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즐거운 나의 집”(공지영)

말차라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 중에 하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이다. 정상가족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정상가족에 대한 관념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것이 정상가족이고 어떤 것이 비정상가족인가? 흔히 엄마와 아빠, 자녀가 기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새 학기 첫 날에 항상 적어서 내는 나를 소개합니다종이가 있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인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 등이 적혀져 있다. 이 종이를 바탕으로 담임교사는 학생과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한부모 가족, 이혼 가족, 재혼 가족, 조손 가족, 심지어는 다문화 가족까지 결손가족혹은 비정상가족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결손가족으로 분류된 이들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은 정상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이들에 대한 차별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손 가족의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저조한 성적을 보일 경우 엄마(또는 아빠)가 없어서 그래”, “가정교육이 문제여서 그렇지라고 단정 짓기 태반이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기 일쑤다. 비정상가족은 덜 행복할 것이며, 불행을 겪기 쉽고,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너무나도 비일비재하다. 본인의 가족을 비정상가족이라고 지칭하는 사회적 시선 속에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즐거운 나의 집에서 위녕의 가족은 평범하지 않다. 위녕은 엄마와 두 명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세 남매의 성은 모두 각각 다르다. 위녕의 어머니는 두 번 재혼 하고 세 번 이혼을 해서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이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공중파 드라마의 전형적인 클리셰는 이복형제 사이의 다툼, 새엄마 혹은 새아빠와 자녀의 갈등이다. 재혼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 중 한명은 소외되어 있으며 괴롭힘을 당하고, 이복형제끼리는 항상 서로를 시기, 질투하며 계략에 빠뜨리려고 하는 내용들은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현실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위녕의 가족은 이런 클리셰를 타파한다. 성이 다른 세 남매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위녕과 동생들은 서로를 챙기고 따르며 잘 지내지만 시시껄렁한 일로 다투기도 한다. 위녕의 어머니는 어느 누구를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한다고 하며 항상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해준다.

행복하고 문제없는 이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남들의 시선이다. 작가인 위녕의 어머니에게 늘 붙어 다니는 이혼녀 꼬리표, 남들의 불편한 시선, 수군수군대는 소리... 위녕의 어머니가 남에게 밉보일 때 항상 듣는 소리는 왜 이혼을 세 번씩이나 했는지 알 것 같다이다. 심하게는 위녕의 어머니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가정이 파괴되고 아이들이 잘못된다고까지 한다. 위녕과 세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들이라며 동정을 받는다. 과연 누가 문제인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 마치 잘못인 것처럼 말하며 비난하는 사람들, 당사자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남발하는 동정인 척하는 위선은 안타깝게도 현실이다.

위녕의 어머니가 두 번씩이나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위녕 어머니의 첫 번째 남편이자 위녕의 아버지는 작가인 위녕 어머니에게 직장을 때려치고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기를 강요했다. 두 번째 남편은 위녕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정상가족을 유지하려면 이 모든 고통과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유지되는 가정이 어떻게 정상일 수 있는가?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과 폭력을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제도의 유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계속해서 묵인되어 왔고 가족제도를 해체시키는 이혼제도는 사회에서 부적절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낙인찍혀왔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마치 우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로 여기지만 정작 비정상가족에게 찍히는 낙인과 차별, 배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을 잘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의해 살아가는, 한 마디로 쿨한 성격을 지닌 위녕의 엄마조차도 성씨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야말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누군가 새로운 의미의 가족에 대해 작가 본인과 작가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족의 의미도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게 다양해지고 있다. , 더 이상 이 다양한 가족들을 어떤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이를 하나의 틀로 억지로 맞추고 재단하려고 하다 보면 당연히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 가족이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뒤틀리고 부서진 것이라 해도, 설사 우리가 성이 모두 다르다 해도, 설사 우리가 어쩌면 피마저 다 다르다 해도, 나아가 우리가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다 해도, 우리가 현재 서로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바로 사랑이니까 가족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끈의 정체를 저자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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