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영화 전반에 대한 생각 나누기

당근주스: 영화 보고 어땠는지 얘기해 보자. 인상 깊었던 장면도 좋고 아쉬운 점도 얘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라는 대사가 진짜 너무 무서웠는데…, 일단 그거는 누구나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넘어가고, 나는 마지막에 교수 입은 안 나오고 눈만 비추는 장면이 어떤 표정일지 모르니까 더 무서운 거야. 진짜 웃었을지 안 웃었을지도 모르는 거고. 아쉬운 점은 이건 스릴러야. 분류가 너무 잘못된 것 같아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영화는 되게 잘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도 애초에 그래서 추천했던 거지? 잘 만든 영화라고 해서.

정민: 맞아. 되게 뛰어난 영화라고 영화광 친구가 얘기해 줬는데 약간 흥미로운 지적이야.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 되게 대대적인 오독이 있었대. 누가 봐도 잘못된 스승을 비판적으로 연출된 영화잖아. 근데 한국에서만큼은 이렇게 몰아붙이면서까지 학생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스승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게 컸나 봐. 그래서 왜 그게 한국적인 현상이 되었는지도 흥미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 분위기나 교육관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겠어.

당근주스: 나도 우리나라에서 참스승으로만 해석되는 건 소름 끼친다고 생각해. 예체능 하는 친구들은 공감을 많이 한대. 이런 식으로 몰아 붙여지면서 교육받는 게 일상이다 보니까. 보다가 막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대.

우리: 나는 엄청 충격받았어. 원래 이 영화를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지는 않고 그냥 그 후기만 좀 몇 개를 알고 있었거든. 이런 영화가 진짜 조금 폭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유도하는 참스승의 모습이 보이고 그 학생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이게 맞나 싶네. 이걸 어떻게 참스승이라고 하지? 이런 교육을 비판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어. 개인적으로 나는 피나는 장면이 보기 힘들었어. 잔인한 거 잘 보는 편인데도 말이야. 이렇게까지 피를 흘려서까지도 노력을 하라는 것 같아서 좀 그랬어.

당근주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자극제를 주는 영화라고 하더라. 좀 그래.

우리: 그러니까. 그니까 폭력도 폭력인데 말도 엄청 심하게 하잖아.

나무: 근데 난 처음에는 되게 체벌이랑 관련됐나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그때는 체벌이 어쨌든 허용되던 시기기도 하고, 근데 영화에서는 막상 그 사람이 직접 때리는 장면은 거의 없단 말이야. 근데 체벌보다 더 체벌 같았어. 그리고 그 드럼을 치면서 이렇게 피가 날 수 있다는 거를 알았어.

당근주스: 실제 배우가 피를 흘리면서까지 친 거래. 좀 잔인했던 것 같아. 상상되는 고통이잖아. 막 총 맞는 고통은 잘 모르니까 공감이 안 되잖아. 근데 살갗이 쓸리는 건 사실 얼마나 쓰라릴지도 공감이 되니까.

 

Q2: 앤드류는 엔딩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한계를 깨고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해낸 것일까요?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당근주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마지막 장면이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앤드류가 한계를 깨고 나온 건지, 아니면 그냥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한 것뿐인지도 얘기해 볼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게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얘기해볼까? 나는 주인공이 한계를 깼다기보다, 그냥 교수 스타일에 맞게 완벽히 연주하는 법만 들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한계를 깼다 하더라도 특정 곡에 한해서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난 이게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나무: 초반에는 앤드류만의 기준이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정말 그 상황에 맞게 잘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플랜처 교수가 중간에 그런 말을 하거든. ‘나는 너희를 찰리 파커처럼 성장하게 할 거다’라고 하면서 여태까지 본인이 가르친 사람들 중에서는 찰리 파커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잖아. 하지만 본인은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고 가서 잘하게 해주는 거라고 한단 말이야. 결국엔 학생들을 믿지도 않으면서 극한으로 몰고 가기만 한 거지.

당근주스: 그것도 자극제로서 말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무: 자극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가르치는 애들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우리: 나는 이거 드럼 칠 때, 조명이 꺼지면 곡을 끝내야 하는데, 앤드류가 조명이 꺼지고도 계속 치잖아. 그때는 좀 약간 한계를 이제 넘어서, 드디어 자기만의 드럼을 연주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에 교수가 자기가 신호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러잖아. 그냥 이런 게 계속 반복이야. 어차피 다 교수가 주도를 하잖아. 이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닌 것 같아.

당근주스: 그러니까 결말도 그렇게 해석된다는 게 오히려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게 자기 스스로 깨고 나온다기보다 오히려 교수 스타일대로 다시 회귀해서 그 사람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는 거. 근데 내가 보기에 앤드류도 진짜 보통이 아닌 것 같긴 했어. 왜냐면 대들 수 있는 사람은 걔 하나였어.

나무: 진짜. 다른 친구들은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고 오케스트라 외에도 다른 곳에 소속이 되어 있거나 하는데, 앤드류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서 친구도 안 사귀고 여자친구도 찼잖아. 그냥 진짜 거기에 미쳐있는 거지. 그래서 그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그걸 파악할 수가 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

당근주스: 근데 그만뒀잖아. 그래도 돌아간 게…아이러니하지. 참, 교수가 앤드류를 정말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어. 이 공연을 정말 잘만하면 러브콜이 너한테 쏟아질 거야. 그래놓고 다른 곡을 갑자기 주는 게 어딨어.

우리: 그래 맞아. 그래놓고 ‘(나를 고발한 게) 너지?’라고 물어봤던 게, 그전까지는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학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가르치려고 했던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그 장면 보고 이거는 그냥 학생으로도 생각 안 하고 복수하려고 했던 것 같았어.

 

Q3: 몰입이 정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상태일까?

정민: 나 근데 다른 질문이 있어. 앤드류 정도는 아니어도 어떤 일에만 몰두해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내는 게 교육적으로 좋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더라도 취미(또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즐기면서 하는 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문제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 후자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직업적인 성취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는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럼 이제 이걸 교육자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는 어떤 것을 학생들한테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더라고.

당근주스: 재능을 키워주는 것만이 교사의 목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당히 삶을 잘 영위하는지,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해야 하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길러주는 사람이어야 해. 그리고 사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보통은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행복한 게 우선이니까.

나무: 근데 난 전자가 진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해. 왜냐면 자기 분야에 몰두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거든. 연구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하면서 깨달음도 많이 받을 수 있잖아?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 주인공이 새로운 연구에 완전히 빠져있는데, 외부와의 소통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그래서 괴물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보니까 자기가 잘못된 걸 한 걸 깨닫게 돼.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다 막고서는 한 곳에만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앤드류가 그렇게까지 몰입하는 건 플래처 교수가 만든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 ‘업스윙잉’인가? 그것만 연습시키잖아. 병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같아.

 

Q4: 플래처 교수가 최악이라고 평했던 ‘Good Job.’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플래처 교수는 이 말 때문에 학생들이 안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과연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가 중간에 ‘Good job.’이라는 말을 되게 싫어하잖아. 최악이라고. 그 말 때문에 학생들이 나빠진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거든.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칭찬이 그럴까? 과연 그 말이 정말 독이 될까?

정민: 학생들한테 칭찬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성취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가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되게 결과주의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니까. 근데 사실은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잘했는데 잘했다고 얘기 안 해주면 좀 서운하잖아? 그래서 뭔가 그런 과정적인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더 중요한가 싶다가도 결과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 이거는 그냥 마구 칭찬을 해주면 그럼 다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어떨 때 학생들에게 칭찬해야 하고, 어느 순간에 칭찬을 멈춰야 하는지 의문이야.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칭찬은 외부의 자극 동기 유인이잖아. 교육학에서는 내재적 요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니까, 칭찬을 아주 많이 하는 건 그렇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당근주스: 그리고 한국어 번역에는 뭐라고 우리 말 번역에는 뭐라고 말하냐면 이만하면 됐어라고. 그냥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Good job.’의 이미지로 생각해 보면 난 나쁘지 않다고 어느 정도 필요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근데 다만 이제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게 되면 그건 진짜 문제가 있지. 과정에 대해서 평가를 못 받으면 이제 애들은 결과를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구나. 이런 생각을 좀 할 수도 있고.

우리: 근데 이 과정에 대한 칭찬도 좀 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 단원평가 과목별로 세 번을 봐놓고 그 추이를 봐서 상을 줬거든. 그때 어떤 방식을 썼냐면, 결과보다는 과정, 그러니까 실제로 점수가 오른 애들한테만 준 거야. 점수 낮게 받은 애들이라도 50점에서 70점으로 오른 친구들을 칭찬해주는 거지. 근데 100점, 100점, 100점 맞으면 상을 못 받았어. 그러면 그건 못한 건가? 이런 생각을 그때 했어. 그래서 과정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

정민: 사실 이게 과정 평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정량적인 산출 결과만을 보고 추이를 본 거니까 정말 과정 평가일까 싶네. 이번에 교생 가서 본 게 애들이 사실상 좋아하는 거는 국어 학습지에서 시집을 골라서 필사한 뒤에 이게 왜 좋았는지 내 경험이랑 연관 지어서 써보는 걸 시켰어. 그래서 그 학습지를 선생님이 들고 가셔서 하나하나 다 좋은 글에 밑줄 쳐주고, 이게 왜 좋은지를 다 피드백을 해서 애들한테 들려주는 거야. 그게 정말로 피드백인 거니까 이게 과정 평가의 원형에 제일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고…, 애들도 거기서 단순히 기분 좋아, 이걸 넘어서 동기 부여를 받더라.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시 모임을 만들어볼까, 이런 논의가 오가더라고. 생각보다 그런 정확한 기술과 정성 평가가 중요성이 크다고 느꼈어. 근데 문제는 국어 선생님이 그거 한다고 맨날 새벽 2시에 자서 다시 5시에 일어나서 내일 수업 준비하고 그럤다고 하는 거야. 근데 그분이 지금 3개월 된 신생아 아빠시거든. 게다가 연구부장이셔.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 받으시더라. 그래서 그분을 보면 교직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어. 되게 사명감으로 하시던 분이셨는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힘들어지더라고. 왜냐하면 교사 임금도 호봉제라 그닥 높지도 않으니까.

나무: 그렇지. 그럼 이제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아까 ‘이만하면 됐어’라는 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더 했어야 되는데, 하고 후회할 때가 있고 이 정도 했으면 진짜 잘했다고 할 때가 있잖아.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됐다는 정도도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도 거기서 더 나아가는 애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너무 달리는 애한테는 그런 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는 (이만하면 됐다고) 그렇게 말해도 달리는 애를 찾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말해줘도 알아서 자꾸 도전하는 학생 말야. 근데 보통은 그렇지 않으니까 일부러 더 열 받으라고 가스라이팅하는 걸지도.

정민: 난 궁금했던 게 마지막에 입이 안 나오잖아. 나는 여기서 ‘Good job.’이라고 말해준 건가 싶었어. 자기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성과를 앤드류가 마지막에 보여준 거잖아. 그래서 그게 ‘Good job.’인 거라고 생각해보니까, 이게 진짜 앤드류가 뭔가를 뛰어넘어서 희열에 젖은 모습을 칭찬한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따지면 둘 다 뭔가 하나씩 깬 거잖아.

당근주스: 짱이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해석을 해 주니까 참 좋은 것 같아.

 

Q5: 학생들의 잠재력은 언제 벽을 뚫고 나올까요? 다그치는 것 외에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근주스: 넘어가서, 학생들의 잠재력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영화에서는 영화 제목처럼 채찍질, 그러니까 다그침으로 잠재력을 끌어내려고 시도를 하는 거잖아. 근데 그거 말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정민: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게 되게 좋은 말이잖아. 근데 이 말이 어떤 느낌도 드냐면…, 내 안에는 아직 발아하지 못한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이 진짜 나고 싹을 틔워야만 나는 진짜 멋있는 내가 된다는 것처럼 들려서 내가 저런 말을 안 좋아해. 사람들은 과정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렸을 때보다 훨씬 커 있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는 거거든. 이거야말로 거북하지 않은 방식으로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 같아. 그렇지만 교육인의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면 잠재력 실현을 돕는 일이 너무 고민이 돼. 어떻게 해줘야 학생들이 언제 나름의 성장을 이루지 이런 생각도 들어. 그래서 두 지점이 충돌해. 어떻게 생각해?

나무: 잠재력은 끌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 진짜 뭔가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성장하는 건 있는 것 같거든. 나도 요즘에 느끼는 게, 예전에는 글로만 접했던 것에 지금 더 흥미를 느낀다든가,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그래. 확실히 배웠을 당시에는 그 정도로 생각을 못 했어. 근데 경험이 쌓이면서 가능하게 된 건가 싶어. 하여튼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교육현장에 적용해 보면…, 분명 잘할 수 있는 학생인데 방법을 몰라서 갈피를 못 잡을 때 교사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정민: 그래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게 생각보다 되게 중요한 것 같아. 난 가끔씩 내가 서울대생이라는 걸 느끼는 때가 있거든. 어떤 때냐면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생 연구 지원이 너무 잘 돼 있어.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 우리 학교가 국내에서 되게 연구를 선도하는 학교고 제일 위에 있다고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곳이니까 그걸 충실히 해내기 위한 노력인 셈이지. 근데 만약에 내가 약간 재정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적 자본도 그렇게 크지 않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학교에서 그런 지원을 진짜 안 해줄 것 같다는 걸 요새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느껴. 근데 그렇게 된다면, 아까 나무가 얘기했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한테 어떠한 것들이 쌓이는 경험이 되게 적을 것 같아. 교육의 차원에서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 준다거나 아니면 자본을 되게 성실하게 투입해 주는 게 되게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

당근주스: 여기서 나아가서 이런 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발전 가능성이라든지 이런 인프라라든지 뭔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한번 해봐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교사나 교육자가 되어야 해. 그리고 교육자는 결정적으로 선구안이 있어야 해요. 애들이 무슨 능력을 갖고 있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잘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거. 그냥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그런 거지. 발아할 수 있는 능력이랑 적당한 환경이 만나면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원론적이고 좋은 얘기지. 근데 사실 두 개 다 갖춰지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

민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에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너희들이 다 각자 다른 꽃이니까 언젠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라는 거란 말이야. 그래서 뭐든 시기가 딱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느꼈어.

정민: 그래서 되게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

우리: 근데 잠재력을 끌어내는 걸 꼭 교사가 해야 할까, 생각하기는 했었거든. 선생님이 뭔가를 하라고 해도, 스스로를 제일 잘 아는 거는 다 학생들 본인일 테니까. 그러니까 뭘 잘하게 될지 모르니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상으로 뭔가 너는 이걸 잘할 것 같으니까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지도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물론 선구안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게 가능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선구안을 가진 능력을 가진 선생님들 그것도 진짜 많지 않고, 실질적으로 모든 학생들한테 그런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쉽지 않잖아.

당근주스: 그러면 플래처 선생이 여기서 다그치는 걸 택했고 실패한 걸까?

나무: 확실히 뭔가 이렇게 압박하고 하면 그 순간에 단기적으로 그냥 실력 향상이 되는 건 맞는 것 같아. 효과가 없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근데 나중에 가서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당근주스: 실력 향상은 되는데 정말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그 선생님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영화에 나오잖아.

실질적인 환경교육의 필요성

 

  과제를 위해 카페에서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은 적이 있다. 종이 빨대의 텁텁한 맛과 함께 커피를 들이마시며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관해 각종 수치와 감정적인 행동 촉구 문구들을 이용하여 설명했을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사실 기후 위기는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더불어 플라스틱 빨대 줄이기 운동은 환경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책을 통해 알게 된 나는 녹아내리고 있는 종이 빨대를 쳐다보며 책을 덮었다.

  왜 이런 걸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거지?

  학교에서 내가 받은 환경 교육을 생각해 보았다.

  교과서 보충설명란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환경에 관한 내용들, 재활용을 하고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는 피상적인 문구들, 아무도 듣지 않는 특별 활동 시간에 교실 TV에 틀어진 기후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억지로 10분 만에 겨우 반 장 써서 낸 감상문,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평가의 척도가 되는 환경 보호 그림 그리기 대회.

  요즈음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후 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매일같이 기후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어느 제품이나 ‘친환경’이 트렌드가 되고, 무엇보다도 기후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 없다시피 한 봄과 가을,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산사태 등, 정말로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즉, 누구나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후 위기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동정심을 느끼지만,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난 후에는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표면적인 학교 교육은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며 무엇이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를 끌어내지 못한다.

  문제 지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제 학교에서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해결을 위한 길잡이, 그리고 이를 위한 새로운 사고를 제시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보다 실효적인 환경교육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탄소중립 중점학교’에서 앞으로의 환경 교육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 탄소중립 중점학교란?

 

  지난 3월 14일, 정부는 3월 14일 ‘2023 탄소중립 중점학교’ 40개교를 선정 및 발표하였다. 기후 및 환경 위기에 대처하는 미래세대의 역량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2021년부터 6개의 관계부처가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지원 학교를 확대해 왔다. 현재 2023년도 지정 중점학교 40곳은 유치원 5, 초등학교 14, 중학교 10, 고등학교 10, 특수학교 1개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환경교육정보센터에 따르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교육부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기상청과 함께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환경교육의 선제적이고 모범적인 학교 모델을 구축하여 학교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와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탄소중립 실현

 

  먼저, 탄소중립이란 인간 활동에 따른 탄소량과 전 지구적 탄소량이 평형을 이뤄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제시된 개념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을 채택하여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고 최대한 1.5℃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 이상 온도 상승 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가 발생하지만, 1.5℃로 제한할 경우 그 위험이 대폭 감소한다. 1.5℃ 이내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최소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

 

  두 번째 키워드는 기후위기 및 환경생태 교육의 장으로서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우선 학생의 참여를 중요시한다. 학생 개개인과 환경동아리 등으로부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탄소중립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올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로 선정된 부천여자중학교(이하 부천여중)의 사례를 살펴보자. 부천여중은 전 교과를 대상으로 다양한 학생 참여형 환경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령 미술 시간 생태벽화 그리기, 과학 시간 나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 체육 시간 줍깅(*줍깅 :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활동 등 교과 활동뿐만 아니라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도 나무 심기 활동, 우유팩 수거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실천적 환경 활동을 한다. 부천여중의 목표는 탄소중립의 ‘일상화’로, 탄소 중립이 가지는 의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이에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탄소 중립을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을 넘어, 선생님들 역시 커피 가루를 모아 화분에 거름 및 퇴비로 활용하는 등 학교 구성원이 모두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탄소중립 실천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산자연중학교(이하 산자연중)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학생들이 자연과 상생해 나가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중 생태도감 프로젝트는 교실 속에 방울토마토, 커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을 직접 기르며 생태도감을 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실 안에 작은 숲을 만들어 우리와 상생하는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기후 위기가 얼마나 다가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탄소중립시계를 학교에 설치하여 학생들이 기후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자전거발전기로 전기를 직접 만들고, 하천을 살리는 em흙공을 만드는 등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자연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3) 전문분야 협업

 

  탄소중립중점학교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미래세대의 기후 및 환경위기 대응역량을 기르기 위해 6개 관계부처가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학교의 탄소중립 실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농식품부, 환경부, 해수부, 산림청, 기상청이 협력하여 탄소중립중점학교를 지원하는데,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마지막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개별 학교를 넘어 전국의 일반학교와 지역사회에도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학교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각 지역의 자연생태적 기반에 대한 체험 및 탐구를 통해 탄소중립 수업 자료 및 학교-지역 환경교육 협력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학교별로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사례 발표 및 공유하는 협의회 및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우수 모델을 일반 학교에까지 확산 및 보급하고자 한다.

  함현고등학교(이하 함현고)는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시행 중인 사례이다. 함현고는 탐구 시간에 환경 정책을 제안하는 수업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각자 생활 속 문제를 인식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데, 이것이 단순 수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들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환경교육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해당 수업에서 나온 정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실제로 학생들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하기도 한다. 또한,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인 신탄진중학교(이하 신탄진중)는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다양한 환경교육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신탄진중학교는 환경친화적이고 탄소중립적인 교육을 추구하는데, 이를 위해 각 교과목과 연계하여 학교 주변의 환경 관련 시설을 견학하고 추수 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교육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기상청 등의 공공기관의 인프라도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신탄진중은 교육적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기도 하는데, 교내에서 열린 탄소중립 중점·중심 신규학교 공개 주간 등을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 대상 전문가 특강 등 탄소중립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우려사항 및 개선 방향

 

  앞서 살펴본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시행 방식에 관해서 우려되는 부분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후위기, 환경생태 교육의 장

 

  먼저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여러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살펴보면, 탄소 중립의 ‘일상화’와 ‘체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령 교실 속 숲을 통해 자연에 친화적인 일상을 만들고, 직접 전기를 생산하거나 약차티백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등의 환경 체험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학생의 참여를 위주로 하는 교육은 환경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몸소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환경 교육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참여를 통해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문제를 온몸으로 느껴보도록 하려는 중점학교의 체험 위주 교육은 분명 지향해야 할 내용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미시적인 일상 속 경험만을 중점으로 하는 교육이 진정한 환경생태 교육의 장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학교는 학생들의 탄소 중립 생활의 일상화를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환경 문제에 대해서 볼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 교육을 제시해야 한다. 환경 문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매우 복잡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경 문제의 양태에 대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쟁점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이후 전문분야 협업에 관한 부분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것이다.

 

2) 전문분야 협업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보다 효과적인 환경 교육을 위해 정부 6개 관계부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령 환경부에서는 환경교구 및 우수환경도서를 대여해주고, 해수부에서는 해양환경 이용교실, 산림청에서는 숲교육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기관과의 협력 및 지원 내용이 적절한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체험 교실이나 도서 지원 등은 개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이보다는, 개개인의 학교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정부 측의 역할이다. 보다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앞서 언급했다. 이러한 교육은 개별 학교의 교사들에게 온전히 맡기기에는 매우 부담이 되는 일이며, 관련 주제에 관해 전문 교육을 받은 교사도 드물기 때문에 개별 학교에서 일상 속 체험 이상으로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정부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 전문가를 각 학교에 지원하거나,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또한, 기존 교사들에게도 보다 정확하고 실용적인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3)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학교를 넘어선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을 목표로 다양한 지역 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했던 함현고의 사례에서처럼,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서는 지방자지단체와의 실질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여기에 주체를 하나 더 추가하여, 각 지역의 대학들과 협업을 통한 중점학교, 지자체, 대학 세 가지의 협력 모델을 제안하는 바이다. 지역 대학을 협력의 주체로 포함한 이유는 대학이 가진 인적 자원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학이 제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환경 관련 분야의 교수진이 존재한다. 그들은 기존의 교사들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의 형태나, 교사들의 환경 교육 가이드라인 설정에 자문을 주는 형태로 활용 가능하다. 교수진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의 재학생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역시 존재한다. 가령 대학교의 환경 관련 동아리들은 중고등학교의 동아리에 비해 훨씬 활발하고 전문적으로 환경 운동을 주도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다. 중점 학교의 학생들은 대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자문을 받고, 대학 동아리와의 협력을 통해 환경 정책이나 캠페인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자원은 지자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지자체는 대학이라는 주체로 인해 보다 활성화된 중점학교와 사회와의 연결을 위해 공간 및 기회 마련, 그리고 재정 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는 중앙 정부보다 지역 특색에 맞는 구체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탄소 문화 확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주체의 협력 모델은 중점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보다 탄탄히 하고,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기존 목표였던 탄소 중립 실천 문화의 확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살펴보고, 기존 운영방식에 있어서 우려되는 점과 개선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아직 40여 곳 학교에서만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고, 시작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체계적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현재, 탄소중립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학교 운영이 유의미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기점으로 앞으로 한국의 환경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한국 환경교육 지향점

 

  환경교육의 최종목표는 결국 친환경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미래의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 관한 지식 전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유의미한 이유는 기존의 ‘수업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환경에 관련된 지식만을 표면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탄소 중립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학교의 형태와 교육과정 자체를 탄소 중립에 맞추어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그 자체로 복합적이고 불분명한 대상이기 때문에 교육 역시 한 가지 방식만으로 편협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환경이라는 대상을 복합적인 관점에서 다층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교 교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중점학교처럼 보다 다양하고 실천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직접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알긴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력감만을 기르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당근주스
  얼결에 말은 편집장을 1년이 넘게 하고 있게 되었네요. 마감 두 번 했더니 이렇게 시간이 갈 줄이야! 저번보다 이번에 더 성장한 편집장이 되고 싶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엔 더 능숙하게 교널 운영하고 싶어요. 이번에도 무사히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편집위원님들의 공이 큽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나무 부편집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교육저널 많이 사랑합니다!


#나무
  항상 교널은 부원들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에도 다정한 부원들과 함께 42호를 발간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보드게임 했던 것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이번 호에서는 세미나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모든 것을 다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당근주스 편집장님한테서 이번 학기 특히나 더 교널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편집장, 부면집장을 맡은 게 엊그제 같은데 두 번째도 마무리가 되네요. 편집장님! 회의도 활기차게 진행해주고 교널 활성화에도 진심으로 힘써취서 고맙습니다~!) 교널 Forever~~

 

#우리
  교육저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쓰는 글이라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학기가 글 쓰는 일에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었던 기간이었는데, 교육저널에 들어와서 많은 격려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글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함상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다양한 교육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육저널 파이팅!!


#이파리
  교육저널에서 참여한 첫 문집입니다. 교육, 이제 너무 많이 되뇌어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알맹이를 채워내는 사람들 덕분에 교육저널도. 교육도 다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 경험에 집중했는테. 다음 글에서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민
  어느덧 교육저널에서 세 번째 문집을 완성했네요. 1학년에 처음 들어와 4학년이 될 때까지 교널을 들락날락거리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동안 제 시선은 접점 학생의 것에서 교사의 눈으로 이동해온 것 같아요. 학교라는 교육 현장을 학생의 신체로서만 이해하다가, 교직을 이수하고 실습을 다녀오면서 가르치는 존재로서 학교 현장을 감각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건 아마 시야가 넓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시야의 지평이 이동한 것에 가깝겠지만, 이야기의 다양성을 더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공허하게 들릴 때도 많지만.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그것을 만드는 게 교육의 역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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