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지니어스 (2017)>

 

  22년 11월 23일, 세 명의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하 나무, 당근주스, 정민)이 모여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올해 시험을 주관하는 STIC 협회가 부정행위를 발각해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시험지가 유출됐다는…” 천재소녀 ‘린’이 설계한 완벽한 답안지 모두가 원하는 그녀의 답안지로 전세계를 속여라! 시차를 이용한 완벽한 계획 거금이 걸린 천재의 위험한 신종(?) 학업 비즈니스가 시작된다![각주:1]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Q1: 시험 부정행위와 관련된 경험이나 관련되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정민: 저는 궁금했던 게, 여러분들이 감독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치팅’을 목격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무: 감독관이면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민: 그냥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할지 저는 고민이 돼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현명한 대응일까요? <배드 지니어스>에서는 교사들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무: 그 시험 끝나고 쉬는 시간에 따로 부르지 않을까요? 영화에서 나오는 국제시험관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당근주스: 저는 근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치팅을 목격한 적이 있었어요.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수학 선생님께서 왕따 관계를 모르고 무작정 피해자 친구한테 왜 시험지를 보여줬냐고 혼내셨어요.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제가 일어나서 저 친구는 억지로 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하여튼 저는 쉬는 시간에 따로 말하든지 해야지, 그 자리에서 질책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민: 당근주스님의 사례 같은 경우가 참 애매한 것 같아요. 기계적인 수준에서의 공정함을 보장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폭행이 가해진다면 어떡하나요. 보여준 학생의 점수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학교별로 관련 세칙이 정해져 있다고 하던데, 방금 말씀해주신 복잡한 수준의 맥락이 반영되고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Q2: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하나를 소개해주세요.

 

정민: 마지막 장면이 가장 마음 아팠어요. 뱅크가 너무 악해져서 슬펐거든요. 영화 초반에는 윤리적이고, 주인공 린을 도와주려고 하는 캐릭터였는데 끝에 가서는 엄청나게 가치관이 변한 거니까요. 린이 마지막 계획을 반대하니까 협박까지 하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이었죠.

 

나무: 초반에는 린이 다 주도하고 뱅크가 막는 느낌이었는데, 시험이 끝난 후에는 뱅크가 또 다른 린이 된 느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이 마지막 제안을 거절하고 문을 열고 나갈 때 뱅크 표정도 좋지 않아 보였어요. 씁쓸해보이기도 하고,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당근주스: 뱅크가 타락했다고 하긴 하지만,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린이 깨달음을 얻고 그만둔 것처럼, 뱅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의 실수였길 바라요.

 

 

Q3: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 중 인상 깊었던 캐릭터를 한 명 꼽아봅시다. 이유도 함께 설명해주세요.

 

정민: 그레이스가 귀엽고 웃겼어요. 본인의 성적도 중요하긴 하지만, 친구로서 린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자기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웃기고 귀여웠어요. 너무 순수하게 그려졌거든요.

 

나무: 주인공들 보면서 고등학교 친구 중에서 두 명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어디 있는 것 같은 느낌. 연기를 너무 잘한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 마음에 약간 안 들었고요. 교장 선생님이 인성 지도를 하긴 하지만 결국 본인도 부도덕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요. 그래서 위선적인 느낌이 굉장히 났어요. 린의 아버지도 기억에 남는데, 처음에는 무서운 아버지이신건가, 생각했는데 마지막 즈음에는 린이 국제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을 자백하고 본인에게 다시 돌아오게끔 한 것을 보면…. 린을 선한 길로 다시 인도해주신 것 같아요. 다 좋은 길로 이끌어주려고 하신 것이구나, 싶었네요.

 

당근주스: 린이 자백하러 갔을 때 아버님이 지으셨던 인자한 미소가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도 생각이 나고 슬펐거든요. 그런데 뱅크는 그걸 가지고 역으로 협박한 거예요. 너희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는 식으로요. 하지만 아버님은 린을 믿어주신 거고요. 아까 교장 선생님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몇 마디 해보자면, 교장 선생님도 깨끗하지 않다는 게 학부모들에게서 유지비 명목을 통해 걷는 돈을 통해 설명이 되지요. 그런데 그것이 린이 컨닝해서 돈 번 것과 교장 선생님이 유지비 명목으로 돈 걷는 게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린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한 번 있었는데 저는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정민: ‘레전드 피장파장’.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걸 자기도 알면서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영화적으로 필요한 장면은 맞는 것 같아요. 모두가 무결한 와중에 린만 잘못했다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게 아닐까요. 린의 미숙함도 드러내면서 말이에요. 전문적인 사기꾼이 아니라 처음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정당화를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미숙함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논리적으로 정당한 반박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욱이 린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고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죠. 교장의 행위는 숨을 구석이 많은 행위예요. 교장이라는 지위의 힘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숨길 수 있었을 거라고요. 간접적인 부정의라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범죄까진 아니라는 거죠.

 

나무: 린이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안 하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자신의 장학금이 구린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교장 선생님 보고, 당신이 먼저 나를 속였다고 말하는 거라고 저는 이해했어요. 두 행위가 물론 같은 선상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정민: 적절한 지적이에요.

 

 

Q4: 영화를 보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점이 있으신가요?

 

정민: 연출이 조금요. 경제적으로 최하층에 있는 이들이 자백하지 않았더라면 금수저인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외국 대학에 진학했을 거라는 가능성이 씁쓸해요. 그런 식으로 연출한 게 아쉬워요. 마지막에 린이 자백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린의 안전은 괜찮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친구가 말해줬는데, 이게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래요. 그 사건 기점으로 SAT 시험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고요. 실존 인물도 자백을 한 걸까요?

 

나무: 부정행위를 보면서 제가 다 낯부끄러워졌어요. 그렇게 부정행위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게 실제로, 시차를 이용해서 치팅이 발생해서 동시에 시험을 보게끔 만들었다 하데요.

 

당근주스: 좀 다른 이야긴데, 영화 초반에 취조실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요.

 

나무: 후반부랑 옷이 똑같은 걸 보니까, 초반의 취조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발각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연습하고 있었던 거예요.

 

당근주스: 저도 낚였네요.

 

 

Q5: 영화 속 사건이 일어나게 된 까닭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당근주스: 뻔하지만, 물질만능주의나 능력주의가 아닐까요?

나무: 시험이 너무 맹목적이었어요. 성취도를 높이자는 것도 아니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성적이 필요하다뇨. 결과적으로 시험의 압박감을 낳게 될 거고, 그런 것 때문에 부정행위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결과가 상관없으면 부정행위가 일어날 필요가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요새 중학생 친구들 멘토링하면서 느끼는 건데, 시험이 정말 성취도 확인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시험이 이렇게 이뤄지는 게 맞을까요?

 

정민: 진짜 동의하는 게, 나무님처럼 시험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시험의 목적이 평가보다는 피드백을 위한 장치로 기능해야 하는데, 동시에 생각해보면 또,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도 맞으니까요. 사실 이거는, 저희가 아무래도 공부를 관성적으로든 일상적으로든 해오던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시험이 없으면 좋겠지만요, 시험이 외압의 형태로 존재했을 때 공부를 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렵네요.

 

나무: 본격적으로 자유학기제 경험해본 학생들이랑 이야기해보는 것도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런 시험이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 같은, 공부 안 할 거면 진로 탐색을 하라는 교육 구조도 싫어요. 학생의 선택이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건 문제예요. 영화로 다시 돌아와 보면, 시작 장면에서부터 학업 중심적인 교육에서 학생들은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린을 아버지가 데려가실 때 이 아이는 학교에서 뭘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났는지 늘어놓는 장면에서 아버님이 너무 세일즈맨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가관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 뒤에 곧바로 나오는 장면인데요, 린의 상품성이 인정되어 학비 면제까지 이뤄지는 장면이에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다루고 싶어했던 두 가지(능력주의, 배금주의를 첫 장면에서부터 꿰뚫어 이야기한 게 아닐까요.

 

당근주스: 시험 점수로만 모든 게 평가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공부 잘하는 거랑 연극 잘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젠데 왜 같이 가는지 이해가 안 돼서요. 전제 자체가 기분이 무척 나빴어요. 한국은 더 심하지 않나요? 저희 학교는 상 몰아주는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저희 옆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상 몰아주는 일이 많았어요.

 

 

Q6: 그레이스가 수학 시험지를 미리 갖고 있었던 장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민: 모종의 교사와의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 같은 게, 뱅크가 부정행위를 고발했을 때 확인해본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장면에서 아, 이 학교는 교사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무: 그레이스가 과외 선생한테 받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성적 별로 안 좋은 애들한테 줘서 크게 문제가 안 됐던 거 같아요. 어쨌든 백 점을 맞진 않을 거니까요.

 

 

Q7: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린은 교육학을 전공하기로 합니다. 왜 하필 린이 선택한 분야가 교육일까요?

 

나무: 오히려 린이 학생 지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린도 부정행위 자체에 문제를 못 느끼는 것 같았는데, 국제 시험 이후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서요. 중학생들이나 미숙한 아이들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고, 엇갈린 길로 갈 수도 있는데, 그 길에서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더 잘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자백한 것도,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밝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게 돼요. 뱅크만 들킨 상태여서, 린이 자백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제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책을 다 읽었는데, 과학자가 괴물을 만들고 숨겨서 일어난 일들이란 말이죠. 그래서 린의 경우에도 자백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엄청난 용기가 아니었을까요?

 

정민: 나무님 의견에 동의해요.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모범생이었던 사람들이 보통 하잖아요. 교사 풀이 너무나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린이 교사가 되면 그런 점에서 좀 더 교육적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동시에 드는 생각은, 저는 엄벌주의자라서…. 린이 그런 식으로 성찰하고 변화했다 할지라도, 그게 나중에 알려지면 어떤 식의 파장이 있을지는 뻔하잖아요. 학부모들이 저런 교사는 뭘 믿고 우리 아이들을 맡기냐고 할 수 있는 거고요. 린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고민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아요.

 

당근주스: 사람들은 본인이 경험한 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나중에 교사가 되면, 제 학창 시절을 계속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마다 다른 길이 있는 거니까, 린이 교사를 한다면 잘못을 했음에도 돌아온 경험이 있으니,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데에는 탁월할 지도 모르지요.

 

 

Q8: STIC 시험의 부정행위를 준비하면서 주인공들은 “성공하면 다같이 성공, 실패하면 다같이 실패”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근주스: 결말만 놓고 보면 다 같이 성공하고 다 같이 실패하는 건 아니었잖아요. 어쨌든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건 뱅크고요. 뱅크는 정말 모든 걸 다 잃었어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도덕심이라는 가치를 잃었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레이스랑 팟은 돈도 사회적 기반도 있으니까요.

 

나무: 저 말이, 결국 주인공들이 행동할 때, 정당화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성공하면 다 같이 성공한다는 말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실패는, 내가 망하면 다 같이 망해야 한다는 건가 싶어서 불편했어요. 성공 못 한 사람 입장에서 정당화하는 게 아닐까요. 듣기에는 좋은 말인데요,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았어요. 잘 모르지만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것고도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Q9: 주인공들에게 잘잘못을 매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또는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말해봅시다.

 

정민: 학생들을 가엾게 여기는 건 있지만, 이런 종류의 탈선으로 가는 것까지는 정당화 못하겠어요.

 

당근주스: 동의합니다.

 

나무,당근주스, 정민

 
  1. 네이버 영화 정보,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x_csa=%7B%22isOpen%22%3Atrue%7D&pkid=68&os=5875957&qvt=0&query=%EB%B0%B0%EB%93%9C%20%EC%A7%80%EB%8B%88%EC%96%B4%EC%8A%A4%20%EC%A0%95%EB%B3%B4#>, 2023.03.06. [본문으로]

샤이니(SHINee) - 초록비


  직관적인 이유로 이 노래를 골랐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이름이 ‘초록나무학교’여서요. 그리고 두 번째로, 아이들을 볼 때 이 가사가 생각이 많이 나요.


조금 떨리는 맘은 감추고
그냥 네 손만 꼭 잡고 달리고 싶어라
막 쏟아지는 초록비 속에 우린 더 싱그러워져
늘 아이 같던 철없기만 했던 내가 더 커버린 건 나를 믿어준
네 눈빛 하나, 한 번의 미소
그걸로 충분했다고


  센터에서 아이들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하면 저도 새로워지고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요. 표면적으로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요. 부디 아이들도 저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있는 이유, 이곳이 있는 이유

 

  스물둘이 된 지금까지도,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시시때때로 받곤 한다. 그 질문에 선생님이요, 하고 대답한 지 8년이나 흘렀다는 것을 최근에야 비로소 실감했다. 사범대로 진학하지 못하고 인문대에 와서 교직 이수를 하게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선생님을 꿈꾸고 있다. 기약 없는 나의 미래를 가늠해보다가, 정말로 내가 교사가 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무작정 집 근처 초록나무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간 것이 벌써 1년여 전 일이다.

  초짜 선생님이었던 필자가 본 지역아동센터는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식사도, 공부도, 돌봄도 해결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고, 필자 역시 그 분위기에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여전히 필자는 센터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른다. 물론 처음에 센터에 왔을 때보다는 조금 더 능숙하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공부를 가르쳐주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이 지역아동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는 시간에 필자도 센터에 도착하고,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체험형 학습이 시작될 때 교육 봉사가 마무리되어 센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는 동안, 필자는 센터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곳에 왜 왔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선생님이 꿈이어서요, 하고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은 그냥요, 하고 싱겁게 대답할 때가 태반이었다. 그 질문을 속으로 되뇌다 보면 또 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어떤 부분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찾게 된다면,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공부방에서 지역아동센터까지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공부방이다. 그동안은 경제 성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공부방은 오랫동안 사회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정부에서는 시립·구립 공부방으로 전락시켜 공부방을 독서실로 운영하는 등 공부방 활동과 개념을 축소시키기도 하였지만, 1997년 말의 IMF 위기를 계기로 가족 해체 위기·가족 결식 문제 등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공부방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공부방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면서, 아동의 빈곤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하는 일부 공부방을 중심으로 공부방의 명칭과 기능을 ‘지역아동센터’로 변경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은 2004년 1월 29일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가 법정 아동복지시설 중의 하나가 되는 결실로 나타났다. 현재는 정부가 일정 기준을 갖춘 공부방과 관련 시설을 대상으로 지역아동센터 신고를 받아 신고필증을 교부한다.[각주:1]

  아동복지법 제16조 11항에서는 지역아동센터를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ㆍ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지역아동센터의 역할 및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사회 내 보호가 필요한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 가정에서 부모에 의한 보호와 양육이 적절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동, 실직이나 빈곤 등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어려워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 가족의 해체와 기능 상실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각주:2] 정리하자면,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법에 의거 설립되는 기관으로, 아동의 건전 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뜻한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며,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 활동, 문화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각주:3]

 

 

초록나무학교는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떠할까? 필자가 있는 초록나무학교는 양천구 신정4동에 있으며,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지역사회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보호, 교육, 정서 지원, 지역사회의 연계 등의 통합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 기관이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곳에 계신 김효은 생활 복지사님께 인터뷰를 요청해보았다. 선생님은 아동의 전반적인 관리와 센터에 필요한 서류 업무를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위기 아동을 발굴하고 아동과 상담하며, 필요한 경우 아동에게 복지연결을 해주기도 한다. 아동 선발 기준을 여쭈어보니, 취약계층 50%(한부모가정, 교육급여대상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조손가정)이 우선 대상자이고, 그다음 맞벌이 가정, 저학년 일반 아동 순으로 모집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센터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냐는 질문에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첫 번째로는 보호프로그램이 있다. 보호프로그램에서는 예절교육, 부적응 아동지도, 식사예절 및 안전지도를 한다. 아울러 센터에서 아동들의 건강검진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의 일반적인 학습을 돕는 것뿐 아니라, 독서 활동을 지도하거나, 예체능 교육까지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아동들의 욕구 조사를 반영하여 영어·음악·독서수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문화프로그램이다. 아동들을 위해 캠프를 열기도 하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도 하며, 다같이 견학을 가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을 진행하는 등 정서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분주한 센터의 초짜 선생님

 

  이쯤에서 필자의 이야기를 살짝 덧붙여보도록 하겠다. 필자는 ‘금요일 선생님’이다. 금요일에 2시 반에 출근하여, 3시 반까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공부를 봐준다. 사실 공부보다는 입씨름이 반복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센터에 온다면,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들을 붙잡고 쩔쩔매는 필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3시 반부터는 주로 무언가를 만드는 체험형 수업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필자도 종이 인형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얼결에 껴들어 프로그램 부자재를 받아온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런저런 색깔로 색칠한 자석 집게를 들고 와 자랑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이 시간에 필자는 자리를 옮겨 고학년(6학년) 여학생 수업을 도와주곤 한다. 주로 수학이나 과학, 사회 과목을 봐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실에 모여 예비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수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작은 방으로 이동해야 비교적 조용히 공부시킬 수 있다. 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는 4시 반까지 저학년 친구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센터에는 정기적으로 피아노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아동들이 돌아가며 교육을 받곤 한다. 봉사자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있었더라도 피아노 선생님이 부르시면 아이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 한다.

  센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도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센터장님께서 아이들의 식사에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는 것 같았다. 보통 피자나 빵이 준비되어 있고, 아이들이 각자 2개씩은 먹을 수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식사하는 모습까지는 지켜본 적 없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끼니까지 해결하는 듯하다. 그리고 센터에서 건강검진을 진행할 때는 미리 신청서를 받는 것 같았다. 필자가 가르치던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투덜거리며 치과 진료 신청서를 복지사님께 적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19 탓인지 체험학습을 자주 나가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다만 공익으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4시쯤에 놀이터로 나가는 모습은 굉장히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나 예비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낸다. 부족한 공부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버리곤 한다. 또한, 아이들은 다함께 여름방학에 1박 2일로 캠프를 떠났다. 필자는 따라가진 못했지만, 캠프 설명회에 참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난제: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1년여 동안 공부를 도와주다 보니,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센터에서 공간 분리가 어렵다 보니,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센터는 거실이 하나 있고, 부엌과 방 세 개가 있는 구조이다. 거실에 책상이 여러 개 있고, 그곳에서 보통 공부를 봐주곤 한다. 방 하나에서는 센터장님과 복지사님이 일하시고, 나머지 두 공간은 소수의 고학년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곤 한다. 우리 센터는 저학년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거실에서 거의 모든 아이가 모여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끼리 자꾸만 서로 장난을 치고 잡담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비단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친구들을 봐주는 선생님들의 수업 내용이 아이들의 집중력을 흐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센터의 공간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종종 느끼곤 하지만, 센터 사정상 어려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두 번째로, 영어나 피아노 등의 정규 수업 외의 학습 시간에는 자원봉사자의 역량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 선생님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며, 선생님의 경력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정보도 편차가 심해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들도 많다. 이는 일관된 학습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대부분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학생들과 라포[각주:4]를 형성하는 것 또한 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이들이 특정 선생님과 친밀감을 느낄 때쯤 선생님이 센터를 떠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 전에 교육 시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필자의 경우만 해도,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두세 명의 아이들밖에 만날 수 없기에,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미리 전해 듣는다면 교육 봉사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제: 센터 운영자의 입장에서

 

  한편, 실제로 센터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냐는 질문에 복지사님은 모자란 센터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후원이 절실히 필요한데 후원자 모집이 잘되지 않는 점을 언급하며 안타까워했다. 덧붙여 코로나 전후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센터 운영 정책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모든 활동에 제약이 아무래도 많아졌기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획이 대부분 수정되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 동안 아동들이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학습에 공백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하였다. 선생님은 아동들이 야외에서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야외활동의 제약이 심각했었기에 아동들의 은둔생활이 고착화된 점, 나아가 이것이 학습의 편차의 원인이 됨에 우려를 표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역아동센터가 발전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현금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월세도 문제지만, 단발성 물품이나 선물 등의 지원이 아닌 장기적인 양질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다음으로는 아동들의 학습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기에 지속적인 자원봉사 선생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인터뷰 이후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우리 센터뿐만 아니라 여러 센터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경기 하남의 한 지역아동센터의 하루를 밀착 취재한 기사[각주:5]를 통해 센터가 너무나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의 선생님들 역시 ‘일당백’이 되어야 했다. 온종일 아이들 하나하나를 지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센터장님이 직접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이들의 집에 방문하여 깜짝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21시에 이벤트를 끝낸 선생님은 자정 넘도록 서류작업을 하고 퇴근한다.

  한 선생님은 정부 입장에서 지역아동센터가 가장 가성비가 높은 기관이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그 어떤 곳보다 직접적인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정작 정부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는 4천2백여 개로, 이 가운데 60% 이상을 민간이 맡아 운영하는데, 아이들에게 이용료를 받지 않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온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부분 시설 이용 인원은 29명 이하로, 작년의 경우 규정상 월 57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선생님 2명의 임금과 외부 강사료 등 프로그램 운영비, 공과금을 모두 해결해야 하므로 곤란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30인 이상 시설은 월 780만 원을 받아 선생님 3명의 인건비와 나머지 비용을 내야 하니 더욱 빠듯한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가 주는 지원금 총액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함께 해결해야 하니, 코로나로 일이 전보다 훨씬 고되졌어도 인건비를 많이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2019년 기준으로 5년 경력의 센터 선생님들의 평균 임금은 최저 임금을 조금 넘는 190만 원 정도였고, 10년 정도 근무한 센터장도 한 달 월급이 평균 213만 원이다.

  22년도에 지원금이 약 4%로 20만원 가량 늘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5%로 더 높아 외려 프로그램 비용이 줄어든 지자체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영화 보기나 역사탐방처럼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부터 사라지는 실정이다. 지자체에서 추가 운영비나 선생님 처우개선비를 주기도 하지만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 후원금을 마련하는 선생님들도 많다고 한다. 한 선생님은 학교 선후배부터 시작해서 남편과 동생 등 가족들까지 ‘셀프 후원’을 한다고 전했다.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아이들은 절반 이상이 저소득, 다문화, 한부모 가정 등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다. 센터 예산이 부족해 아이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비용이 줄고, 적은 임금 때문에 유능한 선생님들이 떠나면 돌봄의 질은 떨어지고, 피해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인 것이다. 기자가 센터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정부에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해서 지원하고, 기존 사회복지 인건비 지침을 적용해 센터 종사자들의 임금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야 할 일

 

  초록나무학교 지역아동센터의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 복지사님은 학습의 편차를 줄일 수 있는 돌봄 기관이 되는 것을 언급하였다. 초록나무학교는 ‘학군지’인 목동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소득 아동들은 학원을 이용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어 박탈감이 상당하다고 한다. 학부모 역시 학습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선생님은 아동들의 자존감 향상을 위해 학습에 대한 지원을 더 많이 해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정부의 예산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 예산 때문에 발생한 경우가 많으며, 후원으로는 지속적인 지출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일개 자원봉사자인 필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복지사님처럼 큰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오늘도 ‘일당백’이 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지역아동센터에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아마도 필자는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같은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더 멋진 사명을 찾아보려 했는데, 그보다는 지금처럼, 꾸준하게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근주스

 
  1. 신미혜, 지역아동센터의 의미와 과제, 은평시민신문, 05.02.18. [본문으로]
  2. 윤혜순. 지역아동센터의 효과분석을 위한 참여관찰 연구, 청소년시설환경, 74, 한국청소년시설환경학회, 43. [본문으로]
  3. 아동복지법 제52조 제8. [본문으로]
  4.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이다. 상담, 치료, 교육 등은 특성상 상호협조가 중요한데, 라포는 이를 충족시켜주는 동인(動因)이 된다.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 사고,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5. 정혜인, 지역아동센터는 어쩌다 가장 '가성비' 높은 돌봄기관이 됐나?, MBC 뉴스, 22.01.08. [본문으로]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메인 ost로 쓰인 클래식 곡입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은 우주와 인류를 주제로 한 SF 장르 영화로,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인 ost "Also sprach Zarathustra"는 웅장한 관현악과 타악기 소리로 영화와 좋은 시너지를 내는데요. 이번 저의 글에서는 이 음악처럼 조금은 웅장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을 다 읽은 후 천천히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우주와 인류의 서사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과학이란 무엇일까? 필자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다. 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과학은 “왜?” 라는 질문을 반복했을 때, 의미 있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그렇기에 대학에 온 후 과학의 정의에 대한 여러 사변들을 접했지만 누가 과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대답했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과학 교육 또한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알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과학을 완전히 사회와 정치에서 분리된 것으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과학은 단순히 생각했던 것만큼 낭만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과학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된다. 과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학문이지만, 결국 인간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기에 과학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20세기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인류의 시도가 근본악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과학과 기술을 앞세워 모든 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과학적 전체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때의 근본악은 개인이나 집단의 악의에 기반하기보다는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하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가 부재할 때 인류의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치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러한 주장은 유효하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을 통해 지구 최대의 종이 되었고, 심지어는 달과 우주에까지 세력을 뻗으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올바른 가치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그러한 고민을 유도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나는 과학 교육이 모든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류의 일원으로서 과학을 사유”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교육을 제안하려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히스토리이면 히스토리이지, 빅Big이 왜 붙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선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 히스토리, 즉 역사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도록 하자. 역사의 사전적 정의는 문자로 기록된 과거의 사실들에 대한 연구다. 따라서 역사는 주로 문명 이후 인류 사회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빅 히스토리는 다루는 범위를 인류의 문명에 한정하지 않는다. 빅 히스토리는 우리가 과학과 증거 수집을 통해 알아낸 아주 먼 과거의 사건들, 즉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설정한다. 말 그대로 거대사인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교육에 있어서 더욱 도드라진다. 역사 교육은 그 역사의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모든 과거의 사실에 대해 가르칠 수는 없기에 어떤 사건이 중요한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역사 교육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들이 주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소속된 국가의 영토에서 일어났던 일들, 특히 정치와 전쟁과 관련된 사건들을 주로 배운다. 역사의 주체는 특정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민족이 될 수도, 동/서양과 같은 거대한 문명 혹은 지역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빅 히스토리는 인류 전체를 역사의 주체로 둔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가진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세세한 사건들을 학습하기보다는 인류의 탄생과 변천의 거대한 흐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복잡도complexity라는 개념을 통해 빅뱅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전체 역사에는 복잡도가 크게 증가하는 9개의 문턱이 존재한다.[각주:1] 문턱은 빅뱅, 별의 탄생, 생명의 탄생, 농경의 시작 등을 포함한다. 천체 물리학자 에릭 체이슨도 일률밀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고,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전체 역사를 엮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해왔다. 빅 히스토리의 핵심은 축적된 과학적 지식들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왜 빅 히스토리인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그게 앞서 말한 필자의 목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점이 들 것 같다. 빅 히스토리를 인류의 관점에서 과학을 사유하는 방안으로 꼽은 이유는 그것이 인류 공동체의 서사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서사는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를 배우며 분노하고 애국지사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국민 혹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여기게 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일전에 열광하는 것처럼 현재의 마음가짐에도 분명 영향을 준다. 현대 사회는 환경∙인구∙전쟁 등 범지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스로를 어느 나라의 국민, 어떤 가족의 구성원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서 정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인류 공동체 서사인 빅 히스토리를 통해 부여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을 배제하고도 빅 히스토리는 교과학습적 측면에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역사/사회 등으로 나누어지는 교과들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스토리텔링이라는 큰 체계 속에 지식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 지도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 학습 사전/사후에 적절히 활용된다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전체 내용에 대한 체계를 획득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에너지, 엔트로피, 생명의 창발성[각주:2]과 같은 과학사나 과학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난이도 등의 이유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거나 각 과목별로 분절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빅 히스토리 교육을 통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서 이러한 개념들을 접한다면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낮추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

 

  더 나아가 빅 히스토리에서 파생된 흥미로울 만한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는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 기원부터 미래까지 살펴보는 활동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콜라 캔을 생각해보자. 콜라 캔은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신성 폭발[각주:3]에서 발생한 알루미늄의 이야기로부터 콜라 캔의 빅 히스토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박테리아, 컴퓨터, 커피 등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 각자의 리틀 빅 히스토리를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탐구 과정은 주제를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각 이야기는 시간 축에서 변화의 양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흥미 분야에 대한 사고를 전개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면서 같은 시각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리틀 빅 히스토리가 훌륭한 교육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에 편성한 많은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리틀 빅 히스토리를 빅 히스토리 교육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가 교육에 적용된 사례

 

  빅 히스토리를 홍보하고 교육하려는 시도들이 국내외 존재한다. 하나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등의 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시간에 수업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 중 일부는 빅 히스토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약 1500개 이상의 중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의 대학교에서 빅 히스토리 주제의 교양 강좌가 열린 바 있으며, 대중 강연 및 연수 프로그램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계점

 

  그렇지만 빅 히스토리에도 분명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우선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빅 히스토리의 기본적인 흐름만 파악하는 데에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생명과학/화학/지구과학 내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단순히 내용을 나열하는 식의 수업은 본래의 학습 목적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실현 자체가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고등학교 과학 교과를 학습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개별적 지식을 소개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스토리텔링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빅 히스토리의 내용 자체보다는 빅 히스토리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엮고 있는지 공부하는 것, 또 학생들이 직접 이러한 빅 히스토리적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앞서 언급한 리틀 빅 히스토리와 관련된 활동들도 포함될 것이다.

 

  학생의 학습 관점에서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를 교육시키고자 한다면 해당하는 교과서나 학습자료, 학습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누가 만들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 지식에 상당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지식 체계를 통합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적극적인 전문가가 요구된다. 더불어 교육학과 빅 히스토리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도 필요하다.

 

 

결론

 

  빅 히스토리가 그저 흥미로운 주제일 뿐이라면 교육 과정에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단순히 여러 학문 분야를 엮은 내용을 소개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할 만한 일관된 경험과 메세지가 들어 있을 때 교육의 가치가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빅 히스토리의 강점이 드러난다. 빅히스토리는 교과서 혹은 교사가 구사하는 단편적인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거대한 인류 서사를 소개하고 스스로의 시각에서 스토리텔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경험은 복잡한 세상에 왜소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거시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1. 데이비드 크리스찬은 빌 게이츠와 함께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인 Big History Project (oerproject.com) 에 빅 히스토리와 문턱 이론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는 강의가 있다. [본문으로]
  2. 하위 계층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다. [본문으로]
  3. 질량이 매우 큰 별의 중심핵이 붕괴할 때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을 통해 만들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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