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편리하지만 피곤한 일입니다. 교육저널 38호 제목이 ‘혼란기(記)’였던 까닭도 비대면의 피로함과 우울함이 누적된 결과였던 것만 같습니다. 줌 회의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끊어질 것 같은 인간관계를 붙들기 위해서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서일까요? 학교에서 편집위원들을 대면으로 만났을 때 왠지 훨씬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건 겁이 났지만요.
이번 호 ‘출발선에서’는 기나긴 코로나 시국을 마무리 짓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2년간 정말 많은 것을 무력화했고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지만, 교육저널은 그 와중에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딛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글들을 담아보았습니다.
‘몸풀기’에서는 선거 연령 하향, 코로나 시국 비대면 교육 등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었던 편집위원들이 이런 변화와 함께 무엇을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글로 풀어냈습니다. 당근주스와 윤슬의 글에서 편집위원들이 변화를 마주하며 느꼈던 진솔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숨 고르기’에서는 각기 다른 학과에 속한 편집위원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교과목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일육, 응향, 월영 각자의 전공 이야기인 만큼 아끼는 (혹은 애증의)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번 교육저널 영화제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습니다. 빔프로젝터를 벽에 쏘아 영화를 보는 게 꽤 낭만적이었는데, 이 글로도 그 분위기가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러셀입니다. 신입생 때 막연히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 교육 저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벌써 3학기 째 활동을 마쳤네요. 제 대학 생활의 시작은 교육 저널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제 의견을 주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가 정말 좋았습니다. 비록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교육저널을 떠나게 되었지만, 따뜻한 시선을 가진 교육 저널만의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한편 이번 학기는 유독 글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욕이 떨어져서 글 완성을 계속 미뤘던 거 같아요. 아마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동아리를 운영해야 했기에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지 완성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독려해주신 편집 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우정
코로나 시대의 대학교육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자치동아리 역시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 편집장 없이 발간한 교육저널 38호의 제목 '혼란기'는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냅니다. 두 학기째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 역할 분담을 하면서 간신히 이어온 교육저널 활동이 이번학기 유난히 더 힘들었던 것 같네요. 글을 쓰며 이 혼란기에 학교에 그리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학생 자치언론과 동아리가 지속되기 위해서 학교와 학생은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Insomnia
우선 글을 너무너무 작성하기 힘든 여러 환경에 처해 있어 글을 예정보다 너무 늦게 작성 완료했는데, 기다려주신 교육저널 부원분들께 너무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의 주제가 사범대생으로서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했고, 한 번쯤 생각해봤던 주제여서 글을 쓰는 동안 흥미로웠고 되게 다양한 생각들이 많이 들었는데, 제 생각을 온전히 담기에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저의 필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좀 남네요. ㅠㅠㅠㅠㅠㅠ
필명을 Insomnia로 정한 이유는 필명을 정할 당시에 잠을 너무 못 자기도 했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에 insomnia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해서 결정했는데... 역시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나 봅니다. 필명을 정한 이후에 개인적인 사건도 있었고, 교지 글도 작성하느라 숙면을 거의 취하지 못하는 타의적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네요. ㅠㅠㅠㅠㅠㅠ
요즘 많은 사람이 대학교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몸과 마음이 떨어진 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대학의 가치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헤매는 혼란기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저널도 역시 혼란기를 겪어 교지 작성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 교지가 그러한 혼란기 속에서 대학의 가치를 떠올릴 수 있게끔 하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월영
안녕하세요, 월영입니다. 이번엔 정념 아주 잔뜩 담긴 그런 글을 쓰고 말았는데, 코로나 시국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다 보니 두서없고 뾰족한 글을 남발해버렸네요. 힘들지 않은 사람 없는 이 기구한 시간 속에서 그래도 나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우울하군요) 이렇게 나름대로 애쓰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나중에 더 나은 무언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힘든 와중에도 같이 결과물 내려고 고생한 편집위원들도 모두 수고했어요!
#정우맘 팽현숙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몸소 느꼈습니다. 사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분야가 제 주된 관심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많이 멀어서,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과연 이 글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아둔해 마지않은 저로서는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주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다소 관심이 있던 교과 교육 분야랑 연관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다소 메타(meta-)적인 내용으로 글의 주제를 결정하였는데, 설득력 있는 글이 구성되었을지 걱정됩니다. 저의 필력이 많이 모자라 제 글을 읽으시는 데 혹시 불편함이 있으셨을지 많은 우려가 드는 바입니다. 부족하고 다소 장황하게 쓴 감이 있음이 없지 않은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게 모두 삼가 감사의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Dichter
또 뵙네요ㅎㅎ Dichter입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그들의 중요문제 중 하나인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육저널에서도 두 학기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온전히 동아리에 임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다른 편집위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특히, 다른 공동체 생활을 해보면서 교육저널만큼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은 더 없더라구요. 제가 무슨 일이 있든 다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걱정해주셔서 감사했어요...ㅎㅎ
이번 학기 교육후견인제도에 관한 제 글은 정말 따끈따끈한 최신의 소식인 만큼 news라는 말에 부합하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아직 시행효과나 진행상황이 자세히 보고되지 않은 만큼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소재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독자님들이 읽고 글이 다소 밋밋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글을 읽음으로써 저와 함께 교육후견인제도의 귀추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느 정도 시행 이후의 모습을 후속보도에 싣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교육저널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집위원님들과 독자님들 덕분에 교육저널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 )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어쩌면 12살 소년 '자인'으로부터 칼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12살 소년 자인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신분증도 없고,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자인. 법정에 선 자인에게 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판사가 묻자 자인이 대답한다.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그들이니까요.’ 올해 칸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이 담아낸 베이루트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참담하다.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뒤엉켜 사는 혼란스런 집안모습에서 시작해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비열한 거리에 내몰린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옥도를 보는 듯 절망적이다. 아이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파격적인 스토리지만, 영화는 법정드라마를 따라 가기 보다는 희망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온기 있는 카메라로 담아낸다.(...)[각주:1]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이므로, 교육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빛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주인공들에게 그러한 미래는 아득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버나움’은 예수가 몇 차례 기적을 일으켰음에도 회개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은 곳이다. 예수는 가버나움 사람들이 구원받는 미래는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타인으로부터 이런 저주를 받은 사람들, 앞으로의 삶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을 것임을 선포당한 아이들에게, 교육은 어떻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교육저널의 편집위원 월영과 러셀은 <가버나움>을 보고 세계 저편의 아이들과 교육,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불안한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논하는 - 교육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길 바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1) 인상깊은 대화, 장면은 무엇인가요?
월영: 자인이 딸을 임신한 엄마에게 ‘엄마는 감정도 없냐’는 식으로 말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영화에서 자인의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고, 굉장히 처참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하는데 왜 또 태어나게 하냐는.. 정말 무서운 비난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이걸 비유적으로 이해해보면 한국의 출산율 문제와도 연결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출산 지도를 만들거나, 직장 내에서 미혼 여성들을 조사하는 행태들이 아이들의 행복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낳기만 하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러셀: 오 저도 공감해요. 저는 특히 엄마가 딸 이름을 사하라로 짓는다고 말했을 때 자인처럼 분노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인이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미소를 보였던 것이 제일 인상깊었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때까지 자인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인도 겨우 12살밖에 안되는 아이였는데 생존하기 위해 주스를 팔고, 요나스를 책임지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어요.
월영: 그렇죠, 오히려 20대인 저보다 훨씬 세상의 풍파를 많이 맞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미 혼자서 살아가는 데에는 도가 튼.. 저는 가끔씩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자인이라는 친구는 정말 ‘태어났으니까 사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아마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최초로 그렇게 활짝 웃었던 것 같은데, 찡하더라고요.
2) 자인의 부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월영: 저는 앞 질문에서 했던 이야기에 이어서, 본인의 삶을 반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래 세대에게 좋지 못한 환경을 대물림해주는 기성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라힐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의지가 있고, 좋은 삶을 선물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부모인 건 마찬가지지만) 자인의 부모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러셀: 저도 자인의 부모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있는 아이들도 다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또 아이가 생겼다고 했을 때, 저도 자인처럼 절망했던 거 같아요. 자인을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주스를 팔게하고 여동생 사하르를 결혼시키는 장면을 보고 암울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방치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것 또한 학대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한편 자인의 부모에 대해서도 실망했지만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거 같아요.
3) 이 영화는 실제로 난민들을 캐스팅해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는데, 실제 배우들이 출생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영화제 전에 급하게 신분증을 발급하여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영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월영: 상상하기 싫어요.. 영화 보면서도 좀 괴로웠거든요. 이것보다 더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어른들도 있겠죠?
러셀: 이 사실을 알고 예전에 읽었던 ‘공간의 힘’이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져, 공간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불공평하며, 이러한 불평등한 공간이 사람의 운명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어요. 도시화된 중심부와 달리 주변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에 태어난 것이 단순한 우연이며, 그들의 선택이 아닌데 국적에 따라 삶의 좌지우지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자인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영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을 보며 공간적 불평등과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월영: 이미 태어나본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우연하게 이런 환경에 태어난 거잖아요? 어느 개인의 입장이라도 다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태어났더니 국적도 없고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영화에서도 그런 표현 많이 나오잖아요. 그 인신매매상이 “너가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져와”라고 했는데, 결국 자인은 본인이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져오는 데 실패하기도 하고. 이런 삶이 어떤 것일지…
러셀: 맞아요.. 그래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더 먹먹한 거 같아요.
4) 영화에서 자인은 본인의 부모들을 고소하는 형태로 묵었던 갈등을 풀어낸다. 이러한 해소의 의미, 혹은 한계라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월영: 저는 처음엔 기성세대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내려나 싶었어요. 재판 끝에서도 자인은 엄마에게서 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걸 재앙처럼 생각하잖아요. 결국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결론인가?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 게.. 이 고소가 방송을 타면서 자인의 이야기가 유명해졌고, 그걸 계기로 라힐이랑 요나스는 만날 수 있었잖아요. 저는 차라리 거기서 또 다른 희망,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러셀 : 저도 월영님 생각에 공감했어요! 과연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원래는 자인이 출생 신고증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지 못했는데, 방송을 타면서 자인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지만 신분증이 없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잖아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가혹한 삶을 사는 아이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담론이 생기면 어느정도 해피엔딩이 아닐까 생각했던거 같아요.
월영: 아, 러셀님 말씀 듣고 떠올린 건데, 한편으로는 자인이 방송을 타고 신분증을 만드는 게, 자인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자인이라는 아이가 있다는 걸 어떻게든 알게 되었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영화로 다른 아이들도 사람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마당에 모순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미 사람인 사람들이 받아들여야하는 것일 수도 있죠. 자인이 고소장 보낸 것처럼요.
러셀: 아 맞아요. 자인의 여동생 사하라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신분증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장면도 떠오르는 거 같아요. 월영님 말씀처럼 인간으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사각지대 속 그들도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5) 영화 제목이 가버나움인 이유가 무엇일까? (가버나움 재단)
월영: 가버나움이 약간… 어떠한 희망도 없는 땅이더라고요…? 영화 내용이랑 정말 맞다고 생각해요. 근데 정말 예수는 그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에 대해 그런 무자비한 예언을 했을까 의문이기도 해요. 물론 성경이나 기독교를 공부해보지는 않았지만… 자인이 처한 환경을 가버나움으로 비유할 수 있겠지만, 결국 아무런 희망도 없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러셀 : 음.. 자인과 아이들은 가혹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삶이 알려졌다는 점에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 같아요. 영화 내용을 현실로 확장하면,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실제 난민 소년과 불법체류자를 캐스팅하여 촬영한 것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현실에도 영화와 비슷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잖아요. 사람들이 가혹한 삶을 사는 아이들과 난민의 삶을 알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희망적인 거 같아요. 실제 가버나움 영화 제작진은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하여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해요.
월영: 좀 다른 관점에서, 이건 좀 불경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가버나움도 결국 ‘예수’의 저주를 받은 거잖아요. 근데 예수가 먼 미래의 가버나움 사람들까지도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있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자인은 본인의 삶을 규정해놓은 부모를 고소하고 본인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가 가버나움 지역에 내렸다던 그 저주에 반기를 든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가버나움은 다시 새로운 의미로, 더 나은 삶을 찾는 난민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장소로 바뀔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