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
BDUCK
# 도입 : 왜 학생들은 아파도 쉴 수 없는가?
“근데요 선생님... 아파서 조퇴하는 건 생기부에 안 올라가죠? 제가 3일 내로 진단서 제출할게요”
모두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기억할 것이다. 극중 16회에서는, 혜나가 사망하고 우주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불안감을 견딜 수 없던 예서가 무단조퇴를 해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예서의 엄마 한서진이 취한 행동은, 예서가 혜나와 정이 많이 들어 심적으로 힘들었다며, 담임에게 예서의 ‘생기부’ 기록에 무단조퇴 사실을 빼달라고 말하는 것.
# 1. 출석에 집착하는 아이들
스카이캐슬은 ‘학종’시대 입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내신, 봉사, 대회, 비교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평가를 받는 학생부 종합전형, 그중에서도 ‘출석’은 ‘기본’으로 여겨진다.
“깨끗한 생기부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출결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입시 면접에서 질문이 들어올 수 있대요.” 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고3 대입 모의 면접 경험을 말해주며, 생기부 출결상황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수 있으니, 결석한 날에 왜 결석을 했는지 이유를 준비해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 수만휘와 같은 수험생 커뮤니티, 학교에 비치한 면접 후기 자료집을 보면 출결 관련 대입 면접 질문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생에게 생기부의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은 깨끗한 생기부의 ‘오점’이 되고, 학생들은 이 ‘오점’에 대해 ‘변명’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생기부에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의 글자가 찍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거의 원천 차단할 기세로 대응한다. 학생들도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수업을 빠지는 것을 피하게 되고, 그렇게 학종의 ‘기본’이 되는 깨끗한 생기부가 완성된다.
안 아픈 것이 스펙이 되는 사회, 개근상
학생들에게 깨끗한 생기부를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이 있다. 바로 ‘개근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기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개근’은 해당 학년 동안 1회의 결석(또는 지각, 조퇴, 결과)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이 교육부의 개근 용어에 따라 3년간 결석, 지각, 조퇴, 결과가 전무한 자에게 3년 개근상을 수여한다. 이 과정에서 체험학습과 같은 활동은 출석으로 인정하지만, 병결도 결석이기에 병결이 있으면 개근상을 받을 수 없다. 즉 어떤 학생이 개근상을 받았다는 것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기사에 따르면 2017년 서울 고교 졸업생 3년 개근상 비율은 16-36% 사이에서 형성되었다.(1) 같은 해 충북 고교에서는 평균 개근상 비율이 20% 안팎이었다.(2) 과거 졸업식에서 졸업장 개수만큼이나 많았던 개근상을 생각해보면, 개근상의 비율이 최근에 현격히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아직도 5명중 1-2명 가량은 개근상을 받는다. 3년 내내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 학생들은 철인인 것일까?
개근상의 다른 이름, 자기주도적 학습상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학종시대고, 생기부가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학생들이 개근상에 덜 집착한다는 것이다. 입시체제 덕분에(?) 개근상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역으로 입시체제는 ‘유사 개근상’을 만들어낸다. 이름하여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다. 야간자율학습과 토요자습 등 정규수업 외 자습시간의 출석을 체크하고, 일정 기준 이상 출석하면 생기부 수상실적에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라는 실적이 기록된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스펙’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어 이런 상을 만들었겠지만, 학생들은 정규수업을 넘어 보충, 자습 출결에까지 집착하여야 한다.
깨끗한 생기부, 개근상, 자기주도적 학습상 = 성실함?
우리는 왜 이토록 깨끗한 생기부와 개근상을 강조할까? 출결이 평가요소로 작용하는 입시체제 이면에는 빠짐없이 출석하는 것이 곧 성실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반영 되어 있다. 과거 산업화시절, 인적자원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성실함은 하나의 무기였다. 아파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우선하는 태도는 공동체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번아웃 증후군 등 병폐가 지적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의 '성실함이 무기'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깊숙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 속에, 대학이 성실한 학생을 원하는 것도, 학생들이 성실함에 목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성실함을 '개근', 곧 '출결'이라는 척도로 '측정'할 수 있게 되니 출결은 성실함을 증명하는 '스펙'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은 출석에 집착하게 되며, 때문에 예서 엄마는 담임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고, 학부모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져라"
# 2.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보건실을 가면 되잖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학생들이 아플 때 학교를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기껏해야 보건실을 가는 것이다.
보건교사 없는 학교
의사 없는 병원은 존재하지 않지만, 보건교사 없는 학교는 존재한다. 교육부의 2018년 시도별 보건교사 배치현황에 따르면,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은 학교는 2325개 학교에 달한다. 서울, 경기,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경우 보건교사 배치율은 90% 이상인 반면 산간벽지가 많은 강원, 전남, 제주 등 지역은 보건교사 배치율이 60%대에 불과했다. 학교보건법 개정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에, 보건교사 부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만성적 문제이다. 그리고 보건교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건교사 임용은 의사면허가 아닌 간호사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치료 범위와 약의 종류 또한 한정적이다. 보건실은 학교의 보건교육을 담당하고 ‘임시처치, 구급처치’를 하는 곳이지, 병원이 아니다. 이마저도 보건교사는 정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정규수업 시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보충 수업과 야자시간에는 학생들이 아플 때 교무실을 찾아 진통제를 먹는 수밖에 없다. 출결 때문에 학교를 빠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보건실보단 병원, 그러나 병결도 쉽지 않다
학생들은 정말 아프면 선택을 해야한다. 참고 학교를 가거나, 결국 병원을 가거나. 전자의 학생들은 개근상을 받을 테고, 후자의 아이들은 치료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자의 아이들이 학교를 아무런 통보 없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무단결석’은 학생들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은 대학생과 달리 ‘자체휴강’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에겐 단지 ‘무단결석’이다. 자체휴강으로 인한 대학생의 성적에서의 불이익과, 무단결석으로 인한 고등학생의 입시에서의 불이익은 그 무게가 다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쉬고 싶지만 무단으로 빠질 수는 없어, 질병결석을 선택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병결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교에 5일 이내에 의사의 진단서 또한 소견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학생들은 ‘무단결석’ 글자를 피하기 위해,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방문해 진단서를 받아내야 한다. 아픈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아픈 것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 3. 아프지만 공부는 해야 해
출결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인 ‘공부’ 때문이다.
아플 때 어떡하나요? 공부하나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은 학생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듯 보인다. 각종 수험생 커뮤니티, 유튜브 공부 채널 질문들을 보면 ‘아플 때 공부를 하는지’ 묻는 질문들이 많다. 서울 소재 외고를 졸업한 B양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만 했던 경험을 말해주었다. “고등학생 내내 생리통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생리 결석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수업을 놓치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수행평가가 자주 있어서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쉴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운동선수들은 훈련보다 재활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듯, 학생들도 공부보다 쉬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아파서 쉬는 것은 단지 ‘공부’를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들에 비해 진도에 뒤쳐지므로 부족한 부분은 따로 보충을 해야 한다. 혹여 선생님이 시험문제라도 집어줬을 때는 자신만 모른다는 불이익이 따른다. 아픈 몸은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학교를 빠져도 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학교를 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고3, 체력관리는 필수?
가장 공부 노동에 시달리는 고3의 경우, 특히 아픈 몸은 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은 “고3에게 체력관리는 필수”라는 말을 한다. 학생은 ‘공부하기 위해’, ‘아프면 안 되는 존재’인가? 슬픈 것은 이 말이 분명히 잘못되었음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대한민국 입시체제 내에서는 이것이 맞는 말이다. 공부노동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체력관리는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아프지 않기 위해 ‘체력관리’를 해야한다. 학생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회와 환경이지만, 몸관리와 아픈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아간다. 부산 소재 일반고를 나온 C양은 고등학교 시절 체력관리를 위해 매일 밤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윗몸일으키기 하는 것을 6개월가량 반복했다고 말한다. 학생을 아프게 한 학교와 사회는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 뿐 아니라 공부를 위한 건강관리까지 떠맡아야 한다.
# 4. 입시에 종속된 학생들의 건강, 대안은?
종합하면, 학생은 아플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아파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개인의 몸 상태는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개개인은 학교를 빠질 정도로 아파서는 안된다. 또한 공부를 위해 학생들은 매 순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곧, 대학 입시에 건강이 종속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안 아픈 것이 대학 입시 스펙이 되고, 아픈 것은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 현실 속에, 학생들이 아픈 와중에도 입시를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청소년의 건강권 논의를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학생들을 병들게 만든 것이 사회이므로, 거시적 차원에서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1) 입시제도 개혁
청소년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건강권 논의 또한 마찬가지로 입시에 개개인의 건강이 종속되는 것으로 그 문제가 드러난다. 때문에 입시제도 개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안일 것이다.
·평가의 공간에서 성장의 공간으로
학생들이 수업 진도, 입시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한,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쉬고 싶은 마음이 절대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앞선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상습적인 수행평가 역시 학생들이 아파도 쉴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심적으로 편하게 쉴 수 있게 수업과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업 커리큘럼을 느슨하게 짜거나, 수행평가 규정을 제정해 지나치게 학생들을 묶어놓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학교가 ‘평가’가 주가 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 개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평가라는 결과중심의 교육환경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과정중심의 교육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수상실적 축소
입시제도의 전면적은 개혁은 아니더라도, ‘학종’의 모순이 많이 지적되고 있는 현 상황에 입시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학생부 개선사항 안내자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수상실적의 변화이다. 수상실적을 기존의 생기부처럼 모두 기재하되, 대입에 활용되는 것은 학기당 한 개의 수상실적으로 제한했다. 3년동안 최대 6개의 수상실적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개근상 비율이 줄어든 것을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과 관련을 지어 설명했듯, 이처럼 입시에서 출결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면 학생들이 개근상에 집착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수정된 안내자료 역시, 수상실적 활용의 변화로 인해 개근상, 유사개근상과 같은 출결상보다 다른 영역의 수상실적에 학생들이 더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시스템적 대안
결국 만악의 근원(?)은 입시이므로, 근본적인 입시 제도를 개혁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의 대안이 당연히 논의되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행 입시체제 내에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학생도 연가 쓰자, 학생휴가제
앞선 논의에서 개근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출결 관련 상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상 때문이 아니어도 깨끗한 생기부가 성실의 대명사가 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은 출결에 집착할 것이다. 깨끗한 생기부가 미덕이 아니라,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논의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학생휴가제’이다. 직장인들은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연차유급휴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평일에 본인이 원하는 날을 정해 근무를 쉴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라는 정기휴가가 있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방학 때 학교를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휴가라 보기 어렵다. 학생휴가제를 도입해 자율적 혹은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될 것이다. 다만 직장의 휴가 역시 눈치를 보며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학생의 휴가 역시 자유롭고 눈치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할 것이다. ‘쉬어도 된다’는 건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건 시스템 개편
보건 시스템의 개선에 관해서는, 학생들을 무작정 보건실에 보내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병원을 찾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WHO의 건강증진학교 모델은 학교 구성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영적 건강 및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된 노력을 통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총체적이며 포괄적인 접근법이다. 지역사회간호학회지가 조사한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의 건강증진학교 운영유형에 따르면, 건강증진학교 6개 요소에서 가장 낮은 수행을 보인 영역은 지역사회 연계였다.(3) 학교 내의 부족한 보건시스템에만 의지하지 말고, 학생들의 종합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역사회 보건시스템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3) 근본적 대안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찾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입법이나 학교 시스템 자체의 변화로써 기대할 수 있다. 건강권은 결국 청소년의 수많은 권리 중 하나이니 건강권 논의를 넘어서 학생들의 전반적인 권리를 찾는 것이다.
·학생의 목소리가 학교에 닿아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학교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은 학교의 중추적 구성원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학교에 전달할 방법은 많지 않다. 또한 논의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학교를 포함한 상부에 전달될지 역시 미지수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학생들은 건강권뿐 아니라 다른 어떤 권리의 보장도 힘들어진다. 학교나 지자체의 조직적인 운영기구, 하다 못해 sns를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소통창구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실제적 정책 집행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만 10세~만18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 기구인 ‘지역청소년교육의회’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31개 시·군 지역학생의회 청소년들은 52개의 정책제안서를 제출했고, 그 중의 실제로 정책에 반영된 의견 또한 존재한다.(4)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강권을 포함한 폭넓은 청소년들의 권리보장을 위해서 학생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
학생들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을 규정한 마땅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 교육청 단위 중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전북의 4개 뿐이다. 이마저도 폐지해야 한다고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기본적인 인권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권 보장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뜨거운 감자였던 경남학생인권조례는 제25조에 ‘쾌적한 교육환경과 건강권’이란 이름으로 ‘건강권’을 명시한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안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의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하며, 건강권 또한 청소년의 권리로 논의되어야 한다.
# 결론 : 무엇이 ‘건강한’ 학교인가?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노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깨끗한 출결 상황(생활기록부)은 성실함의 징표이자, 곧 성실히 (공부) 노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무기로 작용한다. 또한 모두가 공부노동을 하는 상황 속에 학교를 쉰다는 것은, 시스템에 뒤처지고 있는 개인을 한 명의 낙오자로 만든다. 개인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일정 수준 이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몸은 평가의 장이 되어버린다. 또한 건강관리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관리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탓으로 치부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아파도 학교를 가는 학생만 있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아파도 출근하는 직장인도 존재한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의 몸을 오로지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몸은 도구화되어서는 안되며,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학교는 어떠한가? 성실함의 증명을 위해 아파도 학교에 앉아 ‘출석’을 받아내고, 수행평가와 시험을 치러야 한다. 아프면 병원이 아닌 보건시스템이 미비한 보건실에 가야하며, 아파도 ‘공부’라는 과업은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종착역은 ‘입시’이다. 결론적으로 개개인의 몸은 매 순간순간마다 ‘입시’라는 ‘평가’를 위해 행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학교는 ‘성장’을 다루는 공간이라 할 수 없다. 철저히 ‘평가’를 위해 개인의 몸을 이용하는 공간이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학생들이 건강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성원 모두가 개근상을 받고, 문자 그대로 아프지 않은 학교는 진정 건강한 학교가 아니다. 출결에 집착하지 않는 학교, 개인의 몸이 수동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성장의 주체가 되는 학교, 아파도 쉴 수 있는 학교가 진짜 건강한 학교일 것이다.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9/2017020900314.html
(2) https://www.nocutnews.co.kr/news/4731289?page=1
(3) 지역사회간호학회지 제24권 제3호, 2013년 9월, pp.283-286
(4) http://www.km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63
'34호 - "학교를 안 갔어" (2019 여름호) > 기획 - 아파서 학교에 안 갔어 : 학교와 건강, 보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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