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과 정치적 중립성의 민낯. ‘미성숙성숙사이의 저울질

 

말하는 감자, 말하는 고구마

 

 

바뀐 법과 정체된 교육

 

2020,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권이 만 18세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지금까지 논의만 되었던 선거 연령 하향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은 성인들의 보호만 받으며 일정 기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사회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체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교육현장을 둘러봐도 대외적으로 바뀐 부분은 명시된 법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투표하는 주체가 늘어났고 그중에는 416일 이전 출생자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있으나 그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선거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기본법에서 명시된 정치적 중립성의 개념이 지켜진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교육기본법 제16조에서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ㆍ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각주:1]라는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선거 연령이 하향되었으나 여전히 학교 내의 정치적 의견표출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선거 연령이 하향됐으나 이를 둘러싼 정치적 중립성의 개념은 여전한 것일까?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학교에서 변화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까지 침해하고 있지 않은가? 왜 학교는 교사의 정치적 권리의 침해 가능성을 두고도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하는가?

 

정치적 중립의 모순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선 우선 정치적 중립성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인간을 목적에 맞도록 개조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형성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 배소연(2020)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연구에서 본래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자본주의 산업화로 인해 표준화된 대량 인력 양성을 중심으로 하던 시대에 국가의 교육권이 무제한 강화되며 교육이 국가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 또한 도구화되는 부작용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나타났다고 한다. 국가 권력이 교육 영역에서 부당하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나타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보았을 때,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생긴 데에 정치적 영향력의 제한이라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그 실효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과연,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성개념은 교육 영역에서 국가 권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는 데에 일조하는가?

교육에서의 국가 정치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교과서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교과서에서도 특정한 정치적 견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의 정치적 견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바로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 교과서 사태였다.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제도이다. 검정 교과서 제도는 일반 출판사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교과용 도서의 교과서 적합 여부를 검정하여 심사하는 제도이다. 현재 한국사 검정 교과서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한 권이 아닌 다양한 교과서로 검정 교과서 제도 아래의 학생들은 학교마다 다른 교과서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국정 교과서 제도는 정부 자체에서 교과서를 만드는 TF를 결성하여 교과서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제도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와 같은 국정 교과서를 새롭게 도입하고자 했던 시도는 큰 국가적 논란으로 연결되었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하여 국정 교과서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대부분 박정희의 독재 정부를 포함하여 국정 교과서를 통해 특정 당파의 의견을 편파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문제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 교과서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역사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국정화 교과서가 정치적인 전략인지를 알 수 있게끔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 교과서를 주장하기 10여 년 전 참여정부 대에는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되며 국민과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 국정화 교과서의 제작자 입장의 역사는 올바른 역사이지만, 직접 국정화 교과서를 제작하지 않는 입장에서 국정화는 정권의 재단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일 만에 종결되었다, 이러한 국정 교과서 사태는 이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요소인지, 더 나아가 국가에서 교육을 단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행위인지를 알 수 있게끔 한다.

그렇다면, 국정화 교과서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국정화 교과서는 교육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행위가 다분히 정치적임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부에서 독점하여 교과서를 제작하는 행위만으로 큰 논란이 발생하며,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라고 보여질 수 있는 사안이라면 하물며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교육과정은 과연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아무리 정치적 중립성을 염두에 둔다 한들, 결국 교육과정마저도 정부의 부처 기관인 교육부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요소이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부분이 결정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무조건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무엇이 중요한가?’를 지정하는 과정, 더 나아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지정하는 과정은 결국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편향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정권에서는 대북 정책에 대하여 북한과의 갈등을 더욱 강조하여 가르치고 이를 시험에 출제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정권에서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협력과정을 강조하여 시험에 출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수립 과정에서, 결국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은 허상에 가깝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처음부터 중립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교사의 중립성 또한 현실적으로 허무맹랑한 개념이 되고 만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편향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교육과정을 대변하고 근거를 들어 설명해야 하는 교사는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의견을 드러낼 수 없다. 결국, 교사가 편향적인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대변해야 하며, 편향적인 교육과정을 거부할 때 헌법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기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에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태도는 진정한 정치적 중립이 아닌 편향적인 교육과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단순한 기계적 중립에 불과하며 결국 어떤 입장을 강화하고 견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학생과 교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학생들은 법에서 명시한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는 걸 반대할지, 교사들도 정치적 중립성의 개념을 교사의 자율성 침해로 여기는지를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해 봤다. 인터뷰는 같은 학교 소속인 학생 두 명과 교사 두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질문의 내용과 그에 따른 답변을 교사와 학생으로 분류해 간략히 정리해봤다.

 

1. 교육기본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성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 논의인가? 어째서 교사가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면 안 되는 걸까?

 

학생: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 권력의 교육 지배가 문제되면서 교육의 자주성 실현을 위해 논의된 문제임. 애초에 정치와 교육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특정 관점에 편중된 의견이 학생들에게 노출되면 미성숙한학생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위험성이 커서 정치적 중립성 개념이 도입된 듯함.

교사: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때 교육이 사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편향된 교육이 피교육자의 정치적 지향성을 결정하는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다분함. 특히 학생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주체가 교사이기에 교사가 정치적 편향성을 내비치지 않도록 국가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함.

-> 학생과 교사 모두 학생의 배움 과정에 있어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다방면의 사고 성장과 균형감 있는 시각이 필요로 하는 청소년 시기에 교사에게서 받는 가치관 형성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 중립성이 발생한 근본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전제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2. 교사의 완전한 정치적인 중립이 가능한 것인가?

 

학생: (두 학생의 의견이 달랐는데 정치적 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학생은 정치적 중립이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개념으로 생각한 거 같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마다 다르게 정의내릴 수 있어 어렵다고 생각한다. / 학교에서 객관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주관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 맥락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는 거 아닐까?

교사: 교사가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도 인간이고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기계적일 수 없기에 '완전한' 중립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사도 자신이 피교육자로서 자라온 과정이 있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주체이기에 표면적으로 중립으로 보일지라도 잠재적 교육과정 측면에서 교사가 중립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교사라는 직책이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직업이라 본 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교사도 정치라는 분야에 대한 개인의 의견과 가치관을 가질 순 있지만 그래도 1번 질문에서 나온 답과 비슷하게 학생에게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볼 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는 현재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성과 같다.)

 

3. 정치적 중립성은 현대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이용되는 개념인가? 대부분 어느 정도를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학생: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을 강조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정치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에서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교사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은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을 비판하고 배제하는 것을 금한다기보다는 정치적 교육 자체로부터 자유로운 데에 의의를 두는 거 같다.

교사: 가장 쉽게 생각하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선에서 교육현장의 정치적 중립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의 SNS에서 대통령의 페이지를 팔로우한다면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혹은 어떤 정부 정책에 관한 내 비판적인 생각을 내 SNS에 올렸다면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고 볼 것인가? 결국 교실 내에서 좌우 혹은 찬반이 갈리는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학생들의 가치관 확립과 더 넓은 식견을 기르기 위해서는 아예 특정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보다는 균형감 있게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방면을 언급하며 서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치적 질문에 대해서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답변에 대해서 아이들의 궁금증에 대해서 다양한 방면의 의견을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는 것이 균형감 있는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본 질문에서는 답변에서의 학생과 교사의 차이를 띠었다. 학생은 현대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나 정치적 개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간단하게 대답한 한편, 교사들은 현재 교육현장에서 활용되는 정치적 중립성과 실제로 실행되었으면 하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개념도 제시했다. 만약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이루고 싶다면 정치적 개념에 침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당 정치적 사안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학생들이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관 확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 현재 교육현장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나 개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교사들 또한 이 개념이 과연 교육현장에서 올바른 개념인가 하는 의문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4. 정치적 중립성과 청소년의 미성숙담론은 어떤 관계 아래에 있는가?

 

학생: 정치적 중립성과 청소년의 미성숙담론은 유기적 연대 관계 아래에 있다고 본다. ‘나이가 어리기때문에, 또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보호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미성숙담론에 근거하여 정치적 중립성이 제기된다고 본다.

교사: 대학교수와 교사 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차이나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듯하다.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는 교수는 스무살 넘은 성인을 교육하는 것이고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교사는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이니까. 청소년은 아직 정체성 확립 단계이고 '미성숙' 하기에 국가나 사회가 교육을 주입시켜 청소년들이 치우친 가치판단을 하지 않도록 하려는 듯하다. 근데 이때 미성숙하다는 것은 생각도 없고 뛰어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학생들을 내부의 능력을 스스로 발현시킬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은 학생들이 정치적인 생각이 없거나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아이들은 표현의 어색함이나 아직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기에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개념으로 국가에서 지정한 거 같다.

-> 본 질문에서 내리고 있는 교사와 학생이 내린 미성숙의 정의는 차이를 보였다. 예상과 다르게 오히려 학생은 청소년이 나이가 어리다는 점에서 미성숙을 강조했고, 교사는 미성숙을 자신의 의견을 확립하거나 표출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단계라고 정의했다는 점에서 학생들 본인보다 더 청소년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은 학생들은 사실 그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생들이 적극적인 논의나 자신의 의견을 확립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미성숙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학생들 자신은 그저 그것이 나이가 어리기때문이라고 치부한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정보나 교육 없이 이루어지는 논의는 얕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허용된다면, 어떤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학생: 가장 중요하게도 교사의 말을 듣고 가치관에 변화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들의 주관적 개입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말하거나,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입장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생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 아닌 학교 밖에선 정치적 활동이나 시국선언을 할 수 있는 자유 정도는 보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교사: 과도한 정치적 의견 표출은 교육현장에서 지양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교실 내, 수업 시간 속에서는 어쨌든 수업 목표가 분명해야 하니까 그 점에 집중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을 듯. 다만 정치적인 가치 판단을 앞서는 인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면 교육현장에서 함께 논의해도 좋지 않을까? 교사가 특정 정치 성향을 표출하는 차원이 아닌 학생들에게 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차원에서 정치적 논의의 자유가 허용된다면 좋겠다. 예를 들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가 아니라 이런 생각도 내 개인적인 견해에서는 해봤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또한 이 관점은 맞고 틀리고의 관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등의 언급이 필요할 거 같다.

-> 학생과 교사 모두 어느 정도 정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했다. 과도한 정치적 의견 표출이나 아니면 편향성을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학생과 교사가 타협을 보고 논의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오히려 좋다는 게 양측의 생각인데 이는 현재 법에서 명시한 암묵적 중립성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6. 학생의 정치 교육을 위해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져야 하는 개념인가?

 

학생: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아직 미성숙한 단계이며 대부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한된 공동체 안에서 교사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어렵고, 이는 곧 그들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라는 직위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직위와 사회적 파장을 고려했을 때, 교사의 정치적인 발언은 일반 시민보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 우선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가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교육이라는 것이 광범위하게는 삶의 과정이고 연속선상이므로 정치를 배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기르게 해 주는 게 정치 교육의 목적이라면 교사에게 중립성은 요구된다 생각한다. 물론 이때 정치적 중립성은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생각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그리고 다른 관점도 언급한다는 의미에서의 중립성이다.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미성숙한 학생들을 성장시킨다는 것보단, 이미 무엇인가 이룬 큰 꿈을 갖고 있는 학생들의 내면을 겉으로 서로 협력하여 이끌어 낸다는 관점, 즉 발현시켜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정치적 문제든 어떤 교육의 문제든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 , 학생과 교사 모두 답변에서 명시한 중립성은 현재 교육현장에서 지켜지는 중립성과 달리 침묵이 아닌 단순한 자신의 편향적이고 과도한 의견표출의 지양일 뿐이었다. 현재 학교에서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일절 언급하지 않도록 하는 기계적 중립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여러 관점과 사태 자체를 명확하게 알려 주는 게 더 좋은 해결의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 결과 답변들에서 반복되는 두 가지 점을 발견했다.

 

1) 학생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미성숙은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일 수도 있지만, 교육과정에 의해 많은 정치적 경험이 존재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교사의 의견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학생들 앞에서 명시적, 편향적 정치적 의견표출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2) 그래도 완전한 암묵이 아니라 정치적 사안과 논란 등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줘 보다 더 넓은 식견과 가치관을 가지는 걸 도와야 한다.

 

첫 번째에서 논의된 미성숙은 4번에서 제시했듯이 학생과 교사가 정의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학생과 교사 둘 다 청소년들의 미성숙함을 강조하며 교사가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미성숙개념이 어떤 범위 내에서 해석될지는 다를 수 있다. 학생들의 의견대로 나이 개념을 적용해 성인과 차별성을 둔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라고 정의하면 이는 청소년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이라는 기준에만 의거한 제한적 정의일 뿐이다.

사실 미성숙하다라는 단어를 누구에게 붙일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다.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나이가 어려도 많은 경험을 통해 성숙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이가 많아도 미성숙한 사람이 있기에 어떤 사람이 성숙했는지의 기준을 세우기 어려워 나이라는 하나의 인위적인 지표를 만들고 이에 따라 구분짓기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때 미성숙의 정의를 4번에 나왔듯 생각도 없고 뛰어나지 않다는 게 아닌 스스로 내부의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대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많은 경험이 허용되지 않으며 일방적인 교육과정이 지정되어 있는데, 이는 청소년이 상대적으로 성숙하기에는 너무나도 미흡하거나 부족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정한 교육과정을 통해 성숙한 학생문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이를 위한 정치 교육의 기본적 환경을 마련하여 학생들이 성인 못지 않은 성숙함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치 교육 없이 학생들을 미성숙하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이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실제 교육현장에서 적용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인터뷰에서 제시된 정치적 중립성 개념은 현실에 적용되는 것과 정작 학생과 교사가 원하는 것의 내용이 다르다. 학생과 교사 모두 교사가 직접적으로 표출하진 않더라도 논란이 될 만한 사안 혹은 정치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교육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직접 교육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과 법적으로 명시한 정치적 중립성의 개념은 서로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올해 법 개정으로 인해 선거에 참여하게 된 몇몇 학생들도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이나 선거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하게 되어 학생들이 불만을 표했고, 법 개정이 최근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무조건적 침묵으로 대응하기보단 제대로 된 실질적 교육을 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뭔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논란을 회피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하기보단 오히려 맞서서 알려주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을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인터뷰의 결과와 학교에서의 맥락으로 보건대,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는 내용은 청소년의 미성숙함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미성숙함에 따라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교육과정의 일방적 전달과 기계적 중립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재고도 존재하지 않은 채 하나의 통일된 기준도 없이 저마다의 생각이 난립하는 정치적 중립성개념의 모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사들은 저마다 교육과정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통일되지 않은 생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육과정에 대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교사가 있는 반면, 적당히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교육과정 밖의 내용을 설명하고 아이들과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교육과정의 지평을 만들어내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정치적 중립성에서 거리가 먼 교사들의 행위라고 할 수 있으나, 정치적 중립성 개념의 모순을 생각한다면 어떤 교사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 안에서 행동할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지평은 결국 헌법에서의 정치적 중립성개념에 의해 제한되고 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교육현장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그 자체로 모순된 개념인 데에 더하여 아이들의 새로운 교육과정으로써의 경험마저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교육 현장에서의 정치적 중립성개념은 학생들의 넓은 교육과정 경험을 막는 역할로 작용하고 있다. 2017년 실제로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의 수업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퀴어퍼레이드의 시민 행진 영상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전학연(전국학부모교육시미단체연합)에서는 교사의 행위를 비난하고 파면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본 교사가 근무하던 학교 앞에서는 교육현장이 동성애 교육장이 되었다.’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배포했으며, 본 교사를 동성애를 옹호하고 남성혐오를 가르치는 수준 이하의 교사라고 맹비난했다고 한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행태로 교사는 학부모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 법원은 학부모 측에 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교사에게도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초등학생에게 퀴어문화 축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학부모들에게 큰 걱정을 끼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결국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퀴어 문화를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정치적 중립성은 결국 교육과정 외의 내용을 교사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써 작용한다. 이는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교육에서의 언급을 아예 금지하게 된다. 교육과정은 아무리 전문가들이 교육내용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내용이라면 교육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단히도 보수적인 구성방침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방침은 현재 논란이 되는 성교육 표준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김대유(2010)은 성교육 표준안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여 사회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성교육 표준안에서 양성평등, 성 소수자, 성행위, 자위행위와 같은 내용 체계를 모조리 삭제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결국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회적으로 충돌을 빚을 내용을 모조리 삭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내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를 교육과정으로 편입하고 그들의 편을 드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결과를 낫게 되었다. 과연 교육에서의 중립성은 어떤 개념이며, 과연 이러한 허울뿐인 중립 속에서 교육에서 과연 중립을 주장하는 것이 합당한 논의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무엇인가?

 

결국, 헌법상으로 명시된 것처럼 보이는 교육 내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사실상 허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법적으로 정치와 교육이 상호 연관되어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학생들이 교사의 정치적 의견에 휩쓸릴 수 있음을 근거로 들어 정치적 사안을 언급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중립이라기보다는 기계적 중립이요 의견묵살에 가깝다. 사회가 정치와 이미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점과 완전한 중립은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고려할 때 교육체제 내의 정치적 중립은 본인들의 편의와 자의에 의한 조정으로 보인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근거로 가장 많이 언급된 청소년의 미성숙함 또한 학교 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근거로 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청소년은 해당 글 본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경험과 배운 내용을 토대로 사고력을 스스로 확장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이고, 이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가치관이 청소년에게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와 밀접하게 붙어서 작용하는 게 정치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현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을 함께 다루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는 과정이 오히려 사고 확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쌓기 힘든 교육과정을 비판하고 청소년들에게 그 정치의 영역을 확장하는 논의를 진행하기는커녕,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교육현장에서 정치성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정치적 영역의 능력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헌법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기계적인 차원에 머물게 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정치와 교육의 자연스러운 맞물림을 억제하는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차라리 교육 측면과 정치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맞물린 교육을 활용해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정치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앞 인터뷰에서 교사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실제로 청소년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고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교사가 인지해야 한다. 또한 교사가 청소년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고 한다 하더라도 결국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성을 띄고 있기에 교사의 의견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에 교사는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사안을 가르칠 때 교사의 강압이 느껴지지 않게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때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전혀 공개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중립이 아닌, 청소년이 자신의 주체적 사고와 정치 의견을 표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게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며 꾸준히 질문을 하는 역할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교사도 청소년들을 위한 실질적 교육을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 또한 정치 분야에 대해 원하는 논의와 토론을 진행시킬 수 있다. 현재 교육은 정치적 중립성이란 개념의 허구성을 깨닫고 이를 무리하게 지키기보단 교육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1. 교육기본법 제16  [본문으로]

정치하는 청소년을 위하여

 

펭로시

헌법재판소가 올해 2020년 4월 23일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초중등학교의 교육공무원이 정치 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과 초중등교육법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1항 중, “국가공무원법 제2조 제2항 제2호의 교육공무원 가운데 초중등교육법 제19조 제1항 교원은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을 합헌 결정한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2014년과 2020년에 걸쳐 헌법재판소가 태도를 변경한 근간에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 나아가 ‘공무원의 정치참여’에 대한 여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6월 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1만 6172명이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제1차 시국 선언을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교사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헌법재판소에서 국가공무원법 65조 1항 등이 위헌 결정되었지만, 공무원과 초중등 교원 등은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정당법은 합헌 결정 [각주:1] 되었는데, 이에 한 쪽은 아직까지 교사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 쪽은 헌법재판소의 국가공무원법 65조 1항 등의 위헌 결정 그 자체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올해부터 실시되는 만 18세 선거권과 맞물려 그 논의가 더욱 과열되고 있는 추세이다. 교사와 학생의 정치 참여는 지금까지 학교 내에서의 ‘정치’를 배제해왔던 학교와 사회 입장에선 놀랍고도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필자는 <정치하는 청소년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이후 이어질 교사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인터뷰와 만 18세 선거권 논평을 보다 독자가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도록 미국, 일본, 한국의 법제 비교를 토대로 ‘정치적 중립’에 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국가공무원법은 광복 후 일본공무원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일본공무원법은 미국 해치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해치법(The Hatch Act)은 1938년 민주당이 고용촉진부(Work Progress Administration) 공무원을 중간선거(midterms) 때 동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뉴멕시코를 대표하는 민주당 보수파 칼 해치 상원의원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하여 FDR에서 1939년 조인된 것으로, 대통령이나 부통령처럼 명시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는 연방정부 구성원들이 정치적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각주:2] 이와 같이 엽관주의 [각주:3] 를 배제하려는 해치법의 의도는 일본공무원법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되었고, 일본공무원법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국가공무원법도 해치법의 기본 의도를 따르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 미국, 일본의 국가공무원법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미국과 일본의 국가공무원법을 둘러싼 논의와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가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1) 교사의 정치적 중립과 그 방향

 

미국에서 공무원은 시민으로서 수정헌법 제1조에 규정된 ‘종교, 언론, 출판,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 제한은 고용인인 정부에 대해 피고용인으로서의 관계에 의해 규율된다. 따라서 교원의 표현은 형사 처분이 아닌 교육위원회에 의한 징계 처분으로 제한될 수 있다. 이때의 제한은 일반적으로 정부의 공공서비스 수행이라는 이익과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의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정부 이익이 더 클 때 정당화된다. (●●●) 1993년 개정 해치법에서는 제한되는 일부활동 [각주:4] 을 제외하고, 정치적 활동이나 선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음을 규정하였다. (●●●) 미국에서 교원의 학교 안에서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한 판례는 Tinker v. Des Moines Independent Community School District(1969년)판결이다.

 

수정헌법 제1조의 권리는 학교라는 환경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적용되는 특성을 갖는다. 학생과 교사 모두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에 대한 주의 금지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관점을 대했을 때의 불편함과 불쾌감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검은 완장 착용은 학교 운영을 방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각주:5] [각주:6]


해당 판결은 정치적 의견을 나타내는 상징을 부착한 학생이 정학당한 사건에 대한 판결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학교 안이라고 해서 학생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표현을 제한할 때에는 불편함과 불쾌감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며, 물리적으로 학교운영을 방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와 충돌하는 경우 등이 그 조건에 해당한다. 또한 학교에서 표현의 자유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교원의 정치적 표현은 시민의 헌법상 권리로 보장되며, 그에 대한 제한은 학생 교육이라는 공교육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는 경우에 한해서 가능하다. [각주:7]

 

 

[각주:8] ">
 [The Hatch Act-Permitted and Prohibited Activities for Most Federal Employees] [각주:9]

                 


위의 표는 개정 해치법의 허용과 금지조항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한국은 헌법 제7조의 제1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에 의거하여 공무원의 직무에 초점을 맞춰 정치적 표현과 행위에 있어서 포괄적으로 규제한다. 홍정림(2015)는 이와 같은 차이가 미국은 시민의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한국은 교원의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시민의 권리로 보장되기보다 교원의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공무원의 의무를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보유하는 한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교원의 표현에 대해 직무 내•외를 구분하여 제한의 범위를 달리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각주:10]


물론 우리나라의 국가공무원법이 미국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이 둘의 명시적 표기가 유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무행위 중에는 정치적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개정 해치법 내용은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적 주제에 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달리한다. 이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미국의 국가공무원법이 정치적 행동에 있어 공무원의 지위 남용에 경각심을 갖고 시민의 권리를 일부 제한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라는 직책의 중함을 인지하고 그 사회적 파급력을 우려하여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 표현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홍정림(2015)이 제시한 세월호 관련 교사선언에 관해서도, 미국은 이를 인터넷 매체를 통해 각자의 의사를 표현한 개인적 의사표현이 집합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보겠지만, 한국은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여 더 엄중히 사안을 고려할 것이다. [각주:11]

위에서도 강조했듯이 우리나라의 국가공무원법은 ‘포괄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교사의 정치적 표현이 과도하게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필자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교사와 정치적 논의를 할 수 없었다. 교사와 정치적 논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고’, ‘예외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말할 수 없었고 학생 또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사가 학교 안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시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필자가 우려하는 점은 학교에서 ‘정치’에 관해 논의하는 것을 마치 이상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면서 학생들을 정치와 유리시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인 조영선(2020)은 ‘교사가 무조건 찍으라고 해서 투표하는 18세가 얼마나 있을까? 학생들은 교사뿐 아니라 친구 등 누구의 말도 참고할 권리가 있다.’ [각주:12] 고 밝히며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다. 아주 어린 아이도 자신의 호오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때 교사의 발언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학생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또한 ‘교사의 선거 개입’이 걱정된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교사 의견을 눈앞에서 되받아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각주:13]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교사의 정치적 표현을 보장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행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일 테지만, 조영선(2020)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사의 발언에 비판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조성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교사의 정치적 중립만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민주시민교육이 달성되기 어렵고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교실의 정치화까지 실현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2) 교실의 정치화를 통한 민주시민교육

 

우리는 앞서 미국의 국가공무원법과 한국의 국가공무원법을 비교하여 ‘교사의 정치적 중립’에 관해 숙고해보았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선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실의 정치화까지 바라보아야 함을 파악했다. 필자는 교실의 정치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기에 앞서, 미국 해치법의 영향을 받은 일본 국가공무원법에 관해 일본 내에서 어떠한 비평이 있었는지 제시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앞으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국가공무원법은 미국의 점령정치 때, GHQ [각주:14] 의 압력으로 법령이 생성되었다. GHQ의 압력에 인사원은 저항을 통해 GHQ의 최초 요구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현행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GHQ의 압력으로 인해 제정된 법은 헌법 2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 보장의 중대한 위반과 본래 법률에 규정되어야 할 처벌을 행정입법인 인사원 규칙에 맡긴다고 하는 헌법 31조의 위반을 더불어 공무원의 인권 제한을 법률이 아닌 인사원 규칙에 포괄적으로 맡긴다는 헌법 31조의 위반(백지위임)의 이중 삼중의 위헌 소지가 크다 [각주:15]
고 센슈대학교수인 하레야마 카즈호(2013)는 역설한다. 즉, 미국에서 일본의 국가공무원법에 영향을 끼친 해치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1993년 개정 해치법을 시행한 것처럼 일본에서도 국가공무원법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하여 일본 법률은 <행정의 중립적 운영 확보와 이와 관련한 국민의 신뢰 유지>를 명시하여 정치적 행위금지의 목적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직결시켜 그 결과로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논리로 되어있다. 즉, 공무원의 정치활동 자유를 인정하면 필연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상실되어 <행정의 중립적 운영 확보와 이와 관련한 국민의 신뢰 유지>가 근본부터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그 자체의 유지를 정치적 행위의 금지 목적으로 하는 한 금지되는 정치적 행위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된다. [각주:16]


하레야마 카즈호(2013)는 표현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할 정치적 행위와는 별개로 법에 의해 금지•제한되어야할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에 있어선 어떤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지, 또 그 행위는 어떤 이유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의 제약을 받아야하는 것인지가 남겨진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이 금지•제한되어야 할 행위는, <행정의 중립적 운영의 확보>를 실질적으로 해친다고 인정되는 행위, 구체적으로 직무상의 지위나 권한을 이용하여 행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행위에 대해선 징계처분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형벌의 대상이 되는 것(가령,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상의 제한은 아니지만,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에 대한 처벌을 정한 공직선거법 239조의 2 제2항) 등을 지적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금지되고 제한되어야 할 정치적 행위의 유형과 이에 대한 제약의 내용 및 정도를 구체적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 과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히며, 공무원이 시민으로서 행하는 정치적 행위는 표현의 자유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각주:17]

이처럼 일본 내에서 국가공무원법에 의거한 정치적 중립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제시되는 가운데, 2015년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우려하는 교실의 정치화를 실현한다. 

 

이번 법 개정으로 고등학생도 유권자 자격을 갖게 됩니다. 실제 선거와 동일한 시기에 실제와 비슷한 투표용지를 사용해 투표해봅시다. 대표자를 뽑는 활동을 통해, 민주 정치가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위의 내용은 2015년 일본 정부가 만들어 전국 고등학교에 보낸 선거교육 부교재에 나온 ‘모의선거’ 관련 내용이다. [각주:18]


우리나라에 입장에서 바라보면, 학교에서 ‘선거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 단어 자체로 생소할 것이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만 18세 선거권’, 이 모두를 통괄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교실의 정치화’와 관련된 것인데, 학교에서 ‘선거교육’을 하는 것은 정치를 교실 속으로 끌고 들어오겠다는 말과 다름없으며, 이는 교실의 정치화를 실현하겠다는 입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 교실의 정치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사의 특정 정치적 사상이 학생들에게 주입될 수 있고 나아가 교실 정치장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정치화된 교실은 하나의 싸움터이며 이념의 대립으로 교육의 원활한 진행에 방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고선규 와세다 대학 시스템경쟁연구소 연구위원(53, 전 도호쿠대 교수)은 현시대의 학생들은 가치판단이 명확하고 가치 기준 또한 충분히 형성되어 있으며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어른들보다 낫기 때문에 교사의 사상 주입에 휘둘리는 사태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강조한다. [각주:19]

 

[일본 정부가 만든 선거교육 교재 표지] “우리가 열어가는 일본의 미래: 유권자로서 필요한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의선거는 현실의 정치를 반영한다. 실제 정책과 정당을 모의선거에서 활용하여 선거 토론회를 진행한다. 학생들은 선거 포스터를 만들고 정견발표도 하며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심지어 오이타현 교육청 안내문을 보면 정치인을 부를 수도 있다. [각주:20]
일본에서 모의선거를 진행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것처럼 편파적인 정치적 사고를 가진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계기는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주권자로서의 인식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고자 함이다.

서울휘봉초등학교 수석교사인 설진성(2019)은 교사가 정치적 기본권을 가진다면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보다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문화 안에서 이방인처럼 그 존재가 사라진 교사는 민주시민교육이 요구하는 사회민감성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주:21]
교사는 시의적인 정치적 논쟁들을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상호적 논의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면 학생은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접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 정치 사안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사와 학생의 자유로운 정치적 발언을 보장한 교실의 정치화가 실현될 때, 우리는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마치며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가능한가? 나아가, 교실의 정치적 중립은 가능한가? 정영태(2010)는 정치적 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제시하며, 조국(2012)은 오히려 교원들의 정치적 성향을 허용하여 능동적인 시민성을 발휘하게 할 때, 비로소 그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도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순일(2013)은 ‘학생 미성숙론’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학생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는 순종적인 신민을 양성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각주:22]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정치적 표현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할지를 차치하고 교실이, 학교가 정치와 유리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학생 미성숙론’과 ‘학생의 정치도구화’를 내세워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할 수 있지만 사실 완전한 ‘정치적 중립’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정영태(2010)가 정치적 자유권을 제한하는 데 의문을 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일례로. 한국사 시간에 다룬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학생이 숙고하고 ‘마리몬드’ 회사를 알게 되어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SNS에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운동하는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학생의 정치도구화가 발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교실의 정치화가 교실을 각축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에 필자는 미지근한 입장을 취한다. 이는 곧 정치가 아무 의미 없는 싸움이라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가 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개인의 지적수준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정치가 더러운 것이고 서로 헐뜯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속이는 집단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더라도 결국 사회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정치적이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양성하고 싶은 국민은 사회의 부조리에 순응하는 국민이 아닌, 민주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려하는 국민일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학생들과 교사에게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정치는 더러운 것이니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으로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줄 알아야 하며 정치를 더러운 것이 아닌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삶 그 자체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붕당 정치의 폐해처럼 자신의 집단적 이익만을 주장하는 상황은 오히려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발언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매체에서 주어지는 자료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에서 정당연설회를 개최해보자는 한 교사의 발언 [각주:23] 은 눈여겨볼만 하다.

 


<참고자료>

1. 서강영, 『SNS를 통한 교사의 정치참활동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9.

2. 설진성, 『민주시민교육과 교사의 태도』, 「교과교육235호」,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2019;
http://webzine-serii.re.kr/민주시민교육과-교사의-태도/

3. 임수정 기자, <헌법재판소 “교원 정치단체 결성, 가입 금지 조항은 위헌”>, 2020-04-23;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3131600004?input=1195m

4. 윤근혁 기자, <일본 문부성도 하는 ‘학생 모의선거’ 반대? 어이없다“>, 2020-01-13.;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252966

5. 조영선, <교실의 정치화가 걱정되신다고요?>, 2020-03-0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71

6. 홍정림, 『교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그 한계-미국과 한국의 법제 비교 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5.

7. Jaime Fuller, , 2014-07-18;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4/07/17/do-you-work-in-government-have-you-violated-the-hatch-act-lets-investigate/

8. [The Hatch Act_Permitted and Prohibited Activities for Most Federal Employees];
https://osc.gov/Documents/Outreach%20and%20Training/Posters/The%20Hatch%20Act%20and%20Most%20Federal%20Employees%20Poster.pdf

9.晴山一穂,『公務員の政治的行為の制限―国公法違反事件最高裁二判決の考察―』,自治総研通巻416号, 2013.

 

 

  1. 임수정 기자, <헌법재판소 “교원 정치단체 결성, 가입 금지 조항은 위헌”>, 2020-04-23;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3131600004?input=1195m [본문으로]
  2. Jaime Fuller, , 2014-07-18;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4/07/17/do-you-work-in-government-have-you-violated-the-hatch-act-lets-investigate/ [본문으로]
  3.  [네이버 국어사전] 선거에 의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선거에서 공을 세운 사람을 관직에 임명하는 정치적 방침;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2025e7f0a694b809513fc010c25e423 [본문으로]
  4. ① 선거에 개입할 목적 또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자신의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② 정치현금을 권유 또는 수령하는 것, ③ 정당을 대표하여 공직후보에 입후보하는 것 등. [본문으로]
  5. Tinker v. Des Moines Independent Community School District, 393 U.S, 503. [본문으로]
  6. 홍정림, 『교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그 한계-미국과 한국의 법제 비교 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5, pp.97-104. [본문으로]
  7. Loc.cit. [본문으로]
  8. &amp;nbsp;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 문서를 참조.&amp;nbsp;;https://osc.gov/Documents/Outreach%20and%20Training/Posters/The%20Hatch%20Act%20and%20Most%20Federal%20Employees%20Poster.pdf&amp;nbsp; [본문으로]
  9.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 문서를 참조. ;https://osc.gov/Documents/Outreach%20and%20Training/Posters/The%20Hatch%20Act%20and%20Most%20Federal%20Employees%20Poster.pdf  [본문으로]
  10. 홍정림, ibid., p.109. [본문으로]
  11.  홍정림, idid., p.110. [본문으로]
  12. 조영선, <교실의 정치화가 걱정되신다고요?>, 2020-03-0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71 [본문으로]
  13. Loc.cit. [본문으로]
  14.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본문으로]
  15. 晴山一穂,『公務員の政治的行為の制限―国公法違反事件最高裁二判決の考察―』,自治総研通巻416号, 2013, p.4. [본문으로]
  16. ibid., pp.7-8. [본문으로]
  17. ibid., pp.23-24. [본문으로]
  18. 윤근혁 기자, <일본 문부성도 하는 ‘학생 모의선거’ 반대? 어이없다“>, 2020-01-13.;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252966 [본문으로]
  19. 위 기사. [본문으로]
  20. 위 기사. [본문으로]
  21. 설진성, 『민주시민교육과 교사의 태도』, 「교과교육235호」,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2019; http://webzine-serii.re.kr/민주시민교육과-교사의-태도/ [본문으로]
  22. 서강영, 『SNS를 통한 교사의 정치참활동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9, pp.20-21. [본문으로]
  23. 조영선, 위 기사. [본문으로]

작년 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었습니다. 18세 선거권 도입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선거권을 갖기에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정치교육을 통하여 청소년의 사고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 등 청소년의 정치적 주체성과 관련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호에서 이러한 주장들이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정치할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코로나19 교육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 그 사이 교생의 입장은

ALee

 

 

#들어가며 코로나19와 학교

 

@ 사범대의 꽃, 교생실습

학교현장실습, 교생 실습 등으로 불리는 교육 실습은 사범대생들이 전공과목인 교과 지식과 교직 과정에서 배운 교육이론 및 교수학습방법을 현장교육에 직접 적용하여 평가해보고, 교과 수업 및 학급 경영에 관한 실무적인 경험을 통하여 교사의 역할을 익히며, 교직에 대한 적성과 능력을 검증해 봄으로써 교육에 대한 열망과 자아정체감을 갖게 하여, 교육 이념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자질과 인격을 함양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교생 실습은 4주간의 중, 고등학교 실습과 1주간의 초등학교 실습으로 이루어지며, 사범대생들은 그동안 수업을 참관하고 진행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직접 만나고 교감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쌓아나간다. 그런 점에서 교생 실습은 사범대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 코로나19와 학교

사상 초유의 판데믹, 코로나19로 인해 사회는 교육을 포함한 다방면에서 지금까지는 겪지 못했던 큰 변화와 마주하게 되었다.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의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배움을 열었다(開學).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교사와 학생들은 교사들은 교사 나름대로, 학생들은 학생 나름대로의 혼란에 빠져있었다. 교사는 지금까지의 업무와 생판 다른 업무와 지금까지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온라인 개학을 위한 준비에 바빴고, 하루하루 바뀌는 교육 정책은 교사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보도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빠르고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는 X버 공문이라는 은어까지 생겼다. 또한, 본격적인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며 교사들은 교재 연구와 수업을 비롯한 기존의 업무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업무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학교 현장에 대해 많은 이들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 체계에 많은 관심과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교사로서의 혼란과 학생으로서의 혼란 사이 그 어딘가에서 불투명한 일정을 붙잡고 불안에 떨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교생이다.

 

 

#코로나19와 교생

 

1. 학교현장실습 이전

@ 불투명한 실습 일정

몇 차례에 걸친 개학 연기로 불안한 것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됨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직접 실습을 해야 하는 교생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나를 비롯한 많은 교생 실습생들은 교생 실습을 위해 동아리, 학회, 인턴십, 교환 학생 등을 포기하거나 연기한 경우가 많았고, 교생을 나가지 못하는 것은 곧 졸업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으므로, ‘만일 이번 학기에 교생 실습을 나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걱정이 가득했다. 또한, 교생 실습생들은 교생 학기를 준비하며 5월 일정은 통째로 비워두고, 학회, 동아리를 비롯한 기타 일정은 6월부터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교생 실습 일정이 미뤄지는 것 역시 걱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교생 실습생들의 이런 불안감을 모른척하듯, 코로나19는 끊임없이 신규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결국 2020317, 교육부는 전국 모든 학교의 개학을 2주간 추가 연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326, 나는 과 조교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공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코로나19의 여파는 가실 생각이 없었다. 결국, 331, 교육부는 처음으로 초중고특 신학기 온라인 개학 실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바로 다음 날인 41, 나는 과 학생회 공지방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받았다.

 

 

지금까지 4주간의 현장실습이 당연했던 교생 실습은 이제 2주로 조정되었고, 5월 한 달간 진행되었던 교생 실습은 5월 말부터 6월 초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일주일간 진행되던 초등교육실습은 올해에 한해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약간 아쉬웠다. (사실 초등교육실습이 어떤지 애초에 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간접실습이었다. 교생 실습으로 받을 수 있는 2학점 중에 무려 1학점이나 간접 실습으로 돌렸으면서, 간접 실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엇이 간접 실습인지 전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학생들이 온라인 개학을 하면 온라인 개학 수업을 참관하는 것인지, 아니면 따로 교수학습과정안과 같은 과제를 준비해서 제출해야 하는지 전혀 알 방도가 없었고, 모든 설명은 부설학교와 협의하여 진행이 전부였다. 그런데 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부설학교(사대부중, 사대부고) 중 어느 학교로 가게 될지도 모르던 상태였기 때문에 답답함은 뒤로 하고 일단은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나 약 3주간 교생 관련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전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의 교생을 과연 나갈 수 있을지하는 불안감과 이번 학기에 교생을 꼭 하고 졸업을 하고 싶다라는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422, 갑자기 과 조교님에 의해 교생 실습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카카오톡 톡방이 생겼다. 조교님께서는 톡방을 만들자마자, ‘2020학년도 교육실습 실시계획이라는 파일을 올려주셨다. 나는 , 교생 실습 어쨌거나 갈 수 있는 건가(두근)’하는 마음으로 재빨리 열어보았고,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지보다 구체적인 안내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2020 교육실습 실시계획> 중 일부

지금까지의 모든 공지 중 가장 구체적이었다는 점에서 해당 서류는 내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지만, 서류의 내용 중 간접실습(15시간) 운영 계획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일단, 사전에 전혀 안내되지 않았던 실습 학생 대상 사전 교육이 있었다. 사전 교육은 실습생 필참, 참석여부 근무일반성적에 반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전 교육 날짜는 5/18일이었는데, 해당 공지를 처음 전달받은 날짜가 422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필수 참석 일정이 하나 새롭게 생겨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당연히 급변하는 교생 일정에 나는 5월 일정을 풀로 비워놓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얼마나 교생 실습 일정이 급하게 변화하며 굴러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공지를 받은 당일, 조교님께서 교생 학교 배정은 ‘(카카오톡 톡방에) 투표 올리면 희망학교를 선택하고, 배정 인원보다 많은 경우는 사다리를 타는 것으로 정해진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다음 날 오전 11시를 살짝 넘은 시각, 나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가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518일까지 궁금증만 한가득 안고 사전 교육 때까지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생 사전 교육이 1주일도 남지 않았던 514, 교생 사전 교육이 갑자기 18일에서 20일로 연기되었다는 공지를 받았다. (솔직히 이쯤 되니 일정이 갑자기 생기고 미뤄지고 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근무일반성적에 반영되는 필수 참여 일정을 4일 전에 미루는 학교의 모습을 보며, 이번 교생 일정 참 어지간히 정신없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날인 514, eTL ‘학교현장실습(001)’에는 사전 교육 관련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기존에 받았던 ‘2020학년도 교육실습 실시계획에 나와 있던 간접실습 관련 영상인 것 같아서 일단 시청을 했다. 그리고 20일 사전 교육 바로 전날인 19, 아래와 같은 공지가 올라왔다.

 

<ETL  캡처 >  이대로 괜찮은 걸까 교생 실습

어쩐지 학습진도현황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더랬다. 현장실습은 아직 시작조차 안 했는데, 저 공지사항을 읽으며 선생님께서 당황스러워하시는 모습이 화면 건너로 얼핏 비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나는 사전교육 영상을 모두 이수하고, 첨부 자료까지 다운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물론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저 공지를 읽고 괜히 첨부 자료를 한 번 더 다운 받아보기는 했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교생 실습 학교를 처음으로 방문하고, 다른 교생들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보니 다음과 같은 공지도 함께 올라왔다.

 

<ETL캡처> 이런 공지

 

영상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생활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을 안내하고 있었다. 마스크 벗지 말기, 급식 때 얘기하며 먹지 않기 등? 그런데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학교 선생님들이 하셨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학교 일로 정신없으셨을 텐데 그 와중에도 학생들을 위해 직접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고 편집하셨을 선생님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해 보였고,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심지어 곳곳에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재미를 가미하기 위한 선생님들의 드립을 향한 열망이 보여서 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사실 캡처해서 보여주고 싶지만, 일단은 사대부고 선생님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참는다.)

 

@ 학교현장실습 사전 교육(5/20)

 

<사대부고 전경> 멋진 풍경에는 하늘(과 사대부고 외관)이 한몫했다 .

 

사전 교육을 받으러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는데, 멀리서 보아도 나는 시설이 좋은 학교다!’를 외치고 있는 사대부고의 외관과 합쳐지니 정말 멋진 풍경이 되었다. 사실 태어나서 사대부고만큼 시설이 좋은 학교를 본 적이 없었기에, 교생 실습에 대한 기대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현장실습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사대부고 정문> 정문도 멋있다 … .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난 친절한 안내판

학교 감상 후 사전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 내부로 들어갔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날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선생님도 학생도 아닌 열화상 카메라였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아 무사히 첫 번째 관문을 지나 선농홀로 들어가려는데, 선농홀로 들어가기 전에는 손 세정제라는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 세정제로 손을 닦으며 선농홀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교생 실습생들이 한 칸씩 건너 앉을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 실습생 번호_실습생 과목_실습생 이름으로 된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학교 선생님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쓰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사전 교육이 시작되자, 연구지원부장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학교실무전체교육을 해주셨는데, 생각보다 교생이 할 일이 정말 많다는 사실과 코로나19로 인해 과제 방식 등 학교의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사전 교육을 듣다 보니 왠지 교생 과제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듣고, 정작 나를 비롯한 다른 교생들이 가장 궁금해 할 만 한 학생과 만나는 일(만남이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접촉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순간 선생님께서 참관 및 교과수업/학급경영 실습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다.

 

<교과수업 관련 안내> ‘ 학생 미등교 ’,  즉 학생이 없다 .  교생은 있는데 학생은 없는 기현상
<학급경영 관련 안내> 학생들과 체육대회는커녕 온라인으로라도 만나면 다행인 수준이다.

쉽게 말해, 사전 교육을 실시한 날인 520일부터는 고3 학생들은 매일 등교하지만, 1, 2 학생들은 정부 지침으로 인해 격주 등교를 하게 되어 실습 첫째 주까지는 고1, 2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고, 실습 둘째 주는 고2가 등교하고, 실습 셋째 주는 고2가 등교하지 않는 대신 고1이 등교하는 매커니즘인 것이다. 그런데 교생이 고3을 맡을 수는 없는 일이니, 2를 맡은 교생들은 현장실습 2주 중 1, 그리고 고1을 맡은 교생들은 현장실습 2주 중 단 한 주도 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없음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학교에 학생은 없는데 교생은 있는 그런 이상한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안내였다.

다음으로는 각 교과별로 이동하여 학과/교과 차원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내가 소속된 교과는 2층의 카페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본관 2층에 위치한 교내 카페는 시설이 굉장히 좋았는데, 적당히 고급스러운 의자와 탁자, 벽에 걸려있는 알 수 없는 그림들, 웜톤으로 공간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조명까지 마치 유명 카페 체인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학교라고는 믿기 어려운 공간에 감탄하고 있는 교생들을 보신 듯, 선생님께서도 해당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해당 공간은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XX’같은 느낌의 카페처럼 만들려고 2월에 리모델링을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학교가 야심차게 준비한 최신 시설을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보다 학교에 2주간 머물다 가는 교생들이 먼저 맛보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교과 차원의 교육도 친절한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이렇게 520일의 현장 사전 교육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학교에서의 현장실습이었다.

 

[타임라인]

2020.03.03. 중등 실습: 5/6~6/1, 초등 실습: 4/27~29, 6/3~6/5

2020.03.26. ‘이번학기 교생은 5월 말로 연기 됐고, 정확한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

2020.04.01. 직접 실습: 5/25~6/5, 간접 실습: 부설학교와 협의하여 진행

2020.04.22. ‘첨부된 교생 계획 확인하세요’ - 5/18 사전 교육 예정

2020.04.23. 실습할 학교 확정(윤리과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다리 탔어요ㅎ)

2020.05.14. 5/18 사전 교육이 5/20으로 연기(코로나19)

2020.05.20. 부설학교에서 현장 사전 교육 진행

 

2. 학교현장실습과 그 이후

 

@현장실습 첫날(5/25)

525일 학교현장실습 첫 출근 날.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생 셔틀을 이용하기 위해 오전 615분쯤 낙성대 입구 CU 앞에 도착했다. CU 앞에는 나 말고도 다른 교생들이 핸드폰을 보거나, CU 앞 테이블에 앉아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생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꼭두새벽부터 정장이나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파란 덴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 물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윽고 교생 셔틀이 오자, 차례차례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아는 사람 같은데도 인사하기가 뭔가 꺼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른 시간이라 비몽사몽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한강도 건너고 서울 곳곳을 지나자 어느덧 사대부고 앞에 도착했다. 원래는 실습생실이 있는 구 본관으로 출근했어야 하나, 출근 첫날 1교시에는 교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학교 전체 실무 연수가 있어 본관으로 바로 들어갔다. 20일 사전교육에서 뵈었던 연구부장 선생님께서 현장실습 기간의 과제와 식사 장소, 그리고 실습생실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이때 식사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안 쓰는 교실을 활용하여 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 하셨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자리는 소위 말하는 시험 대형으로 마련될 예정이며, 식사 중 대화는 절대 금지라고 하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인생의 소소한 낙인 나는 급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추억이 떠올랐지만, 이 코로나19 시대의 학생들은 그러한 재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연수가 끝난 후, 각자 실습생실로 이동하여 자기 자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습생실은 구 본관의 안 쓰는 교실을 활용하여, 각 실습생들이 책상 하나 이상의 간격을 두고 띄어 앉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실습생실 앞 편에는 손 소독제, 희석 락스 등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책상 위에는 꽤 넓은 간격을 두고 두루마리 휴지가 올려져있었다. 실습생들은 두루마리 휴지가 올려진 자리에 가서 앉으면 되었다. 교생들은 혹시 모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예방을 위해 자기 자리에 짐을 풀기에 앞서, 희석 락스를 이용하여 각자의 자리를 닦았다. 나 역시 내 자리에 올려져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희석 락스를 묻혀 내 자리의 책상과 의자를 구석구석 꼼꼼히 닦았다.

 

<급식표> 가장 설레는 시간

실습생실 이동 및 정리까지 끝난 후에는 점심 급식을 먹었다. 교생들의 점심 급식은 학생들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1학년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작년과 같았으면 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점심 급식을 먹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밥을 먹는 순간마저도 학생들과 만날 일이 없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급식을 먹는 것도 2, 교생들이 급식을 먹는 것도 2층이었는데, 2층에서 학생들과 마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생들은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가 다른 쪽 계단으로 다시 올라가 배식을 받아야 했다. 정말 불편했다.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설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여 대화를 최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다지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식기를 집기 전에 반드시 손 소독제로 손을 먼저 닦을 수 있도록 식기 앞에 키 큰 책상과 손 소독제가 놓여 있었다. 그렇게 배식을 받고 나서는 학교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시험 대형으로 책상이 놓여 있는 1학년 교실에 들어가 빈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서로 떨어져 앉아 앞만 보고 밥을 먹으니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가 들릴 리는 만무했고,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시험 대형으로 놓인 책상에서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니 괜히 시험 보는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는 기분도 들었다.

7교시에는 학급경영 협의회에 참가하기 위해 각 교생의 담당 학급으로 이동했다. 교실에 도착하니 다양한 교과에서 온 교생들과 내가 담당하는 2학년 7반의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께서는 ‘2학년 7반 학교현장실습생 지도 자료를 나누어주셨고, 학급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설명해주셨다.

한편, 학급 교생이 학급 학생들을 만날 기회는 사실상 0에 수렴했다. 현장실습 1주차에는 물론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쳐도, 학생들이 등교하는 2주차에도 교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침 조례 참관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3명씩 나누어 참관에 들어갔다. 아침 조례 및 종례 진행, 학생 상담, 학급 경영 등은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일정이었다. 학급의 학생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사라진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다.

한편,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현장실습 1주차에는 간접실습 1주차에 과제로 제출했던 학급지도자료(3~5분 가량의 영상)를 학생들이 있는 카톡방에 업로드함으로써 아침 조회를 대체한다고 하셨다. 학급 학생들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카톡방을 통해 영상이 공유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현장실습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상상해보지 못했던 방식이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또한,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라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는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는커녕 다짜고짜 교육적인 내용의 영상을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해당 과제는 사전에 ‘EBS 다큐멘터리를 보고 학생들에게 전달할만한 교육적 내용을 자율 양식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미 제출한 해당 과제가 실제 학생들에게 바로 전달된다는 사실은 안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단지 다큐멘터리의 내용뿐만 아니라 학생들과의 첫 만남이므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전반적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을 종합적으로 구성하여 더 좋은 자료를 만들었을 수 있었으리라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학급 지도 선생님께서는 현재 담임 선생님으로서 간단한 학급에 대한 소개와 자신이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도 설명해주셨다. 먼저 선생님께서 학급 구성원의 특징을 설명해주시면서 저도 아직 아이들을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고, EBS 영상 잘 봤는지 확인 전화로만 만나봤어요라고 말을 덧붙이셨는데, 얼굴도 보지 못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급의 특징을 설명해주시는 이 상황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그렇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며 아직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온라인 너머로 정말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온라인으로만 소통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 한명 한명이 낙오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매일매일 전화하며 어떻게든 모든 학생을 이끌어 가려고 하시는 모습은 웬만한 사명감 없으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지금 학급 지도 선생님의 자리였다면 온라인을 통해 학생들 한 명 한 명 챙겨가며 함께 나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학급 지도 선생님이 매우 존경스러웠고, 비록 과거보다 기회가 많이 줄었지만 주어진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학급경영, 통솔력, 학생들에 대한 애정 등을 최대한 많이 배워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새로운 환경의 학교에서의 교생 첫 출근 날이 저물었다.

 

@첫째 주(5/26~5/29)

526일부터 학교 안으로 들어갈 때는 정문이 아닌 쪽문 쪽으로 들어가 실습생실이 있는 구 본관으로 이동했다. 구 본관 안으로 들어서며 1층 로비에서 출근 체크를 위해 알밤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출근버튼을 누르자, ‘출근 성공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출근 시간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실습생실로 발길을 옮기기 전,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한 함께 비치된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쟀다. (그런데 아무래도 비접촉 체온계다보니 너무 멀리서 재면 가끔 34도와 같이 지나치게 낮은 온도가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체온까지 잰 후에야 비로소 도착한 실습생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사용한 실습생실은 두 개 교과에서 함께 사용했는데, 마스크로 인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각자의 할 일(교수학습 과정안 작성, 각종 과제물 준비 등)에 몰두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실습생실의 고요한 분위기는 마치 독서실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삭막해지기 쉬운 실습생실의 환경 속에서도, 교생들 사이의 인간적인 정이 오고 가는 일도 있었다. 다들 바쁘고 피곤한 상황에서 한 교과의 한 교생이 밀크티와 커피 티백을 가져와 실습생실 앞 칠판 위에 둔 것이 시작이었다. ‘밀크티&커피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0^’라는 귀여운 메모와 함께. 그러자 다른 교과에서도 작은 간식을 들고 와 초콜릿 드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밀크티와 커피 옆에 나란히 두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사람 사이의 정이 가득 담긴 간식들은 삭막한 실습생실 환경 속 오아시스,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고, 학생들과 잘 만나지 못하고 각자 온종일 온갖 문서와 씨름하는 교생들에게 이러한 광경은 꽤 감동적인 풍경이었다.

 

<실습생실 앞> 오고 가는 간식 속에 피어나는 교생들의 따뜻한 정(전우애에 가까운 것 같다)

 

@ 수업 참관

현장실습 첫째 주는 학생이 없는 채로 이루어졌다. 유일하게 등교하는 학생들은 고3 학생들로, 1, 2를 담당하는 교생들은 학생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내가 속한 교과의 고3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교생들을 배려해주신 덕분에 고3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셨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모든 교생이 한 번에 모두 참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실습생 번호 순서대로 두 팀으로 나누어 참관에 들어갔다. 나는 화요일 5교시, 점심을 먹고 참관을 하러 수업이 이루어지는 3학년 2반 교실에 도착하여 교실 뒤편의 교생 자리에 앉았다.

교실 뒤에서 보는 교실의 풍경은 코로나19 이전의 교실과 사뭇 달랐다. 먼저 교탁 위에는 커다란 손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 학생, 교생 모두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진행했고, 아직 서로를 직접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은 5월임이 믿기 힘들 정도로 서먹서먹했다. 한편, 수업이 시작한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마스크를 단 한 번도 벗지 않으셨지만, 끊임없이 말을 계속하시느라 조금씩 숨차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수업을 진행하시고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시도하시며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시키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의 열정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학생 없는 첫 주. 교생들은 무엇을 했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학생들이 등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생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생들은 학생 없는 학교에서도 나름대로 학교현장실습의 목적, 즉 전공과목인 교과 지식과 교직 과정에서 배운 교육이론 및 교수학습 방법을 직접 적용하고 평가하는 데 충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다. 이에 교생들은 교과 선생님 및 학급 선생님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발표하기를 반복했다.

특히 우리 교과의 경우 현장실습 2주차부터 학생들이 등교하며, 학생들이 등교하자마자 월요일부터 바로 교생들이 실전 수업에 투입되기 때문에 1주차는 그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보냈다. 교생들은 실제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기 전 다른 동료 교생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수업을 20분 정도로 짧게 시연하고, 학급 협의회 시간을 활용하여 각자의 수업에 대한 다방면의 평가(수업 내용, 발문, 목소리 톤, 억양 등)를 주고받았다. 이때, 비록 교생 선생님들 앞에서 시연하는 것이었음에도, 각종 PPT, 학습지 등 실제 수업과 전혀 다른 바 없는 학습 자료를 준비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동료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교수학습 과정안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교수학습 과정안을 구성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다음 주에 실제로 만날 학생들 앞에서는 수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학생보다 교생이 더 많은 학교였지만, 교생들은 교수학습 과정안을 구성하고, 수업 PPT를 만들고, 학습지를 비롯한 학습 자료를 제작하고, 다른 교생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교과 협의회에 참가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둘째 주(6/1~6/5)

둘째 주부터 고2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교생들은 본격적으로 실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5일 중 각 교생에게 배정된 시간은 2시간이었다. , 약 한 달여간의 교생 실습 기간 중 학생들과 실제로 수업을 해볼 수 있는 것은 단 2시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마저도 각각 다른 교실에서 한 시간씩 수업을 하는 거라,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편, 각 교생은 매일 3시간 이상 자신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거나, 혹은 다른 교생의 수업을 참관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같은 교과의 교생들은 사전에 수업 참관 조를 구성하여, 한 시간에 5명 이상이 참관하러 교실에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코로나19 상황 속 학생들과의 수업을 전제로 한 새로운 교수학습 과정안을 작성했다. 코로나19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기 때문에 이에 맞춘 새로운 교수학습 과정안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상황 속 교사와 학생은 모두 수업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존에는 수업 구성에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아니 사실상 필수로 여겨졌던 학생들의 (적극적인)수업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발표 및 모둠 활동과 같이 학생들의 참여가 필요한 활동은 전부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스마트 도구인 멘티미터’, ‘패들렛으로 대체해야 했다.

처음에는 교생들 역시 멘티미터, 패들렛 등 비대면 시대의 스마트 도구에 익숙하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학창 시절에 이러한 스마트 도구를 사용해본 적도 없고, 교직 과정에서도 이러한 스마트 도구의 활용법은커녕 존재 여부까지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 단 한 번뿐인 현장실습에서 학생들의 참여 없이 강의식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나를 비롯한 그 어떤 교생도 원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단 일주일, 그중에서도 단 두 시간의 수업을 위해 멘티미터와 패들렛의 사용법을 배우고 이를 교수학습 과정안에 반영하였다. 이렇게 교생들은 낯선 상황에서도 대학에서 배운 교수학습의 방법들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수업에 임했다.

 

@ 조회 참관(6/4)

학교현장실습에 참여한 교생들은 각자의 전공에 따른 교과를 맡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학급을 담당하여 해당 학급의 조례 및 종례를 참관하고 진행한다. 하나의 학급에는 약 10명 내외의 다양한 과에서 온 교생들이 섞여 있고, 약 한 달간 하나의 학급에서 동고동락하며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담당한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과 대화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담당 학급의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단 한 번의 학급 조회 참관이 전부였다.

6/4일 목요일, 나는 학급 조회를 참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2학년 7반 교실에 들어갔다. 나와 함께 오늘 학급 조회를 참관하는 교생은 나포함 3명으로, 각자 교실 뒤편의 왼쪽, 가운데, 오른쪽에 서로 2m가량의 거리를 두고 띄어 앉았다. 이윽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도착했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학급 담임 선생님께서는 먼저 아이들의 출석체크와 함께 코로나-19의 상황을 반영하여 학생들이 자가 검진을 모두 완료했는지, 하지 못했다면 하고 올 수 있도록 안내해주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챙기려고 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고, 지금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간 학교에 다니고 수백 번의 조회를 경험했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조회풍경이 낯설고 새로웠다.

그러는 한편, 교생의 입장이 되어 조회를 참관하니 아침 조회란 담임 선생님으로서 매우 힘든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국에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고 마스크를 입까지 내리고 떠들거나, 등교 전 자가 검진 시 메스꺼움등에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주의하라고 경고하여야 하셨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각하는 학생들, 자가 검진을 하지 않은 학생들, 마스크를 끼지 않고 떠드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전부 신경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예전 학급 협의회 때 선생님께서 '아이를 육아하는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서 조금 마음 아프면서도 담임교사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회 중 잠깐 학생들과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과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긴장되기도 했지만, 학생들과 만나는 이 찰나의 시간을 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다른 교생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져 정말 아쉬웠다. 예년과 같았다면 이 학생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으리라는 안타까움도 들고,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거라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교생의 관점에서 학급 조회를 직접 참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학생들과 만나는 마지막 시간이 마무리되었고, 교생 실습도 어느덧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 현장실습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 2주간의 현장실습 이후에는 또다시 약 1주일의 간접실습 기간이 있었다. 간접실습 기간에는 현장실습 동안 새롭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평가문학 작성, 교수학습 과정안 세안 작성/동영상 제작 등의 과제가 있었으며, 이러한 과제를 모두 제출하고 실습 동안 거의 매일같이 작성했던 학교현장실습록도 pdf로 변환하여 온라인으로 제출한 후에야 비로소 교생 실습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 (심심해서 만든) 교생 하루 일과표

 

 

[타임라인]

2020.05.18.~2020.05.22. 간접 실습 1

2020.05.25.~2020.05.29. 학생 없는 학교에서 교생 실습 진행

2020.06.01.~2020.06.05. 2 학생 등교 격주 등교

2020.06.08.~2020.06.12. 간접 실습 2

 

 

#나가며

 

@ 코로나19와 학교현장실습의 목적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고,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밀집되어 생활하는 학교의 특성상, 효과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는 개학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순한 개학 연기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었고, 이에 각 학교는 EBS 등을 활용한 온라인 개학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온라인 개학으로 인해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대신 매일같이 EBS 온라인 클래스를 활용하여 수업을 들어야 했으며, 교사는 학생들이 뒤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얼굴도 보지 못한 학생들의 잠을 깨웠다. 학교가 문을 열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등교하며 교사들은 기존의 수업 준비와 같은 업무에 학생들의 자가진단 여부 확인을 비롯하여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새로운 방식의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격주 등교라는 난생 처음의 등교 방식에 적응해야 했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꾸준한 학습을 통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학교 현장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코로나19 이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코로나19가 교육에 던진 수많은 화두에 대해 활발히 토론했다.

그러나 학교를 잠깐 들렀다 가는 존재인 교생에 대해서는 누구도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학교 상황 속에서, 나를 비롯한 4학년 1학기에 재학 중인 사범대생들은 졸업을 위해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코로나19로 인해 교생 실습의 기간부터 방식까지 전부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교생 생활에 대한 온갖 기대는 모두 빗나가 버렸고, 학생 상담을 비롯하여 사범대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봐야 할 교생 실습의 당연한 과정들을 대부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교생들은 학교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생들에게 최대한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학교 현장실습의 목표> 6번을 보시라. 망했다.

 

여기서 우리는 학교 현장실습이 어떤 활동인지 다시 한 번 살펴야 한다. 학교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교육에 직접 적용하여 평가하고, 교과 수업 및 학급경영에 관한 실무적인 경험을 통하여 교사의 역할을 익히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교직 관련 능력을 함양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교감하는 경험을 통해 학생을 이해하는 기회를 갖는 것 역시 학교 현장실습의 목적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이러한 현장실습의 목적이 적절히 달성될 수 있었는가? 글쎄, 솔직히 말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교생들은 실습 일수가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수업 시수 역시 감소함으로써 현장 수업을 경험할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학교 현장실습의 목표 중 하나인 학급경영에 참여할 기회는 아예 사라졌고, 학생을 개별적·집단적으로 이해하는 경험은커녕 학생들과 말 한마디 나눌 기회도 없었다. 이렇게 교생들은 학교 현장실습에서 응당 경험했어야 할 다양한 기회를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실습 기회의 감소는 단순한 교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졸업을 앞둔 사범대생들이 누렸어야 하는 수업권을 방해하고 그에 따라 교직에 대한 자신의 적성을 살피는 것을 어렵게 했다. 또한, 학급경영 참여의 기회는 아예 사라짐으로써 예비 교사들이 졸업 후 학생들과 대면하기 전 학급경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다. 이는 예비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 현장실습의 목표가 훼손된 것과 마찬가지다.

(살짝 덧붙이자면, 나는 어쨌거나 교과와 학급 모두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하여 학생들의 실물을 직접 보긴 봤다는 점에서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학교는 학내 밀집도를 완화하기 위해 학년별로 나누어 고1과 고2의 격주 등교를 시행했는데, 현장실습 첫 주에는 고3이 등교를 시작하고, 현장실습 2주차에는 고2가 등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1은 현장실습이 다 끝난 후인 실습 4주차부터 학교로 왔다. , 1을 담당하는 교생의 경우 학생들을 실제로 만나는 현장 수업 자체를 할 수 없었으며, 조회 역시 참관할 수 없었다.)

 

@ 교육 주체로서의 교생

학교현장실습은 사범대생이 예비 교사로서 수업을 포함한 교사의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실습 참여자가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게 하고, 실전에 투입되어 학생들을 대면하기에 앞서 학교 업무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학교 현장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교생은 실습 이전까지 책과 논문 속에서만 존재했던 온갖 이론들을 실습기간 동안 실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속에 적용함으로써 살아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이러한 학교현장실습을 축소 운영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일부의 경우는 학생들과 대면하는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게 했다. 이는 분명 기존의 학교현장실습이 갖는 의의와 목표를 훼손하는 것이며, 교생의 수업권 및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코로나19 시대의 교생은 분명 무엇인가를 배워갔다. 비록 그것이 코로나19 이전의 실습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번 학교현장실습을 통해 대학 입학 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영상을 편집하고, 가장 고퀄리티의 PPT를 제작했다. 이는 학생들과 면대면으로 만나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 나름의 보완책을 갈구한 결과였다. 이렇게 영상 편집, PPT 제작 등 비대면 수업에서 그 필요성이 강화되는 디지털 역량은 이 시국에 교생을 나갔기에 더욱 그 소중함을 깨닫고 나 스스로 신경을 써서 기를 수 있던 역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기존 교직 과정에서는 크게 요구되지 않던 역량이었고, 새로운 역량을 기르는 모든 과정은 온전히 교생들에게만 맡겨졌다. 그 누구도 기존 교직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영상 편집이나 PPT를 가르치지 않았지만, 새로운 교육 환경에 내던져진 교생들은 그 역량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교생들과 학생들의 첫 대면은 교생들이 사전 과제로 만든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곧 비대면 교실 상황 속 학생들과의 첫 만남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온전히 교생들의 책임으로 남아있었음을 의미하며, 그 과정에서의 모든 고민 역시 교생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코로나19 속 교생들은 교육권을 침해당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역량 등 예상치 못한 역량을 요구받았으며, 각종 교육적 고민에 대한 책임을 전가 당했다.

교생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 코로나19와 교육에 관련된 대부분의 논의에는 교생이라는 글자가 등장하지 않으며, 코로나19 상황 속 실습을 나가야 하는 교생들에 대한 통계자료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교생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교사와 학생보다 현저히 짧으며, 일부 사범대생과 교대생에게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생은 일반적으로 교육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고, 교육에 대한 여러 담론에서 소외된다. 교생 실습에 대한 논의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져 교생들에게 통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수업이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상황 속에서도 교생은 단지 수업 참관만 하면 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교생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기르는 새로운 역량과 교생의 주체성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는 교생을 주체성을 가진 예비 교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학교현장실습 역시 교사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보다는 졸업을 위한 부수적인 활동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교생에 대한 패러다임은 실제로 교생들이 학교 현장에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끊임없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교생 실습은 예비 교사가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관문이자 성장의 기회이고, 교생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는 교육의 한 주체이다. 이에 교생 역시 하나의 교육 주체로 인정하고,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교생의 패러다임 역시 함께 변화해야 한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에서 교육의 패러다임은 지금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고, 학교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기 때문에 변화의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도 교사와 학생, 그리고 그사이에 있는 교생은 모두 교육의 주체로서 변화하는 교육 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특히 학교현장실습과같은 교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활동에서는 교생이 주체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하며, 단순히 코로나19로 변화한 학교 환경에 대한 적응을 넘어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생을 포함한 모든 교육의 주체는 교육 주체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생은 학교현장실습의 의의와 목표에 따라, 교직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교사로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 예비 교사로서 교생이 수업을 참관하고 학생들을 직접 가르칠 기회가 충분히 확보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단지 수업의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원격으로라도 학급경영에 참여하고 학생들을 만나 소통할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한편, 교생들은 전례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지, 변화한 교생 실습을 통해 길러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들의 교육권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생들은 자신의 교육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하며, 학교 현장과 교생 실습을 담당하는 교원양성센터는 이러한 교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충분한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교생은 변화하는 학교 현장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학생들과 어떻게 인격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살아있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 교사, 학부모 등을 포함한 교육의 주체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된다면, 혹은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교생 실습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교생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생은 미래 교육을 이끌어나갈 주역이자 지금 이 순간도 교육의 한 주체이며, 교생 실습은 단지 교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지속가능성과 양질의 교육을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교육을 위한 교육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스누피우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4월부터 사상 초유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도래로 창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논의해 왔다. 그중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혼합한 형태인 거꾸로 수업처럼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을 활용한 새로운 수업방식도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교육 방식들은 아직 구체화 되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교육 개혁이 시행되었다.

 

# 온라인 개학에서 본 교육부와 실제 교육 현장 간의 간극

 

새로운 교육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교육 현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특히 교육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교육부의 지침으로 교사와 학생들은 우왕좌왕하였다.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교사들은 계속 달라지는 공문과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상적인 지침에 골머리를 앓았다. 실제로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 이틀 전인 47일에 원격수업 출결, 평가 기록 가이드 라인을 배포하였고 교사들은 그제서야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입시를 담당하는 고3 담임 교사는 더욱 난감했다. 교육부에서 배포한 가이드 라인중 학생평가, 학생부 기재 개념도에 따르면 생활기록부에 실시간 쌍방향형수업을 통한 내용만 기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실시간 쌍방향형원격수업을 진행한 교사는 5.2%에 불과하였고 [각주:1] 나머지 교사들은 학생부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 이처럼 학교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지침은 입시에 대한 불안감을 증가시키고 혼란을 가중시켰다.

 

또한, 특수 교육도 많은 문제를 겪었다. 교육부는 사회적 관계 형성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발달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1:1 방문 교육을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 지침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하는 정책으로 특수교사와 발달장애 학생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는 교사에게 감염 예방의 책임마저 지게 하여 교사 개인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실제로 전특노 ㅁ 교사는 방문 전에는 특수교사 스스로 감염상태를 확인하고, 방문했을 때는 학생과 가족의 발열 및 호흡기 증상 유무도 체크해야 한다. 방문 후에도 위생수칙을 지키고, 특수교사는 다중밀집시설 방문도 하지 못 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각주:2]

 

더불어 학생들은 새 학기의 기대감을 안고 수업에 참여했지만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 소통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EBS 온라인 클래스 서버 폭주로 불편을 겪었다. 이처럼 교육부와 교육 현장 간의 소통 부재로 교육부와 실제 교육 현장 간의 간극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것은 교사이지만 아직 학교는 교육부와 정부의 지침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로 국가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결정되고 교육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최근 들어 점차 교사와 학생에게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문·이과 통합교육, 자유학기제 등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교사와 학생에게 보장하고자 하는 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전히 ·중등교육법23조에 따라 교사는 교육부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만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을 정할 수 있다. 결국,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따라 지역, 학교 수준 교육과정을 정한 후 학급 수준의 교육과정을 정해야 하므로 교사는 상급 수준의 교육과정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 사태는 교육 개혁의 주체가 교육부와 정부가 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교사와 학생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부와 정부의 논의는 탁상공론에만 불가하고 교육 현장과의 간극이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교육 개혁

 

교육 개혁의 주체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교육 개혁은 무엇일까? 교육 개혁은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흐름에 맞게 사람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존의 교육제도를 변화시키는 것[각주:3] 이다. 즉 교육을 개혁하는 목적은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혀나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교육 개혁이라 칭하는 다양한 변화들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나간다고 볼 수 있을까? 당장 온라인 개학 사태만 보아도 새로운 교육제도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교육 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것 같다. 또한, 그 전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보아도 자유학기제, 교과 교실제, 고교 학점제 등의 제도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경험, 문화, 제도 등이 부족해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동안 교육 개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학자 아이즈너는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는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동안의 교육 정책들은 학교 현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 실제 교육적인 효과가 미미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교육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의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을 직접 참여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교육 개혁 주체의 변화: 교육적 감식안을 갖춘 교사

 

따라서 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나 교육부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구체적인 내용은 학교 현장 속에 있는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서 변화무쌍한 수업환경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온라인 개학을 했을 때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매일 오전 10시까지 학생들의 원격수업 출결 상황을 집계해 보고하라고 했다. [각주:4] 그러나 실제로 EBS 서버가 터지거나 통신상의 문제가 종종 발생하여 사실상 10시를 기준으로 출결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교사는 일일이 학생들에게 연락을 하여 출석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출결 관리는 교육부가 교육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따라서 이처럼 불필요한 교육부의 지침을 막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자율성을 보장하여 변수가 큰 교실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사는 교육 개혁에 따라 각광받고 있는 교수법을 무조건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최근 학생 중심 수업, 하브루타 수업 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스스로 발견하기 힘든 자연법칙을 가르칠 때 강의식 수업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교사는 수업환경에 따라 주체적으로 진보적 지도법과 전통적 지도법을 적절히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일종의 예술가로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 및 수업방식을 직접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 현장을 꽤 뚫어 보는 교육적 감식안 [각주:5] 을 갖춘 교사들이야말로 자신들의 현장성을 통하여 교육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교사가 진정한 교육 개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출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교사도 자신의 교수법과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일종의 연구원이지 않은가? 그러나 현재 교사들은 행정 업무 부담이 커 가장 중요한 교육 업무는 뒷전으로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따라서 행정 직원을 확충하고 교사의 행정 업무 비중을 낮추어 교사가 온전히 교원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18 교수학습 국제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교사의 행정 업무 시간은 OECD 국가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이번 온라인 개학 사태 때도 교사들은 과도한 행정 업무로 정작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연수를 받거나 온라인 수업방식을 연구할 시간은 부족했다. 행정 업무 처리는 물론 학급 내 방역 업무, 긴급돌봄 업무, 서버 불통 문제 해결까지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처럼 과도한 업무량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되길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사들이 교육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비판적으로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교사가 주도하는 교육 개혁은 성공하지 않을까?

 

# 교육 개혁 주체의 변화: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학생

 

또한, 교육 개혁의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학생들은 교육 개혁의 과정에서 제외되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그들의 실질적인 의견을 배제해온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은 학교의 운영, 수업방식 및 학사 일정 결정 등에 관여할 수 없다. 학교는 학생회와 학급회의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변명하지만, 이는 학급 운영과 관련된 몇 가지 건의 사항에만 해당하며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사와 마찬가지로 학교 교육을 구성하는 존재이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가장 실질적인 그들의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어떠한 공동체든 공동체가 균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발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학교의 모습은 보통의 공동체와 다르게 교육의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기형적인 형태이다. 결국,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교육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은 교사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주체로서 교육 현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러한 학생들의 현장성을 무시해온 국가 중심의 교육 개혁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교육 개혁을 어떠한 학생이 쉽게 따르겠는가. 수가타 미트라의 한 실험은 표준화된 국가 중심 교육과정의 문제점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컴퓨터는 물론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영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뉴델리 빈민가 아이들에게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제공했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컴퓨터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여 즐겼다. 이러한 실험은 아이들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교육을 스스로 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이들은 주체적인 학습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국가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과정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학문 중심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능력에 적절히 반응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중심의 획일화된 교육 개혁이 아니라 학생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배울 내용을 선택하고 교육에 개입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학생이 교육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존재해왔던 청소년 혐오와 나이 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어른들은 청소년을 교육 개혁에 참여하기에 미성숙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학생들은 충분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설령 어린 학생들이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자신과 관련된 일에 영향력을 끼칠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들이 교육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계속 수동적인 존재에 머무르게 되고 청소년 혐오는 지속될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에 따라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이며 주체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면 교육 개혁에서부터 학생들의 주체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교육 방식과 교육내용을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정할 때 학생들은 교육과 그들의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교육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변화가 미래 교육으로

 

결국, 교육 개혁의 주체는 현장성을 갖춘 학생과 교사가 되어야 한다. 먼저 학생은 교육에서 중심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의 흥미, 적성을 고려하여 교육내용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사는 현장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교육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교사는 표준화된 수업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능력과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는 교수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하여 교사의 업무 강도가 줄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러운 온라인 개혁은 그동안 교육 개혁의 주체가 정부와 교육부가 되어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을 상기시켰다. 교육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인 정책은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육을 위한 변화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수이다. 교육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 현장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수업을 구성하는 교사들, 교육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여 지원과 후원을 하는 교육부가 조화를 이루면 교육 개혁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 현장에서부터의 직접적인 변화가 미래 교육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 교육부의 '온라인 개학 이후 한 달간 원격교육 추진 경과'에 따르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위주로 한다는 교사는 5.2%에 불과했다.

    유소연, <교사는 지쳐가고, 학생은 학원행, 교육부만 자화자찬>, 조선일보, 2020.05.13.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3/2020051300182.html?utm-source=naver&utm_me   [본문으로]

  2. 허현덕, <[장애인 교육권] 장애학생에게 더욱 가혹한 온라인 개학> , BeMinor, 2020.04.17.,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577&thread=04r06  [본문으로]
  3.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 개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20. 08. 09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4548&cid=46615&categoryId=46615

    [본문으로]

  4. 장지훈, <온라인 개학에 어쩌다 '죄인'된 교사들 "e 학습터 터져도 내 잘못">, 뉴스1, 2020-04-18, https://www.news1.kr/articles/?3910847 [본문으로]
  5. 교육적 감식안이란 교육학자 아이즈너가 제안한 용어이다. 교육적 감식안이란 오랜 시간동안 학생을 평가한 교사가 교실에서 보여지는 특질들의 미묘한 차이점을 구별하고 그 가치나 질을 평가하는 인식적 측면의 기술로서, 오감을 통하여 교육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김동옥, 2007, 아이즈너(Eisner)의 교육적 감식안에 의한 초등국어 수업 비평,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본문으로]

코로나로 비춰본 교정 2020
–교육 당사자 인터뷰-


비행人

 

# 들어가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예전과 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우리의 사회에서도 ‘관계적 거리두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사와 학생의 거리가 멀어지고, 학생과 학생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은 단지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 당사자의 문제다.
교육계는 관계적 거리두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각자에게 부담이 돌아갔다. 코로나로 등교와 온라인 수업을 병행한 교사가 과로로 쓰러져 수업 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로 학습권이 침해되었다며 전국 대학생 3500명이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는 ‘예전과 같지 않아서’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대표적으로 교사와 학생은 이러한 교육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당사자이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증인이 말하는 코로나 사태 그 이후를 보고자 한다.

 

 

# 첫 번째 인터뷰
울산 고등학교 국어 교사 A 씨.

 

1. 코로나로 인해서 발생하는 업무에 대한 과중이 심각한데, 대표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계속 개학이 연기되던 거. 선생님이 학사일정을 맡았는데, 그걸 6차 수정했거든. 원래는 보통 2월에 정하면 끝인데, 무려 6차를 수정한 거야.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개학 자체가 계속, 긴 시기 동안 정해진 시점이 있지 않고 2주씩, 한 주씩 밀렸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학교 일을 조정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어. 그리고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작년에 했던 일들을 계속 공문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전달하고 …… 학교 현장에서는 힘들었지. 그런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을, 기술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잖아. 그런데 우리 교사들에게 ‘너희는 어벤져스다.’ 하면서 ‘그걸 해내야 한다.’고 했지.
위험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교육을 해야 하는 게 맞긴 하지. 그렇지만 나를 한 번 봐. zoom이라는 프로그램 사용해본 적 없어. 수업 녹화라는 걸, 편집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도 막 온갖 걸 다 배워가지고 말이야.
제일 처음에 있잖아, 개학이 조금 늦어지니까 학습지원을 온라인으로 하자, 뭐 이런 게 있었거든. 애들이 자습할 수 있는 공부거리를 주자고. 들어봤겠지만, 그때 막 자료 만들어서 드라이브 스루하고… 그때도 엄청 고민한 거야. 학생들이 집에 있는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의 공부를 지원할 건가를 말이야. 그 방법을 학교마다 엄청 고안한 거야. 우리도 자기주도학습 인증제라는 그것도 만들어서 학습 독려하고, 자료 올리고, 과학 선생님은 과학실험 기구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 패키지를 만들어서 애들 겹치지 않게 학교에 오게 해서 가져가게 한다든지. ‘프린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같은 것도 문제가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 고등학교 같은 경우에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봐라. 초, 중등은 e-학습터 같은 걸 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겠지.
거의 온라인 개학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던 때가 있어. 이제 온라인 등교를 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준비해야 해. 연수도 받고 교육도 받아야 해.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이 코로나 때문에 어디 나다니지를 못해. 거의 각자가 ‘야, 이거 해봤는데 녹화 어떻게 해?’ 서로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카톡 해서 녹화 어떻게 하는데 같은 걸 정보 공유하고.
근데 문제가 뭔 줄 아니? 학교에서 학기 말 되면 영화 같은 거 많이 보여주지? 단편소설 프린트해서 나눠주지? 그건 학교에서 일회성으로, 교육목적으로 보여주고 끝나잖아. 근데 온라인은 공중으로 배포될 수 있잖아. 다시 말하자면 애들이 무한으로 복제해서 넘길 수가 있잖아. 나야 내가 만드는 수업자료가 어디까지가 저작권법을 지키는 거고, 어디까지 초상권 법을 지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 그런데 또 교육청은 그런 걸 지키라고 하는 거야.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해야 하잖아. 제도적인 것도 문서로는 전달해 줬지만, 우리가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
예를 들어서 책을 읽히면, 책의 본문 20%까지는 보여줄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들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 거야. 원래는 ‘저작권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정도의 문서로 왔는데 현장에서 요구하니까 좀 더 자세해진 거지. 그런데 이것이 한둘이 아닌 거야. 그런데 내용과 형식은 또 알차야 해. 그리고 내가 만든 영상의 질은 너무 형편이 없어. 국어는 지문이 길잖아. 내가 만들어 놓고 ‘아, 야매다 이 영상은…’ 싶은 거지. ‘애들이 보고서 내가 만들었다는 거에 기뻐해 줄까?’ 싶었어.
엄청 많은 온라인 수업 기술들이 있어. 그런데 그런 걸 우리가 배워야 해. 애들에게 맞는 형식을 선택해야 해. 또 우리도 많이 고민한 부분인 건데, 애들이 어떤 기기를 가졌는지, 작동이 잘 되는지 말이야.
우리가 생각을 잘못한 게 그건데, 애들 중에 그런 온라인 학습 환경이 안 갖춰진 애들이 있어. 그런 온라인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zoom을 예로 들어보자. 핸드폰으로 zoom을 보는 건 볼 수는 있지만, 공부하기는 너무 어렵잖아. zoom으로 국어 지문을 띄우고 수업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어떤 애들은 스마트폰밖에 집에 없는 거야.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애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환경에 따라서 기기 환경이 다 달라. 태블릿, 스마트폰, 노트북에 우리가 가진 수업 도구가 모두 적합하기 힘들어. EBS 사이트 정도는 되어야지 그걸 맞출 수가 있는 거야. 격차가 나더라고. 소위 있는 집 애들과 없는 집 애들 사이에.
그리고 내가 만든 영상을 렌더링해서 EBS e-클래스에 올리려고 하는데 호환이 안 되더라.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 거야. 내가 영상을 만들었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나는 매뉴얼대로 했는데 일이 잘 안 되었어.
학생에게 연락할 때도, 처음에는 일일이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개학 안 했을 때도 잘 지내고 있는지 알아봤어. 왜냐면 온라인 개학 때도 애들 출석 체크를 해야 하니까. 우리는 올해 개교한 학교라서 학생이 40명밖에 안 되었잖아.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카카오톡을 했거든. 그때 오픈 채팅 기능을 모른 거야. 약간 바보 같은 거지. 나중에는 네이버 밴드나 구글 클래스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어.
아이들이 출석했는지, 수업은 들었는지, 수업에 대한 과제를 시간마다 내줬는데 그거 확인하고. 내실 있게 하려면 그냥 동영상만 끝내고 넘어갈 수가 없지. 그러니까 교사들이 그냥 영상만 보고 ‘땡, 치워라.’ 이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거든. 왜냐면 고등학생들이… 특히 우리는 1학년이잖아. 신입생이고 한 번도 학교에 온 적이 없잖니. 신경을 많이 써 줘야 해. 과제 낸 것 보고 내가 응답도 해주고, 문의 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지. 당장 학교에서 30명이 한 공간에 있어도 전달이 정확하게 안 돼. 그런데 서면으로, 면대면이 아닌 상황에서 얼마나 전달이 안 되겠니. 정말 내가 채팅봇인 줄 알았어. 그게 엄청난 업무 과중이더라고. 종일 끙끙대며 수업 녹화해서 올리고 나면 애들 질문 받아주고, 과제 피드백해 주고. 그리고 나면 또 수업을 찍어야 해. 일주일에 4차시마저 준비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러고 나서 개학이 시작됐지. 발열 체크 지도하고, 자가진단 설문 돌리고, 급식 먹을 때도 지도하고 말이야. 그것도 굉장히 지난한 과정이야.


2.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학사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학업을 평가할 때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나타났나요?

6/3에 대면 등교를 해서 실질적인 학사일정이 너무 짧아졌어. 그런데 고등학교는 입시 때문에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한 번만 치는 학교가 없어. 중학교는 그런 학교도 있단 말이야. 초등학교는 아예 치지 않고. 그런데 고등학교는 둘 다 쳐. 왜 그런지 알겠지? 선생님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비행人: 그게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게 너무 가혹하죠.) 그렇지. 내신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할 거니 다들 너무 겁이 나서, 고등학교에서 한 번으로 줄인다는 게 상상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두 번의 시험을 치니까 어떻게 되냐면, 우리 애들이 개학하자마자 2주 후에 첫 중간고사를 친 거야. 학교 와서 처음 얼굴 봤는데. 그런데 그사이에 모둠 수업을 못 해. 일방식 수업을 하는 거야. 발표를 시키려고 했는데 학생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겠니? 평소에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 보면 어떤지 반응 알지? 기겁하면서 마이크 안 쓰잖아. 그러니까 잘 전달도 안 되더라고. 결국 강의식 수업을 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수업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 하품 나오고. 대답해도 마스크 쓰니까 소리도 잘 안 들리고. 우리가 5분씩 단축할 수 있게 되어서 45분 수업을 하거든. 45분 동안 혼자 떠든다는 게 얼마나 힘들어. 나도 수업을 하니까 힘들고, 애들한테 미안함이 너무 큰 거야.
온라인 수업에 제대로 안 하는 애들이 너무 많았어. 내가 충격을 받은 게 애들이 집에서 되게 열심히 하는 줄 알았거든? (비행人: 절대 아니죠. 웃음) 거의 영상만 틀어놨더라! 잘 아는구나. 2주 만에 복습을 해서 중간고사를 쳐야 하는 거야. 근데 온라인 수업은 4월 16일부터 시작해서 6월 2일까지 했잖아. 매주 4차시씩 수업을 한 달 넘게 했잖아. 엄청 많은데 그걸 2주 만에 진도를 때려 박아야 하는 거야. 양을 조절했긴 했지만 2주면 8차시잖아. 8차시 안에 그걸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너무 중간고사에 질 떨어지게 시험 문제를 낼 순 없잖아. 문제가 3개 있지. 첫째, 진도를 뺄 수 없고, 둘째, 마스크 수업하기 힘들고, 셋째 애들에게 죄책감이 들고. 그런데 내가 학습지를 어떻게 나눠주냐면, 정석대로 소독용 장갑 끼고 우리가 다 하나씩 나눠줘. 자, 시험을 칠 때는 어떻게 했게? 우리 교사들이 다 한 장씩 나눠줬어. 우리는 학생 수가 적으니까 그렇게 가능한데 아마 학생 수가 많은 도심에 있는 학교는 손 소독제 바른 후에 넘기라고 했을 거야.
우리를 봐. 우리 온라인 수업 만든다고 고생했는데 대면 개학한 지 2주 만에 시험을 쳐. 시험문제를 만들어야지. 2주 동안 마스크 써서 계속 말하고.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서술형 채점하고. 그러고 나면 7월 한 달밖에 시간이 없어.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8월 초에 또 기말고사야.
물론 애들에게 적게 가르치면 되긴 하지. 하지만 1학년 동안 해야 할 내용을 뺄 수는 없잖아. 작년의 1학년들과 다르게 ‘너희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적게 배워라’ 이렇게 할 수가 없지. 기본적으로 교과서를 떼야, 학습 목표를 한 번은 떼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교과서는 창비 교과서인데 단원이 다행히 7개밖에 없어. 그래도 내가 이 짧은 시간 안에 1, 2, 3단원까지는 해야 하는 거지. 3단원이 문법이고, 6월 모의고사를 치는데 너도 알다시피 문법까지는 나오잖아. 한글 맞춤법이랑 표준 발음법. 그러니까 문법까지는 해야 6월에 시험에서 완전히 망치지 않는단 말이야. 그걸 하도 경험을 해둬서 아니까, 적어도 1,2,3단원까지는 나가줘야 한다. 1학기 동안.
그런데 학교에서는 일은 똑같이 하는 거야. 뭐냐 하면, 애들한테 교육과정 선택을 시켜야 한 대. 1학년에게. 알겠지? (선택할 시기가) 늦었대. 그런데 이제 한 달밖에 학교생활을 안 한 애들한테. 교육과정 선택을 하라고? 걔네 학교 적응도 못 했는데? 그리고 그럼 애들이 그거를 알아듣겠니? 선생님이 설명해준다고? 걔네 삶이 너무 바쁘잖아.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입시에 관한 생각이 1학년 때부터 있는 애들이 아닌 이상 … 어떤 학교는 자료 쭉 나눠주고 원래 계획대로 했어. 1차 선택을 해본 거지. 그런데 학부모가 항의했대. 자료만 쭉 보여주고 애들한테 선택하라고 그랬다고. 아무 설명도 없이. 그런데 학교가 지금 학생들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기에는 여력이 없거든. 사람들이 관성대로 아, 작년 7월 즈음에는 이걸 했었지. 하고서 일을 너무 빠르게 진행해. 애들의 상황에 맞추지 못하는 거지. 그것도 답답해. 갈등이 있으면 저지시켜야 하잖아. 교육청이랑도 싸워야 해. 교육청이 자꾸 공문 내려보내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고.

 

3. 코로나로 인해 학교 업무를 처리하는 도중(수업, 행정업무 등)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러웠던 일이 일어났던 경험이 있을까요?

솔직히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이 사태를 어떻게 운영하는 게 현명하니 몰라서 진짜 힘들었어. 아까 말했듯이 교육청에서 하루에 30분씩 수업을 단축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런데 공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학교의 운영이 달라지기도 했어.
그리고 어떤 학교는 학년 별로 순차적으로 등교를 시키려고 학교 안에서는 의논이 되었어. 그런데 고등학교는 옆 학교랑 경쟁이 치열하잖아. ‘야, 아무도 우리처럼 이렇게 3학년, 2학년, 1학년 번갈아서 등교를 하지 않는대.’ 가 되니까, 그 학교 구성원 대부분이 찬성했는데, 이런 의견이 제기되니까 그 학교에 그렇게 어렵게 논의하고 여론 조사한 그 계획을 접게 된 거야. 공문에서는 분명히 학교에서 알아서 정하라고 했지. 그래서 정했는데, 다른 학교에서는 안 그런다고 하니까 그게 다 없던 일이 되는 거지. 눈치가 보여서. 그것도 너무나 큰 장벽이지.
울산은 교육감이 진보적이니까, 나는 그나마 교사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줬다고 보는 입장이야. 정보 공시라는 게 있거든? 3월에 하고, 5월에 하고, 7월에 하고. 그런데 이걸 하라는 거야. 우리가 개학도 안 했고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항의하니까 그럼 정보 공시는 2학기 때 하라고 했어. 몇 개는 수시로, 몇 개는 일 년 내내 하라고 열어주는 거지. 그것도 얼마나 진 빠지는 일이니. 마스크 끼고 나와서 나도 지금 입가가 헐기 시작했거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지 우리도 이 상황을 모르겠다.
아, 그래. 교육청에서 온라인 기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댔어. 중등 교육과에서 비슷한 시기에 조사를 3번 했어. 서로 다른 장학사가. 약간씩 달라. 그런데 본질은 같아. 한 번에 수집을 끝내면 될 것 같은데. 이런 게 문제지.
방역 지도 때문에 학교 구성원 사이에서 갈등도 많이 일어나.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음… ‘학생 지도를 교사만 해야 하니? 행정실은 왜 안 하지? 급식 실무사들은 왜 안 해? 상담 선생님은 왜 안 해?’ 이런 거. 보건 선생님은 지금 죽을 노릇이야. 관리자들이 자꾸 보건 선생님에게 일을 몰아. 그걸 저지시키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몰라. 자꾸 교장 선생님이 말할 때마다, ‘그건 보건 선생님이 해야 하고, 보건 선생님 담당이고. 보건 선생님에게 말할게요.’ 그래. 그런데 보건 선생님이 그 많은 공문을 다 어떻게 읽고 다 해석할 수가 있겠어? 그건 같이 해야 하는 일이지.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그건 저 사람 업무지. 코로나 19는 보건 업무지.’ 해. 그러니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을 자르려고 하는 거야. 보건 선생님이라고 이런 집단 감염 사태를 겪어 보았겠어? 그런 업무를 조정하고 학교 안에서 의논할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이 당황스럽고 힘들었지.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똑같이 월급을 받으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가 있고, 그보다 더 일해도 월급이 더 생기지 않긴 해. 그래도 이런 사태는 함께 해야 하는 업무가 맞거든. 그런데 맨날 교육청에서 공문이 어떻게 오냐면, 코로나 19 교육 속보 [1호] [2호] [3호]… 그게 어디까지 왔냐면, 46호까지 왔어. 그런데 그걸 보면 방역 얘기만 있을 것 같잖아? 아니야. 수업 일수 조절, 학급 평가 방안 등등의 내용도 있거든. 그래서 그걸 46호까지 다 열어야 해. 새로운 하달 내용이 어떤 게 있는가 봐야 해. 그런데 그 문서가 보건 선생님 문서니까 보건 선생님에게 들어가. 그런데 그걸 보건 선생님이 다 어떻게 처리하냐. 교사들 사이에서는 보건 선생님께 업무 과중. 또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업무 과중.
영양교사도 지금 엄청 힘들어. 코로나 19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될까봐. 그런데 수업하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아침에 애들 발열 체크도 하잖아. 우리 업무만으로도 과중이라고 느껴지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들은 원래 했던 것을 조금 더 조심할 뿐이잖아.’란 식으로 갈등이 생기지. 그리고 선생님 입장에서 ‘행정실은 뭘 하는데?’ 싶어. 행정실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니까.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학생지도는 다 우리가 해야 해? 학내 구성원 … 그러니까 교직원끼리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는 거야. 그래서 갈등이 좀 심해졌어.
우리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코로나 19 때문에 우리 자리가 없어질까봐. 온라인 수업으로 우리가 다 대체될까봐. 그런 불안감이 커졌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 같아. 너무 자격지심을 많이 느끼는 선생님도 있대. 내가 이렇게 무능해서……. 교사가 내가 무능한 건가? 내가 이 시대를 다 따라잡지 못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했고.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에 더 의존하다 보니까 학교라는 공간 … 학교 교육이라는 게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많이 생겼고. 그래서 역으로 우리는 이 학교 교육의 가치는 무엇일까를 굉장히 고민했고, 하는 중이야. 그리고 그걸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 우리가 힘들어도 중요한 건 애들 건강이지. 방역을 철저히 해야지. 이거는 모든 학교가 다 그럴 거야. 요즘에는 약간 느낌이 초등 교사 된 것 같아.

 

4. 교사에게 향후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요?(유, 무형의 것)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맡기는 게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합의되어 왔던 교육의 방식을 다 뒤바꾸는 사건이잖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상호 협동적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방법이 구축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아. 원래 2015 교육과정이 협동을 중시여기는 거잖아. 지금 이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 활동 중심 이걸 다 못하는데, 온라인 수업으로 어떻게 학생 역량을 키울 수 있느냐는, 국가의 교육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구축해 놓아야지. 그리고 법과 제도도 손 봐야 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작권, 초상권 등 교육에 있어서 자료를 사용할 때, 어떠한 식으로까지 구축하고 정비를 해야 하는가. 이런 거 그냥 똑같이 놔두면 안 돼. 아니야? 코로나 때문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온라인에서의 자원밖에 없어. 그러니까 초상권, 저작권을 느슨하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그런 문제가 해결된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하든지 그래야지.
울산 도서관에서 대출을 안 해줬잖아? 모든 대출 서비스를 중단했으니까. 그럼 전자책을 볼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런 걸 계산에 넣지 않은 거지. 내가 진로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물리적으로 책을 빌려줄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전자책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니까 공공도서관에도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남부, 중부, 울주군 다 없고, 동부도서관에만 있다는 거야. 그런데 온라인 회원 가입만 해도 보여주기는 했는데, 그런데 제일 최근 나온 책이 2007년도고, 백 몇 권밖에 없는 거야. 동부 도서관에 전화하니까 울산 도서관이 생긴 이후로는 울산 도서관으로 이전이 되었다는 거야. 동부 도서관은 더 구매를 안 한대. 그 울산 도서관 사이트를 들어갔지. 근데 어떻게 운영하는지 아니? 오프라인으로 회원증 발급한 사람한테만, 전자책 서비스가 있어. 그런데 코로나라고 도서관 문을 다 닫았지.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회원증을 만드니? 그러니까 기존에 만든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교육청 관계자한테 전화해보니까 울산 남부, 중부, 울주군, 동부는 교육청 소속인데, 시립도서관은 시청 소속이라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대. 시청에 전화하니까 그건 도서관 관할이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대. 그런데 도서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도서관 관련 인맥을 동원해서 문의를 다시 정식적으로 넣고 해서 일을 진행했지. 이런 교육 자원을 개방시켜야 한다니까. 규정을 바꿔야 해. 허용해 줘야지. 온라인 교육하면서 교육부에서 독서 교육이 강조되었는데, 정작 독서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계획이 없었어. YES24에 책값을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다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교육자원을 제공해야 해.
그리고 내가 볼 때 학생들이 기기 격차에 따라, 기술 활용 격차가 커지고, 교육 수준 격차가 커지는 것 같아. 상처받을 게 걱정이야. 아이들이 2, 3명인 집에 노트북이 한 대인 경우. 너도 알다시피 휴대폰으로 공부하는 것과 노트북으로 공부하는 것은 효율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향후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면 기기 전문가를 학생 집에 보내는 방안 같은 게 필요해.


# 두 번째 인터뷰
부천시 고등학교 1학년 a모씨

 

1. 코로나로 인해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학습활동에 대한 과중 문제가 있나요?
원래도 수행 기간에는 수행 빡세게 주긴 하는데, 중간고사에서 과목을 달랑 세 개밖에 안 봤거든요? 나머지 과목은 다 비중이 어디로 가겠어요? 수행으로 가죠. 그래서 수행평가 양이 장난 아니게 많았어요. 제가 수행 하나를 보기 위해서 논문을 몇 편이나 봐야 했는지 아세요? 기존에도 많은 편이긴 했는데 더 늘어났죠.

 

2. 수업 질 저하의 문제
수업 질 저하의 문제에서도, 전체적으로 문제를 쉽게 내줘요. 그런 부분에서 애들이 학습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고 내주는 것이 있긴 하죠. 그래서 예를 들어 수학 같은 경우에는 1학년에서 100점이 12명 나왔죠. 고득점이 늘어난 거죠. 그런데 그렇다고 못 보는 애들은 애매해지는 사태가 나오는 거죠. ‘그것이 과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효과적인 해결책인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차피 코로나라고 해도 학원 가는 애들은 가고, 공부하는 애들은 공부하고, 인강 좋은 것 듣고 그래요. 근데, 솔직하게, 적응을 못 한 거죠. 수준이 낮아진 건 사실이에요. 음,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다른 곳에 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요. ‘온라인 학교 수업을 잘 듣는가?’ 는 조금 어렵죠. 저 같은 경우에는 성실히 듣는 편이지만, 글쎄요… 안 듣는 애들은 꽤 있겠죠.
수업을 다 들으면 밑에 확인 문제가 있는데, 온라인 클래스에서는 ox형식으로 내거나 아니면 구글 설문지 링크를 달아서 할 수도 있어요. ox형식이 편해서 그렇게 많이 하세요. 이걸 많이 틀린다고 해서 감점으로 들어가고, 수업 태도 불성실로 처리하지는 않아요. 일단 기술적으로 봤을 때 다 듣고 풀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수업 후 과제 외에도 국어 같은 경우에는 현대 소설 파일 올려놓고 독후감 써오기 같은 과제도 있죠. 그것을 타이핑하거나 수기로 써서 내야 했죠. 나름 열심히 써서 다들 내요. 그런데 다들 제시간에 안 하고 며칠씩 미뤄두는 영향이 꽤 있어요. 4주를 한다고 하면, 일주일에 한 편씩 써온다면, 선생님이 잘 확인을 못 하시니까 마지막 주에 4편을 올린다든지. 그런 게 없지 않죠. 원래야 그게 없었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좀 심해요.

 

3. 교우관계 형성의 문제.

일단 선생님들도 애들 이름을 외우길 굉장히 어려워해요.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선생님도 학생들도 서로서로 구분하기가 힘들어요. 그런 교류에 대해 제안을 했다고 해도 가까워질 기회가 주어지기 힘들어요. 저야 운동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운동장에서 운동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런 기회가 줄어들었어요. 동아리 활동 같은 경우도요. 2번 하고 끝났거든요. 등교 개학을 6월에 늦게 했으니까요. 저는 또 일반적인 교과 과정을 따라오지 않아서 중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니까, 더 아는 애가 없고, 이름 세 글자 정도만 알아요. 그나마 몇 주 다녔으니까 뒷자리 옆자리 애들은 몇 번 이야기 하면서 친해졌는데, 매우 크게 느껴지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내문 돌려서 학교에서 몇 차례 조사했어요. 축제나, 운동회 개최 같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고. 찬성이 꽤 나오긴 했지만 일정 수치에 미달해서 결국 못했죠. ‘수학여행을 가자’가 반수 이상이었으니, 아쉬워하던 애들이 없던 것은 아니죠. 학교 축제도 축소가 되었어요. 프로젝트나 대회도 규모가 줄어들었어요. 이런 게 또 연결되면서 생기부에 타격이 많이 갔죠.
저야 대안 학교를 나왔는데, 지역에서 이른바 ‘꽤 빡세다고’ 하는 남고를 들어갔어요. 적응이 어떻겠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친해질 이런 기회도 없어지게 되었으니 조금 섭섭한 것도 사실이에요.

 

4. 코로나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러웠던 개인적 경험
제가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없는데, 같은 반 애 중에 조금 37도 이래서 체온이 높은 친구가 있었어요. 코로나 양성은 아니었는데, 한 이틀 정도 학교를 빠지고 판정을 받고 왔어요. 그때가 수행평가 기간이어서 걔가 수행을 한 6개인가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병가결석이니까, 그런 기준대로 일부만 점수를 인정받았죠. 그러니까 자기가 준비했던 것만큼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곤란한 상황들이 생긴다고 볼 수 있죠. 입시랑도 연관되고요.
온라인 수업에서도, 학교에 있을 때보다 몰입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우리 학교에서는 지금 쌍방향 수업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아요. 거의 다 e-클래스를 써요. 단방향으로 녹화해서 수업하는 건 있지만요.

 

5. 입시 위주의 사회에 코로나 사태가 던지는 새로운 시사점
일단은, 말씀하신 것처럼 학교에 생기부를 채우기가 어렵죠. 대회 참여 같은 것도 축소되었듯이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요. 학교에 가면 좀 복작복작하면서 정보가 공유되고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을 시행 중이니까 일주일에 며칠만 학교를 등교해요. 특별히 공지사항을 전달받기가 힘들어요. 저는 1학년이니까 끔찍한 타격을 다가온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중간고사 전에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복습 없이 진도를 계속 쭉쭉 빼니까 조금 더 빠르게 나간다는 감도 있고요. 학교를 6월 10일 즈음에 나갔으니, 두 주 있다가 시험을 쳤어요. 기말도 7월 마지막 주에 치니까 한 달 만에 다시 시험을 쳐요. 시험 보는 과목 수가 조금 적기는 해요. 시간이 촉박해졌죠. 범위도 줄이고 문제도 쉽게 내준다고는 하지만요. 상당히 힘들어진 것은 부정할 수가 없죠. 저희는 경기도니까 6월 모의고사를 처음으로 쳤는데,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집계도 안 된 것 같고요.
모둠 활동이 지금 금지당해서, 조를 짜서 활동하는 건 전혀 없어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강의형 수업이죠. 그냥 수업 때 학습지 나눠주고, 따로 풀어요. 발표도 없고요. ‘야, 몇 번 나와서 설명해봐라.’ 이런 것도 없어요. 설명하고, 질문 받고, 선생님이 풀어주시죠. 그런 정도. 학생 자치활동도 축소되었어요. 학생회장은 지난주에 선거를 치러서 이미 뽑았는데, 선거 홍보도 거의 못 했어요. 뽑으러 갈 때 포스터를 한 번 보았죠. 게시판에 한 번 보던 것도 같긴 해요. 향후 학생부 종합전형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

 

6. 학생이 향후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요?(유, 무형의 것)
저에게 국가 공교육 체제를 어떻게 개혁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질문하시는 건가요? (비행人: 그렇죠. 물론 지금도 저성장이긴 하지만,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유지되면서,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가 굉장히 약화하고, 국가 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해지고, 사이버 인간관계가 강화하고, 소비지향의 우리에게 큰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새로운 걸 많이 시도할 수 있는 사회잖아요. 난생처음 보는, 그전까지 쓰지도 않는 기술을 말이에요. 획기적으로 다르겠죠. 변화가 일어날 것인데, 이 변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이끌어나가야겠죠. 비참한 상황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요. 그런 갈림길 사이에서 우리가 서 있어요. 사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변화에 맞춰갈 수도 있죠.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가치관도 있고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생활이 바뀌어 나가야만 해요.
예를 들어서 등교하는 동안의 시간이 남을 것이고, 수업을 단축하여 생기는 시간이 있죠. ‘이런 여분의 시간이란 자산이 생기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해야 해요.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낼까요? 거기에 해답이 달려 있다고 봐요. 이런 시간의 틈새에서 기존에 존재할 수 없었던 가치의 창출이 점점 늘어날 수 있어요. 지금도 개인의 취미를 계발하고 친목 활동을 도모하기 위해서 동아리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의 강구가 일어나고 있잖아요. 사이버 인간관계의 확대를 늘어난 여가와 연결하며 사람 사이의 유대를 단단히 할 수도 있겠죠. 일차적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적 태도와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겠지만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마치며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어떤 교사의, 학생의 대표자가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더욱 그들이 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기분은 비단 나뿐 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때문에 교사들의 강도 높은 근무에 기대어서 사회의 한 축이 지탱되고 있으며, 이것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먼 미래도, 먼 과거도 아닌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다. 또한 우리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고, 인간관계를 강화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사회를 살고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미비한 기기 지원으로 학습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단지 코로나 19로 인한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껏 이런 문제들을 방치해왔고,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하나의 시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이 앞에 놓인 과업일 테다.
오늘도 열심히 우리 교육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학생과 교사들에게 항상 수고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19와 돌봄교실

 

별먼지

 

 

1. 들어가며

 

# 지금의 돌봄교실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등교정지 후,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코로나 이전 상황에 비해 자녀가 혼자 있는 경우가 12.8%6.6% 증가(육아정책연구소, 20203)했고 [각주:1] , 많은 맞벌이가구는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돌봄교실의 신청자는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급증했다.

교육당국은 이들을 모두 수용하라 했지만 당연하게도 학교에서는 난색을 보였다. 초등돌봄전담사(이하 돌봄전담사)의 수와 근무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전교생을 대상으로 원하는 만큼 받아주라는, 현실과 너무나 맞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무게를 떠받는 건 돌봄전담사들의 몫이었다. 돌봄교실이 원칙 없이 급하게만 운영되면서 돌봄전담사들은 자신이 속한 학교마다 제각각인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돌봄전담사들은 보조 인력의 제공 없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평상시 이상의 근로를 제공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교육 당국이 내놓은 안전 대책은 전무한 수준이었다"고 비판했다. [각주:2] 정규수업과 달리 돌봄교실에는 방역조치나 소독용품 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봄전담사들만 애가 타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만큼 더 신경을 곤두세운 채 마스크를 벗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젖은 마스크를 교체해주고, 수시로 손 소독제를 발라주었다. 게다가 갑자기 외부 강사가 진행하던 프로그램까지 맡거나 학교관계자 및 학원관계자와 소통하는 시간까지 더해져, 기존 근무시간 이외에도 비공식적인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가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더 많아졌다. [각주:3] 원래도 돌봄전담사는 하루 4시간 치 임금만 받으면서도 시간 외 수당이 주어지지 않는, 행정 업무나 청소 등 초과근무가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 문제시되어왔는데, [각주:4] 코로나19라는 위기상황으로 인해 비공식적인 근로가 더 가중된 것이다. 이에 충남지역에서 돌봄전담사로 일해 온 박은주 돌봄 전국부분과장은 "코로나19로 긴급돌봄을 운영하는 시간은 (하루) 온종일이 됐다""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각주:5] 

 

긴급 돌봄으로 돌봄교실 운영 시간이 늘어나고 돌봄 대상 학생이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되며, 돌봄전담사가 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업무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전체 돌봄전담사 중 시간제 노동자가 80%를 차지한다. [각주:6] 대부분의 돌봄전담사가 시간제로 고용되었기 때문에 돌봄교실을 온전히 책임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돌봄교실에는 많은 외부인이 들락거리거나 학생들이 교실을 이동해가며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주:7] 바이러스 감염 방지에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의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27일 결의대회를 열어 "코로나19 위기 속 긴급돌봄에 대한 안전 대책을 세우고, 돌봄교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돌봄전담사 시간제 근무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각주:8] 근무시간은 늘리지 않은 채로, 업무만 얹어주며 알아서 하라는 식의 대응이 가장 문제시되었다. 전반적으로 법적 근거가 어느 정도 확립되고, 그에 따라 돌봄교실의 위생과 방역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돌봄전담사들의 근무시간이 안정적으로 고정되거나 연장되었더라면 긴급돌봄 운영이 지금만큼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 돌봄교실의 불안정성

 

이들의 목소리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시켜서 이해하면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 때문에 돌봄교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불안정성이 불거진것일 뿐, 사실 돌봄교실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법적인 기반이 취약했다. 돌봄교실은 그 법적 근거부터 불분명하다. 유아교육법이나 초·중등교육법에 관련 내용이 없다. 그저 초·중등교육과정총론 중 학교는 학생·학부모 요구로 방과후학교 또는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에 근거해, 학교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로 돌봄교실을 운영할 뿐이다. [각주:9]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초등 돌봄교실은 지난 16년 동안 법적 근거 없이 운영길라잡이에 의해 운영됐다, 그래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학생의 안전을 위협하며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돌봄교실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돌봄교실 운영을 안정화하기 위해 하루빨리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주:10] 돌봄교실 관련 노동자들의 복지와 학생들의 안전을 동시에 보장하는 돌봄교실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탄탄한 법적 기반 위에서의 체계적이고 책임 있는 운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 있다. 본격적인 돌봄교실의 법제화가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주체에 대한 합의이다.

 

 

2. 돌봄교실의 주체를 둘러싸고

 

# 학교교원의 입장은?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에 대한 교원 단체들의 반발에서 그들의 돌봄교실 운영 및 관리 주체에 대한 인식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돌봄교실에 대한 교육부 장관의 여러 책무가 규정되어 있는 이 법안은 결과적으로 돌봄에 대한 단위학교의 업무와 책임이 더 가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혹시라도 "법안이 교육 본연의 영역이 아닌 돌봄을 학교와 교사에 떠넘기는 것이라면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며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원들은 돌봄은 교육이 아닌 보육이므로 교육과 돌봄의 영역이 엄연히 다른데도,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로 교사에게 돌봄 업무와 책임이 관행처럼 떠넘겨져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중한 돌봄 업무로 수업, 생활지도 등 본연의 교육활동이 위축되고 교사로서 느끼는 자괴감과 사기 저하가 심하다고 전했다. 교원단체들은 따라서 돌봄 운영 주체가 지자체가 되어야 하며, 주무부처도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주:11] 

교육 본연의 영역이 아닌 돌봄’, ‘돌봄은 교육이 아닌 보육’, ‘과중한 돌봄 업무로 본연의 교육활동이 위축’, ‘자괴감과 사기 저하등의 표현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말하는 본연의 교육활동과 본연의 교육활동이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돌봄 업무가 교원들에게 자괴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돌봄교실은 교육 본연의 영역이 아니며, 철저히 보육의 영역에만 속하는 업무인가?

 

# 교육과 보육, 그 사이

 

표준국어대사전의 보육의 의미는 어린아이들을 돌보아 기름이며, ‘교육의 의미는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줌이다. 일단 사전에 있는 정의는 비슷한 듯 다르다. 하지만 사실 사전만 보았을 때에도 두 개념이 명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지만 일단 사전적 의미만 가지고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교원단체에서 교육을 말할 때는 지식과 기술 전달을, 보육을 말할 때는 관리와 보살핌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수업과 생활지도를 예시로 든 본연의 교육활동보육의 영역이라고 주장되는 돌봄교실을 과연 무 자르듯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일단 꼭 돌봄교실 말고도 초, , 고등학교의 전반적인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돌봄교실 외의 학교의 활동은 교원단체가 말하는 교육 본연의 영역에만 충실했나? 물론 학교에서는 교과 시간을 통해 여러 지식과 기술이 전해지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는 분명히 많은 힘을 들여 학생들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는 보살핌에 가까운 모습이다. “부모님 모셔와!”라는 흔한 대사가 떠오른다. , ,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빼먹거나, 친구와 심하게 다투거나, 예의 없는 언행을 하면 교사가 학생의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면서까지 학생을 선도하려고 힘쓰는 광경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을 본래 학교의 업무가 아닌데 관행처럼 떠맡겨져 왔다는 식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바르다고 여겨지는 쪽으로 선도하고 보살피고 보호하는 것은, 오히려 학교가 당연히 맡아야 할 책무로 느껴진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지식과 기술 교육은 오히려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만 설명할 뿐,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에게 있어 그 이상의 성장을 돕는다. 이 보살핌과 보호의 측면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형되거나 과해지면, 다소 획일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이 더해진 관리통제가 된다. 학창시절의 기억에 분명히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대학교에서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징계를 내릴 뿐 보호자에게 교육적 선도를 요청하지는 않는다. , ,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대학교라면 보육보다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전의 교육기관에 대해 딱 잘라 보육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하고 보살피는 데 교과 수업만큼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오히려 대다수의 학생들은 학교의 기능이 가르침과 배움보다 관리에 집중되었다고 느끼지 않을까? 교원들이 본연의 교육활동에 포함시킨 생활지도도 사실 지식과 기술, 인격의 성장보다는 관리라는 단어에 더 어울린다. 그리고 실제로 초, , 고등학교는 학생의 관리에 상당한 힘을 집중한다. 우리는 12년 동안, 보육, 그리고 그 주변부의 측면도 분명히 상당 부분 존재하는 교육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일반적인 과정을 떠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돌봄교실을 보자. 돌봄교실만 따로 떼놓고 보아도, 그것을 교육이 아닌 보육이라고 밀어내기는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일단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돌봄교실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의 연장선 느낌이 강하다. 돌봄교실의 프로그램에서는 숙제지도, 교과보충학습지도가 그 중심이며, 학생들은 돌봄교실에서 숙제를 하거나 집에서 가져온 문제집을 혼자 풀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각주:12] 이걸 바람직하다고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행대로라면 돌봄교실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활동과 절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교과 내용 학습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원래 돌봄교실이란 아동의 방과후 보호와 교육을 통해 학교의 교육적 목적가정의 자녀보호교육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 [각주:13]이다. 때문에 돌봄교실이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학교의 교육적 목적이 다각적으로 충족되지, 본연의 교육활동이 위축된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일본과 스웨덴, 미국 등의 국가들에서는 방과후 보육 정책에 대해 놀면서 배운다는 구호를 부여하고, 교육법에 근거하여 안정적으로 실시하고 지원을 하고 있다. [각주:14] 돌봄교실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돌봄교실이 가져야 할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돌봄교실이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이 아니라 단순한 차원의 보육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그램의 내실화 없이 마치 아이들을 수용하고 관리하듯 이루어지기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돌봄교실 본래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단면만 보고 그런 것은 교육활동이 아니다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보육과 교육을, 또 돌봄교실과 학교를 엄격하게 분리하고자 하는 시도는 너무나도 쉽게 좌절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당연한 것 마냥 주장되는 이유는, 교육과 보육을 분리하고 돌봄교실을 보육의 영역에 분속하는 것이 학교와 교원으로 하여금 돌봄교실에 대한 책임을 가장 간단하게 떠넘길 수 있게 해주는 논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지점들을 통해 검토해보면 금방 알 수 있듯, 학교와 교원들은 돌봄교실은 보육이므로 학교 본연의 교육활동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 ‘학교 만능주의의 문제

 

하지만 돌봄교실에 대한 책임을 모두 학교가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돌봄교실에 대한 모든 책임과 부담을 학교가 떠안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전교조 경기지부 관계자는 "돌봄전담사 고용, 돌봄전담사의 복무 관리, 수당 계산 등을 모두 교사들이 하고 있다""이상적으로는 학교 행정실에서 이 같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사들이 한다"고 설명했다. [각주:15] 교사도 교사의 업무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부담을 얹어주는 돌봄교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돌봄교실 관련 업무의 집중으로 인한 교원들의 피로는 물론이고, ‘학교 만능주의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믿음은 여러 문제를 불러온다. 코로나19 상황만 봐도 그렇다. 아이들은 학교에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기라도 하는 듯이 학교로 보내져 좁은 공간에서 북적거렸다. 돌봄교실이 방역의 사각지대로 떠오를 정도였다. 이에 반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근처의 다른 돌봄교실에는 30명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4명이서 썼다. [각주:16] 지자체가 운영하는 여유로운 돌봄교실은 놔두고 굳이 북적이는 학교의 돌봄교실에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음에도 널리 퍼진 인식은 과연 괜찮은가?

학교도 도움이 필요하다. 돌봄전담사에게 어쩔 수 없이 부담을 전가하지 않으면, 아니 전가를 해도 밀려드는 모든 아이들의 양질의 돌봄을 제공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항상, 아이들은 학교가 안전하다는 맹신적인 신뢰 속에서 일제히 학교에서 관리되었고, 학교에게는 한정된 자원을 넘어서는 양질의 보살핌이 기대되었다. 어떻게 보면 학교가 돌봄교실을 피로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교육과 보육을 억지스럽게 나누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마냥 비판만 하기 힘든 이유이다. 학교와 교원이 돌봄교실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단순한 이기심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운영 방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돌봄교실에 대한 책임을 어떤 주체들이 어떻게 나누어서 그 무게를 감당할지, 관련 업무를 어떻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분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

 

 

3. 앞으로는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돌봄교실의 취약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돌봄전담사들이 요구하는 본격적인 법제화에 앞서 필요한 주체 설정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았다. 보육과 교육을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돌봄교실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학교와 교원들의 주장이 가지는 문제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 모든 책임과 업무를 당연하다는 듯 집중되며 생겨나는 또 다른 문제점들을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떠넘기기를 멈추고 다양한 주체 간 협력을 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학교는 돌봄교실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식으로 떠밀지 않고, 정부에서는 학교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귀담아듣고 소통하며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공간 제공, 프로그램의 다양화 등에 있어서의 지역사회의 신선한 조력이 필요하다, 돌봄을 사회 전체의 책무로 보고, 사회의 자원을 균형 있고 다채롭게 활용해야 한다.

돌봄전담사의 전일제 전환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돌봄전담사의 업무 환경 개선은 물론, 교사의 업무 부담 경감과 내실화된 프로그램 운영에도 도움을 준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도 시간제 돌봄전담사를 전일제로 전환해 교사들의 돌봄 업무를 가져오고, 책임과 권한도 높인다면 학교돌봄은 더 내실 있게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이는 교사들의 돌봄업무 부담도 없애는 상생해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각주:17] 시간제 근무를 유지하게 되면 아이들이 지금처럼 여러 명의 봉사자나 돌봄전담사 분들을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더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학생들을 돌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선생님마다 다른 수업 운영 분위기와 규칙에 그때그때 적응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고, 내용 측면에서도 하나의 흐름이 있는 내실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등 지금보다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돌봄교실 개선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사실상 돌봄교실의 전문가들인 돌봄전담사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사실 돌봄은 엄연히 교육과 다른 보육이며, 본연의 교육활동이 아니다.’라는 주장, 그리고 돌봄 업무로 인해 본연의 교육활동을 하지 못한다며 자괴감을 운운하는 입장 표명에는, 보육에 대한 은근한 무시가 녹아 있다. 교육을 좀 더 고차원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활동으로, 보육을 단순한 수용과 보호 중심의 노동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돌봄교실이 소외되는 경우는 흔하다. “학교 안에서의 돌봄을 우리끼리 표현으로 외딴섬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도 관심이 없다. [각주:18]라는 경기도의 한 돌봄전담사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또 돌봄전담사 분들이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깨알 같은 불이익과 보복, 때로는 모욕적 언사를 감당해야 한다. 절차와 서열이 정해져 있는 학교문화에 맞추기만을 지시받기도 한다. [각주:19] 돌봄교실이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하는 단순하고 부차적인, 귀찮기만 한 업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계속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 피하기가 당연시되고 영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아동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돌봄교실 프로그램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때이다. 돌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점점 수요가 늘어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이다. 학생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돌봄교실, 나아가 돌봄전담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양한 주체간의 존중이 탄탄하게 다져진 위에서 이루어지는 돌봄 주체에 대한 합의와 돌봄교실 법적 기반의 안정화, 운영의 체계성, 돌봄전담사의 업무 환경 개선, 내실화될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1. 오설아, <'멀티 플레이어' 돌봄전담사는 왜 정규직이 아니란 말인가?>, 오마이뉴스, 2020-05-2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4284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본문으로]
  2. 임성호, "코로나19 속 돌봄전담사 처우 열악안전대책 마련해야", 연합뉴스, 2020-06-27 https://www.yna.co.kr/view/AKR20200627035300004?input=1195m [본문으로]
  3. 오설아, 앞의 기사 [본문으로]
  4.  선재희, <[앵커의 눈] 시간제 일자리의 두 얼굴-공짜노동, 압축노동>, KBS NEWS, 2019-12-04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36955&ref=A [본문으로]
  5. 이은지, <"코로나로 업무 가중, 처우는 열악"학비노조 '돌봄교실' 법제화 촉구>, 노컷뉴스, 2020-06-27 https://www.nocutnews.co.kr/news/5368556 [본문으로]
  6. 오설아, 앞의 기사 [본문으로]
  7. 위의 기사 [본문으로]
  8. 임성호, 앞의 기사 [본문으로]
  9. 김승환, <돌봄특별법 발의에 교원단체 “‘지자체가 돌봄 주체 돼야> http://www.segye.com/newsView/20200617513691?OutUrl=naver, 세계일보, 2020-06-17 [본문으로]
  10. 공지유, <"코로나 최전선서 아동 돌봐"돌봄교사들, 처우 개선 촉구>, 이데일리, 2020-06-25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929046625805328&mediaCodeNo=257&OutLnkChk=Y  [본문으로]
  11. 김동호, <교총 '온종일 돌봄체계 특별법 발의'에 반발>, 파이낸셜 뉴스, 2020-06-17 https://www.fnnews.com/news/202006171430250521  [본문으로]
  12. 김대석, 성정민,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프로그램 개선 방안: 교육복지 선진국의 문화예술체육 돌봄 프로그램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Vol.6No.9[2016], 사단법인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2016, 376. [본문으로]
  13.  김수동, 양애경, 한국의 방과후 돌봄교실과 일본의 방과후 아동교실 정책의 비교 분석과 한국의 방과후 돌봄교실에 주는 시사점, 한국일본교육학연구Vol.18No.2[2014], 한국일본교육학회, 2014, 44-45. [본문으로]
  14.  위의 논문, 43. [본문으로]
  15. 김형욱, <초등 돌봄교실 근거 법령제정 입법 중단교육부, 교원 반발에 백기>, 중부일보, 2020-07-16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33304 [본문으로]
  16. 정동훈, <믿고 맡기는데 '복작복작'방역 사각 '방과후 돌봄교실'>, MBC 뉴스, 2020-07-04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31699_32524.html  [본문으로]
  17. 윤지연, <초등학교 돌봄 업무가 민영화 된다고?>, 참세상, 2020-07-3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5198  [본문으로]
  18. 변진경,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없이 돌봄과 방역이 가능할까?>, 시사IN, 2020-06-19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69  [본문으로]
  19.  오설아, 앞의 기사 [본문으로]

줌으로 가르치고 배울 뿐

 

취한다

 

#. 무엇이 새로웠지?

 

20201학기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1학기가 시작되기 전 2020년의 추운 겨울은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을 두었던 만큼 막막하고 속상하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진 현실과 함께 대학원을 가겠다던 굳은 결심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시기였다. 학기가 시작되면 그래도 규칙적으로 수업을 들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214일 서울대학교도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공식적으로 등교 시작일을 2주 연기했다. [각주:1] 뿐만 아니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점차 심해지자 227일에는 개강 2주 연기에 이어 2주 온라인 수업 실시가 예고되었다. [각주:2]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의문은 많은 이들이 그랬듯 비대면 수업이 과연 가능할까?’이었다. 3월 셋째 주 월요일 11시에 첫 비대면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ZOOM을 활용한 실시간 비대면 수업이었는데 난생 처음 본 사람들의 얼굴이 가장 큰 메인 화면으로 잡히고 자신이 메인 화면이 된지 모르는 듯하는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기도 했고,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힐끔힐끔 내 화면을 쳐다보느라 집중력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첫 OT는 무탈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비대면 수업이 2주간 진행되며 처음에는 간혹 있던 오디오의 문제들이 해결되었고, 각 수업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식들을 정해가며 우리 모두는 아주 오래전부터 온라인 수업을 해왔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적응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첫 2주 동안 교수님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들 중 하나는 여러분과 하루 빨리 만나고 싶네요.”였다. 하지만 4월이 되어도 코로나19의 위험성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갔다. 420일이 되자 공식적으로 무기한비대면 수업 운영이 결정되었다. 3월 말까지만 해도 5월이 되면 대면수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학생들의 생각과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하셨던 교수님들의 소망과는 다르게 우리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이 날 때쯤이었던 4월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온라인 수업에 적응되어 적어도 나의 주변 친구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대면 수업을 번거롭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비대면 수업방식에 적응했다. 물론 수업에 대한 만족감은 수업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대학교육이 도저히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어 중단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 벌써 7월이다. 한 학기가 지나갔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새로움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사람들은 접촉을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일상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기에 직접 만나서 하는 활동들에 대해 대안들을 찾아나갔고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우리만큼 온라인 만남에 빠르게 적응했고, 불편함이 있지만 그 불편함에도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보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노멀 시대, 언택트 시대 등등.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면, 아니 벌써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면, 그 새로움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언가 변하기는 변한 것일까?

 

#. 겉바속그

 

<교육저널>을 쓰고 있으니까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특히 학교교육, 그중에서도 대학교육에 대해서 말이다. 20201학기 대학의 모습은 겉바속그이지 않았나 싶다. ‘겉바속그는 내가 만든 말인데 겉바속촉에서 빌려왔다. ‘겉바속촉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다는 의미로 반전매력을 지닌 음식제품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겉바속그는 대학교육의 의 모습은 뀐 듯 하지만 의 내용은 대로의 줄임말로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학기 대학가를 휩쓴 등록금 이슈를 제외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학교와 학생 간의 가장 큰 논쟁이 되었던 이슈는 대면 기말고사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초 이태원클럽 집단감염 이후, 코로나 19의 확산세는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교무처 [각주:3]는 기말고사만큼은 대면하여 진행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했다. 이에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에서는 530일부터 531일까지 1학기 대면 기말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행했고, 그 결과 약 90%의 학생들이 대면 기말고사 방식에 대해 반대하였다. [각주:4] 하지만 학사과는 학생들의 걱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대면 기말고사 시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사 일정상의 우려가 많아진다.” [각주:5] 는 답변을 남기며 대면시험을 표준으로 하되 비대면 시험으로의 전환을 교수 재량으로 맡기는 방향으로 기말고사 매뉴얼을 바꾸었다. 위와 같은 상황은 어쩌면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새로운 교육으로 비춰지던 20201학기의 대학교육은 실은 겉으로만 새로웠지 속의 내용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한 학기 동안 밖으로 끊임없이 촉발되던 문제들은 평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420일 무기한 비대면 수업방식이 결정되면서 동시에 중요한 학사 운영 결정사항으로 나온 것이 바로 절대평가권고 사항이었다. 비대면 수업의 전달력의 문제와 당장 중간고사를 대면 기말고사 방식으로 치르지 못하는 점 때문에 불거질 수 있는 시험 공정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시된 것이 교수가 결정을 하는 선에서 기존의 상대평가방식으로 평가를 남겼던 수업의 평가방식들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기를 권고한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수업방식의 변경에 있어서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이 평가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를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무기한으로 비대면 수업이 결정됨에 따라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 요소의 범위는 이전의 오디오 소리가 작다는 문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동영상을 녹화하여 업로드하는 강의의 경우에는 수업 내용에 대한 즉각적인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교수와 학생 간은 물론 학생과 학생 간의 질문과 토론, 배움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육받는 환경이 아주 자연스럽게 개인의 책임으로 물어지게 되었다.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을 장기적으로 준비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비대면 수업이 무기한 연장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정적으로 인터넷망을 확보하지 못한 집에 살고 있었다면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 밖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다. 더 다양한 경우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집 안에 형제, 자매가 여럿이지만 책상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 일시적으로 카페를 방문하거나 집 안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지속된다면 비용이나 불편함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받을 권리 또는 배움을 추구할 권리가 침해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 차원의 문제로 남겨져 버리고 공정한 평가만이 주요 논의결과로 남은 것은 우리에게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 속이 변하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과도기였기 때문일까?

 

지난 학기 대학의 교육을 돌이켜보면 겉은 새로운 기술을 입었음에도 속은 어떻게 해서든 변화를 거부하려고 아등바등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온라인 강의 방식 중에는 교수님이 혼자서 강의를 하는 모습을 사전에 녹화하고 동영상 형태로 올려주는 강의가 있었다. 이를 녹화본 동영상 강의라고 부르기로 하자. 녹화본 동영상 강의는 기존 강의에 비해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존재한다.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과 즉각적인 상호작용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다시 재생할 수도 있고 필기를 위해 동영상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빠르게 재생이라는 기능을 통해 학생들마다 자기에게 적합한 속도를 채택하여 공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래는 서울대학교 교무처에서 온라인 및 동영상 강의에 관한 유의사항을 각 학과에 배포한 내용이다. [각주:6]

 

비대면 수업 진행에 따라 저작권 및 인권 침해, 보안이슈 등 우려되는 상황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유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 온라인 강의 저작권 침해 주의(교원, 학생)

- 수업목적으로 외부 자료를 사용할 경우 사용 출처를 표기하고, 저작권 위반이 되지 않도록 주의

- eTL에 탑재된 동영상 수강 시, 사전 합의 없이 복제하거나 다운로드하여 제3자에게 전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 금지(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 가능성)

- 실시간 온라인 강의(ZOOM) 수강 시, 별도의 기기를 이용하여 녹화하는 행위 금지(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 가능성)

eTL 공지사항(저작권 가이드라인), 붙임 1(온라인 강의 저작권 주요사항 안내) 참고

 

. 동영상 수강 시 유의사항(학생)

- 동영상 수강 시,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동영상을 다운로드하고 수강하는 경우, eTL에서 진도체크가 되지 않음(출석 확인 불가)

-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배속기능을 활용, 동영상을 시청하고 출석을 완료한 것으로 처리한 경우, 수강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으므로 재수강해야 함

 

. 온라인을 활용한 수업 시 인권 침해성 언행 금지(학생)

- 수업용 단체톡방, 토론방 등에서 타인에 대한 비방, 혐오발언 등 인권침해 성 언행 금지

- 수업 진행 시,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불필요한 언행 자제

 

. 기타 사항(학생)

- ZOOM으로 직접 접속 시 접속 이름을 이름-학번으로 기재(닉네임 기재, 미설정시 기기명 등이 이름으로 화면에 떠서 출석 체크 불가)

- 출석 확인을 위한 수업 내 설문 제출 시, 제출 이름을 이름-학번으로 기재해야 출석 확인 가능

 

 

이 공지를 잘 살펴보면 저작권 및 인권 침해, 보안이슈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항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영상 배속 금지규정이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동영상 강의 장점이기도 한 배속이라는 기능을 금지했다. 배속을 금지해야 했을까? 교수님들이 성심성의껏 준비한 75분의 강의를 50분 만에 듣는 것이 무례하다 생각한 것일까? 이에 대한 이유는 앞서 말한, 대학이 수업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한 것이 평가방식이었다는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녹화본 동영상 강의의 경우에는 출석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지가 아마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1주일 정도를 기간으로 두고 학생들이 동영상 재생기록 시간을 남기도록 했다. 즉 정해진 기간 동안에는 알맞게 동영상을 시청하며 수업 진도를 따라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엄격하게 제한하고 싶었던 교수님들은 굳이 올려놓은 강의를 1주일 뒤에 삭제하기도 했다. 공부하며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다시 들어볼 수 있는 녹화본 동영상 강의의 장점을 가볍게 무시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 배속 금지이다. 75분의 동영상을 올렸으면 정확하게 75분 동안 동영상을 듣고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수업을 듣는 장소만 바꾸었지 수업을 듣는 방식에서는 그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동일한 수업을 듣기 위해 75분을 투자한 학생과 50분을 투자한 학생이 출석평가에서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은 많이 억울한 일일까? 나는 이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품고 있지만 독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 질문으로 남기고 넘어가겠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출석 평가에 대한 고지식함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 귀엽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온라인 중간고사에서 발생한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그저 웃고만 넘어갈 수는 없을 정도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만약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미션이 주어진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온라인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장소뿐이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동일해야 한다. 자 그럼, 당신이 온라인 시험 매뉴얼을 만들어보아라.”

 

보통 많은 오프라인 시험이 비-오픈북의 암기형 또는 논술시험을 채택하고 있다. 오픈북형식의 시험을 채택하고 있더라도 대부분 프린트물로 되어 있는 자료만 참고할 수 있고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활용한 인터넷 자료를 참고할 수는 없다. 이를 온라인 시험에서 동일하게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어느 학과의 전공 시험에서는 ZOOM에 접속하여 각자 자신이 시험을 치르는 장면을 보여주고, 화면에 찍히고 있는 시험을 보는 사람의 눈동자가 돌아갈 시 감점이라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눈동자가 반드시 피시험자가 작성하고 있는 답안지에 고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놀랍게도 후일담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규칙이 형식적으로만 있는 규칙이 아니었고 실제로 조교님들의 모니터링을 통해 감점이 가해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자대학교의 어느 전공 시험에서는 ZOOM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앞모습 외의 등 뒤에도 카메라를 설치하여 등 뒤에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참신한 방법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역시 배속금지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평가라는 것이 수단에서 목적으로 전도된 교육에서 우리는 모르는 것을 더 열심히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또는 배운 것들을 외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여 더 나아간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심지어는 배울 점이 많은 동료와 협력할 수 있는 기회들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 무엇이 교육의 변화일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교육에 있어서 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를 원하는 방식으로 가공하여 학습할 수 있고, 정보검색을 통해 스스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피교육자들이 그저 피교육자로 남지 않고 배움을 추구하는 주체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변화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라는 겉옷을 입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새로운 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의 고민은 온라인에서 어떻게 하면 기존의 교육 방식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에 그치고 만다. 최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수직적인 관계가 훼손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교육이란 교육배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자피교육자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 피교육자도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교육 말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온라인 교육이 부상하며 많은 기술창업가들이 에듀테크라는 이름으로 기술기반의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기술들을 제안하고 있다. [각주:7] 정부도 교육이 디지털화되는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며 발 빠른 성장을 돕기 위해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각주:8] 이때 제안되는 기술기반의 교육환경으로는 작게는 교과서의 디지털화, 전자칠판 활용부터 크게는 AI를 활용한 학습자 개별 맞춤형 교육, 쌍방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ICT 기반의 스마트 교실 등이 있다. [각주:9] 이러한 기술기반의 교육들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들을 예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 맞춤형 교육은 기존의 일대다 형식의 일방적인 교수법에 변화를 주고 학생 개인의 다양한 역량을 분석하여 성장 과정에 도움을 주어, 획일적인 교과과정 중심의 경쟁과 서열화를 탈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기술이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만약 교육이 여전히 입시와 취업을 위한 정교한 서열화를 목표로 하여 교육의 목적이 평가로 전도된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AI는 입시를 위한 맞춤형 학습 도우미에 그칠 것이고 디지털교과서, 전자칠판 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들은 공정한 평가를 목적으로 한 교육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한에서 제한된 기능만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미래의 모습을 2020년도 1학기 동안 짧지만 강렬하게 목격하였다. 결국 무엇이 변화했는가?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는 기술이 변화하였다. 하지만 교육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는가? 우리의 배움을 추구할 권리를 위해 우리의 교육을 낙관적이고 수동적으로만 지켜볼 수는 없다. 기술 자체가 우리의 교육을 더 나은 교육으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확장해주는 교육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우리가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교육에서 또는 교육의 변화를 위해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1. 박대호, 서울대, 개강 2주 연기 결정입학식 취소, 졸업식 간소화, 한국대학신문, 2020.02.12.,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6256

    [본문으로]

  2. 마이스누 코로나19 긴급공지, https://my.snu.ac.kr/. [본문으로]
  3. 코로나-19 관련 주요 사항, https://board.snu.ac.kr/enboard/COVID_19. [본문으로]
  4. 62일자 총운위 별첨 내역, https://we.snu.ac.kr/. [본문으로]
  5. 2020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학생공지  [본문으로]
  6.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공지사항 참고, http://hosting01.snu.ac.kr/~linguist/?p=14038. [본문으로]
  7. 현상철, [교육업계 새동력 비대면]409조 시장 에듀테크, 이제야 첫발, 아주경제, 2020.7.23., https://www.ajunews.com/view/20200722183238290. [본문으로]
  8. 신혜림, ··고 학교 디지털화에 5년간 185천억 투입, 매일경제, 2020.7.17.,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7/734014/ [본문으로]
  9. 노석준, Kakao AI report vol 13_교육. [본문으로]

특집에서는 코로나19와 교육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라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유례없는 위기상황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교육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생소한 모습을 띠기도 하며 교육도 참 많은 혼란을 겪었는데요, 그 속에서 변화한 것은 무엇이고 그대로인 것은 무엇일까요? 교육저널은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 속 학교 현장의 생생한 모습, 그 속에서 불거진 교육개혁 주체에 대한 문제의식, 논쟁거리로 떠오른 돌봄 주체의 문제, 대학교 강의 및 시험의 겉과 속의 모습을 다루어보았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교육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취약점을 보여준 듯합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번 호를 펴내며

 

어느덧 교육저널에 몸 담은지도 1년 반이 다 되어갑니다. 습한 여름날 편집실의 공기는 제가 교육저널 동아리방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로 저를 데려다주는 듯합니다. 처음엔 그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불만을 똑똑한 사람들과 나누고, 글을 통해 쏟아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편집장이라는 직책도, 글을 쓰는 부담도 없던 그 시절, 그저 노트북을 가볍게 두드리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습니다.

그러나 멋모르는 신입생이던 저도 이제 어엿한 편집장이 되었고, 편집 작업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분명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때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졌는데, 왜 이렇게 고민하는 게 어려운지, 글 실력은 퇴화된 것 같은지, 글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밖에 모르던 풋내기가 신경 쓸 게 많아지고, 주변과 사회로 고민의 범위를 넓혀서 그렇다고, 이 또한 내가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변명해봅니다.

돌이켜보면 참 혼란한 사회였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코로나 19 사태, 현실이 된 청소년 참정권,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N번방 사건 등, 우리는 커다란 사건들과 마주하며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우리만치 빨리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갔으며, 청소년 참정권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당연한 얘기가 되었고,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을 엄벌하라는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이야기들 수면 아래, 어쩌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여전히 침전된 채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19, 청소년 참정권 보장, 가해자 처벌은 결국 수면 위로 보이는 이야기들입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이야기들, 내재된 사회의 교육 병폐와 청소년 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 등에 진정한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에서 교육저널은 이러한 수면 아래 잠긴 이야기들에 집중해보았습니다.

거대한 이야기의 크기와 깊이 만큼,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에게는 같이 고민할 동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짚지 못한 지점을 지적해주고 지난 한 학기 동안 같이 교육을 상상해주었던 동료들, 우리 편집위원들이 있었기에 이번 호도 무사히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편집장이 되고 싶었지만, 혹여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동아리 경험이 더하다는 이유로, 편집장이라는 감투를 썼다는 이유로 권력을 휘두르진 않았을까 걱정합니다. 세심하지 못하고 부족한 편집장과 함께 고민하고 글을 쓰느라 수고해준 모든 편집위원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혼자라면 외로웠을 길을 함께 걸어준 공동편집장 고슴도치뇽님께 가장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를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 저희의 진심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공동편집장 BDUCK 드림

 

 

 

올 상반기는 혼란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대학은 비대면 강의를 시행했고, 활기차게 새 학기를 맞아야 하는 학교는 한산했습니다. 혼란스러운 날들에도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곧 적응해나갔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교육저널 구성원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익숙한 사람들이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설렜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교육저널의 관점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의 생각을 연결하기 위해서 여러 글을 읽으며 각자의 경험을 나눠보기도 하고, 여러 의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몇십 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몇 번의 노력으로 합의된 관점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서로의 글을 꼼꼼히 읽고 더 나은 방향으로 글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교육저널 이 단순히 각자의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같이 글을 써나가고, 더 나은 글을 위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여러 글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제목을 짓는 작업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괜히 불안했었나 봅니다. 어느 순간 편집위원들의 모든 글에 저의 관점을 끼워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 하나둘씩 진실된 고민을 담아 글을 진전시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저널만의 관점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했던 고민들과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대안들을 잘 녹여내는 것이 바로 교육저널의 글인데, 서로를 믿고 진심어린 조언이 오 갈 때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정치권과 많은 언론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다를까요? 다르다면, 이전의 사회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선거연령이 하향되면서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떠들썩했는데, 청소년의 정치할 권리는 완전히 보장된 것일까 요? 누군가는 지금이 과거와 다른 평등한 사회라고 하는데,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와 권력형 성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별개의 문제일까요?

이제 글에 대한 책임을 독자 여러분께 넘깁니다. 교육저널의 글이 더 넓은 고민으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진심과 고민을 담아 빛나는 글들을 써주신 편집위원분들,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눠주었던 BDUCK님과 이전 편집장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실 독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공동편집장 고슴도치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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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0)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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