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고등학교 2학년 희란은 담임 선생님의 퀭한 눈을 보며 말을 건넸다. 6월, 1학기 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하연 선생님은 현재 생기부에 기재될 교과세부특기사항을 작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 열흘 전에 왔을 때도 쓰고 계셨던 것 같은데, 저거 대체 언제 끝나지? 희란은 하연쌤을 좋아하는 많은 학생들 중 하나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생님이 계신 학년 연구실에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최근의 하연쌤은….
희란은 잠시 하연의 업무량을 가늠해보다가 그만 아득해졌다. 희란이 다니는 학교의 2학년 학생은 200명이 넘었다. 2학년에서 국어 수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두 분인데, 모든 학생 생기부에 세특을 써야 하니까, 지금 우리 쌤이 –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온 – 써야 하는 글 이 대체 몇 개인 거야? 난 독후감 쓰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하지만 희란이 간과한 것이 있 었으니, 하연은 희란의 담임이었다는 점이다. 담임 선생님들은 교과세부특기사항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맡은 반 학생들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란을 작성해야 했다. 그것도 32개를 – 혼자서! 매일매일 수업도 하시는데 말이야. 희란은 멍하니 거기까지 떠올리고서는, 시선을 낮추어 하연의 안색을 다시 살폈다.
*
하연은 하루종일 모니터 화면을 보느라 침침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의자에 기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연은 평소와 같이 아침 8시에 학교로 출근해서 다섯 반까지 수업을 한 후, 보충 시간에는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생기부에 기재할 내역을 작성했다. 그러고는 지금, 야자 감독을 할 시간을 빌어 여직 - 겨우 다 써가는 - 생기부를 붙들고 있는 터였다.
“하연쌤. 논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조금 전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학년 부장인 호영이 하연을 호출했다. 하연은 네, 짧게 대답한 뒤 학년 연구실 책상에 힘없이 앉았고, 멍한 머리로 약 한 시간 동안 학생 상담 주간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하다가, 그냥 다 그만두면 안 되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본인 반의 27번 학생의 행동특성란을 작성하던 하연은 몇 번이고 하던 생각을 떠올렸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연은 학기 초에는 신학기 업무를 하고, 학기 말이면 기한에 맞춰 생기부 내용을 작성했다. 평소에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 몇 번이고 반복해가며 수업하고, 몰려오는 행정 업무 처리하고. 아이들이랑은 농담 이상의 대화를 할 시간이 없고, 그러니까 아이들과 관계 맺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 여가 시간을 포기해야만 – 대체 학교는 상담 시간도 제도적으로 마련하지 않고 뭘 하는 거야? - 가능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나?
멀리서 울려퍼지는 야자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하연은 의자에 기대 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 교무실에서는 크게 한숨을 내쉴 수도 없어 – 다른 선생님들도 힘드실 텐데 괜히 한숨 쉬어서 힘 뺄 필요는 없지 - 속으로 삼켰다.
똑똑.
경쾌한 노크 소리에 하연은 후다닥 자세를 바로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대답했다. 들어 와-. 드르륵 열리는 문 쪽을 바라보니, 가방을 다 싸고 손에 갈아신을 신발을 쥔 희란이 빼꼼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선생님! 왜 퇴근 안 하세요!” 하연은 당연하다는 듯 쫄래쫄래 제 자리로 다가오는 희란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가려고 했지, 쌤도.”
“헐~ 쌤. 책상에 서류 완전 많음. 이게 다 뭐람….”
희란은 멈칫거리다 슬쩍 말을 이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조심스레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저보다 열 살은 어린 소녀의 물음에 교사는 조금 목이 멨다.
“응 희란아. 선생님은 괜찮지.”
사실 하연은 제법 평소와 같은 모양으로 괜찮지 않았다.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1층 내려갈까?”
“너무 좋아요!”
눈치를 보다 꺄르르 눈꼬리를 접으며 대답하는 희란을 보며 하연은 문득, 사범대를 다니던 대학생 시절 막연히 꿈꾸던 –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보다 자유롭고,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 교직 생활을 떠올렸다.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하연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
희란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었던 두 사람과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된 후, 그는 슬슬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었던 하연과,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시 교양 수업의 교수님의 영향으로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직이수를 하는 중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오늘 희란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 좋은 – 선생님 두 분을 뵙는 것이었고, 식당에 들어서며 들뜬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호영과 하연, 두 사람은 여전히 삼 년 전의 희란이 닮고 싶어하던 어른들이어서, 희란은 어쩐지 벅찬 기분이 들었다. 오늘 어쩌면,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말이야. 자기네 이익만 챙겨.”
식사를 얼추 마치고 대화를 나누다가 희란이 고3이었을 적 담임 교사였던 호영이 불만스레 말했다. 그는 코로나 상황에서 학생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성토하다가, ‘요즘 교사’들이 자기 생활만 챙기고 학생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이야기로 주제를 옮긴 참이었다. 웬일로 저렇게 공격적인 어조를 쓰신담? 맨날 허허로이 웃는 우리 쌤이. 희란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호영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었다.
“가르친다는 게 어? 그렇게 딱딱 나눠 떨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야. 아니 매일같이 연가를 쓰고, 시간만 되면 바로 퇴근하는 선생들 보면, 그걸 다 쓰는 게 자기네들 ‘의무’라고 얘기해. 근데 그런 논리면, 방학에도 출근해야 하거든. 요새 금요일 오후 3시에 보면 학년실에 쌤들이 3분의 1밖에 없어. ”
교사는 무릇 ‘옳은 교육’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 그리고 실제로 노력하는 - 선생님의 가치관을 알고 있던 희란은, 나이 든 이가 젊은이를 훈계하는 듯한 어조에 풋 웃음이 나왔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다 아는데 우리 선생님, 동학년 선생님들한테 되게 꼰대처럼 보이겠다.
“그렇게 원칙대로 하자고 하면, 그게 교육이냐? 사법이지.”
사장님께서 단골이니 에이드 한 잔을 더 드리겠다는 말에 감사 인사를 전하던 희란의 귀가 번쩍 열렸다. 교육, 사법.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그리 일상적인 어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희란은 당장에 말을 얹고 싶은 것을 참고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요새 이삼십대 교사들은 다 자기 생활 영역 지키는 것만 중요한가 봐.”
그러니까 호영이 말하는 교육의 사법화는 이런 것이었다. 개인화되는 사회, 그저 안정성이 보장된 직업으로 전락한 교사, 이에 따라 시키는 것만 수행하는 – 그리하여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진 – 매뉴얼화된 교육. 하지만 어떤 게 ‘진정한’ 교육인데? 교사를 갈아넣는 기존의 교육은, 지속될 수 없을 텐데도? 희란은 호영에게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선생님은, 교사가 늘 소명의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옆에 있는 하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건 아니지.”
그렇지만 요새는 분명 교사 개인의 삶 또한 여느 직업들처럼 생활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거고, 그런데 그러려면 교사 개개인이 희생하던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건 힘이 드니까. 선생님께서는 올해도 부장 교사를 맡으시고 계시잖아? 그러니까 다른 선생님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으신 거야. 하연은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하연이 말을 잇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 호영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희란아. 지금은 다원화된 가치가 부딪히고 있는 거다. 옛날에는 교사가, 네가 말한대로 소명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했고. 그래서 나 같이 늙은 사람은 – 여기서 호영은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 , 그래도 교육은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게 중요한 사람들도 있는 거고.”
희란은 어쩐지 호영의 얼굴이 지쳐보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제가 사실은 요새 고민이 좀 있거든요.”
어떻게 말을 할지, 말을 꺼내도 될지 고민하던 희란은 마음을 다잡았다. 스물두살은 갈팡질팡, 인생 선배의 조언이 필요할 만한 나이였다. 희란은 민망한 마음을 딛고 주춤거리며 조심스레 생각을 내보였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교직이수를 하고 있잖아요. 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익을 좇는’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내 삶만 중요한 교사 말이에요. 음,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보 같을지라도 히어로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고, 자유로운 교육을 하고 싶고.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까, 교사가 된다고 해도 그렇게 못할 것 같더라고요.”
희란은 여기까지 말한 후 목을 축였다.
“왜냐하면, 저는 국가에서 짠 커리큘럼에 맞추어 제 수업을 짜야 할 테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학부모나 학생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거잖아요. 애초에 마음대로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에는 당장 앞에 쌓인 일도 너무 많을 거고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사법화란 이런 거예요. 교육이 행정에 귀속됨에 따라 교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이 위축되는 거죠. 괜히 욕심 부렸다가 학부모한테 민원이 들어오길 바라는 교사는 없을 테니까요. 희란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전자에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채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로서의 교권이 침해된다면, 후자는 교사의 인권 문제와 연결되고요. 싸움을 피하려면 매뉴얼대로 교육하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전인’적인 교육과 자율적인 학습은 없어질 수밖에 없고, 위에서부터 – 예컨대 교육청이라든가 – 지시받은 커리큘럼과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서만 교육이 이뤄지겠죠. 교육의 ‘사법화’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하연과 호영은 숨을 토하듯 길게 이어지는 희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음. 저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으면 교사의 자율성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너무 납작한 말이지만, 의사가 처방을 내릴 때는 환자가 하나하나 다 참견하지 않잖아요. 맞겠거니-, 생각하고 알아서 하게 냅두지. 그건 결국 의사가 전문직이기 때문이고요.”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하고 싶은 교육을 할 수 있게 될까요. 지금처럼 업무 과중에 시달리며 틀에 박힌 입시교육만 하는 거 말고요. 희란은 한숨을 내뱉듯 말을 마쳤다.
두 어른은 그들이 가르쳤던 어린 소녀가, 어느덧 그들과 같은 선 – 어른이라는 – 위에 서서 무거운 숨을 내쉬는 것을 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건 가볍게 조언하지 않음으로써 희란에 대해 존중을 내보이는 것이기도 했고, 그들도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테이블 위로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연은 공기가 무거워지기 전,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희란아. 네가 말한 대로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 행정업무도 해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상담도 해야 하고…. 그런데 선생님이 느끼기에는 그렇더라. 누구든 수업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너희가 보기에 대충 때우는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들도, 다 학생들에게 수업 잘한다는 말 듣고 싶어 하고. 그런데 일이 너무너무 많으니까, 늘 맨 마지막으로 밀리는 건 항상 자기 수업 연구야. 교사가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희란은 하연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제 앞에 놓여지는 말들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일 때에는 들을 수 없던 솔직한 사정이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고민의 몫을 맡은 사람들이, 서로 같은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에는 어떠한 마음이, 말이 열린다. 그러므로 하연은 이 제 마냥 어린 학생이 아닌 희란에게 어떠한 말들을 할 수 있었다. 예컨대, ‘선생님은 괜찮지’ 가 아닌, ‘사실 괜찮지 않다’와 같은 말들을.
“수업을 잘하고 싶더라도,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싶더라도 교재 연구를 할 시간이 없어. 잠을 줄여가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학교에 있는 상황에서 그건… 어려운 일이지. 정말 자기 삶과 건강을 다 버리는 거니까.”
하연이 하는 말들은 ‘선생님’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오전 여덟 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열 시에 퇴근하는 삶. 고등학생이 아님에도 고등학생과 같은 생활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방학에도 보충 수업을 하러 학교에 와야 하는 교사들. 교사가 무슨 최고의 신붓감이라고. 낡은 – 그리고 ‘구린’ – 통념을 떠올리며 하연은 속으로 조소했다. 가정을 꾸리기에 최악의 상대라고 생각하며. 웃음의 모양새는 자조에 가까웠다. 교사를 그만둔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연은 연인과의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이나 업무를 봐야 하는 평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과 다름없었고, 주말이나 되어야 온전히 쉴 수 있었다. 하연이 느끼기에 교사라는 직종은 가장 사적인 시간, 그러니까 ‘나’의 삶이라는 걸 지킬 방안이 전무한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건 학생들에게 갖는 애정으로 해결할 -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 문제가 아니었다.
하연의 말을 듣던 희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 제도 속에서는 교사의 ‘숙련’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는 없겠구나. 당장 희란은 내년에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 사범대생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 교직 이수를 하고 있는 학생을 위한 숙련의 기회는 딱히 마련된 것이 없었다. 이론 수업 몇 개를 듣고 현장에 내던져지는 기분…. 그런데 현장에서도 딱히 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니. 숙련과 전문성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지?
“교사 공동체 같은 건…, 대안이 될 수 없을까요.”
희란이 중얼거렸다. 같이 모여서 열정을 가지고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 지도 방안을 고민한다면 교사 개개인이 져야 할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혁신학교 같은 곳에서 그런 걸 시도하는 편이지.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맥락에서 크게 상황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구나. 거기도 개인생활이 우선인 사람이 있고, 혁신학교이니만큼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의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가 않아. 조율하는 과정에서 진이 다 빠져서… 정작 품을 들여야 하는 과정까지 가는 게 어렵지.”
요새 교사들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보다도 그냥 방학이 있고, 안정적이라고 하니 들어온 공부쟁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부정적인 호영의 말에 희란은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호영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실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의 말을 가볍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어느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내가 고등학교 때 봐왔던 대로, 가르치라는 거 가르치고, 대충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교사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업무에 시달리면서-.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아닌데.
희란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오후 10시. 하연은 적막이 내려앉은 집에 들어섰다. 식사를 마치고 희란을 차에 태워 집에 내려준 뒤 이제야 도착한 참이었다. 후-. 한숨을 내쉰 하연은 식탁 의자에 가디건을 걸쳐두고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아꼈던 학생과 존경했던 선배 교사를 보고 오는 건 흡족한 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동시에 그는 어떤 상실을 느꼈다. 희란이는 언제 저렇게 커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걸까. 어떤 고민들은 세대를 거쳐 끄트머리와 끄트머리가 연결되고, 사람을 타고 묶이는 걸까. 반복되는 고민에 하연은 어렴풋이 죄악감을 느꼈다. 내가 끝내지 못한 고민을, 네가.
4년 전, 하연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중에 쓰러졌다. 연이은 과로로 인한 피로의 누적이 원인이었지만, 단순히 피로라는 말로 설명하기에 그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당시 하연은 놓듯이 교직을 그만두었고, 약 일 년간의 휴식 끝에 지금은 교습소를 하고 있었다. 원래도 하연의 수업 실력은 알아주었으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초등학생들과 수업하는 지금이 훨씬 즐거웠다. 당연히 말은 머리가 좀 더 큰 고등학생들과 잘 통했지만,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늘 어딘가 무기력과 슬픔에 젖어있었고,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생기의 잔재가 하연을 더 서럽게 만들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학교는 무얼까, 하는 생각이 그녀를 얼마나 슬프게 했던가.
하연은 짙어지는 어둠 속에 스며 자신이 끊어내지 못한 굴레, 자신이 도망쳐버린 고민을 떠올렸다. 휴식을 취하고 즐겁게 일하는 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그런데 오늘 희란을 보고 있자니…. 자신을 닮았던 학생이 자신을 보고 그 길을 가고, 그 길 위에서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적막의 한가운데에서 하연은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
*
뚜르르-
뚜르르-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삐---.
...선생님.
괜찮으세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건너편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누군가 지쳐 떠나간 자리에는, 매뉴얼에 따라 녹음된 음성만이 공허하게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다.
PART 2. CONTINUE?
▶ YES NO
음. 빳빳하군.
희란은 정장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생각했다. 교생 실습을 나갈 때는 다들 정장을 입는다. 정말 쓸데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수’와 ‘관례’라는 것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지라. 희란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군말 없이 단정한 정장을 샀고, 구김이 가지 않게 보관했다가, 지금 꼼꼼히 재킷 소매의 단추를 잠그는 중이다. 이거 되게 교복 마이 같네. 마이? 마이… 음. 정장 재킷도 마이라고 하나? 그는 갑갑한 재킷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희란은 올해 스물셋이 되었다. 4학년이라니. 졸업학기가 가까워진 희란은 교생 실습을 하게 되었다. 3학년 2학기, 희란은 시기를 고민하다 4학년이 되자마자 곧장 실습을 나가기로 결정했었다. 사범대에 아는 사람도 없는 희란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조교 선생님뿐이었다. 경험에 기반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희란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게, 더 늦어지기 전에 실습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 ‘일단 하고 보자’라는 그의 신조가 결단을 내리는 데에 한몫했다.- ‘어차피 배우려고 실습하는 거니까!’ 희란이 생각하기에, 세상은 때로는 강제로라도 낙관적이어야만 한다. 걱정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므로.
“안녕하세요 희란쌤! 일찍 왔네요?”
출근 – 내가 출근이라니! - 을 하자마자 교무실에 간 희란에게 교생 담당 교사인 재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희란은 웃으며 인사를 마주 건넨 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언뜻 보이는 양양남대천. 그는 강원도에 있는 양양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오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희란은 강원도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그의 대학은 서울에 있고, 본가는 부산이다). 이 사실을 아는 희란의 친구들은, 지난 학기 희란이 강원도에 있는 학교로 실습을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에 모두 물음표를 띄웠다.
거길 니가 왜 가냐?
여기에는 제법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선배 교사 – 아직 학부생에 불과한 희란은 뻔뻔하게도 속으로 재현 선생님을 선배 교사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희란이 스무살 때 우연히 참가했던 글쓰기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에는 어딘가 내밀한 구석이 있어서, 희란은 재현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십년 후를 상상하고는 했다. 희란이 생각하기에 재현은, 희란이 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희란의 삶의 결은 사랑이라는 조각칼로 다듬어지고는 했는데, 재현의 삶 역시 그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란이 재현이 근무하는 학교에 교생 실습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에 대한 인격적인 호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재현은 곧잘 인스타그램에 학교에 대해 쓴 글을 올리고는 했다. 그의 글 속에서 발견하는 학교는, 희란이 느끼기에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다른 학교와 별다를 것이 없을 공립 일반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와 학습자가 교류하고 또 교감하며 같이 만들어나가는 살아있는 학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만드는 삶들 의 모습이 궁금해. 이와 같은 호기심은 사변적인 고민을 끝내고자 했던 희란의 열망과도 맞닿아있었다. 작년, 희란은 하연과 호영과의 대화 이후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게 맞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 것도 문제지만, 힘을 들인다 해서 학교가 바뀔 수 있을까? 정해진 관습,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학교가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그러한 고민 위를 맴돌던 희란은, 교생 실습 학교 신청 공문을 전달받은 후 곧바로 양양고등학교에 연락을 넣었다. 어떠한 미래를 목도하기 위해서였다. 대학 동기들이 인턴을 하거나, 교환 학기를 가는 것을 보며 정체 모를 불안을 느끼던 희란에게 있어 이것은 일종의 분기였다. 어떠한 선택을 위한. 애를 쓰던 그는 여러 행정적인 문제를 딛고 이곳에 착륙하는 것에 성공했고, 주어진 탐색 기간은, 약 한 달이었다.
*
준경이는 참 귀여운 학생이구만. 희란은 멀거니 생각했다. 지금은 6교시가 한창인 시간. 양양고의 6교시는 ‘체인지메이커’라는 활동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희란은 와글와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교실에서 살짝 귀를 막았지만 – 티가 안 나게 -, 여느 고등학교와는 조금 다른 모습에 두근거려 하고 있었다(준경은 그중에서도 제법 집중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신난다. 희란은 조금 아득해진,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책상 사이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이 집중하는 모양새를 살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체인지메이커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주변, 그리고 사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찾아 직접 문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는 활동이었다(희란은 며칠 전 1층의 경사로가 작년 수업에서 한 팀이 벌인 배리어프리 사업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수업이 시작된 계기는, 재현이 연수를 받고 오면서부터였다. 희란은 처음 수업에 참관했을 때, 수업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걸 하지? 늘 무기력함에 찌들어있는 고등학생들이 왜, 이런…. (희란은 적절한 수식어를 찾지 못해 속으로도 말을 멈추었다. 이제껏 희란의 경험을 되돌아봤을 때 건강하고 건전한 활동은 흔히들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나, 제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율적인 활동을? 체인지메이커 교육의 총괄을 맡고 있는 재현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총 세 가지의 논리로 설득당했는데-, 가치와 재미, 이익이 그것이었다.
“쌤! 좀 들어보세요!”
모르긴 몰라도 확실히 재미는 있어보이네. 옹골차게 이야기하던 준경이 교탁 앞에 서있던 재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희란은 생각했다. 모두가 활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분명 이 활동의 매력을 반감시켰을 텐데. 적어도 지금, 조마다 시끌시끌하게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 활동을 꺼리는 기색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니까 아마 첫 시간에 이루어졌다던 ‘설득의 시간’이 영향을 줬겠지. 며칠 전 학생들이 참여하는 원동력을 묻던 희란에게, 재현은 첫 체인지메이커 시간에 학생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며 그들을 ‘설득’했다고 대답했다. 사회의 여러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또 학생 스스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초반에는 재미가 없을지라도 점점 활동에 애착을 갖게 될수록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하며 즐거워질 것이라는 점 – 재현은 이것을 말하며 전략적으로 작년에 활동했던 선배들의 영상을 보여줬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 마지막으로 대입,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를 위한 역량의 차원에서도 이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 내용이었다.
청년은 대답을 들으며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삼십대가 되어서도 저렇게 눈에다가 별을 빛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재현이 이야기한 ‘재미’라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는 것이었다. 희란이 생각하기에 한국의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을 무너뜨리는 곳이었고(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것은 틀림없이 여물어가는 과정에 있는 이들의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백일 동안, 학생들은 내적 동기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평가 – 그게 정량적인 기준이든 정성적인 기준이든 – 에 자신을 욱여넣어야 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을 외부에 이양하고, 그 기준에 스스로의 생각과 생활을 맞추고,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고 조정하게 만드는 것이, 학교라는 공간이 지니는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이라는 존재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감각과 한 발 내딛어볼 용기를 쉬이 박탈당했다. 따라서 다시 말하건대, 희란이 생각하기에 이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은 ‘재미’에 있었다. 누구나 뭐든 시도해볼 수 있고, - 그것도 혼자서, 불안해하지 않고 – 평가 없이, 친구들과 함께 부딪히고 떠들고 만들어나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애들이 다 마이를 안 입고 있네. 희란은 사소한 차이점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새삼스러움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랬었다면….
소란스러운 교실의 한가운데에서 희란은 적막한 얼굴로 생각했다. 존경했던 어떤 이를 떠올리며, 그리고 저와 친구들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빳빳한 옷에 휘감긴 채 상념을 뭉게뭉게 피워올리는 희란의 뒷모습은, 어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
교생 실습 삼 주차 목요일. 희란은 스리슬쩍 재현의 그림자처럼 교무회의에 따라 들어갔다. 내가 이런 데를 언제 또 들어와 보겠냐. 교생의 열정을 명분 삼아 허락을 받고 어렵사리 들어온 자리였다. 교생 실습이면 학교 행정 처리 과정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지, 참. 속으로 투덜거리던 희란은 아직 회의가 시작되지 않은 회의실의 앞쪽에 교장과 교감, 사회자 선생님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왜인지 앞쪽 자리들이 대부분 비워진 것과 달리, 뒤쪽 좌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원래 저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희란에게 옆에 있던 여자 선생님이 웃으며 소근거렸다. 희란은 마주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앞쪽 자리에 앉는 재현의 옆자리에 의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앉았다.
희란은 발표 자료를 정돈하는 재현을 흘끔거렸다. 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하던 재현은 어쩐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하신 걸까? 희란이 알기로, 그는 오늘 12명으로 구성된 모임에서 논의해온 사항을 보고해야 했다. 동료 교사들끼리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래 재현이 결성한 ‘전문적학습공동체’라는 모임은, 지난 이 주간 서로의 수업을 공개함으로써 각자의 수업에 참관하고, 피드백을 하고, 본인의 수업을 더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거나, 열정이 대단하지 않다면 동료 교사에게 자기 수업을 공개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함께 참관하며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아온 희란은, 수업 공개를 진행한 재현을 비롯 12명의 교사에게 일종의 존경심을 느꼈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일구어내 는 이들. 이 학교에는 어떻게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만 모인 걸까? 희란은 어쩐지 부러움과 질투를 – 훗날 자신이 교사가 되었을 때 이런 동료 교사들이 있을까, 의문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조금 처지는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희란은 재현의 발표를 기다리며 나중에 선생님 되면 이런 거 해야 하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떠올렸다. 희란은 어쩐지 침울해졌지만, 곧 재현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에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삐익-.
마이크 소리와 함께 재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재현입니다…. 희란은 인사말에 이어지는 공개수업에 대한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재현은 공개수업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그 내용을 귀담아 듣던 희란은, 앞 자리에 앉아있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미소 띤 얼굴로 재현의 발표를 듣는 모습을 보고 턱을 괴었다. 되게… 뭐랄까, 좋아하시는 얼굴…. 아니, 흐뭇해하시는 것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관리자들은 본인이 있는 학교가 발전하면 좋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던 희란은 자신이 너무 냉소적임을 깨닫고 퍼뜩 자세를 고쳐앉았다.
“…보고드릴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부분이 있는데, 제가 어제 보내드렸던 체인지메이커 참고자료 다들 확인하셨을까요?”
하아…. 선명한 한숨 소리에 회의실 내부의 공기가 미묘하게 얼어붙었다. 희란은 소리가 들려온 대각선 자리를 돌아봤다. 뭐야? 웬 한숨을…. 희란은 한숨을 쉰 중년의 여성이 3학년 교무실에서 보았던 수영임을 인지했다. 동시에 재현의 표정이 굳은 것을 함께 알아차렸다. 희란은 수영이 수학 교과 담당이자 3학년 2반의 담임인 것을 알고 있었고, 일전에 교무실에서 ‘당장 대입에 필요한 건 성적이지 활동이 아니’라며 불만을 성토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럼 아까 발표하기 전에 굳어계시던 게 긴장하셔서가 아니라, 이럴까 봐….
희란은 본인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경력이 그리 길지 않던 하연이 – 그래도 하연은 당시 9년차의 교사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대개 50대였어서 그렇지 - 업무 분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던 상황을 떠올렸다. 하연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시 새로운 학교 행사의 기획을 떠맡다시피 했던 하연은 한동안 안색이 파리한 채로 수업에 들어왔었고, 희란을 비롯한 2학년 학생들은 늘 사정을 궁금해했다. 후에 호영을 통해 알게 된 전말은, 강압적인 데가 있던 당시의 교장선생님이 하연을 따로 교장실로 불러 일을 잘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행사의 대표격을 맡았던 다른 선생님은 나이가 많았던지라 하연에게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위임했었고, 희란이 고2였던 그 해, 하연은…. 삐---
희란이 기억하기로는, 행사는 제법 성대하고 성공적이었다. 스물셋의 대학생은 문득 열여덟의 여름을 떠올렸다. 즐겁게 공연을 준비하던 친구들, 행사 당일에 방문했던 외부 초청 공연자, 바쁜 와중에도 슬그머니 와서 구경하던 삼학년들. 모두가 즐거웠지만-. 그렇지만, 그걸 모두 이끈 사람이 그 판을 떠나게 됐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에 희란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물론 방금 목격한 상황은 위계에 따른 강압이라기보다는, 초등교사인 희란의 어머니가 늘 투덜거리던, ‘괜히 일을 벌여서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한 불만 표출에 가깝기는 했다. 그러나 교사 집단 내부의 미묘한 갈등은, 희란에게 유사한 압박감을 연상시키는 데에 모자람이 없었다.
보고는 그 내용의 훌륭함과는 무관하게, 모두가 괜찮음을 가장하는 미묘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 그러나 어느 쪽일지 모를 이의 눈치를 보며. 사회를 맡은 선생님은 적당한 멘트와 함께 회의를 정리했다.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이들이 하나둘씩,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희란은 재현이 자리를 정리하는 것을 기다렸다.
“선생님.”
뚜벅뚜벅 걸어 온 수영이 희란을 흘낏 본 후 재현을 불렀다. 어제 보내주신 자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수영은 최근 상담 시즌 때문에 진이 다 빠져서 힘이 들다는 말들을 건네며, 따로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적당히 그냥, 다들 하던 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그 편이 안정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재현쌤이 근래 하는 것들이 고3들한테는….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재현은 쏟아지는 말을 경청하다가 피로한 – 그러나 어쩐지 미묘하게 미안함… 혹은 죄책감이 담긴 표정으로 – 낯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그러면, 제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배포해드릴게요. 선생님들 따로 정보 파악하시느라 시간 걸리실 텐데, 제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드리는 설명 영상,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만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스물셋의 꿈꾸는 자는 벽을 앞에 두고 속에서 무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다수와 관례.
다수와 관례.
청년은 입고 있는 자켓의 소매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되뇌었다. 뜨거운 것을 삼키며.
*
노을이 지는 운동장에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눈꺼풀에 내려앉은 볕뉘와, 보드라운 잔머리를 간지럽히는 바람. 벤치에 앉은 희란은 생각에 잠겼다. 여름이 섞여든 봄내음이 가득한 공기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희란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분명 어딘가 달랐다. 그러나 분명 또, 상당 부분 여전했다. 보통의 일반고에서 교사끼리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희란은, 이곳의 공동체가 놀라울 정도의 응집력과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업을 공유하고,따 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고민점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미래를 그려보기에 적절한 세상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 당연히 - 고질적인 문제는 존재했다.
~P와 P. 어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비산하는 생각의 파편들이 청년을 파고들었다. 희란은 제 몸 곳곳에 난 상처에 피가 맺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누구든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시간과 애정을 쏟고 싶어한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막 개교한 학교나 혁신학교가 아닌 이상, 학교라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책무를 지는 이들의 집단, 즉 교사들의 욕구는 대개 뒤섞여있다. 신규 교원, 혹은 애초에 적극적인 연구를 수행하려는 교사들의 열정과, 자신의 삶을 적절히 지키려는 교사들의 희망은 자주 맞부딪힌다(두 가지 욕구는 한 사람 안에서도 부딪힐 수 있었다. 누구라도 적절한 쉼이 보장된 환경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건드는 것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꺾는 게 쉬웠다 –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부도덕함이나 잔혹성 때문이 아니었다 -. 희란은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어깃장을 놓던 수영을 비난할 수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3학년 담임의 업무 과중을 고려할 때 수영이 하는 말들은 적절한 문제 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참여를 강제할 수도 없어 답답한 상황, 동시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들어 답답한 상황에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을 방안은 대체 뭐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는 반드시 흉터를 동반한다. 희란은 문득, 제가 입고 있는 재킷이 숨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란쌤.”
아, 선생님. 뒤쪽을 돌아본 희란은 종이컵 두 개를 손에 쥔 채 다가오는 재현에게 알은체를 했다. 희란은 교무실 창문에서 저가 앉은 벤치가 보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옆에 앉은 이가 건넨 잔에 든 것은 김이 적당히 올라오는 유자차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희란에게, 재현은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선생님.”
재현을 부른 채로 할 말을 찾지 못한 희란은, 그냥 제 앞에 놓인 하늘을 바라봤다. 뉘엿뉘엿지는 해의 색채가 눈시울처럼 뜨거웠다. 선생님은…, 이제 내년에 학교 옮기시잖아요. 지금 하시는 거, 옮겨가신 곳에서도 또 하실 자신이 있으세요? 힘없는 목소리에 어떠한 책임감을 느낀 재현은, 진지함을 더한 목소리로 답했다.
“음…. 하겠죠. 할 것 같아요. 힘이 들어도 좋으니까요. 사실 제가 안식년을 가게 된다거나 하면 만들어둔 것들이 다 사라질까, 뭐 그런 생각도 들지만요…. 저야 이게 충분히 재밌고 애정이 간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제 자리를 채워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라는 사람의 자리가 손쉽게 대체될 수 있어야지만 보편화할 수 있는 일이 되는데, 이게 제가 그만둬서 바로 무너지는 일이라면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재현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부담스러울 수준의 일들은 안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희란은 속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선생님, 말이 안 맞잖아요. 희란은 아까 수영에게 본인이 일을 다 맡겠노라 이야기하던 재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 몇 주간 봐왔던 재현의 엄청난 노동량과 함께. 분명히 지칠 수밖에 없을 텐데, 아이들의 밝은 낯과 응원으로 언제까지 그게 회복될 수 있을까. 희란은 한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수명과 노동을 맞바꿔야 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록, 재현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힘들지만, 그래도 함께 해주는 선생님들이 있으니까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희란은 재현을 따라다니며 자주 보았던 다른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일을 나누어 들고, 서로를 격려하던 ‘동료’ 교사의 밝은 면면들을. 희란은 생각에 잠겼다. 어렵다 해서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먼저 과중한 노동량부터 해결해야겠지. 부담이 줄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 테고, 그들이 서로의 곁에 있어준다면-.
“그렇네요.”
희란은 유자차를 마신 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더워지는 기분에 자켓을 벗은 희란은, 청명한 봄바람이 제 가슴께를 간질이고 지나는 것을 느꼈다. 운동장이 어느덧 일과를 마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정민
'40호 - 한국 교육제도 노선도 > [특집] 공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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