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공동체의 운영원리가 되는 공간을 꿈꾸며
- 생리공결제 논의를 중심으로
고슴도치뇽
생리로 인한 결석을 질병결석으로 처리하는 것?
2004년 9월,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상황에 관하여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이다.”라는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되었다.(1) 그 동안 생리로 인한 결석, 조퇴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리 결석이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증빙서류를 첨부할 때만 병결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그 형태는 학교마다 상이했다. 이 진정에 대해 피진정인은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생리 결석을 허용할 경우, 허위결석으로 인한 수업분위기 저해가 우려되며, 성적처리에 관해서 이전성적의 100%를 인정할 경우, 중간고사를 잘 본 학생은 생리 결석을 악용하여 기말고사를 결시할 것이다.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므로 생리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학교에 휴식시설을 만들어 학교에 와서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건강권이 침해된다고 판단했으며 “학생이 생리로 인하여 결석하는 경우 여성의 건강권 및 모성보호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하였다. 피진정인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수업하기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하다고 한 학생은 전체 1441명 중 760명으로 약 52.7%였다. 또한 거의 매달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8.2%였다. 생리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통증을 느끼지만 학생들은 보건실 이용은 되도록 자제했다.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77.1%였으며 보건실에 가더라도 약을 받고 잠을 자는 정도의 휴식을 취하였다. 또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생리 중에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진정인의 주장에 대해 “생리통은 드러내지 말고 단지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 혹은 ‘질병’에 걸린 상태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학교생활기록부상 결석 처리 및 낮은 성적으로 인한 대학입시에서의 불이익 우려로 학생들이 쾌적하고 안락한 상태에서 신체적 고통을 견디거나 완화시키는 것을 막는다.”고 설명했다.(2)
물론 피진정인의 요지 중 긍정적으로 바라볼 부분도 존재했다. 생리가 개인적인 것, 숨겨야 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월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월경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 생리통 완화 등을 위한 휴식시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 등. 또한 피진정인의 ‘신체조건에 따라 휴식과 수업을 선택하도록 하여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록 학교에 출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신체조건이 정상적이라고 판단될 때만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신체조건이 좋지 못할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이 논의를 다양한 신체조건을 가진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의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생리공결제 도입, 그 이후는?
이 차별시정 진정 이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권 보호를 위한 생리공결의 필요성을 권고하며 생리공결제가 도입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장은 초, 중, 고 여학생 중 생리통이 극심해 수업출석이 어려운 경우에는 월 1일에 한해서 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생리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할 경우 현재 병결처럼 종전 시험 성적의 80%를 인정하는 방안을 포함해 인정 범위 등을 학교별로 정하도록 했다.(3) 하지만 이 또한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2018년 개정)에 ‘생리’나 ‘월경’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결석하는 경우’를 통해 생리공결을 사용하거나 의사 소견서, 진료 확인서 등 병명, 진료기간 등이 기록된 증빙서류를 첨부한 결석계를 제출하여 생리통으로 인한 질병결석을 한다. 이는 생리공결 도입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대학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권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학 역시 도입의 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학부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수업에서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인정하는 경우 등 다양했다.
또한 여러 학교에서 생리 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증명 서류를 요구하였다. 현 제도 상 생리통이 심할 경우 진단서 없이도 조퇴나 결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단서를 강요하며 생리 공결 사용을 억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A대학에서는 학생이 병원에 가서 생리통이라고 적혀 있는 진단서를 받아야 하며, B대학에서는 교내 보건소에 가서 소변검사를 하여 생리 중인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4) C예고에서는 생리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이 진단서를 내지 않으면 질병조퇴로 처리한 것이 밝혀졌다.(5)
무시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
이러한 사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여성의 월경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드러난다. 월경은 여성이 경험하는 주기적인 생리적 변화이다. 주기적으로 월경통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의사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만이 경험하는 ‘질병이 아닌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6) 이는 남성의 생리적 현상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부여하고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기교육청은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 여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경기지역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생리 공결을 이용할 때 개인 정보 등을 요구하지 않도록 각 학교에 권고했다.(7)
개인이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월경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생리공결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생리공결제 도입 이후 지난해 서울 소재 여학교 중 생리기간 결석을 출석으로 처리한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고등학생 A는 가정교사로부터 “생리조퇴를 할 거면 생리대를 갈아서 보건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교실에서 책상에 엎드려 생리통을 참는 것을 택했다.(8) H대 같은 경우에는 생리 날짜를 온라인에 등록해야 공결 신청이 가능한 형태로 생리공결제를 도입했다. 이는 바로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H대 학생 A씨는 생리 날짜를 드러내는 점이 불편하여 아파도 생리공결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9) 또한 진단서를 당일 학교 근무 시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10) 그렇다면 생리통으로 아픈 이는 집에서 쉬기는커녕, 아침 일찍 병원에 가 진단서를 떼고, 학과 사무실 근무 시간 내에 진단서를 제출한 후 집에 돌아와야 한다. 수업을 듣는 것보다 더 힘들다.
생리와 질병은 다른가?
생리는 여성이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신체적 조건이라는 차원에서 분명 질병과 다르다. 지속적으로 출혈이 있고, 생리용품을 구매해야 하고, 통증을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생리와 질병은 모두 “건강한 정상인”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정상성은 누구에게 맞춰져있는가. 우리는 항상 정상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정상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을 때가 존재한다면,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생리통뿐만 아니라 질병 결석을 할 때 병원에 가서 통증에 대한 진단서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질병결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아픔은 존재할까? 전문의는 이 사람이 질병결석을 할 만큼 아프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통증을 느끼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그저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진단서를 끊어줄 뿐이다. 개인들의 경험은 전문의가 인정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가령 우리는 학교에 있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아픈 경우가 종종 있지만 질병 결석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진단서를 띄어야 하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경험은 부정되며 꾀병으로만 사고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에서 의학이 인정하기 전에는 개인의 몸에 대한 경험이 소외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에서 생리와 질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입시 속에서 학생은 아프면 안 된다. 개근상은 성실함의 척도가 되고, 우리는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잠깐 보건실에 가서 임시처치를 받는 것인데, 사실상 그들이 받는 처치는 진통제 한 알이다. 학생의 건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생리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질병, 보건시스템, 입시 등에 대한 총체적인 건강권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많은 대학에서 생리공결 도입에 난항을 겪었으며 도입이 되어도 여학생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는 월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생리공결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히려 제도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거나 악용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야할 뿐이었다. 월경하는 몸,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지 않았다. 우리는 월경하는 몸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리공결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 보호’를 위해 생리 공결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생리공결은 이제까지 모성권 담론에서만 이야기되던 생리가 여학생의 인권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모성보호의 범위는 임신, 출산이라는 모성기능을 보호하라는 것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생리공결은 월경의 경험과 여성의 건강권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생리공결 도입형태에 관해서는 여성의 건강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생리공결을 논의해야 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가 존재한다. 그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개인이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 보장 제도로서의 생리공결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리공결이 여성이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맥락으로 기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신체적 조건과 관련된 여성의 삶과 경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읽혀야할 것이다.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의문이 들 수 있다. 생리를 증명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하면서 생리를 사회적으로 활발히 논의해야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생리는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드러내라는 것인가. 사회에서 생리를 증명하라고 요구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내가 생리를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생리공결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를 악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휴식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를 해야 한다. -의사 진단서를 떼거나 소변검사를 하거나 생리대를 보여주는- 이러한 논의는 생리는 무엇인지, 여성은 생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표면적인 대책들이다. 우리는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기 위해서, 더 활발히 생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경험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긍정되고 그것이 다양한 몸에 대한 공적인 지식으로 논의되며 사회적 조건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공존하는 다양한 몸
‘월경하는 경험’들의 발굴을 시작으로 얼마나 다양한 ‘다른 몸’들이 공존하는지, 한 주체 안에서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 몸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을 수 없다. 누군가는 매달 피를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만성적으로 장염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생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생리혈이 많지만 통증은 적을 때가 있고, 생리혈의 양은 적지만 생리통이 심할 때도 있다. 각자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두가 편안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몸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구성적인 것의 관계 속에서 재정의 된다. 다양한 몸들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용할 수 있게 월경의 경험들에 주목하고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권이란 무엇일까. 건강권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권리를 넘어서, 나의 신체적·정신적 경험을 인정받고 휴식과 여유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는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이 아플 때 치료받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보건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서로의 다양한 몸에 대해 인지하고 그러한 이해들이 공적 지식으로 활용되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체육수업에서는 운동 종목을 정할 때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체 조건에 맞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생리공결제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 학교라는 공동체의 운영 원리가 누구에게 맞추어져 있는지, 공동체가 운영되는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생리공결제는 단지 교육권의 문제만도, 모성권의 문제만도, 휴식을 취할 권리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생리하는 자, 넓게는 기존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주체들을 공동체 운영의 기준점으로 맞추어봄으로써 환경을 모두에게 장벽 없는 곳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생리결석 관련 모성보호 제도마련 권고>,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6.01.12.
(2) 사건명-여학생 생리시 결석 관련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분류2 성별.
(3) <교육부, 여학생 생리병결 관련 ‘생리 공결제’ 도입키로>, 민중의소리, 2006.01.13.
(4) <소변검사서 필요 vs 신청만 하면...생리공결제 대학마다 들쭉날쭉>, 노컷뉴스, 2011.11.26.
(5) <경북예고, 방과 후 수업 강요·수업료 착복 사실로 들어났다>, 노컷뉴스, 2019.05.22.
(6) 김서화, <월경하는 몸의 권리>, 2009, 87쪽.
(7) 안별, <경기교육청, 여학생 생리 공결제 이용시 증빙서류 금지 권고>, 조선일보, 2019.05.29.
(8) 남지원·장은교·최민지, <8일 여성의 날…“일상 속 성차별 바꿔” 바람>, 경향신문, 2017.03.07.
(9) 이준범, <"생리일 입력하라"…대학가 '생리공결제' 논란>, MBC, 2018.07.28.
(10) 김가람, <생리공결제, 역차별과 모성보호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대저널,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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