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나는 학교현장실습을 다녀왔다. 학교현장실습이라 함은, 교직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마지막 학년에 학생을 실제로 가르쳐보고, 학교 루틴, 교직 문화 등의 학교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다녀오는 실습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범대생들이 고대하는(혹은 고심하는) 미션이기도 하며, 예비교원들은 교생을 계기로 주로 교직에 대한 의지를 다지거나 혹은 소수이긴 하나 교사가 되지 않을 것을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학교를 곧잘 따라다녔다. 학교라는 공간, 교사라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은 내게 직업인이기보다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일터, 엄마의 동료(혹은 친구)였기에 안정감과 친숙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에도 학교라는 곳은 늘 재미있고 수평적인 공간이었으므로, 내게 학교는 언제나 ‘호의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 대부분의 배경이 되어준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싶었다. 꼭 학생이 아니라 해도 교사로서 학교에 있는 일도 꼭 맞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봄의 수혜자인 것과 돌봄의 제공자가 되는 것은 정확히 반대의 실천을 요구한다. 돌봄이란 일종의 ‘보살핌’으로 이해되는데, 학술적으로는 일상적인 영역에서 존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수행되는 행위, 실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돌봄 실천에는 언제나 돌봄을 받는 자(수혜자)와 돌봄을 주는 자(제공자)의 이자관계가 선행한다. 수혜자는 제공자가 주는 돌봄 서비스를 받고, 그를 소비하는 것에 역할이 머문다면, 돌봄 제공자에게는 훨씬 적극적인 관계적 의무가 요청된다. 돌봄 제공자는 수혜자의 필요를 파악하여 삶의 지속 및 발전을 도와야 하며, 따라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돌봄은 타인과 괴리된 물질 생산 노동이나 몰개성적 대인 서비스업이 아니다. 즉 ‘돌봄으로서의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고객의 생애사적 궤적을 이해할 필요 없이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데에 집중하는 서비스업과는 달리 돌봄 수혜자인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대인(對人)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직업으로의 교사를 택하는가? 다시 말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가? 나의 경우에는 교사가 ‘전인적’인 직업이라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 성장기의 다수의 사람들과 만나, 책임감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애정을 다해 지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재화를 생산하는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큰 심리적 동인 그리고 성취감을 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실습을 하며, 나는 한국에서 ‘교사를 하고 싶다’는 말이 갖는 함의를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을 감수하겠다는 선언인지를 말이다.

 

현직자들의 토로에 귀 기울이기

  교생 기간에는 학교에 많은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신분으로 학교의 관리자들을 만날 때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느낄 수 있고(교장과 교감의 성향은 학교 전체의 사업과 의사결정 구조를 좌지우지한다),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수십명의 학생들은 나를 친구가 아닌 교사로 대한다. 그러나 교생 때 접하는 것 중 가장 새삼스러운 것은, 교사들의 이야기이다. 실습 기간 중 아이들을 만난 것도, 가르치는 일도, 학교 행사도 모두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학교에 있는 교사들이 스스로 교직 생활을 평가했던 것은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나는 한 달간 열이 넘는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선생님들과 안면이 깊어질수록,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수록 느꼈던 것은, 누구 하나도 자신 있게 교사를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온전히 자랑스러워하거나, 완전히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관리자급의 경력이 긴 선생님들은 교생 전원에게 임용 응시를 권하셨다).

 

  교생 기간에 만났던 현직 교사들이 토로한 여러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과도한 업무 강도와 그에 비례하지 않는 보수였다. 최근 10년차 이하의 저연차 교사들을 중심으로 “실질 임금 보장”에 대한 공감대가 급격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한국의 교사 인력이 평균 소득 수준이 높은 고학력자 집단임을 감안할 때, 소득 수준이 낮은 (특히 저연차) 교사들의 불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교육이라는 영역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교원 임금을 시장 논리에 따라 책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그럴 수도 없다). 교사들 역시 “교사는 돈이 아닌 보람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새롭게 일고 있는 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는 변화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교사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낮은 임금 수준을 감내할 수 없게 하였는가? 그 요구의 발생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본 글에서는 학교 기관의 교육을 넓은 의미의 돌봄 실천으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보수 책정의 적절성을 논의한다. 교육 실천의 많은 부분은 앞서 언급한 ‘돌봄’의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배움, 또래와 관계맺기, 진로 선택의 고민, 성취에 대한 타인의 인정 등 많은 영역에서 학생들은 욕구를 갖는다. 학교 공간은 학생들이 다층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물론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이라는 의무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사는 그 공간에서 직접 학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수업을 계획 및 진행하고, 학교 유지를 위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학생 생활 전반에 필요한 상담 및 생활 지도 등의 도움을 준다.

 

  즉 교사는 교육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교육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자이자 돌봄 제공자이며, 학교 운영을 위한 행정 처리자에도 해당하는 노동자이다. 이들이 수행해야 하는 노동량과 강도는 결코 적지 않으며, 이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 전달’에만 한정되는 활동이 아니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은 학생 개개인을 ‘성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교과 내용을 교수하는 것 외에도 교육 환경 전반을 적절하게 조성하고 학생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활동이다. 교육의 이러한 돌봄적 특성은 교사에게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며, 동시에 교사의 노동량을 증가시킨다. 이에 본 글은 교사가 수행하는 과업에 대한 보상이 적정한지 교사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현재의 임금 수준이 교원 인력 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하고자 한다.

 

교원 임금 체계 톺아보기

  교사는 국가에 귀속된 공무원이므로 제도적 규정에 따라 임금을 보장받는다. 기본적으로 교사의 임금 체계는 공무원의 임금 체계와 결을 같이 하여 호봉제를 적용한다. 그런데 교사는 일반직 공무원 중 ‘담당 업무가 특수하여 자격, 신분 보장, 복무 등에서 우선 적용’되는 ‘특정직 공무원’에 해당한다. 특정직 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이 따르는 계급 제도가 없기 때문에 임금 체계에 차등을 두는 급수(1급~9급)제를 따르지 않는다. 즉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등과는 달리 급수를 따르지 않기에 임금 지급을 위해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 일반직 공무원은 호봉표가 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교사는 계급 구분 없이 동일한 호봉표를 따르기 때문에 별도의 규정이 필요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경력의 상당계급기준표’를 제시하여 교육공무원의 ‘호봉’을 기준으로 일반직 공무원의 급수 제도에 맞추어 계급을 제시한다.

  호봉을 기준으로 11호봉 이하의 교사는 7급 공무원, 12~15호봉의 교사는 6급 공무원, 16~23호봉 교사는 5급 공무원, 24호봉 이상 공무원은 4급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교장, 교감, 교사 순으로 계급을 세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호봉으로 구분을 지어 계급을 구분,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교육공무원의 임금 체계를 일반직 공무원과 합치하지 않는 이유는, 교원이 부족하던 과거 원활한 교원 수급을 위해 교직이수 등 다양한 제도를 설치하여 교사를 양성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교사가 되어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가 다수 있기 때문에, 임금 체계를 개편할 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호봉에 따른 봉급은 위 그림과 같다. 교사의 경우, 임용 시점에 소지하고 있는 2급 정교사 자격증이 8호봉으로 산정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임용고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교육/사범대학 졸업 혹은 교직이수를 통해 취득한 2급 정교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4년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인정되어 교원 임용 시 가산호봉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규교사의 임금은 9호봉, 즉 2,152,400원(약 200만원)부터 시작된다. 최저시급을 조금 웃도는 임금이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의 보수를 특별히 우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은 353만 1000원, 평균가계지출액은 256만 6000원이었다. 초임교사의 임금은 2,152,400원이다. 즉 초임교사의 임금은 1인 가구 평균‘지출’액보다도 41만 3600원이 적다. 기본적인 생계 유지에 필요한 평균 금액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셈이다. 평균소득액과 비교해보면 무려 96만 5000원, 약 백만원이 적다. 오늘날 교사의 임금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순히 교사라는 직업을 우대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저연차 교사에게 임금 문제는 생계 유지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비단 신규교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임용 이후 10년차가 될 때까지 교사 임금은 300만원을 넘지 못한다. 10년차의 교사가 35세 정도라고 가정할 때, 연봉은 약 3600만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임금직무 정보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대졸 이상 30-34세의 연봉 중위 수준은 약 4400만원이며, 대졸 이상 35-39세의 연봉 중위 수준은 5400만원이다. 즉 교사의 연봉 수준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같은 연령 집단보다 확연히 낮다.

 

  교사가 기본금 외에 얻을 수 있는 수입으로는 담임교사, 부장교사 등의 추가 업무를 통한 수입과 성과급 제도가 있으나 이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보직수당에 대해 먼저 논하면, 담임교사는 한 달에 13만원, 각 부서의 부장 교사는 7만원의 추가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8년째 동결된 수치이며 담임교사와 부장교사가 수행해야 하는 추가 업무량을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 담임교사는 매일 조·종례 진행 및 학급 관리, 30명 내외의 학급 학생 상담, 학부모 상담, 생기부 기록 등 추가 업무들을 맡고 부장교사는 해당 부서의 전체 업무 관리 및 부서 소속 교사 간 의견 조율, 업무 배분 및 관리자와의 의견 조율 등을 해야 한다. 노동 강도를 논하지 않고 순전히 소요되는 추가 시간만을 따져도 이상의 추가 수당은 적정치 않다.

 

  성과급의 경우 1년에 한 번 평가를 통해 교사들을 3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S등급은 500만원, A등급은 400만원, B등급은 300만원 수준의 금액을 지급한다(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관료제적인 호봉제가 교사의 열의를 떨어뜨린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현직 교사의 말에 따르면 교직 사회에서 성과급제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성과급제의 논리에 따르면 교사가 어려운 업무를 맡을수록, 좋은 성과를 낼수록 큰 금액을 지급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여러 업무 중 어떤 업무가 어려운 보직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어떤 항목을 중심으로 교사의 성과를 판단할 것인지 등급 산정 기준 책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성과급 제도가 교사 간 협업을 어렵게 하고 분란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교원 임금의 적절성 고찰하기 – 저연차 교사의 생존권과 교원 수급의 문제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월 교원 봉급 10.3% 인상, 교직수당 42.5만원, 담임수당 30만원, 보직수당 30만원으로의 인상을 요구하였다. 교직 사회에서 임금 인상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는 처음 발생한 일이다. 청년공무원조직위도 공무원 임금 체계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필요성에 응답하지 않고 내년 공무원 보수를 최저임금 인상률과 동일하게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교원 임금이 청년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는 큰 이유가 됨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 수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대두되는 지속적인 교원 자살 사태로 인해 교권과 교사 생존권에 관심이 몰리면서, 저연차 교사들의 생존에 필요한 또 다른 요구, 생계 유지를 위한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도마 위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의 임금은 얼마여야 할까?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해당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지를 이해할 지표이기도 하다. 즉, 임금 수준은 노동에 부여되는 사회적 가치를 암시한다. 의료인이 높은 소득 수준을 갖는 것은 의료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직업의 전문성, 그 희소성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의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타 직업들보다 높은 소득 수준을 갖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높은 임금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노동, “필요한” 노동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교사의 낮은 임금 수준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 한국처럼 평균 노동 시간이 길어 가정에서 가족끼리 보낼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공교육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아동 및 청소년이 있을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의 안전을 관리할 어른(교사)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때 쟁점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교원 인력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문제 제기일 것이다. 실제로 출생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수도권 쏠림 현상이나 교사 1인당 적정 학생 수 문제 등을 뒤로할 때) 이와 같은 지적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교사 임금 수준 개편에 대한 논의는, ‘젊은 교사’들의 교직 이탈 문제를 위해 필요하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어 새로운 교육을 수행할 젊은 교사들, 저연차의 교사들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실 이 글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전체 교사들의 임금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호봉제의 특성상 연차가 쌓일수록, 나이가 많은 고연차의 교사가 될수록 소득 수준은 높아진다. 그러나 저연차의 교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에게 최저임금과 유사한 수준의 낮은 임금은 교직 사회를 떠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하며, 이는 사범대생 등의 예비 교원이 교직 사회로의 진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교원의 실질 임금 보장 문제는 저연차 교사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미비할 때 교원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기에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올해 한국의 공무원 임금상승률은 1.7%이다. 물가상승률은 5.1%로 임금상승률을 훨씬 웃돈다. 사실상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지금의 임금상승률은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올해 3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주요교원정책에 대한 청년교사 인식조사’에 응답한 교직 경력 10년 이하 교사 84.1%가 ‘실질임금 감소’를 가장 심각한 교원정책으로 꼽기도 했다. 최근 1년간 퇴직한 경력 5년 미만 교원 수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점을 함께 생각할 때, 저연차 교사에게는 실질임금 삭감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먼저 교사 부족 문제를 겪어왔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이어진 교원 수급 문제가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규 교사의 25%가 5년 내에 학교를 떠난다고 보고되며, 이에 대학생 인턴을 견습 교사로 채용하여 문제를 임시적으로 해결하는 등의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무자격이기 때문에 교육의 질 측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교사의 연봉을 최소 $60,000(약 7,947만원)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법안을 도입하였다. 즉 교사의 연봉을 보장함으로써 현직 교사가 교직에 머물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다.

 

  정리하건대 교사의 실질 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교사의 생존권 보장과 교원 수급, 이에 따른 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노력이다. 5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은희 의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2-2023) 퇴직한 근속 연수 5년 미만의 전국 퇴직 교원은 589명이다. 이는 전년(2021-2022)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4월 조합원 1만 13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중 87%가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응답했음을 밝혔다. 원인은 빈번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및 악성 민원, 낮은 임금 수준,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보고되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성만큼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나는 교육이 사회 재생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아이들의 안전과 성장을 위해 반드시 안정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일종의 외주화된 돌봄 기관이다. 학교가 무너지면 학생들은 어디로 가나. 돌보아야 할 존재가 있는 곳에는 돌보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교사가 없다면 학생들은 왜 학교에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은 교사에게 요구되는 헌신, 책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지탱되어 왔다. 그 결과는 위에서 논의한 낮은 임금과,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교원 인권 침해 현황으로 돌아오고 있다. 교사는 언제까지 직업적 소명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을 감수할 것인가? 언제까지 단체 행동권이나 정치적 목소리가 제한되는, 반쪽짜리 권리 주체로서 의무만을 감수할 것인가? 생활 물가가 가시적으로 - 살인적으로 - 상승하는 이 사회에서, 교사 인권이 자꾸만 문제가 되는 이 상황에서, 과연 언제까지 교사는 학교를 지킬 수 있을까. 끝끝내 교사가 학교를 떠난다면, 학교 현장을 지키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교육적 주체는 누가 될 것인가.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내가 교생 기간에 만난 선생님은, 생후 100일이 된 신생아의 아버지였다. 그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학생들의 수행평가에 코멘트를 달고, 교육과정부장으로서 부서를 진두지휘하고, 하루에도 네다섯시간씩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학교의 도서관 증축 사업을 위해 연수를 들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수의 교사의 비난에 직면하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끌고 와 ‘체인지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창업 특강을 기획하고, 행복 특강을 기획했다. 그러면서 소진되고 있었다. 아내와, 아기에 소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괴로워했다.

 

  나는 선생님을 보며 자꾸만 답답해졌다. “나 하나일 때와 달리, 아기가 생기니까 월급이 너무 적어서..”라고 고민하는 선생님을 보며 속이 상했다.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학교에 모조리 달린 작은 동네에서, 학생들에게 최대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저 사람의 가치가 고작 300만원이 안 되는가. 그제껏 교사를 꿈꾸며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을 보며 처음으로, 금액이 암시하는 교사의 가치, 그것이 당사자에게 주는 허탈함에 대해 생각했다.

 

  정부가 공무원 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수가 100만명을 웃돌기 때문에 쉽사리 예산을 추경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번 정부는 “건전재정”을 내세우며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긴축의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경중을 판단하고 불필요한 부분에서 예산을 감액할 것인가? 공교육의 현장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누수와 침식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곳을 보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서는 교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교사는 교육 재생산의 주도자이기 때문이다. 지원의 방법으로는 임금 개편이나 다른 제도적 지원이 있을 수 있다(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동학대법 개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교육 실천의 주체이며 돌봄을 수행하는 주체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의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가치관을 제시하며, 학생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집단의 생활 지도, 진로 상담, 교우관계 조정 또한 모두 지원한다. 가정과 사교육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육’의 영역이, 공교육에, 학교라는 실제적 현장이 제공하는 교육과정에 있다. 교사가 지속가능한 삶을 이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외친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교원의 실질 임금을 보장하라. 젊은 교원들이 학교를 지킬 수 있게끔 그들의 삶을 보호하라.

 

정민

0.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더듬거리는 내 대답을 잠깐 듣고는, 준비했다는 듯이 자기가 생각하는 멘토링의 의미를 유창하게 설명해나갔다. 나는 풀려버린 생각의 실들을 다시 모아보려 애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머리 속엔 여전히…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런 순간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해 오던 것들이 갑자기 너무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순간. 가장 혼란스러운 그 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렬하게 남는다. 내게는 올해 초, 멘토링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다가 저 질문을 받았던 순간이 그랬다.

 

  당시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동아리에서 부장을 맡고 있었다.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위해 작년에 처음 모였던 우리 동아리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제로 잡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초기 부원 중 한 명이 학교 밖 청소년 출신이었고, 그가 들려준 문제 상황이 꽤 구체적이고 사회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 공부하며,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학생 단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멘토링이라는 형식은 그저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뿐이다.

 

  그렇게 작년에 한 번의 시범 프로그램을 그럭저럭 잘 마쳤고, 올해부터는 부장을 맡게 됐다. 여름에 있을 또 한 번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지혜를 구하러 다녔는데, 그러다 한 멘토링 기관의 대표로부터 저 질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난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찾아보니 멘토링이라는 말은 교육이라는 말과 처지가 비슷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학교에서, 복지기관에서, 각종 재단에서, …… 문득 내가 지금까지 구상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이 미심쩍어졌다. 아무래도 저 물음에 나름대로 답하지 않고는 어떤 멘토링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이런 문제다. 어떤 사람이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서 스쿼트를 할 때 팔을 과하게 휘적거린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자세로 할 때보다 오히려 안 좋은 효과가 나고 말 것이다.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 팔굽혀펴기 같은 다른 운동을 하고, 스쿼트를 할 때는 적절한 자세로 하체 근육에 집중하는 게 좋다. 멘토링도 마찬가지다. 멘토링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멘토링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때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멘토링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반 년간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고, 그것을 토대로 직접 1달에 걸친 프로그램을 기획해 본 경험을 재구성한 결과다. 썩 만족스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모든 일에서는 배울 게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는 글이다.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실천과 고민에 대한 기록들이 불완전하게 뒤섞인 이 글의 형식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 글은 말미에 제시할 주장에 대한 탄탄한 논증도, 지난 경험에 대한 섬세한 재현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이 글은 이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 그러니까 나의 봄과 여름을 관통했던 멘토링이라는 아리송한 경험과, 그 속에서 피어난 어렴풋한 인식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의 시작은 올해 3월로 거슬러올라간다.

 

1. 멘토링 기관 스터디

 

  3~4월, 나는 팀원들과 역할을 나눠 다양한 멘토링 기관을 찾아보고 인터뷰하러 다녔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공부하고 기획한 멘토링을 간단히 정의하고 넘어가야겠다. 앞서 말했듯 멘토링의 범위는 매우 넓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춘 멘토링 기관은 (1) 청소년을 멘티로 삼고, 외부에서 멘토를 모집하여 (2) 특정한 결과의 달성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참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3) 멘토링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기관들이었다.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기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들른 곳은 ‘러빙핸즈‘와 ‘점프’였다.

 

1-1. 러빙핸즈 멘토링

  러빙핸즈는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의 아동, 청소년 멘티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장기간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박현홍 대표에 따르면 주로 초등학생 나이 때 멘토링이 시작된다고 하니, 평균 7~8년 동안 멘토링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처럼 워낙 긴 시간을 관통하는 만큼 멘토링에 별도의 주제나 목표, 정해진 활동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유일한 목표라면 “친해지는 것”뿐이다. 러빙핸즈에서 제공하는 멘토양성과정을 수료한 성인이라면 자격 요건 없이 멘토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두 번 만남을 기본으로 한다.

 

  러빙핸즈에서 진행하는 멘토링의 방향성은 기관의 성격과 직원들의 경력을 고려할 때 분명 교육보다 복지를 향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박현홍 대표는 “아동학대/성폭력 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정서적 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멘토링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러빙핸즈 멘토링의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멘티에게 ‘어른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그는 멘토라는 말의 어원을 들려주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며 자신의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맡겼던 친구 이름이 ‘멘토’에요.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10년 간 친구나 선생,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을 돌봐줬죠. 여기에서 멘토링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따라서 그 어원에서부터, 아이가 성장하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 멘토링의 의미였던 것이죠."

 

  그는 멘토양성과정에서 예비 멘토들에게 멘티를 앞장서 이끌며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멘티가 걷는 길에 함께 해줄 것을 가장 강조한다고 했다.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며 곁에 남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든든한 어른 친구가 되어 줄 것, 관심을 갖고 옆에 있어줄 것을 강조하는 러빙핸즈 멘토링의 특징은 아마 대상이 되는 멘티들이 소외된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 사회복지 단체라는 점에서 오는 듯했다.

 

1-2. 점프 멘토링

점프는 “누구나 차별 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리며 성장하는 사회”를 미션으로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점프 멘토링의 특징은 ‘삼각멘토링 모델’에 있다. 청소년 멘티와 성인 멘토의 이자관계만 존재하는 대부분의 멘토링 모델과 달리, 점프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인 ‘사회인 멘토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학생 멘토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진로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대학생들의 점프 멘토 활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롤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멘토링 기간은 기본적으로 1년이다.

 

  점프의 이의현 대표는 “미국에서 취업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이민자, 소수자의 권리에 관심이 커져 대학원에서 관련 공부를 했고, 그때 고안했던 멘토링 모델을 한국에서 이주/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에게 적용했던 것이 점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비행청소년이나 발달장애 청소년 같은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다. 한편 점프가 멘토링 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수요자 중심주의다.

 

"우리나라는 많은 영역이 공급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할 때 답인 것을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점프에서는 협력하는 기관의 수요를 최대한 충족하려고 해요. 우리가 하는 건 대학생 멘토를 선발해서 보내주고, 매니저들을 통해서 관리하는 정도죠. 멘토링의 내용은 청소년들을 가장 잘 아는 기관에서 온전히 결정해요."

 

  협력 기관이 원하는 프로그램은 주로 학습 지원이다. 그러나 이의현 대표는 학습 멘토링의 목표가 “공부를 실질적으로 잘하게 되는 것보다도, 누군가의 응원과 동기부여를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점프의 멘토링 기간이 길지 않아서 멘티들이 곧바로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면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 쉬운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의 관심과 지지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은 학업을 넘어 청소년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점프 멘토의 핵심 역할은 멘티가 배움의 기회를 제대로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면서 동기부여와 성취 경험을 주는 데 있었다.

 

2.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다

 

2-1. 멘토링에 대한 이해와 고민

  이렇게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멘토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 멘토링의 핵심은 멘토라는 역할의 정체성에 있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일, 즉 넓은 의미의 교육에 관련된 다양한 역할들 중에서 ‘멘토’라는 개념은 ‘옆에서 함께하며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특히 부각한다. 이 점에서 멘토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행위가 강조되는 교사나 강사, 전인적인 성숙함에 대한 존경이 담긴 선생, 특정한 방향이나 단계를 제시하는 롤모델 등의 이웃 개념들과 달라지고, 바로 여기에서 멘토링의 특징이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멘토링의 목표가 “어른 친구”가 되어주는 데 있다는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의 표현은 적절한 비유이다. 따라서 우리의 프로그램 역시 학교 밖 청소년 멘티가 성장하는 과정에 “어른 친구”, 또는 형(오빠)이나 언니(누나)처럼 함께하며 멘티를 돌보고 살피는 활동이어야 했다. 우리는 멘토로서 그 과정에서 동기를 북돋아주고, 어려움을 덜어주며 한 발짝 더 나아간 멘티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하며 5월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인터뷰이들의 선택에 내재한 쟁점과 고민들을 시행착오 없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러빙핸즈나 점프는 왜 이렇게 했을까, 그래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단념해야 했을까. 이런 물음들과 함께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여러 고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프로그램 기간과 일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활동 기간은 프로그램의 형식을 결정하고, 따라서 내용과 정체성을 조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에 따라 멘토-멘티 관계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또는 자주 멘토링을 진행하면 깊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참가자의 부담이 크고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당장 각자의 고민으로도 어깨가 무거운 대학생들이 언제까지나 청소년에게 멘토가 되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반면 기간이 너무 짧거나 활동의 밀도가 낮으면 멘티를 세심히 살필 만큼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동기부여의 관점에서도 긴 호흡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우리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멘토와 멘티의 사정만큼이나 해당 기관의 운영 일정도 고려해야 했다. 이래저래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해 준비 과정에서 갑갑함을 많이 느꼈다.

 

  프로그램의 주제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물음표가 시원스레 해소되지 못했다. 동아리 내에서는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나름의 합의가 있었지만, 협력 기관의 수요는 그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기관 측에서는 “서울대 멘토”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함을 살리길 원했고, 검정고시도 얼마 남지 않았던 만큼 학습을 위한 동기부여와 정서적 지지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바랐다. 반면 우리는 학습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습관 형성을 통해 성취 경험을 만들고, 자기 이해와 진로 탐색, 그리고 사교성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간 나름대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며 발견한 주제들이었다. 따라서 기획자로서 우리의 비전을 관철하고 싶은 마음과, 서비스 제공자로서 기관의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졌다. 점프는 수요자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했지만, 프로그램 운영을 기관에 일임하고 멘토 관리만 하는 점프와 달리 우리는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만큼 우리가 지향하려는 가치를 쉽게 단념하기는 어려웠다.

 

2-2. 기획에서 실행까지

  프로그램 시작을 앞둔 6월, 고민 끝에 활동 기간과 주제, 구체적인 일정을 결정했다. 활동 기간은 7월 한 달로 정해졌다. 8월 중순에 검정고시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7월을 넘어서까지 프로그램을 이어가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6월 말에 방학이 시작하고, 8월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대학생 멘토들의 일정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대신 4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활동의 밀도를 높이기로 했다. 그에 따라 우리의 프로그램은 매주 멘토와의 일대일 만남으로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과, 2주에 한 번씩 총 두 번 모든 멘토링 팀들이 함께 모이는 ‘단체 활동’으로 구성됐다.

 

  한편 주제에 있어서는 청소년들 각자의 수요에 최대한 맞추고자 멘토와 멘티에게 큰 자율성을 부여했다. 학습, 정서, 일상생활 습관 형성, 진로 탐색 등 다양한 주제 영역들을 소개하되 멘토와 멘티가 첫 만남 때 직접 ‘개인 과업’을 설정하도록 한 것이다. 4주 간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에 따라 멘토가 계획하기로 했다. 이외에 단체 활동은 멘티들의 친교를 위한 것으로,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학교 밖 청소년의 상황을 고려해 기획했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또래들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는 ‘학생/청소년’들과 달리, 학교 밖 청소년들은 특별히 적극적이지 않는 이상 또래 관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사이도 학교를 나오고 일상 패턴이 달라지면서 소원해지곤 한다. 같은 지원센터를 다닌다 하더라도, 인사만 하는 사이일 뿐 개인적인 친교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멘토-멘티의 이자관계에만 주력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과 달리, 참가자 모두가 친해질 수 있도록 단체 활동을 준비한 것이다.

  협력 기관과는 기획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소통했다. 예산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7월에 예정된 기관의 주요 일정들은 무엇인지, 단체 활동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 다방면에서 의견을 나눴다. 소통 과정이 그리 원활하지는 못했다. 많은 경우 내 미숙함 탓이었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과 멘토링 기관에 대한 스터디를 거치면서 달라진 기획 의도와 프로그램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 실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멘티들은 협력 기관에서 우리의 기획안을 바탕으로 모집했고, 멘토진은 우리 동아리 내에서 꾸렸다. 동아리 부원들은 운영진으로만 활동하고 멘토는 외부에서 모집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기획이 예정보다 늦어지며 멘토 모집 시기를 놓쳤다. 멘토를 새로 모집한다면 교육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 자료를 마련하고 교육 일정을 잡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리 부원들이 멘토를 맡으면서 프로그램 중 내부 소통은 원활했지만, 그만큼 멘토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2-3. 아쉬움 속에서 멘토링을 새롭게 인식하다

  나는 운영팀장으로서 협력 기관 담당자와 소통하는 한편 멘토로도 참여했다. 둘 중 애로사항이 더 많았던 역할은 운영팀장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이런 역할을 맡는 것도 처음이라 멘토와 멘티, 그리고 기관 사이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여기에 날씨 등의 변수도 겹쳐 애초에 야외 활동 위주로 기획했던 단체 활동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급하게 준비한 대체 활동이 빈자리를 적당히 채우기는 했으나, 처음에 기대했던 효과에 못 미쳐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멘티들은 “단체 활동이 멘토 선생님과 둘이서, 또는 각자 알아서 하는 활동 위주였어서 다른 멘티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라는 피드백을 남겼다. 기획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잘 작동하기까지는 많은 에너지와 역량,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오래 맴돌았다.

 

  멘토 역할은 그보다 뿌듯함이 더 짙게 남았다. 내가 맡았던 멘티는 학교를 그만둔 지 1년이 약간 넘은,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후기 청소년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악기 연주와 수영 등 여러 취미도 즐기고 있었다. 8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내년에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막연하게 입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은 공부에 뜻이 없어 성실하게 공부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불완전하게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면 약간 주눅이 들었고, 웬만하면 검정고시 이야기는 기관 안에서만 하고 싶어 했다. 이런 모습들을 살피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자기 이해와 학습 상황 점검을 개인 과업으로 설정했다. 매주 한 번씩 만나 편하게 일상이나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부 계획을 세우고 간단한 과제를 정해서 점검하기도 했다. 늘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임했고, 내가 그에게 약간의 자극과 인상은 남겼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짧은 멘토링 기간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4주라는 시간은 함께 성장과 성취를 경험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특히 멘티가 몇 번의 실패 앞에서 쉽게 그만두려 할 때면 그와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에 생각보다 한계가 많다는 점도 때로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나의 꿈과 관심사, 그동안 걸어온 길은 멘티의 그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그런 경험의 차이를 메울 만큼 공부나 상담 등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도 못했고, 그 간극만큼 나의 부족한 경험과 역량에 한계를 느끼곤 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패와 아쉬움에 대한 성찰을 읊조리는 이유는 이를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의 현실적 문제들과 새로운 특징들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인 운영 상의 문제들은 차치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멘토로 참여하면서 발견한 멘토링의 특징과 가치를 논해보려 한다.

 

3.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 : 교육에서 멘토링의 위치는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며 이해한 멘토링의 핵심이 ‘살피고 보살피는 행위’였다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발견한 멘토링의 키워드는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앞서 개인적 경험에서 느꼈던 ‘비전문가로서의 아쉬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링이 갖는 특이한 위치를 드러낸다. 많은 경우 멘토링은 교육적 관점에서 ‘비전문가와의 관계 맺기’라 할 수 있다. 멘토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전문가도 아니며, 그 외의 어떤 영역에서도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멘티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성숙하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 그래서 멘티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멘토는 언제나 ‘아마추어 교육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멘토는 ‘애매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그는 부모나 친구처럼 완전히 사적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서 말한 아마추어적 특성으로 인해 완전히 공적 영역에 속한 전문가도 아니다. 멘토는 친근한 동네 형/언니 같으면서도 선생님 같고, 어른 같으면서도 친구 같은 존재다. 함께하는 활동이 대개 분명한 목표보다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치중해 있는 만큼 교육기관에서 만나는 교육자들보다는 친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석에서까지 아주 친근한 사이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는 멘토로 참여하며 이러한 특징들을 주로 약점으로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멘토링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면서, 이게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는 멘토링에 대한 앞선 이해와도 이어진다. 멘토링이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강조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교육과 복지/돌봄 사이에서 두 영역의 주변부를 맴돌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 복지/돌봄이 오늘날 서로 분화된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역사적 결과이며, 실제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활동은 두 영역의 무수한 교차와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옛 속담처럼, 또는 목욕법에서부터 교수법에까지 이르는 <에밀>의 시시콜콜한 조언들처럼. 따라서 멘토링의 애매한 정체성은 그것이 교육의 저변에서, 실패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균열의 지점들을 유연하게 채워주는 특급 도우미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멘토링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그것이 특유의 유연함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 환경을 더 매끈하고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산업의 확장과 기술의 발달, 평생교육 패러다임의 등장 등으로 일견 촘촘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가 점점 ’가르치고 배우다’로 축소되고 있기도 하다. 다변화되는 사교육 산업, 학습과학의 발전, 교수-학습 과정에 정밀하게 개입하는 각종 기술의 도입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전문화되고 분화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듯 보이는 우리 시대의 교육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앙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을 위한 돌봄의 부담을 모두 떠안고 있지만 보호도, 지원도 부족한 교사들의 모습에서, 또는 좋은 ‘인강’만 있으면 이제 어떤 교육도 필요하지 않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에서 나는 앙상해지는 교육의 징후를 본다. 학술적 개념으로서 ‘교육’은 정확하고 정밀해져야 하겠지만, 누군가의 긍정적인 변화를 돕고 이끈다는 넓은 실천적 의미에서 ‘교육‘은 모든 행위와 개입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멘토링은 누군가의 성장을 돌보고 살피는 행위로서 전문화되는 교육의 주변부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습 과정에서의 정서적 좌절이나, 교육 기관이나 프로그램에서 겪곤 하는 자질구레한 어려움들을 덜어줄 수 있다. 그런 도움을 통해 기존의 인간관계 연결망을 가로질러 새롭고 느슨한 연결의 선을 만드는 사회적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적당히 힘들고 지치는‘ 사람들이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선순환의 사이클, 그것이 내가 그리는 멘토링의 미래다.

 

갈수록 전문화되는 세계에서 멘토는 어디까지나 교육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충실히 전문화된 공적 영역도 아니고, 온전히 사적인 친밀성 영역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이파리

  “물리학 최저 선택자를 찍다!”

 

  “갈수록 심해지는 물리 기피현상”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물리학은 어려운 과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과목에서 물리학은 항상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아래 표[각주:1]는 2014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근 10년간의 과탐[각주:2] 응시자 수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통합형 수능의 이슈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교차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전체적인 과탐 선택자 수가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물리학을 선택하는 학생 수도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응시자 수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응시자 수가 15%도 되지 않으며, 가장 응시자 수가 많은 과목과는 20%나 차이가 난다.

 

  물리교육과 학부생인 필자는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물리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학문으로, 물리학에서는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 및 물체의 운동과 물질의 성질 및 변화, 에너지의 변화 등을 연구한다. 물리학은 우리 주변의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제일 먼저 체계화된 학문이다. 다시 말해,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보편지식을 추구한다.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다.

 

  “과학적 사고의 마지막 요소는,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겁니다. 특정지식은 개별 과학적 사실들을 말하는데 이들을 묶어서 보편지식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합니다. 보편지식을 간단하게 이론이라고 하지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나 계절이 돌아오고,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하나하나과 과학적 사실이고 특정지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보편적 체계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뉴턴의 ‘중력의 법칙’입니다.”

 

  물리학은 특정 지식이 아닌 보편지식 체계를 추구하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물리학을 배우면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력을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지식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반성할 수 있고, 지식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며, 단번에 바로 참이라고 믿지 않는 반증 가능성도 배울 수 있다.[각주:3] 그렇기에 학생들이 사고력을 넓히고 우리 주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필요하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학문의 토대가 되는 물리학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물리학은 왜 수험생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학문 자체의 성격에서 기피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으며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다. 또한, 수학적인 능력도 요구되다 보니 학생들이 금방 어렵다고 단정 짓게 된다.[각주:4] 다른 요인으로는 입시 및 상대평가가 있다. 수능이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다 보니, 선택자 수가 적고 잘하는 학생들만 모일 것이라 생각되는 물리학은 학생들이 피하게 되는 것이다.[각주:5]  점수를 잘 받아서 더 좋은 입시 결과를 낼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다 보니,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물리학을 배우지 않았던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물리학이 어렵다고 기피하다 보니, 기초과학 지식수준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대학 수업에서도 물리학 선행지식의 유무에 따라 학생 간에 격차가 생기고 있다.[각주:6]

 

  필자도 이러한 물리학 과목과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여러 문제들 중 학생들이 학문의 특징으로부터 벽을 느끼게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학생들은 수식으로 표현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외우지만 연습한 유형 외의 다른 문제들에는 이론을 쉽게 적용하지 못하곤 한다. 이렇게 과학적 사고력이 없이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다 보면 배운 이론을 적용해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더라도 결국 그 이론을 일상생활이나 자연현상에까지는 적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이 물리학 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은 이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면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VPython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추상적인 개념 및 이론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느껴 이 글에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1. VPython이란?![각주:7]

  VPython은 Visual Python의 줄임말로, python 언어로 작성된 코드를 3D 결과물로 보여주는 툴이다. 이는 David Scherer로부터 만들어졌다. 1988년 David Scherer가 카네기멜론 대학에 들어온 후, 그는 연구실에서 이전에 개발된 2D 그래픽 프로그래밍 환경을 더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의 봄과 여름에 David Andersen, Ruth Chabay, Ari Heitner, Ian Peters, Bruce Sherwood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이전의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더 사용이 쉬운 언어(파이썬)를 이용하고 물체를 3D로 렌더링[각주:8] 할 수 있는 VPython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2016년 이후로는 VPython 언어 자체보다는 이를 실행하는 Glowscript[각주:9]와 Jupyter 환경 개발에 집중하기로 개발자들이 선언한 상태이다. VPython은 처음에 카네기멜론 대학의 입문 물리학 과정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 미국의 다른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Python 언어와는 다르게 VPython은 한국 내 사용자가 적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리 시뮬레이션이나 교과융합과 관련하여 VPython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고, VPython은 확산이 된다면 교육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VPython으로 사용자는 박스, 실린더, 구 등의 물체를 만들 수 있고, 이것들의 위치, 길이, 색깔 등을 직접 조정할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박스 안에 있는 코드를 입력하면 그 아래에 보이는 것과 같은 실린더를 만들 수 있는데 pos는 실린더의 위치, axis는 축의 위치, radius는 반지름을 나타낸다. 3차원이기 때문에 코딩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벡터에 대한 개념도 익힐 수 있다. 이외에도 아래의 사진과 같이 이미지 파일을 불러와 상자의 겉면에 입힐 수도 있고 VPython에 내장되어 있는 질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간단한 작업들만으로도 학생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시 작품들은 글의 중간중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VPython에 대한 인터뷰

  서울고등학교의 송석리 정보 선생님께서는 2018년도부터 Vpython 사용을 시작하셨다. 이를 수업을 통해 여러 번 활용해보셨으며 학생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들도 Youtube(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계신다. 또한, 선생님께서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VPython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릴 수 있었다.

 

1) VPython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

  먼저 선생님께 VPython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을지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파이썬 기초 문법을 배운 다음에 간단한 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있어야 문제 해결 능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단순히 문법만 배워서는 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의 대안으로서 VPython을 생각해내셨다고 한다.

 

  Vpython에서는 우리가 이전에 ‘코딩’하면 바로 떠올리던 “hello world”와 같은 텍스트 결과 대신 박스와 같은 물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3D라는 것을 모르지만 마우스를 이용해 돌려보면 3D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이때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하셨다. 코딩이라는 것은 결국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학생들은 텍스트 프로그래밍보다는 VPython을 더 흥미로워한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효과 등도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VPython은 glowscript라는 웹으로 접속할 수 있어 핸드폰으로도 열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도 VPython이 시각화가 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느꼈다. 물리 과목에는 수식이 많이 나오는데 수식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식 암기만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이때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이렇게 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추가적으로 수식의 의미를 습득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수업 진도 후에 따라오는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서는 수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에 등가속도 운동 공식을 이용해 직접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감속하는 운동을 구현하면서 속도와 거리에 대한 공식을 계속 조정하며 코딩을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직접 공식을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본다면 왜 이 식이 해당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식은 이론적인 것이라서 보고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도 시뮬레이션과 연결 지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 교과에서는 이상적인 또는 이론적인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마찰력, 공기저항력 등의 변인을 통제하곤 하는데, 시뮬레이션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통제된 변인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감속하는 상황을 수식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그날의 날씨 상황에 따라서 실제로는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정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직접 자동차의 운동을 코딩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되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자동차가 멈추는 상황을 코딩하기 위해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자동차의 속도를 0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곧 그 학생은 어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정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서히 멈추도록 코딩을 하게 될 것이다.

 

  아래는 필자가 VPython을 이용해 만든 물리학I 내용 중 등가속도 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뮬레이션의 실행 결과[각주:10]이다.

왼쪽 사진은 시뮬레이션 시작 전의 모습으로 두 대의 자동차와 정지선을 볼 수 있다. 키보드에서 화살표 위쪽 방향키를 눌러 자동차가 운동을 시작하면 사용자는 자동차가 정지선을 넘지 않고 멈출 수 있게 스페이스 바를 눌러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오른쪽 사진에서처럼 자동차가 멈췄을 때 정지선을 넘지 않았다면 초록색, 넘었다면 빨간색으로 자동차의 색이 변한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자동차가 운동한 후 흐른 시간과 이동한 거리가 표시된다. 마지막에 각 자동차의 이동거리를 0.2초 간격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딩을 통해서는 학생들이 두 자동차의 초기 속도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거나, 두 자동차의 질량을 다르게 설정하며 초기 속도 및 질량에 따른 제동거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가 등속운동을 할 때, 또는 등가속도 운동할 때의 식을 스스로 작성하면서 시뮬레이션 결과가 예상한 바와 다르다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찾고 고민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이 스스로 수식을 작성해보면서 그 수식이 작용하는 모습까지 반복적으로 관찰한다면 학생은 어렵던 물리 이론을 조작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추상적이었던 내용도 좀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VPython은 물리 교과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 VPython의 활용 범위

  필자는 VPython이라는 도구를 알게 되고, 이를 교육저널 동아리 부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때, 필자는 이 도구가 수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들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부원들과 논의하다 보니, 이 도구를 수학과 과학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국어와 영어 같은 수리적이지 않은 과목에도 적용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정보 교과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기에 코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부원들도 있었다. 필자가 보여줬던 시뮬레이션에는 물리적 지식도 들어가 있었기에 부원들은 VPython이 코딩을 잘하거나 수학 또는 물리를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닐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VPython이 ‘특정 교과’에서 ‘특정 대상’으로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먼저 VPython이 적용될 수 있는 교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필자의 경우에는 VPython으로 영어 hangman 게임[각주:11]도 만들어보았기에 꼭 과학이나 수학 교과가 아니어도 모든 교과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시뮬레이션으로서 활용하기에는 수학과 과학 두 과목에서만 접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미술 교과에서도 할 수 있지만, 미술에는 더 자유로운 도구들이 많으니 굳이 VPython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만든 영어 hangman 게임도 프로그램을 이용해 hangman 게임을 자동화시킨 것일 뿐 그 교과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필자는 이번 기회로 각 교과에 잘 맞는 도구가 있을 텐데 그 도구가 꼭 모든 분야에 다 활용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VPython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 수학, 과학 교과에서 VPython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학생들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게임이나 원하는 디자인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수학과 과학 지식을 접목하면서 물체의 움직임과 과학적 현상도 표현할 수 있다.

  위 사진은 필자가 만든 hangman 게임을 캡처한 것이다. 슬라이더를 이용해 가시의 크기와 펜의 색깔을 바꿀 수 있고 사용자들은 사람이 다 그려지기 전에 영어 단어를 맞추면 된다. 단어가 무작위로 나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복해서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구성한 게임을 친구들과 해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VPython을 사용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VPython은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현재는 모든 중고등학교에 정보 선생님들을 한 명씩 배치하도록 되어 있고,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중학교에서 정보 교과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3~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정보 수업을 접하지 못해서 코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적어진 것이다. 문제는 학교 선생님께서 VPython을 가르치시는지의 여부인데,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확산이 잘 이루어진다면 VPython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VPython은 파이썬을 배우는 방법 중에 가장 문이과[각주:12]에 관련 없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선생님께서는 코딩에 관심이 없고 코딩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데, 지금까지 수업을 했을 때 테니스부나 야구부와 같은 운동부 학생들도 흥미롭게 참여하는 것을 보면 VPython이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VPython을 이용해 집을 짓는 건 테니스부 학생들도 할 수 있고, 야구부 학생들도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들며 야구장을 구성해볼 수 있다. 이러한 VPython의 시각적인 코딩은 텍스트 코딩보다 훨씬 재밌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코딩에 즐겁게 입문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필자는 위에서 보여준 고2 학생들을 위한 물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코딩하면서, 물리학1 교과에 나오는 수식을 이용하다 보니 소수의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었다. 그래서 부원들이 우려했던 대로 VPython은 정말 수학, 과학을 잘하고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적합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학, 과학에 지식이 없더라도 스스로 산출물을 만들어보는 것에 의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유튜브[각주:13]에 올라와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VPython 산출물 영상의 캡처 화면이다.

  왼쪽은 이중슬릿 간섭을, 오른쪽은 당구를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지금 가져온 것들은 과학고 학생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이 당구대와 당구공의 형태를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것처럼 수학, 과학적 지식이 깊지 않은 다른 학생들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VPython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것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논해 보았다. 또한, 작품 예시들을 통해 VPython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VPython은 확실히 흥미로운 도구이고, 단순 텍스트 코딩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내용도 더욱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단순한 블록코딩을 넘어 직접 프로그래밍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코딩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 모두 흥미를 가지고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논외로 이야기하자면, 원래 필자는 이번 글에 중학교 급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과학 프로그램의 예시도 직접 만들어 보여주고자 하였다. 필자는 롤러코스터에서의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중학교에서는 위치에너지가 ‘(질량) x (중력가속도) x (높이)’이고, 운동에너지가 ‘0.5 x (질량) x (속도의 제곱)’이라는 것과 함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합한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필자는 열차가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지나가는 동안의 열차의 높이 및 속도를 표현해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됨을 보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높이 자체는 y좌표를 측정해서 구하면 되지만, 롤러코스터가 물리 법칙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면 중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사실로부터 거꾸로 속도를 맞출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보존법칙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중등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중등에서는 부력이 질량에 비례하고 부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VPython으로 물과 나무 조각을 표현하고, 질량과 부피에 관한 식을 세워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비례와 반비례 관계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중학교 과정에서는 부력의 공식 자체를 배우지 않지만,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이 공식을 체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 조각의 질량과 부피를 조정하다가 부력에 영향이 있는 다른 요인을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VPython에 관심이 생긴 분들은 간단한 결과물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경험했을 때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VPython을 조금 더 익혀서 물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 추상적인 과학을 이해하고 싶은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나무

  1.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결과 보도자료 참고 [본문으로]
  2. 과학탐구의 줄임말 [본문으로]
  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1938070?sid=105 [본문으로]
  4. 강지선(2015). 물리학습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메타분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본문으로]
  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030300035 [본문으로]
  6.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511/119254947/1 [본문으로]
  7. https://en.m.wikipedia.org/wiki/VPython [본문으로]
  8.  2차원의 화상에 광원, 위치, 색상 등의 외부 정보를 고려하여 사실감을 불어넣어 3차원 화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1713&cid=40942&categoryle=32828) [본문으로]
  9.  Glowscript 웹사이트(https://glowscript.org/) 통해 VPython 언어를 작성하고 실행해볼 수 있다. [본문으로]
  10.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termproject 위의 링크에 접속하면 직접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볼 수 있고, VPython 코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1.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hangman 에서 hangman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본문으로]
  12.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을 시행하였으나, 아직 고교에서는 선택과목에 따라 학생들이 문과 또는 이과의 성향을 보이게 되므로 ‘문이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13. https://www.youtube.com/watch?v=HDwkwipLS2g&t=329s (이중 슬릿 모의실험) https://www.youtube.com/watch?v=_T8K0CBAZBo (4구 당구) 각 작품의 유튜브 영상 링크이다. 링크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적용한 과학 이론과 학생들이 겪은 시행 착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Q1: 영화 전반에 대한 생각 나누기

당근주스: 영화 보고 어땠는지 얘기해 보자. 인상 깊었던 장면도 좋고 아쉬운 점도 얘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라는 대사가 진짜 너무 무서웠는데…, 일단 그거는 누구나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넘어가고, 나는 마지막에 교수 입은 안 나오고 눈만 비추는 장면이 어떤 표정일지 모르니까 더 무서운 거야. 진짜 웃었을지 안 웃었을지도 모르는 거고. 아쉬운 점은 이건 스릴러야. 분류가 너무 잘못된 것 같아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영화는 되게 잘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도 애초에 그래서 추천했던 거지? 잘 만든 영화라고 해서.

정민: 맞아. 되게 뛰어난 영화라고 영화광 친구가 얘기해 줬는데 약간 흥미로운 지적이야.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 되게 대대적인 오독이 있었대. 누가 봐도 잘못된 스승을 비판적으로 연출된 영화잖아. 근데 한국에서만큼은 이렇게 몰아붙이면서까지 학생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스승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게 컸나 봐. 그래서 왜 그게 한국적인 현상이 되었는지도 흥미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 분위기나 교육관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겠어.

당근주스: 나도 우리나라에서 참스승으로만 해석되는 건 소름 끼친다고 생각해. 예체능 하는 친구들은 공감을 많이 한대. 이런 식으로 몰아 붙여지면서 교육받는 게 일상이다 보니까. 보다가 막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대.

우리: 나는 엄청 충격받았어. 원래 이 영화를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지는 않고 그냥 그 후기만 좀 몇 개를 알고 있었거든. 이런 영화가 진짜 조금 폭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유도하는 참스승의 모습이 보이고 그 학생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이게 맞나 싶네. 이걸 어떻게 참스승이라고 하지? 이런 교육을 비판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어. 개인적으로 나는 피나는 장면이 보기 힘들었어. 잔인한 거 잘 보는 편인데도 말이야. 이렇게까지 피를 흘려서까지도 노력을 하라는 것 같아서 좀 그랬어.

당근주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자극제를 주는 영화라고 하더라. 좀 그래.

우리: 그러니까. 그니까 폭력도 폭력인데 말도 엄청 심하게 하잖아.

나무: 근데 난 처음에는 되게 체벌이랑 관련됐나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그때는 체벌이 어쨌든 허용되던 시기기도 하고, 근데 영화에서는 막상 그 사람이 직접 때리는 장면은 거의 없단 말이야. 근데 체벌보다 더 체벌 같았어. 그리고 그 드럼을 치면서 이렇게 피가 날 수 있다는 거를 알았어.

당근주스: 실제 배우가 피를 흘리면서까지 친 거래. 좀 잔인했던 것 같아. 상상되는 고통이잖아. 막 총 맞는 고통은 잘 모르니까 공감이 안 되잖아. 근데 살갗이 쓸리는 건 사실 얼마나 쓰라릴지도 공감이 되니까.

 

Q2: 앤드류는 엔딩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한계를 깨고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해낸 것일까요?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당근주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마지막 장면이 플래처 교수의 목표대로 앤드류가 한계를 깨고 나온 건지, 아니면 그냥 플래처 교수의 스타일대로 완벽히 연주한 것뿐인지도 얘기해 볼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게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얘기해볼까? 나는 주인공이 한계를 깼다기보다, 그냥 교수 스타일에 맞게 완벽히 연주하는 법만 들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한계를 깼다 하더라도 특정 곡에 한해서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난 이게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나무: 초반에는 앤드류만의 기준이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정말 그 상황에 맞게 잘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플랜처 교수가 중간에 그런 말을 하거든. ‘나는 너희를 찰리 파커처럼 성장하게 할 거다’라고 하면서 여태까지 본인이 가르친 사람들 중에서는 찰리 파커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잖아. 하지만 본인은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고 가서 잘하게 해주는 거라고 한단 말이야. 결국엔 학생들을 믿지도 않으면서 극한으로 몰고 가기만 한 거지.

당근주스: 그것도 자극제로서 말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무: 자극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가르치는 애들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우리: 나는 이거 드럼 칠 때, 조명이 꺼지면 곡을 끝내야 하는데, 앤드류가 조명이 꺼지고도 계속 치잖아. 그때는 좀 약간 한계를 이제 넘어서, 드디어 자기만의 드럼을 연주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에 교수가 자기가 신호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러잖아. 그냥 이런 게 계속 반복이야. 어차피 다 교수가 주도를 하잖아. 이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닌 것 같아.

당근주스: 그러니까 결말도 그렇게 해석된다는 게 오히려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게 자기 스스로 깨고 나온다기보다 오히려 교수 스타일대로 다시 회귀해서 그 사람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는 거. 근데 내가 보기에 앤드류도 진짜 보통이 아닌 것 같긴 했어. 왜냐면 대들 수 있는 사람은 걔 하나였어.

나무: 진짜. 다른 친구들은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고 오케스트라 외에도 다른 곳에 소속이 되어 있거나 하는데, 앤드류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서 친구도 안 사귀고 여자친구도 찼잖아. 그냥 진짜 거기에 미쳐있는 거지. 그래서 그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그걸 파악할 수가 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

당근주스: 근데 그만뒀잖아. 그래도 돌아간 게…아이러니하지. 참, 교수가 앤드류를 정말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어. 이 공연을 정말 잘만하면 러브콜이 너한테 쏟아질 거야. 그래놓고 다른 곡을 갑자기 주는 게 어딨어.

우리: 그래 맞아. 그래놓고 ‘(나를 고발한 게) 너지?’라고 물어봤던 게, 그전까지는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학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가르치려고 했던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그 장면 보고 이거는 그냥 학생으로도 생각 안 하고 복수하려고 했던 것 같았어.

 

Q3: 몰입이 정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상태일까?

정민: 나 근데 다른 질문이 있어. 앤드류 정도는 아니어도 어떤 일에만 몰두해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내는 게 교육적으로 좋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더라도 취미(또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즐기면서 하는 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문제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 후자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직업적인 성취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는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럼 이제 이걸 교육자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는 어떤 것을 학생들한테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더라고.

당근주스: 재능을 키워주는 것만이 교사의 목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당히 삶을 잘 영위하는지,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해야 하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길러주는 사람이어야 해. 그리고 사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보통은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행복한 게 우선이니까.

나무: 근데 난 전자가 진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해. 왜냐면 자기 분야에 몰두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거든. 연구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하면서 깨달음도 많이 받을 수 있잖아?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 주인공이 새로운 연구에 완전히 빠져있는데, 외부와의 소통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그래서 괴물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보니까 자기가 잘못된 걸 한 걸 깨닫게 돼.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다 막고서는 한 곳에만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앤드류가 그렇게까지 몰입하는 건 플래처 교수가 만든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 ‘업스윙잉’인가? 그것만 연습시키잖아. 병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같아.

 

Q4: 플래처 교수가 최악이라고 평했던 ‘Good Job.’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플래처 교수는 이 말 때문에 학생들이 안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과연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가 중간에 ‘Good job.’이라는 말을 되게 싫어하잖아. 최악이라고. 그 말 때문에 학생들이 나빠진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거든.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칭찬이 그럴까? 과연 그 말이 정말 독이 될까?

정민: 학생들한테 칭찬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성취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가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되게 결과주의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니까. 근데 사실은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잘했는데 잘했다고 얘기 안 해주면 좀 서운하잖아? 그래서 뭔가 그런 과정적인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게 더 중요한가 싶다가도 결과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 이거는 그냥 마구 칭찬을 해주면 그럼 다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어떨 때 학생들에게 칭찬해야 하고, 어느 순간에 칭찬을 멈춰야 하는지 의문이야.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칭찬은 외부의 자극 동기 유인이잖아. 교육학에서는 내재적 요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니까, 칭찬을 아주 많이 하는 건 그렇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당근주스: 그리고 한국어 번역에는 뭐라고 우리 말 번역에는 뭐라고 말하냐면 이만하면 됐어라고. 그냥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Good job.’의 이미지로 생각해 보면 난 나쁘지 않다고 어느 정도 필요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근데 다만 이제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게 되면 그건 진짜 문제가 있지. 과정에 대해서 평가를 못 받으면 이제 애들은 결과를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구나. 이런 생각을 좀 할 수도 있고.

우리: 근데 이 과정에 대한 칭찬도 좀 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 단원평가 과목별로 세 번을 봐놓고 그 추이를 봐서 상을 줬거든. 그때 어떤 방식을 썼냐면, 결과보다는 과정, 그러니까 실제로 점수가 오른 애들한테만 준 거야. 점수 낮게 받은 애들이라도 50점에서 70점으로 오른 친구들을 칭찬해주는 거지. 근데 100점, 100점, 100점 맞으면 상을 못 받았어. 그러면 그건 못한 건가? 이런 생각을 그때 했어. 그래서 과정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

정민: 사실 이게 과정 평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정량적인 산출 결과만을 보고 추이를 본 거니까 정말 과정 평가일까 싶네. 이번에 교생 가서 본 게 애들이 사실상 좋아하는 거는 국어 학습지에서 시집을 골라서 필사한 뒤에 이게 왜 좋았는지 내 경험이랑 연관 지어서 써보는 걸 시켰어. 그래서 그 학습지를 선생님이 들고 가셔서 하나하나 다 좋은 글에 밑줄 쳐주고, 이게 왜 좋은지를 다 피드백을 해서 애들한테 들려주는 거야. 그게 정말로 피드백인 거니까 이게 과정 평가의 원형에 제일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고…, 애들도 거기서 단순히 기분 좋아, 이걸 넘어서 동기 부여를 받더라.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시 모임을 만들어볼까, 이런 논의가 오가더라고. 생각보다 그런 정확한 기술과 정성 평가가 중요성이 크다고 느꼈어. 근데 문제는 국어 선생님이 그거 한다고 맨날 새벽 2시에 자서 다시 5시에 일어나서 내일 수업 준비하고 그럤다고 하는 거야. 근데 그분이 지금 3개월 된 신생아 아빠시거든. 게다가 연구부장이셔.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 받으시더라. 그래서 그분을 보면 교직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어. 되게 사명감으로 하시던 분이셨는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힘들어지더라고. 왜냐하면 교사 임금도 호봉제라 그닥 높지도 않으니까.

나무: 그렇지. 그럼 이제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아까 ‘이만하면 됐어’라는 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더 했어야 되는데, 하고 후회할 때가 있고 이 정도 했으면 진짜 잘했다고 할 때가 있잖아.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됐다는 정도도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도 거기서 더 나아가는 애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너무 달리는 애한테는 그런 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근주스: 플래처 교수는 (이만하면 됐다고) 그렇게 말해도 달리는 애를 찾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말해줘도 알아서 자꾸 도전하는 학생 말야. 근데 보통은 그렇지 않으니까 일부러 더 열 받으라고 가스라이팅하는 걸지도.

정민: 난 궁금했던 게 마지막에 입이 안 나오잖아. 나는 여기서 ‘Good job.’이라고 말해준 건가 싶었어. 자기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성과를 앤드류가 마지막에 보여준 거잖아. 그래서 그게 ‘Good job.’인 거라고 생각해보니까, 이게 진짜 앤드류가 뭔가를 뛰어넘어서 희열에 젖은 모습을 칭찬한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따지면 둘 다 뭔가 하나씩 깬 거잖아.

당근주스: 짱이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해석을 해 주니까 참 좋은 것 같아.

 

Q5: 학생들의 잠재력은 언제 벽을 뚫고 나올까요? 다그치는 것 외에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근주스: 넘어가서, 학생들의 잠재력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영화에서는 영화 제목처럼 채찍질, 그러니까 다그침으로 잠재력을 끌어내려고 시도를 하는 거잖아. 근데 그거 말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정민: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게 되게 좋은 말이잖아. 근데 이 말이 어떤 느낌도 드냐면…, 내 안에는 아직 발아하지 못한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이 진짜 나고 싹을 틔워야만 나는 진짜 멋있는 내가 된다는 것처럼 들려서 내가 저런 말을 안 좋아해. 사람들은 과정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렸을 때보다 훨씬 커 있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는 거거든. 이거야말로 거북하지 않은 방식으로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 같아. 그렇지만 교육인의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면 잠재력 실현을 돕는 일이 너무 고민이 돼. 어떻게 해줘야 학생들이 언제 나름의 성장을 이루지 이런 생각도 들어. 그래서 두 지점이 충돌해. 어떻게 생각해?

나무: 잠재력은 끌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 진짜 뭔가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성장하는 건 있는 것 같거든. 나도 요즘에 느끼는 게, 예전에는 글로만 접했던 것에 지금 더 흥미를 느낀다든가,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그래. 확실히 배웠을 당시에는 그 정도로 생각을 못 했어. 근데 경험이 쌓이면서 가능하게 된 건가 싶어. 하여튼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교육현장에 적용해 보면…, 분명 잘할 수 있는 학생인데 방법을 몰라서 갈피를 못 잡을 때 교사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정민: 그래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게 생각보다 되게 중요한 것 같아. 난 가끔씩 내가 서울대생이라는 걸 느끼는 때가 있거든. 어떤 때냐면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생 연구 지원이 너무 잘 돼 있어.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 우리 학교가 국내에서 되게 연구를 선도하는 학교고 제일 위에 있다고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곳이니까 그걸 충실히 해내기 위한 노력인 셈이지. 근데 만약에 내가 약간 재정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적 자본도 그렇게 크지 않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학교에서 그런 지원을 진짜 안 해줄 것 같다는 걸 요새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느껴. 근데 그렇게 된다면, 아까 나무가 얘기했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한테 어떠한 것들이 쌓이는 경험이 되게 적을 것 같아. 교육의 차원에서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 준다거나 아니면 자본을 되게 성실하게 투입해 주는 게 되게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

당근주스: 여기서 나아가서 이런 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발전 가능성이라든지 이런 인프라라든지 뭔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한번 해봐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교사나 교육자가 되어야 해. 그리고 교육자는 결정적으로 선구안이 있어야 해요. 애들이 무슨 능력을 갖고 있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잘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거. 그냥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그런 거지. 발아할 수 있는 능력이랑 적당한 환경이 만나면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원론적이고 좋은 얘기지. 근데 사실 두 개 다 갖춰지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

민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에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너희들이 다 각자 다른 꽃이니까 언젠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라는 거란 말이야. 그래서 뭐든 시기가 딱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느꼈어.

정민: 그래서 되게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

우리: 근데 잠재력을 끌어내는 걸 꼭 교사가 해야 할까, 생각하기는 했었거든. 선생님이 뭔가를 하라고 해도, 스스로를 제일 잘 아는 거는 다 학생들 본인일 테니까. 그러니까 뭘 잘하게 될지 모르니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상으로 뭔가 너는 이걸 잘할 것 같으니까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지도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물론 선구안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게 가능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선구안을 가진 능력을 가진 선생님들 그것도 진짜 많지 않고, 실질적으로 모든 학생들한테 그런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쉽지 않잖아.

당근주스: 그러면 플래처 선생이 여기서 다그치는 걸 택했고 실패한 걸까?

나무: 확실히 뭔가 이렇게 압박하고 하면 그 순간에 단기적으로 그냥 실력 향상이 되는 건 맞는 것 같아. 효과가 없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근데 나중에 가서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당근주스: 실력 향상은 되는데 정말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그 선생님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영화에 나오잖아.

실질적인 환경교육의 필요성

 

  과제를 위해 카페에서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은 적이 있다. 종이 빨대의 텁텁한 맛과 함께 커피를 들이마시며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관해 각종 수치와 감정적인 행동 촉구 문구들을 이용하여 설명했을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사실 기후 위기는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더불어 플라스틱 빨대 줄이기 운동은 환경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책을 통해 알게 된 나는 녹아내리고 있는 종이 빨대를 쳐다보며 책을 덮었다.

  왜 이런 걸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거지?

  학교에서 내가 받은 환경 교육을 생각해 보았다.

  교과서 보충설명란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환경에 관한 내용들, 재활용을 하고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는 피상적인 문구들, 아무도 듣지 않는 특별 활동 시간에 교실 TV에 틀어진 기후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억지로 10분 만에 겨우 반 장 써서 낸 감상문,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평가의 척도가 되는 환경 보호 그림 그리기 대회.

  요즈음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후 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매일같이 기후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어느 제품이나 ‘친환경’이 트렌드가 되고, 무엇보다도 기후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 없다시피 한 봄과 가을,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산사태 등, 정말로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즉, 누구나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후 위기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동정심을 느끼지만,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난 후에는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표면적인 학교 교육은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며 무엇이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를 끌어내지 못한다.

  문제 지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제 학교에서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해결을 위한 길잡이, 그리고 이를 위한 새로운 사고를 제시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보다 실효적인 환경교육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탄소중립 중점학교’에서 앞으로의 환경 교육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 탄소중립 중점학교란?

 

  지난 3월 14일, 정부는 3월 14일 ‘2023 탄소중립 중점학교’ 40개교를 선정 및 발표하였다. 기후 및 환경 위기에 대처하는 미래세대의 역량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2021년부터 6개의 관계부처가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지원 학교를 확대해 왔다. 현재 2023년도 지정 중점학교 40곳은 유치원 5, 초등학교 14, 중학교 10, 고등학교 10, 특수학교 1개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환경교육정보센터에 따르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교육부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기상청과 함께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환경교육의 선제적이고 모범적인 학교 모델을 구축하여 학교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와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탄소중립 실현

 

  먼저, 탄소중립이란 인간 활동에 따른 탄소량과 전 지구적 탄소량이 평형을 이뤄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제시된 개념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을 채택하여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고 최대한 1.5℃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 이상 온도 상승 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가 발생하지만, 1.5℃로 제한할 경우 그 위험이 대폭 감소한다. 1.5℃ 이내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최소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

 

  두 번째 키워드는 기후위기 및 환경생태 교육의 장으로서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우선 학생의 참여를 중요시한다. 학생 개개인과 환경동아리 등으로부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탄소중립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올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로 선정된 부천여자중학교(이하 부천여중)의 사례를 살펴보자. 부천여중은 전 교과를 대상으로 다양한 학생 참여형 환경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령 미술 시간 생태벽화 그리기, 과학 시간 나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 체육 시간 줍깅(*줍깅 :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활동 등 교과 활동뿐만 아니라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도 나무 심기 활동, 우유팩 수거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실천적 환경 활동을 한다. 부천여중의 목표는 탄소중립의 ‘일상화’로, 탄소 중립이 가지는 의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이에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탄소 중립을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을 넘어, 선생님들 역시 커피 가루를 모아 화분에 거름 및 퇴비로 활용하는 등 학교 구성원이 모두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탄소중립 실천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산자연중학교(이하 산자연중)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학생들이 자연과 상생해 나가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중 생태도감 프로젝트는 교실 속에 방울토마토, 커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을 직접 기르며 생태도감을 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실 안에 작은 숲을 만들어 우리와 상생하는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기후 위기가 얼마나 다가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탄소중립시계를 학교에 설치하여 학생들이 기후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자전거발전기로 전기를 직접 만들고, 하천을 살리는 em흙공을 만드는 등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자연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3) 전문분야 협업

 

  탄소중립중점학교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미래세대의 기후 및 환경위기 대응역량을 기르기 위해 6개 관계부처가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학교의 탄소중립 실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농식품부, 환경부, 해수부, 산림청, 기상청이 협력하여 탄소중립중점학교를 지원하는데,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마지막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개별 학교를 넘어 전국의 일반학교와 지역사회에도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학교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각 지역의 자연생태적 기반에 대한 체험 및 탐구를 통해 탄소중립 수업 자료 및 학교-지역 환경교육 협력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학교별로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사례 발표 및 공유하는 협의회 및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우수 모델을 일반 학교에까지 확산 및 보급하고자 한다.

  함현고등학교(이하 함현고)는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시행 중인 사례이다. 함현고는 탐구 시간에 환경 정책을 제안하는 수업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각자 생활 속 문제를 인식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데, 이것이 단순 수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들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환경교육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해당 수업에서 나온 정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실제로 학생들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하기도 한다. 또한,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인 신탄진중학교(이하 신탄진중)는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다양한 환경교육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신탄진중학교는 환경친화적이고 탄소중립적인 교육을 추구하는데, 이를 위해 각 교과목과 연계하여 학교 주변의 환경 관련 시설을 견학하고 추수 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교육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기상청 등의 공공기관의 인프라도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신탄진중은 교육적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기도 하는데, 교내에서 열린 탄소중립 중점·중심 신규학교 공개 주간 등을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 대상 전문가 특강 등 탄소중립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우려사항 및 개선 방향

 

  앞서 살펴본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시행 방식에 관해서 우려되는 부분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후위기, 환경생태 교육의 장

 

  먼저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여러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살펴보면, 탄소 중립의 ‘일상화’와 ‘체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령 교실 속 숲을 통해 자연에 친화적인 일상을 만들고, 직접 전기를 생산하거나 약차티백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등의 환경 체험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학생의 참여를 위주로 하는 교육은 환경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몸소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환경 교육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참여를 통해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문제를 온몸으로 느껴보도록 하려는 중점학교의 체험 위주 교육은 분명 지향해야 할 내용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미시적인 일상 속 경험만을 중점으로 하는 교육이 진정한 환경생태 교육의 장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학교는 학생들의 탄소 중립 생활의 일상화를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환경 문제에 대해서 볼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 교육을 제시해야 한다. 환경 문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매우 복잡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경 문제의 양태에 대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쟁점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이후 전문분야 협업에 관한 부분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것이다.

 

2) 전문분야 협업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보다 효과적인 환경 교육을 위해 정부 6개 관계부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령 환경부에서는 환경교구 및 우수환경도서를 대여해주고, 해수부에서는 해양환경 이용교실, 산림청에서는 숲교육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기관과의 협력 및 지원 내용이 적절한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체험 교실이나 도서 지원 등은 개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이보다는, 개개인의 학교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정부 측의 역할이다. 보다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앞서 언급했다. 이러한 교육은 개별 학교의 교사들에게 온전히 맡기기에는 매우 부담이 되는 일이며, 관련 주제에 관해 전문 교육을 받은 교사도 드물기 때문에 개별 학교에서 일상 속 체험 이상으로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정부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 전문가를 각 학교에 지원하거나,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또한, 기존 교사들에게도 보다 정확하고 실용적인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3)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학교를 넘어선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을 목표로 다양한 지역 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했던 함현고의 사례에서처럼,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서는 지방자지단체와의 실질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여기에 주체를 하나 더 추가하여, 각 지역의 대학들과 협업을 통한 중점학교, 지자체, 대학 세 가지의 협력 모델을 제안하는 바이다. 지역 대학을 협력의 주체로 포함한 이유는 대학이 가진 인적 자원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학이 제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환경 관련 분야의 교수진이 존재한다. 그들은 기존의 교사들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의 형태나, 교사들의 환경 교육 가이드라인 설정에 자문을 주는 형태로 활용 가능하다. 교수진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의 재학생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역시 존재한다. 가령 대학교의 환경 관련 동아리들은 중고등학교의 동아리에 비해 훨씬 활발하고 전문적으로 환경 운동을 주도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다. 중점 학교의 학생들은 대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자문을 받고, 대학 동아리와의 협력을 통해 환경 정책이나 캠페인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자원은 지자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지자체는 대학이라는 주체로 인해 보다 활성화된 중점학교와 사회와의 연결을 위해 공간 및 기회 마련, 그리고 재정 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는 중앙 정부보다 지역 특색에 맞는 구체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탄소 문화 확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주체의 협력 모델은 중점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보다 탄탄히 하고,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기존 목표였던 탄소 중립 실천 문화의 확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살펴보고, 기존 운영방식에 있어서 우려되는 점과 개선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아직 40여 곳 학교에서만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고, 시작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체계적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현재, 탄소중립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학교 운영이 유의미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기점으로 앞으로 한국의 환경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한국 환경교육 지향점

 

  환경교육의 최종목표는 결국 친환경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미래의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 관한 지식 전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유의미한 이유는 기존의 ‘수업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환경에 관련된 지식만을 표면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탄소 중립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학교의 형태와 교육과정 자체를 탄소 중립에 맞추어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그 자체로 복합적이고 불분명한 대상이기 때문에 교육 역시 한 가지 방식만으로 편협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환경이라는 대상을 복합적인 관점에서 다층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교 교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중점학교처럼 보다 다양하고 실천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직접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알긴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력감만을 기르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당근주스
  얼결에 말은 편집장을 1년이 넘게 하고 있게 되었네요. 마감 두 번 했더니 이렇게 시간이 갈 줄이야! 저번보다 이번에 더 성장한 편집장이 되고 싶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엔 더 능숙하게 교널 운영하고 싶어요. 이번에도 무사히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편집위원님들의 공이 큽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나무 부편집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교육저널 많이 사랑합니다!


#나무
  항상 교널은 부원들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에도 다정한 부원들과 함께 42호를 발간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보드게임 했던 것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이번 호에서는 세미나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모든 것을 다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당근주스 편집장님한테서 이번 학기 특히나 더 교널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편집장, 부면집장을 맡은 게 엊그제 같은데 두 번째도 마무리가 되네요. 편집장님! 회의도 활기차게 진행해주고 교널 활성화에도 진심으로 힘써취서 고맙습니다~!) 교널 Forever~~

 

#우리
  교육저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쓰는 글이라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학기가 글 쓰는 일에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었던 기간이었는데, 교육저널에 들어와서 많은 격려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글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함상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다양한 교육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육저널 파이팅!!


#이파리
  교육저널에서 참여한 첫 문집입니다. 교육, 이제 너무 많이 되뇌어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알맹이를 채워내는 사람들 덕분에 교육저널도. 교육도 다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 경험에 집중했는테. 다음 글에서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민
  어느덧 교육저널에서 세 번째 문집을 완성했네요. 1학년에 처음 들어와 4학년이 될 때까지 교널을 들락날락거리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동안 제 시선은 접점 학생의 것에서 교사의 눈으로 이동해온 것 같아요. 학교라는 교육 현장을 학생의 신체로서만 이해하다가, 교직을 이수하고 실습을 다녀오면서 가르치는 존재로서 학교 현장을 감각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건 아마 시야가 넓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시야의 지평이 이동한 것에 가깝겠지만, 이야기의 다양성을 더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공허하게 들릴 때도 많지만.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그것을 만드는 게 교육의 역할이니까요.

  교육저널 42호가 돌아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뉴스처럼 편집위원들의 기사를 실어보았습니다. 시의성이 짙은 기사들이 모여있어, 뉴스 보도 형식을 빌리는 것이 더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뉴스의 첫 번째 파트인 ‘첫걸음’에서는 이제 막 시작된 AI 교과서, 탄소중립중점학교, Vpython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문화를 만나다’ 부분에는 지난 6월, 영화 ‘위플래시’를 보고 부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것을 실었습니다. ‘밀착취재!’ 파트에는 실제 멘토링 현장에 몸담으며 보고 느낀 점을 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사 줌인’에서는 교사 임금에 대해 고찰한 글을 담아보았습니다. 또한, 속보로는 편집위원 전부가 모여 교권에 대해 논의한 좌담회를 실었습니다. 이번 호에도 흥미로운 글들이 많으니 찬찬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달리 힘들고 어려운 계절이었습니다. 마음 아픈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선생님을 추모하며 바뀌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다가온 지금도, 여전히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연신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교육계에서는 변화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관심 있게 그 투쟁을 지켜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교과서의 새로운 도전

 

  2025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을 교과서에 전면 도입하려 한다. 교육부는 23일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하여 2025년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일반선택과목에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우선 도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어 2026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2학년, 2027년에는 중학교 3학년까지 대상을 넓힐 예정이다. 다만,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에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교육 현장·전문가들이 디지털 기기를 접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한 것을 교육부가 수용한 결과이다. 도입 초기 3년 간은 종이 교과서도 병행할 예정이며, 2028년에 디지털교과서로 전면 전환 여부를 결정한다.

 

  AI 디지털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의 학습 콘텐츠에 AI 기반의 코스웨어(Courseware·교과과정 프로그램)를 적용한 신개념 교과서다. 여기서 ‘코스웨어’란, 교과과정을 뜻하는 코스(Course)와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기존 종이 교과서를 보완할 디지털 교재를 뜻한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부에 도입된 디지털교과서는 사진을 확대하고, 과학 과목의 모형을 시각화하는 수준의 기술이 구현되어 있다. 코스웨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한 후, 맞춤형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자기주도적 교재[각주:1]이다. 따라서 이제 학교에서도 AI 기술 기반 진단과 평가를 바탕으로 메타버스, 확장 현실(XR), 음성 인식 등의 다양한 에듀테크(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차세대 교육)를 적용하여 맞춤 학습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교사들도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우선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이러한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I 교과서에 대해 기대가 많은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데이터 수집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 문제부터 시작하여, 어떤 식으로 AI 기반 디지털교과서가 운용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부재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의 적용 양상을 예측한 뒤 활용 시 생길 수 있는 장단점을 비교하고, 교육 현장에서의 교과서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이미 교육 현장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

 

  사실 인공지능이 교육 현장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산타 토익’ 등 평가와 관련해 이미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교육 플랫폼은 많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무엇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은, 학습자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문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에 도움을 주는 AI 플랫폼으로는 ‘클래스팅’을 들 수 있겠다. ‘클래스팅’은 인공지능 학습관리 솔루션을 지향하는 에듀테크 기업으로, 2015년부터 인공지능을 개인 맞춤형 학습에 도입하는 ‘러닝카드 프로젝트’(現 클래스팅 AI)를 시작했다. 학습관리 시스템에는 최근 챗GPT 기반 AI 보조교사 ‘젤로’를 추가해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했다. 젤로는 교육이나 학습 관련 정보에 대응하기 쉽게 만들어진 교육자 전용 질의응답 챗봇이다. 젤로의 쓰임새는 문항 자동 생성, AI 코딩 교육, 영어 말하기 교육 등으로 확장이 되고 있다.[각주:2] 클래스팅의 조현구 대표는 책 《AI 시대, 교사는 살아남을 것인가》 속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변별력 있는 문항을 가려낼 수 있다는 이점을 역설했다. 또한, 문항 반응이론에 근거해 컴퓨터 기반 평가를 하면 학생의 수준에 맞게 다음 문제가 계속 달라지면서 짧은 시간 안에 학생의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각주:3]

 

  한편, 공교육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온 AI의 사례로는 ‘똑똑 수학탐험대’를 들 수 있겠다. '똑똑! 수학탐험대'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인공지능(AI) 활용 초등 1~4학년 수학 수업 지원시스템이다. 이는 진단 데이터 기반으로 맞춤형 문제를 제공하는 AI 추천 활동 기능을 사용한다. 교육부의 설명에 따르면, ‘똑똑 수학탐험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습자 개별 맞춤형 분석을 통해 추가 학습을 제공하고, 게임 요소가 담겨 있어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에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각주:4]

 

  똑똑! 수학탐험대 수업 루틴은 다음과 같다. 교과 활동 문제 풀이 후, 평가 활동의 차시 평가 두 문제를 풀고, 시간이 남은 학생들에게 구출 탐험, 인공지능 추천 활동을 하게 한다. 학습 태도가 좋은 경우, 자유 활동(수학 게임)을 보상으로 제공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게임처럼 즐긴다. 수업 시간이 끝나도 '더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이 쏟아져 나올 만큼 학생들 호응도가 높다. 평가 활동은 자동으로 채점돼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결과 기반으로 학급에서 많이 틀린 문항 추가로 설명한다. 학생의 성취도도 확인할 수 있다. 학생 수준에 맞는 추가 과제도 쉽게 제공할 수 있다. 계정 ID와 비밀번호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가정에서도 추가 학습이 가능하다.[각주:5]

 

AI 디지털교과서의 가능성

 

  교육부 측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재로 키우기 위한 맞춤 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으나 교실 환경에서 맞춤 교육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AI 등 첨단 기술은 학생의 역량과 특성을 고려한 맞춤 교육 실현에 새로운 희망으로 대두됐다”고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각주:6] 또한,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으로 학생들은 학습 수준에 맞는 배움으로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학부모는 풍부한 학습 정보를 바탕으로 자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교사는 학생의 인간적 성장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교실이 학생 참여 중심의 맞춤교육이 이루어지는 학습 공간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각주:7]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AI 디지털교과서를 함께 소통하여 만들고 활용할 때,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구체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전문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의 임철일 교수에게 자문했다. 먼저 AI 디지털교과서가 현재 사용되는 온라인 교과서 플랫폼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는 아직 없다고 답하였다. 현재 AI 디지털교과서는 개발을 시도하고 시범학교에 적용해서 효과성과 개선 방향을 연구하는 시범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온라인 교과서 플랫폼을 ‘교과서’라고 칭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인 ‘아이스크림 홈런’ 같은 경우, 현재의 종이 교과서의 보조적인 자료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재 AI를 통한 수준별 콘텐츠 제공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며 정부에서 내세우는 AI 디지털교과서가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수준별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방대한 데이터가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국어나 영어 등 언어 과목의 교과서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도입될지 질문했다. 교육저널 세미나에서 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수학이나 과학 등 문제 풀이 위주의 교과목의 경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문제 풀이를 제공하는 등 형태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간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어나 영어의 경우, AI가 이들 교과목에 유의미한 작용을 할 수 있을지 대부분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임 교수는 인공지능이 언어 교과목에 도입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산타 토익’을 예시로 보면, 학습 예측 시스템을 통한 문제 풀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산타 토익’의 회사인 뤼이드에서 이미 서울사대부설중, 서울사대부설여중 영어 학습 현장에서 데이터를 받아 산타토익의 기술을 적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영어에서도 선택형 문항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일정한 문제를 새롭게 풀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어도 마찬가지로 선택형 문항이 많이 있으므로,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떤 부분에 약한지 알려줄 수도 있고, 관련 학습 자료를 유튜브 등에서 추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AI 디지털교과서에는 대부분의 교과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수준별로 문제를 제시할 수 있겠다는 장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와 기우

 

  한편, 인공지능이 교과서에 들어왔을 때 우려되는 점 역시 존재한다. 먼저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과 함께 유독 표방되는 목표인 ‘개별화’에 대한 우려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두 가지를 들어 부작용을 설명했다. 첫 번째로는, 개별화 시스템에 대한 반감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학생 데이터를 수집하여 각자에게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실상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학생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집되는 개인의 데이터는 곧 ‘개인정보’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개별화’의 가장 큰 복병은 정보 노출 문제다. 최악의 경우, 개인정보와 관련된 범죄에까지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협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반드시 발생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다고 언급하였다.

 

  다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임 교수는 현장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데에서 오는 혼란 역시 문제라고 답했다. 현재 교원 사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교사가 있을 텐데,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초기에는 기술의 적응에 개인차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계별 도입이 불가피한데, 현 정부의 계획은 전면 도입이다. 따라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초기에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미진한 시스템은 학생들의 학습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계속해서 시스템 개선 및 보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임 교수는 AI 교과서 도입 초기 학생들의 데이터 수집 문제를 들어 우려를 표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잘 기능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응학습을 꾸준히 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 데이터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과서를 계속 써야 데이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데이터를 축적할 시간도, 축적된 데이터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임 교수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 사이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 부분도 있었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자연어 처리 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 탓에 인공지능이 언어 과목에서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대학에 가는 AI,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에는 통계와 연산만이 작용한다면서, 인간에게는 간단한 문제도 인공지능에게는 엄청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 뇌의 사고 작용—특히 언어 기능의 경우—을 전부 수식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정말로’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임 교수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선생님은 ‘ChatGPT’의 사례를 들어,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자연어 처리를 상당한 수준까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ChatGPT’를 연동하여 자연어 처리 문제를 많이 해결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 과목에도 AI 교과서의 활용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재정립과 현상 유지: 교사와 교과서

 

  그렇다면 이렇게 교과서가 급변하는 시대에 교사는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냐는 질문에, 임 선생님은 문제해결 능력을 꼽았다. 어떤 교과 수업에서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다루게 되며, 이때 교사는 교과 특성에 맞는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문제를 가지고 사회과에서는 인구 데이터를 살펴볼 수 있고, 지구과학과에서는 기온 데이터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교사가 AI 기술 및 데이터 과학(데이터를 수집·분석·처리하여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하고 활용하는 과학적 방법론, 프로세스, 시스템 등을 포함하는 학제 간 연구 분야) 기술을 갖추게 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학생들이 통합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미래 교사 역량으로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각주:8] 종전에는 ‘국·영·수’(국어, 영어, 수학)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했으며,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그러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이미 ‘디지털 리터러시’ 항목이 명시된 만큼, 현재 교육 방향이 AI·디지털 역량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교과에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교사는 어떤 과목을 가르치더라도 디지털 툴(tool)을 통해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AI 시스템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며 그 부분을 다시 교과에 융합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이 22년부터 시행된 ‘아이에답(AIEDAP)’ 프로젝트이다. ‘AIEDAP(아이에답, AI EDucation Alliance and Policy lab)’은 예비•현직 교원의 AI•디지털 역량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AI·디지털 교육을 선도하는 전문가 교사(마스터 교원)를 양성해내고 있다. 한편, ‘터치(T.O.U.C.H.) 교사단’에서는 이미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교사들을 선발하여 교육하고 있다. ‘터치 교사단’은 디지털 기반 교육 대전환 시대에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맞춤 교육을 구현하고,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연결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이끄는 교사 그룹을 가리킨다. 터치 교사단 집중 연수는 민관협력으로 운영되는데, 20명 단위의 교실에서 모둠 중심 과제 기반 활동, 토론, 수업 실연 등을 통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활용방안과 수업지도안 등을 연구·공유한다. 터치 교사단은 2023년 2학기부터 디지털 선도학교 운영을 주도하고 교원연수 강사 활동,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다양한 정책 참여 등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각주:9]

 

  그렇다면, 교과서가 똑똑해진 지금, 교과서와 교사는 어떤 관계로 남아야 할까. 이에 임철일 교수는 우선 인공지능의 의미가 무엇이고, 인간과 어떤 관계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바뀐 후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모든 것에 대해 통제권을 가지게 된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한 작금에는 인공지능을 통제의 대상, 즉 도구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주체’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임 교수는 교사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동료로 여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AI 기반 교과서는 교사보다 더 똑똑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그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교사가 인공지능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남되,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라는 동료에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교사, 좋은 교과서

 

  모두가 같은 속도로 동일한 내용을 습득하게 하는 기존의 획일적인 교육 체계에 회의를 가지고 ‘인공지능 도입’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에 대해 큰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공지능이 말해주는 것이 전부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학생들의 다음 시험 점수는 예측해줄지 몰라도, 10년 뒤 그들이 어떻게 자라날지는 쉽사리 예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인공지능이 계산한 학생의 잠재력이 틀릴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 인공지능이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기술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한 인간의 미래를 쉽게 규정짓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교과서와 학생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 내린 결과를 해석해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교사는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에게 학생의 취약점을 찾도록 하고 맞춤형 문제를 양산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그러한 ‘맞춤 솔루션’ 덕분에 특정 문항에 대해 오답률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습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문해력과 사고력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것들이다. ‘이해하기’와 ‘정답 찾기’는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른 영역의 활동이다. 전자가 전제되어야 후자가 비로소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맞춤형 문제 풀이를 통해 오답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학생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지문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학생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는 학생들이 정답만 찾게 할 것이 아니라, 학습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학생들이 배운 것을 제대로 읽어내고 또 충분히 생각한 후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 방식을 적절히 지도해주는 ‘안내자’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는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누구도 당장 정확히 어떻게 작동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인공지능의 전면 도입이 끼칠 장기적인 영향력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들어간 교과서의 도입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좋은 교과서도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교원들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알고 준비한다면,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근주스

  1. 문가영⟨“너 이 부분 모르는구나”...희한하게 교과서가 알아채네⟩《매일경제》, 23.01.05. [본문으로]
  2. 양용비, '교편 잡던' 조현구, AI 기술로 공교육 선진화 이끈다, the bell, 23.06.02. [본문으로]
  3. 임철일, AI 시대, 교사는 살아남을 것인가, 서울: 학이시습, 2021, 109-111. [본문으로]
  4. 교육부, 인공지능과 게임으로 초등 수학 즐겨 봐요 - 똑똑! 수학탐험대2021년 성과보고회 개최 -, 교육부, https://blog.naver.com/moeblog/222606494208, 21.12.28. [본문으로]
  5. 마송은, [에듀플러스-에듀테크스쿨 발언대] “VR로 다양한 교육 체험·수학탐업대로 공부 동기유발 등, 전자신문, 23.08.01. [본문으로]
  6. 백두산, AI 디지털교과서, 2025년부터 순차 도입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실현, UNN, 23.06.08. [본문으로]
  7. 교육부, AI 디지털교과서로 1:1 맞춤 교육시대 연다, 교육부,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oeblog&logNo=223123439288&categoryNo=96&parentCategoryNo=96&from=thumbnailList, 23.06.08. [본문으로]
  8. 한국경제신문, 디지털 리터러시,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79091&cid=42107&categoryId=42107, 23.02.27. [본문으로]
  9. pmg 지식엔진연구소, 터치 교사단, 시사상식사전, 디지털 리터러시,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94285&cid=43667&categoryId=43667, 23.07.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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