개선의 여지가 많다. 교사가 새로운 시각, 다른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학생 스스로 깨쳐 길을 터나가는 경우가 많다. 최 선생님은 자신과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깨어 있는 남성, 따뜻하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어디 가서 ‘꼰대’나 ‘개저씨’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 선생님이 메갈쌤으로 불려도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참고>
박상준 기자, 「초등교실에서 싹트는 ‘여성혐오’」, 『한국일보』, 2017년 7월 22일자.
이재영 기자, 「“선생님, 김치녀세요?” 교사 60% '여성혐오 표현' 경험」, 『연합뉴스』, 2017년 7월 10일자.
평택여고의 페미니즘 자율동아리인 “MeForYou” 페이스북 페이지.
충주예성여자중학교 3학년 이다은 수습기자, 「<이달의 동아리> 충주예성여자중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외침’」,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건강한 언론, 월간 밥매거진』, 2017년 7월 10일자.
「고양외고 페미니즘 동아리 ‘다움’ 인터뷰」,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2017년 4월 27일자.
초등성평등연구회 블로그 자료실.
박소영 기자, 「“성평등 교육하니 女 자신감 늘고, 男 여혐 발언 줄었어요”」, 『한국일보』, 2017년 3월 29일자.
최미랑·심윤지 기자, 「“애들이 괜찮은 남성으로 자라줬으면”···페미니즘 가르치는 남자 교사 최승범씨」, 『경향신문』, 2017년 7월 10일자.
「'메갈쌤'을 자처하는 이유 [격월간 민들레] 남학교에서 펼치는 남교사의 젠더 교육」, 『프레시안』, 2017년 11월 18일자.
박현정 기자, 「“페미 싫은 남학생님들, 밤길 무서워 봤나요?”」, 『한겨레』, 2018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