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영화 전반에 대한 생각 나누기

당근주스: 영화 보고 어땠는지 얘기해 보자. 인상 깊었던 장면도 좋고 아쉬운 점도 얘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라는 대사가 진짜 너무 무서웠는데…, 일단 그거는 누구나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넘어가고, 나는 마지막에 교수 입은 안 나오고 눈만 비추는 장면이 어떤 표정일지 모르니까 더 무서운 거야. 진짜 웃었을지 안 웃었을지도 모르는 거고. 아쉬운 점은 이건 스릴러야. 분류가 너무 잘못된 것 같아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영화는 되게 잘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도 애초에 그래서 추천했던 거지? 잘 만든 영화라고 해서.

정민: 맞아. 되게 뛰어난 영화라고 영화광 친구가 얘기해 줬는데 약간 흥미로운 지적이야.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 되게 대대적인 오독이 있었대. 누가 봐도 잘못된 스승을 비판적으로 연출된 영화잖아. 근데 한국에서만큼은 이렇게 몰아붙이면서까지 학생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스승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게 컸나 봐. 그래서 왜 그게 한국적인 현상이 되었는지도 흥미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 분위기나 교육관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겠어.

당근주스: 나도 우리나라에서 참스승으로만 해석되는 건 소름 끼친다고 생각해. 예체능 하는 친구들은 공감을 많이 한대. 이런 식으로 몰아 붙여지면서 교육받는 게 일상이다 보니까. 보다가 막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대.

우리: 나는 엄청 충격받았어. 원래 이 영화를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지는 않고 그냥 그 후기만 좀 몇 개를 알고 있었거든. 이런 영화가 진짜 조금 폭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유도하는 참스승의 모습이 보이고 그 학생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이게 맞나 싶네. 이걸 어떻게 참스승이라고 하지? 이런 교육을 비판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어. 개인적으로 나는 피나는 장면이 보기 힘들었어. 잔인한 거 잘 보는 편인데도 말이야. 이렇게까지 피를 흘려서까지도 노력을 하라는 것 같아서 좀 그랬어.

당근주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자극제를 주는 영화라고 하더라. 좀 그래.

우리: 그러니까. 그니까 폭력도 폭력인데 말도 엄청 심하게 하잖아.

나무: 근데 난 처음에는 되게 체벌이랑 관련됐나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그때는 체벌이 어쨌든 허용되던 시기기도 하고, 근데 영화에서는 막상 그 사람이 직접 때리는 장면은 거의 없단 말이야. 근데 체벌보다 더 체벌 같았어. 그리고 그 드럼을 치면서 이렇게 피가 날 수 있다는 거를 알았어.

당근주스: 실제 배우가 피를 흘리면서까지 친 거래. 좀 잔인했던 것 같아. 상상되는 고통이잖아. 막 총 맞는 고통은 잘 모르니까 공감이 안 되잖아. 근데 살갗이 쓸리는 건 사실 얼마나 쓰라릴지도 공감이 되니까.

 

Q2: 앤드류는 엔딩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한계를 깨고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해낸 것일까요?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당근주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마지막 장면이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앤드류가 한계를 깨고 나온 건지, 아니면 그냥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한 것뿐인지도 얘기해 볼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게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얘기해볼까? 나는 주인공이 한계를 깼다기보다, 그냥 교수 스타일에 맞게 완벽히 연주하는 법만 들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한계를 깼다 하더라도 특정 곡에 한해서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난 이게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나무: 초반에는 앤드류만의 기준이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정말 그 상황에 맞게 잘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플랜처 교수가 중간에 그런 말을 하거든. ‘나는 너희를 찰리 파커처럼 성장하게 할 거다’라고 하면서 여태까지 본인이 가르친 사람들 중에서는 찰리 파커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잖아. 하지만 본인은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고 가서 잘하게 해주는 거라고 한단 말이야. 결국엔 학생들을 믿지도 않으면서 극한으로 몰고 가기만 한 거지.

당근주스: 그것도 자극제로서 말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무: 자극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가르치는 애들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우리: 나는 이거 드럼 칠 때, 조명이 꺼지면 곡을 끝내야 하는데, 앤드류가 조명이 꺼지고도 계속 치잖아. 그때는 좀 약간 한계를 이제 넘어서, 드디어 자기만의 드럼을 연주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에 교수가 자기가 신호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러잖아. 그냥 이런 게 계속 반복이야. 어차피 다 교수가 주도를 하잖아. 이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닌 것 같아.

당근주스: 그러니까 결말도 그렇게 해석된다는 게 오히려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게 자기 스스로 깨고 나온다기보다 오히려 교수 스타일대로 다시 회귀해서 그 사람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는 거. 근데 내가 보기에 앤드류도 진짜 보통이 아닌 것 같긴 했어. 왜냐면 대들 수 있는 사람은 걔 하나였어.

나무: 진짜. 다른 친구들은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고 오케스트라 외에도 다른 곳에 소속이 되어 있거나 하는데, 앤드류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서 친구도 안 사귀고 여자친구도 찼잖아. 그냥 진짜 거기에 미쳐있는 거지. 그래서 그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그걸 파악할 수가 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

당근주스: 근데 그만뒀잖아. 그래도 돌아간 게…아이러니하지. 참, 교수가 앤드류를 정말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어. 이 공연을 정말 잘만하면 러브콜이 너한테 쏟아질 거야. 그래놓고 다른 곡을 갑자기 주는 게 어딨어.

우리: 그래 맞아. 그래놓고 ‘(나를 고발한 게) 너지?’라고 물어봤던 게, 그전까지는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학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가르치려고 했던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그 장면 보고 이거는 그냥 학생으로도 생각 안 하고 복수하려고 했던 것 같았어.

 

Q3: 몰입이 정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상태일까?

정민: 나 근데 다른 질문이 있어. 앤드류 정도는 아니어도 어떤 일에만 몰두해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내는 게 교육적으로 좋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더라도 취미(또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즐기면서 하는 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문제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 후자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직업적인 성취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는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럼 이제 이걸 교육자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는 어떤 것을 학생들한테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더라고.

당근주스: 재능을 키워주는 것만이 교사의 목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당히 삶을 잘 영위하는지,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해야 하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길러주는 사람이어야 해. 그리고 사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보통은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행복한 게 우선이니까.

나무: 근데 난 전자가 진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해. 왜냐면 자기 분야에 몰두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거든. 연구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하면서 깨달음도 많이 받을 수 있잖아?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 주인공이 새로운 연구에 완전히 빠져있는데, 외부와의 소통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그래서 괴물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보니까 자기가 잘못된 걸 한 걸 깨닫게 돼.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다 막고서는 한 곳에만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앤드류가 그렇게까지 몰입하는 건 플래처 교수가 만든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 ‘업스윙잉’인가? 그것만 연습시키잖아. 병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같아.

 

Q4: 플래처 교수가 최악이라고 평했던 ‘Good Job.’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플래처 교수는 이 말 때문에 학생들이 안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과연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가 중간에 ‘Good job.’이라는 말을 되게 싫어하잖아. 최악이라고. 그 말 때문에 학생들이 나빠진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거든.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칭찬이 그럴까? 과연 그 말이 정말 독이 될까?

정민: 학생들한테 칭찬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성취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가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되게 결과주의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니까. 근데 사실은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잘했는데 잘했다고 얘기 안 해주면 좀 서운하잖아? 그래서 뭔가 그런 과정적인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더 중요한가 싶다가도 결과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 이거는 그냥 마구 칭찬을 해주면 그럼 다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어떨 때 학생들에게 칭찬해야 하고, 어느 순간에 칭찬을 멈춰야 하는지 의문이야.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칭찬은 외부의 자극 동기 유인이잖아. 교육학에서는 내재적 요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니까, 칭찬을 아주 많이 하는 건 그렇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당근주스: 그리고 한국어 번역에는 뭐라고 우리 말 번역에는 뭐라고 말하냐면 이만하면 됐어라고. 그냥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Good job.’의 이미지로 생각해 보면 난 나쁘지 않다고 어느 정도 필요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근데 다만 이제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게 되면 그건 진짜 문제가 있지. 과정에 대해서 평가를 못 받으면 이제 애들은 결과를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구나. 이런 생각을 좀 할 수도 있고.

우리: 근데 이 과정에 대한 칭찬도 좀 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 단원평가 과목별로 세 번을 봐놓고 그 추이를 봐서 상을 줬거든. 그때 어떤 방식을 썼냐면, 결과보다는 과정, 그러니까 실제로 점수가 오른 애들한테만 준 거야. 점수 낮게 받은 애들이라도 50점에서 70점으로 오른 친구들을 칭찬해주는 거지. 근데 100점, 100점, 100점 맞으면 상을 못 받았어. 그러면 그건 못한 건가? 이런 생각을 그때 했어. 그래서 과정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

정민: 사실 이게 과정 평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정량적인 산출 결과만을 보고 추이를 본 거니까 정말 과정 평가일까 싶네. 이번에 교생 가서 본 게 애들이 사실상 좋아하는 거는 국어 학습지에서 시집을 골라서 필사한 뒤에 이게 왜 좋았는지 내 경험이랑 연관 지어서 써보는 걸 시켰어. 그래서 그 학습지를 선생님이 들고 가셔서 하나하나 다 좋은 글에 밑줄 쳐주고, 이게 왜 좋은지를 다 피드백을 해서 애들한테 들려주는 거야. 그게 정말로 피드백인 거니까 이게 과정 평가의 원형에 제일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고…, 애들도 거기서 단순히 기분 좋아, 이걸 넘어서 동기 부여를 받더라.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시 모임을 만들어볼까, 이런 논의가 오가더라고. 생각보다 그런 정확한 기술과 정성 평가가 중요성이 크다고 느꼈어. 근데 문제는 국어 선생님이 그거 한다고 맨날 새벽 2시에 자서 다시 5시에 일어나서 내일 수업 준비하고 그럤다고 하는 거야. 근데 그분이 지금 3개월 된 신생아 아빠시거든. 게다가 연구부장이셔.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 받으시더라. 그래서 그분을 보면 교직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어. 되게 사명감으로 하시던 분이셨는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힘들어지더라고. 왜냐하면 교사 임금도 호봉제라 그닥 높지도 않으니까.

나무: 그렇지. 그럼 이제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아까 ‘이만하면 됐어’라는 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더 했어야 되는데, 하고 후회할 때가 있고 이 정도 했으면 진짜 잘했다고 할 때가 있잖아.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됐다는 정도도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도 거기서 더 나아가는 애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너무 달리는 애한테는 그런 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는 (이만하면 됐다고) 그렇게 말해도 달리는 애를 찾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말해줘도 알아서 자꾸 도전하는 학생 말야. 근데 보통은 그렇지 않으니까 일부러 더 열 받으라고 가스라이팅하는 걸지도.

정민: 난 궁금했던 게 마지막에 입이 안 나오잖아. 나는 여기서 ‘Good job.’이라고 말해준 건가 싶었어. 자기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성과를 앤드류가 마지막에 보여준 거잖아. 그래서 그게 ‘Good job.’인 거라고 생각해보니까, 이게 진짜 앤드류가 뭔가를 뛰어넘어서 희열에 젖은 모습을 칭찬한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따지면 둘 다 뭔가 하나씩 깬 거잖아.

당근주스: 짱이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해석을 해 주니까 참 좋은 것 같아.

 

Q5: 학생들의 잠재력은 언제 벽을 뚫고 나올까요? 다그치는 것 외에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근주스: 넘어가서, 학생들의 잠재력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영화에서는 영화 제목처럼 채찍질, 그러니까 다그침으로 잠재력을 끌어내려고 시도를 하는 거잖아. 근데 그거 말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정민: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게 되게 좋은 말이잖아. 근데 이 말이 어떤 느낌도 드냐면…, 내 안에는 아직 발아하지 못한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이 진짜 나고 싹을 틔워야만 나는 진짜 멋있는 내가 된다는 것처럼 들려서 내가 저런 말을 안 좋아해. 사람들은 과정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렸을 때보다 훨씬 커 있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는 거거든. 이거야말로 거북하지 않은 방식으로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 같아. 그렇지만 교육인의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면 잠재력 실현을 돕는 일이 너무 고민이 돼. 어떻게 해줘야 학생들이 언제 나름의 성장을 이루지 이런 생각도 들어. 그래서 두 지점이 충돌해. 어떻게 생각해?

나무: 잠재력은 끌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 진짜 뭔가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성장하는 건 있는 것 같거든. 나도 요즘에 느끼는 게, 예전에는 글로만 접했던 것에 지금 더 흥미를 느낀다든가,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그래. 확실히 배웠을 당시에는 그 정도로 생각을 못 했어. 근데 경험이 쌓이면서 가능하게 된 건가 싶어. 하여튼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교육현장에 적용해 보면…, 분명 잘할 수 있는 학생인데 방법을 몰라서 갈피를 못 잡을 때 교사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정민: 그래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게 생각보다 되게 중요한 것 같아. 난 가끔씩 내가 서울대생이라는 걸 느끼는 때가 있거든. 어떤 때냐면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생 연구 지원이 너무 잘 돼 있어.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 우리 학교가 국내에서 되게 연구를 선도하는 학교고 제일 위에 있다고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곳이니까 그걸 충실히 해내기 위한 노력인 셈이지. 근데 만약에 내가 약간 재정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적 자본도 그렇게 크지 않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학교에서 그런 지원을 진짜 안 해줄 것 같다는 걸 요새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느껴. 근데 그렇게 된다면, 아까 나무가 얘기했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한테 어떠한 것들이 쌓이는 경험이 되게 적을 것 같아. 교육의 차원에서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 준다거나 아니면 자본을 되게 성실하게 투입해 주는 게 되게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

당근주스: 여기서 나아가서 이런 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발전 가능성이라든지 이런 인프라라든지 뭔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한번 해봐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교사나 교육자가 되어야 해. 그리고 교육자는 결정적으로 선구안이 있어야 해요. 애들이 무슨 능력을 갖고 있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잘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거. 그냥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그런 거지. 발아할 수 있는 능력이랑 적당한 환경이 만나면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원론적이고 좋은 얘기지. 근데 사실 두 개 다 갖춰지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

민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에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너희들이 다 각자 다른 꽃이니까 언젠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라는 거란 말이야. 그래서 뭐든 시기가 딱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느꼈어.

정민: 그래서 되게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

우리: 근데 잠재력을 끌어내는 걸 꼭 교사가 해야 할까, 생각하기는 했었거든. 선생님이 뭔가를 하라고 해도, 스스로를 제일 잘 아는 거는 다 학생들 본인일 테니까. 그러니까 뭘 잘하게 될지 모르니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상으로 뭔가 너는 이걸 잘할 것 같으니까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지도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물론 선구안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게 가능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선구안을 가진 능력을 가진 선생님들 그것도 진짜 많지 않고, 실질적으로 모든 학생들한테 그런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쉽지 않잖아.

당근주스: 그러면 플래처 선생이 여기서 다그치는 걸 택했고 실패한 걸까?

나무: 확실히 뭔가 이렇게 압박하고 하면 그 순간에 단기적으로 그냥 실력 향상이 되는 건 맞는 것 같아. 효과가 없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근데 나중에 가서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당근주스: 실력 향상은 되는데 정말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그 선생님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영화에 나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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