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

 

유한량

 

 

#우리의 사교육: 우리들은 어떻게 대학에 왔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원어민 쌤들만 있고 레벨 나눠진 학원이었어. 내가 레벨의 맨 꼴지반이었어. 근데 실력별로 반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인거야. 못하는 애들끼리만 모아두는 게. 레벨이 한 두개도 아니고. 맨날 자괴감 들고, 책은 또 이렇게 많아서 캐리어 끌고 다니고. 거의 울면서 학원 다녔어.”

진짜 대치키드네.”

, 나 진짜 대치키드였어.”

강남권의 일반여고를 졸업한 C양이 말했다. 그에 이어서 경기도의 한 외고를 졸업한 P양이 말을 이었다.

고등학생 때 들었던 인강에서 쌤이, 학원 옆 고시원이 있는데, 지방 친구들이 거기서 잠을 자면서 학원을 다닌다는거야. 물론 난 그거 듣고 에이, 말도 안 돼이랬지. 그런데 10월달에 면접학원을 가려고 대치동을 갔는데, 엄청 큰 대치 이강학원(1) 건물 옆에 몇 층짜리 고시원이 있는 거야, 학원 건물 바로 옆에. 그게 수요가 있으니까 운영이 되는거잖아?”

 

서울 강남권 고등학교를 졸업한 C, 경기도 외고를 졸업한 P, 서울 노원구의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한 K, 경북 소재의 농어촌 고등학교를 졸업한 B양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이다. 이 네 명은 모두 본인들이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하며 대입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들에게 있어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 과정이 폭력적이든, 비교육적이든 결론적으로 이들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가 별거인 사회에서는 사실 이것이면 끝이기 때문이다.

 

총사교육비가 19조가 넘는 이 사회 속에서, 대학에 가기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은 이들만의 경험이 아니다. 어쩌면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대학에 오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고, 대학에 온 학생들도 사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오기 위해서 과외를 받았고, 학원에 다녔으며,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면 끝일까?

 

#현실에서의 사교육: 교육의 도구화

 

사교육(私敎育):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교육.(2)

사교육은 대체로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며 학교 수업 보충이 주된 목적이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2018, 총사교육비는 195000억원에 달하고, 전체학생 월평균 1인당 사교육비는 29.1만원에 달했다.(3) 전년도에 비하면 7.0%(1.9만원)증가했고,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187천억원)대비 4.4% 증가했다. 심지어 이러한 통계자료가 현실과 뒤떨어진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는데, 고소득자가 통계조사에서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4)

 

사교육이 학생의 학습을 돕는 것은 사실이다. 내신, 수능, 면접, 자소서 등 대입에서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을 대신하여 사교육은 학생의 시간을 관리해주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학생의 의사결정이 주가 되지 않는 순간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사교육은 지극히 수도권적인 현상이라는 점과 소득의 측면에서 교육의 불평등을 야기하며 학생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과가 어찌됐던 간에 학생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불행한 학생, ‘불행한 학생이었던 사람은 많이 있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의 원인에는 교육의 도구화가 있다. 교육을 사회적, 개인적 욕망 실현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나쁘냐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말 그대로 써먹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도구화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데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교육을 받는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주로 교육이 소득, 계층 이동,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대입과 연결되며 사교육은 점차 과열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게도 저소득계층에서 특히 더 잘 나타난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9.9만원으로 전체 중에서 제일 낮았지만 증가율은 5.9%로 전체 계층 중에 가장 높았다. 사교육 참여율도 마찬가지로 전년대비 3.3%포인트 증가하며 전체 계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5) 이러한 지표는 사교육이 보육의 역할을 한다는 특성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사람들이 교육을 계층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교육이 그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 특성상 교육은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되며, 계층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은 통계자료가 증명해주고 있는 바이다.(6)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사람들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으며, 그 기능에 목매고 있다.

이상적인 교육은 한 사람이 한 사회에서 1인분의 역할을 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양한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그의 이상적 취지보단, 제도권 안의 특정 직업, 사회에서 정해진 길을 반복하여 비추는 데에서 그친다. 우리의 교육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로의 루트를 견고히 하며 그 밖의 상황은 알려주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제도권 밖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깜깜한 공간이 된다.

결국 그 미지의 공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학생들은 어쨌거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남들보다 더 잘하고, 더 좋은 등급을 얻기 위해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학원에 등록한다. 이러한 사교육의 범람은 다시 그 제도권을 공고하게 다듬는 역할을 하고, 결국 이 악순환은 반복된다.

 

#교육 불가능: 공교육과 사교육

 

우리학교는 대체로 다 정시로 대학을 갔거든. 그래서 쌤들이 수시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수시는 알아서 다 준비하래. 그러면 솔직히 선생님들한테 신뢰가 안 가잖아? 그럼 학원을 갈 수밖에 없지.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도 못해. 그냥 책을 읽는 느낌인거지. 가르치지 않고. 의욕도 없으셔. 그게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애들이 먼저 학원에서 다 배워

와서 쌤이 의욕이 없는건지, 쌤이 의욕이 없어서 애들이 학원을 다니는지는 모르겠어. 그럼에도 나는 수업을 왜 들었냐면, 난 수시로 대학을 갔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내신 문제는 학교 선생님이 내니까. 근데 정시하는 친구들은 수업 하나도 안 들었어. 맨날 자고.”

맞아, 우리 학교도 그랬어.”

 

사교육비가 오르는 이유, 혹은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는 대입을 위함이다. 특히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대중들에게 대입제도의 불확실성이 확산되었고, 이것은 학교와 정부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위태롭다고 해도, 이 경쟁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하여도 어찌 됐든 학생은 이 제도권에서 버텨야 한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식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결국 그 신뢰도는 다시 사교육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사교육과 공교육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은 종속적이고, 연속적이다. 사교육의 목적은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서로가 대립적인 관계라고 착각하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의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연대의 공현은 이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가, 공교육과 사교육이 대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이 늘어나는 것은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못해서이고, 학교 교육이 강화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대부분의 보습 학원이나 입시 대비 사교육에서 하는 것은 결국 학교 교육과정의 내용을 미리 또는 반복하여 배우는 것이며, 학교 시험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연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의 뿌리이자 몸통은 현재의 공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이 정말로 공공성을 구현하는 '공교육다운' 것인지 따져 물을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사교육을 대체하려 애쓰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다. 만약 수준 높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인다면 이를 따라가기 위해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학교 수업과 시험의 중요도를 높인다고 해도 사교육 감소에는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과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며 입시에서 학교 내 시험 성적(내신) 반영을 늘린 결과가 내신 대비 사교육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교육이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이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경쟁에서 유리해지고자 하는 현상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더 많이, 더 잘 가르친다고 해도 부가적인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프리세안> 74일 자 사교육의 뿌리는 공교육이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자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발을 옮기는 이유가 학교에서 잘 못 가르쳐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교육에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보다 원초적인 담론인 공교육에 관해 나눠야 한다.

공교육은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며,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의 목적을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공교육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학생들은 평가되고 등급이 나눠지며 서로 경쟁하고, 과잉 학습에 노출되어 본인의 인권을 포기한다. 결국 학생들이 불행한 이유는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해서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이라는 나무의 줄기일 뿐이다. 줄기를 바꾸기 위해선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바꿔야 한다. 사교육은 그저 공교육의 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공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된 길이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무얼 얻었는가?

 

인권은?”

인권? 고등학생 때 나는 공부하는 기계였지 인간이 아니야…… 기계한테 인권을 논하네? (웃음)”

학원은, 주변에서 그렇게 다들 다니니까 따라서 같이 간 것 같아.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좀 힘들었지. 공부하는 이유는 몰랐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만 했고.”

 

지금은 공부하는 이유, 알아?”

으음, 아니? (웃음) 잘 모르겠어.”

인터뷰를 정리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적어도 이들에게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육? 이들에게 교육은 성공한 것일까? 12년동안 공교육과 더불어 수많은 사교육을 받았고, 많은 문제집을 풀었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를 거쳐 지나갔던 수많은 교육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리는 그 교육에게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는 진정 승리자가 맞는 것일까?

 

 

대치, 목동, 분당, 일산 후곡과 백마 등 유명 학원가가 있다. 스타 강사와 일타 강사가 있고, 자녀가 그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학부모들은 아침부터 줄을 선다.(7) 드라마가 아니고, 소설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학생들의 현실이다.(8)

 

 


(1)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명한 대입학원. 스타강사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많이 한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교육부, 통계청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
(4) http://news.bizwatch.co.kr/article/policy/2019/05/29/0020/naver
(5)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346371
(6)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573694

(7)https://m.news.naver.com/memoRankingRead.nhn?oid=025&aid=0002911157&sid1=102&date=2019053111&ntype=MEMORANKING
(8)어쩌면 수도권만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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