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메인 ost로 쓰인 클래식 곡입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은 우주와 인류를 주제로 한 SF 장르 영화로,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인 ost "Also sprach Zarathustra"는 웅장한 관현악과 타악기 소리로 영화와 좋은 시너지를 내는데요. 이번 저의 글에서는 이 음악처럼 조금은 웅장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을 다 읽은 후 천천히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우주와 인류의 서사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과학이란 무엇일까? 필자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다. 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과학은 “왜?” 라는 질문을 반복했을 때, 의미 있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그렇기에 대학에 온 후 과학의 정의에 대한 여러 사변들을 접했지만 누가 과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대답했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과학 교육 또한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알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과학을 완전히 사회와 정치에서 분리된 것으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과학은 단순히 생각했던 것만큼 낭만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과학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된다. 과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학문이지만, 결국 인간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기에 과학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20세기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인류의 시도가 근본악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과학과 기술을 앞세워 모든 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과학적 전체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때의 근본악은 개인이나 집단의 악의에 기반하기보다는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하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가 부재할 때 인류의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치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러한 주장은 유효하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을 통해 지구 최대의 종이 되었고, 심지어는 달과 우주에까지 세력을 뻗으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올바른 가치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그러한 고민을 유도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나는 과학 교육이 모든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류의 일원으로서 과학을 사유”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교육을 제안하려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히스토리이면 히스토리이지, 빅Big이 왜 붙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선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 히스토리, 즉 역사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도록 하자. 역사의 사전적 정의는 문자로 기록된 과거의 사실들에 대한 연구다. 따라서 역사는 주로 문명 이후 인류 사회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빅 히스토리는 다루는 범위를 인류의 문명에 한정하지 않는다. 빅 히스토리는 우리가 과학과 증거 수집을 통해 알아낸 아주 먼 과거의 사건들, 즉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설정한다. 말 그대로 거대사인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교육에 있어서 더욱 도드라진다. 역사 교육은 그 역사의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모든 과거의 사실에 대해 가르칠 수는 없기에 어떤 사건이 중요한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역사 교육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들이 주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소속된 국가의 영토에서 일어났던 일들, 특히 정치와 전쟁과 관련된 사건들을 주로 배운다. 역사의 주체는 특정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민족이 될 수도, 동/서양과 같은 거대한 문명 혹은 지역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빅 히스토리는 인류 전체를 역사의 주체로 둔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가진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세세한 사건들을 학습하기보다는 인류의 탄생과 변천의 거대한 흐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복잡도complexity라는 개념을 통해 빅뱅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전체 역사에는 복잡도가 크게 증가하는 9개의 문턱이 존재한다.[각주:1] 문턱은 빅뱅, 별의 탄생, 생명의 탄생, 농경의 시작 등을 포함한다. 천체 물리학자 에릭 체이슨도 일률밀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고,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전체 역사를 엮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해왔다. 빅 히스토리의 핵심은 축적된 과학적 지식들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왜 빅 히스토리인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그게 앞서 말한 필자의 목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점이 들 것 같다. 빅 히스토리를 인류의 관점에서 과학을 사유하는 방안으로 꼽은 이유는 그것이 인류 공동체의 서사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서사는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를 배우며 분노하고 애국지사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국민 혹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여기게 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일전에 열광하는 것처럼 현재의 마음가짐에도 분명 영향을 준다. 현대 사회는 환경∙인구∙전쟁 등 범지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스로를 어느 나라의 국민, 어떤 가족의 구성원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서 정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인류 공동체 서사인 빅 히스토리를 통해 부여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을 배제하고도 빅 히스토리는 교과학습적 측면에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역사/사회 등으로 나누어지는 교과들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스토리텔링이라는 큰 체계 속에 지식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 지도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 학습 사전/사후에 적절히 활용된다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전체 내용에 대한 체계를 획득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에너지, 엔트로피, 생명의 창발성[각주:2]과 같은 과학사나 과학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난이도 등의 이유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거나 각 과목별로 분절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빅 히스토리 교육을 통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서 이러한 개념들을 접한다면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낮추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

 

  더 나아가 빅 히스토리에서 파생된 흥미로울 만한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는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 기원부터 미래까지 살펴보는 활동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콜라 캔을 생각해보자. 콜라 캔은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신성 폭발[각주:3]에서 발생한 알루미늄의 이야기로부터 콜라 캔의 빅 히스토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박테리아, 컴퓨터, 커피 등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 각자의 리틀 빅 히스토리를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탐구 과정은 주제를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각 이야기는 시간 축에서 변화의 양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흥미 분야에 대한 사고를 전개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면서 같은 시각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리틀 빅 히스토리가 훌륭한 교육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에 편성한 많은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리틀 빅 히스토리를 빅 히스토리 교육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가 교육에 적용된 사례

 

  빅 히스토리를 홍보하고 교육하려는 시도들이 국내외 존재한다. 하나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등의 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시간에 수업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 중 일부는 빅 히스토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약 1500개 이상의 중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의 대학교에서 빅 히스토리 주제의 교양 강좌가 열린 바 있으며, 대중 강연 및 연수 프로그램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계점

 

  그렇지만 빅 히스토리에도 분명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우선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빅 히스토리의 기본적인 흐름만 파악하는 데에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생명과학/화학/지구과학 내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단순히 내용을 나열하는 식의 수업은 본래의 학습 목적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실현 자체가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고등학교 과학 교과를 학습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개별적 지식을 소개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스토리텔링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빅 히스토리의 내용 자체보다는 빅 히스토리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엮고 있는지 공부하는 것, 또 학생들이 직접 이러한 빅 히스토리적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앞서 언급한 리틀 빅 히스토리와 관련된 활동들도 포함될 것이다.

 

  학생의 학습 관점에서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를 교육시키고자 한다면 해당하는 교과서나 학습자료, 학습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누가 만들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 지식에 상당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지식 체계를 통합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적극적인 전문가가 요구된다. 더불어 교육학과 빅 히스토리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도 필요하다.

 

 

결론

 

  빅 히스토리가 그저 흥미로운 주제일 뿐이라면 교육 과정에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단순히 여러 학문 분야를 엮은 내용을 소개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할 만한 일관된 경험과 메세지가 들어 있을 때 교육의 가치가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빅 히스토리의 강점이 드러난다. 빅히스토리는 교과서 혹은 교사가 구사하는 단편적인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거대한 인류 서사를 소개하고 스스로의 시각에서 스토리텔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경험은 복잡한 세상에 왜소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거시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1. 데이비드 크리스찬은 빌 게이츠와 함께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인 Big History Project (oerproject.com) 에 빅 히스토리와 문턱 이론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는 강의가 있다. [본문으로]
  2. 하위 계층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다. [본문으로]
  3. 질량이 매우 큰 별의 중심핵이 붕괴할 때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을 통해 만들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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