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울타리를 넘어, 학교와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자

당근

 

들어가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는 90년대 이후 다시 페미니즘이 부흥하고 있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논쟁과 토론이 있어왔지만,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처음 페미니즘 교육이 화제가 된 것은 닷 페이스에서 진행한 최현희 교사의 인터뷰에서 부터였다. 최현희 교사는 인터뷰에서 운동장이 남자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는 것, 성차별적인 성적 사회화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성차별적 동화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페미니즘 교육이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인터뷰 이후, 최 교사는 메갈 교사라고 낙인찍혀 온갖 인신공격과 SNS 사찰, ‘아동학대라는 고발 등으로 뭇매를 받고 휴직까지 하게 된다. 그가 재직 중인 학교에 메갈 교사를 처벌해달라’ ‘교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라는 민원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교사를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해쉬태그 운동이 SNS에서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여성운동 진영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올해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유투브나 SNS를 통해서 배운 여성혐오적 어휘나 욕설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으로부터의 문제의식에서, 학생과 선생님 모두를 대상으로 한 페미니즘 교육이도입 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청원은, 20만 명을 넘겨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까지 얻어낸다.

이렇게 페미니즘 교육이 교육계와 여성운동 진영에서 화두가 되어, 그 필요성은 여러모로 충분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필요성을 넘어, 페미니즘 교육이 무엇인지, 페미니즘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페미니즘 교육은 학교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논의할 시점이다. 그를 통해서만 이 의제가 더 발전하여, 사회와 학교에서의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교육?

 

사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페미니스트임에도, 본인에게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의제는 다소 어색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본인이 대학생이라 학교 현장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현재에는 꼭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페미니즘이 현재의 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는가?

 첫 번째 문제의식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억압적인 사회의 일부이며 그 사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학교가, 페미니즘 교육 실시를 강제 받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어 설명 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권을 학교에서 교육하게 되었을 때에도, 노동권은 정말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교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대폭 축소되고 보수적으로 해석되며, 노동자들이 투쟁하여 세상을 바꿔온 역사는 지워진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운동은 이기적인 주장으로 그려지며, 노동자들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사회를 비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기존 사회의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때, 저항과 변혁을 고민하는 주체들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그 개념의 급진성은 은폐된다. 또한 제도는 그 개념과 사상의 사회적·구조적 맥락을 지운다. 페미니즘과 이퀄리즘이 언어의 의미상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큰 차이인 것은, 이퀄리즘은 여성들이 기원전부터 구조적으로 억압받고 통제되며 굴복되었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우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양성평등’(이퀄리즘과 동의어인)은 등장하나, 여성주의가 등장하지 않는 것에서도 이것이 잘 드러난다. 이 사회 제도권의 대표격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쉽게 말하면,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교육한다면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힘든 현실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진보시키려는 운동이다, 그러나 여성들만의 특수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어렵고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양성평등이 필요하다이상의 논의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이 포괄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임은 이것이 단순한 우려 이상임을 보여준다.

 

2) 페미니즘은 교육될 수 있는 것인가?

 두 번째 의문은 페미니즘을 가르친다고 해서 학생들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인식틀과 가치관이고, 그를 바탕으로 한 입장의 문제이다. 결국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여성 억압적인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느냐, 그를 거부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느냐 사이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성폭력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 수 있다. 기존 사회에서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나 돌리거나 가해자 개인의 일탈적 행동으로 설명되었다. 반성폭력운동과 페미니즘은 이를 뒤집어, 성폭력을 피해자가 아닌, 성차별적인 문화와 사회 구조의 문제로 설명해 냈다. 이때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설명 가운데 후자가 더 정합적이며 실제로 옳다(right)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고, 그로부터 변화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어떻게 세상을 설명할 것인지의 문제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 설명과 관점을 뒷받침하는 사회의 분위기, 실제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 그로부터 개인이 수혜자가 되거나 경쟁에서 탈락하는 메커니즘 등이 존재한다. 여성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관점, 그를 채택하는 개인과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단순히 학교나 미디어에서 그를 가르치고 세뇌시키기 때문을 넘어 그 관점대로 굴러가는 사회구조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수업하는 것만으로 학생이 그 입장을 채택할 것이라는 것은, 교육에 대한 과도한 기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과대평가된 교육의 가능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는 페미니즘을 교육해야 한다는 입장은, 문제점들에 있어 인식 개선 캠페인’, ‘인식 교육이라는 해결책이 가장 흔히 제안되는 것과 닿아있다. 현실을 바꾸는 운동이나 제도나 구조 자체에 대한 변혁이 요청되는 때에, 현실과 구조의 반영물인 개인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많은 경우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며 근본적인 해결은 놓치게 만든다.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많은 경우 고집이나 편견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현실에서 근거한 추론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친다고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인정하고 지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그들의 현실에서 페미니즘적 변화가 있을 때 페미니즘에 설득되기 마련이다.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의 합리적 핵심

 앞에서의 논의는 결국 교육을 넘어서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이 학교에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 교육을 요구하면서도, 그것의 내용이 비어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어린 학생들이 문제의식 없이 여성 혐오적 비속어를 쓰는 것을 보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청원 요지를 작성했다. 이 사회에서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적 설명과 교육으로써 페미니즘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교육의 내용보다,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스쿨 미투와 고발 운동에도 꿈쩍하지 않는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학교에 대한 변화를 요청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반드시 국가와 학교에서 승인되는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필요도 없고, 애초에 그럴 수도 없다. 학교에서의 페미니즘적 변화는 반드시 가르쳐지는교육일 필요도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적 맥락이 사라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온건한 내용일 필요도 없다.

이것은 무조건 수업의 바깥에서만 페미니즘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 교육이라는 강박이나 울타리에 갇히지 말자는 것이며 교육의 의미를 페미니즘을 통해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생활지도에 저항하는 퍼포먼스, 도덕과 교과 시간에 조별 토론에서의 하나의 논점, 권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도전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페미니즘 교육은 이 사회에서 교육이 정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학교에서 가르쳐질 것으로 인정받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교육의 내용 자체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혹은 기존의 교육이 배제하는 존재와 은폐하는 영역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더 많은 페미니즘적 실천을 해보자! - 실천과 방법론

 이미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또 청소년 활동가들이 열심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아래의 내용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식들이 어떤 식으로 현장에서 실천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싶어 적어본다.

 

1) 수업을 활용하기

교사에게는 수업이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말하게 하는 가장 좋은 시간일 것이다. 수업은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이 이미 많이 실천해온 영역이다.

계속 언급했듯이 페미니즘 교육의 제도화를 경계하는 것은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 속으로의 박제와, 수업시간과 교실로의 한정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업을 활용하는 것은 지식의 교수를 넘어, 페미니즘을 학생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생활교육이 될 필요가 있다. 수업에서 고민하고 토론된 것이 학생이 소속된 공동체와 학교 밖의 생활과 매개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수업의 형식이나 내용과 더불어 주의할 지점은 페미니즘 수업 한 번으로 학생들의 삶이 바뀔 거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수업은 학생이 지금껏 경험해온 세계에 대한 다른 설명,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입장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언급했듯 결국 페미니즘은 이 세계에서 어떤 입장을 선택할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 억압적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던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과도한 기대는 비현실적이고, 교사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2) 교사와 학생의 공동의 실천

학교에서 페미니즘적 실천은 크고 작게 계속되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운동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 안에서 페미니즘이 여전히 왜소하고 학교의 여러 압박으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이 힘을 모았을 때 비로소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모두가 주체가 되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해쉬태그 운동에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 동료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그를 잘 보여준다. 운동진영 내부에서도 주체로 서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구원해줄 선생님이 아니라, 운동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갈 동료와 길잡이인 것이다. 학교 동아리와 같은 공동체를 통해서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3) 학교의 현실로부터 시작하기

언급했듯 페미니즘을 자신의 인식틀과 가치관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은, 페미니즘이 자신의 현실을 설명하고 바꾸는 것일 때 시작된다. 그렇기에 학교의 당면한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그를 바꿔낼 때, 학교의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의 당면한 현실은 성폭력과의 싸움이다. 미투를 통해서 고발이 계속되고,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건과 피해자들은 은폐되며,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한정하여 처벌만이 이루어진다. 공동체 내부의 반성적 평가, 피해자의 회복과 복귀에는 관심이 없다. 이로부터 학교의 성폭력 해결 처리과정을 바꿔내어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학교에 가장 필요한 페미니즘적 실천일 것이다.

 

4) 학교로부터, 원인인 사회와 구조를 향하는 운동

한편으로는 학교 안에 갇히지 않고, 사회를 향한 고민과 실천도 필요하다. 성차별과 불평등한 구조의 원인은 학교를 넘어 사회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생활지도에 문제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성별고정관념이 단순히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입장을 넘어, 그를 지탱하는 구조, 혹은 그를 반영하는 사회문제 성별 임금격차나 가사노동의 문제 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교육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재정립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성차별적 내용에 반대하며, 대안적 설명을 제안하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에 대한 객관성, 합리성을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학교에서의 운동과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이 작업이 성과가 있으려면 학교 현장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운동이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가며

 글을 쓰는 내내 현장의 실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낙인찍히고 해고되기 일쑤인 상황에서, 페미니즘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운동의 새로운 틀을 고민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페미니즘의 이라도 수업시간에 한 번 꺼낼 수 있는 게 다행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미 현장에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실천해온 것들이 있는데,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질책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던 것은 교육과 페미니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때, 논의의 발전이 가능하고 학교에서의 운동이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글은 앞으로 학교에서 페미니즘적 실천을 하고 싶은 예비교사로서의 고민이기도 했다.

앞으로 페미니즘 교육과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더 많은 주체들과의 토론과 성찰에서 시작하여, 학교와 세상에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나가보자!

지금, 여기서 학교를 바꾸는 사람들

 

울트라 바이올렛, 말차라떼

 

1. 학생들이 이해하는 페미니즘

 

1.1. 교육현장에서 성차별 실태, 청소년의 여성 혐오 실태

 

 학교는 청소년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우고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생들은 가치관을 형성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시점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학교현장에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성차별적 언행, 젠더폭력, 특정 성 혐오는 초고등학교 학교 급을 가리지 않고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일상어가 되어버린 욕설과 성적 표현은 학교의 쉬는 시간만 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는 김치녀’, ‘꼴페미등의 여성 비하 표현, ‘니 애미등의 패드립(부모님을 욕하는 등의 패륜적 놀림말), ‘네 얼굴 실화냐’, ‘저게 여자애 허벅지냐등의 외모 비하 표현, ‘앙 기모띠’, ‘야마떼등의 일본어가 대표적이다. ‘기모띠(이이)’기분(좋아)’, ‘야마떼그만이라는 평범한 뜻을 가진 일본어이지만, 단어의 발원지가 일본 포르노라는 점 때문에 성적 맥락으로 통용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미친놈은 친구끼리 정겨운 대상에게 쓰는 친근함의 표현, ‘미친년은 매우 싫어하는 상대에게 하는 경멸의 말로 통하는데, 이는 특정 성에 대한 혐오가 담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표현에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요소가 짙게 베여있다. 인터넷을 통해 BJ와 같은 어른들이 쓰는 여성혐오 표현과 성적 표현을 배운 학생들은 이러한 단어들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습관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학교는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꼴이 되었다.

한편 여교사를 상대로 하는 젠더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지난해 7월 유치원과 초··고등학교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고등학교 교사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학교에서 여성혐오표현을 듣거나 접해보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혐오 표현을 한 사람(복수응답)으로는 남교사(194·48.5%)가 가장 많이 꼽혔으며, 남학생(18045.0%)은 그 뒤를 이었다. 그 내용으로는 외모나 몸매에 대한 품평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 또는 전해들은 경우, 음담패설과 성적욕설·농담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 또는 전해들은 경우, 회식 때 술을 따르거나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받은 경우, 포옹·손잡기 등 신체접촉을 억지로 당한 경우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에서의 성차별과 젠더폭력 피해 범위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에게까지 확대된다. 가해의 범위도 성인인 동료 교사뿐만 아니라 유치원, ··고등학교 학생들까지로 확대됨을 알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 청소년들의 여성혐오가 확산되고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한 것에는 문화적 요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학생들은 이전보다 더 쉽게 인터넷에서 정제되지 않은 부적절한 표현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의 인터넷 방송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여성 혐오, 성적 표현, 욕설 등을 사용하곤 한다. 또한, 이러한 인터넷 상의 유해 콘텐츠는 감시나 통제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다름 아닌 학교에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 인식과 감수성이 정립될 청소년기에 은연 중 흡수하는 성차별 경험은 여성혐오로 자랄지 모를 씨앗이 될 수 있다. 학교에서의 성평등 교육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1.2. 학생들 인터뷰

 

앞서 우리 청소년들이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페미니즘(feminism)’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생생한 답변을 얻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A군과 인천에 사는 B양을 인터뷰해보았다.

우선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무엇으로 알고 있는지 물었다. A군은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고 답했다. B양도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그를 위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인식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로는 두 명 모두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꼽았다. 특히 A군은 인터넷으로 엠마 왓슨의 연설에 대한 뉴스를 보고 페미니즘에 대한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A군이 언급한 엠마 왓슨의 연설은 현재 UN Goodwill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엠마 왓슨이 UN 양성평등 캠페인 “HeForShe”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한 연설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직접 겪는, 혹은 목격하는 성차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B양은 당연하게 여성 또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사상들이 있다며, “여자는 혹은 남자는 이래야 한다.”로 시작하는 모든 문장들에서 성차별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또한 교사로부터 받는 성차별의 예시로 과도한 복장규제를 언급했다. 아직도 일부학교에서는 야하다는 이유로 교복 안에 입는 티셔츠 색깔에 관여하거나 머리 묶는 모양에까지 관여해 지적하곤 하는데, 이는 옛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A군은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은 딱히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앞서 살펴본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한 학교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답변이다.

다음으로, 각자 재학 중인 학교에 페미니즘 동아리나 페미니즘 관련 활동이 있는지 물었다. 두 학생 모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그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지 물은 질문에도 딱히 활동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은 공통적이었다. 그 이유로는 다른 일로도 충분히 바쁘다는 점과, 그런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또래 사이에서 일반적이 않다는 점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평소에 성차별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는지 물었다. 여기서도 두 학생은 공통된 답변을 했다.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 등에서 관련된 내용을 볼 때가 아니면 딱히 생각할 기회는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이 짧은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성평등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과,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다루어 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적음과 더불어,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확대 필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덧붙여,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하여, 젠더에는 남성, 여성의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성라는 표현 사용을 지양하고 성평등으로 부르자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데 두 학생 모두 이러한 논의는 접해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현장에서 성고정관념과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해볼 기회를 보다 더 확대하고, 학교에서 페미니즘 이념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은연중에 가하고 있는 폭력을 마주해 인식하고 멈출 수 있을 것이다.

 

2.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

 

청소년들은 여성혐오에 노출되어 있으며 청소년 스스로도 여성혐오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페미니즘은 전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성차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잘못되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인식은 페미니즘 운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는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으로 스쿨미투운동과 교내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2.1. 스쿨미투운동

 

미투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학교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스쿨미투가 진행되고 있다. 스쿨미투란 초··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고발 운동이다. 주로 SNS를 통해 이루어지며, 현재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 교사들의 폭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관악구 소재 사립 중학교인 M 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10, 34살 유부남이었던 생물 교사 A 씨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피해자 이 씨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 자신의 차 조수석에 태워 몸을 더듬거나 자취방으로 불러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고, 카톡으로 알몸 사진을 보내달라’, ‘어디까지 허락해 줄 거냐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졸업생들에 따르면 그는 학생들에게 처녀는 흰색 속옷을 입어야 첫날밤이 황홀하다거나 생물 수업 중 생리 중 관계를 맺으면 임신을 하지 않으니 해도 된다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A 씨는 체벌로도 악명이 높았다. M 중학교로 오게 된 이유도 전에 재직 중이던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폭행해 머리가 찢어져 전근한 것이었다.

이후 이 씨는 20183A 교사에게 당시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것에 대해 공개사과와 자수를 요구했다. A 교사가 자수하지 않자 이 씨는 본인 사진과 함께 실명으로 페이스북에 해당 사실을 폭로했다.

A 교사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현재 출근정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A 교사에 대한 고발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트위터에는 ‘M 중학교 성폭행 공론화라는 계정이 생겨 추가 피해자들의 진술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교육청은 312M 중학교에 대해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에 나섰고, 가해 교사의 직위해제를 요청했다. 교사의 직위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교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교사는 사직서를 쓴 상태지만, M 중학교는 학교 홈페이지 한 구석에 사과문 한 장만 올려놓았을 뿐 A 교사의 직위해제는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피해자의 고소, 고발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고소장을 쓰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아주 침착하게 써야 하는 상황인데 학교가 또 피해자 탓을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4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정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했지만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검찰이 기소했지만 가해자는 아직 교편을 잡고 있는 건 물론이고 한 학급의 담임까지 맡고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

서울시 노원구 소재의 Y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재학시절 남교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를 알게 된 재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포스트잇을 이어 ‘#ME TOO’ ‘#WITH YOU’, ‘We can do anything’ 등의 문구를 만들어 학교 창문에 붙여 화제가 됐다. 재학생들은 교내 곳곳에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해방 00’, ‘NEVER FORGET’ 등 교사의 성폭력 행위에 대한 분노와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 붙였다. 재학생들의 이 같은 행동에 학교 측은 교내 방송을 통해 포스트잇을 떼라고 지시하는 등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일부 교사는 학생들에게 밥 같이 먹는 한 가족끼리 왜 그러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학생들은 SNS를 통해 지금껏 교사들의 성추행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가 항의하고 신고해도 학교 측이 은폐하고 모른 척 해왔다면서 학교 측은 어떻게든 덮으려고만 하고, 피해를 본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지장이 갈까봐 결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올해 3월 서울시 양천구 소재 J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기간제 교사는 남교사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이 알려지자 문제의 K 교사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자체 파악한 재학생 피해자만 50여명에 이르렀다. 8년 전에도 교사와 학생들이 K 교사에게 비슷한 일을 당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징계는 없었다. 현재 학교 측은 해당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했고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8년 전에는 묵인됐던 일이 학생들의 고발이 잇달아 나오고 공론화가 되자 이제야 조치가 취해지기 시작했다.

S 고등학교에서도 교감 및 교사들이 학생들을 성희롱하고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미투 폭로가 나왔다. 2018324SNS에 고발이 잇따라 올라왔고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들도 미투운동에 가세해 학교와 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섰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페이스북에는 스쿨미투라는 페이지가 개설되어 여러 학생과 교사들의 고발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 2월에 개설되었지만 벌써 30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고 90여개의 글들이 게시되었다. 교육부 성폭력신고센터에는 접수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물밀듯이 폭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익명의 소리이다.

스쿨미투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학교의 상황은 쉽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가해 교사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의 신속한 대응과 교사 대상 성교육, 성폭력 예방책 등의 대책 마련을 확실하게 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질서가 분명한 상황에서 애초에 학생과 교사는 평등하지 못하다. 때문에 학생들은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교육부 홈페이지 성폭력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20152, 지난해에는 단 7건에 불과하다. 많은 교사들은 애초에 학생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들을 폭언을 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고, 성폭력을 가하고, 이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도 무의식중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교사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자보를 쓰거나 공론화 시키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매우 수직적이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며, 교사는 학생들의 대학 입시와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 교사에게 잘못보이면 수행평가 점수를 잘 못 받는다거나,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다거나,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학생들은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뚜렷하기에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더욱 일어나기 쉽고, 학생들은 교사에게 문제제기하거나 대항하는데 망설임을 느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Y 고등학교의 교사들의 학생들의 미투 운동을 방해하고 방임하는 행동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들 듯이 말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스쿨미투가 필요하다. 교사 성폭력 문제를 학생 개인에게 떠맡길 수는 없다. 피해 학생들을 혼자 고립되게 놔두어서는 안 되며 다수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Y 고등학교 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계속되어온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 학교를 다닐, 계속 다닐 친구들과 후배들을 위해 미투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학생들의 스쿨미투 운동은 억압된 상황에서 잊혀진 피해자를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고,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고 있다. 많은 학생들의 목소리와 관심과 연대가 학교 성폭력 사건을 주목하게 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가능성을 만든다.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안전하지 못한 학교이기 때문에 스쿨미투는 계속해서 확산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교사와 학생 간의 성폭력은 일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교사와 학생간의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동등하게 만들고, 위계적인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개선하고, 학생 인권을 되찾아 학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제대로 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2.2 청소년 페미니즘 동아리

 

청소년들은 또한 자율적으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평택여자고등학교의 ‘MeForYou’, 충주예성여자중학교의 외침’, 고양외국어고등학교의 다움등이 그것이다.


<MeForYou> 평택여고의 페미니즘 자율동아리인 “MeForYou”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과 함께 실천적 활동을 목표로 한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행동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페미니즘 활동뿐만 아니라 청소년 인권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MeForYou’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라는 전국의 청소년·인권·교육·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연대체에 함께하여 청소년 참정권 보장,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평택 청소년 연합축제 청룡제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국회톡톡에 학생 인권법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1. 학생들의 개성을 표현할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해주세요. 2. 사립학교 내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신고자를 보호하고 신속히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주세요.” 이외에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 에코백과 엽서텀블벅 프로젝트와 세월호 뱃지 프로젝트, SNS를 통한 성차별, 페미니즘 이슈 공유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외침> 충주예성여자중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외침은 작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동아리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부원들과 지도교사 Y 선생님으로 이루어져있다. 여성인권에 대한 포스터 그리기, 여성혐오 단어 목록 만들기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한다. ‘외침이라는 동아리 이름은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자, 약자들의 외침을 듣고, 같이 외쳐주겠다는 의미이다. 부원들 모두가 감명 깊게 보았던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OST ‘외침의 영향도 있다.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진행할 페미니즘 활동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침이 개설된 후 초반에는 할 활동이 없어서 헤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부원들끼리라도 실천할 작은 운동을 떠올리다가 자신들의 학교 이름인 예성여자중학교예성중학교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교 이름에는 보통 여학교에만 여자라는 말이 붙는다. 부원들 사이에서는 왜 여학생들만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걸까?’, ‘왜 남자학교라는 이름의 학교는 없을까?’, ‘모두가 같은 학생인데 성별이 중요할까?’, ‘성별에 관계없이 학교 이름을 지을 수는 없을까?’, ‘여학생은 평범한 학생이 아니기에 따로 분류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들이 오갔다. ‘외침의 부원들은 자신들부터 학교 이름을 예성중학교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소수의 작은 노력이 학교 전체에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외침의 부원들은 바라고 있다.

외침은 또한 방학 때마다 나눠주는 책 추천 유인물에 페미니즘 도서를 추가하고, ‘외침전용 SNS 계정을 만들어 부원들과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토론한 결과나 교내에 부착할 포스터들을 게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침의 부장인 충주예성중학교 3학년 이다은 학생은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건강한 언론, 월간 밥매거진에서 진행한 자문자답 인터뷰를 했는데, 그에 의하면 이다은 학생이 동아리를 만들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여학생들만 있는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남성이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선생님들이 외침부원들을 싫어하거나 활동하는 모습을 좋지 않게 볼까봐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그런 시선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생긴 변화로는 주변 환경에 더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다들 웃고 넘어가는 성차별적인 유머에 함께 웃지 못하고, 남동생과 다른 대우를 받을 때마다 부당함을 표시하게 되었다. 남들이 그를 바라볼 때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한다. 성별을 떠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길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다은 학생은 외침이 모두에게 하고픈 말을 전했다. “아직도 사람들이 모르는 일상 속 여성 혐오들은 수없이 많다. ‘여성스럽지 않다’, ‘여자애가 그러고도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옷을 잘못 입어서 성폭력을 당한 것 아니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등의 흔히 쓰고 듣는 이 말들이 성차별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런 말의 사용을 줄이고, 가치관과 생각에 변화를 가져와야한다. 한마디의 변화가 특정 단체와 집단에 언젠가 큰 파급력을 줄 것이라 우리는 믿는다. 그 전 시간들이 그랬듯이 쉽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동아리 이름답게 우리는 꾸준히 외칠 것이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 그 날까지.”


<다움> 마지막으로 소개할 고양외고 동아리 다움에 대해서는 청소년 신문 요즘것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참고하였다. ‘나다운 너다운 페미니즘을 하고 싶다는 고양외고 페미니즘 동아리 다움은 현재는 졸업한 3학년 학생이 페미니즘 관련 주제로 강연을 한 것에 감명을 받은 현 부장에 의해 20168월에 개설되었다. ‘다움은 청소년인 페미니스트는 혼자서 목소리 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학교에 흩어져있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연대하여 페미니즘을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교내의 다른 친구들에게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서, 페미니즘 인식 개선을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으로는 각자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의견 나누기, 페이스북에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려서 동아리 홍보하기, ‘초심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의 강연회와 부스 활동 등이 있었다.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에 대한 주변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던 친구가 다움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 같이 스태프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른 학우들이 감명을 받았다며 말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감을 가진 부류 역시 있었다. 예를 들어 포스터를 붙이고 있으면 근처에서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면서 웃고, “페미니스트들 예민하지 않나하고 들리게끔 말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분들이 더 많아서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한다.

다움이 학교 동아리이기 때문에 좋은 점으로는 학교라는 장소의 특성상 학생들과 만나기가 쉽다는 점을 들었다. 감독하는 교사들의 눈을 피해서 점심시간이나 야간 자율시간에 짬을 내서 만날 수 있고, 친구들 간의 친분으로 페미니즘을 몰랐던 친구에게도 홍보가 용이하다고 한다. 반면에 학교 동아리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나 제약 또한 존재한다. ‘다움동아리는 학교 소속이다 보니 학교의 규정과 틀에 얽매여있을 때가 많았다. 동아리 모임을 가지려고 할 때 학교 행사에 따라서 날짜가 불확실하게 바뀔 때가 있다. 또한 남학생들의 단톡방에서 다움에 대한 험담이 오고 간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안 좋은 소문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소문은 교내에서 매우 빨리 퍼지기 때문에 곤란함을 겪었다.

다움의 부원인 이서은 학생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어린 네가 뭘 안다고 그런 걸 해?’, ‘너희는 아직 학생이니까 페미니즘을 하더라도 이런 건 건드리면 안 돼와 같은 직접적인 말이나 그런 뉘앙스가 담긴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교사들이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청소년(학생)의 입장에서 교사의 그런 발언에 대해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입시나 진학문제에 있어서 교사의 영향력이 크므로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은 어른들이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안 그래도 어린취급을 받는 청소년의 위치에 있는데,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주목받지 못하는여성의 위치에 있기까지 하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건 안 된다’, ‘저건 위험하다는 식으로 제한 받는 것이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의 페미니즘 활동은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페미니즘이 단지 특정 세대의 것만이 아니며, 청소년 역시 페미니즘 담론을 형성하고, 자신들만의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어내는 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이 무지하고, 미숙하고, 비성숙한 존재로서 간주되는 것은 굉장히 단편적인 시각이며 단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멋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아닌, 연대의 대상, 함께해야 할 존재이다.

 

3. 교사들의 페미니즘 운동

 

앞서 살펴본 것은 스쿨미투운동과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학교의 또 다른 주체인 교사들의 입장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교사들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서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활동과 실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고 계시는 최승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3.1.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의 어떤 집단적인 페미니즘 운동은 아직 그다지 세력이 넓지 않다. 따라서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이 분야의 좋은 선례라고 할 수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지난 20165월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단체이다. 사건 직후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 현상에 관한 논쟁이 활발해졌고, 초등학생들의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가운데 학교교육에서는 오히려 이를 확대재생산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에 서한솔 선생님 등 10여명의 초등교사는 그해 6초등성평등연구회를 결성하였고 현재까지 정기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는 성별 이분법과 성차별을 강화하는 학교의 다양한 관행과 제도를 비판한다. 연구회에서는 남학생은 출석번호 1, 여학생은 출석번호 51번부터 시작하는 학교의 관행이나, 줄을 설 때 남녀가 한 줄로 각각 나누어 서는 관행, 학교에서 준비물이나 기념품을 제공할 때 남학생은 파란색, 여학생은 분홍색 물품을 주는 경우 등에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학생 등굣길 안전을 위한 봉사활동이 녹색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보호자 연락이 필요할 때 어머니에게만 연락하는 것도 마치 양육과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다는 듯이 여기게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의 삽화에서는 국회의원, 기업가, 농부 등은 남성으로, 미용사, 계산원, 가정주부 등은 여성으로 묘사함으로써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고, 존경할만한 위인들 중 여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외에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지문과 삽화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이 바라본 학교의 현행 성평등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초등 4학년 2학기 사회 2단원 사회 변화와 우리 생활 단원에서 성평등을 다루고 있으나 양적, 질적으로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성차별의 구조적인 차원을 다루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 양성 및 연수 과정에 성평등 교육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로 제시되었다. 교육대학교 교육과정에 성평등 교육, 여성학 관련 강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회의 교사들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에서는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였다. 정해진 학습목표에 맞춰 보조 교재로 성인지적 관점을 담은 글 등의 활용방안을 고민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보조 교재에는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여러 여성 위인들이 등장한다. 이밖에도 교사들은 국어 과목의 주장하는 글쓰기시간에는 뽀롱 뽀롱 뽀로로등의 캐릭터 소개를 분석해 학생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의 성차별을 인식하도록 했다. 또 경제를 배운 고학년을 대상으로 고용 게임을 만들어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험해보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우리말 고운말단원에서는 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며 많이 쓰는 여성 멸시적 욕설의 의미를 배우고 유튜브 영상 댓글에 달린 욕설들을 신고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선생님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교실 분위기도 차차 바뀌고 있다. “여자가 이걸 어떻게 해요라며 한 발 물러서던 여학생들도 체육시간에 남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발야구 게임을 한다. ‘체육은 여학생이 당연히 남학생보다 못한다’, ‘여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앉아서 쉰다등 체육수업에 반영되는 성편견에 대해 공부해보고 계속 발야구 연습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결과이다. 남학생들은 여성 혐오적 욕설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는, 자고로등의 성편견을 담은 언어 사용이 많이 줄어든 것은 물론, 유튜브 혐오 댓글 신고하기를 배운 한 학생은 ‘(온라인에서)욕을 하고 싶었지만 누가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았다는 내용의 일기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연구활동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을 개선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3.2. 페미니스트 교사로 사는 것

 

교사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페미니즘 교육, 젠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강릉시 명륜고등학교에 재직 중이신 최승범 선생님이 있다. 최승범 선생님은 스스로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앨라이(지지자·협력자)라고 표현한다. 최 선생님에게는 고등학생 때 마초 문화에 젖어 경쟁적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했던 전력이 있었다. 20대에 소속 학과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 교수가 파면당하고, 여성주의 학회에서 열렬히 활동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고, 중학생 때부터 페미니즘 영화평론가의 팬이었던 후배와 친해지는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다. 최 선생님은 자신처럼 특수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도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교사가 되고,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작년부터 남학생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학급문고 한 칸을 페미니즘 책으로 채웠다. 이기적 섹스(은하선),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변혜정 엮음,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김성애), 악어 프로젝트(맹슬기 옮김, 권김현영·이렌 자이링거·-샤를로트 위송·길거리 성폭력 중단 단체·로랑 플륌 해제) 등의 책들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들이다. 특히 마지막 책은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 성폭력과 그에 따른 불쾌감, 공포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여성신문>을 교실에 비치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여성신문을 읽고 학생들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학기에 한두 시간 정도는 교과서에서 소재를 찾아 성평등 수업을 진행하신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 생원의 과거 회상 장면을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 <춘향전>의 변사또를 어떤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을 가지기도 했고, <사씨남정기>에서 가부장제가 사 씨와 교 씨의 삶에 미친 영향을 적어보는 글쓰기수업을 했다. ‘독서와 문법에서는 여성, 청소년, 노인,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를 혐오하는 표현을 찾는 수업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

최 선생님은 체육대회, 소풍, 현장체험 학습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고 다니신다. 낯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고,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터부시 될수록 공공연한 발화가 어려울수록 비가시화된 존재들의 가시화는 요원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선생님이 이런 것들을 시도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생각이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 유의미한 변화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한 반에 많아야 두세 명 정도다.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학생들의 의식을 점령했고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선생님은 학생들과 각을 세워 논쟁을 하려하거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훈계를 하거나, 권위를 발휘해 특정 입장을 비호하거나 비판한다면 강한 거부감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 선생님에 의하면, 학생들이 성차별적인 주장이나 견해를 접했을 때 한 번 멈칫할 수 있을 정도, 즉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기존의 생각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까지가 교사의 몫인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독서 감상문을 올린 학생이 10명 넘게 있었는데, 책을 읽은 후 자신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꽤 많았다고 한다. 또한 처음 페미니즘 교육을 했을 때 이게 뭐야하는 분위기와 달리 다섯 달이 지나고 페미니즘 관련 글을 보여주었더니 다들 재미있게 읽으면서 남자들 욕도 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최 선생님 교육 방식에 대해 반발도 존재한다. 어떤 학생은 최 선생님에 대해 교원평가에서 여자편 많이 들어 기분 나쁨이라고 기재했다. 또한 동료 교사들은 그를 되바라지고 제멋대로이며, 말 안 통하는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최 선생님에 대해 강원도교육청·강릉교육지원청에는 지위를 남용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사상을 강요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 최 선생님은 작년 강원도교육청에 제출한 소명서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하기 어려운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먼저 살다 간 조상들, 다른 인종·장애인·성소수자·비인간 동물의 삶 또한 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관용과 다양성을 갖춘 너그럽고 자애로운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수업에 페미니즘 이슈를 종종 녹여내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최 선생님은 세상이 바뀌려면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성별 권력 구도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쪽은 남성이다.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더 내려놓아야 한다. 10대는 성인에 비해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편견이 적으며, 정의감이 강하다. 변화 가능성이 큰 만큼 개선의 여지가 많다. 교사가 새로운 시각, 다른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학생 스스로 깨쳐 길을 터나가는 경우가 많다. 최 선생님은 자신과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깨어 있는 남성, 따뜻하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어디 가서 꼰대개저씨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 선생님이 메갈쌤으로 불려도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참고>

박상준 기자, 초등교실에서 싹트는 여성혐오, 한국일보, 2017722일자.

이재영 기자, 선생님, 김치녀세요?” 교사 60% '여성혐오 표현' 경험, 연합뉴스, 2017710일자.

평택여고의 페미니즘 자율동아리인 “MeForYou” 페이스북 페이지.

충주예성여자중학교 3학년 이다은 수습기자, <이달의 동아리> 충주예성여자중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외침,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건강한 언론, 월간 밥매거진, 2017710일자.

고양외고 페미니즘 동아리 다움인터뷰,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2017427일자.

초등성평등연구회 블로그 자료실.

박소영 기자, 성평등 교육하니 자신감 늘고, 여혐 발언 줄었어요, 한국일보, 2017329일자.

최미랑·심윤지 기자, 애들이 괜찮은 남성으로 자라줬으면”···페미니즘 가르치는 남자 교사 최승범씨, 경향신문, 2017710일자.

'메갈쌤'을 자처하는 이유 [격월간 민들레] 남학교에서 펼치는 남교사의 젠더 교육, 프레시안, 20171118일자.

박현정 기자, 페미 싫은 남학생님들, 밤길 무서워 봤나요?”, 한겨레, 201857일자.

성차별 가르치는 학교 : 지금, 여기의 현주소

그래놀라

 


성차별 가르치는 학교?!


한국여성민우회의 ‘2017 성차별 보고서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차별 영역 중 3위가 가족관계와 운전, 대중교통 분야를 뒤이어 학교가 3위를 기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회로 발을 내딛기 전에 바람직한 성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 장이자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배경이 되는 학교언제나 옳고 정상적인곳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여겨지고 감히 학생들이 그 반대편에서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환상 속에서 학생들을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

성의 구분에 대한 인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입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과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겉보기로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었다. 성격도 생각도 너무나 다른 아이들이었는데 들고 다니는 물건들의 색깔은 성별에 따라서 극명하게 구분되는 현상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마치 누군가 여자는 이것, 남자는 이것이라고 정해준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타켓으로 만들어진 초콜릿과 문구들의 포장의 색은 분홍색 또는 파란색. 선택권은 두 가지로 주어진다. 교육용 악기 리듬세트의 삽화를 살펴보면 분홍색에는 꽃을 들고 있는 곰 그림이, 파란색에는 비행기 앞에 서 있는 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심지어 초콜릿은 여아용, 남아용으로 아예 지정되어 있다.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강요하며 폭력적으로 성별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남자아이가 분홍색 초콜릿을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인가) 사실 제품들을 명시적으로 구분한 것은 각 성별에 대한 고정된 선호를 조장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제품의 주 고객 대상인 유아 및 아동들이 이미 이른 시기에 성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은연중 주입받은 성적 고정관념과 성인식들은 아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들을 학습하기 시작한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담은 교육과정의 미리 짜여진 판에 한 발 내딛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과서를 바탕으로 학습을 한다. 그런데 언제나 바람직하고 옳을 것으로 믿고 있는 교과서가 오히려 잘못된 성 인지적 관점을 배경으로 저술되어 있다면,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할 것과 앞으로 마주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교육을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일까.

그동안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비판 없이 읽어내려가던 교과서를 살펴보면 불편한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에 실린 그림은 과거와 오늘날 가사노동을 비교 설명하며 노동의 주체를 모두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역할과 관련된 담론에서 오랫동안 지적받아 온 부분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여성에게 가사의 일을 떠맡기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고 교과서에도 역시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반영되어 있었다. 또한 스포츠와 체육이 어느 순간부터 남학생의 전유물이 되기 시작한 현상과 체육은 남자들이 잘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반영된 내용도 찾을 수 있었다. 이는 자칫하면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은 남성에게, 지지하고 수용하는 소극적인 것은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불러올 수도 있고 결국 여학생들을 체육과 스포츠라는 땀을 흘리게 하는, 그래서 조신하고 깨끗한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무너뜨릴 수 있는것에서 소외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다른 영역 예를 들면, 성욕에 대한 담론에서도 여성은 성욕을 억제해야 하고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되는 소외와도 함께 이해될 수 있다.

한편 게임이나 야한 동영상에 중독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는 남학생이 주로 묘사된다. 비교적 충동적이고 절제하지 못한다는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된 삽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배후에는 남성은 어떤 성이나 중독에 대한 절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이 믿고 아이들을 맡긴 교육의 현장에서는 불편한 성인식과 고정관념이 깔린 교육 자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서운 점은 이러한 경향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라 매우 익숙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입되는 사회의 억압을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스펀지처럼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잘못된 성역할에 대한 표현뿐만 아니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슬픈 표정으로 걸어가는 묘사로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가운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 미혼모를 부정적이고 동정적인관점을 강화시킬 수 있고 책임감 있고 강한 여성으로서의 미혼모의 인식을 저해하고 결국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한편 교과서에서 다룰 필요성 있는 주제들이 여전히 없다는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다양한 국적, 피부색, 정체성 등 단면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이제는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다양한 개인들이 존중받아야 마땅한 다문화 사회에서 아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이해와 공감의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과서에서는 다양한 성적지향과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는 매우 한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있어봤자 윤리과나 사회과 교과서 등에서 이들에 대한 간단한 관점 소개 정도로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을 가질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현실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한다면 아이들이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수월하진 않을 것이다. 보수 종교단체나 혐오 세력들의 극단적인 반발로 인해 이러한 내용을 다루기 민감한 것은 이해하지만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기존의 교육은 결국은 아이들의 눈을 가려버릴 것이고 오히려 아이들의 성숙하고 다양한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성교육의 현주소

이러한 고정관념과 잘못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는 교육부의 성교육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를 꼽을 수 있다. 2015년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사실 표준안 자체는 매우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교사용 지도서 등 교육자료에는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자들은 무드에 약하고 남자들은 누드에 약하다.’는 구시대적인 글부터 옷차림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활동 내용이남녀 뇌구조 등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삽화까지, 6억을 들였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내용들이 풍부해서 이걸 교육을 위해 만들었는지 유머를 위해 만들었는지 고민이 들게 만든다. 차라리 이것들이 잘못된 이제까지의 고정된 성인식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내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놀랍게도 모두 교육부가 옳다고 규정한 것들이다.

이밖에도 성폭행의 범위를 성기를 강제로 피해자의 생식기에 삽입하는 행위로 매우 좁게 설정하고 있었고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성폭력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도 평소 우유부단한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대답으로 일면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보이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강화하고 예방을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교육의 가장 총체적인 구성과 본질적인 바탕을 만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서 학생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면, 먼저 교육의 기본을 세우는 교육부와 정책 결정자들이 먼저 올바른 인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표준안 교육자료를 보면 교육부에서 솔선수범해서 잘못된 성인식과 고정관념을 양성하고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학생들이 이런 가이드(표준안) 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인식을 갖게 될 것인가. 시민단체나 전문 인력에게 자문이라도 구했다면 이러한 결과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6억이라는 큰 돈은 어느 부분에 쓰였는지 의문이 든다.

다행히 잇따른 비판으로 결국 교육부는 이를 내년 상반기까지 수정,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성적지향과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배제하는 태도를 일관하던 것에서 성폭력 대응 차원을 넘어 인권보장, 성평등 등 더 넓은 영역에서 보완하겠다는 태도로 바꾼 점은 다행이지만 이제까지 비판을 받은 이 성교육 가이드 라인(표준안)도 몇 차례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인 관심으로 여기에 대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음을....

착잡한 교육현장의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와 교육부의 잘못된 성인지적 태도와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성별 간 부정의와 인권침해를 낳는 현실에 대해 고발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이 있다. 경기도 예고 학생들은 사례집 여기를 출간했는데 이는 성차별·성희롱 막말, 혐오 발언, 외모차별 등 인권이 침해되었던 자신들의 경험을 담아 인권 침해 재발을 예방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현재 이 책의 저자인 정진아 학생은 졸업생으로 자신이 재학 중일 당시 학교에서 있었던 교사들의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성추행에 대한 실태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되자 재학생 및 졸업생들과 협력해 이를 글로 남기고 책으로 제작했다. 비록 교육청에서는 경고 수준으로 처리가 되었고 학교 측의 불허로 책 배포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학교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서 큰 용기로 고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한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등에 참여해 더운 여름 강제로 복장 규제를 당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청소년과 이러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등 교육 내 성차별과 권력 불평등한 관계를 타파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여성민우회와 같은 크고 작은 단체들이 있다. 이전부터 태동하던 이러한 싸움들은 미투 운동과 함께 불붙듯이 번져갔으며 우리 사회의 변하지 않았던 한 단면을 바꾸기 위해 지금도 목소리 높여 투쟁하고 있다.

한편 최현희 선생님과 같이 아이들이 떡잎부터 올바른 성 인식을 가지도록 교육하고자 노력하는 교육자들의 존재도 희망적이다. 그녀는 경향신문에서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시리즈로 글을 썼고 개인 SNS활동 등을 통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교사라는 직분을 가졌기에 그녀는 더욱 목소리 높여 진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자 자기 자신조차 희생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 내용과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논란이 벌어져 일부 사이트에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신상까지 털어가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다. 거기다가 함께 교육을 위해 협업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학부모들까지 합세해 최현희 선생님을 끌어내리려고 하고 심지어 당연히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한 학부모단체는 검찰에 고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의 올바른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교사로서 이에 물러서지 않았고 여전히 페미니즘의 건재함과 지속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특정 성별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개인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도록 미디어, 가정, 광고 등의 성역할 강요와 억압에서 자유로운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성차별과 성역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고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끊어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해낼 역량이 없다. 오히려 위계적인 성별 이분법과 사회적인 성별화를 훨씬 더 공고하게 내면화하는 데 충실히 기능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과 성의 권력과 관련된 문제는 예전부터 논의가 있긴 했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한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임이 인정되고 있다. 그들의 용기와 아픔에 공감하고 흘린 눈물과 고통이 보상받을 수 있길 바란다.

 

  

이번 호를 펴내며

 

<편집후기>

 

딸기맥주

 

 편집장이라는 자리를 얼떨결에 맡게 된 후 두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지각했던 회의 자리에서 날치기(?ㅎㅎ)로 결정되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이제 좀 아무 직책도 맡지 않고 쉬어봐야지 하던 차에 맡게 된 일이라서 초반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교육저널> 자체가 처음인 사람에게 덜컥 편집장을 맡기다니 구성원들은 나를 뭘 믿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도 떠 다녔구요.

 

 하지만 딱히 제가 '잘해야 하는' 일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호 주제들이 정해진 이후, 톡방에는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기사링크들과 자료들이 공유되었습니다. 과제처럼 기한 마감 직전에 허겁지겁 뱉어내는 글이 아니라, 매일매일 밥을 먹듯 꼭꼭 씹고 소화시켜서 틔워내는 글들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 회의에서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면서, 각자의 무늬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얽혀가는 글을 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이삿짐을 싸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버릴 것, 가져갈 것을 끊임없이 골라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낑낑대며 짐을 꾸리고 짊어져야만 비로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으니까요.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생활 속에서도 기꺼이 이 지난한 과정에 함께해준 교널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번 호의 제목은 <위아래 없는 학교를 위하여>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위아래'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이슈가 된 재벌들의 갑질, 수많은 권력자들의 성폭력, 가깝게는 바로 이 서울대학교에서의 H교수 사태까지. 부당한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는 인간들을 보며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하곤 합니다. 자신이 ''에 있으니 '아랫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저 오만함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경악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아래'에 두고 있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나요? 이제 청소년에서 벗어났다고, 청소년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으로 보고 있진 않나요? 학생을 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만 보고 있진 않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도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기가 힘듭니다. 내 주변 어디에나 있는 이 '위아래'의 권력관계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육도, 교육공간이라는 학교도 사회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해온 교육은 놀랍도록 '위아래'를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조차도 이런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젖어들기가 쉽습니다. 교사들은 학생의 ''에 서려고 하고 학생들이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아직 너희들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도 아마 교사일 것입니다.

 

 때로 학교는 사회의 권력관계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교육'을 통해 확대하고, 재생산하기도 합니다.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 성소수자는 '없는' 존재로 교과서에서, 수업에서 그려집니다. 교과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에게 "살이 드러나서 남학생들이 공부에 집중을 못한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복장단속이라든가, "동성애자들은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가져야한다"고 말하는 생활지도 속에서 수많은 '위아래'들은 진실로 여겨지고, 고착화되고, 다시 사회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교육저널은 이번 호에서 특집과 기획으로 청소년 참정권과 학교에서의 페미니즘을 다루며, 우리 안의 '꼰대의식'을 되돌아보고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평등의 확대재생산을 비판해보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학교가 사회 그 자체를 닮아있기 때문에, 사회의 구조가 그대로 있는데 학교만 변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 물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회에서의 성차별이 변하지 않고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들이 어디에나 깔려있을 때, 청소년이 2등시민으로 취급당할 때, '위아래' 없는 학교란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투운동'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듯, 한 송곳이 구멍을 내면 그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단단하고 복잡하고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구조는 언제나 인간들에 의해 바뀌어왔다는 것을, 변화는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이번 호 <위아래 없는 학교를 위하여>는 사실, 그래도 학교 정도는 바꿀 수 있다 혹은 학교만이라도 바꿔보자는 선언은 아닙니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 세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교를 바꾸자는 어쩌면 너무 거창한 (!)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는 거창하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거창하진 않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한 발로 '꼰대'되지 않고 학생을 동료로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보면서, 글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한 발이든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요.


 <교육저널>이라는 공동체에서 복작복작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이 글들은 독자 여러분이 있을 때 비로소 태어나는 것임을 압니다. 언제나 글이 가닿을 곳이 되어주셔서, <교육저널>이 아직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있음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육저널>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학생회관 619호에서, 딸기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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