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울대 학생 익명 커뮤니티에 게재된 다음의 댓글을 살펴보자.
졸업장 따고 임용만 붙으면 되니 실력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 같은 서울대라고 하기엔 수준이 너무 민망함. 나는 자연대 모 과인데 우리는 다 고등학생 때 당연히 습득하고 오는 내용을 사범대생은 2학년 전공에서야 제대로 배우고 익히더라. 교수들도 임용 위주라 그런지 수업은 대충 때우고. 졸업전에 일선 학점이 좀 비어서 심심풀이로 두 과목 들어봤다가 경악함. 자기들도 그걸 아는지 3학년 땐 우리 학과로 원정 떼강 왔던데, 기말시험까지 남아있는 놈은 진짜 거의 보질 못함. ‘그럼 교직이 본 전공 실력 부족한 걸 보완해줄 만큼 대단한 거냐?’ 하면 사범대생 너희가 더 잘 알잖아. 그거 다 그냥 탁상공론뿐이지 대치동에서 몇 년 굴러보는 경험이 더 유용하단 거 대치동은 돈이라도 쌓이지. 그럴 거면 굳이 같은 서울대 간판 달고 깝죽거리게 둘 필요가 있나? 그냥 모든 대학 사범대 정원 다 없애고 대학원, 교직 이수만 둔 채로 전문직업학교, 중등 교대 같은 거 만들어서 돌리면 되지.
위의 인용문의 어조나 단어 선택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의 공격성이나 단어 선택의 적절성 등에 관한 논의는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 뒤로 하고, 위의 인용문에서 나타난 사범대에 관한 글쓴이의 논거를 정리해보자.
1. A 교육과(사범대학)는 A 학과(일반대학)보다 부족한 전공 지식을 가르치고 학습한다. 2. A 교육과 학생은 졸업요건을 채우고 임용고시를 통과하면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성장할 동기가 부족하다. 3. 사범대학의 교직과정이 이러한 일반대학과 사범대학의 학문적 차이를 좁혀줄 만큼 가치가 있지 않다. 4. 사범대학을 폐지하더라도 일반대학 교직과정, 일반대학 교육대학원, 중등 교대 신설 등의 방안을 통해 충분히 교원을 양성할 수 있다. |
이 인용문 이외에도 커뮤니티의 많은 글에서 ‘사범대학을 폐지하고 일반대학 교직과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도입하면 효율적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사범대학의 폐지를 주장하는 글은 대부분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한 논지를 근거로 하여 사범대학의 존재 의미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교육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교육부는 올해 7월 13일 ‘초중등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중등교원 현행 체제의 교원 과잉양성, 높은 임용경쟁률 등에 관한 지적하며, 국어·수학·사회 등 공통과목 교원양성은 사범대에서 맡고, 이들 과목의 교직과정은 폐지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히는 등 사범대 중심의 축소된 교원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위 발전 방안의 주요 골자다. 앞서봤던, 사범대를 폐지하고 일반대학 교직과정 위주의 교원양성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커뮤니티 댓글과는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 완전히 반대의 방향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1
이처럼 학령인구 감소와 임용경쟁률 과잉 현상으로 인한 교원양성 인원 감축 필요성과 그 방법에 관한 논의가 제시되어 오고 있는 시점에서, 필자는 사범대생으로서 이 글에서 사범대학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또한, 몸과 마음 모두 대학과 조금 떨어진 시기인 지금, 사범대학이 지니는 가치에 관해 기록하고자 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기득권 세력은 절대적인 권력으로 수많은 민중을 통제한다. 그들이 본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어'의 제정이다. 신어에서 good의 반대말은 bad가 아니라 un-good이며, splendid나 wonderful 같은 어휘들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제거된 후 plus-good 또는 double-plus-good으로 대치된다. 극도로 단순화시킨 이 언어를 통해 체제는 인간의 사유를 제한하려 한다. 다르게 사유하고 느끼려 하고, 기득권의 절대적인 권력에 반동적 사고를 지니려고 해도 이러한 생각을 지지할 언어가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신어의 제정 이외에 기득권 세력이 채택한 방법은 ‘이중사고’이다. 이중사고란 상반된 신념을 둘 다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사고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거를 조작하고 조작된 과거를 진실처럼 믿는 것, 그리고 자신이 과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즉, 진실과 조작된 과거가 모순되지만, 자신이 과거를 조작해놓고 그 사실을 잊는 훈련을 지속하면 조작된 과거가 진실이 되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모두 믿는 이중사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어로는 이를 '현실 통제'라 하고,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 과정에서의 통제는 <1984>에 서술된 것처럼 누군가의 언어 사용과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그 누군가의 전체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가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며, 가르침의 주체인 교사는 청소년에게 부모 바로 다음의, 어쩌면 부모와 동등한 수준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교사란 ‘주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단어의 정의에 따르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단어의 정의 이외에도 다른 직업에 비해서 교사의 도덕적 결함이 더욱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것이나, 교직 적인성검사나 임용고시를 통해 예비교사의 적성과 인성, 능력을 검사하는 것을 보면 교사가 다른 직업보다 더욱 엄격한 자격이 요구됨을 추측할 수 있다.
필자가 교육의 가치와 교사에게 다른 직업보다 엄격한 자격이 요구됨을 앞에서 길게 서술한 이유는 사범대학이 교육이라는 학문을 다루는 대학이라는 점에서 이미 그 존재가치가 충분함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며, 또한 사범대학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앞으로의 글 논지 전개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함이다.
앞서 머리말에 나왔던 사범대학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범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조금 상세히 이야기해보자.
우선, 사범대학은 일반대학과 학문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목표는 A라는 분야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고, 일반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목표는 A라는 분야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은 일반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에 비해 더욱 포괄적인 대신 간단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올해 1학기를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신 지리교육과 박병익 교수님은 지리교육학과 지리학에 차이에 대해서 “배우는 내용 자체는 비슷할 것이다. 다만 사범대 학생은 훗날 교사가 돼 본인이 직접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같은 것을 배우더라도 이해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이해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이해 수준을 높여야 하기에 지리학과보다는 배우는 내용이 좀 더 간단하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실제로, 사범대학과 일반대학의 교과목은 같은 교재를 다루더라도 그 개요나 학습 목표, 강의 진행 방법, 평가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서울대학교에 올해 1학기에 개설되었던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와 일반대학 영어영문학과의 전공 교과목이다. 2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교과목은 같은 교재로 유사한 개요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영국문학개관 1’은 ‘사회문화적 맥락, 시대적 감수성과 연계하여 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영국문학과 영국문화의 이해 A’는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통한 ‘효과적인 영어교육을 위한 배경지식 제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영국문학과 영국문화의 이해 A’에는 ‘발표와 토론’이라는 평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A를 잘하는 것과 A를 잘 가르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A라는 분야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사범대학의 교육 목적은 A를 가르치는 역량을 기르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일반대학 교직과정 출신 교사가 ‘교육내용에 대한 지식과 이해 능력’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점했지만, 사범대 출신 교사가 ‘효과적인 수업계획 및 조직’, ‘효과적인 교수 방법 숙달’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점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3
정리하자면, A 교육과는 A 학과보다 부족한 전공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사범대학만의 고유의 학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과과정을 학습하는 것이다, 사범대학의 이러한 학업 목표가 교원양성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것이 사범대학이 지니는 가치이고,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사범대학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관점을 기르도록 도와준다. 교수자에게는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지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루에서 태어난 사람과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1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원정팀 관중석이 홈 팀 관중석보다 더 가깝다는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원근 개념도 없는 사람으로 볼 뿐이다.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1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2루로 오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모습을 보고 그저 비웃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본인이 3루타를 친 것처럼 1루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랑하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서로 다른 환경, 조건에서 자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현상은 꽤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종의 잔소리로만 받아들이는 학생, 이런 간단한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냐며 학생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교사,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뽐내기 바쁜 교사. 이는 전부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범대학의 수업은 학습자에게 교수자로서 필요한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일반대학 교직과정에도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 있으나, 사범대학은 교직과정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그러한 과목이 많은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있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랑 국어국문학과의 학사과정 전공과목 이수 표준 형태이다. 4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범대학은 전체적으로 단순히 교과를 학습하는 것이 아닌 교육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쪽으로 대학 교육과정이 구성되어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범대학의 전공 수업은 대부분 발표나 토론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어떻게 교육할지, 발표할지, 듣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할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저 사람은 어떤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저런 특성과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런 식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을 명확히 파악하는 경험,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험이 생기고, 이와 관련된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밖에 없다. 교직과정과 사범대학의 교육 방법 위주의 커리큘럼, 발표와 토론을 포함한 수업방식 등 학습자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도록 돕는 특수한 환경이 사범대학이 지닌 가치이고, 또 하나의 필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교사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교사에게는 특별히 요구되는 자격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데, 그 자격 조건은 다른 직업에 비해 엄격한 듯 보인다. 사범대학의 학문 목적과 커리큘럼은 학습자가 학문을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점과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지니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이러한 것들이 교사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격 조건이다.
즉,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사라는 직업을 양성하기 위한 교원양성기관으로써, 다른 대학에서는 배우지 않는,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학으로써 사범대학은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필요 가치가 충분하다.
Insomnia
- 교육부,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안」, 2021 [본문으로]
- 대학신문 2020년 2월 24일 자, 정년교수 인터뷰 「지리교육은 지리학과 다르죠」 [본문으로]
- 정주희, 「교사자질에 대한 사범대학 출신 교사와 일반대학 교직 출신 교사의 인식비교」, 2001, p.64-65. [본문으로]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국어국문학과 홈페이지 기준
국어교육과: https://koredu.snu.ac.kr/ko/curriculum
국어국문학과: https://hosting03.snu.ac.kr/~korean/bbs/content.php?ct_id=5&cate_id=202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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