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연속보도 - 여는 이야기

 

에나

 

1. 개념

 

청소년들에게 '학생다움'은 지겹도록 익숙한 말이다. 학생답게 행동해야지, 학생이 그게 뭐니, 학생은 그러면 안 된다등등.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학생 신분이라는 사실 관계를 넘어, 많은 이들의 인식 속에서 '청소년이라면 학생이어야지'라는 것은 하나의 당위이다.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이란 어딘가 불완전한, 모순적인 단어처럼 다가온다. '학교''청소년'도 너무나 익숙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조합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청소년이면 마땅히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학교 밖에 있다? 그럼 학업을 포기한 이들인가? 용어 자체도 낯설고 생소한 만큼, 이들에 대한 무지나 오해도 만연하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 있는가? 왜 이들은 학교를 나왔고 지금 무엇을 하는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제 2호 제 2항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이란 다음의 사항에 해당되는 청소년을 일컫는다.

 

1) 초등학교·중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 입학한 후 3개월 이상 결석하거나 취학의무를 유예한 청소년

2) 고등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제적·퇴학처분을 받거나 자퇴한 청소년

3) 고등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아니한 청소년

 

위의 설명을 보고, '~ 자퇴생'이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까지는 '중퇴 청소년', '학교 중도탈락청소년', '학교중단 청소년', '학업중단 청소년', '등교거부 청소년' 등이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2002년 교육부는 이들을 통칭하여 '학업중단 청소년'이라고 명명하였고, 최근 학업중단 청소년들이 학교를 벗어난 것일 뿐 배움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확산됨에 따라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박근수, 김민, 2016), 관련 법의 명칭도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다.

 

2. 현황

 

교육부 조사(2015)에서 20143월부터 20152월 사이에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은 중학생 11702, 고등학생 25318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초중고 통합 학교 밖 청소년은 40만 명 규모이다. 전체 학생 대비 학교 밖 청소년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070.90%, 20090.94%, 20131.01%의 추세를 보였으며, 2013년 고등학생의 경우 1.70%였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조사에서 밝힌 바로는 건강, 심리적·정신적 문제, 가정불화, 가정 경제 사정 등 개인 사정이 10.9%, 공부가 싫어서, 학교에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친구들이 싫어서, 선생님이 싫어서 등 재학하던 학교의 문제가 59.2%이며, 검정고시를 하려고, 내 특기나 소질을 살리고 싶어서 등 대안교육을 찾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경우가 20.4%로 나타났다.

학교를 떠난 이후 경로를 정리해보면, 학업형이 47.6%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무업형 21.6%, 직업형 18.9%, 비행형 11.9%의 순서로 나타났다. 개별 경험으로 보자면 71.5%의 청소년들이 복학하여 학교에 다니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학업형 활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1)

 

3. 인식

 

이처럼 학생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학교를 나오고,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밖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이들을 몇 가지 범주 안에서 규정한다. 학생의 본분을 버리고 학교를 이탈한 문제적 존재, 혹은 학교 밖에서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한 기특한 학생들이다.

 

3.1. 문제적 존재(2)

다수의 연구들은 전자, 문제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 연구는 청소년들이 학교를 나온 후 상당한 정서적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며,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됨을 강조한다.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학업중단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관계부처합동, 2015). 신중한 고민이나 준비 없이 학교를 떠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학업중단숙려제를 도입하거나 자발적 학업중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교육 내 대안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학업중단 비율이 높은 고등학교에 학업중단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 학업중단이 청소년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고 청소년이 학교에 머물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최근의 학교 밖 청소년 연구들은 비교적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유형을 찾고 그에 따른 맞춤형 진로 지도와 복지 지원을 강조하거나(윤철경 외, 2013; 관계부처 합동, 2015), 학업중단과정, 사회적응, 학업복귀 과정 등에 대한 각각의 경험을 담은 질적 연구 (오혜영 외, 2013; 김상현, 양정호, 2013; 오정아 외 2014), 학교 밖 청소년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조아미, 이진숙, 2014) 등이 예시이다.

그러나 그 내용들 역시 학업중단 후 비행, 우울, 불안, 성매매 혹은 성폭력, 학업중단 이전에 문제행동을 했었는지 또는 학업중단 후 문제행동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연구들로 학업중단 청소년들을 문제아 또는 비행청소년으로 보는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2. '모범적' 혹은 '바람직한' 대상

학교 밖 청소년은 불안정한 상태라는 인식에 의해, 그들이 긍정적으로 소개되는 사례는 대부분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가는 경우이다. 학교 밖에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혹은 학교 밖에서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범적'이라거나 '바람직'하다고 소개되는 사례들은 자신의 목표를 찾아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이다. (남기곤, 2011; 백혜정, 2015)

EBS '공부의 왕도'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대안학교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의 사례를 다루며 대안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지 소개한다. 남들과는 다르게 대안 학교를 선택했지만, 노력을 통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어떻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가 얼마나 모범적 학생인지 강조한다. 이후 학생의 이야기는 여러 언론의 기사로, 그의 공부법 저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대안 학교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이상할 것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성공' 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적이다.

 

 

4. 결론

 

몇 년 전 대외활동에서 만난 한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밝고 유쾌하고 친절했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하다가 대안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잖은 충격이 있었다. '저렇게 성격 좋은 애가. 학교를 자퇴했단 말이야?' 세상엔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자퇴의 이유 역시 각양각색이며 그 이후의 삶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학교 밖 청소년들이 왜 학교를 나오게 되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대안 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글을 쓰는 중에 1년 반 동안 가르친 과외 학생이 건강이 문제로 고등학교를 자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학교는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성실한 친구인데 힘들겠네.'라는 걱정과 염려가 뒤따랐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를 위해 만난 식사 자리에서 그 학생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활기차 보였다. 앞으로의 휴식과 공부에 대한 계획을 들으며, 내가 보지 못했고 생각하지 않았던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을 그려보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왜 안전한 학교를 떠나는 것일까?', '청소년은 학교 안에 머물러야만 하는가?',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학업을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학교 밖에서의 학업과 학교의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왜 학교 밖 청소년은 다시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제도권 교육은 청소년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해주어야 하는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는 충분히 다양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만들어진 프레임에 따라 그들을 꼼꼼히 검수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적 대상인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는 기특한 학생인지 분류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껏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에 관한, 대안 교육과 제도권 교육에 관한 앞으로의 글들이 좋은 질문들을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참고 문헌>

관계부처합동(2015). 학업중단 예방 및 학교밖 청소년의 자립역량 강화 학교 밖 청소년 지원대책.

교육부(2015). 교육통계연보

남기곤(2011). 고등학교 단계 학업중단의 경제적 효과 추정. 시장경제연구, 40(3), 63-94

박근수, 김민(2016). 학교 밖 청소년과 학업청소년의 건강실태 비교 연구. 청소 년시설환경, 14(2), 17-26.

박병금, 노필순 (2016). 학교 밖 청소년의 학교중단과정과 학교 밖 생활경험. 청소년학연구, 23(8), 47-78

백혜정, 송미경, 신정민(2015).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정책 체계화 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오혜영, 박현진, 공윤정, 김범구(2013). 현장상담자들이 인식한 학업중단청소년 의 특성과 개입방향. 청소년학연구, 20(12), 153-179.

윤철경, 서정아, 유성렬, 조아미(2014). 학업중단 청소년의 특성과 중단 후 경로 :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데이터분석보고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윤철경, 유성렬, 김신영, 임지연(2013).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 및 지원방 안 연구 I.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상준, 이수경(2013). 2013년 비진학청소년 근로환경 실태조사. 한국직업능력 개발원 보고서.

 


(1) 관계부처합동(2015),「학업중단 예방 및 학교밖 청소년의 자립역량 강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서 윤철경의 분류에 따름 
(2) 박병금, 노필순 (2016), 「학교 밖 청소년의 학교중단과정과 학교 밖 생활경험」 참고

학교의 영양제 중독보건의 속살을 드러내다

 

대학동데친인간

 

1. 학교, 영양제에 의존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양제는 내 생활의 한 축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꼭 영양제를 하나 삼켰다. 영양제 통을 넣어두던 내 사물함에서는 비타민 B의 고약한 냄새가 났고 친구들끼리 어떤 영양제가 좋은지 정보를 교환하고 이번 약이 떨어지면 그 약을 사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영양제를 아무리 먹어도 기력이 나지 않으면 수액을 맞고 기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해서 이런 생활과 거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영양제(1)는 학생의 일상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2. 왜 학교는 영양제에 의존하게 되었나?

 

2.1. 학생의 경우

영양제가 어떻게 학생의 필수품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생이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학교라는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학교는 사회 전체에 팽배한 과로신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다. 현재 학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입시 문화를 생각해보자. 이제는 유행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45네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통상 권장되는 수면시간의 반절만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 풍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의 고등학생들 은 주중 평균 5.65시간 수면을 취한다.(2) 평균치의 맹점을 고려해보면 그보다 훨씬 적게 수면을 취하는 학생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2015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은 하루에 평균 12시간 1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3) 공부가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학습 노동임을 생각할 때, 5시간 잠을 자고 학교에서 12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학생들은 그 어떤 노동자 못지않게 일상적으로 과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2.2. 교사의 경우

학교의 또 다른 주축인 선생님에게 피로를 호소해도 소용은 없다.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정리한 교사들의 행정업무 목록에 따르면 초··고 교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연간 업무 목록은 227가지에 달하며, 교사들이 처리해야하는 행정업무 공문량은 하루 평균 20~30건 수준이다.(4) 올해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사의 32퍼센트가 교직 생활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잡무를 꼽았다.(5) 통계자료로 교사의 과로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내가 만난 선생님들의 예시를 보자.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의 책상에는 언제나 홍삼 팩이 있었고 다른 한 선생님은 수업 준비, 공문 처리, 교내행사 계획 등 과도한 업무 때문에 매일 세 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수업을 하셨다. 그 분은 자조적인 말투로 말씀하곤 하셨다. “저는 오늘도 세 시간을 잤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살지 마세요.” 그러나 그 공간 안에서 마음대로 이렇게 살지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학교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과로를 내면화하고 과로신화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피로는 허락되지 않는다. 피로를 호소해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그렇게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데 꾀병 부리지 말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이제 학교는 과로신화를 내재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 되었다.

 

3. 왜 영양제여야 하는가?

 

3.1. 건강은 이제 개인의 책임

학생이 피로한 것까지는 이해해도 왜 피로를 영양제로 해소하려는지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피로를 해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 개인의 몫이 되었고,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접근 가능한 수단이 영양제로 국한되어있다. 왜 학생의 건강 관리가 개인의 몫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조금 넓게 잡아 국가 차원의 보건정책의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에서 콜린 레이스는 보건과 국가의 관계를 분석하며 자본주의논리가 보건의료 분야에 침투한 결과 해당 분야는 민간 자본의 흐름에 흡수되었음을 지적한다. 19세기 영국에서 보건의학에 발달에 따라 사망률 혁명(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말한다)이 일어난 이후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은 개인이 시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의료상품, 의약품 등을 통해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된 것이다.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는 등한시된다. 덩달아 건강관리를 잘 수행하면 자기관리에 성공한 것으로 칭하며 보상하지만 이에 실패하는 이는 기본적인 자기관리도 되지 않은 개인으로 치부해 탈락시키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지 못해 호흡기 질환에 걸린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현대 사회에서 그는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금연에 실패해 그에 걸맞는 결말을 맞은 개인으로 간주된다. ('보건소에서 금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도 계속 담배를 피우다니, 그것은 그의 잘못이다') 그러나 애초에 담배라도 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환경을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그의 건강을 혼자 관리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6)

건강 유지에 대한 이런 태도는 학생의 행실에 대한 보상과 처벌에서도 드러난다. 출결 기록이 입시 결과에 반영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한 입시 컨설팅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병결이 너무 많아도 입시에서 불리하다.

 

공부를 위한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것도 학생의 의무이기 때문이다.”(7) 이렇게 학생들은 두 가지의 양립 불가능한 목표를 수행할 것을 요구당한다. 턱없이 부족한 휴식을 취하며 과로를 반복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적당히 수면을 취하고 영양을 섭취하는 건강한 표준적생활방식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 산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영양제이다.

 

3.2. 그 틈을 파고드는 영양제 산업

영양제 산업은 과로신화의 필수적인 부품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과로신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보건의 사유화, 개인화에 의해 점차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건강관리를 먹고 성장한다. 이는 영양제의 광고와 홍보 방식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영양제 광고는 피로한 일상을 제시한 후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양제를 제시한다. 여기서 문제는 피로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은 채 미봉책에 불과한 영양제를 궁극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영된 영양제 광고를 살펴보자. 옷가게에서 지나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서비스직 노동자는 접객을 하다 피로를 느끼며 내 적성이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활기찬 내레이션이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니라 피곤한 거에요!”라고 외친다.(8) 이 패턴은 같은 제품의 다른 광고에서도 계속된다. 피로를 유발하는 상황과 처지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영양제를 먹으면 피로가 해결되고, 문제도 없을 거라는 식이다. 그러나  앞에서의 서비스직 노동자가 영양제를 먹고 피로를 일시적으로 해소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피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과한 감정노동과 (아마도) 부족한 휴식이 계속되는데 개인이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 하나로 건강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영양제 산업은 더 깊고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는 우리의 건강과 피로의 문제를 아주 개인적이고 단순한 차원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성장한다.

 

3.3. 영양제를 위한 변명과 의외의 대안

지금까지 영양제에게 너무 불리한 논지를 펼친 게 아닌가 싶어진다. 그렇다면 영양제를 위해 최소한의 변명을 마련해보자. 가능한 변명은 영양제는 적어도 일시적인 피로 해결은, 약속한 것은 이루어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영양제와 같은 맥락에서 태어나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는 영양주사의 경우 약속하는 피로퇴치제와 광범위한 기력 회복제로서의 역할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략) 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도 평가가 마냥 좋지는 않다. 단시간 내 체내에 수액과 함께 영양분을 공급,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기운을 회복한 것처럼 느끼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김경수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 증상이 있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환자 등에게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수액주사를 맞은 이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의학적 지표는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영양소를 체내에 투여해도 즉각적으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없다”(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주사 그 자체보다 일정시간 긴장을 풀고 누워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잠시나마 쌓였던 피로나 통증이 가시는 것”(홍성진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등의 냉혹한 평가마저 나온다.(9)

 

영양제가 홍보된 만큼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는 의외의 지점에서 등장한다. “일정시간 긴장을 풀고 누워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잠시나마 쌓였던 피로나 통증이 가시는 이라는 말을 보자. 이 말을 통해 충분한 휴식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피로 퇴치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첨단 영양제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것보다는 충분한 영양 섭취와 휴식으로 매일의 생활을 확보해내는 것이 더 확실히 건강을 보장할 것이다.

 

 

4. 정말로 건강한 학교를 위하여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다시 개인의 기본 체력과 건강유지가 공공의 과제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영양이 없는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식품산업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모두 광범위하고 긴 작업이 필요한 사안이다. 학교 내부에서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와 그 구성원들이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를 마련할 수는 있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보건교육은 성교육, 전염병 예방교육 등에서 그치고 있으며 학교 보건정책도 전염병 예방과 비만예방 캠페인 정도에서 그친다. 몇몇 지자체에서 건강 교실운영을 논의하고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으로 건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로 건강을 원한다면 학교가 영양제를 입에 털어넣는 손을 멈추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건강인지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1) 이 글에서는 영양제의 범주에 개인병원에서 홍보하는 ‘마늘주사’, ‘비타민주사’와 같은 영양주사도 포함시킨다, 수요를 발생시키는 기제가 일반의약품 형태의 영양제와 같은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2) 「고교생 57%가 하루 6시간도 못 자…장년기 고혈압·당뇨 위험」, 『중앙일보』 2017.09.19 
(3) 아수나로, 『2015 대한민국 초·중·고교 학생 학습시간과 부담에 관한 실태조사』, 2015.
(4) 「우범지대까지 파악하라니…잡무 시달리는 교사들」, 『매일경제』, 2019.04.11.
(5) 「교사 87% "사기 떨어졌다"…최대 고충은 '학부모 민원'(종합)」, 『연합뉴스』, 2019.05.13.
(6) 콜린 레이스, 「건강, 보건의료 그리고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 후마니타스, 2018, pp.34-38.
(7) 「[김형일의 입시컨설팅(96)]-“대입은 전략이다” 학교생활기록부 ② –출결상황·수상경력」, 『미디어펜』, 2019.03.23.
(8) 「[아로나민 골드] 적성에 안 맞는게 아니라.. 혹시!?」, https://youtu.be/rIoa1nyAfaI
(9) 김치중, 「감기에도 숙취에도 수액주사 맞으라는 병원」, 『한국일보』, 2018.12.31.

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공동체의 운영원리가 되는 공간을 꿈꾸며

- 생리공결제 논의를 중심으로

 

고슴도치뇽

 

생리로 인한 결석을 질병결석으로 처리하는 것?

 

20049,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상황에 관하여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이다.”라는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되었다.(1) 그 동안 생리로 인한 결석, 조퇴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리 결석이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증빙서류를 첨부할 때만 병결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그 형태는 학교마다 상이했다. 이 진정에 대해 피진정인은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생리 결석을 허용할 경우, 허위결석으로 인한 수업분위기 저해가 우려되며, 성적처리에 관해서 이전성적의 100%를 인정할 경우, 중간고사를 잘 본 학생은 생리 결석을 악용하여 기말고사를 결시할 것이다.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므로 생리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학교에 휴식시설을 만들어 학교에 와서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건강권이 침해된다고 판단했으며 학생이 생리로 인하여 결석하는 경우 여성의 건강권 및 모성보호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하였다. 피진정인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수업하기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하다고 한 학생은 전체 1441명 중 760명으로 약 52.7%였다. 또한 거의 매달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8.2%였다. 생리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통증을 느끼지만 학생들은 보건실 이용은 되도록 자제했다.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77.1%였으며 보건실에 가더라도 약을 받고 잠을 자는 정도의 휴식을 취하였다. 또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생리 중에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진정인의 주장에 대해 생리통은 드러내지 말고 단지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 혹은 질병에 걸린 상태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학교생활기록부상 결석 처리 및 낮은 성적으로 인한 대학입시에서의 불이익 우려로 학생들이 쾌적하고 안락한 상태에서 신체적 고통을 견디거나 완화시키는 것을 막는다.”고 설명했다.(2)

 

물론 피진정인의 요지 중 긍정적으로 바라볼 부분도 존재했다. 생리가 개인적인 것, 숨겨야 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월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월경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 생리통 완화 등을 위한 휴식시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 등. 또한 피진정인의 신체조건에 따라 휴식과 수업을 선택하도록 하여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록 학교에 출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신체조건이 정상적이라고 판단될 때만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신체조건이 좋지 못할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이 논의를 다양한 신체조건을 가진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의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생리공결제 도입, 그 이후는?

 

이 차별시정 진정 이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권 보호를 위한 생리공결의 필요성을 권고하며 생리공결제가 도입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장은 초, , 고 여학생 중 생리통이 극심해 수업출석이 어려운 경우에는 월 1일에 한해서 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생리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할 경우 현재 병결처럼 종전 시험 성적의 80%를 인정하는 방안을 포함해 인정 범위 등을 학교별로 정하도록 했다.(3) 하지만 이 또한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2018년 개정)생리월경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결석하는 경우를 통해 생리공결을 사용하거나 의사 소견서, 진료 확인서 등 병명, 진료기간 등이 기록된 증빙서류를 첨부한 결석계를 제출하여 생리통으로 인한 질병결석을 한다. 이는 생리공결 도입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대학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권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학 역시 도입의 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학부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수업에서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인정하는 경우 등 다양했다.

 

또한 여러 학교에서 생리 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증명 서류를 요구하였다. 현 제도 상 생리통이 심할 경우 진단서 없이도 조퇴나 결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단서를 강요하며 생리 공결 사용을 억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A대학에서는 학생이 병원에 가서 생리통이라고 적혀 있는 진단서를 받아야 하며, B대학에서는 교내 보건소에 가서 소변검사를 하여 생리 중인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4) C예고에서는 생리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이 진단서를 내지 않으면 질병조퇴로 처리한 것이 밝혀졌다.(5)

 

 

무시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

 

이러한 사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여성의 월경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드러난다. 월경은 여성이 경험하는 주기적인 생리적 변화이다. 주기적으로 월경통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의사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만이 경험하는 질병이 아닌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6) 이는 남성의 생리적 현상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부여하고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기교육청은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 여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경기지역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생리 공결을 이용할 때 개인 정보 등을 요구하지 않도록 각 학교에 권고했다.(7)

 

개인이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월경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생리공결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생리공결제 도입 이후 지난해 서울 소재 여학교 중 생리기간 결석을 출석으로 처리한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고등학생 A는 가정교사로부터 생리조퇴를 할 거면 생리대를 갈아서 보건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교실에서 책상에 엎드려 생리통을 참는 것을 택했다.(8) H대 같은 경우에는 생리 날짜를 온라인에 등록해야 공결 신청이 가능한 형태로 생리공결제를 도입했다. 이는 바로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H대 학생 A씨는 생리 날짜를 드러내는 점이 불편하여 아파도 생리공결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9) 또한 진단서를 당일 학교 근무 시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10) 그렇다면 생리통으로 아픈 이는 집에서 쉬기는커녕, 아침 일찍 병원에 가 진단서를 떼고, 학과 사무실 근무 시간 내에 진단서를 제출한 후 집에 돌아와야 한다. 수업을 듣는 것보다 더 힘들다.

 

생리와 질병은 다른가?

 

생리는 여성이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신체적 조건이라는 차원에서 분명 질병과 다르다. 지속적으로 출혈이 있고, 생리용품을 구매해야 하고, 통증을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생리와 질병은 모두 건강한 정상인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정상성은 누구에게 맞춰져있는가. 우리는 항상 정상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정상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을 때가 존재한다면,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생리통뿐만 아니라 질병 결석을 할 때 병원에 가서 통증에 대한 진단서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질병결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아픔은 존재할까? 전문의는 이 사람이 질병결석을 할 만큼 아프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통증을 느끼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그저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진단서를 끊어줄 뿐이다. 개인들의 경험은 전문의가 인정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가령 우리는 학교에 있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아픈 경우가 종종 있지만 질병 결석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진단서를 띄어야 하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경험은 부정되며 꾀병으로만 사고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에서 의학이 인정하기 전에는 개인의 몸에 대한 경험이 소외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에서 생리와 질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입시 속에서 학생은 아프면 안 된다. 개근상은 성실함의 척도가 되고, 우리는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잠깐 보건실에 가서 임시처치를 받는 것인데, 사실상 그들이 받는 처치는 진통제 한 알이다. 학생의 건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생리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질병, 보건시스템, 입시 등에 대한 총체적인 건강권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많은 대학에서 생리공결 도입에 난항을 겪었으며 도입이 되어도 여학생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는 월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생리공결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히려 제도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거나 악용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야할 뿐이었다. 월경하는 몸,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지 않았다. 우리는 월경하는 몸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리공결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 보호를 위해 생리 공결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생리공결은 이제까지 모성권 담론에서만 이야기되던 생리가 여학생의 인권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모성보호의 범위는 임신, 출산이라는 모성기능을 보호하라는 것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생리공결은 월경의 경험과 여성의 건강권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생리공결 도입형태에 관해서는 여성의 건강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생리공결을 논의해야 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가 존재한다. 그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개인이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 보장 제도로서의 생리공결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리공결이 여성이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맥락으로 기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신체적 조건과 관련된 여성의 삶과 경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읽혀야할 것이다.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의문이 들 수 있다. 생리를 증명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하면서 생리를 사회적으로 활발히 논의해야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생리는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드러내라는 것인가. 사회에서 생리를 증명하라고 요구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내가 생리를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생리공결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를 악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휴식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를 해야 한다. -의사 진단서를 떼거나 소변검사를 하거나 생리대를 보여주는- 이러한 논의는 생리는 무엇인지, 여성은 생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표면적인 대책들이다. 우리는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기 위해서, 더 활발히 생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경험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긍정되고 그것이 다양한 몸에 대한 공적인 지식으로 논의되며 사회적 조건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공존하는 다양한 몸

 

월경하는 경험들의 발굴을 시작으로 얼마나 다양한 다른 몸들이 공존하는지, 한 주체 안에서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 몸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을 수 없다. 누군가는 매달 피를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만성적으로 장염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생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생리혈이 많지만 통증은 적을 때가 있고, 생리혈의 양은 적지만 생리통이 심할 때도 있다. 각자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두가 편안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몸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구성적인 것의 관계 속에서 재정의 된다. 다양한 몸들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용할 수 있게 월경의 경험들에 주목하고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권이란 무엇일까. 건강권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권리를 넘어서, 나의 신체적·정신적 경험을 인정받고 휴식과 여유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는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이 아플 때 치료받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보건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서로의 다양한 몸에 대해 인지하고 그러한 이해들이 공적 지식으로 활용되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체육수업에서는 운동 종목을 정할 때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체 조건에 맞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생리공결제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 학교라는 공동체의 운영 원리가 누구에게 맞추어져 있는지, 공동체가 운영되는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생리공결제는 단지 교육권의 문제만도, 모성권의 문제만도, 휴식을 취할 권리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생리하는 자, 넓게는 기존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주체들을 공동체 운영의 기준점으로 맞추어봄으로써 환경을 모두에게 장벽 없는 곳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생리결석 관련 모성보호 제도마련 권고>,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6.01.12.
(2) 사건명-여학생 생리시 결석 관련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분류2 성별.
(3) <교육부, 여학생 생리병결 관련 ‘생리 공결제’ 도입키로>, 민중의소리, 2006.01.13.
(4) <소변검사서 필요 vs 신청만 하면...생리공결제 대학마다 들쭉날쭉>, 노컷뉴스, 2011.11.26.
(5) <경북예고, 방과 후 수업 강요·수업료 착복 사실로 들어났다>, 노컷뉴스, 2019.05.22.
(6) 김서화, <월경하는 몸의 권리>, 2009, 87쪽.
(7) 안별, <경기교육청, 여학생 생리 공결제 이용시 증빙서류 금지 권고>, 조선일보, 2019.05.29.
(8) 남지원·장은교·최민지, <8일 여성의 날…“일상 속 성차별 바꿔” 바람>, 경향신문, 2017.03.07.
(9) 이준범, <"생리일 입력하라"…대학가 '생리공결제' 논란>, MBC, 2018.07.28.
(10) 김가람, <생리공결제, 역차별과 모성보호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대저널,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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