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A교수 성폭력 사건 대응 투쟁의 기록

- 세 가지 시선

 

이물, 고슴도치뇽, 당근

 

 

글을 쓰려고 앉아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42, 527일 같은 특정한 날짜나 시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정서, 이 사건을 접하면서 가장 반복되어 이야기된 말들과 그것에 담겨있는 감정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기시감, 데자뷰. A교수 사건을 접한 학생들의 인상은 그런 것이었다. 지난 해 사회대 H교수 투쟁을 지나 온 서울대였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거듭 반복되는 성폭력이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학생 권력 관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라고 분석했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우리는 정말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알파벳' 뒤에 숨은 교수들을 우리들은 호명했고, 그러나 또다시 수많은 강단 앞에 선 교수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 '몹쓸' 짓을 하는 교수들이 왜,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이는지 분석하는 데에 우리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범죄 서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을까? 나는 교수들이 어떻게 집단을 형성하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공동체 윤리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학과 문화를 어떻게 주도하는지 여전히 잘 모른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대학원생, 학부생의 경험담과 강의실에서의 수행을 거듭 비교하며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말 구조적인 문제라면 교수-학생 권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해체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평소 마주치는 교수님들이 풍기는 불편함과 어려움 같은 것들을 우리는 감각하면서도, 그것을 마주보거나 맞서지는 못했다. 참 좋은 교수님도 많은데, 참 나쁜 교수님도 많구나. 그리하여 종국에는 이런 질문만 남고 만다. 아아 교수님, 당신은 왜 그러셨습니까?

 

놀랍게도 어떤학생들은 또다시 일어나 싸웠다. 하지만 나는 이 기시감들이 조금은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의 시작부터 피로를 느껴야 했지만, 그보다 다른 게 더 걱정이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와중에, 우리는 그 일이 왜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는지 다시 묻기를 어느새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 늘 거기 있는 문제를 보는 것 마냥.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지도, 늘 거기 있어서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교수-학생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 우리는 이 명제를 얼마나 잘 해석하고 있을까. 교수-학생의 권력, ‘성폭력, 어떻게 일어나고 해결될 수 있는가.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교원징계규정 제정. 학생의 권리는 무엇이며, 징계규정은 권력'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선결, 혹은 충분조건인가.

 

우리는 이 글을 우리가 느끼는 기시감을 조금이나마 해석하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그 기시감이 피로나 절망이 되지 않도록, 더 깊은 확신과 믿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록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실은 자유롭고 무책임한 글의 형식을 가진 이유는 그만큼 글쓴이들이 자유롭고 무책임한 탓이다. 매일 매일이 급박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현장을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날카로운 문장만을 좇다보면 무언가 놓칠 것만 같아서, 라는 변명을 덧붙여본다.

 

(+ 전체학생총회 당일과 전후로 이수빈 인문대 학생회장, 신귀혜 공명반 학생회장, 박성현 A특위 및 전체학생총회기획단원, 정주영 학우 외 익명의 학우들을 대면/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이 글에 실린 인용은 모두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

 

#1 이물

 

나는 A교수 투쟁 조직(인문대 학생회나 A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이하 A특위 등)에 직접 소속되지는 않은 제삼자이면서, 하필 학생 자치 경험은 좀 있어서 관심을 어느 정도 갖고 투쟁에 참여하는 주체이자, ‘당사자로 호명된 인문대 학우 중 한 명이었다.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 할 말은 많은 귀찮은 포지션이랄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감각은 다소 대중적이라고 자부하고 입장은 투쟁적이라고 믿는 편향되고 아니꼬운 것들이다.

 

성폭력 사건이라는 것

 

내 인상에 남은 가장 오래된 시점의 장면은 피해자의 실명 대자보가 학내에 걸린 모습이다. 자보가 걸린 것은 201926일이었고, 나는 이를 아마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먼저 접했던 것 같다. 인문대 서어서문학과의 A교수가 꾸준히 피해자의 연구부터 사생활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하고, 상습적 신체접촉을 비롯한 성폭력을 일삼았으며, 일련의 폭력을 거부하려 하면 졸업과 일자리를 걸고 협박했다는 내용이었다.(1)

피해자는 정직 3개월만을 선고한 인권센터의 결정을 비판하며, 더 이상의 피해자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그가 대학에서 사라지기를, 싸울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본인의 이름을 걸고 싸우겠다는 피해자의 의지가 느껴져서 여전히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두 번째 장면은 35일자 한겨레 기사였다.(2)  기사는 서어서문과의 문화가 평소에도 얼마나 위계적인지, 이번 사건에 대해 학과 교수들이 얼마나 미온적이고 나아가 피해자를 학과를 음해하려는 세력과 연관시키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인권센터 사건조사에 참여한 참고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문과 교수들은 수시로 여학생들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으며, 이를 양산하는 술자리를 두고 김창민 서문과 학과장은 교실 밖에서 지혜가 왔다갔다하는 자리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성차별적 발언은 농담이거나 반어적 표현이었고, 이 사건을 통해 조력자 그룹이 서문과를 음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선명한 두 개의 장면은 사건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거듭되는 성폭력에 묵인하지 않고 싸움을 선택한 피해자, 그 목소리를 교수 집단 자신의 무고함과 피해자의 불순함으로 호도하려는 음모론의 대립. 언젠가부터 성폭력 사건은 경찰기관에 맡겨진 수사처럼 절차적 과정을 거치면 되는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젠더-권력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첨예한 정치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성폭력을 양산/강화하는 공동체와 개인, 이에 맞서는 피해자와 연대라는 정치적 지형도가 흐릿하게나마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선명하게 그려나가는 것은 모든 싸우는 사람들의 몫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복잡 미묘했다. 우리 학교에, 혹은 우리 과에 이런 나쁜 일이 있었다니, 하는 탄식과 야유가 개강의 설렘과 공존했던 3월의 어느 날들이 떠오른다. 종종 친구들은 A교수의 행위를 비웃고 욕했지만, 그 다음은 막연했다. 모두가 문제인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이상한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투쟁의 시작과 그 방향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가능한지, 그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투쟁과 연대의 경험일 것이다. 사건이 공론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3, A특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사회대 H교수 투쟁의 기억과 경험(3) 덕분에 각 단위에서 사건 해결에 함께하거나 지지할 사람들은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우선적으로 인문대의 일이었기에 인문대 단위의 주체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었음에도, 그간 학생회가 자주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한 인문대 학생사회가 대본부 투쟁을 완전히 주도하기는 좀 벅차보였다. 사건 초기 인문대 학생회가 사건 정리 카드뉴스를 제작, 배포하고 학생회장단이 입장문을 게시하는 등의 노력은 존재했지만, 단과대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꾸준한 투쟁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다소 무리였던 것 같다. 그렇게 생겨난 A특위는 기존 학생회 단위를 바탕으로 한 조직이기보다, 당장의 A교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인 것이 되었다.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투쟁 조직이 결성되고 대응을 시작한 것은 분명 긍정적이었지만, A특위는 태생적으로 자주 정당성이나 대표성문제를 지적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됐고, 동시에 투쟁의 의제와 방향을 대중 단위와 공유할 방안을 항상 고심해야 했다. 다시 말해 투쟁 의제가 학생들에게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지거나,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런 난점은 이후 A교수 투쟁이 두 번의 총회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A특위는 활동 초기에는 A교수 사건 자체를 알리는 데에 집중했지만, 점차 요구의 핵심을 파면교원징계규정으로 강조했다. A교수를 파면할 것, 그리고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교원징계규정을 마련하고 그 안에 학생의 권리를 명시할 것.

 

사실 전반부에는 A교수라는 사람이 있다라는 걸 알리는 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 두 번째는 제도적 측면으로 간 게 컸어요. 단식 이후로는 그게 컸는데. 기본적으로 학생이나 피해자가 제도적으로 보장받은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의식이었어요. 제도적으로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 명문화된다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노동권이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것처럼, 학생의 권리라는 것이 피해자의 권리라는 것이 교원징계규정에 들어가야 어느 정도 우리가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넘어갈 거 같아서.” - 이수빈 인문대 학생회장 (인문계열 17학번)

 

교수의 성폭력이 많은 이들의 침묵 속에서 묻히거나, 늘 있는 그저 그런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시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여기 여전히성폭력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언제나문제라는 외침이며, 그에 대한 반성과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교수는 이 학교를 떠나야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더 이상 막무가내로 버틸 수 없게 (강제로) 떠날 수 있는 제도적 경로를 마련하는 것, 그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학생의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 역시 의미가 있다. 당장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또 다른 피해자가 이처럼 지난한 싸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이라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꾸려가는 데에 있어, 학생의 힘과 권리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의 근본적 해결책이 왜 교원징계규정으로 모여야만 했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었다. 성폭력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교원징계규정 자체는 성폭력이 왜 일어나는지를 겨냥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 법이 있고 처벌이 있다면 사람들이 눈치를 볼 것이고 교화될 것이라는 단순한 정치철학에 기대는 것이 아닌 한, 성폭력을 일으키는 관계와 권력, 공동체 문화 전반을 변형하고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지적이 담보해야하는,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은 어디에 있을까?

 

 

빨리 온 여름과 숨 막히는 시간들 인문대 학생총회, 대표자 단식, 동맹휴업

 

그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4월을 맞았다. 4월에는 인문대 학생총회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거듭 대표성을 빌미로 학교와의 논의를 거부당하는 A특위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결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생각보다 더 꿈쩍 하지 않는 대학 본부, 거듭 비협조적으로 사건에 임하는 서어서문학과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학우들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는 인문대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지금 이 사건의 당사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서문과가 있지만 저는 인문대 학생회장이고, 학우들 사이의 여론은 어떻게 인문학 공동체에 이런 사람이 있냐는 거였고, 그런 저희의 의지를 학교에도 표명하고, A교수한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인문대학생이 직접 전달했다고 생각하고요.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모아서 돌아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 거기 때문에.” - 이수빈 인문대 학생회장 (인문계열 17학번)

 

덕분에 42일에는 (2012년 학과제 전환 대응 인문대 학생총회 이후) 거의 7, 8년만에 인문대 학생총회가 열렸다. 새터 이후로는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던 인문대 학생들이 각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뜬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인문대 학생총회가 어떻게열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다가, 한날한시에 광장에 나오기를 선택하기까지의 의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단위 대표자와 A특위의 홍보, 순회토론 덕에 총회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터를 지나가는 사람들, 함께 강의를 듣는 사람들 이상으로 인문대 공동체라 할 것이 이때까지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총회의 결정 이후에 그 공동체가 완벽히 도래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꽤 걱정이 되었다. 인문대 총회에서 서로를 확인했다면, 우리는 앞으로 서로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간극을 좁혀가서 결국은 어떻게 공동의 문제의식을 성취해갈지 고민해야할 것이었다. 인문대 학생회가 총회를 준비하며 각 반을 돌며 순회토론을 진행했다지만 A교수 사건의 성폭력교수 권력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진행되었던 거 같지는 않다. 애초 제한적인 인원을 대상으로 한 일회성의 토론이 상시적 의사결정과 정보 공유의 통로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문대 학생총회가 적어도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학교는 거듭 협상 테이블에 나오길 거부했고, A특위는 절박함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인문대 총회 다음 날 이수빈 인문대 학생회장이 단식을 시작했고, 그 뒤를 윤민정 A특위 공동대표와 신유림 서어서문과 학생회장이 이어나갔다. 43일부터 단식을 넘겨받은 17일을 거쳐 27일까지, 무려 24일에 걸친 시간이었다.

 

“(전체학생총회를 선택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하나는 학교에 어떻게 계속 압박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고 두 번째는 어떻게 대표성을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A특위는 인학 중심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임의단체잖아요. 학우들이 만들라고 허락한 게 아니라, 사건대응을 하고 싶은 분들이 모여서 움직인 거라고 생각해요. 당사자성은 있지만.” (...) 단식을 한 이유는 학교에서 테이블에 나오라는 거였어요. 너희가 말을 듣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굶는다는 것을 밖에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래서 학교가 테이블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가 나와서 하는 말은 항상 총학생회가 와라, A특위가 뭐냐 너네와 대화하지 않겠다, 학우들의 전체의견이 맞냐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보여주려는 것도 있었고. 단식으로 대화를 시작했으니 우리의 주장에 좀 더 대표성을 실어야겠다는 생각에. (총회 안건을) 총운위로 안올리고 학우들의 현장발의로 올린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런 저희의 요구에 동의하신다면 총회에 함께해주세요, 라는.” - 이수빈 인문대 학생회장 (인문계열 17학번)

 

단식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조단식은 연일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식은 우리의 입을 스스로 닫게 한 효과도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 앞에 죄책감과 겸연쩍음, 지지와 기원 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몇 가지 없었다. 또한 투쟁이 쉽게 타자화될 수 있었다. 대단한 몇몇이 A교수 파면을 위해 힘쓰고 있고, 나는 차마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실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상황이 연출되기 쉬웠다.

우리는 말하기보다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식을 하는 사람, 그리고 수많은 동조단식자, 더 많은 단식하지 않는 사람, 들은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기도 하고, 긴장감이거나 진중함, 무안함과 머쓱함 같은 것들이었다.

앞선 인문대 학생회장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단식은 길어지는 투쟁과 조용한 학내 분위기 속에서 요지부동한 학교를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부득이 선택한 전략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면, 나는 우리의 힘이 학교에 가닿지 않는 이유를 우리의 논의와 결집 정도에서도 꾸준히 찾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A교수 사건이 너무나 안타깝고 정말 그 교수가 파면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의가 아니라,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심지어 교수를 비호하고 있는 이 썩어빠진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치열함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면, 아니 바로 그럴 때에야 학교는 움직이는 것 아닐까. 이 글의 시작에서 밝힌 선명한 대비를 더 부각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인문대 학생회장의 단식이 한창이던 410일은 인문대 총회에서 결정한 동맹휴업의 날이었다. 문 앞에 붙은 동맹휴업 공지가 무색하게 곳곳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맹휴업으로 수업을 빠진 다음 날, 지난 시간 왜 결석했냐는 교수의 물음에 동맹휴업 때문이었다고 말한 나에게 돌아온 것은 묘한,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웃음이었다. 그 교수님은, 그리고 학교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어진 동맹휴업과 단식의 봄은 그래서 너무나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워야하는 학교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한 속에 대표자들의 몸은 망가지고 있었고 본부는 반응하지 않았다. 성폭력을 저지른 A교수의 이름(알파벳)은 남았지만,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말해지지 않았다. 그것을 비호하고 함께 수행했던 동료 교수들과 학과는 뒤로 물러나있었다. 우리는 또 다시, 사회대 H교수 투쟁이나 그 어떤 교수의 성폭력 사건처럼 이 사건도 끝나버리지 않을지,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는 돌이키기 힘들지 않을지 두려워해야 했다.

 

총회를 향한 길

 

돌아보면 광장에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상 속에서 서로의 얼굴이나 생각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더 큰 광장, 더 큰 총회에서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레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몇 번의 단식과 면담 이후 A특위는 전체학생총회의 소집을 결의했다. 27일 총회 소집을 위한 연서를 시작했고, 하루 만에 1078명의 연서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요건을 충족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는 이 폭발적인 관심이 분명 투쟁 주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총회를 위한 A특위의 홍보, 의제 공론화의 노력은 다채로웠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행정관 벽면에 빔프로젝터를 쏴 요구안 알리기, 삐라 뿌리기, 점심시간 플래시몹, A교수 사건 모의고사 등이 있었다. 교원징계규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카드뉴스도 여러 번 제작해 배포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학생들에게 더 쉽고, 다양하고, 선명하게 각인되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다소 고전적인(?) 기자회견, 집회도 동시에 진행했다.

덕분에 당초 A특위가 목표로 했던 의제화도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핵심은 교수-학생 간 성폭력, 갑질이 있었고 공론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 3개월이라는 가벼운 권고가 나왔다는 점, 학생이 피해자로써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인 것 같아요. 학교라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요.” - 정주영 학우 (산업공학과 19학번)

 

하지만 여전히, 총회에 대한 기대 속에 우리에게 다시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성폭력을 자각하고 있는지, ‘교수 권력은 무엇인지, 그것을 규탄하는 공동체는 과연 누구인지.

총회, 단식, 그리고 더 큰 총회라는 긴박한 타임라인은 서로를 확인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불안한 논의 기반 위에서 사건을 조준하기 위한 당위적 수사와 행위, 그 안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위계와 장벽들, 그리하여 결국 광장에 모였지만 연결되지 못하고 떠날 위기의 상황들.

물론 지금의 싸움이 앞선 질문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아주 많은 것을 해냈다. A교수 성폭력 사건을 문제제기한 피해자의 용기가, 이에 연대하여 투쟁을 수행한 주체들이 없었다면 이런 논의는 시작조차 될 수 없었다. 또한 그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사람들이, ‘성폭력이 문제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권력의 비대칭적 지형을 자각하고 균열을 내는 시도이다. 그 노력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저항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었다.

시작부터 모든 걸 한 번에 성취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부족해 보이는 노력 속에도 핵심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우리는 막연히 감각하고 있는 성폭력, 권력, 공동체를 구체화하고, 더 나은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해가야 할 뿐이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총회가 꼭 성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많이 떨리고, 아직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 조금은 불안하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박성현 A특위, 전체학생총회 기획단원 (자유전공학부 19학번)

 

교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사실 학생들이 투쟁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교수들은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이렇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음에도, 학교 당국과 교수들은 왜, 어떤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다시 처음의 선명한 두 장면으로 되돌아가자. 성폭력을 고발하는 피해자를 두고, 교수 집단은 조력자 그룹 운운하며 학과가 음해당할 것을 걱정했다. 그들이 지키려는 학과 공동체, 혹은 교권은 기실 교수의 권리가 아니라 교수의 권위와 권력이다. 학벌과 능력주의 사회는 그들의 지적 권위에 사회경제적, 인격적, 정치적 권위를 부여한다. 현행 교육 체계는 교수에게 졸업장을 빌미로 학생에 대한 인신의 통제권을 허용한다. 성차별적 교육 기회와 학계 문화는 남성중심적 교수 사회를 유지, 강화하며 교수 집단의 놀이와 무리짓기에 여성혐오를 코드화한다.

 

교수에 의한 인권침해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서 풍문으로 목격담으로 주워듣는 것은 많지만 공론화되는 것은 새발의 피 정도이니까요. 그만큼 대학원/학계가 굉장히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이야기겠지요.

궁극적으로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 부조리를 당당히 공론화할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총회에 상정된 제도개선뿐만 아니라 문화/관행까지 전부 뒤엎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행을 만들어내는 권력은 여러가지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니까 결국은 여성주의 연령차별거부 등의 사회운동과도 뗄 수 없을 테니 학내외로 열심히 의제화하고 여러 운동세력들과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신귀혜 공명반 학생회장 (국사학과 17학번)

 

사람 좋은 교수님을 떠올리기 전에, 우리는 교수의 전반적 탈권위화, 연구실 내 교수 권력의 해체, 남성중심적 교수 문화 타파를 위해 노력하는 교수가 있는지 떠올려야 할 것이다. 잘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그 권력들이 이미 아주 당연하게 자리 잡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더욱 더 말해내고 드러내야 한다.

 

 

#2 고슴도치뇽

 

작년에 이은 사회대 학생총회

 

527, 드디어 학생총회 당일이었다. 사회대 학생인 나는 6시에 열리는 사회대 학생총회에 먼저 갔다. 작년에 이어 사회대 학생총회의 안건으로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 요구의 건이 올라왔다. 약간은 착잡했다. 우리는 작년 한 해 동안 사회학과 H교수 파면을 위해 싸웠다. 권력을 이용해서 갑질과 성폭력을 자행한 그에게 인권센터는 3개월 정직 선고를 내렸고, 우리는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H교수 복귀반대선언도 하고, 20여 년 만에 단과대 학생총회를 열어서 권력형 성폭력/갑질 가해자 H교수 파면 요구의 건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H교수는 파면되지 않았고 징계위원회는 그에게 또다시 정직 3개월을 선고했지만 본부는 학생의견을 반영한 교원징계규정 신설을 약속했고 학부생-대학원생-인권센터-본부가 함께하는 인권연구팀이 꾸려졌다. 우리는 더디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같은 구호를 외쳐야 했다. 이번 총회의 1번 안건은 두 가지. 사회학과 H교수, 서어서문학과 A교수 파면과 학생참여 보장한 교원징계규정 제정이었다.

다만 그래도 나름의 희망이 있다고 느낀 것은 총회 안건의 미세한 차이였다. 작년의 우리는 교수-학생 간 권력 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본부에 요구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새로 만들어질 교원징계규정에 학생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징계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토론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권력형 성폭력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완전한 대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학생 사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선제적인 요구임은 확실하다. 안건은 재적 202명 중 찬성 194,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사회대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우리는 다 같이 깃발을 들고 전체학생총회로 향했다. 총회 개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사회대 대오를 큰 함성으로 맞이했다.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수많은 이들과 마주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에 벅찼다. 우리는 즐거웠다. 총회가 성사될 때까지 학생들은 희망을 노래했고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740, 총회가 개회되었다. 많은 이들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1800명이 넘는 학우들이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 우리가 모여 광장을 가득 메웠을 때의 벅참을 잊을 수 없다. A교수 투쟁이 길어지며 누군가는 무력감을, 누군가는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갔다. 하지만 총회가 성사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비록 그 존재들이 지속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총회라는 자리에서만큼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 길을 함께하자고 말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각 단위의 깃발을 휘날리고 반의 구호를 고민했다. 서로의 외침은 서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많은 이들에게 총회는 분명 해방의 공간이었다.

 

총회 속의 사람들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참여자들을 만났다. 총회기획단으로 활동 중인 자율전공학부 19학번 박성현 씨는 “A특위 때부터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많은 학우분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행사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라며 총회가 성사된 소감을 이야기했다. 교육학과 학우 A 씨는 총회에 참여한 소감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이 힘을 모아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직접 투표도 해보고 하니까 가슴 벅찬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공대 학우 B 씨는 총회를 통해서 학생들의 말이 하나로 모이고 학교 측에 전달할 때 조금 더 공신력 있고 타당성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학생 총회가 열렸을 때의 장점이고, “지금까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총회를 통해서 더 반영되어서 앞으로 더 이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등장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날 총회에 올라온 논의안건은 세 가지였다. A교수 파면,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개선, 요구안 실현을 위한 행동방안. 1안과 2안은 가결되었지만 3안은 의사정족수 미달로 의결되지 못하였으며, 910, 총회는 폐회했다. 총회가 끝난 후, 총학생회 운영위원회 논의를 통해 530일 동맹휴업 및 거리행진이 후속 행동 방안으로 결정되었다. 인문대 학생회장 이수빈 씨는 우선 30일에 있는 동맹휴업에 총력을 가할 것이며, “지속성 있는 행동방안에 대해서도 A특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 행동 방안이 결정되었기는 하지만 총회를 준비하는 이들은 총회 이후의 투쟁 방법에 대해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율전공학부 박성현 씨는 총회라는 영향력 있는 방법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투쟁을 이어나가야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고, 공명반 학생회장 신귀혜 씨는 총회 이후가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얼마만큼의 동력이 나올지 잘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나의 존재가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번 총회에서는 참신한 홍보 방안이 학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이스티 배부 사업, 각 단과대 맞춤형 플랑 등 총회 홍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많이 제시되었으며, 총회기획단은 학우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 끝에, 총회는 성사되었고 많은 이들은 감격에 겨웠다. 총회는 학생사회 내에서 가장 큰 대표성을 가지는 의결기구이다. 학생사회의 총의를 모으고 행동 방안을 결정한다. 총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한 명의 주체로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언제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총회에 참여한 학우 A씨는 총회 개회시간이 두 시간 가량 늦어진 점이 아쉽다고 하였다. 과 카톡방에서 와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정말 참여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당당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총회의 참된 모습이라는 의견이었다.

발언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총회에 참여한 학우 B씨는 발언들이 생산적이고 실효성이 있다는 느낌보다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한다거나 문제의식을 다시 짚는 내용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또한 학우 C씨는 총회의 본래 의미가 사실 말 그대로 총의롤 모으는 것이며 발언도 많이 들어보고 집중력 있게 의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족수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더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함을 지적했다.

안건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한 참여자는 총회가 중도 폐회된 것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구체적인 안건 상정에 대한 소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3번 안건의 총장 잔디 점거 안이 어정쩡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점거라는 것이 학교 행정을 방해하면서 뜻을 알리는 행위인데, 총장 잔디를 점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학우들은 더 활발한 토론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총회 성사를 넘어서, 여러 고민들이 교차되고 같이 대안을 상상하기를 소망했다. 우리는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더 질문해야 한다. 그들은 물론 학생의 인격을 모독했고 학문 공동체를 훼손했기에 합당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다만 더 이상 권력형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성폭력 갑질 교수 파면보다 더 많은 것들을 논의해야 한다. 무엇이 교수의 권력을 만들었을까. 학문적 권위? 대학원생의 모호한 위치? 기업과 국가에서 사업을 따오는 관리자로서의 교수? 독점적인 논문 심사와 졸업 여부를 쥐고 있는 교수? 젠더권력? A교수 파면을 외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교수의 권력을 만드는지를 묻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징계위 내 학생참여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더 토론되어야 한다. 교수-학생 권력관계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학생은 왜 징계의원으로 참여할까? 피해자가 학생이니까. 교수들로만 이루어진 징계위원회는 폐쇄적이니까. 직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말하는 전문성에 대해서는? 본부는 항상 전문성이유를 들며 징계위원회 직접적인 학생 참여를 보류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한다. 징계위원회 교수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은 무엇인가. 학생의 입장에서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교수 사회 내의 인권과 학생 사회 내의 인권은 어떻게 다르며 학생 사회 내의 인권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누구인가. 학생 사회 내의 성규범과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대변될 수 있는가. 인권이 존중되는 서울대학교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며 우리는 징계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학생의 관점에서, 학생의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

H교수 사건과 A교수 사건을 겪으며 서울대학교 내의 징계 결정 구조가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했고, 그 결과로 교원징계규정이 신설되었으며, 학생이 요구했던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었다. 또한 학부생-대학원생-인권센터-본부가 함께하는 인권연구팀이 꾸려져 서울대학교 인권 개선 과제와 발전 방향: 학생 인권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는 분명 변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징계과정을 넘어 대학에서 학생이 평등한 주체로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민주적인 학교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나? 평등한 대학을 상상하며 지금의 대학에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교육 목적, 교육 내용과 평가 방식, 교수-학생 문화, 생활공간, 대학 재정 운용 방식 등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할까?

 

#3 당근

 

내가 총회 이후 마주했던 최초의 장면은 총회 다음날 아크로폴리스에 나란히 놓여있던 우산이었다. 총회가 진행되던 시각에 비가 조금씩 오다 그쳐서, 많은 학생들이 우산을 들고 왔다가 두고 간 것 같았다. 총회 진행을 담당했던 친구가 우산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기억나면 찾으러 오시겠지- 하고 예쁘게 정리해두었다고 했다.

어제의 흔적이 함께 썼던 우산으로 남아 있다는 게 든든하기도 하고 왠지 귀여워서 웃음이 설핏 나왔다. 기사를 쓰는 시점에서 총회 이후의 시간들을 정리하려다보니 계속 그 우산들이 떠올랐다. 눈물인지 웃음인지 모를 비를 맞으며 함께 했던 밤, 비에 젖어들고 싶지 않아 꺼내 썼던 우산, 어제의 그 우산이 햇볕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내일의 아크로 폴리스... 학생들은 어제의 그 우산을 떠올리고 다시 아크로에 돌아왔을까? 우산을 찾아갔을까? 그 우산은 햇볕에 보송보송 말라 있었을까? 아니면 햇볕이 미처 말리지 못한 부분에 물이 고여 퀴퀴한 냄새가 났을까? 이제 그 우산은 학교가 정리해 버렸나?

 

동맹휴업

 

동맹휴업은 총회 폐회 직후 아크로에서 열린 총학생회운영위원회를 통해 의결되었다. 동맹휴업은 총회 사흘 뒤인 목요일로 예정되었다.

총회가 끝나고 처음으로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 자리, 또 총회 한 번으로 학생들의 움직임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자리였기에, 그 날의 학교는 긴장감이 있어 보였다. 나는 학생들이 얼마나 모일지, 또 어떤 구호를 외치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이 걱정은 동맹휴업 집회 5분 전 극대화 되었는데, 10분 전부터 찾아가 앉아있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였다. 다행히 점차 사람들은 모였고, 대략 10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동맹휴업 집회에 참여했고 서울대입구까지는 8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행진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대략적으로 세었던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동맹휴업 집회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이 신입생이라고 한 학생의 발언이었다. 자신은 하루 수업을 빠지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그렇지만 부당한 일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잠깐이라도 왔다고. 그런 내용이었다. 이 발언을 듣고 동맹휴업은 총회가 우리에게 기억되는 방식, 남긴 것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구나, 싶었다. 이런 마음을 여러 차례 다시 확인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총회 이후의 과제겠구나 싶기도 했다. 또 동맹휴업이 대부분의 낮 시간을 강의실에서 보내는 많은 학생들에게는 약간의 일탈과 해방감을 안겨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건물들을 가로지르며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들 (이제는 대학 투쟁의 상징이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힘내를 불렀다.), 어설프게 외쳤던 ‘8박자 구호가 평소처럼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까지 닿았기를 바라본다.

이후 서울대 입구까지의 행진은 솔직히 덥고 다리 아프다는 생각을 주로 하며 걸었고, 서울대 입구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같이 갔던 과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공간을 행진과 구호로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에서 다시 그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좀 이상했다.

 

총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지와 연대는 동맹휴업이 아닌 다시 일상적 공간에서 느끼기도 했다. 총학생회로부터 메일을 받은 상당수의 교수님들이 휴강을 하거나, 출석체크를 하지 않거나 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셨다. 학생들의 움직임, 목소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 다른 구성원들의 연대와 지지를 확인하는 것은 확실히 따뜻한 힘이 되는 것 같다.

또 동맹휴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지지를 느꼈다. 신귀혜 씨(국사학과, 공명반 학생회장)는 동맹휴업에 대해 '사람들이 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반에서도) 불참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는 했지만, 불참 자체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이후의 시간들...

 

그 이후의 일정 시간에 대해서는 개인적 기억은 거의 없다. 동맹휴업이라는 전술이 일회적이기도 했고, 그 이후 갑자기 찾아온 과제들, 시험들을 처리하느라 거의 한 달을 매일 도서관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다. 신귀혜 씨도 인터뷰에서 총회와 동맹휴업 주간이 지나고 나니 시험기간이 닥치고, 종강하고 하니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또 분위기가 단절된 것에 대해, ‘본부점거가 아닌 이상 일회적인 전술이라,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총학에서 주도적으로 얘기를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소식들은 있다. 학생들이 총장이 참여하는 인문대 교수진 회의 장소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고, 총장에게 전체학생총회 결과지를 전달하자, 총장님이 어 이거 봤는데...’라고 답해 분노를 샀다. 학교는 이전까지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오라고 했으면서, 정작 2000명의 학생들이 모여 전체학생총회를 열었는데도 공개적으로 입장을 전달하지도, 대표자 면담을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미 봤다는 답은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그저 무시하겠다는 것 아닌가? 아마도 이후 평의원회에서 통과될 교원 징계규정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어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라, 사후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통과된 징계규정은 여전히 학교 당국의 선심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소식은 서울대민주화교수협의회의 교수님들이 본부에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학생들의 문제제기에 공감하며, 학생들이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으므로 그에 책임을 느끼며, 1) 학교 의사결정과정에 학생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통구조 2) 학생이 피해자인 경우 학생 대표가 징계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 두 가지의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어떤 스승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단지 치기어린 생각이 아닌, 진지한 요구와 문제제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솔직히 늦었다고는 생각하긴 했다. 학생들은 몇 개월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여러 명이 곡기를 끊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여러 번 심각하게 다루었는데도, 교수사회는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 2000여명이 모이고 행동을 이어나가자 이제는 교수 공동체도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기는 어려우며, 문제의식에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해자의 귀환

 

그리고 방학을 앞두고, 피해자분이 돌아오셨다. 그러면서 국면이 확 달라졌다. 이수빈 씨(인문대 학생회장)는 피해자가 학교가 자정할 줄 알고 학교(인권센터)에 신고하였는데 그게 되지 않아 검찰에 고소를 하고 법적 절차를 밟으려 하는 상황이라 전했다. 따라서 학교에서 대응해왔던 학생들도, 피해자분의 귀국 이후 함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사안을 사회에 알리고, 서울대가 자정이 안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쌓으려 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학교를 제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교수들은 학업의 조건으로 학생들이 더 성실할 것을, 더 노력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결국 학생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누구 때문인가?

 

학교 당국은 피해자가 돌아오자, 허둥지둥하며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수빈 씨에 따르면 피해자가 귀국한 이후 가장 중요하게 본부가 학생대표보다는 (피해 당사자와) 교섭을 많이 가지려 노력하고,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노력하고 있으며, ‘징계위원회에서 피해자가 한 번 진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도 보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핵심적인 문제, 예를 들어 피해자에게 현재 인권센터 심의위원회 문서를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등의 한계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귀혜 씨는 이 상황에 대해, ‘학생 천 명이 모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당사자가 와서야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학생을 학교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네가 그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냐며 문제제기 하는 목소리를 막는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다. 총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당연히 이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지만, 이 문제에 있어 누구보다 당사자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적어도 학교 당국이 피해자의 등장에 여러 대응을 고민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당국은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목소리를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음을 인식한 것 같다. 적어도 학교 당국이 스스로를 해결의 주체로 인식하고 책임감을 느끼며, 공동체 문화 개선이든 어떤 것이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통감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존재는 절대 무시될 수 없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피해 호소에 귀를 기울일 의무감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싸워왔던 수많은 이들의 공이다. 미투를 통해,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일상적이고 만연한 성폭력에 맞서 싸워왔던 여성들, 학교에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항하여 싸워온 많은 학생들의 공이다. 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숨지 않고 당당하게 싸울 것을 선언한 피해당사자, 그리고 인문대 총회에 이어 학생총회까지 한 마음으로 움직인 학생들의 공이다.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무렵 총장의 언론 인터뷰가 나왔다.(4) 총장에 도전한 이유, 취임 직후 당면했던 여러 상황이나 비전 등을 함께 묻는 인터뷰였고, 그 중 학생총회와 대응에 관해서 가장 먼저 다루어 졌다. 총장은 인터뷰에서 답답하고 자괴감이 든다, 서울대가 공공적 목적을 가지는 기관인 만큼, 국민적 기대치를 인식하고 내부논리에만 함몰되지 않으며 문제해결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폭력 사안과 학생들의 요구에 있어서도 피해자가 관련 정보 및 결과 확인 등을 요청하면 징계위 의결을 거쳐 고지하도록 추진 중이라 밝혔는데, 특히 이에 대해서는 법적 논리로 반대하는 이들이 있지만 피해자의 알 권리라 여기기에 추진 중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 서울대 공동체 전반에 인권 가치가 뿌리 내리도록, 강력한 처벌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권규범을 제정,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총장으로 대표되는 학교 당국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징계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에 있어서는, 내부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돌파해나가겠다는 의지와 책임의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총장은

 

학생들이 요구하는 학생대표는 법률상 불가능하다며 선을 긋기도 했고, 이 지점은 여전히 대학 당국이 학생들이 타협할 수 없는, 혹은 하고 싶지 않은 부분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머지않아 평의원회에서 의결된 교원 징계규정안은 총장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수빈 씨는 교원 징계규정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정보 고지 등의 내용이) 피해자의 권리 부분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징계위원회의 권한 하에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밝혔다. 또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가 진술 방식이나 대리인 선임 절차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동시에, 학생이 피해자인 경우 학생의 권리에 대해서도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앞으로 논의하겠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학생들한테는 믿을 수 있는 약속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학교와 학생들의 온도차

 

총장의 인터뷰와 교원 징계규정안은 교원 징계규정을 명확히 하자, 또 서울대 인권 규범을 만들자며 같은 이야기를 했던 학교와 학생들이 갈라서는 지점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징계규정안을 마련하여 교수를 처벌하라고 요구한 것은 정직 12개월도 가능했으면 좋겠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또 권력형 성폭력 사안에서 징계 규정이 문제의 최종적 핵심에 있어서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교원 징계 규정안의 부재(학생의 징계 규정과는 대비되는)가 보여주는 교수권력과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다만 그 표현이 징계를 요구하고, 관련 규정에의 요구로 가장 먼저 드러났던 것은, 제대로 된 징계와 그를 위한 관련 규정 마련이 피해자 보호와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여서는 전혀 아니었다.

학생들이 정직 12개월이 아닌 파면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3개월을 쉬든, 12개월을 쉬든 교수가 자신의 학생에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교수가 자신의 힘을 인식하는 이상 재발방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경험하는 학생들 중 정말 일부만이 모든 고난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고발을 결심한다는 사실을, 교수들도 모를 수 없다. 따라서 결국에는 징계 규정을 잘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락하려 든다면, 학교 당국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면죄부를 얻을 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학 당국과 학생들의 대안과, 대안의 코드는 점차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은 관련 규정과 제도를 잘 만들고, 학교가 이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갖추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학교의 대안은 구성원들의 요구의 제도화이며, 그 코드는 전문성이다. 절차와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데, 우선 12개월 정직과 3개월 정직이 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듯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를 제도화된 방침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교수들이 가진 권력 자체를 조금 내려놓고, 대학 공간을 좀 더 민주적으로 바꿔나가는 움직임으로부터 자정이 싹틀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전문성은 대학 당국이 인정한 주체, 내용, 방식에만 권위, 때로 집행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는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대학 당국이 판단하는 사람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징계위원회에 학생들이 전문성이 없으므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때의 전문성이 사건에 대한 인권 가치를 기반으로 한 해석능력과 그에 적절한 판단과 대응을 고민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전문성은 지금껏 징계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수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모두가 전문성이 없다면, 같이 교육을 이수하고 연수를 듣는 식으로 함께 전문성을 구축하고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애초에 상황을 적절하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지식과 역량을 가지기 위해서는 권력자의 시선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몸소 느끼고 있는 이의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있다. 학생과 소외된 구성원들은 폭력과 인권침해를 몸소 경험하면서, 교수라면 인식하지 못했을 상황에 이것은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전문성의 발휘는 약자들에 대한 청취를 핵심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학생들이 징계위원회 학생참여를 요구하고, 학생이 직접 참여하여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나가자고 한 이유다. 따라서 학생들의 코드인 민주성은 대학 당국이 바라는 전문성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민주성에 기반한 전문성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과제인 셈이다.

 

A교수 연구실을 학생 자치 공간으로!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A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생들은 피해자가 고소까지 하는 동안 처분을 내리지 못하는 학교의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입장문에서 다음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A교수 사무실은 빈 방입니다. A교수가 없기 때문에 그의 사무실을 학생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누구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A교수 사무실 학생공간 전환은 누구의 업무 공간을 뺏는 일도, 행정적 불편을 야기하지도 않는 평화로운 의사 표현 방법입니다. 징계위원회 내에서 의견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평화롭게, 그럼에도 단호하게 우리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서어서문학과 교수들과 학장단은 연구실 점거는 반지성적이라며 입장을 내놓았지만, 학생들의 입장을 듣고 보니 조금은 호들갑인 것 같았다. 학생들은 빈 방을 돌아가며 지켰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었을 테다. 학생들의 일상적인 행동의 정치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공간이 바로 자신의 막대한 권력으로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일삼았던 교수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해 가려지고, 사적 공간이라 가려지는 그 공간을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권력에는 미세한 균열이 갔을 테다. 그리고 아마도 반지성적이라 말한 교수님들은 그 균열들이 두려웠던거 아닐까?

대학 바깥 세상에도 교수님들의 당혹스러운 입장문이 호들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의 점거는 반지성적이라 교수들이 입장을 냈다는 기사마다, 사람들은 그럼 성폭력은 지성적인 행동인가요?’라는 댓글들이 수두룩했다.

 

나가며

 

사실 글을 써가고 다듬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생겨났다. 그래서 도통 언제 어디서 글을 맺어야 할지 고민하다 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언제 글을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몇 차례 가졌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고, 교지 출간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기에, 급작스럽지만 여기서 멈춰본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즈음에는 학생들이 교수 연구실에서 나오게 되었다. 학교와 여러 차례 면담을 하고, 8월 말까지 징계 결과를 내놓을 것, 그리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 징계위원 매뉴얼 제작, 징계위원회 운영 방침 개선을 포함한 사항을 합의하였다고 한다.

봄에서 여름까지, 어떤 사람은 불안한 기시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시감에도, 이번에도 흐지부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학생들은 총회에 모였고,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징계 규정과 관련한 사항은 시작이라고 위에서 말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그 반을 학생들은 잘 해나가고 있다.

글을 급작스럽게 멈추는 다른 이유는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징계위원회 결과도 멀었고, 학교의 공동체 문화를 바꾸고 인권 규범을 만드는 일, 또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시작하지 못 했다. 아직 무언가 더 평가를 하고 규정을 해버리기엔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 다음의 기록을 기약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많은 남은 날들에 지칠 때면, 우리가 고이 햇볕에 말려두었던 우산을 찾아가듯이, 펼쳐볼 수 있는 글들이 되기를 바라며 무책임한 기록을 여기서 마친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 경향신문, ‘서울대 교수 성추행’…피해 학생이 기명 대자보로 비판,2019.2.8.
(2) 한겨레, 제자에게 “처녀는 부담되고 유부녀가 좋다”…밥 먹듯 성희롱한 서울대 교수들, 2019.3.4.
(3) 사회학과의 H교수는 지도 대학원생, 학부생, 학과 조교를 대상으로 한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폭언, 사적 업무지시로 2017년 3월, 인권센터에 고발됐으나 정직 3개월 만을 권고받았다. 이에 당초 문제를 제기한 사회학과 대학원생 대책위원회와 H교수 사건 해결을 위한 학생연대를 중심으로 한 학부생들이, 권고가 나온 2017년 6월 경부터 1년도 더 넘게 H교수 파면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4) 김영희, “오세정 "신속·엄정한 비리 대응이 관건…강력한 인권규범 제정하겠다"”, 한겨례, 2019.06.19

611일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인정심사 현장

 

대학동데친인간

 

땡볕이 쏟아지는 화요일 오후 양천구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의 작은 앞마당이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이란 난민 소년' 김민혁 군의 아버지가 지난 16년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후 난민 지위 재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김민혁 군은 아버지의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별관 앞마당의 자리를 지키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는 지난 1811NCCK 총회부터 김민혁 군 부자와 연대해왔으며 이날 시위 현장에서도 김민혁 군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NCCK 정의/평화국의 박영락 부장은 "한국에서 난민법이 제정되었다 해도, 현재의 난민법은 난민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법"이라 말하며 난민 심사 과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연대를 위해 수업시간과 출장 일정까지 바꾸어 이날 시위현장에 도착한 영종중 교사 조수진(전국교원노동조합 소속)씨는 이번 심사 결과가 한국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라 말했다. 영종중 관내에는 난민 약 80여명을 억류하고 있는 인천공항이 있으며 이번 심사결과는 그들을 포함한 국내의 모든 난민들에게 영향을 주리란 점을 강조했다. 조 씨는 "학교탈출+"라는 영종중 교내 인권동아리 지도교사이다. 동아리 학생들은 학교 지역사회와 밀접히 관련된(영종도에 있는 인천공항에는 191월 기준 74명이 억류되어 있다.)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 활동을 하던 도중 국가인권위원회 행사에서 처음 김민혁 군을 만나 연대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지의 뜻을 담은 피켓을 제작해 현장에 전달했으며 계속 조 씨에게 연락을 하며 심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입을 모아 심사 과정의 비전문성과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신앙심을 입증하라며 심사 과정에서 김민혁 군과 아버지에게 십계명과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찬송가를 부를 것을 요구했다.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김 군의 아버지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박영락 부장은 "신앙심은 암기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심사 과정을 비판했다.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김 군은 심사의 비합리성을 간략하지만 인상깊게 표현했다. "신부님께서 '나 사제시험 볼 때보다 심하네. 내일 민혁이 신부님 될 수 있겠다' 고 농담하시더라고요." 그는 계속 쏟아지는 인터뷰와 사진촬영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긴장을 덜기 위해 농담을 꺼내거나 연대단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이날의 심사는 기존 예상되던 두시간을 훌쩍 넘어 다섯시간이 넘어서야 종료되었다. 618일에는 '법무부 난민 면접 조작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가 개최되어 난민들이 직접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일부가 면접 내용을 조작한 사실을 고발했다. 시위로부터 한달 반이 넘게 지난 727,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김 군의 아버지에 대한 난민심사 기간을 20219일까지로 일방적으로 연장했다.

 

<교육저널>의 편집 마감 직전인 88일 김민혁군 아버지의 인도적 체류 지위만 인정되고 난민 지위는 불인정 판정되었다. 미성년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1년마다 연장되며 최대 3년까지만 취업도 불가능한 불안정한 신분으로 체류하는 것만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교육저널> 편집부는 김민혁군 부자의 상황을 꾸준히 알리고 힘을 모아온 오현록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이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글을 지면에 싣는다.

 

법무부는 최소한의 공정성도 없었다

-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불인정 사유서 분석

 

오현록 선생님

 

8일 오후 15분 경,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 앞 마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얼어붙었다. 김민혁군과 아버지가 함께 심사결과 통보를 받으러 청사 안 난민과에 올라간 지 불과 5분 만에 날아든 비보, 김민혁군 아버지의 '난민불인정, 조건부 인도적 체류 결정'.

심사결과를 함께 나누기 위해 동행한 민혁군 친구들이나 취재를 위해 별관을 찾은 기자들이나 한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재난 문자가 날아드는 폭염이 쏟아지는 날씨였는데도 말이다.

 

재난문자와도 같은 난민불인정 결정

 

신청인의 주장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되지 않으나,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체류를 허가함-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
신청인은 난민법상 난민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어 난민불인정 결정한다. 다만, 신청인이 난민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난민으로 인정받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인도적 체류 허가를 부여한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불인정 사유서

먼저 통지서와 사유서에 담긴 결정의 의미를 분석해 보자.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사유는 두 가지였다. 가족재결합사유와 난민사유. 출입국청의 이번 결정은 난민사유에 대해 박해 위험이 근거 없다고 부정한 것이며, 가족재결합사유에 대해 조건을 붙여 '난민'이 아닌 '인도적 체류자'로 답한 것이다.

1년짜리 인도적 체류 기간을 해마다 연장 심사받아가며 늘려나가봐야 길어도 3, 민혁군이 성년이 되는 3년 뒤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은, 무서운 시한부 조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결정, 인도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비겁하고 냉정한 조치.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이번 조치는 난민법의 다음 조항, 가족재결합 원칙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킨다.

 

난민으로 인정된 자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입국을 허가한다 (난민법37, 입국허가 조항)

 

출입국청의 결정대로라면 앞으로 난민인정자의 미성년 자녀는 우리나라에 입국해 성년까지 인도적체류자로 부모와 함께 지내다가 성년이 되면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때 가족재결합이란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것이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인도적인 논리인 셈이다.

 

이란사회가 배교자에 대해 심각한 박해를 하지 않는다는 억지

'1년에서 3년까지 본국으로 추방을 유예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민혁군 아버지가 받아든 통지서에 담긴 의미다. 그런데 이 같은 결정은 정당한 것일까? 출입국청이 무참하게 무시한 난민사유를 다시 살펴보자. 사유서의 난민불인정 핵심 이유 부분이다.

 

신청인은 ... 비록 기독교 교리에 대해 종전 난민 면접 시보다 잘 진술하고 있기는 하나... 자국으로 귀국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진술이라고 하기에는 기독교 관련 지식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점... 기독교(천주교) 일반 신자로 예배에 참석하거나 성경을 읽는 정도의 종교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외부적으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하거나 종교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 본국 정부가 신청인을 특별히 주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점, 이란에서의 기독교로의 개종이... 개종한 사실 만으로 형사기소되는 경우가 드물고... 다소 간의 차별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박해 수준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 사유서에서

 

간단히 말해 민혁군 아버지는 성당에 다니는 정도의 종교인이라 이란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고, 이란은 배교자라도 적극적인 포교활동만 하지 않으면 박해 수준의 인권침해는 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무수한 증언과 국제적 문서가 있지만 그것은 민혁군의 법률대리인의 몫으로 남겨놓고 간단한 사례 하나만 언급하겠다. 작년에 보도된 사건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A씨는 강제퇴거 대상이 돼 화성외국인 보호소에서 난민신청을 한다. 당연히 난민불인정 처분을 받는다. 이에 불복한 A씨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낸다. 놀랍게도 고등법원에서 A씨의 손을 들어 준다. 법무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다. 그에 따라 A씨는 난민으로 인정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송 도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A씨가 한국에서 동료 이란인 B씨와 C씨 등에게 기독교를 전도했는데, B씨는 이란으로 귀국 직후 경찰에 의해 구타당해 사망했고, C씨는 C씨의 가족과 함께 몸을 피해 터키로 피신해야 했던 점 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기사 <법무부 상고 포기, 기독교 개종 이란인 난민인정>에서)

 

한국과 이란을 무대로 펼쳐졌고 기간도 최근이며 등장인물들도 별로 중요한 종교활동을 하지 않은 배교자들이니 한번 비교해 보길 바란다. 우리나라 출입국청은 종교 지식의 깊이를 측정하는 종교재판관이기도 하고, 이란 사회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대사관 수준의 외교역량 보유자이기도 하다. 다만 난민신청자에게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매몰찬 사람들일 뿐.

 

또 다시 등장한 트집 잡기, 진술의 일관성 결여라는 억지

이제 지엽적이지만 '사유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단골 레퍼토리, '신청인의 진술이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주장을 검토해 보자. '사유서'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이름 문제다. 사유서는 민혁군이 개종 사실을 전화로 알린 고모의 이름이 네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고 일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시비를 건다.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이름과 민혁군 아버지가 면접 시 말한 이름, 민혁군이 난민신청서에 기재한 이름과 민혁군이 면접 시 말한 이름이 다 다르다는 것. 범죄 영화에나 등장할 가공의 인물을 만든 것처럼 몰아붙인다.

진상을 밝혀 보자. 고모는 실제 존재한다. 정확한 이름은 민혁군 아버지가 면접 때 밝힌 이름이다. 그럼 민혁군이 면접 때 말한 이름은 무엇인가? 민혁군의 할머니, 그러니까 민혁군 아버지의 엄마 이름이다. 7살에 한국으로 들어와 친척들을 잘 기억 못하는 민혁군이 이름을 혼동한 것뿐이다.

그럼 민혁군의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이름은 무엇인가? 아버지한테 들은 고모 이름을 철자만 다르게 비슷하게 써 놓은 것이다. 한글로 아랍어를 옮기다보면 받침으로 쓸 수도 있고 한 음절을 넘겨 다음 음절에 쓸 수도 있는 그런 표기상의 문제.

그럼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서 이름은 왜 다른가? 민혁군이 중114살 때 한글을 잘 모르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쓴 데서 생긴 엉뚱한 이름이다. 언어 장애로 소통이 어려운 난민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민혁군 아버지는 면접심사에서 충분히 소명했다. 그런데 왜 이걸 트집 잡는가.

다음으로 시기 문제다. 민혁군이 고모에게 개종 사실을 알린 시점이 왜 민혁군과 민혁군 아버지의 말이 다르냐는 것. 민혁군은 2011년이라고 했는데 민혁군의 아버지는 2014년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것 역시 민혁군이 진술 중 혼동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2011년은 민혁군이 개종한 시기고 2013년이나 2014년이 고모에게 개종 사실을 밝힌 시점이다. 민혁군은 일관되게 다른 진술에서 그것도 여러 차례, 초등학교 3, 4학년 때, 그러니까 2013년이나 2014년쯤에 고모와 우연히 전화하다 개종 사실을 말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맥락은 보지 않고 실수한 부분만 딱 짚어 부자를 거짓말쟁이로 몬다. 민혁군은 면접심사만 최소 2시간 씩 두 차례, 민혁군의 아버지의 경우, 각각 2시간, 5시간짜리 면접심사를 받았다. 두 사람 합해서 소송만 5차례. 심문에 가까운 장시간의 심사로 난민신청인이 흘린 실수를 들어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것, 그런 기술이 그토록 자랑하는 법무부의 전문성 영역인가. 이런 걸 해명하는 글을 쓰는 사람까지 극도의 피로로 몰고 가는 사람의 진을 빼는데 전문적인 기술.

 

58일 만의 결과 발표 그리고 출입국청이 책임져야 할 문제

겨우 이런 허접한 내용 정도가 들어 있는 58일 만의 실로 이례적인 결과 발표, 이제 출입국청은 다음 질문에 소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첫째, 58일이라는 장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 기간 동안 난민 신청인이 당했던 고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명해 책임져야 한다.

 

둘째, 왜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심사관의 심사에 출입국정책본부가 개입했는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들이 '본부와 협의하여', '본부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하는 말들을 수시로 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611일 민혁군 아버지 면접심사 당일 심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심사관이 특정일을 지정해 출석요구서를 교부하려 했을 때, 전화를 걸어 심사관으로 하여금 출석요구서 교부를 중지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전문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하는 심사업무에 과연 본부가 협의를 하고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걸어도 되는 것인가. 만약 그래도 된다는 법률과 규칙 하다못해 지침이라도 있다면 공개해 보라.

 

셋째, 결과통보 출석요구를 하루 전에 전화로 하는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인, 이런 경우 없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민혁군 아버지 사안을 다루는 출입국청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라 지적해 둔다. 앞으로도 이런 무례한 행정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청은 난민 신청자에게 계속해 나갈 것인가.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로 판정하는 무모함

같은 종교, 같은 나라, 더구나 부자 사이인 민혁군과 민혁군의 아버지. 동일한 난민사유에 한 명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한 명은 전혀 박해의 위험이 없다고 주장하는 법무부. 이건 무모함이 아니라 무도함이다. 최소한의 눈가림용 공정성의 여지없이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대놓고 선포하는 것이다. 일개 행정부처인 법무부가 국민에게.

이쯤 되면 법무부 난민업무 전체를 손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명령으로, 국회가 대통령이, 국무총리실이, 감사원이, 검찰이. 그렇지 않으면 어떤 난민심사도 어떤 난민정책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울타리 너머로

피스타치오

 

제각기 이유로 학교의 울타리 밖으로 향한 청소년들이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오전이나 낮 시간대에 학교 밖에 있을 때, ‘학교 갈 시간에 왜 여기 있느냐는 질문이나 그런 물음을 담은 시선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그럴 때마다, 원래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십 대가 학교 밖에 있다는 것이 마치 모험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 세상 모든 십 대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때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생활하는 청소년이란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들은 비정상적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며 때로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기도 한다.

이번 인터뷰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생각과 생활을 담아내고자 진행했다. 필자가 만난 이들은 누군가의 생각처럼 어떤 측면에서 유별난” “도드라진아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전에 내가 봤던,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어서 혼이 났던 고등학교 동기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인터뷰는 두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한 미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이 곳은 현재 미인가 상태이지만 차후 인가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학교의 홈페이지를 통해 향후 계획을 밝혔다. 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하기 이전부터 현 교장 선생님은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시면서 이를 준비하셨으며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시작으로 졸업생도 배출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다. 학교의 설립 취지는 현대 사회의 가정과 직장을 바로 세우기 위한 목적과 함께 가정의 안정을 중시하면서 적성에 맞는 진로를 인도하여 사회 속의 성숙한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학생들을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학생들을 데려다준 선생님은 자리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리를 피해주셨고 학생 둘과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서 간단한 잡담을 통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필자에게 맞춰주면서 여유롭게 질문에 대답해주었고 호쾌하고 매우 솔직하게 대해주었다. A학생은 19살 충남 당진에서 지내다 온 학생이었고, B18살 전라도 익산에서 온 학생이었다. A는 중학교 3학년 때 중퇴를 하고 바로 대안학교로 왔고 B는 곧바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대안학교로 온 경우였다. 인터뷰 질문지는 미리 준비해갔지만, 답변 내용에 따라 순서를 바꾸거나 추가 질문을 하는 등 비구조화된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인터뷰는 크게 학교 밖으로 나오기 전의 삶과 학교 밖에서의 삶으로 구성된다.

 

학교 울타리를 나서며

 

1. 학교를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심리적 원인이나 학교 자체의 구조적 원인, 관계적 원인, 가정적 원인 등

B: 저는 친구 문제가 좀 있었어요. 관계적인 문제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대안학교에 왔죠. 여기는 제가 학교생활 힘들어하다 보니까 이모의 권유로 상담하다가 알게 됐어요. 1 때 상담했는데 그 당시 제가 일반 학교 로망이 있긴 있었어요. 체육대회나 소풍이나....그래서 고등학교 때 오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중학교 생활도 생각보다 힘들어서 예정보다 일찍 오게 됐죠.

A: 어머니께서 제가 학교 다니는 것을 보시고 중학교 인생 허비하는 것 같다고 여기로 보내셨습니다. 하하!

 

2. 학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반적인 인상이나 이미지?

A: ... 사회 생활? 인간관계를 할 수 있는 작은 사회!

B: 저는 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관계 문제가 있다 보니까 초등학교 때 못 누렸던 것을 중학교 때 누리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중학교도 멀리 있는 곳으로 갔는데 계속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됐죠. 이제는 근데 이런 우울함도 제가 조절할 수 있고 많이 좋아졌어요!

 

3. 학교를 그만두려고 할 때 선생님이나 학교 혹은 기타 주변의 반응과 태도는 어떠했나요?

A: 학교를 나왔을 때 담임 선생님이 되게 엄한 분이셨어요. 저한테 막 인생이 망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게 생각나요. 제대로 된 비전 없이 나가면 혼선도 올 거고 학교 밖에서 교육도 잘 받겠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인식 자체도 나쁘다고. 친구들은 친한 친구 빼고 제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아무도 몰랐죠. 학교에서 제가 임신을 했다느니 애를 팼다느니....이상한 소문도 돌았어요. 언제는 6명 정도? 친한 선생님들이 돌아가시면서 저를 말리셨어요. 개인적으로 친분 있던 선생님께서 불러서 너 나가면 안된다고 그러실 때마다 일단 저는 저만의 비전을 찾아간다고 대답했어요. 근데 제가 학교를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나았다고 생각한 점이, 선생님이 정말 엄한 분이어서 많이 애들도 때리셨거든요. 욕도 엄청 하시고 많이 애들 패기도 하셨는데 그때마다 학교에 있는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자연스럽게 학교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은 별로 안 남죠. 그 선생님이 20년 동안 반 1등을 안 놓치시는 반이어서 억압도 심했고. 아 또 제가 원래 학생회장이 꿈이었는데 강제로 부반장을 선생님이 시키셔서 못하게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학교 나올 때 그렇게 미련도 딱히 없었네요.

B: 보통 학교를 등교하면 8시경에 가는데 저는 810분에 가고 아니면 오후에 갈 때도 있고 제 그래서 수업 시수를 간신히 채웠어요. 복도 지나다닐 때 맨날 창 밑으로 수그리고 지나가고. 저는 가끔 교실이 아니라 상담실로 바로 갔어요. 그 당시에 제가 조금 아파서 학교 차원에서 배려를 해줘서 가능했죠. 나갈 때는 보이기 싫으니까 다른 학생들보다 20분 전에 교실 앞을 지나가면서 숙여서 다녔어요. 선생님들도 그냥 자라고 수업에 참여 안 해도 이해해주시고. 그래도 학교를 나올 때 속 시원했어요. 이보다는 더 낫겠지, 이보다는 나쁠 수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대안학교를 왔어요.

 

 

4.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태도는 어떠하였나요?

B: 저희 엄마랑 아버지가 되게 교육을 중시하는데 일단 그런 분들이 가라고 하니까 믿음은 가지고 있었어요. 저희 집이 되게 행복한 집안이라서 집에 삼촌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깝게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괜찮아하셨는데 오히려 할머니랑 삼촌들이 반대를 심하게 하셨어요. 왜냐하면 할머니께서 아빠랑 삼촌들을 딱 엘리트의 정석대로 키우셨어요. 대학교, 대학원도 보내고. 그래서 제가 제도권 밖으로 남들과 다른 교육을 받게 되고 자라는 것에 대해서 되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A: 저희 집은 엄마가 제 상태를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여기로 보내려고 하셨는데, 아빠는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아빠가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우리 학교가 교회와 연관된 학교라서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오히려 불교인 할머니께서 저를 여기 보내는게 낫겠다고 찬성하셔서 오게 됐죠. 아빠가 그래도 공부나 교육에 대해서는 나름 개방적이신 분이었던 것 같아요. 종교적으로 조금 껄끄러워하셔서 그렇지.

 

5. 제도권 밖으로 나갈 결정을 할 때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

B: ..아직까지 사회가 검정고시생이나 자퇴생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검정고시 봤다고 하면 수준을 낮게 보기도 하고. 수능을 치자니 교육 시설이나 지원이 비교적 부족해서 걱정되긴 했어요.

A: 아 저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알아보니 사장님이 어디 고등학교 다니냐고 여쭤보셨어요. 그래서 아무 고등학교 이름 대다가 찔려서 사실 안 다닌다고 자백하니까 그 분이 저한테 그럼 남자친구하고 같이 사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정말 그때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빴어요. 결국 그 아르바이트는 안 했는데 학교를 안 다닌다는 이유로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누구나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측면의 부적응을 겪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학교에 적응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선택지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저 필요한 부분이 다를 뿐인데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대처를 해주지 못하거나 혹은 방임할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에 대해서 낯설게 느낌 이상으로 비정상 취급을 하는데 이는 학생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전혀 상관없는 부분과 말도 안 되게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낯설게 다가온 이들을 상처입힌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6. 학교를 그만둔 후 지역에서 관리하는 교육 센터나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B: 대안학교 다니면서 꿈드림 센터에 가서 승마 체험도 하고 종종 가는 것 같아요. 저희 학교에도 가끔 오시고 괜찮은 행사 일정 있으면 알려주시고 개인용품이나 검정고시 때 간단한 간식이나 컴싸 등도 챙겨주세요. 다시 제도권 내로 다시 복귀하라는 그런 소리도 없으시고 아마 이미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그런 말씀을 안 하신 것 같기도 해요.

 

7. 대안학교에서의 하루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B: 저는 요새 하루종일 토익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검정고시를 이미 통과했어요

A: 원래 스케줄은 아침 7시에 7시 반에 일어나서 8시 대충 씻고 밥 먹고 기도하고 10시부터 1시까지 검정고시 관련 과목 공부를 해요. 아니면 진로마다 다른데 생활영어나 회화, 토익 공부하는 반이 따로 있어요. 중학생은 중학생용 검정고시 공부를 하거나 고등학생은 수능 공부 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시간에는 저희가 원하는 수업을 직접 짜서 해요. 제 경우는 마사지에 관심 있어서 주변에서 마사지하시는 지인분이랑 연결해주셔서 배우기도 해요. 아니면 역사 관련한 관심이 있으면 피피티를 만들어서 발표도 해보고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직접 찾아보는 거죠. 어떤 언니는 경영 쪽에 관심 있어서 물건 판매에 대해서 발표도 준비하기도 하고. 생활 영어할 때는 시사 문제 만들어서 조사해서 발표하고 토론도 해요. 대학 갈 때 수업도 미리 대비할 겸.

B: 운동도 하는데 할 때마다 뭐할지 토론해서 결정해요. 지금은 배드민턴하고 있고 또 다음달에는 달라지고. 우선 기초부터 배우고 실전을 하는데 시간은 요일마다 달라요. 오전 수업은 거의 똑같고 오후 수업은 돌아가면서 하고 금요일에는 외부 선생님 오셔서 악기 수업하기도 하고 끝나고 나서 요리 재료 준비해서 같이 맛있는 것도 해요.

 

8. 대안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제도권 내의 교육에서 가장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A: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 원래 학교는 이거해야 하고 만약 안 하면 이상한걸로 취급되는데, 대안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것들을 하지만 원하는게 있으면 건의도 할 수 있고 지원도 받을 수 있어요. 계획이 없는? 그런 것? 저희가 놀러 가도 갑자기 정해지기도 하거든요. 학교는 미리 정해져 있는게 많잖아요. 저희는 갑자기 영화보러 가고 일주일 전에 정해지기도 하고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거 다 하는게 좋아요.

B: 여기는 학생들이 다 모여서 생활을 공유하고 기숙사에서 거의 24시간 붙어있잖아요. 사실 학교도 조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싸우면 얼굴 안보고 싶으면 안봐도 되는데 저희는 그게 더 안되니까 서로 져주고 그런게 좋아요. 어쩔 수 없이라도 맞춰져 가는 공동체적인 인간관계가 확실히 일반 학교랑은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사람을 대할지 배워가는 것 같고 저희는 싸우면 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서로 다르구나 이게 싫구나 서로 이해하게 되고 사회 생활을 미리 진하게 배우는 것 같고 이게 가장 큰 교육의 취지라고 생각해요. 아 저희도 저희 공간을 알아서 청소하고 세탁기도 돌리는데 이제 저희는 용돈을 받으면 옷이나 화장품 사기보다 세제나 샴푸를 사요. 그래서 생활적인 경제관념도 생긴 것 같아요.

 

9. 대학의 입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굳이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냥 가보고 싶어요. 제 또래 사람들도 더 만나보고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유아나 교육, 사회 복지나, 상담, 심리 등등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하고 싶은걸 하고 싶어요.

B: 저는 간호 쪽을 생각해서 일단 무조건 대학을 가긴 해야 해요. 4년제로 가야 해서 아무래도 전문성이 필요한 걸 하고 싶다면 대학을 가야겠죠.

 

10. 장래에 가지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B: 간호사 직업 선택할 때 힘든건 알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무작정 가는 것보다 제가 가진 기술 등으로 그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도움을 주면 좋으니까.

A: 저는 마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싶어요. 마사지 몸을 치료하면서 마음도 치료할 수 있고 유아 쪽은 애기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랑을 많이 주고 싶어요. 사회 복지도 그런 쪽이고.

 

11. 다시 제도권 내의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들었나요?

B: 조금 고민되기는 한데 일단 저는 없어요. 여기서 얻은 게 많아서 그냥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돈이나 명예보다 하고 싶은걸 찾은 것 같아서 후회는 없어요.

A: 저도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에게 대안학교는 고향같은 느낌이에요. 나를 아껴주고 존중해줬는데 일반 학교를 가면 이것들을 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반 학교에서는 싸우면 빨리 화해하라고 사건을 덮는 식으로 일이 처리되는데 여기는 싸우는 것도 한 교육으로 보는 것 같아요. 보다 큰 걸 보는 거죠. 고민은 되겠지만 결국 다시 대안학교를 택할 것 같아요.

 

12. 하고 싶은 말

B: 비록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제 자리에서 경로가 어떻든 제가 갈 곳에 잘 가면 되는 거니까. 끝이 좋으면 되니까 에둘러 가든 어떻게 가든 제가 하고 싶은 것 많이 경험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A: 사람들이 대안학교 하면 항상 문제아, 학교 적응해서 할 일 없는 애들로 보는데 꼭 학생은 초중고 대학 가는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지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가야 할 길이 다른데 함부로 정하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전체의 잘못된 편견이죠. 이런 점은 많이 개선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학생들은 분명히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꿈꾸는지 인식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정상성을 회복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우려와 다르게,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보다 다양한 측면으로 건강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청소년들은, 사회가 학교라는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분명히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잘 알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사회의 고정관념과 비정상에 대한 거부를 이 두 명의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씩씩하게 해쳐나가는 학생들도 있는가 하면, 사회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혐오하고 불안해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혹은 아예 좌절하며 삶의 중요한 부분을 너무나도 일찍 포기해버린 청소년들도 있다. 학교라는 특정한 제도권 내에 속하지 않으면 그 다음의 길이나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안내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절성과 배타적인 모습은 누군가를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닐까. 학교 밖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학생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그 선택의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인 것들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졸업하지 아니더라도 같은 능력이 있다면 같은 대우를 받고, 스스로에 대해서 떳떳함을 가지고, 각자에게 알맞은 삶을 선택할 기회를 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것들 중,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기관과의 연계인데 인터뷰 대상 청소년들이 속한 곳이 미인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기관과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서 놀라웠다. 또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추구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오히려 더 스스로 적극적으로 목적을 추구해나가는 모습에 놀랐고, 똑같이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쫓아가던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로는 당연히 그들의 모든 삶을 이해할 수도, 그럴 시도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B학생의 말처럼 방법이 어떻든,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 내라면 본인이 좋고, 끝이 행복하면 된다는, 가치에 대한 우선성에 대해서 더욱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여전히 선명하게 존재하는 사회의 시선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알릴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미흡하지만, 글을 썼다. 인터뷰를 도와주고 생각할 점을 준 빛나는 청소년 두 분께 큰 감사를 드린다.

 

학교 밖 청소년연속보도 - 여는 이야기

 

에나

 

1. 개념

 

청소년들에게 '학생다움'은 지겹도록 익숙한 말이다. 학생답게 행동해야지, 학생이 그게 뭐니, 학생은 그러면 안 된다등등.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학생 신분이라는 사실 관계를 넘어, 많은 이들의 인식 속에서 '청소년이라면 학생이어야지'라는 것은 하나의 당위이다.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이란 어딘가 불완전한, 모순적인 단어처럼 다가온다. '학교''청소년'도 너무나 익숙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조합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청소년이면 마땅히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학교 밖에 있다? 그럼 학업을 포기한 이들인가? 용어 자체도 낯설고 생소한 만큼, 이들에 대한 무지나 오해도 만연하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 있는가? 왜 이들은 학교를 나왔고 지금 무엇을 하는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제 2호 제 2항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이란 다음의 사항에 해당되는 청소년을 일컫는다.

 

1) 초등학교·중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 입학한 후 3개월 이상 결석하거나 취학의무를 유예한 청소년

2) 고등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제적·퇴학처분을 받거나 자퇴한 청소년

3) 고등학교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아니한 청소년

 

위의 설명을 보고, '~ 자퇴생'이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까지는 '중퇴 청소년', '학교 중도탈락청소년', '학교중단 청소년', '학업중단 청소년', '등교거부 청소년' 등이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2002년 교육부는 이들을 통칭하여 '학업중단 청소년'이라고 명명하였고, 최근 학업중단 청소년들이 학교를 벗어난 것일 뿐 배움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확산됨에 따라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박근수, 김민, 2016), 관련 법의 명칭도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다.

 

2. 현황

 

교육부 조사(2015)에서 20143월부터 20152월 사이에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은 중학생 11702, 고등학생 25318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초중고 통합 학교 밖 청소년은 40만 명 규모이다. 전체 학생 대비 학교 밖 청소년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070.90%, 20090.94%, 20131.01%의 추세를 보였으며, 2013년 고등학생의 경우 1.70%였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조사에서 밝힌 바로는 건강, 심리적·정신적 문제, 가정불화, 가정 경제 사정 등 개인 사정이 10.9%, 공부가 싫어서, 학교에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친구들이 싫어서, 선생님이 싫어서 등 재학하던 학교의 문제가 59.2%이며, 검정고시를 하려고, 내 특기나 소질을 살리고 싶어서 등 대안교육을 찾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경우가 20.4%로 나타났다.

학교를 떠난 이후 경로를 정리해보면, 학업형이 47.6%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무업형 21.6%, 직업형 18.9%, 비행형 11.9%의 순서로 나타났다. 개별 경험으로 보자면 71.5%의 청소년들이 복학하여 학교에 다니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학업형 활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1)

 

3. 인식

 

이처럼 학생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학교를 나오고,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밖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이들을 몇 가지 범주 안에서 규정한다. 학생의 본분을 버리고 학교를 이탈한 문제적 존재, 혹은 학교 밖에서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한 기특한 학생들이다.

 

3.1. 문제적 존재(2)

다수의 연구들은 전자, 문제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 연구는 청소년들이 학교를 나온 후 상당한 정서적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며,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됨을 강조한다.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학업중단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관계부처합동, 2015). 신중한 고민이나 준비 없이 학교를 떠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학업중단숙려제를 도입하거나 자발적 학업중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교육 내 대안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학업중단 비율이 높은 고등학교에 학업중단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 학업중단이 청소년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고 청소년이 학교에 머물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최근의 학교 밖 청소년 연구들은 비교적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유형을 찾고 그에 따른 맞춤형 진로 지도와 복지 지원을 강조하거나(윤철경 외, 2013; 관계부처 합동, 2015), 학업중단과정, 사회적응, 학업복귀 과정 등에 대한 각각의 경험을 담은 질적 연구 (오혜영 외, 2013; 김상현, 양정호, 2013; 오정아 외 2014), 학교 밖 청소년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조아미, 이진숙, 2014) 등이 예시이다.

그러나 그 내용들 역시 학업중단 후 비행, 우울, 불안, 성매매 혹은 성폭력, 학업중단 이전에 문제행동을 했었는지 또는 학업중단 후 문제행동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연구들로 학업중단 청소년들을 문제아 또는 비행청소년으로 보는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2. '모범적' 혹은 '바람직한' 대상

학교 밖 청소년은 불안정한 상태라는 인식에 의해, 그들이 긍정적으로 소개되는 사례는 대부분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가는 경우이다. 학교 밖에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혹은 학교 밖에서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범적'이라거나 '바람직'하다고 소개되는 사례들은 자신의 목표를 찾아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이다. (남기곤, 2011; 백혜정, 2015)

EBS '공부의 왕도'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대안학교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의 사례를 다루며 대안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지 소개한다. 남들과는 다르게 대안 학교를 선택했지만, 노력을 통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어떻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가 얼마나 모범적 학생인지 강조한다. 이후 학생의 이야기는 여러 언론의 기사로, 그의 공부법 저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대안 학교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이상할 것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성공' 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적이다.

 

 

4. 결론

 

몇 년 전 대외활동에서 만난 한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밝고 유쾌하고 친절했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하다가 대안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잖은 충격이 있었다. '저렇게 성격 좋은 애가. 학교를 자퇴했단 말이야?' 세상엔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자퇴의 이유 역시 각양각색이며 그 이후의 삶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학교 밖 청소년들이 왜 학교를 나오게 되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대안 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글을 쓰는 중에 1년 반 동안 가르친 과외 학생이 건강이 문제로 고등학교를 자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학교는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성실한 친구인데 힘들겠네.'라는 걱정과 염려가 뒤따랐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를 위해 만난 식사 자리에서 그 학생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활기차 보였다. 앞으로의 휴식과 공부에 대한 계획을 들으며, 내가 보지 못했고 생각하지 않았던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을 그려보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왜 안전한 학교를 떠나는 것일까?', '청소년은 학교 안에 머물러야만 하는가?',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학업을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학교 밖에서의 학업과 학교의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왜 학교 밖 청소년은 다시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제도권 교육은 청소년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해주어야 하는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는 충분히 다양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만들어진 프레임에 따라 그들을 꼼꼼히 검수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적 대상인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는 기특한 학생인지 분류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껏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에 관한, 대안 교육과 제도권 교육에 관한 앞으로의 글들이 좋은 질문들을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참고 문헌>

관계부처합동(2015). 학업중단 예방 및 학교밖 청소년의 자립역량 강화 학교 밖 청소년 지원대책.

교육부(2015). 교육통계연보

남기곤(2011). 고등학교 단계 학업중단의 경제적 효과 추정. 시장경제연구, 40(3), 63-94

박근수, 김민(2016). 학교 밖 청소년과 학업청소년의 건강실태 비교 연구. 청소 년시설환경, 14(2), 17-26.

박병금, 노필순 (2016). 학교 밖 청소년의 학교중단과정과 학교 밖 생활경험. 청소년학연구, 23(8), 47-78

백혜정, 송미경, 신정민(2015).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정책 체계화 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오혜영, 박현진, 공윤정, 김범구(2013). 현장상담자들이 인식한 학업중단청소년 의 특성과 개입방향. 청소년학연구, 20(12), 153-179.

윤철경, 서정아, 유성렬, 조아미(2014). 학업중단 청소년의 특성과 중단 후 경로 :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데이터분석보고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윤철경, 유성렬, 김신영, 임지연(2013).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 및 지원방 안 연구 I.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상준, 이수경(2013). 2013년 비진학청소년 근로환경 실태조사. 한국직업능력 개발원 보고서.

 


(1) 관계부처합동(2015),「학업중단 예방 및 학교밖 청소년의 자립역량 강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서 윤철경의 분류에 따름 
(2) 박병금, 노필순 (2016), 「학교 밖 청소년의 학교중단과정과 학교 밖 생활경험」 참고

학교의 영양제 중독보건의 속살을 드러내다

 

대학동데친인간

 

1. 학교, 영양제에 의존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양제는 내 생활의 한 축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꼭 영양제를 하나 삼켰다. 영양제 통을 넣어두던 내 사물함에서는 비타민 B의 고약한 냄새가 났고 친구들끼리 어떤 영양제가 좋은지 정보를 교환하고 이번 약이 떨어지면 그 약을 사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영양제를 아무리 먹어도 기력이 나지 않으면 수액을 맞고 기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해서 이런 생활과 거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영양제(1)는 학생의 일상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2. 왜 학교는 영양제에 의존하게 되었나?

 

2.1. 학생의 경우

영양제가 어떻게 학생의 필수품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생이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학교라는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학교는 사회 전체에 팽배한 과로신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다. 현재 학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입시 문화를 생각해보자. 이제는 유행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45네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통상 권장되는 수면시간의 반절만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 풍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의 고등학생들 은 주중 평균 5.65시간 수면을 취한다.(2) 평균치의 맹점을 고려해보면 그보다 훨씬 적게 수면을 취하는 학생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2015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은 하루에 평균 12시간 1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3) 공부가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학습 노동임을 생각할 때, 5시간 잠을 자고 학교에서 12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학생들은 그 어떤 노동자 못지않게 일상적으로 과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2.2. 교사의 경우

학교의 또 다른 주축인 선생님에게 피로를 호소해도 소용은 없다.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정리한 교사들의 행정업무 목록에 따르면 초··고 교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연간 업무 목록은 227가지에 달하며, 교사들이 처리해야하는 행정업무 공문량은 하루 평균 20~30건 수준이다.(4) 올해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사의 32퍼센트가 교직 생활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잡무를 꼽았다.(5) 통계자료로 교사의 과로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내가 만난 선생님들의 예시를 보자.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의 책상에는 언제나 홍삼 팩이 있었고 다른 한 선생님은 수업 준비, 공문 처리, 교내행사 계획 등 과도한 업무 때문에 매일 세 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수업을 하셨다. 그 분은 자조적인 말투로 말씀하곤 하셨다. “저는 오늘도 세 시간을 잤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살지 마세요.” 그러나 그 공간 안에서 마음대로 이렇게 살지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학교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과로를 내면화하고 과로신화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피로는 허락되지 않는다. 피로를 호소해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그렇게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데 꾀병 부리지 말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이제 학교는 과로신화를 내재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 되었다.

 

3. 왜 영양제여야 하는가?

 

3.1. 건강은 이제 개인의 책임

학생이 피로한 것까지는 이해해도 왜 피로를 영양제로 해소하려는지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피로를 해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 개인의 몫이 되었고,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접근 가능한 수단이 영양제로 국한되어있다. 왜 학생의 건강 관리가 개인의 몫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조금 넓게 잡아 국가 차원의 보건정책의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에서 콜린 레이스는 보건과 국가의 관계를 분석하며 자본주의논리가 보건의료 분야에 침투한 결과 해당 분야는 민간 자본의 흐름에 흡수되었음을 지적한다. 19세기 영국에서 보건의학에 발달에 따라 사망률 혁명(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말한다)이 일어난 이후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은 개인이 시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의료상품, 의약품 등을 통해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된 것이다.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는 등한시된다. 덩달아 건강관리를 잘 수행하면 자기관리에 성공한 것으로 칭하며 보상하지만 이에 실패하는 이는 기본적인 자기관리도 되지 않은 개인으로 치부해 탈락시키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지 못해 호흡기 질환에 걸린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현대 사회에서 그는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금연에 실패해 그에 걸맞는 결말을 맞은 개인으로 간주된다. ('보건소에서 금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도 계속 담배를 피우다니, 그것은 그의 잘못이다') 그러나 애초에 담배라도 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환경을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그의 건강을 혼자 관리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6)

건강 유지에 대한 이런 태도는 학생의 행실에 대한 보상과 처벌에서도 드러난다. 출결 기록이 입시 결과에 반영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한 입시 컨설팅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병결이 너무 많아도 입시에서 불리하다.

 

공부를 위한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것도 학생의 의무이기 때문이다.”(7) 이렇게 학생들은 두 가지의 양립 불가능한 목표를 수행할 것을 요구당한다. 턱없이 부족한 휴식을 취하며 과로를 반복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적당히 수면을 취하고 영양을 섭취하는 건강한 표준적생활방식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 산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영양제이다.

 

3.2. 그 틈을 파고드는 영양제 산업

영양제 산업은 과로신화의 필수적인 부품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과로신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보건의 사유화, 개인화에 의해 점차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건강관리를 먹고 성장한다. 이는 영양제의 광고와 홍보 방식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영양제 광고는 피로한 일상을 제시한 후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양제를 제시한다. 여기서 문제는 피로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은 채 미봉책에 불과한 영양제를 궁극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영된 영양제 광고를 살펴보자. 옷가게에서 지나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서비스직 노동자는 접객을 하다 피로를 느끼며 내 적성이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활기찬 내레이션이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니라 피곤한 거에요!”라고 외친다.(8) 이 패턴은 같은 제품의 다른 광고에서도 계속된다. 피로를 유발하는 상황과 처지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영양제를 먹으면 피로가 해결되고, 문제도 없을 거라는 식이다. 그러나  앞에서의 서비스직 노동자가 영양제를 먹고 피로를 일시적으로 해소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피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과한 감정노동과 (아마도) 부족한 휴식이 계속되는데 개인이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 하나로 건강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영양제 산업은 더 깊고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는 우리의 건강과 피로의 문제를 아주 개인적이고 단순한 차원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성장한다.

 

3.3. 영양제를 위한 변명과 의외의 대안

지금까지 영양제에게 너무 불리한 논지를 펼친 게 아닌가 싶어진다. 그렇다면 영양제를 위해 최소한의 변명을 마련해보자. 가능한 변명은 영양제는 적어도 일시적인 피로 해결은, 약속한 것은 이루어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영양제와 같은 맥락에서 태어나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는 영양주사의 경우 약속하는 피로퇴치제와 광범위한 기력 회복제로서의 역할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략) 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도 평가가 마냥 좋지는 않다. 단시간 내 체내에 수액과 함께 영양분을 공급,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기운을 회복한 것처럼 느끼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김경수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 증상이 있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환자 등에게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수액주사를 맞은 이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의학적 지표는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영양소를 체내에 투여해도 즉각적으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없다”(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주사 그 자체보다 일정시간 긴장을 풀고 누워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잠시나마 쌓였던 피로나 통증이 가시는 것”(홍성진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등의 냉혹한 평가마저 나온다.(9)

 

영양제가 홍보된 만큼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는 의외의 지점에서 등장한다. “일정시간 긴장을 풀고 누워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잠시나마 쌓였던 피로나 통증이 가시는 이라는 말을 보자. 이 말을 통해 충분한 휴식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피로 퇴치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첨단 영양제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것보다는 충분한 영양 섭취와 휴식으로 매일의 생활을 확보해내는 것이 더 확실히 건강을 보장할 것이다.

 

 

4. 정말로 건강한 학교를 위하여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다시 개인의 기본 체력과 건강유지가 공공의 과제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영양이 없는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식품산업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모두 광범위하고 긴 작업이 필요한 사안이다. 학교 내부에서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와 그 구성원들이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를 마련할 수는 있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보건교육은 성교육, 전염병 예방교육 등에서 그치고 있으며 학교 보건정책도 전염병 예방과 비만예방 캠페인 정도에서 그친다. 몇몇 지자체에서 건강 교실운영을 논의하고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으로 건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로 건강을 원한다면 학교가 영양제를 입에 털어넣는 손을 멈추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건강인지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1) 이 글에서는 영양제의 범주에 개인병원에서 홍보하는 ‘마늘주사’, ‘비타민주사’와 같은 영양주사도 포함시킨다, 수요를 발생시키는 기제가 일반의약품 형태의 영양제와 같은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2) 「고교생 57%가 하루 6시간도 못 자…장년기 고혈압·당뇨 위험」, 『중앙일보』 2017.09.19 
(3) 아수나로, 『2015 대한민국 초·중·고교 학생 학습시간과 부담에 관한 실태조사』, 2015.
(4) 「우범지대까지 파악하라니…잡무 시달리는 교사들」, 『매일경제』, 2019.04.11.
(5) 「교사 87% "사기 떨어졌다"…최대 고충은 '학부모 민원'(종합)」, 『연합뉴스』, 2019.05.13.
(6) 콜린 레이스, 「건강, 보건의료 그리고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 후마니타스, 2018, pp.34-38.
(7) 「[김형일의 입시컨설팅(96)]-“대입은 전략이다” 학교생활기록부 ② –출결상황·수상경력」, 『미디어펜』, 2019.03.23.
(8) 「[아로나민 골드] 적성에 안 맞는게 아니라.. 혹시!?」, https://youtu.be/rIoa1nyAfaI
(9) 김치중, 「감기에도 숙취에도 수액주사 맞으라는 병원」, 『한국일보』, 2018.12.31.

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공동체의 운영원리가 되는 공간을 꿈꾸며

- 생리공결제 논의를 중심으로

 

고슴도치뇽

 

생리로 인한 결석을 질병결석으로 처리하는 것?

 

20049,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상황에 관하여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이다.”라는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되었다.(1) 그 동안 생리로 인한 결석, 조퇴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리 결석이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증빙서류를 첨부할 때만 병결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그 형태는 학교마다 상이했다. 이 진정에 대해 피진정인은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생리 결석을 허용할 경우, 허위결석으로 인한 수업분위기 저해가 우려되며, 성적처리에 관해서 이전성적의 100%를 인정할 경우, 중간고사를 잘 본 학생은 생리 결석을 악용하여 기말고사를 결시할 것이다.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므로 생리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학교에 휴식시설을 만들어 학교에 와서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건강권이 침해된다고 판단했으며 학생이 생리로 인하여 결석하는 경우 여성의 건강권 및 모성보호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하였다. 피진정인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수업하기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하다고 한 학생은 전체 1441명 중 760명으로 약 52.7%였다. 또한 거의 매달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8.2%였다. 생리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통증을 느끼지만 학생들은 보건실 이용은 되도록 자제했다.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77.1%였으며 보건실에 가더라도 약을 받고 잠을 자는 정도의 휴식을 취하였다. 또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생리 중에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진정인의 주장에 대해 생리통은 드러내지 말고 단지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 혹은 질병에 걸린 상태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학교생활기록부상 결석 처리 및 낮은 성적으로 인한 대학입시에서의 불이익 우려로 학생들이 쾌적하고 안락한 상태에서 신체적 고통을 견디거나 완화시키는 것을 막는다.”고 설명했다.(2)

 

물론 피진정인의 요지 중 긍정적으로 바라볼 부분도 존재했다. 생리가 개인적인 것, 숨겨야 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월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월경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 생리통 완화 등을 위한 휴식시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 등. 또한 피진정인의 신체조건에 따라 휴식과 수업을 선택하도록 하여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록 학교에 출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신체조건이 정상적이라고 판단될 때만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신체조건이 좋지 못할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이 논의를 다양한 신체조건을 가진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의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생리공결제 도입, 그 이후는?

 

이 차별시정 진정 이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권 보호를 위한 생리공결의 필요성을 권고하며 생리공결제가 도입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장은 초, , 고 여학생 중 생리통이 극심해 수업출석이 어려운 경우에는 월 1일에 한해서 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생리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할 경우 현재 병결처럼 종전 시험 성적의 80%를 인정하는 방안을 포함해 인정 범위 등을 학교별로 정하도록 했다.(3) 하지만 이 또한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2018년 개정)생리월경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결석하는 경우를 통해 생리공결을 사용하거나 의사 소견서, 진료 확인서 등 병명, 진료기간 등이 기록된 증빙서류를 첨부한 결석계를 제출하여 생리통으로 인한 질병결석을 한다. 이는 생리공결 도입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대학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부에 권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학 역시 도입의 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학부 차원에서 인정하는 경우, 수업에서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인정하는 경우 등 다양했다.

 

또한 여러 학교에서 생리 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증명 서류를 요구하였다. 현 제도 상 생리통이 심할 경우 진단서 없이도 조퇴나 결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단서를 강요하며 생리 공결 사용을 억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A대학에서는 학생이 병원에 가서 생리통이라고 적혀 있는 진단서를 받아야 하며, B대학에서는 교내 보건소에 가서 소변검사를 하여 생리 중인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4) C예고에서는 생리조퇴를 원하는 학생들이 진단서를 내지 않으면 질병조퇴로 처리한 것이 밝혀졌다.(5)

 

 

무시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

 

이러한 사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여성의 월경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드러난다. 월경은 여성이 경험하는 주기적인 생리적 변화이다. 주기적으로 월경통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의사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만이 경험하는 질병이 아닌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6) 이는 남성의 생리적 현상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부여하고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기교육청은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 여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경기지역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생리 공결을 이용할 때 개인 정보 등을 요구하지 않도록 각 학교에 권고했다.(7)

 

개인이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월경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생리공결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생리공결제 도입 이후 지난해 서울 소재 여학교 중 생리기간 결석을 출석으로 처리한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고등학생 A는 가정교사로부터 생리조퇴를 할 거면 생리대를 갈아서 보건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교실에서 책상에 엎드려 생리통을 참는 것을 택했다.(8) H대 같은 경우에는 생리 날짜를 온라인에 등록해야 공결 신청이 가능한 형태로 생리공결제를 도입했다. 이는 바로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H대 학생 A씨는 생리 날짜를 드러내는 점이 불편하여 아파도 생리공결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9) 또한 진단서를 당일 학교 근무 시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10) 그렇다면 생리통으로 아픈 이는 집에서 쉬기는커녕, 아침 일찍 병원에 가 진단서를 떼고, 학과 사무실 근무 시간 내에 진단서를 제출한 후 집에 돌아와야 한다. 수업을 듣는 것보다 더 힘들다.

 

생리와 질병은 다른가?

 

생리는 여성이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신체적 조건이라는 차원에서 분명 질병과 다르다. 지속적으로 출혈이 있고, 생리용품을 구매해야 하고, 통증을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생리와 질병은 모두 건강한 정상인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정상성은 누구에게 맞춰져있는가. 우리는 항상 정상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정상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을 때가 존재한다면,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생리통뿐만 아니라 질병 결석을 할 때 병원에 가서 통증에 대한 진단서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질병결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아픔은 존재할까? 전문의는 이 사람이 질병결석을 할 만큼 아프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통증을 느끼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그저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진단서를 끊어줄 뿐이다. 개인들의 경험은 전문의가 인정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가령 우리는 학교에 있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아픈 경우가 종종 있지만 질병 결석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진단서를 띄어야 하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경험은 부정되며 꾀병으로만 사고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에서 의학이 인정하기 전에는 개인의 몸에 대한 경험이 소외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에서 생리와 질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입시 속에서 학생은 아프면 안 된다. 개근상은 성실함의 척도가 되고, 우리는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잠깐 보건실에 가서 임시처치를 받는 것인데, 사실상 그들이 받는 처치는 진통제 한 알이다. 학생의 건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생리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질병, 보건시스템, 입시 등에 대한 총체적인 건강권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많은 대학에서 생리공결 도입에 난항을 겪었으며 도입이 되어도 여학생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는 월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생리공결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히려 제도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거나 악용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야할 뿐이었다. 월경하는 몸, 월경하는 여성은 질문되지 않았다. 우리는 월경하는 몸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리공결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교육부에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 보호를 위해 생리 공결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생리공결은 이제까지 모성권 담론에서만 이야기되던 생리가 여학생의 인권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모성보호의 범위는 임신, 출산이라는 모성기능을 보호하라는 것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생리공결은 월경의 경험과 여성의 건강권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생리공결 도입형태에 관해서는 여성의 건강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생리공결을 논의해야 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가 존재한다. 그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개인이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 보장 제도로서의 생리공결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리공결이 여성이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맥락으로 기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신체적 조건과 관련된 여성의 삶과 경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읽혀야할 것이다.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의문이 들 수 있다. 생리를 증명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하면서 생리를 사회적으로 활발히 논의해야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생리는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드러내라는 것인가. 사회에서 생리를 증명하라고 요구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내가 생리를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생리공결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를 악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휴식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를 해야 한다. -의사 진단서를 떼거나 소변검사를 하거나 생리대를 보여주는- 이러한 논의는 생리는 무엇인지, 여성은 생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표면적인 대책들이다. 우리는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기 위해서, 더 활발히 생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경험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긍정되고 그것이 다양한 몸에 대한 공적인 지식으로 논의되며 사회적 조건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공존하는 다양한 몸

 

월경하는 경험들의 발굴을 시작으로 얼마나 다양한 다른 몸들이 공존하는지, 한 주체 안에서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 몸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을 수 없다. 누군가는 매달 피를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만성적으로 장염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생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생리혈이 많지만 통증은 적을 때가 있고, 생리혈의 양은 적지만 생리통이 심할 때도 있다. 각자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두가 편안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몸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구성적인 것의 관계 속에서 재정의 된다. 다양한 몸들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용할 수 있게 월경의 경험들에 주목하고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권이란 무엇일까. 건강권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권리를 넘어서, 나의 신체적·정신적 경험을 인정받고 휴식과 여유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는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이 아플 때 치료받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보건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서로의 다양한 몸에 대해 인지하고 그러한 이해들이 공적 지식으로 활용되어 학교의 운영 원리로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체육수업에서는 운동 종목을 정할 때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체 조건에 맞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생리공결제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 학교라는 공동체의 운영 원리가 누구에게 맞추어져 있는지, 공동체가 운영되는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생리공결제는 단지 교육권의 문제만도, 모성권의 문제만도, 휴식을 취할 권리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생리하는 자, 넓게는 기존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주체들을 공동체 운영의 기준점으로 맞추어봄으로써 환경을 모두에게 장벽 없는 곳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생리결석 관련 모성보호 제도마련 권고>,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6.01.12.
(2) 사건명-여학생 생리시 결석 관련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분류2 성별.
(3) <교육부, 여학생 생리병결 관련 ‘생리 공결제’ 도입키로>, 민중의소리, 2006.01.13.
(4) <소변검사서 필요 vs 신청만 하면...생리공결제 대학마다 들쭉날쭉>, 노컷뉴스, 2011.11.26.
(5) <경북예고, 방과 후 수업 강요·수업료 착복 사실로 들어났다>, 노컷뉴스, 2019.05.22.
(6) 김서화, <월경하는 몸의 권리>, 2009, 87쪽.
(7) 안별, <경기교육청, 여학생 생리 공결제 이용시 증빙서류 금지 권고>, 조선일보, 2019.05.29.
(8) 남지원·장은교·최민지, <8일 여성의 날…“일상 속 성차별 바꿔” 바람>, 경향신문, 2017.03.07.
(9) 이준범, <"생리일 입력하라"…대학가 '생리공결제' 논란>, MBC, 2018.07.28.
(10) 김가람, <생리공결제, 역차별과 모성보호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대저널, 2018.09.08.

아파도 쉴 수 없는 학교

 

BDUCK

 

# 도입 : 왜 학생들은 아파도 쉴 수 없는가?

 

근데요 선생님... 아파서 조퇴하는 건 생기부에 안 올라가죠? 제가 3일 내로 진단서 제출할게요

모두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기억할 것이다. 극중 16회에서는, 혜나가 사망하고 우주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불안감을 견딜 수 없던 예서가 무단조퇴를 해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예서의 엄마 한서진이 취한 행동은, 예서가 혜나와 정이 많이 들어 심적으로 힘들었다며, 담임에게 예서의 생기부기록에 무단조퇴 사실을 빼달라고 말하는 것.

 

# 1. 출석에 집착하는 아이들

스카이캐슬은 학종시대 입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내신, 봉사, 대회, 비교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평가를 받는 학생부 종합전형, 그중에서도 출석기본으로 여겨진다.

깨끗한 생기부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출결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입시 면접에서 질문이 들어올 수 있대요.” 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고3 대입 모의 면접 경험을 말해주며, 생기부 출결상황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수 있으니, 결석한 날에 왜 결석을 했는지 이유를 준비해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 수만휘와 같은 수험생 커뮤니티, 학교에 비치한 면접 후기 자료집을 보면 출결 관련 대입 면접 질문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생에게 생기부의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은 깨끗한 생기부의 오점이 되고, 학생들은 이 오점에 대해 변명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생기부에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의 글자가 찍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거의 원천 차단할 기세로 대응한다. 학생들도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수업을 빠지는 것을 피하게 되고, 그렇게 학종의 기본이 되는 깨끗한 생기부가 완성된다.

 

안 아픈 것이 스펙이 되는 사회, 개근상

학생들에게 깨끗한 생기부를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이 있다. 바로 개근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기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개근은 해당 학년 동안 1회의 결석(또는 지각, 조퇴, 결과)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이 교육부의 개근 용어에 따라 3년간 결석, 지각, 조퇴, 결과가 전무한 자에게 3년 개근상을 수여한다. 이 과정에서 체험학습과 같은 활동은 출석으로 인정하지만, 병결도 결석이기에 병결이 있으면 개근상을 받을 수 없다. 즉 어떤 학생이 개근상을 받았다는 것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기사에 따르면 2017년 서울 고교 졸업생 3년 개근상 비율은 16-36% 사이에서 형성되었다.(1) 같은 해 충북 고교에서는 평균 개근상 비율이 20% 안팎이었다.(2) 과거 졸업식에서 졸업장 개수만큼이나 많았던 개근상을 생각해보면, 개근상의 비율이 최근에 현격히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아직도 5명중 1-2명 가량은 개근상을 받는다. 3년 내내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 학생들은 철인인 것일까?

 

개근상의 다른 이름, 자기주도적 학습상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학종시대고, 생기부가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학생들이 개근상에 덜 집착한다는 것이다. 입시체제 덕분에(?) 개근상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역으로 입시체제는 유사 개근상을 만들어낸다. 이름하여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다. 야간자율학습과 토요자습 등 정규수업 외 자습시간의 출석을 체크하고, 일정 기준 이상 출석하면 생기부 수상실적에 자기주도적 학습상이라는 실적이 기록된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스펙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어 이런 상을 만들었겠지만, 학생들은 정규수업을 넘어 보충, 자습 출결에까지 집착하여야 한다.

 

깨끗한 생기부, 개근상, 자기주도적 학습상 = 성실함?

우리는 왜 이토록 깨끗한 생기부와 개근상을 강조할까? 출결이 평가요소로 작용하는 입시체제 이면에는 빠짐없이 출석하는 것이 곧 성실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반영 되어 있다. 과거 산업화시절, 인적자원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성실함은 하나의 무기였다. 아파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을 우선하는 태도는 공동체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번아웃 증후군 등 병폐가 지적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의 '성실함이 무기'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깊숙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 속에, 대학이 성실한 학생을 원하는 것도, 학생들이 성실함에 목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성실함을 '개근', '출결'이라는 척도로 '측정'할 수 있게 되니 출결은 성실함을 증명하는 '스펙'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은 출석에 집착하게 되며, 때문에 예서 엄마는 담임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고, 학부모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져라"

 

# 2.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보건실을 가면 되잖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다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학생들이 아플 때 학교를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기껏해야 보건실을 가는 것이다.

 

보건교사 없는 학교

의사 없는 병원은 존재하지 않지만, 보건교사 없는 학교는 존재한다. 교육부의 2018년 시도별 보건교사 배치현황에 따르면,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은 학교는 2325개 학교에 달한다. 서울, 경기,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경우 보건교사 배치율은 90% 이상인 반면 산간벽지가 많은 강원, 전남, 제주 등 지역은 보건교사 배치율이 60%대에 불과했다. 학교보건법 개정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에, 보건교사 부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만성적 문제이다. 그리고 보건교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건교사 임용은 의사면허가 아닌 간호사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치료 범위와 약의 종류 또한 한정적이다. 보건실은 학교의 보건교육을 담당하고 임시처치, 구급처치를 하는 곳이지, 병원이 아니다. 이마저도 보건교사는 정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정규수업 시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보충 수업과 야자시간에는 학생들이 아플 때 교무실을 찾아 진통제를 먹는 수밖에 없다. 출결 때문에 학교를 빠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학교 내의 보건시스템이라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보건실보단 병원, 그러나 병결도 쉽지 않다

학생들은 정말 아프면 선택을 해야한다. 참고 학교를 가거나, 결국 병원을 가거나. 전자의 학생들은 개근상을 받을 테고, 후자의 아이들은 치료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자의 아이들이 학교를 아무런 통보 없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무단결석은 학생들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은 대학생과 달리 자체휴강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에겐 단지 무단결석이다. 자체휴강으로 인한 대학생의 성적에서의 불이익과, 무단결석으로 인한 고등학생의 입시에서의 불이익은 그 무게가 다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쉬고 싶지만 무단으로 빠질 수는 없어, 질병결석을 선택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병결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교에 5일 이내에 의사의 진단서 또한 소견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학생들은 무단결석글자를 피하기 위해,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방문해 진단서를 받아내야 한다. 아픈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아픈 것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 3. 아프지만 공부는 해야 해

 

출결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아파도 학교를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인 공부때문이다.

 

아플 때 어떡하나요? 공부하나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은 학생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듯 보인다. 각종 수험생 커뮤니티, 유튜브 공부 채널 질문들을 보면 아플 때 공부를 하는지묻는 질문들이 많다. 서울 소재 외고를 졸업한 B양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만 했던 경험을 말해주었다. “고등학생 내내 생리통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생리 결석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수업을 놓치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수행평가가 자주 있어서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쉴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은 아파도 학교를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운동선수들은 훈련보다 재활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듯, 학생들도 공부보다 쉬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아파서 쉬는 것은 단지 공부를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들에 비해 진도에 뒤쳐지므로 부족한 부분은 따로 보충을 해야 한다. 혹여 선생님이 시험문제라도 집어줬을 때는 자신만 모른다는 불이익이 따른다. 아픈 몸은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서 학교를 빠져도 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학교를 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3, 체력관리는 필수?

가장 공부 노동에 시달리는 고3의 경우, 특히 아픈 몸은 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은 3에게 체력관리는 필수라는 말을 한다. 학생은 공부하기 위해’, ‘아프면 안 되는 존재인가? 슬픈 것은 이 말이 분명히 잘못되었음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대한민국 입시체제 내에서는 이것이 맞는 말이다. 공부노동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체력관리는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아프지 않기 위해 체력관리를 해야한다. 학생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회와 환경이지만, 몸관리와 아픈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아간다. 부산 소재 일반고를 나온 C양은 고등학교 시절 체력관리를 위해 매일 밤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윗몸일으키기 하는 것을 6개월가량 반복했다고 말한다. 학생을 아프게 한 학교와 사회는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 뿐 아니라 공부를 위한 건강관리까지 떠맡아야 한다.

 

# 4. 입시에 종속된 학생들의 건강, 대안은?

 

종합하면, 학생은 아플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아파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개인의 몸 상태는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개개인은 학교를 빠질 정도로 아파서는 안된다. 또한 공부를 위해 학생들은 매 순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 대학 입시에 건강이 종속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안 아픈 것이 대학 입시 스펙이 되고, 아픈 것은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 현실 속에, 학생들이 아픈 와중에도 입시를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청소년의 건강권 논의를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학생들을 병들게 만든 것이 사회이므로, 거시적 차원에서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1) 입시제도 개혁

청소년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건강권 논의 또한 마찬가지로 입시에 개개인의 건강이 종속되는 것으로 그 문제가 드러난다. 때문에 입시제도 개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안일 것이다.

 

·평가의 공간에서 성장의 공간으로

학생들이 수업 진도, 입시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한,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쉬고 싶은 마음이 절대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앞선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상습적인 수행평가 역시 학생들이 아파도 쉴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심적으로 편하게 쉴 수 있게 수업과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업 커리큘럼을 느슨하게 짜거나, 수행평가 규정을 제정해 지나치게 학생들을 묶어놓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학교가 평가가 주가 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 개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평가라는 결과중심의 교육환경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과정중심의 교육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수상실적 축소

입시제도의 전면적은 개혁은 아니더라도, ‘학종의 모순이 많이 지적되고 있는 현 상황에 입시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 학생부 개선사항 안내자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수상실적의 변화이다. 수상실적을 기존의 생기부처럼 모두 기재하되, 대입에 활용되는 것은 학기당 한 개의 수상실적으로 제한했다. 3년동안 최대 6개의 수상실적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개근상 비율이 줄어든 것을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과 관련을 지어 설명했듯, 이처럼 입시에서 출결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면 학생들이 개근상에 집착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수정된 안내자료 역시, 수상실적 활용의 변화로 인해 개근상, 유사개근상과 같은 출결상보다 다른 영역의 수상실적에 학생들이 더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시스템적 대안

결국 만악의 근원(?)은 입시이므로, 근본적인 입시 제도를 개혁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의 대안이 당연히 논의되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행 입시체제 내에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학생도 연가 쓰자, 학생휴가제

앞선 논의에서 개근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출결 관련 상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상 때문이 아니어도 깨끗한 생기부가 성실의 대명사가 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은 출결에 집착할 것이다. 깨끗한 생기부가 미덕이 아니라,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논의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학생휴가제이다. 직장인들은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연차유급휴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평일에 본인이 원하는 날을 정해 근무를 쉴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라는 정기휴가가 있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방학 때 학교를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휴가라 보기 어렵다. 학생휴가제를 도입해 자율적 혹은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될 것이다. 다만 직장의 휴가 역시 눈치를 보며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학생의 휴가 역시 자유롭고 눈치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할 것이다. ‘쉬어도 된다는 건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건 시스템 개편

보건 시스템의 개선에 관해서는, 학생들을 무작정 보건실에 보내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병원을 찾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WHO의 건강증진학교 모델은 학교 구성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영적 건강 및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된 노력을 통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총체적이며 포괄적인 접근법이다. 지역사회간호학회지가 조사한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의 건강증진학교 운영유형에 따르면, 건강증진학교 6개 요소에서 가장 낮은 수행을 보인 영역은 지역사회 연계였다.(3) 학교 내의 부족한 보건시스템에만 의지하지 말고, 학생들의 종합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역사회 보건시스템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3) 근본적 대안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찾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입법이나 학교 시스템 자체의 변화로써 기대할 수 있다. 건강권은 결국 청소년의 수많은 권리 중 하나이니 건강권 논의를 넘어서 학생들의 전반적인 권리를 찾는 것이다.

 

·학생의 목소리가 학교에 닿아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학교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은 학교의 중추적 구성원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학교에 전달할 방법은 많지 않다. 또한 논의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학교를 포함한 상부에 전달될지 역시 미지수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학생들은 건강권뿐 아니라 다른 어떤 권리의 보장도 힘들어진다. 학교나 지자체의 조직적인 운영기구, 하다 못해 sns를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소통창구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실제적 정책 집행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만 10~18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 기구인 지역청소년교육의회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201831개 시·군 지역학생의회 청소년들은 52개의 정책제안서를 제출했고, 그 중의 실제로 정책에 반영된 의견 또한 존재한다.(4)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강권을 포함한 폭넓은 청소년들의 권리보장을 위해서 학생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

학생들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을 규정한 마땅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 교육청 단위 중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전북의 4개 뿐이다. 이마저도 폐지해야 한다고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기본적인 인권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권 보장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뜨거운 감자였던 경남학생인권조례는 제25쾌적한 교육환경과 건강권이란 이름으로 건강권을 명시한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안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의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하며, 건강권 또한 청소년의 권리로 논의되어야 한다.

 

# 결론 : 무엇이 건강한학교인가?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노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깨끗한 출결 상황(생활기록부)은 성실함의 징표이자, 곧 성실히 (공부) 노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무기로 작용한다. 또한 모두가 공부노동을 하는 상황 속에 학교를 쉰다는 것은, 시스템에 뒤처지고 있는 개인을 한 명의 낙오자로 만든다. 개인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일정 수준 이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몸은 평가의 장이 되어버린다. 또한 건강관리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관리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탓으로 치부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아파도 학교를 가는 학생만 있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아파도 출근하는 직장인도 존재한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의 몸을 오로지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몸은 도구화되어서는 안되며,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개인의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학교는 어떠한가? 성실함의 증명을 위해 아파도 학교에 앉아 출석을 받아내고, 수행평가와 시험을 치러야 한다. 아프면 병원이 아닌 보건시스템이 미비한 보건실에 가야하며, 아파도 공부라는 과업은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종착역은 입시이다. 결론적으로 개개인의 몸은 매 순간순간마다 입시라는 평가를 위해 행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학교는 성장을 다루는 공간이라 할 수 없다. 철저히 평가를 위해 개인의 몸을 이용하는 공간이다.

아파도 학교를 쉴 수 없다는 것은, 학생들이 건강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성원 모두가 개근상을 받고, 문자 그대로 아프지 않은 학교는 진정 건강한 학교가 아니다. 출결에 집착하지 않는 학교, 개인의 몸이 수동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성장의 주체가 되는 학교, 아파도 쉴 수 있는 학교가 진짜 건강한 학교일 것이다.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9/2017020900314.html
(2) https://www.nocutnews.co.kr/news/4731289?page=1
(3)  지역사회간호학회지 제24권 제3호, 2013년 9월, pp.283-286
(4) http://www.km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63

공교육 정상화 담론 톺아보기

 

당근

 

1. 드라마 스카이캐슬애청자의 탄식

 

사교육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매년, 매달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뉴스가 등장한다. 너무 단골 소재라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 쉽사리 분석하기가 어려워 그런지, 중요한 문제인데도 납득할만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드물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한 드라마에서 강남, 대치동의 사교육을 주제로 흥미진진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대치 키드대치맘의 생활 면면을 잘 소개했다는 이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인 모두가 금요일, 토요일 밤엔 티비 앞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각종 미디어에서 결말에 대해 온갖 예측을 하고, 대본 유출 사건도 발생할 만큼 기대가 고조되었던 결말은! 정말 너무 허무했다... 이 글에서 드라마 비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허무한 결말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결말에 관한 흥미로운 비평은 다음 글을 추천한다.(1))

스카이 캐슬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욕망, 그들이 누리는 것들, 접근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상세하게 묘사한다. 유투브나 SNS 등에서 실제 대치 키드로 자라왔던 이들은 정말 훌륭한 르포를 그려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들 부모가 어떤 욕망을 가지게 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 자식도 의사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공감하니까딱히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는 부모들의 욕망과 그를 이용하는 사교육 업자들의 결탁과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청소년을 그려내고 그 현상 묘사에 집중한다. 이는 어쨌든 부모들의 욕심이 문제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부모가 반성하고, 욕심을 버리고, 스카이 캐슬을 떠나면 된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은 선행학습과 관련하여 많이 나왔던 이 이야기와 동일하다. ‘경기장에서 모두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가 앞 사람이 경기를 더 잘 보고 싶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뒷 사람도, 뒷 사람의 뒷 사람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경기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선행학습을 한 결과, 모든 학생이 교육과정을 훨씬 앞서나가 공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고, 선행을 이미 마친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지루하니까 자게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이 과열되었고, 매년 사교육 규모는 수조원에 달하며, 학교는 교육 불가능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표적인 대안은 공교육 정상화방안이다. 사교육을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학교의 교육적 역량을 강화하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만들고 모두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2. 공교육 정상화(2): 무엇을 정상화 하겠다는 말일까?

 

'공교육 정상화'가 통용되고 있는 맥락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1) 문제는 사교육!

사교육 시장의 과열, 사교육에 쏟는 지나친 비용, 사교육에서 실시하는 경쟁적인,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광고를 억제하고, 사교육 시간 자체를 단축하여 사교육을 억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스카이 캐슬이 가진 대표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고, 남경필 전 도지사가 사교육 폐지 및 공교육 정상화 방안 토론회에서 사교육은 마약이니 함께 끊자고 한 것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입장은 어느 선에서는 사교육의 문제를 계층 재생산과 불평등의 문제로 이야기하며, 과도한 사교육의 억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맞닿아 있다.

 

(2) 학교를 바꾸자- 공교육의 교육 역량 쇄신

두 번째 입장은 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 것에는 학교의 무능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으로, 공교육 개혁을 통해 학교를 자는 곳이 아니라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정말 말 그대로 학교 교육기능의 회복을

이끌어내자는 주장이다. 개혁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학교가 자기 혁신을 통

해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공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학교가 교육 가능한 곳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어떤 개혁을 할 것이냐에 따라 학교체제 개편을 통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고, 교원 성과급제와 교원 평가로 교사 역량을 강화하자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 또 학교를 플랫폼으로 사고하고 사교육을 학교 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추민규 도의원은 학교 방과후를 통해 학원 강의를 허용하면 공교육을 통해 다원화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3) 추의원의 입장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교원의 역량 증진의 방향성도, 일반고 전성시대의 의미도 결국 상급학교 진학과 관련된 능력과 성과라는 점에서 학교의 학원화라는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3) 학교를 바꾸자- 대입제도 개선으로 학교에 숨통을!

학교를 바꾸자는 두 번째 입장은 현장 교사와 교육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학교의 여러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는 대입제도로 꼽고 이를 전제조건으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 입장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즉 기획된 교육과정과 실제 학교의 운영과 평가를 맞추어 나가는 것으로 규정한다.(4)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입제도 전반의 개혁을 통해 과열된 경쟁을 완화하고, 이를 전제로 학교가 교육 불가능의 공간에서 탈피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강조한다.

 

이 입장들은 강조점에 따라 분류한 것이나, 각각이 다 다른 주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각 주장은 사교육을 억제하는 동시에 대입 제도를 개편하자거나, 공교육 역량 쇄신, 학교 경쟁력 강화로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이자는 식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각각 또는 통합되어,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 정상화법 제정, 교원평가 및 교원성과급제, 대입제도 개편 등의 현실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알 듯 이 대안들은 학교를 딱히 정상화하지 못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3. 공교육 정상화 주장의 전제

 

이 지점에서 나는 정상화담론에 깔린 전제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악이며 학교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공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게으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공교육이 본받아야 할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그려진다. 어느 쪽이든 공교육과 사교육은 적대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앞의 글, “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에서 언급되었듯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기보다 오히려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아무리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해도, 결국 사교육은 학교와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운영된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관계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학교에서 시험으로 학생들을 가르고 그에 따라 차별적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학원에 대한 수요가 창출된다. 한 토론회에 참여한 학부모 백선숙씨도, 공교육이 평가기관으로 전락하여 사교육 수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5)

이것은 학교가 생존경쟁이 심화되는 외부의 상황에 휩쓸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학교는 이 과정에서도 공모자였다. 학교는 교육의 서열화와 평가중심 교육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대신, 평가주도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평가 방식을 혁신하면 교육 현장의 크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시장을 위한 인간 자원 평가기관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는 개선하려 들지 않고, 그 평가 방식을요렇게 조렇게바꿔서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학원의 연속성은 예비교사들이 학원과 과외를 통해 수업경험을 쌓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교원양성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 실무 경험은 아주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학원가에서 학생이나 수업에 대한 노하우를 쌓는 경우는 흔하다. 또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원은 방과 후,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앞으로 학원이 아이들을 픽업하고, 간식 등도 챙겨 먹이는 모습은 학교와 학원이 일종의 돌봄 바톤터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운영이 전업주부 어머니를 전제하고 기획되고, 강사 인력이나 공간, 예산 문제로 방과 후 돌봄에는 적극적 개입을 포기하면서, 돌봄이 개인화, 외주화된 양상이라 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사보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6) ) 두 상황 모두, 학교가 교육을 담당할 인력과 아이들을 학원에 뺏기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사교육이 담당하도록 방치하거나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4. 공교육 정상화 담론의 문제

 

이렇듯 공교육 정상화 담론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의존하고, 연속적이라는 사실, 때로 서로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각 입장들을 돌아보면 또 다른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사교육을 문제로 지적하는 첫 번째 입장은 사교육을 제외한 학교에서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사교육을 교육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공교육에 내재한 문제를 은폐하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데 급급한 주장이 되기 십상이다. 예산과 인력의 문제, 교육과정 운영과 그 내용의 문제, 또 학교 운영원리의 문제, 학생과의 관계의 문제로 다뤄질 수 있는 문제들임에도 결국은 사교육에서 원인을 찾거나, 우선순위를 사교육 해결로 배치하는 식이 된다.

또 한편으로 사교육을 교육문제 가운데 핵심으로 꼽는 것은 다분히 계층, 지역 한정적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특정 지역에서 많은 학생과 부모의 관심사와 최우선순위인 것,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사교육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밖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학생들은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교사의 말을 쉽사리 거역할 수 없으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환경에서 고유한 욕구를 무시당한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낀다.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학교 자체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사교육이 학교의 핵심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다양한 청소년과 학생들로부터 나온 목소리가 아닐 수 있다 생각한다.

 

공교육의 교육 역량을 쇄신하자는 두 번째 입장은 결국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공식적 입시학원과 좋은 강사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학교가 스스로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기관으로 인정해버리면, 학교와 교사의 역량 강화도 진학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이해되고 평가된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의 역량강화는 결과적으로 학생이 학원으로 가는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전혀 공공적이지 않다. 스스로 더 나은 학원임을 증명한 꼴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역량강화가 사교육 감소로 이어질 확률도 낮다. 우리는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교육환경을 잘 갖추고 유능한 교사를 배치하며, 학교 전반의 역량을 강화했음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오히려 더 본격적인 경쟁의 장에서 학생들은 고통 받을 뿐이다.

동시에 언급했듯 이 기조는 학교 지금까지 해왔던 평가주도 교육의 연속일 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입시제도에 기대어 그 권위를 빌려 교육을 운영하는 한, 입시교육을 넘어선 교육은 불가능하다.

 

대입제도를 개편하여 교육과정을 정상화하자는 마지막 입장은 어떤가? 이 입장은 적어도 입시제도에 의존하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변화를 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잘 실시하는 게 정말 학교의 정상화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과정 자체, 그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어렵고 양이 많다. 도덕과의 예시를 든다면, 학생들이 칸트의 주요 논지가 무엇인지 한 두 차례의 수업 안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 칸트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대체 누구의 입장일까? 학교를 다니는 12년 내내, 선생님들은 진도 나가기에 바빴다. 교육과정 상의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정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판단과 결정의 권한을 주어,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게 하면 좀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5. ‘학교의 정상화라는 말의 함정

 

그래서 지금까지의 공교육 정상화 담론이 문제라면, 사교육에 대해서 아니면 학교의 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과 대안이 필요할까? 이제 학교의 어떤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할 것인지를 다시 논의해야 하나?

그런데 그보다, 나는 정상화라는 말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어떤 것을 정상화하겠다는 말은 현재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말이고, 이는 정상을 무엇으로 볼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결정적으로 이 사회에서 정상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이 사회에서 학생들이 종일 놀고, 듣고 싶을 때만 수업을 듣고, 교복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염색하는 것은 정상적인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피임기구를 사는 것도 인권이라는 주장은?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일제고사에 반대한다고 학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교사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를 정상화하자고만 말하면, 교육청의 시선, 교장선생님의 시선, 혹은 힘 있는 이들의 시선에서 본 학교의 병리적인 현상만 문제로 지적될 것만 같다. 학교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고자 하는 청소년들, 다른 교육적 시도를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묵살될 것만 같다.

그래서 공교육 정상화말고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가 교육이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답을 내놓을 때 이제는 그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가 바뀌려면 바로 그 공간의 사람들이 다른 인식, 문제제기를 내놓고, 그를 바탕으로 그 공간의 정치들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뜻 대안을 말하기가 주저된다. 그 공간의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다소 무책임한 후반부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조건만 짧게 다루려 한다. 그 조건은 바로 학교의 민주주의 확대라 생각한다.

학교가 구성원이 말 할 수 있는 공간,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일단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의 민주주의에서는 학교 운영의 민주주의, 교무실의 민주주의, 교실의 민주주의라는 세 층위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각 구성원들이 개입할 수 있을 때, 교사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가 교사에게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때, 교사도 학생에게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의 의사결정에 있어 관련 당사자들의 권한을 가질 때, 그래서 교사가 평등한 관계 속에 있을 때, 학생과 교사도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다시 학생 간에도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쉽다고 생각한다. 교장선생님뿐 아니라 막내 교사도, 신입생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질 때 학생들과 교사는 참았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가며

 

글을 쓰며 가장 많이 마주했던 질문이 있다. 그럼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할건데? 혹은 그럼 대학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 할 수 있는데?처럼 평가와 선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그 요구가 꼭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와 윤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공정성의 요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여러 현실과 고민의 반영일 것이다. 경쟁과 생존이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 노력 없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노,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들에 질문을 중단하고 경쟁에 몰입하기로 한 결정 등과 같이 말이다. 어쨌든 공정성이 중요한 요구가 된 이유는 사람들이 공정하다면 더 나은 삶을 누릴 확률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두려움이 숨어있다. 경쟁에서 탈락한다면 결과에 승복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그리고 내가 탈락하면 절대 안 된다고... 교육과정, 시험, 입시는 이런 종류의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내면화하게 만든다.

그러나 공정성은 일말의 희망을 내포하지만, 결국 우리 중 일부를 행복하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넘어,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행복과 그를 위한 제반조건들이 우리가 경쟁을 통해 성취해야할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 조건들이 권리로서 당연히 보장되는 것들이라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의 규칙을 잘 만들라고 요구하는 대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1)듀나, ‘SKY 캐슬 유현미 작가만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들’, 엔터미디어, 2019.02.02
(2)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은 2000년,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요구안에서 처음 등장했다.(고형규, ‘전교조 합법화 1주년 –공교육 정상화, 제도 개선 추진’, 매일경제, 2000.06.30.) 전교조는 당시 한국교육의 문제를 과도한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에 의한 공공성 약화로 꼽고, 공교육 정상화는 곧 공공성 확립이라 규정했다. 전교조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대표적으로 교육재정의 감소이며, 이는 공공성 약화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에, 교육재정을 전체 예산의 6%선으로 늘리고, 자립형 사립고, 수준별 수업, 교원 성과급제, 교원 비정규직화 등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중단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육재정을 확보하면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교육의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어 공공성을 확대할 수 있고, 동시에 재정 충원을 통해 공교육 전반의 수준 상향과 질적 심화를 이루어내 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다는 한 것이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 정상화‘’, pp.1~4.)
(3) 송진식, ‘“학교서 학원 강의 허용” 황당한 도의원’, 경향, 2019.07.03. 
(4) 홍선주 외, ‘공교육정상화법의 성과와 한계를 통해 살펴본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과 과제’, “학습자중심교과교육 연구”, 16(3), 2016, pp.1037~1041.
(5) 백선숙(학부모), ‘대한민국의 부모에게 사교육이란? 대안과 문화가 된 현실 - 사교육폐지보다 공교육 정상화가 먼저인 이유’, “사교육 폐지 및 교육정상화 방안 토론회”,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김용태 의원실.
(6) 아이는 학원이 키운다…'사교육' 넘은 '사보육', mbc 전동혁 기자, 2019-03-12 

"1타 강사 위주로 공부했어요."

 

유한량

 

 

#우리의 사교육: 우리들은 어떻게 대학에 왔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원어민 쌤들만 있고 레벨 나눠진 학원이었어. 내가 레벨의 맨 꼴지반이었어. 근데 실력별로 반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인거야. 못하는 애들끼리만 모아두는 게. 레벨이 한 두개도 아니고. 맨날 자괴감 들고, 책은 또 이렇게 많아서 캐리어 끌고 다니고. 거의 울면서 학원 다녔어.”

진짜 대치키드네.”

, 나 진짜 대치키드였어.”

강남권의 일반여고를 졸업한 C양이 말했다. 그에 이어서 경기도의 한 외고를 졸업한 P양이 말을 이었다.

고등학생 때 들었던 인강에서 쌤이, 학원 옆 고시원이 있는데, 지방 친구들이 거기서 잠을 자면서 학원을 다닌다는거야. 물론 난 그거 듣고 에이, 말도 안 돼이랬지. 그런데 10월달에 면접학원을 가려고 대치동을 갔는데, 엄청 큰 대치 이강학원(1) 건물 옆에 몇 층짜리 고시원이 있는 거야, 학원 건물 바로 옆에. 그게 수요가 있으니까 운영이 되는거잖아?”

 

서울 강남권 고등학교를 졸업한 C, 경기도 외고를 졸업한 P, 서울 노원구의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한 K, 경북 소재의 농어촌 고등학교를 졸업한 B양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이다. 이 네 명은 모두 본인들이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하며 대입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들에게 있어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 과정이 폭력적이든, 비교육적이든 결론적으로 이들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가 별거인 사회에서는 사실 이것이면 끝이기 때문이다.

 

총사교육비가 19조가 넘는 이 사회 속에서, 대학에 가기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은 이들만의 경험이 아니다. 어쩌면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대학에 오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고, 대학에 온 학생들도 사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오기 위해서 과외를 받았고, 학원에 다녔으며,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면 끝일까?

 

#현실에서의 사교육: 교육의 도구화

 

사교육(私敎育):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교육.(2)

사교육은 대체로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며 학교 수업 보충이 주된 목적이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2018, 총사교육비는 195000억원에 달하고, 전체학생 월평균 1인당 사교육비는 29.1만원에 달했다.(3) 전년도에 비하면 7.0%(1.9만원)증가했고,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187천억원)대비 4.4% 증가했다. 심지어 이러한 통계자료가 현실과 뒤떨어진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는데, 고소득자가 통계조사에서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4)

 

사교육이 학생의 학습을 돕는 것은 사실이다. 내신, 수능, 면접, 자소서 등 대입에서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을 대신하여 사교육은 학생의 시간을 관리해주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학생의 의사결정이 주가 되지 않는 순간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사교육은 지극히 수도권적인 현상이라는 점과 소득의 측면에서 교육의 불평등을 야기하며 학생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과가 어찌됐던 간에 학생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불행한 학생, ‘불행한 학생이었던 사람은 많이 있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의 원인에는 교육의 도구화가 있다. 교육을 사회적, 개인적 욕망 실현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나쁘냐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말 그대로 써먹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도구화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교육을 도구로 활용하는데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교육을 받는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주로 교육이 소득, 계층 이동,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대입과 연결되며 사교육은 점차 과열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게도 저소득계층에서 특히 더 잘 나타난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9.9만원으로 전체 중에서 제일 낮았지만 증가율은 5.9%로 전체 계층 중에 가장 높았다. 사교육 참여율도 마찬가지로 전년대비 3.3%포인트 증가하며 전체 계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5) 이러한 지표는 사교육이 보육의 역할을 한다는 특성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사람들이 교육을 계층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교육이 그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 특성상 교육은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되며, 계층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은 통계자료가 증명해주고 있는 바이다.(6)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사람들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으며, 그 기능에 목매고 있다.

이상적인 교육은 한 사람이 한 사회에서 1인분의 역할을 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양한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그의 이상적 취지보단, 제도권 안의 특정 직업, 사회에서 정해진 길을 반복하여 비추는 데에서 그친다. 우리의 교육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로의 루트를 견고히 하며 그 밖의 상황은 알려주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제도권 밖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깜깜한 공간이 된다.

결국 그 미지의 공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학생들은 어쨌거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남들보다 더 잘하고, 더 좋은 등급을 얻기 위해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학원에 등록한다. 이러한 사교육의 범람은 다시 그 제도권을 공고하게 다듬는 역할을 하고, 결국 이 악순환은 반복된다.

 

#교육 불가능: 공교육과 사교육

 

우리학교는 대체로 다 정시로 대학을 갔거든. 그래서 쌤들이 수시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수시는 알아서 다 준비하래. 그러면 솔직히 선생님들한테 신뢰가 안 가잖아? 그럼 학원을 갈 수밖에 없지.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도 못해. 그냥 책을 읽는 느낌인거지. 가르치지 않고. 의욕도 없으셔. 그게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애들이 먼저 학원에서 다 배워

와서 쌤이 의욕이 없는건지, 쌤이 의욕이 없어서 애들이 학원을 다니는지는 모르겠어. 그럼에도 나는 수업을 왜 들었냐면, 난 수시로 대학을 갔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내신 문제는 학교 선생님이 내니까. 근데 정시하는 친구들은 수업 하나도 안 들었어. 맨날 자고.”

맞아, 우리 학교도 그랬어.”

 

사교육비가 오르는 이유, 혹은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는 대입을 위함이다. 특히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대중들에게 대입제도의 불확실성이 확산되었고, 이것은 학교와 정부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위태롭다고 해도, 이 경쟁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하여도 어찌 됐든 학생은 이 제도권에서 버텨야 한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공교육은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 맹목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식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결국 그 신뢰도는 다시 사교육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사교육과 공교육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은 종속적이고, 연속적이다. 사교육의 목적은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서로가 대립적인 관계라고 착각하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의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연대의 공현은 이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가, 공교육과 사교육이 대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이 늘어나는 것은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못해서이고, 학교 교육이 강화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이고 종속적이다. 대부분의 보습 학원이나 입시 대비 사교육에서 하는 것은 결국 학교 교육과정의 내용을 미리 또는 반복하여 배우는 것이며, 학교 시험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연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의 뿌리이자 몸통은 현재의 공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이 정말로 공공성을 구현하는 '공교육다운' 것인지 따져 물을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사교육을 대체하려 애쓰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다. 만약 수준 높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인다면 이를 따라가기 위해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학교 수업과 시험의 중요도를 높인다고 해도 사교육 감소에는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과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며 입시에서 학교 내 시험 성적(내신) 반영을 늘린 결과가 내신 대비 사교육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교육이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이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경쟁에서 유리해지고자 하는 현상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더 많이, 더 잘 가르친다고 해도 부가적인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프리세안> 74일 자 사교육의 뿌리는 공교육이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자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발을 옮기는 이유가 학교에서 잘 못 가르쳐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교육에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보다 원초적인 담론인 공교육에 관해 나눠야 한다.

공교육은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며,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의 목적을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공교육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학생들은 평가되고 등급이 나눠지며 서로 경쟁하고, 과잉 학습에 노출되어 본인의 인권을 포기한다. 결국 학생들이 불행한 이유는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해서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이라는 나무의 줄기일 뿐이다. 줄기를 바꾸기 위해선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바꿔야 한다. 사교육은 그저 공교육의 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공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된 길이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무얼 얻었는가?

 

인권은?”

인권? 고등학생 때 나는 공부하는 기계였지 인간이 아니야…… 기계한테 인권을 논하네? (웃음)”

학원은, 주변에서 그렇게 다들 다니니까 따라서 같이 간 것 같아.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좀 힘들었지. 공부하는 이유는 몰랐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만 했고.”

 

지금은 공부하는 이유, 알아?”

으음, 아니? (웃음) 잘 모르겠어.”

인터뷰를 정리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적어도 이들에게 사교육은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육? 이들에게 교육은 성공한 것일까? 12년동안 공교육과 더불어 수많은 사교육을 받았고, 많은 문제집을 풀었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를 거쳐 지나갔던 수많은 교육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리는 그 교육에게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는 진정 승리자가 맞는 것일까?

 

 

대치, 목동, 분당, 일산 후곡과 백마 등 유명 학원가가 있다. 스타 강사와 일타 강사가 있고, 자녀가 그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학부모들은 아침부터 줄을 선다.(7) 드라마가 아니고, 소설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학생들의 현실이다.(8)

 

 


(1)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명한 대입학원. 스타강사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많이 한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교육부, 통계청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
(4) http://news.bizwatch.co.kr/article/policy/2019/05/29/0020/naver
(5)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346371
(6)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573694

(7)https://m.news.naver.com/memoRankingRead.nhn?oid=025&aid=0002911157&sid1=102&date=2019053111&ntype=MEMORANKING
(8)어쩌면 수도권만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오만함을 예민함으로 바꾸는 일

 

이물

 

,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다른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글을 못 쓰겠어서요. 교육저널을 하면서, 아니 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나 노트북의 흰 화면이 두려운 적이 없었습니다. 마감 기한은 거듭 미뤄져가고, 글을 더 진척시킬 아이디어는 없고, 그걸 떠올릴 의지는 더더욱 없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면 그나마 변명거리라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더 힘들었겠지요.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자신이 없어서 매번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내가 말하고 싶은 그만큼, 책임을 질 수 있는 논리나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만하다고나 할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유는 몰라. 이제까지 그렇게 오만하게 생각하며 학교를 다녀왔던 거 같은데, 이번 호를 준비하며 속된 말로 뽀록(?)이 나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오만함을 몇 개 더 얹어보려 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백과사전처럼 온갖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오만함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요. 내가 어떤 곳에 서있어야 할지, 어떤 편파성과 당위를 떠올리고, 어떤 주장을 희망하면서, 그에 맞는 논리를 찾아갈지. 물론 그런 오만함이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고 자신의 확신을 내려놓거나 교체할 수도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이 있어야할 위치를 감각하는 능력, 그 위치가 적절한지 거듭 돌이켜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나가는 일, 오만함에 책임감과 논리를 얹어 예민함으로 바꿔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은 저보다 훨씬 더 그런 일을 잘 수행해주었습니다. 공교육-사교육의 대립을 비틀고, 정형화된 입시를 넘어선 교육이 가능한 시대를 다시 요청했습니다. 스펙화된 학생의 아픔을 건져 올려, 주사 몇 방이 아니라 다양한 몸과 경험으로, 우리 삶의 권리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을 만나 학교라는 제도의 이면,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난민지위 인정 현황을 좇아가며, 공동체는 한 때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겼습니다. 교수 성폭력 사건에서 성폭력권력이라는 익숙하지만 어려운 명제를 또렷이 기억하려했습니다. 모두 웬만한 예민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고, 우리에게 새롭지만 근본적이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서 학교는, 건강한 삶은,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가?

 

교육 현장과 교육 자체에 대한 우리의 작업이, 대학이나 학교 같은 다른 교육기관의 그것보다 더 오만할 수는 있어도, 덕분에 덜 예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교육저널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번 호를 읽는 여러분에게도 이 예민함들이 즐거운 긴장으로 가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실없는 소리가 제가 저지른 오만함에 조금이라도 면죄부를 얹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2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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