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된 지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갔네요. 개인적으로는 한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는데, 그래도 책이 무사히 나왔다는 것에 한없는 감사와 기쁨을 느낍니다. 부편집장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리고 싶네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슬
벌써 3번째 교지를 집필하고 편집하게 되었네요. 교육저널과 함께한 지도 3학기가 다 되었는데, 교육저널은 항상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부원 분들이 모두 선한 것도 있지만 교육저널이라는 집단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상당히 따스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수업에서 마주하는 글쓰기 과제는 힘들고 항상 뭔가 막막한데, 교널에서는 제가 원하는 글을 속 편하게 쓸 수 있으니 항상 재밌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한참 부족하고 어설픈 초고도 다들 성심성의껏 피드백해주시고 무한칭찬해주시니.. 많은 용기와 의욕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학기에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아서 큰 신경을 쓰지 못했고, 완성된 글도 제 마음에 100% 들지 않지만, 하나의 글을 써서 책으로 낸다는 것은 언제 뿌듯하고 설레네요.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 수개월을 고생하신 교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감사해요~!
#나무
두 번째 글을 써서 내게 되었네요. 이것저것 바빴던 방학에 글에 더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완성을 해서 책을 펴내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는 부편집장을 맡아서 리크루팅도 하고 일정 수합도 하고 그랬는데 편집위원으로만 참여하다 처음 직책을 맡게 되어 미숙했던 부분도,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2학기와 겨울방학 동안 힘을 내서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육저널에서 글을 쓰면서 다양한 주제를 접해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고, 서로서로 역할 분담해서 으쌰으쌰 해나가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다음에 또 봐요~
#청명
벌써 교육저널에서 활동한지 2학기가 지나가네요. 조만간 입대를 하게되어 교육저널 활동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복학 후 다시 들어올 가능성 있음) 이번 학기에는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면 활동에 참석을 잘 못했던 점이 아쉽게 느껴지긴 합니다. 그럼에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피드백해주는 교육저널 편집위원들 너무 감사합니다~! 교널 최고!
교육저널을 활동하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직 나아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교육저널에서 나눈 이야기와 생각들이 교육의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나라는 제가 지킬테니 다들 파이팅..!
#H
처음이라 긴장되는 요소도 많고,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아마 제가 마감을 무사히 마쳤다는 뜻이겠지요… 오랜만에 서늘한 마감의 압박을 느낄 수 있었던 한 학기였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책을 보면 꼭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우리는 마감의 스릴에 몸을 맡기는 것이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빛
기대감에 부풀어 교육 저널 신청서를 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교육 저널 회원으로서의 첫 활동이 끝이 났네요. 뿌듯하기도 하고, 아쉬운 점도 많이 남습니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정말 많이 느꼈는데, 편집위원님들이 항상 좋은 피드백 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잘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교육저널 짱!
22년 11월 23일, 세 명의 교육저널 편집위원들(이하 나무, 당근주스, 정민)이 모여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올해 시험을 주관하는 STIC 협회가 부정행위를 발각해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시험지가 유출됐다는…” 천재소녀 ‘린’이 설계한 완벽한 답안지 모두가 원하는 그녀의 답안지로 전세계를 속여라! 시차를 이용한 완벽한 계획 거금이 걸린 천재의 위험한 신종(?) 학업 비즈니스가 시작된다![각주:1]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Q1: 시험 부정행위와 관련된 경험이나 관련되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정민: 저는 궁금했던 게, 여러분들이 감독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치팅’을 목격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무: 감독관이면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민: 그냥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할지 저는 고민이 돼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현명한 대응일까요? <배드 지니어스>에서는 교사들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무: 그 시험 끝나고 쉬는 시간에 따로 부르지 않을까요? 영화에서 나오는 국제시험관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당근주스: 저는 근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치팅을 목격한 적이 있었어요.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수학 선생님께서 왕따 관계를 모르고 무작정 피해자 친구한테 왜 시험지를 보여줬냐고 혼내셨어요.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제가 일어나서 저 친구는 억지로 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하여튼 저는 쉬는 시간에 따로 말하든지 해야지, 그 자리에서 질책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민: 당근주스님의 사례 같은 경우가 참 애매한 것 같아요. 기계적인 수준에서의 공정함을 보장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폭행이 가해진다면 어떡하나요. 보여준 학생의 점수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학교별로 관련 세칙이 정해져 있다고 하던데, 방금 말씀해주신 복잡한 수준의 맥락이 반영되고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Q2: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하나를 소개해주세요.
정민: 마지막 장면이 가장 마음 아팠어요. 뱅크가 너무 악해져서 슬펐거든요. 영화 초반에는 윤리적이고, 주인공 린을 도와주려고 하는 캐릭터였는데 끝에 가서는 엄청나게 가치관이 변한 거니까요. 린이 마지막 계획을 반대하니까 협박까지 하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이었죠.
나무: 초반에는 린이 다 주도하고 뱅크가 막는 느낌이었는데, 시험이 끝난 후에는 뱅크가 또 다른 린이 된 느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이 마지막 제안을 거절하고 문을 열고 나갈 때 뱅크 표정도 좋지 않아 보였어요. 씁쓸해보이기도 하고,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당근주스: 뱅크가 타락했다고 하긴 하지만,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린이 깨달음을 얻고 그만둔 것처럼, 뱅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의 실수였길 바라요.
Q3: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 중 인상 깊었던 캐릭터를 한 명 꼽아봅시다. 이유도 함께 설명해주세요.
정민: 그레이스가 귀엽고 웃겼어요. 본인의 성적도 중요하긴 하지만, 친구로서 린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자기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웃기고 귀여웠어요. 너무 순수하게 그려졌거든요.
나무: 주인공들 보면서 고등학교 친구 중에서 두 명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어디 있는 것 같은 느낌. 연기를 너무 잘한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 마음에 약간 안 들었고요. 교장 선생님이 인성 지도를 하긴 하지만 결국 본인도 부도덕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요. 그래서 위선적인 느낌이 굉장히 났어요. 린의 아버지도 기억에 남는데, 처음에는 무서운 아버지이신건가, 생각했는데 마지막 즈음에는 린이 국제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을 자백하고 본인에게 다시 돌아오게끔 한 것을 보면…. 린을 선한 길로 다시 인도해주신 것 같아요. 다 좋은 길로 이끌어주려고 하신 것이구나, 싶었네요.
당근주스: 린이 자백하러 갔을 때 아버님이 지으셨던 인자한 미소가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도 생각이 나고 슬펐거든요. 그런데 뱅크는 그걸 가지고 역으로 협박한 거예요. 너희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는 식으로요. 하지만 아버님은 린을 믿어주신 거고요. 아까 교장 선생님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몇 마디 해보자면, 교장 선생님도 깨끗하지 않다는 게 학부모들에게서 유지비 명목을 통해 걷는 돈을 통해 설명이 되지요. 그런데 그것이 린이 컨닝해서 돈 번 것과 교장 선생님이 유지비 명목으로 돈 걷는 게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린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한 번 있었는데 저는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정민: ‘레전드 피장파장’.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걸 자기도 알면서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영화적으로 필요한 장면은 맞는 것 같아요. 모두가 무결한 와중에 린만 잘못했다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게 아닐까요. 린의 미숙함도 드러내면서 말이에요. 전문적인 사기꾼이 아니라 처음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정당화를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미숙함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논리적으로 정당한 반박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욱이 린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고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죠. 교장의 행위는 숨을 구석이 많은 행위예요. 교장이라는 지위의 힘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숨길 수 있었을 거라고요. 간접적인 부정의라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범죄까진 아니라는 거죠.
나무: 린이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안 하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자신의 장학금이 구린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교장 선생님 보고, 당신이 먼저 나를 속였다고 말하는 거라고 저는 이해했어요. 두 행위가 물론 같은 선상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정민: 적절한 지적이에요.
Q4: 영화를 보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점이 있으신가요?
정민: 연출이 조금요. 경제적으로 최하층에 있는 이들이 자백하지 않았더라면 금수저인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외국 대학에 진학했을 거라는 가능성이 씁쓸해요. 그런 식으로 연출한 게 아쉬워요. 마지막에 린이 자백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린의 안전은 괜찮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친구가 말해줬는데, 이게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래요. 그 사건 기점으로 SAT 시험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고요. 실존 인물도 자백을 한 걸까요?
나무: 부정행위를 보면서 제가 다 낯부끄러워졌어요. 그렇게 부정행위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게 실제로, 시차를 이용해서 치팅이 발생해서 동시에 시험을 보게끔 만들었다 하데요.
당근주스: 좀 다른 이야긴데, 영화 초반에 취조실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요.
나무: 후반부랑 옷이 똑같은 걸 보니까, 초반의 취조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발각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연습하고 있었던 거예요.
당근주스: 저도 낚였네요.
Q5: 영화 속 사건이 일어나게 된 까닭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당근주스: 뻔하지만, 물질만능주의나 능력주의가 아닐까요?
나무: 시험이 너무 맹목적이었어요. 성취도를 높이자는 것도 아니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성적이 필요하다뇨. 결과적으로 시험의 압박감을 낳게 될 거고, 그런 것 때문에 부정행위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결과가 상관없으면 부정행위가 일어날 필요가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요새 중학생 친구들 멘토링하면서 느끼는 건데, 시험이 정말 성취도 확인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시험이 이렇게 이뤄지는 게 맞을까요?
정민: 진짜 동의하는 게, 나무님처럼 시험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시험의 목적이 평가보다는 피드백을 위한 장치로 기능해야 하는데, 동시에 생각해보면 또,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도 맞으니까요. 사실 이거는, 저희가 아무래도 공부를 관성적으로든 일상적으로든 해오던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시험이 없으면 좋겠지만요, 시험이 외압의 형태로 존재했을 때 공부를 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렵네요.
나무: 본격적으로 자유학기제 경험해본 학생들이랑 이야기해보는 것도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런 시험이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 같은, 공부 안 할 거면 진로 탐색을 하라는 교육 구조도 싫어요. 학생의 선택이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건 문제예요. 영화로 다시 돌아와 보면, 시작 장면에서부터 학업 중심적인 교육에서 학생들은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린을 아버지가 데려가실 때 이 아이는 학교에서 뭘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났는지 늘어놓는 장면에서 아버님이 너무 세일즈맨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가관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 뒤에 곧바로 나오는 장면인데요, 린의 상품성이 인정되어 학비 면제까지 이뤄지는 장면이에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다루고 싶어했던 두 가지(능력주의, 배금주의를 첫 장면에서부터 꿰뚫어 이야기한 게 아닐까요.
당근주스: 시험 점수로만 모든 게 평가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공부 잘하는 거랑 연극 잘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젠데 왜 같이 가는지 이해가 안 돼서요. 전제 자체가 기분이 무척 나빴어요. 한국은 더 심하지 않나요? 저희 학교는 상 몰아주는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저희 옆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상 몰아주는 일이 많았어요.
Q6: 그레이스가 수학 시험지를 미리 갖고 있었던 장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민: 모종의 교사와의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 같은 게, 뱅크가 부정행위를 고발했을 때 확인해본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장면에서 아, 이 학교는 교사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무: 그레이스가 과외 선생한테 받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성적 별로 안 좋은 애들한테 줘서 크게 문제가 안 됐던 거 같아요. 어쨌든 백 점을 맞진 않을 거니까요.
Q7: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린은 교육학을 전공하기로 합니다. 왜 하필 린이 선택한 분야가 교육일까요?
나무: 오히려 린이 학생 지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린도 부정행위 자체에 문제를 못 느끼는 것 같았는데, 국제 시험 이후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서요. 중학생들이나 미숙한 아이들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고, 엇갈린 길로 갈 수도 있는데, 그 길에서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더 잘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자백한 것도,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밝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게 돼요. 뱅크만 들킨 상태여서, 린이 자백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제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책을 다 읽었는데, 과학자가 괴물을 만들고 숨겨서 일어난 일들이란 말이죠. 그래서 린의 경우에도 자백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엄청난 용기가 아니었을까요?
정민: 나무님 의견에 동의해요.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모범생이었던 사람들이 보통 하잖아요. 교사 풀이 너무나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린이 교사가 되면 그런 점에서 좀 더 교육적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동시에 드는 생각은, 저는 엄벌주의자라서…. 린이 그런 식으로 성찰하고 변화했다 할지라도, 그게 나중에 알려지면 어떤 식의 파장이 있을지는 뻔하잖아요. 학부모들이 저런 교사는 뭘 믿고 우리 아이들을 맡기냐고 할 수 있는 거고요. 린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고민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아요.
당근주스: 사람들은 본인이 경험한 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나중에 교사가 되면, 제 학창 시절을 계속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마다 다른 길이 있는 거니까, 린이 교사를 한다면 잘못을 했음에도 돌아온 경험이 있으니,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데에는 탁월할 지도 모르지요.
Q8: STIC 시험의 부정행위를 준비하면서 주인공들은 “성공하면 다같이 성공, 실패하면 다같이 실패”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근주스: 결말만 놓고 보면 다 같이 성공하고 다 같이 실패하는 건 아니었잖아요. 어쨌든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건 뱅크고요. 뱅크는 정말 모든 걸 다 잃었어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도덕심이라는 가치를 잃었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레이스랑 팟은 돈도 사회적 기반도 있으니까요.
나무: 저 말이, 결국 주인공들이 행동할 때, 정당화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성공하면 다 같이 성공한다는 말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실패는, 내가 망하면 다 같이 망해야 한다는 건가 싶어서 불편했어요. 성공 못 한 사람 입장에서 정당화하는 게 아닐까요. 듣기에는 좋은 말인데요,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았어요. 잘 모르지만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것고도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Q9: 주인공들에게 잘잘못을 매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또는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말해봅시다.
정민: 학생들을 가엾게 여기는 건 있지만, 이런 종류의 탈선으로 가는 것까지는 정당화 못하겠어요.
당근주스: 동의합니다.
나무,당근주스, 정민
네이버 영화 정보,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x_csa=%7B%22isOpen%22%3Atrue%7D&pkid=68&os=5875957&qvt=0&query=%EB%B0%B0%EB%93%9C%20%EC%A7%80%EB%8B%88%EC%96%B4%EC%8A%A4%20%EC%A0%95%EB%B3%B4#>, 2023.03.06. [본문으로]
직관적인 이유로 이 노래를 골랐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이름이 ‘초록나무학교’여서요. 그리고 두 번째로, 아이들을 볼 때 이 가사가 생각이 많이 나요.
조금 떨리는 맘은 감추고 그냥 네 손만 꼭 잡고 달리고 싶어라 막 쏟아지는 초록비 속에 우린 더 싱그러워져 늘 아이 같던 철없기만 했던 내가 더 커버린 건 나를 믿어준 네 눈빛 하나, 한 번의 미소 그걸로 충분했다고
센터에서 아이들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하면 저도 새로워지고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요. 표면적으로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요. 부디 아이들도 저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있는 이유, 이곳이 있는 이유
스물둘이 된 지금까지도,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시시때때로 받곤 한다. 그 질문에 선생님이요, 하고 대답한 지 8년이나 흘렀다는 것을 최근에야 비로소 실감했다. 사범대로 진학하지 못하고 인문대에 와서 교직 이수를 하게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선생님을 꿈꾸고 있다. 기약 없는 나의 미래를 가늠해보다가, 정말로 내가 교사가 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무작정 집 근처 초록나무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간 것이 벌써 1년여 전 일이다.
초짜 선생님이었던 필자가 본 지역아동센터는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식사도, 공부도, 돌봄도 해결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고, 필자 역시 그 분위기에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여전히 필자는 센터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른다. 물론 처음에 센터에 왔을 때보다는 조금 더 능숙하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공부를 가르쳐주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이 지역아동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는 시간에 필자도 센터에 도착하고,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체험형 학습이 시작될 때 교육 봉사가 마무리되어 센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는 동안, 필자는 센터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곳에 왜 왔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선생님이 꿈이어서요, 하고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은 그냥요, 하고 싱겁게 대답할 때가 태반이었다. 그 질문을 속으로 되뇌다 보면 또 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어떤 부분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찾게 된다면,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공부방에서 지역아동센터까지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공부방이다. 그동안은 경제 성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공부방은 오랫동안 사회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정부에서는 시립·구립 공부방으로 전락시켜 공부방을 독서실로 운영하는 등 공부방 활동과 개념을 축소시키기도 하였지만, 1997년 말의 IMF 위기를 계기로 가족 해체 위기·가족 결식 문제 등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공부방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공부방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면서, 아동의 빈곤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하는 일부 공부방을 중심으로 공부방의 명칭과 기능을 ‘지역아동센터’로 변경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은 2004년 1월 29일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가 법정 아동복지시설 중의 하나가 되는 결실로 나타났다. 현재는 정부가 일정 기준을 갖춘 공부방과 관련 시설을 대상으로 지역아동센터 신고를 받아 신고필증을 교부한다.[각주:1]
아동복지법 제16조 11항에서는 지역아동센터를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ㆍ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지역아동센터의 역할 및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사회 내 보호가 필요한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 가정에서 부모에 의한 보호와 양육이 적절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동, 실직이나 빈곤 등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어려워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 가족의 해체와 기능 상실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각주:2] 정리하자면,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법에 의거 설립되는 기관으로, 아동의 건전 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뜻한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며,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 활동, 문화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각주:3]
초록나무학교는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떠할까? 필자가 있는 초록나무학교는 양천구 신정4동에 있으며,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지역사회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보호, 교육, 정서 지원, 지역사회의 연계 등의 통합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 기관이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곳에 계신 김효은 생활 복지사님께 인터뷰를 요청해보았다. 선생님은 아동의 전반적인 관리와 센터에 필요한 서류 업무를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위기 아동을 발굴하고 아동과 상담하며, 필요한 경우 아동에게 복지연결을 해주기도 한다. 아동 선발 기준을 여쭈어보니, 취약계층 50%(한부모가정, 교육급여대상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조손가정)이 우선 대상자이고, 그다음 맞벌이 가정, 저학년 일반 아동 순으로 모집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센터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냐는 질문에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첫 번째로는 보호프로그램이 있다. 보호프로그램에서는 예절교육, 부적응 아동지도, 식사예절 및 안전지도를 한다. 아울러 센터에서 아동들의 건강검진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의 일반적인 학습을 돕는 것뿐 아니라, 독서 활동을 지도하거나, 예체능 교육까지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아동들의 욕구 조사를 반영하여 영어·음악·독서수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문화프로그램이다. 아동들을 위해 캠프를 열기도 하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도 하며, 다같이 견학을 가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을 진행하는 등 정서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분주한 센터의 초짜 선생님
이쯤에서 필자의 이야기를 살짝 덧붙여보도록 하겠다. 필자는 ‘금요일 선생님’이다. 금요일에 2시 반에 출근하여, 3시 반까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공부를 봐준다. 사실 공부보다는 입씨름이 반복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센터에 온다면,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들을 붙잡고 쩔쩔매는 필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3시 반부터는 주로 무언가를 만드는 체험형 수업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필자도 종이 인형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얼결에 껴들어 프로그램 부자재를 받아온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런저런 색깔로 색칠한 자석 집게를 들고 와 자랑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이 시간에 필자는 자리를 옮겨 고학년(6학년) 여학생 수업을 도와주곤 한다. 주로 수학이나 과학, 사회 과목을 봐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실에 모여 예비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수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작은 방으로 이동해야 비교적 조용히 공부시킬 수 있다. 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는 4시 반까지 저학년 친구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센터에는 정기적으로 피아노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아동들이 돌아가며 교육을 받곤 한다. 봉사자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있었더라도 피아노 선생님이 부르시면 아이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 한다.
센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도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센터장님께서 아이들의 식사에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는 것 같았다. 보통 피자나 빵이 준비되어 있고, 아이들이 각자 2개씩은 먹을 수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식사하는 모습까지는 지켜본 적 없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끼니까지 해결하는 듯하다. 그리고 센터에서 건강검진을 진행할 때는 미리 신청서를 받는 것 같았다. 필자가 가르치던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투덜거리며 치과 진료 신청서를 복지사님께 적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19 탓인지 체험학습을 자주 나가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다만 공익으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4시쯤에 놀이터로 나가는 모습은 굉장히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나 예비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낸다. 부족한 공부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버리곤 한다. 또한, 아이들은 다함께 여름방학에 1박 2일로 캠프를 떠났다. 필자는 따라가진 못했지만, 캠프 설명회에 참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난제: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1년여 동안 공부를 도와주다 보니,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센터에서 공간 분리가 어렵다 보니,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센터는 거실이 하나 있고, 부엌과 방 세 개가 있는 구조이다. 거실에 책상이 여러 개 있고, 그곳에서 보통 공부를 봐주곤 한다. 방 하나에서는 센터장님과 복지사님이 일하시고, 나머지 두 공간은 소수의 고학년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곤 한다. 우리 센터는 저학년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거실에서 거의 모든 아이가 모여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끼리 자꾸만 서로 장난을 치고 잡담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비단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친구들을 봐주는 선생님들의 수업 내용이 아이들의 집중력을 흐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센터의 공간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종종 느끼곤 하지만, 센터 사정상 어려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두 번째로, 영어나 피아노 등의 정규 수업 외의 학습 시간에는 자원봉사자의 역량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 선생님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며, 선생님의 경력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정보도 편차가 심해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들도 많다. 이는 일관된 학습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대부분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학생들과 라포[각주:4]를 형성하는 것 또한 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이들이 특정 선생님과 친밀감을 느낄 때쯤 선생님이 센터를 떠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 전에 교육 시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필자의 경우만 해도,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두세 명의 아이들밖에 만날 수 없기에,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미리 전해 듣는다면 교육 봉사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제: 센터 운영자의 입장에서
한편, 실제로 센터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냐는 질문에 복지사님은 모자란 센터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후원이 절실히 필요한데 후원자 모집이 잘되지 않는 점을 언급하며 안타까워했다. 덧붙여 코로나 전후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센터 운영 정책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모든 활동에 제약이 아무래도 많아졌기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획이 대부분 수정되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 동안 아동들이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학습에 공백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하였다. 선생님은 아동들이 야외에서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야외활동의 제약이 심각했었기에 아동들의 은둔생활이 고착화된 점, 나아가 이것이 학습의 편차의 원인이 됨에 우려를 표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역아동센터가 발전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현금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월세도 문제지만, 단발성 물품이나 선물 등의 지원이 아닌 장기적인 양질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다음으로는 아동들의 학습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기에 지속적인 자원봉사 선생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인터뷰 이후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우리 센터뿐만 아니라 여러 센터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경기 하남의 한 지역아동센터의 하루를 밀착 취재한 기사[각주:5]를 통해 센터가 너무나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의 선생님들 역시 ‘일당백’이 되어야 했다. 온종일 아이들 하나하나를 지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센터장님이 직접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이들의 집에 방문하여 깜짝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21시에 이벤트를 끝낸 선생님은 자정 넘도록 서류작업을 하고 퇴근한다.
한 선생님은 정부 입장에서 지역아동센터가 가장 가성비가 높은 기관이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그 어떤 곳보다 직접적인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정작 정부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는 4천2백여 개로, 이 가운데 60% 이상을 민간이 맡아 운영하는데, 아이들에게 이용료를 받지 않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온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부분 시설 이용 인원은 29명 이하로, 작년의 경우 규정상 월 57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선생님 2명의 임금과 외부 강사료 등 프로그램 운영비, 공과금을 모두 해결해야 하므로 곤란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30인 이상 시설은 월 780만 원을 받아 선생님 3명의 인건비와 나머지 비용을 내야 하니 더욱 빠듯한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가 주는 지원금 총액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함께 해결해야 하니, 코로나로 일이 전보다 훨씬 고되졌어도 인건비를 많이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2019년 기준으로 5년 경력의 센터 선생님들의 평균 임금은 최저 임금을 조금 넘는 190만 원 정도였고, 10년 정도 근무한 센터장도 한 달 월급이 평균 213만 원이다.
22년도에 지원금이 약 4%로 20만원 가량 늘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5%로 더 높아 외려 프로그램 비용이 줄어든 지자체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영화 보기나 역사탐방처럼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부터 사라지는 실정이다. 지자체에서 추가 운영비나 선생님 처우개선비를 주기도 하지만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 후원금을 마련하는 선생님들도 많다고 한다. 한 선생님은 학교 선후배부터 시작해서 남편과 동생 등 가족들까지 ‘셀프 후원’을 한다고 전했다.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아이들은 절반 이상이 저소득, 다문화, 한부모 가정 등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다. 센터 예산이 부족해 아이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비용이 줄고, 적은 임금 때문에 유능한 선생님들이 떠나면 돌봄의 질은 떨어지고, 피해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인 것이다. 기자가 센터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정부에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해서 지원하고, 기존 사회복지 인건비 지침을 적용해 센터 종사자들의 임금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야 할 일
초록나무학교 지역아동센터의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 복지사님은 학습의 편차를 줄일 수 있는 돌봄 기관이 되는 것을 언급하였다. 초록나무학교는 ‘학군지’인 목동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소득 아동들은 학원을 이용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어 박탈감이 상당하다고 한다. 학부모 역시 학습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선생님은 아동들의 자존감 향상을 위해 학습에 대한 지원을 더 많이 해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정부의 예산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 예산 때문에 발생한 경우가 많으며, 후원으로는 지속적인 지출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일개 자원봉사자인 필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복지사님처럼 큰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오늘도 ‘일당백’이 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지역아동센터에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아마도 필자는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같은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더 멋진 사명을 찾아보려 했는데, 그보다는 지금처럼, 꾸준하게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이다. 상담, 치료, 교육 등은 특성상 상호협조가 중요한데, 라포는 이를 충족시켜주는 동인(動因)이 된다.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 사고,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본문으로]
정혜인, ⟨지역아동센터는 어쩌다 가장 '가성비' 높은 돌봄기관이 됐나?⟩, 《MBC 뉴스》, 22.01.08.[본문으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메인 ost로 쓰인 클래식 곡입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은 우주와 인류를 주제로 한 SF 장르 영화로,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인 ost "Also sprach Zarathustra"는 웅장한 관현악과 타악기 소리로 영화와 좋은 시너지를 내는데요. 이번 저의 글에서는 이 음악처럼 조금은 웅장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을 다 읽은 후 천천히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우주와 인류의 서사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과학이란 무엇일까? 필자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다. 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과학은 “왜?” 라는 질문을 반복했을 때, 의미 있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그렇기에 대학에 온 후 과학의 정의에 대한 여러 사변들을 접했지만 누가 과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대답했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과학 교육 또한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알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과학을 완전히 사회와 정치에서 분리된 것으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과학은 단순히 생각했던 것만큼 낭만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과학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된다. 과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학문이지만, 결국 인간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기에 과학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20세기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인류의 시도가 근본악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과학과 기술을 앞세워 모든 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과학적 전체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때의 근본악은 개인이나 집단의 악의에 기반하기보다는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하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가 부재할 때 인류의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치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러한 주장은 유효하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을 통해 지구 최대의 종이 되었고, 심지어는 달과 우주에까지 세력을 뻗으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올바른 가치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그러한 고민을 유도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나는 과학 교육이 모든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류의 일원으로서 과학을 사유”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교육을 제안하려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히스토리이면 히스토리이지, 빅Big이 왜 붙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선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 히스토리, 즉 역사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도록 하자. 역사의 사전적 정의는 문자로 기록된 과거의 사실들에 대한 연구다. 따라서 역사는 주로 문명 이후 인류 사회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빅 히스토리는 다루는 범위를 인류의 문명에 한정하지 않는다. 빅 히스토리는 우리가 과학과 증거 수집을 통해 알아낸 아주 먼 과거의 사건들, 즉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설정한다. 말 그대로 거대사인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교육에 있어서 더욱 도드라진다. 역사 교육은 그 역사의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모든 과거의 사실에 대해 가르칠 수는 없기에 어떤 사건이 중요한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역사 교육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들이 주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소속된 국가의 영토에서 일어났던 일들, 특히 정치와 전쟁과 관련된 사건들을 주로 배운다. 역사의 주체는 특정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민족이 될 수도, 동/서양과 같은 거대한 문명 혹은 지역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빅 히스토리는 인류 전체를 역사의 주체로 둔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가진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세세한 사건들을 학습하기보다는 인류의 탄생과 변천의 거대한 흐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복잡도complexity라는 개념을 통해 빅뱅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전체 역사에는 복잡도가 크게 증가하는 9개의 문턱이 존재한다.[각주:1] 문턱은 빅뱅, 별의 탄생, 생명의 탄생, 농경의 시작 등을 포함한다. 천체 물리학자 에릭 체이슨도 일률밀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고,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전체 역사를 엮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해왔다. 빅 히스토리의 핵심은 축적된 과학적 지식들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왜 빅 히스토리인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빅 히스토리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그게 앞서 말한 필자의 목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점이 들 것 같다. 빅 히스토리를 인류의 관점에서 과학을 사유하는 방안으로 꼽은 이유는 그것이 인류 공동체의 서사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서사는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를 배우며 분노하고 애국지사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국민 혹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여기게 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일전에 열광하는 것처럼 현재의 마음가짐에도 분명 영향을 준다. 현대 사회는 환경∙인구∙전쟁 등 범지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스로를 어느 나라의 국민, 어떤 가족의 구성원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서 정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인류 공동체 서사인 빅 히스토리를 통해 부여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을 배제하고도 빅 히스토리는 교과학습적 측면에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역사/사회 등으로 나누어지는 교과들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스토리텔링이라는 큰 체계 속에 지식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 지도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 학습 사전/사후에 적절히 활용된다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전체 내용에 대한 체계를 획득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에너지, 엔트로피, 생명의 창발성[각주:2]과 같은 과학사나 과학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난이도 등의 이유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거나 각 과목별로 분절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빅 히스토리 교육을 통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서 이러한 개념들을 접한다면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낮추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
더 나아가 빅 히스토리에서 파생된 흥미로울 만한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이다. 리틀 빅 히스토리Little Big History는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 기원부터 미래까지 살펴보는 활동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콜라 캔을 생각해보자. 콜라 캔은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신성 폭발[각주:3]에서 발생한 알루미늄의 이야기로부터 콜라 캔의 빅 히스토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박테리아, 컴퓨터, 커피 등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 각자의 리틀 빅 히스토리를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탐구 과정은 주제를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각 이야기는 시간 축에서 변화의 양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흥미 분야에 대한 사고를 전개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면서 같은 시각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리틀 빅 히스토리가 훌륭한 교육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에 편성한 많은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리틀 빅 히스토리를 빅 히스토리 교육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가 교육에 적용된 사례
빅 히스토리를 홍보하고 교육하려는 시도들이 국내외 존재한다. 하나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등의 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과시간에 수업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 중 일부는 빅 히스토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약 1500개 이상의 중고등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의 대학교에서 빅 히스토리 주제의 교양 강좌가 열린 바 있으며, 대중 강연 및 연수 프로그램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계점
그렇지만 빅 히스토리에도 분명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우선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빅 히스토리의 기본적인 흐름만 파악하는 데에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생명과학/화학/지구과학 내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단순히 내용을 나열하는 식의 수업은 본래의 학습 목적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실현 자체가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고등학교 과학 교과를 학습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개별적 지식을 소개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스토리텔링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빅 히스토리의 내용 자체보다는 빅 히스토리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엮고 있는지 공부하는 것, 또 학생들이 직접 이러한 빅 히스토리적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앞서 언급한 리틀 빅 히스토리와 관련된 활동들도 포함될 것이다.
학생의 학습 관점에서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를 교육시키고자 한다면 해당하는 교과서나 학습자료, 학습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누가 만들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 지식에 상당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지식 체계를 통합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적극적인 전문가가 요구된다. 더불어 교육학과 빅 히스토리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도 필요하다.
결론
빅 히스토리가 그저 흥미로운 주제일 뿐이라면 교육 과정에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단순히 여러 학문 분야를 엮은 내용을 소개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할 만한 일관된 경험과 메세지가 들어 있을 때 교육의 가치가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빅 히스토리의 강점이 드러난다. 빅히스토리는 교과서 혹은 교사가 구사하는 단편적인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거대한 인류 서사를 소개하고 스스로의 시각에서 스토리텔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경험은 복잡한 세상에 왜소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거시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을 선정하기 전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글 자체가 음악을 넣을 정도로 부드럽지 않았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결국 보다 나은 것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곡에서는 But something's better on the other side 라고 하죠. 이 글이 그 다른 쪽을 찾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서론
확실한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면, 우리는 교육을 받는다. 8살 쯤에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간 이래 우리는 의무교육상으로만 9년, 중등교육과정을 전부 합하면 12년, 현재 이 글을 보고 있는 학부생이라면 통상적으로 적어도 16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교육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가 교육을 받는 장기적인 목적은 정말로 다양하겠지만, 교육의 단기적인 목표는 유사하다. 장기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기본적인 교육의 단기적 목표는 피교육자의 육체 혹은 정신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 역량, 또는 가치관 등을 함양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평가, 그중에서도 피교육자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학생평가를 들 수 있다. 학생평가는 현대 한국인의 유년기 중 상당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사실, 한국인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상당 부분은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을 치르기 시작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한 중등 교육 과정에서 이는 수행평가와 수능 등으로 확대되며, 대학에 입학하면 평가 방식과 결과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A-F제와 S/U제는 언제나 교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구어 왔고, 총학생회의 학점 관련 공약은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그만큼 평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중요한 주제이며, 동시에 학생인 이상 벗어나기 힘든 대상이다. 우리가 학생으로서 교육받는 한, 교육의 성과를 확인하고자 만들어진 평가로부터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우리는 평가와 분리될 수 없다. 즉, 우리가 교육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평가의 시대에도 살 수밖에 없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평가, 특히 평가 결과가 사용되는 방식이다. 교육 목표의 달성 측면을 검토하는 측면에서 평가 결과는 매우 중요하고, 그렇기에 교육에 관한 평가 결과는 사회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평가가 아니라 평가 ‘결과’가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습 이전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행위가 만연하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학습하는 행위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문제는 성취하고자 하는 결과가 실제 교육으로 함양되는 역량과 괴리되더라도 좋은 평가 결과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미 광의의 부정행위가 언론의 사회 지면을 심심할 때마다 장식하고 있고, 대학도 그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각주:1]실제로 교육되고 함양되는 능력이 어찌 되든 평가 과정에서 좋은 점수, 즉 결과만을 얻기 위해 추구되는 주입식 교육은 비판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만 지금도 딱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질과는 무관하게 좋은 평가 결과를 도출하는 ‘꿀강’을 찾기 위한 투자도 한창이다.[각주:2]평가 결과가 교육 자체보다 앞서는 상황이 만연한 것이다. 평가가 교육의 도구라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지금은 평가 결과가 교육의 목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의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평가 없이도 피교육자가 교육의 목적을 충분히 인지하고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우리가 평가 없는 교육을 실행할 수 없다면, 적어도 평가 결과를 평가 이후의 역량이나 교육과 연계하여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방향이 차선이 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교육에서 사용되는 평가라는 수단을 다시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써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한다.
그러나 교육의 범주와 목적은 다양하고, 개별 교육기관의 성격이 상이해 기관마다 교육의 목적, 평가 방식, 그리고 평가 수단 등은 다양해지므로, 이 글에서는 논의의 대상을 현재 글쓴이가 소속되어 있고, 경험한 바 있는 교육기관인 서울대학교 학부과정으로 한정할 것이다. 비슷한 사유로 학생 개인의 평가 결과 추종적 성향과 이러한 성향이 발생하는 사회적 이유는 이 글에서 반론으로서는 언급될 것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이를 이 글에서 상세히 다룰 경우, 논의 범위는 앞서 규정한 서울대학교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렇게 구성된다. 우선 교육과정에서 학생평가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지를 확인한다. 그다음 이러한 원칙을 글쓴이가 받은 대학 내 교육 경험에 적용하여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나아가 다른 요인을 고려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학내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검토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법과 함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스누지니와 연계하여 문제를 단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할 것이다.
기본적인 평가 원칙을 돌아보며
교육에서 학생평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운영하는 교육정보 종합서비스 시스템, 에듀넷에 따르면 학생평가의 목적은 크게 3가지다.[각주:3]우선 학생이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한 성과를 확인하려는 평가 본연의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또한,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한다는, 교육의 목적에 합치하는 목적이 학생평가의 두 번째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교육과 학습을 위해 향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이 학생평가의 세 번째 목적이 된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평가가 어떤 평가가 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평가는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한 성과 자체를 확인하지 못하므로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없다.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평가를 통해 학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이러한 평가는 교육에 무익하다.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계획 수립을 통한 교육과 평가의 발전 가능성이 일차적으로 봉쇄되고, 학생 본인도 유기적인 학습 과정을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즉, 만약 대학교 수강 과목들의 평가가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면 대학 학부 과정은 약 4년 동안 체계적인 학제적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교육기관보다는 단편적인 강좌 130학점 어치를 제공하는 강의 패키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가? 첫 번째 목적은 시험 등의 평가 행위와 행위 내의 적절한 문제 구성으로 달성될 수 있고, 두 번째 목적은 평가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이 학습을 진행하게 되므로 이 또한 평가 행위를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가 행위 이상의 요소가 요구된다. 우선, 교육자는 지속적으로 학생의 학습 결과를 확인하여 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할 근거로써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별 학생의 학습 결과를 확인하는 작업이므로, 개별 학생을 단위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 역량을 학생에게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교육은 최종적인 평가 이후에도 바람직한 교육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 평가 내용을 토대로 학생의 교육 결과를 보충,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을 제한적으로라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학습 계획 또한 평가의 목적에 포함되므로 교육자와 학생은 이러한 평가 결과와 보충 과정을 바탕으로 향후 교육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 내 경험을 바탕으로 확인해보는 목적 이행 여부
실제로는 어떠한가? 단과대학 별로 수업의 구성이 다양할 수 있으나, 글쓴이가 지난 시간 동안 사회과학대학에서 수강한 수업은 대개 다음과 같은 구성을 갖추었다. 수강 신청 기간에 자유롭게 수업을 수강하여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선택하게 된다. 수업 내의 평가는 시험 2회와 리포트 하나, 혹은 이에 준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기말고사 혹은 기말 리포트를 전부 작성한 뒤에 학생은 교육과정을 평가하고, 그다음 평가 결과에 따른 성적을 확인하면 된다.
이러한 수업 과정에서 평가는 부분적으로만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첫 번째 목적은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출제된 평가 문항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학생이 교육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지금까지는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두 번째 목적도 부분적으로 이행된다. 이러한 평가 문항을 풀기 위해서 학생은 교육 내용을 고려하여 이를 학습해야 하고, 이는 교육 내용에 대한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설령 이 학습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에 벼락치기처럼 초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잦더라도, 평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럴 경우, 주요 원인은 학생 개인의 평가 결과 추종적 성향 때문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학습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하다. 평가가 학생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을 최종적으로 도우려면 결국 기말고사나 기말 리포트와 같은 최종 평가 이후에도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학습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글쓴이도 몇 번은 경험하였듯 리포트 작성이 주가 되는 소규모 수업에서 종종 관찰될 가능성이 있지만, 강의의 규모가 크거나 정량적인 시험을 중심으로 평가가 진행되는 경우, 향후 학습 방향에 대한 유효한 피드백이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런 강의의 경우에는 평가 이후에도 학생이 성적 정정을 요청할 수 있는 기간이 대체로 존재했지만, 성적 정정 행위 자체가 학생의 학습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성적 정정은 성적 정정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성적을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평점을 조정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교육받은 내용에 대한 학습 방향을 보완하고 피드백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성적 정정을 위해서는 성적 정정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교육 내용에 충실할 필요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적 정정이 요구될 만큼의 성적을 받은 학생이 평가 결과를 받은 이후에 온전히 성적 정정을 위해 학습 역량을 발전시키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두 번째보다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수강한 수업 대부분은 전공과 교양 여부와 무관하게 학기말 평가와 강의평가를 진행한 후에는 성적 부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즉, 수업에서 구성된 교육자와 학생 간의 관계는 강의평가 및 성적을 기점으로 일반적으로 완전히 단절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특정 교수의 수업이 마음에 들어 계속해서 같은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을 수강할 수 있겠으나, 학기 이후에 방학에서 기존 수업에 대한 사고가 단절된 뒤에 새로운 과목을 불확정적으로 수강한다는 점에서 관계의 지속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교육관계의 재구축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계획은 실행하기도 힘들뿐더러, 수립조차도 힘들다. 개별 수업이 각 학기의 강의평가를 기점 삼아 단절적으로 이루어지면 학생의 학습 계획도 통합적으로 구성될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도 교육받는 주체로서 스스로 교육 계획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수강한 수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과목이 더 흥미로워 보인다거나, 아니면 그다지 적절히 수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과목과 관련된 방향은 수강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보다 정밀한 계획은 수립하지 못한다. 교육받은 결과를 나타내는 지표 중 그 어느 것도 그 이상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흔히 A,B,C 등으로 나타나는 평점은 상대평가의 경우 자신이 당해 학기 수강생들 가운데서 성적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높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뿐, 학생 본인이 해당 과목에서 어느 부분이 취약했고, 어떤 부분은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는지를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절대평가로 부여된 성적도 특정한 수준의 점수를 넘겼다는 점만을 나타내지, 상기의 항목에 답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개 우리가 성적을 보기 위해서 응답하는 강의평가도 본 목적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강의평가의 기본적인 취지는 학기 말에 교원과 학생 간의 소통을 통하여 교원, 즉 교육자에게는 더 나은 수업을 주재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는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법대의 모 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강의평가는 유산이다.”[각주:4]서울대학교에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 130학점이고, 이를 8학기 안으로 충족하려면 학기당 16~17학점을 들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 중 과반수는 수강 과목 중 절반 미만의 과목에만 성실히 답변하는 셈이다. 즉, 강의평가의 주관식 항목이 전반적으로 강의에 유효한 지적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설령 강의평가가 적절히 작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강의 종료 후 강의평가를 작성하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의평가의 결과를 수업에 반영하더라도, 재수강을 하지 않는 한 강의평가를 작성한 학생이 강의평가의 수혜를 입을 수는 없다. 즉, 강의평가를 작성하는 학생 본인은 강의평가의 구조상 강의평가로부터 어떠한 교육적 편익도 얻지 못한다. 강의평가가 진정 유산이라면 유산을 남기는 이는 그 유산을 처음부터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불이행의 결과로 발생하는 문제점
세 번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결과는 여러 방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평가 이후의 보충 과정이 전무하여 부족한 학습 성과를 따라잡을 수단이 부재하다. 특히 과목 간의 연계성이 강한 전공과목의 경우, 학습 수준에 미달하였을 때 이를 보강할 수 없다면 향후 심화된 전공을 수강할 때도 교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경제학부를 예로 들어보자. 경제학부의 전공 필수 과목 중에는 경제학을 다루려면 필요한 수학적 지식을 교육하는 경제수학이라는 과목이 존재한다. 경제수학에서 교육받는 수학적인 지식은 경제학 과목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설령 그 지식이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더라도 수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가 수업의 토대를 이루는 경우가 잦다. 이때 경제수학을 제대로 수강하지 못한 학부생이 있다면,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하다. 기본적인 수학적 지식 없이 그 학생이 다른 전공과목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낮은 이해도는 낮은 성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따라서 자신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경제학 과목을 회피하기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낮은 학점은 복수전공 및 부전공, 심지어 전과에도 불리하다. 그렇게 심화전공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은 전공과목을 수학적 토대 없이 수강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때 그 학생은 오직 초기에 경제수학을 빈약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교육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없었음은 분명하고, 교육에 대한 열망이 꺾이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이다. 물론 성적이 C 이하라면 제한 없이 재수강하게 할 수 있는 제도는 취지상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한 없는 재수강은 재수강으로 수강 가능 수업을 하나 줄여서 학생의 학습 가능성을 줄이고, 학기 단위로 단절되는 수업의 특성상 강의 이후 즉시 이루어지는 보충 과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하게 하며, 평점이 C가 아니어도 추가적인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의 수요를 원천부터 차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 이후 보충적인 교육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음으로써 교육의 유기성은 저하된다. 이러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학생은 자신의 교육 결과에 따른 학습 방향을 정확히 기대할 수 없다. 그 결과로 학생은 전공을 유기적으로 학습하는 방법 혹은 방향을 심하게는 모를 수 있다. 설령 이를 학생 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진행하는 긍정적인 경우가 있더라도, 그 수준은 교육자들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았을 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교육자인 교수가 전공의 권위자라면, 그 권위자한테 들은 피드백은 이를 향후 교육 계획에 반영하는 것과 무관하게 학생의 학습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공과목의 권위자로부터 들은 피드백은 향후 학습 계획에 대한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향후 학습 계획에 대한 제안을 학생이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이전에 생각한 학습 계획보다는 피드백이 나았기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피드백을 완전히 거절하더라도 학생은 피드백을 기존에 생각하던 학습 계획과 비교한 결과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므로 피드백은 적어도 준거로서 역할은 다한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받거나 결정할 교육의 유기성은 학생평가에 따른 피드백이 부재함으로써 피드백이 있을 때보다 저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피드백은 학생과 교육자 간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진행되는 장이라는 점에서, 그 부재는 다른 문제점을 동반한다. 학생과 교육자의 관계가 평가만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관계로 경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는 언급한 바 있으나, 단순한 지식 주입과 상호 평가 관계 사이에서는 교육자와 학생 사이의 피드백이 부족하며, 따라서 평가 결과에만 의존하는 부정확한 보충만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 이는 학생과 교육자가 적절한 보충과 발전 방향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기에 역량을 함양하는 데에도 방해되고, 보다 유기적인 교육 방향을 구성하는 데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사실 형식적인 교육자-학생 간 관계와 교육의 유기성이 부재하다는 문제점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이다. 형식적인 관계는 학생들이 학생 본인의 교육이나 학습과 관련하여 교육자와의 소통을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만들고(앞서 언급하였던 강의평가의 경우를 상기한다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유기적인 교육을 받고 학습을 진행할 가능성은 작아지게 된다. 이에 대한 학생의 기대도 같이 감소하므로, 학생과 교육자 간의 생산적인 상호 소통에 대한 기대도 같이 감소한다. 이것이 심화되면 학생은 교육자와의 소통을 처음부터 고려하지조차 않게 되고, 교육자와 학생의 경직적인 관계는 악화된다. 뒤집어서 생각한다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교수자로부터 학습 방향에 대한 유익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가 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견해라면, 왜 학생들이 교육자와의 소통을 주저하겠는가?
그 형식적인 관계의 결과로, 학생들은 더 이상 교육의 교육적인 목적을 중시하지 않는다. 적어도 교육적인 목적이 수업을 듣는 이유 중 최우선은 아니게 된다. 교육 자체의 내용보다도 부차적인 요소, 즉 학점, 로드, 혹은 출석 등, 좋은 평가 결과를 얼마나 편하게 얻어낼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관심사가 된다. 이러한 글쓴이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증거는 명확하다. 이러한 편의성 지향적인 지표가 만연한 사례는 학생들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학교 커뮤니티 내부의 강의평가다. 최근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의 강의평가 항목에서 별점을 매기는 핵심적인 요소는 셋이다. 평가 결과인 성적과 수업이 얼마나 번거로울지의 지표가 되는 조별 과제와 과제량이다.[각주:5]물론 개별 강의평가를 보면 교육적 내용을 고려하긴 하지만, 그 강의평에도 꼬박꼬박 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는 로드와 시험, 성적(결과)이다. 즉, 이미 학생들은 교육적인 내용에 앞서 형식적인 요소와 결과에 집중하고 있다. 수업 내용은 일부 고려하긴 하겠지만, 학업의 교육적 목적은 이미 뒷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인터넷 강의평에서 자주 쓰는 표현처럼, ‘성적으로 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시스템이 시스템으로서 져야 할 당위
이때, 이미 학생들이 교육적인 목적보다는 평가 결과에 거의 전적으로 반응하는 게 사실이라면 내부 교육 체계를 개선하고, 강의가 끝난 후에 보충 자료를 제공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아무리 평가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도 피교육자가 성적에만 골몰하여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일 수 있다. 학생들이 교육 시스템이 무엇을 하고자 하든 간에 성적과 교육의 편의성만을 중시하는 담론에 중독되어 있다면, 교육 체계를 개선한다고 한들 학생들의 행동 방식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집단적 행동기제를 바꿀 수 있는 법은 그것이 존재하는지부터 질문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은 방법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우리라는 점에서 그 무력감은 한층 더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학생들의 행동이 잘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이 교육의 평가 결과와 그 편의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바꿀 수 없는 상수라면 대학은 애꿎은 학생의 ‘정신머리’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대신, 설령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유기적인 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 자명하다.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고 하는 대신, 교육기관이 교육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대학도 교육기관이므로, 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단절되어 있던 교육적 연계도 보완하고, 학생들의 학습적 역량 보충도 개인이 따로 교재를 사거나 강의를 듣는 방식의 각자도생을 강요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유케 할 당위가 분명 대학에는 있다. 설령 중요한 과목에서 성적 부진으로 ‘뒤떨어진’ 학생이 나오더라도 대학은 학사경고 등의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한 서울대학교이기 이전에 교육기관으로서 그러한 학생의 학습 수준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때 생각할 수 있는 함정으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연계적이고 유기적인 교육과정은 대부분이 거쳐온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커리큘럼이다. 이전 과목이 바로 다음 학년에 배울 과목과 연계되어 교육에서 과목 간의 연계와 향후 학습 계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방과 후에는 비록 강제적 보충학습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많긴 했지만 부진한 과목에 대한 보충도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언제나 특정한 행동을 강요받고, 학습의 자유도가 극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대학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자유로운 학문과 사색의 공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단순히 유기성과 보충이라는 요소에만 경도되어 대학에 적용한다면, 대학 본연의 학문과 학습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다. (당장 자유로운 수강신청부터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를 있는 그대로 게으르게 대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경직성과 유기적 교육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방법은 양극단에서 중용까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 지점에서 학생 개인의 선택을 믿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학생 개인의 선택은 부정확한 지점이 아주 많지만, 생각보다는 정확하다. 아무리 흥미로워서 수강한 강의여도 자신에게 안 맞을 수 있고, 그럼에도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후련하게 수강신청을 취소하고 짐을 덜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강신청의 동기는 학생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며, 그것마저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강의 이후에 보충 자료를 올린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하면 되고, 아무리 유기적인 교육과정에 대해 바람직해 보이는 조언을 하더라도 이를 비교하고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역할은 학생 스스로의 몫이다. 그 선택은 아마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의 것보다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때 교육 시스템의 의의는 그 선택을 돕고,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지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깨닫게 하여, 이전보다는 나은 선택이 가능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학생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 적어도 정보나 선택지가 더 많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는 설령 그 유기적인 피드백에 따른 결과를 학생이 선택하지 않을 때도 유효하다. 교육자가 제공하는 선택지까지 고려해서 선택한 결과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한 선택보다는 더 합리적인 근거에서 선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학이 장기적으로 해야 할 것,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강의 후에도 피드백과 학습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교육자에게 학생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자와 보조 인원이 필요할 것임은 자명하고, 따라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에서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강좌 부문에 할당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대규모 강좌에 보조 인력이 더해지는 것보다는 교육자, 즉 정교수를 늘려서 수업 당 학생 수를 줄임으로써 학생과 교육자 사이에 직접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소규모 과목의 경우에는 평가 이후에 피드백도 잘 주고받았던 경우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러나 예산 확충은 단기적으로는 힘든 일이므로, 우리는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도 필요하다. 이때 제일 쉬운 방법은 기존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스누지니나 etl이다. 스누지니는 지금은 수강신청 기간에 단순히 교과목 검색 및 추천을 돕는 시스템이나,[각주:6]이를 각 학부의 커리큘럼과 성적, 지금까지 학습한 과목과 미수강 과목이 요구하는 선수과목 등을 바탕으로 지금보다는 유기적인 구성으로 과목을 학생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상담 및 피드백을 통해 유기적인 교육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과도기에 사용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etl 같은 경우도 그 의무적인 강의평가와 연계하여 사후 학습자료를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면 역량을 사후에 보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교육자는 학습자료를 etl에 게시하기만 하면 되나, 학습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 및 시간적 여유를 조금은 보장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단기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고, 여기서 더 나은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
이상적으로는 없어도 괜찮다면 좋겠지만, 학생평가는 아직까지도 교육에서 불가피한 수단이다. 따라서 학생평가를 교육을 위해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학생평가의 세 목적 중 마지막 목적인 장기적인 교육과 학습을 위해 향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을 수립을 이루는 일은 유기적인 교육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대학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성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자체보다는 교육의 수단인 평가가, 그 중에서도 평가 결과가 목적이 되는 본말전도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여러 군데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를 개선할 방법은 학생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는 방법과 제도적으로 평가를 보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전자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를 상수로 고려할 때 대학이 할 일은 후자로 좁혀지므로 대학이 평가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서 해야 할 조치는 후자로 좁혀진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재원 확충을 통한 교육자, 즉 정교수를 늘려 교수 1인당 가르치는 학생 수를 줄이고, 대규모 강의로 인한 압박을 완화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겠으나, 단기적으로는 스누지니나 etl 같은 교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시작해볼 수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지만, 단기적으로라도 출발을 시도해볼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작하는 일 자체에도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시스템이 그 목적에 맞게 학생의 학습적 선택을 돕고, 실질적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지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깨닫게 하여, 이전보다는 나은 선택이 가능해지도록 돕기를 바란다. 그것은 시간이 얼마나 오래 흐르더라도 달성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령원, 「서울대 강의평가를 평가하다」, 대학신문, 2022.04.10.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14 [/footnote]그리고 그 유산은 잘 누적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강의평가에서 흔히 보이는 매우 그렇지 않다~매우 그렇다로 대표되는 객관식 문항은 강의의 장단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느낌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개선 방향이나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주관적 문항이 존재하는 것이겠으나, 대학신문에 따르면 강의평가의 주관식 문항에서는 설문조사 참여 인원 중 과반수가 3개 미만의 강의에서만 성실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footnote]김령원, 같은 기사.[본문으로]
이번 글에서는 메타버스, 그 중에서도 VR과 AR이 교육에 들어온 사례와 장단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 교육 현장에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VR, AR 기술이 어느 정도로 교육적 효과를 갖추고 있을지 등에 대한 의문을 글에 담았습니다. 메타버스 교육은 새로 등장하여 현재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그만큼 아직 겪어야 할 일이 많고, 문제점이나 어려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해나가야 하며, 나갔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오르트구름을 이 글에 어울리는 곡으로 선정하였습니다.
Prologue
<실험전시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VR 체험을 하였다. 우리가 둘러본 VR은 과학실험 전시관이었는데, 전시관 문을 클릭하니 방문을 환영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우와 이곳이 실험전시관이구나. 어떤 실험기구들이 있는지 둘러봐야겠다!’
평소 과학실험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이번 체험을 통해 실험기구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화살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와 주세요. 여기는 화학실이에요. 책상 위에 있는 기구를 클릭하여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어볼 수 있습니다.>
책상 위의 눈금실린더를 클릭하자 설명이 나왔다.
“눈금실린더는 액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실험 기구입니다. 다른 말로는 ‘메스실린더’라고도 합니다. 부피를 측정할 때는 평평한 곳에 눈금 실린더를 놓고 액체의 높이와 눈의 높이를 맞춘 후 눈금을 읽습니다. 설명을 다 보았으면 옆의 박스를 클릭해 눈금실린더 퀴즈를 풀어보세요~”
‘맞아! 눈금실린더를 읽을 때는 눈의 높이를 액체 표면의 높이와 잘 맞췄어야 했지.’
학교에서 실험시간에 다뤄보았던 눈금실린더를 제일 먼저 관찰할 수 있었다. 설명을 다 읽은 후에는 퀴즈도 풀어보았다.
<퀴즈!>
현재 눈금실린더에 담긴
액체의 부피가 얼마인가요?
(75ml / 76ml)
‘액체의 부피를 물어보는 퀴즈가 나왔네~ 흠 눈의 높이와 맞추어 읽어야 한다 했으니까... 75!!’ (클릭)
<정답입니다~>
‘오오 맞혔다ㅎㅎ’
액체의 부피를 구하는 퀴즈까지 맞힌 후 다른 기구들도 둘러보았다.
~~둘러보는 중~~
‘오 저 기구는 뭐지? 처음 보는 기구인데..’
화학실을 둘러보다 신기하게 생긴 기구들을 발견하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각각 ‘피펫’이랑 ‘뷰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구들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제시되어 있어 기구의 이름과 용도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
그때, VR 채팅창이 울렸다. 실험 교실에 이 기구들을 사용하는 실험이 전시되어 있다는 친구들의 문자였다.
실험 교실에 들어가 보니 중화적정이라는 실험에서 뷰렛과 피펫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학실에서 실험 기구들을 보았을 때는 기구의 용도까지는 파악하였는데 처음 보는 기구들은 어디에 사용이 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실험 교실에서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기구들이 중화적정 실험에 이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학교에서 직접 중화적정 실험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시관 체험을 마무리하였다.
위에서 학생이 체험한 실험전시관은 필자가 VR로 만든 전시관이다.[각주:1] VR과 AR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이를 교육에 적용하려는 시도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디지털교과서와 구글 카드보드를 이용해 VR을 경험하는 것이 일상에 가까워졌다. 이에서 더 나아가 아이들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가상현실 교육 프로그램 및 교육 웹사이트는 교육콘텐츠에 관심이 많던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필자가 처음 VR, AR을 접했을 때는 교육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재밌기도 하고,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다같이 접속해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제작할 수 있고 재미도 있기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 내용을 더 열심히 듣고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메타버스[각주:2]를 이용해 조금 더 발전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서는 이를 교육에 적용했을 때 우려되는 부분들이 떠올랐다. 우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원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를 수업에 적용할 경우 교육과정의 흐름에 맞게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두 번째로는 교육적 효과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실제로 메타버스 체험 활동이 아이들의 학습 흥미를 높여주거나 학업 성취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였다. 이에 필자는 VR, AR 등의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의 현황, 장단점 등을 알아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또는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교육을 다루기 전에 VR과 AR이 무엇이며 이 둘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알아보자. 먼저 VR은 Virtual Reality의 줄임말로 가상세계를 의미하고, 내부세계를 시뮬레이션 하여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로 보도록 하기에 사용자가 또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가상세계는 다수의 이용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이용자가 자신을 표현하는 아바타로 참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VR은 보통 머리에 쓰는 HMD라는 기기를 통해 사용자를 외부와 차단시키고 사용자의 눈앞에 화면을 보여준다.[각주:3] 다음으로 AR은 Augmented Reality의 줄임말로 증강현실을 의미한다. 일상 공간에 정보를 더해 물리적 현실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추가되는 정보를 가상으로 만들어 현실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사용자가 현실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한다. AR은 주로 관찰이 어렵거나 고비용 및 위험이 수반되는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정리하면, VR은 이미지, 주변 배경, 객체 모두를 가상의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지만 AR은 추가되는 정보만 가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VR을 체험할 때에는 현실 세계와 차단된 다른 세계에서 제공하는 가상의 정보들을 느낀다면, AR을 체험할 때는 현실 세계에 추가된 가상의 정보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또한 VR은 HMD 등의 기기를 써야 하고 AR은 착용하는 기기 없이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다.[각주:4] 이러한 AR, VR에 대한 논문의 수는 그림 1[각주:5]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림 1은 Scopus에 출판된 논문의 수를 나타내는데, 학습, 교육 또는 훈련과 관련한 VR 연구가 재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에는 구글이 VR을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는 카드보드를 개발하였고 그 결과 VR에 대한 확장성과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최근까지 VR, AR에 대한 연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만큼 메타버스 교육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챕터1 VR 교육 예시
가상의 공간에서 활동이 가능한 VR은 최근 의료실습, 게임, 건축 등에 이용되고 있다.[각주:6] 아바타로 활동하는 제페토와 스스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로블록스 플랫폼도 VR의 예시이다. VR을 활용한 교육도 많이 발전하였는데, VR 교육플랫폼 중에 VRWARE Edu 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에듀테크 활용 수업 사례[각주:7] 중 VRWARE Edu School을 사용한 수업을 살펴보자. 초등 1~2학년에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규칙 알기, 3~4학년에게 경기도 시티투어 소개하기, 5~6학년에게 인물이 추구하는 가치 파악해보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VRWARE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직접 맵을 만들 수 있는데, 산과 바다 등의 지형을 만들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나무, 건물, 캐릭터 등의 아이템도 배치할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의 맵에 동영상 및 여러 종류의 퀴즈를 추가하며 학습내용과 관련한 문제를 만들어볼 수 있다. 자신의 맵이 완성되면 선생님 및 친구들과 함께 체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직접 표현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챕터2 AR 교육 예시
현실 공간에 가상의 대상을 띄울 수 있는 AR은 게임, 교육, 쇼핑 등에서 활용되었다. 포켓몬고 또한 AR을 활용한 게임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아래와 같이 아이들의 그린 등고선을 증강현실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나타내주는 방식으로도 수업에 AR을 활용하고 있다.
Cospaces 또한 AR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인데, 학생들이 컴퓨터로 구상한 모습을 멀지큐브라는 정육면체의 사각형 위에 나타내준다. 블록코딩으로 아이들도 쉽게 사물들이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고, 큐브의 여섯 면을 색다르게 구성하면서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컴퓨터 속에 있던 것들을 실제 눈앞에서 볼 수 있고 더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코스페이시스 갤러리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공유한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AR 예시로는 나만의 수족관 만들기, 나만의 단어장 만들기[각주:8] 등이 있다. 추가로 코스페이시스에서는 VR 결과도 AR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큰 규모를 책상에 띄울 수도 있다.[각주:9] 이러한 AR 프로그램으로 이전에는 컴퓨터 화면에서 평면적으로만 보았던 것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며 학생들의 공간 감각 능력 및 사고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챕터3 VR, AR 교육의 장단점
위에서 소개한 VRWARE Edu School과 Cospaces는 학생들이 콘텐츠를 수용하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정규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두 프로그램을 체험해본 결과, 조작이 쉽고 만들기가 쉽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전하고자 하는 것은 제작된 플랫폼에 담긴 교육적 내용인데 콘텐츠 꾸미기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VR, AR을 경험하는 실감형 콘텐츠에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XR[각주:10] 체험센터에 방문하였다. 필자가 체험한 프로그램은 음악 박자 게임, national geography의 북극 탐험, 요리 게임, 클라이밍 등이었다. 머리에 쓴 기기(HMD)에서 바깥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체험자의 손 모양을 보여줄 때는 AR을 느낄 수 있었고, 체험자가 외부와 차단되어 완전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VR을 느낄 수 있었다.
체험 결과, XR 프로그램 자체는 디자인 부분이나 조작 부분이 세세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호기심을 높여주고 몰입감을 높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체험자가 박스를 자를 때 손에 진동이 발생하거나, 클라이밍을 할 때 바람 소리와 숨소리가 들리는 것 등이 더욱 체험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체험을 하면서 클라이밍을 할 때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도 고민하게 되고 북극 탐험을 하며 무엇이 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서관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위주로 체험하다보니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저 부위가 어딘지 호기심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VR, AR 프로그램 체험에도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로, VR의 경우에는 HMD라는 기기를 착용한 후 체험해야 하는데 기기가 잘 고정되지 않으면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어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이 기기가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고 성장기의 어린 아이들의 눈이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HMD 줄의 길이를 조정하여 사이즈를 변경할 수 있지만 더 나은 방법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조작 능력이 생각보다 많이 요구되었다. 간단한 모션으로 행동을 인식하고 결과를 보여줄 때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접시를 드는 행위 등을 하기 위해서는 컨트롤러의 버튼을 잘 누르고 있어야 했는데 컨트롤러의 버튼이 여러 개이고 다른 것들도 함께 조작해야 하다 보니 마음대로 실행이 되지 않아서 불편하였다. 아이들의 경우 성인보다 더욱 조작능력이 부족할 텐데 이 부분도 보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게임의 오디오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만약 단체 수업을 진행할 때 각자 다른 공간 속에서만 활동하게 된다면 통제가 안 되고 수업이 제대로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의 VR에 참여하여 오디오를 공유한다던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전달이 된다던지 하는 기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챕터4 앞으로의 방향
VR과 AR을 활용한 교육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VR, AR 교육은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까?
먼저 교육 방식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자. 현재 VR, AR 교육은 주로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VR, AR 활용에 대한 연구는 초등을 대상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고등학교 급에서는 VR, AR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고 활용 결과는 어떤지를 알기 어렵다. 연구들이 주로 초중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다보니 VR, AR 교육의 교육적 효과는 초중등학교에서만 발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 따르면 VR, AR 교육이 몰입감 등의 정의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이지만 이해력 등의 인지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VR, AR을 활용해 교육할 때는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한 후 교육 플랫폼을 제작 또는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계에서는 연구에 대한 결과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메타버스 교육을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교육 시기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콘텐츠를 이용하는 수업이라면 정해진 교육과정 내에서 충분히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 이후 학생들의 디지털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등이 강조되며 코딩 교육이 필수로 떠오른 시대인 만큼 학생들이 직접 VR, AR을 제작해보는 수업 또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AR, VR 도구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전자보다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원래 배우는 과목의 정규 교육과정 속에 활동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교육 시기를 방학으로 조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VR, AR 프로그램 자체와 관련해서도 부족한 점을 계속해서 파악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HMD 기기 보완’, ‘조작 능력 증진을 위한 방법 고안’, ‘오디오 공유 기능 확보’가 앞으로 VR, AR 교육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제시한다. 물론 이 글에서 제시한 문제점이 전부가 아닐 것이며, 문제점에 대한 보완 및 해결은 꾸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필자가 부원들과 메타버스 교육에 관해 논의하였을 때 가장 많이 나온 걱정거리는 아직 VR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으며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는 대부분 부원들의 예전 경험에 기반한 것이었는데, 최근 필자가 메이커 축제에서 경험한 VR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어 있었다. 이처럼 계속해서 부족한 기술을 보완해나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VR, AR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VR, AR이 교육에 적용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기도 오게 될 것이다.
끝맺으며
VR, AR 등의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이를 향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그동안 불가능했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실제로는 보기 어렵거나 하기 어려웠던 활동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교육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술을 교육에 적용할 때 부작용은 없는지, 교육적 효과는 있는지 항상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이 메타버스 교육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불러일으켰길 바란다. 필자도 메타버스 교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교육이 더욱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이다.
필자는 학생자율연구 등으로 직접 VR, AR 교육을 시행하고 교육적 효과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글은 직접 메타버스 교육의 교육적 효과를 탐구한 후 작성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의 독자들도 메타버스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Makransky, G., & Petersen, G. B. (2021). The cognitive affective model of immersive learning (CAMIL): A theoretical research-based model of learning in immersive virtual reality.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본문으로]
박인우.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콘텐츠 이해 및 교육적 활용 방안. 대구: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17. [본문으로]
“가사에는 현실과 디지털(가상)의 세계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갈등과 소통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과 순수한 사랑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을 감각적으로 담아, 곡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앞선 MAMA 곡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의 가사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상황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더는 사랑하는 법도 잊었고, 배려하는 맘도 잃어 등을 돌린 채로 살아가기바쁜 현실을 향한 안타까움과 그 현실을 바꾸길 바라는 소망을 가사에 잘 녹여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아픈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글에서는 ‘사이버 윤리교육’이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이버 윤리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합니다. EXO-K의 MAMA 노래와 함께 글을 읽으면서 사이버 윤리교육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Prologue - 시대가 변함에 따라 폭력도 변한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위의 질문에 아마 대부분은
교실 뒤편에서 한(혹은 여러) 학생이 다른 학생을 폭행하는 상황
다른 학생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일명 ‘빵셔틀’을 시키는 상황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다른 학생을 협박하거나 욕을 하는 상황
등을 떠올릴 것이다. 예전에는 학교폭력의 유형이 주로 폭행이나 절도와 같은 ‘물리적 폭력’이 주를 이루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물리적 폭력과 함께, 따돌림, 협박과 같은 ‘정신적 폭력’도 새로운 폭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전의 양상이다. 최근 들어서는 폭력의 장소가 현실에서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간 사이버폭력(사이버 불링)이 새로운 학교폭력의 양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각주:1]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가해자는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폭력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피해자는 평생 그 고통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버 공간상의 문제는 비단 학교 내에서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 상황을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악성 댓글(일명 악플)과 저작권 문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명 ‘웰컴 투 비디오’ 사건,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흉악범죄의 사례를 보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이처럼 새로운 양상의 폭력이 대두된 계기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빠르게 변해왔고, 더욱 빠르게 변화할 시대에 살고 있다. 가령, 2000년대 초와 비교를 해보아도 지금의 삶의 모습은 그 당시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우리는 지금 고도로 발달되고 정보화된 21세기에 살고 있다. 과학 기술과 통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다른 양상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물질적 공간에서 벗어난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수많은 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사이버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더욱 발전됨에 따라 사이버 공간도 확장되며, 우리는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 2개의 공간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이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많은 윤리적 문제 또한 제기된 것이다.
2010년에서 2024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용어로 ‘알파세대’가 있다. 이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존재해,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세대이다. 즉, 완벽한 디지털 세대라는 것이다.[각주:2] 그들은 이전의 세대보다 더욱 능수능란하고, 자유롭게 사이버 공간을 활용할 것이고,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간격을 더욱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세대가 교체되면서, 현실 공간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에 따라 사이버 윤리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변화와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문제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올바른 사이버 윤리의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사이버 윤리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사이버 윤리교육’에 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 윤리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의 도덕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관계를 규율하는 도덕적 원리들에 의거하여 사이버 세계 속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각주:3] ‘인간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라는 윤리의 정의를 고려하면, 사이버 윤리란 인간이 사이버 공간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라고 할 수 있고, 사이버 윤리교육은 그것들에 관한 교육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컴퓨터와 관련되는 윤리에 대한 철학적 연구’라는 의미의 사이버 윤리학(Cyberethics)[각주:4]이란 용어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사이버 윤리’라는 단어를 위에서 서술한 의미에 한정하여 사용할 것이다.
Chapter. 1 – 왜 학교여야 하는가?
앞선 프롤로그에서 필자는 폭력의 양상이 변한 현실의 상황과 앞으로 더욱 빠르게 달라질 미래의 상황을 서술하며, 사이버 윤리교육이 확대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사이버 윤리교육은 누구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사이버 윤리교육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나는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이버 윤리교육은 성장기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로, 사이버 공간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도하는 주 이용층이 청소년이라는 점, 사이버 문제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을 들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는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문화와 유행을 주도하는 주체는 주로 청소년이다. 청소년들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문화에 잘 적응하고,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사이버 공간에서의 유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즉,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가 사이버 공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사이버 공간이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아래의 도표 1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2021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서 청소년의 스마트폰 보유현황이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스마트폰이 개발된 이래로 점점 상승해 2021년 기준 거의 100%에 이르렀다. 이 말인즉슨, 거의 모든 학생들이 디지털 매체를 보유하고,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연령층과 비교했을 때, 꽤나 높은 수치이다. 또 주목할 점은,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보급률도 95%를 넘는 수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도표 2에서 볼 수 있는 2018년 같은 조사의 현황과 비교하면 보급률이 꽤나 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최근 들어 디지털 매체와 사이버 공간과의 접촉이 이뤄지는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이전 시대에 비해 더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어른들보다 디지털 매체와 사이버 공간에 더 친숙하고, 더욱 능숙하게 그것들을 활용한다. 사이버 공간의 주 이용층은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버 공간은 청소년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노출되고, 연루될 가능성이 크다. 사이버 윤리교육이 더욱 큰 실효성을 보이려면 사이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주목해보자.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피해 규모가 큰 것이 특징적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거의 사라지고,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가진 사이버 공간의 특징으로 인해, 사이버상의 문제는 짧은 시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그뿐만 아니라, 범인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증거 인멸과 수정을 손쉽게 할 수 있으므로,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에 비해 새로운 사이버 공간의 변화를 조금 늦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유행을 따라가기에 쉽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이 저지르거나 겪는 사이버 문제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이버상의 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을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이버 상의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개개인이 올바른 사이버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개개인들이 올바른 사이버 윤리의식을 함양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교육은 개인의 자아가 정립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따라서 그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교육에는 의무성과 보편성이 보장된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말이다. 사이버 공간이 우리 삶에 만연한 지금, 사이버 윤리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받아야 할 것이다. 학교가 아닌 외부 기관에 의해 시행되는 사이버 윤리교육은 홍보성과 접근성 측면에서 학교 교육에 비해 낮아 참여도가 낮을 것이고, 단기적인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의무적인 교육은 위의 문제점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윤리교육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꼭 필요한 교육이다. 그리고 그 교육은-물론 다른 세대에게도 이뤄져야 하지만-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춰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사이버 윤리교육은 학교에서 이뤄져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Chapter. 2 – 지금까지의 사이버 윤리교육
사이버 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우리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이래로 꾸준히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사이버 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 또한, 꾸준히 있었다. 사이버 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은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15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사이버 윤리 강령을 제정했고, 다양한 연구와 정책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도 사이버 상의 문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사이버 폭력을 가하는 경우에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래의 자료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실시한 2020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의 내용이다.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률은 2018년부터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오히려 가해 경험률은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사이버폭력을 저지르고도 그 행동이 사이버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문제의 증가 및 사이버폭력 인지 부족은 앞서 시행된 많은 노력의 실질적인 효과가 미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정보통신윤리교육과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으로,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각각이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그리고 각각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겠다.
1) 정보통신윤리교육
정보통신윤리교육은 지능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함양시켜주는 교육활동이다.[각주:5] 이는 정보화의 물결이 일던 2000년 ‘초·중등학교 정보통신기술 교육 운영지침’에서 정보통신윤리교육이 중요한 하위영역으로 다뤄지면서 시행되었다.[각주:6]
지금까지의 정보통신윤리교육을 살펴보면 주로 교육과정에 의해, 다른 교과목의 내용에 포함되어서 실시되어왔다. 가령, 도덕이나 윤리 교과의 내용 중 하나로 인터넷 윤리, 사이버 윤리의 내용이 포함된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정보통신윤리교육의 주제들이 도덕·윤리과 내용 체계 안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7년 개정 교육과정부터이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여러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그 원인 중 하나로 사이버 폭력이 지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정보통신윤리의 내용에 학교폭력과 사이버 폭력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더욱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학생들로 하여금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역량을 가르치는 교육이 강화되었고, 그 교육의 일부로 저작권 보호와 같은 정보윤리 내용도 포함되게 되었다.[각주:7]
교육과정의 일부로 실시된 정보통신윤리교육 이외에도, 다른 방식의 정보통신윤리교육도 일부 실시되고 있었다. 이는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실정이 다르겠지만, 정보통신윤리교육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을 의무화한 사례도 있었고, 정보통신윤리교육을 따로 특강을 마련해 실시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학교에 강사를 초청하여 정보통신윤리교육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보통신윤리교육을 의무적으로 규정한 사례를 제외하곤 교육에 의무성이 부여되지 않아, 실제 교육현장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거나 아예 실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정보통신윤리교육이 실시되더라도, 그 교육이 단발적으로 이뤄져 학생들이 교육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정보통신윤리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발 빠르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보통신교육에서 ‘윤리적 측면’의 교육은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고, 교육의 효과도 미미했던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정보통신시대에 활용되는 역량을 중심으로만 교육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따라 ‘컴퓨터’ 교과, ‘정보’ 교과가 등장하고, 그 교육과정에서는 컴퓨터와 관련된 여러 내용을 다룬다. 그 내용은 코딩을 비롯한 다양한 알고리즘 교육과 데이터 과학뿐만 아니라 사이버 윤리와 같은 내용도 포함된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윤리적인 내용 배제된 채, 컴퓨터 활용 역량을 위한 교육만 주로 이뤄졌다. 한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는 된 것 같지만, 그에 따른 많은 역기능에는 미처 교육이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2)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 –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
사이버폭력은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유형의 폭력을 일컫는 말로,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은 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말한다.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은 앞서 서술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사이버폭력의 특성상, 피해의 규모가 크고, 지속성이 높으며, 발견하기 어려워 신속한 대응이 어렵기에 이를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사이버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이 나타나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은 창의적 체험활동, 생활지도 뿐만 아니라 교과시간 안에서 교육과정과 연계한 ‘교과연계 사이버폭력 예방교육’도 있었다. 이 글에서는 사이버폭력 예방교육의 대표적인 사례인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공동으로 개발한 국가 수준의 사이버폭력 예방교육 어울림 프로그램은 학생의 사이버폭력 예방 역량과 사이버폭력 유형 및 관련 교육과정과 연계한 예방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은 크게 기본(역량) 프로그램, 심층(유형) 프로그램, 그리고 교과연계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기본(역량) 프로그램에서는 8가지 사이버폭력 예방역량[각주:8]을 중심으로, 심층(유형) 프로그램은 6가지 사이버폭력 유형[각주:9]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진다. 기본(역량) 프로그램은 일상적으로 청소년들의 사이버폭력 예방 역량을 배양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심층(유형) 프로그램은 학생간 빈번히 발생되는 사이버폭력 신종 유형을 고려하여 특별시간이나 창체시간을 통해 단시간 심층적으로 단기간 예방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각주:10] 즉, 기본 프로그램은 사이버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인지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고, 심층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실제 사례와 연관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과연계 프로그램은 교과목 수업과 연계하여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도덕이나 윤리 과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문, 영어, 국어, 사회 등의 과목과도 연계한 프로그램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령, 영어 시간에는 사이버 폭력과 관련된 영문 글을 읽거나, 한문 시간에는 사이버폭력 예방과 관련된 사자성어나 한자 어휘를 학습하는 등의 방법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의 특징적인 점은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어 다른 예방 교육보다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자료에 프로그램과 관련된 많은 내용과 실제 활동 예시도 나와있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교사의 부담 또한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특징적인 점은 학교급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초·중·고(초등학교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구분됨) 학교급별로 각각의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각 나이대에 적합하고,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Chapter. 3 – 앞으로의 사이버 윤리교육
우리는 앞서 사이버상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살펴보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을 살펴보았다. 위의 사례는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사례만 나열한 것이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이버상의 문제는 발생해왔고,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어 왔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상의 문제는 최근 들어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보았을 때, 이전에 시행된 사이버 윤리교육의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챕터에서는 앞으로 사이버 윤리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주장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사이버 윤리교육의 이전 단계로 사이버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 공간과 유사한 점도 있고, 사이버 공간만의 특징도 있다. 그러한 사이버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준 뒤 사이버 윤리교육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학생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고 익명성이라는 방패가 있기에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기본적으로 예절을 지켜야 하고, 함부로 자신의 정보를 유출하면 안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또 다른 예시로는 사이버 공간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특징을 설명한 뒤, 다양한 정보를 사이버 공간에서 찾을 수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도 많이 생산되기에 정보를 분별적이고 사려 깊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교육할 수 있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의 특성이 선행된다면, 사이버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 높아질 것이고, 학생들이 사이버 윤리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을 더 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사이버 윤리교육의 내용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교육 내용은 저작권, 악플, 인터넷 사용 중독과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저작권과 악플은 현재에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올바른 정보를 받아들이는 법이나 사이버 폭력의 내용도 추가되어야 하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이버 문제도 빠르게 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기존의 문제들을 교육하는 내용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타인의 창작물을 사용하거나 공유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하고, 출처를 남기는 법까지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악플과 관해서는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표현 중에서 비하 표현이나 비속어가 포함된 단어가 있다는 점을 인지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가령, 요즘 자주 사용하는 ‘존맛탱’이라는 단어도 원래는 비속어가 포함된 표현을 줄인 말이다. 하지만, 그 점을 잘 알지 못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그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비속어라는 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클 것이다. 인터넷 사용 중독에 관해서는 우리가 인터넷을 ‘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인터넷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방식으로 교육의 방향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현실 공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사이버 공간에 할애한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얻고, 삶의 다양한 일을 사이버 공간에서 처리하면서 사이버 공간 없이는 살기 힘든 의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생활 양식 속에서 사이버 공간을 덜 사용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더욱 현명하게 사이버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사이버 공간에만 몰두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사이버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사이버 윤리교육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사이버 윤리교육은 주로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교육으로만 이뤄졌다. 학교에서 잠깐 시간을 할애하여 특강의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교과 내용에 포함되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이 교육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기억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내용도 와닿지 않는다. 어쩌면, 교육이 진행되었음에도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았기에, 사이버 윤리의 중요성을 학생들이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교육은 안하니만 못하다. 사이버 윤리의 중요성은 우리가 사이버 공간을 더 잘 활용하게 될수록 중요해지기에, 사이버 윤리교육에 충분한 시간에 배당되어, 조금 더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한다. 나는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을 더욱 보편화시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은 앞서 살펴본 바, 학교급에 맞게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며, 명확한 커리큘럼과, 지속적인 교육을 포함하고 있기에 사이버 윤리교육에 더욱 많이 적용된다면,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보편화가 덜 이뤄진 것 같지만, 개정이 이뤄지고, 보편화된다면 사이버 윤리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pilogue.
지금까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사이버 윤리교육도 변해야 한다는 주제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았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리고 앞으로 우리 인간을 크게 위협할 존재 중 하나가 바이러스이다.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되면, 인간은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인다. 백신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사이버 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백신을 개발해야 하고, 나는 그 역할을 사이버 윤리교육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백신의 문제점인 중증 부작용 또한 없으니 최고의 예방책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 사이버 윤리교육이 백신의 역할을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노력을 통해 사이버 윤리교육이 발전하여, 사이버 윤리교육이 갖가지 사이버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으로써의 역할을, 더 나아가 앞으로 발생할 사이버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면역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추병완, “청소년의 사이버 윤리의식 함양”, 밝은사회연구 제 24권, (2003): 33-57. [본문으로]
원문은 “Cyber ethics is the philosophic study of ethics pertaining to computers, encompassing user behavior and what computers are programmed to do, and how this affects individuals and society.” ; Wikipedia, “Cyberethics”, last modified January 3, 2023. https://en.wikipedia.org/wiki/Cyberethics[본문으로]
2009년, 2015년을 이어 개정된 2022년 교육과정. 언뜻 보기에는 기존의 체계와 유사하지만, 각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나 개정의 배경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2년에 교육과정이 다시금 재탄생하였고, 이는 기존과는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2 개정 교육 과정 톺아보기’에서는 교육과정의 개정 배경을 살펴보고, 개정 방향을 담았습니다. 다시 만난 개정의 세계, 한번 톺아볼까요?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7년만에 대한민국 11차 교육과정 개정이 2022년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교육부는 디지털 전환, 학령인구 감소 등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포용성과 창의력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초중등 교육과정 체제 전환에 필요성을 느낀 것이 개정의 이유라고 밝히었다. 고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2015 교육과정과 달라진 2022 교육과정 개정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개정 추진 배경과 2022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성에 대해 탐구하고, 기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에 대해 서술하고자한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된 필자의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갓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당시 2015 교육과정이 적용된 첫 세대였고, 새로운 교과목과 체제가 도입되면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자 또한 혼란을 겪었다.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교과목이지만 기존의 평가방식이 적용되어 평가에 왜곡이나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예컨대 ‘과학탐구실험’의 경우 2015 교육과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되었던 교과목이었다. ‘과학탐구실험’은 교과목 이름 그대로 과학실험을 하고 이론적으로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하고, 실험도 구상해보는 교과목이었다. 하지만 ‘과학탐구실험’이 처음 도입된 해에는 해당 교과목의 평가방식이 다른 과목과 동일하게 9등급으로 평가되었고, 동료평가 혹은 지필시험이 아닌 다소 객관성이 떨어지는 평가 방식으로 1~9등급이 결정되었다.(필자는 당시 과학탐구실험은 6등급을 받아서 성적표로 눈물을 훔치며 하교했던 기억이 있다) 타 학교는 ‘과학탐구실험’이 실험과목이지만 실기시험이 아닌 지필시험으로 석차등급을 산출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이는 실기과목을 석차등급으로 평가하라는 교육부의 지시로 인한 불가피한 교수자의 결정으로 보인다. 바로 그 다음해에는 ‘과학탐구실험’이 성취도평가(A,B,C등급)로 확정되면서 안정된 평가방식을 되찾았지만, 교육개정의 초기에는 아직 체계가 완전히 자리 잡기 이전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부작용이 터지기 마련이다. 2022 교육과정 개정이 적용되는 2025년에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개정된 교육과정이 달라진 체계에 따른 적절한 평가방식을 구축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앞서 2022 교육과정 개정의 비전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이러한 교육 비전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으며, 그에 대한 개선방향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 혁신
교육과정 개정의 첫 번째 배경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 혁신’이다. 사실 굉장히 상투적인 인상을 주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기존에 계속해서 강조되던 과학기술의 발전, 인공지능의 발달뿐만 아니라,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위기 상황’ 또한 포함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필자는 문장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가 흘러넘치는 정보화 사회에서 원활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교육’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으며, 다소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코로나 19 사태, 심각해지는 이상기후현상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고로, 기술적인 발달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대해 대응 능력 또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함을 알 수 있다.
총론의 문장을 빌리면,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이 특징인 미래사회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본 역량과 변화대응력 등을 키워주는 교육 체제’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2021 국가 의제와 미래전략(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1)은 ‘10대 중장기적 국가 의제’를 기술혁신과 신사업 육성 , 미래인재 양성, 저출생 및 고령화, 코로나 19등 감염병 대응, 기후변화 대응, 사회 안전망과 양극화 해소, 국가 균형 발전과 부동산 문제, 사회적 대화와 국민통합,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국제협력과 미중 갈등 대응로 밝혔으며, 교육과정 개정에 있어서 이를 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 따른 개선방향으로는 공동체 가치 및 역량 강화를 위해, 인간과 환경의 공존을 추구하는 생태전환교육을 장려하고, 시민성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였다. 이는 위기 상황을 대처함에 있어서, 인간공동체뿐만 아니라 생태환경과 연대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지털기초소양을 함양하여 기술 발전에 있어서 대처하는 능력 또한 강화하고자 했다.
2. 학령인구 감소 및 학습자 성향 변화에 따른 맞춤형 교육 기반 필요
소수의 교수자가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환경에서 벗어나 최근 다양한 디지털 교육 기구의 발달로 이러한 교육환경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다수를 대상으로하는 일괄적인 수업이 아니라 개개인에 적합한 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육과정 총론의 문장을 빌리면, ‘학습자 성향에 따라 학생 스스로 진로를 설정하고 개척해 갈 수 있도록 학습자 삶과 연계한 학교 교육 혁신이 필요함’을 고려한 것이다. 이는 고교학점제 체계화의 근간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디지털 교육기구의 발달로 개인 맞춤화된 교육이 원활해진 것은 사실이고, 최근에 디지털 교육기구의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 내에서 개인 맞춤형 학습이 가능할 지에 대해 의문이 들며, 개인 맞춤형 학습은 기존의 수업 방식을 보조하는 수단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든다. 학생에게 과목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맞춤형 교육의 실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맞춤형 교육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일부 동의하지만, 완전한 맞춤형 교육을 위해서는 앞으로의 숙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부의 개선 방향은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의 존중이다. 학교급 전환 시기, 즉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시기에 ‘진로연계학기’를 운영하여, 학교급 전환 시에 발생할 혼란을 줄여주고 자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탐색할 여건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맞춤형 교육과정은 과목별 이수학점 증감범위를 조정하고, 필수이수학점 축소함으로써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다양한 학습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러한 교육체계에 기존의 평가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성취평가제’를 확대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취평가제란 상대평가와 대조되는 평가방식으로, 비교집단 내에서 ‘누가 더 잘했냐’의 평가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했냐’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상위 몇 퍼센트인지에 따라 1-9등급을 나누는 석차등급 방식이 아니라, 성취율에 따라 성취도를 A-C 혹은 A-E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학생 개인의 선택과 개성 및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취평가제가 현재 대학입시에 적용하기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입시는 ‘줄 세우기식’이 이전보다는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심각하게 굳어진 평가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학입시 분위기에서 성취평가제가 도입한다면 학생 개인마다 변별력이 부족할 것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학생이 받을 수 있는 생각이 든다.
3. 새로운 교육환경 변화에 적합한 역량 함양 교육
지식과 정보가 넘쳐흐르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판별하여 습득하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필자가 초등학생인 시절부터 강조되었던 사항이며, 정보화 사회가 발달할수록 진실과 거짓이 한데 뭉쳐진 정보세계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은 계속 강조되어왔다. 하지만 소제목에서의 ‘적합한 역량’은 단순히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통찰력을 가지고 선별하는 것 이상을 내포한다. 공교육 자체가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단순히 학업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학생 개개인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나 변화와 그에 대한 대처는 상이할 수 있으므로 각자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제 해결법을 찾아가는 능력을 중시한다. 즉,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모두가 똑같이 받아들이고 똑같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내용은 같을지라도 해당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실천은 개인에게 맞게 적용하는 능력을 강조한 것이다. ‘OECD Education 2030’에서는 학생 행위 주체성 및 변혁적 역량을 강조하였는데, 이에 부합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OECD Education 2030에 따르면 성장 마인드, 정체성, 목적의식, 자기주도성, 책임감을 강조했으며, 목표를 정하고 성찰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으로 변화를 만드는 능력을 강조하였다. 즉,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개개인의 방식으로 실천하며, 사회적 문제나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배경에 따른 개선방향은 디지털 기반 교수, 학습 혁신을 통해, 획일적인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 온·오프라인 연계가 자유로운 교수·학습 및 평가 모형을 개발하여 적용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디지털 기반 학습 환경을 구현하여, 학생 맞춤형 수업이 가능한 ‘유연한 공간’을 구성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학습기기와 원활한 온라인 학습을 위해 해당 분야와 관련있는 교원을 양성하거나 교원 수급을 확대하고,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 및 교원 연수를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개인 역량 함양을 위한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새로운 대입 방향을 제시했다. ‘미래형 대입제도’는 고교학점제의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대입 평가방식으로,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불투명한 상태이며, 미래형 평가방식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하철 진학사 입시정책 연구소 수석 연구원에 따르면, 고교학점제와 함께 미래형 대입제도에서는 수시의 내신평가 의미가 약해질 것을 전망했다. 또한 고교학점제의 수업 패턴도 다양한 데다 이를 절대평가하는 방식이라면 수시에서 교과형과 같은 디테일한 정량지표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점차 수시와 정시 통합형 체제로 갈 것이라는 분석을 냈다. 이러한 의견은 개인 역량에 맞춘 평가방식과 교육과정은 많은 제도의 변화를 필요로함을 시사한다.
4. 현장 수용성 높은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증대
교육부는 지역, 학교 교육과정 분권화, 자율화에 대한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교육 주체 간 협력적인 교육과정 개별 체제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바탕에는 교육 대상자의 범위를 청소년층으로 한정하지 않고, 교육에 대한 전국민적인 참여를 위해 지역 혹은 학교마다 목적이나 학습 내용, 주된 교육 대상자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 자율화된 교육과정 개발의 문을 열어두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이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체계’와 관련이 깊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체계에 따르면,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발 방식으로 추진함을 밝혔다. 그 결과 학생, 학부모, 교사, 범사회적 전문가 등 교육 주체의 참여 확대, 국가 교육회의,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 등 관련기관 협업을 도모하고자 한다. 교육 주체를 넓게 봄으로써, 교육기관의 범위를 넓게 보려는 시도를 보이며, 교육기관을 초·중등학교에 국한되어 생각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였다. ‘평생교육’도 일종의 교육으로, 교육대상의 범위는 나이로 규정되지 않는다. 교육부가 이를 잘 인지하고 국민 전체를 교육 대상자를 보며, 지역사회기관이나 지역대학교를 모두에게 열린 교육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그만큼 사회적 변화를 많이 체감하게 된다. 게다가 변화의 속도 또한 이전과 달리 빨라지며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교육’을 장려하려는 교육부의 노력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개선방향을 살펴보면, 분권화를 바탕으로 한 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를 도모하고자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수업 혁신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학교 교육과정 자율권에 대한 운영 근거를 마련하였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학교 자율시간을 활용하여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더불어 초·중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유연성을 제고하여 초등학교의 경우 입학 초기 적응 활동 개선, 안전 교육 개선 방안, 초등 저학년 신체활동을 강화를 강조하였고, 중등의 경우 자유학년제 대신 자유학기제(1-1)와 진로연계학기를 편성하였다. 그리고 창의적 체험활동 및 범교과 학습 주제를 개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정적인 교육 운영에서 학교별로 혹은 지역별로 자율성을 부여하며, 교수나 혹은 학교의 권한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일괄적인 교육 운영은 몇몇 학교에서의 무리한 운영을 초래하고, 지역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육과정 적용에 있어서 자율성 확대는 개별 학교마다 무리하지 않고, 각 학교에 걸맞은 교육과정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가며
시대가 변하면 사회적 문제나 요구가 달라지며, 시대에 부합하게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상 또한 달라진다.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 이전에 사회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규정하고 개정의 전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은 더욱 고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포용성과 창의력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은 현 시대에 알맞은 인재상인가? 그렇다면 교육부는 이러한 인재상을 양성하기 위한 개선방향을 적절히 제시했는가? 개인마다 이에 대한 답은 다 다를 것이다. 매 교육과정 개정에 있어서 가장 혼란을 겪는 것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교육과정과 착오가 없도록 학생들에게 정확히 교육과정에 대해 알려주고, 학생이 교육과정에 질문이 생긴다면 교원들은 오류 없는 답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 교육과정 개정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이번 교육과정이 적용될 2025년에는 개정에 따른 부작용이 최소화가 되길 바란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진 공기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편집위원들과 함께하게 되었는데, 41호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봄이 코앞까지 다가왔네요. 봄은 주로 새로운 시작을 연상케 하지요. 새 학기, 새 출발, 새로운 도전…. 그래서 자연스레 교육의 앞날을 고민해본 이번 교지에도 봄과 관련된 제목을 담게 되었습니다.
교육저널 41호 <교육, 새로운 봄을 맞이하다>에서는 여섯 명의 편집위원들이 각자 관심 있게 지켜보는 교육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호에서는 유튜브 채널 ‘썰플리’처럼 각자의 글에 노래 하나씩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각자 노래를 선정한 이유도 흥미로운 부분이니 놓치지 않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읽어보시며 노래를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제가 편집장을 처음 맡게 되어 미숙한 부분이 많았을 텐데, 끝까지 함께 해주신 편집위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그려낸 새로운 시작이, 독자 여러분께도 가닿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