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참정권, 외않됀데?

딸기맥주

 

 청소년 참정권, 보다 구체적으로는 만18세 선거 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뉴스에는 늘 댓망진창이 벌어진다. 이 글에서는 실제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편집해서 이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Q1.

dfjd***

애들은 아직 어려서 논리고 뭐고 없는데, 사고도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애들한테 어떻게 한 나라의 정치를 맡기냐? 하여간 이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려고 ㅉㅉ


A1.

edujournal

세 가지를 논리적으로 반박해보고자 한다. 첫째, “나이가 어리다 = 논리 체계가 없다고 말하는 당신의 논리 체계가 빈약하다. 청소년은 당신의 주장을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사고력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논리 체계 하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둘째, 놀랍게도 논리 체계와 사고라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알아서 발달되는 것이 아니며, 논리 체계가 완성된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지능과 능력을 충족해야만 권리를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환경에 놓여있는,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 정치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서 차별 금지라는 것이 원칙으로서 도출되고 합의되어 온 것이다. 만약 IQ150이 넘는 사람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고 하면, 그것을 아무도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려고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겠죠.”라고 대답할 밖에.

 

Q2.

kdg5****

본인 판단 없이 타인 영향으로 투표할 듯? 부모가 하라는 대로 찍던가 선생님이 말하는 거 따라가겠지. 내 맘대로 인물 보고 관상보고 찍겠지.


A2.

edujournal

자 먼저 청소년이 모두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부터 밝혀둔다. 청소년들이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근거로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고 있는데, 인간의 정치적 입장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인간의 삶은 정치의 연속이고, 정치는 곧 상호 설득과 투쟁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개인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한편, 자신도 설득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판단이 확고한 사람이라기 보단 고집이 센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물론 청소년에게 있어서 부모와 교사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결정은 청소년 개개인의 몫이다. 선생님이나 부모의 말이 설득력이 있으면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의견을 구성해가는 참고사항으로 삼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판단 기준에 따라서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하는 방향,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 투표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차피 남편 따라서 투표한다, 감정적으로 판단한다.” 등의 말들. 언제나 박탈당한 이들이 권리를 찾으려 할 때, 이미 권리를 가진 자들은 그들을 평가절하하고, 절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지만 그것은 대체로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교사, 부모 청소년 사이에 권력관계가 작동하기도 하며, 이 사회에서 청소년이 순응하며 살아오도록 통제 당해왔기 때문에 학교와 가정에서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 자식이라는, 제자라는 이유로 청소년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정견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 변화는 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지니게 될 때 더 의식적으로 촉진될 것임은 명백하다.

 

Q3.

holo****

야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냐? 막 시험 없애자고 하는 거 아님? 교육내용을 지들 맘대로 하자고 하면 어떡함?


A3.

edujournal

시험 없어진다니 개꿀. 교육감 등의 선거에서 청소년 참정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청소년은 교육의 소비자도, ‘피교육자도 아니다.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참여자로서, 자신의 일상에 해당하는 교육 제도, 교육 내용 등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단언컨대, ‘교육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안보다 청소년들의 시각과 목소리가 훨씬 정확할 것이다. 교육을 향유하고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서, 그들은 누구보다 현재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변화의 방향을 잘 제시할 수 있다.

 

시험을 없애자고 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들이 있는데, 왜 이러한 논의를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교육체제만이 정답이라는 시각 또한 편협한 비청소년의 생각일지 모른다. 더 나은 교육현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모든 것에 대해 열어놓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정권의 핵심이다. 참정권은 단지 투표할 권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2등시민이라는 취급, ‘어리고 모자라며 완성되지 못한 존재로서의 낙인을 뛰어넘어 말하고, 토론하고, 요구할 권리를 포함한다. 청소년은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12년을 복무해야 하는 죄수가 아니라 감옥을 부수고 배움터를 세워내는 능동적 존재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청소년의 목소리를 헛소리취급하지 않고 청소년을 그들 삶의 현장에서의 전문가로서 인정하는 일이다.

 

Q4.

illu****

청소년한테 참정권 주면 지들이 어른하고 똑같은 줄 알고 기어오를 걸? 난 그 꼴은 못 본다~ 청소년 인권이다 뭐다 하면서 체벌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투표권까지 줘봐. 학교도 가정도 난리난다~~

 

A4.

edujournal

청소년은 맞아야 안 기어오른다고 말하는 당신은 노예는 때려야 주인한테 안 대든다”, “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에도 동의할 것이라는 건 잘 알겠다. 바로 당신같은 인간들로부터 사람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당신같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이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구호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은 인권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생존권이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들은 이 구호를 외치며, 지속적으로 체벌, ‘용모단속, 언어적 폭력, 어른들의 갑질’, 청소년 노동 임금체불 등으로 인해 억압받아왔던 자신들의 경험을 드러내왔다. 인간이 억압된 상황에 지속해서 놓여있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발화할 권리이며, 그 발화가 공동체에 균열을 내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꿀 권리이다. 그것이 바로 참정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기본적인 권리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우리에게도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삭발을 하고, 천막 농성을 하고, 시위를 하다가 끌려가면서, 그들은 외친다. 폭력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외모가 학생답지않아도 되는, 당당하게 노동하는,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Q5.

dofo****

선거연령 18세는 좀 그렇다 고등학생 신분에 정치참여는 찬성할 수 없다. 눈 앞에 대학 입시가 안보이는가?

 

A5.

edujournal

당신 눈 앞의 청소년들은 입시 공부 기계인가? 청소년들은 기계도, A-B-C 등급이 매겨져야 하는 고깃덩어리도 아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입시가 코 앞인데 무슨 정치냐고 말하는 것은, 너를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입시제도로 인해,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매년 증가하는 이 곳에서 너희는 공부만 해야 하니 귀 막고 입 닫고 있어.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청소년의 삶을 절망과 죽음으로 계속해서 내모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죽고 싶지 않아서, 살고 싶어서 정치 참여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Q6.

uihh****

어느정도는 동의해. 근데 우리나라 교육이 주입식인 건 사실이잖아. 그런 주입식 교육에 12년 동안 익숙해져 온 청소년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어?


A6.

edujournal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라면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모두 주입식 교육을 당해왔다는 것, 이로 인해 주체적인 판단이 방해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순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을 깨뜨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진실이다. 6월 혁명의 주체였던 청소년을, 그리고 작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청소년들을 생각해보면 명료하다.

어른들은 청소년과 자신을 매우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별로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청소년만큼이나 잘 속고, 거짓과 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루머와 가십을 사실이라고 믿기도 한다.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해서 청소년에 비해 자신들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등의 근거가 없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우리도 생각이 있고 우리도 판단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이 서로를 선동하고 또 선동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정치의 핵심이다. 선동 당할테니 정치참여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정치에 대한 무지일 뿐이다.

 

Q7.

giga****

아니 의무를 지켜야 권리를 주지?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내면서 하라는 것만 많아. 하라는 공부나 해라 지 밥벌이도 못하는 것들이.


A7.

edujournal

사실부터 정정하자면 만 18세는 납세의 의무도 진다. “사회시간에 공부 제대로 안 하셨군요.” 그리고 가장 왜곡되어 있는 개념이 의무를 지켜야 권리가 성립한다는 것인데 권리는 조건부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권리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행복추구권을 떠올려보면, 어떤 의무를 지켜야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를, 납세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권리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Q8.

goun****

아니 근데 열여덟살이 시간이 어딨어. 신문이나 뉴스 볼 시간도 없을텐데. 어차피 입시공부 때문에 바빠서 선거 때 관심도 없다가 아무나 찍지 않을까?


A8.

edujournal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성인들은 일상 때문에 바빠서 어떻게 선거 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가?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퇴근도 못하고 야근도 특근도 하는 일상을 사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다. 비청소년도 똑같이 아무나 찍으면서 말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는 이유는, 정치는 일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하고 모순적인 일상을 바꾸고자 시도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며, 정치의 일부인 선거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숨가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매일 매일을 위해서 정치에 참여한다. 그러나 청소년과 비청소년 모두 매일의 일상을 살아감에도, 19세 이상에게만 제한적으로 그 일상을 바꿀 권리가 더 주어져있다는 것은 차별적인 일 아닌가?

 

Q9.

jijj****

고딩들한테 투표권 준다고? 학교가 정치판이 되면 어떡함?


A9.

edujournal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교육공간은 정치가 배제된 공간을 말하는가? 그런 공간일 때만 교육이 가능한가?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브라질의 교육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은행 저금식교육을 비판하면서 학생과 교사가 대화와 탐구를 통해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제기식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삶과 현실을 바꿔내는 프락시스’,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학생에게 지적 만족을 주는 것을 넘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바꿔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지, 무엇이 문제라고 제기할 것인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요구할 것인지. 선택할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가능한 그 선택이 진실에 가깝도록 하는 일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교육은 정치다. 끊임없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것,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기르는 것이 교육이고 그것은 정치와 다르지 않다. 학교가 교육공간이 되고자 한다면, 그곳은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는 더더욱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학교는 침묵과 통제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반교육적 행위들이 교육으로 둔갑했다. 이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불만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외침은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억압당해왔다. 두발 규제, 복장 단속 등이 인권침해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자보를 적으면 학교에서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며, 다른 학생들을 선동한다며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혔다. 실제로 많은 고등학교들에서 학생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제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울산 지역의 한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의 생활규정에는 정치에 관여하여 행동을 한 학생은 퇴학까지 가능하다는 내용마저 있다고 한다.

 

청소년 참정권은 이 침묵의 학교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청소년은 정치의 주체라는 말이 힘을 가지게 될 때,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게 될 것이다. 학생회의 공약은 학부모와 교사의 감시를 받지 않을 것이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 실현은 교육기관을 무너뜨리는 공격이 아니라 학교를 비로소 교육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위한 국회 앞 농성 참여자 인터뷰

 

인터뷰어: 당근

인터뷰이: 상헌

 


지난 달, 청소년 참정권 쟁취를 위해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1 천막 농성을 하며

 

Q. 천막 농성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지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부패한 박근혜정권의 퇴진과 세상의 교체를 위해서 청소년들도 광장에 서있었지만, 학교의 선생님들이 역설하는 학업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이미 그렇지 않음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교복화장두발규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촛불의 열기와 적폐청산으로 대표되는 요구 또한 학교의 담장을 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국회 앞 천막농성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Q. 천막 농성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A. 천막에 있다 보면 종종 지나가는 비청소년들이 어린것들이 뭘 알면서 이러냐는 말을 하는 걸 듣곤 합니다.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그 중 가장 기분이 나빴거나 어이없었던 말이 있나요?

A. ‘저것들은 전교조한테 선동당한 것들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하게 듣기도 한 전형적인 색깔론, 배후세력 프레임을 씌우려는 말이잖아요, 당장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전교조에 소속된 선생님들이 한분도 안 계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황당했었습니다.

 

Q. 자유한국당을 대상으로 기습 퍼포먼스을 계획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선거연령 하향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입니다. 국회 방문 시 선거연령 하향에 동의한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일부 있었지만, 아직 홍준표를 위시한 많은 의원들이 어린 게 뭘 아냐면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판식 당일의 기습시위는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고발하며 선거연령 하향이슈를 다시금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2 참정권 확대를 위하여

 

Q. 만약 선거연령을 하향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면, 그 이후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일단 18세로 선거연령이 하향된다고 해도, 앞으로도 계속적인 선거연령 하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성숙함은 결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릴지는 충분한 고민과 토론이 있어야겠지만요. 그리고 단지 선거날 청소년도 투표소에서 도장 찍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표참여와 더불어 청소년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참정권 확대를 위한 움직임에서 연대할 수 있는 다른 주체들이 있다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A.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고, 저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에 함께할 수도 있듯이 가능한 한 많은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가 있어야 운동의 힘을 얻으니까요.

 

#3 청소년이 주체로 서기 위하여

 

Q. 청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혹은 편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에 대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A.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을 오로지 뭘 모르는 어린애들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농성을 진행하면서도 인터넷상에서 많이 들은 말인데요, 이것이 바로 편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은 결코 뭘 모르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Q. 청소년이 이 사회에서 주체로 서기 위해서, 참정권 획득 이외에도 어떤 과제가 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단지 참정권의 보장범위 확대로 그치지 않고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것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청소년들을 자신들보다 무지하고, ‘더러운 어른들 정치판에 왜 끼어드려 하느냐는 말처럼 청소년들은 순결해야 한다는 시선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본다면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있어도 과연 그 권리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요?

 

#4 개인적인 질문

 

Q. 청소년 운동 혹은 청소년 참정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청소년 참정권에 관한 요구들은 예전부터 들어왔던 요구들이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5월 대선에 즈음이었습니다. 광장의 힘으로 만들어낸 대선이었지만 그 광장에 있던 청소년들은 빠진 채로 대선이 치뤄지는 것을 보고서 본격적으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농성 때문에 가족이나 교사 등과 갈등을 겪었던 적은 없나요?

A. 농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는 제가 (청소년운동을 포함한)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눈치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일정들을 적어두는 다이어리를 카메라로 몰래 찍거나 집회소식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제가 나온 것들을 찾아보거나, 제가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위해 집에서 페이스북 가계정을 생성한 뒤 저를 검색하는 행동들을 한 것들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도 제가 모르게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보를 흘려가면서 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식으로 제 활동에 대해서 압박을 넣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현재에는 무엇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무슨 제약을 느끼고 있나요?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나요?

A. 앞으로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과 청소년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들을 타파하고 싶고, 청소년운동 뿐만이 아닌 모든 의제에서 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청소년들의 삶이 학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현장만이 아닌 노동현장, 일상에 모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머리 속에서 제가 원하는 이상에 대해서 그림이 안 그려지고 그것을 말로도 풀어낼 언어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계속 운동 현장에서 주변 사람들과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지식을 쌓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식이 쌓여가다 보면 제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도 명확해지고 목적의식 또한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청소년 참정권 논쟁 - 잠깐 발 담갔다 빼보기

뚱인데요



1. 보편적 인식

입법자는 우리의 현실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선거권 연령을 19세 이상으로 정한 것이다.’

중등교육을 마치는 연령인 18세부터 19세의 사람은 취업문제나 교육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정보통신, 특히 인터넷의 발달에 가장 친숙한 세대로서 정치적·사회적 판단능력이 크게 성숙하게 되므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능력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략) 병역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다른 법령들에서도 18세 이상의 국민은 국가와 사회의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인정하고 있고, 18세를 기준으로 선거권 연령을 정하고 있는 다른 많은 국가들을 살펴보아도 우리나라의 18세 국민이 다른 국가의 같은 연령에 비하여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흡하다고 볼 수는 없다.’

 

판결문의 결정요지에서 알 수 있듯이, 헌재가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보편적 인식은 '19세 미만은 정치활동을 하기엔 미성숙한 세대'이다. 물론 이를 증명하는 실물 증거는 미약하나, 이는 반대 의견에도 적용될 수 있는 비판이므로 까놓고 말해서 특정 세대의 정치적 성숙함을 판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뇌피셜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런 상반된 인식이 한 판결문 안에 실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 번 생각해보자. 한 사람의 생애에서 '겨우 한 살을 더 먹었다고' 의식이 확 성장하는 경우는 얼마나 존재할까? 물론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정치의식의 성장을 담보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바쁜 세상에 치여 정치에 관심을 쏟을 틈마저 사라지기도 하거니와 개인의 생애주기에 있어 늘 발전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런 개인간의 차이가 참정권에서 반영되진 않는다. 아니, 반영되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부정확한 기준에 의거해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참정권의 부여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 할 수밖에 없다.

 

한편 선거 가능 연령과 관련된 주제가 뜰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19세도 낮다.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20대조차 제대로 된 정치판단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도 없는 주제에 자극적인 기사 하나만 뜨면 바로 선동되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맡기냐.’ ‘저런 사람과 내가 같은 한 표라니 좀 그렇네.’ 대충 뭐 이런 반응들인데, 물론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선진국보다 훨씬 딸린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나, 윗세대라고 해서 20대보다 더 이성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가? 글쎄다. 그럼 전부 의식수준이 낮으니 역시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주의를 하기엔 부족하니 과거의 현명한 지도자들을 본받아 엘리트주의로 회귀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저렇게 말하면서 선민사상 내뿜는 사람들도 막상 따지고 들어가면 알맹이 없는 건 매한가지일 확률이 크다는 건 잠깐 무시하더라도 유독 그런 비난이 ‘20대 초반에게만 집중된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갓 20대 초반을 넘겼거나 비슷한 연배라는 것 또한 그렇다. 원래 사람은 1년 전의 자신을 가장 부끄러워한다고 했었나...

  

2. 참정권이 왜 필요한데?

이런 논의를 하기 전에 우선 이 질문부터 던지고 시작해보자. '참정권을 왜 줘야 하는 건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제도가 당연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우선 시민이 직접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는 제도가 정착된 것이 - 특히 한국은 - 인류사에 비하면 그렇게 깊은 역사도 아니거니와, 초창기엔 이 시민마저 부유층, 백인, 남성등으로 한정되었었다. 당장 민주정의 가장 오래된 형태라 하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미성년자, 외국인, 노예, 여성이 아닌 성인 남성에게만 참정권을 보장했으며, 근대로 넘어와서 이를 타파하는 운동은 서프러제트처럼 큰 사회적 변혁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백래시 논리는 늘 하나의 지점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의식수준의 계층에게 어떻게 정치를 맡기느냐.’ 결국은 또 의식수준이다. 앞서 잠시 주석으로 언급했던 시험으로 참정권을 갈라야 한다.’는 주장도 결국은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정치는 똑똑한 사람만 하는 거였나?

 

근본적으로 '의식수준에 따라 정치활동을 제약한다.‘는 발상에 의구심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개인의 지적 우월함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요구하는 광장이다. 비정규직은 참정권이 있기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정규직화 및 정규직에 상응하는 대우를 요구할 수 있고, 청년들은 참정권이 있기에 청년 정책을, 노인들도 참정권이 있기에 노인 복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참정권이 인권의 영역에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참정권 운동은 항상 근본적인 인권 향상 운동과 연계되어오지 않았는가? 결국 참정권 그 자체가 인권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완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이제야 보편타당해졌다. 적어도 말로는 그렇다. 참정권은 이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결국 참정권은 그깟 의식수준 따위가 아닌 절실한 필요에 의해 부여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져야 하는 건 참정권의 부여가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느냐.’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모두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은 어디인가이다.

 

3. 청소년 참정권 그 자체의 의미

실제 판단력이 어떻든 간에, 대한민국 법은 특정 연령이상의 국민을 정치 참여의 주체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국민은 정치 참여의 주체로 인정받기 시작함으로써 정치 참여의 자격을 갖추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낙인효과에 대해 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누군가를 일탈자로 인식함으로써 그 사람은 실제로 일탈자가 되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말썽꾸러기로, 거짓말쟁이로, 전과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기엔 미숙한 존재로 낙인찍힌 학생들은 그 틀에 맞춰서 성장할 가능성 역시 크다. 그러니까 그 틀을 완전히 뒤집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아예 없애는 것도 괜찮겠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더 건전한 토론이 활성화되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정치가 터부시된 교실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상이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퍼지던 게 그동안의 교실 현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교실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정치를 만들어보자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교실은 더욱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 말이다. 정치적 발언이 터부시되거나 혹은 교사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교실이 아니라, 모두가 매 시간마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교실을 만들어 놓아야 맨날 서로 그렇게 까기만 하는 입시 위주 교육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해결될 기미가 보일 거 아닌가.

 

4. 마무리하며

대학교에서 새내기 맞이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되뇌이는 원칙이 하나 있다. '새내기의 주체성을 무시하지 말자.' 즉 새내기를 어린 존재, 단순히 고등학교라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할 맑은 영혼정도로 간주해선 절대 안되며 오히려 동등한 주체로 대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로 새맞이를 구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타파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원래 그렇게 생각하던 새내기가 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혹여 늘 배우는 존재로만 머물러 있었던 몇몇 새내기가 있었다면 거기서 깨어나라고 외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뭘 배운다고 정치를 한다고 그러냐.’고 묻는 사람들은 그 손가락을 학생이 아닌 학교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딱 봐도 학교가 애들에게 가르치는 게 없어 보이면 학교를 바꿔야지 왜 학생을 그 틀에 맞추려고 하는가. 교육이 발전할 때까지 학생들 보고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법이다. 오히려 교육을 가장 필요로 하는학생이 교육을 바꿀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보자. 그게 더 효율적인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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