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대상으로서의 교사
- 교원성과급제와 교원평가제를 중심으로
익명이
들어가며
학교 내의, 학교 간의 경쟁을 교사는 피해갈 수 있는가? 교원성과급제, 교원평가제와 같은 제도들은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 세우고 임금 격차를 늘리며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와 정규직 교사의 갈등, 기간제 교사의 처우 문제 역시 무한경쟁장인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어떻게 경쟁의 장이 되었으며 왜 교사들은 평가와 경쟁에 속박되어있는가?
90년대 말 우리나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구조의 변화를 겪게 된다. IMF 금융위기로 인해 고용시장을 개방하라는 서구의 압력을 받고 우리나라에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다.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에 비자발적으로 편입되면서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화가 이루어지고 현재 노동시장, 경제 분야, 교육, 공공영역 등 다양한 영역에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대상만 살아남게 하며,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의 교육도 시장화가 되고 있다. 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외고, 마이스터고, 자사고 등 학교의 다양화 정책을 추진한 것은 바로 이 흐름에 따른 것이다. 학교를 다양화함으로써 교육에서의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의 폭을 넓혀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이 정책의 전제는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알아서 경쟁하게 만들 때 교육의 서비스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더 이상 교육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지만, 일정한 표준을 정해서 표준에 미치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는 주체로 행위 한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여 학교의 학업성취도 수준에 미치지 못한 학교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그 예시이다.
교원 성과급제
교원성과급제에서도 이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교원성과급제는 2001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교원성과급은 교사 개인이 수행한 업무수행 결과, 성과 등 산출차원 요소에 기초한 보수이다. 성과급 도입이 발표되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교원단체들은 성과급이 교직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적합하지 않다는 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체계가 미비하다는 점, 교직사회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 등의 이유로 교원성과급도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교육부는 교직단체, 시도교육청, 중앙인사위원회와 수차례의 협의를 거쳤으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다가 8개월이 지난 2001년 9월 성과급을 교원복지차원에서 시행하기로 함에 따라 외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1
그러나 초기의 협상결과와는 달리 교육부는 차등지급 비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성과급은 2001년의 지급방식에 따라 90%를 균등지급하고 나머지 10%를 차등지급하는 형태를 유지하였지만 이후 차등지급 비율을 2006년 20%, 2008년 30%, 2009년 30%~50%, 2010년 50%~100%로 확대되었다. 2010년부터 개인단위 성과급이 학교 내 교사 간 협력을 저해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이것마저 폐지되어 개인성과급으로 단일화되었다. 이에 따라 S 등급을 받은 교사와 B 등급을 받은 교사 보수의 차액이 168만~240만에 이른다. 2
B등급 교사들이 겪는 상처와 좌절은 막대하다. 자기 비하가 조직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면서 불신의 벽을 쌓게 되고, 업무에 대한 기획, 도전, 헌신을 꺼리게 된다. 하위 등급을 받은 교사는 계속 같은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 공황 상태로 이어지고, S등급을 받은 교사도 괜히 움츠러든다.
교원성과급 차등 지급의 기준 또한 논쟁거리이다. 학교마다 평가 기준은 다르지만 대부분 정량적 기준을 적용하므로 교사 개인별 수업시간, 수상실적, 연수시간, 담당 업무 등의 비율을 우선하여 좋은 평가 등급이 매겨진다. 학생들이 고민하는 대인관계 지도나 인성 지도, 교육활동의 결과인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나 발달 수준 등은 교육의 특성상 측정이 불가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교사들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 기준은 교사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서의 신뢰도와 타당성이 떨어진다. 좋은 교사의 기준이 좋은 성과, 좋은 입시 결과를 내는 것이라면 결국 교원성과급제는 좋은 학교와 교사, 학생들을 줄 세우는 과열 경쟁의 장에 기름을 붓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또한 애초에 교원성과급제가 도입된 취지를 보면 사교육에 짓눌린 공교육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교사들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그 추진 동력으로 보상을 전제로 한 상대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공교육의 위기를 교사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전제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교원평가제
교원성과급제와 더불어 교사의 수업 및 생활지도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2005년부터 시범 교원능력개발평가 제도(교원평가제)가 혁신적 정책으로 도입되었다. 교원평가제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원평가제 실시 목적은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한 교사의 수업 전문성 신장’이다. 둘째,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교장, 교감,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 등이 모두 참여하는 다면평가 형식이다. 교장, 교감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셋째, 평가 결과 우수교원에게는 해외연수 등 인센티브를 주고 능력개발 희망 교원(지도력부족 교원)의 경우는 ‘능력향상 연수과정’(나머지 공부)를 실시한다.
교원평가제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 창구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는 교원성과급제와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한 투자 대신 경쟁 체제를 도입해 교원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며 그 실효성 역시 신뢰하기 힘들다. 교육 활동은 일반 기업의 업무와 같이 단기적으로 그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어떤 방법, 어떤 항목으로 평가를 하더라도 극히 부분적일 뿐 총체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는 불가능하다. 수업에 대한 평가를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는 합의되기 어렵다. 또 일반 기업의 업무 성과와 달리 교육적 성과는 단기간에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연 1회 공개 수업으로 적격, 부적격 교원을 가려낸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교사의 자질을 학원처럼 교수-학습 방법에서만 찾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교원평가제를 실시하려는 의도와 배경을 살펴보면 교육정책의 실패를 교원들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원평가제 도입의 근거는 “실추된 공교육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이 스스로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위기”에 이르게 된 데 있어서 교사 개인에게 그 책임을 온전히 돌릴 수 있는가? 학벌숭상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과열 입시경쟁 체제를 공고히 하고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조장하는 데 정부가 그 역할을 해오지는 않았는가? 교육에 효율과 성과 등 계량화된 경쟁 기제를 도입해서 질적 제고를 꾀하겠다는 발상은 교육을 시장화하고 기업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작년 11월 전교조 경남지부에서는 현장 교사들 1321명이 ‘동료 교원 평가 불참 선언’에 참여했다. 이들은 “교사들끼리 동료에게 점수를 매기며, 서로 눈치보고 갈등하게 하는 것은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가?”,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것은 관료들에게 유용한 통제의 도구이자 권력으로 작동할 뿐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점수를 매겨 개개인을 고립시키는 평가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가 공동사고를 통해 집단적으로 성찰하는 피드백을 통해 학교 교육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금껏 교원의 지도능력 및 전문성 강화를 통한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시하는 교원성과급제 및 교원평가제는 그 목적을 상실한 채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 위화감을 조성해왔다. 뿐만 아니라 동료를 경쟁자로 만들고 국가정책과 교육현장 관리자에 순종을 강요하는 도구로만 기능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교사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선 학교는 소통협력 공동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교원에 대한 평가는 학교가 교육공동체로서 기능할 때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학교 공동체가 공동체적 사고를 통해 집단적으로 성찰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교사의 전문성이 신장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원평가의 문항을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가령, 교실환경을 개선하고,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며, 학부모와의 교육 여건 및 상호작용 통로를 확충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교사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원에 대한 평가가 동료를 경쟁자로 만들고 경쟁적인 분위기를 유도했다면, 앞으로의 교원평가는 교사 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동료의 수업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평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상호평가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가며
현 정부는 “공직 사회에 강요됐던 성과 중심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성과급을 유지하고 차등지급률만 축소했다. 지급률 축소도 딱 이명박 정부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교사 통제를 위해 핵심으로 추진했던 ‘교원업적평가’도 유지했다. 실망스러운 현 정부의 태도에 대응하여 전교조 지도부는 성과급제 폐지 청와대 청원 운동을 벌이고, 성과급 균등분배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가 계속해서 교원성과급제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교원성과급제를 통해 정부가 교사를 경쟁시키고 통제하며 전교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경쟁적인 조건은 입시를 부추기기도 하고 입시가 바뀌지 않는 한 교사의 지위도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악순환과 딜레마가 계속 되면서 학생과 교사들은 그 굴레 안에서 착취당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어떻게 황폐화되어가고 있는가? 학교의 주인이라고 간주된(?) 학생과 교사들은 사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 객체화된다. 학생들이 처음 사회와 관계 맺는 공간은 학교이고, 몇 십 년 동안의 교사의 직장으로서의 공간, 생활공간 역시 학교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경쟁의 기억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에서 사회화하고 잘 살아남으려면 경쟁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가 이들에게 원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 틀에 맞춰서 정형화되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암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많은 교사들이 균등분배와 명단 공개에 참가해 성과급 차등지급을 무력화하고 성과급제 폐지를 정부에 주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교조가 실시한 설문 조사(3만 3132명)에 따르면, 90.9퍼센트가 전교조가 추진하는 차등성과급 균등분배에 참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성과급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이 매우 광범위함을 보여준다. 지난해에도 성과급 균등분배에 전년보다 많은 8만 7085명이 참가했다. 정부가 징계와 금전적 불이익을 들이대며 협박하는 상황에서 많은 교사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균등분배에 참가한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우리를 고무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 쪽일 것이다. 경쟁을 완화시키고 착취를 반대하고 학교를 학교답게 만들자는 목소리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결국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33호 - 경계 (2019 봄호) > 특집 - 평가 : 학교의 안과 밖 어디에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집 - 평가 : 학교의 안과 밖 어디에나⑤] 나가며 - 외롭지 않게, 아프지 않게 (0) | 2019.03.15 |
---|---|
[특집 - 평가 : 학교의 안과 밖 어디에나③] A학점이 받고 싶지만 자퇴는 하고 싶어 (0) | 2019.03.15 |
[특집 - 평가 : 학교의 안과 밖 어디에나②] 대학에서의 평가 - 대학구조개혁평가 (0) | 2019.03.15 |
[특집 - 평가 : 학교의 안과 밖 어디에나①] 평가,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0) | 201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