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가르치는 학교 : 지금, 여기의 현주소
그래놀라
◆ 성차별 가르치는 학교?!
한국여성민우회의 ‘2017 성차별 보고서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차별 영역 중 3위가 가족관계와 운전, 대중교통 분야를 뒤이어 학교가 3위를 기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회로 발을 내딛기 전에 바람직한 성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 장이자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배경이 되는 ‘학교’는 ‘언제나 옳고 정상적인’ 곳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여겨지고 감히 학생들이 그 반대편에서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환상 속에서 학생들을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
성의 구분에 대한 인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입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과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겉보기로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었다. 성격도 생각도 너무나 다른 아이들이었는데 들고 다니는 물건들의 색깔은 성별에 따라서 극명하게 구분되는 현상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마치 누군가 여자는 이것, 남자는 이것이라고 정해준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타켓으로 만들어진 초콜릿과 문구들의 포장의 색은 분홍색 또는 파란색. 선택권은 두 가지로 주어진다. 교육용 악기 리듬세트의 삽화를 살펴보면 분홍색에는 꽃을 들고 있는 곰 그림이, 파란색에는 비행기 앞에 서 있는 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심지어 초콜릿은 여아용, 남아용으로 아예 지정되어 있다.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강요하며 폭력적으로 성별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남자아이가 분홍색 초콜릿을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인가) 사실 제품들을 명시적으로 구분한 것은 각 성별에 대한 고정된 선호를 조장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제품의 주 고객 대상인 유아 및 아동들이 이미 이른 시기에 성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은연중 주입받은 성적 고정관념과 성인식들은 아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들을 학습하기 시작한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담은 교육과정의 미리 짜여진 판에 한 발 내딛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과서를 바탕으로 학습을 한다. 그런데 언제나 ‘바람직하고 옳을 것’으로 믿고 있는 교과서가 오히려 잘못된 성 인지적 관점을 배경으로 저술되어 있다면,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할 것과 앞으로 마주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교육을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일까.
그동안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비판 없이 읽어내려가던 교과서를 살펴보면 불편한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에 실린 그림은 과거와 오늘날 가사노동을 비교 설명하며 노동의 주체를 모두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역할과 관련된 담론에서 오랫동안 지적받아 온 부분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여성에게 가사의 일을 떠맡기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고 교과서에도 역시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반영되어 있었다. 또한 스포츠와 체육이 어느 순간부터 남학생의 전유물이 되기 시작한 현상과 체육은 남자들이 잘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반영된 내용도 찾을 수 있었다. 이는 자칫하면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은 남성에게, 지지하고 수용하는 소극적인 것은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불러올 수도 있고 결국 여학생들을 체육과 스포츠라는 ‘땀을 흘리게 하는, 그래서 조신하고 깨끗한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에서 소외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다른 영역 예를 들면, 성욕에 대한 담론에서도 여성은 성욕을 억제해야 하고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되는 소외와도 함께 이해될 수 있다.
한편 게임이나 야한 동영상에 중독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는 남학생이 주로 묘사된다. 비교적 충동적이고 절제하지 못한다는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된 삽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배후에는 남성은 어떤 성이나 중독에 대한 절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이 믿고 아이들을 맡긴 교육의 현장에서는 불편한 성인식과 고정관념이 깔린 교육 자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서운 점은 이러한 경향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라 매우 익숙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입되는 사회의 억압을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스펀지처럼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잘못된 성역할에 대한 표현뿐만 아니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슬픈 표정으로 걸어가는 묘사로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가운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 미혼모를 ‘부정적이고 동정적인’ 관점을 강화시킬 수 있고 책임감 있고 강한 여성으로서의 미혼모의 인식을 저해하고 결국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한편 교과서에서 다룰 필요성 있는 주제들이 여전히 없다는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다양한 국적, 피부색, 정체성 등 단면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이제는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다양한 개인들이 존중받아야 마땅한 다문화 사회에서 아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이해와 공감의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과서에서는 다양한 성적지향과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는 매우 한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있어봤자 윤리과나 사회과 교과서 등에서 이들에 대한 간단한 관점 소개 정도로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을 가질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현실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한다면 아이들이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수월하진 않을 것이다. 보수 종교단체나 혐오 세력들의 극단적인 반발로 인해 이러한 내용을 다루기 민감한 것은 이해하지만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기존의 교육은 결국은 아이들의 눈을 가려버릴 것이고 오히려 아이들의 성숙하고 다양한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 성교육의 현주소
이러한 고정관념과 잘못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는 교육부의 성교육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를 꼽을 수 있다. 2015년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사실 표준안 자체는 매우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교사용 지도서 등 교육자료에는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자들은 무드에 약하고 남자들은 누드에 약하다.’는 구시대적인 글부터 옷차림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활동 내용이나 남녀 뇌구조 등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삽화까지, 6억을 들였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내용들이 풍부해서 이걸 교육을 위해 만들었는지 유머를 위해 만들었는지 고민이 들게 만든다. 차라리 이것들이 잘못된 이제까지의 고정된 성인식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내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놀랍게도 모두 교육부가 옳다고 규정한 것들이다.
이밖에도 성폭행의 범위를 ‘성기를 강제로 피해자의 생식기에 삽입하는 행위’로 매우 좁게 설정하고 있었고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성폭력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도 ‘평소 우유부단한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대답으로 일면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보이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강화하고 예방을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교육의 가장 총체적인 구성과 본질적인 바탕을 만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서 학생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면, 먼저 교육의 기본을 세우는 교육부와 정책 결정자들이 먼저 올바른 인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표준안 교육자료를 보면 교육부에서 솔선수범해서 잘못된 성인식과 고정관념을 양성하고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학생들이 이런 가이드(표준안) 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인식을 갖게 될 것인가. 시민단체나 전문 인력에게 자문이라도 구했다면 이러한 결과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6억이라는 큰 돈은 어느 부분에 쓰였는지 의문이 든다.
다행히 잇따른 비판으로 결국 교육부는 이를 내년 상반기까지 수정,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성적지향과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배제하는 태도를 일관하던 것에서 성폭력 대응 차원을 넘어 인권보장, 성평등 등 더 넓은 영역에서 보완하겠다는 태도로 바꾼 점은 다행이지만 이제까지 비판을 받은 이 성교육 가이드 라인(표준안)도 몇 차례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인 관심으로 여기에 대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 그럼에도 희망은 있음을....
착잡한 교육현장의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와 교육부의 잘못된 성인지적 태도와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성별 간 부정의와 인권침해를 낳는 현실에 대해 고발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이 있다. 경기도 ㄱ예고 학생들은 사례집 『여기』를 출간했는데 이는 성차별·성희롱 막말, 혐오 발언, 외모차별 등 인권이 침해되었던 자신들의 경험을 담아 인권 침해 재발을 예방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현재 이 책의 저자인 정진아 학생은 졸업생으로 자신이 재학 중일 당시 학교에서 있었던 교사들의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성추행에 대한 실태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되자 재학생 및 졸업생들과 협력해 이를 글로 남기고 책으로 제작했다. 비록 교육청에서는 경고 수준으로 처리가 되었고 학교 측의 불허로 책 배포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학교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서 큰 용기로 고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한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등에 참여해 더운 여름 강제로 복장 규제를 당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청소년과 이러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등 교육 내 성차별과 권력 불평등한 관계를 타파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여성민우회와 같은 크고 작은 단체들이 있다. 이전부터 태동하던 이러한 싸움들은 미투 운동과 함께 불붙듯이 번져갔으며 우리 사회의 변하지 않았던 한 단면을 바꾸기 위해 지금도 목소리 높여 투쟁하고 있다.
한편 최현희 선생님과 같이 아이들이 떡잎부터 올바른 성 인식을 가지도록 교육하고자 노력하는 교육자들의 존재도 희망적이다. 그녀는 경향신문에서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 시리즈로 글을 썼고 개인 SNS활동 등을 통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교사라는 직분을 가졌기에 그녀는 더욱 목소리 높여 진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자 자기 자신조차 희생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 내용과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논란이 벌어져 일부 사이트에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신상까지 털어가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다. 거기다가 함께 교육을 위해 협업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학부모들까지 합세해 최현희 선생님을 끌어내리려고 하고 심지어 당연히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한 학부모단체는 검찰에 고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의 올바른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교사로서 이에 물러서지 않았고 여전히 페미니즘의 건재함과 지속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특정 성별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개인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도록 미디어, 가정, 광고 등의 성역할 강요와 억압에서 자유로운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성차별과 성역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고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끊어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해낼 역량이 없다. 오히려 위계적인 성별 이분법과 사회적인 성별화를 훨씬 더 공고하게 내면화하는 데 충실히 기능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과 성의 권력과 관련된 문제는 예전부터 논의가 있긴 했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한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임이 인정되고 있다. 그들의 용기와 아픔에 공감하고 흘린 눈물과 고통이 보상받을 수 있길 바란다.
'32호 - '위아래' 없는 학교를 위하여 (2018 여름호) > 기획 - 학교와 페미니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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