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를 펴내며
딸기맥주
안녕하세요, 교육저널의 편집장 딸기맥주입니다.
2019년 봄 호를 드디어 내게 되었네요. 원래는 2018년 겨울호로 내곤 하지만, 조금 늦어진 김에 산뜻한 봄 냄새를 담아 독자 여러분께 글을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호의 제목은 <경계>입니다. 경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종의 '선'입니다. 너까지는 되고, 너부터는 안 된다는 명확한 선은 우리의 생 내내 '평가'를 통해 따라다닙니다. 학창시절의 1등급, 대학에서의 A+, 대학에 매겨지는 등급에 따라 정해지는 학과의 인원수, 교원평가에 따라 정해지는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 - 우리는 선 안에 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합니다. 선 안에 들면 뭐가 좋아지는 지도 모르는 채로, 선 안에 들어야 살 수 있다는 압박 때문에 말입니다. 이 경계는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너를 이기는 것이 내가 되는 법이라고 믿게 만들고, 선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킵니다.
이 선은 점점 두꺼워져, 안과 밖을 나누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나라 밖에서 겨우겨우 살기 위해 온 이들에게 '불법난민'의 딱지를 붙이고, 이 안으로 절대 들여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이 땅 '안'에 살고 있는 이들임에도,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사용해 온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밖'의 사람들이라며 차별받습니다.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교육은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벽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학생이 무슨 학교의 주인이냐"고 말하며, 이사회와 교수가 알아서 총장을 뽑고 대학을 운영할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만의 벽 뒤에서 학생에게 영향을 미칠 수많은 결정들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많은 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용기 있는 성폭력 신고에도, 학교라는 벽 뒤에 숨어 교사의 권력은 유지됩니다.
이 경계 속에서 살아갈수록, 이 경계는 우리의 안전이나 보호를 위한 게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경계는 불안을, 소외를, 좌절을 줍니다. 언제 경계 밖으로 밀려나갈지 모르는 삶, 경계 위에 부유하던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우리는 갈라진 채로 살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이 조각들을 이어붙여 경계가 없어질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래서, 우리 주변의 경계를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려고 했습니다. 중등교육에서의 평가, 대학의 학사관리 엄정화, 대학구조조정, 교원평가를 다루며 우리가 밟고 있는 금이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현안으로 ‘총장직선제 운동’을 다루며, 결코 쉽지 않은 경계 허물기를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할지 나름의 분석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계를 지우고,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중학생 난민 재심사 청원에 함께했던 선생님과 당사자, 그리고 다문화교육 연구자인 모경환 교수님을 만나, 차별과 혐오가 아닌 ‘함께하기’의 방법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스쿨 미투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견고한 권력의 벽을 힘껏 무너뜨리는 그들의 용기와 요구에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호의 주제들은 학교 안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학교 밖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평가, 다문화교육, 총장직선제, 스쿨미투는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 때 비로소 제대로 이해될 수 있고,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 방법론의 경계조차도 무너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 인터뷰를 하면서 '중학생 난민 재심사 청원'의 주인공이었던 A를 만났습니다. A와 대화를 나누던 중, 제가 조심스럽게 "난민 지위 인정이 되어 너무 다행이지만, 여기도 한편에서는 살기 좋은 곳은 아니어서 걱정된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A가 웃으며, '헬조선'이라고 끄덕였습니다. 이미 데뷔한 모델인 A는, 어떤 디자이너들은 ”내 쇼에 선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인터뷰를 곱씹으면서 故김용균님을 떠올렸습니다. 故김용균님은 저와 동갑인 노동자였습니다. 그가 왜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야 했을까, 왜 비정규직이 되어야 했을까, 왜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숨 쉴 수 있고 그는 죽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경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사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서, 그랬다면. 경계는 누군가는 죽어도 되고 누군가는 살아남도록 작동합니다.
이 나라가 A가 떠나온 나라와 달랐으면 좋겠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피해서 온 땅에서 이들이 다시 죽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는 나라가 아니라, ”내 쇼에 선 것을 영광“으로 알고 저임금을 견뎌내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인종이라고 차별당하는 나라가 아니라, 정말로 여기에 도착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땅이어야 한다고. 이대로라면 이 곳도 사람이 살 수 없어 도망치는 땅이 될 것입니다.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함께합시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될 때, 함께일 때 나 자신도 조각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 땅의 아픔과 죽음을 덜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번 호는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자는 교육저널 구성원들의 다짐이자 여러분에게 건네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함께 주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기 위해 집필 전 내부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홍보에 기대지 않고, 제대로 자치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자는 다짐에 이르러 구성원들이 직접 편집을 해서 결과물을 내게 되었습니다. 시간도 그래서 좀 더 오래 걸렸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더 가치 있는 호가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독자 여러분들께도 구성원들의 고민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호를 세상 밖으로 떠나보냅니다.
이번 호의 끝의 끝까지 고생해준 교육저널 구성원들, 언제나 글의 닿을 곳이 되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p.s. 교육저널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학생회관 63동 619호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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