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나는 학교현장실습을 다녀왔다. 학교현장실습이라 함은, 교직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마지막 학년에 학생을 실제로 가르쳐보고, 학교 루틴, 교직 문화 등의 학교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다녀오는 실습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범대생들이 고대하는(혹은 고심하는) 미션이기도 하며, 예비교원들은 교생을 계기로 주로 교직에 대한 의지를 다지거나 혹은 소수이긴 하나 교사가 되지 않을 것을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학교를 곧잘 따라다녔다. 학교라는 공간, 교사라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은 내게 직업인이기보다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일터, 엄마의 동료(혹은 친구)였기에 안정감과 친숙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에도 학교라는 곳은 늘 재미있고 수평적인 공간이었으므로, 내게 학교는 언제나 ‘호의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 대부분의 배경이 되어준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싶었다. 꼭 학생이 아니라 해도 교사로서 학교에 있는 일도 꼭 맞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봄의 수혜자인 것과 돌봄의 제공자가 되는 것은 정확히 반대의 실천을 요구한다. 돌봄이란 일종의 ‘보살핌’으로 이해되는데, 학술적으로는 일상적인 영역에서 존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수행되는 행위, 실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돌봄 실천에는 언제나 돌봄을 받는 자(수혜자)와 돌봄을 주는 자(제공자)의 이자관계가 선행한다. 수혜자는 제공자가 주는 돌봄 서비스를 받고, 그를 소비하는 것에 역할이 머문다면, 돌봄 제공자에게는 훨씬 적극적인 관계적 의무가 요청된다. 돌봄 제공자는 수혜자의 필요를 파악하여 삶의 지속 및 발전을 도와야 하며, 따라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돌봄은 타인과 괴리된 물질 생산 노동이나 몰개성적 대인 서비스업이 아니다. 즉 ‘돌봄으로서의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고객의 생애사적 궤적을 이해할 필요 없이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데에 집중하는 서비스업과는 달리 돌봄 수혜자인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대인(對人)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직업으로의 교사를 택하는가? 다시 말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가? 나의 경우에는 교사가 ‘전인적’인 직업이라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 성장기의 다수의 사람들과 만나, 책임감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애정을 다해 지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재화를 생산하는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큰 심리적 동인 그리고 성취감을 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실습을 하며, 나는 한국에서 ‘교사를 하고 싶다’는 말이 갖는 함의를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을 감수하겠다는 선언인지를 말이다.

 

현직자들의 토로에 귀 기울이기

  교생 기간에는 학교에 많은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신분으로 학교의 관리자들을 만날 때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느낄 수 있고(교장과 교감의 성향은 학교 전체의 사업과 의사결정 구조를 좌지우지한다),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수십명의 학생들은 나를 친구가 아닌 교사로 대한다. 그러나 교생 때 접하는 것 중 가장 새삼스러운 것은, 교사들의 이야기이다. 실습 기간 중 아이들을 만난 것도, 가르치는 일도, 학교 행사도 모두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학교에 있는 교사들이 스스로 교직 생활을 평가했던 것은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나는 한 달간 열이 넘는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선생님들과 안면이 깊어질수록,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수록 느꼈던 것은, 누구 하나도 자신 있게 교사를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온전히 자랑스러워하거나, 완전히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관리자급의 경력이 긴 선생님들은 교생 전원에게 임용 응시를 권하셨다).

 

  교생 기간에 만났던 현직 교사들이 토로한 여러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과도한 업무 강도와 그에 비례하지 않는 보수였다. 최근 10년차 이하의 저연차 교사들을 중심으로 “실질 임금 보장”에 대한 공감대가 급격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한국의 교사 인력이 평균 소득 수준이 높은 고학력자 집단임을 감안할 때, 소득 수준이 낮은 (특히 저연차) 교사들의 불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교육이라는 영역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교원 임금을 시장 논리에 따라 책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그럴 수도 없다). 교사들 역시 “교사는 돈이 아닌 보람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새롭게 일고 있는 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는 변화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교사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낮은 임금 수준을 감내할 수 없게 하였는가? 그 요구의 발생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본 글에서는 학교 기관의 교육을 넓은 의미의 돌봄 실천으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보수 책정의 적절성을 논의한다. 교육 실천의 많은 부분은 앞서 언급한 ‘돌봄’의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배움, 또래와 관계맺기, 진로 선택의 고민, 성취에 대한 타인의 인정 등 많은 영역에서 학생들은 욕구를 갖는다. 학교 공간은 학생들이 다층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물론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이라는 의무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사는 그 공간에서 직접 학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수업을 계획 및 진행하고, 학교 유지를 위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학생 생활 전반에 필요한 상담 및 생활 지도 등의 도움을 준다.

 

  즉 교사는 교육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교육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자이자 돌봄 제공자이며, 학교 운영을 위한 행정 처리자에도 해당하는 노동자이다. 이들이 수행해야 하는 노동량과 강도는 결코 적지 않으며, 이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 전달’에만 한정되는 활동이 아니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은 학생 개개인을 ‘성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교과 내용을 교수하는 것 외에도 교육 환경 전반을 적절하게 조성하고 학생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활동이다. 교육의 이러한 돌봄적 특성은 교사에게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며, 동시에 교사의 노동량을 증가시킨다. 이에 본 글은 교사가 수행하는 과업에 대한 보상이 적정한지 교사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현재의 임금 수준이 교원 인력 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하고자 한다.

 

교원 임금 체계 톺아보기

  교사는 국가에 귀속된 공무원이므로 제도적 규정에 따라 임금을 보장받는다. 기본적으로 교사의 임금 체계는 공무원의 임금 체계와 결을 같이 하여 호봉제를 적용한다. 그런데 교사는 일반직 공무원 중 ‘담당 업무가 특수하여 자격, 신분 보장, 복무 등에서 우선 적용’되는 ‘특정직 공무원’에 해당한다. 특정직 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이 따르는 계급 제도가 없기 때문에 임금 체계에 차등을 두는 급수(1급~9급)제를 따르지 않는다. 즉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등과는 달리 급수를 따르지 않기에 임금 지급을 위해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 일반직 공무원은 호봉표가 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교사는 계급 구분 없이 동일한 호봉표를 따르기 때문에 별도의 규정이 필요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경력의 상당계급기준표’를 제시하여 교육공무원의 ‘호봉’을 기준으로 일반직 공무원의 급수 제도에 맞추어 계급을 제시한다.

  호봉을 기준으로 11호봉 이하의 교사는 7급 공무원, 12~15호봉의 교사는 6급 공무원, 16~23호봉 교사는 5급 공무원, 24호봉 이상 공무원은 4급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교장, 교감, 교사 순으로 계급을 세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호봉으로 구분을 지어 계급을 구분,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교육공무원의 임금 체계를 일반직 공무원과 합치하지 않는 이유는, 교원이 부족하던 과거 원활한 교원 수급을 위해 교직이수 등 다양한 제도를 설치하여 교사를 양성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교사가 되어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가 다수 있기 때문에, 임금 체계를 개편할 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호봉에 따른 봉급은 위 그림과 같다. 교사의 경우, 임용 시점에 소지하고 있는 2급 정교사 자격증이 8호봉으로 산정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임용고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교육/사범대학 졸업 혹은 교직이수를 통해 취득한 2급 정교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4년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인정되어 교원 임용 시 가산호봉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규교사의 임금은 9호봉, 즉 2,152,400원(약 200만원)부터 시작된다. 최저시급을 조금 웃도는 임금이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의 보수를 특별히 우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은 353만 1000원, 평균가계지출액은 256만 6000원이었다. 초임교사의 임금은 2,152,400원이다. 즉 초임교사의 임금은 1인 가구 평균‘지출’액보다도 41만 3600원이 적다. 기본적인 생계 유지에 필요한 평균 금액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셈이다. 평균소득액과 비교해보면 무려 96만 5000원, 약 백만원이 적다. 오늘날 교사의 임금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순히 교사라는 직업을 우대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저연차 교사에게 임금 문제는 생계 유지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비단 신규교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임용 이후 10년차가 될 때까지 교사 임금은 300만원을 넘지 못한다. 10년차의 교사가 35세 정도라고 가정할 때, 연봉은 약 3600만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임금직무 정보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대졸 이상 30-34세의 연봉 중위 수준은 약 4400만원이며, 대졸 이상 35-39세의 연봉 중위 수준은 5400만원이다. 즉 교사의 연봉 수준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같은 연령 집단보다 확연히 낮다.

 

  교사가 기본금 외에 얻을 수 있는 수입으로는 담임교사, 부장교사 등의 추가 업무를 통한 수입과 성과급 제도가 있으나 이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보직수당에 대해 먼저 논하면, 담임교사는 한 달에 13만원, 각 부서의 부장 교사는 7만원의 추가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8년째 동결된 수치이며 담임교사와 부장교사가 수행해야 하는 추가 업무량을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 담임교사는 매일 조·종례 진행 및 학급 관리, 30명 내외의 학급 학생 상담, 학부모 상담, 생기부 기록 등 추가 업무들을 맡고 부장교사는 해당 부서의 전체 업무 관리 및 부서 소속 교사 간 의견 조율, 업무 배분 및 관리자와의 의견 조율 등을 해야 한다. 노동 강도를 논하지 않고 순전히 소요되는 추가 시간만을 따져도 이상의 추가 수당은 적정치 않다.

 

  성과급의 경우 1년에 한 번 평가를 통해 교사들을 3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S등급은 500만원, A등급은 400만원, B등급은 300만원 수준의 금액을 지급한다(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관료제적인 호봉제가 교사의 열의를 떨어뜨린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현직 교사의 말에 따르면 교직 사회에서 성과급제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성과급제의 논리에 따르면 교사가 어려운 업무를 맡을수록, 좋은 성과를 낼수록 큰 금액을 지급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여러 업무 중 어떤 업무가 어려운 보직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어떤 항목을 중심으로 교사의 성과를 판단할 것인지 등급 산정 기준 책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성과급 제도가 교사 간 협업을 어렵게 하고 분란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교원 임금의 적절성 고찰하기 – 저연차 교사의 생존권과 교원 수급의 문제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월 교원 봉급 10.3% 인상, 교직수당 42.5만원, 담임수당 30만원, 보직수당 30만원으로의 인상을 요구하였다. 교직 사회에서 임금 인상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는 처음 발생한 일이다. 청년공무원조직위도 공무원 임금 체계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필요성에 응답하지 않고 내년 공무원 보수를 최저임금 인상률과 동일하게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교원 임금이 청년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는 큰 이유가 됨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 수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대두되는 지속적인 교원 자살 사태로 인해 교권과 교사 생존권에 관심이 몰리면서, 저연차 교사들의 생존에 필요한 또 다른 요구, 생계 유지를 위한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도마 위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의 임금은 얼마여야 할까?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해당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지를 이해할 지표이기도 하다. 즉, 임금 수준은 노동에 부여되는 사회적 가치를 암시한다. 의료인이 높은 소득 수준을 갖는 것은 의료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직업의 전문성, 그 희소성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의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타 직업들보다 높은 소득 수준을 갖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높은 임금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노동, “필요한” 노동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교사의 낮은 임금 수준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 한국처럼 평균 노동 시간이 길어 가정에서 가족끼리 보낼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공교육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아동 및 청소년이 있을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의 안전을 관리할 어른(교사)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때 쟁점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교원 인력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문제 제기일 것이다. 실제로 출생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수도권 쏠림 현상이나 교사 1인당 적정 학생 수 문제 등을 뒤로할 때) 이와 같은 지적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교사 임금 수준 개편에 대한 논의는, ‘젊은 교사’들의 교직 이탈 문제를 위해 필요하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어 새로운 교육을 수행할 젊은 교사들, 저연차의 교사들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실 이 글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전체 교사들의 임금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호봉제의 특성상 연차가 쌓일수록, 나이가 많은 고연차의 교사가 될수록 소득 수준은 높아진다. 그러나 저연차의 교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에게 최저임금과 유사한 수준의 낮은 임금은 교직 사회를 떠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하며, 이는 사범대생 등의 예비 교원이 교직 사회로의 진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교원의 실질 임금 보장 문제는 저연차 교사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미비할 때 교원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기에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올해 한국의 공무원 임금상승률은 1.7%이다. 물가상승률은 5.1%로 임금상승률을 훨씬 웃돈다. 사실상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지금의 임금상승률은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올해 3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주요교원정책에 대한 청년교사 인식조사’에 응답한 교직 경력 10년 이하 교사 84.1%가 ‘실질임금 감소’를 가장 심각한 교원정책으로 꼽기도 했다. 최근 1년간 퇴직한 경력 5년 미만 교원 수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점을 함께 생각할 때, 저연차 교사에게는 실질임금 삭감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먼저 교사 부족 문제를 겪어왔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이어진 교원 수급 문제가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규 교사의 25%가 5년 내에 학교를 떠난다고 보고되며, 이에 대학생 인턴을 견습 교사로 채용하여 문제를 임시적으로 해결하는 등의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무자격이기 때문에 교육의 질 측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교사의 연봉을 최소 $60,000(약 7,947만원)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법안을 도입하였다. 즉 교사의 연봉을 보장함으로써 현직 교사가 교직에 머물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다.

 

  정리하건대 교사의 실질 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교사의 생존권 보장과 교원 수급, 이에 따른 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노력이다. 5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은희 의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2-2023) 퇴직한 근속 연수 5년 미만의 전국 퇴직 교원은 589명이다. 이는 전년(2021-2022)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4월 조합원 1만 13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중 87%가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응답했음을 밝혔다. 원인은 빈번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및 악성 민원, 낮은 임금 수준,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보고되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성만큼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나는 교육이 사회 재생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아이들의 안전과 성장을 위해 반드시 안정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일종의 외주화된 돌봄 기관이다. 학교가 무너지면 학생들은 어디로 가나. 돌보아야 할 존재가 있는 곳에는 돌보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교사가 없다면 학생들은 왜 학교에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은 교사에게 요구되는 헌신, 책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지탱되어 왔다. 그 결과는 위에서 논의한 낮은 임금과,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교원 인권 침해 현황으로 돌아오고 있다. 교사는 언제까지 직업적 소명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을 감수할 것인가? 언제까지 단체 행동권이나 정치적 목소리가 제한되는, 반쪽짜리 권리 주체로서 의무만을 감수할 것인가? 생활 물가가 가시적으로 - 살인적으로 - 상승하는 이 사회에서, 교사 인권이 자꾸만 문제가 되는 이 상황에서, 과연 언제까지 교사는 학교를 지킬 수 있을까. 끝끝내 교사가 학교를 떠난다면, 학교 현장을 지키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교육적 주체는 누가 될 것인가.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내가 교생 기간에 만난 선생님은, 생후 100일이 된 신생아의 아버지였다. 그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학생들의 수행평가에 코멘트를 달고, 교육과정부장으로서 부서를 진두지휘하고, 하루에도 네다섯시간씩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학교의 도서관 증축 사업을 위해 연수를 들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수의 교사의 비난에 직면하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끌고 와 ‘체인지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창업 특강을 기획하고, 행복 특강을 기획했다. 그러면서 소진되고 있었다. 아내와, 아기에 소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괴로워했다.

 

  나는 선생님을 보며 자꾸만 답답해졌다. “나 하나일 때와 달리, 아기가 생기니까 월급이 너무 적어서..”라고 고민하는 선생님을 보며 속이 상했다.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학교에 모조리 달린 작은 동네에서, 학생들에게 최대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저 사람의 가치가 고작 300만원이 안 되는가. 그제껏 교사를 꿈꾸며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을 보며 처음으로, 금액이 암시하는 교사의 가치, 그것이 당사자에게 주는 허탈함에 대해 생각했다.

 

  정부가 공무원 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수가 100만명을 웃돌기 때문에 쉽사리 예산을 추경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번 정부는 “건전재정”을 내세우며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긴축의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경중을 판단하고 불필요한 부분에서 예산을 감액할 것인가? 공교육의 현장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누수와 침식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곳을 보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서는 교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교사는 교육 재생산의 주도자이기 때문이다. 지원의 방법으로는 임금 개편이나 다른 제도적 지원이 있을 수 있다(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동학대법 개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교육 실천의 주체이며 돌봄을 수행하는 주체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의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가치관을 제시하며, 학생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집단의 생활 지도, 진로 상담, 교우관계 조정 또한 모두 지원한다. 가정과 사교육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육’의 영역이, 공교육에, 학교라는 실제적 현장이 제공하는 교육과정에 있다. 교사가 지속가능한 삶을 이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외친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교원의 실질 임금을 보장하라. 젊은 교원들이 학교를 지킬 수 있게끔 그들의 삶을 보호하라.

 

정민

0.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더듬거리는 내 대답을 잠깐 듣고는, 준비했다는 듯이 자기가 생각하는 멘토링의 의미를 유창하게 설명해나갔다. 나는 풀려버린 생각의 실들을 다시 모아보려 애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머리 속엔 여전히…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런 순간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해 오던 것들이 갑자기 너무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순간. 가장 혼란스러운 그 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렬하게 남는다. 내게는 올해 초, 멘토링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다가 저 질문을 받았던 순간이 그랬다.

 

  당시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동아리에서 부장을 맡고 있었다.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위해 작년에 처음 모였던 우리 동아리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제로 잡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초기 부원 중 한 명이 학교 밖 청소년 출신이었고, 그가 들려준 문제 상황이 꽤 구체적이고 사회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 공부하며,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학생 단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멘토링이라는 형식은 그저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뿐이다.

 

  그렇게 작년에 한 번의 시범 프로그램을 그럭저럭 잘 마쳤고, 올해부터는 부장을 맡게 됐다. 여름에 있을 또 한 번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지혜를 구하러 다녔는데, 그러다 한 멘토링 기관의 대표로부터 저 질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난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찾아보니 멘토링이라는 말은 교육이라는 말과 처지가 비슷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학교에서, 복지기관에서, 각종 재단에서, …… 문득 내가 지금까지 구상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이 미심쩍어졌다. 아무래도 저 물음에 나름대로 답하지 않고는 어떤 멘토링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이런 문제다. 어떤 사람이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서 스쿼트를 할 때 팔을 과하게 휘적거린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자세로 할 때보다 오히려 안 좋은 효과가 나고 말 것이다.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 팔굽혀펴기 같은 다른 운동을 하고, 스쿼트를 할 때는 적절한 자세로 하체 근육에 집중하는 게 좋다. 멘토링도 마찬가지다. 멘토링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멘토링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때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멘토링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반 년간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고, 그것을 토대로 직접 1달에 걸친 프로그램을 기획해 본 경험을 재구성한 결과다. 썩 만족스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모든 일에서는 배울 게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는 글이다.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실천과 고민에 대한 기록들이 불완전하게 뒤섞인 이 글의 형식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 글은 말미에 제시할 주장에 대한 탄탄한 논증도, 지난 경험에 대한 섬세한 재현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이 글은 이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 그러니까 나의 봄과 여름을 관통했던 멘토링이라는 아리송한 경험과, 그 속에서 피어난 어렴풋한 인식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의 시작은 올해 3월로 거슬러올라간다.

 

1. 멘토링 기관 스터디

 

  3~4월, 나는 팀원들과 역할을 나눠 다양한 멘토링 기관을 찾아보고 인터뷰하러 다녔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공부하고 기획한 멘토링을 간단히 정의하고 넘어가야겠다. 앞서 말했듯 멘토링의 범위는 매우 넓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춘 멘토링 기관은 (1) 청소년을 멘티로 삼고, 외부에서 멘토를 모집하여 (2) 특정한 결과의 달성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참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3) 멘토링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기관들이었다.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기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들른 곳은 ‘러빙핸즈‘와 ‘점프’였다.

 

1-1. 러빙핸즈 멘토링

  러빙핸즈는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의 아동, 청소년 멘티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장기간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박현홍 대표에 따르면 주로 초등학생 나이 때 멘토링이 시작된다고 하니, 평균 7~8년 동안 멘토링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처럼 워낙 긴 시간을 관통하는 만큼 멘토링에 별도의 주제나 목표, 정해진 활동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유일한 목표라면 “친해지는 것”뿐이다. 러빙핸즈에서 제공하는 멘토양성과정을 수료한 성인이라면 자격 요건 없이 멘토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두 번 만남을 기본으로 한다.

 

  러빙핸즈에서 진행하는 멘토링의 방향성은 기관의 성격과 직원들의 경력을 고려할 때 분명 교육보다 복지를 향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박현홍 대표는 “아동학대/성폭력 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정서적 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멘토링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러빙핸즈 멘토링의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멘티에게 ‘어른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그는 멘토라는 말의 어원을 들려주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며 자신의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맡겼던 친구 이름이 ‘멘토’에요.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10년 간 친구나 선생,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을 돌봐줬죠. 여기에서 멘토링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따라서 그 어원에서부터, 아이가 성장하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 멘토링의 의미였던 것이죠."

 

  그는 멘토양성과정에서 예비 멘토들에게 멘티를 앞장서 이끌며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멘티가 걷는 길에 함께 해줄 것을 가장 강조한다고 했다.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며 곁에 남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든든한 어른 친구가 되어 줄 것, 관심을 갖고 옆에 있어줄 것을 강조하는 러빙핸즈 멘토링의 특징은 아마 대상이 되는 멘티들이 소외된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 사회복지 단체라는 점에서 오는 듯했다.

 

1-2. 점프 멘토링

점프는 “누구나 차별 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리며 성장하는 사회”를 미션으로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점프 멘토링의 특징은 ‘삼각멘토링 모델’에 있다. 청소년 멘티와 성인 멘토의 이자관계만 존재하는 대부분의 멘토링 모델과 달리, 점프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인 ‘사회인 멘토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학생 멘토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진로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대학생들의 점프 멘토 활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롤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멘토링 기간은 기본적으로 1년이다.

 

  점프의 이의현 대표는 “미국에서 취업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이민자, 소수자의 권리에 관심이 커져 대학원에서 관련 공부를 했고, 그때 고안했던 멘토링 모델을 한국에서 이주/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에게 적용했던 것이 점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비행청소년이나 발달장애 청소년 같은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다. 한편 점프가 멘토링 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수요자 중심주의다.

 

"우리나라는 많은 영역이 공급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할 때 답인 것을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점프에서는 협력하는 기관의 수요를 최대한 충족하려고 해요. 우리가 하는 건 대학생 멘토를 선발해서 보내주고, 매니저들을 통해서 관리하는 정도죠. 멘토링의 내용은 청소년들을 가장 잘 아는 기관에서 온전히 결정해요."

 

  협력 기관이 원하는 프로그램은 주로 학습 지원이다. 그러나 이의현 대표는 학습 멘토링의 목표가 “공부를 실질적으로 잘하게 되는 것보다도, 누군가의 응원과 동기부여를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점프의 멘토링 기간이 길지 않아서 멘티들이 곧바로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면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 쉬운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의 관심과 지지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은 학업을 넘어 청소년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점프 멘토의 핵심 역할은 멘티가 배움의 기회를 제대로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면서 동기부여와 성취 경험을 주는 데 있었다.

 

2.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다

 

2-1. 멘토링에 대한 이해와 고민

  이렇게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멘토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 멘토링의 핵심은 멘토라는 역할의 정체성에 있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일, 즉 넓은 의미의 교육에 관련된 다양한 역할들 중에서 ‘멘토’라는 개념은 ‘옆에서 함께하며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특히 부각한다. 이 점에서 멘토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행위가 강조되는 교사나 강사, 전인적인 성숙함에 대한 존경이 담긴 선생, 특정한 방향이나 단계를 제시하는 롤모델 등의 이웃 개념들과 달라지고, 바로 여기에서 멘토링의 특징이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멘토링의 목표가 “어른 친구”가 되어주는 데 있다는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의 표현은 적절한 비유이다. 따라서 우리의 프로그램 역시 학교 밖 청소년 멘티가 성장하는 과정에 “어른 친구”, 또는 형(오빠)이나 언니(누나)처럼 함께하며 멘티를 돌보고 살피는 활동이어야 했다. 우리는 멘토로서 그 과정에서 동기를 북돋아주고, 어려움을 덜어주며 한 발짝 더 나아간 멘티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하며 5월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인터뷰이들의 선택에 내재한 쟁점과 고민들을 시행착오 없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러빙핸즈나 점프는 왜 이렇게 했을까, 그래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단념해야 했을까. 이런 물음들과 함께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여러 고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프로그램 기간과 일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활동 기간은 프로그램의 형식을 결정하고, 따라서 내용과 정체성을 조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에 따라 멘토-멘티 관계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또는 자주 멘토링을 진행하면 깊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참가자의 부담이 크고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당장 각자의 고민으로도 어깨가 무거운 대학생들이 언제까지나 청소년에게 멘토가 되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반면 기간이 너무 짧거나 활동의 밀도가 낮으면 멘티를 세심히 살필 만큼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동기부여의 관점에서도 긴 호흡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우리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멘토와 멘티의 사정만큼이나 해당 기관의 운영 일정도 고려해야 했다. 이래저래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해 준비 과정에서 갑갑함을 많이 느꼈다.

 

  프로그램의 주제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물음표가 시원스레 해소되지 못했다. 동아리 내에서는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나름의 합의가 있었지만, 협력 기관의 수요는 그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기관 측에서는 “서울대 멘토”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함을 살리길 원했고, 검정고시도 얼마 남지 않았던 만큼 학습을 위한 동기부여와 정서적 지지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바랐다. 반면 우리는 학습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습관 형성을 통해 성취 경험을 만들고, 자기 이해와 진로 탐색, 그리고 사교성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간 나름대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며 발견한 주제들이었다. 따라서 기획자로서 우리의 비전을 관철하고 싶은 마음과, 서비스 제공자로서 기관의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졌다. 점프는 수요자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했지만, 프로그램 운영을 기관에 일임하고 멘토 관리만 하는 점프와 달리 우리는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만큼 우리가 지향하려는 가치를 쉽게 단념하기는 어려웠다.

 

2-2. 기획에서 실행까지

  프로그램 시작을 앞둔 6월, 고민 끝에 활동 기간과 주제, 구체적인 일정을 결정했다. 활동 기간은 7월 한 달로 정해졌다. 8월 중순에 검정고시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7월을 넘어서까지 프로그램을 이어가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6월 말에 방학이 시작하고, 8월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대학생 멘토들의 일정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대신 4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활동의 밀도를 높이기로 했다. 그에 따라 우리의 프로그램은 매주 멘토와의 일대일 만남으로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과, 2주에 한 번씩 총 두 번 모든 멘토링 팀들이 함께 모이는 ‘단체 활동’으로 구성됐다.

 

  한편 주제에 있어서는 청소년들 각자의 수요에 최대한 맞추고자 멘토와 멘티에게 큰 자율성을 부여했다. 학습, 정서, 일상생활 습관 형성, 진로 탐색 등 다양한 주제 영역들을 소개하되 멘토와 멘티가 첫 만남 때 직접 ‘개인 과업’을 설정하도록 한 것이다. 4주 간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에 따라 멘토가 계획하기로 했다. 이외에 단체 활동은 멘티들의 친교를 위한 것으로,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학교 밖 청소년의 상황을 고려해 기획했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또래들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는 ‘학생/청소년’들과 달리, 학교 밖 청소년들은 특별히 적극적이지 않는 이상 또래 관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사이도 학교를 나오고 일상 패턴이 달라지면서 소원해지곤 한다. 같은 지원센터를 다닌다 하더라도, 인사만 하는 사이일 뿐 개인적인 친교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멘토-멘티의 이자관계에만 주력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과 달리, 참가자 모두가 친해질 수 있도록 단체 활동을 준비한 것이다.

  협력 기관과는 기획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소통했다. 예산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7월에 예정된 기관의 주요 일정들은 무엇인지, 단체 활동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 다방면에서 의견을 나눴다. 소통 과정이 그리 원활하지는 못했다. 많은 경우 내 미숙함 탓이었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과 멘토링 기관에 대한 스터디를 거치면서 달라진 기획 의도와 프로그램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 실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멘티들은 협력 기관에서 우리의 기획안을 바탕으로 모집했고, 멘토진은 우리 동아리 내에서 꾸렸다. 동아리 부원들은 운영진으로만 활동하고 멘토는 외부에서 모집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기획이 예정보다 늦어지며 멘토 모집 시기를 놓쳤다. 멘토를 새로 모집한다면 교육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 자료를 마련하고 교육 일정을 잡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리 부원들이 멘토를 맡으면서 프로그램 중 내부 소통은 원활했지만, 그만큼 멘토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2-3. 아쉬움 속에서 멘토링을 새롭게 인식하다

  나는 운영팀장으로서 협력 기관 담당자와 소통하는 한편 멘토로도 참여했다. 둘 중 애로사항이 더 많았던 역할은 운영팀장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이런 역할을 맡는 것도 처음이라 멘토와 멘티, 그리고 기관 사이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여기에 날씨 등의 변수도 겹쳐 애초에 야외 활동 위주로 기획했던 단체 활동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급하게 준비한 대체 활동이 빈자리를 적당히 채우기는 했으나, 처음에 기대했던 효과에 못 미쳐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멘티들은 “단체 활동이 멘토 선생님과 둘이서, 또는 각자 알아서 하는 활동 위주였어서 다른 멘티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라는 피드백을 남겼다. 기획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잘 작동하기까지는 많은 에너지와 역량,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오래 맴돌았다.

 

  멘토 역할은 그보다 뿌듯함이 더 짙게 남았다. 내가 맡았던 멘티는 학교를 그만둔 지 1년이 약간 넘은,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후기 청소년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악기 연주와 수영 등 여러 취미도 즐기고 있었다. 8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내년에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막연하게 입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은 공부에 뜻이 없어 성실하게 공부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불완전하게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면 약간 주눅이 들었고, 웬만하면 검정고시 이야기는 기관 안에서만 하고 싶어 했다. 이런 모습들을 살피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자기 이해와 학습 상황 점검을 개인 과업으로 설정했다. 매주 한 번씩 만나 편하게 일상이나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부 계획을 세우고 간단한 과제를 정해서 점검하기도 했다. 늘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임했고, 내가 그에게 약간의 자극과 인상은 남겼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짧은 멘토링 기간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4주라는 시간은 함께 성장과 성취를 경험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특히 멘티가 몇 번의 실패 앞에서 쉽게 그만두려 할 때면 그와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에 생각보다 한계가 많다는 점도 때로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나의 꿈과 관심사, 그동안 걸어온 길은 멘티의 그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그런 경험의 차이를 메울 만큼 공부나 상담 등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도 못했고, 그 간극만큼 나의 부족한 경험과 역량에 한계를 느끼곤 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패와 아쉬움에 대한 성찰을 읊조리는 이유는 이를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의 현실적 문제들과 새로운 특징들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인 운영 상의 문제들은 차치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멘토로 참여하면서 발견한 멘토링의 특징과 가치를 논해보려 한다.

 

3.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 : 교육에서 멘토링의 위치는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며 이해한 멘토링의 핵심이 ‘살피고 보살피는 행위’였다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발견한 멘토링의 키워드는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앞서 개인적 경험에서 느꼈던 ‘비전문가로서의 아쉬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링이 갖는 특이한 위치를 드러낸다. 많은 경우 멘토링은 교육적 관점에서 ‘비전문가와의 관계 맺기’라 할 수 있다. 멘토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전문가도 아니며, 그 외의 어떤 영역에서도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멘티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성숙하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 그래서 멘티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멘토는 언제나 ‘아마추어 교육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멘토는 ‘애매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그는 부모나 친구처럼 완전히 사적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서 말한 아마추어적 특성으로 인해 완전히 공적 영역에 속한 전문가도 아니다. 멘토는 친근한 동네 형/언니 같으면서도 선생님 같고, 어른 같으면서도 친구 같은 존재다. 함께하는 활동이 대개 분명한 목표보다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치중해 있는 만큼 교육기관에서 만나는 교육자들보다는 친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석에서까지 아주 친근한 사이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는 멘토로 참여하며 이러한 특징들을 주로 약점으로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멘토링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면서, 이게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는 멘토링에 대한 앞선 이해와도 이어진다. 멘토링이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강조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교육과 복지/돌봄 사이에서 두 영역의 주변부를 맴돌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 복지/돌봄이 오늘날 서로 분화된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역사적 결과이며, 실제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활동은 두 영역의 무수한 교차와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옛 속담처럼, 또는 목욕법에서부터 교수법에까지 이르는 <에밀>의 시시콜콜한 조언들처럼. 따라서 멘토링의 애매한 정체성은 그것이 교육의 저변에서, 실패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균열의 지점들을 유연하게 채워주는 특급 도우미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멘토링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그것이 특유의 유연함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 환경을 더 매끈하고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산업의 확장과 기술의 발달, 평생교육 패러다임의 등장 등으로 일견 촘촘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가 점점 ’가르치고 배우다’로 축소되고 있기도 하다. 다변화되는 사교육 산업, 학습과학의 발전, 교수-학습 과정에 정밀하게 개입하는 각종 기술의 도입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전문화되고 분화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듯 보이는 우리 시대의 교육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앙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을 위한 돌봄의 부담을 모두 떠안고 있지만 보호도, 지원도 부족한 교사들의 모습에서, 또는 좋은 ‘인강’만 있으면 이제 어떤 교육도 필요하지 않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에서 나는 앙상해지는 교육의 징후를 본다. 학술적 개념으로서 ‘교육’은 정확하고 정밀해져야 하겠지만, 누군가의 긍정적인 변화를 돕고 이끈다는 넓은 실천적 의미에서 ‘교육‘은 모든 행위와 개입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멘토링은 누군가의 성장을 돌보고 살피는 행위로서 전문화되는 교육의 주변부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습 과정에서의 정서적 좌절이나, 교육 기관이나 프로그램에서 겪곤 하는 자질구레한 어려움들을 덜어줄 수 있다. 그런 도움을 통해 기존의 인간관계 연결망을 가로질러 새롭고 느슨한 연결의 선을 만드는 사회적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적당히 힘들고 지치는‘ 사람들이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선순환의 사이클, 그것이 내가 그리는 멘토링의 미래다.

 

갈수록 전문화되는 세계에서 멘토는 어디까지나 교육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충실히 전문화된 공적 영역도 아니고, 온전히 사적인 친밀성 영역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이파리

  “물리학 최저 선택자를 찍다!”

 

  “갈수록 심해지는 물리 기피현상”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물리학은 어려운 과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과목에서 물리학은 항상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아래 표[각주:1]는 2014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근 10년간의 과탐[각주:2] 응시자 수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통합형 수능의 이슈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교차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전체적인 과탐 선택자 수가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물리학을 선택하는 학생 수도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응시자 수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응시자 수가 15%도 되지 않으며, 가장 응시자 수가 많은 과목과는 20%나 차이가 난다.

 

  물리교육과 학부생인 필자는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물리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학문으로, 물리학에서는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 및 물체의 운동과 물질의 성질 및 변화, 에너지의 변화 등을 연구한다. 물리학은 우리 주변의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제일 먼저 체계화된 학문이다. 다시 말해,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보편지식을 추구한다.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다.

 

  “과학적 사고의 마지막 요소는,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겁니다. 특정지식은 개별 과학적 사실들을 말하는데 이들을 묶어서 보편지식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합니다. 보편지식을 간단하게 이론이라고 하지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나 계절이 돌아오고,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하나하나과 과학적 사실이고 특정지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보편적 체계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뉴턴의 ‘중력의 법칙’입니다.”

 

  물리학은 특정 지식이 아닌 보편지식 체계를 추구하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물리학을 배우면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력을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지식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반성할 수 있고, 지식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며, 단번에 바로 참이라고 믿지 않는 반증 가능성도 배울 수 있다.[각주:3] 그렇기에 학생들이 사고력을 넓히고 우리 주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필요하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학문의 토대가 되는 물리학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물리학은 왜 수험생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학문 자체의 성격에서 기피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으며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다. 또한, 수학적인 능력도 요구되다 보니 학생들이 금방 어렵다고 단정 짓게 된다.[각주:4] 다른 요인으로는 입시 및 상대평가가 있다. 수능이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다 보니, 선택자 수가 적고 잘하는 학생들만 모일 것이라 생각되는 물리학은 학생들이 피하게 되는 것이다.[각주:5]  점수를 잘 받아서 더 좋은 입시 결과를 낼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다 보니,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물리학을 배우지 않았던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물리학이 어렵다고 기피하다 보니, 기초과학 지식수준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대학 수업에서도 물리학 선행지식의 유무에 따라 학생 간에 격차가 생기고 있다.[각주:6]

 

  필자도 이러한 물리학 과목과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여러 문제들 중 학생들이 학문의 특징으로부터 벽을 느끼게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학생들은 수식으로 표현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외우지만 연습한 유형 외의 다른 문제들에는 이론을 쉽게 적용하지 못하곤 한다. 이렇게 과학적 사고력이 없이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다 보면 배운 이론을 적용해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더라도 결국 그 이론을 일상생활이나 자연현상에까지는 적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이 물리학 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은 이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면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VPython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추상적인 개념 및 이론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느껴 이 글에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1. VPython이란?![각주:7]

  VPython은 Visual Python의 줄임말로, python 언어로 작성된 코드를 3D 결과물로 보여주는 툴이다. 이는 David Scherer로부터 만들어졌다. 1988년 David Scherer가 카네기멜론 대학에 들어온 후, 그는 연구실에서 이전에 개발된 2D 그래픽 프로그래밍 환경을 더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의 봄과 여름에 David Andersen, Ruth Chabay, Ari Heitner, Ian Peters, Bruce Sherwood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이전의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더 사용이 쉬운 언어(파이썬)를 이용하고 물체를 3D로 렌더링[각주:8] 할 수 있는 VPython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2016년 이후로는 VPython 언어 자체보다는 이를 실행하는 Glowscript[각주:9]와 Jupyter 환경 개발에 집중하기로 개발자들이 선언한 상태이다. VPython은 처음에 카네기멜론 대학의 입문 물리학 과정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 미국의 다른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Python 언어와는 다르게 VPython은 한국 내 사용자가 적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리 시뮬레이션이나 교과융합과 관련하여 VPython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고, VPython은 확산이 된다면 교육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VPython으로 사용자는 박스, 실린더, 구 등의 물체를 만들 수 있고, 이것들의 위치, 길이, 색깔 등을 직접 조정할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박스 안에 있는 코드를 입력하면 그 아래에 보이는 것과 같은 실린더를 만들 수 있는데 pos는 실린더의 위치, axis는 축의 위치, radius는 반지름을 나타낸다. 3차원이기 때문에 코딩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벡터에 대한 개념도 익힐 수 있다. 이외에도 아래의 사진과 같이 이미지 파일을 불러와 상자의 겉면에 입힐 수도 있고 VPython에 내장되어 있는 질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간단한 작업들만으로도 학생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시 작품들은 글의 중간중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VPython에 대한 인터뷰

  서울고등학교의 송석리 정보 선생님께서는 2018년도부터 Vpython 사용을 시작하셨다. 이를 수업을 통해 여러 번 활용해보셨으며 학생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들도 Youtube(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계신다. 또한, 선생님께서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VPython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릴 수 있었다.

 

1) VPython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

  먼저 선생님께 VPython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을지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파이썬 기초 문법을 배운 다음에 간단한 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있어야 문제 해결 능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단순히 문법만 배워서는 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의 대안으로서 VPython을 생각해내셨다고 한다.

 

  Vpython에서는 우리가 이전에 ‘코딩’하면 바로 떠올리던 “hello world”와 같은 텍스트 결과 대신 박스와 같은 물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3D라는 것을 모르지만 마우스를 이용해 돌려보면 3D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이때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하셨다. 코딩이라는 것은 결국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학생들은 텍스트 프로그래밍보다는 VPython을 더 흥미로워한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효과 등도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VPython은 glowscript라는 웹으로 접속할 수 있어 핸드폰으로도 열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도 VPython이 시각화가 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느꼈다. 물리 과목에는 수식이 많이 나오는데 수식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식 암기만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이때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이렇게 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추가적으로 수식의 의미를 습득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수업 진도 후에 따라오는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서는 수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에 등가속도 운동 공식을 이용해 직접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감속하는 운동을 구현하면서 속도와 거리에 대한 공식을 계속 조정하며 코딩을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직접 공식을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본다면 왜 이 식이 해당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식은 이론적인 것이라서 보고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도 시뮬레이션과 연결 지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 교과에서는 이상적인 또는 이론적인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마찰력, 공기저항력 등의 변인을 통제하곤 하는데, 시뮬레이션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통제된 변인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감속하는 상황을 수식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그날의 날씨 상황에 따라서 실제로는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정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직접 자동차의 운동을 코딩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되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자동차가 멈추는 상황을 코딩하기 위해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자동차의 속도를 0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곧 그 학생은 어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정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서히 멈추도록 코딩을 하게 될 것이다.

 

  아래는 필자가 VPython을 이용해 만든 물리학I 내용 중 등가속도 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뮬레이션의 실행 결과[각주:10]이다.

왼쪽 사진은 시뮬레이션 시작 전의 모습으로 두 대의 자동차와 정지선을 볼 수 있다. 키보드에서 화살표 위쪽 방향키를 눌러 자동차가 운동을 시작하면 사용자는 자동차가 정지선을 넘지 않고 멈출 수 있게 스페이스 바를 눌러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오른쪽 사진에서처럼 자동차가 멈췄을 때 정지선을 넘지 않았다면 초록색, 넘었다면 빨간색으로 자동차의 색이 변한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자동차가 운동한 후 흐른 시간과 이동한 거리가 표시된다. 마지막에 각 자동차의 이동거리를 0.2초 간격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딩을 통해서는 학생들이 두 자동차의 초기 속도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거나, 두 자동차의 질량을 다르게 설정하며 초기 속도 및 질량에 따른 제동거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가 등속운동을 할 때, 또는 등가속도 운동할 때의 식을 스스로 작성하면서 시뮬레이션 결과가 예상한 바와 다르다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찾고 고민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이 스스로 수식을 작성해보면서 그 수식이 작용하는 모습까지 반복적으로 관찰한다면 학생은 어렵던 물리 이론을 조작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추상적이었던 내용도 좀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VPython은 물리 교과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 VPython의 활용 범위

  필자는 VPython이라는 도구를 알게 되고, 이를 교육저널 동아리 부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때, 필자는 이 도구가 수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들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부원들과 논의하다 보니, 이 도구를 수학과 과학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국어와 영어 같은 수리적이지 않은 과목에도 적용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정보 교과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기에 코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부원들도 있었다. 필자가 보여줬던 시뮬레이션에는 물리적 지식도 들어가 있었기에 부원들은 VPython이 코딩을 잘하거나 수학 또는 물리를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닐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VPython이 ‘특정 교과’에서 ‘특정 대상’으로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먼저 VPython이 적용될 수 있는 교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필자의 경우에는 VPython으로 영어 hangman 게임[각주:11]도 만들어보았기에 꼭 과학이나 수학 교과가 아니어도 모든 교과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시뮬레이션으로서 활용하기에는 수학과 과학 두 과목에서만 접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미술 교과에서도 할 수 있지만, 미술에는 더 자유로운 도구들이 많으니 굳이 VPython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만든 영어 hangman 게임도 프로그램을 이용해 hangman 게임을 자동화시킨 것일 뿐 그 교과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필자는 이번 기회로 각 교과에 잘 맞는 도구가 있을 텐데 그 도구가 꼭 모든 분야에 다 활용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VPython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 수학, 과학 교과에서 VPython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학생들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게임이나 원하는 디자인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수학과 과학 지식을 접목하면서 물체의 움직임과 과학적 현상도 표현할 수 있다.

  위 사진은 필자가 만든 hangman 게임을 캡처한 것이다. 슬라이더를 이용해 가시의 크기와 펜의 색깔을 바꿀 수 있고 사용자들은 사람이 다 그려지기 전에 영어 단어를 맞추면 된다. 단어가 무작위로 나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복해서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구성한 게임을 친구들과 해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VPython을 사용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VPython은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현재는 모든 중고등학교에 정보 선생님들을 한 명씩 배치하도록 되어 있고,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중학교에서 정보 교과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3~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정보 수업을 접하지 못해서 코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적어진 것이다. 문제는 학교 선생님께서 VPython을 가르치시는지의 여부인데,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확산이 잘 이루어진다면 VPython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VPython은 파이썬을 배우는 방법 중에 가장 문이과[각주:12]에 관련 없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선생님께서는 코딩에 관심이 없고 코딩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데, 지금까지 수업을 했을 때 테니스부나 야구부와 같은 운동부 학생들도 흥미롭게 참여하는 것을 보면 VPython이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VPython을 이용해 집을 짓는 건 테니스부 학생들도 할 수 있고, 야구부 학생들도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들며 야구장을 구성해볼 수 있다. 이러한 VPython의 시각적인 코딩은 텍스트 코딩보다 훨씬 재밌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코딩에 즐겁게 입문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필자는 위에서 보여준 고2 학생들을 위한 물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코딩하면서, 물리학1 교과에 나오는 수식을 이용하다 보니 소수의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었다. 그래서 부원들이 우려했던 대로 VPython은 정말 수학, 과학을 잘하고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적합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학, 과학에 지식이 없더라도 스스로 산출물을 만들어보는 것에 의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유튜브[각주:13]에 올라와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VPython 산출물 영상의 캡처 화면이다.

  왼쪽은 이중슬릿 간섭을, 오른쪽은 당구를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지금 가져온 것들은 과학고 학생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이 당구대와 당구공의 형태를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것처럼 수학, 과학적 지식이 깊지 않은 다른 학생들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VPython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것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논해 보았다. 또한, 작품 예시들을 통해 VPython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VPython은 확실히 흥미로운 도구이고, 단순 텍스트 코딩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내용도 더욱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단순한 블록코딩을 넘어 직접 프로그래밍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코딩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 모두 흥미를 가지고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논외로 이야기하자면, 원래 필자는 이번 글에 중학교 급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과학 프로그램의 예시도 직접 만들어 보여주고자 하였다. 필자는 롤러코스터에서의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중학교에서는 위치에너지가 ‘(질량) x (중력가속도) x (높이)’이고, 운동에너지가 ‘0.5 x (질량) x (속도의 제곱)’이라는 것과 함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합한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필자는 열차가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지나가는 동안의 열차의 높이 및 속도를 표현해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됨을 보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높이 자체는 y좌표를 측정해서 구하면 되지만, 롤러코스터가 물리 법칙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면 중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사실로부터 거꾸로 속도를 맞출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보존법칙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중등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중등에서는 부력이 질량에 비례하고 부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VPython으로 물과 나무 조각을 표현하고, 질량과 부피에 관한 식을 세워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비례와 반비례 관계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중학교 과정에서는 부력의 공식 자체를 배우지 않지만,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이 공식을 체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 조각의 질량과 부피를 조정하다가 부력에 영향이 있는 다른 요인을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VPython에 관심이 생긴 분들은 간단한 결과물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경험했을 때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VPython을 조금 더 익혀서 물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 추상적인 과학을 이해하고 싶은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나무

  1.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결과 보도자료 참고 [본문으로]
  2. 과학탐구의 줄임말 [본문으로]
  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1938070?sid=105 [본문으로]
  4. 강지선(2015). 물리학습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메타분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본문으로]
  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030300035 [본문으로]
  6.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511/119254947/1 [본문으로]
  7. https://en.m.wikipedia.org/wiki/VPython [본문으로]
  8.  2차원의 화상에 광원, 위치, 색상 등의 외부 정보를 고려하여 사실감을 불어넣어 3차원 화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1713&cid=40942&categoryle=32828) [본문으로]
  9.  Glowscript 웹사이트(https://glowscript.org/) 통해 VPython 언어를 작성하고 실행해볼 수 있다. [본문으로]
  10.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termproject 위의 링크에 접속하면 직접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볼 수 있고, VPython 코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1.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hangman 에서 hangman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본문으로]
  12.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을 시행하였으나, 아직 고교에서는 선택과목에 따라 학생들이 문과 또는 이과의 성향을 보이게 되므로 ‘문이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13. https://www.youtube.com/watch?v=HDwkwipLS2g&t=329s (이중 슬릿 모의실험) https://www.youtube.com/watch?v=_T8K0CBAZBo (4구 당구) 각 작품의 유튜브 영상 링크이다. 링크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적용한 과학 이론과 학생들이 겪은 시행 착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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