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

 

BDUCK

 

# 도입 : 왜 학생들은 아파도 쉴 수 없는가?

 

근데요 선생님... 아파서 조퇴하는 건 생기부에 안 올라가죠? 제가 3일 내로 진단서 제출할게요

모두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기억할 것이다. 극중 16회에서는, 혜나가 사망하고 우주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불안감을 견딜 수 없던 예서가 무단조퇴를 해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예서의 엄마 한서진이 취한 행동은, 예서가 혜나와 정이 많이 들어 심적으로 힘들었다며, 담임에게 예서의 생기부기록에 무단조퇴 사실을 빼달라고 말하는 것.

 

# 1. 출석에 집착하는 아이들

스카이캐슬은 학종시대 입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내신, 봉사, 대회, 비교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평가를 받는 학생부 종합전형, 그중에서도 출석기본으로 여겨진다.

깨끗한 생기부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출결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입시 면접에서 질문이 들어올 수 있대요.” 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고3 대입 모의 면접 경험을 말해주며, 생기부 출결상황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수 있으니, 결석한 날에 왜 결석을 했는지 이유를 준비해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 수만휘와 같은 수험생 커뮤니티, 학교에 비치한 면접 후기 자료집을 보면 출결 관련 대입 면접 질문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생에게 생기부의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은 깨끗한 생기부의 오점이 되고, 학생들은 이 오점에 대해 변명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생기부에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의 글자가 찍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거의 원천 차단할 기세로 대응한다. 학생들도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수업을 빠지는 것을 피하게 되고, 그렇게 학종의 기본이 되는 깨끗한 생기부가 완성된다.

 

안 아픈 것이 스펙이 되는 사회, 개근상

학생들에게 깨끗한 생기부를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이 있다. 바로 개근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기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개근은 해당 학년 동안 1회의 결석(또는 지각, 조퇴, 결과)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이 교육부의 개근 용어에 따라 3년간 결석, 지각, 조퇴, 결과가 전무한 자에게 3년 개근상을 수여한다. 이 과정에서 체험학습과 같은 활동은 출석으로 인정하지만, 병결도 결석이기에 병결이 있으면 개근상을 받을 수 없다. 즉 어떤 학생이 개근상을 받았다는 것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기사에 따르면 2017년 서울 고교 졸업생 3년 개근상 비율은 16-36% 사이에서 형성되었다.(1) 같은 해 충북 고교에서는 평균 개근상 비율이 20% 안팎이었다.(2) 과거 졸업식에서 졸업장 개수만큼이나 많았던 개근상을 생각해보면, 개근상의 비율이 최근에 현격히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아직도 5명중 1-2명 가량은 개근상을 받는다. 3년 내내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 학생들은 철인인 것일까?

 

개근상의 다른 이름, 자기주도적 학습상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학종시대고, 생기부가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학생들이 개근상에 덜 집착한다는 것이다. 입시체제 덕분에(?) 개근상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역으로 입시체제는 유사 개근상을 만들어낸다. 이름하여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다. 야간자율학습과 토요자습 등 정규수업 외 자습시간의 출석을 체크하고, 일정 기준 이상 출석하면 생기부 수상실적에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라는 실적이 기록된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스펙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어 이런 상을 만들었겠지만, 학생들은 정규수업을 넘어 보충, 자습 출결에까지 집착하여야 한다.

 

깨끗한 생기부, 개근상, 자기주도적 학습상 = 성실함?

우리는 왜 이토록 깨끗한 생기부와 개근상을 강조할까? 출결이 평가요소로 작용하는 입시체제 이면에는 빠짐없이 출석하는 것이 곧 성실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반영 되어 있다. 과거 산업화시절, 인적자원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성실함은 하나의 무기였다. 아파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을 우선하는 태도는 공동체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번아웃 증후군 등 병폐가 지적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의 '성실함이 무기'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깊숙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 속에, 대학이 성실한 학생을 원하는 것도, 학생들이 성실함에 목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성실함을 '개근', '출결'이라는 척도로 '측정'할 수 있게 되니 출결은 성실함을 증명하는 '스펙'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은 출석에 집착하게 되며, 때문에 예서 엄마는 담임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고, 학부모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져라"

 

# 2.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보건실을 가면 되잖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학생들이 아플 때 학교를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기껏해야 보건실을 가는 것이다.

 

보건교사 없는 학교

의사 없는 병원은 존재하지 않지만, 보건교사 없는 학교는 존재한다. 교육부의 2018년 시도별 보건교사 배치현황에 따르면,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은 학교는 2325개 학교에 달한다. 서울, 경기,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경우 보건교사 배치율은 90% 이상인 반면 산간벽지가 많은 강원, 전남, 제주 등 지역은 보건교사 배치율이 60%대에 불과했다. 학교보건법 개정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에, 보건교사 부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만성적 문제이다. 그리고 보건교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건교사 임용은 의사면허가 아닌 간호사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치료 범위와 약의 종류 또한 한정적이다. 보건실은 학교의 보건교육을 담당하고 임시처치, 구급처치를 하는 곳이지, 병원이 아니다. 이마저도 보건교사는 정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정규수업 시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보충 수업과 야자시간에는 학생들이 아플 때 교무실을 찾아 진통제를 먹는 수밖에 없다. 출결 때문에 학교를 빠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보건실보단 병원, 그러나 병결도 쉽지 않다

학생들은 정말 아프면 선택을 해야한다. 참고 학교를 가거나, 결국 병원을 가거나. 전자의 학생들은 개근상을 받을 테고, 후자의 아이들은 치료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자의 아이들이 학교를 아무런 통보 없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무단결석은 학생들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은 대학생과 달리 자체휴강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에겐 단지 무단결석이다. 자체휴강으로 인한 대학생의 성적에서의 불이익과, 무단결석으로 인한 고등학생의 입시에서의 불이익은 그 무게가 다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쉬고 싶지만 무단으로 빠질 수는 없어, 질병결석을 선택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병결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교에 5일 이내에 의사의 진단서 또한 소견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학생들은 무단결석글자를 피하기 위해,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방문해 진단서를 받아내야 한다. 아픈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아픈 것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 3. 아프지만 공부는 해야 해

 

출결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인 공부때문이다.

 

아플 때 어떡하나요? 공부하나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은 학생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듯 보인다. 각종 수험생 커뮤니티, 유튜브 공부 채널 질문들을 보면 아플 때 공부를 하는지묻는 질문들이 많다. 서울 소재 외고를 졸업한 B양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만 했던 경험을 말해주었다. “고등학생 내내 생리통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생리 결석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수업을 놓치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수행평가가 자주 있어서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쉴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운동선수들은 훈련보다 재활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듯, 학생들도 공부보다 쉬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아파서 쉬는 것은 단지 공부를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들에 비해 진도에 뒤쳐지므로 부족한 부분은 따로 보충을 해야 한다. 혹여 선생님이 시험문제라도 집어줬을 때는 자신만 모른다는 불이익이 따른다. 아픈 몸은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학교를 빠져도 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학교를 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3, 체력관리는 필수?

가장 공부 노동에 시달리는 고3의 경우, 특히 아픈 몸은 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은 3에게 체력관리는 필수라는 말을 한다. 학생은 공부하기 위해’, ‘아프면 안 되는 존재인가? 슬픈 것은 이 말이 분명히 잘못되었음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대한민국 입시체제 내에서는 이것이 맞는 말이다. 공부노동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체력관리는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아프지 않기 위해 체력관리를 해야한다. 학생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회와 환경이지만, 몸관리와 아픈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아간다. 부산 소재 일반고를 나온 C양은 고등학교 시절 체력관리를 위해 매일 밤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윗몸일으키기 하는 것을 6개월가량 반복했다고 말한다. 학생을 아프게 한 학교와 사회는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 뿐 아니라 공부를 위한 건강관리까지 떠맡아야 한다.

 

# 4. 입시에 종속된 학생들의 건강, 대안은?

 

종합하면, 학생은 아플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아파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개인의 몸 상태는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개개인은 학교를 빠질 정도로 아파서는 안된다. 또한 공부를 위해 학생들은 매 순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 대학 입시에 건강이 종속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안 아픈 것이 대학 입시 스펙이 되고, 아픈 것은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 현실 속에, 학생들이 아픈 와중에도 입시를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청소년의 건강권 논의를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학생들을 병들게 만든 것이 사회이므로, 거시적 차원에서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1) 입시제도 개혁

청소년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건강권 논의 또한 마찬가지로 입시에 개개인의 건강이 종속되는 것으로 그 문제가 드러난다. 때문에 입시제도 개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안일 것이다.

 

·평가의 공간에서 성장의 공간으로

학생들이 수업 진도, 입시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한,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쉬고 싶은 마음이 절대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앞선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상습적인 수행평가 역시 학생들이 아파도 쉴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심적으로 편하게 쉴 수 있게 수업과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업 커리큘럼을 느슨하게 짜거나, 수행평가 규정을 제정해 지나치게 학생들을 묶어놓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학교가 평가가 주가 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 개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평가라는 결과중심의 교육환경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과정중심의 교육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수상실적 축소

입시제도의 전면적은 개혁은 아니더라도, ‘학종의 모순이 많이 지적되고 있는 현 상황에 입시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학생부 개선사항 안내자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수상실적의 변화이다. 수상실적을 기존의 생기부처럼 모두 기재하되, 대입에 활용되는 것은 학기당 한 개의 수상실적으로 제한했다. 3년동안 최대 6개의 수상실적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개근상 비율이 줄어든 것을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과 관련을 지어 설명했듯, 이처럼 입시에서 출결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면 학생들이 개근상에 집착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수정된 안내자료 역시, 수상실적 활용의 변화로 인해 개근상, 유사개근상과 같은 출결상보다 다른 영역의 수상실적에 학생들이 더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시스템적 대안

결국 만악의 근원(?)은 입시이므로, 근본적인 입시 제도를 개혁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의 대안이 당연히 논의되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행 입시체제 내에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학생도 연가 쓰자, 학생휴가제

앞선 논의에서 개근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출결 관련 상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상 때문이 아니어도 깨끗한 생기부가 성실의 대명사가 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은 출결에 집착할 것이다. 깨끗한 생기부가 미덕이 아니라,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논의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학생휴가제이다. 직장인들은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연차유급휴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평일에 본인이 원하는 날을 정해 근무를 쉴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라는 정기휴가가 있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방학 때 학교를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휴가라 보기 어렵다. 학생휴가제를 도입해 자율적 혹은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될 것이다. 다만 직장의 휴가 역시 눈치를 보며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학생의 휴가 역시 자유롭고 눈치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할 것이다. ‘쉬어도 된다는 건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건 시스템 개편

보건 시스템의 개선에 관해서는, 학생들을 무작정 보건실에 보내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병원을 찾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WHO의 건강증진학교 모델은 학교 구성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영적 건강 및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된 노력을 통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총체적이며 포괄적인 접근법이다. 지역사회간호학회지가 조사한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의 건강증진학교 운영유형에 따르면, 건강증진학교 6개 요소에서 가장 낮은 수행을 보인 영역은 지역사회 연계였다.(3) 학교 내의 부족한 보건시스템에만 의지하지 말고, 학생들의 종합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역사회 보건시스템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3) 근본적 대안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찾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입법이나 학교 시스템 자체의 변화로써 기대할 수 있다. 건강권은 결국 청소년의 수많은 권리 중 하나이니 건강권 논의를 넘어서 학생들의 전반적인 권리를 찾는 것이다.

 

·학생의 목소리가 학교에 닿아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학교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은 학교의 중추적 구성원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학교에 전달할 방법은 많지 않다. 또한 논의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학교를 포함한 상부에 전달될지 역시 미지수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학생들은 건강권뿐 아니라 다른 어떤 권리의 보장도 힘들어진다. 학교나 지자체의 조직적인 운영기구, 하다 못해 sns를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소통창구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실제적 정책 집행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만 10~18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 기구인 지역청소년교육의회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201831개 시·군 지역학생의회 청소년들은 52개의 정책제안서를 제출했고, 그 중의 실제로 정책에 반영된 의견 또한 존재한다.(4)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강권을 포함한 폭넓은 청소년들의 권리보장을 위해서 학생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

학생들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을 규정한 마땅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 교육청 단위 중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전북의 4개 뿐이다. 이마저도 폐지해야 한다고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기본적인 인권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권 보장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뜨거운 감자였던 경남학생인권조례는 제25쾌적한 교육환경과 건강권이란 이름으로 건강권을 명시한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안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의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하며, 건강권 또한 청소년의 권리로 논의되어야 한다.

 

# 결론 : 무엇이 건강한학교인가?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노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깨끗한 출결 상황(생활기록부)은 성실함의 징표이자, 곧 성실히 (공부) 노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무기로 작용한다. 또한 모두가 공부노동을 하는 상황 속에 학교를 쉰다는 것은, 시스템에 뒤처지고 있는 개인을 한 명의 낙오자로 만든다. 개인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일정 수준 이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몸은 평가의 장이 되어버린다. 또한 건강관리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관리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탓으로 치부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아파도 학교를 가는 학생만 있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아파도 출근하는 직장인도 존재한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의 몸을 오로지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몸은 도구화되어서는 안되며,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학교는 어떠한가? 성실함의 증명을 위해 아파도 학교에 앉아 출석을 받아내고, 수행평가와 시험을 치러야 한다. 아프면 병원이 아닌 보건시스템이 미비한 보건실에 가야하며, 아파도 공부라는 과업은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종착역은 입시이다. 결론적으로 개개인의 몸은 매 순간순간마다 입시라는 평가를 위해 행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학교는 성장을 다루는 공간이라 할 수 없다. 철저히 평가를 위해 개인의 몸을 이용하는 공간이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학생들이 건강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성원 모두가 개근상을 받고, 문자 그대로 아프지 않은 학교는 진정 건강한 학교가 아니다. 출결에 집착하지 않는 학교, 개인의 몸이 수동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성장의 주체가 되는 학교, 아파도 쉴 수 있는 학교가 진짜 건강한 학교일 것이다.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9/2017020900314.html
(2) https://www.nocutnews.co.kr/news/4731289?page=1
(3)  지역사회간호학회지 제24권 제3호, 2013년 9월, pp.283-286
(4) http://www.km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63

공교육 정상화 담론 톺아보기

 

당근

 

1. 드라마 스카이캐슬애청자의 탄식

 

사교육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매년, 매달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뉴스가 등장한다. 너무 단골 소재라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 쉽사리 분석하기가 어려워 그런지, 중요한 문제인데도 납득할만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드물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한 드라마에서 강남, 대치동의 사교육을 주제로 흥미진진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대치 키드대치맘의 생활 면면을 잘 소개했다는 이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인 모두가 금요일, 토요일 밤엔 티비 앞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각종 미디어에서 결말에 대해 온갖 예측을 하고, 대본 유출 사건도 발생할 만큼 기대가 고조되었던 결말은! 정말 너무 허무했다... 이 글에서 드라마 비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허무한 결말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결말에 관한 흥미로운 비평은 다음 글을 추천한다.(1))

스카이 캐슬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욕망, 그들이 누리는 것들, 접근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상세하게 묘사한다. 유투브나 SNS 등에서 실제 대치 키드로 자라왔던 이들은 정말 훌륭한 르포를 그려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들 부모가 어떤 욕망을 가지게 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 자식도 의사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공감하니까딱히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는 부모들의 욕망과 그를 이용하는 사교육 업자들의 결탁과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청소년을 그려내고 그 현상 묘사에 집중한다. 이는 어쨌든 부모들의 욕심이 문제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부모가 반성하고, 욕심을 버리고, 스카이 캐슬을 떠나면 된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은 선행학습과 관련하여 많이 나왔던 이 이야기와 동일하다. ‘경기장에서 모두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가 앞 사람이 경기를 더 잘 보고 싶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뒷 사람도, 뒷 사람의 뒷 사람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경기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선행학습을 한 결과, 모든 학생이 교육과정을 훨씬 앞서나가 공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고, 선행을 이미 마친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지루하니까 자게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이 과열되었고, 매년 사교육 규모는 수조원에 달하며, 학교는 교육 불가능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표적인 대안은 공교육 정상화방안이다. 사교육을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학교의 교육적 역량을 강화하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만들고 모두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2. 공교육 정상화(2): 무엇을 정상화 하겠다는 말일까?

 

'공교육 정상화'가 통용되고 있는 맥락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1) 문제는 사교육!

사교육 시장의 과열, 사교육에 쏟는 지나친 비용, 사교육에서 실시하는 경쟁적인,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광고를 억제하고, 사교육 시간 자체를 단축하여 사교육을 억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스카이 캐슬이 가진 대표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고, 남경필 전 도지사가 사교육 폐지 및 공교육 정상화 방안 토론회에서 사교육은 마약이니 함께 끊자고 한 것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입장은 어느 선에서는 사교육의 문제를 계층 재생산과 불평등의 문제로 이야기하며, 과도한 사교육의 억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맞닿아 있다.

 

(2) 학교를 바꾸자- 공교육의 교육 역량 쇄신

두 번째 입장은 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 것에는 학교의 무능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으로, 공교육 개혁을 통해 학교를 자는 곳이 아니라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정말 말 그대로 학교 교육기능의 회복을

이끌어내자는 주장이다. 개혁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학교가 자기 혁신을 통

해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공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학교가 교육 가능한 곳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어떤 개혁을 할 것이냐에 따라 학교체제 개편을 통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고, 교원 성과급제와 교원 평가로 교사 역량을 강화하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 또 학교를 플랫폼으로 사고하고 사교육을 학교 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추민규 도의원은 학교 방과후를 통해 학원 강의를 허용하면 공교육을 통해 다원화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3) 추의원의 입장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교원의 역량 증진의 방향성도, 일반고 전성시대의 의미도 결국 상급학교 진학과 관련된 능력과 성과라는 점에서 학교의 학원화라는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3) 학교를 바꾸자- 대입제도 개선으로 학교에 숨통을!

학교를 바꾸자는 두 번째 입장은 현장 교사와 교육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학교의 여러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는 대입제도로 꼽고 이를 전제조건으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 입장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즉 기획된 교육과정과 실제 학교의 운영과 평가를 맞추어 나가는 것으로 규정한다.(4)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입제도 전반의 개혁을 통해 과열된 경쟁을 완화하고, 이를 전제로 학교가 교육 불가능의 공간에서 탈피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강조한다.

 

이 입장들은 강조점에 따라 분류한 것이나, 각각이 다 다른 주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각 주장은 사교육을 억제하는 동시에 대입 제도를 개편하자거나, 공교육 역량 쇄신, 학교 경쟁력 강화로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이자는 식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각각 또는 통합되어,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 정상화법 제정, 교원평가 및 교원성과급제, 대입제도 개편 등의 현실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알 듯 이 대안들은 학교를 딱히 정상화하지 못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3. 공교육 정상화 주장의 전제

 

이 지점에서 나는 정상화담론에 깔린 전제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악이며 학교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공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게으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공교육이 본받아야 할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그려진다. 어느 쪽이든 공교육과 사교육은 적대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앞의 글, “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에서 언급되었듯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기보다 오히려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아무리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해도, 결국 사교육은 학교와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운영된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관계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학교에서 시험으로 학생들을 가르고 그에 따라 차별적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학원에 대한 수요가 창출된다. 한 토론회에 참여한 학부모 백선숙씨도, 공교육이 평가기관으로 전락하여 사교육 수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5)

이것은 학교가 생존경쟁이 심화되는 외부의 상황에 휩쓸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학교는 이 과정에서도 공모자였다. 학교는 교육의 서열화와 평가중심 교육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대신, 평가주도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평가 방식을 혁신하면 교육 현장의 크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시장을 위한 인간 자원 평가기관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는 개선하려 들지 않고, 그 평가 방식을요렇게 조렇게바꿔서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학원의 연속성은 예비교사들이 학원과 과외를 통해 수업경험을 쌓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교원양성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 실무 경험은 아주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학원가에서 학생이나 수업에 대한 노하우를 쌓는 경우는 흔하다. 또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원은 방과 후,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앞으로 학원이 아이들을 픽업하고, 간식 등도 챙겨 먹이는 모습은 학교와 학원이 일종의 돌봄 바톤터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운영이 전업주부 어머니를 전제하고 기획되고, 강사 인력이나 공간, 예산 문제로 방과 후 돌봄에는 적극적 개입을 포기하면서, 돌봄이 개인화, 외주화된 양상이라 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사보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6) ) 두 상황 모두, 학교가 교육을 담당할 인력과 아이들을 학원에 뺏기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사교육이 담당하도록 방치하거나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4. 공교육 정상화 담론의 문제

 

이렇듯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의존하고, 연속적이라는 사실, 때로 서로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각 입장들을 돌아보면 또 다른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사교육을 문제로 지적하는 첫 번째 입장은 사교육을 제외한 학교에서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사교육을 교육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공교육에 내재한 문제를 은폐하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데 급급한 주장이 되기 십상이다. 예산과 인력의 문제, 교육과정 운영과 그 내용의 문제, 또 학교 운영원리의 문제, 학생과의 관계의 문제로 다뤄질 수 있는 문제들임에도 결국은 사교육에서 원인을 찾거나, 우선순위를 사교육 해결로 배치하는 식이 된다.

또 한편으로 사교육을 교육문제 가운데 핵심으로 꼽는 것은 다분히 계층, 지역 한정적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특정 지역에서 많은 학생과 부모의 관심사와 최우선순위인 것,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사교육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밖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학생들은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교사의 말을 쉽사리 거역할 수 없으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환경에서 고유한 욕구를 무시당한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낀다.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학교 자체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사교육이 학교의 핵심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다양한 청소년과 학생들로부터 나온 목소리가 아닐 수 있다 생각한다.

 

공교육의 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두 번째 입장은 결국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공식적 입시학원과 좋은 강사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학교가 스스로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기관으로 인정해버리면, 학교와 교사의 역량 강화도 진학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이해되고 평가된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의 역량강화는 결과적으로 학생이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전혀 공공적이지 않다. 스스로 더 나은 학원임을 증명한 꼴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역량강화가 사교육 감소로 이어질 확률도 낮다. 우리는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교육환경을 잘 갖추고 유능한 교사를 배치하며, 학교 전반의 역량을 강화했음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오히려 더 본격적인 경쟁의 장에서 학생들은 고통 받을 뿐이다.

동시에 언급했듯 이 기조는 학교 지금까지 해왔던 평가주도 교육의 연속일 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입시제도에 기대어 그 권위를 빌려 교육을 운영하는 한, 입시교육을 넘어선 교육은 불가능하다.

 

대입제도를 개편하여 교육과정을 정상화하자는 마지막 입장은 어떤가? 이 입장은 적어도 입시제도에 의존하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변화를 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잘 실시하는 게 정말 학교의 정상화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과정 자체, 그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어렵고 양이 많다. 도덕과의 예시를 든다면, 학생들이 칸트의 주요 논지가 무엇인지 한 두 차례의 수업 안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 칸트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대체 누구의 입장일까? 학교를 다니는 12년 내내, 선생님들은 진도 나가기에 바빴다. 교육과정 상의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정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판단과 결정의 권한을 주어,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게 하면 좀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5. ‘학교의 정상화라는 말의 함정

 

그래서 지금까지의 공교육 정상화 담론이 문제라면, 사교육에 대해서 아니면 학교의 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과 대안이 필요할까? 이제 학교의 어떤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할 것인지를 다시 논의해야 하나?

그런데 그보다, 나는 정상화라는 말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어떤 것을 정상화하겠다는 말은 현재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말이고, 이는 정상을 무엇으로 볼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결정적으로 이 사회에서 정상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이 사회에서 학생들이 종일 놀고, 듣고 싶을 때만 수업을 듣고, 교복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염색하는 것은 정상적인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피임기구를 사는 것도 인권이라는 주장은?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일제고사에 반대한다고 학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교사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를 정상화하자고만 말하면, 교육청의 시선, 교장선생님의 시선, 혹은 힘 있는 이들의 시선에서 본 학교의 병리적인 현상만 문제로 지적될 것만 같다. 학교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고자 하는 청소년들, 다른 교육적 시도를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묵살될 것만 같다.

그래서 공교육 정상화말고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가 교육이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답을 내놓을 때 이제는 그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가 바뀌려면 바로 그 공간의 사람들이 다른 인식, 문제제기를 내놓고, 그를 바탕으로 그 공간의 정치들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뜻 대안을 말하기가 주저된다. 그 공간의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다소 무책임한 후반부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조건만 짧게 다루려 한다. 그 조건은 바로 학교의 민주주의 확대라 생각한다.

학교가 구성원이 말 할 수 있는 공간,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일단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의 민주주의에서는 학교 운영의 민주주의, 교무실의 민주주의, 교실의 민주주의라는 세 층위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각 구성원들이 개입할 수 있을 때, 교사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가 교사에게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때, 교사도 학생에게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의 의사결정에 있어 관련 당사자들의 권한을 가질 때, 그래서 교사가 평등한 관계 속에 있을 때, 학생과 교사도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다시 학생 간에도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쉽다고 생각한다. 교장선생님뿐 아니라 막내 교사도, 신입생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질 때 학생들과 교사는 참았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가며

 

글을 쓰며 가장 많이 마주했던 질문이 있다. 그럼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할건데? 혹은 그럼 대학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 할 수 있는데?처럼 평가와 선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그 요구가 꼭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와 윤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공정성의 요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여러 현실과 고민의 반영일 것이다. 경쟁과 생존이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 노력 없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노,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들에 질문을 중단하고 경쟁에 몰입하기로 한 결정 등과 같이 말이다. 어쨌든 공정성이 중요한 요구가 된 이유는 사람들이 공정하다면 더 나은 삶을 누릴 확률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두려움이 숨어있다. 경쟁에서 탈락한다면 결과에 승복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그리고 내가 탈락하면 절대 안 된다고... 교육과정, 시험, 입시는 이런 종류의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내면화하게 만든다.

그러나 공정성은 일말의 희망을 내포하지만, 결국 우리 중 일부를 행복하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넘어,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행복과 그를 위한 제반조건들이 우리가 경쟁을 통해 성취해야할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 조건들이 권리로서 당연히 보장되는 것들이라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의 규칙을 잘 만들라고 요구하는 대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1)듀나, ‘SKY 캐슬 유현미 작가만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들’, 엔터미디어, 2019.02.02
(2)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은 2000년,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요구안에서 처음 등장했다.(고형규, ‘전교조 합법화 1주년 –공교육 정상화, 제도 개선 추진’, 매일경제, 2000.06.30.) 전교조는 당시 한국교육의 문제를 과도한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에 의한 공공성 약화로 꼽고, 공교육 정상화는 곧 공공성 확립이라 규정했다. 전교조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대표적으로 교육재정의 감소이며, 이는 공공성 약화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에, 교육재정을 전체 예산의 6%선으로 늘리고, 자립형 사립고, 수준별 수업, 교원 성과급제, 교원 비정규직화 등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중단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육재정을 확보하면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교육의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어 공공성을 확대할 수 있고, 동시에 재정 충원을 통해 공교육 전반의 수준 상향과 질적 심화를 이루어내 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다는 한 것이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 정상화‘’, pp.1~4.)
(3) 송진식, ‘“학교서 학원 강의 허용” 황당한 도의원’, 경향, 2019.07.03. 
(4) 홍선주 외, ‘공교육정상화법의 성과와 한계를 통해 살펴본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과 과제’, “학습자중심교과교육 연구”, 16(3), 2016, pp.1037~1041.
(5) 백선숙(학부모), ‘대한민국의 부모에게 사교육이란? 대안과 문화가 된 현실 - 사교육폐지보다 공교육 정상화가 먼저인 이유’, “사교육 폐지 및 교육정상화 방안 토론회”,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김용태 의원실.
(6) 아이는 학원이 키운다…'사교육' 넘은 '사보육', mbc 전동혁 기자, 2019-03-12 

"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

 

유한량

 

 

#우리의 사교육: 우리들은 어떻게 대학에 왔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원어민 쌤들만 있고 레벨 나눠진 학원이었어. 내가 레벨의 맨 꼴지반이었어. 근데 실력별로 반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인거야. 못하는 애들끼리만 모아두는 게. 레벨이 한 두개도 아니고. 맨날 자괴감 들고, 책은 또 이렇게 많아서 캐리어 끌고 다니고. 거의 울면서 학원 다녔어.”

진짜 대치키드네.”

, 나 진짜 대치키드였어.”

강남권의 일반여고를 졸업한 C양이 말했다. 그에 이어서 경기도의 한 외고를 졸업한 P양이 말을 이었다.

고등학생 때 들었던 인강에서 쌤이, 학원 옆 고시원이 있는데, 지방 친구들이 거기서 잠을 자면서 학원을 다닌다는거야. 물론 난 그거 듣고 에이, 말도 안 돼이랬지. 그런데 10월달에 면접학원을 가려고 대치동을 갔는데, 엄청 큰 대치 이강학원(1) 건물 옆에 몇 층짜리 고시원이 있는 거야, 학원 건물 바로 옆에. 그게 수요가 있으니까 운영이 되는거잖아?”

 

서울 강남권 고등학교를 졸업한 C, 경기도 외고를 졸업한 P, 서울 노원구의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한 K, 경북 소재의 농어촌 고등학교를 졸업한 B양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이다. 이 네 명은 모두 본인들이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하며 대입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들에게 있어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 과정이 폭력적이든, 비교육적이든 결론적으로 이들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가 별거인 사회에서는 사실 이것이면 끝이기 때문이다.

 

총사교육비가 19조가 넘는 이 사회 속에서, 대학에 가기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은 이들만의 경험이 아니다. 어쩌면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대학에 오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고, 대학에 온 학생들도 사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오기 위해서 과외를 받았고, 학원에 다녔으며,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면 끝일까?

 

#현실에서의 사교육: 교육의 도구화

 

사교육(私敎育):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교육.(2)

사교육은 대체로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며 학교 수업 보충이 주된 목적이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2018, 총사교육비는 195000억원에 달하고, 전체학생 월평균 1인당 사교육비는 29.1만원에 달했다.(3) 전년도에 비하면 7.0%(1.9만원)증가했고,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187천억원)대비 4.4% 증가했다. 심지어 이러한 통계자료가 현실과 뒤떨어진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는데, 고소득자가 통계조사에서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4)

 

사교육이 학생의 학습을 돕는 것은 사실이다. 내신, 수능, 면접, 자소서 등 대입에서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을 대신하여 사교육은 학생의 시간을 관리해주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학생의 의사결정이 주가 되지 않는 순간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사교육은 지극히 수도권적인 현상이라는 점과 소득의 측면에서 교육의 불평등을 야기하며 학생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과가 어찌됐던 간에 학생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불행한 학생, ‘불행한 학생이었던 사람은 많이 있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의 원인에는 교육의 도구화가 있다. 교육을 사회적, 개인적 욕망 실현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나쁘냐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말 그대로 써먹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도구화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데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교육을 받는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주로 교육이 소득, 계층 이동,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대입과 연결되며 사교육은 점차 과열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게도 저소득계층에서 특히 더 잘 나타난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9.9만원으로 전체 중에서 제일 낮았지만 증가율은 5.9%로 전체 계층 중에 가장 높았다. 사교육 참여율도 마찬가지로 전년대비 3.3%포인트 증가하며 전체 계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5) 이러한 지표는 사교육이 보육의 역할을 한다는 특성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사람들이 교육을 계층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교육이 그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 특성상 교육은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되며, 계층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은 통계자료가 증명해주고 있는 바이다.(6)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사람들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으며, 그 기능에 목매고 있다.

이상적인 교육은 한 사람이 한 사회에서 1인분의 역할을 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양한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그의 이상적 취지보단, 제도권 안의 특정 직업, 사회에서 정해진 길을 반복하여 비추는 데에서 그친다. 우리의 교육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로의 루트를 견고히 하며 그 밖의 상황은 알려주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제도권 밖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깜깜한 공간이 된다.

결국 그 미지의 공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학생들은 어쨌거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남들보다 더 잘하고, 더 좋은 등급을 얻기 위해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학원에 등록한다. 이러한 사교육의 범람은 다시 그 제도권을 공고하게 다듬는 역할을 하고, 결국 이 악순환은 반복된다.

 

#교육 불가능: 공교육과 사교육

 

우리학교는 대체로 다 정시로 대학을 갔거든. 그래서 쌤들이 수시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수시는 알아서 다 준비하래. 그러면 솔직히 선생님들한테 신뢰가 안 가잖아? 그럼 학원을 갈 수밖에 없지.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도 못해. 그냥 책을 읽는 느낌인거지. 가르치지 않고. 의욕도 없으셔. 그게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애들이 먼저 학원에서 다 배워

와서 쌤이 의욕이 없는건지, 쌤이 의욕이 없어서 애들이 학원을 다니는지는 모르겠어. 그럼에도 나는 수업을 왜 들었냐면, 난 수시로 대학을 갔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내신 문제는 학교 선생님이 내니까. 근데 정시하는 친구들은 수업 하나도 안 들었어. 맨날 자고.”

맞아, 우리 학교도 그랬어.”

 

사교육비가 오르는 이유, 혹은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는 대입을 위함이다. 특히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대중들에게 대입제도의 불확실성이 확산되었고, 이것은 학교와 정부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위태롭다고 해도, 이 경쟁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하여도 어찌 됐든 학생은 이 제도권에서 버텨야 한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식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결국 그 신뢰도는 다시 사교육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사교육과 공교육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은 종속적이고, 연속적이다. 사교육의 목적은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서로가 대립적인 관계라고 착각하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의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연대의 공현은 이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가, 공교육과 사교육이 대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이 늘어나는 것은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못해서이고, 학교 교육이 강화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대부분의 보습 학원이나 입시 대비 사교육에서 하는 것은 결국 학교 교육과정의 내용을 미리 또는 반복하여 배우는 것이며, 학교 시험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연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의 뿌리이자 몸통은 현재의 공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이 정말로 공공성을 구현하는 '공교육다운' 것인지 따져 물을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사교육을 대체하려 애쓰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다. 만약 수준 높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인다면 이를 따라가기 위해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학교 수업과 시험의 중요도를 높인다고 해도 사교육 감소에는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과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며 입시에서 학교 내 시험 성적(내신) 반영을 늘린 결과가 내신 대비 사교육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교육이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이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경쟁에서 유리해지고자 하는 현상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더 많이, 더 잘 가르친다고 해도 부가적인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프리세안> 74일 자 사교육의 뿌리는 공교육이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자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발을 옮기는 이유가 학교에서 잘 못 가르쳐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교육에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보다 원초적인 담론인 공교육에 관해 나눠야 한다.

공교육은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며,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의 목적을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공교육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학생들은 평가되고 등급이 나눠지며 서로 경쟁하고, 과잉 학습에 노출되어 본인의 인권을 포기한다. 결국 학생들이 불행한 이유는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해서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이라는 나무의 줄기일 뿐이다. 줄기를 바꾸기 위해선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바꿔야 한다. 사교육은 그저 공교육의 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공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된 길이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무얼 얻었는가?

 

인권은?”

인권? 고등학생 때 나는 공부하는 기계였지 인간이 아니야…… 기계한테 인권을 논하네? (웃음)”

학원은, 주변에서 그렇게 다들 다니니까 따라서 같이 간 것 같아.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좀 힘들었지. 공부하는 이유는 몰랐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만 했고.”

 

지금은 공부하는 이유, 알아?”

으음, 아니? (웃음) 잘 모르겠어.”

인터뷰를 정리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적어도 이들에게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육? 이들에게 교육은 성공한 것일까? 12년동안 공교육과 더불어 수많은 사교육을 받았고, 많은 문제집을 풀었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를 거쳐 지나갔던 수많은 교육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리는 그 교육에게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는 진정 승리자가 맞는 것일까?

 

 

대치, 목동, 분당, 일산 후곡과 백마 등 유명 학원가가 있다. 스타 강사와 일타 강사가 있고, 자녀가 그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학부모들은 아침부터 줄을 선다.(7) 드라마가 아니고, 소설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학생들의 현실이다.(8)

 

 


(1)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명한 대입학원. 스타강사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많이 한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교육부, 통계청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
(4) http://news.bizwatch.co.kr/article/policy/2019/05/29/0020/naver
(5)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346371
(6)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573694

(7)https://m.news.naver.com/memoRankingRead.nhn?oid=025&aid=0002911157&sid1=102&date=2019053111&ntype=MEMORANKING
(8)어쩌면 수도권만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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