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를 펴내며

 

<편집후기>

 

딸기맥주

 

 편집장이라는 자리를 얼떨결에 맡게 된 후 두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지각했던 회의 자리에서 날치기(?ㅎㅎ)로 결정되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이제 좀 아무 직책도 맡지 않고 쉬어봐야지 하던 차에 맡게 된 일이라서 초반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교육저널> 자체가 처음인 사람에게 덜컥 편집장을 맡기다니 구성원들은 나를 뭘 믿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도 떠 다녔구요.

 

 하지만 딱히 제가 '잘해야 하는' 일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호 주제들이 정해진 이후, 톡방에는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기사링크들과 자료들이 공유되었습니다. 과제처럼 기한 마감 직전에 허겁지겁 뱉어내는 글이 아니라, 매일매일 밥을 먹듯 꼭꼭 씹고 소화시켜서 틔워내는 글들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 회의에서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면서, 각자의 무늬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얽혀가는 글을 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이삿짐을 싸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버릴 것, 가져갈 것을 끊임없이 골라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낑낑대며 짐을 꾸리고 짊어져야만 비로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으니까요.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생활 속에서도 기꺼이 이 지난한 과정에 함께해준 교널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번 호의 제목은 <위아래 없는 학교를 위하여>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위아래'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이슈가 된 재벌들의 갑질, 수많은 권력자들의 성폭력, 가깝게는 바로 이 서울대학교에서의 H교수 사태까지. 부당한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는 인간들을 보며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하곤 합니다. 자신이 ''에 있으니 '아랫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저 오만함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경악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아래'에 두고 있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나요? 이제 청소년에서 벗어났다고, 청소년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으로 보고 있진 않나요? 학생을 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만 보고 있진 않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도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기가 힘듭니다. 내 주변 어디에나 있는 이 '위아래'의 권력관계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육도, 교육공간이라는 학교도 사회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해온 교육은 놀랍도록 '위아래'를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조차도 이런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젖어들기가 쉽습니다. 교사들은 학생의 ''에 서려고 하고 학생들이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아직 너희들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도 아마 교사일 것입니다.

 

 때로 학교는 사회의 권력관계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교육'을 통해 확대하고, 재생산하기도 합니다.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 성소수자는 '없는' 존재로 교과서에서, 수업에서 그려집니다. 교과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에게 "살이 드러나서 남학생들이 공부에 집중을 못한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복장단속이라든가, "동성애자들은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가져야한다"고 말하는 생활지도 속에서 수많은 '위아래'들은 진실로 여겨지고, 고착화되고, 다시 사회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교육저널은 이번 호에서 특집과 기획으로 청소년 참정권과 학교에서의 페미니즘을 다루며, 우리 안의 '꼰대의식'을 되돌아보고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평등의 확대재생산을 비판해보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학교가 사회 그 자체를 닮아있기 때문에, 사회의 구조가 그대로 있는데 학교만 변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 물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회에서의 성차별이 변하지 않고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들이 어디에나 깔려있을 때, 청소년이 2등시민으로 취급당할 때, '위아래' 없는 학교란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투운동'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듯, 한 송곳이 구멍을 내면 그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단단하고 복잡하고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구조는 언제나 인간들에 의해 바뀌어왔다는 것을, 변화는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이번 호 <위아래 없는 학교를 위하여>는 사실, 그래도 학교 정도는 바꿀 수 있다 혹은 학교만이라도 바꿔보자는 선언은 아닙니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 세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교를 바꾸자는 어쩌면 너무 거창한 (!)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는 거창하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거창하진 않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한 발로 '꼰대'되지 않고 학생을 동료로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보면서, 글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한 발이든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요.


 <교육저널>이라는 공동체에서 복작복작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이 글들은 독자 여러분이 있을 때 비로소 태어나는 것임을 압니다. 언제나 글이 가닿을 곳이 되어주셔서, <교육저널>이 아직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있음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육저널>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학생회관 619호에서, 딸기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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