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충치 같은 교육격차
충치는 사람을 참 힘들게 한다. 거울을 보다 문득 보인 작은 점 같은 충치를 애써 무시해본다. 조금 걱정되면 치과에 가 보는데, 진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은 이 정도면 앞으로 양치만 잘 하면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원하는 답을 들었기에 안심하고 치과를 나가며 다시는 치과에 오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다짐보다는 안심했던 것이 더 컸는지 어느 순간 이는 이전과 달리 욱신거리는 신호를 내게 보내는데, 내가 그걸 느끼고 치과에 갔을 때는 이미 무시무시한 소리(와 지불해야 할 치료비)가 주는 공포를 견디며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점 하나가 통증이 되어가는 그 중간의 시기를 어찌 잘 넘겨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문득 충치치료를 받으며 교육격차가 꼭 충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게 교육저널의 힘일까...!). 예전부터 교육격차라는 건 없을 수가 없었지만 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 판단해 그저 안주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COVID-19를 만나며 순식간에 커져버린 교육격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걸 되돌리는 데에는 치과 치료비마냥 큰 경제적 부담이 뒤따를 것이고, 그 속에 놓인 아이들은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은,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교육격차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 무엇인지에 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급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데, 아무래도 COVID-19가 급한 불씨를 지피지 않았나 싶다.
2. 서울시교육청의 교육후견인제
2021년 4월 6일 서울시교육청 기자간담회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육후견인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제도를 구상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COVID-19가 벌려놓은 교육격차와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해보겠다는 취지로 홍보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6월 22일에는 교육후견인제 시범 운영 사업에 참여할 자치구와 마을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였고, 같은 달 29일에 열린 서울교육정책 정책포럼에서 학교-가정-지역사회 협력 교육후견인제의 방향 및 과제에 대해 다루었다. 마침내 8월 19일에 마을 기관 20곳을 선정하여 오는 9월부터 시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교육후견인제도는 무엇이며, 이것이 현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에 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교육후견인제도란 ‘교육후견인’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어린이·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전 과정에서의 교육격차 및 교육소외 해소 및 방지를 위해 적합한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이후 지속적 만남을 통해 효과성을 점검하고 상담하는 서비스이다. 여기서 ‘교육후견인’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정의하고 있는 ‘교육후견인’이란 교육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과의 지속적 만남 및 학부모 담임 등과의 상담 및 소통으로 학습 지원, 정서심리지원, 특별 돌봄 등 아이들의 입장에서 적절한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건강한 이웃이자 사회적 보호자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교육후견인’은 퇴임교원, 학부모, 마을활동가 등이 될 수 있으며 성범죄전력 조회 등을 거쳐 30시간 기본연수를 이수한 후 본격적인 활동에 투입된다. 이 제도의 특징은 동단위 기반의 지원체계라는 점인데, 수혜 대상 아동도 동단위 교육안전망 협의체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되며, 그를 돕기 위해 학교와 동주민센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마을기관과 자원이 활용된다. 1
3. 명명의 중요성_‘후견’이어야만 했니?
왜 하필 ‘교육후견인’이라는 명칭이어야 하는지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필자 또한 이 제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하면 바로 이 명칭 선정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후견(guardianship)'이라는 용어를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는 친권자가 없는 미성년자나 발달장애인, 노인 등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에서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제도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어 서비스의 활용률 저조를 야기할 수도 있거니와, 외부로부터의 잘못된 낙인이 생겨 제도를 활용하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안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필자는 ’교육후견인‘이라는 용어에서의 ’후견‘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관점 중 하나인 paternalism(온건적 후견주의)과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근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주로 국가가 국민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듯, 아이를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조화시키기 위하여 또 하나의 눈이 아이를 감시하게 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성장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지만, 이를 위해 굳이 ’교육후견인‘이라는 역할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존의 교육복지(지역아동센터에서의 멘토링, Wee 클래스 등)와도 꽤나 중복되는 부분도 많으며, 단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동단위에서 시작하기에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점과 파편화된 기존 복지제도와 달리 통합체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인데, 왜 기존의 서비스를 통합하려하기보다는 굳이 ’교육후견인‘까지 만들며 아이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4. 가장 무서운 눈과 입_‘시선’과 ‘소문’
‘시선’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이 담긴 ‘시선’을 읽을 줄 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더욱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에서 구상한 교육후견인제도는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원한다고 하는 ‘보편 복지’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결국 이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게 되는 것은 ‘저소득층’의 아이들일 것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가정사나 형편이 남에게 일일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교육후견인’이라는 명분으로 일면식도 없는 어른은 나도 모르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정보의 격한 비대칭 속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단위’라는 이 서비스의 특징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아이들을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온 동네가 아이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끔찍할 수밖에 없다. 동네에서는 시선뿐만 아니라 ‘소문’도 무섭다. 어디서 샌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이야기는 퍼져 있다. 학교선생님만, 혹은 아동센터에서만 알아줬으면 하는 나의 비밀을 또 한 사람이 더 안다는 것은 그만큼 소문이 퍼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일해 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한 켠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후견인의 후보로서 학부모를 활용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려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학부모는 전문적인 인력도 아니거니와 로봇이 아닌 이상 객관적이고 공과 사를 구분하는 봉사자가 될 확률이 적다. 학부모들의 커뮤니티는 ‘시선’과 ‘소문’이라는 소용돌이의 온상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부모 교육후견인의 작은 실수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입히게 되는 위험성이 크다.
아직은 시범 사업이기에 지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려되는 점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협력하는 마을기관이 적다는 점과 이로 인해 수혜를 받고 효과를 검증할 학생이 적다는 점이다. 이번 공모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직접 지정하는 ‘교육청 지정형’ 마을기관으로 15곳, 자치구와 마을기관이 협력하는 ‘자치구 매칭형’으로 15곳 등 총 30개 기관을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총 27개 기관만 신청했다고 한다. 이중 8곳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했고, 결국 ‘교육청 지정형’ 11곳과 ‘자치구 매칭형’ 8곳만이 선정되었다. 이는 목표치 대비 63.3%였으며, 서울시교육청이 예산을 지원하겠다며 적극 홍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청 수도 적었고, 신청한 기관마저도 제출된 사업계획서에서 교육후견인제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기관 등 동단위의 기관협력이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 낮은 이해도와 참여율은 사업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연쇄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학생의 수조차 적어져 과연 제대로 된 효과 검증이 가능할지, 일회성 서비스에 그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2
5. 키다리아저씨와 그늘
서울시교육청이 그리는 ‘교육후견인제’의 모습은 온 마을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주는 모습일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 ‘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그들의 그림자로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모습은 가히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교육격차와 더불어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인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을 위한 키다리아저씨가 나타나주길 기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키다리아저씨가 교육후견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이며, 누가 되었든 키다리아저씨로서 만들어주는 그늘막이 아이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뚤빼뚤하게나마 키다리아저씨의 실루엣을 그려나가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첫 발걸음은 교육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장을 쓰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동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Dichter
- 2021년 6월 29일 ‘서울학생의 통합적 교육안전망을 꿈꾸다’ 정책포럼 자료집 참고 [본문으로]
- 장지훈, '‘교육후견인제’ 시작부터 삐걱...기관 참여, 목표치 63% 그쳐', 뉴스1, 2021년 8월 3일, https://www.news1.kr/articles/43915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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