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정상화 담론 톺아보기
당근
1. 드라마 ‘스카이캐슬’ 애청자의 탄식
사교육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매년, 매달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뉴스가 등장한다. 너무 단골 소재라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 쉽사리 분석하기가 어려워 그런지, 중요한 문제인데도 납득할만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드물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한 드라마에서 강남, 대치동의 사교육을 주제로 흥미진진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대치 키드’와 ‘대치맘’의 생활 면면을 잘 소개했다는 이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인 모두가 금요일, 토요일 밤엔 티비 앞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각종 미디어에서 결말에 대해 온갖 예측을 하고, 대본 유출 사건도 발생할 만큼 기대가 고조되었던 결말은! 정말 너무 허무했다... 이 글에서 드라마 비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허무한 결말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결말에 관한 흥미로운 비평은 다음 글을 추천한다.(1))
스카이 캐슬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욕망, 그들이 누리는 것들, 접근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상세하게 묘사한다. 유투브나 SNS 등에서 실제 ‘대치 키드’로 자라왔던 이들은 정말 훌륭한 르포를 그려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들 부모가 어떤 욕망을 가지게 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 자식도 의사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공감하니까’ 딱히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는 부모들의 욕망과 그를 이용하는 사교육 업자들의 결탁과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청소년을 그려내고 그 현상 묘사에 집중한다. 이는 어쨌든 부모들의 욕심이 문제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부모가 반성하고, 욕심을 버리고, 스카이 캐슬을 떠나면 된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은 선행학습과 관련하여 많이 나왔던 이 이야기와 동일하다. ‘경기장에서 모두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가 앞 사람이 경기를 더 잘 보고 싶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뒷 사람도, 뒷 사람의 뒷 사람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경기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선행학습을 한 결과, 모든 학생이 교육과정을 훨씬 앞서나가 공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고, 선행을 이미 마친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지루하니까 자게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이 과열되었고, 매년 사교육 규모는 수조원에 달하며, 학교는 교육 불가능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표적인 대안은 ‘공교육 정상화’방안이다. 사교육을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학교의 교육적 역량을 강화하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만들고 모두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2. 공교육 정상화(2): 무엇을 정상화 하겠다는 말일까?
'공교육 정상화'가 통용되고 있는 맥락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1) 문제는 사교육!
사교육 시장의 과열, 사교육에 쏟는 지나친 비용, 사교육에서 실시하는 경쟁적인,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광고를 억제하고, 사교육 시간 자체를 단축하여 사교육을 억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스카이 캐슬이 가진 대표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고, 남경필 전 도지사가 “사교육 폐지 및 공교육 정상화 방안 토론회”에서 ‘사교육은 마약’이니 ‘함께 끊자’고 한 것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입장은 어느 선에서는 사교육의 문제를 계층 재생산과 불평등의 문제로 이야기하며, 과도한 사교육의 억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맞닿아 있다.
(2) 학교를 바꾸자Ⅰ - 공교육의 교육 역량 쇄신
두 번째 입장은 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 것에는 학교의 무능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으로, 공교육 개혁을 통해 학교를 자는 곳이 아니라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정말 말 그대로 학교 교육기능의 회복을
이끌어내자는 주장이다. 개혁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학교가 자기 혁신을 통
해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공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학교가 교육 가능한 곳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어떤 개혁을 할 것이냐에 따라 학교체제 개편을 통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고, 교원 성과급제와 교원 평가로 교사 역량을 강화하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 또 학교를 플랫폼으로 사고하고 사교육을 학교 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추민규 도의원은 학교 방과후를 통해 학원 강의를 허용하면 공교육을 통해 다원화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3) 추의원의 입장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교원의 역량 증진의 방향성도, 일반고 전성시대의 의미도 결국 상급학교 진학과 관련된 능력과 성과라는 점에서 ‘학교의 학원화’라는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3) 학교를 바꾸자Ⅱ - 대입제도 개선으로 학교에 숨통을!
학교를 바꾸자는 두 번째 입장은 현장 교사와 교육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학교의 여러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는 대입제도로 꼽고 이를 전제조건으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 입장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즉 기획된 교육과정과 실제 학교의 운영과 평가를 맞추어 나가는 것으로 규정한다.(4)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입제도 전반의 개혁을 통해 과열된 경쟁을 완화하고, 이를 전제로 학교가 ‘교육 불가능’의 공간에서 탈피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강조한다.
이 입장들은 강조점에 따라 분류한 것이나, 각각이 다 다른 주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각 주장은 사교육을 억제하는 동시에 대입 제도를 개편하자거나, 공교육 역량 쇄신, 학교 경쟁력 강화로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이자는 식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각각 또는 통합되어,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 정상화법 제정, 교원평가 및 교원성과급제, 대입제도 개편 등의 현실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알 듯 이 대안들은 학교를 딱히 ‘정상화’하지 못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3. 공교육 정상화 주장의 전제
이 지점에서 나는 ‘정상화’ 담론에 깔린 전제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악이며 학교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공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게으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공교육이 본받아야 할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그려진다. 어느 쪽이든 공교육과 사교육은 적대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앞의 글, “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에서 언급되었듯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기보다 오히려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아무리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해도, 결국 사교육은 학교와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운영된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관계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학교에서 시험으로 학생들을 가르고 그에 따라 차별적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학원에 대한 수요가 창출된다. 한 토론회에 참여한 학부모 백선숙씨도, 공교육이 평가기관으로 전락하여 사교육 수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5)
이것은 학교가 생존경쟁이 심화되는 외부의 상황에 휩쓸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학교는 이 과정에서도 공모자였다. 학교는 교육의 서열화와 평가중심 교육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대신, 평가주도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평가 방식을 혁신하면 교육 현장의 크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시장을 위한 ‘인간 자원 평가기관’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는 개선하려 들지 않고, 그 평가 방식을‘요렇게 조렇게’ 바꿔서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학원의 연속성은 예비교사들이 학원과 과외를 통해 수업경험을 쌓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교원양성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 실무 경험은 아주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학원가에서 학생이나 수업에 대한 노하우를 쌓는 경우는 흔하다. 또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원은 방과 후,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앞으로 학원이 아이들을 픽업하고, 간식 등도 챙겨 먹이는 모습은 학교와 학원이 일종의 돌봄 바톤터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운영이 ‘전업주부 어머니’를 전제하고 기획되고, 강사 인력이나 공간, 예산 문제로 방과 후 돌봄에는 적극적 개입을 포기하면서, 돌봄이 개인화, 외주화된 양상이라 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사보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6) ) 두 상황 모두, 학교가 교육을 담당할 인력과 아이들을 학원에 뺏기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사교육이 담당하도록 방치하거나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4. 공교육 정상화 담론의 문제
이렇듯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의존하고, 연속적이라는 사실, 때로 서로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각 입장들을 돌아보면 또 다른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사교육을 문제로 지적하는 첫 번째 입장은 사교육을 제외한 학교에서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사교육을 교육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공교육에 내재한 문제를 은폐하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데 급급한 주장이 되기 십상이다. 예산과 인력의 문제, 교육과정 운영과 그 내용의 문제, 또 학교 운영원리의 문제, 학생과의 관계의 문제로 다뤄질 수 있는 문제들임에도 결국은 사교육에서 원인을 찾거나, 우선순위를 사교육 해결로 배치하는 식이 된다.
또 한편으로 사교육을 교육문제 가운데 핵심으로 꼽는 것은 다분히 계층, 지역 한정적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특정 지역에서 많은 학생과 부모의 관심사와 최우선순위인 것,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사교육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밖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학생들은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교사의 말을 쉽사리 거역할 수 없으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환경에서 고유한 욕구를 무시당한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낀다.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학교 자체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사교육이 학교의 핵심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다양한 청소년과 학생들로부터 나온 목소리가 아닐 수 있다 생각한다.
공교육의 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두 번째 입장은 결국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공식적 입시학원과 좋은 강사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학교가 스스로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기관으로 인정해버리면, 학교와 교사의 역량 강화도 진학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이해되고 평가된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의 역량강화는 결과적으로 학생이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전혀 공공적이지 않다. 스스로 ‘더 나은 학원’임을 증명한 꼴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역량강화가 사교육 감소로 이어질 확률도 낮다. 우리는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교육환경을 잘 갖추고 ‘유능한 교사’를 배치하며, 학교 전반의 역량을 강화했음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오히려 더 본격적인 경쟁의 장에서 학생들은 고통 받을 뿐이다.
동시에 언급했듯 이 기조는 학교 지금까지 해왔던 평가주도 교육의 연속일 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입시제도에 기대어 그 권위를 빌려 교육을 운영하는 한, 입시교육을 넘어선 교육은 불가능하다.
대입제도를 개편하여 교육과정을 ‘정상화’하자는 마지막 입장은 어떤가? 이 입장은 적어도 입시제도에 의존하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변화를 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잘 실시하는 게 정말 학교의 ‘정상화’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과정 자체, 그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어렵고 양이 많다. 도덕과의 예시를 든다면, 학생들이 칸트의 주요 논지가 무엇인지 한 두 차례의 수업 안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 칸트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대체 누구의 입장일까? 학교를 다니는 12년 내내, 선생님들은 진도 나가기에 바빴다. 교육과정 상의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정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판단과 결정의 권한을 주어,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게 하면 좀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5. ‘학교의 정상화’라는 말의 함정
그래서 지금까지의 공교육 정상화 담론이 문제라면, 사교육에 대해서 아니면 학교의 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과 대안이 필요할까? 이제 학교의 어떤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할 것인지를 다시 논의해야 하나?
그런데 그보다, 나는 ‘정상화’라는 말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어떤 것을 정상화하겠다는 말은 현재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말이고, 이는 ‘정상’을 무엇으로 볼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결정적으로 이 사회에서 ‘정상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이 사회에서 학생들이 종일 놀고, 듣고 싶을 때만 수업을 듣고, 교복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염색하는 것은 정상적인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피임기구를 사는 것도 인권이라는 주장은?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일제고사에 반대한다고 학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교사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를 정상화하자고만 말하면, 교육청의 시선, 교장선생님의 시선, 혹은 힘 있는 이들의 시선에서 본 학교의 병리적인 현상만 문제로 지적될 것만 같다. 학교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고자 하는 청소년들, 다른 교육적 시도를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묵살될 것만 같다.
그래서 ‘공교육 정상화’말고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가 교육이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답을 내놓을 때 이제는 그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가 바뀌려면 바로 그 공간의 사람들이 다른 인식, 문제제기를 내놓고, 그를 바탕으로 그 공간의 정치들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뜻 대안을 말하기가 주저된다. 그 공간의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다소 무책임한 후반부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조건만 짧게 다루려 한다. 그 조건은 바로 학교의 민주주의 확대라 생각한다.
학교가 구성원이 말 할 수 있는 공간,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일단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의 민주주의에서는 학교 운영의 민주주의, 교무실의 민주주의, 교실의 민주주의라는 세 층위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각 구성원들이 개입할 수 있을 때, 교사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가 교사에게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때, 교사도 학생에게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의 의사결정에 있어 관련 당사자들의 권한을 가질 때, 그래서 교사가 평등한 관계 속에 있을 때, 학생과 교사도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다시 학생 간에도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쉽다고 생각한다. 교장선생님뿐 아니라 막내 교사도, 신입생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질 때 학생들과 교사는 참았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가며
글을 쓰며 가장 많이 마주했던 질문이 있다. 그럼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할건데? 혹은 그럼 대학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 할 수 있는데?처럼 평가와 선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그 요구가 꼭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와 윤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공정성의 요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여러 현실과 고민의 반영일 것이다. 경쟁과 생존이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 노력 없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노,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들에 질문을 중단하고 경쟁에 몰입하기로 한 결정 등과 같이 말이다. 어쨌든 공정성이 중요한 요구가 된 이유는 사람들이 공정하다면 더 나은 삶을 누릴 확률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두려움이 숨어있다. 경쟁에서 탈락한다면 결과에 승복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그리고 내가 탈락하면 절대 안 된다고... 교육과정, 시험, 입시는 이런 종류의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내면화하게 만든다.
그러나 공정성은 일말의 희망을 내포하지만, 결국 우리 중 일부를 행복하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넘어,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행복과 그를 위한 제반조건들이 우리가 경쟁을 통해 성취해야할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 조건들이 권리로서 당연히 보장되는 것들이라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의 규칙을 잘 만들라고 요구하는 대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1)듀나, ‘SKY 캐슬 유현미 작가만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들’, 엔터미디어, 2019.02.02
(2)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은 2000년,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요구안에서 처음 등장했다.(고형규, ‘전교조 합법화 1주년 –공교육 정상화, 제도 개선 추진’, 매일경제, 2000.06.30.) 전교조는 당시 한국교육의 문제를 과도한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에 의한 공공성 약화로 꼽고, 공교육 정상화는 곧 공공성 확립이라 규정했다. 전교조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대표적으로 교육재정의 감소이며, 이는 공공성 약화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에, 교육재정을 전체 예산의 6%선으로 늘리고, 자립형 사립고, 수준별 수업, 교원 성과급제, 교원 비정규직화 등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중단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육재정을 확보하면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교육의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어 공공성을 확대할 수 있고, 동시에 재정 충원을 통해 공교육 전반의 수준 상향과 질적 심화를 이루어내 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다는 한 것이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 정상화‘’, pp.1~4.)
(3) 송진식, ‘“학교서 학원 강의 허용” 황당한 도의원’, 경향, 2019.07.03.
(4) 홍선주 외, ‘공교육정상화법의 성과와 한계를 통해 살펴본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과 과제’, “학습자중심교과교육 연구”, 16(3), 2016, pp.1037~1041.
(5) 백선숙(학부모), ‘대한민국의 부모에게 사교육이란? 대안과 문화가 된 현실 - 사교육폐지보다 공교육 정상화가 먼저인 이유’, “사교육 폐지 및 교육정상화 방안 토론회”,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김용태 의원실.
(6) 아이는 학원이 키운다…'사교육' 넘은 '사보육', mbc 전동혁 기자, 2019-03-12
'34호 - "학교를 안 갔어" (2019 여름호) > 특집 - 대신 학원에 갔어 : '나쁜' 학원과 '좋은'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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