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

이번 편집후기에서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았습니다
Q1. 필명은 어떤 의미인가요?
Q2. 교육저널 35호에 참여해서 글을 쓰고 편집을 한 소감은?
Q3. 뭐든지 하고 싶은 말 있나요?

 


하인자
A1. 하늘을 나는 인간이 되자
A2. 어떻게 쓰지 어떻게 쓰지...!!!!! 완전 고민만하다 끝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완성이 되어가네요!!! 신기하댜! 다들 수고하셨습니당 너무 웃기고 즐거웠어욤
A3.어도비 7일 이후에 가입해지하는거 잊지말자!!!..!!! 24000원

 


시몬 드 보부상
A1.맥시멀리즘 인간이라 가방이 항상 무언가로 가득합니다. 결국 보부상 행. 그리고 보부아르 멋쟁이(존 캘리포니아롤즈가 추천한 필명)
A2. 질풍노도의 한 학기를 보내느라 많은 참여를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네요. 하지만 교육저널에 티스푼이라도 얹으며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A3.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아요. 2020에도 좋은 분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교육저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BDUCK
A1. 어렸을 때 B.duck이라는 오리 캐릭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게임이든 뭐든 모든 아이디는 죄다 BDUCK이다. 지금 보면 못생겼는데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 남산에 가서 비덕 캐릭터를 봤는데 잔뜩 낙서되어 있어서 마음이 아프더라.
A2. 교육저널의 도란도란한 분위기가 좋다♡ 세미나부터 편집까지 모든 편집위원분들 넘 고생하셨어용~~
A3. 교육저널의 자랑은 동방이다. 이제 거의 내 자취방같다.

 


아무
1. 아무말 대잔치를 즐겨하고, 고민할 시간에 아무거나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블로그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닉네임도 아무로 붙였어요ᄒᄒ아무 말, 아무 생각, 아무 글들이 아무렇게나 섞여있는 교육저널 글에 이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정하게 됐습니다!
2. 어느덧 교육저널 4권 제작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어영부영 글을 쓰다가도 교육저널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글들을 읽어보면서 좋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생각해보니 대학 생활의 반을 교육저널과 함께 보냈네요. 오랜 시간 시간과 열정을 다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생각들이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교육저널과 함께한 좋은 추억들 다 너무 소중하고 여러분들 고맙고 수고많았어용:)
3. 피자와 영화의 영업에 넘어간지 어언 2년정도 되어가는데 그동안에 변한건 역시나 없었닿ᄒ 시간이 나빼고 흘러가면 좋겠다. 일시정지가 필요해~~~

 


고슴도치뇽
A1. 저의 본명은 진영이고요, 고슴도치같이 귀엽고 날카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슴도치와 지뇽을 합쳤습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뇽입니다.
A2. 교널과 함께한 두 번째 학기였네요! 저번 학기에는 정말 글이 안 써져서 며칠 밤낮으로 글을 잡고 있었는데 이번 학기는 그래도 한 번 써봤다고 조금 수월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관심 있는 주제를 고르기도 했고, 학교에서의 경험을 글 안에 녹여낼 수 있어서 글을 쓰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이렇게 또 하나의 글이 완성되어 정말루 기쁩니다!!
A3. 이번 호 교육저널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들 너무너무 고생하셨구요! 다음 학기에는 새로운 분들이 많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교육저널은 정말 따뜻한 공간이랍니당~ 사람에 대한 애정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이들과 함께 각자의 고민을 나눌 때, 침착한 시선으로 교육의 대안을 고민할 때의 기쁨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용 다들 교널하세요~

 

아구몬
A1. 포켓몬보다는 디지몬 어드벤쳐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아구몬 닮았다고 했을 때, 교저 필명으로 써야 겠단 생각을 했어요. 한동안 프사도 아구몬으로 해두었던...

A2. 한 학기 동안 현생의 다른 일들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특성화고 문제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했던 거 같아 좋았습니다. 매주 화요일 동방에 모여 회의하며 즐거웠고 많이 배웠습니다!
A3. 편집위원님들, 편집장님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존 캘리포니아롤즈
A1. 존 롤즈라고만 적으면 재미없어보이죠. 존 캘리포니아롤즈라고 하면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어보입니다.
A2. [솔직고백] 11월까지도 글 못 쓰겠다고 교널 그만둬야할것같다고 울먹이고 있었는데 편집장님 편집위원님들께서 다독여주시고 이끌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쓴 글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몰라요. 제 마지막 교널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여러분 최고!!
A3. 이번에도 제 갤럭시 S9+가 수고해줬습니다. 표지사진뿐만 아니라 속표지까지 직접 촬영하면서 사진에 대한 갈망도 채울 수 있었고 정말 뿌듯하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끔찍한 촬영 환경에서 각종 소품 구하고 조명(동방 스탠드), 반사판(동방 화이트보드) 들고 도와주신 편집위원 여러분 사랑해요!

 


로운맘
A1. 매번 필명을 바꾸는데 바꿀 때마다 그 당시 좋아하던 최애를 필명으로 쓰고 있어요. 나중에 보면 내가 이 때는 얘를 좋아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ᄏᄏᄏᄏ 그래서 이번 필명은 지금 최애인 로운입니다.
A2. 이번에는 평소 고민하고 관심을 가졌던 주제로 글을 써보았는데 사실 아직도 생각이 진행중이에요. 다음에 저의 생각이 바뀌거나 발전되고 난 후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집니다. 모두들 좋은 기사와 글들을 써내느라 고생 많았어요. 교육저널 최고최고>_<
A3. 막판에 고시생이 된다고 회의와 편집에 소홀했던 점이 마음에 걸리구 정말 죄송스럽네요 ᅲ_ᅲ 저는 이제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교육저널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주제로 교지를 내면서 배운 것도 많고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이번 학기 역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랑해요 교육저널♥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현장실습생 이야기>를 읽고

 

당근

 

허환주,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후마니타스, 2019. 사진출처 : yes24 홈페이지

 

들어가며

 

열여덟은 한국에서 어떤 나이로 그려질까. 고등학교를 다니고, 교복을 입고, 방과후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먹고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열여덟은 꼭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지난호의 학교 밖 청소년들처럼 학교 제도를 거부하거나 탈출하여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꾸리는 이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일터를 갖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 바로 산업체 현장실습을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이 책은 아직 뭘 모르고, 별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나이가 아닌 이들, 열여덟, 많은 고민과 기대를 안고 현장실습을 통해 처음으로 일터에 나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2017년 이후 발생한 현장실습에서의 사고와 죽음들이 공론화되고, 그에 대해 ‘안전한 환경’이라는 요구가 등장한지 한참 지난 작년 말 발행되었다. 몇 년 전, 안전에 대한 문제제기가 빗발치고, 이토록 위험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실습 폐지론이 등장함에 따라 교육부는 이듬해 현장실습을 학습을 중심으로 개편한다. 일을 하면 위험하니까, 주변에서 지켜보고 학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과 학교가 반발에 나섰다. 현장실습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특성화고라는 교육기관의 취지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안전하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진로를 꿈꿀 수 있는 현장실습의 부활을 요구했다. 이 모습은 현장실습에 안전이라는 산업 현장의 문제와
특성화고의 역할과 핵심적으로 연관된 교육의 문제가 동시에 작용함을 보여준다. 즉, 안전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축소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 책은, 현장실습과 이후의 삶에서 목숨을 잃은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이 ‘평범한’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과 얼마나 가깝고 동시에 다른지를 보여준다. 무기력한 학생들,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 열심히 살아왔건만 차별과 배제 앞에서 다시 대학을 꿈꾸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는 현장실습의 문제를 산업안전을 개선하는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간편한’ 인식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사고를 겪은 학생들과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을 연결 짓는 것은,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일상적인 측면을 연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장실습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실습 중인 산업체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나타난 문제이기는 하지만, 결국 특성화 고등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의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안전’만의 문제?


책은 2017년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은주의 이야기, 그리고 일하던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려 지금까지 재활을 하고 있는 영수의 이야기로 화두를 꺼낸다. 이 경우도 ‘사고’로 나타나긴 했지만, 기존에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제기되는 ‘안전한 환경이면 된다.’라는 인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다. 책은 이렇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고의 원인, 혹은 책임이 어디에 있을지를 두고 출발한다.

 

은주의 경우, 정확히 어떤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은주가 높은 노동 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해 왔음은 알 수 있다.

 

은주는 배구선수로 활동하다 특성화고에 진학했고, 특성화고에서는 애견동물과를 전공했다. 여러 반려동물에 대해 다양한 분야를 3년간 배웠다. 그러나 현장실습으로 나간 곳은 통신사 콜센터였다. 은주가 일했던 콜센터에는 매일, 매 시간 채워야 하는 콜수가 있다. 이를 다 채우지 못할 경우 점심시간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을 늦춰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개인별 능력과 연차에 따라 세분화된 목표량이 주어진다. 수시로 개인이 낸 성과에 따라 목표량이 조절된다. 성과는 실시간 순위로 모두에게 공유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은주는 회사 안의 압박 뿐 아니라, 고객의 불만과 압박도 받아내야 하는 세이브 부서, ‘해지 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이 부서의 경우, 고객을 설득해서 해지를 막아내는 비율, 즉 방어율을 기준으로 실적이 계산되고, 이에 따라 월급이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두 번째로 나간 현장실습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린 영수의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책임을 묻는, 학생-학교-기업의 관계에서 현장실습의 동상이몽이 드러난다.

 

업체는 기술자로 키울 학생을 원했다고 한다. 신입사원과 동일한 월급을 주고, 야간 작업이나 잔업을 시키지 않는 등 나름대로의 배려도 했다. 화학공업 계열을 공부하고 나름의 사전 지식이 있는 학생을 찾았고, 일과 사회생활 모두 나름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학생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책에서는 선임이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을 지도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학생이 예상만큼 업체에 잘 적응하지 못 할 때, 또 직무에서뿐 아니라 태도, 인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를 경험할 때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그에 잘 대응할 만큼의 준비가 대부분의 기업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기업이 ‘그런 것까지’ 뒤치다꺼리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할까? 현장실습생을 오래 함께 할 사람으로 보고, 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배려를 해주는 것은 다른 현장실습 환경과 비교하면 괜찮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은 일에서 초보이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일 뿐 아니라, 사회생활, 태도, 가치관 등에서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로도 동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냐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현장실습 업체에서 ‘태도’문제로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학생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담임교사와 학생은 계속하여 현장실습에 관해 소통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 학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책은 영수의 학교가 취업률이 상당히 높은 학교였다고 지적한다. 취업률이 좋다는 것은 언뜻,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배운 것들이 진로와 연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학교가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있다. 평가에 따라 신입생 모집 및 예산지원, 교사 일자리 등에 영향을 받기에 학교는 평가지표인 취업률에 사활을 걸고, 일단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되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현장실습에서 어떤 교육활동이 일어나는지, 학생들은 그 가운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는 담임교사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은주와 영수의 사례는 ‘안전’이 포괄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한 것 같다. 은주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곳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는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왜 계속 버텨야 했는지, 은주의 학교는 현장실습을 진행하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영수는 두 산업체에서 왜 적응하기 힘들어했는지, 영수의 어머니는 왜 현장실습을 다시 나가기를 원했는지 등.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현장실습과 그 전후의 관계와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책은 현장실습을 경험했거나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문제를 확장된 차원에서 고민하고자 한다.

 


‘평범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

 

‘별 문제 없이’ 학교를 다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환경, 진학 이유, 미래 계획은 참 다양하다. 학생들은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서, 똑같은 공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학업경쟁에서 낙오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아서 특성화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기대로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학생들은 많이 실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로나 직무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실용적인 배움은 거의 없었고, 진도를 나가거나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전자기기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면서, 납땜만 시키는 학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수한 학업성적과 좋은 가정환경’을 가진, 특성화고 학생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학생들도 대학 입시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교육환경이 좋은 학교에서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를 하고, 적극적으로 직업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가는 등 특성화고 취지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책은 여러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특성화고를 다닌다는 것이 ‘공부 못 해서 직업계에 진학했고, 기술을 배우고 졸업해서 취직한다.’라는 하나의 서사로 수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성화고의 학생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동기로 학교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교육경험을 마주한다. 이런 다양성은, 학생들의 교육경험, 혹은 넓게는 학업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나 전략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다양한,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과 현장실습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삶을 규정하는 서열

 

이 책은 ‘서열화’로 그 다양성을 설명한다. 고등학교 서열화를 놓고는 주로 특목고, 일반고와 특성화고의 종류가 논의된다. 하지만 서열화는 학교의 종류 이상으로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학교 내에서도 취업률이나 진학률에 따라 학교별로 서열이 매겨진다. 명문학교, 안정적인 학교,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 등. 또 학교 내에서도 특별반의 존재를 통해서, 교실 내에서도 등수나 그에 따라 주어지는 차등적인 기회 등을 통해서 등급이 나뉜다. 이렇듯 교육에서의 서열은 개개인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열어주는 교육공간의 운영원리가 되어왔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성은 제법 간결하게 설명된다. 학업성취를 기준으로 서열화된 환경 속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학생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특성화고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고 시범 사업을 운영하는 더 좋은 학교에 다닐 수도 있고, 그에 수반되는 인턴이나 어학연수 기회, 혹은 대학 진학기회 같은 더 좋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가정환경이나 정보력, 학업 성취에서 주변화된 학생들은 자신을 받아주는 유일한 학교로 진학하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기회를 따라 살아가게 된다. 서열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통제하고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펼치며 진로를 전략적으로 그려나가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자 리가 하나라도 있기를 바란다. 서열체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현장실습의 기회도 자연스레 이러한 서열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산업체도 서열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혹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순으로. 책의 표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이동한다. 대기업과 그 하청 기업인 1차 밴드, 2차 밴드, 3차 밴드 순으로 현장실습의 선택지에는 위계가 있고, ‘명문학교’, ‘전교 1등’부터 우선적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간다.

 

여기서 일찍이 탈락하고 낙오된 학생들은 아마도 더 열악한 환경의 산업체에 놓을 확률이 높다. 안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인력 부족으로 감독할 사람이나 교육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말이다. 이렇듯 서열화 된 교육체제와 산업구조의 만남이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교육경험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위계 속에서 배제되는 학생들이 있고, 낙오되는 삶이 존재하는 배경은 현장실습을 ‘안전’에서 ‘서열’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교육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바라보기

 

그런데 이 책은 서열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 말미의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공교육과정으로서의 현장실습’을 고민하고, ‘학교의 직업교육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살펴’보자고 말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만 확보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도 밝힌다. 그러니까 현장실습은 어떤 교육인가? 무엇을 위한, 무엇을 하는 교육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다. 현장실습이 교육이라면, 지금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점검될 필요가 생긴다. 교육은 기능과 역량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할지를 넘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더 발전된 고민을 할 수 있을
지, 더 좋은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도 고려하고, 학생들이 문제 상황에 대응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현장실습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특성화고의 교육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경엽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단순한 훈련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장 기업에 투입될 수 있는 쉬운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여러 일에 적용되는 기본을 쌓아가도록 할 때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을 직업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이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라는 화두를 던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과제가 중요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공교육으로서 직업교육의 기능과 역할을 점검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 분의 인터뷰는 특성화고 학생에만 관심을 둔 ‘문제없는’ 현장실습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인 ‘좋은 공교육’을 하는 것으로 문제의 초점을 옮길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쁜 현장실습은 나쁜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에서 일어난 사고를 좁게 본다면 해당 산업체가 문제를 개선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서열화된 학교가 있고,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할 역량 대신 취업률에만 집중한 교육이 있다. 현장실습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문제없는 것도 아니다. 사고 없이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디는 성실한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경험하는 교육이 달라질 때, 학교와 교육이 포괄하는 실습과 취업과 같은 더 많은 문제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가며

 

어떤 문제를 접하면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을 지목하고 싶어진다.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문제일수록 결정적 원인을 하나로 꼽는 일은 편리한 인식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측면, 구조적인 배경, 우연히 개입된 상황,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그래서 복잡하지만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비로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터뷰들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단지 좋은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서열화 된 학교, 위계화 된 산업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특성화고의 교육과 현장실습이 크게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열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나쁜 교육에 대한 편리한 변명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취업률을 학교 평가 기준에서 삭제함으로써, 글쓰기 교육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인권 교육을 도입하고 특성화고 졸업생 노조나 권리연합회 등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달라질 수 있는 문제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한편으로 산업안전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지만, 안전의 문제조차도 산업구조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특성화고와 현장실습의 문제에서는 산업안전, 위계화 된 산업구조, 서열화 된 학교, 나쁜 교육의 문제가 다층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안전과 권리가 보장되는 산업 현장을 만들고, 근본적으로 위계화, 서열화 된 산업과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더 나은 공교육을 작동시킴으로써 반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조건을 탓하지 않는 교육, 고단하게 살아가는 동안에 쓸 근육을 길러주는 교육, 세상과 나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육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돌아보다

 

아구몬

 

1. 일련의 청(소)년 안전사고들


2011년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김민재군은 동료에게 구토감을 호소했고, 결국 뇌출혈로 쓰러졌다. 자동차 공정 중에서도 3D라고 불리던 도장 작업에서 그는 주70시간 일12시간의 장시간 교대근무를 했었으며, 현재까지도 투병 중이다.


2012년 12월 울산 신항만에서 한라건설 작업선이 전복되었다. 사망 및 실종된 12명 중에는 현장실습생 3명이 포함되어있었으며, 풍랑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강행했던 것이 사고를 낳았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육가공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계기로 취직하여 일하고 있던 김동준 군은 12시간씩의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그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선임들의 호통과 괴롭힘이었으며, 회식자리에서 뺨을 맞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4년 2월 현대차 헙력업체인 금영ETS 공장에서 밤 내내 내린 폭설로 공장 지붕이 무너졌고, 당시 공장에 남아있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현장실습생은 심야노동과 잔업을 못하게 되어있었음에도 불구, 임금명세서에는 버젓이 해당 내역이 찍혀있었으며, 대피명령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시켜 결국 졸업을 이틀 남긴 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6년 5월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서 한 청년이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중 진입하는 지하철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메트로는 안전관리업무를 싼 값의 용역에 맡겼고, 고장 신고 시 1시간 내 출동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2인 1조가 되어 작업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유품으로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니던 컵라면이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역시 현장 실습을 계기로 해당 업체에 취업했었다.

 

같은 해 같은 달, 현장실습 후 외식업체 토다이에 취업한 한 청년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자살했다. 그의 체중은 스트레스로 인해 10kg까지 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2017년 1월 LG유플러스 협력업체 LB휴넷 콜센터에서 해지방어업무를 수행하던 고3 실습생이 자살하였다. 홍수연 양은 업무의 압박이 상당했으며, ‘콜 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퇴근을 못하고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상당하였다고 한다.

 

2017년 11월 제주도의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 군이 프레스기 오작동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현장실습생 사건사고들

2. 교육문제와 노동문제의 중첩

 

위 일련의 사건들은 우선 사고 대상이 어린 나이의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더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거나,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현장실습과 연계하여 취업한 상태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하청업체’와 ‘협력업체’에서 과중한 업무를 맡아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런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사고들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은 일종의 징후일 것이며, 이를 추적해 증상이 나타나는 곳을 살펴보면 결국 중등교육 단계에서의 직업훈련 문제와 노동 안전 문제 두 가지가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질병 외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971명이며, 이는 OECD중 1위에 해당한다.(1) 경제 규모나 생활수준에 비해 산업 안전의 수준이 미달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들이 안전 관리에 소홀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첫째로 산업구조가 위계화되어있고, 위험요소는 2-3차의 하청업체로 하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사망자의 72%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몰렸다. 소수의 원청업체와 다수의 하청업체로 구성되어있다면, 2-3차업체는 입찰을 받기 위해서 가격 경쟁을 해야 하고, 가격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임금노동자들의 복지와 안전을 갉아먹으면서 확보될 수밖에 없다. 즉, 위험요소가 원청업체에서 하청업체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개인으로 하달되는 것이다. 위의 사고들도 많은 경우 유명 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현대차의 협력업체인 금영ETS,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 LG유플러스의 협력업체 LB휴넷과 같은 경우가 그 예이다. 특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보면, 지하철 안전 관리는 서울메트로의 핵심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저렴한 외주업체에 하청을 주었으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기준도 지키지 못하며 일하게 되는 노동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둘째는 노동자들이 부당하거나 위험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할 여지가 없이 계속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스위스와 같이 정밀한 기계나 자동차를 생산하여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화된 숙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많은 한국의 기업들은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가능한 생산요소로 보게 된다. 따라서 기술인력으로서 경력을 쌓고 성장하여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계획하기보다는 비슷한 환경의 위험한 업체를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을 그만두었 을 때의 사회적 안전망도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선뜻 일을 쉬거나 그만둘 수 없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고, 애초에 직업환경 선택의 폭이 좁다면, 노동자로서는 개
인이 좀 더 조심하며 버티자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육의 영역에서도 특성화고등학교가 ‘불법 파견 업체의 역할을 맡고 있다’(2) 혹은 ‘영세한 업체에게 저임금 근로자를 공급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10명 중 4명에 해당하는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서 일하고, 전남도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서 실시한 실태 조사(3)에 따르면 도제로 나가서 주로 하는 일 중 기타(박스 옮기기, 창고 정리, 지게차 운전 등)가 43%, 청소가 20%, 허드렛일이 12%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즉, 많은 현장실습생들이 실질적으로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업종에 필요한 숙련을 실습을 통해 익힌다기보다는, 그와 관련이 적은 잡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태에 따르면,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통해 단순한 조기 취업 이상의 ‘전문기술 습득’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산업체에 나가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안전관리를 받지 못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 특성화고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은 최근에야 서울시에서는 1년에 2차례로, 현장실습생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4) 지방별로 편차도 크고, 정규교과가 아닌 강당에 모여서 듣는 특강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지 못한다. 때문에 현장실습생들은 폭설 속에서도 심야노동을 거부하지 못하고, 콜센터의 업무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등 위험한 노동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으로서 나간 현장실습생과 졸업 후 취직한 학생들에 대해 교사와 학교가 일차적인 방파제로서 효과적으로 보호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많은 업체들을 현장실습 기업으로 끌어들여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학교의 입장에서는 안전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여부를 보다 소홀히 하게 된다. 학생을 받아주고 취업까지 연계가 되는지가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영세한 사업장에도 무분별하게 학생들이 파견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납땜 등의 현장실습 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단한 안전장비인 마스크조차 구비 되지 못한 환경이 많으며, 교사의 현장실습 공간 관리 감독도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한다.

 

보다 근본적인 중등교육 측면에서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시민, 노동자로서의 학교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등에 대해 역량을 길러주는 공교육 본연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저 학생들을 선별해서 들여온 다음 성적 순으로 선별해서 배출하는 기능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중학교 때의 성적을 바탕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같은 특성화고 내에서도 그 학교의 취업률과 평판, 그리고 학교 유형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특성화고에서도 40% 정도를 차지하는 ‘도제학교’가 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각각의 학교에서 1등급에서 9등급까지의 내신 평가를 받고 이에 따라 또 취업 기회가 여닫히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나 교사나 학교를 다음 단계의 진학 혹은 취업을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배움의 의미는 퇴색되며 자신이 속한 선별적 위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자존감이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청소년 스스로가 학교의 서열에 따라, 자기 성적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제한된 가능성을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기관의 선별적 기능은 대학교를 비롯한 고등학교 서열화에 기여하며, 특히 특성화고등학교는 이미 중학교에서 한 단계의 선별을 거친 후이기 때문에 그것이 심각하다. 예컨대 특성화고 출신은 현장실습생 신분 때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나서도 OO상고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 쉽다. 또한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대학 진학만이 최우선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직업계고등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에 대한 존중보다는 한 차례의 선별에서 밀려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혹은 소위 ‘노는 애들’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할 것이다.

 

 

3. 갈팡질팡하는 정부 대응들

 

일련의 사건들 이후 피해자 유가족과 노동계(5)는 학생들을 위험한 산업 현장으로 내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장실습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교육부는 2018년부터는 현장실습을 ‘학습 중심’으로 축소하고, 6개월이던 현장실습 기간도 3개월로 줄였으며, 현장에서 노동하기보다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계 등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부작용으로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중학생들도 많이 감소했다. 기존의 현장실습생 임금을 대폭 줄여 월 20만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심지어 일부 현장실습생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특성화고등학교 학교장들뿐만 아니라 특성화고 학생 당사자들까지도 반발하여 현장실습을 다시 늘리되 안전 관리 등을 보완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특히 <특성화고 권리 연합회>와 <특성화고 노조> 등은 현장실습 자체의 폐지가 아닌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상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많은 학생들의 목표는 대학 진학보다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것인데, 현장실습이 축소되자 취업의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2019년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보완방안’(6)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축소되었던 현장실습을 원상복구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각 교에 전담 노무사를 배치하여 학생들의 상담을 맡는 한편, 기업 참여를 확대하도록 유인하고, 수당은 증액하여 최저임금의 75%까지 인상하는 것이다. 한편 2019년도 8월에는 ‘일학습병행제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7) ‘도제 학교’는 현장실습과는 다르게 3학년 2학기가 아닌 2학년 때부터 산업체와 학교를 왔다갔다하며 노동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이다. 전체 특성화고의 약 3-40%가 도제학교에 해당하며, 도제학교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 이후 스위스의 직업교육 모델을 본 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일학습병행제 지원에 관한 법률’은 현장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학습근로자’라는 신분을 만들어줌으로써, 산업안전법과 근로기준법의 보호와 참여 기업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직업계고등학교의 종류/갈팡질팡하는 정부대응 

*freepik에서 다운로드한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정부대응을 보면, 중등교육 단계에서의 직업훈련에 대해 분명한 방향이 없이, 각계각층의 요구에 따라 흔들려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잇따른 사고가 발생하자 현장실습 자체를 대폭 축소했다가, 각종 부작용과 특성화고 당사자들의 반발이 나타나자 다시 복원하는 식이다. 특히 최근의 ‘도제학교’와 관련된 법안은 기존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현장실습에 관한 문제는 덮어두고, 특성화고등학교 중에서도 일부인 도제학교를 중심으로 특성화고 정책을 개편해나가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낳는다. 물론 그중에는 각 교에 전담 노무사를 배정한다든지, 학생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해준다든지 하는 진전이 있었으나, 이것이 실효성이 있는지,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아직 현장 실습생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의 수준이라는 점 역시 커다란 한계이다. 왜냐하면 저렴한 임금 때문에 영세한 업체에 공급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하며, 법적으로는 물론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실질적인 임금의 측면에서는 아직 미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제학교’ 중심으로 특성화고정책을 가져가려는 경향은 또 하나의 특성화고 서열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문제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꿔서 소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미 고교다양화 정책에 따라 마이스터고등학교와 특성화고가 나뉜 상황에서, 또 다시 특성화고 중 에서도 40%에 해당하는 도제학교를 만든다면 기존의 고교서열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일학습병행제에 관한 지원 법률’ 제정 당시 국회의 토론회에서는 ‘도제식 교육은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부당 대우를 받거나 제대로된 실습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도제학교를 비롯한 현장실습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도제학교’와 같은 정책을 도입할 때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도 심각한 청년실업과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인해, 독일의 도제교육을 모델로 삼아 정책 차용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영국 역시 노사정의 협력 기반이 닦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의 자율적 영역에 직업훈련 여부가 달려 있었고 결국 기대했던 만큼의 긍정적 효과를 얻지 못한 바 있다.(8) 우리나라의 노동현실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유시장경제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사내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는 1차기업과 그렇지 않은 영세한 2차 기업이 나뉘는 산업구조 하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은 분명했다.

 

이런 갈팡질팡하는 정책방향에도 한 가지 이상은 뚜렷하다. 학생들이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도 바로 사회에 진출하여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분명 사람들의 삶의 경로를 다양하게 한 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대학입시의 병목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상 고졸의 양질의 일자리가 극히 제한되어있다. 비교적 안전하고 해당 직업으로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1차기업, 하사관과 같은 일부 공직 등의 자리에 한정되어있으며, 위 기업에 취업하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각 교에서 손에 꼽는 수준이다. 그렇지 않고 전문대 혹은 일반대학으로 진학하는 특성화고 학생들도 42%에 이르며, 취업률은 50%를 조금 넘긴다. 양질의 일자리에 합류하지 못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편입되는 것이며, 이때 특성화고의 역할은 2-3차기업에게 인력을 소개해주며 학생들의 취업률을 제고해주는 것 이상이 아니게 된다.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 중 소수만이 특성화고의 이상에 맞는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다면, 애초에 중등교육단계에서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을 이원화하여 대략 20%의 학생들로 하여금 직업교육을 받게 하는 것에 의문을 남긴다.



4.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정책적으로 취업률과 현장 안정성의 딜레마가 나타나기 때문에 특성화고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의 조건을 완화하면 안전 기준에 미달하기 쉬워지는 한편, 안전 기준을 높이면 기업의 참여 숫자가 떨어지고 취업률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에서 현장실습에 대해 온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폐지론과 유지론이 맞서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폐지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안정한 산업 구조상 스위스-독일식의 도제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는 일견 일리가 있는 것이 독일과 스위스에서 발달한 산업은 정밀한 기계와 시계, 자동차 등 개별 노동자의 고도화된 숙련이 중요하다. 또 노조의 힘이 강하여 노동자의 권리가 비 교적 잘 보호될 수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조직되어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 미인상분과 기업의 성장이 사회정책으로 활용될 것을 믿고 노사가 협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하청업체로 이뤄져있으며 하청업체에서는 노동자의 개별 숙련이 중요하지 않고, 노조와 사회정책의 힘이 아직 강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처지에 놓인다. 다른 한편 유지론에 따르면 현장실습을 폐지하면 특성화고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학생들은 대학 진학보단 조기 취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삶을 꾸려나갈 것을 선택하고 특성화고에 진학하는데, 현장실습이 폐지되면 이런 기회가 극도로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일차적으로는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하되 안전에 관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을 반성하고, 그렇다고 아예 현재 마련되어있는 현장실습의 통로를 폐지하기보다는 노동 안전에 대해 학교와 교사가 교육하고 관리감독을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입법조사처의 보고서(9)는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인권과 안전 강화, 기업의 환경에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 인력과 예산의 확대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각 교 전담 노무사를 배치하여 학생들과 상담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방향에서 나온 정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의 해결책으로 <특성화고 권리 연합>의 활동을 소개해볼 수 있겠다. 그들은 현장실습 시 마스크 등 안전장비 지급할 것, 양질의 고졸 일자리 마련할 것, 특성화고 출신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것, 교육부와 노동부가 연계하여 중등직업교육을 설계할 것 등을 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기존에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택배기사 등까지도 보호하고자 하는 최근의 <산업안전법> 개정 역시 현장실습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 방향일 것이다.

 

위의 해결책은 기본적이고 바람직하다. 앞서 현장실습 문제를 ‘교육과 노동 문제의 중첩’으로 살핀 바 있는데, 두 가지의 방향에서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의 문제에서 우리는 현장실습 관련 내실있는 프로그램의 미비 외에도, 고교 서열화에 따르는 문제까지도 지적한 바 있다. 즉, 이원화된 중등교육 체계하에서는 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무기력과 제한을 느낄 수 있으며, 졸업하고 나서도 차별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양질의 고졸 일자리가 제한(10)되어, 특성화고의 이상에 맞는 진로는 소수의 학생들만이 가져가게 된다는 지적도 한 바 있었다. 이러한 중등 교육 단계에서의 분리된 직업 교육 자체의 한계는 ‘중등교육 일원화’라는 장기적인 제안을 생각해보게 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중등단계의 직업교육은 직업인의 소양을 강조하는 인문교육 과의 통합으로 가고 있다.(11) 일반계고등학교에서 직업적인 훈련을 받거나, 위탁교육을 받는 경우도 많으며, 다른 한편 직업계고등학교에서도 일반 인문교육이 강조되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고학력화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전문계고등학교를 기반으로 한 중등단계의 직업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도제 교육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도, 생애 초기의 선택 외에 평생교육에는 취약하기 때문에 지식 정보산업의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된 바 있다.(12) 특히, 중등교육단계에서 전체 학생의 50% 이상이 도제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과 스위스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약 20% 정도의 학생만이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등교육을 일원화하여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진학 혹은 취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정책은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는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고교 학점제, 문이과 통합, 외고 및 자사고 폐지 등의 다른 중등교육 관련 정책과 잘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필수 이수 과목으로 인문 교양 및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기초과목을 설정하고, 이외 선택적으로 진학 혹은 취업에 관련된 커리큘럼을 개설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보다 학생들의 자유도가 높아질 것이다. 높아진 자유도만큼 수업의 효용도 더 증진될 것이고, 학교들과 지역사회 및 기업들의 클러스터들을 구성하여 자체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교 2학년 때부터 문과와 이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학과 취업을 선택하는 한편, 외고 및 자사고 폐지 정책과 함께라면 견고한 고교서열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1) 프레시안, <산업재해 사망자 줄이기 위한 핵심 전략은?> 2019. 07.29. 

(2) 2017년 광주지역 현장실습 실태 조사 후 한 노무사가 한 말 
(3) <일학습병행제법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2019.08.20. 여영국, 이정미, 박주민 의원. 

(4) 인권도시연구소 <서울시, 모든 특성화고에 노동인권교육>, 2019-04-10. 
http://hrcity.or.kr/bbs/board.php?bo_table=B02&wr_id=2838 

(5) <현장실습 대응회의> : 금속노조,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대 

(6) https://www.moe.go.kr/boardCnts/view.do?boardID=294&boardSeq=76654&lev=0&searchType=n 
ull&statusYN=W&page=1&s=moe&m=020402&opType=N 
(7) 뉴스1, <일학습 병행사업, 6년 만에 법적근거 마련...국회통과>

(8) 정주연, 최희선, <도제훈련제도의 국가별 특성 및 한국직업훈련제도 개편에 대한 시사점>. 2013. 

(9) 조인식,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2017.12.28. 국회입법조사처. 

(10) 한국일보, <아무리 일해도 가난한, 나는 고졸입니다> 2017.12.02.
(11) 송창용, 김민경, <주요국의 직업교육 동향>,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09.
(12) The Economist, "Lifelong learning is becoming an economic imperative". 2017.01.12.

우리 사회는 흔히 대학 입시의 공정성, 사교육 억제 등과 관련해서만 '교육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불거진 '정시vs수시 논쟁'이나, 고위층의 부정입학 의혹 등을 보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합의 규칙과 공정함에만 몰두하는 것은 교육을 하나의 시합으로만 보게 합니다.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특히 이번 호에서는 '대입 공정성'보다 넓은 공정함을 생각해보고자, 특성화고의 문제에 대해서 다룹니다.

속표지의 마스크와 목장갑은 특정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상징합니다. 현장실습에 파견 나간 학생들의 각종 사고는 지난 10년간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돌아보다>에서는 문제의 원인과 그동안 어떤 해결책이 있어왔는지를 살피고,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을 제안합니다. 아직까지 현장실습 문제에 대해서는 폐지론과 유지론이 강력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해당 문제는 '계류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 현장 실습생 이야기"를 읽고>에서는 서열화된 학교 체계 하에서 일터로 보내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엾은 내 인권규범, 옥천허브에 갇혔네
인권 가이드라인의 지난한 역사와 그 함의

존 캘리포니아 롤즈

 


인권이 실현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허용되는지, 어떤 행위를 용납될 수 없는지를 규정하는 규칙을 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교내에서도 이를 위한 노력이 산발적이나마 이루어져왔다. 2019년 11월 24일 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대한 토론회에서 공개된 인권규범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권규범의 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지만 세상의 빛을 보기 전까지 인권규범이 걸어온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과정은 교내 인권 논의와 실천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 누구의 목소리로 어떤 형태를 띠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가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그 지난한 역사와 모습을 되짚어본다.

 

 

1. 인권 가이드라인의 등장 - 13년 인권센터의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6년 총학생회(회장 김보미)의 주도로 ‘인권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 그러나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이 처음부터 학생사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3년 인권센터 주도로 이루어졌다. 2012년 여름 ‘서울대 대학원 성폭력 사건’(2)을 계기로 대학원생 인권침해의 심각성이 문제로 떠올랐고, 가을에 진행된 인권센터의 설문조사에서 각종 피해실상이 드러나(3) 인권센터의 주도로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이 결정되었다.

13년 10월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권센터가 작성한 가이드라인의 초안이 공개됐다.(4) 초안은 교원과 학생, 직원, 외부 인권전문가, 인권센터장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검토회의에서 만들어졌는데, 자기결정권,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현재는 인권센터에도 13년 당시의 초안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기사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정이 있는 기혼자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고려해 만들어진 조항으로 대학원생의 인권침해 피해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안건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정기적으로 인권 교육을 받는다(제17조)”는 내용에서 이 인권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권한과 역량이 있는 학교 당국의 주도로, 혹은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관에서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5) 그리고 이는 이후 교내 인권정책에서 의무화된 인권센터 주관 인권/성평등교육으로 이어졌다(마이스누 포털에 접속하면 팝업창으로 뜨는 바로 그 교육이다). 그러나 이렇게 논의된 인권 가이드라인은 그 주체, 적용 범위 등을 두고 논의가 계속되다 본부 회의에서 반려되어 결국에는 공식적으로 제정되지 못했다.


2. 인권 가이드라인, 학생에 의해 제정되다 - 16년 9월 학생사회 인권 가이드라인

 

인권 가이드라인은 흐지부지 없는 일이 되었지만 인권침해는 휴가도 가지 않고 휴식기도 가지지 않고 성실히 이루어지는 법이다. 14년에는 수리과학부 K교수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고,(6) 15년에는 경영대 P교수가 성추행 가해 사실로 인해 파면되었다.(7)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학생사회는 각종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할 수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16년 3월에는 김보미 당시 총학생회장의 주도로 인권 가이드라인의 제정 주체가 학생이 되었다.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에 학생이 참여해도 여전히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전의 인권센터 주도 인권 가이드라인은 태생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제정 주체가 학생이 되면서 기존의 인권 가이드라인과 방향성에 있어 차이점을 두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열린 토론회에서 김보미 전 총학생회장은 피해 구제 수단과 처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할 계획임을 밝혔다.(8) 단순한 지침서를 떠나 피해를 구제하고 필요할 경우 처벌에 대해서도 지침이 될 수 있는,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학생이 주도했기에 가능했던 인권 가이드라인

 

16년 9월 25일 총학생회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인권 가이드라인이 채택됐다. 해당 안을 15년 2월 인권센터 운영위원회에서 다루어진 논의안과 비교해보면 크게 두 가지의 의미있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제13조 [노동과 업무에 관한 권리]로, 15년의 인권센터 논의안에도 있었던 항목이지만 둘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점이 보인다.

 

15년 논의안
제10조 [근로의 권리]
구성원은 근로, 교육 및 연 활동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16년 제정안
제13조 [노동과 업무에 관한 권리]
①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국내법이 보장하며 세계인권선언이 권장하는 노동의 권리를 가진다.
② 강의·연구지원 조교, 연구원 및 장학금 수령에 따른 반대급부로 특정한 근무의 의무를 갖는 이를 포함해 학내에서 교육 및 연구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근무시간·근무기간·업무유형·수당·수당지급 시기와 같이 근무조건을 구성하는 핵심정보를 사전에 서면으로 통보받을 권리를 가진다.

③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사적업무강요를 비롯해 사전에 동의하지 않은 업무·심부름에 대한 지시 및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이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인권센터 논의안에서는 근로에 따른 합당할 대우를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대학원생 노동권 보호를 위한 조항으로 보인다). 16년 학생사회 제정안은 이를 확장해 단순한 대우의 권리뿐만 아니라 노동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할 것을 명시했으며, 용어도 근로가 아닌 노동으로 바꾸었다. 다음은 제13조에 대한 해설문의 일부이다.(9)

 
‘근로’는 고용인 입장의 표현인데 반해, ‘노동’은 피고용인 입장에서의 표현이다. 인권 가이드 라인은 피고용인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하나의 주체라는 점에서 ‘근로’가 아닌 ‘노동’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중략) 제13조는 노동의 종류와 고용 형태를 막론하고 서울대학교 내의 노동의 주체로서 모든 구성원이 가지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위에 언급한 노동의 주체들은 모두 제13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중략) 인권가이드라인의 다른 조항들도 마찬가지지만, 제13조에 포함된 권리들은 단순히 이름뿐인 권리가 아니라 실제로 학내 노동의 주체들을 보호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 기준을 준수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노동과 관련된 국내의 법률들과 국제 협약들이 제정된 목적을 고려하여 구성원이 노동의 주체로서 가지는 권리들을 학내에서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이행할 책임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부속기관, 단과대학, 연구소의 인사권자, 교원, 학내 입점 업체의 사업주, 서울대학교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서울대학교 측에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변화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교내의 다양한 노동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사회가 주체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제16조 [문제제기를 할 권리]이다. 이는 15년 인권센터 운영위원회 논의안에는 없었던 항목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6조 (문제제기를 할 권리)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당사자 혹은 제3자로서 본 문서에 기술된 권리의 침해 및 기타 부당한 처우를 인지했을 때, 여기에 대하여 사회적/공적으로 문제 제기 할 권리를 가진다.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는 문제 제기 자체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며, 서울대학교 및 다른 구성원은 이러한 권리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
문제제기 당사자가 공적 처리과정을 이용할 경우, 그는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적절한 절차에 따라 제출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합리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신상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 항목은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교내 각종 가이드라인과 규범 중에서 처음으로 성문화된 경우이며, 16년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안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16년 인권 가이드라인은 학생사회, 학교 공동체 내에서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사후처리 과정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권리와 보호받아야 하는 사항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문서였다.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계속 의심당하고 묵살되었던 권리를 문서로 기록해 ‘조용히 있지 왜 굳이 나서서 문제를 만드느냐’는 시비에 대꾸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해당 제정안이 목표로 하는 인권침해사항에 대한 해결의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음은 제16조에 대한 해설이다. “제20조 1항은 구성원이 인권을 침해당한 경우 자치조직, 소속 부서, 인권센터 등에 구제조치를 요청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권 침해의 구제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공론화를 통한 비슷한 종류의 사건 재발 방지, 공동체적 문제 해결 등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미흡하다.” 기존의 사건 해결이 제도에 의존하는 사후처리적 성격을 띠었지만, 학생사회에서는 공동체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인권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 자체가 목표임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인권 가이드라인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방향성이기도 했다. 해설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권센터의 해결 과정에 사법적 처리가 존재하며, 인권 가이드라인은 사법적 효력 보다는 공론화, 공동체적 해결 등 사회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적 해결은 사회대 학생회의 반성폭력 회칙에서 언급된 개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3년 9월 개정된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반성폭력학생회칙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의 권리와 삶이 훼손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공동체가 성폭력을 용인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재발을 막기 위한 변화를 도모함”으로 규정한다.(10) 단순히 가해자 한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짓지 않고 공동체의 문화와 구조의 차원에서 책임을 묻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16년 인권 가이드라인
은 이와 마찬가지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단순히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학생사회의 차원에서 서울대학교를 인권이 존중되고 실현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6년 10월 본부에 제정안을 전달해 인권 가이드라인을 확정해야 했지만 시흥캠퍼스 사태로 인해 인권 가이드라인은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후 인권 가이드라인은 갈 곳을 잃었고 교내 구성원의 인권도 마찬가지였다. 18년 H교수 사건은 3개월 정직으로 끝났고, 19년 서어서문학과 A교수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학생사회의 의견이 반영될 길이 없어 연구실의 학생공간 전환 등의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다시 인권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3. 인권 가이드라인, 인권 ‘규범’으로 부활하다 - 19년 11월 인권헌장


더 이상 학생이 주도가 아닌 인권규범, 아쉬운 면을 보이다

 

2019년 3월, 인권 가이드라인이 인권센터 주도로 다시 제정된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11월에 인권센터 주최 토론회에서 ‘인권 규범’의 초안이 공개됐다. 이 초안을 작성한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제정에 관한 연구팀은 교수 네 명, 인권센터 전문위원 한 명, 총학생회장과 대학원 총학생회 대표, 대학원생 세 명 총 열 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인권센터에서 제공받은 20년 1월 8일자 수정안(내부 논의용이며, 1월 30일에 수정안을 발전시킨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안)을 수록한 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을 16년 학생사회 제정안과 비교해봤을 때 큰 틀은 비슷하지만 크게 두 가지의 차이점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로 16년 제정안의 제13조 [노동과 업무에 관한 권리]가 20년 1월 수정안에서는 제7조 [연구, 교육, 직무 수행 조건에
대한 권리]로 축소되었다. 다음은 제7조의 전문이다.

 

제7조 [연구, 교육, 직무 수행 조건에 대한 권리]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조건에서 연구, 교육 및 직무를 수행할 권리를 가진다.

서울대학교는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 정당한 보수, 적절한 휴게시간·휴일·휴가,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적절한 지원, 장애에 대한 편의 등을 보장하여야 한다.

 

15년 논의안의 제10조 [근로의 권리]에서 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수에 대한 권리만 명시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적절한 휴가와 출산, 육아에 대한 지원 등으로 확대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지만 16년 제정안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해당 항목에 대해 연구책임자 송지우 교수에게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노동권을 다루는 핵심 조항은 7조입니다. 물론 다른 조항-가령 건강권,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도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차원에서 유관하겠습니다.”(11)

 

두 번째로, 16년도 제정안의 제16조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20년도 인권헌장 수정안에서는 삭제되어있다. 16년도 제정안의 제16조가 제20조 [인권침해의 예방 및 구제]의 “1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본 문서에 기술된 권리를 침해당했을 시 자치조직, 소속부서 등의 유관기관 또는 인권센터에 구제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항목에서 파생되어 공동체적 해결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되었음을 고려했을 때, 이와 같은 변화는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20년 1월 수정안의 제18조의 내용과 겹친다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인권 가이드라인(또는 헌장)에 있어 필수적인 조항은 아니었으나, 즉 이 권리가 따로 명시되지 않아도 피해에 대한 구제와 해결이 가능하지만 인권이 실현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음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다음은 20년 1월 수정안 제18조의 전문이다.
제18조 (침해와 구제)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이 헌장에 규정된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이에 대해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서울대학교는 이 헌장에 규정된 권리의 침해가 발생하였을 때 효과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절차를 확립·시행하여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제2항의 절차에서 사안 당사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보장하고 사안 관련자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한다.

④서울대학교는 인권침해의 구제절차 등에 관한 정보를 구성원에게 알기 쉽게 제공하여야한다.

 

정리해보자면, 비록 대학본부에 직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가진 기관인 인권센터에서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사회가 온전히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만큼 내용의 급진성 측면에서 20년 1월 인권헌장 수정안은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인권 ‘규범’으로의 변화 -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9년 11월 15일 열린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발표와 토론회. 출처 : 서울대학교인권센터홈페이지

그러나 그 어떤 조항보다도 눈에 띠는 변화는 인권 “규범”이라는 이름이다. 기존의 인권 가이드라인은 규칙이나 규범이라기보다는 느슨한 의미의 지침에 가까운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인권센터의 해결 과정에 사법적 처리가 존재하며, 인권 가이드라인은 사법적 효력 보다는 공론화, 공동체적 해결 등 사회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라는 해설문에서 볼 수 있듯 인권 가이드라인으로 실제 처벌을 규정하거나 사법적 효력을 가져 규범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인권 가이드라인의 내용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인권 존중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이러한 인권 가이드라인의 이름이 인권 규범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비록 그 내용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이제는 구속력과 실효성을 가지는 방향성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인권센터에서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설문조사에서 구성원의 요구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무엇보다도 인권규범이 강제력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인권규범이 공식적인 학내 규범으로 통과됐을 때 그 실효성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54%가 인권규범을 학칙으로 제정하는 것을 강제하는 ‘인권규범의 구속력 강화’를, 53.1%가 ‘인권규범 위반 시 제재 및 권리구제 규정의 명문화’를 선택했다.(12)

 

인권 가이드라인에서 인권규범으로의 변화를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다.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는 “‘헌장’이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고 지적하며 “대학의 가장 큰 가치는 자유, 창의, 상상이며 인권 규범이 대학 사회에서 후진적인 것일 수 있음을 주장”하고, “더불어 서구 대학에서 상위규범인 헌장을 제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규범이 스스로에 올무가 되는 규범일 수 있음을 우려”했다.(13) 


이 발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인권규범의 존재가 과연 자율이라는 가치와 양립 불가능한지를 검토해보자. 이 질문에 대해 인권헌장 제정 연구책임자 송지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자유의 중요성이 규범에 반영되었으며, 헌장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은 모두의 평등한 자유와 양립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로, 특별히 급진적이지 않은 칸트적 자유”라고 답했다. 자율, 특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자율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의 자율 개념을 짚어보자.

 

자율은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행동의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는 일이다. 인권이라는 가치에 입각해 행동과 일의 규칙을 정하고 그것에 따른다면, 즉 인권규범을 제정해 이를 준수한다면 질문에서 말하는 자율을 최대로 실현하는 셈이다. 인권규범은 공동체적 해결, 자율적 해결을 위한 밑바탕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인권규범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기존의 피해와 인권침해가 계속된다면 이것이 과연 대학의 자율이 실현되는 광경일까.

 


현재 가능한 인권규범의 역할 - 실효성 있는 기준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토론회에서의 질문 내용에서 볼 수 있듯, 인권헌장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인권규범이 마치 ‘인권독재’의 시작인 것 마냥 그려진다. (당장 인권헌장에 대한 대학신문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보수 기독교 세력이 동성애 독재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인권헌장의 제정을 찬성하는 측에서도 인권헌장에 대해 마치 법이나 학칙과도 같은 구속력을 기대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인권규범이 법은 아니다. 기존의 학칙, 헌장과 비슷한 구속력을 공식적으로 가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 수강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리는 온라인 강의 하나(위에서 언급한 인권센터 주관 인권/성평등교육)를 의무화하는 데도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인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공식적인 구속력을 가진 규범으로 만들기에는 또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소진될 것이다. 인권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으로서 인권헌장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의 역할이다. 최근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해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의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을 때, 그 (표면상의)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인권헌장이 그 관련 규정이 될 수 있다. 인권헌장제정 이후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해결과 가해자 처벌 과정에서 인권규범이 기준이 되어 그 결과가 문서로 남고, 이 선례를 바탕으로 추후 사건에 대해서도 인권규범이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 현재 가능한 인권헌장의 역할이다. 결과적으로 인권헌장의 내용이 공동체의 기준이 되기를, 인권을 말할 때면 언제나 물고 늘어지는 그 ‘합의’의 내용이 되는 것이 인권헌장의 바람직한 활용 방안이다.

 

인권헌장은 학생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못하는 학칙, 서울대 헌장 등에서 고려하지 않는 권력과 차별의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성문화한 거의 최초이자 유일한 문서이다. 잠시 세계인권선언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세계인권선언은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그 내용을 어겼다고 해서 이것 하나에 근거해 누군가가 사람을 잡으러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은 세계 모든 곳에서 인권침해를 예방할 때에 근거가 된다. 그 자체로 절대적인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에 권리를 보호하는 보편적인 근거가 되어준다.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대접받아야하는지, 세계가 인간의 삶에 있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인권헌장은 서울대학교의 세계인권선언이다. 인권헌장은 서울대학교를 어떤 학교로 만들어갈지, 어떤 공간이 되어야할지를 이야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조이자 방향성의 제시이다.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과연 이 공간을 학교라고 불러도 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1) “대학 내에서 학생들이 마주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학생사회의 공론화가 필요하다”,「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주체 학생사회로 넘어와」, 『대학신문』, 2016.03.20. 
(2) 석사과정 재학생 A씨가 박사과정 선배 B씨를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으나 B씨가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 
(3) 「서울대 총학 "'대학원 성폭력', 학교가 해결하라"」, 『머니투데이』, 2012.09.25 
(4) 「인권 가이드라인, 베일을 벗다」, 『대학신문』, 2013.10.13. 
(5) 이 조항의 제정에는 여성가족부의 '2012년 대학 성희롱 예방 교육실시 현황' 자료에서 서울대의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율이 29.1%를 기록하고, ‘2013년 대학 성희롱 방지 조치’ 자료에서도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율이 전국 416개 대학 중 400위를 기록한 것이 영향을 준 듯 하다. 
「"대학 교직원 절반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 안받아"」, 『뉴스1』, 2013.08.09 
「서울대,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율 416개 대학 중 400등」, 『한겨레신문』, 2014.12.01 

(6) 「'상습 강제추행'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구속기소」, 『연합뉴스』, 2014.12.22 
(7) 「서울대, 경영대 성추행 교수 파면」, 『국민일보』, 2015.06.09 
(8)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주체 학생사회로 넘어와」, 『대학신문』, 2016.03.20 

(9) 「인권 가이드라인 전문 및 해설서」, 『대학신문』, 2016.09.25. 

(10)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반성폭력학생회칙」, 2013.09.27. 개정, http://so.jinbo.net/document_srl=111549 

(11) 회신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권리의 차원에서 유관하겠습니다”의 오기로 보인다. 

(12) 「인권규범 설문조사, 전체 결과는?」, 『대학신문』, 2016.09.25. 
(13) 김현우, 「[후기]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 발표와 토론회」,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홈페이지

http://hrc.snu.ac.kr/board/news/view/3335 

 

 

 

 

대학의 인권교육
: 누가, 무엇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 것 일까?

하인자

 


1. '연세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6일, 연세대학교는 공식홈페이지를 통하여 ‘연세정신과 인권’이라는 강좌의 개설을 예고했다. 연세대학교 측은 2018년 10월부터 본 인권강좌 개설을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약 1년 동안 전문가들이 체계적인 강좌 개발 단계를 거치며 본 강좌를 만든 만큼 본 강좌는 검증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1) 그리고 이 강좌는 전체 학부 신입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필수교양교과목’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바로 다음날 7일부터 논란의 소재가 되었다. 왜냐하면 ‘연세정신과 인권’ 강좌 계획 중 젠더와 난민에 대한 교육이 성소수자나 무슬림 난민을 다루는 데에 있어 편향적인 시각에서 전달되거나 연세의 기독교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논란은 한 달 넘게 지속되며 주로 외부의 개신교/보수 단체들로 구성된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모임’이 결성되었다. 나아가 이들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인권강좌’를 비판하는 성명이 두 차례나 나오게 되었다. 비록 연세대학교는 이러한 외부의 반대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연세대학교 측은 9월 9일에 ‘필수’ 인권강좌 개설을 보류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10일 뒤에는 ‘필수’ 강좌 개설을 철회하고 ‘선택’ 교양 교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대학교는 ‘연세정신과 인권 (The Spirit of Yonsei & Human Rights)’ 온라인 교과목을 마련함으로써, 학생들이 인간에 대한 차별 없는 보편적인 사랑을 체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할 방침입니다. (중략) 본 교과목은 2019학년도 2학기에 선택과목으로 시범 운영되며, 수강생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학사제도운영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교과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갈 것입니다. 추후 학사제도운영위원회와 교무위원회의 협의를 통해 본 강좌의 선택/필수 교과목 지정여부를 정할 것입니다.”

-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연세정신과 인권’ 교과목 안내> 중 (2019.9.9.)



“교양 교과목 운영 체계에 대한 '학사제도운영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2020학년도부터 이 교과목을 선택 교양 교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연세정신과 인권’ 교과목 추가 안내> 중 (2019.9.19.)

 

‘연세정신과 인권’을 필수교양으로 개설하는 것을 반대한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선교사들이 지은 연세대학교의 정신을 강조하며 이러한 정신을 훼손할 여지가 많은 강좌의 개설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연세대학교의 특수한 정신(기독교적 정신) 때문에 인권강좌의 필수화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은 그들이 나름대로 규정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권’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장문에서 ‘전 세계의 인권흐름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2)’을 연세대학교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사회학적 성(Gender)을 기준으로 가르치는 잘못된 인권교육인 ‘성평등 교육’이 아닌 생물학적 성(Sex)을 기준으로 가르치는 올바른 ‘양성평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무조건적인 난민수용주의자’로 보이는 김현미 교수의 편향적 교육이 우려된다고 언급하며 결국 조건적인 난민수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시에 학내에서는 반대로 연세대학교 본부가 ‘연세정신과 인권’을 선택교양교과목으로 전환한 것이 대학이 외압에 굴복하여 스스로 인권이라는 가치를 저버린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특히 연세대학교의 학생들은 <'연세정신과 인권' 수업 필수과목 지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려 교과과정 결정에 있어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2년에 걸쳐 준비해온 ‘인권교육’이 외압에 의해 1달 만에 철회되었다며 현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다.(3)

 


2. 데자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마도 어떤 이들에게는 ‘연세정신과 인권’이 필수교양에서 선택교양으로 전환된 과정이 낯설지 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수교양으로 제시되었던 인권강좌가 ‘특정한 내용’이 강좌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선택강좌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2018년 2월에 서울대에서 위와 굉장히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모든 구성원이 매년 필수로 들어야 하는 「온라인/오프라인 인권/성 평등 교육」 강좌 개설을 제안했었다. 당시 평의원회의 ‘환경문화복지위원회’와 ‘본 회의’에서 두 차례로 필수 인권 강좌를 개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당시 환경문화복지위원회 회의에서는 본 강좌의 교육내용이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인권문제들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성평등’이 아닌 좀 더 공식적인 표현으로 ‘양성평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발언이나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기 위해서는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발언 등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성 평등 교육과 젠더 교육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본 교육은 ‘성 평등/인권’ 교육으로만 제한하여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가정폭력 등만을 다루기”를 요청하기도 했다.(4)

왜 이러한 주장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전반적인 회의록의 내용을 보았을 때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다루지 않을 시 그러한 내용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온라인/오프라인 인권/성평등 교육」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합의된 내용들을 제한적으로 다룰 때에만 필수화가 가능하고, 그 전까지는 본 교육에 대한 이수를 권장하는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사례가 굉장히 유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선 서울대학교는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기획하였지만 연세대학교는 학부생 중에서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계획했다는 점에서 인권교육의 대상이 다르다. 한편 인권교육을 기획한 주체 역시 다르다. 연세대학교는 교수진을 중심으로 학교본부 내 교육처에서 수업을 기획하였지만 서울대학교는 일정 정도 학교 행정본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인 교내 ‘인권센터’에서 기획을 주관했다. 이는 인권교육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낳았다. 왜냐하면 연세대학교(측은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지만)는 내부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권교육에 대해서 합의를 이루어내었지만 외부세력에 의해 인권교육 필수화가
저지되었고, 서울대학교는 내부에서부터 인권교육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서울대학교 내부에서 인권교육 필수화를 반대한 이들의 주된 주장은 ‘특정한 내용들’에 대해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 사회란 서울대학교 외부까지를 포함한 ‘전체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에 ‘연세정신과 인권’의 필수화를 반대했던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모임’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모임’은 ‘동성애’, ‘난민’ 등 특정인권의제가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실제로 현실에서 증명한 사례인 것일까? 과연 정말로 ‘동성애’ 등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인권교육은 무엇인지, ‘합의된 인권’을 중심으로 대학 내 인권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마이스누 팝업창 캡쳐본

 


3. 미리 보는 ‘연세정신과 인권’
연세대학교보다 먼저 인권교육 필수화 논란을 겪었던 서울대학교. 이후 ‘인권/성 평등 교육’이 진행되어 온 지 벌써 2년이 되어가고 있다. 약 2년간 ‘권장이수 강좌’로 실시되어 온 서울대학교 「온라인/오프라인 인권/성평등 교육」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마이스누(서울대학교 포털시스템)’ 사용자 중 위의 팝업창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용/채용 조건을 통하여 어느 정도 강제적인 기준이 적용되는 교원 및 직원을 제외한 재학생 중 ‘인권/성 평등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약 20%(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5) 이조차도 실은 전체 네 분야(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의 강좌 중 한 분야라도 이수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6)

이는 2018년에 인권교육 필수화를 도입하려던 시도의 배경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서울대학교의 낮은 인권교육 이수율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서울대저널(교내자치언론)’(‘인권교육 필수화, 내용이 문제야, 방법이 문제야?’ 2018.4.11.)은 인권교육 필수화 시도의 배경 중 하나로 서울대학교의 낮은 인권교육 이수율을 지적하며 ‘2013년 대학 성희롱 방지 조치 자료’라는 제목의 여성가족부 보고서의 결과를 제시했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에도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인권교육 이수율은 30%이내에 불과했고 전체 구성원의 인권교육 이수율 역시 전국 대학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에 속해 있었다.(7)

결국, 대학 공동체의 인권의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된 인권교육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의 교육은 필수화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라 또 다시 파편화된 개인들의 선택지로 남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선례를 보면 선택교양으로 전환된 연세대학교의 ‘연세정신과 인권’ 강좌 역시 실질적으로 공동체의 인권의식을 증진시키는데 얼마나 유효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강좌의 이수율 만으로 인권교육의 교육적 효과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현재 진행되는 인권교육은 형식적으로는 제한된 방식을 택하게 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문제가 되었던 특정한 내용’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인권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풍부하더라도 실제로 강좌를 접하는 사람의 수가 적다면 강좌가 공동체 내에서 실질적인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내용적으로 축소되지 않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 축소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형식적으로 축소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용적으로 축소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재 서울대와 연세대의 인권교육이 놓여있는 상황과 다름없다. 어떠한 선택이든 인권교육의 후퇴와 축소를 야기한다.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무엇일까? 바로 ‘합의되지 않은 인권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4. 합의된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법’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거나 특정한 인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야 비로소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보편적인 인권교육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국민들이 합의를 이룬 의제만을 ‘인권’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인권’의 개념과 역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인권의제를 다룰 때 가장 많이 다루는 장애인권, 여성인권을 예로 살펴보자. 장애인의무고용제도, 경력단절여성 지원제도 등은 처음부터 법과 제도로 존재했었나? 그렇지 않다. 지금은 꽤나 보편적으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인정받는 제도들도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장애인권, 여성인권도 ‘인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권’으로 조금씩 인정받고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하는 법과 제도들이 탄생하였겠는가? 법과 제도에 앞서 ‘인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당사자들 또는 연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선행되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 등을 기준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인권만을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학의 ‘인권교육’이 언제나 ‘사회’의 흐름보다 한 발 짝 늦어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또한 그러한 주장은 인권침해사건을 예방하고, 공동체의 인권의식을 증진시키겠다는 보편적인 인권교육의 목적과 완전히 대치하게 된다. 법과 제도로 규정된 ‘인권침해’ 사안만을 예방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인 예방이며 실질적으로 사후에 법정에서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된 이후에야 그에 대한 내용을 교육하겠다는 것으로 진정한 예방이 될 수 없다. 또한, 이미 법과 제도로 규정된 ‘인권’에 대해서만 교육한다면 ‘인권’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할 여지가 굉장히 적어짐으로써 적극적으로 인권의식을 증진시키고 촉발시킬 수 없다.


만약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준이 법과 제도가 아니라면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대중의 인식? 이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연세대학교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학 내부에서는 나름의 합의를 보았지만 외부의 특정한 의견을 가진 이들은 합의의 내용에 대해 반대를 한다. 이러한 세력의 존재가 바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일까?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단순하게 모든 구성원들의 동의로만 해석한다면 사회적 합의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회를 대한민국 사회로만 한정 짓는다고 하더라도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는 그러한 규범적 주장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의된 인권’이라는 것은 분명 제한된 인권을 제시하며 그 자체로 인권의 개념을 왜곡하고 있거나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을 명분 삼아 특정한 인권을 반대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5. 인권교육, 필수화된다면 완성된 것일까?
돌아와서, 연세대의 ‘연세정신과 인권’, 서울대의 ‘인권/성평등 교육’이 필수에서 선택 강좌가 된 과정을 되짚어 보자. 이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거나 사회적 합의가 일어나기까지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학 내 인권교육에 대하여 계속 사회적 합의가 제약으로서 적용된다면 시대가 변해 특정한 내용이 보편적인 인권으로 인식되어 인권교육의 내용으로 담길 수는 있어도 새롭게 등장하는 의제는 또 다시 사회적 합의의 굴레에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 적용된 ‘합의된 인권’의 개념은 사회를 뒤따라가는 것에 불과하여 대학의 교육적 역할을 저지하고, 피교육자들에게 마치 ‘인권’이 어떤 고정된 개념인 것처럼 이해되게 만들고, 차별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회 내 다양한 의견차와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권교육은 어떻게 구성되어야하는 것 일까? 완성된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듯이 완전한 ‘인권교육’을 제안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의 인권교육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라는 굴레를 벗어나면서 동시에 실질적으로 인권침해사건을 예방하고 대학 내 인권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서울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인권/성평등 교육’이 필수화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인권침해사안을 예방하고 인권의식을 증진시키는 것이 충분한가? ‘온라인 인권/성평등 교육’을 수강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명료하게 답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강좌를 수강해보면 인권센터에서 내용적으로 굉장한 노력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다. 내용도 좋고 영상의 기술적 화려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에 어떤 방식으로 유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 시간이 지나다보면 졸리기도 하고 또는 강좌를 켜둔 상태로 나는 다른 할 일을 하고 수강을 완료한 척 꼼수를 부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필수화가 된다면 대부분이 이럴 것이다.) 이는 온라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강의식 수업에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비슷할 것이다. 이는 지식전달 방식의 ‘인권교육’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이는 인권교육의 목표가 실질적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에 있는 만큼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라는 세계인권선언문의 선언이 반드시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기본권을 누리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선언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은 인권교육으로서 충분하지 못한 것과 같다. 즉 우리는 인권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세계인권선언문에 비유해보자면 인권선언을 문자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인권선언이 실현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학은 이를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 가르치는 사람을 정하고, 인권의 ‘주제/의제’를 선별해야 하는 그런 방식의 교육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성원들이 인권을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크게 필요하다. 차별과 폭력 등 인권 침해 사안을 예방하는 또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제도나 규범을 만들고 수정하는 데에 있어서 더 많은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구성원들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현하는 인권의 범위가 캠퍼스 안으로 국한될 수 없기에 대학은 지역 참여적이고 사회참여적인 교육들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결국, 기존에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간의 수직적인 구도를 필요로 하고, 정해진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내용을 제한적으로 선별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의 인권교육은 그 자체로 언제나 인권을 누가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대학은 스스로 제한된 내용과 형식을 요청해오던 기존의 인권교육의 틀을 탈피함으로써 일련의 대학가에 있었던 인권교육을 둘러싼 문제들을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이 모호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인권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똑같은 문제들이 세대가 지나도 내용(특정 인권 의제)만 바뀐 채 발생할 것이고, 기존의 인권교육이 필수화가 된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대학의 인권의식을 함양하고 인권침해사건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1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연세 뉴스] 온라인 인권강좌로 연세정신을 배우다, 2019.8.6., 

2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 모임’ 1차 성명서 <연세대는 건학이념 무시하는 강제의무 젠더 인권교육 필수과목 지 
정 취소하라!> 중 
3 조성은, "연세대가 생각하는 인권은 무엇인가", 프레시안, 2019.10.2. 

4 (제15기) 평의원회 제5차 본회의 회의록, 6p, 서울대학교 평의원회 홈페이지 참고. 

5 유니브페미, 2019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성평등 관련 제도 현황 연구보고서, 2019.12., 14p 중 ‘도표 11 2019 
년 대학별 교원·직원·재학생의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율’ 
6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홈페이지 참고, http://hrc.snu.ac.kr/education2018 

7 김가람, 인권교육 필수화, 내용이 문제야, 방법이 문제야?, 서울대저널, 2018.4.11. 

'기회의 평등'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충분조건일까?
조지프 피시킨, 『병목사회』 서평

 

아구몬

 

'기회의 평등'은 오늘날 가장 많이 호출되는 정치적 이상 중 하나일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 한 바 있다. 한편 최근 불거진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각종 대입 부정 의혹은 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울분을 토하게 했다. 유력한 부모의 밑에서 논문 등재, 인턴 경험, 표창장 등 대입과 취업 에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소위 ‘스펙’을 훨씬 수월하게 쌓을 수 있었다면 기회가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회의 평등이 하나의 주목받는 이상이 된 이유는 이 개념이 흔히 상극으로 이해되는 자유와 평등을 교묘하게 조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은 아니란 점에서 개인의 선택과 노력을 중시하는 한편, 순전한 운으로 인한 불평등은 해소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베짱이와 개미의 불평등은 인정하지만, 취약계층의 가난 세습은 인정하지 않고 사회이동성을 강조하는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 개념이 정말로 정의로운 사회를 보장하는 요술방망이일까? 혹시 분배의 피라미드 구조는 지적하지 않고, 그 구조에서의 위치를 할당할 공정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개념 아닐까? 위 와 같은 물음에서 출발해 조지프 피시킨은 『병목사회』(유강은 역, 문예출판사. 2016)(1)에서 기회균등을 비판하고, ‘기회다원주의’라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여러 병목현상을 완화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기회균등은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혹은 인간의 발달에 대해 오해하는 개념이다(1부 3장). 첫째로 가족의 문제는 기회균등의 실현을 가로막는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춘 부모는 자녀가 도전적인 커리어를 개발하려 할 때 금전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아무리 공정한 시합 규칙이 마련되어있더라도 이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시켜줄 수 있다. 또한 초기발달 단계의 자녀에게 더 폭넓은 언어 학습을 가능케 하며, 각종 인맥과 안전한 동네, 심지어는 교양있는 몸짓과 겉모습을 선물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공산사회처럼 공동육아를 하지 않는 이상, 공정한 시합 원리와 공정한 삶의 기회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인간의 어떤 특성은 유전적이거나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것으로, 다른 특성은 환경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 발달과 성장은 반복적으로 환경과 역량, 목표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어떤 영특한 사람이 물리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고 노력할 수는 없듯이, 노력과 목표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사람들의 노력은 그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기회 구조 자체를 살펴보고, 기회를 다원적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3부 1장). 단 하나의 가치 있는 커리어가 있고 이를 밟아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교육 기회(엘리트 대학)를 통과해야 하는 사회는 ‘병목사회’이고, 기회 구조 자체가 잘못된 사회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삶의 계획을 소수의 지위재(positional good)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만 수렴시키고 이를 위해서만 치열하게 경쟁하는 황량한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예컨대, 미국의 건강보험 혜택은 수익성이 좋은 일자리를 갖춰야만 받을 수 있었다)과 가치있는 친밀한 관계 등 객관적으로 인간 행복에 기여하는 요소들을 달성하려면 위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런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다양하게 재구조화해야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병목을 완화하기 위해 인생 전반에 걸쳐 이를 통과할 우회로를 많이 만들어놓는다든지, 견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에 사람들이 폭넓게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4부에서 그는 교육과 노동과 관련된 정책과 법의 영역에서의 전형적 병목들과, 어떻게 이를 해소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예컨대 미국은 상당한 돈이 없으면 비싼 의료비, 안전하지 않은 주거, 높은 교육비, 장기 실업시의 리스크 등으로 인해 행복의 기본형태 달성이 어렵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상당한 돈을 벌고자 하는 식으로 선호가 하나로 수렴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보육 등 다양한 종류의 사회보장이 필요하다. 인상적인 응용 사례 세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병목으로서의 대학이며, 직업 선택이 대학의 위신에 의존적이거나, 등록금이 비싸거나, 장학금이 업적기준으로 분배된다면 대학은 하나의 병목이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 외적인 직업경로를 많이 만들고, 필요에 따른 장학금을 마련하며,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는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대체하기 위해 입시정보를 공개하거나 멘토링 통로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둘째는 병목으로서의 성별이며, 전통적인 남성일자리(고된 업무로 여가시간이 부족한 일자리들)가 만연하다면 이는 각각의 성별에게 병목으로 작동한다. 남성은 완전한 부모의 역할에, 여성은 일자리에 진입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이상적 노동자 상을 폐지할 정책들이 필요하다. 예컨대 직원당 고정비용은 줄이되 추가 노동 비용을 높임으로서 더 많은 직원들이 더 적은 시간 일하도록 하는 것, 유연한 근무시간과 재택근무를 널리 채택하는 것들이 일자리에서의 성별 병목 해소에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최근 미국에서 제정되는 여러 차별금지법들을 검토한다. 고용주가 실직자, 전과자, 신용불량자를 제외한다는 공고를 못하게 하는 법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차별요소가 최종 결정에서 작용하는 것은 금지하지 못하지만, 초기에 일정한 장벽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병목의 해소에 기여한다.


정치철학이론은 항상 하나의 이상적 사회상을 염두에 둘 것이다. 피시킨이 그려내는 사회는 기존의 기회 평등 논의들과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피라미드 구조는 그대로 두고 사회적 이동성과 분배 정의를 강조하는 것(롤즈, 드워킨)이 아니고, 모든 이들에게 같은 액수의 종잣돈을 제공하는 것(방 파레이스 등의 기본소득론자들)도 아니다. 대신 피라미드 구조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다원적 가치들의 그물망을 그려낸다. 즉, 개인들이 하나의 경쟁적 위치를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다양한 개별적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이고 이는 분명 매력적이다. 더불어 이 책은 ‘기회의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대안’(2)을 제시하기보다는 기회평등의 ‘보완책’을 제시하며, 자원의 분배와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즉, 피시킨은 자원의 분배 문제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아예 의미 없음을 지적하는 아니다. 그럼에도 4부의 응용과 관련된 각종 공공정책의 소개는 정책적 사고에 필요한 ‘병목과 그 해소’라는 중요한 개념적 도구를 제시해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근본적 정치철학 이론과 공적 정책 제안들 사이를 넘나드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1)원제는 Joseph Fishkin, Bottlenecks: A New Theory of Equal Opportunity.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2) 출판사의 책 소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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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은 대학의 인권교육이 언제나 사회의 흐름보다 한 발 짝 늦어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과연 이공간을 학교라고 불러도 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다니는 대학에 대해 어떤 기대들을 품고 들어오셨나요? 성폭행을 저지른 교수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의 선두에 서 있던 대표자에 대해 징계를 내리는 학교, 성평등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추진되었던 인권교육에 대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 양성평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교. 본 특집에서는 우리 내 대학에서의 인권의 현 위치를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대학에서의 인권에 대한 보장과 토론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를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당근

 

 

언젠가부터 삶이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순간에도 나쁜 순간에도,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 같다고 느꼈다. 한때는 이 기적이 다 운과 우연인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운이 나쁘다면, 우연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매일을 살얼음 위를 걷는다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살아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어쩌면 오만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순간에도 나쁜 순간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건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의 걱정과 뒤척임, 손길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그걸 안 이후로 살아가는 게 어쩐지 덜 외롭고 든든하다.


동백이의 삶도 참 그렇다. 한결 같이 팔자가 나쁜 동백이의 삶에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온 건, 단지 동백이가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옹산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걱정, 끼니를 챙기는 마음, 문자 한 통이 모여 까불이로부터 동백이를 살린다. 사람이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슬픔과 분노가 동백이의 밤길을 지킨다. 사람을 살리는 것에 신이 아닌 사람의 몫도 있다는, 그러니 우리가 최선을 다해보자는 작은 결심이 모여 정숙씨, 동백이 엄마를 살린다. 그 모습들에 살아갈 용기를 얻고, 삶에 위로를 얻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삶을 냉소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 진심을 응원해준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결국에는 큰 힘이 될 거라는 희망을 준다. 까멜리아를 결국 강종렬이 아니라, 동백이 엄마가 사주는 것에서도 그렇다.


마음처럼 안 되는, 자꾸 꼬이기만 하는 인생, ‘팔자 나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는다. 향미와 동백이, 동백이의 엄마처럼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다고 사람들이 멀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속에서 캐릭터의 전형성은 기존의 이미지를 단지 재생산하지 않고, 이해와 공감의 도구가 된다. 사나운 팔자 속에서도 나름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응원해준다.


나쁜 사람도, 어딘가 꼬여버린 사람도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한다. 잘못을 알고 반성한다면, 계기들이 찾아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거라 말해준다. 그래서 규태는 달라질 수 있었다.

 

어딘가 꼬인 것 같은 관계도, 작은 손길이 모여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 내내 동백이를 괴롭히던 게장골목의 여성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동백이를 돌봐준다.


이처럼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들이 잘 그리려 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쉽지 않은 매일을 사는 사람들, 변두리에 밀려나 잘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을 응원해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동백이와 용식이의 로맨스는, 용식이는 동백이를 존중하고, 동백이의 삶을 그의 것으로 인정하고 조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로맨스 각본에 비하면 정말 훌륭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로맨스 서사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딜가나 동백이를 지키는 용식이, 동백이의 의사를 존중하긴 하지만 싫다는데도 자꾸만 밀어붙이는 직진남, 팔자꼬인 동백이의 삶에 찾아온 구원투수 등. 또 드라마는 동백이와 필구, 덕순이와 용식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의 삶을 다 각각 긍정하기는 하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라는 전형적인 역할수행의 테두리 안에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동백이와 향미를 비롯한 인물들의 ‘팔자’가 단지 운명으로 던져진 것처럼만 그려낸 점도 조금은 아쉽다. 그 운 나쁜 팔자가, 인물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주변의 차별과 멸시, 빈곤과 어려움 속의 사정과 선택이 있음을 그려낸 것은 정말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운이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여기가 다른 사회였다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달랐을 테니까 싶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애초에 이 드라마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 이미 엎어진 물 같은 인생 속에서 사람들이 해나가는 선택에 힘이 있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백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향미. 이제 정말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볼거라 다짐하던 향미. 사랑스러운 향미를 떠올리며,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볼거라 다짐해본다.

우리의 성교육과 오티스의 Sex Education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몬 드 보부상


드라마 소개


이 대담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에피소드 5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드라마의 원제는 Sex Education으로, 주인공 오티스는 성 상담사인 어머니를 통해 어깨 너머로 성 지식을 배운다. 그가 이를 바탕으로 학교 친구들에게 다양한 내용의 상담을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를 구성한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낙태 등 여러 주제가 등장하며 5회는 사진 유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대담과 관련된 장면들은 아래에 장면 번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의 성을 다루는 이번 특집과 함께, 대담에서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성에 대한 생각과, 이와 한국 성교육이 연결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Sex Education


당근: 저는 처음에는 sex education이 원제인지 몰랐는데요, 이 대담을 준비하며 원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청소년 성장이라는 주된 주제 안에 sex라는 것이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메이브는 임신을 경험하고, 도움 받을 사람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절을 하며 상처받고 성장하기도 하고, 상처를 꽁꽁 감추고 연애를 하지 않다가, 연애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해요. 오티스의 경우 자위를 혐오하는 등 어느 정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도를 하는지 보여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 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요. 또 친구 에릭은 스스로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가족 친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죠.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sex education이 아닌가 싶네요. 만약 제가 교사라면 학생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아요.


#1. 평범한 아침, 모든 학생들에게 여자 성기 사진이 문자로 온다. 내일 조회 시간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너의 얼굴을 밝히겠다는 협박 문자. 학생들은 그 사진을 보고 품평을 하고, 누구의 사진일지 추측하며 떠든다. 사진의 주인인 루비가 오티스를 찾아와서 이를 자신의 사진이라고 밝히며 유포자를 찾아달라고 요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 루비와 메이브는 원래 원수, 천적 관계이다. 루비는 메이브의 자유로운 성 생활을 비난했고, 때문에 메이브도 루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이브가 루비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부탁을 받아들이고 루비를 돕기 시작한다.


#3. 루비는 얼굴과 성기 사진을 찍어서 남자애 한 명에게 보냈었다. 유포자로 예상가는 사람을 말하고 오티스와 메이브가 후보를 찾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밤통이: 루비가 사진을 보낸 한 사람은 톰인데 걔가 카일에게 공유했어요.


당근: 공공연하게 애인의 사진을 공유한다는 게 드러나는 거죠.

 

 

루비, 그리고 메이브


#4. 루비는 원래 동급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보다 인기 없는 애들을 하녀처럼 부렸다. 루비가 친구들에게 못되게 구는 장면. 스타일이 구리다, 살쪘다, 등을 지적한다.

 

당근: 근데 저는 꼭 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어요. 네가 적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 소위 여왕벌이라는 것처럼 굴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스테레오 타입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더라고요.


#5. 메이브가 왜 루비를 도와주는 지를 이야기하는 장면. 자신에게 있었던 성적인 비하와 소문들, 그리고 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겪어야 했는지 설명한다. 키스를 거절했더니 상대가 거짓 소문을 냈던 것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오명은 벗을 수 없었고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래서 메이브는 자신이 싫어하는 루비일지라도 그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되기에 자신은 루비를 돕는다고 말한다.

 

메이브: 시작이 뭔지 알아? 클레이의 14살 생일 파티에서 사이먼이 키스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그랬더니 고추 빨다가 깨물었다고 소문내더라. 그 후로 쭉이야. 오명은 지워지지 않아. 아픈 일이고 루비라도 이런 일을 당해선 안 돼.

 

당근: 이 부분이 엄청 마음이 아팠어요. 메이브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차가워 보이지만 실은 그게 자신의 고통과 상처 때문이고 그 상처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거죠.

 

 

성기와 엄지발가락

 

#6. 성기라는 것도 엄지발가락처럼 모두 있는 신체부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오티스

 

오티스: 누구나 몸이 있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난 발가락 하나가 웃기게 생겼어. 엄지처럼 생겼지. 어쨌든 요점은, 널 망신주려고 한 짓이지만 네가 부끄럽지 않으면 다 헛일이야.

 

밤통이: 의도는 알겠는데, 피해자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조롱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근: 이걸 보고 노브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떠올랐어요. 노브라 운동을 하는 사람들, 페미니스트들은 가슴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가슴을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니까요. 사실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는지, 대상화된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7. 메이브가 문자의 범인이 여자일 것이라고 추리한다. 핸드폰 비밀 번호를 알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올리비아가 범인임이 밝혀진다.


#8. 다음날 조회시간. 루비는 올리비아를 피한다.

 

당근: 저는 이 장면에서 항상 옆자리에 앉던 올리비아와 루비가 서로 피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하룻밤 사이에 있었던 관계의 변화를 자리에 앉는 것으로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른들은 ‘그냥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제가 청소년일 때는 어디에 앉고 누구랑 앉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어떤 친구들이 눈을 맞추고 누가 피하고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잘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My Vagina

 

#9. 교장선생님이 사진 유포에 대해 경고한다. 이때 한 남학생이 그건 루비의 사진이라고 조롱한다. 그때 올리비아가 일어나 자신의 사진이라고 말한다. 메이브도 일어나서 자신의 성기 사진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여학생도 일어나 자신에게 질이 있다고 말한다.

 

#10. 모든 여자아이들이 다 일어나서 그건 자신의 성기라고 주장하며, 마지막에 루비도 그건 자신이 성기라고 말한다.

 

루비: 제 성기입니다.

 

당근: 이 장면 정말 명장면 아닐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성폭력 특히 불법 유출 사건에 대해서, 주류 사회의 폭력적 시선은 영상이 유출되면 누구의 것인지 찾아보고 아니면 얼굴이 없으면 누군지 궁금해 하잖아요. 그런 폭력적 시선에 대해, 그것은 모든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라는 연대의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동시에 성기는 모든 여성에게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인 것 같아요.

 

밤통이: 우선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것이라고 밝히는 여성 연대라는 것에서 많이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드라마니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나 실상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재는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현실성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

 

보부상: 저는 보면서 올리비아가 개인적인 죄책감으로 루비 대신 나서서 말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두 친구가 화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개인적인 해결이나 수습을 넘어서 연대의 의미로 나아갔던 게 인상 깊었어요.

 

 

성폭력, 그리고 Sex Education

 

당근: 불법 촬영이나 사이버 성폭력이 심각한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렇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이것은일종의 성폭력 사건이잖아요. 이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제 3자가 개입해서 누군가를 처벌 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치유되기보다는 훨씬 많이 상처받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그 이외의 선택지가 없고 보상받거나 치유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죠. 이건 드라마이기도 하고 작은 고등학교 공동체이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친구들이 자신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야기하고, 모두가 자신이 그 사진의 주인이라고 대신 밝히는 그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성교육에서 다뤄 져야 하는 것도 이런 과정의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통이: 형사처벌은 범인 색출에서 끝날 테니까요. 그럼 피해자는 어떻게 치유 받는가? 라는 질문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가 한국에서는 오티스 비밀 상담소라는 제목으로 바뀌잖아요. 성을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게 보이는 거죠.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유포자가 여자 친구로 나오지만 실제 현실에서 대다수는 남성이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저 조롱과 가쉽으로 소비한다는 것도 있고요. 사실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현실이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는 거고요.

 

보부상: 요즘 문제의 원인만 규정해서 이를 없애면 모두 해피엔딩!이라는 병리적 접근을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어요. 문제의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에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힘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이 사건 자체를 그가 겪은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로 바라보고 범인 색출에 끝내면 안된다는 거예요. 드라마에서는 감동적인 결말을 주기 위해 올리비아가 유포한 것으로 나왔지만 현실이라면 톰이나 카일이 범인일 확률이 훨씬 높을 거예요. 실제로 그렇다하더라도 톰 죽일놈 카일 나쁜 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여성 연대를 통해 극복해나가고, 루비는 연약한 피해자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my vagina’라 고 말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근: sex education이라는 원제와,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라는 제목이 만나는 지점이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이 성에 대해 알고 이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문제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 내내 오티스의 상담소에 문제를 가져오고 상담하고 해결하면서 성에 대한 지식, 역량, 태도를 학습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청소년끼리 집단 내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성교육이라는 것을 딱딱하게 지침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주고 문제가 생겨도 최악의 상황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이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경향신문 기사에서 본 바로는 또래 선생님을 뽑고 3개월 정도 연수를 받아서 다른 선생님 없이 이들이 성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청소년이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대담을 마치며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5회에서도 루비뿐 아니라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이들 모두 다양한 시각과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대담에서는 이야기 흐름상 다루지 못했던 에릭의 이야기를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오티스의 친구인 에릭은 트랜스젠더로 5회에서 루비 다음으로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는 오티스와 헤드윅 연극을 보기 위해 드랙(1) 을 하고 외출했으나 오티스의 사정으로 혼자 돌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한다.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이전까지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던 에릭이 위축되어 무채색 옷만 입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루비의 사진에 많은 이들이 보인 무자비한 궁금증과 같이, 에릭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이고도 폭력적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주류 집단과 다를 때 쉽게 배척당하고, 이는 그들이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숨기게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5회의 에피소드는 개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폭력적 시선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역시 우리의 성교육이 고려해야할 지점일 것이다.

 

원제 Sex Education을 듣고 오티스가 선생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배움을 얻는 구도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일방적 배움이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친구와, 혹은 원수와 관계를 맺고 배움을 만들어간다. 어머니의 지식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상담을 시작하게 되는 오티스조차 자의 성찰을 통해, 친구들과의 경험을 통해 이를 마음으로 느끼고 새롭게 규정해간다. 부끄럽지만 굉장히 최근까지도 ‘청소년 성교육’이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지식을 가르치고 어떤 건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 선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티스가 보여주는 성교육은 잘 선별된 지식을 베푸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 앞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오티스와 메이브가 작지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때 이들 모두는 더 의미 있는 배움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성교육 역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발판을 제공할 수 있기를,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줄평

 

밤통이: 섹스란 몸으로 하는 대화 행위이자 일상적인 행위일 뿐,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당근: 상처가 흉터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보듬는 드라마. ‘

 

보부상: 드디어 소리 내어 말하는 비밀 이야기.


(1) 드랙(Drag)이란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즉 성별, 지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유철웅,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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