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ayer-No such thing
음악을 선정하기 전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글 자체가 음악을 넣을 정도로 부드럽지 않았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결국 보다 나은 것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곡에서는 But something's better on the other side 라고 하죠. 이 글이 그 다른 쪽을 찾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서론
확실한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면, 우리는 교육을 받는다. 8살 쯤에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간 이래 우리는 의무교육상으로만 9년, 중등교육과정을 전부 합하면 12년, 현재 이 글을 보고 있는 학부생이라면 통상적으로 적어도 16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교육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가 교육을 받는 장기적인 목적은 정말로 다양하겠지만, 교육의 단기적인 목표는 유사하다. 장기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기본적인 교육의 단기적 목표는 피교육자의 육체 혹은 정신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 역량, 또는 가치관 등을 함양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평가, 그중에서도 피교육자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학생평가를 들 수 있다. 학생평가는 현대 한국인의 유년기 중 상당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사실, 한국인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상당 부분은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을 치르기 시작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한 중등 교육 과정에서 이는 수행평가와 수능 등으로 확대되며, 대학에 입학하면 평가 방식과 결과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A-F제와 S/U제는 언제나 교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구어 왔고, 총학생회의 학점 관련 공약은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그만큼 평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중요한 주제이며, 동시에 학생인 이상 벗어나기 힘든 대상이다. 우리가 학생으로서 교육받는 한, 교육의 성과를 확인하고자 만들어진 평가로부터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우리는 평가와 분리될 수 없다. 즉, 우리가 교육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평가의 시대에도 살 수밖에 없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평가, 특히 평가 결과가 사용되는 방식이다. 교육 목표의 달성 측면을 검토하는 측면에서 평가 결과는 매우 중요하고, 그렇기에 교육에 관한 평가 결과는 사회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평가가 아니라 평가 ‘결과’가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습 이전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행위가 만연하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학습하는 행위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문제는 성취하고자 하는 결과가 실제 교육으로 함양되는 역량과 괴리되더라도 좋은 평가 결과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미 광의의 부정행위가 언론의 사회 지면을 심심할 때마다 장식하고 있고, 대학도 그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 실제로 교육되고 함양되는 능력이 어찌 되든 평가 과정에서 좋은 점수, 즉 결과만을 얻기 위해 추구되는 주입식 교육은 비판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만 지금도 딱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질과는 무관하게 좋은 평가 결과를 도출하는 ‘꿀강’을 찾기 위한 투자도 한창이다. 2 평가 결과가 교육 자체보다 앞서는 상황이 만연한 것이다. 평가가 교육의 도구라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지금은 평가 결과가 교육의 목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의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평가 없이도 피교육자가 교육의 목적을 충분히 인지하고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우리가 평가 없는 교육을 실행할 수 없다면, 적어도 평가 결과를 평가 이후의 역량이나 교육과 연계하여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방향이 차선이 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교육에서 사용되는 평가라는 수단을 다시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써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한다.
그러나 교육의 범주와 목적은 다양하고, 개별 교육기관의 성격이 상이해 기관마다 교육의 목적, 평가 방식, 그리고 평가 수단 등은 다양해지므로, 이 글에서는 논의의 대상을 현재 글쓴이가 소속되어 있고, 경험한 바 있는 교육기관인 서울대학교 학부과정으로 한정할 것이다. 비슷한 사유로 학생 개인의 평가 결과 추종적 성향과 이러한 성향이 발생하는 사회적 이유는 이 글에서 반론으로서는 언급될 것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이를 이 글에서 상세히 다룰 경우, 논의 범위는 앞서 규정한 서울대학교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렇게 구성된다. 우선 교육과정에서 학생평가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지를 확인한다. 그다음 이러한 원칙을 글쓴이가 받은 대학 내 교육 경험에 적용하여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나아가 다른 요인을 고려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학내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검토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법과 함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스누지니와 연계하여 문제를 단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할 것이다.
기본적인 평가 원칙을 돌아보며
교육에서 학생평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운영하는 교육정보 종합서비스 시스템, 에듀넷에 따르면 학생평가의 목적은 크게 3가지다. 3 우선 학생이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한 성과를 확인하려는 평가 본연의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또한,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한다는, 교육의 목적에 합치하는 목적이 학생평가의 두 번째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교육과 학습을 위해 향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이 학생평가의 세 번째 목적이 된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평가가 어떤 평가가 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평가는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한 성과 자체를 확인하지 못하므로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없다.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평가를 통해 학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이러한 평가는 교육에 무익하다.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계획 수립을 통한 교육과 평가의 발전 가능성이 일차적으로 봉쇄되고, 학생 본인도 유기적인 학습 과정을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즉, 만약 대학교 수강 과목들의 평가가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면 대학 학부 과정은 약 4년 동안 체계적인 학제적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교육기관보다는 단편적인 강좌 130학점 어치를 제공하는 강의 패키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가? 첫 번째 목적은 시험 등의 평가 행위와 행위 내의 적절한 문제 구성으로 달성될 수 있고, 두 번째 목적은 평가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이 학습을 진행하게 되므로 이 또한 평가 행위를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가 행위 이상의 요소가 요구된다. 우선, 교육자는 지속적으로 학생의 학습 결과를 확인하여 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할 근거로써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별 학생의 학습 결과를 확인하는 작업이므로, 개별 학생을 단위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 역량을 학생에게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교육은 최종적인 평가 이후에도 바람직한 교육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 평가 내용을 토대로 학생의 교육 결과를 보충,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을 제한적으로라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학습 계획 또한 평가의 목적에 포함되므로 교육자와 학생은 이러한 평가 결과와 보충 과정을 바탕으로 향후 교육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 내 경험을 바탕으로 확인해보는 목적 이행 여부
실제로는 어떠한가? 단과대학 별로 수업의 구성이 다양할 수 있으나, 글쓴이가 지난 시간 동안 사회과학대학에서 수강한 수업은 대개 다음과 같은 구성을 갖추었다. 수강 신청 기간에 자유롭게 수업을 수강하여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선택하게 된다. 수업 내의 평가는 시험 2회와 리포트 하나, 혹은 이에 준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기말고사 혹은 기말 리포트를 전부 작성한 뒤에 학생은 교육과정을 평가하고, 그다음 평가 결과에 따른 성적을 확인하면 된다.
이러한 수업 과정에서 평가는 부분적으로만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첫 번째 목적은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출제된 평가 문항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학생이 교육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지금까지는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두 번째 목적도 부분적으로 이행된다. 이러한 평가 문항을 풀기 위해서 학생은 교육 내용을 고려하여 이를 학습해야 하고, 이는 교육 내용에 대한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설령 이 학습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에 벼락치기처럼 초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잦더라도, 평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럴 경우, 주요 원인은 학생 개인의 평가 결과 추종적 성향 때문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학습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하다. 평가가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을 최종적으로 도우려면 결국 기말고사나 기말 리포트와 같은 최종 평가 이후에도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학습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글쓴이도 몇 번은 경험하였듯 리포트 작성이 주가 되는 소규모 수업에서 종종 관찰될 가능성이 있지만, 강의의 규모가 크거나 정량적인 시험을 중심으로 평가가 진행되는 경우, 향후 학습 방향에 대한 유효한 피드백이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런 강의의 경우에는 평가 이후에도 학생이 성적 정정을 요청할 수 있는 기간이 대체로 존재했지만, 성적 정정 행위 자체가 학생의 학습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성적 정정은 성적 정정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성적을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평점을 조정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교육받은 내용에 대한 학습 방향을 보완하고 피드백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성적 정정을 위해서는 성적 정정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교육 내용에 충실할 필요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적 정정이 요구될 만큼의 성적을 받은 학생이 평가 결과를 받은 이후에 온전히 성적 정정을 위해 학습 역량을 발전시키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두 번째보다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수강한 수업 대부분은 전공과 교양 여부와 무관하게 학기말 평가와 강의평가를 진행한 후에는 성적 부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즉, 수업에서 구성된 교육자와 학생 간의 관계는 강의평가 및 성적을 기점으로 일반적으로 완전히 단절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특정 교수의 수업이 마음에 들어 계속해서 같은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을 수강할 수 있겠으나, 학기 이후에 방학에서 기존 수업에 대한 사고가 단절된 뒤에 새로운 과목을 불확정적으로 수강한다는 점에서 관계의 지속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교육관계의 재구축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계획은 실행하기도 힘들뿐더러, 수립조차도 힘들다. 개별 수업이 각 학기의 강의평가를 기점 삼아 단절적으로 이루어지면 학생의 학습 계획도 통합적으로 구성될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도 교육받는 주체로서 스스로 교육 계획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수강한 수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과목이 더 흥미로워 보인다거나, 아니면 그다지 적절히 수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과목과 관련된 방향은 수강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보다 정밀한 계획은 수립하지 못한다. 교육받은 결과를 나타내는 지표 중 그 어느 것도 그 이상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흔히 A,B,C 등으로 나타나는 평점은 상대평가의 경우 자신이 당해 학기 수강생들 가운데서 성적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높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뿐, 학생 본인이 해당 과목에서 어느 부분이 취약했고, 어떤 부분은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는지를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절대평가로 부여된 성적도 특정한 수준의 점수를 넘겼다는 점만을 나타내지, 상기의 항목에 답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개 우리가 성적을 보기 위해서 응답하는 강의평가도 본 목적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강의평가의 기본적인 취지는 학기 말에 교원과 학생 간의 소통을 통하여 교원, 즉 교육자에게는 더 나은 수업을 주재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는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법대의 모 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강의평가는 유산이다.” 4 서울대학교에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 130학점이고, 이를 8학기 안으로 충족하려면 학기당 16~17학점을 들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 중 과반수는 수강 과목 중 절반 미만의 과목에만 성실히 답변하는 셈이다. 즉, 강의평가의 주관식 항목이 전반적으로 강의에 유효한 지적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설령 강의평가가 적절히 작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강의 종료 후 강의평가를 작성하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의평가의 결과를 수업에 반영하더라도, 재수강을 하지 않는 한 강의평가를 작성한 학생이 강의평가의 수혜를 입을 수는 없다. 즉, 강의평가를 작성하는 학생 본인은 강의평가의 구조상 강의평가로부터 어떠한 교육적 편익도 얻지 못한다. 강의평가가 진정 유산이라면 유산을 남기는 이는 그 유산을 처음부터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불이행의 결과로 발생하는 문제점
세 번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결과는 여러 방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평가 이후의 보충 과정이 전무하여 부족한 학습 성과를 따라잡을 수단이 부재하다. 특히 과목 간의 연계성이 강한 전공과목의 경우, 학습 수준에 미달하였을 때 이를 보강할 수 없다면 향후 심화된 전공을 수강할 때도 교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경제학부를 예로 들어보자. 경제학부의 전공 필수 과목 중에는 경제학을 다루려면 필요한 수학적 지식을 교육하는 경제수학이라는 과목이 존재한다. 경제수학에서 교육받는 수학적인 지식은 경제학 과목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설령 그 지식이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더라도 수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가 수업의 토대를 이루는 경우가 잦다. 이때 경제수학을 제대로 수강하지 못한 학부생이 있다면,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하다. 기본적인 수학적 지식 없이 그 학생이 다른 전공과목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낮은 이해도는 낮은 성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따라서 자신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경제학 과목을 회피하기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낮은 학점은 복수전공 및 부전공, 심지어 전과에도 불리하다. 그렇게 심화전공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은 전공과목을 수학적 토대 없이 수강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때 그 학생은 오직 초기에 경제수학을 빈약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교육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없었음은 분명하고, 교육에 대한 열망이 꺾이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이다. 물론 성적이 C 이하라면 제한 없이 재수강하게 할 수 있는 제도는 취지상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한 없는 재수강은 재수강으로 수강 가능 수업을 하나 줄여서 학생의 학습 가능성을 줄이고, 학기 단위로 단절되는 수업의 특성상 강의 이후 즉시 이루어지는 보충 과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하게 하며, 평점이 C가 아니어도 추가적인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의 수요를 원천부터 차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 이후 보충적인 교육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음으로써 교육의 유기성은 저하된다. 이러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학생은 자신의 교육 결과에 따른 학습 방향을 정확히 기대할 수 없다. 그 결과로 학생은 전공을 유기적으로 학습하는 방법 혹은 방향을 심하게는 모를 수 있다. 설령 이를 학생 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진행하는 긍정적인 경우가 있더라도, 그 수준은 교육자들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았을 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교육자인 교수가 전공의 권위자라면, 그 권위자한테 들은 피드백은 이를 향후 교육 계획에 반영하는 것과 무관하게 학생의 학습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공과목의 권위자로부터 들은 피드백은 향후 학습 계획에 대한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향후 학습 계획에 대한 제안을 학생이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이전에 생각한 학습 계획보다는 피드백이 나았기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피드백을 완전히 거절하더라도 학생은 피드백을 기존에 생각하던 학습 계획과 비교한 결과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므로 피드백은 적어도 준거로서 역할은 다한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받거나 결정할 교육의 유기성은 학생평가에 따른 피드백이 부재함으로써 피드백이 있을 때보다 저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피드백은 학생과 교육자 간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진행되는 장이라는 점에서, 그 부재는 다른 문제점을 동반한다. 학생과 교육자의 관계가 평가만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관계로 경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는 언급한 바 있으나, 단순한 지식 주입과 상호 평가 관계 사이에서는 교육자와 학생 사이의 피드백이 부족하며, 따라서 평가 결과에만 의존하는 부정확한 보충만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 이는 학생과 교육자가 적절한 보충과 발전 방향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기에 역량을 함양하는 데에도 방해되고, 보다 유기적인 교육 방향을 구성하는 데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사실 형식적인 교육자-학생 간 관계와 교육의 유기성이 부재하다는 문제점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이다. 형식적인 관계는 학생들이 학생 본인의 교육이나 학습과 관련하여 교육자와의 소통을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만들고(앞서 언급하였던 강의평가의 경우를 상기한다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유기적인 교육을 받고 학습을 진행할 가능성은 작아지게 된다. 이에 대한 학생의 기대도 같이 감소하므로, 학생과 교육자 간의 생산적인 상호 소통에 대한 기대도 같이 감소한다. 이것이 심화되면 학생은 교육자와의 소통을 처음부터 고려하지조차 않게 되고, 교육자와 학생의 경직적인 관계는 악화된다. 뒤집어서 생각한다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교수자로부터 학습 방향에 대한 유익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가 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견해라면, 왜 학생들이 교육자와의 소통을 주저하겠는가?
그 형식적인 관계의 결과로, 학생들은 더 이상 교육의 교육적인 목적을 중시하지 않는다. 적어도 교육적인 목적이 수업을 듣는 이유 중 최우선은 아니게 된다. 교육 자체의 내용보다도 부차적인 요소, 즉 학점, 로드, 혹은 출석 등, 좋은 평가 결과를 얼마나 편하게 얻어낼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관심사가 된다. 이러한 글쓴이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증거는 명확하다. 이러한 편의성 지향적인 지표가 만연한 사례는 학생들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학교 커뮤니티 내부의 강의평가다. 최근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의 강의평가 항목에서 별점을 매기는 핵심적인 요소는 셋이다. 평가 결과인 성적과 수업이 얼마나 번거로울지의 지표가 되는 조별 과제와 과제량이다. 5 물론 개별 강의평가를 보면 교육적 내용을 고려하긴 하지만, 그 강의평에도 꼬박꼬박 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는 로드와 시험, 성적(결과)이다. 즉, 이미 학생들은 교육적인 내용에 앞서 형식적인 요소와 결과에 집중하고 있다. 수업 내용은 일부 고려하긴 하겠지만, 학업의 교육적 목적은 이미 뒷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인터넷 강의평에서 자주 쓰는 표현처럼, ‘성적으로 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시스템이 시스템으로서 져야 할 당위
이때, 이미 학생들이 교육적인 목적보다는 평가 결과에 거의 전적으로 반응하는 게 사실이라면 내부 교육 체계를 개선하고, 강의가 끝난 후에 보충 자료를 제공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아무리 평가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도 피교육자가 성적에만 골몰하여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일 수 있다. 학생들이 교육 시스템이 무엇을 하고자 하든 간에 성적과 교육의 편의성만을 중시하는 담론에 중독되어 있다면, 교육 체계를 개선한다고 한들 학생들의 행동 방식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집단적 행동기제를 바꿀 수 있는 법은 그것이 존재하는지부터 질문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은 방법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우리라는 점에서 그 무력감은 한층 더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학생들의 행동이 잘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이 교육의 평가 결과와 그 편의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바꿀 수 없는 상수라면 대학은 애꿎은 학생의 ‘정신머리’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대신, 설령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유기적인 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 자명하다.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고 하는 대신, 교육기관이 교육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대학도 교육기관이므로, 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단절되어 있던 교육적 연계도 보완하고, 학생들의 학습적 역량 보충도 개인이 따로 교재를 사거나 강의를 듣는 방식의 각자도생을 강요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유케 할 당위가 분명 대학에는 있다. 설령 중요한 과목에서 성적 부진으로 ‘뒤떨어진’ 학생이 나오더라도 대학은 학사경고 등의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한 서울대학교이기 이전에 교육기관으로서 그러한 학생의 학습 수준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때 생각할 수 있는 함정으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연계적이고 유기적인 교육과정은 대부분이 거쳐온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커리큘럼이다. 이전 과목이 바로 다음 학년에 배울 과목과 연계되어 교육에서 과목 간의 연계와 향후 학습 계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방과 후에는 비록 강제적 보충학습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많긴 했지만 부진한 과목에 대한 보충도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언제나 특정한 행동을 강요받고, 학습의 자유도가 극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대학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자유로운 학문과 사색의 공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단순히 유기성과 보충이라는 요소에만 경도되어 대학에 적용한다면, 대학 본연의 학문과 학습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다. (당장 자유로운 수강신청부터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를 있는 그대로 게으르게 대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경직성과 유기적 교육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방법은 양극단에서 중용까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 지점에서 학생 개인의 선택을 믿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학생 개인의 선택은 부정확한 지점이 아주 많지만, 생각보다는 정확하다. 아무리 흥미로워서 수강한 강의여도 자신에게 안 맞을 수 있고, 그럼에도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후련하게 수강신청을 취소하고 짐을 덜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강신청의 동기는 학생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며, 그것마저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강의 이후에 보충 자료를 올린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하면 되고, 아무리 유기적인 교육과정에 대해 바람직해 보이는 조언을 하더라도 이를 비교하고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역할은 학생 스스로의 몫이다. 그 선택은 아마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의 것보다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때 교육 시스템의 의의는 그 선택을 돕고,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지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깨닫게 하여, 이전보다는 나은 선택이 가능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학생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 적어도 정보나 선택지가 더 많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는 설령 그 유기적인 피드백에 따른 결과를 학생이 선택하지 않을 때도 유효하다. 교육자가 제공하는 선택지까지 고려해서 선택한 결과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한 선택보다는 더 합리적인 근거에서 선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학이 장기적으로 해야 할 것,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강의 후에도 피드백과 학습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교육자에게 학생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자와 보조 인원이 필요할 것임은 자명하고, 따라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에서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강좌 부문에 할당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대규모 강좌에 보조 인력이 더해지는 것보다는 교육자, 즉 정교수를 늘려서 수업 당 학생 수를 줄임으로써 학생과 교육자 사이에 직접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소규모 과목의 경우에는 평가 이후에 피드백도 잘 주고받았던 경우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러나 예산 확충은 단기적으로는 힘든 일이므로, 우리는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도 필요하다. 이때 제일 쉬운 방법은 기존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스누지니나 etl이다. 스누지니는 지금은 수강신청 기간에 단순히 교과목 검색 및 추천을 돕는 시스템이나, 6 이를 각 학부의 커리큘럼과 성적, 지금까지 학습한 과목과 미수강 과목이 요구하는 선수과목 등을 바탕으로 지금보다는 유기적인 구성으로 과목을 학생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상담 및 피드백을 통해 유기적인 교육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과도기에 사용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etl 같은 경우도 그 의무적인 강의평가와 연계하여 사후 학습자료를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면 역량을 사후에 보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교육자는 학습자료를 etl에 게시하기만 하면 되나, 학습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 및 시간적 여유를 조금은 보장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단기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고, 여기서 더 나은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
이상적으로는 없어도 괜찮다면 좋겠지만, 학생평가는 아직까지도 교육에서 불가피한 수단이다. 따라서 학생평가를 교육을 위해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학생평가의 세 목적 중 마지막 목적인 장기적인 교육과 학습을 위해 향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을 이루는 일은 유기적인 교육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대학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성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자체보다는 교육의 수단인 평가가, 그 중에서도 평가 결과가 목적이 되는 본말전도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여러 군데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를 개선할 방법은 학생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는 방법과 제도적으로 평가를 보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전자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를 상수로 고려할 때 대학이 할 일은 후자로 좁혀지므로 대학이 평가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서 해야 할 조치는 후자로 좁혀진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재원 확충을 통한 교육자, 즉 정교수를 늘려 교수 1인당 가르치는 학생 수를 줄이고, 대규모 강의로 인한 압박을 완화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겠으나, 단기적으로는 스누지니나 etl 같은 교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시작해볼 수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지만, 단기적으로라도 출발을 시도해볼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작하는 일 자체에도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시스템이 그 목적에 맞게 학생의 학습적 선택을 돕고, 실질적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지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깨닫게 하여, 이전보다는 나은 선택이 가능해지도록 돕기를 바란다. 그것은 시간이 얼마나 오래 흐르더라도 달성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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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미드 히파지, 「[Industry Review] 온라인 수업 원격시험 부정행위 골치…시험 과제 재탕 먼저 멈춰야」, 매일경제, 2022.10.20. https://www.mk.co.kr/news/business/10495337 [본문으로]
- 김민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수강신청 1분 전(戰)」, 대학신문, 2018.09.02.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52 [본문으로]
- https://www.edunet.net/nedu/edupolicy/stuEvalForm.do?menu_id=792 [본문으로]
- 김령원, 「서울대 강의평가를 평가하다」, 대학신문, 2022.04.10.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14 [/footnote] 그리고 그 유산은 잘 누적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강의평가에서 흔히 보이는 매우 그렇지 않다~매우 그렇다 로 대표되는 객관식 문항은 강의의 장단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느낌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개선 방향이나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주관적 문항이 존재하는 것이겠으나, 대학신문에 따르면 강의평가의 주관식 문항에서는 설문조사 참여 인원 중 과반수가 3개 미만의 강의에서만 성실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footnote]김령원, 같은 기사. [본문으로]
- 서울대학교 에브리타임의 강의실 참조. [본문으로]
- 김도균, 「무슨 강의 들을까? 스누지니가 알려줄게」, 대학신문, 2021.02.28.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9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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