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권리운동’ - 대학과 교육의 정치

 

이물

 

0. 푸념

 

사실 내가 교육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시흥캠퍼스였다. 교육이 일방적 가르침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힘이자, 공동체의 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육을 차별과 경쟁의 장으로 만들려는 힘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시흥캠퍼스를 산업 수요 대학 정책에 부합하는 기업친화적 연구/수익의 공간, 그 과정에 구성원과 교육이 배제되는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내부적으로 두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나는 본부와의 소통문제로 국한하려는 것이었고, 하나는 대학의 기업적 혁신에 동의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치적 타협을 설득할 근거와, 기업적 대학을 비판할 대안을 명확히 갖지 못했고 헤맸다.

물론 시흥캠퍼스 투쟁이 내부적 어려움만으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본부라는 실물적 위협과 통제가 어쩌면 핵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흥캠퍼스를 평가하고, 다시 교육 투쟁을 상상할 때,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각 대학에서는 교육 문제를 사고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수도권 각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권리운동을 조명하고자 한다. 각 대학 학생회에서 드러나는 요구안이 주장하는 바와 그 함의를 바탕으로 운동의 지향과 그 한계를 분석해볼 것이다. 다만 능력의 부족으로 운동 주체들의 전략이나 학생들이 이를 수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은 제한적으로 다룬다.

어쩌면 입만 살아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실천에 있어 어떤 가치를 왜실천하느냐를 항상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글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우리의 가치를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1. ‘교육권리운동’, 교육투쟁의 그림자

 

교육투쟁이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써야 할 만큼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힘을 잃었거나 자취를 감추었지만 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대학생들은 세계화와 IMF 금융위기, 대학 등록금의 인상과 경쟁, 취업 위주 교육 과정에 맞닥뜨렸다. 이에 대학생들은 신자유주의교육 정책과 대학 상업/기업화 비판을 핵심으로 대학에서 본인들이 직접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주목하고 문제제기 하기 시작했다. 곧 교육투쟁은 민주적 대의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생이 대학에서 겪는 경험과 계급적 조건을 바탕으로 투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투쟁은 점차 정체되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경제위기의 심화와 취업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정책, 학생운동의 쇠퇴 속에서 매년 초 등록금 산정에 대응하며 연례행사처럼 이뤄지던 교육투쟁은 개나리투쟁으로 불렸고, 이내 그 이름마저 잊혀졌다.

마지막 반등은 2011년 반값등록금 투쟁에서 나타났다. 등록금 문제가 갖는 보편성과 반값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정치적 요청이 결합되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대학을 넘어 광장으로 진출했고, 학생 단체는 물론이고 많은 시민단체와 정당의 호응을 받으며 사회문제로 확산됐다. 하지만 요구들은 기성정치의 복지와 인권으로 수렴되었고, 대학에서 정치적 의제가 지속하는 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대학생운동은 거시적 대학 비판이나 체제 비판보다 일상적인 불편,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는 거듭되는 교육투쟁의 실패에 대한 고민과 전략 변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학생들이 관심 갖지 않거나 꺼려할만한 정치적 구호를 접어두고, 학생들의 불편과 이익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구안들을 찾자는 목소리가 생겨났고 그나마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이 요구들을 지탱하는 근거로서 다소 의미가 추상적인 교육권이 제출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자본과 국가에 의해 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이제는 권리 자체가 요구의 전면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교육투쟁의 그림자인 교육권리운동의 현황을 분석한다. 정치적 기조가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는 교육권리운동은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교육권 개념의 현황, 학생들이 이를 극복하고 만들어내려는 가능성, 전반적 한계와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해볼 것이다.

 

 

2. 교육권리운동의 현황 : 각 대학 학생회 요구안 분석

(2016년 서울대 총학생회, 2018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 2017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 2017 고려대 사범대 학생회, 2018년 고려대 총학생회)

 

1) 2016년 제5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교육권리운동

 

- 방식 : 2016520일 총학생회 및 단대 학생회가 참여한 교육권리운동본부 출범

- 문제의식 : ‘교육 공공성요청

 

부당해고 음대 강사 전원 복직 및 비정규교수 대책 논의기구 설치 (노동권)

법인화 전면 평가 및 국립대로서의 정체성 확보 (대학지배구조/의사결정구조)

코어 사업 등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구성원 의견 수렴반영 (대학재정지원사업/의사결정구조)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중단 및 구성원과 전면 재논의 (캠퍼스/의사결정구조)

학생 의결권 확보 위한 평의원회 민주적 구성 및 총장직선제 실시 (의사결정구조)

학생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교육환경 개선 (교육환경개선)

 

> 다른 교육권리운동에 비해 교육투쟁적 성격이 다분하다. 교육환경개선은 한 항목이며, 그 외 학내 노동권, 정부교육정책, 대학지배구조에 대한 요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노동문제를 제외하고는 의사결정구조로 그 문제의식과 방법론이 제한되어 있다.

 

2) 2018년 제36대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 교육권리운동

 

- 방식 : 사회대 학생회 주도, 기존의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교육권리운동출범. 510일 학생총회. (성사, 1번 안건으로 통과된 후 동맹휴업.)

- 문제의식 : ‘학생이 주인 되는 대학’, 법인화 지적 (민주주의), 공공성.

 

1624시간 개방 (교육환경개선 - 공간)

학생 자치공간 확보 (교육환경개선 - 공간)

수업 추가 개설 (교육환경개선 강의 개설)

차등등록금 문제 해결 (등록금)

갑질교수 H교수 파면 (인권)

 

> 핵심 요구안 몇 가지를 중심으로 학우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할만한 교육환경개선, 등록금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교육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공공성으로 외화되고 있으나 다소 막연하며, 요구안은 단대 공동체 문제, 생활 밀착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인권 문제로 제기된 갑질교수 H교수 파면이 눈에 띈다.

 

3) 2018년 제33대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교육권리운동 SKUCHANGE

 

- 방식 : 비대위 산하 스쿠체인지 기획단 중심. 326일 전체학생총회. (총회 정족수 미달로 무산. 2080명의 1/5416명 중 262명 출석.)

- 문제의식 : ‘학교의 주인은 학생

 

교육권 - 강의 의견수렴제, 성적산출근거시스템, 예체능 수업 및 교양의 다양화, 상대평가 폐지, 여성학연계전공, 재수강 학점 변경 (학사관리, 교육환경개선 강의개설)

학생복지시설 - 학생복지공간 확충, 학생식당 의견수렴제도, 생리공결제 증가, 학생회관 24시간 개방과 난방시설공사, 체육시설 확충, 학생참여예산 증액(교육환경개선 공간, 복지)

학내 거버넌스 - 총장직선제, 등심위 학생위원 확대, 평의원회 학생의원 확대, 학교 주요 회의록 속기요구, 실습비운영위원회 (의사결정구조)

학부별 요구안 (교육환경개선)

 

> 학부 요구안 수합, 교육환경개선 위주의 나열식 요구의 형태를 갖고 있다. 학내 거버넌스는 교육환경개선의 영역을 벗어난 요구지만, 역시 공동체적 권리 하에 국한되어 있다. 다만 학생참여예산, 등심위와 평의원회 학생위원이 눈에 띈다. 거버넌스 요구가 제도화 된 이후, 교육환경개선 요구안으로 포함되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2018년 제50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교육권리찾기 운동 KUESTION

 

- 방식 : 총학생회 주도, 36일 시작. (고대는 매해 3월 교육권리찾기 운동을 진행함.) 2018년에는 월별 의제 제시, 동시다발적 운동. 단과대 및 독립학부 학생회 교육국 연석회의체 구성.

- 문제의식 : 교육환경 관련 불만과 피해사례 바탕 문제제기’. ‘교육권’,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바꾸는 학교 요구.

 

3: 2014년 폐지된 드롭제도 부활. (학사관리) -> 서명운동 4243

4: 총장직선제 이만 총총’ (의사결정구조) -> 총추위 시스템 자체보다 학생 전원 참여를 요청.

5: 학점이월제도 (학사관리)

그 외 학부별 요구안은 강의 개설, 공간문제 개선, 수업비 지원 등을 대체적으로 공유함.

 

> 교육권을 교육환경 관련 학생들의 불만과 피해, 그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총장직선제는 학내 거버넌스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학사관리 개선 요구는 불만 개선보다 제도에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특기할 만하다.

 

5) 2017년 제47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 교육권리찾기 운동 우산 프로젝트

 

- 방식 : 사범대 주도, 9월 시작. 과별 교육권 운동 주체 모집 - 교육권 의미화와 과거 사례 검토. 법률 규정과 현황 분석, 요구안 정리, 서명운동. 발언대 운영, 권리선언 기자회견.

- 문제의식 : ‘학문기관의 대학과 교육 받을 권리, 자유로운 지식접근권, 생활권으로서의 안전할 권리, 차별과 소외받지 않을 권리.

 

공간문제 : 자치공간 개선, 배리어프리, 체육생활관 보수 (교육환경개선 - 공간)

등록금 : 차등 등록금 개선

강의 개설 : 강의계획서 의무화, 학교현장실습생 통제 완화, 답사 문제 해결, 이중전공 문제 해결, 전임교원 확충 (교육환경개선)

차별과 혐오 문제 : 교원의 차별 혐오 발언 금지 및 규제 (인권)

 

> 다른 학생회들에 비해 교육권을 꽤 공들여 정의하고 있다. 학문기관으로서의 대학 속 지식권과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권이 그것이다. 그러나 요구안은 교육환경 개선, 등록금 문제 등 여타 교육권리 운동과 유사하다.

 

- 요구안 분석

 

첫째로 대부분 교육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부재와 정체 현상이 나타난다. 각 학생회들은 교육권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그 정의는 모호하거나 조금씩 다르며, 과거 교육투쟁의 그것보다 훨씬 더 교육환경개선의 영역에 치우쳐 있다.

대학이 어떤 학문기관인지, 교육이 왜 권리로서 제출될 수 있으며 중요한지, 대학에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때문에 교육권리는 정치적 정당성이 아니라 학생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기존 사회에 전제된 교육 수요자와 서비스 제공 관계에서, 또 헌법적 교육권의 제한된 범위에서 교육권이 제기되는 것이다.

 

둘째로 문제의식이 존재하더라도, 요구안과의 괴리가 나타난다. 2016-서울대나 2018-서울대 사회대의 경우 대학지배구조, 재정정책 등의 문제의식이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축소되거나 교육환경개선 요구로 집약되고 있다. 2018-고려대 사범는 지식접근권이라는 문제의식이 요구안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학생이 교육의 능동적 주체라고 천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요구안은 교육 서비스의 요구(공간, 수업비, 강의개설 등)에 국한되고 제공자-요청자 구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제한적이나마 문제의식과 요구안에서 정치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선 모든 학생회가 직간접적으로 비민주적 대학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총장 직선제키워드가 가장 많이 발견되며, 평의원회 구성 등이 추가적으로 눈에 띈다. 최근에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과 같이 총장 직선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학 간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학원 민주화가 사회적 의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민주화라기보다 간선제 내 지분율 향상이나 위원회의 위원 증대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고, 다양한 교육 투쟁 의제가 총장 선거, 거버넌스와 소통의 문제로 환원, 흡수되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최근 교육권의 영역에 인권 사안도 포함되고 있다. 인권은 교육 공간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요청되며, 권력형 성폭력이나 남성중심적 문화의 문제로 확장하려는 양상을 갖는다. 2018-서울대 사회대의 H교수 파면과 2017-고려대 사범대의 교원 차별 금지 요구가 그것이다.

 

 

3. 문제제기 : 운동에서 교육권제출의 한계와 가능성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교육권은 교육투쟁이 밀려난 지점에서 당위적 호소력을 가진 근거로 제시되었다. 주체들은 문제제기의 정당성을 체제 분석보다 권리에서 찾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교육권리운동의 양상을 살펴보면, 그마저도 권리라기보다 불만 해소 요청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대학 내에서 교육권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더 이상 토론되지 않는 상황은, 의도치 않게 교육권의 법적 직관에 호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헌법에서 보장하는 학생을 피교육자로 대상화하며, 교육권이 경제적 조건과 충돌할 경우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음을 전제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또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 나열된 요구안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어느 정도가 교육권에 합당한 요구인가? 대학의 경영 사정을 고려해보았을 때 좀 양보해야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교육권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불편해 보이는 모든 문제를 요청할 수 있는가? 경제 상황에 밀려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임을 주장하기 위해선 대학과 교육이 겪고 있는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이를 넘어선 교육이 왜 필요한지 설득해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교육권리운동의 양상처럼 나열된 요구안은 당장의 민원, 복지 서비스 정도의 차이에 가까운 것이 많으며, 그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간을 분석하지 않는다. 엄연히 말해 이것을 운동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치적 구호가 필요하다. 교육권 개념은 더욱 구체적 분석과 대안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탈정치적인 것은 그 자체로 기존 사회를 답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이는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의 서비스 관계, 고등교육이 내포한 특권과 불평등에 해당한다. 결국 거칠게 보면 지금의 교육권리운동은 등록금을 낸 학생, 입시에서 승리해 대학에 온 학생, 학위를 따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하려는 학생으로서의 이익을 요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밥그릇 챙기기는 타 집단과의 연대를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쟁적 사회를 더욱 재생산하는 데 일조할 뿐이다.

나아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정치적 구호만이 담보할 수 있다. 대학 본부와의 소통, 타협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는다면 당장 각종 복지의 영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무언가 되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정작 최종 결정권이나 통제권은 없는 상태에서, 교육에 대한 비판의 기준이 와해된다면 학생들은 대학이나 교육에 점차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교육권 논의가 정치적으로 확장되고 사회화될 가능성도 보인다. 교육권리운동을 수행하는 학생들이 어떤 목적과 전략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제한적 가능성들이 발견된다. 협소해 보이는 요구안 속에 어떻게 정치적 관점을 담을지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다만 의지적으로 운동의 주체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성이 바로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한적 가능성들을 어떻게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들을 바꾸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4. 2018-사회대 학생회의 사례

 

좀 더 생생한 목소리로 지금 학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권리운동의 현황과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앞서 살펴본 교육권리운동의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과와 가능성이 남아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인터뷰 당시 사회대 학생회는 학장단과의 최종 교섭을 앞두고 있었고, 517일 최종 교섭 결과 161,2층의 24시간 개방, 우석경제관 학생자치공간을 위한 협의체 설치, 전공교과목 추가개설 논의 약속을 이끌어냈다.

 

Q. 사회대 학생회는 '교육권'을 어떤 개념으로 정의하고, 또 주장하고 있는가?

 

수환 : 학교에서 학생이 학생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의 총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왜 충분한 자치공간을 배정받지 못하고, 전공강의를 갖지 못했는지 (...) 대학사회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빼놓을 수 없다. 교육 공공성보다는 대학의 이윤논리, 시장화가 중심적으로 여겨지는 사회 권리 속에서 학생의 권리가 후퇴해왔고, 서울대의 경우 법인화 이후에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정 : (대학은) 교육이라는 공공재가 유통되는 곳이고 그것을 함께 형성하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교육권을 생각할 수 잇다. (...) 한줄로 요약하면 교육상품의 소비자로서의 학생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서의 학생을 세우는 것이 교육권이라고 생각한다.

 

Q. 현재 제시하고 있는 요구안과 이에 담으려는 교육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환 : 학교가 학생들의 필요가 아닌 이윤논리에 따라 운영되고, 그에 따라 학생은 사소하게는 전공강의 수강부터, 크게는 공간배정의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거든요. 그래서 어떤 그런 부분에 대한 (...) 이윤논리 탓에 박탈되어온 학생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요구안의 정치적 관점들은 잘 전달이 된 것 같은가?)

수환 : 이 시점에 실패, 성공을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적 요구든 즉자적 필요와 경제투쟁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의미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하다. 그런 과정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민정 : 더 중요한 작업은 그만큼 평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첫발을 뗀 것인데, 학장단이랑 뭔가를 해서 얻어낸다고 했을 때 그것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하다.

 

Q. 어려운 점이나 한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민정 : 제일 뼈저리게 느낀 한계는 구조적 부분이랑 연결된 지점일수록 더 큰 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비해 실제로 할 수 있는 투쟁의 귀결이 단과대 범위는 작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생들, 전체대학생들이 어떤 정치화된 요구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하면 전 서울대, 전국의 대학생으로 확대시켜나갈 수 있을 지가 고민될 거 같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게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떤 공론화 노력을 거쳤는가?)

수환 : 왜 총회 투쟁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사실 이번 총회에서 다룬 안건들이 그리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등록금 문제 해결이라든가 전공강의 확충이라든가. 사실 이런 요구안을 학생회 상층부만 요구할 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걸 수년간 확인했다. 이번에는 몇몇 간부들만 관심 갖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대 전체 학우들의 문제로 확산시키고 스스로 행동방안 결정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사회대 교육권리운동의 성과, 다짐과 전망은?

 

수환 : (자주 반복되던) 후퇴를 막아내는 투쟁에서 나아가서, (이번 교육권리운동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학생사회의 가능성을 확인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정치적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수업과 반방에 대해 불만만 가질 것이 아니라 왜 권리가 박탈되어왔는지 묻고 토론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실질적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도록 학생회가 해나가야 할 역할이 많은 것 같다.

민정 : 오늘날의 학생회가 현실에 찌눌려있는 상황인거 같다. 계속 대안을 상상했으면 좋겠다.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대안을, 우리의 대안을 상상하고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5. 제언 : 다시 교육투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교육투쟁에서 교육권리운동으로의 변화에는 일련의 탈정치화와 학생운동의 쇠퇴라는 배경이 있는데,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좋은 말만 하는 건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때문에 왜 교육투쟁이 쇠퇴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짧은 고민이라도 해보아야 한다.

나는 운동이 쇠퇴하는 주요한 원인에 이론의 설명력 약화, 이를 반영하는 요구안의 상실, 운동을 지탱하는 인적 네트워크나 자치기구의 약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문제는 학생자치단위 중심의 노력이 필요하겠으나 이 글에서 직접적으로 다룰 영역은 아니라 생략하고, 이론과 요구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째로 이론과 문제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어긋난 문제의식과 대안의 부재는 호소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등교육기관이 팽창하면서 현실적으로 고등교육재정을 정부가 모두 담당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자체적 생산기관이 아닌 대학의 재정의존은 역사적으로도 다소 필연적이다. 또 대학은 단순히 연구기관이 아니라 노동력을 위계화하고 노동시장에 공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세력은 교육이 공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구호를 넘어 교육과 노동의 관계, 대학재정운영, 대학 내 지배구조, 연구 관행과 문화, 기업 및 지역사회와의 연계 방식에 대한 종합적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저항세력의 대학 비판은 일종의 정체를 겪어왔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부터 논의되어오던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같은 대학 운영방식이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 제정 노력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안이 제출되지 않고 있으며, 막연한 국가의 책임이나 대학 본부의 책임이 반복해서 요청되고 있다. 물론 노동자 해고, 등록금 인상과 같은 대학기업화의 현실적인 단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때로는 막아낼 수 있겠지만, 근본적 전망이 불투명한 이론은 대학 구조를 바꾸기에는 한계를 갖는다.

대학은 기존 사회에서 벗어난 도피처나 상아탑으로 요청될 수 없으며, 이런 생각은 현실을 가리고 대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오류를 가져온다. 또한 대학 공동체 내에서만 교육 문제를 방어하며, 각자의 처지에서 각개 전투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우리는 적극적으로 의존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학이 사회와 연관하고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둘째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요구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물론 요구안을 공동체가 어떻게 사유하느냐, 얻어낸 성과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정치적 잠재력을 갖는다. 하지만 협소한 요구안에 의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만 해서는 잠재력을 확장시킬 수 없다.

요구안은 당장의 환경개선이 아니라 그것의 구조를 지적해야 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이 공허한 지향이 되지 않으려면 현재 학생들의 상황을 명확히 대학 구조와 연결하고 가시화해내는, 계기적 사건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은 등록금 산정 체계(등록금), 서울대 내 연구비 산정 방식이나 고용체계(연구/노동), 학사관리제도(졸업요건, 평가방식) 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환경개선의 요구안이 요청되더라도 그 실천과정이나 후속조치가 이 같은 구조적 문제제기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당장의 공감을 얻어내면서도 대학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대안은 요원하며,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쉽게 찾아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을 다시 사고하고, 우리의 것으로 전용, 활용할 것을 상상해야 한다. 이런 막막함에 직면할 때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전쟁기의 국가가 대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현대 사회의 자본이 대학의 지식 생산을 독점하는데, 왜 우리라고 그러지 못할까? 터무니없는 자신감이겠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어떻게가 문제지만.


많은 이들이 교육이 독자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질문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교육이 제도나 교육 내용 그 자체라면 이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와 교육내용, 나아가 교육현장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정치는 그 자체로 변화의 시작이다. 교육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것이다. 때문에 다시, 그런 사람들의 정치가 존재하는 자치기구와 공동체가 항상 요청된다.

취재 차 찾아갔던 사회대 총회는 모든 안건의 가결 이후 폭죽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단단해 보이기만 하던 사회대 건물은 폭죽이 터지는 소음과 불빛에 흔들렸다. 그 아래 한껏 파장 분위기를 즐기는 사회대 학우들의 흥겨움에서 역동적 공동체의 실마리가 아직 존재함을 볼 수 있었다. 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힘과 잠재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지점으로 결말을 맺는 우스운 상황이 됐지만, 사람들의 고민이 지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이 글이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문헌


- 서울대저널, “서울대학교 교육권리운동 기자회견 열려”, 2016.5.25.

(http://www.snujn.com/news/23400)

-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다시 시작된 교육권리찾기운동변화된 점은?”, 2016.4.1.

(http://kubs.ac.kr/20122)

-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사범대학 교육권리 찾기 위한 노력 우산 프로젝트기자회견 열려” 2017.11.7.

(http://kubs.ac.kr/19429)

- 나달숙, 교육권을 둘러싼 법적 논의와 한계성에 관한 연구, 법과인권교육연구6(2), 2013.


 

더 읽어보면 좋을 것들

 

- 고부응, 대학 자본주의와 대학 공공성의 소멸, 비평과 이론21(1), 2016.

- 김정인, 대학과 권력 :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8.

 

 

청소년 참정권, 외않됀데?

딸기맥주

 

 청소년 참정권, 보다 구체적으로는 만18세 선거 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뉴스에는 늘 댓망진창이 벌어진다. 이 글에서는 실제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편집해서 이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Q1.

dfjd***

애들은 아직 어려서 논리고 뭐고 없는데, 사고도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애들한테 어떻게 한 나라의 정치를 맡기냐? 하여간 이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려고 ㅉㅉ


A1.

edujournal

세 가지를 논리적으로 반박해보고자 한다. 첫째, “나이가 어리다 = 논리 체계가 없다고 말하는 당신의 논리 체계가 빈약하다. 청소년은 당신의 주장을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사고력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논리 체계 하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둘째, 놀랍게도 논리 체계와 사고라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알아서 발달되는 것이 아니며, 논리 체계가 완성된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지능과 능력을 충족해야만 권리를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환경에 놓여있는,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 정치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서 차별 금지라는 것이 원칙으로서 도출되고 합의되어 온 것이다. 만약 IQ150이 넘는 사람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고 하면, 그것을 아무도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려고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겠죠.”라고 대답할 밖에.

 

Q2.

kdg5****

본인 판단 없이 타인 영향으로 투표할 듯? 부모가 하라는 대로 찍던가 선생님이 말하는 거 따라가겠지. 내 맘대로 인물 보고 관상보고 찍겠지.


A2.

edujournal

자 먼저 청소년이 모두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부터 밝혀둔다. 청소년들이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근거로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고 있는데, 인간의 정치적 입장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인간의 삶은 정치의 연속이고, 정치는 곧 상호 설득과 투쟁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개인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한편, 자신도 설득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판단이 확고한 사람이라기 보단 고집이 센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물론 청소년에게 있어서 부모와 교사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결정은 청소년 개개인의 몫이다. 선생님이나 부모의 말이 설득력이 있으면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의견을 구성해가는 참고사항으로 삼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판단 기준에 따라서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하는 방향,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 투표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차피 남편 따라서 투표한다, 감정적으로 판단한다.” 등의 말들. 언제나 박탈당한 이들이 권리를 찾으려 할 때, 이미 권리를 가진 자들은 그들을 평가절하하고, 절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지만 그것은 대체로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교사, 부모 청소년 사이에 권력관계가 작동하기도 하며, 이 사회에서 청소년이 순응하며 살아오도록 통제 당해왔기 때문에 학교와 가정에서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 자식이라는, 제자라는 이유로 청소년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정견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 변화는 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지니게 될 때 더 의식적으로 촉진될 것임은 명백하다.

 

Q3.

holo****

야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냐? 막 시험 없애자고 하는 거 아님? 교육내용을 지들 맘대로 하자고 하면 어떡함?


A3.

edujournal

시험 없어진다니 개꿀. 교육감 등의 선거에서 청소년 참정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청소년은 교육의 소비자도, ‘피교육자도 아니다.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참여자로서, 자신의 일상에 해당하는 교육 제도, 교육 내용 등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단언컨대, ‘교육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안보다 청소년들의 시각과 목소리가 훨씬 정확할 것이다. 교육을 향유하고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서, 그들은 누구보다 현재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변화의 방향을 잘 제시할 수 있다.

 

시험을 없애자고 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들이 있는데, 왜 이러한 논의를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교육체제만이 정답이라는 시각 또한 편협한 비청소년의 생각일지 모른다. 더 나은 교육현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모든 것에 대해 열어놓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정권의 핵심이다. 참정권은 단지 투표할 권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2등시민이라는 취급, ‘어리고 모자라며 완성되지 못한 존재로서의 낙인을 뛰어넘어 말하고, 토론하고, 요구할 권리를 포함한다. 청소년은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12년을 복무해야 하는 죄수가 아니라 감옥을 부수고 배움터를 세워내는 능동적 존재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청소년의 목소리를 헛소리취급하지 않고 청소년을 그들 삶의 현장에서의 전문가로서 인정하는 일이다.

 

Q4.

illu****

청소년한테 참정권 주면 지들이 어른하고 똑같은 줄 알고 기어오를 걸? 난 그 꼴은 못 본다~ 청소년 인권이다 뭐다 하면서 체벌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투표권까지 줘봐. 학교도 가정도 난리난다~~

 

A4.

edujournal

청소년은 맞아야 안 기어오른다고 말하는 당신은 노예는 때려야 주인한테 안 대든다”, “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에도 동의할 것이라는 건 잘 알겠다. 바로 당신같은 인간들로부터 사람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당신같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이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구호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은 인권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생존권이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들은 이 구호를 외치며, 지속적으로 체벌, ‘용모단속, 언어적 폭력, 어른들의 갑질’, 청소년 노동 임금체불 등으로 인해 억압받아왔던 자신들의 경험을 드러내왔다. 인간이 억압된 상황에 지속해서 놓여있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발화할 권리이며, 그 발화가 공동체에 균열을 내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꿀 권리이다. 그것이 바로 참정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기본적인 권리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우리에게도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삭발을 하고, 천막 농성을 하고, 시위를 하다가 끌려가면서, 그들은 외친다. 폭력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외모가 학생답지않아도 되는, 당당하게 노동하는,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Q5.

dofo****

선거연령 18세는 좀 그렇다 고등학생 신분에 정치참여는 찬성할 수 없다. 눈 앞에 대학 입시가 안보이는가?

 

A5.

edujournal

당신 눈 앞의 청소년들은 입시 공부 기계인가? 청소년들은 기계도, A-B-C 등급이 매겨져야 하는 고깃덩어리도 아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입시가 코 앞인데 무슨 정치냐고 말하는 것은, 너를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입시제도로 인해,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매년 증가하는 이 곳에서 너희는 공부만 해야 하니 귀 막고 입 닫고 있어.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청소년의 삶을 절망과 죽음으로 계속해서 내모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죽고 싶지 않아서, 살고 싶어서 정치 참여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Q6.

uihh****

어느정도는 동의해. 근데 우리나라 교육이 주입식인 건 사실이잖아. 그런 주입식 교육에 12년 동안 익숙해져 온 청소년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어?


A6.

edujournal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라면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모두 주입식 교육을 당해왔다는 것, 이로 인해 주체적인 판단이 방해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순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을 깨뜨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진실이다. 6월 혁명의 주체였던 청소년을, 그리고 작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청소년들을 생각해보면 명료하다.

어른들은 청소년과 자신을 매우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별로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청소년만큼이나 잘 속고, 거짓과 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루머와 가십을 사실이라고 믿기도 한다.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해서 청소년에 비해 자신들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등의 근거가 없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우리도 생각이 있고 우리도 판단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이 서로를 선동하고 또 선동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정치의 핵심이다. 선동 당할테니 정치참여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정치에 대한 무지일 뿐이다.

 

Q7.

giga****

아니 의무를 지켜야 권리를 주지?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내면서 하라는 것만 많아. 하라는 공부나 해라 지 밥벌이도 못하는 것들이.


A7.

edujournal

사실부터 정정하자면 만 18세는 납세의 의무도 진다. “사회시간에 공부 제대로 안 하셨군요.” 그리고 가장 왜곡되어 있는 개념이 의무를 지켜야 권리가 성립한다는 것인데 권리는 조건부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권리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행복추구권을 떠올려보면, 어떤 의무를 지켜야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를, 납세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권리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Q8.

goun****

아니 근데 열여덟살이 시간이 어딨어. 신문이나 뉴스 볼 시간도 없을텐데. 어차피 입시공부 때문에 바빠서 선거 때 관심도 없다가 아무나 찍지 않을까?


A8.

edujournal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성인들은 일상 때문에 바빠서 어떻게 선거 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가?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퇴근도 못하고 야근도 특근도 하는 일상을 사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다. 비청소년도 똑같이 아무나 찍으면서 말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는 이유는, 정치는 일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하고 모순적인 일상을 바꾸고자 시도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며, 정치의 일부인 선거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숨가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매일 매일을 위해서 정치에 참여한다. 그러나 청소년과 비청소년 모두 매일의 일상을 살아감에도, 19세 이상에게만 제한적으로 그 일상을 바꿀 권리가 더 주어져있다는 것은 차별적인 일 아닌가?

 

Q9.

jijj****

고딩들한테 투표권 준다고? 학교가 정치판이 되면 어떡함?


A9.

edujournal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교육공간은 정치가 배제된 공간을 말하는가? 그런 공간일 때만 교육이 가능한가?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브라질의 교육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은행 저금식교육을 비판하면서 학생과 교사가 대화와 탐구를 통해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제기식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삶과 현실을 바꿔내는 프락시스’,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학생에게 지적 만족을 주는 것을 넘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바꿔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지, 무엇이 문제라고 제기할 것인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요구할 것인지. 선택할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가능한 그 선택이 진실에 가깝도록 하는 일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교육은 정치다. 끊임없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것,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기르는 것이 교육이고 그것은 정치와 다르지 않다. 학교가 교육공간이 되고자 한다면, 그곳은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는 더더욱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학교는 침묵과 통제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반교육적 행위들이 교육으로 둔갑했다. 이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불만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외침은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억압당해왔다. 두발 규제, 복장 단속 등이 인권침해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자보를 적으면 학교에서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며, 다른 학생들을 선동한다며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혔다. 실제로 많은 고등학교들에서 학생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제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울산 지역의 한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의 생활규정에는 정치에 관여하여 행동을 한 학생은 퇴학까지 가능하다는 내용마저 있다고 한다.

 

청소년 참정권은 이 침묵의 학교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청소년은 정치의 주체라는 말이 힘을 가지게 될 때,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게 될 것이다. 학생회의 공약은 학부모와 교사의 감시를 받지 않을 것이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 실현은 교육기관을 무너뜨리는 공격이 아니라 학교를 비로소 교육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위한 국회 앞 농성 참여자 인터뷰

 

인터뷰어: 당근

인터뷰이: 상헌

 


지난 달, 청소년 참정권 쟁취를 위해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1 천막 농성을 하며

 

Q. 천막 농성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지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부패한 박근혜정권의 퇴진과 세상의 교체를 위해서 청소년들도 광장에 서있었지만, 학교의 선생님들이 역설하는 학업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이미 그렇지 않음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교복화장두발규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촛불의 열기와 적폐청산으로 대표되는 요구 또한 학교의 담장을 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국회 앞 천막농성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Q. 천막 농성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A. 천막에 있다 보면 종종 지나가는 비청소년들이 어린것들이 뭘 알면서 이러냐는 말을 하는 걸 듣곤 합니다.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그 중 가장 기분이 나빴거나 어이없었던 말이 있나요?

A. ‘저것들은 전교조한테 선동당한 것들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하게 듣기도 한 전형적인 색깔론, 배후세력 프레임을 씌우려는 말이잖아요, 당장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전교조에 소속된 선생님들이 한분도 안 계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황당했었습니다.

 

Q. 자유한국당을 대상으로 기습 퍼포먼스을 계획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선거연령 하향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입니다. 국회 방문 시 선거연령 하향에 동의한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일부 있었지만, 아직 홍준표를 위시한 많은 의원들이 어린 게 뭘 아냐면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판식 당일의 기습시위는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고발하며 선거연령 하향이슈를 다시금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2 참정권 확대를 위하여

 

Q. 만약 선거연령을 하향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면, 그 이후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일단 18세로 선거연령이 하향된다고 해도, 앞으로도 계속적인 선거연령 하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성숙함은 결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릴지는 충분한 고민과 토론이 있어야겠지만요. 그리고 단지 선거날 청소년도 투표소에서 도장 찍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표참여와 더불어 청소년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참정권 확대를 위한 움직임에서 연대할 수 있는 다른 주체들이 있다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A.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고, 저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에 함께할 수도 있듯이 가능한 한 많은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가 있어야 운동의 힘을 얻으니까요.

 

#3 청소년이 주체로 서기 위하여

 

Q. 청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혹은 편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에 대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A.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을 오로지 뭘 모르는 어린애들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농성을 진행하면서도 인터넷상에서 많이 들은 말인데요, 이것이 바로 편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은 결코 뭘 모르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Q. 청소년이 이 사회에서 주체로 서기 위해서, 참정권 획득 이외에도 어떤 과제가 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단지 참정권의 보장범위 확대로 그치지 않고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것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청소년들을 자신들보다 무지하고, ‘더러운 어른들 정치판에 왜 끼어드려 하느냐는 말처럼 청소년들은 순결해야 한다는 시선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본다면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있어도 과연 그 권리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요?

 

#4 개인적인 질문

 

Q. 청소년 운동 혹은 청소년 참정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청소년 참정권에 관한 요구들은 예전부터 들어왔던 요구들이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5월 대선에 즈음이었습니다. 광장의 힘으로 만들어낸 대선이었지만 그 광장에 있던 청소년들은 빠진 채로 대선이 치뤄지는 것을 보고서 본격적으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농성 때문에 가족이나 교사 등과 갈등을 겪었던 적은 없나요?

A. 농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는 제가 (청소년운동을 포함한)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눈치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일정들을 적어두는 다이어리를 카메라로 몰래 찍거나 집회소식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제가 나온 것들을 찾아보거나, 제가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위해 집에서 페이스북 가계정을 생성한 뒤 저를 검색하는 행동들을 한 것들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도 제가 모르게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보를 흘려가면서 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식으로 제 활동에 대해서 압박을 넣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현재에는 무엇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무슨 제약을 느끼고 있나요?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나요?

A. 앞으로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과 청소년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들을 타파하고 싶고, 청소년운동 뿐만이 아닌 모든 의제에서 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청소년들의 삶이 학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현장만이 아닌 노동현장, 일상에 모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머리 속에서 제가 원하는 이상에 대해서 그림이 안 그려지고 그것을 말로도 풀어낼 언어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계속 운동 현장에서 주변 사람들과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지식을 쌓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식이 쌓여가다 보면 제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도 명확해지고 목적의식 또한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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