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현장실습생 이야기>를 읽고

 

당근

 

허환주,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후마니타스, 2019. 사진출처 : yes24 홈페이지

 

들어가며

 

열여덟은 한국에서 어떤 나이로 그려질까. 고등학교를 다니고, 교복을 입고, 방과후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먹고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열여덟은 꼭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지난호의 학교 밖 청소년들처럼 학교 제도를 거부하거나 탈출하여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꾸리는 이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일터를 갖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 바로 산업체 현장실습을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이 책은 아직 뭘 모르고, 별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나이가 아닌 이들, 열여덟, 많은 고민과 기대를 안고 현장실습을 통해 처음으로 일터에 나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2017년 이후 발생한 현장실습에서의 사고와 죽음들이 공론화되고, 그에 대해 ‘안전한 환경’이라는 요구가 등장한지 한참 지난 작년 말 발행되었다. 몇 년 전, 안전에 대한 문제제기가 빗발치고, 이토록 위험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실습 폐지론이 등장함에 따라 교육부는 이듬해 현장실습을 학습을 중심으로 개편한다. 일을 하면 위험하니까, 주변에서 지켜보고 학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과 학교가 반발에 나섰다. 현장실습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특성화고라는 교육기관의 취지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안전하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진로를 꿈꿀 수 있는 현장실습의 부활을 요구했다. 이 모습은 현장실습에 안전이라는 산업 현장의 문제와
특성화고의 역할과 핵심적으로 연관된 교육의 문제가 동시에 작용함을 보여준다. 즉, 안전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축소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 책은, 현장실습과 이후의 삶에서 목숨을 잃은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이 ‘평범한’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과 얼마나 가깝고 동시에 다른지를 보여준다. 무기력한 학생들,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 열심히 살아왔건만 차별과 배제 앞에서 다시 대학을 꿈꾸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는 현장실습의 문제를 산업안전을 개선하는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간편한’ 인식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사고를 겪은 학생들과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을 연결 짓는 것은,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일상적인 측면을 연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장실습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실습 중인 산업체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나타난 문제이기는 하지만, 결국 특성화 고등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의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안전’만의 문제?


책은 2017년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은주의 이야기, 그리고 일하던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려 지금까지 재활을 하고 있는 영수의 이야기로 화두를 꺼낸다. 이 경우도 ‘사고’로 나타나긴 했지만, 기존에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제기되는 ‘안전한 환경이면 된다.’라는 인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다. 책은 이렇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고의 원인, 혹은 책임이 어디에 있을지를 두고 출발한다.

 

은주의 경우, 정확히 어떤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은주가 높은 노동 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해 왔음은 알 수 있다.

 

은주는 배구선수로 활동하다 특성화고에 진학했고, 특성화고에서는 애견동물과를 전공했다. 여러 반려동물에 대해 다양한 분야를 3년간 배웠다. 그러나 현장실습으로 나간 곳은 통신사 콜센터였다. 은주가 일했던 콜센터에는 매일, 매 시간 채워야 하는 콜수가 있다. 이를 다 채우지 못할 경우 점심시간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을 늦춰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개인별 능력과 연차에 따라 세분화된 목표량이 주어진다. 수시로 개인이 낸 성과에 따라 목표량이 조절된다. 성과는 실시간 순위로 모두에게 공유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은주는 회사 안의 압박 뿐 아니라, 고객의 불만과 압박도 받아내야 하는 세이브 부서, ‘해지 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이 부서의 경우, 고객을 설득해서 해지를 막아내는 비율, 즉 방어율을 기준으로 실적이 계산되고, 이에 따라 월급이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두 번째로 나간 현장실습 산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린 영수의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책임을 묻는, 학생-학교-기업의 관계에서 현장실습의 동상이몽이 드러난다.

 

업체는 기술자로 키울 학생을 원했다고 한다. 신입사원과 동일한 월급을 주고, 야간 작업이나 잔업을 시키지 않는 등 나름대로의 배려도 했다. 화학공업 계열을 공부하고 나름의 사전 지식이 있는 학생을 찾았고, 일과 사회생활 모두 나름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학생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책에서는 선임이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을 지도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학생이 예상만큼 업체에 잘 적응하지 못 할 때, 또 직무에서뿐 아니라 태도, 인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를 경험할 때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그에 잘 대응할 만큼의 준비가 대부분의 기업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기업이 ‘그런 것까지’ 뒤치다꺼리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할까? 현장실습생을 오래 함께 할 사람으로 보고, 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배려를 해주는 것은 다른 현장실습 환경과 비교하면 괜찮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은 일에서 초보이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일 뿐 아니라, 사회생활, 태도, 가치관 등에서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로도 동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냐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현장실습 업체에서 ‘태도’문제로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학생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담임교사와 학생은 계속하여 현장실습에 관해 소통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 학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책은 영수의 학교가 취업률이 상당히 높은 학교였다고 지적한다. 취업률이 좋다는 것은 언뜻,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배운 것들이 진로와 연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학교가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있다. 평가에 따라 신입생 모집 및 예산지원, 교사 일자리 등에 영향을 받기에 학교는 평가지표인 취업률에 사활을 걸고, 일단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되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현장실습에서 어떤 교육활동이 일어나는지, 학생들은 그 가운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는 담임교사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은주와 영수의 사례는 ‘안전’이 포괄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한 것 같다. 은주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곳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는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왜 계속 버텨야 했는지, 은주의 학교는 현장실습을 진행하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영수는 두 산업체에서 왜 적응하기 힘들어했는지, 영수의 어머니는 왜 현장실습을 다시 나가기를 원했는지 등.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현장실습과 그 전후의 관계와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책은 현장실습을 경험했거나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문제를 확장된 차원에서 고민하고자 한다.

 


‘평범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

 

‘별 문제 없이’ 학교를 다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환경, 진학 이유, 미래 계획은 참 다양하다. 학생들은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서, 똑같은 공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학업경쟁에서 낙오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아서 특성화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기대로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학생들은 많이 실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로나 직무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실용적인 배움은 거의 없었고, 진도를 나가거나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전자기기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면서, 납땜만 시키는 학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수한 학업성적과 좋은 가정환경’을 가진, 특성화고 학생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학생들도 대학 입시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교육환경이 좋은 학교에서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를 하고, 적극적으로 직업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가는 등 특성화고 취지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책은 여러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특성화고를 다닌다는 것이 ‘공부 못 해서 직업계에 진학했고, 기술을 배우고 졸업해서 취직한다.’라는 하나의 서사로 수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성화고의 학생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동기로 학교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교육경험을 마주한다. 이런 다양성은, 학생들의 교육경험, 혹은 넓게는 학업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나 전략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다양한, 보통의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과 현장실습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삶을 규정하는 서열

 

이 책은 ‘서열화’로 그 다양성을 설명한다. 고등학교 서열화를 놓고는 주로 특목고, 일반고와 특성화고의 종류가 논의된다. 하지만 서열화는 학교의 종류 이상으로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학교 내에서도 취업률이나 진학률에 따라 학교별로 서열이 매겨진다. 명문학교, 안정적인 학교,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 등. 또 학교 내에서도 특별반의 존재를 통해서, 교실 내에서도 등수나 그에 따라 주어지는 차등적인 기회 등을 통해서 등급이 나뉜다. 이렇듯 교육에서의 서열은 개개인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열어주는 교육공간의 운영원리가 되어왔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성은 제법 간결하게 설명된다. 학업성취를 기준으로 서열화된 환경 속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학생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특성화고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고 시범 사업을 운영하는 더 좋은 학교에 다닐 수도 있고, 그에 수반되는 인턴이나 어학연수 기회, 혹은 대학 진학기회 같은 더 좋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가정환경이나 정보력, 학업 성취에서 주변화된 학생들은 자신을 받아주는 유일한 학교로 진학하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기회를 따라 살아가게 된다. 서열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통제하고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펼치며 진로를 전략적으로 그려나가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자 리가 하나라도 있기를 바란다. 서열체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현장실습의 기회도 자연스레 이러한 서열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산업체도 서열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혹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순으로. 책의 표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이동한다. 대기업과 그 하청 기업인 1차 밴드, 2차 밴드, 3차 밴드 순으로 현장실습의 선택지에는 위계가 있고, ‘명문학교’, ‘전교 1등’부터 우선적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간다.

 

여기서 일찍이 탈락하고 낙오된 학생들은 아마도 더 열악한 환경의 산업체에 놓을 확률이 높다. 안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인력 부족으로 감독할 사람이나 교육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말이다. 이렇듯 서열화 된 교육체제와 산업구조의 만남이 현장실습과 특성화고의 교육경험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위계 속에서 배제되는 학생들이 있고, 낙오되는 삶이 존재하는 배경은 현장실습을 ‘안전’에서 ‘서열’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교육의 문제로 현장실습을 바라보기

 

그런데 이 책은 서열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 말미의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공교육과정으로서의 현장실습’을 고민하고, ‘학교의 직업교육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살펴’보자고 말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만 확보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도 밝힌다. 그러니까 현장실습은 어떤 교육인가? 무엇을 위한, 무엇을 하는 교육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다. 현장실습이 교육이라면, 지금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점검될 필요가 생긴다. 교육은 기능과 역량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할지를 넘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더 발전된 고민을 할 수 있을
지, 더 좋은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도 고려하고, 학생들이 문제 상황에 대응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현장실습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특성화고의 교육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경엽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단순한 훈련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장 기업에 투입될 수 있는 쉬운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여러 일에 적용되는 기본을 쌓아가도록 할 때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을 직업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이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라는 화두를 던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과제가 중요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공교육으로서 직업교육의 기능과 역할을 점검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 분의 인터뷰는 특성화고 학생에만 관심을 둔 ‘문제없는’ 현장실습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인 ‘좋은 공교육’을 하는 것으로 문제의 초점을 옮길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쁜 현장실습은 나쁜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에서 일어난 사고를 좁게 본다면 해당 산업체가 문제를 개선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서열화된 학교가 있고,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할 역량 대신 취업률에만 집중한 교육이 있다. 현장실습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문제없는 것도 아니다. 사고 없이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디는 성실한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경험하는 교육이 달라질 때, 학교와 교육이 포괄하는 실습과 취업과 같은 더 많은 문제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가며

 

어떤 문제를 접하면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을 지목하고 싶어진다.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문제일수록 결정적 원인을 하나로 꼽는 일은 편리한 인식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측면, 구조적인 배경, 우연히 개입된 상황,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그래서 복잡하지만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비로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터뷰들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단지 좋은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서열화 된 학교, 위계화 된 산업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특성화고의 교육과 현장실습이 크게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열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나쁜 교육에 대한 편리한 변명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취업률을 학교 평가 기준에서 삭제함으로써, 글쓰기 교육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인권 교육을 도입하고 특성화고 졸업생 노조나 권리연합회 등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달라질 수 있는 문제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한편으로 산업안전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지만, 안전의 문제조차도 산업구조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특성화고와 현장실습의 문제에서는 산업안전, 위계화 된 산업구조, 서열화 된 학교, 나쁜 교육의 문제가 다층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안전과 권리가 보장되는 산업 현장을 만들고, 근본적으로 위계화, 서열화 된 산업과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더 나은 공교육을 작동시킴으로써 반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조건을 탓하지 않는 교육, 고단하게 살아가는 동안에 쓸 근육을 길러주는 교육, 세상과 나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육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돌아보다

 

아구몬

 

1. 일련의 청(소)년 안전사고들


2011년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김민재군은 동료에게 구토감을 호소했고, 결국 뇌출혈로 쓰러졌다. 자동차 공정 중에서도 3D라고 불리던 도장 작업에서 그는 주70시간 일12시간의 장시간 교대근무를 했었으며, 현재까지도 투병 중이다.


2012년 12월 울산 신항만에서 한라건설 작업선이 전복되었다. 사망 및 실종된 12명 중에는 현장실습생 3명이 포함되어있었으며, 풍랑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강행했던 것이 사고를 낳았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육가공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계기로 취직하여 일하고 있던 김동준 군은 12시간씩의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그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선임들의 호통과 괴롭힘이었으며, 회식자리에서 뺨을 맞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4년 2월 현대차 헙력업체인 금영ETS 공장에서 밤 내내 내린 폭설로 공장 지붕이 무너졌고, 당시 공장에 남아있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현장실습생은 심야노동과 잔업을 못하게 되어있었음에도 불구, 임금명세서에는 버젓이 해당 내역이 찍혀있었으며, 대피명령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시켜 결국 졸업을 이틀 남긴 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6년 5월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서 한 청년이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중 진입하는 지하철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메트로는 안전관리업무를 싼 값의 용역에 맡겼고, 고장 신고 시 1시간 내 출동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2인 1조가 되어 작업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유품으로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니던 컵라면이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역시 현장 실습을 계기로 해당 업체에 취업했었다.

 

같은 해 같은 달, 현장실습 후 외식업체 토다이에 취업한 한 청년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자살했다. 그의 체중은 스트레스로 인해 10kg까지 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2017년 1월 LG유플러스 협력업체 LB휴넷 콜센터에서 해지방어업무를 수행하던 고3 실습생이 자살하였다. 홍수연 양은 업무의 압박이 상당했으며, ‘콜 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퇴근을 못하고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상당하였다고 한다.

 

2017년 11월 제주도의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 군이 프레스기 오작동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현장실습생 사건사고들

2. 교육문제와 노동문제의 중첩

 

위 일련의 사건들은 우선 사고 대상이 어린 나이의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더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거나,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현장실습과 연계하여 취업한 상태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하청업체’와 ‘협력업체’에서 과중한 업무를 맡아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런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사고들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은 일종의 징후일 것이며, 이를 추적해 증상이 나타나는 곳을 살펴보면 결국 중등교육 단계에서의 직업훈련 문제와 노동 안전 문제 두 가지가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질병 외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971명이며, 이는 OECD중 1위에 해당한다.(1) 경제 규모나 생활수준에 비해 산업 안전의 수준이 미달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들이 안전 관리에 소홀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첫째로 산업구조가 위계화되어있고, 위험요소는 2-3차의 하청업체로 하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사망자의 72%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몰렸다. 소수의 원청업체와 다수의 하청업체로 구성되어있다면, 2-3차업체는 입찰을 받기 위해서 가격 경쟁을 해야 하고, 가격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임금노동자들의 복지와 안전을 갉아먹으면서 확보될 수밖에 없다. 즉, 위험요소가 원청업체에서 하청업체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개인으로 하달되는 것이다. 위의 사고들도 많은 경우 유명 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현대차의 협력업체인 금영ETS,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 LG유플러스의 협력업체 LB휴넷과 같은 경우가 그 예이다. 특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보면, 지하철 안전 관리는 서울메트로의 핵심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저렴한 외주업체에 하청을 주었으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기준도 지키지 못하며 일하게 되는 노동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둘째는 노동자들이 부당하거나 위험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할 여지가 없이 계속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스위스와 같이 정밀한 기계나 자동차를 생산하여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화된 숙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많은 한국의 기업들은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가능한 생산요소로 보게 된다. 따라서 기술인력으로서 경력을 쌓고 성장하여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계획하기보다는 비슷한 환경의 위험한 업체를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을 그만두었 을 때의 사회적 안전망도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선뜻 일을 쉬거나 그만둘 수 없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고, 애초에 직업환경 선택의 폭이 좁다면, 노동자로서는 개
인이 좀 더 조심하며 버티자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육의 영역에서도 특성화고등학교가 ‘불법 파견 업체의 역할을 맡고 있다’(2) 혹은 ‘영세한 업체에게 저임금 근로자를 공급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10명 중 4명에 해당하는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서 일하고, 전남도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서 실시한 실태 조사(3)에 따르면 도제로 나가서 주로 하는 일 중 기타(박스 옮기기, 창고 정리, 지게차 운전 등)가 43%, 청소가 20%, 허드렛일이 12%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즉, 많은 현장실습생들이 실질적으로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업종에 필요한 숙련을 실습을 통해 익힌다기보다는, 그와 관련이 적은 잡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태에 따르면,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통해 단순한 조기 취업 이상의 ‘전문기술 습득’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산업체에 나가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안전관리를 받지 못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 특성화고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은 최근에야 서울시에서는 1년에 2차례로, 현장실습생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4) 지방별로 편차도 크고, 정규교과가 아닌 강당에 모여서 듣는 특강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지 못한다. 때문에 현장실습생들은 폭설 속에서도 심야노동을 거부하지 못하고, 콜센터의 업무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등 위험한 노동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으로서 나간 현장실습생과 졸업 후 취직한 학생들에 대해 교사와 학교가 일차적인 방파제로서 효과적으로 보호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많은 업체들을 현장실습 기업으로 끌어들여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학교의 입장에서는 안전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여부를 보다 소홀히 하게 된다. 학생을 받아주고 취업까지 연계가 되는지가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영세한 사업장에도 무분별하게 학생들이 파견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납땜 등의 현장실습 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단한 안전장비인 마스크조차 구비 되지 못한 환경이 많으며, 교사의 현장실습 공간 관리 감독도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한다.

 

보다 근본적인 중등교육 측면에서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시민, 노동자로서의 학교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등에 대해 역량을 길러주는 공교육 본연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저 학생들을 선별해서 들여온 다음 성적 순으로 선별해서 배출하는 기능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중학교 때의 성적을 바탕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같은 특성화고 내에서도 그 학교의 취업률과 평판, 그리고 학교 유형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특성화고에서도 40% 정도를 차지하는 ‘도제학교’가 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각각의 학교에서 1등급에서 9등급까지의 내신 평가를 받고 이에 따라 또 취업 기회가 여닫히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나 교사나 학교를 다음 단계의 진학 혹은 취업을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배움의 의미는 퇴색되며 자신이 속한 선별적 위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자존감이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청소년 스스로가 학교의 서열에 따라, 자기 성적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제한된 가능성을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기관의 선별적 기능은 대학교를 비롯한 고등학교 서열화에 기여하며, 특히 특성화고등학교는 이미 중학교에서 한 단계의 선별을 거친 후이기 때문에 그것이 심각하다. 예컨대 특성화고 출신은 현장실습생 신분 때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나서도 OO상고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 쉽다. 또한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대학 진학만이 최우선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직업계고등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에 대한 존중보다는 한 차례의 선별에서 밀려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혹은 소위 ‘노는 애들’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할 것이다.

 

 

3. 갈팡질팡하는 정부 대응들

 

일련의 사건들 이후 피해자 유가족과 노동계(5)는 학생들을 위험한 산업 현장으로 내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장실습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교육부는 2018년부터는 현장실습을 ‘학습 중심’으로 축소하고, 6개월이던 현장실습 기간도 3개월로 줄였으며, 현장에서 노동하기보다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계 등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부작용으로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중학생들도 많이 감소했다. 기존의 현장실습생 임금을 대폭 줄여 월 20만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심지어 일부 현장실습생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특성화고등학교 학교장들뿐만 아니라 특성화고 학생 당사자들까지도 반발하여 현장실습을 다시 늘리되 안전 관리 등을 보완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특히 <특성화고 권리 연합회>와 <특성화고 노조> 등은 현장실습 자체의 폐지가 아닌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상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많은 학생들의 목표는 대학 진학보다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것인데, 현장실습이 축소되자 취업의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2019년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보완방안’(6)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축소되었던 현장실습을 원상복구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각 교에 전담 노무사를 배치하여 학생들의 상담을 맡는 한편, 기업 참여를 확대하도록 유인하고, 수당은 증액하여 최저임금의 75%까지 인상하는 것이다. 한편 2019년도 8월에는 ‘일학습병행제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7) ‘도제 학교’는 현장실습과는 다르게 3학년 2학기가 아닌 2학년 때부터 산업체와 학교를 왔다갔다하며 노동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이다. 전체 특성화고의 약 3-40%가 도제학교에 해당하며, 도제학교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 이후 스위스의 직업교육 모델을 본 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일학습병행제 지원에 관한 법률’은 현장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학습근로자’라는 신분을 만들어줌으로써, 산업안전법과 근로기준법의 보호와 참여 기업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직업계고등학교의 종류/갈팡질팡하는 정부대응 

*freepik에서 다운로드한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정부대응을 보면, 중등교육 단계에서의 직업훈련에 대해 분명한 방향이 없이, 각계각층의 요구에 따라 흔들려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잇따른 사고가 발생하자 현장실습 자체를 대폭 축소했다가, 각종 부작용과 특성화고 당사자들의 반발이 나타나자 다시 복원하는 식이다. 특히 최근의 ‘도제학교’와 관련된 법안은 기존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현장실습에 관한 문제는 덮어두고, 특성화고등학교 중에서도 일부인 도제학교를 중심으로 특성화고 정책을 개편해나가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낳는다. 물론 그중에는 각 교에 전담 노무사를 배정한다든지, 학생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해준다든지 하는 진전이 있었으나, 이것이 실효성이 있는지,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아직 현장 실습생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의 수준이라는 점 역시 커다란 한계이다. 왜냐하면 저렴한 임금 때문에 영세한 업체에 공급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하며, 법적으로는 물론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실질적인 임금의 측면에서는 아직 미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제학교’ 중심으로 특성화고정책을 가져가려는 경향은 또 하나의 특성화고 서열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문제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꿔서 소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미 고교다양화 정책에 따라 마이스터고등학교와 특성화고가 나뉜 상황에서, 또 다시 특성화고 중 에서도 40%에 해당하는 도제학교를 만든다면 기존의 고교서열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일학습병행제에 관한 지원 법률’ 제정 당시 국회의 토론회에서는 ‘도제식 교육은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부당 대우를 받거나 제대로된 실습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도제학교를 비롯한 현장실습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도제학교’와 같은 정책을 도입할 때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도 심각한 청년실업과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인해, 독일의 도제교육을 모델로 삼아 정책 차용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영국 역시 노사정의 협력 기반이 닦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의 자율적 영역에 직업훈련 여부가 달려 있었고 결국 기대했던 만큼의 긍정적 효과를 얻지 못한 바 있다.(8) 우리나라의 노동현실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유시장경제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사내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는 1차기업과 그렇지 않은 영세한 2차 기업이 나뉘는 산업구조 하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은 분명했다.

 

이런 갈팡질팡하는 정책방향에도 한 가지 이상은 뚜렷하다. 학생들이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도 바로 사회에 진출하여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분명 사람들의 삶의 경로를 다양하게 한 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대학입시의 병목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상 고졸의 양질의 일자리가 극히 제한되어있다. 비교적 안전하고 해당 직업으로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1차기업, 하사관과 같은 일부 공직 등의 자리에 한정되어있으며, 위 기업에 취업하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각 교에서 손에 꼽는 수준이다. 그렇지 않고 전문대 혹은 일반대학으로 진학하는 특성화고 학생들도 42%에 이르며, 취업률은 50%를 조금 넘긴다. 양질의 일자리에 합류하지 못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편입되는 것이며, 이때 특성화고의 역할은 2-3차기업에게 인력을 소개해주며 학생들의 취업률을 제고해주는 것 이상이 아니게 된다.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 중 소수만이 특성화고의 이상에 맞는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다면, 애초에 중등교육단계에서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을 이원화하여 대략 20%의 학생들로 하여금 직업교육을 받게 하는 것에 의문을 남긴다.



4.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정책적으로 취업률과 현장 안정성의 딜레마가 나타나기 때문에 특성화고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의 조건을 완화하면 안전 기준에 미달하기 쉬워지는 한편, 안전 기준을 높이면 기업의 참여 숫자가 떨어지고 취업률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에서 현장실습에 대해 온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폐지론과 유지론이 맞서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폐지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안정한 산업 구조상 스위스-독일식의 도제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는 일견 일리가 있는 것이 독일과 스위스에서 발달한 산업은 정밀한 기계와 시계, 자동차 등 개별 노동자의 고도화된 숙련이 중요하다. 또 노조의 힘이 강하여 노동자의 권리가 비 교적 잘 보호될 수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조직되어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 미인상분과 기업의 성장이 사회정책으로 활용될 것을 믿고 노사가 협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하청업체로 이뤄져있으며 하청업체에서는 노동자의 개별 숙련이 중요하지 않고, 노조와 사회정책의 힘이 아직 강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처지에 놓인다. 다른 한편 유지론에 따르면 현장실습을 폐지하면 특성화고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학생들은 대학 진학보단 조기 취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삶을 꾸려나갈 것을 선택하고 특성화고에 진학하는데, 현장실습이 폐지되면 이런 기회가 극도로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일차적으로는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하되 안전에 관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을 반성하고, 그렇다고 아예 현재 마련되어있는 현장실습의 통로를 폐지하기보다는 노동 안전에 대해 학교와 교사가 교육하고 관리감독을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입법조사처의 보고서(9)는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인권과 안전 강화, 기업의 환경에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 인력과 예산의 확대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각 교 전담 노무사를 배치하여 학생들과 상담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방향에서 나온 정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의 해결책으로 <특성화고 권리 연합>의 활동을 소개해볼 수 있겠다. 그들은 현장실습 시 마스크 등 안전장비 지급할 것, 양질의 고졸 일자리 마련할 것, 특성화고 출신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것, 교육부와 노동부가 연계하여 중등직업교육을 설계할 것 등을 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기존에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택배기사 등까지도 보호하고자 하는 최근의 <산업안전법> 개정 역시 현장실습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 방향일 것이다.

 

위의 해결책은 기본적이고 바람직하다. 앞서 현장실습 문제를 ‘교육과 노동 문제의 중첩’으로 살핀 바 있는데, 두 가지의 방향에서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의 문제에서 우리는 현장실습 관련 내실있는 프로그램의 미비 외에도, 고교 서열화에 따르는 문제까지도 지적한 바 있다. 즉, 이원화된 중등교육 체계하에서는 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무기력과 제한을 느낄 수 있으며, 졸업하고 나서도 차별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양질의 고졸 일자리가 제한(10)되어, 특성화고의 이상에 맞는 진로는 소수의 학생들만이 가져가게 된다는 지적도 한 바 있었다. 이러한 중등 교육 단계에서의 분리된 직업 교육 자체의 한계는 ‘중등교육 일원화’라는 장기적인 제안을 생각해보게 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중등단계의 직업교육은 직업인의 소양을 강조하는 인문교육 과의 통합으로 가고 있다.(11) 일반계고등학교에서 직업적인 훈련을 받거나, 위탁교육을 받는 경우도 많으며, 다른 한편 직업계고등학교에서도 일반 인문교육이 강조되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고학력화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전문계고등학교를 기반으로 한 중등단계의 직업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도제 교육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도, 생애 초기의 선택 외에 평생교육에는 취약하기 때문에 지식 정보산업의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된 바 있다.(12) 특히, 중등교육단계에서 전체 학생의 50% 이상이 도제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과 스위스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약 20% 정도의 학생만이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등교육을 일원화하여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진학 혹은 취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정책은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는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고교 학점제, 문이과 통합, 외고 및 자사고 폐지 등의 다른 중등교육 관련 정책과 잘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필수 이수 과목으로 인문 교양 및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기초과목을 설정하고, 이외 선택적으로 진학 혹은 취업에 관련된 커리큘럼을 개설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보다 학생들의 자유도가 높아질 것이다. 높아진 자유도만큼 수업의 효용도 더 증진될 것이고, 학교들과 지역사회 및 기업들의 클러스터들을 구성하여 자체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교 2학년 때부터 문과와 이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학과 취업을 선택하는 한편, 외고 및 자사고 폐지 정책과 함께라면 견고한 고교서열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1) 프레시안, <산업재해 사망자 줄이기 위한 핵심 전략은?> 2019. 07.29. 

(2) 2017년 광주지역 현장실습 실태 조사 후 한 노무사가 한 말 
(3) <일학습병행제법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2019.08.20. 여영국, 이정미, 박주민 의원. 

(4) 인권도시연구소 <서울시, 모든 특성화고에 노동인권교육>, 2019-04-10. 
http://hrcity.or.kr/bbs/board.php?bo_table=B02&wr_id=2838 

(5) <현장실습 대응회의> : 금속노조,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대 

(6) https://www.moe.go.kr/boardCnts/view.do?boardID=294&boardSeq=76654&lev=0&searchType=n 
ull&statusYN=W&page=1&s=moe&m=020402&opType=N 
(7) 뉴스1, <일학습 병행사업, 6년 만에 법적근거 마련...국회통과>

(8) 정주연, 최희선, <도제훈련제도의 국가별 특성 및 한국직업훈련제도 개편에 대한 시사점>. 2013. 

(9) 조인식,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2017.12.28. 국회입법조사처. 

(10) 한국일보, <아무리 일해도 가난한, 나는 고졸입니다> 2017.12.02.
(11) 송창용, 김민경, <주요국의 직업교육 동향>,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09.
(12) The Economist, "Lifelong learning is becoming an economic imperative". 2017.01.12.

우리 사회는 흔히 대학 입시의 공정성, 사교육 억제 등과 관련해서만 '교육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불거진 '정시vs수시 논쟁'이나, 고위층의 부정입학 의혹 등을 보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합의 규칙과 공정함에만 몰두하는 것은 교육을 하나의 시합으로만 보게 합니다.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특히 이번 호에서는 '대입 공정성'보다 넓은 공정함을 생각해보고자, 특성화고의 문제에 대해서 다룹니다.

속표지의 마스크와 목장갑은 특정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상징합니다. 현장실습에 파견 나간 학생들의 각종 사고는 지난 10년간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를 돌아보다>에서는 문제의 원인과 그동안 어떤 해결책이 있어왔는지를 살피고,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을 제안합니다. 아직까지 현장실습 문제에 대해서는 폐지론과 유지론이 강력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해당 문제는 '계류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 현장 실습생 이야기"를 읽고>에서는 서열화된 학교 체계 하에서 일터로 보내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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