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를 펴내며
어느덧 교육저널에 몸 담은지도 1년 반이 다 되어갑니다. 습한 여름날 편집실의 공기는 제가 교육저널 동아리방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로 저를 데려다주는 듯합니다. 처음엔 그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불만을 똑똑한 사람들과 나누고, 글을 통해 쏟아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편집장이라는 직책도, 글을 쓰는 부담도 없던 그 시절, 그저 노트북을 가볍게 두드리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습니다.
그러나 멋모르는 신입생이던 저도 이제 어엿한 편집장이 되었고, 편집 작업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분명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때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졌는데, 왜 이렇게 고민하는 게 어려운지, 글 실력은 퇴화된 것 같은지, 글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밖에 모르던 풋내기가 신경 쓸 게 많아지고, 주변과 사회로 고민의 범위를 넓혀서 그렇다고, 이 또한 내가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변명해봅니다.
돌이켜보면 참 혼란한 사회였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코로나 19 사태, 현실이 된 청소년 참정권,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N번방 사건 등, 우리는 커다란 사건들과 마주하며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우리만치 빨리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갔으며, 청소년 참정권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당연한 얘기가 되었고,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을 엄벌하라는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이야기들 수면 아래, 어쩌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여전히 침전된 채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19, 청소년 참정권 보장, 가해자 처벌은 결국 수면 위로 보이는 이야기들입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이야기들, 내재된 사회의 교육 병폐와 청소년 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 등에 진정한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에서 교육저널은 이러한 수면 아래 잠긴 이야기들에 집중해보았습니다.
거대한 이야기의 크기와 깊이 만큼,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에게는 같이 고민할 동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짚지 못한 지점을 지적해주고 지난 한 학기 동안 같이 교육을 상상해주었던 동료들, 우리 편집위원들이 있었기에 이번 호도 무사히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편집장이 되고 싶었지만, 혹여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동아리 경험이 더하다는 이유로, 편집장이라는 감투를 썼다는 이유로 권력을 휘두르진 않았을까 걱정합니다. 세심하지 못하고 부족한 편집장과 함께 고민하고 글을 쓰느라 수고해준 모든 편집위원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혼자라면 외로웠을 길을 함께 걸어준 공동편집장 고슴도치뇽님께 가장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를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 저희의 진심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공동편집장 BDUCK 드림
올 상반기는 혼란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대학은 비대면 강의를 시행했고, 활기차게 새 학기를 맞아야 하는 학교는 한산했습니다. 혼란스러운 날들에도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곧 적응해나갔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교육저널 구성원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익숙한 사람들이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설렜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교육저널의 관점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의 생각을 연결하기 위해서 여러 글을 읽으며 각자의 경험을 나눠보기도 하고, 여러 의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몇십 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몇 번의 노력으로 합의된 관점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서로의 글을 꼼꼼히 읽고 더 나은 방향으로 글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교육저널 이 단순히 각자의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같이 글을 써나가고, 더 나은 글을 위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여러 글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제목을 짓는 작업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괜히 불안했었나 봅니다. 어느 순간 편집위원들의 모든 글에 저의 관점을 끼워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 하나둘씩 진실된 고민을 담아 글을 진전시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저널만의 관점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했던 고민들과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대안들을 잘 녹여내는 것이 바로 교육저널의 글인데, 서로를 믿고 진심어린 조언이 오 갈 때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정치권과 많은 언론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다를까요? 다르다면, 이전의 사회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선거연령이 하향되면서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떠들썩했는데, 청소년의 정치할 권리는 완전히 보장된 것일까 요? 누군가는 지금이 과거와 다른 평등한 사회라고 하는데,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와 권력형 성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별개의 문제일까요?
이제 글에 대한 책임을 독자 여러분께 넘깁니다. 교육저널의 글이 더 넓은 고민으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진심과 고민을 담아 빛나는 글들을 써주신 편집위원분들,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눠주었던 BDUCK님과 이전 편집장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실 독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공동편집장 고슴도치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