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인정심사 현장
대학동데친인간
땡볕이 쏟아지는 화요일 오후 양천구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의 작은 앞마당이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이란 난민 소년' 김민혁 군의 아버지가 지난 16년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후 난민 지위 재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김민혁 군은 아버지의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별관 앞마당의 자리를 지키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는 지난 18년 11월 NCCK 총회부터 김민혁 군 부자와 연대해왔으며 이날 시위 현장에서도 김민혁 군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NCCK 정의/평화국의 박영락 부장은 "한국에서 난민법이 제정되었다 해도, 현재의 난민법은 난민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법"이라 말하며 난민 심사 과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연대를 위해 수업시간과 출장 일정까지 바꾸어 이날 시위현장에 도착한 영종중 교사 조수진(전국교원노동조합 소속)씨는 이번 심사 결과가 한국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라 말했다. 영종중 관내에는 난민 약 80여명을 억류하고 있는 인천공항이 있으며 이번 심사결과는 그들을 포함한 국내의 모든 난민들에게 영향을 주리란 점을 강조했다. 조 씨는 "학교탈출+"라는 영종중 교내 인권동아리 지도교사이다. 동아리 학생들은 학교 지역사회와 밀접히 관련된(영종도에 있는 인천공항에는 19년 1월 기준 74명이 억류되어 있다.)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 활동을 하던 도중 국가인권위원회 행사에서 처음 김민혁 군을 만나 연대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지의 뜻을 담은 피켓을 제작해 현장에 전달했으며 계속 조 씨에게 연락을 하며 심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입을 모아 심사 과정의 비전문성과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신앙심을 입증하라며 심사 과정에서 김민혁 군과 아버지에게 십계명과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찬송가를 부를 것을 요구했다.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김 군의 아버지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박영락 부장은 "신앙심은 암기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심사 과정을 비판했다.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김 군은 심사의 비합리성을 간략하지만 인상깊게 표현했다. "신부님께서 '나 사제시험 볼 때보다 심하네. 내일 민혁이 신부님 될 수 있겠다' 고 농담하시더라고요." 그는 계속 쏟아지는 인터뷰와 사진촬영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긴장을 덜기 위해 농담을 꺼내거나 연대단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이날의 심사는 기존 예상되던 두시간을 훌쩍 넘어 다섯시간이 넘어서야 종료되었다. 6월 18일에는 '법무부 난민 면접 조작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가 개최되어 난민들이 직접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일부가 면접 내용을 조작한 사실을 고발했다. 시위로부터 한달 반이 넘게 지난 7월 27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김 군의 아버지에 대한 난민심사 기간을 20년 2월 19일까지로 일방적으로 연장했다.
<교육저널>의 편집 마감 직전인 8월 8일 김민혁군 아버지의 인도적 체류 지위만 인정되고 난민 지위는 불인정 판정되었다. 미성년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1년마다 연장되며 최대 3년까지만 취업도 불가능한 불안정한 신분으로 체류하는 것만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교육저널> 편집부는 김민혁군 부자의 상황을 꾸준히 알리고 힘을 모아온 오현록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이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글을 지면에 싣는다.
법무부는 최소한의 공정성도 없었다
-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불인정 사유서 분석
오현록 선생님
8일 오후 1시 5분 경,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 앞 마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얼어붙었다. 김민혁군과 아버지가 함께 심사결과 통보를 받으러 청사 안 난민과에 올라간 지 불과 5분 만에 날아든 비보, 김민혁군 아버지의 '난민불인정, 조건부 인도적 체류 결정'.
심사결과를 함께 나누기 위해 동행한 민혁군 친구들이나 취재를 위해 별관을 찾은 기자들이나 한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재난 문자가 날아드는 폭염이 쏟아지는 날씨였는데도 말이다.
재난문자와도 같은 난민불인정 결정
신청인의 주장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되지 않으나,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체류를 허가함. -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
신청인은 난민법상 난민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어 난민불인정 결정한다. 다만, 신청인이 난민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난민으로 인정받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인도적 체류 허가를 부여한다. -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불인정 사유서
먼저 통지서와 사유서에 담긴 결정의 의미를 분석해 보자.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사유는 두 가지였다. 가족재결합사유와 난민사유. 출입국청의 이번 결정은 난민사유에 대해 박해 위험이 근거 없다고 부정한 것이며, 가족재결합사유에 대해 조건을 붙여 '난민'이 아닌 '인도적 체류자'로 답한 것이다.
1년짜리 인도적 체류 기간을 해마다 연장 심사받아가며 늘려나가봐야 길어도 3년, 민혁군이 성년이 되는 3년 뒤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은, 무서운 시한부 조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결정, 인도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비겁하고 냉정한 조치.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이번 조치는 난민법의 다음 조항, 가족재결합 원칙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킨다.
난민으로 인정된 자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입국을 허가한다 (난민법37조, 입국허가 조항)
출입국청의 결정대로라면 앞으로 난민인정자의 미성년 자녀는 우리나라에 입국해 성년까지 인도적체류자로 부모와 함께 지내다가 성년이 되면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때 가족재결합이란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것이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인도적인 논리인 셈이다.
이란사회가 배교자에 대해 심각한 박해를 하지 않는다는 억지
'1년에서 3년까지 본국으로 추방을 유예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민혁군 아버지가 받아든 통지서에 담긴 의미다. 그런데 이 같은 결정은 정당한 것일까? 출입국청이 무참하게 무시한 난민사유를 다시 살펴보자. 사유서의 난민불인정 핵심 이유 부분이다.
신청인은 ... 비록 기독교 교리에 대해 종전 난민 면접 시보다 잘 진술하고 있기는 하나... 자국으로 귀국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진술이라고 하기에는 기독교 관련 지식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점... 기독교(천주교) 일반 신자로 예배에 참석하거나 성경을 읽는 정도의 종교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외부적으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하거나 종교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 본국 정부가 신청인을 특별히 주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점, 이란에서의 기독교로의 개종이... 개종한 사실 만으로 형사기소되는 경우가 드물고... 다소 간의 차별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박해 수준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 사유서에서
간단히 말해 민혁군 아버지는 성당에 다니는 정도의 종교인이라 이란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고, 이란은 배교자라도 적극적인 포교활동만 하지 않으면 박해 수준의 인권침해는 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무수한 증언과 국제적 문서가 있지만 그것은 민혁군의 법률대리인의 몫으로 남겨놓고 간단한 사례 하나만 언급하겠다. 작년에 보도된 사건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A씨는 강제퇴거 대상이 돼 화성외국인 보호소에서 난민신청을 한다. 당연히 난민불인정 처분을 받는다. 이에 불복한 A씨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낸다. 놀랍게도 고등법원에서 A씨의 손을 들어 준다. 법무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다. 그에 따라 A씨는 난민으로 인정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송 도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A씨가 한국에서 동료 이란인 B씨와 C씨 등에게 기독교를 전도했는데, B씨는 이란으로 귀국 직후 경찰에 의해 구타당해 사망했고, C씨는 C씨의 가족과 함께 몸을 피해 터키로 피신해야 했던 점 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기사 <법무부 상고 포기, 기독교 개종 이란인 난민인정>에서)
한국과 이란을 무대로 펼쳐졌고 기간도 최근이며 등장인물들도 별로 중요한 종교활동을 하지 않은 배교자들이니 한번 비교해 보길 바란다. 우리나라 출입국청은 종교 지식의 깊이를 측정하는 종교재판관이기도 하고, 이란 사회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대사관 수준의 외교역량 보유자이기도 하다. 다만 난민신청자에게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매몰찬 사람들일 뿐.
또 다시 등장한 트집 잡기, 진술의 일관성 결여라는 억지
이제 지엽적이지만 '사유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단골 레퍼토리, '신청인의 진술이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주장을 검토해 보자. '사유서'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이름 문제다. 사유서는 민혁군이 개종 사실을 전화로 알린 고모의 이름이 네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고 일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시비를 건다.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이름과 민혁군 아버지가 면접 시 말한 이름, 민혁군이 난민신청서에 기재한 이름과 민혁군이 면접 시 말한 이름이 다 다르다는 것. 범죄 영화에나 등장할 가공의 인물을 만든 것처럼 몰아붙인다.
진상을 밝혀 보자. 고모는 실제 존재한다. 정확한 이름은 민혁군 아버지가 면접 때 밝힌 이름이다. 그럼 민혁군이 면접 때 말한 이름은 무엇인가? 민혁군의 할머니, 그러니까 민혁군 아버지의 엄마 이름이다. 7살에 한국으로 들어와 친척들을 잘 기억 못하는 민혁군이 이름을 혼동한 것뿐이다.
그럼 민혁군의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이름은 무엇인가? 아버지한테 들은 고모 이름을 철자만 다르게 비슷하게 써 놓은 것이다. 한글로 아랍어를 옮기다보면 받침으로 쓸 수도 있고 한 음절을 넘겨 다음 음절에 쓸 수도 있는 그런 표기상의 문제.
그럼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서 이름은 왜 다른가? 민혁군이 중1인 14살 때 한글을 잘 모르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쓴 데서 생긴 엉뚱한 이름이다. 언어 장애로 소통이 어려운 난민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민혁군 아버지는 면접심사에서 충분히 소명했다. 그런데 왜 이걸 트집 잡는가.
다음으로 시기 문제다. 민혁군이 고모에게 개종 사실을 알린 시점이 왜 민혁군과 민혁군 아버지의 말이 다르냐는 것. 민혁군은 2011년이라고 했는데 민혁군의 아버지는 2014년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것 역시 민혁군이 진술 중 혼동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2011년은 민혁군이 개종한 시기고 2013년이나 2014년이 고모에게 개종 사실을 밝힌 시점이다. 민혁군은 일관되게 다른 진술에서 그것도 여러 차례, 초등학교 3, 4학년 때, 그러니까 2013년이나 2014년쯤에 고모와 우연히 전화하다 개종 사실을 말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맥락은 보지 않고 실수한 부분만 딱 짚어 부자를 거짓말쟁이로 몬다. 민혁군은 면접심사만 최소 2시간 씩 두 차례, 민혁군의 아버지의 경우, 각각 2시간, 5시간짜리 면접심사를 받았다. 두 사람 합해서 소송만 5차례. 심문에 가까운 장시간의 심사로 난민신청인이 흘린 실수를 들어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것, 그런 기술이 그토록 자랑하는 법무부의 전문성 영역인가. 이런 걸 해명하는 글을 쓰는 사람까지 극도의 피로로 몰고 가는 사람의 진을 빼는데 전문적인 기술.
58일 만의 결과 발표 그리고 출입국청이 책임져야 할 문제
겨우 이런 허접한 내용 정도가 들어 있는 58일 만의 실로 이례적인 결과 발표, 이제 출입국청은 다음 질문에 소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첫째, 58일이라는 장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 기간 동안 난민 신청인이 당했던 고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명해 책임져야 한다.
둘째, 왜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심사관의 심사에 출입국정책본부가 개입했는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들이 '본부와 협의하여', '본부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하는 말들을 수시로 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6월 11일 민혁군 아버지 면접심사 당일 심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심사관이 특정일을 지정해 출석요구서를 교부하려 했을 때, 전화를 걸어 심사관으로 하여금 출석요구서 교부를 중지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전문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하는 심사업무에 과연 본부가 협의를 하고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걸어도 되는 것인가. 만약 그래도 된다는 법률과 규칙 하다못해 지침이라도 있다면 공개해 보라.
셋째, 결과통보 출석요구를 하루 전에 전화로 하는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인, 이런 경우 없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민혁군 아버지 사안을 다루는 출입국청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라 지적해 둔다. 앞으로도 이런 무례한 행정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청은 난민 신청자에게 계속해 나갈 것인가.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로 판정하는 무모함
같은 종교, 같은 나라, 더구나 부자 사이인 민혁군과 민혁군의 아버지. 동일한 난민사유에 한 명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한 명은 전혀 박해의 위험이 없다고 주장하는 법무부. 이건 무모함이 아니라 무도함이다. 최소한의 눈가림용 공정성의 여지없이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대놓고 선포하는 것이다. 일개 행정부처인 법무부가 국민에게.
이쯤 되면 법무부 난민업무 전체를 손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명령으로, 국회가 대통령이, 국무총리실이, 감사원이, 검찰이. 그렇지 않으면 어떤 난민심사도 어떤 난민정책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