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러셀입니다. 신입생 때 막연히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 교육 저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벌써 3학기 째 활동을 마쳤네요. 제 대학 생활의 시작은 교육 저널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제 의견을 주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가 정말 좋았습니다. 비록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교육저널을 떠나게 되었지만, 따뜻한 시선을 가진 교육 저널만의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한편 이번 학기는 유독 글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욕이 떨어져서 글 완성을 계속 미뤘던 거 같아요. 아마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동아리를 운영해야 했기에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지 완성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독려해주신 편집 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우정
코로나 시대의 대학교육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자치동아리 역시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 편집장 없이 발간한 교육저널 38호의 제목 '혼란기'는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냅니다. 두 학기째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 역할 분담을 하면서 간신히 이어온 교육저널 활동이 이번학기 유난히 더 힘들었던 것 같네요. 글을 쓰며 이 혼란기에 학교에 그리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학생 자치언론과 동아리가 지속되기 위해서 학교와 학생은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Insomnia
우선 글을 너무너무 작성하기 힘든 여러 환경에 처해 있어 글을 예정보다 너무 늦게 작성 완료했는데, 기다려주신 교육저널 부원분들께 너무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의 주제가 사범대생으로서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했고, 한 번쯤 생각해봤던 주제여서 글을 쓰는 동안 흥미로웠고 되게 다양한 생각들이 많이 들었는데, 제 생각을 온전히 담기에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저의 필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좀 남네요. ㅠㅠㅠㅠㅠㅠ
필명을 Insomnia로 정한 이유는 필명을 정할 당시에 잠을 너무 못 자기도 했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에 insomnia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해서 결정했는데... 역시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나 봅니다. 필명을 정한 이후에 개인적인 사건도 있었고, 교지 글도 작성하느라 숙면을 거의 취하지 못하는 타의적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네요. ㅠㅠㅠㅠㅠㅠ
요즘 많은 사람이 대학교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몸과 마음이 떨어진 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대학의 가치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헤매는 혼란기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저널도 역시 혼란기를 겪어 교지 작성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 교지가 그러한 혼란기 속에서 대학의 가치를 떠올릴 수 있게끔 하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월영
안녕하세요, 월영입니다. 이번엔 정념 아주 잔뜩 담긴 그런 글을 쓰고 말았는데, 코로나 시국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다 보니 두서없고 뾰족한 글을 남발해버렸네요. 힘들지 않은 사람 없는 이 기구한 시간 속에서 그래도 나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우울하군요) 이렇게 나름대로 애쓰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나중에 더 나은 무언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힘든 와중에도 같이 결과물 내려고 고생한 편집위원들도 모두 수고했어요!
#정우맘 팽현숙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몸소 느꼈습니다. 사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분야가 제 주된 관심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많이 멀어서,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과연 이 글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아둔해 마지않은 저로서는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주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다소 관심이 있던 교과 교육 분야랑 연관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다소 메타(meta-)적인 내용으로 글의 주제를 결정하였는데, 설득력 있는 글이 구성되었을지 걱정됩니다. 저의 필력이 많이 모자라 제 글을 읽으시는 데 혹시 불편함이 있으셨을지 많은 우려가 드는 바입니다. 부족하고 다소 장황하게 쓴 감이 있음이 없지 않은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게 모두 삼가 감사의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Dichter
또 뵙네요ㅎㅎ Dichter입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그들의 중요문제 중 하나인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육저널에서도 두 학기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온전히 동아리에 임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다른 편집위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특히, 다른 공동체 생활을 해보면서 교육저널만큼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은 더 없더라구요. 제가 무슨 일이 있든 다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걱정해주셔서 감사했어요...ㅎㅎ
이번 학기 교육후견인제도에 관한 제 글은 정말 따끈따끈한 최신의 소식인 만큼 news라는 말에 부합하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아직 시행효과나 진행상황이 자세히 보고되지 않은 만큼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소재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독자님들이 읽고 글이 다소 밋밋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글을 읽음으로써 저와 함께 교육후견인제도의 귀추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느 정도 시행 이후의 모습을 후속보도에 싣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교육저널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집위원님들과 독자님들 덕분에 교육저널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 )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어쩌면 12살 소년 '자인'으로부터 칼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12살 소년 자인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신분증도 없고,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자인. 법정에 선 자인에게 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판사가 묻자 자인이 대답한다.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그들이니까요.’ 올해 칸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이 담아낸 베이루트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참담하다.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뒤엉켜 사는 혼란스런 집안모습에서 시작해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비열한 거리에 내몰린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옥도를 보는 듯 절망적이다. 아이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파격적인 스토리지만, 영화는 법정드라마를 따라 가기 보다는 희망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온기 있는 카메라로 담아낸다.(...)[각주:1]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이므로, 교육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빛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주인공들에게 그러한 미래는 아득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버나움’은 예수가 몇 차례 기적을 일으켰음에도 회개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은 곳이다. 예수는 가버나움 사람들이 구원받는 미래는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타인으로부터 이런 저주를 받은 사람들, 앞으로의 삶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을 것임을 선포당한 아이들에게, 교육은 어떻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교육저널의 편집위원 월영과 러셀은 <가버나움>을 보고 세계 저편의 아이들과 교육,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불안한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논하는 - 교육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길 바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1) 인상깊은 대화, 장면은 무엇인가요?
월영: 자인이 딸을 임신한 엄마에게 ‘엄마는 감정도 없냐’는 식으로 말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영화에서 자인의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고, 굉장히 처참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하는데 왜 또 태어나게 하냐는.. 정말 무서운 비난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이걸 비유적으로 이해해보면 한국의 출산율 문제와도 연결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출산 지도를 만들거나, 직장 내에서 미혼 여성들을 조사하는 행태들이 아이들의 행복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낳기만 하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러셀: 오 저도 공감해요. 저는 특히 엄마가 딸 이름을 사하라로 짓는다고 말했을 때 자인처럼 분노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인이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미소를 보였던 것이 제일 인상깊었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때까지 자인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인도 겨우 12살밖에 안되는 아이였는데 생존하기 위해 주스를 팔고, 요나스를 책임지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어요.
월영: 그렇죠, 오히려 20대인 저보다 훨씬 세상의 풍파를 많이 맞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미 혼자서 살아가는 데에는 도가 튼.. 저는 가끔씩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자인이라는 친구는 정말 ‘태어났으니까 사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아마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최초로 그렇게 활짝 웃었던 것 같은데, 찡하더라고요.
2) 자인의 부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월영: 저는 앞 질문에서 했던 이야기에 이어서, 본인의 삶을 반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래 세대에게 좋지 못한 환경을 대물림해주는 기성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라힐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의지가 있고, 좋은 삶을 선물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부모인 건 마찬가지지만) 자인의 부모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러셀: 저도 자인의 부모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있는 아이들도 다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또 아이가 생겼다고 했을 때, 저도 자인처럼 절망했던 거 같아요. 자인을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주스를 팔게하고 여동생 사하르를 결혼시키는 장면을 보고 암울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방치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것 또한 학대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한편 자인의 부모에 대해서도 실망했지만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거 같아요.
3) 이 영화는 실제로 난민들을 캐스팅해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는데, 실제 배우들이 출생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영화제 전에 급하게 신분증을 발급하여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영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월영: 상상하기 싫어요.. 영화 보면서도 좀 괴로웠거든요. 이것보다 더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어른들도 있겠죠?
러셀: 이 사실을 알고 예전에 읽었던 ‘공간의 힘’이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져, 공간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불공평하며, 이러한 불평등한 공간이 사람의 운명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어요. 도시화된 중심부와 달리 주변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에 태어난 것이 단순한 우연이며, 그들의 선택이 아닌데 국적에 따라 삶의 좌지우지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자인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영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을 보며 공간적 불평등과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월영: 이미 태어나본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우연하게 이런 환경에 태어난 거잖아요? 어느 개인의 입장이라도 다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태어났더니 국적도 없고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영화에서도 그런 표현 많이 나오잖아요. 그 인신매매상이 “너가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져와”라고 했는데, 결국 자인은 본인이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져오는 데 실패하기도 하고. 이런 삶이 어떤 것일지…
러셀: 맞아요.. 그래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더 먹먹한 거 같아요.
4) 영화에서 자인은 본인의 부모들을 고소하는 형태로 묵었던 갈등을 풀어낸다. 이러한 해소의 의미, 혹은 한계라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월영: 저는 처음엔 기성세대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내려나 싶었어요. 재판 끝에서도 자인은 엄마에게서 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걸 재앙처럼 생각하잖아요. 결국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결론인가?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 게.. 이 고소가 방송을 타면서 자인의 이야기가 유명해졌고, 그걸 계기로 라힐이랑 요나스는 만날 수 있었잖아요. 저는 차라리 거기서 또 다른 희망,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러셀 : 저도 월영님 생각에 공감했어요! 과연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원래는 자인이 출생 신고증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지 못했는데, 방송을 타면서 자인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지만 신분증이 없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잖아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가혹한 삶을 사는 아이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담론이 생기면 어느정도 해피엔딩이 아닐까 생각했던거 같아요.
월영: 아, 러셀님 말씀 듣고 떠올린 건데, 한편으로는 자인이 방송을 타고 신분증을 만드는 게, 자인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자인이라는 아이가 있다는 걸 어떻게든 알게 되었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영화로 다른 아이들도 사람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마당에 모순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미 사람인 사람들이 받아들여야하는 것일 수도 있죠. 자인이 고소장 보낸 것처럼요.
러셀: 아 맞아요. 자인의 여동생 사하라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신분증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장면도 떠오르는 거 같아요. 월영님 말씀처럼 인간으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사각지대 속 그들도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5) 영화 제목이 가버나움인 이유가 무엇일까? (가버나움 재단)
월영: 가버나움이 약간… 어떠한 희망도 없는 땅이더라고요…? 영화 내용이랑 정말 맞다고 생각해요. 근데 정말 예수는 그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에 대해 그런 무자비한 예언을 했을까 의문이기도 해요. 물론 성경이나 기독교를 공부해보지는 않았지만… 자인이 처한 환경을 가버나움으로 비유할 수 있겠지만, 결국 아무런 희망도 없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러셀 : 음.. 자인과 아이들은 가혹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삶이 알려졌다는 점에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 같아요. 영화 내용을 현실로 확장하면,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실제 난민 소년과 불법체류자를 캐스팅하여 촬영한 것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현실에도 영화와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잖아요. 사람들이 가혹한 삶을 사는 아이들과 난민의 삶을 알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희망적인 거 같아요. 실제 가버나움 영화 제작진은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하여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해요.
월영: 좀 다른 관점에서, 이건 좀 불경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가버나움도 결국 ‘예수’의 저주를 받은 거잖아요. 근데 예수가 먼 미래의 가버나움 사람들까지도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있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자인은 본인의 삶을 규정해놓은 부모를 고소하고 본인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가 가버나움 지역에 내렸다던 그 저주에 반기를 든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가버나움은 다시 새로운 의미로, 더 나은 삶을 찾는 난민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장소로 바뀔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윤지: 교육학에 좀 관심이 많았어서,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왜 집중을 잘 못하는지 아니면 학교 내부의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수법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교직이 제일 재미없어요. 방금 말은 못 들었던 걸로 해주세요. 서현: 고전 문학사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통계가 재미가 있어서 ‘R’이라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유민: 어학이었던 것 같아요. 어학 분야는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뭔가 알 수 있는 게 없었어서 그 부분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성현: 저는 그렇게 학술적인 사람은 아니라서(웃음). 아무래도 학교 현장에 나가게 된다면 학교 폭력이라든가 학교에 부적응하는 학생들을 교사로서 어떻게 지원할까 하는 거. 어떻게 아이들과 라포를 형성할까, 그런 고민이 있었죠.
예서: 대학에 오면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좀 깊이 있게 알고 싶었어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 이 두 가지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지, 이거를 대학교에서 알고 싶었는데... 글쎄요. 교수님이 딱 이렇게 명확하게 알려주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보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봐서 스스로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잘 안 되고 있죠.
- 말씀해주신 분야 혹은 주제에 대해 탐구하는데 대학 교육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대학 교육을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윤지: 교육학에 관련된 문제들은 사실 교직 들으면 이미 답이 거의 많이 정해져 있고, 교직에서 잘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서현: 저는 대학 교육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통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1학기 때 경영 통계를 들으면서 교수님이 소개를 해주셔서 거든요. 관련해서 학교에 여러 수업들이 열려 서 방학때 발을 담가보는 중이고요. 저는 주로 수업을 활용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수업을 탐색하고 학기 시간표를 짜는 데에 제일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유민: 저번 학기에 스페인어학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수업에서 미니 연구를 진행을 했어요. 직접 연구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연구 방향이나 연구 방법을 선택하는 데 교수님의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피드백도 받으면서 좀 괜찮은 연구를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현: 제가 교직 수업도 아직 없었고 실습도 2학년 때부터 나가는 거라서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지원을 활용한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따로 초등학교에 멘토링을 하면서 아이들과의 경험을 쌓고 관계 형성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긴 해요. 근데 학교는 큰 도움은 되지 못했어요.
예서: 대학교육이 도움은 되고 있지만, 내가 경험을 많이 해서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들을 수 있는 수업은 다 듣자는 생각으로 학과의 특성을 살려서 공간에 관련된 모든 수업을 들어보는 중이고요. 뮤지컬 동아리도 하고 있는데 코로나라서 아예 활동을 못하고 있으니까... 수업을 좀 많이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 대학에 입학한 후 수강한 수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이 있으신가요? 왜 가장 인상깊으셨나요?
윤지: 도스토예프스키[각주:1]와 톨스토이라는 수업이 인상깊어요. 제가 문학을 정말 좋아하는데 거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정말 수준이 높아요. 수준 높은 서평들을 써주시고 그걸 하나하나 읽는 게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책을 진짜 진짜 열심히 읽고 서평을 써내고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피드백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유민: 제일 인상 깊었던 거는 대학 글쓰기 2 인문학 글쓰기 수업이었어요. 교수님께서 진짜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라, 그걸 조건으로 걸으셨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과제로 글을 쓰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 수업에서는 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이 뭔지를 고민을 처음 해보게 되어서... 그때 처음으로 글 쓰는 게 되게 재미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 비대면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의 가장 이상적인 예는 무엇인가요?
서현: 우선, 교수님께서 지난 학기 강의를 재탕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수님이 영상을 재탕하셨다는 걸 아는 순간 저도 이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겠다 하는 열의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수업 수강여부가 학점에 영향을 꼭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틀어놓기만 하고 혼자 공부해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수업은 좀 별로인 것 같아요.
성현: 실시간 강의에서 다들 마이크 끄고 카메라도 꺼요. 저도 딴 짓을 많이 하기 때문에 대면 수업처럼 강의식, 지식 전달식 수업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을 해서 차라리 학생들 간의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니면 거꾸로 수업처럼 미리 강의내용을 동영상으로 올려놓고 Zoom에서는 그걸 활용한 다른 활동을 진행하든지.
예서: 이론 수업 같은 경우에는 비대면인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대면으로 하면 앞에 있는 애들은 잘 들리고 뒤에 있는 애들은 안 들리고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론 수업은 비대면이 괜찮을 것 같고, 실기나 시험은 대면이 병행되는 수업이 제일 이상적인 것 같아요.
- 대학교육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학교육을 통해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시나요?
윤지: 저는 전문성을 얻었으면 좋겠다라는 거. 적어도 내가 그걸 전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얻는 거. 그게 대학 교육에 바라는 바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적어도 그 분야에 관련해서 논문을 많이 읽어봤고 충분히 생각을 해봤고 그다음에 내가 그 분야에 있어서 내가 잘못 생각했을 때 피드백도 받아보고 또 남들도 피드백 해주는 그런 여러 번의 경험이 쌓이는 것 그런 것들을 했을 때 전공했다라고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현: 고등학교 때 생각한 대학 교육은 그 학문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 수업을 들어보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유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거가 제일 큰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들을 들어볼 수 있고 나만의 관심사를 발전시킬 수도 있고, 또 다른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는 것 같고... 또 교수님들은 자기 분야에서 경지에 이르신 분들이니까 전문가와 바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성현: 대학교육은 진짜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거니까 어떤 영역에 대해서 정말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필요한 게 대학 교육이 아닌가. 그런데 교육대학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지식 역량을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애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교육을 시킬 것인지, 그런 실습 현장에 대해 대비시키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예서: 저는 대학 교육의 역할이 한 차원 더 높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디자인이 또 흐름이 중요하고 트렌디하는 게 중요하니까 시대의 흐름을 잘 알려줄 수 있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코로나 시기에 대학 교육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역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윤지: 사회생활을 거의 못하고 있잖아요.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 내가 들어와서 선배들이나 동기들과 만나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데 그것들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유민: 어느 정도는 수업을 통해서 충족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이번학기 우연히 겹강을 여러개 한 사람이 있었어요. 대면강의였으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비대면이라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게 어려웠죠. 제가 글쓰기 수업 들었을 때 서로 글을 읽고 그거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면서 엄청 개인적인 얘기들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벤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주는 게 대학 차원에서 아니면 학생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서: 비대면 시기니까 대면 수업일 때보다 경험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학교도 다 규제를 하고 학생들에게 학교에 등교하지 말라고 하고 그냥 막는 제스처가 많은데, 그렇게 하기보다는 더 학생들이랑 같이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두세명씩의 소수 인원이라도 돌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커리큘럼을 함께 고민을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본인이 재학중인 학교에 한 마디를 한다면?
지윤: “나를 공부 좀 시켜라!” 제가 내가 등록금을 냈는데, 학생을 잘 공부시키는 것도 학교에 일인 건데 그런 거에 너무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요.
서현: “잘하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잘하자.
유민: “지금처럼만 하자.” 저는 더 바랄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만족도가 높다기보다는 이 정도면 그래도 뭔가 하려고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성현: “대면 수업을 좀 해라.” 저희는 2년 동안 전면 비대면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대면 수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등록금 얼마 안 내긴 하지만 그래도 내고 있는데... 교생실습은 꼭 대면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예서: “등록금 내놔(웃음).” 아니면 “학생들과 동행합시다.” 학생이 있어야지 학교가 있는 건데 말이죠, 그 우선 관계를 학교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디자인과는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 거의 다 유료예요. 학교 컴퓨터에는 다 설치가 되어 있어서 굳이 구매를 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작업을 하면 됐었는데 이제 프로그램을 학교 컴퓨터를 못 하니까. 노트북도 사야 되고 프로그램들도 설치를 해야 되고 해서, 그런 부분들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네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멈추었지만 대학교육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월,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은 계속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으며, 현재는 대부분의 대학이 비대면 교육을 택하고 있다. 비대면 교육에서 교수자와 학생들은 녹화 강의 혹은 실시간 강의 등을 통해 만나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학교육에 대한 기대를 한껏 품고 들어온 20학번과 21학번은 흔히 ‘코로나 학번’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과연 대학교육에 대한 이들의 기대는 잘 충족되고 있는가? 전공이 모두 다른 다섯 명의 20학번 21학번 학생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 이들은 대학교육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대학교육을 비대면으로 전환하여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각 대학에 충분히 버거운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지나 많은 인프라가 확충되고 새로운 변화가 자리잡은 지금, 대학의 임시방편식 대처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은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코로나 시기 대학교육의 수요자로서 ‘미개봉 중고’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다행이면서도 억울한 코로나 학번 20학번과 21학번의 이야기는 그동안 안쓰러운 토로로만 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비대면 대학교육의 핵심 수요자인 이들의 목소리를 더 구체적으로 듣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생산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할 시기이다. 본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코로나 학번’의 목소리는 대학라이프를 즐기지 못하는 20대의 소소한 불만섞인 목소리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년, 어쩌면 더 오래 이어질 언택트 시기의 대학교육이 나아갈 방향성의 근거로서 귀기울여져야 한다.
- 본인과 본인의 학과(학번)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해당 대학교와 학과를 지망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윤지: 저는 20학번이고요. S대학교 윤리교육과에 재학 중입니다. 윤리교육과는 윤리학이랑 교육학을 배우는 곳이고요. 여기에 오게 된 이유는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윤리학이 재미있다고 느껴서 입니다.
서현: 저는 C대학교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경영학과의 21학번이고요. 해당 대학교와 학과를 지망한 이유는 성적을 맞추어서...(웃음)입니다.
유민: 저는 S대학교 서어서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고요, 저희 학과는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배우는 것 같아요. 하나는 언어에 관련된 거를 배우고 또 하나는 문학에 관련된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배웁니다. 고등학교 때 스페인어가 제일 재미있었던 과목이라서 이 학과를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성현: 저는 S대학교 윤리교육과 20학번이었다가 반수를 해서 S교육대학교 21학번이 되었어요. 미술교육과이긴 한데 크게 의미가 없는 분과 같은 거고, 저희는 그냥 다 초등교육과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부터 초등 교사가 꿈이었어요. 초등학교라는 건 우리가 처음 접하는 사회잖아요, 그곳에서 아이들한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초등 교사가 멋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예서: 저는 H대학교 20학번 산업디자인학과 학생이고요. 지금 목조형가구학과도 복수전공 준비 중이에요. 저는 공간이라는 키워드에 되게 관심이 많아요. 미술로서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간이 3차원 환경 속에서 살아가니까 똑같은 3차원의 형태의 미술이 인간에게 다가가기 제일 쉽겠다고 생각해서 공간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 학기 중의 본인의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윤지: 보통 학기 중에는 일어나서 아침 수업 먼저 듣고, 그다음에 점심 먹고, 시간이 남으면 운동을 하러 갔다 오고요. 복싱장에 가요. 거기 가서 그냥 유산소 운동도 하고. 바이크도 타고 복싱도 하고. 운동 갔다 와서 오후 줌(Zoom) 수업 듣고, 그다음에 스터디 카페 가서 과제하고 공부하고. 그러고 끝나요. 보통 항상 그렇게 살아요.
서현: 저는 1학기에 줌(Zoom) 실강이 없었어요. 다 그냥 녹강으로 일주일 안에만 들으면 되는 수업이어서 학기 중에 정말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어요. 한 점심 때쯤, 12시에 일어나서 집이나 카페에서 한 3시 정도까지 점심을 먹고, 그리고 녹화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과외나 알바를 갔다가 와서 과제를 하고요. 그리고 그 외에는 저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특별한 건 없지만 일기를 많이 썼던 한 학기였던 것 같습니다.
유민: 일단 수업 시작하기 10분 전쯤 기상을 해서 졸린 채로 줌(Zoom)수업을 들어요. 그리고 점심을 먹는데, 수업 들으면서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힘들어서 한 1시간 정도 그냥 밍기적 밍기적 쉬는 편이고. 그 후에 운동을 가거나 저녁을 먹고, 뭐 밤이 되면 과제를 한 10시 이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성현: 올해 1학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실강을 듣고, 녹화 강의로 대체되면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냥 틀어만 놓고 놀러 나갔죠. 근데 실강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녹강이었죠. 그래서 거의 강의를 안 들었습니다.
예서: 저는 개강하면 비슷한 루틴으로 살았는데, 일단 전날에 아마 늦게 잤을 거야(웃음). 그래서 강의 시작 10분 전에 겨우 일어나서 솔직히 캠을 안 켜도 되는 수업이면 사실 졸면서 듣기도 하다가. 끝나면 약간 쉬다가 그때부터 새벽까지 과제를 하죠. 미대생들 이어서 약간 특징적인 문화는 새벽에도 웹엑스로 방을 파서 친구들과 같이 온라인 야작을 합니다.
- 본인이 생각하는 대학교육은 무엇인가요? 대학교육이 어디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윤지: 대학 교육은 우선 내가 선택한 전공에 대해서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도 있을 것 같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취업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정보가 필요할 텐데, 그게 대학을 매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거고, 그게 너무 절실하게 필요해서요.
서현: 제가 생각한 대학 교육은 고등학교의 교육보다는 좁은 범위인 것 같아요. 학생의 행동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터치를 안 하잖아요. 대신에 학문적으로 의견을 교류한다는 점에서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민: 대학 교육 일단 기본적으로는 학문적인 소양을 쌓는 게 있을 것 같고, 그것 외에도 의사소통을 하거나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기르는 것, 이런 것까지 포괄하는 것 같아요.
성현: 등록금에는 물론 수업료도 있겠지만 캠퍼스를 누리는 것에 대한 게 큰 것 같아요. 대학에서 다양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동아리도 있고, 선후배 간의 친목도 있고, 다양한 행사들 축제 이런 것들도 다 우리가 등록금을 내면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포함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교대같은 경우에는 교생실습도 있죠.
- 대학에 입학하기 전, 대학 교육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가요? 대학 교육 전반적인 부분도 좋고, 본인의 전공에 관한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비대면 교육상황에서 그러한 기대가 충족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윤지: 제가 토론하는 걸 진짜 좋아하거든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서로 공부를 해와서 토론을 할 때 저는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 걸 많이 할 줄 알았거든요. 아니면 적어도 발언할 기회가 있고 교수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좀 많이 기대했었어요. 그런데 전혀 못하고 있죠 안타깝게도. 우선은 줌에 너무 기술적인 한계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오디오가 겹치는 상황도 너무 많이 발생하고, 6명 이상 넘어가면 토론이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점점 그냥 약간 수동적인 학습자가 되어가고 있어요. 제가 뭔가 지식을 축적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시험 잘 보려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서현: 저는 교수님, 그 분야에 진짜 전공자라고 불리시는 분들이 하실 수업에 대한 기대가 좀 컸어요. 그리고 웬만큼 충족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질의 응답을 했을 때 전공 교수님들이 되게 딱 찝어주시더라고요.
유민: 저는 어문과니까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제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과 만나서 얻게 되는 그런 인사이트 같은 것들도 기대했던 부분인 것 같네요. 그런데 완전히 충족되지는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활동할 수 있는 것 자체에 제약이 있다 보니까.
성현: 고등학교 때는 정해진 시간표만 들을 수 있었잖아요. 대학을 오면 내가 원하는 수업을 골라서 교양 수업을 골라서 고등학교 때보다는 깊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대학 생활 전반에서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그리고 저는 교대니까 대면 실습에서 애들을 만나는 걸 기대했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비대면이니까 학교를 갈 일이 없잖아요. 본교 친구들이랑만 만나고 그런 건 아쉽죠. 놀러 나가야 되는데 비대면이라서 동아리 같은 것도 잘 못하고 선후배들이랑도 못 만나고... 실습도 비대면으로 하고 있거든요. 직접 만나지 못하니까 아쉽죠.
예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약간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밤 세워서 작업하는 거예요. 친구들하고 밤 새면서 해 뜨는 것도 같이 보면서 작업하고. 그런데 그거를 코로나 진짜 어쩔 수 없이 못 했죠. 다른 친구의 작업을 보는 것도 기대했어요. 대면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하는 프로세스를 지켜볼 수가 있었을 텐데, 이런 게 온라인으로 하면 덜 집중하게 되니까 아쉽죠. 그리고 학과 전용 작업 공간이랑 각종 시설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되게 아쉬워요. 1학기에 목조형 가구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나무를 톱질을 하는 수업이었어요. 톱질을 해야하는데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베란다에서 했어요. 베란다 완전 난장판되고. 그런데 베란다도 없는 친구는 침대에다가 비닐을 덮어놓고 톱질하고. 먼지가 진짜 어마무시하게 많이 나와서 수업 한 번 하고 대청소하고 한 번하고 수업하고 대청소하고 이런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 입학 전, 대학 교육이 고등학교 교육과 가장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입학 후에 실제로 경험한 대학 교육이 고등학교 교육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 것 같나요?
윤지: 글쓰기가 정말 많아졌어요. 고등학교 때는 평가가 거의 다 암기해서 푸는 지필고사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학에서는 제 생각을 물어보는 과제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없었거든요. 그냥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냥 이게 답이니까. 그런데 윤리교육과에서는 과제 같은 거는 제가 생각해서 쓸 일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시험은 외워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는 경우도 꽤 있었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그런 걸 기대하기도 했고. 제 생각을 물어보는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 와서 재미있었어요.
서현: 가장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학습방식에 있어서 시험에 대한 부담없이 내 전공에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의 교수님들 수업을 듣는다는 거. 그런데 녹강으로 들으니 막상 그런 부분에서의 다른 점은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유민: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는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거. 저는 어문 계열 과에 있지만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래서 문학 수업은 듣지 않고 내가 관심이 많은 분야에 수업만 들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는 해야 하는 게 많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성현: 고등학교 때는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는데 대학교 오면 내가 원하는 시간표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걸 기대했죠. S대에서는 그래도 교양이 되게 많잖아요. 교양이 되게 많고 그래도 재밌는 수업도 좀 있었는데, 아무래도 교대는 교양의 수도 많지 않고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아무래도 적죠.
예서: 가장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거. 더 수준 높은 강의 수준 높은 피드백 이런 게 당연히 기대가 됐어요. 입시 미술을 생각을 하자면 틀이 굉장히 딱 정해져 있단 말이에요.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요. 입시미술은 문법이랑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자율성을 표출하고 싶다는 기대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 입학 후에 아예 비대면이었으니까 다른 거를 사실 별로 못 느꼈어요. 강의 듣고 과제 하고 그피드백 받고 수업 받고, 이게 고등학교랑 되게 비슷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도 항상 “우리 아직 고등학교 졸업 안 한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올해 5월, 한 초등교사 임용시험 합격자가 인터넷에 패륜적인 글을 올려 큰 논란이 있었다.[각주:1] 이 합격자는 특정 커뮤니티에 욕설, 성희롱, 혐오 단어를 담은 글과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올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초등학생을 가르칠 예비교사가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언행을 일삼는 것에 분노했고, 교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조치도 당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경기도 7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가 특정 커뮤니티에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글을 올려, 공무원 자격을 박탈당한 것과 비교되는 처사이다.[각주:2] 이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과 달리. 교육공무원법에는 임용시험 합격자에 대한 임용취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에는 오직 교육공무원의 결격사유만 규정되어 있다. 이에 예비 교원의 결격 사유도 포함하여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교원을 양성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현재 교원양성기관은 예비 교원이 교사로서의 인성적 자질을 갖추었는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0. 교직 적 인성 검사의 실시
필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다. 지난 학기, 사범대학교를 졸업하려면 교직 적 인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히 검사를 신청했다. 약간의 긴장을 한 채 검사 장소에 갔는데 예상과 달리 몇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1시간 남짓 동안 오지선다형 질문에 제일 바람직해 보이는 선지를 골랐다. 검사를 마친 뒤, 머리 속에는 온통 ‘이러한 검사로 예비 교원의 인성과 적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하는 의문들로 가득 찼었다. 그 후 필자는 교직 적 인성 검사를 받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생 몇 명을 인터뷰했다. 대부분 ‘오지선다형 질문이 답변의 진정성을 보장하지 못할 거 같다.’, ‘대다수의 질문들이 답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신뢰성 있는 답변을 얻지 못할 거 같다.’, ‘교직 적성 및 인성 검사가 사범대의 보여주기식 책임 회피의 도구로써 활용되는 거 같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교직 적 인성 검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과연 적·인성 검사가 본래의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교직 적 인성 검사의 의무화, 그러나 실효성 논란
교사는 단순히 해당 교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만 갖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인성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교사의 인성 및 인품은 학생들의 사회적 가치관 형성에 방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13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올바른 인성과 교직 적성을 갖춘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2013년부터 새롭게 바뀌는 교원 양성 교원 임용시험 제도 안내’를 보도했다.[각주:3] 이에 개정된 교원 자격검정령 제 19조 무시험검정 합격 기준에 따르면, 2013년부터 모든 교원양성기관 재학생들은 교직 적 인성 검사를 2회 이상 실시하여 적격 판정을 받아야만 교사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의 의무화가 예비 교원의 인성적 자질을 평가하는 데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교직 적성 인성 검사에서 부적격 처리를 받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가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 응시자의 0.88%, 2016년에는 0.72%, 2017년에는 0.6%로 계속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각주:4] 교대 재학생 성희롱 논란, 예비 초등교사 임용 박탈 논란을 비롯하여 계속 예비 교원과 교사의 부도덕한 행위가 문제 시 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결과는 교직 적·인성 검사의 실효성 논란을 제기한다. 결국, 적 인성 검사가 형식적인 차원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2. 교직 적 인성 검사,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현재 시행되는 교직 적 인성 검사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우선 교직 적 인성 검사의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각 교원양성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적인성 검사 도구는 2003년에 조주언 외가 개발한 ‘교직 적성 인성 검사 도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검사는 교수 능력, 연구 능력, 창의성, 소명감, 도덕성, 생활지도 능력의 6가지 하위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하위 차원은 총 18개의 하위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하위 요인에 근거하여 10문항씩 총 180개의 구체적인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각주:5] 각각의 교원양성기관은 이러한 검사 도구 표준안을 자율적으로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개별 문항의 내용은 현재도 적격, 부적격을 가리는 검사이므로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5점 척도를 기본으로 한다. 예를 들어, 「Rasch 모형을 이용한 교직 적성, 인성 검사 도구의 타당화」에 따르면, “세대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큰 벽이다.", "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등과 같은 문항이 제시되며 문항의 반응은 리커트 5점 척도 양식으로 ‘매우 그렇지 않다’의 1점부터 ‘매우 그렇다’의 5점까지 응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 방식은 몇 가지 측면에서 예비 교원의 인성적 자질을 평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 추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문항
첫째로, 현재 교직 적 인성 검사의 문항은 다소 추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먼저 문항 내용의 측면에서, 표준안 검사를 개발하는 과정 중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6개로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문항을 개발할 때,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추상화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직 적 인성 검사의 구체적인 문항은 교육부에서 보급한 검사 도구 표준안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도구 표준안은 총 3단계를 걸쳐 개발되었다. 먼저 1단계에서 ‘성공적인 교사’의 지적 능력과 인성 특성에 무엇이 있을지 교사와 학부모들의 자유 응답형 질문을 통해 의견 조사를 하였다. 그 후 2단계에서 ‘성공적인 교사’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성공적인 교사 집단과 비교 집단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 공통 특성을 추출하여 최종 6개의 하위 차원과 18개의 하위 요인을 개발하였다.[각주:6]
그런데 이러한 요인들에 근거한 구체적인 문항들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다루지 못한다. 예를 들어, 교직 적 인성 검사의 하위 차원 중 하나인 생활 지도 능력의 영역에서, 예비 교원이 학생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지녔는지 평가하기 위한 문항에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항만으로 교사가 ‘신뢰감’을 지녔는지 평가하기는 불충분하다. 실제 교사는 변화무쌍한 수업 환경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소통해야 하며, 다원적인 차원에서 복잡한 도덕성 및 인성 자질이 요구된다. 이에 교직 적 인성 검사 문항 내용은 실제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항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문항의 형식 측면에서, 하위 요인들을 ‘오지 선다형’으로 구성했다는 점도 문제이다. 오지 선다형의 평가 방식으로는 교육현장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물을 수 없다. 정해진 선지 내에서 답을 고르는 방식은 수검자의 자유로운 답변을 얻기 어렵고,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신뢰하기 어려운 검사 결과
또한, 교직 적 인성 검사가 자기 보고식 검사 방법이라는 점에서, 검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자기 보고식 검사법이란 검사 문항에 대해 예, 아니오 등 간략하게 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적 인성 검사는 대부분 5점 척도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어 1점에서부터 5점까지 선택해야 하거나, 오지선다형으로 다섯 개의 선지 중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한 선지를 골라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정해진 문항에 대해 정해진 수검자의 반응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검사 결과를 표준화하기 용이해 적격, 부적격 여부를 판정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지적 능력과 구별되는 교직의 적, 인성 등의 역량을 측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수검자가 솔직하지 않은 경우 제대로 된 답변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 보고식 검사는 사회 바림직성으로 반응 왜곡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여기서 사회 바림직성은 ‘응답자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데로 답하는 대신 사회적 승인을 높이는 방식으로 응답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각주:7] 특히 예비 교원은 교직 적 인성 검사에서 2회 이상 적격 판정을 받아야 교원 자격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검사에 통과하기 위해 자신의 실제적인 감정과 행동 상태를 나타내기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반응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가 방식으로 예비 교원이 충분한 인성적 자질을 갖추었다고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 검사 결과에 대한 피드백 부족
마지막으로, 교직 적 인성 검사의 결과에 대한 교원양성기관의 피드백이 부족하다. 우선 부적격 판정을 받은 학생에 대한 피드백 및 교육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교원 양성 기관에서는,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교직 적 인성 검사를 재실시하여 적격 판정을 받은 후, 대학 자체 상담프로그램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의 2020년 검사 안내[각주:8]에 따르면, ‘준거 점수에 미치치 못하는 학생의 경우, 교육 실습이 완료된 이후 7월 중에 추가 교육 및 재검사를 실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추가 교육 및 재검사 실시 일정은 추후 안내 예정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실제로 부적격 판정을 받는 예비 교원이 미미해서 그런지, 구체적인 안내 사항은 따로 나와 있지 않았다. 더불어, 예비 교원이 교사로서의 인성 자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과를 받았는데, 어떠한 조치나 교육없이 교육 실습을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의문이다. 이처럼, 교직 적 인성 검사의 표준안은 존재 하나, 부적격 판정을 받은 학생에 대한 조치의 표준안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추가 검사를 통해 적격 판정을 받으면 교원 자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성 검사가 형식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적격 판정을 받은 학생의 경우도 검사 결과에 대한 개별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 대다수의 교원양성기관에서는 적격, 부적격 판정 기준을 특정 준거 점수를 넘었는지 획일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교직 적 인성 검사는 18개의 하위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각 영역 중 어느 부분이 부족하며, 어떠한 활동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을지 등 개인 맞춤형 구체적인 피드백이 필요할 것이다.
3. 교직 적 인성 검사,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이처럼 현재 시행되는 교직 적 인성 검사는 오지 선다형 지필고사의 방식이므로 추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며, 검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고,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여 ‘형식적인 검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원이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었는지 평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예비 교원의 인성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객관식이 아닌 면접시험 방식을 제안한다. 기존의 검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면접 방식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때 면접 문항의 구성과 평가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중요하다.
- 면접시험 문항의 구성
우선, 면접 문항은 실제 상황을 반영한 시나리오 형식이어야 할 것이다. 교직 적성과 인성에 대해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질문보다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다루게 될 문제 상황을 중심으로 질문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비 교원이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을 물을 수 있다. 예비 교원이 교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답이 정해진 질문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 현장에서 직면할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유형은 예, 아니오 등의 답이 정해진 문제에 비해, 답변이 사회적 바람직성에 의해 왜곡되는 경향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비 교원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가치관을 들어 진솔하게 답변할 수 있다. 지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면접과 달리, 정확한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 예비 교원만의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교사로서의 인성 자질을 갖추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면접시험 평가 방식
한편, 이러한 면접 시험의 평가는 pass/fail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교직 적 인성 검사가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시험이기 때문에, 상대평가처럼 학생들을 서열화할 필요가 없다. 예비 교원의 답변들을 점수화하여 좀 더 바람직해 보이는 답변을 한 사람을 통과시키기보다, 완전히 틀린 대답을 가려내는 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
더불어, 면접 위원은 예비 교원에게 즉각적으로 답변하게 하거나, 지속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예비 교원이 답변을 준비하는 시간을 줄여,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과는 반대되지만 합격을 위한 답변을 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비 교원이 답변의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어 검사 결과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평가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앞서 살펴보았던 교직 적 인성 검사 요소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면접 위원을 여러 명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모의 면접을 진행한 후 평가 결과를 서로 비교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교직 적성 및 인성 검사를 면접 방식으로 진행하면 검사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검사 이후에도 다양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교직 적성 및 인성 검사의 문제점을 분석한 후. 면접 시험 형식의 대안을 제안했다. 이러한 논의는 추후 예비 교원의 인성 및 적성을 평가하는 과정이 교사의 인성 자질을 양성하는 과정과 결합해야 한다는 논의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교사의 도덕성 논란이 계속 대두되고 있는 만큼, 교원양성기관은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자질을 갖춘 훌륭한 예비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권수진, <예비교사 인적성검사 ‘유명무실’.. 부적격 0.6%>, 《베리타스 알파》, 2017.10.23.,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98869, 김성연, 「교직 인성 검사에서의 문항 프로파일 분석」, 『중등교육연구 65권4호』, 경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p. 705-729. 김성연, 「예비교사의 교직 적성 인성 검사에서 효율적인 시행횟수 탐색」, 『중등교육연구 66권 3호』, 경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p. 751-782. 김용석, 「사회적 바람직성 척도(SDS-24)의 타당화 및 적용」, 『사회복지연구』, 한국사회복지연 구회, p.87-114. 김은경, 「Rasch 모형을 이용한 교직 적성 인성 검사 도구의 타당화」,,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 학원, 2019. 서울대학교 교원양성지원센터, 2020.06.04, https://teacher.snu.ac.kr/sub_4/4_1.php?mode=view&number=25806&page=1&b_name=notice&keyfield=subject&key=%C0%CE%BC%BA,, 2021.09.14. 유주희, <'디시 패륜글' 임용고시 합격자, 교육청서 경찰 수사 의뢰>, 《서울경제》, 2021.05.26, https://www.sedaily.com/NewsVIew/22MIEXB3OA, 2021.08.29. 조철오, <논란의 ‘일베 성희롱 7급 공무원’ 결국 임용 자격 박탈>, 《조선일보》, 2021.01.26., 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gyeonggi-incheon/2021/01/26/BDL6Y6KL6JDI5GJ6RC2JSRI2HU/?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2021.08.29.
졸업장 따고 임용만 붙으면 되니 실력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 같은 서울대라고 하기엔 수준이 너무 민망함. 나는 자연대 모 과인데 우리는 다 고등학생 때 당연히 습득하고 오는 내용을 사범대생은 2학년 전공에서야 제대로 배우고 익히더라. 교수들도 임용 위주라 그런지 수업은 대충 때우고. 졸업전에 일선 학점이 좀 비어서 심심풀이로 두 과목 들어봤다가 경악함. 자기들도 그걸 아는지 3학년 땐 우리 학과로 원정 떼강 왔던데, 기말시험까지 남아있는 놈은 진짜 거의 보질 못함. ‘그럼 교직이 본 전공 실력 부족한 걸 보완해줄 만큼 대단한 거냐?’ 하면 사범대생 너희가 더 잘 알잖아. 그거 다 그냥 탁상공론뿐이지 대치동에서 몇 년 굴러보는 경험이 더 유용하단 거 대치동은 돈이라도 쌓이지. 그럴 거면 굳이 같은 서울대 간판 달고 깝죽거리게 둘 필요가 있나? 그냥 모든 대학 사범대 정원 다 없애고 대학원, 교직 이수만 둔 채로 전문직업학교, 중등 교대 같은 거 만들어서 돌리면 되지.
위의 인용문의 어조나 단어 선택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의 공격성이나 단어 선택의 적절성 등에 관한 논의는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 뒤로 하고, 위의 인용문에서 나타난 사범대에 관한 글쓴이의 논거를 정리해보자.
1. A 교육과(사범대학)는 A 학과(일반대학)보다 부족한 전공 지식을 가르치고 학습한다. 2. A 교육과 학생은 졸업요건을 채우고 임용고시를 통과하면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성장할 동기가 부족하다. 3. 사범대학의 교직과정이 이러한 일반대학과 사범대학의 학문적 차이를 좁혀줄 만큼 가치가 있지 않다. 4. 사범대학을 폐지하더라도 일반대학 교직과정, 일반대학 교육대학원, 중등 교대 신설 등의 방안을 통해 충분히 교원을 양성할 수 있다.
이 인용문 이외에도 커뮤니티의 많은 글에서 ‘사범대학을 폐지하고 일반대학 교직과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도입하면 효율적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사범대학의 폐지를 주장하는 글은 대부분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한 논지를 근거로 하여 사범대학의 존재 의미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교육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교육부는 올해 7월 13일 ‘초중등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중등교원 현행 체제의 교원 과잉양성, 높은 임용경쟁률 등에 관한 지적하며, 국어·수학·사회 등 공통과목 교원양성은 사범대에서 맡고, 이들 과목의 교직과정은 폐지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히는 등 사범대 중심의 축소된 교원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위 발전 방안의 주요 골자다.[각주:1] 앞서봤던, 사범대를 폐지하고 일반대학 교직과정 위주의 교원양성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커뮤니티 댓글과는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 완전히 반대의 방향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학령인구 감소와 임용경쟁률 과잉 현상으로 인한 교원양성 인원 감축 필요성과 그 방법에 관한 논의가 제시되어 오고 있는 시점에서, 필자는 사범대생으로서 이 글에서 사범대학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또한, 몸과 마음 모두 대학과 조금 떨어진 시기인 지금, 사범대학이 지니는 가치에 관해 기록하고자 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기득권 세력은 절대적인 권력으로 수많은 민중을 통제한다. 그들이 본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어'의 제정이다. 신어에서 good의 반대말은 bad가 아니라 un-good이며, splendid나 wonderful 같은 어휘들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제거된 후 plus-good 또는 double-plus-good으로 대치된다. 극도로 단순화시킨 이 언어를 통해 체제는 인간의 사유를 제한하려 한다. 다르게 사유하고 느끼려 하고, 기득권의 절대적인 권력에 반동적 사고를 지니려고 해도 이러한 생각을 지지할 언어가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신어의 제정 이외에 기득권 세력이 채택한 방법은 ‘이중사고’이다. 이중사고란 상반된 신념을 둘 다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사고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거를 조작하고 조작된 과거를 진실처럼 믿는 것, 그리고 자신이 과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즉, 진실과 조작된 과거가 모순되지만, 자신이 과거를 조작해놓고 그 사실을 잊는 훈련을 지속하면 조작된 과거가 진실이 되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모두 믿는 이중사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어로는 이를 '현실 통제'라 하고,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 과정에서의 통제는 <1984>에 서술된 것처럼 누군가의 언어 사용과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그 누군가의 전체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가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며, 가르침의 주체인 교사는 청소년에게 부모 바로 다음의, 어쩌면 부모와 동등한 수준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교사란 ‘주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단어의 정의에 따르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단어의 정의 이외에도 다른 직업에 비해서 교사의 도덕적 결함이 더욱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것이나, 교직 적인성검사나 임용고시를 통해 예비교사의 적성과 인성, 능력을 검사하는 것을 보면 교사가 다른 직업보다 더욱 엄격한 자격이 요구됨을 추측할 수 있다.
필자가 교육의 가치와 교사에게 다른 직업보다 엄격한 자격이 요구됨을 앞에서 길게 서술한 이유는 사범대학이 교육이라는 학문을 다루는 대학이라는 점에서 이미 그 존재가치가 충분함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며, 또한 사범대학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앞으로의 글 논지 전개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함이다.
앞서 머리말에 나왔던 사범대학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범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조금 상세히 이야기해보자. 우선, 사범대학은 일반대학과 학문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목표는 A라는 분야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고, 일반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목표는 A라는 분야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은 일반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에 비해 더욱 포괄적인 대신 간단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올해 1학기를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신 지리교육과 박병익 교수님은 지리교육학과 지리학에 차이에 대해서 “배우는 내용 자체는 비슷할 것이다. 다만 사범대 학생은 훗날 교사가 돼 본인이 직접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같은 것을 배우더라도 이해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이해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이해 수준을 높여야 하기에 지리학과보다는 배우는 내용이 좀 더 간단하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각주:2] 실제로, 사범대학과 일반대학의 교과목은 같은 교재를 다루더라도 그 개요나 학습 목표, 강의 진행 방법, 평가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서울대학교에 올해 1학기에 개설되었던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와 일반대학 영어영문학과의 전공 교과목이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교과목은 같은 교재로 유사한 개요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영국문학개관 1’은 ‘사회문화적 맥락, 시대적 감수성과 연계하여 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영국문학과 영국문화의 이해 A’는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통한 ‘효과적인 영어교육을 위한 배경지식 제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영국문학과 영국문화의 이해 A’에는 ‘발표와 토론’이라는 평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A를 잘하는 것과 A를 잘 가르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A라는 분야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사범대학의 교육 목적은 A를 가르치는 역량을 기르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일반대학 교직과정 출신 교사가 ‘교육내용에 대한 지식과 이해 능력’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점했지만, 사범대 출신 교사가 ‘효과적인 수업계획 및 조직’, ‘효과적인 교수 방법 숙달’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점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각주:3]
정리하자면, A 교육과는 A 학과보다 부족한 전공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사범대학만의 고유의 학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과과정을 학습하는 것이다, 사범대학의 이러한 학업 목표가 교원양성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것이 사범대학이 지니는 가치이고,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사범대학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관점을 기르도록 도와준다. 교수자에게는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지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루에서 태어난 사람과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1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원정팀 관중석이 홈 팀 관중석보다 더 가깝다는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원근 개념도 없는 사람으로 볼 뿐이다.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1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2루로 오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모습을 보고 그저 비웃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본인이 3루타를 친 것처럼 1루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랑하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서로 다른 환경, 조건에서 자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현상은 꽤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종의 잔소리로만 받아들이는 학생, 이런 간단한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냐며 학생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교사,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뽐내기 바쁜 교사. 이는 전부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범대학의 수업은 학습자에게 교수자로서 필요한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일반대학 교직과정에도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 있으나, 사범대학은 교직과정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그러한 과목이 많은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있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랑 국어국문학과의 학사과정 전공과목 이수 표준 형태이다.[각주:4]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범대학은 전체적으로 단순히 교과를 학습하는 것이 아닌 교육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쪽으로 대학 교육과정이 구성되어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범대학의 전공 수업은 대부분 발표나 토론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어떻게 교육할지, 발표할지, 듣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할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저 사람은 어떤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저런 특성과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런 식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을 명확히 파악하는 경험,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험이 생기고, 이와 관련된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밖에 없다. 교직과정과 사범대학의 교육 방법 위주의 커리큘럼, 발표와 토론을 포함한 수업방식 등 학습자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도록 돕는 특수한 환경이 사범대학이 지닌 가치이고, 또 하나의 필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교사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교사에게는 특별히 요구되는 자격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데, 그 자격 조건은 다른 직업에 비해 엄격한 듯 보인다. 사범대학의 학문 목적과 커리큘럼은 학습자가 학문을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점과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니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이러한 것들이 교사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격 조건이다.
즉,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사라는 직업을 양성하기 위한 교원양성기관으로써, 다른 대학에서는 배우지 않는,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학으로써 사범대학은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필요 가치가 충분하다.
충치는 사람을 참 힘들게 한다. 거울을 보다 문득 보인 작은 점 같은 충치를 애써 무시해본다. 조금 걱정되면 치과에 가 보는데, 진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은 이 정도면 앞으로 양치만 잘 하면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원하는 답을 들었기에 안심하고 치과를 나가며 다시는 치과에 오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다짐보다는 안심했던 것이 더 컸는지 어느 순간 이는 이전과 달리 욱신거리는 신호를 내게 보내는데, 내가 그걸 느끼고 치과에 갔을 때는 이미 무시무시한 소리(와 지불해야 할 치료비)가 주는 공포를 견디며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점 하나가 통증이 되어가는 그 중간의 시기를 어찌 잘 넘겨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문득 충치치료를 받으며 교육격차가 꼭 충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게 교육저널의 힘일까...!). 예전부터 교육격차라는 건 없을 수가 없었지만 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 판단해 그저 안주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COVID-19를 만나며 순식간에 커져버린 교육격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걸 되돌리는 데에는 치과 치료비마냥 큰 경제적 부담이 뒤따를 것이고, 그 속에 놓인 아이들은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은,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교육격차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 무엇인지에 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급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데, 아무래도 COVID-19가 급한 불씨를 지피지 않았나 싶다.
2. 서울시교육청의 교육후견인제
2021년 4월 6일 서울시교육청 기자간담회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육후견인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제도를 구상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COVID-19가 벌려놓은 교육격차와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해보겠다는 취지로 홍보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6월 22일에는 교육후견인제 시범 운영 사업에 참여할 자치구와 마을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였고, 같은 달 29일에 열린 서울교육정책 정책포럼에서 학교-가정-지역사회 협력 교육후견인제의 방향 및 과제에 대해 다루었다. 마침내 8월 19일에 마을 기관 20곳을 선정하여 오는 9월부터 시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교육후견인제도는 무엇이며, 이것이 현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에 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교육후견인제도란 ‘교육후견인’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어린이·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전 과정에서의 교육격차 및 교육소외 해소 및 방지를 위해 적합한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이후 지속적 만남을 통해 효과성을 점검하고 상담하는 서비스이다. 여기서 ‘교육후견인’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정의하고 있는 ‘교육후견인’이란 교육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과의 지속적 만남 및 학부모 담임 등과의 상담 및 소통으로 학습 지원, 정서심리지원, 특별 돌봄 등 아이들의 입장에서 적절한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건강한 이웃이자 사회적 보호자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교육후견인’은 퇴임교원, 학부모, 마을활동가 등이 될 수 있으며 성범죄전력 조회 등을 거쳐 30시간 기본연수를 이수한 후 본격적인 활동에 투입된다. 이 제도의 특징은 동단위 기반의 지원체계라는 점인데, 수혜 대상 아동도 동단위 교육안전망 협의체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되며, 그를 돕기 위해 학교와 동주민센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마을기관과 자원이 활용된다.[각주:1]
3. 명명의 중요성_‘후견’이어야만 했니?
왜 하필 ‘교육후견인’이라는 명칭이어야 하는지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필자 또한 이 제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하면 바로 이 명칭 선정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후견(guardianship)'이라는 용어를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는 친권자가 없는 미성년자나 발달장애인, 노인 등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에서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제도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어 서비스의 활용률 저조를 야기할 수도 있거니와, 외부로부터의 잘못된 낙인이 생겨 제도를 활용하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안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필자는 ’교육후견인‘이라는 용어에서의 ’후견‘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관점 중 하나인 paternalism(온건적 후견주의)과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근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주로 국가가 국민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듯, 아이를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조화시키기 위하여 또 하나의 눈이 아이를 감시하게 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성장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지만, 이를 위해 굳이 ’교육후견인‘이라는 역할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존의 교육복지(지역아동센터에서의 멘토링, Wee 클래스 등)와도 꽤나 중복되는 부분도 많으며, 단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동단위에서 시작하기에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점과 파편화된 기존 복지제도와 달리 통합체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인데, 왜 기존의 서비스를 통합하려하기보다는 굳이 ’교육후견인‘까지 만들며 아이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4. 가장 무서운 눈과 입_‘시선’과 ‘소문’
‘시선’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이 담긴 ‘시선’을 읽을 줄 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더욱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에서 구상한 교육후견인제도는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원한다고 하는 ‘보편 복지’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결국 이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게 되는 것은 ‘저소득층’의 아이들일 것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가정사나 형편이 남에게 일일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교육후견인’이라는 명분으로 일면식도 없는 어른은 나도 모르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정보의 격한 비대칭 속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단위’라는 이 서비스의 특징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아이들을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온 동네가 아이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끔찍할 수밖에 없다. 동네에서는 시선뿐만 아니라 ‘소문’도 무섭다. 어디서 샌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이야기는 퍼져 있다. 학교선생님만, 혹은 아동센터에서만 알아줬으면 하는 나의 비밀을 또 한 사람이 더 안다는 것은 그만큼 소문이 퍼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일해 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한 켠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후견인의 후보로서 학부모를 활용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려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학부모는 전문적인 인력도 아니거니와 로봇이 아닌 이상 객관적이고 공과 사를 구분하는 봉사자가 될 확률이 적다. 학부모들의 커뮤니티는 ‘시선’과 ‘소문’이라는 소용돌이의 온상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부모 교육후견인의 작은 실수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입히게 되는 위험성이 크다.
아직은 시범 사업이기에 지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려되는 점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협력하는 마을기관이 적다는 점과 이로 인해 수혜를 받고 효과를 검증할 학생이 적다는 점이다. 이번 공모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직접 지정하는 ‘교육청 지정형’ 마을기관으로 15곳, 자치구와 마을기관이 협력하는 ‘자치구 매칭형’으로 15곳 등 총 30개 기관을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총 27개 기관만 신청했다고 한다. 이중 8곳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했고, 결국 ‘교육청 지정형’ 11곳과 ‘자치구 매칭형’ 8곳만이 선정되었다. 이는 목표치 대비 63.3%였으며, 서울시교육청이 예산을 지원하겠다며 적극 홍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청 수도 적었고, 신청한 기관마저도 제출된 사업계획서에서 교육후견인제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각주:2] 마을기관 등 동단위의 기관협력이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 낮은 이해도와 참여율은 사업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연쇄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학생의 수조차 적어져 과연 제대로 된 효과 검증이 가능할지, 일회성 서비스에 그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5. 키다리아저씨와 그늘
서울시교육청이 그리는 ‘교육후견인제’의 모습은 온 마을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주는 모습일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 ‘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그들의 그림자로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모습은 가히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교육격차와 더불어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인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을 위한 키다리아저씨가 나타나주길 기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키다리아저씨가 교육후견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이며, 누가 되었든 키다리아저씨로서 만들어주는 그늘막이 아이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뚤빼뚤하게나마 키다리아저씨의 실루엣을 그려나가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첫 발걸음은 교육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장을 쓰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동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Dichter
2021년 6월 29일 ‘서울학생의 통합적 교육안전망을 꿈꾸다’ 정책포럼 자료집 참고 [본문으로]
혹자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국어 교과의 ‘언어와 매체’ 과목의 존재이다. 이 과목은 이름에 ‘매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매우 밀접해 보이며, 실제로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 이 과목은 크게 두 가지를 교육하는 것이 목적인데, 하나는 ‘언어’, 즉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한 문법 교육이고 나머지 하나는 ‘매체’, 즉 올바른 매체 활용을 위한 매체 교육(미디어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언어와 매체’ 교과는 4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대단원 ‘언어와 매체’에서는 언어의 세 가지 종류인 음성 언어, 문자 언어, 매체 언어의 본질과 특성을 다룬다. 둘째 대단원은 ‘국어의 탐구와 활용’으로 음운ㆍ단어ㆍ문장ㆍ담화와 같은 국어의 구조와 시대ㆍ사회ㆍ갈래에 따라 달라지는 국어 자료의 특성을 살핀다. 셋째 대단원은 매체에 관한 단원으로, 다양한 매체의 특성과 매체 자료의 수용ㆍ생산ㆍ표현, 매체 언어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마지막 대단원은 ‘언어와 매체에 관한 태도’로 언어와 매체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어와 매체’ 교육과정에서 ‘매체’ 관련 주요 학습 요소와 성취 기준만을 선별하면 다음과 같다.
앞서 제시한 강진숙 외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6가지를 기준으로 실제 ‘언어와 매체’ 교과서를 분석해 보자. 교과서는 천재교육 출판사에서 민현식을 대표 저자로 하여 출판한 것을 대상으로 삼았다.
첫째, ‘지식’ 역량에 대하여 언어와 매체 교과서는 단지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 휴대 전화, 인터넷 등 매체 유형에 관한 개별 사실을 피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뉴 미디어의 특징으로 실시간 상호 작용 가능, 상호 능동적 정보 교환, 멀티미디어적 성격, 복합 양식성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부족하다.[각주:1] 앞서 이석영이 제시한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확증편향 등 뉴 미디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추가하는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가짜 뉴스의 양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저 지녀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체의 정보 구성 방식에 대해서도 상식 수준에서만 설명하고 있는데, 앞서 이희심이 제시한 텔레비전 뉴스의 보도 순서, 앵글 구도 따위가 정보 전달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내용을 추가적으로 삽입하여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필요성이 보인다.
둘째, 비평 부문에서 교과서는 ‘인공 지능’으로 검색하여 나온 기사들이 어떤 관점과 가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을지 추측하기, 두 개의 기사문을 읽고 다양한 관점과 가치 고려하여 비평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각주:2] 그러나 학생의 능동적인 역할이 주어져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를테면 학생이 스스로 ‘주제어 선정 ― 주제어 검색 ― 기사 분석 ― 내용 요약 ― 기사의 관점 분석 ― 자신의 입장 정리’라는 과정을 거쳐 능동적으로 비평 역량을 증진할 수 있게 학습 활동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보인다.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라는 ‘리터러시’의 의미 그 자체를 생각했을 때도, 학생이 스스로 자료를 검색하여 한 편의 글을 완성하게 하는 학습활동이 적어도 하나는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셋째, 의사소통 역량에서는 언어 문화와 매체 문화의 발전을 위해 건전하고 건강한 매체 자료를 생산하는 문화, 매체 자료를 주체적ㆍ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문화를 기르자고 제시하고 있다.[각주:3] 그러나 학습활동 내용이 대체로 자아성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질적인 효용성이 의문시된다. 의사소통 역량은 말 그대로 ‘소통’인 만큼 나와 남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접근/활용 역량을 기르기 위해 교과서는 따로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이는 아마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 때때로는 ‘언어와 매체’ 교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보다도 ― 매체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만약 교과서가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위한 평생교육 차원에서 새로 제작된다면, 그때는 이러한 내용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다섯째, 구성/제작 측면에서 교과서는 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성, 대구와 비유 등을 활용한 매체 언어의 창의적 표현을 제시하고 찾아보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매체 창작을 교육하고 있다. 아울러 학습 활동에서 직접 창의적 표현을 이용해 매체를 제작하게 하고 있는데,[각주:4]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기 보다는 그저 말장난, 난센스를 만드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여섯째, 참여 측면에서 교과서는 여론의 폭발, 가짜 뉴스의 선동, 차별ㆍ혐오 표현, 언어폭력 등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고 바람직한 언어 사용 태도를 기르자고 하고 있다.[각주:5] 그러나 학습활동으로 ‘제시된 매체 언어의 부적절성 파악’, ‘자신의 언어 습관 성찰 보고서 작성’ 등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어서 실제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된다.
‘언어와 매체’를 넘어서
이상에서 살펴본 문제들에 비하여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와 ‘매체’를 결합한 교과 그 자체의 문제점이다. 이 교과서는 대다수의 고등학교에서 3학년 국어과 선택과목으로 학생들에게 제시되며,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를 위하여 매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교과의 문제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이 과목이 물론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과 선택과목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식 습득이 주(主)가 되는 ‘언어’ 공부에 밀려 태도 함양이 주가 되는 ‘매체’ 영역은 학교 현장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교과서에서 언어 영역과 매체 영역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공평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각주:6] 차라리 언어 영역과 매체 영역을 분리하여 독립적인 교과로 만드는 편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언어 영역 교과서는 문법 지식 습득과 활용 위주로, 매체 영역 교과서는 과감하게 활동 중심으로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있어 효과적일 것이다.
‘언어’와 ‘매체’가 왜 하나의 교과목 속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도 근원적인 문제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물론 인간의 언어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미디어 리터러시가 매체에서의 정확한 어문규범 사용 능력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와 매체에서 언어 영역은 ‘언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국어학’의 내용, 특히 그중에서도 국어 문법 지식에 관한 것인데 과연 ‘미디어 리터러시’가 특정 국가의 국어에 종속되는 개념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를 국어과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교과로 독립시킬 필요성이 엿보인다.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담지자는 이제 국어 교사가 아니라 사서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서는 문헌정보학과 도서관학의 담당자로서, 전통적으로 미디어를 수집하고 목록을 만든 후, 미디어를 조직하여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통해 대중들이 미디어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디지털화의 추세 속에서 사서들은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거나 가상 도서관 학습 공간을 활용하고, 온라인 정보 이용 교육을 담당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디지털 미디어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돕고 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미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가짜 뉴스’ 확인 방법 또한 미국 도서관에서 담당하고 있다.[각주:7]
캐나다의 MediaSmarts는 사서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사서에게 미디어 교육 전문가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주 정부는 학교 사서들이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였다. 일본의 학교 도서관법과 사서 교사 강습 규정 또한 사서 교사를 미디어 및 정보 리터러시 교육에 배속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사서를 디지털 시민성, 인터넷 안전 및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해 당사자이며 이와 관련된 자문 위원회에 참여해야 하는 필수 직종으로 인정하고 있다.[각주:8] 이러한 해외의 사례들은 사서의 역할이 학생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사서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일은 도서부 학생의 동아리 활동이나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을 대할 때뿐이다. 때때로 도서관 이용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고 도서관 활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독자적인 수업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사서 교사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당하게 되면 기존의 국어, 윤리와 연결 짓는 추상적이고 비실제적인 형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문헌정보학 지식을 활용하여 보다 실제적인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학교 도서관이 비단 학생들의 교육 기관으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중심 교육 기관으로 기능한다면, 사서 교사들은 지역의 소외된 정보화 계층을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가 학교 현장에서 잘 적응한다면, 그 성과를 가지고 또한 평생 교육 체제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외국의 사례를 본받아 학교 도서관 및 지역 공공 도서관의 사서들이 각 지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지하는 평생 학습 기관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될 것이며, 주민들은 이전보다 더 폭넓고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문헌 자료를 이용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강진숙ㆍ배현순ㆍ김지연ㆍ박유신ㆍ염지홍ㆍ장은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시민역량 제고 방안 연구』, 세종: 교육부, 2019. 교육부, 『국어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5, 세종: 교육부, 2015. 김상미, 「코로나19 관련 온라인 교육에 관한 국내 언론보도기사 분석」,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21(6),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2020, pp.1091-1100. 민현식ㆍ신명선ㆍ오현아ㆍ이지은ㆍ안장호ㆍ조진수ㆍ박진희, 『고등학교 언어와 매체』, 서울: 천재교육, 2018. 박종임,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개선을 위한 국어과 교육과정 현황 분석」, 『청람어문교육』 81, 청람어문교육학회, 2021, pp.7-36. 박주현ㆍ강봉숙, 「미디어정보리터러시 개념과 교육내용 개발」, 『한국도서관ㆍ정보학회지』 51(3), 한국도서관ㆍ정보학회, 2020, pp.223-250. 서보영ㆍ박진희,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언어와 매체 교과서 비교 연구: 매체 언어의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187, 국어국문학회, 2019, pp.219-269. 오지향, 「음악교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과 역할 강화 방안」, 『미래음악교육연구』 3(1), 미래음악교육학회, 2018, pp.27-48. 원용진, 「미디어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한국언론학회 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서울: (주)도서출판 지금, 2018, pp.14-46. 이석영, 「도덕과 교육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개선을 통한 도덕성 발달」, 2019년 한국윤리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윤리교육학회, 2019, pp.116-120. 이희심, 「사회과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모형」,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2013. 정현선ㆍ김아미ㆍ박유신ㆍ전경란ㆍ이지선ㆍ노자연, 「핵심역량 중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 체계화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11), 2016, pp.211-238.
정우맘 팽현숙
민현식ㆍ신명선ㆍ오현아ㆍ이지은ㆍ안장호ㆍ조진수ㆍ박진희, 『고등학교 언어와 매체』, 서울: 천재교육, 2018, pp.32-33; pp.38-39. [본문으로]
미증유(未曾有)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유행으로 인해 세계는 팬데믹(pandemic)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0년 한 해 전 세계는 전대미문의 비대면 시대를 보냈으며, 2021년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2월 대구ㆍ경북 지역에서의 확산세로 인해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고, 3월에는 개학을 앞두고 역사상 유례없는 개학 연기를 세 차례나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3월 31일에 정부는 ‘초중고특 신학기 온라인 개학 실시(코로나 19)’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개학’이라는 용어를 공식 발표하였다.[각주:1]
이러한 변화에서 날이 갈수록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정보의 형평성과 정보 공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미디어와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 문자나 이미지 및 영상 등을 독해할 수 있는 능력,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 정보를 다양한 상황에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고 한다.[각주:2]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현재 독립된 교과목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도서관과 같은 독립된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경우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각급 학교에서 사서 교사는 대체로 교과 수업을 담당하지 않으며, 다만 때때로 ‘도서관 이용 교육’이나 ‘독서 교육’과 같은 명목으로 학생들을 마주친다. 그마저도 국어 교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논해본 후,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사서 교사와의 관련성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향방을 살펴보겠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과 구성 요소
본래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는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던 단어로, ‘문해력(文解力)’이라고 한역하기도 한다. 굳이 라틴어였던 이유는 전근대 유럽 세계에서 지식인의 척도가 라틴어에 대한 문해력이었기 때문이다.[각주:3] 오늘날에 리터러시는 라틴어가 아니라 각국의 언어, 나아가 정보 사회에서의 ‘정보 매체에 사용된 언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양한 설명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정현선 외 5인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정보·문화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접근 및 비판적 이해, 미디어를를 활용한 정보ㆍ문화 생산 및 전달 능력, 미디어를 윤리적이고 책임 있게 이용하는 태도를 포함”[각주:4]한다고 정의하였다. 박주현ㆍ강봉숙은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를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층위가 다양한 미디어의 도구들을 활용하여 미디어의 환경을 이해하고 미디어 속 정보에 접속하고 정보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평가하고 이용하고 창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지식, 스킬, 태도가 포함된 역량”이라고 정의하였다.[각주:5]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다음의 6가지를 포함한다.
이 6가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어느 하나만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수준과 연령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모두 추구되어야 한다. 미디어의 기술적 조작ㆍ사용법과 제작 방법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가 미디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부적절한 언행을 남용하고 정보 수용에 있어 확증편향을 보인다면, 그는 올바른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니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이들 영역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어느 한쪽 역량만을 콕 찝어 늘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미디어가 실어 나르는 쟁점들에 대한 비평 능력과 이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은 ‘말하기’와 ‘쓰기’의 차원일 뿐이지 사실상 거의 유사한 능력이다. 더군다가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미디어에 대한 기술적 사용법의 숙지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미디어에 대한 접근/활용 능력은 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역으로 어떤 사람이 미디어에 대해 접근/활용만 할 수 있지 그것에 대해 제대로 비평ㆍ의사소통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마치 ‘실질적 문맹’ 상태에 있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그가 제대로 미디어에 대해 접근한다고 부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 6가지 역량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제대로 반영되어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보다 먼저, 이들 역량을 교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음의 두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미디어 리터러시를 우리 교육에 포함해야 하는가? 둘째, 미디어 리터러시를 따로 독립된 교과목으로서 교육해야 하는가? 전자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정당성 자체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 다른 교과와의 연계 방법에 관한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 역사의 상당한 기간 동안 인쇄 매체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다. 처음에는 비단에 글을 썼고, 후에는 종이에 글을 썼다. 활판 인쇄술이 개발된 이후 정보의 전파 속도는 날로 증가하였고, 신문이 대량으로 인쇄되며 언론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의 발전은 정보화 이후의 매체 발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디지털 매체가 등장하면서 매체의 특성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의 양과 속도는 매우 크게 증가하였고,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사건 발생 이후 즉시 파악할 수 있다. 1980년의 대한민국의 광주에서 군부는 단지 방송 송출을 막고 지역을 봉쇄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을 억제할 수 있었으나, 2011년의 튀니지에서는 혁명이 SNS의 바람을 타고 이슬람 문화권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변화에는 늘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 사회에는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단어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자극적인 거짓 정보를 여기저기 나르는 뉴스를 뜻하는 이 개념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거짓은 진실이 설 자리를 잃게 하고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과거보다 더욱 빨라진 정보의 확산 속도로 인해 이러한 거짓 정보는 SNS의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전 세계로 손쉽게 확산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이유는 자신의 주장이 정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라면 추악한 짓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정치적인 이유도 한 몫 하지만, 자극적인 정보를 확산함으로써 조회수를 늘리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언론인들의 경제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시민들의 확증편향은 가짜 뉴스를 더욱 부추긴다. 진실과 거짓이 한데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를 막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단연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언론 규제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가짜 뉴스의 남발을 마기 위해 정부의 언론 규제를 허용하자는 것은 도리어 민주주의에 또 다른 위협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이다. 따라서 어떤 매체가 건전하고 정확한 정보원인지 가려내는 개인의 역량 강화가 요청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접근했을 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용진은 ‘가짜 뉴스’에 대항하는 ― 그리하여 시민들을 이로부터 ‘보호하는’ ― 프레임(frame)으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설정하는 것의 문제점으로 다음을 제기한다. 첫째, 보호의 대상을 어린이나 청소년 등으로만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 ― ‘미디어의 폐해를 정확히 인지하자’ 따위의 ― 를 낳을 수 있다.[각주:6] 어떤 뉴스가 ‘진짜 뉴스’이고 어떤 뉴스가 ‘가짜’ 뉴스인지는 전문가조차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때로는 인식론적 문제를 수반하기도 한다.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정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용한 것은 아니다. 정보 사회에서 건전한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필수 조건이다. 다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마치 언론의 모든 부정적인 면모를 단박에 일소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의 특성에 대해 소개하면서,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가짜 뉴스는 왜 생기고 이로 인한 문제는 왜 발생하는지 등을 추가적으로 내용 요소에 포함할 필요성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시하면서 앞서 제시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단지 초등 ― 중등 ― 고등의 학교교육의 틀 안에 제한하지 말고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성인 계층의 경우,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할 때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교육에만 한정한다면 교육받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은 커질 것이고, 결국 부패 언론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디어 개혁 운동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각주:7] 부패 언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지 시민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라!’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문제의 책임 소지를 돌리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시민들이 가짜 뉴스로부터 해방될 권리, 진실을 알 권리가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자신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통해 대안 미디어를 구성하고 스스로 올바른 정보를 창출ㆍ전파하며, 나아가 정확한 정보를 생산할 것을 언론에 스스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다른 언론 대상 시민 단체들의 활동과도 함께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지닌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보호주의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시민 스스로 미디어를 선택, 수용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차원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각주:8]
물론 학교 교육 차원에서와 평생 교육 차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 서술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본서는 지면의 한계상 전자에 집중하여 서술하고, 후자에 관한 것은 후속 연구로 미루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아직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평생 교육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을 개발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우선 학교 도서관의 사서를 통한 학교 교육 체제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해 본서에서 다룬 후에, 학교 및 지역 도서관의 사서를 통한 평생 교육 체계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해 후서에서 다루어 보겠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을 전후하여 교육학계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교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기 위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교과별로 최근의 대표적인 연구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어과의 박종임은 현행 국어과 교육과정에 담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내용들을 분석하여 현행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문자 언어 기반의 글 자료’를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역량을 학년(군)별로 위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각주:9] 도덕과의 이석영은 뉴 미디어 알고리즘의 부정적 측면들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등을 제시하면서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에서 뉴 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미디어 사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각주:10] 사회과의 이희심은 텔레비전 뉴스를 소재로 뉴스 언어 기호 체계 알기, 기사 받아쓰기, 서사 구조 파악하기, 사실성 검토 및 의미 찾기, 카메라의 숏과 앵글 확인하기 등의 활동을 통하여 ‘게이트키핑(gatekeeping)’과 ‘프레이밍(framing)’, 뉴스에 담기는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수업 모형을 개발하였다.[각주:11] 음악과의 오지향은 디지털 기술의 변화가 대중음악의 제작ㆍ배포 양식 및 음악 감상자들에게 미치는 역할을 분석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음악 교육에 접목하여 팟캐스팅, 필드 레코딩 등의 음악 제작 교육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를 미디어 제작자로서 정체성 지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각주:12]
보다시피 다양한 교과목에서 많은 수의 연구자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수수방관하고 있지 않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렇듯이 교사의 역량에 따라 여러 교과목에서 다각도로 시행될 수 있는 현황이다. 그러나 나는 현행 체제를 넘어서 미디어 리터러시만을 따로 가르치는 교과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각 교과별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각자 담당하다 보면, 학생은 통합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디어 리터러시는 지식, 비평, 의사소통, 접근/활용, 구성/제작, 참여라는 6가지 역량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들 중 어느 하나의 역량만을 길렀다고 하여 그 사람이 참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기른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각 과목에서 따로 따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우다 보면, 가령 도덕과에서는 윤리적인 ‘참여’ 능력만 기를 수 있고 사회과에서는 ‘비평’ 능력만 기를 수 있으며 음악과에서는 ‘접근/활용’ 능력만 기를 수 있을 것이다. 6가지 역량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분절적 교육은 교육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혹자는 각 교과 교사가 미디어 리터러시의 6가지 역량을 한꺼번에 향상하는 교육 내용을 구성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각 교과 교사는 우선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교과의 내용 요소와 주요 역량을 교육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뒷전으로 물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사회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당한다면, 사회 교사는 사회과의 내용 요소와 사회과에서 주로 기르고자 하는 학생의 역량을 제쳐두고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량을 모두 골고루 향상하기 힘들고, 그것은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각 교과 교사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자신의 교과를 가르칠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독자 교과로 편성한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학생들에게 책임 지고 가르칠 수 있는 하나의 전문 인력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역량들을 모두 다루면서 체계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함양하게 하는 독립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과가 필요하다. 물론 이는 현재 여러 교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삭제ㆍ폐기하고 모두 신설 과목으로 이관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과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분절적으로 교육하는 현행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를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교과목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과 교육과정의 다양화가 추구되고 있는데, 이를 고려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공통 과목들(국어, 영어, 통합사회 등)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조금씩 기른 뒤, 2∼3학년 때 독립적인 과목을 선택함으로써 학생의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3학년군의 여타 일반선택/진로선택 과목들에서도 조금씩 학습활동의 영역에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활동들을 삽입한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독립 과목으로 배우고 있는 학생은 여러 과목에서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하여, 기존의 분절적ㆍ단편적인 지식 습득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또한 여타 과목과 융합하여 지식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정우맘 팽현숙
김상미, 「코로나19 관련 온라인 교육에 관한 국내 언론보도기사 분석」,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21(6),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2020, p.1092. [본문으로]
서양에서 동아시아 세계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의 경우 10세기 이후 동아시아 세계에 부상하는 ‘문인(文人)’ 세력을 ‘literatus’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이들이 지닌 리터러시(literacy)는 라틴어가 아니라 한문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말할 것이다. [본문으로]
정현선ㆍ김아미ㆍ박유신ㆍ전경란ㆍ이지선ㆍ노자연, 「핵심역량 중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 체계화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6(11), 2016, p.233. [본문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지는 10년이 조금 넘었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의 SNS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지는 더 짧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극적인 정보를 판단할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휩쓸린 사람들은 그것에 적응할 새 없이 중독되어버렸다.
애초에 사람들의 판단력이 미성숙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물론 옳은 설명일 수 있으나, 과거의 미디어와 지금의 미디어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새로운 미디어는 사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사용자를 파악하고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할 만한 콘텐츠를 내놓는다. 우리는 신문사나 방송사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고 언론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판단할 수 있으나, 새로운 미디어에서는 역으로 미디어가 사용자를 판단한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게, 맞춤으로. 예전에는 보고 싶지 않은 소식들도 강제로 들어야 했다면, 이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본인이 애써 노력(?)해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미흡하여 꼴 보기도 싫은 콘텐츠를 소개해줄 수도 있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 연결되는 것, 그것은 적당한 공통의 기반과 소통을 통해 가능하다. 공통의 기반을 발견하고 소통을 이어나가는 것은 쌍방이 노력을 해야 하고, 다들 알다시피 매우 어려운 일이다. SNS,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관계 맺음에 빠른 속도와 편리함을 주었지만, 관계 맺음의 내용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 SNS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은 광고이고, SNS를 운영하는 기업은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있다. 사용자가 광고를 많이 보게 하는 것, SNS를 길게 사용하게 만드는 것만이 SNS가 잘 되는 길이므로 정보 제공도, 친구 추천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SNS상에서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다른 영역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넉 달 전, 4월 24일 고(故) 손정민 군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 A 씨와 술을 마시고 잠든 뒤 실종되었다. 며칠 후 그가 시신으로 나타나자 손정민 군의 아버지는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용의자로 A 씨를 지목했다. 그러나 A 씨의 혐의점은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고, A 씨는 입장문을 밝힌 후 가짜뉴스와 악플에 대한 고소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 사건에 조사할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A 씨에 대한 의혹을 집요하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
미리 말하지만 필자는 손정민 군의 사망은 안타까운 사고 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판단으론, 고(故) 손정민 군의 사망을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면 그 이름은 사망 그 자체에 붙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망 이후 몇몇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가 만들어낸 마녀사냥, 악의적인 증거 날조, 선동에 붙어야 하는 이름이다. 아주 단순한 사고가 어마어마하게 몸집을 불려 대한민국의 여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상황이야말로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주목을 받아야 할 억울한 죽음들이 잊혔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슈를 판단하는 능력이 고작 이 정도였기 때문에, 언론과 미디어는 떠오르는 이슈에 목 빼고 동조하기 바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유튜브가 진실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일개 사용자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부터 미디어 사용자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 '틀딱'과 '문맹'은 기술이 결정한다.
필자와 필자의 외할아버지는 평소에 교류가 많고, 집도 가까워 5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산다. 한번은 필자가 할아버지께 전화했는데, 두 통, 세 통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했던 일이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필자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필자가 전화한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셨다. 그래서 "전화를 왜 안 받으셨냐" 여쭤보니, 전화음이 무음이 되어있어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데 더 놀란 것은 무엇이었냐면, 그렇게 된 지 이틀이 지났는데 무음 해제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셨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의 할아버지는, 단순한 폴더폰을 계속 사용하시다가 비교적 최근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셨다. 작동법도 낯설고 외양이 훨씬 단순해진 스마트폰을 마주한 할아버지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도 하나하나 배워서 알아야 했지만, 어디에서도 그것을 일일이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할아버지와 거의 비슷한 상황인 경우가 많았고, 가족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지 한참 되어 할아버지의 불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휴대폰 없이 다니셨고, 요새는 조금 익숙해지셔서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서 검색까지 하실 줄 알게 되었다.
정용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정보연구실 데이터사이언스그룹장이 발표한 '호모 스마트포니쿠스(Homo Smartphonicus), 세대별 진화 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3년 3.6%에서 2018년 37.8%로 매우 증가했다.[각주:2]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률과는 별개로, 스마트폰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모바일 뱅킹 이용률은 5.5%에 불과하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가입한 65세 이상 가입자 비중은 2019년 1월 기준 1%를 넘지 않았다.[각주:3] 이러한 불편함의 원인으로 스마트폰 사용환경이 고령자의 신체적/인지적 특징에 맞추어지지 않았단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스마트폰 특성상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조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들의 경우 움직임이 둔해지고 지문이 닳아 조작이 힘들다. 여기에 노안으로 휴대폰의 글씨를 키우면 화면 안의 정보량이 적어지고, 한 번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온라인으로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지는데 노인들은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 아울러 '데이터', '와이파이' 같은 신조어는 영어에 기반을 두고 있어,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한다.
복잡한 은행 업무를 비롯해 거의 모든 일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도구에 대한 이해와 사용 능력이 부족한 탓에, 노인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판단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하지 않아 특정 앱, 미디어에의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전체 8.5%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떠돌아다니는 가짜뉴스를 공유한 데 비해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11%가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데 참여했다.[각주:4]
상황이 이러한데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비방은 줄어들지 않는다. "집에서 편리하게 은행 업무를 다 할 수 있는데 왜 어르신들은 굳이 오프라인 은행을 찾아가냐"는 조소 섞인 비난, 나이 많은 극우 유튜버들을 보면서 틀딱이라고 비웃는 사람들. 이런 말들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폄하하고 배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답답함 없이 기기를 쓰고 싶지 않을까? 기기가 이미 사용자를 다양하게 규정하지 않는데, 약자 개개인에게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더 배울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수많은 틀딱과 디지털 문맹을 만들어낸 것은 미디어의 진보와 발전에서 약자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미디어의 진보와 발전에 약자의 목소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3. 그리고 가짜뉴스는 공격하기 쉬운 대상을 찾아낸다.
앞에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사실 확증편향은 노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신체적/인지적 특성과 미디어 사용 환경이 잘 맞지 않아 그럴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지, SNS는 이미 그 자체로 사용자가 확증편향을 가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자. SNS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SNS 운영 수익은 어디에서 나올까? 누구나 아는 답이지만, SNS의 수익은 광고에서 나온다. SNS는 필연적으로 사용자가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붙잡아놓아야 하고, 사용자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여 맞춤 정보, 맞춤 광고를 적절하게 띄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식의 농담은, 다시 생각해보면 유튜브가 당신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계속 붙잡아뒀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는 사이에 당신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지 않은 이상 광고 한두 편을 더 볼 것이고, 또 다른 추천 영상에 이끌릴 것이고, 다시 광고를 보고... SNS는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각주:5]
SNS는, 특히 유튜브의 경우 사용자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서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추천하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던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의 공동연구에서도, 극성 트럼프 지지자(=힐러리 극성 반대자)일 경우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빈도가 더 높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극우파 유튜브 발 가짜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코로나 양성 확진자를 보건 당국이 허위로 양성하고 있다"라거나, "(코로나 확진자를 격리해놓는 것이) 정치적 탄압이 아니냐"라는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각주:6] 서두에 다루었던 고 손정민 군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발언들은 마치 사실인 양 포장되어 여기저기 퍼지고, 미디어를 편향적으로 접하는 사용자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확증편향은 더 폭력적으로 사회의 어떤 면을 재생산한다.
어떤 가짜뉴스는 이런 확증편향을 자극하여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 뿌리 깊은 폭력성을 답습한다. 필자는 최근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퍼뜨린 가짜뉴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기사 제목에서 사실인 것이 무엇일까? 사실인 것은 '3호선에서 여자 승객이 쓰러졌다'는 내용뿐이다. 이 여자 승객이 쓰러진 후 최초로 119에 신고한 신고자는 쓰러진 여자 승객이 핫팬츠 차림도 아니었고, 쓰러진 여자 승객을 도운 사람 중에는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각주:7]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을 여러 시민이 도왔던 단순한 해프닝인데 언론은 성범죄 무고죄를 겨냥하면서 이것으로 성별 간 싸움을 붙인 것이다.
이 가짜뉴스는 '보배드림' 커뮤니티 내 목격자의 글을 주류 언론사가 가져다 쓰면서 유포되었다. 여성과 남성을 대치시키고, 여성의 복장이 '핫팬츠'였다는 걸 꼭 언급하는 정성스러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사 제목은 반(反)페미 남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기사의 댓글난은 가짜뉴스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여자들 자업자득이다', '도와줬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 바엔 (...) 사회가 이렇게 된 건 남자들 탓이 아니라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자' 등과 같이 여성을 향한 비난과 매도로 가득 찼다.[각주:8]
이 기사와 댓글에 성폭력 무고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 역시 확증편향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7월 19일 공개된 '검찰 사건 처리 통계로 본 성폭력 무고 사건 현황'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죄로 고소된 사건 중 84.1%는 불기소되고,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556명으로, 성폭력 사건으로 기소된 피의자 수의 0.78%에 불과하다.[각주:9] 위의 '3호선 핫팬츠녀' 기사는 성폭력 무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겨냥하여 조회수를 뽑아냈고, 어떤 여성은 해명할 기회도 제때 얻지 못해 또다시 '핫팬츠녀'로 대상화되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언론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양 작성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미처 몰랐던 일, 알기 어려웠던 사실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즉시 구별해낼 수 있는가? 이 사건은 가짜뉴스가 올라온 다음 정황을 파악하고 오마이뉴스에서 팩트 체크 기사가 올라오기 전까지 날개 돋친 듯 퍼지고 있었다. 개인은 관심법을 사용하는 궁예가 아닌 이상 뉴스 한 편을 보고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뉴스를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4. 그래서, 미디어 교육은?
필자는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싶지 않았다. 스마트폰, 언론, 미디어는 자본만을 좇을 경우 편향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 편향된 사람들을 자극하여 돈을 번다. 이런 언론과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몇몇 사건들을 주목하여 드러내지만, 그 상세한 내용 - 누구와 누구를 잇는지, 이 사건을 발굴하는 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 은 쉽게 간과한다. 일개 사용자인 우리는 어그로 끌려서 조회수에 기여하는 독자였다가, 기사 내용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펼칠 수 있는 비판적인 독자이기를 어쩔 수 없이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얻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개인의 역량 강화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에 대한 교육과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언론의 구조에 항의할 수 있도록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도구 사용을 교육하는 동시에 도구 역시 바뀌어야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함과 동시에 미디어와 언론을 시정해야한다.
#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도록.
디지털 기기와 그 속의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내가 살던 세계 많이 다른 세계'일 것이다. 사람들의 확증 편향은 이 세계를 '다양하게' 접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 방법은 여태껏 혼자서 익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심각해져만 갔다. 필자는 도구에 대한 교육과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교육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구와 미디어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구 사용 방법을 배우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본인의 확증편향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도구와 미디어를 배우는 것은 특히 앞서 언급했던 노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교육 방향을 추상적으로 늘어놓았는데, 독일의 '뮌스터 벤노하우스'를 예시로 들면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뮌스터 벤노하우스는 노인들을 위한 시민 미디어센터이다. 이 기관에서는 노인층과 청년층이 함께하는 영상 프로젝트, 뉴미디어 시민TV 공동 제작 등 미디어의 생산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각주:10] 이처럼 노인층과 같이 소외된 이들을 디지털 기기의 세계와 공론장에 동시에 끌어들이고, 시민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있다면 노인은 더이상 가짜뉴스를 퍼나르고 선동하는 이들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 거대한 흐름에 작은 것들이 압도되지 않도록.
위에서 필자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한 교육안을 제시했지만, 이 교육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의지 있는 개인들이 쉽게 교육받을 수 있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의지 없는 개인들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 생각엔, 사회가 가짜뉴스로부터 개인들을 지키는 안전망이 되려면 사람들과 소통하고 본인의 의사를 정치적으로 표현할 역량을 갖춘 시민들이 필요하다.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법안은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징벌적 손해배상제), 가짜뉴스로 추정되는 뉴스를 노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열람차단 청구권).[각주:11] 그러나 이 법안의 위험성과 효용성을 고민해보면 여러 의문점이 생긴다. 우선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고, 언론의 권력 고발 기능을 제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법안은 유튜브, 페이스북 발 가짜뉴스는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필자의 글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언급했는데, 유튜브발 가짜뉴스가 활개를 쳐 혼란을 일으켰던 최근의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이 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와 그로부터 비롯된 혼란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으로는 막을 수 없고,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결국, 나날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와 언론, 가짜뉴스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불명확하고 불완전하지만 이미 발빠르게 형성되어있는 무언가, 시민 사회의 비판적인 판단 능력이다. 더불어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 예컨대 노인들이 디지털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 언론과 미디어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 역시 시민 사회의 정치적 역량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시민 사회가 미디어와 언론을 판단하고, 미디어와 언론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정치교육이라 일컬은 것은 특별한 무언가는 아닐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꼭 학교 교육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다. 정부 기관에서는 문제 제기 통로를 더 열어놓고, 자료 공개를 더 적극적으로 하고,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를 이야기할 공간, 공론장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정치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조회수와 광고 재생 횟수로 전락하지 않고 시민으로서 미디어를 대해보자.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도구와 미디어를 구성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민 말이다.
월영
노경조, '[손정민 사건 3개월] 사망원인 대신 방송·유튜버 고소만 남아', 아주경제, 2021.07.28.(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심윤지, '고령층 스마트폰 보유율 늘지만… 실제 활용까진 높은 '문턱'', 경향신문, 2019.09.13.(기사작성), 2021.08.18.(인용) [본문으로]
금준경,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미디어 오늘, 2019.05.12.(기사입력), 2021.08.18.(인용) [본문으로]
James Devitt and B. Rose Kelly, 'Fake News Shared by Very Few, But Those Over 65 More Likely to Pass on Such Stories, New Study Finds', 2019.01.07.(기사입력), 2021.8.18.(인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