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당근

 

 

언젠가부터 삶이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순간에도 나쁜 순간에도,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 같다고 느꼈다. 한때는 이 기적이 다 운과 우연인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운이 나쁘다면, 우연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매일을 살얼음 위를 걷는다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살아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어쩌면 오만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순간에도 나쁜 순간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건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의 걱정과 뒤척임, 손길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그걸 안 이후로 살아가는 게 어쩐지 덜 외롭고 든든하다.


동백이의 삶도 참 그렇다. 한결 같이 팔자가 나쁜 동백이의 삶에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온 건, 단지 동백이가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옹산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걱정, 끼니를 챙기는 마음, 문자 한 통이 모여 까불이로부터 동백이를 살린다. 사람이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슬픔과 분노가 동백이의 밤길을 지킨다. 사람을 살리는 것에 신이 아닌 사람의 몫도 있다는, 그러니 우리가 최선을 다해보자는 작은 결심이 모여 정숙씨, 동백이 엄마를 살린다. 그 모습들에 살아갈 용기를 얻고, 삶에 위로를 얻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삶을 냉소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 진심을 응원해준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결국에는 큰 힘이 될 거라는 희망을 준다. 까멜리아를 결국 강종렬이 아니라, 동백이 엄마가 사주는 것에서도 그렇다.


마음처럼 안 되는, 자꾸 꼬이기만 하는 인생, ‘팔자 나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는다. 향미와 동백이, 동백이의 엄마처럼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다고 사람들이 멀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속에서 캐릭터의 전형성은 기존의 이미지를 단지 재생산하지 않고, 이해와 공감의 도구가 된다. 사나운 팔자 속에서도 나름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응원해준다.


나쁜 사람도, 어딘가 꼬여버린 사람도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한다. 잘못을 알고 반성한다면, 계기들이 찾아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거라 말해준다. 그래서 규태는 달라질 수 있었다.

 

어딘가 꼬인 것 같은 관계도, 작은 손길이 모여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 내내 동백이를 괴롭히던 게장골목의 여성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동백이를 돌봐준다.


이처럼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들이 잘 그리려 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쉽지 않은 매일을 사는 사람들, 변두리에 밀려나 잘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을 응원해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동백이와 용식이의 로맨스는, 용식이는 동백이를 존중하고, 동백이의 삶을 그의 것으로 인정하고 조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로맨스 각본에 비하면 정말 훌륭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로맨스 서사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딜가나 동백이를 지키는 용식이, 동백이의 의사를 존중하긴 하지만 싫다는데도 자꾸만 밀어붙이는 직진남, 팔자꼬인 동백이의 삶에 찾아온 구원투수 등. 또 드라마는 동백이와 필구, 덕순이와 용식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의 삶을 다 각각 긍정하기는 하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라는 전형적인 역할수행의 테두리 안에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동백이와 향미를 비롯한 인물들의 ‘팔자’가 단지 운명으로 던져진 것처럼만 그려낸 점도 조금은 아쉽다. 그 운 나쁜 팔자가, 인물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주변의 차별과 멸시, 빈곤과 어려움 속의 사정과 선택이 있음을 그려낸 것은 정말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운이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여기가 다른 사회였다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달랐을 테니까 싶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애초에 이 드라마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 이미 엎어진 물 같은 인생 속에서 사람들이 해나가는 선택에 힘이 있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백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향미. 이제 정말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볼거라 다짐하던 향미. 사랑스러운 향미를 떠올리며,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볼거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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