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는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기 전이었습니다.

일본에게 다시는 당해주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은 단호한 불매운동, 이번에는 정말 해내야 한다는 검찰개혁이라는 대의, 전 법무부장관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 등등. 중요한 정치적 요구와 얽힌 감정들이 계속 계속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파도를 잘 타기만 하면 되었던 걸까요, 그 흐름에 휩쓸리지조차 못한,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사소한' 문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번호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 계류(繫留)중인 이야기들을 다뤄보았습니다. 대학에서의 인권은 왜 자꾸 제자리에 멈춰있는지, 너도나도 문제라고 말하는 성교육을 누구의 관점에서 살펴볼 것인지,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의 일상을 이루는 노동을 왜 대학은 외면해왔는지. 지난 여름의 열기와는 다른, 새로운 계절의 색다른 온도로 살펴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호를 처음 준비하면서는 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겠다 다짐했습니다. 취재를 준비하면서는 나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큰 용기와 성의를 요구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는 세상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이야기를 내놓을 만큼의 통찰도, 식견도 없는데 싶어 무척 두려웠습니다. 저의 결과물 앞에서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세상을 한겹, 또 한겹 이해하고, 덜 오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독자 여러분께서도 그 과정에 함께 하신다는 마음으로 너그럽고도 날카롭게 살펴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학기동안 욕심은 많고, 체력은 안 좋은 나쁜 편집장이었는데, 편집위원 친구들은 각자의 진심과 고민으로 다채롭고 반짝이는 글, 그리고 교지를 완성해주었습니다. 많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초보 편집장의 고민을 들어주고 값진 조언을 건네준 전 편집장들, 이물과 딸기맥주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2월의 초입, 봄을 기다리며

편집장 당근 드림.

 

맑은 날의 편집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