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특히 뜨겁다. 입시 비리, 채용 비리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공정하지 못한 절차에 대해 분노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전체 민원의 약 50%가 '2030세대' 민원이었고 그 중 대부분이 '교육, 시험, 채용 공정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1
사람들은 입시, 채용의 절차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절차의 공정성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되면, 개인이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불평등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닐까? 왜 사람들은 공정성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그리고 정의는 공정성을 넘어 어떠한 영역을 포함해야 하는가?
1. 귀속주의 대안으로 등장한 학력주의
공정성 담론이 대두된 사회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 학력주의의 등장부터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력주의는 개인을 평가할 때 형식적인 학력을 제일 중시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학력은 “학교 교육 등의 학습이나 훈련에 의하여 획득한 지적 적응능력”과 “학교를 다닌 이력 2” 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흔히 ‘sky 서성한 중경외시’처럼 대학 간의 서열을 나누고, 보편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문대를 가야 한다고 3여기는 풍조를 보면 학력주의는 두 번째 의미에 더 부합하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학력주의는 주로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학력주의는 과도한 입시 경쟁을 유발하는 주범이며, 개인의 능력, 노력, 실력 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학력주의가 사람들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노력하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었다.
학력주의는 일종의 신분체계와 연결된 귀속주의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었다. 청동기 시대에 최초로 계급이 만들어진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우리나라는 줄곧 신분제 사회였다. 혈통주의적 귀족 중심 사회를 바탕으로 부모의 신분은 자식에게 대물림되었고, 이러한 귀속적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홍길동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도술을 부려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신분 상승에 큰 제약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시험 제도의 등장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일종의 학력 인증 시험인 과거 제도를 도입하여 시험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신분제 등 귀속적인 요인을 벗어나 사회 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학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성취에 따라 사회 이동을 통해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4
이러한 풍조는 현대까지 계속 이어져 학력주의와 능력주의의 기초가 되었고, 사람들은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최근에는 학력 취득에 따른 불평등 격차가 점차 심해지면서 학력주의가 과열되고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소득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지는 등 불평등 격차가 심해지면서, 학력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보다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면서, 명문대 입학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학력주의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대학 간판은 성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사회는 이른바 스펙 경쟁처럼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학력주의는 과거에 능력, 노력, 실력과 같은 다른 요인보다 비교적 계량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졌다. 2000년대 중반, 학력주의가 더욱 과열되면서 학력 위조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때, 특히 문화 예술계에서 유독 학력 위조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왜 하필 문화 예술계였을까? 예술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특히 더 객관적이고 계량적인 평가가 어렵다. 분야 자체에 표준화된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19세기 후반 인상주의가 유행하였고, 이에 따라 모든 예술 작품을, 인상주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이 또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따라서 실력 검증 시스템을 개발하는 대신 학력과 같은 간판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반면, 현장에서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단순한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학벌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결국, 학력은 정량화되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 5
이처럼 학력주의는 귀속적인 요인을 넘어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자 객관적인 평가 기준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학력주의가 점차 과열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높은 학력이 언제나 탁월한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력과 실제 능력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력은 일단 취득하기만 하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소유자에게 지속적으로 방대한 특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이에 점차 사람들은 학력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하는 사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학력주의의 폐해 중 특히 학력과 능력 사이의 간극에 주목하여, 같은 원리에 대응하지만 학력주의보다 비교적 더 넓은 개념인 능력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학력주의를 포괄하는 능력주의의 등장
최근에 tvn에서 방영한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극 중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샌드박스 회사에서는 학력과 스펙을 제외한 시험으로 인재들을 선발한다. 극 중 고졸 출신인 서달미는 회사의 취지에 맞게 한 해의 대중의트랜드를 잘 분석하여 스타트업 대표로 뽑히게 된다. 스타트업 팀원들은 이러한 고졸 출신 대표를 불신했지만 그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고졸 출신 사람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학력주의를 넘어 능력주의를 갈망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는 능력주의의 세 가지 명제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6
이처럼 귀속적인 요인과 학력을 넘어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맹신하고, 이것이 잘 실현되도록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재 다양한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능력주의의 원칙 그 자체보다 그 원칙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배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는다. 즉 공정함이 곧 정의라고 여긴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 능력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경쟁하고 노력해서 승리한 사람을 뽑는게 뭐가 문제야?’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이 믿고 있는 능력주의마저 귀속주의와 학력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 능력 또한 귀속적인 신분처럼 불평등한 배경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자격시험, 국가고시 같은 표준화 시험은 능력주의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객관화되고 수량화된 평가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특정 집단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표준화 시험인 수능도 얼핏보면 능력주의의 산물로서 기회의 공정성을 잘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사는 집 아이가 못사는 집 아이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영향력은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저학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받지 않아 학벌에 대한 관심이 적고, 중산층에 비해 계층 하강 위기 의식이 낮아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이 낮다. 학업성적의 불평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선도한 교육학자 7콜먼은 학업성적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학교보다 가족이며, 가족에 의한 학업성적의 불평등은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움을 발견했다. 이후 콜먼의 후속 연구들은 가족의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가 양질의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축적하게 하고, 이것이 자녀의 학업 성취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8 우리나라도 PISA 자료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9 10
결국, 사회적 우연성은 능력 취득의 과정에도 막대하고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실상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능력주의 신화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두 눈을 가려버린다. 불평등한 배경에서 입시 경쟁에 한 차례 패배한 사람들은 취업 경쟁에서도 불리하다. 반면 상위층의 사람들은 능력주의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견고하게 하고 자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는다. 표준화 시험은 능력에 따라 사람들을 선발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상위층 사람들을 유리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여 능력은 현대판 귀족 신분처럼 또다시 공고한 계급의 대물림 수단이 된다. 11
한편 현재의 능력주의는 완벽하지 않고 따라서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한다면 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기회 균등 전형의 공정성에 대해 논의하며, 이는 능력 이외의 것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다양한 문제의 발생 원인이 능력주의의 원칙 자체에 있기보다 이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차원을 포함하여 학업을 중시하는 가족의 분위기, 풍부한 관심과 자원, 영양 등을 모두 아우른 공평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더불어 천부적인 재능은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보면 사실 타고난 재능은 천부적 우연성에 따라 얻게 된 행운이다. 결국, 사실상 완벽한 능력주의는 불가능하다.
- 더욱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패자
더불어 능력주의는 패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마땅히 성공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준다. 분명 그들이 얻게 된 성취도 귀속적인 요인에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들은 능력주의 신화에 눈이 멀어 오직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는 패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하위층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마땅한 노력을 하지 않아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직업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즉, 능력주의는 구조적인 맥락은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전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 결국, 패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한편 귀속주의 사회에서 하위층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가 온전히 자신의 탓이 아님을 안다. 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하위 계층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짐까지 짊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능력주의에서 불평등은 ‘능력’ 속에 숨어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이는 패자를 더욱 좌절하게 하며,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절차적 공정성에만 집중하고, 승자가 패자를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사회가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 사회적 이동이 가능한 사회 vs. 계층 간의 격차가 완화된 사회?
마지막으로 능력주의는 ‘사회적 이동성’, 즉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절차에만 초점을 맞춘다. 계층 간의 격차가 완화된 사회는 논외 대상이다. 예를 들어, 능력주의는 상위 계층과 하위층 간의 격차가 무한히 벌어진다고 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이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능력주의는 불평등 그 자체보다 사회적 이동성에만 주목한다. 이러한 생각은 누군가는 분명 하위층에, 누군가는 상위층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왜 소수만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실패한 사람은 마땅히 차별받아야 하는가. 계층 간의 격차를 완화하라는 대신, 개인에게 노력해서 계층 상승을 하라는 요구는 수많은 ‘패자’들을 낳는다.
이처럼, 사회적 이동성에만 주목한 정책은 불평등을 직접 다루지 않아 계층 간의 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간과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실제로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는 교육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 기회 균형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출신 배경과 교육 성취의 연관성이 줄어들지 않아 다른 전략을 택했다. 사회보장체제를 통해 근본적으로 계층 간의 격차를 줄여 교육 평등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동성뿐만 아니라 격차 완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3. 공정성을 넘어, 정의는 어떠한 영역을 포함해야 하는가?
귀속주의의 대안으로 학력주의가 등장하고, 다시 학력주의를 포괄하는 능력주의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에 절차적 공정성을 곧 정의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공정성을 강조하는 능력주의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능력마저 귀속적인 요인에 자유롭지 못하며, 승자는 성공이 온전한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칭송받고 패자는 비난받기 때문이다. 더불어 능력주의는 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에만 주목하여, 상층과 하층 계층 간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절차적 공정성만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보장하지 못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층 계층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는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내가 성취한 것은 온전한 나의 노력의 산물인가? 또 왜 누군가는 반드시 패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학력주의 사회를 의심해왔듯이,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절차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 차별에 주목하여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한다. 공정성을 넘어 정의는 어떠한 영역을 포함해야 하는가? 목맬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마다의 공정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일치하긴 하는 것일까? 공정하지 못한 것이 정말 선발 과정뿐이었을까? 어쩌면 공정성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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